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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식 집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현재의 삶과 매우 다른 생활을 했지요. 조선의 옛집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1일부터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함성호의 옛집 읽기’를 연재하고 있는 함성호 시인(49). 그는 수많은 집과 사무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이지만 건축평론가와 만화비평가로 활동하며 책도 여러 권 냈다. 때때로 설치작품을 만들어 현대미술 전시회도 열고, 공연기획자로 나서기도 한다. 이것저것 오지랖 넓게 들쑤시고 다닌다는 뜻에서 명함에는 ‘오지래퍼’라는 직함을 달았다. 그는 2000년 이후 전통 건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전국을 답사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옛집 중에는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우암 송시열, 남명 조식 등 성리학자들이 직접 지은 집들이 많았다. 유서 깊은 반가(班家)에는 집 부근의 산세와 산맥을 그려둔 ‘산경표(山經表)’가 족자로 걸려 있는 점도 놀라웠다. “우리의 옛집은 서양건축처럼 하나의 동떨어진 오브제가 아닙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산맥, 대지, 땅, 물과 어우러짐까지 고려한 엄청난 스케일의 건축입니다. 옛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심포, 다포’와 같은 양식보다는 그 너머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함 시인은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이 우리 옛집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기 위해 2003년부터 홍익대 앞 건축사무소에 ‘맹꽁이 서당’을 차리고 3년간 동료 건축가들과 한문을 공부했다. 그는 “퇴계 이황은 자신의 철학적 깨달음을 담은 그림 ‘성학십도’를 현실세계에 구현하기 위해 도산서원을 지었다”며 “도산서원은 가장 완숙한 철학자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동양철학의 정원”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의 반가는 방이 굉장히 작습니다. 그러나 방 안에 들어서면 전혀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외부의 풍경을 방 안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강원 속초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 건축과를 졸업할 때까지 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1989년 고 추송웅 씨의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보고 “나도 희곡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휩싸였다. 습작을 한 편 써서 고 김규동 시인에게 보냈는데, 선생이 “뛰어난 이야기 시(詩)”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1990년 문학과사회에 3편의 시로 등단했고, 이후 ‘56억7천만년의 고독’ ‘성 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등의 시집을 내면서 중견시인이 됐다. 그는 최근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아내를 위한 집을 직접 지었다. 옥탑방에서 인근 산봉우리에 걸린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집이다. 요즘엔 집 안에서 건축설계도 하고, 시도 쓰고, 만화도 보고, 그림도 그린다. 함 시인은 동아일보 연재 칼럼을 통해 옛집의 뒤뜰에 대나무 숲을 조성한 이유, 처마의 길이, 풍경 소리, 담벼락 등 옛집 곳곳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살필 예정이다. “문화재 관리하는 분들은 제발 문을 꼭꼭 잠가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 건축은 서양 건물처럼 바깥에서 읽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꼭 마루에 올라가 보고, 방 안에 앉아 차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바라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책의 부제는 ‘왜 사람들은 더 이상 주류를 좋아하지 않는가’다.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 곳곳에서도 주류 문화가 급격히 균열하고 있다. 발아래 거대한 지반 곳곳에서 틈새가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중심부에서 가장자리로 에너지가 이동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니치(niche)는 틈새를 의미한다. 틈새시장을 뜻하는 ‘니치마켓’은 예전부터 경영학자들이 써오던 용어다. 주변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추구한다는, 주변적이고 소극적인 개념이었다. 그러나 중심부 곳곳에서 쩍쩍 틈새가 벌어지고 있는 21세기엔 “니치란 더 이상 제3의 길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의 주류이며 대세”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중간층이 소멸하고 사회가 ‘획일적인 대중’에서 ‘잡식성 대중’으로 변모한 것을 지목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과테말라 커피와 향이 풍부한 자바산 커피, 감미로운 케냐 블렌드의 차이를 구분하길 간절히 열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1969년 창업해 ‘모든 세대를 위하여: 갭’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승승장구했던 의류 브랜드 갭은 2000년대 들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더 이상 모두의 마음에 들 수 있는 브랜드, 평균적인 고객 따위는 없었다. 이처럼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공룡 브랜드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그 대신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 ‘다르게 생각하라’는 모토를 내건 애플, ‘피카소, 헤밍웨이가 사용했던 전설의 수첩’을 표방한 몰스킨과 같은 회사들은 종교집단처럼 열광적인 추종자를 양산해내고 있다. 영화산업에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개런티를 준 스타배우를 캐스팅한 ‘블록버스터’ 여러 편이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있다. 기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잡식성’ 대중에게 블록버스터는 엄청난 비용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전략이 돼버렸다. 그 대신 요즘은 소수를 대상으로 하지만 열광적인 숭배자를 낳을 수 있는 ‘니치버스터’ 전략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계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간 지지층보다는 부동층을 쓸어 담기 위해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중간으로 수렴했던 정당들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중을 만나지 않았다. 그는 소수의 열렬한 지지자 집단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입소문을 퍼뜨리는 일종의 하위문화를 구축해 엄청난 조직과 자금을 갖춘 경쟁자를 쓰러뜨렸다. 이 책의 장점은 주류가 사라진 ‘니치시대’의 어두운 면도 지적한다는 점이다. 자신만의 관심 분야에 열성적인 신봉자 집단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각각의 집단이 자신만의 구역에 보호막을 치고 남의 말 따위는 귀담아듣지 않게 된다는 것. 저자는 “스스로를 남다른 존재로 정의하겠다는 결의가 지나친 나머지, 개인이나 집단들이 각자 선택한 갑갑하고 비좁은 닭장 속에 갇힌 신세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2007년 5월 취임 후 부자들에게 안긴 선물 명세를 낱낱이 기록했다. 저자는 25년 넘게 프랑스 상류층의 생활상과 집단심리를 연구해온 부부 사회학자. 책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부자 친구들에게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나눠주고 조세 상한제로 세금 부담을 덜어주었다. 비어가는 정부 금고는 공공부문 지출을 축소해 서민들의 삶의 기반을 쪼개는 형식으로 해결했다. 두 저자는 “극소수의 백만장자는 사르코지가 아니더라도 대타를 찾아 그들의 대변인으로 앉힐 것”이라고 경고한다.박민주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공자가 옥(玉)이라면, 맹자는 얼음에 비유합니다. 말과 행동이 늘 따뜻하고 온후했던 공자와 달리 맹자의 글은 번쩍번쩍하고, 날카로운 칼처럼 폐부를 찌르는 통렬함이 있습니다.” 공자와 맹자의 차이는 소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차이다. 맹자의 시대는 ‘싸우는 국가(戰國)’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중원을 제패하기 위한 전쟁이 총력전으로 변해 한층 격렬했다. 시대는 더욱 각박해졌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맹자의 날카로운 지혜는 이런 각박한 현실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저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1978, 1980, 1988년 세 차례 구속됐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한 직후인 1990년대 초 인문학서당인 ‘온고재(溫故齋)’를 열고 동양고전 연구와 강의에 몰두해왔다. 이 책은 그가 2000년 ‘논어읽기’이후 12년 만에 펴낸 책이다. 그는 “전 세계가 자본주의의 탐욕으로 자기파탄을 드러내는 21세기에, 맹자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논어의 첫 구절은 공부에 관한 이야기(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인 데 비해, 맹자는 인의(仁義)로 시작한다. ‘맹자’의 첫머리에서 양혜왕이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하실 일이 있겠군요”라고 묻자,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왕이 이를 좇으면 신하도, 백성도 모두 각자의 이만 좇을 뿐이어서 결국 그 사회는 무너지고 만다는 뜻이다. 저자는 “맹자가 ‘개인의 이기심이 결국 사회 전체의 선이 된다’는 애덤 스미스 이래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에 대해 뭐라고 말할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선하다”며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공자와 맹자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고전에서 지혜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해 피해를 본 지역에서의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전시를 놓고 프랑스 문화예술계가 뜨거운 논쟁에 빠졌다. 루브르 박물관은 4월 27일부터 9월 17일까지 후쿠시마, 센다이, 이와테 현 등 3개 도시에서 ‘만남, 사랑, 우정, 연대’라는 주제로 루브르 소장품 특별전시회를 연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메세나 기업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사랑의 삼미신(三美神)’, 18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프랑수아앙드레 뱅상의 ‘세 남자의 초상’,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의 태피스트리(색실로 짜넣은 그림), 고대 이집트 조각상 ‘이시스 여신상’ 등 23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문제는 전시 지역이 지난해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원전사고 지점에서 불과 7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점. 프랑스의 문화예술계와 원자력 전문가들은 루브르 박물관의 보물과 동행하는 전시인력이 방사능 오염에 안전하지 않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프랑스 내각의 산하기관인 방사능보호핵안전협회(IRSN)는 지난해 12월 12일 일본에 거주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미야기, 이바라키, 도치기, 후쿠시마 전역은 방사능으로 인한 중대한 영향을 받은 지역”이라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여행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또 IRSN은 “방사능에 오염된 먼지가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가구와 카펫, 양탄자의 표면을 정기적으로 진공청소기로 청소해야 한다”고 지침을 내렸다. 루브르 박물관 측은 “후쿠시마 미술관 내부의 방사능 오염정도는 시간당 0.06마이크로시버트로 파리의 박물관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또 전시품은 유리로 된 격자보호상자에 담아 운송해 전시장 내부에서만 공개할 것이며, 외부의 대기 중에 절대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의 롤랑 데보르드 방사능오염정보연구협회 회장은 “건물 내부는 괜찮다 하더라도 방사능은 후쿠시마 전역에 퍼져 있다”며 “기상조건에 따라 시골에 있던 방사능이 도심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관람객을 통해 유입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유리처럼 매끈매끈한 표면에 붙은 방사능은 쉽게 제거할 수 있지만, 구멍이 많은 돌은 표면을 긁어내야 완전한 제거가 가능하다”며 “16세기 플랑드르의 태피스트리나 회화 작품이 오염될 경우 IRSN의 권고에 따라 ‘정기적으로’ 진공청소를 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디디에 리크네 라트리뷘드라르지 편집장은 “재난지역 주민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왜 루브르가 소장품 전시회를 통해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아이티 대지진 때 루브르는 소장품 전시회가 아닌 아이티 박물관 재건을 돕는 방식으로 도움을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왜 전 세계 재난 지역과 이라크전쟁으로 피폐한 바그다드엔 소장품을 보내지 않는가”라며 일본 전시 계획을 비판했다. 이번 전시회의 총책임자인 장뤼크 마르티네즈 씨는 “일본 기업은 루브르 박물관 보수공사에 많은 메세나 후원을 해왔으며, 일본 관람객은 루브르의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열성적 고객”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특별한 선례’가 될 이번 전시에 대한 논쟁은 4월 실제 행사가 시작될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하의 국사(國事)는 마치 큰 나무를 백 년 동안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다 말라버린 것과 같습니다.” 약 500년 전 조선의 선비 조식(1501∼1572)은 날 선 비판으로 조정을 흔들었다. 이 책에 소개된 직신은 율곡 이이, 남명 조식, 연암 박지원 등 13명. 주역에서는 직언을 ‘호랑이 꼬리 밟는 일’에 비유한다. 호랑이 꼬리는 맹수의 왕임을 보여주는 용맹과 힘을 상징한다. 신하의 직언은 호랑이의 위엄에 도전하는 일인 셈이다. 저자는 “13명의 직신이 16세기 조선사회를 이끌 수 있었던 힘”이라고 썼다. 박민주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2003년 인간 DNA를 구성하는 염기서열을 해석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됐다. 7년 뒤 미국 하버드대 유전학과 조지 처치 교수는 일반 대중이 자신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고 공개하는 ‘개인 게놈 프로젝트(PGP)’를 시작한다. 이 연구실험의 네 번째 피험자로 참여하게 된 저자는 이 프로젝트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소개했다. 저자는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고 공개하는 것은 의료행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만 결혼과 취직, 보험계약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인종차별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문혜빈 인턴기자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4년}

“청년에 배우면 장년에 큰일을 도모한다. 장년에 배우면 노년에 쇠하여지지 않는다. 노년에 배우면 죽더라도 썩지 않는다.”(사토 잇사이·일본 유학자) 와타나베 쇼이치 조치대 명예교수(82)는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영문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이다. 그가 쓴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은 은퇴 후 독서와 자원봉사, 종교생활, 고서적 수집 등을 통해 노년기에도 열정적인 지적탐구의 생활로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는 법을 담은 책이다. 30년 전 발간된 후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판매됐다. 저자는 “책을 보는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단언한다. 뇌 속에 있는 호르몬은 뇌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조율한다. 따라서 독서를 통해 뇌를 단련시키는 것은 몸 전체의 건강과도 직결된다. 저자는 “예전에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세포가 하루에 10만 개씩 죽어간다고 했지만 뇌세포는 60, 70세에도 쓸수록 튼튼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60세 이후에 젊을 때도 암기하기 쉽지 않던 라틴어 장시를 10절까지 외우게 되었고, 한시도 여러 편 외우게 된 사실을 고백한다. 현대 중국을 건설한 지도자 마오쩌둥도 죽는 날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마오는 1976년 9월 8일 오후 5시 50분 최후로 책을 읽었다. 임종을 앞두고 의사가 응급처치를 하는 상황에서도 ‘용재수필(容齋隨筆)을 7분동안 읽었다. ‘마오의 독서생활’은 마오의 도서실관리자, 측근 비서, 영어교사 등 고위 관료들이 곁에서 지켜본 마오의 독서습관을 기록한 책이다. 마오는 혁명전쟁을 펼치던 ‘장정(長征)’ 기간에도 책 읽기를 잊지 않았다. 마오는 일본군 비행기 폭격 때문에 수천 권의 책을 깊은 동굴에 보관했다. “사람은 배워야 산다”는 말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던 마오는 항상 책을 누워서 읽지 않고 서서 읽었다. 늘 읽은 책에는 의문부호, 동그라미, 삼각형, 밑줄로 가득했다. 이 책에는 마오가 남긴 육필원고, 책에 남긴 표시들, 저자와의 서신 등 광범위한 도판 자료가 담겨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에 루소, 디드로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없었다면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한국의 근대 출판문화에 커다란 역할을 했던 계몽주의 선각자들을 누군가가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72)가 구한말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책 문화를 이끌어 온 출판사 150여 곳과 출판인 300여 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한국출판 100년을 찾아서’(정음사·사진)를 펴냈다. 책에 따르면 한국의 근대 출판은 19세기 말 한국 천주교회와 개신교 선교사들이 서양식 인쇄기를 들여와 한글성경과 교리서를 펴낸 것이 시초가 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태동은 1910년 육당 최남선이 발족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였다. 홍명희 정인보 한용운 안창호 김성수 송진우 등 조선 지식인들을 총망라한 조선광문회는 근대식 인쇄출판과 신문학, 신문화의 요람처로 3·1독립운동의 발원지였다. “육당은 일본에 유학 가서 간다(神田)에 있는 책방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일본의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책을 사는데, 동서고금의 책을 모두 모아 놓은 데다 ‘퇴계자성론’ ‘율곡집’ ‘성호사설’ 같은 우리나라 고전들이 다 번역돼 나와 있는 거예요. 그는 17세에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출판사를 만들었지요.” 조선광문회는 한국의 귀중한 문화재에 대한 일제의 약탈이 심화되자 우리의 고전을 수집 및 개간(改刊)하는 사업을 벌였다. ‘동국통감’ ‘택리지’ ‘율곡전서’ ‘삼국사기’ ‘열하일기’ 등 100여 권을 번역했으며 한국 최초의 국어사전인 말모이사전 편찬사업도 했다. 이 사전은 일제의 탄압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고 대표는 “인촌 김성수는 조선광문회에 참여하면서 한 나라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교육과 출판, 산업 육성임을 확실하게 인식했다”며 “인촌이 창업한 동아일보는 출판계가 극심한 탄압을 받던 일제강점기에 한국 출판계의 견인차요 보호자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인촌이 민족교육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부친의 허락을 받고자 단식을 한다는 소식에 육당은 호남선 기차를 타고 인촌 집을 찾아가 부친을 설득했습니다. 육당은 3·1운동 당시 인촌이 남강 이승훈에게 5000원을 내놓으면서 거사자금으로 쓰게 했다는 사실을 제자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에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책에는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광복 전후기, 6·25전쟁기, 21세기 디지털혁명기까지 격동의 현대사를 걸어온 출판인들의 역사기록이 담겨 있다. 특히 6·25전쟁 당시 피란생활을 했던 대구 부산에서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교과서를 펴냈던 출판인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자아낸다. 고 대표는 1952년 부산으로 피란 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12세에 종로 보신각 주변의 영창서원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고 대표는 “책을 좋아해서 날마다 서점에 들렀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일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얼마나 좋았던지 보수도 따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1956년 동서문화사를 창립해 55년간 출판인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출판업은 창성은 쉬워도 수성은 어려운 사업”이라며 “출판업은 생산품이 인간정신의 소산이므로 영리만을 추구해선 안 되며 문화적인 소명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출판계가 상업적인 이익을 좇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판계가 엄혹한 근현대사 속에서도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부(富)를 추구하며 민족의 미래를 준비해왔던 전통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12년 올 한 해 지구촌에서는 ‘권력의 대이동’이 벌어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촉발한 ‘정치의 대중화’ ‘정치 일상화’의 파도는 국내 출판계의 지형도도 바꿔놓고 있다. 정치 서적은 이제 엘리트들의 엄숙한 담론이 아니라 가볍고 대중적인 ‘수다의 장(場)’이 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내놓는 책들도 천편일률적인 자서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독자들의 눈길을 붙잡고 있다.》○ “출판기념회용 책은 그만!”11일은 제19대 국회의원 총선(4월 11일) 90일 전. 출마 예비후보의 출판기념회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어서 국회 의원회관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막판 출판기념회가 몰렸다. 정치인의 책은 대필작가가 급조한 자서전류가 대부분. 그러나 일부는 진부한 틀에서 벗어나 인문교양서, 사회과학서적, 사진집, 예술서, 자기계발서 등으로 포장됐다. 이 때문에 ‘총선용 정치인 책’이면서도 일반 서점에서 독자들에게 팔리는 책들도 생겨났다. 김을동 미래희망연대 의원이 펴낸 ‘김을동과 세 남자 이야기’(순정아이북스)는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 아버지 김두한 의원, 아들인 배우 송일국 등 격동의 근대사를 살아온 4대에 걸친 가족사 이야기로 눈길을 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청년들의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자기계발서 ‘도전, 너무도 매혹적인’(리북)을 출간했다. 조윤선 한나라당 의원은 오페라와 미술과 관련된 예술 관련 에세이 ‘문화가 답이다’(시공사)를 내놓았다. 김영호 사진작가가 찍은 조 의원의 표지사진은 클래식 연주자 프로필 사진을 방불케 하며, 전현희 의원의 책도 스타화보집을 연상시킨다.○ 엔터테인먼트형 ‘정치 수다’ 붐지난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조국 서울대 교수, ‘나는 꼼수다’ 출연진의 책으로 이어진 정치 관련 서적의 열풍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 3월에 김영사가 발간할 예정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책이 최대 관심사. 인터넷 서점 YES24의 유성식 이사는 “본디 인문사회정치 분야 책의 매출이 9% 선을 차지했는데 지난해에는 15%까지 늘어 문학, 어린이 분야의 매출을 넘어섰다”고 말했다.요즘 많이 팔리는 정치 서적은 학자들이 쓴 엄숙한 ‘정치학 서적’이 아니다. 평균 600만 명 이상이 내려받는다는 ‘나는 꼼수다’의 영향으로 재야 논객이나 평론가가 정치를 분석하고 훈수를 두는 가볍고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형 서적이 인기다. 개그맨이 웃겨주듯이, 아줌마들이 수다를 떨듯이 정치를 일상의 구어체로 풀어주는 책들이다.김상호 ‘미래를소유한사람들’ 대표는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킥킥대는 아저씨들의 대부분은 ‘나꼼수’를 듣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며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정치를 대중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20, 30대 독자가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책을 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과거 30, 40대 남성들이 구매자의 90% 이상을 차지했지만 요즘엔 여성 비율이 40∼50%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40만 권이나 팔린 ‘닥치고 정치’를 펴낸 김수진 푸른숲 부사장은 “지난해 초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라는 책이 많이 팔렸는데, 프랑스의 늙은 레지스탕스가 ‘왜 젊은 세대들은 분노할 상황인데도 화를 내지 않는가’라고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정치 비판서가 인기인 이유는 국민이 무언가에 화가 많이 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세계적 경기불안이 계속되는 한편으로 각국에서 총선과 대선이 펼쳐지며 정치적 대변환이 예고되는 2012년. 최고경영자(CEO)들이 경영화두를 찾기 위해 책을 펼치고 있다. 불확실성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장기적인 성과를 끌어내기 위한 지혜를 석학들의 저서에서 찾기 위해서다. 동아일보 ‘책의 향기’팀이 주요 대기업 CEO들에게 신년을 맞아 읽고 있는 책들을 물었다.》정준양 포스코 회장 “미국의 대공황 시기… 불황탈출 해법 분석”◇ 잊혀진 사람/애미티 슐래스 지음·리더스북정준양 포스코회장은 지난해 말 임원회의에서 1929∼1940년 대공황 시기 미국 경기 불황의 해법을 담은 이 책을 추천했다. 그는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거의 모든 실험이 대공황기에 이미 시도됐다”며 “이를 통해 포스코는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새해 화두는 ‘패러독스 경영’이다. ‘차별화’와 ‘낮은 원가’처럼 양립이 어렵다고 생각한 요소를 결합해 성과를 내는 방식을 뜻한다. 정 회장은 “글로벌 경기불황과 공급과잉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고 품질의 제품을 최저 원가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고객소통 지름길… 디자인으로 승부“◇ 톰 피터스 Essentials: 디자인/톰 피터스 지음·21세기북스“디자인은 영혼이 담긴 열정의 결과이며,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핵심 요소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평소 ‘고객마인드’ ‘브랜드 차별화’ ‘디자인 싱킹(thinking)’을 강조한다. 그에게 디자인은 단순히 제품 포장을 꾸미고 매장 내부를 시각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 아니다. 디자인은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창의적 사고이자 고객과의 소통언어라는 설명. 정 부회장은 “이 책과의 만남은 이마트와 신세계를 찾는 고객의 경험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집단지성 탈권위로 급변시대 뚫어야”◇ 어댑트/팀 하포드 지음·웅진지식하우스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로 유명한 팀 하포드의 ‘어댑트’를 임직원들에게 선물했다. ‘불확실성을 무기로 활용하는 힘’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실패를 통해 적응하고, 변화를 모색하라’, ‘시행착오야말로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세계적인 흐름이 급변하는 시기일수록 계획보다는 구성원의 임기응변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권력 분산과 탈(脫)권위, 탈집중화를 통해 한 사람이 아닌 ‘집단지성’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최치준 삼성전기 사장 “세계시장 승리 위해 Back to Basics!!!”◇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제임스 E 메클렐란 3세 지음·모티브북재료공학 박사인 최치준 삼성전기 사장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세계사적 고찰을 담은 이 책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며 추천했다. 그는 “기술이 실용적인 도구의 사용을 가능케 하여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으나, 기술(Know How)만을 중시하고 과학(Know Why)을 소외시하면 발전속도가 느려진다”고 지적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Back to basics(기본으로 돌아가기)’ 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역사와 원리를 고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김상헌 NHN 대표 “기회는 잡아채고 리스크는 최소화”◇ The Corner Office/아담 브라이언트 지음·Harper Collins“인터넷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숙고할 시간은 매번 충분치 않다. 언제나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요구받는다. 기회는 잡아야 하고 리스크는 피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늘 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김상헌 NHN 대표는 변화무쌍한 인터넷 생태계를 이끄는 리더로서 뉴욕타임스 부편집장이 쓴 원서를 읽고 있다. 이 책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이베이의 존 도나호 등 74명의 성공한 CEO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사장실로 가는 길’(가디언)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됐고, 뉴욕타임스 주말판에 후속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이종결합 서비스… 융합혁명이 대세”◇ 컨버저노믹스/이상문, 데이비드 L 올슨 지음·위즈덤하우스“21세기 새로운 비즈니스의 트렌드, ‘제4의 물결’ 융합혁명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융합의 메가트렌드와 과학융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창조를 다룬 ‘컨버저노믹스’를 탐독하고 있다. 통신시장은 플랫폼이나 클라우드 등이 연결된 새로운 융합상품으로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 이 사장은 “고객의 욕구가 날로 증가하면서 미디어의 융합, 서비스의 융합은 물론이고 사람과 기계가 융합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며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종결합을 통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진세 세븐일레븐&롯데슈퍼 사장 “개념부터 차별화… 생각의 틀 바꾸자”◇ 디퍼런트/문영미 지음·살림Biz“진정한 차별화는 기술적인 차원보다는 개념적인 차원의 혁신에서 나온다.” 기업은 ‘차별화’를 꿈꾸지만 과도한 경쟁 속에서 점점 ‘차별화’가 아니라 ‘모방’을 해간다. 소진세 세븐일레븐&롯데슈퍼 사장은 “소비자들의 사고와 가치관이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듯이 기업도 역시 과감한 혁신이 뒤따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미묘한 차이들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차별화가 아닌 동일화의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진정한 차별화는 전술이 아니라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 지구적인 경기불황 속에서 올해 출판계는 좌절한 청춘세대의 아픔을 위로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인문사회, 경제 분야에서는 눈여겨볼 만한 책이 꾸준히 발간됐다. 동아일보가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출판된 책 가운데 ‘올해의 책’ 10권을 선정했다. 학계, 예술계, 출판계와 문단의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선정위원들은 본지가 제시한 150권 가운데 각자 10권 안팎의 책을 추천했다. 선정위원들과 동아일보 출판팀의 논의를 거쳐 이 중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무순).》 아프니까 청춘이다 “제목 마케팅의 승리… 과대평가”중용, 인간의 맛 “도올 저술중 최고작… 과소평가”동아일보 책의 향기 선정 ‘2011년 올해의 책’ 설문에는 특별한 추가 질문도 있었다.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 △책의 내용은 좋은데 독자나 평단으로부터 과소평가된 책 △책 내용보다 과대평가된 책 △디자인이 좋은 책 등 4가지 추가 질문이었다.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는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리더스북)이 꼽혔다. “책 읽어라, 글 써라 말할 필요 없이 이 책을 슬그머니 건네면 된다”(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혼자만 잘 먹고 잘사는 법만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기 때문”(구본근 휴먼앤북스 편집장)이라는 설명. 과대평가된 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은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허병두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는 “젊은 세대들에게 여전히 책은 소중한 의사소통 매체임을 강력하게 일깨워 준 책”이라며 “하지만 여전히 이 책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현실을 확인할 젊은 세대들의 반응이 궁금하고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시대의 유행에 편승한 책으로, 제목이 내용의 90%를 차지했다”고 평했고 “초대형 베스트셀러의 조건은 알찬 내용보다는 마케팅이라는 점을 증명한 책” “‘하면 된다’의 21세기형 버전으로 허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도 “문명충돌의 장엄한 파노라마와 광신과 폭력의 역사에 전율하게 만든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실망스러운 졸작. 오늘 우리가 왜 십자군전쟁을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역사의식이 없는 책”(이권우 도서평론가)이라는 평도 있었다. ‘과소평가된 책’으론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통나무)이 꼽혔다. “인류정신의 보고인 중용사상의 핵심을 대중적 언어로 번역해준 도올의 브랜드 가치가 돋보인, 고품격 자기계발서로도 손색없다”(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김용옥의 저술 중에 가장 수준작”(허병두 대표)이란 평을 받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의 책 선정위원(가나다순)=강규형(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고운기(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구본근(휴먼앤북스 편집장) 구효서(소설가) 김기봉(경기대 사학과 교수) 김기중(더숲 대표) 김선식(다산북스 대표) 김선화(공연기획사 영앤잎섬 대표) 김형찬(고려대 철학과 교수) 민병도(시조21 발행인) 박문호(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박재환(에코리브르 대표)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서진영(자의누리경영연구원장) 손철주(학고재 주간)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렬(더난 출판 대표)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정근(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염현숙(문학동네 편집국장)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교수) 이권우(도서평론가)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 이수은(톨 대표) 이인식(지식융합연구소장) 이주향(수원대 교양학부 교수) 이현우(한림대 연구교수) 임진택(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 장은수(민음사 대표)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승(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조남현(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최연순(김영사 주간)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분순(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허병두(‘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日학자가 파헤친 훈민정음의 비밀◇한글의 탄생/노마 히데키·돌베개30년 동안 한글을 연구해온 일본 학자가 펴낸 훈민정음 창제원리의 언어학적 분석. 저자는 ‘소리가 문자가 되는’ 놀라운 시스템인 한글의 탄생은 지적혁명이자 세계 문자사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인들도 미처 그려내지 못한 ‘한글 전후사’의 파노라마”라며 “세상을 바꾼 문자, 한국문화사에 일어난 지진해일과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역작”이라고 평했다. 고전의학+실천적 해석의 멋진 결합◇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고미숙·그린비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열풍을 몰고 왔던 고전평론가가 새롭게 읽어낸 ‘동의보감’. 고전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현대인이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자 삶의 비전을 탐구하는 책”으로 재해석한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의학과 인문학의 결합으로 우리 안의 치유 본능을 이끌어 낸다”, 구본근 휴먼앤북스 편집장은 “고전에 대한 현대적이고 실천적인 해석”이라고 평가했다. 인생의 고통에 맞서는 따끔한 성찰◇철학이 필요한 시간강신주/사계절상처 입은 마음을 ‘괜찮다, 괜찮다’ 하고 위로하는 글들이 넘치지만 그것은 현재의 문제를 잠시 덮어두게 할 뿐 근본적인 해결로 나아가게 도와주지 못한다. 반면 철학자인 저자는 “좌절한 청춘들에게 모두가 위로를 말할 때 홀로 철학을 이야기한 사람”(장은수 민음사 대표)이었다. “탁월한 대중철학자의 인문학 카운슬링”(김기봉 경기대 교수), “달콤한 위안보다는 인생의 고통에 용기 있게 맞서는 성찰”(신정근 성균관대 교수)이라는 평이 나왔다. 한국에도 본격 스릴러 작가 출현◇7년의 밤/정유정·은행나무“드디어 한국에도 촌티 나지 않는 본격 스릴러 작가가 등장했다”(백원근 책임연구원). 치밀한 서사와 장대한 스케일이 담긴 이 소설은 올해 문단에 태풍을 몰고 왔다. “여성 작가라는 생물학적 분류가 무색한 파워풀한 장편소설”(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작가가 발로 뛰어 쓴 성실성이 안겨주는 정보의 힘과 상상력이 탁월”(한기호 소장) “한국형 스릴러 대작. 그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구본근 편집장)는 평이 잇따랐다. 생각없이 살고있는 당신의 이야기◇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청림출판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우리의 뇌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저자는 인터넷 세상에서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로 이어진 정보를 따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흘러 다니는 현대인간의 사고, 독서, 글쓰기 능력을 집중 조명한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은 “정보화 시대를 생각 없이 사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아는(Knowing)’ 것보다 ‘생각하는(thinking)’ 인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집이야말로 발명-발견의 집약공간◇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빌 브라이슨·까치“집이란 역사와 동떨어진 대피소가 아니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다.” 저자는 현미경을 들고 집안 구석구석의 정원, 화장실, 지하실, 다락방을 오가며 그곳에 놓인 물건들의 역사를 하나하나 파헤친다. 집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과 발견이 집약된 공간임을 알려준다. 이수은 톨 대표는 “빌 브라이슨 특유의 관찰력과 입담으로 재조명한 일상적 공간의 가치를 담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작가 김애란에 쏟아지는 기대의 이유◇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창비단편소설집 ‘달려라 아비’로 각종 상을 휩쓸었던 작가의 첫 장편.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청춘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이립(而立)의 나이에 이순(耳順)의 인생감각을 갖춘 신예의 탄생”(장은수 대표) “추리 같은 장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속도감 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 김애란은, 이미 한국문학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잡스의 ‘민얼굴’이 궁금하다면…◇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민음사“이 책은 그의 죽음만큼 극적이다.”(김기중 더숲 대표) 세상을 바꾼 IT 혁명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10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사생활을 철저히 감춰왔던 잡스가 참여한 유일한 이 공식전기는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됐다. 임진택 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은 “꾸미지 않고 잡스의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는 점”에서 추천했고, 정은숙 대표는 “생명의 유한성과 천재적 재능의 무한성을 동시에 일깨운 책”이라고 평했다. SNS가 직접민주주의를 만날 때◇닥치고 정치/김어준·푸른숲“억압이 만든 남자들의 거침없는 정치 수다. 우리 정치문화의 현주소!”(이주향 수원대 교수) ‘나꼼수’ 열풍과 맞물려 정치사회 분야 도서로는 드물게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킨 책. 윤평중 교수는 “팟캐스트를 이용한 SNS와 직접민주주의의 불온한(?) 만남으로, 한국공론장을 확대시킴과 동시에 왜곡시키고 있는 문제의 현장”으로 규정했다. 김선화 영앤잎섬 대표는 “관심과 파장도 한 권의 책이 될 만하다”고 진단했다. 가슴 먹먹한 김훈의 허무적 문체◇흑산/김훈·학고재“김훈은 문체 그 자체다.”(김기봉 교수) 소설가 김훈 씨가 ‘남한산성’ 이후로 4년 만에 내놓은 역사소설. 조선의 천주교 박해 시기의 지식인과 민초들의 삶을 그렸다. 감정을 절제하고서도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문체의 저력은 여전하다. 윤평중 교수는 “여전히 매력 있고 강렬한, 그러나 되풀이되는 김훈 문학의 독백”,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19세기 초의 음산한 사회상이 싱싱한 감각으로 묘사된다”고 소개했다.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

왜 우리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음식점에서도 팁을 주는 것일까? 남의 집 아이가 도로로 뛰어들면 왜 뒤쫓아 달려갈까? 왜 지진 참사 희생자에게 돈을 기부하며, 태안 앞바다 기름때를 지우러 수만 명이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88올림픽 이전까지는 ‘자원봉사’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기부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했다. 이른바 ‘기부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고 있다. 2011년 1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36.4%가 기부에 참여하고 있고, 1년간 기부 횟수가 6.1회, 1인당 기부 현금이 16만7000원에 이른다.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는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뇌과학, 경제학 등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다양한 학문과 실험 결과를 토대로 이타주의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에 대해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생존 기계”라고 정의했다. 경제학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이기적 존재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문명은 ‘이타주의 혁명’으로 시작됐다고 단언한다. 인간이 침팬지보다 지능이 높아진 것은 공동 육아를 통한 사회지능 확대 덕분이었다는 것.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에는 타인의 행복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현대의 경험주의 연구는 이를 실험으로 입증했다. 남을 돕고 관용을 베풀 때는 초콜릿을 먹거나 섹스를 할 때 활성화되는 두뇌회로를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면역체계를 강화시킨다. 그래서 이타주의자가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산다. 모든 문화권에서 임신 출산의 부담을 안은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는 점은 그 증거다. 미래는 더더욱 이타주의자의 것이다. 자크 아탈리는 “지식정보 사회가 본격화할수록 ‘희소성’을 중시하던 과거와 달리 ‘다수의 풍요로움’이 더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지식은 아무리 나눠도 줄어들지 않으며, 나눌수록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1억 개의 위키피디아 항목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경쟁하는 무료 오픈 소스 프로그램이 거의 하룻밤 사이에 탄생했다. ‘나눔은 어떻게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는 인간이 기부를 하는 이유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았다. 마르셀 모스, 조르주 바타유, 자크 데리다, 장 폴 사르트르가 집중하는 주제는 ‘기부의 순수성’이다. 모든 기부는 순수하지 않고, 대가를 바란다는 논란이다. 그래서 ‘익명의 기부’ 행위는 철학자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문명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여성에게 도서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이 골라준 책만 읽을 수 있었고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금지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책을 읽고 지식을 배워 나갔다. 전통적인 여성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다. 최초의 여성 시인인 고대 그리스의 사포에서부터 중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독서하는 여성들의 그림을 통해 바라보는 여성의 문화사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아토피 증상과 스테로이드제(劑) 부작용으로 6년간 집에서 누워만 지내던 청년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억대 연봉의 영어학원장으로 변신한다. 14년간 출판사로부터 외면받았던 무명작가가 총 200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생을 바꾼다. 공고 출신 젊은이가 영어학원 강사로 변신해 명문대 출신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목숨을 건 독서’를 통해 인생을 바꾼 이지성(38) 정회일 씨(31)와 ‘폴레폴레’(아프리카어로 ‘천천히’라든 뜻) 카페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프롤로그: 2000년 겨울“엄마는 왜 나를 그 병원에 데려갔어! 모든 게 엄마 때문이야….”아파서 집 안에서 누워만 지내던 정회일 씨는 대학도 휴학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7년간 아토피 증세에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았던 게 문제였다. 처음엔 연고로 시작했다. 증세가 낫지 않자 점점 센 약, 주사로 확대됐다. 스테로이드제 장기 복용은 엄청난 부작용을 낳았다. 인체의 면역력이 약화돼 어떤 상처나 염증도 잘 낫지 않았다. 계속 복용할 경우 쇼크사할 수 있다는 말에 약을 끊었다.2000년 그 약을 끊자 그동안 약 기운에 잠자고 있던 열기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물주전자처럼 온몸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루에 찬물 20L를 마셔도 갈증은 계속됐다. 눈물이 말라서 앞을 볼 수 없었고, 눈썹은 다 빠져버렸다. 온몸에서 피와 진물이 흘렀고, 입과 턱이 찢어져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심장은 불규칙적으로 뛰고 식구들 발소리에도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루하루 괴물로 변해가는 자신을 보며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설상가상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집안은 억대의 빚에 쪼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부모님을 원망했고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3년간 죽을 고비를 넘긴 정 씨는 2005년 겨울 무심결에 책을 들었다. 탤런트 김혜자 씨가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였다. 책 속에서 아프리카 어린이가 “내 꿈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한 말을 읽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수많은 아이들이 열 살도 안돼 죽어가고, 지뢰를 밟아 팔다리가 잘려 있었다. 그동안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만을 원망해왔는데, 그들에 비하면 자신의 고통은 별것 아니었다.이듬해 그는 6년 만에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나 막막했다. 조언을 해줄 사람을 찾아다녔다. ‘20대를 변화시키는 30일 플랜’이라는 책을 쓴 작가 이지성 씨에게 수차례 e메일을 보냈다.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2007년 5월 우체국“잠깐 소포를 부치고 올게. 책 보면서 기다려.”정 씨는 작가 이지성 씨를 우체국에서 만났다. 이 씨는 막 출간된 자신의 책 ‘꿈꾸는 다락방’을 선물로 준 뒤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30분, 1시간쯤 지났을까. 정신없이 책에 빠져 읽고 있던 그는 이상한 느낌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 씨가 지켜보며 서 있었다. “왜 왔다고 말하지 않으셨어요”라며 미안해하는 정 씨에게 “책 읽는 모습에서 가능성 있는 친구라고 느껴져 방해할 수 없었다”며 웃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느냐”는 정 씨의 질문에 이 씨는 “앞으로 1년 동안 365권의 책을 읽고 오면 말해주겠다”고 했다. 정 씨는 황당했다. “한 달에 책 서너 권 읽기도 힘겨운데 어떻게 매일 한 권씩 읽느냐”고 반문했다. 이 씨는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나약한 인간이라면 찾아오지도 말라”고. 당시 정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1시간씩 독서를 하고, 점심시간에도 짬을 내 책을 읽었다. 지하철에서는 전동차 안에서는 물론 걸어 다니면서도 책을 읽었다. 컴퓨터 부팅을 기다리는 몇 초간의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빌 게이츠나 안철수 씨는 엘리베이터에서도 한 달에 몇 권씩 책을 읽는다”는 말을 듣고 그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책을 펴들었다.처음 3개월 동안 자서전과 수기만 100권 넘게 읽었다. 자신이 꿈꾸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독서의 폭은 문학, 예술, 인문고전으로 다양하게 넓어졌다. 마침내 1년간 365권의 독서에 성공했다.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이었다. 늘 실패자로 살아왔던 그는 처음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시간을 1초 단위로 쪼개 쓰는 ‘시간 관리법’도 자연스레 터득했다. ○ 독서 멘토 이지성 작가정 씨의 독서 멘토(스승, 조언자)인 이지성 씨는 ‘리딩으로 리드하라’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꿈꾸는 다락방’ ‘독서천재 홍대리’ 등의 책이 총 200만 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러나 정 씨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 씨도 무명작가였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14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그는 자신이 쓴 원고를 80곳이 넘는 출판사에 보냈지만 거절당했다.그는 살 곳을 찾아 경기 성남시의 달동네로 이사했다. 창고 같은 거처에서 3년 6개월을 살았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던 이웃은 매일 그의 방 창문 아래서 악을 써댔다. 집 앞 슈퍼마켓에서 동네 주민들은 밤낮으로 술판을 벌였다. 그는 자신보다 더 비참한 환경에서도 독서에 매진한 위인들을 생각하며 버텼다. “성호 이익이 ‘어머니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이 책을 읽으라’고 한 말처럼 내게 독서는 간절했다”고 그는 회상했다.그의 책이 베스트셀러로 주목을 받자 수많은 청년들과 CEO들이 독서법과 자기계발 노하우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1년간 365권의 책읽기를 실천해 그의 정식 멘티(멘토의 지도를 받는 사람)가 된 사람은 정 씨가 처음이었다. “목표를 정해주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365권을 읽는데 3650일(10년)이 걸립니다. 자신의 한계에 격렬하게 도전하다 보면, 내 속에 잠자던 잠재력을 만나고, 잠재력이 폭발할 때 책이 나를 이끌어가는 변화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독서의 3단계정 씨는 이후에도 이 씨가 가르쳐 준 ‘독서의 3단계’에 맞춰 총 2000여 권의 책을 꾸준히 읽었다. 첫 단계인 ‘프로리딩’은 자신의 업무관련 책 100권을 읽음으로써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인 ‘슈퍼리딩’은 자서전과 자기계발서를 읽음으로써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사고방식을 갖추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인 ‘그레이트리딩’은 수백 년간 살아남은 명작인 인문고전 독서로 세상을 바꾸는 리더로 사는 것이다. 인문고전 독서는 요즘 CEO들에게 인기다. 지난해 이 씨가 만난 한 청년은 인문고전을 읽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며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비정규직 노동자인 어머니가 준 용돈에서 30만 원을 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호된 꾸지람만 듣고 돌아가야 했다. 이 씨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나서는 건 사회악”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청년이나 직장인들에게 우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있는 프로리딩, 슈퍼리딩 독서를 권한다. 그는 “책 한 권에는 30∼40년의 작가의 경험이 담겨 있다”며 “자기 분야의 책 100권을 읽으면 3000년의 내공을 쌓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 씨도 관심분야인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독학으로 영어공부법 책만 100권 이상 읽으며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어나갔다. 과외도 시작했다. 처음엔 무료로, 나중엔 시간당 1만∼2만 원씩 받았다. 이후 스터디룸을 빌려 강의를 했고, 올 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영나한’(영어연수 나는 한국에서 한다) 학원을 열었다. 외국에 나가본 적도 정 씨의 영어공부 비법은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남을 가르치다 보면 더 열심히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기 때문”이라며 “무대에 서야 말이 트인다”고 말했다. 또 그는 “외국인과 5분 이상 대화를 못하는 건 발음, 문법 탓이 아니라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라며 “독서를 통한 다양한 관심사는 외국인과 밤새워 대화할 수 있는 무기”라고 말했다. ○ 에필로그: 세상을 바꾸는 독서 멘토링이지성 씨는 서울역 인근 빈민촌에서 청년들을 위한 독서모임을 지도하고 있다. 정회일 씨도 학원에서 독서 멘토링과 시간관리법 특강으로 인기가 높다. 인터넷에는 독서를 통해 삶을 바꾸고자 하는 ‘폴레폴레’ 카페도 생겼다. 이달 초 서울 신당동의 커피숍에서 만난 회원 중에는 유근용 씨(30)도 있었다. 그는 공고를 나와 전문대를 평균학점 1.7로 졸업했지만,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명문대 출신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강사가 됐다. 그는 “어릴 때 공부를 안 하면 평생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회의 편견을 날려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정수 씨(22·여)는 “책을 읽고 나니 처음엔 생각이 바뀌고, 이어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었다”며 “요즘은 헬스클럽에서 사이클을 타면서도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대학 자퇴생인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사회 각 분야의 성공한 사람 100여 명을 찾아다니며 멘토를 부탁하는 적극적인 젊은이로 변신했다. 샐러리맨에서 온라인 광고회사 CEO로 변신한 문준호 씨(45)는 “10여 년간 책을 읽고 정리해놓은 독서노트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지성, 정회일 씨에게 요즘의 청춘 세대들에게 해줄 말을 물었다. “‘88만원 세대’가 아파하고, 사회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만의 내공을 길러야 한다. 20대에 준비해야 30대 이후에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생긴다.”(이)“사람들이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고 합니다. 과연 시간이 없다고 술을 못 마시고 잠을 못 자는 사람이 있을까요? 술 마시고, 친구 만나고, 인터넷 서핑을 해도 인생이 안 바뀌었다면, 책을 읽어보세요.”(정)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벽화를 찾기 위해 다른 명화를 파괴해도 좋은가. 이탈리아 피렌체 시청으로 쓰이고 있는 베키오 궁전 내 ‘500년의 방’에는 화가 겸 건축가, 미술사가였던 조르조 바사리와 제자들이 1563년 메디치 가문의 전쟁 승리를 기념해 제작한 대형 프레스코화 시리즈가 걸려 있다. 그런데 최근 피렌체 출신의 미술사가인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 공대 교수 마우리치오 세라치니가 “바사리의 프레스코화 ‘마르시아노 전투’가 걸린 벽 뒤에 다빈치가 1505년 그린 ‘앙기아리 전투’ 벽화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조사에 나섰다. 세라치니 교수는 지난달 27일 바사리의 벽화에 드릴로 6개의 구멍을 뚫었다. 4mm 크기의 특수감마선 카메라를 담은 초소형 내시경 로봇을 집어넣어 벽화 뒷부분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세라치니 교수는 “바사리의 벽화 뒤에 2cm가량의 빈 공간이 있었으며, 뒷벽에서 (다빈치의 벽화로 추정되는) 안료 조각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도 언급된 세라치니 교수는 35년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를 찾아다니다가 1975년 바사리의 벽화에서 ‘체르카 트로바(Cerca Trova)’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찾으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라는 뜻의 성경 글귀다. 그는 이 문구를 바사리가 ‘500년의 방’을 다시 꾸미면서 다빈치의 명화를 자신의 그림 뒤에 숨겼다는 암호로 해석했다. ‘앙기아리 전투’는 다빈치가 1505년 베키오 궁전 벽에 유화로 그리기 시작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녹아내려 포기했던 미완성 작품. 벨기에 화가 루벤스가 다빈치의 벽화를 모사한 ‘앙기아리 전투’가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다. 세라치니 교수는 수십 년간 서모그래피(온도기록 측정법), X선 등을 활용해 바사리의 벽화를 조사해 왔다. 내시경 카메라를 이용한 조사는 2009년 세라치니 교수의 작업에 관심을 가져온 마테오 렌치 피렌체 시장이 당선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1월 중순 이번 조사의 모든 과정을 다큐멘터리와 특별판 잡지로 독점 공개하는 조건으로 25만 달러(약 2억8700만 원)를 지원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문화재보호협회를 포함한 전 세계 예술사학자 300명은 이번 조사에 대해 “문화재 파괴행위”라며 당장 중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청원서 제출을 주도한 토마소 몬타나리 나폴리대 교수는 “예술사학적 고증 없이 함부로 문화재를 파괴하는 ‘로또 복권’식 조사”라고, 알렉산드리 모톨라 몰피노 문화재보호협회 회장은 “매스컴을 통한 돈벌기 수단”이라고 비난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홍길이 형, 자요?” 5초쯤? 아니 7초쯤 잠들었을까. 박무택 대원이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란 엄홍길 대장(50)은 빙벽의 튀어나온 바위 턱에 간신히 올려놓았던 엉덩이가 미끄러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네를 타듯 몸이 빙벽 밖으로 휘청 나갔다가 돌아왔다. 간신히 바위턱을 찾아 다시 엉덩이를 걸쳤다. 2000년 히말라야 칸첸중가 봉 해발 8000m 지점의 빙벽. 엄 대장과 박 대원은 그렇게 10시간 동안 로프에 매달린 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밤새 사투를 벌였다. “무택아! 잠들면 죽는다!” 드디어 멀리 동이 터오는 순간, 눈물이 났다. 죽음을 밀어내고 선연히 번져오던 그 빛을 그는 아직 잊을 수 없다.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6좌 등반에 성공한 엄 대장이었지만, 2000년 칸첸중가(해발 8586m) 도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캠프 진격을 앞두고 셰르파 한 명이 낙빙에 맞아 사망했다. 목숨을 잃은 이를 운구하다 다른 셰르파들과 대원들도 모두 기력을 잃고 의욕을 상실했다. 하루 이틀 사흘…. 베이스캠프에서 엄 대장은 고민을 거듭했다. 포기할 것인가, 대원들을 추슬러 재도전할 것인가. 그러던 중 취재차 원정대를 따라온 기자가 책 한 권을 권했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뜨인돌). 1914년 남극 탐험 도중 조난당했던 어니스트 섀클턴 경과 27명의 대원이 537일간 벌였던 생존 투쟁기였다. “제목부터 딱 끌렸어요. 텐트 속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어요.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1914년 남극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내 일처럼 생생했습니다. 엄청난 고통과 극단의 상황에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탈출해 나온 섀클턴 경의 리더십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도 동료를 한 명 잃긴 했지만, 아직 도전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낸 엄 대장은 결국 박무택 대원(2004년 에베레스트 산에서 사망)과 함께 재도전에 나서 칸첸중가 등반에 성공했다. 엄 대장은 “지금도 이 책을 보면 당시의 상황이 그림처럼 떠오른다”고 말했다. “히말라야 16좌 원정을 떠날 때마다 배낭에 책을 너덧 권씩 넣어갑니다. 정상 부근의 날씨가 안 좋으면 베이스캠프에서 2, 3일간 무작정 대기할 때가 많아요. 그러면 대원들은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식당, 휴게실로 쓰는 텐트에는 대원들이 각자 가져온 책을 쌓아놓고 돌려 봅니다. 삼국지 만화책 세트를 1권부터 밤새워 읽은 적도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책은 도전이나 탐험에 관련된 책과 명상 책입니다.” 엄 대장에게 산은 영원한 멘토이자 스승이다. 산은 늘 그에게 겸손할 것을, 낮춰야 한다는 내면의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지 말고, 세상을 올려다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해의 진정한 뜻은 ‘아래에 선다는 것’(Under-Stand)”입니다. 산에 오르면 산이 안 보이지만, 산 아래 서야 비로소 산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서야 하고, 부부 사이에 대화하려면 서로를 낮춰야 합니다. 산은 오르는 것도, 정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경외감과 겸허함으로 그 아래에 서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1985년 히말라야에 첫발을 디딘 이후 엄 대장에게 셰르파는 형제와 같은 존재였다. 셰르파는 티베트 고원에서 살다가 네팔로 넘어온 고산족을 일컫는 말. 에베레스트 인근 쿰부지역에 사는 이들은 평생 거대한 설산을 보고 살아와서인지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뿌리 깊은 불교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셰르파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용서’(오래된 미래)를 비롯한 달라이 라마의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티베트(중국)와 네팔의 국경에는 해발 6000m가 넘는 험준한 ‘낭파라’ 고개가 있어요.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기 위한 순례객, 목숨을 걸고 중국을 탈출하는 사람, 티베트와 네팔을 오가며 물물교환을 하는 상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지요. 거대한 설산을 배경으로 대상행렬들이 야크를 몰고 눈길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면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 같아요. 인간과 자연, 종교와 문명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2007년 히말라야 16좌 완등을 마친 엄 대장은 ‘엄홍길휴먼재단’을 세웠다. 그동안 함께 산에 오르면서 목숨을 잃었던 동료, 셰르파들에게 받았던 도움을 돌려주기 위한 것이다. 그는 2009년부터 네팔 히말라야의 오지마을에 초등학교 16개를 건립하고 있다. 그레그 모텐슨이 쓴 ‘세 잔의 차’(이레)라는 책을 읽은 것이 계기였다. 이 책은 K2를 등정하다 조난당했던 등반가가 히말라야 산골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구조된 후 수많은 사람에게서 기부를 받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학교 80여 개를 짓는 기적을 그린 실화다. 엄 대장은 “지난달 친동생처럼 생각해왔던 박영석 대장의 죽음을 접하고 몸 한쪽이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느꼈다”며 “왜 누군 죽고, 나는 살아남았는가라는 생각에 잠겼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에 보면 티베트에서 중국의 침략을 피해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히말라야를 넘어온 80세 노스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자들이 놀라서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자 스님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8000m를 오르내릴 때마다 한 걸음의 위대함을 생각했어요. 산에 함께 오르던 친구들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산이 제게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저도 한 걸음씩 내디딜 생각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엄홍길 대장 추천 도서◇살아 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알프레드 랜싱 지음/뜨인돌 1914년 남극 횡단 탐험에 나선 어니스트 섀클턴 경과 대원 27명의 537일간의 도전을 다룬 실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휴머니즘에 관한 이야기.◇세 잔의 차/그레그 모텐슨 지음/이레 K2 등정에서 조난을 당했다가 히말라야 산골마을 사람들과 차 세 잔을 마시고 가족이 되어 80여 개의 학교를 세운 등반가의 감동 실화. 지금까지 3만 명이 넘는 아이가 교육을 받았으며, 그와 지지자들의 열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용서/달라이 라마/오래된 미래 ‘용서’는 달라이 라마가 40년 넘게 벌이고 있는 비폭력 평화 운동. 이는 티베트 독립운동의 정신을 넘어 전쟁과 폭력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이며, 개인의 삶에서 진정한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마음의 수행이다.}

현대인은 24시간 내내 인터넷 포털 서비스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사회에 대한 정보를 접한다. 그러나 쏟아지는 광고와 실시간 인기 검색어 순위, 시청률 경쟁은 오히려 사람들이 찬찬히 사회를 들여다볼 시간을 주지 않는다. 저자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회를 꿰뚫는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사회과학 저서들이 주로 외국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해온 것과 달리 영화, 오페라, 소설, 그림 등에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례를 찾아 사회과학 이론을 소개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 서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지베르니에 있는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집. 정작 그곳에 모네의 원작은 전시돼 있지 않다. 그 대신 침실 식당은 물론이고 복도까지 19세기 일본 우키요에(浮世繪) 화가들의 판화만 수백 점이 걸려 있다. 이국땅에서 만나는 ‘왜색문화’에 한국 관광객들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일본 관광객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이다.19세기 유럽에 불어 닥친 ‘자포니즘(Japonisme)’은 반 고흐, 툴루즈 로트레크 등 인상파 화가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우키요에가 그려진 둥그런 일본식 부채는 당시 유럽 여성들에게 최고의 패션 소품이었다. 웬만한 부르주아 가정의 거실에는 일본산 칠기 가구, 도자기, 탈 등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자포니즘’은 몇몇 마니아 예술가의 호사를 넘어 거대한 사회적, 문화적 트렌드였다. 저자는 “일본은 유럽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나라였기에 가장 동경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며 “19세기 일본문화에 대한 열광의 근저에는 미지의 신세계를 향한 부르주아들의 두근거리는 설렘이 있었다”고 분석한다.프랑스 크리스티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앤티크 감정사 자격증을 취득한 저자는 19세기 도시, 기차, 가구, 레스토랑, 여자, 만국박람회 등을 키워드로 부르주아들의 일상사를 소개한다. 19세기 신문, 백화점 카탈로그 등 프랑스국립박물관 고문서실 등에서 수집한 500여 개의 도판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복고풍이 강타한 19세기, 당시 부르주아들이 열광하던 가구들은 ‘짝퉁’이었다. 거실에는 장중한 느낌의 루이 14세식 가구를 들여놓고 살롱에는 우아한 꽃 장식이 있는 루이 16세식 가구를 채워 넣었다. 각 시대의 스타일을 구분할 줄 아는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럭셔리한 복제품으로 거실을 꾸미는 것이 19세기판 ‘부자의 취향’이었다. 현대인들이 명품 짝퉁을 소비하는 심리와 연결된다.19세기 사람들에게 기차역은 모던한 예배당 또는 신전이었다. 기차는 외국여행 바캉스문화를 만들어냈고 주말 근교여행이라는 신풍속도 낳았다. 저자는 “인상파 화가들이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났다 한들 기차가 없었다면 결코 교외의 자연의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의 풍경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마네, 르누아르, 드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메리 로랑 같은 아름다운 여인들은 당대 권력자나 재산가들의 정부(情婦)였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백화점, 카페, 뮤직홀 등에서 일하며 사교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이 여인들은 ‘19세기판 할리우드 스타’로 부를 만하다.이들은 ‘반쪽짜리 사교인’이라는 뜻인 ‘드미 몽뎅(demi mondain)’으로 불렸다.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사교계에 들어가지 못했던 18세기와 비교해 돈만 있으면 사교인으로 행세할 수 있는 ‘19세기의 신풍조’를 비꼬아 부르는 말이었다.저자는 “19세기는 ‘오늘’을 품고 있는 시대”라며 “물질적 발명품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사는 풍습에서부터 미모를 무기로 한 ‘스폰서’ 연예인까지 19세기의 발명품들은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배우는 늘 살던, 익숙한 곳을 한 번씩 떠나볼 필요가 있어요. 타지에서 홀로 있다 보면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니까요.”배우 이민정 씨(28)는 올해 5월 화보 촬영차 프랑스 파리를 찾았다. 낮에는 마레 지구를 걷고, 저녁엔 센 강을 가로지르는 ‘퐁데자르’(예술의 다리)에 털썩 주저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와인을 마셨다.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에서의 여유였다. 화보 촬영을 끝내고는 친구가 살고 있는 영국 런던으로 홀로 건너갔다.“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이 잊혀지지 않아요. 책을 읽다가 졸아 옆에 앉아 있던 유럽 아저씨의 어깨에 닿을 뻔했지요. 대학 3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면서는 영국에 거주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 ‘불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같은 책을 읽었어요. 런던에서 이 책을 다시 읽으니까 정말 신나더군요. 어제 걸으면서 보았던 장소가 책에 그대로 나오니까요!”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구준표의 애인 하재경으로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도회적이고 쿨한 그의 이미지에 찬사를 보냈다. 이후 드라마 ‘그대 웃어요’ ‘마이더스’와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에 출연하느라 2년 반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신데렐라처럼 ‘짠!’ 하고 나타난 배우는 아니다. 성균관대 연극영화과에서 연출을 공부하며 영화감독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고, 대학 졸업 후 연극무대에서 견뎌온 2년의 세월이 지금의 밑바탕이 됐다. 그런 그에게 책과 여행은 늘 내일을 꿈꾸게 하는 에너지 보충제였다.“연출가나 감독은 천재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 시절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연극영화과를 다녀 기본적으로 셰익스피어를 다 읽어야 했고, 안톤 체호프, 헨리크 입센의 작품을 읽었어요. ‘시나리오 작법’ 책에도 관심이 많았죠.”―직접 쓴 희곡이나 시나리오가 있나요.“써놓은 건 몇 편 있는데, 세상에 내놓지 않았어요. 1년 뒤 내 작품을 읽어보니까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더라고요. 불에 태워 버릴까 하다가, 마흔 살 넘어 꺼내 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라도 볼까 봐 상자 속에 꼭꼭 숨겨놨어요. 유명한 작가들도 나중에 자기가 쓴 초기 작품을 보면 민망해지겠죠?”―배우 생활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된 책은 무엇인가요.“제일 좋아하는 책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예요. 저는 기독교 신자지만 그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 세상을 다 갖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잖아요. 너무 가지려고 집착하고, 아웅다웅 살다 보면 결국은 다 잃게 되는 법이죠. 배우들에게 대중의 인기도 그런 것 같아요.”이 씨는 ‘책의 향기’ 독자들에게 자신이 최근 읽은 책으로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과 김상운의 ‘왓칭’(정신세계사)을 소개했다. 이 씨는 “김 작가는 단편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때부터 광팬”이라며 “그의 글은 정말 해학적이다. 뻔한 일상인데도 눈물이 나고, 심각하다가도 웃음이 터진다”고 말했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희귀병을 앓는 주인공이 e메일로 만난 소녀를 평생 처음 사랑하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e메일을 주고받던 소녀는 사실은 마흔 살 아저씨였어요. 정말 충격적이었죠. 책을 읽는 내 손에 주먹이 쥐어지고, 부르르 떨리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까 그 아저씨에게도 연민이 느껴지더라고요. 현대인의 외로운 모습이랄까. 얼마나 외로웠으면 자신을 숨겨서라도 타인을 만나고 싶어 했을까….”이 씨는 “‘왓칭’은 한 달 전에 팬이 ‘스티브 잡스’ 전기와 함께 선물해 준 책”이라고 소개했다. ‘왓칭’은 자신의 내면 상태를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몸과 지능,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다.“이 책에는 하루 평균 15개의 방을 치우는 미국 호텔 종업원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모두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일하는데도 운동 부족으로 인한 과체중, 고혈압 증세를 느꼈대요. 그런데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호텔방 청소는 2시간 반을 운동하는 효과와 같다고 설명해 주자 한 달 만에 이들의 몸무게가 평균 10kg이 빠졌대요. 그런 말을 안 해준 사람들은 몸에 변화가 없었고요. 일을 해도 ‘고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로 쌓이고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살이 빠진 거죠.”이 씨는 “배우라는 직업은 내게 없었던 일을 상상하는 것인 만큼 이 책의 메시지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배우가 자신의 배역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과 확신이 없으면 관객도 그 배우의 연기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 1월 개봉하는 영화 ‘원더풀 라디오’에서 전직 아이돌 스타 출신 여가수 역할을 해요. 현재는 라디오 DJ를 하면서, 여전히 잘나갔던 옛날만 그리워하는 여자죠. 영화 초반과 마지막 장면에 제가 댄스가수로 무대에 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가수를 해본 적이 없는데, 진짜 댄스가수처럼 보여야 하는 도전이었죠. 배우에게 스스로를 제3자로 바라보는 ‘왓칭’의 기법은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아직도 ‘영화감독’의 꿈을 잃지 않고 있다는 이 씨는 “어릴 적 보았던 영화 ‘패치 아담스’처럼 따뜻하게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배우 이민정 씨의 추천 도서◇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지음/창비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청춘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벅찬 생의 한순간과 사랑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는 소설. ◇왓칭/김상운 지음/정신세계사“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 모든 고통이 해결된다”고 역설. 운명 바꾸기, 몸, 지능, 성적, 위기극복, 화 누그러뜨리기, 인생설계 등 7가지 ‘왓칭 요술’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