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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수험생의 성적 비관 자살은 더이상 뉴스도 아니다. ‘왕따’와 학교 폭력에 중학생이 자살하고,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사는 게 힘들다’며 뛰어내린다. 한림대 의대 연구 결과 우리나라 초등학교 1학년 학생 100명 중 약 4명이 ‘죽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이제 어린이 청소년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최근 출간된 ‘여름캠프에서 무슨 일이?’(주니어김영사)는 동화책으로는 생소했던 ‘죽음 교육’을 주제로 한 책이다. 방학 동안 리더십 캠프를 떠난 학생들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 떠내려 온 청년의 시신을 발견한 뒤 교관 선생님과 함께 죽음을 주제로 한 체험 프로그램을 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쓴 고정욱 작가(52)와 감수를 맡은 오지섭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50)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 작가=저는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어요. 고열에 시달리다 겨우 살아났죠. 그러나 장애인으로 살면서 인생의 고비마다 숱하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했어요. 결국 인간이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게 됐어요. 아이들이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썼습니다. △오 교수=죽음 교육이란 또 다른 말로 하면 ‘삶의 교육’입니다. 제가 ‘죽음의 이해’ 같은 강좌를 많이 하는데, 대부분 나이 드신 분이 많이 와요. 그러나 ‘죽음 교육=삶의 교육’이라는 취지에서 본다면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볼 수 있죠.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이니까 어릴 적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미국 영국 스웨덴 호주 등에서는 1년에 10시간 이상 학교 정규과목으로 죽음 교육을 실시한다. 독일의 경우 초중고교의 죽음 관련 교재만 20종이 넘고, 일본 게이오고교는 죽음 교육을 통해 자살과 학교폭력, 왕따 문제를 해소했다고 한다. 고 작가는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이 있는 아이들은 남을 괴롭히거나 왕따시키지 않는다”며 “죽음 교육이야말로 어릴 적부터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작가=어린이들이 쉽게 죽음을 접할 기회는 애완동물의 죽음입니다. 집에서 키우던 병아리나 강아지가 죽었을 때 땅에 묻어주고 꽃을 꽂아준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강렬한 ‘추억’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애완동물이 죽으면 직접 치우고, 아이들에게 “야, 가까이 오지 마”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아이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장례식에 데려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가까운 사람이나 동물을 떠나보내는 경험은 인격이 성숙되는 데 중요한 과정입니다. △오 교수=요즘 TV, 영화에서는 죽음을 너무 가볍게 취급합니다. 게임에서는 ‘리셋’만 하면 다음 판에 주인공이 또 등장하죠. 이런 때문인지 현실에서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잘 체감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죽음과 관련해 판단력이나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에 들어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자기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 작가=연예인의 자살은 인기, 명예, 부와 삶의 가치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입니다. 삶은 무엇을 이뤄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인데 말이지요. 요즘 JYP와 같은 아이돌 그룹 기획사에서는 연습생들에게 성교육과 외국어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삶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교육도 할 필요가 있어요. 아이돌 그룹은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오 교수=한국 사회에는 예로부터 죽음을 기피하고, 금기시하는 풍토가 있어요.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될 수 있으면 죽음에서 멀리 떨어지려 하지요. 그런 현상들이 죽음에 대한 오해를 낳았습니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에서 대중들에게 시신을 공개한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삶과 죽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되어야 좀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9세기 중후반 메이지유신 이후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해온 일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까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문화의 이중성은 늘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었다. 이 책은 일본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비판론적 일본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고베여학원 문학부 명예교수인 저자는 중심부에 반대되는 ‘변경(邊境)성’을 일본 문화의 핵심적 특성으로 꼽는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까지 올랐는데도 여전히 ‘비주체적 열등의식’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변경인’인 일본인은 여기가 아닌 저 바깥 어딘가에 세계의 중심인 ‘절대적 가치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화적인 열등감에 싸여 끊임없이 힐끔거리며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것을 따라잡으려고 버둥거린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타국과 비교하지 않으면 자국이 지향하는 국가상을 그릴 수도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일본인은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선행의 성공사례를 효율적으로 모방할 때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선발주자의 입장에서 타국을 이끌어갈 처지가 되면 사고가 정지해버린다”고 비판한다. 세계의 중심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이 왜 ‘변경’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는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이 책은 일본에서 35만 부 이상 팔렸고 2010년 ‘일본 신서대상’을 수상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인 못지않은 한국인의 ‘변경성’을 지적하는 것 같아 뜨끔한 느낌도 든다. “세계 표준에 맞춰 행동할 수는 있지만 세계 표준을 새롭게 설정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변경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대다수 지식인은 ‘일본의 험담’밖에 하지 않게 되지요. (중략) 그러니까 ‘세계 표준을 따라잡자’는 익숙한 결론에 귀착합니다. 핀란드의 교육제도가 훌륭하니까 핀란드를 모방하자, 프랑스의 출산정책이 성공했다고 하니까 프랑스를 본받자, 브라질 축구는 세계 최강이니까 브라질을 닮아보자, 북한이 핵미사일을 준비한다고 하니 우리도 북한을 따라하자, 이런 식으로 늘어놓자면 밤을 새워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변경성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변경인에게는 외래의 제도와 문물은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개방적 태도가 필수다. 변경성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번역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됐다. ‘Philosophy’를 철학으로, 주관 객관 개념 관념 명제 긍정 부정 이성 같은 서양의 용어를 한자로 번역한 것도 일본인이었다. 반면 중국인은 중국어에 없었던 개념어를 새롭게 추가한다는 것은 그들의 중화 문화가 지닌 불완전성이나 지방성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보고 번역어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어떻게 21세기에도 변경인으로 잘 살아갈 것인가에 주목한다. 그는 “현대 일본의 국민적 위기는 배우는 힘의 상실, 즉 변경의 전통을 상실한 데 있다”고 지적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인 저자는 “우리 정치문화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안철수 현상과 ‘나꼼수’ 사건이 모두 ‘콘서트’와 연결돼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의 패션화, 감성화에 가려진 정치의 부재, 좌우 이념의 실종이 결국 정치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하며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보다 치열한 좌우 이념의 경쟁’과 ‘건강한 정치적 중도문화’를 제시한다. 그는 “‘닥치고 정치’를 넘어 ‘묻고 따지는 정치’로, 극단을 배제하고 극단을 포용하는 열린 중도의 철학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저명 언론인이 1922년 출간한 명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에도 언론 관련 서적의 고전으로 꼽힌다. “우리는 우선 보고 그 다음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의부터 하고 그 다음에 본다.” 저자는 고정관념에 따라 사안을 정의하는 인간의 태도를 이렇게 지적한다. 이어 고정관념과 편견에 좌우되는 공중에 대한 회의, 언론과 여론에 대한 불신, 고전적 민주주의 이론의 한계를 설명하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으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사회과학자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경북 포항시 죽장면 비학산 자락의 산골마을. 선화가(禪畵家)인 허허당(虛虛堂) 스님이 살고 있는 휴유암(休遊庵)을 지난달 말 찾았다. 36m2(약 11평)짜리 단칸방인 이곳의 이름은 ‘쉬면서 노는 암자’라는 뜻이다. 대형 화폭에 부처상이 그려져 있는 작은 방에는 그림 도구와 찻잔, 이불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누군가 제게 절이 있느냐, 화실이 있느냐고 물어요. 저는 ‘다 있다’고 이야기하죠. 단칸방인 휴유암은 명상을 하면 선방, 그림을 그리면 화실, 누우면 침실이 되지요.” 스님은 여기에서 7년째 머무르며 선화를 그려 왔다. 2년 전부터는 산중 생활 속 명상을 담은 시와 그림을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팔로어가 2만 명이 넘는다. 트위터에 올린 시와 그림은 최근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예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불이 나면 꺼질 일만 남고/상처가 나면 아물 일만 남는다./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시에 많은 젊은이들이 위로를 받았다며 공감을 표했다. 스님은 “디지털 사이버 공간도 생명의 세계”라고 했다. “트위터를 통해 내가 그들의 아픔에 반응하고, 산속의 청정함을 전해 주면 상상만으로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쓴 글들입니다.” 1974년 열여덟의 나이로 해인사에서 출가한 그는 향곡 스님 문하에서 수행하던 선승이었다. 1983년 지리산 벽송사 방장선원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어 본격적으로 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도는 결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 버리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래서 ‘비고 빈 집’이란 뜻의 ‘허허당’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부처님의 8만4000개 법문에 담긴 깨달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 붓을 잡았어요. 그림 실력 부족으로 6, 7년간 엄청나게 방황했지만 지극한 ‘사무침’이 쌓이니 붓이 움직이더군요.” 그는 2008년 가로 12m, 세로 2.8m 크기에 100만 명의 동자승을 모자이크처럼 그려 넣은 ‘화엄법계 백만 동자-새벽’을 그릴 때는 1년여간 하루 17시간씩 건빵과 생수만 먹으며 작업했다. 해인사와 불일미술관 등 국내뿐 아니라 스위스와 미국 하와이에서도 전시회를 열었다. 강원 화천군은 내년 말까지 파로호 주변에 스님의 작품 전시관과 작업 공간이 들어서는 ‘화천아트빌리지’를 지을 예정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 한바탕 멋지게 놀다 가라”고 말한다. 그에게 그림은 생명을 노래하고, 통쾌한 자유를 느끼는 ‘붓놀음’이다. ‘붓을 던지니 학이 난다/한 소리에 하늘이 깬다’(‘선승의 눈-覺’)는 시는 이런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스님의 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색소폰도 눈에 띄었다. 3년 전부터 교본을 보며 독학으로 익혀 온 악기다. 그는 “산속에서 나와 함께 호흡하며 대화해 온 도반(道伴)”이라고 소개했다. “몇 년 전 비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와서 집 앞 계곡물이 불어나 거대한 파도처럼 넘실댔어요. 집 안에 그동안 그려온 수백 점의 그림이 있었는데, 마당까지 물이 차올랐어요. 급박한 순간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지요. 방안에 들어가 색소폰을 불며 모든 것을 잊고 놀았습니다. 그렇게 30분쯤 놀다 보니 비가 그치더군요.”포항=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9일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은 여름 출판계에 불어 닥친 대형 태풍이다. 발간 다음 날 온라인에선 7초에 한 권씩 이 책이 팔렸다. 김영사는 매일 4만 부씩 추가 인쇄를 했지만 온오프라인에서 쏟아지는 주문량을 채우지 못했다. 도매상 부도 사태로 유통망이 무너진 지방 서점들은 모처럼의 히트 상품을 공급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책은 열흘 만에 30만 부 가까이 배포됐고, 국내 최단기간 100만 부 돌파 기록도 세울 기세다.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책 발간에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여야 후보들은 셈법이 복잡하다. 그러나 출판계에는 “하반기 출판시장은 안철수 책이 먹여 살릴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의 책을 사러 서점에 간 사람들이 다른 책까지 더 산다면 출판계에 단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23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책에서 내 생각을 밝혔으니 국민이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책을 선전하러 TV에 나온 것은 아니라고 말했으나 출연 후 교보문고에선 하루 7000권에서 1만3000권으로 책 판매량이 껑충 뛰었다. ‘안철수의 생각’은 정치 소통 도구로서의 책의 존재감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물론 지난해 말부터 ‘닥치고 정치’ 등 ‘나는 꼼수다’ 출연진이 쓴 정치 비평 서적이 유행했지만 대부분 소셜미디어(SNS)의 인기에 기댄 책들이었다. 요즘 여야 대선 후보들도 모두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트위터, 페이스북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세대의 멘토’로 불리는 안 원장은 거꾸로 갔다. 가장 오래된 매체인 ‘종이책’으로 정치판을 뒤흔든 것이다. 기업 경영도, 바둑도, 정치도 책으로 공부했다는 안 원장이 책을 통해 소통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엔 ‘나꼼수’와 ‘SNS’가 최대 화두였던 4·11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교훈도 작용한 듯하다. 강준만 교수는 최근 발간한 ‘안철수의 힘’이란 책에서 “SNS의 폐쇄성에 대한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 4·11총선”이라며 “우리 편엔 너그럽고 상대편에겐 엄격히 응징하는 ‘나꼼수 모델’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안 원장과 ‘청춘콘서트’를 함께한 박경철 씨도 저서 ‘자기혁명’에서 “SNS의 약점은 역설적으로 ‘대중성의 부족’에 있다”고 말했다. 즉각적, 감성적 소통을 하는 SNS가 새 시대를 이끌 미디어로 각광 받았지만 사실은 견해가 같은 사람들끼리 동종교배가 이뤄지는 폐쇄적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분석이다. 여야, 좌우 구분의 ‘구체제’에 반대하는 중간층을 끌어안아야 하는 안 원장도 모든 세대에 대중적 파급력이 큰 매체는 SNS가 아니라 책이라고 판단한 게 아닐까. 이런 ‘책 정치’가 그에게는 최대한 검증을 늦추고,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의도적 전략일 수도 있다. 신문 인터뷰, TV 토론 출연은 즉각적 검증을 뜻하기 때문이다. 대담집인 ‘안철수의 생각’은 이슈에 대한 안 원장의 의견만 물었을 뿐 답변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날선 ‘추가 질문(probing question)’이 거의 없다. 책이 관심을 끈다 해도 안 원장이 언제까지 “내 생각을 알려면 1만3000원을 내고 책을 사 보라”고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 책만 많이 팔고 대선에는 불출마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우파들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잖아요?”(딸) “그래. 현대 사회에서 좌우의 대립은 더이상 안정·전통 대 변혁·진보의 대립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에 대한 개념의 대립이야.”(아빠) 아빠가 두 딸과 함께 여름휴가를 가는 자동차 안에서 좌우파의 개념과 추구하는 가치, 목표에 대해 대화를 통해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당 소속 좌파 정치가이자 유럽의회 의원. 저자는 “평등과 획일은 다른 것”이라며 “민주주의 좌파는 능력, 재능, 일의 성격에 따라 생기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알려진 남이섬. 타조가 메타세쿼이아 길을 어슬렁거리는 이곳은 매년 35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그러나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빈 소주병만 나뒹구는 모래땅 유원지였다. 이 책은 디자이너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발칙한 상상력으로 남이섬의 생명을 되살려낸 추억을 담은 에세이. 남이섬의 그림지도와 여행정보도 실어 훌쩍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책 초입의 물안개 피어오르는 새벽의 북한강, 페이지를 살라 먹는 단풍 사진을 보면 과거의 쓰레기섬을 떠올리기 힘들다. 최서영 인턴기자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예나 지금이나 알게 모르게 가장 무서운 것이 가족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는 끔찍한 가족의 이야기가 실린다. 어린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고 보험금을 타내려던 아버지, 게임을 하다가 어린아이를 굶겨 죽인 엄마, 친딸을 임신까지 시킨 인면수심의 아버지…. 우리 옛이야기 속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효성스러운 아들, 절개를 지키는 열녀, 지엄한 남편과 정숙한 부인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오싹한 경우가 많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손순이 노모를 극진히 모시기 위해 어린 자식을 땅에 묻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대표적인 ‘효자담’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가난한 살림에 하나라도 먹을 입을 덜기 위해 시도했던 ‘자식 살해’가 ‘효’로 치장된 것일 뿐이다. 저자는 고전소설 속에 나오는 계모, 첩, 기녀, 열녀 등 가부장의 욕망에 의해 일그러진 여성들의 본모습을 되살려낸다. 계모와 첩들은 왜 그렇게 사악하게 그려졌을까. 저자는 처첩 간의 위계질서, 과부 재혼 금지, 적서 차별 등의 배후에 조선시대 지배층인 사대부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있다고 해석한다. 과부가 재혼해서 새로운 아들을 낳거나, 서자까지 관직에 진출하게 되면 벼슬자리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교훈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고전소설 속 숨겨진 진실을 저자와 함께 읽으면 유쾌한 재미가 느껴진다. 기녀에게까지도 순결과 절개를 요구하는 남자들, 할 수 있는 것은 아이 만드는 것밖에 없는 무능력한 남자의 대명사인 흥부와 변강쇠, 가짜 남편에 대한 의심을 담은 쥐 변신 설화…. 그러나 ‘장화홍련’의 아버지가 딸에게 성적 학대를 한 것이 아니냐는 추론은 흥미를 위해 ‘너무 나간’ 듯하다. 고전소설 이야기를 현대의 가족 모습과 대비시키는 분석도 흥미롭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여우누이’에서 자식을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내주는 엄마는 자식의 과외공부를 위해 밤낮 없이 희생하는 요즘 부모들의 모습과 겹친다. 여름밤에 읽기에 공포소설보다 더 오싹한 가족기담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미국 뉴욕의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에는 권위를 지닌 지휘자가 없다. 모든 단원이 서로 눈빛과 호흡을 주고받으며 연주한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리더십은 이 악단에 세계적인 명성을 부여했다. 전문 디자이너가 없는 의류회사 스레드리스는 회원들로부터 디자인을 받고 투표로 선정된 디자인을 옷으로 생산한다. 이 회사가 ‘한 달에 수십 가지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지만 실패작이 없는’ 유명 의류회사가 된 이유다. 현대의 많은 기업이 ‘보스의 수렁’에 빠져 있다고 책은 진단한다. 저자는 “우리는 외로운 천재의 신비스러운 통찰력이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며 “돌파구를 만들어내고 혁신을 이룩하는 것은 ‘보스로부터 해방된’ 집단 지성”이라고 말한다.김지은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한국이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부모 자녀 관계가 가장 ‘도구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쯤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만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나이 든 부모를 찾는 자녀들의 발길이 뜸하다고 한다. 부모가 가진 게 많아야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500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의 저자가 이번에는 한국의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 철학을 집중 분석했다. 딸을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키워낸 ‘원조 딸바보’ 피천득(수필가), 1000일 독서로 교보문고를 일으킨 신평재(전 교보증권 회장), 한국판 메디치 가문 전형필(문화재 수집가), 3대 정치인 가문 정일형 이태영(8선 국회의원·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 가문 등 3대에 걸쳐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각 분야의 인재를 배출해낸 11개 가문 이야기를 소개했다. ‘황제도 자식은 맘대로 못한다’는 말이 있듯 자녀교육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저자는 집 안에서 늘 책을 읽으며 모범을 보이는 아버지의 ‘멘토링’을 강조한다. 수필가 피천득과 간송 전형필은 해외로 유학 간 자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나 선배와 같은 멘토의 역할을 했다.700년 역사의 영국 케임브리지대 최초로 형제 교수(장하준, 장하석)가 탄생하게 된 데는 집 안에서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아버지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역할이 컸다. 위당 정인보의 4남 4녀 자녀들도 “아버지가 남겨준 최고의 선물은 ‘글 읽는 소리’였다”며 “아버지가 납북된 뒤에도 아버지의 그 목소리를 평생 가슴에 담고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아버지가 밤늦도록 부재하면서 자녀교육의 한 축이 무너졌다”며 “집 안에서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춘기 자녀를 둔 집 안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겐 엄하지만 남에게는 인색하지 않고 돈을 제대로 쓸 줄 알도록 하는 자녀교육법도 눈에 띈다. 전형필은 24세에 10만 석이나 되는 재산을 물려받은 후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등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를 수집하고 쓰러져 가는 민족사학을 되살리는 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그러나 1945년 조국의 독립과 함께 더는 일본이 문화재를 약탈해갈 수 없게 되자 문화재 수집가 역할을 그만둔다. 저자는 “전형필의 아름다운 퇴장은 부자들의 귀감이 됐다”고 평했다.현대판 명문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벌고, 높은 관직에 올라 권력을 누리고, 자녀를 정치인이나 유명 대학교수로 키우면 명문가일까. 저자는 “현대판 명문가란 사회와 잘 소통하고, 따뜻한 감정을 공유해온 가문에 주어지는 사회적 명성”이라고 정의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남자가 서점에 들어서자 ‘휴가철 필독서’ 코너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고경영자들 혹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은 책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필독서’라는 어감의 강한 압박. 그는 사람들 틈에서 필독서들을 들춰보다가 불안해졌다. 역시 몇 권을 사들고 가서 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지. 나중에 높은 분과 점심을 함께하다가 ‘휴가 때 어떤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둘러댈 방패로. 전생에 대역무도한 죄를 아흔아홉 번은 지어야 대한민국 샐러리맨이 되는 모양이다. 휴가 때 읽을 책을 고르는 사소한 일마저 고역인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두려움을 용케 물리치고는 마음먹었던 대로 추리소설 코너로 향했다. 이번 휴가만큼은 다르게 보내고 싶었다. 남자는 매년 이 무렵이면 독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휴가는 반갑지만 ‘거룩한 필독서들’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작년까지는 휴가철 필독서의 대열에 매년 거르지 않고 참여해왔다. 변화와 트렌드에 뒤지지 않으며 교양서를 읽는 수준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싶었다. 하지만 필독서들은 휴식보다는 ‘압박의 추억’을 남겨 놓았다. 무게의 압박과 내용의 압박, 급기야 쏟아지는 졸음의 압박. 앞부분을 읽다가 포기하기를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하면서, 솔직한 마음으로 그런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쉬면서 긴장을 풀어야 할 휴가 때 왜 낯설고 어려운 책들을, 필독서 혹은 대세라는 이유로 억지로 읽어가며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독서습관으로부터 차츰 멀어졌던 것 같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남자는 추리소설 코너에서 끌리는 책들을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계산대에 올려놓고 보니 아홉 권이나 됐다. 언젠가는 깊이 있는 책들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마지막 장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독서습관을 다시 들이는 게 우선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가 아닌 자기 내면의 즐거움을 위한 독서로. 남자는 지하철 안에서 소설에 빠져 있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고 말았다. 계단을 뛰어올라 반대편 플랫폼으로 향하면서도 마음이 뿌듯했다. 책 읽는 즐거움을 순수하게 느껴본 게 얼마 만인지. 자신의 눈높이를 인정하고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를 한 번 발휘하니까 또 다른 자신감이 치솟았다. 나중에 높은 분의 질문에도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리소설을 쌓아놓고 읽었는데요. 재미있는 걸로 추천해 드릴까요?”한상복 작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사진)이 대선 출마 의지 등을 담은 책의 원고를 최종 탈고하고 17일 이를 출판사로 넘겼다. 안 원장의 출마 선언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이날 “원고를 오늘 출판사로 넘겼다”며 “한 인사가 안 원장을 인터뷰하는 대담 형식의 책”이라고 말했다. 출판은 김영사가 맡았고, 초판은 10만 부가량 찍을 예정이다.김영사 최연순 주간은 “안 원장의 원고는 출판사에서 편집하지 않고 외부에서 편집 작업이 이뤄진다”며 “편집에 참여하는 직원 외엔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이르면 내일부터 작업에 들어가 며칠 내로 인쇄를 마치고 제본에 들어갈 것”이라며 “24, 25일 이후에는 배포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안 원장이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했던 원고에는 현 정부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안 원장 측의 한 관계자는 “안 원장이 당초 자전에세이 형식으로 책을 낼 계획이었지만 일정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대담 형식으로 바꾼 것”이라며 “안 원장이 대화를 통해 자신의 대선 출마 의지와 정치·사회에 대한 비전 등을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민주통합당의 한 인사는 “안 원장의 출마 선언이 임박했다고 듣고 있다”며 “29, 30일 예비경선(컷오프)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하는 7월 말 또는 8월 초가 안 원장의 출마 선언 시점으로 유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철그렁거리는 갑옷들의 금속음,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와 거친 숨소리, 칼과 창이 맞부딪치는 소리, 군인들의 비명과 함성…. 십자군 전쟁의 생생한 장면을 정교한 터치로 되살려낸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판화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18∼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여는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 판화 전시회다. 이 판화들은 본디 프랑수아 미쇼의 ‘십자군의 역사’에 실렸던 작품으로, 국내에서 시오노의 ‘십자군 전쟁’이 출판되면서 이 책의 삽화로 실렸다. 도레는 15세였던 1847년 풍자지 ‘주르날 푸르 리르(Journal pour Rire)’의 삽화가로 활동을 시작해 그리스로마 신화, ‘성서’,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발자크와 바이런의 문학작품에 실린 판화를 제작했다. 작품 수는 1만 점 이상이고 그의 판화가 실린 책만 221권이나 된다. 독특한 판타지 스타일, 극적 장면 연출, 종합적인 구성으로 서사 삽화의 최고봉에 올랐던 그의 작품은 현대 일러스트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들 사이에서는 도레의 그림을 걸어두는 게 유행일 정도로 생전에 이미 인기를 끌었다. 그의 판화는 목판에 원화를 그리고 전용 조각도인 ‘뷰린’으로 그림을 새기는 ‘우드 인그레이빙(wood engraving)’ 기법으로 제작돼 극도의 세밀함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19세기 후반에 급속도로 발달한 사진술의 대량 보급으로 고도의 집중력과 오랜 작업시간을 요하는 이 판화 기법은 예술작품으로서만 명맥이 유지돼왔다. 강명효 문학동네 기획실장은 “이번 전시회에 소개되는 도레의 판화 작품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원본보다 훨씬 큰 사이즈로 확대한 것으로, 실제로 우드 인그레이빙 작품은 확대경으로 감상해야만 정교한 디테일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람료 없음. 02-736-6669 지난달 초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 개관한 한길책박물관도 도레의 삽화가 실린 책과 판화 원본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돈키호테’ ‘라퐁텐 우화집’ ‘성서’ ‘런던’ ‘아라비안나이트’ 등 도레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책과 삽화들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한길책박물관은 16, 17세기 유럽의 아름다운 고서들, 18, 19세기 출판인쇄술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판화와 신문, 잡지 등 역사적 출판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한길책박물관은 영국의 시인이자 공예가, 북디자이너였던 윌리엄 모리스(1834∼1896)가 세운 출판사 켐스콧 프레스가 만들어낸 53종 66권의 출간도서 전종을 소장하고 있다. 모리스가 평생의 예술동지였던 번 존스와 함께 만든 ‘초서 저작집’을 비롯해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 ‘모리스 전집’ 등도 볼 수 있다. 이 밖에 윌리엄 터너와 윌리엄 호가스의 대형 판화집,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잡지 ‘옐로 북(Yellow Book)’, 26세로 요절한 삽화가 비어즐리의 책들, 20권으로 구성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 진귀한 옛 책 200여 종도 감상할 수 있다. 한길책박물관의 김혜현 학예사는 “후안 미로, 훈데르트바서, 살바도르 달리 등 거장들이 삽화를 그린 세계 각국의 ‘성서’를 비교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료 5000원. 031-949-9786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가을은 독서의 계절’은 옛말. 여름휴가와 방학이 겹치는 7∼8월이 연중 최대의 도서 판매 시즌으로 떠올랐다. TV도 컴퓨터도 없는 산과 계곡에 텐트 치고 머물며 아이들과 대화하고, 책 읽으며 휴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교보문고와 YES24 북마스터들의 도움을 얻어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휴가 때 읽을 만한 책들을 ‘독자맞춤형’으로 골랐다. 》기차나 비행기 안에선 인문교양서기차나 비행기, 휴가지의 카페에선 평소 읽을 시간이 없던 인문교양서나 에세이류가 적당하다. 미라 레스터의 ‘힐링여행’(북스코프)은 사랑과 헌신, 용기와 인내, 구원과 화해, 정신적 풍요, 감사와 애도, 용서 등 10개의 힐링 테마에 맞는 여행지를 소개한다. 산과 호수, 섬과 바다, 고대 문명의 유적지, 성지 등과 관련된 감동적인 경구는 읽는 이의 마음과 영혼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정민의 ‘일침’(김영사)은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 속 한마디를 음미하게 해준다. 김지현의 에세이집 ‘디테일, 서울’(네시간)은 30대 여성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서울의 일상을 그려냈다. 허태균의 ‘가끔은 제정신’(쌤앤파커스), 이츠키 히로유키의 ‘타력’, 임용한의 ‘세상의 모든 전략은 전쟁에서 탄생했다’(교보문고)도 여행가방에 넣을 만하다. 여름밤엔 오싹한 공포소설공포소설은 열대야에 지지 않는 중독성이 있다. ‘좀비’(포레)는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작품. 실존했던 사이코패스 제프리 다머가 모델인 쿠엔틴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살인자의 내면을 파헤친다. 납치한 사람을 뇌수술시켜 주인에게 복종하는 착한 노예(좀비)로 만들려 했던 사이코패스의 모습은 개인을 넘어 탐욕스러운 현대사회를 상징한다. 극한으로 치닫는 상상력과 우울한 내러티브가 더위를 잊을 정도의 무서움을 선사한다.영화 ‘화차’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문학동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북로드),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밝은세상),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황금가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참자’(재인)도 추천됐다.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세미콜론)은 저주 증오 광기 상실 분노 죽음 등 예술가들이 포착해낸 7가지의 공포를 선별하고 그림을 통해 무서움의 심리를 소개한다.내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면휴가의 진정한 의미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지친 영혼을 달래고 삶을 재충전하는 것이 아닐까. ‘욕망해도 괜찮아’(창비)는 법학자인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창비 인터넷 카페에 인기리에 연재했던 ‘색계: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욕망과 규범’을 묶었다. 내 안의 욕망을 직면하는 풍자, 유머가 가득한 감성에세이다. 아잔 브라흐마의 ‘성난 물소 놓아주기’(공감의 기쁨)와 허허당의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예담)는 스님들이 마음 다스리기에 관해 쓴 책들. 김경집의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랜덤하우스코리아), 윤대현의 ‘마음 아프지 마’(쌤앤파커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행나무)도 자신의 내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한다.투자의 달인이 되게 하는 책많은 직장인이 경제 경영 책을 읽으며 비즈니스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싶어 한다. 심리학자이면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 교양서인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이 이 분야 추천 1순위로 꼽혔다.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로 선정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협상 전략서인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8.0), 조직구성원을 천재로 만드는 곱셈의 리더십에 관한 리즈 와이즈먼의 ‘멀티플라이어’(한국경제신문사)도 읽을 만하다. 코너 우드먼의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갤리온)는 여행을 통해 ‘공정무역’의 현장을 직접 확인한 책이다. 고득성의 ‘운명을 바꾸는 10년 통장’(다산북스), 신동일의 ‘한국의 슈퍼리치’(리더스북)도 투자 재테크 책으로 추천됐다.고전 입문을 도와주는 책들책 읽기의 왕도는 역시 고전을 집어 드는 것이다. 휴가철을 이용해 평소 엄두를 못 냈던 고전 읽기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는 십자군전쟁 관련 이야기를 통해 역사와 인간 권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와 ‘갈리아 내전기’(사이), 동양고전의 백미인 사마천의 ‘사기’ 세트(민음사)도 읽어볼 만하다.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심볼리쿠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역작인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원문의 운율과 리듬을 살려 새롭게 번역해낸 작품이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휴가 때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거나 집에 머물면서 아이의 마음을 살펴보자. 김수정의 ‘대한민국 구석구석 교과서 여행’(아주좋은날)은 아이와 함께 체험학습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어볼 만한 책이다. 오은영의 ‘아이의 스트레스’(웅진리빙하우스), 존 가트맨의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한국경제신문사) 등은 아이의 상처 난 마음을 보듬고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준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평가이자 지제크 전도사인 이현우(로쟈) 한림대 교수가 꼽은 인문교양서▼◇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사사키 아타루/자음과모음 ‘책과 혁명’이란 주제를 다룬 책을 여름휴가 때 읽어 볼 만한 책으로 추천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게다가 청량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체온을 높여 주는 책이라면. 하지만 며칠 전 지방 강연을 가면서도 가방에 이 책을 챙겨 넣었다. 한 번 읽은 책이지만, 다시 읽지 않으면 뭔가 성에 차지 않는 책도 있는 법인데 이 책이 바로 그런 범주에 속한다. 철학, 현대사상, 이론종교학을 전공한 일본의 이 젊은 저자는 놀라운 열정과 내공으로 문학이 어떻게 해서 혁명의 근원이며, 혁명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말한다. 조곤조곤하지만 아주 뜨겁게. 저자의 구분법에 따르면 이 책은 내가 ‘읽은’ 책이 아니라 ‘읽어 버린’ 책이다. 어떤 책이 일류라 치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읽기는 두려운 것이고 드문 것이다.▼영화배우 손예진이 고른 소설▼◇모멘트/더글라스 케네디/밝은세상 요즘 국동석 감독의 범죄 스릴러 영화 ‘공범’을 촬영 중이라 이번 여름에는 휴가를 가지 못할 것 같다. 그 대신 촬영 도중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 것이 내겐 가장 행복한 휴식이다. 소설 ‘모멘트’는 ‘빅 픽처’를 쓴 미국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으로 통일 독일 이전인 1984년 베를린을 배경으로 분단과 냉전의 역사 속에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태어난 남녀가 겪는 운명적 사랑과 엇갈림, 놓쳐 버린 기회, 사라진 꿈 등이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수십 년을 오가는 시간적인 배경과 긴장감 있는 스토리, 복잡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웬만한 영화보다 흡인력을 느끼게 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국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해서 공감을 하며 읽었다. 운명적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휴가철에 일독을 권한다.▼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 소장이 선택한 과학서▼◇기술의 충격/케빈 켈리/민음사 기술의 정체와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 활동에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시대다. 그렇다면 기술은 단순한 도구일까, 아니면 우리가 기술에 종속되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한 의문에 대해 깊이 있는 답변을 제시한 책이 이 시대 최고의 기술 칼럼니스트로 꼽히는 케빈 켈리의 ‘기술의 충격’이다. 올해 서울디지털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던 그는 인터넷과 정보기술뿐만 아니라 기술의 전체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공학기술과 정보과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를 꿰뚫는 통찰을 보여 준다. 책은 결코 쉽지 않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도 상당히 많지만, 읽고 나서 남는 여운이 크다.▼‘미실’, ‘채홍’을 쓴 김별아 소설가가 고른 에세이▼◇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서효인/다산책방 9회말 투 아웃의 만루, 당신은 18.44m 앞에 강속구 투수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 팀이 3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은 간절히 바란다. 역전 만루 홈런! 한 방에 상대편을 무릎 꿇리고 주자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경기장을 환호로 채우고 싶다. 하지만 인생의 경기장에서, 우리는 대부분 플라이볼을 날리거나 삼진아웃을 당한다. 그럼에도 끝나지 않는 삶의 경기, 승리를 원한다기보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단단히 배트를 움켜잡는다. 전 야구 선수 서효인과 동명이인인 시인 서효인의 에세이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는 부제대로 ‘어느 젊은 시인의 야구 관람기’이자 꿈과 추억과 청춘에 대한 보고서다. 시인의 날카롭고도 섬세한 시선은 관중의 함성 속에 숨은 열망과 분노를 캐내고, 지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경기를 위로한다.}

최근 발간된 은희경의 소설 ‘태연한 인생’(창비)에는 주인공인 소설가 요셉이 동네 커피전문점을 훤히 꿰뚫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작업도 해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하니까. 버스 정류장 앞 카페는 자리가 넓고 콘센트도 많아 일하기는 괜찮은 편이야. (…)주차장 뒤에 있는 카페는 오백 원만 더 주면 커피도 에스프레소로 리필해줘.” 영화 번역가 이미도 씨도 서울 역삼동 집 앞에 있는 스타벅스를 자신의 사무실처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전 7시면 신문 3개를 들고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신문을 꼼꼼히 다 읽은 뒤 번역이나 집필활동을 시작해 오후 5시까지 일한다. 퀵서비스도 커피전문점에서 받는다. 1999년 이화여대 앞 스타벅스 1호점이 개점하면서 불어 닥친 국내 커피전문점 열풍은 ‘된장녀’ 논란 속에서 시작됐다. 도대체 밥값보다 비싼 브랜드 커피를 즐기는 젊은 여성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커피전문점은 한 집 건너 하나씩, 동네 구석구석까지 번졌다. 불황 속에서도 커피전문점 시장이 연간 1조 원대로 급성장하게 된 원인은 무얼까? 단순히 커피맛 때문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 교수는 집이나 직장 이외의 부담없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제3의 장소’라 불렀다. 한국사회에서 제3의 장소는 사랑방에서 시작해 다방, 카페, 노래방, PC방 등 시대에 따라 유행이 변해왔다. 커피전문점이 예전의 ‘제3의 장소’와 다른 점은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철저히 ‘개인적인 공간’이란 점이다. 대화를 나누러 온 사람도 있지만 리포트를 쓰고, 게임을 하고, 과외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데이트를 즐긴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 백수들이 노트북을 꺼내놓고 일자리를 찾는 곳도 커피숍이다. 그런데 5000원짜리 아이스커피의 얼음이 다 녹도록 몇 시간씩 앉아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기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도심의 거대한 모바일 오피스가 된 커피숍은 각종 신조어도 만들어낸다. 커피숍에서 일하는 직장인 ‘코피스족’(커피+오피스)과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대학생 ‘카페브러리족’(카페+라이브러리)이 그들이다. 카페베네에 따르면 이처럼 일과 공부를 위해 커피숍을 찾는 고객이 전체 고객 중 40%를 차지한다고 한다. 휴식과 노동이 어우러지는 커피숍이 적막한 도서관이나 사무실보다 훨씬 생산성 높은 창작 공간으로 선호되는 것이다. 소설가 주원규 씨는 최근 200자 원고지 840장 분량의 장편소설 ‘반인간선언’(자음과모음)을 24시간 운영하는 홍대앞 커피전문점에서 나흘 만에 썼다. 커피와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은 아예 자지 않은 상태에서 월요일 아침부터 목요일 오전 3시까지 미친 듯이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카타르시스가 몰려오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고 말했다. 스위스 출신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들의 창의성은 ‘샤이 애니멀(Shy animal)’, 즉 부끄러운 동물과 같아서 평소엔 잘 나오지 않지만 낯선 곳에 있으면 호기심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공항에서 일주일을: 히드로 다이어리’) 요즘 나도 주말 저녁에는 지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책 한 권을 들고 커피전문점으로 향한다. 이종(異種)과 경계의 문화가 만나는 커피숍은 요즘 사진, 인문학, 콘서트, 강연회 공간으로 무한변신 중이다. 무엇보다 커피전문점이 종이책과 전자책 붐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출판계가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올해는 대선의 해. 삼국지 초한지 마키아벨리와 같은 동서양 고전에서 배우는 리더십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외국 고전과 인물뿐일까. 웅녀, 박혁거세, 석탈해, 주몽 같은 우리나라 건국 신화 속 인물들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신화란 집단 무의식의 원형”이란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말처럼 신화 속 등장인물은 한국적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최고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이번엔 우리나라 건국신화에서 열한 명을 불러냈다. 모두들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을 구하고 나라를 세운 영웅들이다. ‘물지게 리더십’ ‘물레방아 리더십’ ‘보따리 리더십’ 등 평범한 일상을 결부시킨 리더십 분석이어서 한층 친근하게 다가온다.○ 웅녀의 ‘바리데기 리더십’=‘단군신화’에서 이니셔티브를 쥔 쪽은 환웅이 아니라 웅녀라고 저자는 말한다.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와 태백산 신단수 밑에 신시(神市)를 세웠지만 인간의 나라를 위한 청사진은 갖고 있지 않았다. 반면 웅녀에겐 확실한 비전이 있었다. 단지 인간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국의 주인공인 단군을 낳는 것이었다. 웅녀는 이 같은 계획을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수행해 나갔다. 호랑이가 중도에 포기했던 이유는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설화 속 바리데기처럼 웅녀는 자발적이며 희생적인 자세로 ‘미래의 비전’을 치밀하게 엮어 나갔던 지도자였다”고 설명했다.○ 주몽의 ‘물지게 리더십’=물지게를 효과적으로 지기 위해서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어깨 양쪽에 걸린 물통이 절묘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물통이 적절한 운동을 하며 어깨 위에서 놀아줄 때, 물지게가 저절로 지게꾼의 발걸음을 떼 놓게 한다. 주몽은 타고난 활솜씨에 피나는 노력, 지혜를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세운 고구려는 지혜와 힘이 조화된 나라였다. 광대한 고구려의 영토는 지혜에 힘이 더해진 완벽한 한판승으로 이뤄낸 것이었다. ○ 박혁거세의 ‘보따리 리더십’=“보따리를 풀어 놓은 곳이 주인집이다”라는 말이 있다. 박혁거세는 백성들이 등에 지고 머리에 인 짐을 어디에 풀 것인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신라의 6개 부족이 우왕좌왕할 때, 박혁거세는 백성들에게 보따리를 풀어 정착할 나라를 세운 지도자였다. 세계적인 기업 삼성도 처음에는 구멍가게에서 시작했듯이,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된 신라도 자그마한 부족국가에서 시작했다. ○ 온조의 ‘집토끼 리더십’=“불황일 때는 집토끼부터 지켜야 한다”는 마케팅의 원칙이 있다. 그렇게 지켜낸 집토끼는 산토끼도 몰고 온다. 온조는 유리, 비류에 이어 주몽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복형인 유리가 왕위를 잇자 온조는 비류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러 떠난다. 온조는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부하들(집토끼)을 데리고 십제(十濟)를 세워 우선 기반을 다졌다. 결국 미추홀로 떠났던 비류의 부하들(산토끼)도 돌아와 백제(百濟)를 건국했다. ○ 왕건의 ‘물레방아 리더십’=“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은 먼저 가자고 다투지 않는다.” 리더십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왕건은 선배 궁예와 견훤을 따랐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두 선배를 무리하게 앞서려 하지 않았다. 그는 궁예를 주군으로 끝까지 모시고자 했으며 라이벌이었던 견훤도 존중하고 예우했다. 그는 자신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왕건은 통산 전적에서 견훤과 싸워 3 대 7로 졌다. 그러나 전쟁에선 승률이 중요하지 않다. 아홉 번을 져도 최후의 1승을 얻는 자가 승리하게 된다. 이 밖에도 저자는 신라의 석탈해와 김알지의 ‘모퉁잇돌 리더십’, 가락국 김수로의 ‘눈높이 리더십’을 소개하는 한편 반면교사로 경계해야 할 리더십도 꼽았다. 해부루와 금와는 강대국이었던 부여국의 수도를 변방으로 옮겨 스스로 국력을 약하게 한 ‘헛삽질 리더십’, 후백제의 견훤은 자전거 페달 밟듯 아랫사람을 닦달하고 공적은 자기에게만 돌리는 ‘자전거 리더십’으로 비판했다. 올해 대선에는 청년층의 취업난 해소와 국민의 안정된 살림살이가 최대 이슈다. 그래서 후보마다 자기가 눈높이의 소통능력, 물지게꾼의 전문성, 집토끼와 보따리의 현실감각, 바리데기의 자발적 희생, 모퉁잇돌의 비전을 갖춘 후보라고 목청을 키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누가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일지, 누가 국민을 자전거 페달처럼 밟아대는 리더일지 가려내는 눈도 필요하다. 신화 속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베스트셀러 소설 시리즈 ‘트와일라잇’의 팬픽션(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을 팬이 자신의 뜻대로 재창작한 작품)으로 시작한 소설 ‘그레이의 오십 가지 비밀’이 영국 문고판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소설로 등극했다.2011년에 처음 출간됐던 이 소설은 올해 6월 문고판으로 재출간되며 다시금 인기몰이에 나섰다. 해리 포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리고, 저작권은 무려 37개국에 판매됐으며 전자책으로도 100만 부 이상 팔렸다. 이렇게 전 세계를 휩쓴 이 책의 장르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에로틱 소설’이다.이야기는 대학을 갓 졸업한 아나스타샤 스틸이 억만장자인 크리스천 그레이를 만나며 시작된다. 그레이는 스틸에게 ‘삶을 내게 맡기라’는 은밀한 계약을 제의한다. 이에 응한 스틸은 그레이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점차 그가 사디즘(상대에게 성적 고통을 줌으로써 만족하는 성적 취향) 등 왜곡된 성적 취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느새 그레이와 사랑에 빠진 아나스타샤는 그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사디즘과 마조히즘(상대로부터 육체적 고통을 받음으로써 만족하는 성적 취향)을 비롯한 괴상한 성적 취향에 맞춰 나가기로 결심하는데…. 선정적이고 직설적인 성적 표현으로 비판받는 이 소설이 갑자기 2012년 여름 출판계의 핵으로 떠오른 데 대해 영국 출판계는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에로틱 소설이라는 장르는 항상 존재해왔지만 이같이 단숨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며 출판계의 중심에 선 적은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평도 엇갈려 가디언지의 제니 콜건 기자는 “문학적인 에로틱 소설보다 훨씬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며 후한 평을 준 반면에 텔레그래프지는 “과장이 심하고 진부하다”며 혹평했다. 정신의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에스텔라 웰던은 “이 책의 성공은 여성들의 인권을 다시 구석기 시대로 되돌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언론과 여성학자들의 의견이 상반되는 가운데 일반인의 이 책에 대한 호응도는 한결같이 높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도서관에서는 성적인 내용을 문제 삼아 이 책을 철수시켰다가 후에 독자들의 성원에 못 이겨 재배치하는 촌극을 만들기도 했다. 진부하다면 진부할 단순한 로맨스, 혹은 영국 언론에서 농담 삼아 부르듯이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인 이 소설이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영국 출판계를 잠식한 비결은 무엇일까. 가디언지는 “이 책의 성공 비결은 중년 부인들이 가진 성에 대한 판타지를 여과 없이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대중적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이 책이 ‘에로틱 소설’의 붐을 가져다줄지 혹은 이번 한 번의 반짝 인기로 사라질지 영국 언론은 주목하고 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 최근 서울에 대한 에세이를 펴낸 남녀가 4일 오후 종로구 통의동의 갤러리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페이퍼스토리)를 쓴 건축가 오영욱 씨(36)와 ‘디테일, 서울’(네시간)의 작가 김지현 씨(37). ‘오기사’란 필명으로 유명한 오 씨는 독특한 캐릭터의 그림과 사진, 감성적인 문장으로 서울의 건축을 이야기했다. 14년차 방송작가인 김 씨는 30대 여성의 눈으로 서울의 세밀한 일상을 기록했다. 서울의 몰개성, 몰역사성을 비판하는 책이 많지만 두 책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서울의 일상을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 ▽오=4년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살다 2007년 서울로 돌아왔어요. 귀국하면서 다짐한 게 하나 있었는데 앞으로는 서울에서 여행하듯 살아보기로 한 것이었죠.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도 교수가 학생들에게 먼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사진으로 찍어보라고 하잖아요. 일상 자체를 여행자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신선한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김=제 또래인 1990년대 학번들은 봇물 터지듯이 해외로 나갔던 세대예요. 그런데 뉴욕이나 런던, 베를린으로 떠난 친구들이 한다는 게 펍이나 카페를 찾고, 박물관 가는 거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그거 다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서울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저는 도시가 일만 하는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에게 매력을 못 느껴요. 뉴욕이라는 도시를 즐길 줄 아는 우디 앨런 할아버지는 섹시하죠. 오 씨는 스페인에서 찾아온 여자친구를 종로 뒷골목의 돼지껍데기집,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지하의 냉면집, 백화점 옥상의 팥빙수집에 데려간 이야기를 책에 적었다. ▽오=서울에 오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도시의 모습은 날것 그대로의 일상입니다. 창덕궁이나 한옥마을이 줄 수 없는, 서울에 대한 기억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새빨간 네온으로 치장한 교회의 십자가, 차에 붙여놓은 파란 스펀지, 산책하는 아줌마들이 쓰고 있는 다스베이더 마스크, 시내버스에서 흐르는 라디오 소리, 자정 무렵 택시들의 승차거부…. 도시의 진정한 매력은 상처와 추억이 공존하는 시간의 자취에 있지 않을까요. ▽김=외국인 친구들이 서울에 와서 재미있어 했던 것 중 하나가 편의점 앞에 놓인 파란 파라솔이었어요. 내 생각에는 그들이 근사한 카페나 한식집에 관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걸 재밌어 하더군요. 서울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반경 5km 이내의 맛집 지도’를 그리는 겁니다. 내가 살면서 발견한 거니까 내 삶의 이야기가 담기는 거죠. 그런 제 삶에 친구가 동참하게 될 때 기쁨을 느낍니다. 김 씨의 책에는 광진구 아차산 정상에서 ‘비바크’(야영 장비 없이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한 뒤 도심 위로 떠오르는 일출 감상, 오전 8시의 신도림역에서 느끼는 출근길의 거대한 에너지, 퇴근 무렵 강변북로에서 바라보는 한강, 낮술 천국인 서울의 명소 등등 세부적인 일상의 즐거움이 담겨 있다. 그의 동선을 따라 순례하는 누리꾼도 나타났다. ▽오=서울의 속성은 ‘뒤섞임, 혼재’입니다. 외국 도시는 역사지구와 신시가지가 따로 있지만 서울은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불끈불끈 욕망들이 막 피어오르다 뒤늦게 옛 건축물의 가치를 깨달아 보호하려는, 과거와 현재가 마구 섞여 있는 도시지요. 요즘은 그것 또한 서울이란 생각을 해요. 가령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서울의 아이러니한 근대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설치작품’입니다.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법주사의 팔상전, 화엄사의 각황전, 금산사의 미륵전 등 각지의 고건축을 복제해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죠. 그런데 경복궁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곳이 경회루나 근정전이 아니라 이 민속박물관이에요. 의도했든 안했든 민속박물관은 현재 한국의 전통 건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김=대만의 온천마을에 놀러 갔을 때 만난 여종업원이 케이팝의 고향인 서울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더군요. 그때 ‘내가 떠나온 고향은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떠나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여기, 제가 사는 서울을 더 즐기려 노력하려고 합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김지민 인턴기자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