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추석입니다. 자동차로 기차로 버스로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고향을 찾아갑니다.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지치고 힘들지라도 되도록이면 가려 합니다. 그곳에 가족이 있으니까요. 모이고 만나고 위안을 얻습니다. 이렇게 추석은 우리에게 각별한 명절입니다. 그런데 추석에 대한 그림책이나 동화를 찾으니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러저러한 날이라는 지식을 전달하는 책들만 몇몇 보이고, 추석이 가진 의미를 따뜻하게 전달하는 책은 없나 봅니다. 그래서 오래전 발간된 ‘솔이의 추석 이야기’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책을 보면 옷차림이나 물건 등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지만, 추석이라는 명절이 주는 흥겨움과 따뜻함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았습니다. 색동옷을 입은 솔이를 따라 솔이 할머니 집 명절 지내는 모습을 찬찬히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 추석과는 이런 건 같구나, 저런 건 다르구나 비교하면서 보면 재미날 겁니다. ○독후활동-말주머니, 생각주머니준비물: 여러 가지 색지, 가위, 연필 1. 솔이가 버스를 타려고 서 있는 기나긴 줄이 그려진 그림을 꼼꼼히 살핀다. 누구누구가 가족인지, 혼자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인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을 상상해 본다.2. 1번 그림을 복사한다. 3. 여러 가지 색지로 말주머니 모양을 오려 놓는다. 생각주머니는 말주머니와 구별되도록 조금 다른 모양으로 오린다.4.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하겠다’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겠다’하고 상상한 내용을 말주머니 혹은 생각주머니에 써서 그림 위에 붙인다. 내용에 맞게 주머니의 색깔을 골라 쓴다.5. 몇 쪽 뒤에 있는 ‘마당에서 달을 보며 송편 빚는 모습’을 그린 그림도 복사해 같은 활동을 한다. 김혜원 어린이책교육연구가}

“창밖으로 수십 군데에서 불길이 보였다.” 2005년 8월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하던 아일린 콜린스 선장은 지상 300km 상공에서 엄청나게 큰 불길을 보았다고 했다. 아마존에 이어 세계의 ‘두 번째 허파’로 불리는 중앙아프리카 콩고분지 우림지대였다. 숲속에서 화전을 일구는 농부들이 일으킨 불길과 연기, 숲이 사라진 황무지에서 피어오르던 흙먼지가 우주에서도 보였던 것이다. 2004년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 책의 저자 왕가리 마타이(1940∼2011). 그는 1977년 환경단체 ‘그린벨트 운동’을 창설해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 45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미국 유학 후 케냐 나이로비대학에서 여성 최초로 박사학위(생물학)를 취득한 저자는 대학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와 현장에서 시골 여성들과 함께 나무를 심었다. 그는 2005년 중앙아프리카 콩고분지 우림 지역에 걸쳐 있는 10개국 정부로부터 ‘생태계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콩고분지는 180만 km²가 넘는 면적에 5000만 명과 수많은 동식물 종이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 수령 200년이 넘는 나무 상당수가 벽돌공장의 땔감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목재 회사 직원은 “걱정하지 마라. 숲에는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더 있다”고 위로했다.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남아 있다는 직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매우 보편적인 세계관이 깔려 있다. 베어낼 수 있는 나무가,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마실 수 있는 물이, 채굴할 수 있는 광물질이 무한정 남아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이런 태도로 지구를 대하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심각한 생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나무와 숲의 경제적 가치를 넘어선 정신적 영적인 가치를 역설한다. 그는 “인류 문명이 시작된 뒤로 나무는 식량과 약재, 건축 재료였을 뿐 아니라 치유하고 위로하고 사람과 신이 연결되는 장소였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은 ‘죽은 나무’의 목재로서의 가치만 따지지만, ‘살아 있는 나무’의 생태적 가치를 인정해야 비로소 환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의 나무심기 운동은 무분별한 벌목과 환경 파괴를 일삼는 독재 정부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2009년 그를 분쟁종식을 호소하는 유엔 평화사절로 임명했다. 그는 “차드와 수단이 오래도록 영토분쟁을 벌이는 동안 그들이 욕심내는 바로 그 땅을 사하라 사막이 차지해 버렸다”고 꼬집었다. “지금 예언자가 있다면 ‘분쟁을 멈추시오. 그리고 함께 모든 자원의 사막화를 막는 일에 쏟아 부으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정치가와 군인들은 지금 발밑에서 확산되는 사막이, 어떤 총칼로 무장한 적보다 더 파괴적인 위협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 25차례 미국 대선의 결과를 분석하면 선거 전 다우존스지수가 올라갈 경우 여당 후보가 당선됐고, 그 반대면 정권교체가 발생했어요. 12월 한국 대선도 선거일 1∼2주 전 코스피의 흐름을 주시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복잡성 과학 전문가 존 캐스티 박사(69·사진)가 26일 방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사회적 분위기’(Social Mood)이론을 소개했다. 수학자 출신인 그는 오스트리아 빈 소재 응용시스템분석을 위한 국제연구소(IIASA) 선임연구원을 지냈으며 2005년 미래탐구 학회인 케노스서클(Kenos Circle)을 설립했다. 그는 저서 ‘대중의 직관’(반비)에서 여론조사 등 통계를 이용한 전문가의 예측보다 대중의 느낌이나 믿음을 표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경제위기, 정권교체 등 미래 변화를 훨씬 더 잘 예측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사회적 분위기’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 금융시장 지수와 신문,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나타난 어휘 분석 등을 꼽았다. “주가 지수는 개개인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전망을 총합적으로 나타내는 ‘합리적 온도계’로 불립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긍정적일 때는 세계화, 참여, 환영, 행복 등의 단어가 유행하고, 부정적일 때는 지역화, 거절, 분열 등의 말이 많이 쓰입니다. 실제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연합(EU)에서는 수년 전부터 ‘통합’보다 ‘분리’라는 말이 유행했죠.” 그는 국내 대선의 ‘안철수 돌풍’에 대해서는 “경제위기로 인한 부정적 ‘사회 분위기’가 기성 정당 후보에 대한 혐오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남북한 내부의 ‘사회적 분위기’가 긍정적이면 남북관계도 우호적이 되지만, 부정적일 때 국지적인 충돌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사디즘’이란 용어를 낳은 프랑스 작가 마르키 드 사드(1740∼1814)에 대한 논란이 200년 만에 부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간행물윤리위원회가 1785년 발표된 사드의 소설 ‘소돔의 120일’(동서문화사)에 대해 즉시 수거, 폐기 처분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19세 미만 금지 처분인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과 달리 ‘유해간행물’ 판정은 모든 독자가 책을 읽을 수 없도록 하는 책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근친상간, 수간(獸姦), 시간(屍姦) 등 음란성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 이 소식은 프랑스 통신사 AFP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뉴욕데일리는 “인터넷에서 언제든 포르노를 볼 수 있는 2012년에, 더구나 민주주의가 발전된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놀랍다”고 전했다. 네덜란드 일간지 NRC한델스블라트는 “18세기 말에 나온 책이 200년 만에 국제적인 스캔들을 일으켰다”고 조롱했다. ‘소돔의 120일’은 루이 14세 치하에서 공작, 법원장, 주교, 징세청부인 등 부유한 권력자 4인이 젊은 남녀 노예들을 이끌고 120일간 향락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 보니 외설스럽다기보다 너무 끔찍해 읽기 쉽지 않았다. 사드는 인체의 부분을 하나하나 해체해 가며 쾌락의 원천을 밝혀 내려는 과학자처럼 집요하게 가학 행위를 서술해 나간다. 사드는 ‘변태성욕자’란 죄목으로 평생 3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방탕한 성생활뿐 아니라 종교와 도덕, 권력에 대한 모독을 일삼는 그는 위험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785년 바스티유 감옥에서 37일 만에 ‘소돔의 120일’을 써 냈다. 폭 11cm, 길이 120cm나 되는 띠를 구해 빽빽이 글을 써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자신을 가둔 절대왕정 권력자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975년 이탈리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 감독도 영화 ‘살로 소돔 120일’을 만들면서 1944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의 말기로 배경을 바꿔 권력을 비판했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을 드러낸 사드의 작품은 20세기의 정신분석학, 실존주의, 초현실주의, 니힐리즘 등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드에 관심을 가진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성적인 동기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정신분석학을 발전시켰다. 작가 시몬 보부아르는 ‘사드는 불태워져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사드는 실존주의보다 150년이나 앞선 자유주의 철학가”라고 말했다. 보들레르는 자연 상태의 인간과 사드의 악을 연결시키면서 ‘악의 꽃’을 썼고,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역사상 존재한 가장 자유로운 정신”이라고 사드를 칭송했다. 사드의 판타지는 공포 및 공상과학소설(SF), 영화 등 대중예술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최근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그레이의 50가지’도 사도마조히즘(가학과 피학적 고통을 통한 성적 쾌감)을 다룬 소설이다. 신체를 절단하는 고통과 가학적 행위가 빈번히 등장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세계도 사드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돔의 120일’에 대한 폐기 결정은 최근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찰이 불심검문을 부활시키는 등 경직된 우리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한류 문화 강국을 표방한 나라에서 고전이 된 18세기 작품조차 포용 못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라면 ‘19금’ 딱지를 붙이면 될 것을, 어른들도 못 읽게 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하루를 잘 논 아이는 짜증을 모르고, 10년을 잘 논 아이는 마음이 건강합니다.” 어린이 놀이운동가 편해문 씨(43)가 최근 펴낸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소나무)는 아이들의 행복과 놀이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그는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즐겁게 놀던 에너지와 힘으로 버티는 것 같은데, 아무도 놀고 싶은 아이들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놀이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 동네를 뛰어다녀야 아이입니다. 구르고 뒹굴고 물어뜯고, 때로 비명도 지르며 한 시절을 보내야 아이다운 아이죠. 아이들은 아직 사람이 아니에요. 짐승이 사람이 되려면 놀아야 합니다. 놀아봐야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뭘 해야 재미있고 행복한지를 알 수 있죠. 적어도 열 살까지는 공부보다 소중한 게 놀이입니다.” 그는 청소년들의 자살, 학교폭력, 집단따돌림(왕따)이 심해지는 원인을 ‘놀이의 실종’에서 찾았다. 왕따는 놀지 못해 더는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이 살려고 만들어낸 처절한 놀이라고 했다. “악취가 진동하는 공간에서 오직 달걀만 낳도록 강요받으며 하루 종일 잠도 못자는 닭들은 어떻게 버틸까요. 그 생존전략이 바로 ‘괴롭히기’입니다. 닭장 속 닭들은 허약한 닭을 부리로 쪼면서 제 고통을 잊습니다. 이마저 못하도록 막는다면 남는 것은 자해밖에 없을 겁니다.” 놀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논다. 소비, 폭력, 섹스,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는 “게임은 처음부터 중독을 전제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셧다운제니 인터넷 종량제니 별별 수단을 다 써도 소용없다”며 “게임중독을 치유할 유일한 대안은 아이들에게 ‘놀이밥’을 먹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넘게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 사라진 전통 노래와 놀이를 채집해 복원했다. ‘께롱께롱 놀이노래’(보리) ‘어린이 민속과 놀이문화’(민속원) ‘옛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읽기’(박이정) ‘동무 동무 씨동무’(창비) 등이 그 결과물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놀이 방법을 볼 수 있는 인도 파키스탄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를 돌아다니며 애들이 노는 사진을 찍어왔다. 편 씨는 이렇게 채집한 별별 놀이를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 공부방의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가르쳐주고 함께 놀도록 지도한다. “아이들에게 물건을 함부로 사주지 마세요. 소비의 맛을 알면 놀이는 끝입니다. 장난감 코너에서 울며 떼쓰는 것은 ‘아빠, 제발 나랑 놀아줘’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놀이터에 가도 아이들이 없다고요? 내 아이가 옆집 아이를 기다리는 첫 아이가 되도록 해주세요. 아이들의 삶이 달라질 겁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에서 인터넷 서점의 가격 할인 경쟁으로 오프라인 서점의 폐업이 속출하는 가운데 프랑스에서도 도서정가제를 파괴하는 미국 아마존의 가격할인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오렐리 필리페티 프랑스 문화·통신장관(사진)은 14일 낭시에서 열린 도서축제 개막식에서 “미국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각종 할인 혜택으로 프랑스의 도서정가제 규정을 교묘하게 위반하며 서점들을 고사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아마존이 룩셈부르크에 본부를 두고 프랑스에서 생긴 이익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행태도 적극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1981년 자크 랑 문화장관 시절에 도서를 정가의 5% 이상 할인 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도서정가제 법 규정을 마련했다. 반면 미국에는 도서정가제가 없다. 아마존은 프랑스 내에서 형식상으로는 도서정가제 규정을 지키고 있지만 단골고객에게 주는 무료배송 등 각종 혜택을 합치면 할인율이 5%가 넘는다. 또 신간을 중고서적으로 대폭 할인 판매하는 편법으로 도서정가제를 무너뜨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2008년 프랑스 법원은 무료배송이 도서정가제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어 필리페티 장관의 이번 발언은 정치적인 선언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신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온라인 기업들이 룩셈부르크나 아일랜드에 자사를 두고 프랑스나 독일에서의 영업이익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필리페티 장관은 “창작과 인쇄 산업에서 벌어들인 이익에 대한 세금은 다시 그 나라의 창작 시스템에 투자되는 것이 정상이다”라고 말했다. 국내의 경우 인터넷 서점은 정가의 10%까지 할인 판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들은 신간 도서와 구간 도서를 묶음으로 팔면서 30∼50% 할인 판매하는 등 법망을 피하면서 무한 할인 경쟁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03년 2470여 개에 이르던 서점 수가 2009년에는 1700여 개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하루를 잘 논 아이는 짜증을 모르고, 10년을 잘 논 아이는 마음이 건강합니다." 어린이 놀이운동가 편해문 씨(43)가 최근 펴낸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소나무)는 아이들의 행복과 놀이와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그는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즐겁게 놀던 에너지와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놀고 싶은 아이들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놀이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 동네를 뛰어다녀야 아이입니다. 구르고, 뒹굴고, 물어뜯고, 때로 비명도 지르며 한 시절을 보내야 아이다운 아이죠. 아이들은 아직 사람이 아니에요. 짐승이 사람이 되려면 놀아야 합니다. 놀아봐야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뭘 해야 재미있고 행복한지를 알 수 있죠. 적어도 열 살까지는 공부보다 소중한 게 놀이입니다." 그는 청소년들의 자살, 학교폭력, 왕따가 심해지는 원인을 '놀이의 실종'에서 찾았다. 왕따는 놀지 못해 더는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이 살려고 만들어낸 처절한 놀이라고 했다. "악취가 진동하는 공간에서 오직 달걀만 낳도록 강요받으며 하루 종일 잠도 못자는 닭들은 어떻게 버틸까요. 그 생존전략이 바로 '괴롭히기'입니다. 닭장 속 닭들은 허약한 닭을 부리로 쪼면서 제 고통을 잊습니다. 이마저 못 하도록 막는다면 남는 것은 자해밖에 없을 겁니다." 놀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논다. 소비, 폭력, 섹스,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는 "게임은 처음부터 중독을 전제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셧다운제니 인터넷 종량제니 별별 수단을 다 써도 소용없다"며 "게임중독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아이들에게 '놀이밥'을 먹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넘게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 사라진 전통 노래와 놀이를 채집해 복원했다. '께롱께롱 놀이노래'(보리) '어린이 민속과 놀이문화'(민속원) '옛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읽기'(박이정) '동무 동무 씨동무'(창비) 등이 그 결과물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놀이 방법을 볼 수 있는 인도 파키스탄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를 돌아다니며 애들이 노는 사진을 찍어왔다. 편 씨는 이렇게 채집한 별별 놀이를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 공부방의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가르쳐주고 함께 놀도록 지도한다. "아이들에게 물건을 함부로 사주지 마세요. 소비의 맛을 알면 놀이는 끝입니다. 장난감 코너에서 울며 떼쓰는 것은 '아빠, 제발 나랑 놀아줘'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놀이터에 가도 아이들이 없다고요? 내 아이가 옆집 아이를 기다리는 첫 아이가 되도록 해주세요. 아이들의 삶이 달라질 겁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Story 1 우리는 김도윤 제갈현열이다. 대학생 77% 차지하는 지방대 출신, 하룻밤 커피믹스 40봉지 씹으며 노력했다. 공모전 휩쓸고 ‘대한민국 인재상’도 받았다. 하지만 대기업 인턴지원조차 힘들었다. 영어실력도 인맥도 돈도 없는 두 청년, 학벌천국 코리아 생존지침서를 썼다.Story 2 나는 15세때 가출 폭주족 문제소녀 김수영. TV퀴즈쇼서 골든벨, 연세대 졸업했다. 골드만삭스 입사했지만 몸에서 암세포 발견, ‘죽기 전 해보고 싶은 꿈’ 73가지에 도전, 8년간 전 세계 100여 개국 체험 여행… 병마를 이겨낸 내가 당신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힐링’과 위로가 넘쳐나는 세상. 성공한 어른들의 멘토링에도 이제 지쳤다. “괜찮다, 괜찮다”는 토닥거림은 한순간의 위로일 뿐,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이제 전쟁과 같은 청춘을 뚫고 나온 서른 살 청년들의 ‘진짜 청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쓴소리와 독설 속에 그들이 마주한 현실의 리얼리티가 담겨 있다.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꿈이야말로 최고의 학벌”이라고 외치는 젊은이들이다.○ 서른 살, 지방대 졸업생 두 남자 김도윤(31), 제갈현열 씨(30)는 서른 살에 대구 계명대를 졸업했다. 취업하는 데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대한민국 대학생의 약 77%를 차지하는 지방대 출신이다. 대학 입학 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산 끝에 두 사람은 화려한 스펙을 쌓았다. 각종 대학생 광고대회와 공모전을 휩쓸고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학벌의 벽은 높았다. “실례지만 학교가 어딘지…? 이번에 인턴 지원가능한 대학교 중 계명대학교는 없습니다.”광고기획자를 꿈꾸던 제갈 씨가 광고회사 인턴을 지원했을 때 접수 직원은 학교부터 묻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고 싶은지도 묻지 않았다. 오직 하나만 물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빌어먹을 학벌이란 놈을 마주한 것이….”그러나 두 사람은 변변한 영어성적도 없이, 학벌도, 인맥도 없이 오직 열정으로 승부해 국내의 대기업 광고회사와 다국적 기업의 컨설턴트로 취업에 성공했다. 이들은 “당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지방대여서가 아니다. 지방대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쓴소리를 던진다. “학벌 또한 노력의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의 화려한 스펙을 따라잡을 수 없을 땐 나만의 ‘특별함’을 만들어야 한다. 40일간 동시에 6개의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배가 불러서 도저히 더 못 마시겠더라. 그래서 물 없이 하룻밤에 일회용 커피믹스 30∼40봉지를 씹어 먹으며 버텼다.”(제갈 씨)“취업을 위한 공채나 인턴에 실패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누가 나처럼 채용기간이 아닌데도 기업을 찾아가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e메일을 보내고, 신문에 광고를 내본 사람이 있는가. 정해진 루트만 시도해보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 말라.”(김 씨)베스트셀러가 된 명사들의 멘토링 책에 대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한 자기계발서의 “20대는 인생의 오전 6시다”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오전 6시는 아직 새벽이지만, 현실에서 20대는 인생의 대부분이 결정되는 시기다. 비판의 대상이 된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에세이라는 점에도 눈길이 간다.두 사람은 “막연한 긍정론은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기회를 빼앗고, 막연한 희망론은 현실에서 절망을 낳으며, 막연한 위로는 마음의 쉼은 줄지언정 나아감을 주지는 못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현실을 잊게 하는 당의정이 아니라, 꿈을 이루려면 어떤 조건과 자격이 필요한지 냉정하게 말해주는 쓴소리가 필요하다.” ○ 문제아의 꿈 리스트‘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의 저자(32)는 열다섯 살에 가출해 폭주족 생활을 한 문제소녀였다. 뒤늦게 여수정보과학고에 입학해 TV퀴즈 프로그램에서 골든벨을 울렸고, 연세대 졸업 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몸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꿈’ 73가지 리스트를 만들었다.2005년 영국 런던으로 떠났던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부모님께 집 사드리기, 킬리만자로 오르기, 뮤지컬 무대 오르기 등 지난 7년간 70여 개국에서 46가지의 꿈을 이뤄왔다. 지난해 6월부터는 다시 회사를 휴직한 채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프로젝트는 홀로 카메라 한 대 들고 1년간 2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지하에 비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란의 한 커플은 “자유를 찾아 호주로 떠나고 싶다”고 했고, 팔레스타인 난민 아마드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신경의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했다. 병마를 이기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 저자가 전 세계 젊은이들과 나눈 꿈 이야기가 환경 탓, 여건 탓만 하며 살아가기 쉬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다시마 세이조 글, 그림·사계절)=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만드는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전쟁에서 죽은 어느 병사가 영혼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본다. 증오와 복수는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1만500원. 별명 그리는 아이(염은비 글, 그림·정글짐북스)=별명 하나 없이 평범한 소녀는 스스로 ‘느림보’라는 별명을 짓지만 더 굼뜬 친구에게 그 별명을 빼앗긴다. 다른 친구들의 별명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소녀는 자존감을 찾아간다. 7세∼초등 저학년. 1만2000원. 옛 선비들의 국토 기행(원영주 글·이수진 그림·주니어김영사)=정약용, 이이, 박제가, 허균 등 이름난 선비들이 전국 곳곳을 유람한 뒤 쓴 기행문 스무 편을 담았다. 동양화풍 그림과 관련 장소의 사진을 함께 실어 생생함을 느끼도록 했다. 초등 전 학년∼중학생. 1만 원. 스스와 네루네루(아라이 료지 글, 그림·시공주니어)=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두 아이 스스와 네루네루가 지어낸 세계가 펼쳐진다. 나뭇가지를 잡고 타잔 흉내를 내거나 아슬아슬한 협곡 사이를 외발자전거로 건넌다. 아이들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자유를 누린다. 9500원.}

어릴 때부터 미셸 콴을 닮고 싶어서 그의 경기 장면을 흉내 내는 ‘올림픽 놀이’를 즐겼다는 김연아, 집무실에 링컨의 흉상을 세워두고 “이런 상황에서 링컨 대통령은 어떻게 했을까” 하며 링컨과 가상의 대화를 나눈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밀레의 작품을 좋아해서 매일 똑같이 그리는 연습을 하고, 그의 삶까지 닮으려고 노력했던 빈센트 반 고흐.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본보기 삼아 삶을 개척해나갔다. 자기 진로를 탐색할 때 이처럼 따라 할 본보기가 있으면 좋다. 성공한 직업인 중에서 닮고 싶은 본보기가 되는 사람을 역할 모델(role model)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청소년기에 자신의 역할 모델을 찾고 그 사람의 생활이 어떠한지, 일을 해나가면서 어떤 것이 어렵고, 또 보람은 언제 느끼는지, 좌절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를 살펴보면 자신의 진로를 찾을 때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 모델은 강한 동기 부여를 해 학생들 스스로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과 꿈을 끌어내도록 돕는다. 청소년들이 역할 모델을 찾을 때 도움이 되는 책으로 명진출판의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가 볼 만하다. 반기문, 힐러리 클린턴, 오프라 윈프리,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이병철 등 유명인의 일대기를 쉬운 문체로 풀어놓았다. 세계적인 투자전문가로서 자신의 부(富)를 자선을 통해 나누고 있는 워런 버핏, 좌절과 역경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방송인이 된 오프라 윈프리, 성실과 열정으로 세계적 리더의 자리에 선 힐러리 클린턴. 이들은 오래전의 역사 속 인물이 아닌,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 흥미롭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그들이 살아온 생활에 관심을 갖다보면 그들의 직업세계에도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는 평생 한 가지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온 우리 시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 이야기인 ‘우리 인물 이야기’(우리교육)를 추천한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여성운동가 이효재 씨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는 책 속 인물들의 진로선택 과정, 직업인으로서 일을 해나가는 모습 등을 중심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 정보나 자료를 찾아내고, 그들로부터 본받을 점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읽는 것이 좋다. 책 속에 나오는 역할 모델과 자신의 차이점을 해소할 방법들은 어떤 게 있을까도 고민해볼 만하다. 책 속에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듯이 중간 중간 자기 생각이나 결심을 책 속 여백에 적어보는 것도 좋다. 살다가 좌절하거나 힘들 때 그 책을 꺼내 자신이 해 놓았던 메모 등을 다시 보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을 얻게 될 것이다.오길주 경민대 독서문화콘텐츠과 교수}

단테는 지옥으로 갔다. 그가 살고 있던 세상이 지옥 같았기 때문에 잠깐 악몽을 꾼 것일까? 그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에 새겨진 글을 읽게 되었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지옥편 3곡, 9행) 단테의 책은 동시대 피렌체 사람들에게도 난해한 책이었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정치범이었다. ‘신곡’은 난해한 책일 뿐 아니라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이기도 했다. 외면당하던 단테와 ‘신곡’을 되살린 사람은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1313∼1375)다.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인곡(人曲)이라 불렀고, 단테의 책을 신곡(神曲·Divine Comedy)으로 불렀다. 우리는 보카치오의 소개를 통해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남남이 된다. 단테는 피렌체의 명문가 규수인 젬마 도나티와 결혼하게 되고, 베아트리체 역시 은행가였던 바르디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상실한 첫사랑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단테는 ‘신곡’의 처음 시작부터 지옥으로 내려간다. 베아트리체가 없는 삶, 가슴 뛰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우리는 이미 지옥의 문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단테는 자신의 시대를 절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역사가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단테의 시대에 피렌체 금융업이 자본주의 초기 양식으로 발전했고 노동생산성의 파격적인 증가로 인해 유럽 문명은 중세 말기의 중흥을 맞게 된다. 그러나 피렌체의 최고시인이자 정치가였던 단테에게는 가슴 아픈 절망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단테는 정치적 발언에 거침이 없었고, 불의에 당당하게 대응하던 행동하는 삶을 살았다.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교황청을 향해 독설을 품는 단테를 유배형에 처한다. 예나 지금이나 입바른 소릴 해대면 이런 대접을 받기 마련이다. ‘신곡’은 로마의 건국신화를 쓴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단테가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고, 천국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흥미롭게도 단테는 1000쪽이나 되는 ‘신곡’에서 단 한 번도 아내 젬마를 거명하지 않았다. 정치범으로 객지를 떠돌아다니던 남편이 다른 여자 이름을 줄기차게 읊어대는 것을 보았다면, 아내는 화병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진 단테’를 쓴 저자는 이러한 단테의 독특한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숙고하는 삶(vita contemplativa)’과 ‘행동하는 삶(vita activa)’의 조화를 추구하던 단테에게 사랑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저자는 ‘신곡’을 단테가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기 위한 알레고리화된 자서전이라고 해석한다. 알레고리란 말이 어려우면, 상징이나 비유로 보면 될 것이다. 사랑에 빠진 단테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며 지옥과 연옥과 천국으로 오가는 자기 고백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단테는 사랑의 혁명가였다. ‘연옥’ 편 24곡에서는 “사랑의 지성을 가진 여인”이란 표현이 나온다. 이것이 단테가 일으킨 사랑의 혁명이다. 중세시대를 지배했던 신학은 사랑을 하나님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사랑은 신적인 것이었다. 인간은 욕망할 뿐이고, 어느 과학자의 표현대로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한 성욕이 사랑의 유일한 발현일 뿐이다. 그런데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에서 ‘사랑의 지성을 가진’, 다시 말하자면 ‘사랑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아는’ 인간의 새로운 모습을 투사시킨 것이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모습에서 사랑의 지성을 가진 인간을 발견했을 때, 중세의 암흑이 물러나기 시작했고, 창조와 아름다움의 시대 르네상스가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단테의 ‘신곡’을 중세의 장송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랑의 지성이 메말라버린 한국 땅에, 권력을 향한 질주만이 횡행하는 이 시대를 향해, 단테의 영혼이 한 권의 책과 함께 다가오고 있다. 이 책을 펼치는 자, ‘사랑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아는’ 사랑에 빠진 단테가 되리라. 한형곤 선생께서 완역한 ‘신곡’(서해문집)과 함께 비교하면서 읽으면 깊어가는 가을이 더욱 멋지리라.김상근 연세대 교수·신학}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다닐 때 썼던 처녀작 ‘하얀 이빨(White Teeth)’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이디 스미스. 이 여류작가는 이후 ‘서명하는 남자’ ‘아름다움에 대하여’ 등을 잇달아 출간하며 영국 출판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2006년 오렌지상을 수상했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후로는 신작이 없었다. 7년간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새 소설 제목 ‘NW’는 런던의 북쪽(North)과 서쪽(West)을 뜻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서로 붙어 있는 윌스던과 햄스테드에 사는 네 남녀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햄스테드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윌스던은 서민 동네인데 실제로 작가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우선 여주인공 내털리와 리아. 한때 친한 친구였던 이들은 사회적 신분이 달라지며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털리는 사교계의 유명 인사인 남편을 만나 햄스테드의 거대한 집에 살고, 리아는 프랑스계 흑인 남편 미셸과 초라한 구립 아파트에 거주한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왔던 견고한 우정은 이들이 사는 동네처럼 둘로 갈라져 첨예한 갈등을 빚는다. 여기에 리아가 어렸을 때 짝사랑했던 미소년 네이선이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는 마약 중독자가 되어 버스 정류장에서 하릴없이 소일한다. 리아와 내털리, 그리고 네이선의 공통점은 세 사람 모두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것이 소설의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인 필릭스이다. 그는 세 명의 남녀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네이선에게 삶의 모델이 되는 역할을 한다. 필릭스는 사회적 편견과 가난을 어떻게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지를 네이선에게 보여준다. 작품을 읽으면 왜 작가가 이 소설을 “나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스미스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영국에 이민 온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설에서 나오듯 그리 부유하지 않은 이민자 가정이 많은 동네에서 자란 그는 가족 전체를 통틀어 처음으로 대학에, 그것도 명문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한다. 대학 시절 썼던 소설로 신데렐라처럼 문단에 데뷔한 그는 누구보다도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심리와 환경을 잘 이해할 것이다. 소설가 필립 헨셔는 “이 소설은 강력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은 스미스가 사람들을 깊고 투명하게 관찰하고 그려냈다는 점이다”고 극찬했다. 과거는 극복 가능한 것인가. 태어나면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과연 나의 힘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소설은 작가가 살아오며 자문했던 질문들에 대해 작가 스스로 내놓은 해답인지도 모른다.런던=안주현 통신원}

명절을 쇠는 재미 중 하나가 시골에 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시골에 가면 어른이 있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금기가 들어 있고 그 금기를 만들어 낸 사연이 있습니다. ‘어디는 가지 마, 미친 여자가 살아. 거기도 가지 마, 무서운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잡아먹는대.’ 그런데 알고 보면 미친 여자는 갓난아이를 잃어버려 그렇게 된 것이고, 무서운 할아버지는 아들이 일찍 죽고 난 후 세상에 대해 마음을 닫은 것입니다. 이야기는 한편 두렵고, 한편 애잔합니다.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죠.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저절로 삶을 익혀 나갑니다. 이 책은 작가가 어린 시절에 살던 시골마을 이야기입니다. 시골(득산리)로 전학 온 주인공이 반 아이들과 친해지는 계기도 이야기 때문입니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절대 혼자 집에 오면 안 된다는 득산리 규칙. 그 규칙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친구들의 진지한 눈빛.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뱀산, 웅덩이, 무덤, 방앗간, 밤밭. 모든 것이 두려움을 자극합니다. 친구들은 같은 두려움을 앞에 두고 동지 의식을 느끼게 되죠. 아이들은 그렇게 친해지고 자랍니다. 또래 문화가 중요한 초등 고학년이 읽으면 특히 재미있을 책입니다.○ ‘이야기 지도’와 ‘책 속의 책’ 만들기준비물은 큰 종이, 사인펜 같은 그림 도구, A4용지, 연필, 가위, 풀.1. 책을 꼼꼼히 읽고 학교에서 득산리 가는 길을 상상한다.2. 큰 종이에 ‘과수원길, 아카시아길, 뱀산, 아기무덤, 상엿집, 방앗간, 밤밭’ 등 이야기에 중요한 곳을 찾아서 적당한 위치를 잡아 지도처럼 만들고 이름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린다. 3. 각각의 장소에 담긴 이야기를 간단히 써 넣어서 이야기 지도를 만든다. 4. A4용지를 미니북 형태로 접어 ‘방앗간 할아버지’와 ‘돼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작은 책을 만든다. 5. 만든 책을 이야기 지도의 적당한 위치에 붙인다. ‘방앗간 할아버지’ 책은 방앗간에, ‘돼지 할아버지’ 책은 밤밭에 붙인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책도 만들 수 있다. 김혜원 어린이책교육연구가}

‘와인 전문 사진가.’ 와인 칼럼니스트 김혁 씨(50)의 또 다른 직함이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찍은 와인 사진을 모아 ‘프랑스 와인기행 1, 2권’ ‘이탈리아 와인기행’을 냈던 그가 최근 새 책 ‘스페인 와인기행’(알덴테북스·사진)을 선보였다. 김 씨는 매년 유럽의 대표적인 와이너리를 50곳 이상 방문해 와인 제조업자와 인터뷰하고 포도밭, 와인 숙성 창고 등을 사진에 담는다. 발품이 만만찮게 드는 작업이다. 이번 ‘스페인 와인기행’을 출간하면서는 인쇄된 와인 사진의 색상이 맘에 들지 않아 초판 3000부를 전부 폐기하고 다시 찍어냈다. 그는 “와인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보고 듣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포도밭을 찍을 때는 테루아르(토양과 기후 등의 환경)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죠. 포도나무 사이로 보이는 토양이 돌멩이가 많은지, 진흙질인지를 클로즈업해야 합니다. 와인이 담긴 잔을 찍을 때는 와인이 글리세린처럼 흘러내리는 모양을 찍어줘야 와인이 얼마나 강하고 집중도가 높은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와인 본연의 색깔을 잡아내려면 흰색 바탕에 플래시는 사용하지 않아야 하죠.” 프랑스 캉대에서 유학할 당시 지질학을 전공했던 그는 에어프랑스에서 12년간 기내 음식과 음료를 총괄하는 케이터링 매니저로 일하면서 와인을 본격 연구하기 시작했다. 매년 6주씩 주어지는 휴가 때마다 와이너리를 답사했다. 2005년부터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복합문화공간 ‘포도플라자’ 관장을 맡아 각국 와인생산자 협회나 와인수입 회사의 지원으로 매년 3주씩 와인기행을 다녀온다. 20년간 와이너리 기행에서 찍은 사진만 12만 컷이 넘는다. “와인은 서양의 문화,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어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안달루시아의 셰리 와인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 배에 싣고 갔던 와인입니다. 몇 달 동안 항해할 때 통에 실린 물은 썩었지만 셰리 와인은 (잘 숙성돼) 선원들을 살려주는 생명수가 됐지요.” 와인 생산지로 눈여겨볼 만한 곳을 묻자 그는 스페인 와인을 적극 추천했다. “국내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와인 외에 미국 유학파가 많아 미국 칠레 등 신대륙 와인이 인기가 있지요. 스페인 와인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저렴한 가격에 비해 가치가 높고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밸류 와인’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필립 로스(79·사진)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실린 자신의 작품 프로필 오류 수정을 놓고 위키피디아 측과 공방을 벌였다. 로스는 최근 뉴요커지에 실린 공개편지를 통해 “위키피디아에 실린 내 소설 ‘휴먼 스테인’ 작품 설명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휴먼스테인’은 명망이 높던 교수가 하루아침에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혀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미국사회의 위선과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위키피디아에서 문제가 된 내용은 ‘휴먼 스테인’의 실제 모델이 누구냐는 것. 위키피디아에는 ‘휴먼 스테인’이 문학평론가 아나톨 브로이어드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작가인 로스는 공개편지에서 “프린스턴대 동료 교수였던 멜빈 튜민이 실제 겪었던 일을 소설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멜빈 교수는 장기 결석 중인 흑인 학생 두 명을 지칭하며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인가, 유령(Spooks)인가’라고 말했다. 문제는 ‘Spook’가 한때 흑인들을 비하하는 말로 쓰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멜빈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아나톨 브로이어드는 소설을 쓰기 전에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위키피디아 측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최고의 권위자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믿을 만한 정보원이 될 수는 없다. 제2의 정보출처가 필요하다”며 로스의 정정 요구를 거절했다. 위키피디아는 누리꾼이 정보를 임의로 바꾸는 사례가 잇따르자 2009년부터 생존 인물에 대한 정보의 편집은 투표로 선출된 관리자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정보를 바꿀 때는 신문기사 등 공개된 자료 같은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로스의 편지가 뉴요커에 실려 논란이 되자 위키피디아 측은 기존의 정보를 그대로 놔둔 채 이 공개편지를 ‘2차 정보출처’로 간주해 그가 주장하는 내용을 ‘휴먼 스테인’ 항목에 추가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칼럼니스트는 “로스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위키피디아도 너무 심하게 나무라지 말자. 어쨌든 정보출처가 하나보다 둘일 경우가 나으니까”라고 평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충무공이야말로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요즘 청춘들의 멘토입니다.” 소리꾼 김영옥 씨(65)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완창 판소리 사설집 ‘이순신가’(SNS출판)를 펴냈다. 충무공의 젊은 시절 방황부터 자기를 내던진 리더십까지, 고통과 슬픔을 이겨낸 삶을 판소리로 되살려냈다. “충무공의 할아버지가 기묘사화에 연루돼 아버지도 관직에 못 나갔습니다. 충무공은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남의 밭에서 일하는 ‘알바생’이었어요. 진로가 막막했던 당시 심경은 ‘글을 익혀 문신될까, 무예 익혀 무장될까, 흙을 벗 삼아 사기장이 땀방울로 욕망을 씻을 건가’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죠. 그러나 숱한 실패 끝에 서른둘에 무과에 급제합니다. 충무공은 나약한 청춘이 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간 자립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김 씨는 고 한농선 명창(1934∼2002)으로부터 판소리 ‘흥부가’를 전수받았다. 2000년도에 여수시립국악단장을 맡은 후 충무공을 소재로 한 창무극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20∼30분짜리 단막극이었지만 여수 시민들의 반응은 열렬하고 뜨거웠다. 이후 6년간 ‘난중일기’를 비롯해 충무공 관련 문헌을 섭렵하며 3만7554자 분량의 판소리 사설을 창작했다. 다시 2년간 선율을 입혀 8년 만에 판소리 이순신가를 완성했다. 2008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4시간 동안 이순신가를 완창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 ‘적벽가’가 있습니다. 중국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을 그린 노래예요.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왜 200년 동안 적벽가만 불러야 했을까요. ‘이순신가’는 단지 영웅 일대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임진왜란을 이겨낸 민초들의 애잔한 한을 풀어내는 우리의 문화입니다.” 김 씨는 이순신가를 준비하면서 꿈속에서도 충무공을 여러 차례 만났다고 했다. 그는 스물다섯 살에 여수로 시집온 뒤 시부모와 함께 여수 내 충무공 유적지를 돌봐왔다. 김 씨는 “6·25전쟁의 여파로 다 쓰러져가는 충민사(忠愍祠)를 목재업 하시던 시아버지께서 직접 수리해 주시고, 시어머니는 매년 명절이면 충무공과 전라좌수영 소속 장군들의 비석이 있는 진남관에 음식을 준비해 제사를 올리시곤 했다”며 이러한 인연이 판소리 ‘이순신가’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올해는 임진왜란 420주년인 데다 대선의 해인 만큼 더욱 충무공 리더십을 되새겨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충무공은 늘 자신을 버리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며 “요즘 정치인들은 자기부터 거두려고 애쓰다 보니 거짓과 이기심이 난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순신 뮤지컬과 오페라도 있지만, 충무공의 면모를 제대로 알려면 끈끈한 판소리로 4, 5시간 녹록하게 들어야 제맛입니다. 효심, 남을 속이지 않는 마음, 자신을 버리는 자세 등 21세기에 세계인들에게 알리고픈 메시지를 판소리에 담았습니다.” 김 씨는 올해 들어 충남 계룡대 해군본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등의 초청으로 충무공에 대한 강연과 판소리 공연을 여러 차례 펼쳐왔다. ‘이순신학’을 공부하는 해군사관학교 생도들 앞에서도 공연했던 김 씨는 “머리로 이순신을 공부했겠지만 판소리를 통해 이순신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제 거리는 한여름의 푸른색을 뒤로하고 곧 총천연색으로 물들 것이다. 잠시 그 화려한 색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빛을 잃은 세상을 맞게 되고 회색빛 하늘, 그리고 가끔은 하얀색으로 변한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늘 보면서도 잊고 지내는 색이 있다. 까만색이다. 아이들을 상상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까만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림책들이 있다. ‘앗 깜깜해’(존로코 지음·다림)는 우리가 잊고 있는 까만 밤의 세계가 주는 특별한 선물을 깨닫게 해준다. 책을 열면 네모난 아파트 단지에 네모난 불빛이 가득한 장면이 양쪽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캄캄함 속에 놓이게 된다.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은 방안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장난도 치고 옥상에 올라가 까만 밤하늘에 드리워진 아름다운 별빛과도 눈을 맞춘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길거리로 나가 공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기도 한다. 캄캄한 밤이 문명의 이기에 빼앗겼던 사람의 온기를 되찾게 해주고 밤이라는 또 다른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브루노 무나리 지음·비룡소)는 표지를 장식하는 까만색과 블루의 조화가 강렬해 눈길을 끈다. 책을 열면 책에 대한 상식을 뛰어넘는 독특한 세계가 펼쳐진다. 깜깜한 밤에 조그만 책 한가운데를 지나는 반딧불의 움직임을 좇다보면 풀숲을 지키는 다양한 생명체들을 보게 된다. 또 그들이 인도하는 동굴 속을 들어가면 온갖 벽화와 선사시대 흔적들도 만난다. 간결한 글, 자유로우면서 감각적인 이미지, 입체적 구성, 다양한 종이의 질감들, 그것들과 어우러진 환상적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메네나 코틴 지음·고래이야기)은 까만 바탕색에 텍스트는 흰 글자인 그림책이다. 여기에 점자가 함께 제시된다. 그림은 부조 형식으로 종이에서 위로 약간 올라와 있어서 눈을 감고 손끝으로 그림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인 토마스라는 소년이 다양한 색깔들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내가 어떻게 색깔을 느끼는지 들어볼래?’하면서 말이다. 색깔들은 오감을 자극하는 시적인 언어로 묘사된다. 노란색은 코를 톡 쏘는 겨자 맛이고…. 가장 놀라운 반전은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로 색깔을 안내하는 소년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까만색 하나만으로도 넘치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조월례 아동도서평론가}

18세기 말 산업혁명기부터 노동당이 최초로 강력한 단독정부를 구성했던 1947년까지 150여 년에 걸친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집약했다. 근대 자본주의가 최초로 성숙한 나라였던 영국은 노동조합운동뿐 아니라 정치투쟁과 협동조합운동 등 다양하고 풍부한 투쟁의 역사를 이어왔다. ‘경제투쟁’(교섭, 파업, 노동쟁의)과 ‘정치투쟁’(의회개혁운동, 급진 정당 결성) 등 세대별로 변화해왔던 영국 노동운동의 흐름을 통사 형식으로 서술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곧 추석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날 기회입니다. 어른들이 차례준비를 하는 동안 할머니나 할아버지 곁에 앉아 살갑게 이야기를 나눠 보세요. 그분들의 어린 시절이나 결혼 무렵 이야기도 은근히 여쭤보면 어떨까요. 이럴 때 이 동화책을 읽어 드리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고만녜’는 1899년 기름진 농토를 찾아서 북간도로 이주해간 김신묵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딸은 그만 낳으라고 이름도 그렇게 지었던 시절이죠. 고만녜는 배움을 갈망합니다. 그 갈망은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이들 중 하나는 문익환 목사로 자라게 됩니다. 지도나 집 그림을 바탕으로 사진과 그림을 오려 붙여 표현한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고 정겹습니다. 공들인 그림이 주는 묵직함이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이지만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초등 3∼4학년 이상은 돼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초등 5∼6학년 이상일 경우 책장을 덮고 나서 ‘무옥이’(상상의힘)의 제1부나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삼인)을 읽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독후활동-콜라주 기법으로 가족사진 만들기준비물: 큰 종이, 친척들의 옛날 사진, 가위, 풀, 종이, 사인펜 같은 그림 도구, 잡지 그림. 1.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삼촌, 고모, 엄마, 아빠의 옛날이야기를 듣는다. (예를 들어 ‘할머니 할아버지의 결혼식 날 일어난 일’과 같은 식으로)2. 앨범에서 친척들의 옛날 사진을 찾는다.3. 찾은 사진을 얼굴이 잘 나오도록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출력한다.4. 종이에 얼굴을 붙이고 옷도 그려 붙여 모양을 따라 오린다. 옷을 그리기 힘들면 잡지에 실린 그림 중에 옷 부분만 크기를 잘 맞추어 오려 붙일 수도 있다. 5. 오려놓은 사람을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어울리게 배치하여 붙이고 바탕 그림을 보충한다. (그림책 3, 23쪽 참조)김혜진 어린이책교육 연구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테러로 인한 대형 폭발사고, 경제위기로 인한 생활기반의 붕괴…. 대형 재난은 인류 역사의 일부다. 지구 최후의 날을 그린 ‘2012’나 ‘딥 임팩트’ 같은 영화에는 불타는 도시에서 약탈과 파괴, 살인과 폭동이 난무하는 가운데 공포에 휩싸여 달려가는 군중이 등장한다. 그러나 과연 대형 재난이 이 같은 디스토피아의 모습이기만 한 것일까. 세계 각국의 재난기록을 조사하고 수많은 재난 피해자를 인터뷰해온 저자는 재난 속 인간행동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재난은 지옥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종종 ‘유토피아’를 발견한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중이 패닉에 빠져 폭동을 일으킨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주장은 소수 권력자의 두려움이 불러일으킨 상상이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있던 수천 명은 아무런 통제 없이도 두 줄로 서서 계단을 내려오며 침착하게 대피했다. 오히려 재난을 당했을 때 가장 큰 위험요소는 ‘엘리트 패닉’이다. 시스템 붕괴에 당황한 국가기구 엘리트의 잘못된 판단이 피해를 걷잡을 수 없이 확대시키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9·11테러 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어리둥절해하며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누비고 다닌 행동은 ‘엘리트 패닉’의 전형이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당시 도시 전체로 화재가 번진 것은 군대가 방화선을 구축한답시고 수많은 건물을 폭파시켰기 때문이다. 생필품을 구하려는 시민들까지 ‘약탈자’로 간주해 사살 명령을 내린 탓에 인명피해도 컸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뉴올리언스에서도 연방정부와 시정부는 ‘군중이 폭도로 변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시민들을 슈퍼돔과 컨벤션센터에 몰아넣어 고립시켰고 뉴올리언스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재난 속 대중의 실제 행동은 어떨까. 많은 사람이 ‘대중은 이기적이며 재난 후엔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대부분 구조대가 아니라 이웃 생존자들이다. 저자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를 돕는 과정에서 잊고 지내던 유토피아를 떠올리고 강렬한 기쁨을 체험한다”고 말했다. “이재민의 천막들, 문짝과 덧문과 지붕 조각으로 얼기설기 얽어놓은 우스꽝스러운 길거리 급식소들이 도시를 점령하자 유쾌한 소란은 일상이 되었다. 달빛이 비추는 긴긴 밤 내내, 사람들은 어디서건 천막에서 흘러나오는 기타와 만돌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급식소를 지나칠 때면 어둡고 후미진 곳에서 은밀한 도피처를 찾은 연인들이 나지막이 소곤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때도 있었다. 혼인신고 담당 공무원은 1906년 4월과 5월에 혼인신고서 발급 건수가 그 어느 해 같은 기간보다 많았다고 증언했다.”(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우편배달부 에드윈 에머슨의 증언) 이처럼 재난에서 유토피아가 발견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재난은 원인이 분명하고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지만, 고립된 현대인에게는 복잡하게 꼬인 일상이 더욱더 재난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대재난은 혁명이나 종교 축제와 유사한 성격마저 띤다. “많은 혁명 반대자들이 동의하듯이 만일 ‘혁명이 재난’이라면, 그 이유는 ‘재난 역시 일종의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재난과 혁명은 연대와 불확실성, 가능성, 체제의 전복과 같은 측면들을 공유한다. 규칙들이 깨지고 많은 문이 열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저자가 유토피아적인 분석으로만 내달린 것은 아니다. 1923년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군부와 대중이 합세해 조선인들을 살해했던 사건도 책에 담았다. 그러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등에서 보듯 재난은 우리 속에 잊혀졌던 이타적 본성을 깨우는 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명이 예전에 없던 재난을 만들 수도, 재난을 더욱 키울 수도 있는 시대, 재난에 대한 국가권력과 시민사회의 대처 방식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