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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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건강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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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6%
  • “마라톤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달리며 희망 찾았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초등학교와 중학교 9년 동안 편도 10리(약 4km) 가까운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래서인지 걷고 뛰는 데는 자신 있었다. 2012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4회 동아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에 처음 도전해 3시간56분15초에 완주했다. 당시 49세였던 이강연 씨(62)는 마라톤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4시간 벽을 깼고 지금까지 풀코스만 113회 완주한 ‘철녀’가 됐다.“고향이 전북 정읍시 입암이라는 골짝이었죠. 앞집이 고창군에 속하는 경계 지역이라 입암초·중학교까지 가는 데만 40∼50분 걸어야 했어요. 어렸을 땐 걷는 게 힘들고 짜증 났는데 결과적으론 체력을 탄탄하게 만들어 줬죠.” 이 씨는 약 30년 전 건강을 위해 가볍게 조깅을 시작했다. 등산도 하고 걷기도 즐겼는데 운동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달렸다. 2011년 5월 서울 중랑구에 있는 용화사에 다녀오는 길에 중랑천에 걸린 ‘마라톤 교실 회원 모집’ 플래카드를 보고 가입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기본기부터 배웠고, 그래서 제대로 달릴 수 있었다”고 했다. 거의 매일 새벽 달렸다. 주말에는 하프코스(21.0975km) 이상을 달렸다. ‘초보인데 그렇게 많이 달려도 됐느냐’는 물음에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생업(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동의보쌈’)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때 달리기가 없었으면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오전 4, 5시에 식당에 나가 장사 준비를 해 놓고 나가서 달렸다. 그는 “고기 삶고, 김치 담그고, 반찬 준비하면 두세 시간 훌쩍 지나간다. 준비 마치고 허리를 펴려고 하면 잘 펴지지 않아 손으로 지지할 것을 잡고 일어나야 한다. 그래도 달리고 나면 모든 피로가 날아가고 기분이 좋다”고 했다.“언젠가 식당 손님이 ‘왜 그렇게 달리세요?’라고 묻더라고요. ‘손님은 왜 식사하세요?’라고 되물었죠. 손님이 ‘살기 위해서요’라고 하기에 ‘저도 살기 위해 달려요’라고 말했어요. 달리고 나면 어떤 힘든 일도 다 지나가요. 세상에 못 넘을 힘든 일은 없어요. 체력도 좋아지니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죠. 식당이 이만큼 잘된 것은 마라톤 힘이 큽니다.” 이 씨는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만 출전한다. 주말 장거리 훈련 대신 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3일 풀코스를 100회째 완주했고, 지금까지 113회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2017년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46분13초. 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늘 20% 힘을 남기고 완주한다. 다시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도 언제나 생생하다. 주위에서 여성 마스터스 마라토너에게는 꿈의 기록인 ‘330(3시간 30분 이내 완주)’에 도전하라고 하지만 손사래를 친다. 처음엔 장사 때문이었지만 이젠 습관이 돼 즐겁게 달리는 게 더 좋다.“돌이켜보니 제가 장사를 했던 게 달리면서 다치지 않은 비결인 것 같아요. 시간이 많아 기록에 도전했다면 어딘가 결딴났을 겁니다. 뭔가에 빠지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거든요. 늘 힘을 남겨 둬야 했기에 ‘펀런(즐겁게 달리기)’의 맛을 알게 된 것 같아요.” 63토끼띠마라톤클럽에서도 활동하는 이 씨는 “함께 달리는 친구가 많았다. 그런데 무리하게 달린 회원들은 지금 다 달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엔 수요일과 일요일 정기 모임에서 달린다. 주말 대회가 있을 땐 대회 출전으로 훈련을 대신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점심 장사를 끝내고 브레이크타임 때 달렸지만 최근엔 다소 버거워 컨디션이 좋을 때 1시간 정도 달린다. 부상 방지를 위해 평상시 틈날 때마다 운동한다. 스트레칭 체조를 자주 한다. 허벅지 안쪽 근육을 키우기 위해 무릎 사이에 공이나 휴지 뭉치를 넣고 힘주기 운동을 한다. 뒤꿈치 들어올리기(카프 레이즈·calf raise)는 10년째 하고 있다. 그는 “달리기 전후 스트레칭으로 온몸을 풀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기록 욕심은 없지만 일흔까지 ‘서브 포(4시간 이내 완주)’를 유지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힘이 닿는 데까지 달리고 싶어요. 건강히 오래 살아야 의미 있죠. 달려야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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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2세에 보디빌딩 트레이너 된 안과의사 “닥터 티타늄으로 불리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대한민국 안과의사로는 유일하게 국제녹내장수술학회 펠로 인증을 받은 녹내장 수술 전문가 최재완 센트럴서울안과의원 원장(52)은 최근 국민체육진흥공단 보디빌딩 생활체육지도사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잘 나가는 안과의사가 보디빌딩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딴 이유가 뭘까? 그는 “의학과 운동과학 지식을 융합해 무지에서 비롯된 운동 상해를 막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다.최 원장은 대학시절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해 30년째 근육운동을 생활화하고 있는 ‘보디빌딩 마니아’다. 주 5~6회 매일 새벽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뒤 하루를 시작한다. 그가 근육운동에 빠진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다. 즐거워야 할 대학 초년 시절 우울증이 찾아왔다. 책을 읽고, 클래식 기타도 쳐 봤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 휴학까지 했다. 그에게 안정감을 찾아준 것은 웨이트트레이닝이었다. 의대생으로 밤샘 공부까지 하려면 체력이 필요해 체육관으로 향한 게 그에겐 ‘신의 한 수’였다.“복학한 뒤 본과 1학년 때인 1996년 무작정 서울대 의대 체육관을 찾았어요.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기분이 좋았죠. 근육이 붙자, 자신감도 생겼어요. 의대생으로 공부하다 보니 헬스클럽에 갈 짬을 못 냈죠. 그래서 점심시간을 쪼개서 운동했어요.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30분 집중적으로 운동한 뒤 공부했죠. 4학년 때 미스터 서울대 대회에 출전해 상위권에 입상하기도 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주 3회 이상 운동했고, 30년째 그 루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최 원장은 잠시 서울대 역도부에 가입한 적도 있지만 주로 혼자 운동했다. 의대생, 인턴, 레지던트로 바빠 시간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보디빌딩 잡지 ‘머슬앤피트니스(Muscle & Fitness)를 보며 운동했다. 그는 “운동법은 물론 영양학 등 보디빌딩 관련 정보는 다 그 잡지에서 얻었다”고 했다. 본과 4학년 땐 그 잡지를 발행했던 홍영표 보디빌딩연구소 소장이 운영한 서울 중구 무교동 헬스클럽도 3개월 다니기도 했다. 당시 보디빌딩연구소 이사였던 창용찬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 원장(70)은 최근 다시 만나 교류하고 있다. 보디빌딩 관련 훈련법, 지식 등을 공유하고 있다.최 원장은 2015년 병원 건물 화재로 모든 것을 다 잃은 뒤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 화병에 다시 우울증이 도졌고, 고혈압 진단까지 받았다. 그는 “근육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고혈압이라는 진단에 다소 당황했다. 그래서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전거를 탔다”고 했다. 그때부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병원(이촌동)까지 왕복 33km를 사이클로 출퇴근하고 있다.“당시 자전거를 타고 남산에 올라갔다가 숨이 차 심장마비 오는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쉽게 올라가는데…. 그때 심폐기능도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죠. 사이클로 출퇴근하고 주말에 장거리 타기도 했더니 어느 순간 고혈압, 지방간 등 모든 만성질환이 사라졌어요.”최 원장은 5월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 자라섬 그란폰도 130km도 완주했다. 해발 888m 화악산 등 누적 상승고도만 2400m인 ’지옥의 코스‘다. 완주 그 자체로 강철 체력임을 인증받는다.“솔직히 지난해에는 강원 양양에서 열린 그란폰도에 나갔었는데 너무 힘들어 참가에 의의를 두고 천천히 달렸죠. 그때 제가 사이클을 너무 힘으로만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페달을 밟는 테크닉도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이클의 다양한 테크닉을 연마한 뒤 올해 다시 출전했습니다. 올해는 훨씬 쉽게 탔습니다.”최 원장은 사이클을 타기 시작할 즈음 패들보트(Stand-Up Paddle Board)에도 눈길을 줬다. 패들보트는 보드에 서서 긴 노(패들)을 저어 물 위에서 즐기는 스포츠다. 서핑보드와 비슷한 보드와 노로 구성되며, 파도가 있는 곳에서는 서핑처럼, 파도가 없거나 잔잔한 물에서는 카약처럼 노를 저어 이동할 수 있다. “우연히 한강 뚝섬유원지를 지나가다 패들보트 타는 사람들을 봤는데 너무 여유롭게 보였죠. 그래서 힐링을 위해 시작했어요. 보디빌딩이나 사이클은 다소 전투적으로 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패들보트는 물 위에서 유유자적하며 즐길 수 있었죠. 해외 출장 갈 때도 가지고 가 사람 없는 해변이나 호수에서 혼자 타면 자유 그 자체입니다.”최 원장은 보디빌딩을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보디빌딩 생활체육지도사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실기 및 필기시험, 연수까지 마쳐 조만간 자격증이 나온다. 그는 “그동안 다소 무모하게 운동했다. 그래서 목과 허리 디스크, 무릎 등에 부상이 왔다. 특히 서핑을 즐기다 왼쪽 이두박근의 장두가 끊어지기도 했다”고 했다.“이두박근을 다친 뒤 시간이 없어 1년여 왼쪽 팔 운동을 못했는데 재활 전문 트레이너가 ‘재활훈련으로 주변 근육이 훨씬 강한 힘을 내도록 만들면 된다’고 했죠. 처음엔 의아했지만 진짜 계속 운동하니 다시 근육이 잡혔어요. 끊어진 장두가 이어진 것은 아닌데 단두 하나만으로 예전의 힘을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전체적인 근육의 크기도 커졌죠. 그때 운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따려면 실기 시험은 물론 운동생리학과 운동역학, 스포츠심리학 등 스포츠과학 이론 필기 시험도 치러야 한다. 최 원장은 “스포츠과학을 통해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점들이 많이 해소됐다. 이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최 원장은 ‘닥터 티타늄’으로 불린다. 티타늄은 가볍지만, 강도가 높고 부식에 강한 금속이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강인함을 상징한다. 의사이자 보디빌더인 그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탄탄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닥터 티타늄 TV’를 준비하고 있다. 의학 및 운동학적 지식을 융합해 제대로 된 운동법을 제공하고, 도핑 등 잘못된 관행도 지적하는 방송이다. 최 원장은 현재 ‘녹내장 TV’도 운영하며 녹내장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하다.“의사는 주로 병자를 치료합니다. 운동은 달라요. 운동 중 사고로 인한 상해는 어쩔 수 없지만 잘못된 운동 습관으로 인한 상해는 막을 수 있어요. 또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운동법도 달라야 합니다. 제가 방송을 통해 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최 원장은 보디빌딩 대회 출전도 준비하고 있다. 대학 시절 이후 첫 도전이다. 그는 “대회에 출전하려면 3개월 이상은 훈련도 체계적으로 해야 하고, 다이어트도 병행해야 한다. 그동안 병원 일을 이유로 미뤄왔는데 대회 출전을 통해 배우는 것도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올 연말부터 준비해 내년에 출전할 계획이다.“인생은 늘 도전하면서 배운 것 같습니다. 의대생 시절 보디빌딩하며 우울증도 탈출했고, 줄곧 건강도 유지해 왔죠. 보디빌딩 트레이너 자격증을 획득하며 새로운 지식의 영역도 경험했어요. 이젠 대회 출전이란 도전으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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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디빌딩 트레이너 된 안과의사… “닥터 티타늄으로 불리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즐거워야 할 대학 초년 시절 우울증이 찾아왔다. 책을 읽고, 클래식 기타도 쳐 봤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 휴학까지 했다. 그에게 안정감을 찾아준 것은 웨이트트레이닝이었다. 의대생으로 밤샘 공부까지 하려면 체력이 필요해 체육관으로 향한 게 그에겐 ‘신의 한 수’였다. 최재완 센트럴서울안과의원 원장(52)은 ‘보디빌딩 마니아’다. 주 5, 6회 매일 새벽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뒤 하루를 시작한다. “복학한 뒤 본과 1학년 때인 1996년 무작정 서울대 의대 체육관을 찾았어요.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기분이 좋았죠. 근육이 붙자, 자신감도 생겼어요. 의대생으로 공부하다 보니 헬스클럽에 갈 짬을 못 냈죠. 그래서 점심시간을 쪼개서 운동했어요.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30분 집중적으로 운동한 뒤 공부했죠. 4학년 때 미스터 서울대 대회에 출전해 상위권에 입상하기도 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주 3회 이상 운동했고, 30년째 그 루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최 원장은 잠시 서울대 역도부에 가입한 적도 있지만 주로 혼자 운동했다. 의대생, 인턴, 레지던트로 바빠 시간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보디빌딩 잡지 ‘머슬 & 피트니스(Muscle & Fitness)’를 보며 운동했다. 그는 “운동법은 물론 영양학 등 보디빌딩 관련 정보는 다 그 잡지에서 얻었다”고 했다. 본과 4학년 땐 그 잡지를 발행했던 홍영표 보디빌딩연구소 소장이 운영한 서울 중구 무교동 헬스클럽을 3개월 다니기도 했다. 최 원장은 2015년 병원 건물 화재로 모든 것을 다 잃은 뒤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 화병에 다시 우울증이 도졌고, 고혈압 진단까지 받았다. 그는 “근육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고혈압이라는 진단에 다소 당황했다. 그래서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전거를 탔다”고 했다. 그때부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병원(이촌동)까지 왕복 33km를 사이클로 출퇴근하고 있다. “당시 자전거를 타고 남산에 올라갔다가 숨이 차 심장마비 오는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쉽게 올라가는데…. 그때 심폐기능도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죠. 사이클로 출퇴근하고 주말에 장거리 타기도 했더니 어느 순간 고혈압, 지방간 등 모든 만성질환이 사라졌어요.” 최 원장은 5월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 자라섬그란폰도 130km도 완주했다. 해발 888m 화악산 등 누적 상승고도만 2400m인 ‘지옥의 코스’다. 완주 그 자체로 강철 체력임을 인증받는다. 최 원장은 최근 국민체육진흥공단 보디빌딩 생활체육지도사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보디빌딩을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그는 “그동안 다소 무모하게 운동했다. 그래서 목과 허리 디스크, 무릎 등에 부상이 왔다. 특히 서핑을 즐기다 왼쪽 이두박근의 장두가 끊어지기도 했다”고 했다. “다친 뒤 시간이 없어 치료 못 받고 1년여 왼쪽 팔 운동을 못 했는데 재활 전문 트레이너가 ‘재활 훈련으로 주변 근육이 훨씬 강한 힘을 내도록 만들면 된다’고 했죠. 처음엔 의아했지만 진짜 계속 운동하니 다시 근육이 잡혔어요. 그때 운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따려면 실기 시험은 물론 운동생리학과 운동역학, 스포츠심리학 등 스포츠과학 이론 시험도 치러야 한다. 최 원장은 “스포츠과학을 통해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점들이 많이 해소됐다. 이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최 원장은 ‘닥터 티타늄’으로 불린다. 티타늄은 가볍지만, 강도가 높고 부식에 강한 금속이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강인함을 상징한다. 의사이자 보디빌더인 그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탄탄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닥터 티타늄 TV’를 준비하고 있다. 의학 및 운동학적 지식을 융합해 제대로 된 운동법을 제공하고, 도핑 등 잘못된 관행도 지적하는 방송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제녹내장수술학회 펠로 인증을 받은 녹내장 수술 전문가인 그는 ‘녹내장 TV’를 운영하며 녹내장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의사는 주로 병자를 치료합니다. 운동은 달라요. 운동 중 사고로 인한 상해는 어쩔 수 없지만 잘못된 운동 습관으로 인한 상해는 막을 수 있어요. 또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운동법도 달라야 합니다. 제가 방송을 통해 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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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 따라 달리기 시작…200km에서 남녀 통틀어 2위 했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강원도 삼척시에 사는 신민아 씨(46)는 올 5월 열린 제주울트라마라톤대회 200km에 출전해 26시간 21분 16초에 완주해 남녀부를 통틀어 2위를 차지했다. 남자 1위(24시간 56분 41초)에겐 1시간 넘게 뒤졌지만 남자 2위(26시간 26분 58초)보다도 5분 넘게 빨랐다. 여자 2위(31시간 4분 19초)보다는 근 5시간이나 빨랐다. 그는 달리기 시작 4년 만에 ‘철녀’로 거듭났다.“원래 운동을 좋아했어요. 웨이트트레이닝은 젊었을 때부터 했죠. 2008년 둘째 아이를 낳고 요가와 에어로빅체조를 했죠.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잠잠해질 무렵인 2022년부터 달리기 시작했어요. 함께 일하는 동생이 러닝 크루를 만든다고 해 따라나섰죠.”신 씨는 처음엔 달리기보다는 걸었다. 2019년 가을 춘천마라톤대회가 열릴 때도 친구랑 함께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걷고 달렸다. 그는 “그땐 걷기 위해 갔는데 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하프는 걷고, 하프는 달렸다”고 했다.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22년 6월. 그리고 2023년 3월 동아마라톤 겸 서울마라톤에서 ‘싱글(마스터스마라톤에서 3시간 10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말함)’인 3시간 9분 25초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싱글’은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에 근접한 우수한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리고 약 한 달 뒤인 그해 4월 말 트레일러닝대회를 만났다. 신 씨는 “아는 동생이 등산 가자고 해 따라갔더니 트레일러닝대회였다. 코리아 50K라고 경기도 동두천에서 열린 대회였다”고 했다. 52.93km를 10시간 53분 5초, 여자 19위로 완주했다.신 씨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두각을 나타낸 배경이 있다. 사실 신 씨는 ‘만능 스포츠인’이다. 학창 시절 선수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취미로 운동을 시작한 뒤 다양한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했다. 요가 및 에어로빅체조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해 강사로 활동했다. 2019년에는 생활체육보디빌딩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다.그는 “지금 삼척시 한마음스포츠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는 전문적으로 가르치지는 않고, 안전요원 개념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에어로빅체조에 요가, 그리고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다져진 몸이라 마라톤 풀코스와 트레일러닝를 달려도 끄떡없었고, 실력도 출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신 씨는 달리면서 그 매력에 빠졌다. 매 주말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마라톤 풀코스를 포함해 트레일러닝, 울트라마라톤 등 종목과 거리를 가리지 않고 달렸다.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만 55회 완주했다.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에서 ‘싱글’도 3차례 했다.2023년 8월엔 울트라마라톤에 입문했다. 부산썸머비치울트라마라톤 50km에 출전해 4시간 55분 42초로 여자부 1위를 차지했다. 그해 10월 트렌스제주울트라마라톤 100km에서 19시간 6분 25초로 연령대 8위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열린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 100km 여자부에서 10시간 30분으로 1위를 차지했다. 트레일러닝 100km에도 출전해 18시간 58분 17초에 완주했다.올해도 그의 활약은 계속됐다. 4월 열린 제주국제트레일러닝 100km에 출전해 여자 종합 1위를 차지했다. 3구간으로 3일간 나뉘어 열린 이 대회에서 그는 10시간 35분 37초를 기록했다.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 200km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데 이어 거제트레일러닝 66km에 출전해 11시간 33분 37초로 여자부 5위를 차지했고, 울릉도트레일러닝 40km에 출전해 7시간 52분 56초로 여자부 4위에 오르는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이렇게 달리는데 힘들지 않을까?“이런 것 있죠? 제주도 200km를 완주한 뒤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어요. ‘내가 제주도 한 바퀴를 달려서 돌았다고? 너무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2015년엔 걸어서 돌았는데…. 너무 환상적이었죠. 솔직히 힘들고 잠이 쏟아질 때도 있죠. 그럼 ‘이렇게 걷고 달리는 게 어디야? 완주한 뒤 응원해 주는 달친(달리기친구)들을 생각하자’며 저 자신을 다독이며 달립니다.”신 씨는 매일 새벽 10km를 달린다. 그리고 주말에 각종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트레일러닝 대회 출전을 위해 따로 산을 달리는 훈련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낮에는 스포츠센터에서 일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산에 가기는 쉽지 않아 새벽에 달리는 것으로 훈련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마라톤, 트레일러닝,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출전합니다. 장거리 훈련을 주말 대회 출전으로 대신하는 것이죠.”신 씨는 달리는 사람들 도우미인 ‘페이스메이커’ 자원봉사를 전문으로 하는 광화문마라톤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출전할 땐 기록을 위해 달리지는 않는다. 풀코스에서 기록 도전은 1년에 한 번 정도만 하고,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 레이스 도움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달리기를 시작한 뒤 ‘강철 체력’이 됐다. 신 씨는 “운동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과거엔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이젠 뭘 해도 지치지 않는다. 심한 운동을 한 뒤 회복도 빠르다”고 했다. 이렇게 달리는 데도 부상이 없다. 주 3회 이상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부위별 근육을 키워주고 있기 때문이다.처음에 장거리 달리기를 반대했던 가족들도 이젠 적극 도와주고 있다.“솔직히 처음 대회에 출전할 때는 남편을 비롯해 아이들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더 건강해지고, 각종 대회에서 상도 받으니 이젠 모두 박수 쳐 주고 있어요. 뭐 아이들도 다 컸고, 저도 인생을 즐겨야죠. 전문 선수는 아니었지만, 취미로 운동하다 자격증을 획득해 일하게 됐죠. 취미가 직업이 됐어요. 건강도 얻고 돈도 벌고…. 너무 행복합니다.”신 씨는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에 출전하는 게 목표다. 그는 “현재 일을 하고 있어 장시간 자리를 비우지 못해 출전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꼭 UTMB에 출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UTMB는 유럽 알프스산맥 170km를 1주일간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다. 참가 기준이 까다롭지만, 신 씨의 실력으로 불 때 출전권을 획득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솔직히 전 기록을 위해 달리지는 않습니다. 즐겁게 달리고 있어요. 대회를 준비하고 출전하는 것 그 자체로 즐겁습니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기록과 성적도 따라 오더라고요. 체력도 좋아지고…, 이렇게 운동을 즐기며 건강하게 사는 삶이 정말 행복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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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청난 고통 뒤 오는 성취감…사막 250㎞를 달리는 이유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이종민 구진피티에프이 대표(51)는 6월 열린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 250km를 달릴 때 “내가 여길 왜 왔지?”라며 한순간 큰 후회감에 휩싸였다. 2023년 9월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뒤 “다시는 사막은 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였다. 당시 6박 7일간 250km를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에서 지옥을 제대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다시 사막을 달린 것이다.이 대표는 “결심은 한순간이었고, 어느 순간 사막을 달리는 나를 발견했다. 엄청나게 힘들지만, 그 고통을 참으면 말할 수 없는 쾌감과 성취감이 몰려온다”고 했다. 그는 어느 순간 오지를 달리며 고통을 견딘 뒤 느끼는 행복에 빠져 살고 있다.“아타카마사막에서 첫 구간부터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어요. 뜨거운 열기에 발바닥 피부가 견디지 못했죠. 뒤늦게 알고 보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이 4대 극지 마라톤 중 가장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코스 세팅으로 악명이 높아요.”이 대표는 첫 구간 35.3km를 완주하고 쉼터에 도착한 뒤 30분 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사실상 정신 줄을 놓았다. 물집을 치료하고 다음날 다시 달렸다. 발을 디딜 때 통증이 왔지만 걷다 보니 통증은 사라졌다. 2구간(37.5km)까지 잘 버텼다. 그는 “한 텐트에 6명이 자는데 첫째 날 한 명이 낙오했고, 둘째 날엔 특수부대 출신까지 포기했다”고 했다.“도저히 버틸 수 없어 4구간(44.4km) 체크포인트2에서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당시 날씨가 섭씨 54도라 대회 주최 측에서 ‘혹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며 구간 레이스를 중단시켰어요. 천재지변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사람 마음이 간사한지라 시간을 벌자 ‘이제 1박 2일 5구간(81km)만 참으면 완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 6구간은 12km로 짧거든요. 그래서 꾸역꾸역 완주했어요.”이 대표는 완주한 뒤 엉엉 울었다. 온갖 고통을 참고 해냈다는 성취감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는 “겪어본 사람만 아는 것인데 발바닥 물집 통증이라는 게 처음엔 아프지만 어느 순간 통증이 사라져 그냥 걷게 된다. 물론 다시 걸을 때 오는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고 했다.이 대표는 젊었을 때부터 수영하는 등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달리기도 즐겼던 그는 2010년쯤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가 마라톤에 빠진 배경엔 아버지 이무웅 씨(82)의 역할이 컸다.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비롯해 100km 울트라마라톤, 4대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까지 이룬 아버지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사막에 가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대표의 마라톤 풀코스 기록은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이무웅 씨 스토리도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에 두 차례 소개했다. 2018년 10월 26일자 dongA.com에 ‘75세의 나이에 250km 고비사막마라톤 완주한 비결은?’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10일 동아일보에 “여든에 250㎞ 산막마라톤?… 도전 통해 살아있음을 느껴”라는 제목으로 다시 썼다. 80세에도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을 다시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이무웅 씨는 2000년 10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어느 순간 풀코스가 싱겁다고 느껴져 100km 울트라마라톤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이루는 등 지금까지 지구촌 극지마라톤을 약 20차례나 다녀왔다. 2번 이상 간 곳도 있다. 사하라는 섭씨 50도가 넘는 모래 위를 달린다. 고비사막은 계곡과 산, 사막을 건넌다. 아타카마는 해발 4000m를 넘는 고지를 달려 ‘고산증’을 극복해야 한다. 남극은 추위를 이겨야 한다. 한마디로 모두 극한과의 싸움이다.이종민 대표는 철인 3종도 했다. “수영에 마라톤까지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철인 3종에 눈길이 갔고, 사이클을 마련해 타기 시작했다”고 했다. 수영은 매일 하고, 마라톤과 사이클은 주중 1~2회 하고 있다. 2015년 10월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처음 완주했다. 2023년 아타카마사막에 가기 전까지 올림픽코스와 하프코스(수영 1.9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0975km)에 10여 차례 출전하며 몸을 만들었다. 올림픽코스는 3시간 전후, 하프코스는 7시간 전후로 완주한다.이 대표는 사막에 가기 전 3년 전부터 크로스핏(Cross Fit)도 시작했다. 그는 “마라톤과 철인 3종을 했지만, 사막 250km를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크로스핏은 여러 종목의 운동을 섞어서 훈련한다는 뜻의 크로스 트레이닝(Cross-training)과 신체 단련을 뜻하는 피트니스(Fitness)를 합친 운동이다. 운동량이 상상을 초월한다.크로스핏의 핵심은 ‘크로스 오버(Cross Over)’다. 파워리프팅의 최대근력, 역도의 파워, 육상의 스피드, 기계 체조의 협응력…. 서로 다른 영역을 한데 모아 종합적으로 하는 운동이다. 기구도 다양하다. 아령과 역기 이외에도 케틀벨, 우드링, 샌드백, 타이어, 밧줄….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의 운동 능력을 고루 발달시킨다.크로스핏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지만 소방관이나 군인이 주로 애용할 정도로 거친 운동이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직업상의 특수성 때문이다.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훈련법이기도 하다. 그는 “크로스핏을 한 뒤 몸의 균형이 잡혔고, 근육량도 늘었다”고 했다. 이렇게 다양한 운동을 한 게 90kg이 넘는 체중에도 사막마라톤까지 완주한 원동력이 됐다.생각의 차이도 중요하다. 그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아타카마사막에서 나이 지긋한 미국인 교수가 ‘힘들어 죽겠다’는 제게 해준 말이 있어요. ‘내일은 또 다른 하루일 뿐(Tomorrow is another day) 너무 자책하지 말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라고 말했다. 잠 푹 자고 다음 날 일어나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또 달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이 대표는 지난해부터는 트레일러닝에도 빠졌다. 그는 “트레일러닝 대회를 만들고 운영하는 유지성 OSK(Outdoor Sport Korea) 대표께서 일본 와카야마 트레일러닝대회에 가자고 해서 간 게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일본 간사이 남부 와카야마현에서 열린 트레일러닝 35km를 완주한 뒤 산을 달리는 재미에 빠졌다.그해 4월 전북 장수 트레일레이스 38km, 9월 장수 트레일레이스 38km, 11월 대만 포모사 트레일러닝 40km 등 주기적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꽃과 나무, 계곡, 산 정상 등 경치를 감상하며 달리는 게 좋다. 우리나라 산을 달리는 재미도 있지만, 다른 나라의 자연환경을 달리면 색다른 느낌을 준다”고 했다.이 대표는 사막까지 달리기는 하지만 ‘즐기자’ 주의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완주에 목적을 둔다. 훈련도 체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시간 날 때 한다. 수영은 매일 하지만 달리기나, 사이클 등은 주 1~2회 상황에 따라 한다. 그는 “아버지는 매일 꾸준하게 훈련하셨지만 전 그렇게는 못 하겠더라. 그래도 체력을 유지할 정도로 하면서, 대회 출전을 앞두곤 바짝 하고 있다”고 했다. 사막마라톤도 ‘최대한 즐겁게 완주하겠다’는 자세로 달리고 있다. 이 대표는 올 2월 뉴질랜드 250km 울트라마라톤을 달린 뒤 6월 고비사막 마라톤을 완주했다. 고비사막에서도 에피소드가 있었다.“이번에도 엄청 더웠어요. 첫날부터 포기자들이 7, 8명 나왔죠. 4구간이 1박 2일 롱데이로 80km였는데 한 60km까지 가서 체육관에서 쉬고 있는데 대회 주최 측에서 대회를 중단한 겁니다. 날씨가 비도 오고 번개도 쳐 혹 불상사가 있을 것 같아 중단시킨 것이죠. 그땐 계속 달리려고 했는데 다시 천재지변에 어쩔 수 없이 중단해야 했죠. 나머지 구간은 다 완주했습니다.”이 대표는 내년 8월엔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하라사막 마라톤 출전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다시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그에게 고민한다는 것은 곧 간다는 의미다.“극지를 달리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게 있어요. 사막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달릴 때의 고통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완주한 뒤 기쁨만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 지옥 같은 사막에 다시 가는 이유죠.”김포=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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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막 250㎞, 다신 안 뛰려 했는데… 어느새 달리고 있네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이종민 구진피티에프이 대표(51)는 2023년 9월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뒤 “다시 사막은 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6박 7일간 250km를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에서 지옥을 제대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6월 열린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 250km를 다시 완주했다. 그는 “어느 순간 사막을 달리는 나를 발견했다. 엄청나게 힘들지만, 그 고통을 참으면 말할 수 없는 쾌감과 성취감이 몰려온다”고 했다. 그는 오지를 달리며 고통을 견딘 뒤 느끼는 행복에 빠져 있다.“아타카마사막 첫 구간부터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어요. 뜨거운 열기에 발바닥 피부가 견디지 못했죠. 뒤늦게 알고 보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이 4대 극지 마라톤 중 가장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코스 세팅으로 악명이 높아요.” 이 대표는 첫날 35.3km를 완주하고 쉼터에 도착한 뒤 30분 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사실상 정신 줄을 놓았다. 물집을 치료하고 다음 날 다시 달렸다. 발을 디딜 때 통증이 왔지만 걷다 보니 통증은 사라졌다. 2구간(37.5km)까지 잘 버텼다. 그는 “한 텐트에 6명이 자는데 첫째 날 한 명이 낙오했고, 둘째 날엔 특수부대 출신까지 포기했다”고 했다.“도저히 버틸 수 없어 4구간(44.4km) 체크포인트2에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당시 기온이 54도까지 올라 대회 주최 측이 ‘혹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며 대회를 중단시켰어요. 천재지변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지라 시간을 벌자 ‘이제 1박 2일 5구간(81km)만 버티면 완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 6구간은 12km로 짧거든요. 그래서 꾸역꾸역 완주했어요.” 이 대표는 완주한 뒤 엉엉 울었다. 온갖 고통을 참고 해냈다는 성취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겪어본 사람만 아는 것인데 발바닥 물집 통증이라는 게 처음엔 아프지만 어느 순간 통증이 사라져 그냥 걷게 된다. 물론 그 첫 고통은 참아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젊었을 때부터 수영을 비롯해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달리기도 즐겼던 그는 2010년쯤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가 마라톤에 빠진 데에는 아버지 이무웅 씨(82)의 역할이 컸다.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비롯해 100km 울트라마라톤, 4대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까지 이룬 아버지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사막에 가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의 마라톤 풀코스 기록은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 이 대표는 철인 3종도 했다. “수영에 마라톤까지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철인 3종에 눈길이 갔고, 사이클을 마련해 타기 시작했다”고 했다. 수영은 매일 하고, 마라톤과 사이클은 주중 1, 2회 하고 있다. 2015년 10월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처음 완주했다. 2023년 아타카마사막에 가기 전까지 올림픽코스와 하프코스(수영 1.9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0975km)에 10여 차례 출전하며 몸을 만들었다. 올림픽코스는 3시간 전후, 하프코스는 7시간 전후로 완주한다. 사막에 가기 3년 전부터 크로스핏(CrossFit)도 시작했다. 그는 “마라톤과 철인 3종을 했지만, 사막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크로스핏은 여러 종목의 운동을 섞어서 훈련한다는 뜻의 크로스트레이닝(Cross-training)과 신체 단련을 뜻하는 피트니스(Fitness)를 합친 운동이다. 다양한 기구를 사용해 종합적인 운동 능력을 키운다. 운동량이 상상을 초월한다.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훈련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운동을 한 게 90kg이 넘는 체중에도 사막마라톤까지 완주한 원동력이 됐다. 이 대표는 지난해부터는 트레일러닝에도 빠졌다. “꽃과 나무, 계곡, 산 정상 등 경치를 감상하며 달리는 게 좋다”고 했다. 올 2월 뉴질랜드 250km 울트라마라톤, 6월 고비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그는 내년 8월엔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하라사막 마라톤 출전을 고민하고 있다.“사막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달릴 때의 고통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완주한 뒤 기쁨만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 지옥 같은 사막에 다시 가는 이유죠.”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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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도 안 돼 20kg 감량…노르딕워킹 효과에 깜짝 놀랐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경남 진주시에 사는 곽정순 씨(48) 2023년 초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더니 성인병 위험군에 속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공복혈당장애, 고지혈증, 고도비만, 거북목, 허리 및 무릎 통증…. 한마디로 종합병원이었다. 한의원에서 노르딕워킹을 하면 좋다는 권유를 받았고, 여기저기 알아본 뒤 그해 6월 서울 북한산에 있는 국제 노르딕워킹협회(INWA KOREA)를 찾았다. 그해 8월부터 주말 8주 지도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지금은 건강한 몸매를 과시하며 노르딕워킹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당뇨와 고혈압 등 가족력이 있어 20대부터 에어로빅은 물론 라인 댄스, 헬스, 등산, 요가 등 다양한 운동을 했어요. 그런데 40대 중반이 되니 몸 여기저기서 안 좋은 증상이 나타났어요. 노르딕워킹이 좋다고 해 알아봤는데 지방에도 교육하는 곳이 있었지만 제대로 하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 1박2일 수업을 받고 주중엔 집에서 과제를 한 뒤 동영상을 올려서 평가받았죠.”노르딕워킹을 하자 5시간 운전을 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평소라면 조금만 운전해도 허리가 뻐근하고 아팠다. 약 3개월이 지나자,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체중도 감소했다. 6개월째 10kg 감량. 1년이 되지 않아 20kg이 빠졌다. 몸이 날아갈 듯 날렵하게 바뀌었다. 몸이 좋아지면서 더 노르딕워킹에 열중하게 됐다.곽 씨는 “운동 부족이 만병의 근원이 됐다”고 했다.“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모 교육기관 직원으로 방문 수업을 하게 된 뒤부터 운동량이 현저히 줄었어요. 체중도 계속 늘었고, 그게 모든 성인병 초기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죠. 역시 운동해야 합니다. 전 노르딕워킹을 만나 너무 행복해요.”노르딕워킹은 노르딕 스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걷기 방법으로 ‘폴 워킹(Pole walking)’이라고도 한다. ‘노르드(Nord)’는 ‘북방(北方)’을 뜻하는 말로서, 노르딕 스키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발달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산지는 알프스 산악지방의 가파른 지형과는 달리 대부분 낮은 언덕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인 지역을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스키가 발달했다.노르딕 스키는 낮은 언덕과 평지가 대부분인 발원지의 지형 특성이 반영되어 평지와 언덕을 가로질러 긴 코스를 완주하는 거리 경기 등으로 나뉘는데 평지와 언덕을 걷는 것으로 발전시킨 것이 노르딕워킹이다. 노르딕워킹은 1990년대 중반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도 2000년대 초중반 들어와 한때 반짝인기를 끌고 일부 마니아층에서 즐기는 운동이 됐다. 최근 바른 자세와 다이어트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우리 몸은 큰 근육을 잘 써야 에너지 소비가 잘 되는데 노르딕워킹을 하면 몸 전체 근육의 90% 이상을 사용한다. 걸을 때 허벅지 장딴지가 가동되는데 폴을 잡고 밀면서 걸으면 팔과 어깨 근육은 물론 대흉근과 견갑근, 광배근, 척추기립근 등 상체의 큰 근육도 힘을 쓰게 된다. 최소 하루 1시간 이상, 3개월 이상 하면 다이어트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몸도 근육질로 바뀐다.하버드 보건대학교 등 세계 유수의 연구에 따르면 노르딕워킹은 일반 걷기보다 약 20%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한다. 노르딕워킹은 체지방 감소와 근육량 증가에 효과적이라는 결과도 많다. 특히, 중년 비만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허리-엉덩이 비율, 체질량지수(BMI), 체지방량이 유의하게 감소한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노르딕워킹은 심혈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캐나다 심장학 저널(Canadian Journal of Cardiology)에 게재된 관상동맥 질환자 연구에 따르면, 고강도 인터벌트레이닝이나 중-고강도 연속 훈련과 비교했을 때, 노르딕워킹이 운동 기능과 삶의 질 향상 효과가 더욱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노르딕워킹은 폴을 사용하기 때문에 노년층이나 관절염과 같은 특정 질환자들에게 유용한 운동 방법이라고 평가되고 있다.팔자 다리와 거북목도 개선된 곽 씨는 어느 순간 ‘노르딕워킹 전도사’가 됐다. 그의 몸이 달라지자, 주변에서 지도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그래서 재능 기부 차원으로 함께 걷고 있다. 하루 1만 보 이상을 노르딕워킹으로 걷는다.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그는 “아직 진주에서는 폴을 들고 걷는 노르딕워킹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혼자 폴을 들고 걷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동호회 형식으로 여럿이 만나서 함께 걷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함께 걷다 보니 그동안 가보지 않은 곳도 많이 찾았다. 최근 1년간 지난 10년 다닌 만큼 돌아다녔다”고 했다.함께 노르딕워킹을 해 효과를 본 사람들이 나타나 더 좋았다.“뇌 관련 지병으로 쓰러져 수술까지 받은 분이 있었는데 저와 함께 노르딕워킹을 하면서 건강을 되찾았어요. 제대로 걷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정말 활기차게 걷고 계십니다. 그는 노르딕워킹의 효과가 정말 좋습니다. 일단 체중 감량과 바른 자세 걷기는 기본입니다. 또 체력도 키워주기 때문에 사회생활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곽 씨는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다’는 주연서 INWA KOREA 사무국장(52)의 조언에 따라 생활체육지도자 2급 양궁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운동생리학, 스포츠심리학, 운동역학 등 다양한 스포츠 과학도 공부해야 한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양궁을 잠깐 했다. 양궁이 활을 쏠 때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등 노르딕워킹과 비슷했다. 그래서 양궁을 신청했고, 조만간 자격증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공부한 뒤 노르딕워킹과 그 효과를 더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주연서 국장도 몸이 좋지 않아 노르딕워킹으로 건강을 되찾고 강사가 됐다. 주 국장 스토리도 2021년 7월 24일 ‘양종구 기자의 100세 기대 건강법’ 에 자세하게 소개했다. 어려서부터 모델 활동을 했고, 사업을 하다 몸 상태가 나빠졌다. 10여 년 전부터 노르딕워킹을 알게 되면서 건강을 회복했고, 푹 빠져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주 국장은 “체력, 특히 심폐지구력도 좋아졌다. 평소 요가와 수영, 골프, 사이클, 배드민턴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는데 사업을 하면서는 주로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다. 노르딕워킹을 접한 뒤엔 노르딕워킹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2016년부턴 모든 사업을 접고 INWA 코리아에서 전문 강사로 활약하게 됐다. 주 국장도 계속 공부를 이어가 국민대에서 스포츠자연과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곽정순 씨는 주 국장을 멘토로 삼아 노르딕워킹을 배웠고, 이젠 노르딕워킹을 전파하고 있다.“몸이 안 좋을 땐 건강 등 제 인생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노르딕워킹을 접하고 건강을 되찾은 뒤에는 그런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노르딕워킹만 지속적으로 해도 건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건강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것을 해봤지만 노르딕워킹이 최고로 다가왔습니다. 뭘 하든 중요한 것은 꾸준히 즐겁게 해야 합니다. 전 평생 노르딕워킹을 즐기며 주변에도 전파할 생각입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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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딕워킹 시작 1년도 안 돼 20㎏ 줄었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경남 진주에 사는 곽정순 씨(48)는 2023년 초, 몸이 좋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성인병 위험군에 속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공복혈당장애, 고지혈증, 고도비만, 거북목, 허리 및 무릎 통증…. 자칫하면 몸이 ‘종합병원’이 될 상황이었다. 한의원에서 노르딕워킹을 하면 좋다는 권유를 받았다. 여기저기 알아본 뒤 그해 6월 서울 북한산에 있는 국제노르딕워킹협회(INWA KOREA)를 찾았다. 그해 8월부터 주말 8주 인스트럭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금은 건강한 몸매를 과시하며 노르딕워킹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당뇨와 고혈압 같은 가족력이 있어 20대부터 에어로빅은 물론 라인댄스, 헬스, 등산, 요가 등 다양한 운동을 했어요. 40대 중반이 되니 몸 여기저기서 안 좋은 증상이 나타났어요. 노르딕워킹이 좋다고 해서 알아봤는데 지방에도 교육하는 곳이 있었지만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 1박 2일 수업을 받고 주중엔 집에서 과제를 한 뒤 동영상을 올려서 평가받았죠.” 노르딕워킹을 하자 운전을 5시간 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평소라면 조금만 운전해도 허리가 뻐근하고 아팠다. 약 3개월이 지나자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체중이 감소했다. 6개월을 넘으니 10kg 감량됐고, 1년이 되지 않아 20kg이 빠졌다. 몸이 날아갈 듯 날렵해졌다. 몸이 좋아지면서 노르딕워킹에 더 열중하게 됐다. 노르딕워킹은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발달한 노르딕스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걷기 방법이다. ‘폴 워킹(pole walking)’이라고도 한다. 스키를 타고 산과 들, 먼 거리를 이동하는 노르딕스키처럼 등산 폴(스틱)을 짚으며 산과 들을 오래 걷는 것이다. 우리 몸은 큰 근육을 잘 써야 에너지 소비가 잘되는데 노르딕워킹을 하면 몸 전체 근육의 90% 이상을 사용한다. 걸을 때 허벅지 장딴지가 가동되는데 폴을 잡고 밀면서 걸으면 팔과 어깨 근육은 물론 대흉근과 견갑근, 광배근, 척추기립근 같은 상체의 큰 근육도 힘을 쓰게 된다. 최소 하루 1시간 이상씩 3개월 이상을 하면 다이어트 효과가 크다. 몸도 근육질로 바뀐다.“노르딕워킹의 가장 큰 장점은 바른 자세로 걷는 것입니다. 폴을 잡고 걸으려 하는 순간 가슴이 펴집니다. 가슴을 펴지 않으면 폴을 잘 사용할 수 없죠. 머리와 허리도 반듯하게 걷는 게 기본입니다. 폴로 지면을 압박하기 때문에 무게를 분산시켜 허리, 고관절, 무릎, 발목에 가는 부담도 덜어 줍니다.” 거북목과 팔자다리까지 교정된 곽 씨는 어느 순간 ‘노르딕워킹 전도사’가 됐다. 그의 몸이 달라지자 주변에서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그래서 재능 기부 차원으로 지인들과 함께 걷는다. 하루 1만 보 이상 노르딕워킹을 한다. 2시간 넘게 소요된다. 그는 “아직 진주에서는 폴을 들고 걷는 노르딕워킹이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다. 사람들은 혼자 폴을 들고 걷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동호회 형식으로 여럿이 만나서 함께 걷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함께 걷다 보니 그동안 가 보지 않은 곳도 많이 찾았다. 최근 1년간 지난 10년 다닌 만큼 돌아다녔다”고 했다. 곽 씨는 운동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생활체육지도자 2급 양궁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운동생리학, 스포츠심리학, 운동역학을 비롯해 다양한 스포츠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양궁을 잠깐 했다. 활을 쏠 때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등 양궁은 노르딕워킹과 비슷했다. 그래서 양궁을 선택했다. 조만간 자격증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공부하고 나서 노르딕워킹과 그 효과를 더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몸이 좋지 않을 때는 건강을 비롯한 제 인생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노르딕워킹을 접하고 건강을 되찾은 뒤에는 그런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노르딕워킹만 지속적으로 해도 건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겁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건강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것을 해 봤지만 노르딕워킹이 최고의 운동으로 다가왔어요. 중요한 것은 뭘 하든 꾸준히, 즐겁게 해야 합니다. 전 앞으로 평생 노르딕워킹을 즐기면서 주변에도 계속 전파할 생각입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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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곡서 쑥 빠지면 당황해 속수무책…구명조끼 필수인 이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하셈희 대한안전연합 경기중앙본부 본부장(46)은 최근 계곡과 강가에서 물놀이하다 사망하는 사고에 대해 “구명조끼만 입어도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대한안전연합은 재해·재난 사고를 포함해 국민의 각종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교육훈련과 대국민 홍보활동, 기술 제도 문화 연구개발, 재난 구급 및 안전관리 대안 제시 등 안전복지문화 향상을 통해 사회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8년에 설립된 사단법인이다.하 본부장은 인명구조원(라이프가드) 및 인명구조 강사를 양성하며 수상안전 교육, 인명구조 훈련, 응급처치, 생존 수영 등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물놀이 사고에 대해 “사람들 인식의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이 있는 곳은 어디든 구명조끼를 입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개울이나 강은 얕은 곳만 있지 않다. 갑자기 쑥 빠지면 당황하고 엉겁결에 물을 마시다 보면 몸에 힘이 들어가 가라앉게 된다. 구명조끼는 그때 힘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최근 물놀이로 인한 사망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8월 11일 경기 양주시 장흥면 한 하천에서 물놀이하던 중학생이 물에 빠져 사망했다. 소방 당국이 신고받고 출동해 수색 작업을 벌여 1시간 10분 만에 발견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경찰은 그 중학생이 친구들과 하천으로 놀러 왔다가 물살에 휩쓸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7월 9일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기러기공원에서는 물놀이하던 20대 4명이 숨졌다. 이들은 금강 상류인 기러기공원 주변에서 물놀이하다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 9일엔 경기 가평군 가평읍 북한강변의 한 리조트 수상레저시설에서는 20대 남성이 물에 빠져 숨졌다. 이 남성은 구명조끼를 착용했음에도 사망했다.행정안전부가 올 초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109건의 물놀이 사고가 발생해 112명이 사망했다. 사망 원인으로 수영 미숙이 가장 많았고, 구명조끼 미착용 등 안전 부주의가 뒤를 이었다. 하 본부장은 “구명조끼를 입으면 수영 미숙으로 인한 사망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수상레저 시설엔 구명조끼를 갖춰놓고 착용할 것을 법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그나마 착용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계곡이나 강으로 물놀이 갈 땐 대부분의 사람이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물놀이 갈 땐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하 본부장은 취미로 하던 수영을 평생 직업으로 삼았다.“어릴 때 수영을 배웠는데 결혼한 뒤 아이 둘 낳고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했어요. 육아에 집중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지쳤고, 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다시 수영장을 찾았어요. 운동하다 보니 마스터스 대회에 출전하게 됐고, 입상까지 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그게 약 20년 전이었죠. 하루에 5000m씩 수영을 했어요. 한 5~6시간씩 물속에 있었죠.”“수영은 대표적인 전신 유산소 운동으로,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근력과 지구력, 심폐 기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어요. 아주 효율적인 운동입니다.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다 보면 자세 교정, 유연성 향상,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됩니다.”수영을 열심히 하다 보니 생활체육수영지도자 자격증을 따게 됐고, 2018년 라이프가드 자격증도 획득했다. 하 본부장은 “지도자와 인명구조요원으로 활동하다 강사를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여러 곳에서 강사 생활을 하다 이곳에 몸담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1시간씩 수영을 하며 본부의 안전 교육을 총괄하고 있다. 하 본부장은 경영 수영, 장애인수영, 핀수영,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획득했고, 철인3종 심판 자격까지 갖췄다. 그는 “물에 들어가기 전부터 물 밖으로 나올 때까지의 안전을 철저히 지키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하 본부장은 “물놀이 문화를 바꿔야 사망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다시 강조했다.“전반적으로 경각심이 없어요. 계곡이나 강 등으로 놀러 갈 경우 구명조끼를 착용해야 한다는 법적인 강제가 없어요. 그렇다 보니 개인 선택의 문제가 됩니다. 위험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구명조끼를 챙기는데 대부분 그냥 갑니다. 뭐 물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게 사람들의 심리죠. 그럼 물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인식도 필요합니다. 물에 빠지는 순간, 수영을 잘하더라도 당황하거나 기절하면 자력으로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구명조끼는 최소한 ‘생명을 붙들어주는 마지막 장치’입니다.”하 본부장은 “최근엔 지방자치단체가 계곡 등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에서 구명조끼 무료 대여 서비스도 하고 있다. 그런데 결국 그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물가에 가면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사설 수상 시설에서는 구명조끼를 갖춰놓고도 착용시키지 않아서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 본부장은 “법적으로 수용 인원의 120% 이상 구명조끼를 갖춰 놓고 수상 활동을 할 때 착용시키도록 법으로 정해놨다. 그런데 일부 시설 운영자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운영하다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불량 구명조끼의 및 노후화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국가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들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가격 차이가 크게는 10배가 나다 보니 영세 업체들의 경우 싼 것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제품들은 오히려 물을 흡수해 부력을 떨어뜨려요. 구명조끼가 몸을 띄우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가라앉히는 결과를 초래하죠. 그래서 국가에서 공인한 제품을 구비 하는 게 중요합니다.”좀 더 편안한 구명조끼를 만들 필요성도 제기된다. 하 본부장은 “입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입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최근 해외에서는 거의 안 입은 것처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구명조끼를 생산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수입되고 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보니 업체에서 구매하기를 꺼립니다. 국내에서도 그런 제품을 값싸게 만들어 보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명조끼 입고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으면 입는 사람들이 늘어날 겁니다.”하 본부장은 “모든 사람이 생존 수영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에서는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초등학교 3, 4학년부터 생존 수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 대상이 5, 6학년으로 확대됐고, 중고교에서도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안전한 수영 실력 키우기란 당초 교육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부실 교육 논란도 있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생존 수영을 가르치고는 있다.“국가 차원에서 학교에서의 생존 수영 교육을 더 강화하고 일반인들에 대해 교육도 해야 합니다. 생존 수영 수업을 듣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잠재적 물놀이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생존 수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명조끼 착용은 가장 쉬운 구명 활동입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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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등은 아무나 못해도 완주는 모두에게 열려 있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스포츠 문외한에서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최강자로 거듭났다. 오영환 오클래스 코치(45) 얘기다. 그는 철인3종 국내 최강자다. 2004년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 첫 완주로 입문한 뒤 지금까지 연령대별 170회 이상, 통합 100회 이상 우승했다. 철인코스(아이언맨코스, 킹코스·수영 3.9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 최고 기록은 2017년 코리아맨인천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세운 8시간 53분 33초다.오 코치는 이런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지만 사실 스포츠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부모님을 따라 스키와 스케이트, 수영 등을 해보긴 했지만 그리 잘하지는 못했다. 고교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대학 체육과에 진학하려고 준비했고, 전문대 거쳐 한국체대 사회체육과로 편입하면서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다.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공군에 입대했을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오 코치는 “사단장 공관 관리병으로 배치를 받았는데 운전병하고 둘만 생활하다 보니 시간 날 때 달릴 수 있었다. 비행장 한 바퀴 달리면 5km였다. 하루 일과 끝나고, 주말에 달리면서 그 묘미를 알게 됐다”고 했다.제대할 무렵인 2002년 친 동생의 제안으로 부산 오킴스 아쿠아슬론 대회 A코스(수영 1.5km, 달리기 10km)에 출전했다. 대학 수업 때 수영을 다시 배웠지만 3년 동안 하지 않아 사실상 초보였다. 군대에서 쌓은 달리기 실력만 믿고 출전했다.“바다 수영은 스윔 슈트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죠. 그래서 사촌 형의 스킨스쿠버 슈트를 빌려 갔더니 안 된다고 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수영복만 입고 입수했죠. 출발부터 수경이 벗겨졌고, 자유형, 배영, 평영 등을 번갈아 하다 간신히 완영했죠. 달리기는 수영보다는 쉽게 완주했어요.”2003년 복학해서는 매일 새벽 12~15km를 달렸다. 그는 “무언가 해야 했고, 운동을 안 하면 살이 쪄서 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라이프가드(수상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며 수영 실력을 키웠고, MTB(산악자전거) 수업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철인3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67kg이던 체중이 58kg으로 줄었다.2004년 5월 강원 강릉 경포대에서 철인3종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에 출전했다. 오 코치는 “당시 수온이 섭씨 13도로 차가웠다. 그래서인지 수영이 1.2km로 짧았다”고 했다. 2시간 13분 57초 5위로 완주했다. 그의 철인3종 첫 완주다.“그때부터 철인3종에 빠졌어요. 재밌었죠.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뒤 느끼는 희열감이 좋았어요.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이 다 특색이 다르잖아요. 어느 하나만 잘해야 하는 게 아니죠. 그게 저의 승부욕을 더 자극했습니다.”2005년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허민호(35) 등과 팀을 만들어 훈련을 함께했다. 6살 때 철인3종에 입문한 ‘영재’ 출신인 허민호는 주니어 대표와 국가대표 등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무대에 오르며 한국 트라이애슬론 새 역사를 썼다. 허민호 외에 올림픽 무대에 선 한국 트라이애슬론 선수는 없었다. 허민호는 2014년 인천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2회 연속 혼성 릴레이 은메달을 땄다.당시 오 코치가 나이가 가장 많았지만 선수론 막내였다. “그냥 따라가며 배웠다”고 했다. 그즈음 철인3종 올림픽코스가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당시 선수가 없어 오 코치도 운 좋게 실업팀에 입단하게 됐다. 그는 “일반 학생이 전문 선수가 된 것이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프로는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취미로 즐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올림픽코스가 아닌 하프코스(수영 2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km) 이상을 보기 시작했다.2007년 6월 제주에서 열린 슈퍼맨대회(수영 3km, 사이클 140km, 달리기 30km)를 완주한 뒤 그해 8월 철인코스에 처음 도전했다. 그런데 사이클 155km 지점에서 펑크가 나 중도에 포기했다. 2009년 10월 충남 태안 국제그레이트맨 대회 철인코스에서 9시간 4분 21초로 1위를 차지했다. 철인코스 세 번째 완주 만에 정상에 올랐다. 이후 철인 코스를 포함해 출전하는 모든 코스에서 1, 2위를 독차지하고 있다.2015년부터는 철인3종 프로선수로도 등록해 활약하고 있다. 그해 여주 그레이트맨 대회에서 8시간 55분 16초를 기록해 국내 선수론 사상 처음 9시간 미만 기록을 세웠다. 오 코치는 2024년 독일에서 열린 챌린지 로쓰 대회에서 8시간 56분 2초를 기록해 국제 대회에서도 한국 선수 최초로 9시간 미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7년 국내 최초로 아이언맨 인증 코치 자격증도 획득했다.2012년부터 동호인들에게 사이클 타는 법과 달리기를 지도하고 있다. 매일 새벽 6시부터 월수금은 사이클 타기, 화목은 달리기를 가르친다. 수영장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다 올해부터는 서울 강남 더논현스포츠센터에서 수영까지 3종목 모두를 지도하고 있다. 수영은 매일 가르치고 있다. 오 코치는 지도하는 시간 외에 따로 개인 훈련을 매일 하고 있다. 하루 최대 5시간까지 하기도 한다.오 코치는 올 초 산악스키 국가대표로 하얼빈 겨울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산악스키는 스키를 타며 눈 덮인 산을 오르내리는 고강도 스포츠다. 대학 시절 겨울 스포츠를 즐겼던 경험이 있어 선발전에 나갔고, 철인3종으로 다져진 체력 덕분에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참가 종목이 혼성계주였는데 여자 선수가 대회 직전 다치는 바람에 출전할 수 없었지만, 대회 조직위의 선처로 혼자 뛸 기회를 얻었다.“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될 것 같아서 출전했어요. 공식 기록은 여자 선수가 뛰지 않아 ‘결장’이었지만 저로선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는 자부심을 얻었습니다. 산악스키도 철인3종처럼 힘들지만,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훈련 과정과 완주 그 자체로 보람을 느낍니다. 이제 산악스키 알리기에도 나설 계획입니다.”오 코치는 대학 시절 스노보드 프로 자격증에 도전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스노보드가 그나마 제가 가장 잘하는 스포츠였다”고 했다. 하지만 프로테니스 당시 마지막 기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스노보드 타며 뼈 골절을 4회 당하는 등 부상도 많았다. 그래서 “이러다가는 몸이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에 스노보드를 포기하고 철인3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오 코치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9시간 미만 기록을 세우는 게 목표다. 그는 “세계선수권에 여러 차례 출전했지만, 기록과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좋은 선수들이 많아 상위권 입상은 쉽지 않다. 순위보다는 8시간대 기록을 꼭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다음은 오 코치가 보는 철인3종에 대한 생각이다. “철인3종의 핵심은 밸런스입니다. 세 가지 스포츠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합니다. 한 종목에서 오버페이스 해버리면 완주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경기에서 우승하는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자신의 밸런스를 잃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철인3종을 통해 ‘포기하지 않는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실제 자신의 삶에서도 ‘완주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1등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재미가 아니지만, 완주의 재미는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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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인3종 도전 자체로 행복… 힘들지만 완주 땐 큰 희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동호인들을 지도하는 오영환 오클래스 코치(45)는 철인3종 국내 최강자다. 2004년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 완주로 입문한 뒤 지금까지 모든 코스에서 연령대별 170회 이상, 통합 100회 이상 우승했다. 철인코스(수영 3.9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 최고 기록은 2017년 코리아맨인천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세운 8시간 53분 33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지만 오 코치는 사실 스포츠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부모님을 따라 스키와 스케이트, 수영 등을 해보긴 했지만 그리 잘하지는 못했다. 고교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대학 체육과에 진학하려고 준비했고, 전문대를 거쳐 한국체대 사회체육과로 편입하면서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공군에 입대한 후 달리기 시작했다. 사단장 공관 관리병으로 배치됐는데 운전병과 둘만 생활하다 보니 시간 날 때 달릴 수 있었다. 그는 “비행장 한 바퀴 달리면 5km였다. 하루 일과 끝나고, 주말에 달리면서 그 묘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제대할 무렵인 2002년 친동생의 제안으로 부산 오킴스 아쿠아슬론 대회 A코스(수영 1.5km, 달리기 10km)에 출전했다. 대학 수업 때 수영을 다시 배웠지만 3년 동안 하지 않아 사실상 초보였다. 군대에서 쌓은 달리기 실력만 믿고 출전했다. 그는 “슈트가 없어 사촌 형의 스킨스쿠버용 슈트를 빌렸는데 안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수영복만 입고 입수했다. 출발부터 수경이 벗겨졌고 자유형, 배영, 평영 등을 번갈아 하며 간신히 완영했다. 달리기는 수영보다는 쉽게 완주했다”고 회상했다. 2003년 복학해서는 매일 새벽 12∼15km를 달렸다. 그는 “무언가 해야 했고, 운동을 안 하면 살이 쪄서 달렸다”고 했다. 라이프가드(수상 인명구조원) 자격증을 따며 수영 실력을 키웠다. MTB(산악자전거) 수업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철인3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67kg이던 체중이 58kg으로 줄었다. 2004년 5월 강원 강릉 경포대에서 철인3종 올림픽코스에 출전했다. 오 코치는 “당시 수온이 13도로 차가웠다. 그래서인지 수영 구간이 1.2km로 짧았다”고 했다. 2시간 13분 57초 5위로 완주했다. 그의 철인3종 첫 완주다.“그때부터 철인3종에 빠졌어요. 재밌었죠.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뒤 희열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이 다 특색이 다르잖아요. 어느 하나만 잘해야 되는 게 아니죠. 그게 저의 승부욕을 더 자극했습니다.” 2007년 6월 제주에서 열린 슈퍼맨대회(수영 3km, 사이클 140km, 달리기 30km)를 완주한 뒤 그해 8월 철인코스에 처음 도전했다. 그런데 사이클 155km 지점에서 펑크가 나 중도에 포기했다. 2009년 10월 충남 태안 국제그레이트맨 대회 철인코스에서 9시간 4분 21초로 1위를 차지했다. 철인코스 세 번째 완주 만에 정상에 올랐다. 이후 철인코스를 포함해 출전하는 모든 코스에서 1, 2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2012년부터 동호인들에게 사이클 타는 법과 달리기를 지도하고 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월수금은 사이클 타기, 화목은 달리기를 가르친다. 수영장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다 올해부터는 서울 강남 더논현스포츠센터에서 수영까지 3종목 모두를 지도하고 있다. 오 코치는 올 초 산악스키 국가대표로 하얼빈 겨울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산악스키는 스키를 타며 눈 덮인 산을 오르내리는 고강도 스포츠다. 철인3종으로 다져진 체력 덕분에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참가 종목이 혼성계주였는데 여자 선수가 대회 직전 다치는 바람에 출전할 수 없었지만 대회조직위의 선처로 혼자 뛸 기회를 얻었다. 그는 “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될 것 같아 출전했다”고 말했다. 공식 기록은 여자 선수가 뛰지 않아 ‘결장’. 그는 “산악스키도 철인3종처럼 힘들지만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는다. 훈련 과정과 완주 그 자체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산악스키 알리기에도 나설 계획이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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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니스는 인생 축소판…기본기 중요하고 흥분은 금물”[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박진경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52·한국학)는 중고교 시절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로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대학에 들어가서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자연스럽게 테니스와 멀어졌다.2005년 미국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암에 걸렸고, 몇 개월 새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에 충격을 받아 논문도 잘 써지지 않았다. 불면증까지 왔다. 그때 지인이 테니스를 치자고 했다.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라켓을 휘두르며 공만 쫓아가다 보니 그 시간만은 아버지 죽음 등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잠도 잘 잤고, 다시 논문 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그때부터 테니스를 그의 건강 지킴이이자 친구로 삼고 있다.“한동안 테니스를 잊고 살았었어요. 중고교 시절 테니스 선수였고, 대학도 특기생으로 들어갔는데…. 선수 생활하며 어느 순간 ‘난 엘리트 선수로는 성공하지 못하겠다’라는 판단을 했어요. 그때부터 테니스를 등한시했죠.”박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취미로 테니스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복식 파트너 역할도 했다. 그는 “테니스를 좋아하는 아버지께서 제가 테니스를 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복식 파트너로 삼았다”라고 했다. 박 교수는 언니 소개로 서울 진선여중에 테니스 선수로 입학했다. “제가 6학년 때 진선여중 2학년인 언니가 테니스 감독인 담임 선생님이 선수를 찾고 있다고 해 제게 테스트받을 것을 제안했다”고 했다.“막상 제가 테니스 선수를 한다고 하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제가 공부도 잘했거든요. 제가 반 3등으로 들어갔는데 당시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를 불러 ‘공부 잘하는 데 왜 운동을 시키냐?’고 했다고 해요. 그렇다 보니 부모님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었죠. 특히 저와 함께 테니스를 치던 아버지께서 더 심하게 반대했죠. 담임 선생님이 제게도 운동을 그만둘 것을 권했죠. 하지만 당시 제 귀엔 전혀 들어오지 않았죠. 테니스가 너무 좋고 재밌었거든요.”반대를 무릅쓰고 테니스를 다시 시작했는데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라켓을 놓았다. 박 교수는 “아버지께서 ‘재능이 있다면 지금쯤 전국대회 4강은 가야 한다’며 운동을 그만두라고 했다. 당시 전 전국대회 16강, 8강 정도 갔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했다.박 교수는 약 두 달 뒤에 다시 라켓을 잡았다. “테니스 생각만 났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늘 풀이 죽어 있던 박 교수를 본 어머니가 ‘그렇게 테니스가 좋으면 다시 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아버지께서도 ‘정말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넌 능력이 안 된다. 나중에 부모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진선여고 2학년이 돼서야 “아버지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아버지는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고만고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사실 스포츠에선 최고만 살아남잖아요. 그래서 저는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뒤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죠. 운동을 잠시 놓았다 다시 시작할 때 어머니께서 ‘그래도 공부를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해 틈틈이 공부한 게 큰 힘이 됐어요.“숙명여대 행정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199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어려울 때였죠. 아버지는 유학을 반대했어요. 제가 장학금을 받는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죠. 그래서 제가 ‘그럼 한 학기만 도와달라’고 하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어머니도 ‘한 학기만 하고 돌아오라’고 했죠. 열심히 살길을 찾았고, 두 번째 학기부터 장학금을 받았어요.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테니스 선수 경험 덕분에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스포츠 문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문화를 더 광범위하게 연구하는 일리노이대 커뮤니케이션 학과로 옮겨 세계의 문화를 더 심도 있게 공부했다. 2008년 ‘육체 식민주의: 식민지 조선의 의학, 재생산, 그리고 인종’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운동선수 시절부터 인간의 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문화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게 됐다”고 했다. “대학 때부터 제가 테니스 선수론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사실상 테니스랑 이별을 선언했죠.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테니스를 전혀 치지 않았어요. 그런데 유학하러 가서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데 테니스 수업을 해주면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었죠. 그래서 수업을 해주긴 했지만, 테니스에 열정적으로 매달리진 않았어요. 지인들이랑 따로 테니스를 치지는 않았거든요.”박 교수가 박사 학위를 받을 때쯤 ‘한류’ 여파로 한국학이 붐을 이뤘다. “저도 귀국하기보다는 한국학으로 미국에서 교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때 서던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게 됐죠. 당시 UC버클리대에서도 강의해달라고 했고, 운이 좋게도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한국학은 아니지만 아시아 여성 연구하는 사람을 교수로 뽑는다는 겁니다. 조건이 아시아 언어를 2개 이상 하고 여성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었죠. 지원서를 냈는데 됐습니다.”박 교수는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1년 했고,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조교수로 4년 강의한 뒤 2013년 한국외국어대에 둥지를 틀었다. 귀국 초기엔 한국에 다시 적응하느라 테니스를 제대로 치지 못했다. 동호회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테니스코트 확보도 쉽지 않았다. 지인들과 간간이 어울려 치다 2019년쯤 김문일 전 테니스 국가대표 감독(78·현우서비스 대표)이 운영하는 효천클럽을 알게 됐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주 2~3회 테니스를 치고 있다.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해 근육운동과 달리기도 하고 있다.“테니스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제일 중요한 게 체력과 뛰는 겁니다. 뭐든 기본이 잘돼 있어야 합니다. 테니스도,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기에 충실하면 중간 이상은 합니다. 유학 시절 테니스가 절 살렸다고 생각해요. 라켓으로 공을 치다 보면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가요. 재충전되는 느낌이랄까. 회원들과 어우러져 치는 것 그 자체로도 너무 재밌어요. 체력이 좋아져 연구에 집중도 잘 되죠. 제 또래에선 제가 체력이 가장 좋아요. 이런 테니스를 이젠 평생 절대 놓을 수 없죠.”박 교수에게 이제 테니스는 삶 그 자체가 됐다. 그는 “학생들로부터 제가 테니스에 비유해서 설명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테니스는 인생의 축소판 같아요. 순발력도 필요하고, 지구력도 필요하죠. 공격해야 할 때도 있고, 수비적으로 나가야 할 때도 있죠. 경기하면서 상대방을 계속 분석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도록 자신을 컨트롤하기도 해야 하죠. 테니스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웁니다.”박 교수는 이렇게 테니스를 치며 연구에 더 집중했다. 내년 9월엔 하버드대 출판부를 통해 영문 서적도 출간한다. 그는 “박사 학위를 모태로 한 책”이라고 했다. 책 제목은 ‘Bodies for Empire: Biomedicine, Race and Women’s Disease in Colonial Korea(제국의 몸: 식민지 조선의 의학, 인종, 그리고 부인병)’이다. 박 교수는 “박사 학위 논문 쓸 때처럼 테니스 치면서 영문 서적 출간 스트레스를 이겨냈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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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서 공부 안 돼 고민하던 때 테니스가 절 살렸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05년 미국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암에 걸렸고, 몇 개월 후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에 충격을 받아 논문도 잘 써지지 않았다. 불면증까지 왔다. 그때 지인이 테니스를 치자고 했다. 라켓을 휘두르며 공만 쫓아가다 보니 그 시간만은 아버지의 죽음 등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잠도 잘 잤고, 다시 논문 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박진경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52·한국학)는 그때부터 테니스를 그의 건강 지킴이이자 친구로 삼고 있다.“한동안 테니스를 잊고 살았었어요. 중고교 시절 테니스 선수였고, 대학도 특기생으로 들어갔는데…. 선수 생활하며 어느 순간 ‘난 엘리트 선수로는 성공하지 못하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그때부터 테니스를 등한시했죠. 미국 유학 시절 잠시 장학금을 받기 위해 테니스 수업을 했지만 열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요.” 박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취미로 테니스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복식 파트너 역할도 했다. 그는 “테니스를 좋아하는 아버지께서 제가 테니스를 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복식 파트너로 삼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언니 소개로 서울 진선여중에 테니스 선수로 입학했다. “제가 6학년 때 진선여중 2학년이던 언니가 테니스 감독인 담임 선생님이 선수를 찾고 있다며 제게 테스트받을 것을 제안했다”고 했다.“테니스 선수를 한다고 하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제가 공부도 잘했거든요. 특히 저와 함께 테니스를 치던 아버지께서 더 심하게 반대했죠.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는데 중학교 2학년 1학기가 됐을 때 아버지께서 ‘재능이 있다면 지금쯤 전국대회 4강은 가야 한다’며 운동을 그만두라고 했어요. 당시 전국대회 16강, 8강 정도 갔었죠. 그래서 그만뒀어요.” 박 교수는 약 두 달 뒤에 다시 라켓을 잡았다. “테니스 생각만 났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늘 풀이 죽어 있던 박 교수를 본 어머니가 ‘그렇게 테니스가 좋으면 다시 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아버지께서도 ‘정말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넌 능력이 안 된다. 나중에 부모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진선여고 2학년이 돼서야 “아버지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아버지는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고만고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뒤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죠. 운동을 잠시 놓았다 다시 시작할 때 어머니께서 ‘그래도 공부를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해 틈틈이 공부한 게 큰 힘이 됐어요.” 숙명여대 행정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199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테니스 선수 경험 덕분에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스포츠 문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대 커뮤니케이션학과로 옮겨 세계의 문화를 더 심도 있게 공부했다. 2008년 ‘육체 식민주의: 식민지 조선의 의학, 재생산, 그리고 인종’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운동선수 시절부터 인간의 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문화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게 됐다”고 했다. 박 교수는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1년 동안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조교수로 4년 강의한 뒤 2013년 한국외국어대에 둥지를 틀었다. 귀국 초기엔 한국에 다시 적응하느라 테니스를 제대로 치지 못했다. 동호회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테니스 코트 확보도 쉽지 않았다. 지인들과 간간이 어울려 치다 2019년쯤 김문일 전 테니스 국가대표 감독(78·현우서비스 대표)이 운영하는 효천클럽을 알게 됐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박 교수는 주 2, 3회 테니스를 치고 있다.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해 근육운동과 달리기도 한다.“테니스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제일 중요한 게 체력과 뛰는 겁니다. 뭐든 기본이 잘돼 있어야 합니다. 테니스도,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기에 충실하면 중간 이상은 합니다. 유학 시절 테니스가 절 살렸다고 생각해요. 라켓으로 공을 치다 보면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가요. 재충전되는 느낌이랄까. 회원들과 어우러져 치는 것 그 자체로도 너무 재밌어요. 체력이 좋아져 연구에 집중도 잘되죠. 이런 테니스를 이젠 평생 절대 놓을 수 없죠.”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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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아마비로 뒤틀린 오른발, 맨발 걷기로 쫙 펴졌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경기 파주시 문산 토박이 원종연 씨(63)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고, 60여 년을 장애(오른쪽 다리 지체 3급)를 안고 살았다. 오른발이 까치발처럼 꼬여 오른쪽으로 뒤뚱뒤뚱 걸어야 했다. 50년 넘게 체형 교정은 물론 마사지, 요가 등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썼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8년 전 모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맨발 걷기를 알게 됐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맨발로 걸어 이젠 제대로 걷게 됐다.“방송을 보고 바로 ‘이것이다’고 생각했죠. 맨발로 걸어서 다양한 병이 치유된 것을 보고 저도 희망을 봤습니다. 진짜 발을 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했지만 이루지 못했어요. 체형 교정술로 조금 나아졌고, 신발에 교정 깔창을 깔아 그나마 덜 절뚝거렸었죠. 방송을 보고 이웃집 언니랑 바로 산정호수(경기 포천)로 가서 맨발로 걸었어요. 엄청 아팠죠. 그래도 참고 걸었습니다. 깔창은 다 버렸습니다. 깔창은 그때뿐이고 빼면 다시 절뚝거리니까요.”맨발로 걸으니, 몸이 달라졌다. 그동안 괴롭혔던 소화불량이 사라졌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다 보니 장이 뒤틀려 소화가 안 됐다고 했다.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고 했다. 맨발로 걸으니, 방귀도 자주 나왔다. 그는 “약 7개월 걸었을까. 오른쪽 허리 부근에서 뭔가가 위로 잡아당기는 느낌이 왔다. 뭔가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계속 걸으니 또 그랬고, 그 간격이 짧아졌다”고 했다.“다리가 길어진다는 느낌이 왔을 때부터 맨발 걷기를 맹신하기 시작했죠. 하루 2~3시간은 기본이었죠. 아침에도 걷고, 저녁에도 걷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었어요. 정말 한 겨울에도 눈 없는 맨땅을 찾아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눈이 오면 쌓이지 않게 치우기도 했어요. 저에겐 제대로 걸을 수 있다면 못 할 게 없었습니다. 계속하다 보니 절뚝거리는 정도가 줄었죠. 오랜만에 절 만나는 지인들이 다 깜짝 놀랐죠. 지난해부터는 전혀 절뚝거리지 않고 걷고 있습니다.”7월 23일 경기 파주 아동동 학령산을 찾은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은 “맨발 걷기의 효과를 제대로 본 것”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국내에 맨발 걷기를 소개해 활성화하고 있다. 직접 맨발 걷기 효과를 체험한 그는 2006년 그동안의 경험담을 담은 ‘맨발로 걷는 즐거움’이란 책을 펴내는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은 물론, 포털 카페에 모임을 만들어 맨발 걷기를 알렸다. 2016년부터는 서울 대모산에서 ‘맨발 걷기 숲길 힐링스쿨’을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2시간씩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맨땅을 맨발로 걸으면 접지(Earthing) 효과를 볼 수 있다. 시멘트 아스팔트 등은 효과가 없다. 우리 몸에 30~60mV의 양전하가 흐르는데 땅과 맨발로 만나는 순간 0V가 된다.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성화된다. 이때 우리 몸에 쌓인 활성산소(Oxygen Free Radical)가 빠져나간다고 알려져 있다. 맨발 걷기 접지의 항산화 효과로 불린다.박 회장은 “활성산소는 양전하를 띤 상태에서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다. 몸속을 돌아다니며 전압을 올린다. 원래 활성산소는 몸의 곪거나 상처 난 곳을 치유하라고 몸 자체에서 보내는 방위군이다. 그러한 상처를 공격하여 치유하고 나면 활성산소는 맨발과 맨땅의 접지를 통해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몸의 멀쩡한 세포를 공격해 악성 세포로 바뀌게 한다. 우리 몸에 암이나 심혈관 질환 등 각종 성인병이 발생하는 이유가 활성산소의 역기능에서 비롯된 것이다”고 설명했다.맨발 걷기는 지압 효과(Reflexology)도 볼 수 있다. 지압은 고대 중국과 이집트 등지에서 사용했고 1913년 윌리엄 피츠제럴드 박사가 몸의 특정 부위에 압력을 가하면 연관 부위에 마취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피츠제럴드 박사는 신체의 각 부위를 10개의 동등한 수직구역으로 구분하고 한 부위에 압력을 가하면 해당 부위의 모든 신체기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존 세러피’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지표면에 놓여 있는 돌멩이나 나무뿌리, 나뭇가지 등 다양한 물질이 발바닥의 각 부위와 상호마찰하고, 땅과 그 위에 놓인 각종 물질이 발바닥의 각 반사구를 눌러준다. 자연 지압인 것이다. 한의학에서도 맨발 걷기를 권장하고 있다.최근 맨발 걷기의 효과가 국내에서도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맨발걷기생명과학연구소(소장 고장면 대전 국립한밭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와 여수요양병원(원장 표연근), 삐땅끼의원(원장 유제성)이 공동 연구한 결과, 혈액내 적혈구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고 7월 10일 밝혔다.연구팀은 총 6주간에 걸쳐 다양한 연령대와 질환군을 포함한 임상실험을 진행한 결과 혈액 내 적혈구 분산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실험 대상은 20대 대학생부터 60~70대 생활습관병(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보유 환자들까지 폭넓게 구성됐다. 맨발로 30분 걷기 전후의 혈액을 채취해 광학현미경 및 제타포텐셜(Zeta Potential·표면 세포간 밀어내는 힘) 분석기를 이용해 정밀 분석을 실시했다.분석 결과, 맨발로 30분 걷기 전에는 적혈구가 뭉쳐 ‘연전쌓기(rouleaux formation)’ 형태를 보였으나, 걷기 후에는 적혈구가 완전히 분산된 모습이 관찰됐다. 반면, 신발을 신고 동일한 시간 동안 걷기를 실시한 경우, 혈액 내 응집 상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또, 제타포텐셜 수치는 평균 -1.59mV에서 -2.8mV로 개선되어, 혈류의 유동성 및 안정성이 향상되었음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이는 2013년 미국 ‘대체 및 보완의학학회지’에 발표된 ‘접지(Earthing)는 혈액의 점성을 낮춰준다(스티븐 시나트라 등)’는 논문에 따르면 끈적끈적한 점성이 있는 혈액이 맨발걷기 40분 뒤 깨끗해졌다는 결과와 일치한다. 당시 논문에서도 적혈구 제타포텐셜을 평균 2.7배 높여줘 혈류 속도가 2.7배로 빨라졌다.고장면 교수는 연구보고서에서 “맨발로 지면에 접지되면 자유전자가 인체로 유입되며 전압이 0V로 안정되고, 이로 인해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멜라토닌은 항산화, 항염증, 유전자 보호, 면역조절, 혈류 개선 등 다방면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된 생리활성 물질”이라고 덧붙였다.연구 발표에는 다수의 SCI 논문이 인용됐다. Banerjee et al. (2020), Slominski et al. (2020) 등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멜라토닌은 적혈구와 내피세포의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고, 세포막 전위를 회복시키며 혈류 흐름을 개선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2010년 전기기술자인 클린트 오버가 접지 원리를 발표했고 심장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 등 의사들과 공동 작업해 그 치유효과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어싱(Earthing)이라는 책으로 엮기도 했다.연구팀은 맨발걷기를 실천한 환자들의 체감적 변화도 함께 기록했다. 실제 참가자들 중 일부는 수면의 질 개선, 스트레스 지표 안정화, 요실금 개선, 통증 감소, 심리적 안정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박 회장은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국회의원실과 공동으로 7월 16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2025 맨발 걷기 국민운동 지원 법률 제정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550여명의 과학자, 교육자, 법률가 등 전문가와 일반 국민이 참석한 자리에서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주호영 국회부의장(국민의힘)과 서영교 한준호 박균택 염태영 안도걸 문정복 박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원종연 씨는 “맨발로 걷는다고 바로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소아마비로 인한 장애는 오랫동안 굳어서 딱딱해요. 용광로에서 쇠를 녹이는 것처럼 바로 해결되지 않아요.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요. 전 발을 펴기 위해 안 한 게 없어요. 그러다 맨발 걷기를 만났고, 맨발로 7년 넘게 걸어서야 효과를 봤어요. 7년 넘게 걸으면서 각 부위 근력이 필요해 근육운동도 별도로 했습니다. 저의 변신 모습을 보고 ‘아 나도 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맨발로 걸으면 바뀐다는 확고한 ‘믿음’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원 씨는 서예도 배웠고, 탁구도 쳤다. 요가를 배워 파주 법원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요가 강사도 20년 넘게 하고 있다. 그에게 장애는 넘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는 “제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도와줘 이룬 것”이라며 “제가 장애인이라고 무시했다면 결코 못 했을 일”이라고 말했다.동생 원종봉 씨(59)는 “누나가 변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원종봉 씨도 신장이 좋지 않아 이식수술을 받았고, 맨발 걷기로 건강을 회복했다. 원종연 씨 중고교 동창인 박태숙 씨(63)도 “종연이는 다리가 불편해도 늘 웃음 많고 긍정적이었다. 안쓰러웠는데 이렇게 변한 것을 보니 정말 기적이 따로 없다.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파주지회장인 박경운 경기 연천경찰서 백학파출소 경감(56)은 “원종연 님과 약 30년 전 탁구 친 적이 있다. 당시엔 기울어짐의 정도가 너무 심해 안쓰러워했다. 최근 만났는데 정말 못 알아볼 정도로 변했다”고 말했다.원종연 씨는 교감 신경 이상으로 왼쪽 볼이 붉어지는 현상도 맨발로 걸으면서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땐 부모님을 원망했다. 왜 내게 제대로 된 다리를 주지 않았느냐고. 그 다리가 지금은 부모님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저의 바뀐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제 변신이 그들에게 신뢰를 준 셈이다. 이젠 저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파주=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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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네친구 아쉬워 간 배드민턴장, 건강과 남편 다 찾았죠”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김성민 씨(37)는 2012년 집(서울 은평구) 근처에서 자전거 타고 가다 ‘은평 뉴타운 배드민턴 클럽 신입회원 모집’이란 현수막을 보고 배드민턴에 발을 들인 뒤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배드민턴 덕분에 남자 친구가 생겼다. 함께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도 했다. 나란히 취업도 했다. 그리고 결혼에 골인했다. 배드민턴으로 함께 건강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서울 노원구에 살다 이사를 왔는데 동네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요. 대학원에만 오갔고, 간간이 자전거를 탔는데 그날따라 배드민턴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대학 때 배드민턴 수업을 받고 ‘재밌다’는 기억에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죠.”아줌마 아저씨들하고 그저 네트를 넘기는 수준으로 치다 2013년 현재 남편 이종현 씨(37)를 만나게 됐다. 당시 그 근처 군부대에서 학사 장교로 근무하던 이 씨도 퇴근 후 취미생활로 배드민턴을 치려고 클럽을 찾았다. 동갑내기인 둘은 자연스럽게 배드민턴을 함께 쳤다.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운동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둘 다 체육을 전공했다. 김 씨는 중앙대 체육과를 나와 중앙대 교육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이 씨는 공주사대 체육과를 졸업했다. 모두 체육 교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어느 날 서로 ‘우리 함께 대회 나가보지 않을래’라며 의기투합했고, 함께 준비하게 됐죠. 너무 재밌었어요. 코트 사용 시간이 저녁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였는데 7시도 되기 전에 도착해 기다렸어요. 주 7일 쳤죠. 쉬는 날엔 오전 오후에도 스케줄을 잡아 쳤어요.”대회에 출전하면서 젊은 세대도 배드민턴을 많이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클럽에서 훈련할 땐 중년 이상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회 현장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출전했다. 그는 “젊은 세대는 클럽 혹은 동아리가 아닌 끼리끼리 다니는 크루로 활동한다. 서로 연결해 주는 소모임이란 앱에서 ‘오늘 어디서 배드민턴 칠 사람 모인다’하면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친다”고 했다.열심히 훈련했지만 대회에서 좋은 성적 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전문 기술을 배워야 했다. 김 씨는 “체육 교사가 되고 싶은 우리에게 배드민턴이 향후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개인 레슨까지 받았다”고 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뒤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은평구 대회에서는 최하부에서부터 최상부까지 다 우승했다. 2017년 제주에서 열린 김만덕배 전국 배드민턴대회 혼합복식에서 준우승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집한 트로피만 수십 개다. 이 씨는 2016년, 김 씨는 2018년 체육 교사가 됐다. 둘은 2022년 백년가약을 맺었다.“배드민턴 치며 체력도 좋아졌고, 체육에 대한 이해도도 더 높아졌어요. 함께 배드민턴 맘껏 치며 연애도 했지만,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남편은 애초 고향인 전북 전주 쪽으로 교사임용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저를 만나면서 서울에서 시험을 봤어요. 배드민턴이 저희 부부를 묶어준 셈이죠.”2018년부터는 훈련은 같이하되 대회 출전은 따로 하고 있다. 김 씨는 “어느 순간 대회에 함께 출전하면 서로의 기대치가 달라 싸우게 됐다. 그래서 싸우지 않기 위해서 대회 출전은 각자 다른 파트너를 구해서 따로 하고 있다”라고 했다. 배드민턴과 탁구, 테니스 등 대회는 가급적 많은 사람이 참가하도록 복식 혹은 흔한 복식 위주로 열리고 있다. 그는 “하지만 남편과 취미가 같으니 좋은 점이 많다. 서로 싸워도 크루(팀) 훈련은 갈 수밖에 없고, 함께 셔틀콕을 때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린다”라고 했다.배드민턴의 매력은 뭘까. 김 씨는 “전 낚시를 해보지는 않았는데 사람들이 고기가 물었을 때 느끼는 손맛에 이끌린다고 한다. 배드민턴도 셔틀콕을 때릴 때 손맛이 짜릿하다. 그리고 상대가 내 플레이를 예측하고 날 속이려고 플레이하면 역으로 내가 페인트를 써 상대를 제압할 때의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복식이나 혼합복식에서 파트너와 함께 힘을 합쳐 승리를 이뤄내면서 얻는 성취욕도 크다.교육 현장에서도 배드민턴을 활용하고 있다. “지금 남녀 공학 고등학교에서 2학년을 맡고 있는데 수업 시간에 배드민턴을 지도하고 있어요. 1학기엔 배드민턴을 가르쳤고, 2학기엔 최근 떠오르고 있는 피클볼을 지도할 생각입니다. 제가 배드민턴을 치다 보니 라켓 종목을 가르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요. 수업 시작할 때 일단 제 실력을 보여줘요. 그럼 ‘뭐 여선생님이 얼마나 잘 치겠어?’라며 건들거리는 남학생들이 찍소리 못하죠. 충성심도 달라져서 수업도 쉽게 진행할 수 있어요. 쉬는 시간에 랠리 좀 쳐 달라는 학생들도 있죠.”팀도 만들었다. 제주를 오가며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실력도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팀이 형성됐다고 했다. 서울은 물론 제주, 충남 천안, 경기 성남 등에 회원들이 퍼져 있다. 김 씨가 팀을 만든다는 소식에 스포츠용품업체 요넥스가 ‘우리가 물품을 지원하겠다’라고 했다. 그래서 팀명을 ‘요넥스온’으로 지었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끼리 훈련을 함께하기도 하고, 야유회도 가지만 주로 대회 때 만나는 모임으로 보면 된다. 회원은 20명인데 꾸준하게 참여하는 회원이 15명이다. 전국 대회에서 만나 복식, 혼합복식팀을 이뤄 경기에 나간다”고 했다.김 씨는 6년 전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배드민턴을 더 즐겁게 치기 위해서다. “배드민턴만 치다 보니 어느 순간 어깨가 아프고, 무릎에도 통증이 왔다. 그래서 근육운동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부상 없이 라켓을 맘껏 휘두르고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배드민턴 치는 것과 별도로 매일 유산소 운동(트레드밀 경사 걷기)을 하고, 주 2회 근육운동하며 체력을 키우고 있다. 근육운동의 매력에 빠져 보디프로필도 두 차례 찍었다. 유산소 운동인 배드민턴을 치며 근육운동까지 하고 있어,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떤 운동을 하든 코어(Core)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어 근육은 인체의 중심부인 척추, 골반, 복부를 지탱하는 근육이다. 일반적으로 등, 복부, 엉덩이, 골반 근육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코어 근육을 키우면 몸의 균형이 잡힌다. 코어가 잘 발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걷거나 달리는 폼이 완전히 다르다. 코어가 부실한 사람은 밸런스가 깨져 엉성하게 걷고 달린다. 부상도 많다”고 설명한다.라켓 등 기구 스포츠의 경우 카운터 스윙(반대쪽 스윙)으로 몸의 밸런스를 만들어주는 훈련도 해야 한다. 골프와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야구 등 한쪽을 주로 쓰는 운동의 경우 반대로도 스윙하는 훈련을 해야 몸의 밸런스가 깨지지 않고 부상을 줄일 수 있다. “이젠 눈을 감아도 배드민턴이 생각나요. 이렇게 좋은 것을 평생 하려면 아프지 않아야 하잖아요. 그럼 꼭 각 관절 부위 근육을 강화하는 보강 운동을 해야 합니다. 물론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은 기본이고요. 이런 것을 무시하면 엘보를 비롯해 어깨, 무릎에 이상이 옵니다. 그런 사람들 많이 봤어요. 귀찮고 싫어도 해야 합니다. 아프지 않아야 즐겁게 오래 배드민턴 칠 수 있습니다.고양=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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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드민턴 치다 남편 만나 함께 전국대회 준우승도 했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배드민턴 덕분에 남자 친구를 만났다. 함께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도 했다. 나란히 취업도 했다. 그리고 결혼했다. 김성민 씨(37)는 2012년 서울 은평구 자신의 집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은평 뉴타운 배드민턴 클럽 신입회원 모집’이란 플래카드를 봤다. 이를 계기로 배드민턴에 발을 들이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서울 노원구에 살다 이사를 왔는데 동네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요. 다니던 대학원만 오갔고, 간간이 자전거를 탔는데 그날따라 ‘배드민턴’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대학 때 배드민턴 수업을 받고 ‘재미있다’고 했던 기억이 있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했죠.” 처음에는 중년 아줌마 아저씨들 하고 그저 네트를 넘기는 수준으로 배드민턴을 치다 2013년 현재 남편 이종현 씨(37)를 만나게 됐다. 당시 배드민턴 클럽 근처 군부대에서 학사장교로 복무하던 이 씨도 퇴근 후 취미생활로 배드민턴을 하려고 클럽을 찾았다. 동갑내기인 둘은 자연스럽게 배드민턴을 함께 쳤다.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운동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둘 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했다. 김 씨는 중앙대 체육과를 나와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이 씨는 공주사대 체육과를 졸업했다. 모두 체육 교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서로 ‘우리 대회에 나가 보지 않을래’라며 의기투합해서 함께 준비하게 됐죠. 무척 재미있었어요. 코트 사용 시간이 오후 7시 반부터 10시 반까지였는데 오후 7시도 되기 전에 코트에 와서 기다렸죠. 주 7일을 쳤어요. 쉬는 날엔 오전 오후 각각 스케줄을 잡아 쳤고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야 했다. 김 씨는 “체육 교사가 되고 싶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개인 레슨까지 받았다”고 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은평구 대회에서는 최하부에서부터 최상부까지 다 우승했다. 2017년 제주에서 열린 김만덕배 전국배드민턴대회 혼합복식에서는 준우승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집한’ 트로피만 수십 개다. 이 씨는 2016년, 김 씨는 2018년 각각 체육 교사가 됐다. 둘은 2022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배드민턴 치며 체력도 좋아졌고, 체육에 대한 이해도도 더 높아졌어요. 함께 배드민턴을 맘껏 치며 연애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죠. 남편은 고향인 전북 전주 지역에서 교사임용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저를 만나면서 서울에서 시험을 봤어요. 배드민턴이 저희 부부를 한데 묶어준 셈이죠.” 2018년부터는 훈련은 같이하되 대회 출전은 따로 하고 있다. 김 씨는 “어느 순간 대회에 함께 출전하면 서로 기대치가 달라 싸우는 일이 생겼다. 싸우지 않기 위해 대회에는 각자 다른 파트너를 구해서 따로 출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남편과 취미가 같으니 좋은 점이 당연히 많다. 서로 싸워도 배드민턴 크루(팀) 훈련은 갈 수밖에 없고, 함께 셔틀콕을 때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린다”고 했다. 배드민턴의 매력은 뭘까. 김 씨는 “낚시를 해 보지는 않았는데 고기가 미끼를 물었을 때의 손맛에 이끌린다고 한다. 배드민턴도 셔틀콕을 때릴 때 손맛이 짜릿하다. 상대가 내 플레이를 예측하고 날 속이려 하면 역으로 내가 페인트를 써서 제압할 때의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복식이나 혼합복식에서 파트너와 힘을 합쳐 승리해 얻는 성취욕도 크다. 김 씨는 6년 전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배드민턴을 더 즐겁게 치기 위해서다. 그는 “배드민턴만 치다 보니 어깨가 아프고 무릎에 통증이 왔다. 그래서 근육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로 지금까지 부상 없이 라켓을 맘껏 휘두르고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매일 유산소 운동(트레드밀 경사 걷기)과 주 2회 근육 운동을 한다. 근육 운동의 매력에 빠져 보디 프로필 사진도 두 번 찍었다. “눈을 감아도 배드민턴이 생각나요. 이렇게 좋은 것을 평생 하려면 아프지 않아야 되잖아요. 그럼 관절 부위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물론 준비 운동과 정리 운동은 기본이죠. 이런 것들을 무시하면 엘보를 비롯해 어깨, 무릎에 이상이 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귀찮고 싫어도 해야 합니다. 아프지 않아야 즐겁게 오래 배드민턴을 할 수 있습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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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 키우며 댄스스포츠로 유산소 운동…인생이 즐거워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71세인 강찬수 씨는 5월 미스터서울 & 미즈서울 선발대회 마스터스 60세 이상부에 출전했다. 7명 중 6위를 했지만 뜻깊은 경험이었다. 15년 넘게 피트니스센터에서 몸 관리해 오면서 단 한 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도전을 감행해 거둔 성적이라 의미 있었다.“4개월여 음식 조절하며 집중적으로 훈련했어요. 힘들었죠. 85kg이던 체중이 75kg까지 줄었죠. 대회 당일 무대에 올라 여러 포즈 중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당황하기도 했지만 제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됐습니다.”강 씨는 50세 넘으면서 당뇨병 전 단계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기 위해 친구들과 매일 아침 서울 종로구 파고다헬스클럽을 찾았다. 그는 “뭐 체계적으로 운동하기보다는 그냥 러닝머신 위를 걷고 달리다 가끔 역기를 드는 수준이었다”고 했다.10년 전 몸에 이상이 왔다. 그는 “눈동자에 이상이 생겨 쓰러졌고,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혈압이 200mmHg가 넘게 나왔다. 당뇨병 전 단계 판정 당시 약 처방도 받았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약을 먹지 않았다. 그게 화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약을 먹으면서 유산소 운동을 위해 북한산 등 수도권 산도 오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틈틈이 등산했다.“서울 불광역 2번 출구에서 나와 족두리봉 쪽으로 오르죠. 거기서 정릉, 성북동, 구기동 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죠. 무리하지 않고 다양하게 탈 수 있는 산이 북한산입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강 씨가 체계적으로 근육운동을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다. 진광식 파고다헬스클럽 관장이 “제대로 운동해 보라”며 이인혜 트레이너(60)를 소개해 줬다.“관장님이 보기에 제가 슬렁슬렁 운동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관장님이 ‘체형 비율이 좋으니 열심히 운동해서 대회에도 나가 보라’고 했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한마디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죠. PT(개인 트레이닝)를 받기 전에는 무작정 힘만 썼다면 그때부터는 부위별 근육을 체계적으로 만들었어요.”크게 상체 및 하체, 코어로 나눠 세밀하게 훈련받았다.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은 그냥 힘만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부위별로 세세하게 운동한 뒤에야 근육이 만들어지고 윤곽도 뚜렷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한동안 대회 출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당뇨가 있어 식이요법을 무리하게 하다 보면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올해 도전 안 하면 영원히 출전 못 할 것 같아 도전했다”고 했다.“그동안 노력의 결실도 보고 싶었죠. 돌이켜보면 제가 보석 사업을 하며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그때마다 체력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이젠 운동은 꼭 해야 하는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됐습니다. 심신 건강의 원동력이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체력이었죠.”현재로선 식이요법이 힘들어 대회 출전을 다시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큰 딸 부부랑 함께 사는 데 딸이 닭가슴살을 포함해 매일 ‘저염 저탄 고단백’ 도시락을 싸줬다. 딸이 아이들 돌보며 내 도시락까지 챙기다 보니 내가 봐도 너무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것보다 먹기 싫은 닭가슴살을 먹는 게 더 고통이었다”고 했다. 대회가 끝난 뒤 체중은 80kg으로 살짝 올랐지만 운동으로 이 체중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강 씨는 최근에 댄스스포츠도 시작했다. 그는 “아내가 배우라고 했다. 아내가 작은딸, 아들과 미국에 살고 있다. 그쪽에선 파티할 때 함께 춤추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했다. 그래서 학원에 등록해 댄스를 배우고 있다. 왈츠와 탱고, 자이브, 룸바, 차차차 등을 추다 보면 2시간이 금세 지나간다”고 했다. 오전엔 무산소 운동인 근육 운동을 하고 오후엔 주 3회 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다.무산소 운동인 근육운동을 하면서도 유산소 운동(달리기 걷기 등산 춤)을 적절하게 해줘야 지방을 잘 태워 근육의 선명도를 높일 수 있다. 댄스스포츠는 유산소 운동으로 볼 수 있다. 허리와 복부 근육도 많이 쓴다. 이 때문에 자세가 교정되고 근육의 탄력도가 높아진다. 규칙적으로 댄스스포츠를 하면 체중도 감소한다. 체중과 나이, 성별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시간에 약 350칼로리를 소비한다. 격렬하게 출 땐 1시간에 700칼로리 이상 에너지를 태운다. 이는 시속 8km로 1시간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만큼 에너지소비량이 높다.무엇보다 댄스스포츠는 춤 동작을 외워야 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파트너의 움직임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것도 뇌를 활성화한다. 운동량도 높지만 순간적으로 뇌가 처리하는 데이터양도 엄청난 셈이다. 나이 들수록 머리를 잘 활용해야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댄스스포츠는 치매 예방에 좋은 운동으로 볼 수 있다.강 씨는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 주말엔 등산 대신 지인들과 어울려 스크린 골프를 친다. 그는 “덥기도 하고, 필드 나가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다. 스크린 골프는 시원한 실내에서 친구들과 재밌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강 씨는 “미국에 가게 되면 아내를 포함해 가족, 지인들과 필드에 나가서 골프를 즐긴다. 그땐 또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인생을 살면서 보통 친구들이라고 불리는 ‘또래 집단’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강 씨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스크린 골프를 치고, 댄스스포츠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같은 연령대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 살 수 없다.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강 씨처럼 골프, 댄스스포츠, 헬스클럽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게 즐거운 삶에 큰 도움이 된다.“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당뇨 때문에 운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나이에 제가 가장 건강합니다. 제 또래 친구들 10명 중 9명은 관절이 좋지 않거나 병에 걸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요. 전 매일 운동하며 춤도 추며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게 삶의 즐거움 아닌가요.”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근육운동으로 몸이 바뀌면 자기 존중감이 상승한다”고 강조한다.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근육을 만들며 몸을 관리하면 건강은 물론 자존감까지 상승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근육을 키우는 데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2018년 9월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으로 쓴 ‘로보캅 근육으로 무장한 82세 최고령 보디빌더’의 주인공 서영갑 씨(89)는 “근육엔 나이가 없습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노인들에게도 근육 운동의 효과는 크다.1990년 미국의사협회 저널(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90세 어르신들의 고강도 근육훈련(부제 골격에 미치는 효과)’가 발표된 이후 노인들도 근육운동을 하면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당시 JAMA에는 90세를 넘긴 남녀 9명을 대상으로 8주간 강도 높은 근력 훈련시켰다. 보스턴 소재 재활센터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대상이었고 몸이 좋지 않지만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을 선별해 실시했다. 그 결과 근력이 174%±31%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걸음걸이도 48%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에서는 저 강도보다는 고강도 근력훈련이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나이 들수록 근육운동을 하면 몸을 젊어지게 만든다. 근육이 생기면 자세가 좋아진다. 걸음걸이도 똑바르게 된다. 근육은 성호르몬을 활성화시킨다. 성장호르몬도 배출한다. 몸을 젊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근육은 젊음을 되돌리는 ‘회춘약(回春藥)’으로 불린다. 근육이 붙어 힘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심리적 자신감도 함께 따라온다. 나이 들면서 근육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이유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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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 키우며 자신감 쑥… 71세에 보디빌딩 대회 출전”[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71세의 강찬수 씨는 올 5월 미스터서울 & 미즈서울 선발 대회 마스터스 60세 이상부(部)에 출전했다. 7명 중 6위를 했지만 뜻깊은 경험이었다. 15년 넘게 피트니스센터에서 몸을 관리해 오면서 단 한 번 생각지도 못한 도전을 감행해 거둔 성적이라 의미 있었다. “4개월여 음식 조절을 하며 집중적으로 훈련했어요. 힘들었죠. 85kg이던 체중이 75kg까지 줄었죠. 무대에 올라 여러 포즈 중 한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당황하기도 했지만 제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됐습니다.” 강 씨는 50세를 넘으면서 당뇨병 전 단계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기 위해 친구들과 매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파고다헬스클럽을 찾았다. 그는 “체계적으로 운동하기보다는 그냥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걷고 달리다 가끔 역기를 드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10년 전 몸에 이상이 왔다. “눈동자에 이상이 생기며 쓰러져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혈압이 200mmHg 넘게 나왔어요. 당뇨병 전 단계 판정 당시 약을 처방받았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해 먹지 않았습니다. 그게 화근이었죠.” 그때부터 약을 복용하면서 유산소 운동을 위해 북한산을 비롯한 수도권 산들을 오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면서 틈틈이 등산을 한 것이다. 강 씨가 체계적으로 근육 운동을 시작한 것은 4년 전이다. 진광식 파고다헬스클럽 관장이 “제대로 운동해 보라”며 이인혜 트레이너(60)를 소개해줬다. “제가 슬렁슬렁 운동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진 관장님이 ‘체형 비율이 좋으니 열심히 운동해서 대회에도 나가 보라’고 했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한마디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죠. PT(개별 트레이닝)를 받기 전에는 무작정 힘만 썼다면 그때부터는 부위별 근육을 체계적으로 만들었어요.” 상체와 하체, 코어로 나눠 세밀하게 훈련했다.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은 그냥 힘만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부위별로 세세하게 운동하자 근육이 만들어지고 윤곽도 뚜렷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한동안 대회 출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당뇨가 있어 식이요법을 무리하게 하다 보면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올해 도전하지 않으면 영원히 출전 못 할 것 같아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노력의 결실도 보고 싶었죠. 돌이켜보면 보석 사업을 하며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그때마다 체력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이젠 운동은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과가 됐습니다. 심신 건강 원동력이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체력이었죠.” 현재로선 식이요법이 힘들어 다시 대회에 출전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큰딸 부부와 함께 사는데 딸이 매일 닭가슴살을 비롯해 ‘저염 저탄 고단백’ 도시락을 싸줬다. 딸이 아이들 돌보며 내 도시락까지 챙기는 건 내가 봐도 너무 힘들었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것보다 먹기 싫은 닭가슴살을 먹는 게 더 고통이었다”고 털어놨다. 강 씨는 최근 댄스스포츠도 시작했다. 아내가 배우라고 권했다. 그는 “아내가 작은딸, 아들과 미국에 살고 있는데 그쪽에선 파티할 때 함께 춤추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하더라. 그래서 학원에 등록해 배우고 있다. 왈츠와 탱고, 자이브, 룸바, 차차차를 추다 보면 2시간이 금세 지나간다”고 했다. 그는 오전엔 무산소 운동인 근육 운동을 하고 오후엔 주 3회 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유산소 운동(달리기 걷기 등산 춤)을 한다. 근육 운동을 하면서도 유산소 운동을 적절하게 해줘야 지방을 잘 태워 근육의 선명도를 높일 수 있다. 요즘은 무덥기 때문에 주말에 등산 대신 지인들과 스크린 골프를 친다. 그는 “덥기도 하고, 필드 나가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다. 스크린 골프는 시원한 실내에서 재밌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요즘 무척 행복합니다. 당뇨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던 운동 덕분에 결과적으로 친구들 중에 제가 가장 건강합니다. 친구 10명 중 9명은 관절이 좋지 않거나 병에 걸려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해요. 저는 매일 운동하며 춤도 추는데 말이죠. 이런 게 삶의 즐거움 아닌가요.”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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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도 고친다는 ‘맨발걷기 효과’, 국내서도 과학적으로 입증[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암도 고친다는 ‘맨발걷기’의 효과가 국내에서도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맨발걷기생명과학연구소(소장 고장면 대전 국립한밭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와 여수요양병원(원장 표연근), 삐땅끼의원(원장 유제성)이 공동 연구한 결과, 혈액내 적혈구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고 10일 밝혔다.맨발걷기는 접지(Earthing) 효과를 보기 위해 맨발로 맨땅을 걷는 것이다. 접지는 말 그대로 땅과 접촉하는 것이다. 시멘트 아스팔트 등은 효과가 없다. 우리 몸에 30~60 ㎷의 양전하가 흐르는데 땅과 맨발로 만나는 순간 0볼트가 된다.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성화된다. 이때 우리 몸에 쌓인 활성산소(Oxygen Free Radical)가 빠져나간다고 알려져 있다. 맨발걷기 접지의 항산화효과로 불린다.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박동창 회장은 “활성산소는 양전하를 띤 상태에서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다. 몸속을 돌아다니며 전압을 올린다. 원래 활성산소는 몸의 곪거나 상처 난 곳을 치유하라고 몸 자체에서 보내는 방위군이다. 그러한 상처를 공격하여 치유하고 나면 활성산소는 맨발과 맨땅의 접지를 통해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몸의 멀쩡한 세포를 공격해 악성 세포로 바뀌게 한다. 우리 몸에 암이나 심혈관 질환 등 각종 성인병이 발생하는 이유가 활성산소의 역기능에서 비롯된 것이다”고 설명했다.이와 관련 일부에선 ‘유사 과학’이나 ‘사이비’라고 비판했다. 연구팀은 총 6주간에 걸쳐 다양한 연령대와 질환군을 포함한 임상실험을 진행한 결과 혈액 내 적혈구 분산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실험 대상은 20대 대학생부터 60~70대 생활습관병(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보유 환자들까지 폭넓게 구성됐다. 맨발로 30분 걷기 전후의 혈액을 채취해 광학현미경 및 제타포텐셜(Zeta Potential·표면 세포간 밀어내는 힘) 분석기를 이용해 정밀 분석을 실시했다.분석 결과, 맨발로 30분 걷기 전에는 적혈구가 뭉쳐 ‘연전쌓기(rouleaux formation)’ 형태를 보였으나, 걷기 후에는 적혈구가 완전히 분산된 모습이 관찰됐다. 반면, 신발을 신고 동일한 시간 동안 걷기를 실시한 경우, 혈액 내 응집 상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또 제타포텐셜 수치는 평균 -1.59mV에서 -2.8mV로 개선돼 혈류의 유동성 및 안정성이 향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2013년 미국 ‘대체 및 보완의학학회지’에 발표된 ‘접지(Earthing)는 혈액의 점성을 낮춰준다(스티븐 시나트라 등)’는 논문에 따르면 끈적끈적한 점성이 있는 혈액이 맨발걷기 40분 뒤 깨끗해졌다는 결과와 일치한다. 당시 논문에서도 적혈구 제타포텐셜을 평균 2.7배 높여줘 혈류 속도가 2.7배로 빨라졌다. 이런 결과는 20대 대학생들, 50대 고혈압 환자, 50대 당뇨 및 고지혈 환자, 유방암 환자 등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고장면 교수는 연구보고서에서 “맨발로 지면에 접지되면 자유전자가 인체로 유입되며 전압이 0V로 안정되고, 이로 인해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멜라토닌은 항산화, 항염증, 유전자 보호, 면역조절, 혈류 개선 등 여러 방면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된 생리활성 물질”이라고 덧붙였다.연구 발표에는 다수의 SCI 논문이 인용됐다. Banerjee et al. (2020), Slominski et al. (2020) 등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멜라토닌은 적혈구와 내피세포의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고, 세포막 전위를 회복시키며 혈류 흐름을 개선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미국에서는 2010년 전기기술자인 클린트 오버가 접지 원리를 발표했고, 심장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 등 의사들과 공동작업해 그 치유효과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어싱(Earthing)이라는 책으로 엮기도 했다.연구팀은 맨발걷기를 실천한 환자들의 체감적 변화도 함께 기록했다. 실제 참가자들 중 일부는 수면의 질 개선, 스트레스 지표 안정화, 요실금 개선, 통증 감소, 심리적 안정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은 박동창 회장의 도움을 받아 맨발걷기 효과를 본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했다.2020년 9월 26일 “간암 말기 환자 ’완치‘ 기적”…맨발걷기의 놀라운 효과, 2021년 5월 11일 “맨발걷기, 코로나 예방 치유에 효과 있다”, 2022년 9월 10일 “말기암 판정 2개월 만에 완치…맨발걷기가 기적 만들어”, 2023년 8월 12일 “맨발걷기로 파킨슨병 호전,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2024년 1월 27일 “맨발로 걸어 몸이 좋아졌죠…겨울엔 비닐하우스에서 걸어요”, “맨발로 해변을 걷고 29년 앓은 전신 근육강직 인간 증후군이 호전됐어요”이번 연구팀은 16일 국회에서 열릴 ‘맨발걷기 혈액건강 임상실험 결과 발표회’(이개호 의원실 주최)에서, 혈액 내 적혈구 구조의 실제 변화가 수치와 영상으로 입증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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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 있기에 대한민국 한바퀴 4544km 돌았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서울 휘문고 60회 동기동창으로 올해 75세인 임정국 정태성 김익원 최동주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2021년 3월부터 대한민국 한 바퀴 걷기에 나섰다. 시간 날 때 모여서 걸었고, 올해 4월 4544km 대한민국 한 바퀴 완보에 성공했다.“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모여서 뭘 못 하게 막았죠. 저흰 살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흰 바이러스와 무관한 대한민국 한 바퀴를 걷기로 했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의기투합했고, 결국 함께 이뤘다는 것에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습니다.”회사 생활을 하던 정 씨를 빼고 나머지 세 명은 사업을 하며 자주 만나면서 산행하던 사이였다. 우연한 기회에 4명이 당구를 쳤고, 자연스럽게 매주 1~2차례 서울 근교 대모산과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 등을 올랐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어렵던 때 동해안 해파랑길이 잘 조성됐다고 얘기하다가 “그럼 대한민국 한 바퀴를 돌자”고 뜻을 모았다. 평소 등산을 좋아해 대한민국 산을 거의 다 탄 임 씨가 대장을 맡았다. 임 씨는 “요즘 유행하는 100대 명산을 정해 놓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최소 100대 명산 70봉 이상은 올랐다”고 했다.다음은 한국수출입은행 부행장을 지냈던 정 씨의 말이다. “이런 거 있죠. 은퇴하고 친구들 만나니 너무 좋았어요. 대학 및 해외에서 근무하던 시절, 운동을 위해 산을 탔지만 친구들하고 전국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냥 기분이 좋았어요. 걸으면서 얘기도 많이 했죠. 걷는 것의 의미, 걷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갑론을박 싸우면서도 내린 결론은 함께 걸으면 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2021년 부산 오륙도를 출발해 강원 고성통일전망대까지 해파랑길 750km, 2022년 부산 오륙도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파랑길 1470km, 2023년 해남 땅끝마을에서 인천 강화평화전망대까지 서해랑길 1800km, 2024년 강화평화전망대에서 고성통일전망대까지 DMZ 평화의 길 524km.“전국을 걷다 대한민국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해파랑길은 주요 해수욕장과 일출 명소가 있고, 관동팔경을 두루 거치는 해변길이 아름다워요. 남파랑길은 한려수도와 다도해 섬들이 낭만적입니다. 서해랑길은 해 지는 바다를 보며 갯벌 속 생태계도 느낄 수 있죠. DMZ평화의 길은 아픈 역사의 상흔도 있지만 살아 있는 생태자원을 만날 수 있죠.”“코로나19 시절엔 걷다가 식사 시간이 됐는데 식당이 없어 낭패당한 적이 많았어요. 시골엔 식당도 별로 없는데 있는 식당도 문을 다 닫았던 시절이죠. 잠을 잘 데가 없어서 이집 저집 두드리고 다니기도 했죠. 그 지역 이장을 찾아가 신세 지기도 했어요. 최근엔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건물 지어서 침대 10여개 넣은 시설이 생기기도 했는데 예약하지 않으면 재워주지도 않아요. 걷다 보면 꼭 제날짜를 마추긴 힘들거든요.”이들은 대한민국 한 바퀴를 ‘K둘레길’로 명명했고, “전국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K팝, K푸드, K영화에 이어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약 4000km보다 길다. 마라톤 42.195km 풀코스의 100배 이상이다. 해파랑길은 산티아고 순례길과 맞먹는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 두루누비에 ‘코리아 둘레길’로 자세하게 코스가 설명돼 있다.“대한민국 한 바퀴를 돌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게 가장 뿌듯했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큰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요. 그리고 뭐든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어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70세 훌쩍 뛰어넘은 우리도 해냈다고요.”제일 길게 함께한 게 13박 14일. 개인 일정을 맞추다 보니 이후 짧게는 2박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을 걸었다. 총 함께한 기간이 180일이다. 배운 것도 많다. 80세를 향해 가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에 식사, 8시에 출발, 오후에도 6시에 걷기 종료, 7시 식사, 8시에 잠자리 드는 6·7·8’ 원칙을 지키며. 서로 배려하고 양보해 성취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본 중요한 계기가 됐다.“시작 전에는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죠. 함께하니 기우였습니다. 함께 걷다 보니 따라갈 수 있었요. 함께 걷지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자신과 몇 시간씩 대화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지?’ ‘잘 산 것인가?’ ‘향후 어떻게 살지?’ 숱한 고민을 하면서 제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느꼈습니다. 물론 ‘후회한 것도 있지만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는 결론에 이릅니다.”운도 좋았다고 했다. “저희가 180일을 걸었는데 비를 딱 두 번만 맞았어요. 이젠 저희도 나이가 있어 혹서기, 혹한기를 피해서 갔는데 그래도 비를 두 번만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죠. 대한민국 둘레길의 명소도 다 가봤죠. 걷는 길목에 있는 맛집도 다 가봤습니다.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어요.”하지만 대한민국 한 바퀴를 걸으면서 농어촌의 현실도 그대로 느꼈다. 노인들만 있고,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과 학생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임 씨는 “한 지역에서 노인을 만났는데 ‘학교도 멀고, 병원도 멀다. 누가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겠냐’고 하더라”고 했다.이들 4인방은 산행 및 걷기 위해 평소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도 한다. 이들은 “4년 넘게 걷다 보니 해가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헬스클럽에 간다. 뭐 가금 역기를 들기도 하지만 근육운동이라기보다는 여기저기 돌리는 유연성 운동을 주로 한다. 그거라도 해야 걷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이들은 고교 전체 산악회 ‘휘산회(휘문고 산악회)’, 고교 졸업 동창 산악회 ‘60휘산회(60회 휘문고 산악회)’ 등 매주 말 산행하는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따로 모여 산을 타거나 걷고 있다. 과거같이 하루 종일 산행하지는 않는다. 3~4시간 타고 식사하고 헤어진다.이들 휘문고 4인방은 요즘도 대한민국을 주제별로 걷고 있다. 경북 청송에서 강원 영월까지 외씨버선길, 강원 치악산 둘레길, 경기 양평 물소리길…. 임 씨는 “전국에 걷기 코스가 정말 많다. 우리가 갈 길이 아직 멀다”고 했다.“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면서 얻는 성취감, 안 해보면 몰라요. 한 발씩 걸어 4544km를 다 걸었잖아요. 친구들과 다투기도 했지만 정도 많이 들었어요. 사실 친구들 없었으면 못 했죠. 평생 함께 걸을 겁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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