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김상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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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상훈 기자입니다.

corekim@donga.com

취재분야

2026-04-09~202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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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실 자율주행 로봇 개발 ‘아이오크롭스’ 농식품 창업콘테스트 대상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 주관한 ‘2025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온실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한 ‘아이오크롭스’가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결선 및 시상식은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롯데중앙연구소 샤롯데홀에서 심사위원, 국민평가단, 후원사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AI 기술로 농업생산 자동화를 추구하는 아이오크롭스는 AI 기반 온실용 자율주행 로봇 ‘헤르마이’를 개발했다. 헤르마이는 온실 내 병해충이 발생하기 전 미리 살피고 관리하는 예찰 및 방제, 수확 등의 농작업을 수행한다. 농식품 창업콘테스트는 올해로 11주년을 맞았다. △농식품 분야의 우수 기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유망 창업가를 발굴하고 △홍보와 투자 유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5년 처음 열렸으며 이후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대상과 함께 상금 5000만 원을 받은 아이오크롭스는 AI 기반으로 주요 농작물을 자동화하는 스마트팜 솔루션을 제공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올해 콘테스트에는 570개 팀이 지원했다. 예선과 본선을 거쳐 10개 팀이 최종 결선 무대에 올랐다. 이번 평가에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 외에 국민평가단도 참여했다.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은 위즈팜(AI 한우 온라인 거래·스마트 경매 시스템 포켓카우 개발)이 받았다. 우수상(장관상)은 시그널케어(친환경 곤충 단백질 등 미생물 발효 기술 기반 업사이클링 대체 발효단백질 원료 프로퓨전 개발)·토포랩(식물세포 배양 기술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의료용 대마 CBD 대량 생산)이 수상했다. 특별상(청년프론티어상)은 리하베스트(탄소 중립형 친환경 업사이클링을 통한 대체 원료 리너지 파우더 개발)가, 장려상(원장상)은 딥플랜트(AI 분석과 혁신기술로 육류의 맛과 품질을 향상시키는 딥에이징 시스템 개발)·다름달음(건강 기능성 첨가물 및 맛과 향을 주입한 과일 등 농식품 생산 및 공급)·솔붐(곤충병원성 진균 대량생산 액상 배양 기술을 이용한 친환경 방제 솔루션 개발)·퓨처센스(식품업계 디지털 전환을 위한 재고와 로스율 관리 및 식품이력추적 솔루션 제공 시스템 Food4Chain)·와이펫(스캔 한 번으로 체온 등 건강 측정 가능한 반려동물 내장칩 및 헬스케어 플랫폼) 등이 받았다. 수상 기업에는 총 1억2000만 원 규모의 상금이 수여됐다. 김정욱 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혁신정책관 국장은 “정부는 창업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세계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창업 지원, 규제 개선, 투자, 판로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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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보다 위험한 청년 당뇨 급증… 체중부터 줄여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김정철 씨(가명)는 대학교 연구원이던 30대 초반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당뇨병에 걸린 사실조차 몰랐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었다. 밤늦게까지 일하다 허기가 지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고, 콜라도 많이 마셨다. 체중은 무려 20kg가량 불어났다. 어느 날부터 이유 없이 체중이 빠졌다. 몸이 피곤했고, 기운도 없어졌다. 눈앞도 흐릿해졌다. 김 씨는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래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만 끝내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얼마 후 시행한 혈액 검사에서 공복혈당이 250㎎/dL, 당화혈색소 13.0%로 나타났다. 정상 기준(공복혈당 126㎎/dL 미만, 당화혈색소 4.0∼6.0%)을 훨씬 초과한 것. 김 씨는 이미 상당히 병이 진행된 당뇨병 환자였다. 곽수헌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가 치료를 담당했다. 초기엔 효과가 좋았다. 6개월 만에 당화혈색소 수치가 6.5%로 낮아졌다. 하지만 김 씨가 대학교수가 되고 바빠지면서 병이 다시 악화했다. 진료를 거를수록 혈당 수치는 급속도로 치솟았다. 일종의 ‘재발’인 셈. 곽 교수는 “김 씨가 나중에 다시 치료받으면서 다행히 당화혈색소가 6.5% 수준으로 유지됐다”라며 “최근 급증하는 20대와 30대 청년 당뇨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 폭증하는 젊은 당뇨, 왜? 당뇨병은 제1형, 제2형, 유전성 등으로 구분한다. 가장 흔한 게 인슐린 기능이 떨어져 혈당 조절이 어려운 제2형 당뇨병이다. 제2형 당뇨병은 열량 과잉 섭취와 운동 부족, 과체중과 비만 등 여러 이유로 발생한다. 청년 당뇨의 경우 이 중에서도 과체중과 비만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중년 당뇨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보통 중년 당뇨의 경우 30%는 ‘마른 당뇨’다. 하지만 청년 당뇨의 마른 당뇨 비율은 10%에 미치지 못하며, 이 경우 제1형이거나 유전성일 확률이 높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대한당뇨병학회 조사(2019∼2022년)에 따르면 19∼39세 청년의 2%인 31만 명이 당뇨병 환자였다. 당뇨 전 단계는 303만 명(22%)에 이르렀다. 추가로 청년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비만 여부를 조사했더니 5%만이 정상 범위에 있었다. 8%는 과체중, 87%는 비만이었다. 곽 교수는 “95%가 비만과 관련이 있는 셈이다. 비만을 잡지 못하면 청년 당뇨는 잡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임신 전 당뇨 환자도 늘고 있다. 30대 초반의 진미연 씨(가명)는 임신에 어려움을 겪어 병원을 찾았다. 검사 도중 당화혈색소가 7.2%라는 결과가 나왔다. 어느새 당뇨병에 걸린 것. 돌이켜 보면 진 씨 또한 배달 음식을 즐겼고, 직장 회식이 잦았으며, 가공식품과 탄산음료를 많이 마셨다. 게다가 가족력도 있었다. 안전한 임신을 위해 약을 따로 쓰지는 않고 혈당 관리에 돌입했다. 식사량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면서 체중을 줄였다. 꾸준히 노력한 끝에 당화혈색소가 6.0%로 떨어졌다. 이후 임신과 출산에 성공했다. 곽 교수는 “취업에 임신 문제까지 겹치면서 스트레스도 더 커진다. 이런 여러 이유로 여성 청년 당뇨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젊은 당뇨가 위험한 이유 중년 당뇨에 비해 청년 당뇨는 발견 자체가 늦은 편이다. 학업, 취업, 결혼 등 인생을 좌우하는 일에 전념하느라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스트레스도 더 크다. 게다가 젊다는 이유로 병을 알리기도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곽 교수는 “주변으로부터 ‘넌 왜 그렇게 살이 쩠어?’라거나 ‘젊은 나이에 어쩌다 당뇨병에 걸렸어?’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감추는 환자들이 꽤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병을 키우기만 하는 청년 환자가 적잖다. 대한당뇨병학회 조사에 따르면 실제 진단을 받은 청년 당뇨병 환자는 절반에 못 미치는 43% 정도다. 치료하는 비율은 더 낮아 35%에 불과하다. 곽 교수는 “동료들의 배려가 절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병원 찾는 시기가 늦어지면 그만큼 치료도 어려워진다. 합병증도 늘어난다. 청년 당뇨 환자의 35%는 고혈압, 75%는 고지혈증의 합병증에 걸린다. 두 가지 합병증을 모두 갖는 비율도 27%다. 청년 당뇨의 가장 큰 위험이 여기에 있다. 곽 교수는 “청년 당뇨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점점 인슐린 조절이 어려워진다. 투입하는 약물도 점점 늘어나고 나중에는 주사까지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당뇨병을 앓는 기간도 길어지고, 치명적인 합병증 위험도 커진다. 30대 중반에 당뇨병 진단을 받은 강철승 씨(가명)의 경우 고혈압과 고지혈증 합병증이 생겼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고, 체중조절과 금연에도 실패했다. 그렇게 10년 이상이 흘렀다. 40대 후반에 회사 야유회를 다녀온 뒤 3개의 관상동맥이 모두 막힌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조치는 잘 됐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아야 했던 것이다.● 방심 금물, 곧바로 치료해야 청년 당뇨의 경우 꾸준히 치료하면 ‘정상’ 수준을 회복할 확률이 중년보다 높다. 곽 교수는 “청년 당뇨 초기에 발견하고 적극 치료하면서 체중을 15% 이상만 줄이면 5년 이내에 혈당을 정상 수준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뇨약도 끊을 수 있다. 병을 일찍 발견하는 게 관건이다.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위험군의 경우 정기 검사가 필요하다. 곽 교수는 “대한당뇨병학회는 19세 이상 성인으로, 가족력이 있고 과체중 단계를 넘어섰다면 매년 1회 당뇨병 검사를 할 것을 권한다”라고 말했다. 병이 진행되면 증세가 나타난다.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단 많이 마시고(다음), 많이 먹으며(다식), 소변을 자주 많이 보는(다뇨), 이른바 3다(多) 증세가 나타난다. 혈당이 소변으로 자주 배출되고, 목이 마르니 물을 많이 마시며, 당이 에너지로 제대로 전환되지 않아 허기가 지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체중이 빠지고 피로감이 심해질 수 있다. 곽 교수는 “이 정도면 심각한 단계다. 반드시 내분비내과 전문의를 찾아 상담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청년 당뇨로 진단되면 우선 제1형, 제2형, 유전성 등 종류를 구분한다. 치료법도 그에 따라 다르다. 대표적인 제2형의 경우 당뇨병에 대한 기본 교육과 함께 식습관 분석과 교정을 진행한다. 동시에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곽 교수는 “혈당만 조절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큰 오해다. 궁극적으로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치료하는 병이다”라고 말했다. ● 야식-단 음료 피하고 금연해야청년 당뇨의 절반 가까이는 체중 증가에서 병이 비롯된다. 따라서 과체중을 방지하는 게 최선이다. 곽 교수는 이를 위해 ‘접시 식사법’을 제안했다. 식사할 때 접시 한 그릇에 모든 음식을 놓은 방법이다. 접시의 절반은 푸른 채소로 채운다. 4분의 1은 곡물류인데, 기왕이면 쌀밥보다는 현미와 같은 잡곡이 낫다. 나머지 4분의 1에는 단백질과 지방 음식을 놓는다. 곽 교수는 “이런 식사법을 통해 열량을 줄이고, 영양소를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접시 식사법이 어렵다면 어떻게 할까. 곽 교수는 전통적인 한식 식단을 추천했다. 절대 피해야 할 음식도 알아두자. 단순당이 많은 가공식품이나 콜라, 사이다, 주스처럼 액상과당이 많은 음료는 피해야 한다. 배달 음식은 비만의 주범 중 하나다. 대폭 줄이는 게 현명하다. 운동도 필수다. 중년의 경우에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 하지만 20대와 30대는 젊기에 굳이 종목을 가릴 필요는 없다. 좋아하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종목을 즐기면 된다. 단, 운동 강도와 시간은 중요하다. 곽 교수는 “땀이 나고 숨이 찬 정도의 중등도 강도로 매일 30분 이상 5일(총 150분) 이상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시간이 나지 않는다면 주말에 각각 40분과 35분씩(총 75분 이상) 땀이 많이 나고 대화하기 힘든 고강도로 운동을 해 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근력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고위험자라면 금연은 필수다. 청년 당뇨병 환자 중 34%는 흡연자였고, 16%는 주 2회 이상 1회 7잔 이상의 술을 마시는 고위험 음주자였다. 이 수치는 고령 당뇨병 환자의 3배에 이른다. 특히 흡연할 때 당뇨 합병증이 더 일찍 시작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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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마티스 관절염, ‘골든타임’만 지키면 완치 가능”[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50대 여성 이재순 씨(가명)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다. 손발 관절이 변형됐다. 손가락 마디가 휘어 단추를 끼우거나 수저 들기가 어려워졌다. 발가락이 뒤틀려 걸을 때 휘청였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았다. 그러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병원에 갔더니 심혈관이 파열됐다고 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동맥경화에 이어 심혈관질환으로 악화한 것. 이 씨가 더 일찍 류마티스 관절염을 발견하고 치료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김완욱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 내과 교수는 “중증 합병증에 걸리지 않고 완치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조기에 발견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면 50%까지는 완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류마티스 관절염은 완치가 힘든 자가 면역 질환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김 교수 말처럼 ‘완치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질병, 정확히 알자 우선 류마티스 관절염에 대해 자세히 알아 두자. 똑같은 관절염이지만 퇴행성 관절염과는 병의 원인, 증세, 발병 양상, 치료법이 모두 다르다.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을 많이 사용한 결과 발생한다. 고령, 비만 등으로 연골이 손상된다. 60대 이후 병을 얻는 사람이 많다. 반면 류마티스 관절염은 면역 시스템 오작동으로 발생한다. 자가항체가 관절을 ‘적’으로 인식해 공격한다. 관절 주변 활막에 염증이 생긴다. 염증은 연골과 뼈를 파괴한다.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면 병이 악화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40대와 50대에서 많이 발생하며 30대 환자도 드물지 않다. 환자의 90%가 여성이다. 김 교수는 “여성 환자가 특히 많은 데는 여성호르몬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출산과 폐경처럼 여성호르몬이 변화하는 시기에 발병 비율이 높기 때문. 통증은 가장 대표적인 증세인데, 양상은 좀 다르다.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면 송곳으로 콕콕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관절이 붓고 빨개지며 열이 나거나 물이 차기도 한다. 반면 퇴행성일 때는 깊고 묵직한 통증이 넓게 나타난다. 김 교수는 “단지 관절 부위가 아프기만 하면 관절통이지만, 약간 말랑말랑하고 부은 상태에서 통증이 심한 상태가 6주 이상 지속된다면 류마티스 관절염일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퇴행성일 때는 무릎, 손가락 같은 여러 부위에서 통증이 나타난다. 류마티스 관절염일 때는 주로 손가락이나 손등에 많이 나타난다. 통증 양상도 다르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자고 일어났을 때 손가락이 뻣뻣한 강직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세는 1시간 이상 지속되며 수분이 빠져나가는 오후에는 괜찮아진다. 퇴행성일 때도 강직 현상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10분 이내에 사라진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손가락 가운데 관절, 퇴행성은 손끝 첫째 관절에서 증세가 나타나는 것도 다른 점이다. ● 방치하면 폐, 심장도 공격 두 병 모두 통증으로 시작하지만 이후 과정은 달라진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2년 이내에 관절 변형으로 이어진다. 관절이 녹기 시작하면 모양이 뒤틀려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게다가 전신에 염증을 유발한다. 심장, 폐를 비롯한 여러 장기를 공격해 합병증을 일으킨다.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60∼70%가 심혈관계 질환 합병증에 걸린다. 폐 섬유화를 비롯해 폐 질환에 걸릴 확률도 40∼60% 높아진다. 뼈엉성증(골다공증), 염증성 질환, 고지혈, 당뇨병에 걸릴 확률도 크게 높아진다. 평균 수명도 6∼7년 짧아진다. 김 교수는 “보통 5∼10년간 병을 방치하면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런 단계에 이르기 전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병의 전 단계, 혹은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자기 관절을 자가항체가 공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만 초기에는 자가항체가 있다고 해서 모두 환자가 되지는 않는다. 보통 60%에서만 증세가 나타나며 40%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 김 교수는 바로 이 단계가 ‘치료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병이 완전히 뿌리내리기 전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40%는 완치한다. 최근에는 50%까지 성적이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많은 환자가 병이 악화한 후에 병원을 찾는다. 무릎, 어깨, 턱 같은 여러 부위에서 증세가 나타나는 데도 인식하지 못하거나 통풍 같은 질병으로 오해한다. 소염제를 잔뜩 먹고 증세가 개선되면 흐지부지 넘어간다. 이런 식으로 1년 정도 흐르면 류마티스 관절염은 크게 나빠진다. 이때 치료를 시작하면 30% 정도는 아예 완치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김 교수는 “손가락을 비롯해 증세는 어떻게든 나타난다. 그것을 단순 통증이나 노화라고 무시하면 치료는 어려워진다. 늘 주의를 기울이고 이상한 점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 가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 생활하면서 예방법 실천류마티스 관절염은 유전, 환경 요인, 면역 체계 교란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특히 염두에 둬야 할 요인들을 알아 두자. 첫째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자 면역 체계를 교란하는 주범이다. 의도적으로라도 스트레스를 줄이려 노력해야 한다. 둘째, 흡연이다. 최근 연구 결과 담배를 피우면 류마티스 관절염 발병 위험이 3배 이상으로 뛰었다. 류마티스 유전자가 있는 사람이 흡연한다면 이 확률은 2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금연은 필수다. 셋째 치주염, 즉 충치를 조심해야 한다. 충치균은 치아만 부식시키는 게 아니다. 자가항체가 만들어지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충치가 생기면 그만큼 류마티스 관절염이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는 뜻이다. 정기적으로 치과에서 검사하는 게 좋다. 김 교수는 “스트레스, 흡연, 충치는 류마티스 관절염의 3대 위험 요소다. 늘 신경 쓰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와 세균 감염도 원인이다. 실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후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가 25%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손 씻기 같은 개인 위생 관리가 필요하다. 비만도 위험 인자다. 살이 많이 찌면 관절이 더 상하며 비만 호르몬은 염증을 증폭시킨다. 적절한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자가항체가 더 잘생긴다. 콜레스테롤 관리도 해야 한다. 운동은 필수다. 체중을 관리하는 것 외에도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근력 운동을 해 줘야 관절이 튼튼해진다. 김 교수는 매일 1시간씩 일주일에 4회 이상 저강도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할 것을 권했다. 다만 붓고 통증이 심할 때는 운동 부작용이 크므로 쉬는 게 좋다. 짠 음식은 피해야 한다. 최근 연구 결과 짠 음식을 먹으면 림프구를 증폭시켜 면역 시스템을 교란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됐다. 싱겁게 먹도록 노력해야 한다. ● 표적치료제로 완치율 높여 병 진단에 활용되는 기본적인 방법은 혈액검사다. 이를 통해 병의 원인인 자가항체가 있는지를 검사한다. 여기에 환자 증세를 반영해 의사가 진단을 내린다. 관절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면 더 명확하게 병을 진단할 수 있다. 확진이 되면 항류마티스제를 투여한다. 관절 변형을 늦추고 합병증 위험을 낮추는 약이다. 여러 약물을 혼합해 투입하는 ‘칵테일’ 방식이 흔히 쓰인다. 이 방식이 효과를 보지 못하면 표적치료제를 쓴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일으키는 핵심 표적을 겨냥해 차단하는 약물이다. 생물학적 제재로 돼 있어 주사로 투입한다. 김 교수는 “생물학적 제제로 된 표적치료제가 최근 20년 동안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치료 효과는 뛰어나고 부작용은 적다는 것. 처음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6개월 동안 2가지 이상의 항류마티스제를 써도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써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퇴행성 관절염의 경우 수술로 치료하기도 하지만 류마티스 관절염은 수술적 방법을 널리 쓰지 않는다. 수술로 염증이 있는 활막 부위를 제거해도 재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관절로 침범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일부 부위만 수술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김 교수는 “좋은 신약이 속속 나오고 있어 약물 치료만으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약물을 거르면 안 되며, 초기부터 제대로 약물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계절적으로는 습하고 기압이 낮은 장마철이나 겨울철에 병이 더 악화한다. 반면 건조하고 따뜻할 때는 증세가 조금은 수그러든다. 지금부터 가을까지가 치료하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란 뜻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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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근경색? 심장도 재활해야 회복 앞당기고 재발 낮춥니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김정언 씨(50)가 가슴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건 2022년이었다. 살짝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좀 심할 땐 가슴이 화끈거렸고, 더 심하면 바싹바싹 타는 듯한 작열감이 느껴졌다. 김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역류성 식도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해 8월 동네 내과에 갔다. 의사도 역류성 식도염 같다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었더니 증세가 조금은 누그러든 것 같았다. 다만 완전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가슴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김 씨는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년 4개월이 지났다. 2023년 12월, 김 씨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성지동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2022년 여름의 증세가 협심증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씨는 왜 병의 진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 운동 안 하면 협심증 악화 모를 수도 당시 김 씨는 운동을 거의 못하고 있었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보디빌딩 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운동을 즐겼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여유가 사라졌다. 나중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맡다 보니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했다. 밤에는 따로 영업 일도 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게다가 햄버거와 치킨, 콜라를 아주 좋아했다. 30대 초반에 62∼63kg이던 체중은 한때 95kg까지 늘어났다. 2018년에 결혼하면서 체중을 70kg대까지 줄이긴 했지만, 꽤 오랜 기간 비만 상태였던 것. 비만과 운동 부족, 잦은 술자리는 심장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다. 혈압은 정상이었지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고, 약한 당뇨도 있었다. 성 교수는 “만약에 김 씨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면 협심증 초기 단계에서 병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협심증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일부가 막힌 병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혈관 면적 70% 내외가 막히면 가슴 통증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협심증이 심해지면 가만히 있어도 흉통이 느껴지지만, 초기에는 움직일 때만 이 증세가 나타난다. 성 교수는 “김 씨가 계속 운동을 했다면 협심증 증세를 초기에 발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앉아만 있었기에 병의 진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계를 모두 거치면 급성 심근경색으로 악화할 수 있다.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혔기에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 심장 근육이 죽는다. 치명적인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가슴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협심증부터 의심해야 한다. 통증 양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성 교수는 “가슴이 조이거나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고, 명치 부위가 심하게 아플 수도 있다. 심지어 어깨가 아플 수도 있다. 이런 통증이 지속되면 빨리 병원에 가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씨는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덴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 독감 치료하다 심근경색 발견 2023년 12월, 김 씨는 갑작스레 고열에 시달렸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요란하게 뛰었다. 잠시 괜찮았다가 얼마 후 다시 아픈 상황이 반복됐다. 맥박은 1분에 140회를 넘겼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고 버텼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잠을 자다 오전 1시에 깼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의료진은 독감 진단을 내렸다. 신속한 대처로 효과가 나타났다. 4시간 후에는 열이 떨어졌다. 다만 흉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의료진은 심장질환을 의심했다. 심근 효소 검사를 시행했다. 심근 효소는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하면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검사 결과 효소 수치가 정상 범위를 초과했다. 의료진은 입원을 연장했다. 성 교수는 “의료진은 크게 세 가지를 본다. 첫째가 증세, 둘째 심근 효소, 셋째 심전도 검사 결과다. 이 셋 중 두 가지 이상에서 심근경색이 의심된다면 그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의 경우 심전도 검사 결과는 모호했다. 다만 증세가 나타났고 검사할 때마다 심근 효소 수치가 조금씩 올라갔기 때문에 심근경색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혹시 독감이 심근경색을 유발한 건 아닐까. 성 교수는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관상동맥이 어느 정도 막힌 상황에서 독감이 생기면 염증 반응으로 인해 혈액이 더 응고되면서 혈전이 더 잘 만들어질 수 있다. 이튿날 아침에는 맥박이 160까지 올라갔다. 심근 효소 수치는 또 높아졌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의료진은 혈관 내부를 보기 위한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했다. 예상대로 혈관이 막혀 있었다. 의료진은 곧바로 막힌 혈관 부위를 넓히는 시술(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했다. 이때는 풍선을 사용해 막힌 혈관을 넓혔다. 다만 막힌 혈관 모두를 뚫지는 못했다. 의료진은 우선 급한 부위부터 처치했고, 6개월 후 2차 스텐트 시술을 하기로 했다.● “36회 심장 재활훈련 모두 끝내” 일단 위기를 넘겼지만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성 교수는 “관상동맥 중재술은 급성 심근경색 치료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급성기 이후에 심장 재활 치료를 이어가야 재발을 막고 환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도 심장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보통은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4∼6주 후에 재활 훈련을 시작한다. 매주 3회씩 12주에 걸쳐 36회 병원을 찾아 훈련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들이 이를 따르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심장 재활 훈련을 완수하는 환자는 전체 심근경색 환자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김 씨는 중도 포기하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병원을 찾았다.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36회 과정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재활 훈련은 의료진과 물리치료사 감독하에 진행된다. 환자 건강 상태에 맞게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유연성 운동의 강도와 시간을 정한다. 가슴에 장비를 부착하고 모니터를 통해 심전도와 혈압을 점검하면서 운동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김 씨는 유산소 운동으로 트레드밀을 걷거나 실내용 자전거를 탔다. 처음에는 아주 짧은 시간만 걸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30분 동안 이어서 운동할 수 있게 됐다. 운동 강도는 ‘약간 힘든 정도’를 유지했다. 심박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최대 심박수 40∼60% 범위의 중강도 운동에 가깝다. 무거운 운동기구 대신 고무밴드나 가벼운 아령 같은 소도구를 사용해 근력 운동을 했다. 근력 운동은 일상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 10∼15회씩 두세 세트를 진행했다. 유연성 운동은 주로 스트레칭과 호흡법으로 구성돼 운동 후 피로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 다시 스텐트 시술, 지금은 건강지난해 6월, 예정돼 있던 2차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이후 김 씨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계단을 오를 때 4개 층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시술이 끝나고 2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운동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9월부터 느린 속도로 달리기를 시작했고, 10월에는 10분 이상 달릴 수 있게 됐다. 성 교수는 “심장 재활 훈련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차 시술 이후에 지속적으로 재활 훈련을 했기에 2차 스텐트 시술 후에 회복이 빨라졌다는 뜻이다. 단순히 스텐트 시술만으로는 이처럼 빨리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 김 씨도 “재활 훈련의 기여도가 90%는 넘을 것”이라며 심근경색 환자들에게 이 훈련을 적극 추천했다. 이제 김 씨는 스스로 재활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달리는 재미에 푹 빠져 아침저녁으로 5㎞씩, 시속 6∼8km로 달린다. 매주 나흘 정도는 런지나 스쾃 같은 근력 운동도 한다. 물론 식단도 바꿨다. 햄버거와 콜라는 끊었다. 술은 아주 가끔, 최소한만 마신다. 김 씨는 건강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는 “내 건강 상태에 점수를 준다면 10점 만점에 8.5점 이상이다. 건강 능력치가 확실히 올라갔다. 이제 건강한 삶을 이어갈 것”이라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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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요일은 토르의 날? 일상에 신화가 녹아 있었네!”[브레인 아카데미 플러스]

    《궁금하다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하지만 알아두면 분명 유익한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일 수도 있고 최신 트렌드일 수도 있죠. 동아일보는 과학, 인문, 예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 이런 게 있었어?’라고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들을 매 주말 연재합니다. 이번주는 신화편입니다.》극한 더위와 호우가 반복되고 있다.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고, 태평양 도서 국가들은 수몰 위기에 놓였다. 기후 위기로 수억 명이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자연 파괴와 성장 만능주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신화는 문학, 예술, 철학을 비롯한 삶의 전 분야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 때문에 인류 문명의 뿌리로 여겨진다. 바로 그 신화에서 힌트를 찾아보자.● “자연을 경외하라” 고대 인류는 자연을 경외했다. 자연을 노하게 하면 벌받을 것이라 믿었다. 우리나라, 유럽, 중국, 인도, 중동 등 여러 지역에 홍수 신화가 전해 내려오는 것이 그 증거다. 신은 오만한 인간을 심판했다. 인간은 겸손을 배웠다. 세상은 혼돈에서 시작됐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것을 ‘카오스’라 불렀다. 카오스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태동했다. 가이아가 만물을 낳으면서 세상 질서가 갖춰져 갔다.북유럽 신화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암흑, ‘긴눙가가프(심연)’ 시대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미르’라는 거인이 탄생했다. ‘오딘’ 형제는 이미르를 죽이고 시신을 재료 삼아 세상을 창조했다. 이미르의 몸통으로는 대지를, 머리털로는 숲을, 이빨로는 바위와 돌을 만들었다. 거인의 머리뼈는 하늘이 됐고 피어오른 불똥은 태양과 달, 별이 됐다. 피는 바다가 돼 흘러갔다. 중국 신화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반고’라는 거인이 알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1만8000년 만에 깨어났다. 알이 깨지면서 맑은 기운은 위로, 탁한 기운은 아래로 흘러 각각 하늘과 땅이 됐다. 반고는 발로 땅을 딛고 머리로 하늘을 받쳤다. 하늘은 매일 1장(3m)씩 높아졌고, 땅은 1장씩 두꺼워졌다. 반고도 덩달아 1장씩 커졌다. 그렇게 다시 1만8000년이 흘렀다. 하늘과 땅 사이 거리가 9만 리가 됐다. “앞길이 9만 리 같다”는 말은 이 신화에서 유래했다. 일을 마친 반고는 쓰러졌고, 시신은 해체됐다. 눈은 해와 달이 됐고, 숨결은 바람이 됐다. 살은 들판이 됐고, 피는 강물이 됐다. 북유럽 신화와 비슷한 결말이다. 압도적 거인은 자연을 상징한다. 인류는 자연과 공존하고, 때로는 투쟁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러면서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았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 “미의 여신 원조는 인안나” 오늘날 튀르키예에 해당하는 소아시아 페니키아에 에우로페 공주가 살았다. 그리스 최고신 제우스가 한눈에 반했다. 그는 흰 소로 변신한 뒤 공주에게 다가갔다. 넋이 나간 듯 소를 바라보던 공주가 등에 올라탔다. 제우스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윽고 크레타섬에 정착했다. 유럽의 어원이 여기서 비롯됐다. 에우로페를 영어로 쓰면 ‘Europe’이다. 그리스에서 발행한 2유로 동전 앞면에 이 신화가 새겨져 있다. 크레타섬은 유럽 최초 문명인 미노스 문명이 태동한 지역이다. 에우로페는 소아시아에서 건너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신화는 문명과 마찬가지로 머물지 않고 이동했다. 가령 미의 여신 대명사는 ‘비너스’다. 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바꿔 부른 이름이다. 비너스는 금성을 상징했다. 금성을 상징하는 미의 여신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동한 수메르 지역에도 있었다. 바로 ‘인안나(이난나)’다. 굳이 따지자면 인안나는 ‘원조’ 미의 여신이자 풍요의 여신이다. 바빌론이 수메르를 지배한 후 인안나 이름은 ‘이슈타르’로 바뀌었지만, 속성은 그대로다. 이집트에서도 인안나와 닮은 여신이 존재한다. 하토르다. 하토르는 미의 여신이면서 사랑의 여신이다. 하토르는 전쟁의 신일 때는 무자비한 ‘세크메트’로 인격체가 바뀐다. 이집트 태양신은 오만방자한 인간을 멸종시키려 했다. 이 임무를 하토르가 받았다. 세크메트로 변신한 하토르는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태양신이 놀라 하토르를 달랬다. 이성을 잃은 하토르는 진정하지 못했다. 태양신은 강물에 맥주를 풀었다. 맥주를 마신 뒤에야 하토르가 진정됐다. 맥주의 유래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일대에서 맥주를 처음 마셨다는 역사적 사실이 신화에 반영됐다. 오늘날 서양 문화권에서 ‘바알’은 사탄이나 악마로 여겨진다. 하지만 바알은 중동에서 풍요의 신으로 인기를 끌었다. 성경에서 이단으로 묘사되는 바람에 이후 사탄의 이미지가 덧칠된 것. ● 현대인의 삶에 녹아있는 신화 수메르 사람은 1주일을 7일로 나눴다. 로마인은 신의 이름을 별과 행성에 붙였다. 가장 큰 목성은 주피터, 가장 예쁘다는 금성은 비너스라 불렀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 왕국의 시대가 열렸다. 게르만족은 요일에 자기들의 북유럽 신 이름을 붙였다. 다만 해와 달, 토성에서 비롯된 일요일과 월요일, 토요일은 그대로 뒀다.북유럽 최고신은 오딘이었다. 그는 ‘보덴(Woden)’이라고도 불렀다. 여기에서 수요일(Wednesday)이 태동했다. 최고의 전사이자 천둥의 신 ‘토르(Thor)’에서 목요일(Thursday)이 나왔다. 목요일은 ‘토르의 날’이 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북유럽 전쟁의 신 티르(Tyr)에서 화요일(Tuesday)이, 최고 여신 프리그(Frigg)에서 금요일(Friday)이 만들어졌다. 그리스 신화에서 으뜸 가는 낙원은 평화로운 사후 세계 ‘엘리시온’이다. 이 용어는 오늘날까지도 여러 지역에서 사용된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는 ‘엘리시온의 들판’이란 뜻이다.제우스 신은 인간과의 사이에서 헤라클레스를 낳았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신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최고 여신 헤라가 잠든 틈을 타서 몰래 그녀의 젖을 먹였다. 놀라 깬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뿌리칠 때 젖이 하늘로 퍼졌다. 이것이 은하수가 된 유래다. 은하수는 ‘the Milky Way’, 즉 ‘우유의 길’이다. 명품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 로고에는 ‘메두사’ 얼굴이 박혀 있다. 메두사를 보면 돌로 변하듯이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치명적인 이미지가 되길 바랐던 거다. 스타벅스 로고 속 인어는 ‘사이렌’이란 괴물이다. 사이렌은 항해자를 유혹해 파멸로 이끌었다. 한번 맛보면 빠져드는 음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승리 여신 ‘니케’에서 따왔다. ● 심리학에 담긴 그리스 신화 유아기 남자가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기고 어머니에게 성적 애착을 갖는 심리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부른다. 테베 왕국 왕자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내용의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됐다. 그리스 신화의 여러 이야기가 심리학 용어로 쓰이고 있다.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사령관 아가멤논이 승전한 후 금의환향했다. 하지만 그동안 바람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정부(情夫)와 함께 아가멤논을 죽여 버렸다. 딸 엘렉트라와 아들 오레스테스는 추방했다. 엘렉트라는 오레스테스를 부추겨 어머니를 죽이도록 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어린 딸이 어머니를 경쟁자로 여기고 아버지에게 애착을 갖는 심리를 ‘엘렉트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영웅 테세우스는 아마존족 여왕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아내가 죽자 ‘파이드라’라는 여성과 재혼했는데, 그녀는 테세우스 아들과 사랑에 빠졌다. 이 신화로부터 어머니가 아들에게 집착하는 ‘파이드라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나왔다. 자아도취를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남성이 외모에 집착하는 심리는 ‘아도니스 증후군’이다. 아도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표적 미남이다. 피그말리온은 최고의 조각가였다. 여자 인형을 만들어 놓고 사랑했다. 그 간절함에 감동한 아프로디테가 목각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피그말리온 효과’다.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존중하며 북돋워 준다면 실제로 긍정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QR코드를 스캔하면 7일 채널A에서 방송된 브레인 아카데미 ‘미술편’을 볼 수 있습니다. ‘신화편’은 14일 오후 10시 방송됩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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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궤양성 대장염 신약 속속 출시… 포기 안 하면 완치도 가능”[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이기영 씨(50)는 운동을 즐겼다. 19세 때부터 20년 넘게 헬스클럽에서 근력 운동을 했다. 30대 중반 이후에는 보디빌더 지역 대표로도 활동했다. 그 무렵에는 헬스클럽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권투를 배운 적도 있다. 물론 유산소 운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주 2회 혹은 3회, 5∼10km를 달렸다. 산에도 자주 올랐다. 건강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다만,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 딱 하나 있었다. 과도한 음주. 이 씨는 40대 초반이 될 때까지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업무를 위한 술자리가 많았지만, 그냥 술이 좋아 마실 때도 많았다. 일단 술자리가 시작되면 최소한 소주 3병에 맥주 3병 이상은 마셨다. 친구와 단둘이 소주 20병을 그 자리에서 비운 적도 있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에는 간혹 설사가 나왔다. 약한 강도의 치질까지 있어 아주 가끔은 피가 살짝 변에 섞여 나왔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술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증세는 곧 사라졌다. 그러다 2016년 11월, 증세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 설사와 혈변, 잔변감이 특징 종전에는 술 마신 후 하루나 이틀 동안만 증세가 나타났다. 이 무렵부터는 증세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설사와 혈변을 속수무책으로 봤다. 일을 보고 나서도 잔변감이 무척 심했다. 갑자기 대변이 나올 것 같은 ‘급박변’ 증세도 생겼다. 잠을 자는 새벽에 갑자기 변이 마려워 일어나야 했다. 이러다 보니 하루 10∼15회는 화장실을 들락였다. 증세가 오래 지속되자 비로소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씨는 동네 의원에 가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궤양성 대장염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에 가 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이 씨는 매일 20회 이상 설사와 혈변을 누는 고통을 치러야 했다. 이 씨는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예상한 대로 궤양성 대장염 진단이 떨어졌다. 면역체계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일종으로,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성 질병이다. 대부분의 자가면역질환처럼 병의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씨 치료를 담당한 황성욱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은 30대와 40대에 많이 발병한다. 이 씨처럼 2주 이상 설사와 혈변, 급박변이 이어진다면 이 병을 의심해야 한다. 일찍 발견할수록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식습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황 교수는 “이 병을 악화하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기름지고 맵거나 튀긴 음식, 자극적인 음식이 70%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 듣는 약 없어 입원과 퇴원 반복 황 교수는 일단 극심한 염증부터 잡기 위해 스테로이드 약물을 고용량으로 투입했다. 일반적으로 스테로이드 약은 염증을 신속하게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크다. 다만 장기간 고용량을 사용하면 신체 여러 장기가 손상되고 혈압과 혈당이 상승하며 면역 시스템 이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테로이드 약은 기한을 정해 단기간 처방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씨는 중증 중에서도 중증이었다.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황 교수는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으로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장은 증세가 개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기간은 아주 짧았다. 2017년 1월, 이 씨는 증세가 다시 나타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2주 치료 후 증세가 호전되자 퇴원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증세가 악화해 입원했다. 이런 식으로 2018년 6월까지 이 씨는 모두 7회 입원해 2주씩 집중 치료를 받았다. 완벽한 치료가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뚜렷한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궤양성 대장염이라면 1차로 항염증제를 쓰고, 효과가 없으면 추가로 다른 대장염 치료제를 병행 투입한다. 그래도 효과가 없다면 마지막으로 면역을 억제하는 생물학 제제(製劑)를 쓴다. 이 씨도 똑같은 절차를 거쳤다. 당시 출시돼 있던 세 종류의 생물학 제제를 모두 써 봤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황 교수는 “이런 약은 환자의 70% 정도는 효과를 본다. 이 씨는 나머지 30%에 해당했다. 쓸 약이 더 이상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문에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어쩔 수 없이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 입원 치료 중일 때는 몸이 편했다. 금식하면서 장을 쉬게 해 주고 영양 수액 주사를 맞았다. 스테로이드 처방이 염증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퇴원하면 한 달 만에 어김없이 증세가 악화했다. 그러면 다시 입원하는 삶이 반복됐다. 일상생활은 엉망이 돼 버렸다. 급박변 증세가 나타나면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여벌 속옷을 가지고 다녔다. 얼마 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직접 운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다 급히 차를 세워 변을 보기도 했다. 차에 이동식 변기와 기저귀를 비치해 뒀다. 이 씨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도 했다. 건강한 사람의 변을 이식하면 궤양성 대장염이 나아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됐다. 집에서 어린 아들의 변을 희석해 좌약 하듯 이식했다. 3일마다 한 달 동안 변 이식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황 교수는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확실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미리 알았다면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요법에도 의지해 봤다. 영지버섯이 좋다는 말에 열심히 달여 마셨다.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간 수치만 높아졌다. 이후 민간요법을 완전히 끊었다. 장기간 스테로이드 약을 쓰면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게 뼈엉성증(골다공증)이었다. 황 교수는 “근육량이 줄어들고 마르기 시작하면서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한때 우울 증세까지 나타났다. 입원할 때 몸은 편하지만 우울함은 오히려 심했다. 이 씨는 “어린 아들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 우울함을 달랬다. 그마저도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신약 임상시험 참여하고 증세 호전 더 이상 쓸 약이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검토했다. 삶이 많이 불편해질 게 빤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약물을 이대로 계속 쓸 수는 없었다. 폐렴이나 장 천공과 같은 응급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컸다. 이 씨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던 중 2019년 1월, 궤양성 대장염 신약이 나오면서 임상시험이 진행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상시험에 지원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약을 복용하기 전에는 매일 15회 이상 혈변을 봤는데, 신약을 쓰고 한 달 만에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다시 한 달 후에는 혈변이 하루 3회로 줄었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았는데 2개월 만에 신약 효과가 나타난 것. 2020년 이후로는 발병 이전 상태를 회복했다. 다만 신약의 부작용으로 대상포진을 5회 앓았다. 이 또한 얼마 후, 이 씨 몸 상태에 맞는 대상포진 백신이 개발되면서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됐다.지금은 신약과 항염증제만 복용하고 있다. 스테로이드 약물은 끊었다.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몸 상태를 살펴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 식습관도 바꿨다. 장을 자극할 수 있는 맵고 짜거나 기름진 음식은 되도록 피한다. 날 음식은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살짝 데쳐 먹는다. 술도 2주에 한 번꼴로 맥주 서너 잔만 마신다. 예전처럼 운동도 꾸준히 한다. 황 교수는 “환자가 어려운 상황을 잘 버티고 낙천적으로 투병했기에 지금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에게 “이 신약 말고도 다섯 종류의 신약이 더 나와 치료할 때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신약은 계속 나온다. 환자들이 끈기를 가지고 투병에 임하면 완치에 가깝게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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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궤양성 대장염 신약 속속 출시…포기 안 하면 완치도 가능”[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황성욱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궤양성 대장염 이기영 씨자가면역질환 일종 난치성 질환주로 30, 40대에 많이 나타나하루 15회 이상 설사-혈변 보고대중교통 못 타고 일상생활 엉망스테로이드 의존, 대장 절제 검토신약 임상시험 참여 후 빨리 호전이기영 씨(50)는 운동을 즐겼다. 19세 때부터 20년 넘게 헬스클럽에서 근력 운동을 했다. 30대 중반 이후에는 보디빌더 지역 대표로도 활동했다. 그 무렵에는 헬스클럽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권투를 배운 적도 있다. 물론 유산소 운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주 2회 혹은 3회, 5~10㎞를 달렸다. 산에도 자주 올랐다.건강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다만,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 딱 하나 있었다. 과도한 음주. 이 씨는 40대 초반이 될 때까지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업무를 위한 술자리가 많았지만, 그냥 술이 좋아 마실 때도 많았다. 일단 술자리가 시작되면 최소한 소주 3병에 맥주 3병 이상은 마셨다. 친구와 단둘이 소주 20병을 그 자리에서 비운 적도 있다.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에는 간혹 설사가 나왔다. 약한 강도의 치질까지 있어 아주 가끔은 피가 살짝 변에 섞여 나왔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술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증세는 곧 사라졌다. 그러다 2016년 11월, 증세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 설사와 혈변, 잔변감이 특징종전에는 술 마신 후 하루나 이틀 동안만 증세가 나타났다. 이 무렵부터는 증세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설사와 혈변을 속수무책으로 봤다. 일을 보고 나서도 잔변감이 무척 심했다. 갑자기 대변이 나올 것 같은 ‘급박변’ 증세도 생겼다. 잠을 자는 새벽에 갑자기 변이 마려워 일어나야 했다. 이러다 보니 하루 10~15회는 화장실을 들락였다. 증세가 오래 지속되자 비로소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씨는 동네 의원에 가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궤양성 대장염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에 가 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이 씨는 매일 20회 이상 설사와 혈변을 누는 고통을 치러야 했다.이 씨는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예상한 대로 궤양성 대장염 진단이 떨어졌다. 면역체계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일종으로,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성 질병이다. 대부분의 자가면역질환처럼 병의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이 씨 치료를 담당한 황성욱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은 30대와 40대에 많이 발병한다. 이 씨처럼 2주 이상 설사와 혈변, 급박변이 이어진다면 이 병을 의심해야 한다. 일찍 발견할수록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식습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황 교수는 “이 병을 악화하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기름지고 맵거나 튀긴 음식, 자극적인 음식이 70%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 듣는 약 없어 입원과 퇴원 반복황 교수는 일단 극심한 염증부터 잡기 위해 스테로이드 약물을 고용량으로 투입했다. 일반적으로 스테로이드 약은 염증을 신속하게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크다. 다만 장기간 고용량을 사용하면 신체 여러 장기가 손상되고 혈압과 혈당이 상승하며 면역 시스템 이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테로이드 약은 기한을 정해 단기간 처방하는 게 일반적이다.이 씨는 중증 중에서도 중증이었다.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황 교수는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으로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장은 증세가 개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평화롭고 안정적인 기간은 아주 짧았다. 2017년 1월, 이 씨는 증세가 다시 나타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2주 치료 후 증세가 호전되자 퇴원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증세가 악화해 입원했다. 이런 식으로 2018년 6월까지 이 씨는 모두 7회 입원해 2주씩 집중 치료를 받았다.완벽한 치료가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뚜렷한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궤양성 대장염이라면 1차로 항염증제를 쓰고, 효과가 없으면 추가로 다른 대장염 치료제를 병행 투입한다. 그래도 효과가 없다면 마지막으로 면역을 억제하는 생물학 제제(製劑)를 쓴다. 이 씨도 똑같은 절차를 거쳤다. 당시 출시돼 있던 세 종류의 생물학 제제를 모두 써 봤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황 교수는 “이런 약은 환자의 70% 정도는 효과를 본다. 이 씨는 나머지 30%에 해당했다. 쓸 약이 더 이상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문에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어쩔 수 없이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입원 치료 중일 때는 몸이 편했다. 금식하면서 장을 쉬게 해 주고 영양 수액 주사를 맞았다. 스테로이드 처방이 염증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퇴원하면 한 달 만에 어김없이 증세가 악화했다. 그러면 다시 입원하는 삶이 반복됐다. 일상생활은 엉망이 돼 버렸다. 급박변 증세가 나타나면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여벌 속옷을 가지고 다녔다. 얼마 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직접 운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다 급히 차를 세워 변을 보기도 했다. 차에 이동식 변기와 기저귀를 비치해 뒀다.이 씨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도 했다. 건강한 사람의 변을 이식하면 궤양성 대장염이 나아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됐다. 집에서 어린 아들의 변을 희석해 좌약 하듯 이식했다. 3일마다 한 달 동안 변 이식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황 교수는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확실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미리 알았다면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요법에도 의지해 봤다. 영지버섯이 좋다는 말에 열심히 달여 마셨다.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간 수치만 높아졌다. 이후 민간요법을 완전히 끊었다.장기간 스테로이드 약을 쓰면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게 뼈엉성증(골다공증)이었다. 황 교수는 “근육량이 줄어들고 마르기 시작하면서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한때 우울 증세까지 나타났다. 입원할 때 몸은 편하지만 우울함은 오히려 심했다. 이 씨는 “어린 아들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 우울함을 달랬다. 그마저도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신약 임상시험 참여하고 증세 호전더 이상 쓸 약이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검토했다. 삶이 많이 불편해질 게 빤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약물을 이대로 계속 쓸 수는 없었다. 폐렴이나 장 천공과 같은 응급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컸다. 이 씨의 고민이 깊어졌다.그러던 중 2019년 1월, 궤양성 대장염 신약이 나오면서 임상시험이 진행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상시험에 지원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약을 복용하기 전에는 매일 15회 이상 혈변을 봤는데, 신약을 쓰고 한 달 만에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다시 한 달 후에는 혈변이 하루 3회로 줄었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았는데 2개월 만에 신약 효과가 나타난 것. 2020년 이후로는 발병 이전 상태를 회복했다. 다만 신약의 부작용으로 대상포진을 5회 앓았다. 이 또한 얼마 후, 이 씨 몸 상태에 맞는 대상포진 백신이 개발되면서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됐다.지금은 신약과 항염증제만 복용하고 있다. 스테로이드 약물은 끊었다.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몸 상태를 살펴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 식습관도 바꿨다. 장을 자극할 수 있는 맵고 짜거나 기름진 음식은 되도록 피한다. 날 음식은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살짝 데쳐 먹는다. 술도 2주에 한 번꼴로 맥주 서너 잔만 마신다. 예전처럼 운동도 꾸준히 한다. 황 교수는 “환자가 어려운 상황을 잘 버티고 낙천적으로 투병했기에 지금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에게 “이 신약 말고도 다섯 종류의 신약이 더 나와 치료할 때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신약은 계속 나온다. 환자들이 끈기를 가지고 투병에 임하면 완치에 가깝게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기영 씨 궤양성 대장염 투병 일지2016년 11월설사와 혈변 증세 악화 서울아산병원에서 궤양성 대장염 진단 받고 스테로이드 치료 시작2017년 1월증세 악화로 재입원해 고용량 스테로이드 주사제 투입2017년 1월~2019년 초입원 2주 치료 후 퇴원 반복하며 총 7회 입원 모든 약물 다 썼지만 증세 개선되지 않음건강한 대변을 이식하거나 민간요법에도 의존아무런 효과 없자 대장 절제 수술 검토2019년 1월신약 임상시험 참여2019년 3월신약 투입 2개월 만에 증세가 눈에 띄게 호전 2020년 이후신약 부작용으로 대상포진 5회 앓다가 백신 접종으로 해결2025년 현재건강한 상태신약과 항염증제만 복용하며 운동 늘리고 식습관 조절 중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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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걸렸을까’ 자책않고 긍정하며 투병하니 췌장암 이겨내”[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13년 8월, 40대이던 이충구 씨(55)에게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했다. 이 씨는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스텐트 시술을 받고 위기를 넘겼다. 이후 2020년까지 약 7년간 약물 치료를 이어갔다. 이 씨는 당뇨병도 앓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건강검진도 적극 챙겼다. 덕분에 2020년 8월에는 담낭(쓸개) 벽이 두꺼워진 사실도 발견했다. 의료진은 당장은 괜찮으니 추적 관찰하자고 했다. 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4개월 후에 일이 터졌다.● 궤양인가 싶었는데 췌장암 그해 12월, 복통이 심해졌다. 이틀 동안 혈변 일종인 흑변이 나왔다.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실로 갔다. 내시경 검사에서 십이지장궤양이 확인됐다. 심혈관 스텐트를 삽입하고 장기간 항혈전제를 복용하면 간혹 부작용으로 십이지장에 궤양이나 출혈이 생기기도 한다. 이 씨가 그런 사례로 여겨졌다. 그래도 주변 장기 이상 여부는 확인해야 했다. 의료진은 복부 컴퓨터 단층(CT) 검사를 진행했다. 췌장에서 작은 혹이 발견됐다. 이재민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췌장암을 의심했다. 곧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예상한 대로 암이었다. 불과 4개월 전에 시행한 건강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교수는 “췌장암은 예후가 가장 안 좋은 암이면서, 동시에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른 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건강검진을 시행해도 췌장 CT 검사를 하지 않으면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씨에게 나타난 증세 중 흑변은 췌장암과 큰 관련이 없다. 그러나 복통은 췌장암 증세 중 하나다. 주로 명치에 통증이 나타나고 나중에는 명치 주변과 등으로 통증이 퍼져 나간다. 이 교수는 “이 씨의 통증은 배로 국한돼 있어 십이지장궤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 씨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이 무렵 그는 부친상을 비롯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체중이 쭉쭉 빠졌다. 그저 스트레스로 인한 체중 감소라고만 여겼다. 이 교수는 “췌장암 초기에는 아무런 증세가 없긴 하지만, 당시 체중 감소가 암의 징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당뇨병을 앓았고 가족력도 있었다. 당뇨병은 췌장암 유발 인자 중 하나다. 가족력이 있다면 췌장암 발병 위험도는 더 올라간다. 이 경우 췌장 건강 상태를 자주 확인하는 게 좋다.● 수술 힘들어 항암치료부터 췌장암 크기는 2.4cm였다. 아주 크지는 않은 편. 다행스럽게도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도 않았다. 이러면 췌장암 1기다. 다만 이 씨의 경우 림프절이 정상보다 커져 있었고, 주변 혈관까지 암이 침투해 있었다. 이 때문에 1기에서 2기 사이로 암의 병기(病期)를 정했다. 췌장은 크게 머리와 몸체, 꼬리 부분으로 나눈다. 발생 건수로만 놓고 보면 머리 부위에 암이 발생하는 환자가 더 많다. 이 씨는 몸체와 꼬리 부분에 발생했다. 수술은 가능한 상황. 문제는 복강 동맥과 간으로 연결된 간문맥에 암이 침투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과거에는 수술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먼저 항암치료를 해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 결정에 따라 2주마다 2박 3일간 입원해 항암치료를 하기로 했다. 총 12회로 예정하고 그날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첫 치료를 마쳤을 때 백혈구 안에 있는 호중구가 감소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 경우 감염 등의 위험이 커진다. 다행히 용량과 약제 투입 간격을 조정해 부작용을 해결했다. 2021년 2월 CT 검사에서 림프절 비대가 호전된 게 확인됐다. 췌장암 종양표지자인 CA 19-9 수치도 감소했다. 종양표지자는 암을 의심할 수 있는 척도다. 이 수치가 떨어졌다면 암 위험도도 낮아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해 3월 CT 검사에서는 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암의 혈관 침습이 크게 줄었다. 췌장암 덩어리 자체가 2.4cm에서 1.9cm로 줄었다. 항암치료가 효과를 보고 있는 것. 의료진은 12회로 예정된 항암치료를 앞당겨 종결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외과와 협진해 수술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항암치료를 7회로 끝내고 수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췌장 일부-담낭 절제그해 4월, 이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유영동 고려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교수가 집도했다. 종양이 췌장 몸통과 꼬리 부위에 있는 데다 간문맥과 닿아 있어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유 교수는 배를 여는 수술을 택했다. 배꼽 상부 명치 부위에서부터 25cm 정도 절개했다. 수술은 2시간 남짓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혈관에 붙어 있는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수술을 끝내는 데 6시간이 소요됐다. 유 교수는 “봉합을 비롯해 추가 조치를 하느라 수술 시간이 더 길어진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떼어낸 암의 크기를 재 보니 0.5cm였다. 당시 전이가 의심되던 담낭도 함께 절제했는데, 조직검사를 해 보니 여기서도 암이 발견됐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암을 제거한 셈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수술 후 재발률이 60%를 웃돈다. 이 때문에 수술 후 항암치료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해 5월부터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한 달에 3회씩, 총 6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수술 전 항암치료 때와 달리 당일 치료한 뒤 바로 퇴원하는 방식이었다. 그해 10월, 모든 항암치료를 끝냈다. CA 19-9도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수술 합병증도 없고 소화 기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22년부터는 3개월 간격으로 CT 검사를 했고, 이후 간격을 늘려 요즘은 6개월마다 검사하고 있다.● ‘역발상’으로 암과 싸워 암 치료 후 5년이 지나면 완치로 규정한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20% 내외다. 가장 치료가 힘든 암이다. 이 교수는 “올 11월 평가에서 재발 없이 안정된 상태가 확인된다면 만 5년 만인 12월에 완치 판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무난히 완치에 이를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힘든 상황이 적잖았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이 씨 심정은 어땠을까. 이 씨는 “딱 3초 동안 눈앞이 까매졌다. 하지만 내가 죄를 지어서 암에 걸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의료진 처방을 충실하게 따르면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항암치료는 쉽지 않다. 이 씨도 그랬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나갔고, 음식 삼키기도 쉽지 않았다. 식판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동치미를 함께 먹으면서 이겨냈다. 한때 100kg이 넘던 체중은 67kg로 뚝 떨어졌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 씨는 단 한 차례도 항암치료를 거르거나 미루지 않았다.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잘 참아냈다. 이런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역발상’으로 항암치료에 임했다. 암에 걸리기 전, 이 씨는 본업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 작업을 막연하게 미루고 있었다. 암과 싸우면서 다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인들과 함께 음원을 만들고 발표하는 ‘악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평소 못 했던 거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즐거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 “좌절하기보다는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즐거운 일을 하면 병이 낫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가장 생존율이 낮은 암이지만, 최근 여러 치료제가 나오고 있고 의료 기술도 발달하고 있어 치료율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며 “환자들의 긍정적 투병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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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걸렸나 자책말고 ‘긍정 투병’ 해야 암 이긴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13년 8월, 40대이던 이충구 씨(55)에게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했다. 이 씨는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스텐트 시술을 받고 위기를 넘겼다. 이후 2020년까지 약 7년간 약물 치료를 이어갔다. 이 씨는 당뇨병도 앓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건강검진도 적극 챙겼다. 덕분에 2020년 8월에는 담낭(쓸개) 벽이 두꺼워진 사실도 발견했다. 의료진은 당장은 괜찮으니 추적 관찰하자고 했다. 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4개월 후에 일이 터졌다.● 궤양인가 싶었는데 췌장암그해 12월, 복통이 심해졌다. 이틀 동안 혈변 일종인 흑변이 나왔다.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실로 갔다. 내시경 검사에서 십이지장궤양이 확인됐다.심혈관 스텐트를 삽입하고 장기간 항혈전제를 복용하면 간혹 부작용으로 십이지장에 궤양이나 출혈이 생기기도 한다. 이 씨가 그런 사례로 여겨졌다. 그래도 주변 장기 이상 여부는 확인해야 했다. 의료진은 복부 컴퓨터 단층(CT) 검사를 진행했다. 췌장에서 작은 혹이 발견됐다. 이재민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췌장암을 의심했다. 곧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예상한 대로 암이었다. 불과 4개월 전에 시행한 건강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교수는 “췌장암은 예후가 가장 안 좋은 암이면서, 동시에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른 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건강검진을 시행해도 췌장 CT 검사를 하지 않으면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씨에게 나타난 증세 중 흑변은 췌장암과 큰 관련이 없다. 그러나 복통은 췌장암 증세 중 하나다. 주로 명치에 통증이 나타나고 나중에는 명치 주변과 등으로 통증이 퍼져 나간다. 이 교수는 “이 씨의 통증은 배로 국한돼 있어 십이지장궤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 씨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이 무렵 그는 부친상을 비롯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체중이 쭉쭉 빠졌다. 그저 스트레스로 인한 체중 감소라고만 여겼다. 이 교수는 “췌장암 초기에는 아무런 증세가 없긴 하지만, 당시 체중 감소가 암의 징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당뇨병을 앓았고 가족력도 있었다. 당뇨병은 췌장암 유발 인자 중 하나다. 가족력이 있다면 췌장암 발병 위험도는 더 올라간다. 이 경우 췌장 건강 상태를 자주 확인하는 게 좋다.● 수술 힘들어 항암치료부터췌장암 크기는 2.4㎝였다. 아주 크지는 않은 편. 다행스럽게도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도 않았다. 이러면 췌장암 1기다. 다만 이 씨의 경우 림프절이 정상보다 커져 있었고, 주변 혈관까지 암이 침투해 있었다. 이 때문에 1기에서 2기 사이로 암의 병기(病期)를 정했다. 췌장은 크게 머리와 몸체, 꼬리 부분으로 나눈다. 발생 건수로만 놓고 보면 머리 부위에 암이 발생하는 환자가 더 많다. 이 씨는 몸체와 꼬리 부분에 발생했다. 수술은 가능한 상황. 문제는 복강 동맥과 간으로 연결된 간문맥에 암이 침투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과거에는 수술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먼저 항암치료를 해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 결정에 따라 2주마다 2박 3일간 입원해 항암치료를 하기로 했다. 총 12회로 예정하고 그날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첫 치료를 마쳤을 때 백혈구 안에 있는 호중구가 감소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 경우 감염 등의 위험이 커진다. 다행히 용량과 약제 투입 간격을 조정해 부작용을 해결했다.2021년 2월 CT 검사에서 림프절 비대가 호전된 게 확인됐다. 췌장암 종양표지자인 CA 19-9 수치도 감소했다. 종양표지자는 암을 의심할 수 있는 척도다. 이 수치가 떨어졌다면 암 위험도도 낮아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그해 3월 CT 검사에서는 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암의 혈관 침습이 크게 줄었다. 췌장암 덩어리 자체가 2.4㎝에서 1.9㎝로 줄었다. 항암치료가 효과를 보고 있는 것. 의료진은 12회로 예정된 항암치료를 앞당겨 종결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외과와 협진해 수술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항암치료를 7회로 끝내고 수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췌장 일부-담낭 절제그해 4월, 이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유영동 고려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교수가 집도했다. 종양이 췌장 몸통과 꼬리 부위에 있는 데다 간문맥과 닿아 있어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유 교수는 배를 여는 수술을 택했다. 배꼽 상부 명치 부위에서부터 25㎝ 정도 절개했다. 수술은 2시간 남짓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혈관에 붙어 있는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수술을 끝내는 데 6시간이 소요됐다. 유 교수는 “봉합을 비롯해 추가 조치를 하느라 수술 시간이 더 길어진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떼어낸 암의 크기를 재 보니 0.5㎝였다. 당시 전이가 의심되던 담낭도 함께 절제했는데, 조직검사를 해 보니 여기서도 암이 발견됐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암을 제거한 셈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수술 후 재발률이 60%를 웃돈다. 이 때문에 수술 후 항암치료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해 5월부터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한 달에 3회씩, 총 6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수술 전 항암치료 때와 달리 당일 치료한 뒤 바로 퇴원하는 방식이었다. 그해 10월, 모든 항암치료를 끝냈다. CA 19-9도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수술 합병증도 없고 소화 기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22년부터는 3개월 간격으로 CT 검사를 했고, 이후 간격을 늘려 요즘은 6개월마다 검사하고 있다.● ‘역발상’으로 암과 싸워암 치료 후 5년이 지나면 완치로 규정한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20% 내외다. 가장 치료가 힘든 암이다. 이 교수는 “올 11월 평가에서 재발 없이 안정된 상태가 확인된다면 만 5년 만인 12월에 완치 판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무난히 완치에 이를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힘든 상황이 적잖았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이 씨 심정은 어땠을까. 이 씨는 “딱 3초 동안 눈앞이 까매졌다. 하지만 내가 죄를 지어서 암에 걸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의료진 처방을 충실하게 따르면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라고 했다.누구에게나 항암치료는 쉽지 않다. 이 씨도 그랬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나갔고, 음식 삼키기도 쉽지 않았다. 식판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동치미를 함께 먹으면서 이겨냈다. 한때 100kg이 넘던 체중은 67kg로 뚝 떨어졌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 씨는 단 한 차례도 항암치료를 거르거나 미루지 않았다.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잘 참아냈다. 이런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역발상’으로 항암치료에 임했다. 암에 걸리기 전, 이 씨는 본업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 작업을 막연하게 미루고 있었다. 암과 싸우면서 다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인들과 함께 음원을 만들고 발표하는 ‘악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평소 못 했던 거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즐거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 “좌절하기보다는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즐거운 일을 하면 병이 낫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가장 생존율이 낮은 암이지만, 최근 여러 치료제가 나오고 있고 의료 기술도 발달하고 있어 치료율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며 “환자들의 긍정적 투병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충구 씨 췌장암 투병 일지〉2013년 8월 : 급성 심근경색 발생해 스텐트 시술. 7년 동안 약물 치료 받으며 관리2020년 8월 : 건강검진에서 담낭벽 두꺼워진 것 발견해 추적 관찰하기로2020년 12월 : 복통과 흑변으로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실행. 십이지장궤양 발견. 복부 CT 검사와 조직검사 결과 췌장암 확인. 총 12회 예정으로 수술 전 항암치료 돌입2021년 2월 : 림프절 비대 호전되고 췌장암표지자 수치도 떨어져2021년 3월 : 암 크기 많이 작아지고 혈관 침습도 개선돼 수술하기로 결정2021년 4월 : 췌장 일부 절제. 함께 절제한 담낭에서도 암 발견. 수술 후 항암치료 돌입2021년 10월 : 수술 후 항암치료 종결. 정기적으로 암 재발 및 전이 여부 확인2025년 6월 현재 : 재발과 전이 징후 없음. 11월 검사 결과 이상 없으면 12월에 ‘완치’ 판정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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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대가 돌연 고혈압?… 자율신경계 문제일 수도”[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21년 11월, 당시 중학교 1학년 김하영 양(16)은 제1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다. 그 후 가슴과 윗배에 통증이 나타났다. 숨 쉴 때마다 통증은 더 심해졌다. 밤잠을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깬 적도 있다. 평소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은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증세는 더 심해졌다. 결국 백신 접종 일주일 만에 한양대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백신 부작용으로 판단했다. 통증을 줄이는 치료를 했다. 하영 양은 3일 만에 퇴원했다. 하지만 백신 부작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 두통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2022년 들어서도 네 번 더 입원해 백신 부작용 치료를 받았다. 2∼4일씩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그해 5월 중순 통증이 사라졌다. 더 이상 병원에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다. ● 갑작스레 나타난 고혈압과 빈맥 7개월이 흘렀다. 2022년 12월, 두통이 다시 생겼다. 다만 양상이 과거와 달랐다. 예전에는 잠깐 편두통처럼 아팠다가 진통제를 먹으면 나았다. 이번에는 정수리 부위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처럼 아팠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영 양 부모는 혹시나 해서 혈압을 측정했다. 수축기 혈압이 130㎜Hg, 확장기 혈압이 81㎜Hg로 나왔다. 성인의 경우 수축기 120㎜Hg 미만, 확장기 80㎜Hg 미만일 때 정상 혈압으로 본다. 하영 양 혈압 수치는 고혈압 전 단계에 속한다. 성인 기준을 따른다면 아직 위험한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영 양을 치료한 나재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고혈압 유발 요인이 전혀 없는 10대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혈압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음주와 흡연도 하지 않고 비만보다는 오히려 마른 체형에 더 가까우며, 부모 모두 고혈압과 무관해 가족력도 없는 하영 양의 경우 고혈압이 생길 이유가 없다는 것. 이 또한 백신 부작용이었을까. 나 교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백신 부작용으로 고혈압이 생기는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대표적 부작용인 가슴과 복부 통증은 오히려 사라졌기 때문. 게다가 이때부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빈맥과 같은 부정맥 증세도 나타났다. 나 교수는 “최초 6개월까지는 백신 부작용이지만 이때부터는 백신 부작용과는 관련이 없다. 새로운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자율신경계 부전 진단 나 교수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하영 양을 입원시킨 뒤 여러 검사를 시행했다. 하지만 모든 검사에서 정상 소견이 나왔다. 고혈압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나 교수는 자율신경계 부전을 의심했다.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혈압이 높아지고 빈맥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자율신경계 부전은 말 그대로 자율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건강하다면 우리 몸은 스스로 혈압과 맥박 등을 조절한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서로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이 시스템이 고장 나기도 한다. 그 결과 갑자기 혈압이 치솟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때로는 정신을 잃기도 한다. 물론 정반대로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증세는 분명 위급해 보이는데 많은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의 경우 50대 이후에 발생 확률이 올라간다. 기저 질환이 있다면 그 질병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 10대 청소년에게서도 종종 발생하는데, 기저 질환이 없어도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원인을 알 수 없다. 특히 10대의 경우 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나 교수는 “늦지 않고 제대로 치료만 하면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이 된 후 대부분 개선돼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일시적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적잖다. 그러면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 8개월 동안 17회 입원 나 교수는 우선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을 투입하고 경과를 지켜봤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기 전에 혈압이 떨어졌다. 나 교수는 고혈압 약을 처방한 뒤 퇴원시켰다. 이후 3개월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 2023년 3월, 갑자기 두통이 또 시작됐다. 정수리를 짓누르는 그 두통이었다. 이번에는 강도가 더 셌다.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기도 했다. 코피가 날 때도 있었다. 다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후 퇴원했지만 나흘이 지나서 다시 같은 증세로 입원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하영 양은 그해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17회 입원 치료를 받았다. 나 교수는 ‘베타차단제’ 계열 약물을 썼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 가운데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흥분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교감신경의 ‘베타수용체’를 차단하면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혈압이 낮아지고 심장 부담도 줄어드는 것. 다만 교감신경 활동을 너무 차단하면 반대로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저혈압이 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가장 적합한 약을 용량에 맞춰 투입하는 게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여러 약물을 교차로 처방하기도 했다. 고혈압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혈압은 더 높아졌다. 나중에는 수축기 혈압이 190㎜Hg까지 올라갔다. 정신을 잃어 응급실로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코피도 자주 났는데, 나중에는 약으로 지혈되지 않아 코 안쪽 혈관을 전기로 지져야 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몸 상태는 더욱 악화했다. 원래 하영 양은 편도가 조금 비대한 편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편도는 더 부어올랐다. 열도 더 많이 올랐고, 혈압도 치솟았다. 심장박동도 더 빨라졌다. 이런 고통을 줄이기 위해 비대해진 편도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목은 많이 편해졌지만, 항생제 부작용이 나타났다. 장염이 심해졌고, 그 여파로 맹장염까지 걸렸다. 하영 양은 “2023년 한 해는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는 기억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 사실상 완치, 유학 앞둬 2023년 10월, 하영 양은 퇴원했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재입원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 교수는 “정말 길고도 힘든 투병이었다. 무엇보다 잘 버텨 준 하영 양과, 의료진을 끝까지 믿어준 부모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 모두 지치기 쉽다”고 덧붙였다. 그해 하영 양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출석 일수를 채울 수 없었다. 마침 한양대병원이 청소년 항암 환자들을 위해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는데, 이 수업에 참석하면 출석 일수를 채운 것으로 인정됐다. 나 교수의 추천으로 병원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수업 일수를 채웠고, 하영 양은 친구들과 똑같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하영 양은 국내 고교로 진학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딱 한 번 혈압이 190㎜Hg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로는 정상을 되찾았다. 나 교수는 “일시적으로 그런 증세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때를 제외하고 혈압은 항상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다른 이상 증세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혹시 모를 증세에 대비해 상비약을 휴대하고 다니기는 한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하영 양은 간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올 8월 미국 대학에 진학한다. 투병 과정에서 간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단다. 그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응원과 따뜻한 격려를 정말 많이 받았다. 나도 나중에는 아픈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학 중에 문제는 생기지 않을까. 나 교수는 “청소년기에 자율신경계 부전은 1∼2년 동안 몰아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미 1년 넘게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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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대가 돌연 고혈압?…자율신경계 문제일 수도” [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21년 11월, 당시 중학교 1학년 김하영 양(16)은 제1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다. 그 후 가슴과 윗배에 통증이 나타났다. 숨 쉴 때마다 통증은 더 심해졌다. 밤잠을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깬 적도 있다. 평소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은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증세는 더 심해졌다. 결국 백신 접종 일주일 만에 한양대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백신 부작용으로 판단했다. 통증을 줄이는 치료를 했다. 하영 양은 3일 만에 퇴원했다. 하지만 백신 부작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 두통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2022년 들어서도 네 번 더 입원해 백신 부작용 치료를 받았다. 2~4일씩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그해 5월 중순 통증이 사라졌다. 더 이상 병원에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다. ● 갑작스레 나타난 고혈압과 빈맥7개월이 흘렀다. 2022년 12월, 두통이 다시 생겼다. 다만 양상이 과거와 달랐다. 예전에는 잠깐 편두통처럼 아팠다가 진통제를 먹으면 나았다. 이번에는 정수리 부위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처럼 아팠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영 양 부모는 혹시나 해서 혈압을 측정했다. 수축기 혈압이 130㎜Hg, 확장기 혈압이 81㎜Hg로 나왔다. 성인의 경우 수축기 120㎜Hg 미만, 확장기 80㎜Hg 미만일 때 정상 혈압으로 본다. 하영 양 혈압 수치는 고혈압 전 단계에 속한다. 성인 기준을 따른다면 아직 위험한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영 양을 치료한 나재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고혈압 유발 요인이 전혀 없는 10대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혈압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음주와 흡연도 하지 않고 비만보다는 오히려 마른 체형에 더 가까우며, 부모 모두 고혈압과 무관해 가족력도 없는 하영 양의 경우 고혈압이 생길 이유가 없다는 것. 이 또한 백신 부작용이었을까. 나 교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백신 부작용으로 고혈압이 생기는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대표적 부작용인 가슴과 복부 통증은 오히려 사라졌기 때문. 게다가 이때부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빈맥과 같은 부정맥 증세도 나타났다. 나 교수는 “최초 6개월까지는 백신 부작용이지만 이때부터는 백신 부작용과는 관련이 없다. 새로운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자율신경계 부전 진단나 교수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하영 양을 입원시킨 뒤 여러 검사를 시행했다. 하지만 모든 검사에서 정상 소견이 나왔다. 고혈압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나 교수는 자율신경계 부전을 의심했다.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혈압이 높아지고 빈맥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자율신경계 부전은 말 그대로 자율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건강하다면 우리 몸은 스스로 혈압과 맥박 등을 조절한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서로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이 시스템이 고장 나기도 한다. 그 결과 갑자기 혈압이 치솟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때로는 정신을 잃기도 한다. 물론 정반대로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증세는 분명 위급해 보이는데 많은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의 경우 50대 이후에 발생 확률이 올라간다. 기저 질환이 있다면 그 질병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 10대 청소년에게서도 종종 발생하는데, 기저 질환이 없어도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원인을 알 수 없다. 특히 10대의 경우 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나 교수는 “늦지 않고 제대로 치료만 하면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이 된 후 대부분 개선돼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일시적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적잖다. 그러면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 8개월 동안 17회 입원나 교수는 우선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을 투입하고 경과를 지켜봤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기 전에 혈압이 떨어졌다. 나 교수는 고혈압 약을 처방한 뒤 퇴원시켰다. 이후 3개월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2023년 3월, 갑자기 두통이 또 시작됐다. 정수리를 짓누르는 그 두통이었다. 이번에는 강도가 더 셌다.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기도 했다. 코피가 날 때도 있었다. 다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후 퇴원했지만 나흘이 지나서 다시 같은 증세로 입원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하영 양은 그해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17회 입원 치료를 받았다. 나 교수는 ‘베타차단제’ 계열 약물을 썼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 가운데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흥분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교감신경의 ‘베타수용체’를 차단하면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혈압이 낮아지고 심장 부담도 줄어드는 것. 다만 교감신경 활동을 너무 차단하면 반대로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저혈압이 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가장 적합한 약을 용량에 맞춰 투입하는 게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여러 약물을 교차로 처방하기도 했다. 고혈압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혈압은 더 높아졌다. 나중에는 수축기 혈압이 190㎜Hg까지 올라갔다. 정신을 잃어 응급실로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코피도 자주 났는데, 나중에는 약으로 지혈되지 않아 코 안쪽 혈관을 전기로 지져야 했다.감기라도 걸리면 몸 상태는 더욱 악화했다. 원래 하영 양은 편도가 조금 비대한 편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편도는 더 부어올랐다. 열도 더 많이 올랐고, 혈압도 치솟았다. 심장박동도 더 빨라졌다. 이런 고통을 줄이기 위해 비대해진 편도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목은 많이 편해졌지만, 항생제 부작용이 나타났다. 장염이 심해졌고, 그 여파로 맹장염까지 걸렸다. 하영 양은 “2023년 한 해는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는 기억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 거의 완치, 유학 앞둬2023년 10월, 하영 양은 퇴원했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재입원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 교수는 “정말 길고도 힘든 투병이었다. 무엇보다 잘 버텨 준 하영 양과, 의료진을 끝까지 믿어준 부모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 모두 지치기 쉽다”고 덧붙였다. 그해 하영 양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출석 일수를 채울 수 없었다. 마침 한양대병원이 청소년 항암 환자들을 위해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는데, 이 수업에 참석하면 출석 일수를 채운 것으로 인정됐다. 이 교수의 추천으로 병원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수업 일수를 채웠고, 하영 양은 친구들과 똑같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하영 양은 국내 고교로 진학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딱 한 번 혈압이 190㎜Hg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로는 정상을 되찾았다. 나 교수는 “일시적으로 그런 증세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때를 제외하고 혈압은 항상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다른 이상 증세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혹시 모를 증세에 대비해 상비약을 휴대하고 다니기는 한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하영 양은 간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올 8월 미국 대학에 진학한다. 투병 과정에서 간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단다. 그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응원과 따뜻한 격려를 정말 많이 받았다. 나도 나중에는 아픈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학 중에 문제는 생기지 않을까. 나 교수는 “청소년기에 자율신경계 부전은 1~2년 동안 몰아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미 1년 넘게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하영 양 자율신경계 부전 투병 일지▽ 2011년 11월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흉통과 상복부 통증 호소한양대병원 입원▽ 2011년 11월 ~ 2022년 5월6개월 동안 5회 입원하며 백신 부작용 치료▽ 2022년 12월심한 두통과 고혈압으로 재입원여러 검사 결과 원인 찾지 못하자 자율신경계 부전 치료 시작.▽ 2023년 3월 ~ 2023년 10월8개월 동안 17회 입원하며 자율신경계 부전 치료혈압 190㎜Hg까지 상승하고 실신하기도편도 비대 수술 시행 후 장염과 맹장염 앓기도혈압이 안정적으로 유지돼 입원 치료 종결▽ 2025년 현재고혈압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며 건강 상태 유지해외 생활도 가능해 8월 유학 예정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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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천히 달려도, 빨리 걸어도 질병 예방 효과는 비슷”[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50대 직장인 주상현 씨(가명)는 최근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만 빠른 속도로 달리지는 않는다. 일상적인 걷기와 비슷하거나 살짝 빠른 속도다. 느리게 달리는, 이른바 ‘슬로우 조깅’이다. 주 씨는 2주에 1회 이상 5km에서 7km까지 달린다. 이처럼 느리게 달릴 때도 건강 증진 효과가 클까. 주 씨는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체중이 빠지진 않았지만, 체력 유지에는 좋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주 씨는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오래 달릴 수 있는 것을 느리게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앞으로 속도를 조금 더 높이고 횟수도 늘릴 계획이다. 요즘 달리기 열풍이 거세지만 여전히 걷기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두 종목의 장단점을 이병찬 중앙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가 분석했다. ● 느리게 달릴까, 빨리 걸을까 이 교수는 운동 강도를 저강도, 중강도, 고강도로 분류했다. 고강도 달리기는 1km를 6∼7분에 주파할 정도, 즉 시속 8∼9km다. 이런 속도로 달리면 빠르게 걷는 것보다 운동량이 상당히 많다. 부상 위험도 크지 않을까. 이 교수는 “달릴 때 무릎과 발목이 다친다는 것은 오해다. 제대로 자세를 잡고 달린다면 부상 위험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강도 달리기는 훈련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평균 시속 6km 내외의 느리게 달리기가 좋다. 속도만 놓고 보면 시속 6km 내외로 빨리 걷는 것과 똑같은 중강도 운동이다. 미국 심장학회·심장협회도 이 두 가지를 중강도 유산소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강도가 비슷하니 두 방식의 건강 증진 효과도 비슷하다. 이 교수는 “여러 연구 결과 1주일에 최소한 150분 이상 중강도 운동을 수행하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과 사망률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빨리 걷든, 느리게 달리든 효과가 같으니 1주일에 150분 이상 운동 시간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다만 똑같은 속도라 해도 달릴 때 에너지 소모량이 많다. 달리려면 두 발 모두가 공중에 떠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 발을 땅에 딛고 있을 때보다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따라서 빠른 체중 감량을 원한다면 빨리 걷기보다 느리게 달리기가 유리하다. 단, 부상의 위험은 달릴 때 더 커진다. 노인이나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빨리 걷기가 더 좋을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다. 걷든 달리든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 정도까지 지속해야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속 6km 내외로 빨리 걷는데도 숨이 차지 않는다면 강도를 높이는 게 좋다. ● 적당한 운동 강도는? 고강도를 지속하다가 잠시 강도를 낮췄다 다시 강도를 높이는, 이른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을 시도할 수도 있다. 이를 중강도로 오래 운동하는 ‘중강도 지속 트레이닝’과 효과를 비교하면 어떨까. 이 교수는 “해외 여러 연구 결과 운동량이 동일(같은 칼로리 소모)하다면 건강 증진 효과의 차이는 없었다”고 말했다.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기 힘든 초보자라면 중강도로 좀 더 길게 해서 원하는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초보자는 중강도 지속 트레이닝에 도전하는 게 좋다. 지속적으로 빨리 걷거나, 빨리 걷다가 느리게 달리는 식으로 변화를 주는 방법 등이 있다”고 말했다. 시속 4km 내외의 저강도로 낮추는 대신 오래 걸을 때도 건강 증진 효과가 클까. 이 교수는 “이런 방식은 두드러질 정도로 심혈관계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심장학회 지침에 따르면 1주일에 최소한 150분 중강도 유산소 운동, 혹은 75분 고강도 유산소 운동을 해야 심혈관계 건강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저강도의 운동이라면 오래 걷는다고 해도 에너지 소모량은 늘릴 수 있지만 심혈관계 건강 증진 효과는 작을 수 있다는 것. 다만 이 교수는 “최근 들어 오래 앉아 있을수록 심혈관 질환 위험과 사망률, 치매, 인지기능 저하 등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보고됐다.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면 이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이 경우 천천히 오래 걷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능하면 빨리 걷는 게 좋지만 그게 안 되면 느린 속도로 오래 걷기라도 하라는 뜻이다. ● 매일 운동할까, 주말에만 할까 매일 30분씩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란 사실은 다 안다. 만약 평일에는 운동하지 않다가 주말 이틀에 몰아서 운동하면 어떨까. 이 교수는 2023년과 올해 각각 발표된 해외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다만 1주일에 최소한 150분의 중강도 운동을 해 주면 된다”고 말했다. 당시 연구는 주중에 운동을 분산해서 하는 사람들과 주말에 운동량을 몰아서 할 때 심혈관계 질환과 당뇨병 예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심방세동, 심근경색, 심부전, 뇌중풍(뇌졸중), 당뇨병의 예방 효과는 두 방식 모두에서 비슷했다. 이 교수는 “이 연구 결과가 제시하는 바는 명확하다. 분산하든 몰아서 하든 운동 목표량을 채우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1회 운동 지속시간은 최소한 10∼15분을 넘겨야 한다. 10분 미만의 운동은 심혈관 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러 조합이 가능해진다. 매일 출퇴근할 때 각각 15분씩만 빨리 걷는다면 주말이나 휴일에 운동하지 않아도 목표량은 채울 수 있다. 출퇴근할 때 정거장 2개의 거리만 빨리 걷거나 느리게 달려도 운동량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평일에 너무 바쁘다면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75분씩 운동해 주면 역시 목표량을 채우게 된다. 다만 이 교수는 “주말에 몰아서 할 경우 부상 위험도 커지니 되도록 분산해 운동할 것을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주 2회 이상 근력운동을 할 것을 주문했다. 다만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몸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 이틀(48시간) 간격을 두고 근력운동을 할 것을 권했다. 이 교수는 “노인이 됐을 때 근감소증이 나타나는 것을 막으려면 중년 때부터 충분히 근력운동을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만성질환자는 어떻게 운동할까고혈압, 당뇨 등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에 대해 이 교수는 “환자가 선호하는 운동을 선택하며 운동 빈도와 강도, 운동 시간을 모두 고려해 처방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유산소 운동은 중강도를 권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속도는 달라질 수 있다. 숨이 차지만, 주변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강도로 걷거나 달리면 된다. 유산소 운동은 매일 30∼60분 정도 시행하는 게 좋다. 연속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어렵다면 10분 단위로 끊어서 해도 된다. 만성질환자의 경우 근력운동도 필수적이다. 자신이 들 수 있는 최대 무게의 60∼80% 정도가 좋다. 가슴 운동이나 코어 운동, 허벅지 운동처럼 큰 근육 운동을 하는 게 좋다. 8∼12회를 1세트로 하되 2세트 혹은 3세트를 하는 게 좋다. 고혈압 환자의 경우 근력운동이 혈압을 높이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이 교수는 “근력운동도 의사와 상담을 한 후 적당한 강도로 하면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당뇨병 환자는 운동 중에 저혈당이 올 수 있어 식후 한두 시간의 시점에서 운동하는 게 좋다. 저혈당에 대비해 간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당뇨병 환자 또한 중강도의 유산소 운동이 좋다. 족부 질환의 위험이 있다면 폭이 넓고 푹신한 신발을 신는 게 좋다. 이런 당뇨 환자나 고령자 환자의 경우 실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다. 스트레칭도 필수다. 운동 전의 스트레칭은 근육의 가동 범위를 넓혀주며 유연성을 높여 운동 효과를 높인다. 부상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보통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을 각각 10∼15분 하도록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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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차고 다리 부었다고요? 당장 심부전 검사 받으세요”[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60대 초반 남성 박기찬 씨(가명)는 몇 달 전 갑자기 숨이 찼다. 고혈압이 있었지만 약을 꾸준히 먹었기에 그게 원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서너 달 만에 증세가 심해졌다. 숨은 더 차올랐다. 몸도 붓기 시작했다. 박 씨는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했다. 이찬주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부전(心不全) 진단을 내렸다. 원인은 심장판막에 있었다. 승모판막이 망가져서 혈액이 역류하고 있었던 것. 심장에 가해지는 압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교수가 진단할 당시 박 씨 심장은 물풍선처럼 늘어나 있었다. 현재 박 씨는 이뇨제를 비롯해 여러 약물을 쓰면서 심장 기능을 살리는 치료를 받고 있다. 심장 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판막 수술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박 씨가 고혈압은 충실히 관리했지만, 판막 질환을 의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부전이 악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 고령화로 심부전 환자 증가 심장은 매일 10만 회 이상 펌프질하며 혈액과 영양소를 온몸에 보낸다. 심장에 고장이 나면 펌프질도 잘 못하고 혈액과 영양소도 내보내지 못한다. 이것이 심부전이다. 심부전은 치료하지 않으면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악화한다. 말기 심부전의 경우 1년 이내 사망률이 50%를 넘어선다. 이 교수는 “모든 순환기 계통과 심장질환의 종착역이 심부전”이라고 말했다. 심부전이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심근경색과 협심증이다. 심장벽이 두꺼워지는 비후성 심근병증, 확장 심장도 심부전 원인이다. 대동맥판 협착이나 판막 질환도 심부전을 유발한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심부전 환자는 크게 늘고 있다. 이 교수는 “70세 이상의 경우 10% 정도는 심부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 질병에 대한 일반의 이해도는 낮다. 관련 학회가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명 중 1명이 ‘심부전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심부전 환자 절반 이상에서 심장 맥박이 불규칙한 부정맥이 발견된다. 부정맥은 심부전을 더 악화시키는,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들어 젊은 심부전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 교수는 “젊다고 해도 고혈압과 비만이 있다면 갑자기 심장에 과부하가 가해지면서 심부전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 심부전이라고 하면 심장이 뛰지 않는 상태만 떠올린다. 아니다. 혈액을 내보낼 때의 심박출률(心搏出率)이 정상치의 50% 미만이면 심부전으로 진단한다. 간혹 심박출률이 정상인데 심부전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심박출률만으로 병을 진단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 교수는 “이외에도 여러 증세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심부전으로 진단한다”고 말했다. ● 이런 증세 나타나면 위험 심부전이 의심되는 증세를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우선, 숨이 찬다. 오르막길을 걸을 때 특히 더 숨이 차다. 중간에 쉬지 않으면 언덕을 넘어가기 어렵다. 몇 계단 오르지 않았는데도 무척 힘이 든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숨쉬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 교수는 “이 정도까지 방치한다면 심부전이 상당히 심한 상태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증세는 폐질환이나 심리적 문제가 원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태다. 둘째, 다리가 붓는다. 심장 펌프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심장에서 가장 먼 부분에 있는 혈액을 끌어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력 때문에 혈액은 다리에 쌓인다. 이른바 울혈(鬱血)이 생기는 것. 처음에는 오래 앉아 있을 때만 다리가 붓는다. 잘 때 다리를 벽에 올리고 자면 부기가 빠진다. 점점 심해지면 손가락으로 정강이뼈 주변 살을 눌렀을 때 움푹 팬 부분이 복원되지 않는다. 셋째, 누우면 기침이 자주 나오고 호흡이 더 어렵다. 앉거나 서 있을 때는 증세가 덜 하다. 이는 심부전으로 인해 폐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폐 X레이를 찍어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물이 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누우면 중력에 따라 물이 폐 뒤쪽에 고이게 되고, 물이 차 있는 만큼 순환하는 산소량이 적기 때문에 기침을 자주 하게 된다. 심부전을 의심할 만한 증세는 더 있다. 목 부위 혈관(경정맥)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혈액이 심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심장판막에 문제가 있거나 심장 자체 기능이 떨어지면 혈액 순환이 안 되고 그 부위 혈관만 툭 튀어나오는 것. 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해 장의 점막이 붓기도 한다. 이 경우 장 기능이 심하게 떨어진다. 몸 안에 부종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체중이 늘어나는 것도 심부전 증세다. 심부전이 심하면 간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간부전이 온다. 이 경우 피로감이 너무 심해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진다. ● 원인에 맞춰 치료 심장 펌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에 불필요하게 많은 체액이 몸에 쌓인다. 이 체액을 처리하려면 심장은 그만큼 더 무리하게 된다. 따라서 처음에는 심장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몸에 남은 체액을 빼낼 수 있도록 이뇨제를 쓴다. 동시에 심장이 나빠지는 여러 이유를 찾아 그에 맞는 약물을 처방한다. 과도한 교감신경을 차단해 심장 박동을 늦추고 압력을 줄이면서 심장을 달래 주거나 혈압을 낮추는 약물을 쓰기도 한다. 심부전 환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건강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고 해서 약을 끊으면 안 된다. 이 경우 50%는 6개월 이내에 다시 악화한다. 약을 꾸준히 먹는다면 20∼30%는 건강을 회복한다. 이 교수는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나머지 환자들도 사망 위험을 줄이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치료 목표”라고 설명했다. 혈관이 좁아진 게 원인이라면 스텐트 시술을 하기도 한다. 판막이 망가졌으면 인공판막을 삽입한다. 심부전 말기에는 심장 기능을 대신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에크모라는 생명 유지 장치를 쓰거나 인공 펌프 비슷한 것을 넣어 이른바 인공심장 역할을 하게 한다. 심부전은 돌연사의 주범이기도 하다. 부정맥 중에서 심실세동, 심실빈맥 같은 치명적 질환은 발생 후 몇 분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 심실세동과 심실빈맥은 심부전일 때 4∼5배까지 발생 위험이 커진다. 이를 막기 위해 심장이 멈췄을 때 자동 전기 충격을 주는 장치를 삽입하기도 한다. 3개월 이상 심부전 치료를 받았는데 심장 기능이 회복되지 않고, 돌연사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는 환자에게는 이 장치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 평생 생활 습관 관리해야 이 교수는 “암은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반면 심부전은 생활 습관 영향이 무척 크다”고 말했다. 가령 심부전 환자의 80%가 고혈압을 앓고 있을 때, 심부전을 예방하려면 고혈압 관리는 필수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고혈압을 방치했다가 심부전으로 응급실에 실려 온 50대 중반 남성 김석진 씨(가명) 사례를 들려줬다. 김 씨는 평소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별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원에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 호흡이 곤란해지고 다리가 퉁퉁 부었다. 응급실에서 심장초음파 검사를 해 보니 심박출률이 20%에 불과했다. 혈압도 180/110㎜Hg으로 상당히 높았다. 폐에도 물이 차 있었고 콩팥 기능도 50%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이 교수는 이뇨제, 혈압강하제, 심부전 치료제를 투여했다. 다행히 부기도 빠지고 체액량이 줄어들면서 혈압도 떨어져 김 씨는 1주일 후 퇴원할 수 있었다. 4개월 후에는 예전 건강을 되찾았다. 이 교수는 “결과는 좋았지만, 만약 김 씨가 평소 고혈압을 관리했더라면 응급 상황을 맞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평소 건강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부전을 예방하려면 혈압 외에도 관리해야 할 게 많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되 과식을 피하면서 체중을 조절해야 한다. 유산소 운동은 매주 3회 이상은 하는 게 좋다. 담배는 끊어야 하고, 스트레스를 잘 다스려야 한다. 이 교수는 “이 예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실천에 있다. 아는 것보다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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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상 ‘사망선고’ 받았던 가수 유열, 폐이식 후 ‘삶’을 찾았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유열 씨(63)는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다. 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이자 라디오 프로그램 DJ로도 활약했다. 2017년 이후 유 씨의 방송 활동이 뜸해지더니 투병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7월, 유 씨는 서울대병원에서 폐 이식을 받아 제2의 삶을 시작했다. 폐 이식 수술을 집도한 박샘이나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와 내과 진료를 담당하는 박지명 호흡기내과 교수, 그리고 유 씨가 만났다. ● ‘드문 형태 폐섬유증’ 진단 병의 징후가 처음 나타난 건 2017년이었다. A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폐섬유증인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다른 폐질환 흔적일 수도 있어 확진을 내리지는 못했다. 의사는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한동안 별다른 증세는 생기지 않았다. 2019년 5월 폐렴으로 B 병원에 급히 입원했다. 열은 40도에 육박했고 5일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B 병원 의료진은 폐암을 의심했는데, 조직검사 결과 폐섬유증으로 확인됐다. 폐섬유증은 폐에 염증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폐가 굳는 병이다. 폐의 활동 공간이 줄어들어 기능이 떨어진다. 심해지면 호흡 자체가 힘들어진다. 일단 발병하면 정상 상태로 회복하기 어렵다. 섬유화 과정을 늦추는 약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갈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유 씨는 설상가상으로 폐섬유증에 ‘흉막폐실질 탄력섬유증’이란 질병까지 겹쳐 치료가 더 어려운, 매우 드문 사례였다. 폐섬유증은 증가 추세다. 이 병을 예방할 수는 없을까. 박지명 교수는 “금연하고 분진이나 매연, 미세먼지 같은 유해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라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이 병을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발병 원인을 콕 찍어서 밝혀내기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로 유 씨는 금연한 지 25년이 넘었다. 폐렴이 폐섬유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 건 아닐까. 박 교수는 “이때 이미 폐섬유증이 진행되고 있었고, 그 증세로 폐렴이 나타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사망 선고’까지 받아 이 무렵 증세는 나타나고 있었다. 목이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굵직했던 목소리가 얇아지기 시작했다. 가래가 목에 낀 것처럼 탁한 소리도 나왔다. 무엇보다 숨이 찼다. 유 씨는 “2019년 ‘유열의 음악 앨범’ 영화 시사회 당시 소감을 발표할 때 이미 숨이 많이 찼다”라고 회상했다. 동시에 기침도 잦아졌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금세 지쳤다. 나중에는 계단도 오르기 힘들 정도로 숨이 차고 기운도 없어졌다. 공황장애 조짐도 나타났다. 유 씨는 “숨이 잘 안 쉬어지니까 아무리 침착하려 해도 두려움과 공포감은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됐다. 2∼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항섬유화 약물을 처방받았다. 이 약물은 병의 진행을 늦추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증세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호흡 곤란은 더 심해졌고 기침도 늘었다. 체중은 65kg에서 50kg으로 떨어졌다. 박지명 교수는 “호흡 곤란과 기침, 가래 등은 폐섬유증의 대표적 증세다. 다만 체중 감소와는 큰 관련이 없는데, 이는 유 씨가 드문 형태의 폐섬유증이어서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폐섬유증은 평균 생존율이 3∼4년으로 짧은 편이다. 유 씨는 B 병원에서 약 5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 평균 생존율은 넘겼지만, 건강해진 건 아니었다. 간신히 호흡만 유지할 정도였다. 폐 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유 씨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어 이식 성공 확률이 매우 낮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의사는 유 씨 아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말했다. 연명치료 의향이 있느냐고까지 물었다. 사실상 ‘사망 선고’였다. ● 기적적으로 폐 이식에 성공 지난해 5월 유 씨는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박샘이나 교수가 포함된 서울대병원 폐 이식팀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은 데다 지인이 2년 전 이곳에서 똑같은 폐 이식 수술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입원 당시 상황에 대해 박지명 교수는 “하루하루가 응급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워 에크모라는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야 했다. 박 교수는 “버틸 수 있는 기간을 3개월 정도로 봤다. 그 전에 뇌사자 장기가 나와야 수술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유 씨도 “한때는 2∼3일을 버티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체중은 40kg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걸까. 그해 7월, 뇌사자 장기가 확보됐다. 하지만 돌연 장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낙담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행운이 다시 찾아왔다. 얼마 후 다시 건강한 폐가 확보됐다. 박샘이나 교수는 “혈액형에 따라 대기 기간이 다르다”고 말했다. 수혈 환경이 가장 수월한 AB형은 3개월 정도다. A형과 B형은 6개월, O형은 1∼2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유 씨는 AB형이었다. 덕분에 곧바로 폐 이식이 가능했던 것. 박 교수는 “사후 장기 기증이 더 활발해지면 그만큼 대기 기간이 줄어들어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취 시간 1시간을 포함해 6시간이 넘는 큰 수술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수술의 경우 가로로 길게 가슴뼈를 잘라내야 했다. 박 교수는 양쪽 갈비뼈 사이로 10∼12cm만 절개해 장기를 이식했다. 흉강경 수술 장비는 그 밑으로 2개씩 구멍을 뚫어 집어넣었다. 수술 결과는 아주 좋았다. 인공호흡기도 이틀 만에 뗐다. 하지만 당장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늘려 호흡이 원활해지도록 하는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매일 30분∼1시간씩 재활 치료를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유 씨가 스스로 걸어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한 달 후부터는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됐다. 10월이 되자 몸이 좋아졌다. 폐 기능도 60∼70%까지 돌아왔다. 길게 말하게 됐고 원래 목소리도 돌아왔다. 식욕도 좋아졌다. 드디어 유 씨는 퇴원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후 장기 기증” 박샘이나 교수는 “폐를 이식한 후 1년 동안 정상 유지되면 잘 적응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유 씨는 폐를 이식받고 10개월이 지났다. 박지명 교수는 “현재 추이로 보면 더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씨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 기도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특히 의료진과 병동에 있던 환자들은 모두 한 가족처럼 응원해 줬다. 유 씨 아내는 “남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교수님이 수시로 들러 살폈다. 정말 감사하고 든든했다”고 말했다. 두 교수는 “유 씨는 정말 모범적 환자다.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다. 그런 부분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수술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 유 씨는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걸으려고 했고 식사를 챙겨 먹으려 했다. 유 씨는 재활 치료에도 적극적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3분도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횟수를 차츰 늘려 나갔다. 이후 서 있기를 시도했다. 열 걸음을 걷고 쉬었다가 백 걸음으로 늘렸다. 이렇게 하면서 체력을 회복해 나갔다. 퇴원한 후로는 매일 1km 정도를 걷는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도 잊지 않는다. 매일 1시간 정도는 반드시 운동한다. 초등학생 아들과 탁구도 하고 다른 공놀이도 한다. 아들이 아빠의 재활 훈련을 돕고 있는 셈이다. 수술 직전 40kg이던 체중이 지금은 55kg까지 늘어났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유 씨는 수술 직후부터 감사 일지를 썼다. 매일의 삶이 감사하다며 활짝 웃었다. “폐를 기증해 준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은혜를 갚기 위해서 저와 제 아내도 사후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습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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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간 방심에 잘린 손가락, 5시간 만에 접합해 되살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작업장에서는 사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순간 방심했다가 신체 일부가 기계장치 안으로 딸려 들어갈 수도 있다. 특히 손가락이나 손목이 잘릴 위험이 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손가락 및 손목 절단 사고는 매년 1만1000여 건 발생한다. 손가락 한두 개 없다고 해서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해진다.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절단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하게 대처하면 신체 접합과 회복이 가능하다. 오토바이 정비사 박해일 씨(36)가 그랬다. ● 아차 하는 순간 손가락 끼어 박 씨는 오랫동안 오토바이 정비 일을 해 왔다. 정비 일을 마치면 택배 아르바이트도 했다. 몸이 힘들기는 했지만 가장으로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되도록 오토바이 정비를 빨리 끝내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5년 전이었다. 아는 형이 오토바이 정비하다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로소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경각심은 반짝 생겼다가 곧 사라졌다. 그해 4월, 결국 오토바이를 점검할 때 사고가 터졌다. 엔진의 힘을 전달하는 체인을 들여다볼 때였다. 체인이 돌아가기 때문에 시동을 끈 상태로 정비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빨리 끝내려는 마음도 들었다. 시동을 켠 채 체인에 손을 댔다. 주의를 덜 기울여서도, 한낮이라 졸려서도 아니었다. 눈 깜짝할 새에 왼손 엄지손가락이 체인으로 빨려 들어갔다. 당황스러웠다. 손가락을 빼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팔에 힘을 줘 빼냈다. 하지만 ‘뚝’하는 느낌도 함께 전해졌다. 엄지손가락 첫 번째 마디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박 씨는 “자잘한 사고 한 번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큰 사고를 맞닥뜨리니 멍해졌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떡해야 할까, 엄지손가락이 없으면 일을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맴돌았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단 부위를 수건으로 감싼 뒤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 구조 대원은 잘린 손가락을 잘 보관하라고 당부했다. 박 씨는 잘린 손가락을 깨끗이 씻고 응급차량이 오기를 기다렸다. 응급차량은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의료진은 절단된 손가락이 마르지 않도록 젖은 거즈로 덮고 비닐봉지에 넣은 뒤 얼음물에 담가 보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때였다. 수술하기 전에 먼저 코로나19 음성이 확인돼야 수술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수술은 김지섭 정형외과 교수가 맡았다.● 4시간 응급 접합 수술 손가락 접합 수술은 가급적 신속하게 해야 한다. 그럴수록 결과도 좋다. 박 씨는 오후 7시에 수술대에 올랐다. 손가락이 절단되고 약 5시간 지난 시점이었다. 김 교수는 “절단 사고의 경우 6시간 이내에 수술해야 성공률이 높다. 늦어도 12시간 이내에 수술해야 성공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빠르게 수술에 들어간 사례라는 것. 김 교수는 “절단된 부위에 혈관과 신경이 살아 있다면 대체로 접합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절단 부위가 매끈하지 않으면 그만큼 수술이 어려워지고 시간도 길어진다. 박 씨의 경우 뜯어진 것처럼 손가락이 잘려져 있어 고난도 수술이 예상됐다. 전신 마취를 한 뒤 가장 먼저 뼈를 맞춰 금속 핀으로 고정했다. 이어 혈관, 신경, 피부 순으로 접합 수술을 했다. 해당 부위를 제대로 보기 위해 15배 정도 확대한 미세 현미경을 사용했다. 상처 부위를 꿰매는 실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것을 썼다. 수술을 끝내기까지 4시간 정도 소요됐다. 혈관을 이어 주는 데 절반 이상이 걸렸다. 혈관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수술이 끝나도 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엄지손가락은 전체 손가락 중 가장 많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박 씨는 아직 30대 초반이었고, 손을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생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 때문에 혈관 접합에 특히 더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손가락 접합 수술 성공률은 일반적으로 80∼90%로 알려져 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 거머리 치료로 혈류 살려 손가락 접합 수술은 잘 끝났지만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박 씨는 2주 동안 입원해 후속 치료를 받았다. 혈관과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이른바 ‘거머리 치료’를 1주일 동안 받았다. 김 교수는 “수술 직후에는 수술 부위에서 피가 흘러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혈관이 막혔다는 뜻이다. 동맥에서 정맥으로 혈류가 정상적으로 흐르도록 돕기 위한 방법이 바로 거머리 치료”라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거머리를 활용한다. 거머리를 수술한 부위에 붙이면 피를 빨아 먹는다. 어느 정도 피를 빨면 저절로 떨어진다. 그러면 다른 거머리를 붙인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10마리 정도의 거머리를 썼다. 박 씨는 “처음에는 솔직히 거머리가 징그러웠다. 그런데 그 거머리가 내 손가락을 살려 준다고 생각하니 나중에는 귀엽게 보이더라”라고 했다. 피가 굳어 버려 흐르지 않는 현상을 막기 위해 항응고제도 복용했다. 김 교수는 수시로 박 씨를 찾아 접합 부위 상태를 확인했다. 2주째 되던 날, 입원 상태에서 추가할 조치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박 씨는 퇴원했다. 3주째 되던 날 실밥을 뽑았다. 뼈를 고정하기 위해 삽입했던 금속 핀은 6주째에 제거했다. 사실상 치료의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이다. 엄지손가락은 조금 작아져 있었다. 잘린 부위를 원래 손가락에 붙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 원칙 지키는 삶 새로 배워 가장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다. 엄지손가락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느냐였다. 박 씨는 퇴원한 후에도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손가락 상태를 점검했다. 금속 핀을 뽑고 난 후 이른바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재활 치료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김 교수는 “따로 재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박 씨 엄지손가락 마디 부분을 꺾고 비틀었다. 박 씨는 “꽤 아팠다. 솔직히 겁이 나서 엄지손가락을 잘 움직이지 않았는데, 교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많은 환자가 수술 후 겁을 내며 움찔한다. 하지만 과감하게 써야 회복도 빠르다”고 말했다. 그 후 박 씨는 틈날 때마다 엄지손가락 마디를 꺾고, 뜨거운 물에 담갔다. 처음에는 통증이 있었지만 점차 잦아들었다.사고가 나고 딱 6개월이 지난 그해 10월, 엄지손가락을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통증은 조금 더 오래 남았다. 1년 동안은 욱신욱신 쑤실 때가 많았다. 김 교수는 “신경이 끊어져서 통증이 발생한 것이다. 일종의 신경통으로 점차 개선된다”고 설명했다.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확인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2022년 4월, 김 교수는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완전하게 회복됐다는 뜻이다. 정말로 그럴까. 일단 엄지손가락을 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단다. 물론 처음에는 물건을 집으려고 해도 엄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감각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통증도 오래 지속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정상으로 회복됐다. 오토바이 정비 기사로 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손가락 끝 감각이 미세하게 둔해질 때가 있다. 사고 후에도 박 씨는 오토바이 정비 일을 즐기고 있다. 다만 일하는 방법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박 씨는 “사람들이 왜 규칙을 지키라고 하는지, 사고를 겪은 후 알게 됐다. 이제는 원칙을 반드시 지키려고 한다. 원칙을 지킬 때 오히려 더 일이 빨리 끝나고 뒷맛도 개운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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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경케미칼 베트남 공장 가동… 글로벌 진출 발판 마련

    애경케미칼이 베트남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동남아 및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애경케미칼은 2023년 2월 ‘로터스(LOTUS)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번영과 의지를 의미하는 꽃말을 가진 베트남의 국화(연꽃)에서 따온 이 프로젝트는 애경케미칼이 베트남에서 진행한 계면활성제 공장 증설 및 불포화폴리에스터수지(UPR) 생산기지 신설 프로젝트다. 애경케미칼은 올 2월 말 베트남 공장을 준공하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이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베트남은 계면활성제와 합성수지 분야에서 최고의 성장 가능성을 보유한 시장으로 인정받는다. 계면활성제 사업과 관련해 베트남에서는 매일 약 3500만 개의 생활용품이 사용되지만 섬유 유연제 등 일부 생활용품용 계면활성제를 생산하는 기업은 애경케미칼 현지법인인 AK비나(VINA)가 유일하다. 합성수지 사업 역시 인조대리석, 기계 성형 등 베트남 내 전방산업의 성장세에 힘입어 애경케미칼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베트남 내 UPR 수요는 연간 수만 t에 이르지만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애경케미칼은 고품질의 UPR을 안정적이고 신속하게 공급해 시장을 장악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베트남과 함께 동남아 및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애경케미칼의 베트남 공장은 동나이성(省)에 자리 잡고 있다. 베트남의 경제도시 호찌민과 인접해 있어 양질의 노동력 확보에 유리하고, 물류 기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는 등 입지 조건이 뛰어난 것이 장점이다. 애경케미칼은 베트남 공장 완공으로 계면활성제와 UPR 생산 능력을 각각 4만 t과 3만7000t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애경케미칼은 베트남 내 생산 거점을 공고히 한 뒤, 동남아 전체로 시장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현지에서 제품을 공급해 물류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제품을 즉시 생산·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고객 만족도를 더욱 높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베트남 공장은 초대형 시설과 환경 방지 시설, 자동 포장 시설, 자동화 창고 시설 등 다양한 신기술과 설비가 적용됐다. 베트남에서는 최대 규모이자 최고 수준의 제조 환경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업계 표준 이상의 철저한 품질관리로 ‘불량률 제로’를 이어 가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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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골다 ‘컥’ 깬다고요? 수면다원검사 꼭 받으세요”[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50대 직장인 임지석 씨(가명)는 얼마 전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밤에 잠을 자던 중 ‘컥’ 소리를 내며 깬 날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내도 그가 심하게 코를 골며, 코골이 소리도 괴상하다고 말했었다. 게다가 최근 피로감이나 불면증이 모두 심해졌다. 임 씨는 수면 무호흡증일 거라고 짐작했다. 의사는 수면다원검사를 권했다. 잠을 자는 동안 임 씨의 무호흡 상태와 심장 기능 등을 검사하는 것. 검사 당일, 임 씨는 오후 11시에 클리닉을 찾았다. 머리와 가슴, 무릎 등 여러 부위에 전극을 부착한 후 오전 5시까지 잤다. 3일 후 결과가 나왔다. 기자가 이 데이터를 들고 정유삼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를 찾았다. ● 무호흡-저호흡 지수를 확인하라 정 교수는 중증 수면 무호흡증이라고 진단했다. 잠을 잘 때 10초 이상 숨을 쉬지 않으면 무호흡, 숨을 쉬더라도 호흡량이 평소의 70% 아래로 내려가면 저호흡으로 규정한다. 이 두 가지를 합친 무호흡-저호흡 지수(AHI)가 시간당 평균 5회 이하라면 정상이다. 5∼15회는 경증이다. 15∼30회는 중등도로 본다. 임 씨의 AHI는 30.4회였다. 잠을 자는 동안 1시간당 평균 30.4회 무호흡이거나 저호흡 상태였다는 뜻이다. 심각한 수면 무호흡증이다. 임 씨의 경우 가장 길었을 때는 34초나 숨을 쉬지 않았다. 저호흡 상태로 가장 길게 지속된 시간은 2분 19초였다. 산소 포화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정 교수는 “깨어있을 때는 산소포화도가 95%를 넘는 게 정상이지만 수면 중에는 92∼95% 정도면 대체로 괜찮다”라고 말했다. 임 씨의 경우 산소포화도가 평균 92.6%를 기록했다. 아슬아슬한 수준이다. 하지만 최악일 때는 산소포화도가 73%로 떨어지기도 했다. 일시적으로 ‘위험한’ 상태였던 것. 임 씨의 수면 품질도 매우 나빴다. 수면 품질을 보통 3등급으로 나누는데, 임 씨는 가장 깊은 수면 상태인 3등급에 단 한 번도 진입하지 못했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니 낮에 피로가 극심할 수밖에 없다. 기도가 좁아져 점막이 떨릴 때 코를 고는 소리가 난다. 기도가 막혀 숨을 못 쉰다면 코를 더 심하게 골 수밖에 없다. 임 씨의 시간당 코골이 지수(SI)는 14.6이었다. 1시간에 14.6회 코를 곤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일반적으로 코를 고는 사람의 70%는 수면 무호흡증이 있을 거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수면다원검사, 누가 받아야 할까 임 씨는 잠을 자다 기도가 막혀 자주 깼다. 증세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거실에서 들릴 정도로 큰소리로 코를 골았다. 잠을 자던 중에 숨이 차거나 심장이 빨리 뛰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불면증도 갈수록 심해졌다. 모두 수면 무호흡증일 때 나타나는 증세다. 잠을 자면서 이를 갈거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입안이 말라 있거나, 낮에 지나치게 졸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도 수면 무호흡증을 의심할 수 있다. 수면 무호흡증은 크게 폐쇄형과 중추형으로 구분한다. 중추형은 호흡을 담당하는 뇌 중추가 차단돼 나타난다. 폐쇄형은 기도가 일시적으로 막혀 나타난다. 수면 무호흡증의 90% 이상이 폐쇄형이다. 수면 무호흡증을 방치하면 장기적으로 심뇌혈관 질환, 치매, 녹내장 등의 중증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연구도 넘쳐난다. 정 교수는 “기도가 막히면 산소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하드웨어, 그러니까 몸 안의 여러 장기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수면다원검사는 수면 무호흡증을 진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회 검사에 100만 원 안팎의 돈이 들었다. 지금은 건강보험이 적용돼 수면 무호흡증이 확인되면 의원급 기준으로 15만 원 이내의 비용만 든다. 1회 검사로 끝나기도 하지만 의원급에서는 수면 무호흡증이 진단된 후 치료 장비인 양압호흡기의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2차 검사를 할 때가 많다. 수면다원검사는 몸 상태가 보통 수준을 유지할 때 받는 게 좋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이나 감기 기운이 있는 날에 검사 하면 결과가 더 안 좋게 나올 수 있다. 열이 난다면 검사를 연기하는 게 좋다. ● 양압기 사용-기도 주변 근력운동 해야 수면 무호흡증 치료는 어떻게 할까. 수술적 요법으로는 목젖을 제거하는 수술이나, 턱을 앞으로 빼내 입안 공간을 넓혀주는 수술이 시도된다. 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으며, 성공률도 천차만별이다. 정 교수는 “수술하면 30∼70% 정도에서 무호흡-저호흡 지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나빠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수술만으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가슴에 전기장치를 이식한 뒤 혀 안쪽 신경에 전극을 부착해 수면 중 호흡을 도와주는 치료도 한다. 정 교수는 “이르면 2년 이내에 국내에도 소개될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게 양압호흡기 치료다. 양압호흡기는 산소마스크와 흡사한 장치다. 잠을 잘 때 코안으로 공기를 불어 넣어 기도 안의 공기 압력을 높여 기도 폐쇄를 막는다. 30일 동안 21일 이상, 4시간씩 이용하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효과는 대체로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양압호흡기 착용 후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임 씨의 경우 양압기를 꾸준히 착용한 결과 일주일에 3일꼴로 무호흡이 1회도 발생하지 않았다. 평균적으로는 시간당 1∼5회였다. 양압호흡기를 착용한 상태에서는 정상 수준을 회복한 것. 양압호흡기는 착용할 때만 효과가 있다. 사용하지 않는다면 다시 수면 무호흡증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평생 써야 할 수도 있다. 정 교수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다른 중증 만성 질환이 생기는 위험을 줄일 수 있으니 착용하는 게 옳다”라고 말했다. 수면 무호흡증은 여러 이유로 생기는데, 노화도 그중 하나다. 나이가 들면서 기도 주변의 근육이 쇠퇴하고 지방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것. 박 교수는 “기도 주변의 근육을 강화하면 수면 무호흡증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방법은 단순하다. 입을 다문 상태에서 혓바닥을 입 천장에 붙여 위로 밀어 올린다. 이어 입안에 알사탕을 넣은 것처럼 혀끝으로 양 볼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혓바닥을 입 밖으로 내밀어 한 번은 왼쪽, 또 한 번은 오른쪽으로 길게 빼는 것도 방법이다. 이 또한 근육 운동이기에 10∼15회씩 4세트 해 주는 게 효과적이다. 체중 감량도 병행해야 한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기도 주변의 지방질도 감소하기 때문에 호흡에 더 도움이 된다. ● 불면증은 수면위생 지키며 해결해야 양압호흡기 치료가 특히 어려운 상황이 있다. 수면 무호흡증과 불면증이 동시에 나타날 때다. 실제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고령자일 경우 약 40%가 수면 무호흡증을 가지고 있다. 양압호흡기는 수면 중 호흡을 도와주는 장비다. 잠을 못 이루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따라서 불면증이 있다면 양압호흡기를 착용하고 잠을 무작정 기다릴 게 아니라 잠에 들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미리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아 먹는 것도 방법이다. 정 교수는 “침실에서 나와 잠이 올 때까지 거실에 머무는 게 좋다. 잠이 올 것 같을 때 양압호흡기를 다시 착용해야 한다. 그래도 잠이 안 오면 다시 밖으로 나왔다가 들어가는 걸 반복하는 게 차라리 낫다”라고 말했다. 만약 새벽에 깬 뒤 양압호흡기가 거치적거려 잠을 못 이룬다면, 그날은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 자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정 교수는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수면위생’을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불면증을 없애면서 효과적으로 수면 무호흡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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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팥-조혈모세포 딸에게… 모정이 살린 생명[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18년 이서연 씨(가명·33)는 그토록 원하던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파릇파릇 새싹 같은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학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봄이 절정에 이를 무렵이었다. 아이들 체험 학습으로 인근 언덕에 오르던 중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눈앞이 아득했다. 다행히 그 후 암전 현상은 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씨는 체력이 떨어져 일시적으로 그랬거니 하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전에 없던 증세들이 나타나는 게 맘에 걸렸다. 월경 기간에 출혈량이 늘었다. 부딪친 적도 없는데 자꾸 멍이 들었다. 피로감도 훨씬 심해졌다. 이 씨는 동네 내과를 찾았다. 혈액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가 백혈병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 이 씨는 A 대형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백혈병은 아니었다.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진단이 떨어졌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골수 안에서 혈액세포가 덜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병이다.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모두 감소할 수 있다. 젊은 연령대에서도 곧잘 발생한다. 서양에 비해 국내 발생률이 2∼3배 높다. 이 병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멍, 월경 과다 등 출혈이 흔하게 나타난다. 피로감, 빈혈 등도 자주 나타나는 증세다. 이 씨에게 나타난 모든 증세와 일치한다. 경증일 때는 일단 관찰만 한다. 중증일 때는 감염과 출혈에 따른 사망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호르몬 치료, 조혈모세포 이식 등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이 씨는 경증과 중증의 중간 단계였다. 의료진은 일단 관찰하기로 했다. 몇 달이 지났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걱정은 오히려 커졌다. 이 씨는 몸과 마음을 달래며 간신히 버텼다. 치료법을 찾던 차에 조혈모세포 이식이 괜찮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 병원 의료진도 괜찮은 방법이라며 동의했다. 조혈모세포는 유전자가 어느 정도 일치해야 이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주로 가족에게서 기증받는 경우가 많다. 이 씨도 그랬다. 동생이 조혈모세포를 주기로 했다. 이 씨는 교사 생활 첫해를 마무리하고 휴직했다. 이어 2019년 4월 동생의 조혈모세포를 받았다. 이로써 투병 생활을 끝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 만성 신부전으로 악화 이 씨는 한 달 후 퇴원했고, 이후 수시로 외래 검사를 받았다. 다시 한 달이 지난 6월, 의사가 거대세포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거대세포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피로감이나 염증이 나타난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증세가 미약하거나 거의 없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있다면 거대세포 바이러스는 장기에 침투해 심각한 질병을 발생시킨다. 이 씨의 경우 혈액 수치가 떨어지는 등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로 예정됐던 입원 기간은 점점 늘어났다. 재생불량성 빈혈도 중증으로 악화했다. 면역력이 너무 안 좋아 다인 병실 대신 1인실이나 2인실만 써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는 데 있었다. 의사는 동일한 치료를 이어가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불안했고 우울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씨는 별 성과를 얻지 못하고 9월에 스스로 퇴원을 결정했다. 이후 3일마다 병원을 찾아 수혈받았다. 그러던 중 혈액 검사에서 신장(콩팥) 이상이 발견됐다. 이 씨에게 이식된 동생 조혈모세포의 면역세포가 이 씨의 몸을 적으로 인식해 공격한 것. 이를 이식편대숙주병이라 한다. 어쩔 수 없이 11월, 다시 입원해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다. 치료 부작용으로 몸무게가 15kg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12월 퇴원한 뒤 여러 약물을 복용했다. 2020년 새해가 밝았지만, 이 씨의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렀다. 치료란 치료는 다 해 봤지만 ‘크레아티닌 수치’는 더 올라갔다. 크레아티닌은 콩팥을 통해 배출되는 노폐물이다. 이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콩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악화한 것. ● 어머니 콩팥-조혈모세포 받아 그해 5월 이 씨는 신장 투석을 시작했다. 매주 4회, 4시간씩 투석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이 씨는 더 지쳐갔다. 이제 희망은 콩팥 이식밖에 없었다. 하지만 A 병원 의료진은 이 씨의 혈액 수치가 너무 낮아 장기 이식이 어렵다고 했다. 이 씨와 가족은 절망하지 않았다. 이 씨의 몸 상태로 콩팥과 조혈모세포를 모두 이식할 수 있는 병원을 물색했다. 서울성모병원의 성공 사례가 여럿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씨는 서울성모병원으로 갔다. 서울성모병원에서는 각 진료과 교수가 모여 치료 방법을 논의했다. 이 ‘다학제’ 진료를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식할 콩팥이 필요했다. 이 씨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기증 의사를 밝혔다. 의료진은 환자와 유전자가 더 가까운 어머니의 콩팥을 이식하기로 했다. 12월, 콩팥 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수술은 박순철 혈관·이식외과 교수가 맡았다. 수술은 약 4시간 만에 끝났다. 박 교수는 “콩팥 이식 수술은 3시간 정도면 끝나는데, 환자의 몸 상태를 의식해 꼼꼼히 마무리하느라 1시간 정도가 더 걸렸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장 이식 때는 복부를 20∼50cm를 L자 형태로 절개한다. 박 교수는 10cm만 절개하는 새로운 방법을 택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이 방법으로 국내에서 가장 먼저 100회 수술을 기록한 바 있다. 콩팥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2개월 후 조혈모세포를 다시 이식했다. 이번에도 어머니가 기증했다. 그러니까 콩팥과 조혈모세포를 모두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문 편”이라며 “동일한 인물에서 조혈모세포와 콩팥을 이식받았기에 이식편대숙주병이 발생할 우려도 매우 적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씨는 소량의 면역억제제를 복용했고, 그마저도 2022년 9월 중단했다. ● 건강한 일상으로 복귀 사실 치료 과정에서 힘든 일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한때 호흡곤란과 같은 심부전 증세가 나타났다. 유방에 양성 종양이 생겼다. 월경이 중단되기도 했다. 양쪽 골반 부위 조직 일부가 괴사해 한동안은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 체중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스테로이드를 먹을 때 60kg까지 올라갔던 체중은 콩팥 이식 후에는 36kg으로 뚝 떨어졌다.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 사실상 완치에 가까운 결과를 이뤄냈다. 가장 큰 원동력이 뭘까. 이 씨는 부모의 헌신을 꼽았다. 이 씨는 “어머니가 콩팥을 주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사랑은 자식이 감히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내가 조금만 더 건강했더라면 부모님이 그런 일을 안 겪으셔도 됐을 텐데, 너무 죄송스러웠다. 이 은혜를 평생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박 교수에게도 감사의 말을 남겼다. 이 씨는 “늘 위로와 격려로 불안감을 줄여줬다”라고 말했다. 콩팥 이식 수술 전날에도 박 교수는 병동을 찾아 이 씨의 몸 상태를 살피러 왔고,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이 씨는 “바로 그 순간 믿음이 확 갔다”라고 말했다. 2023년 3월, 이 씨는 다시 교단에 섰다. 4년 만의 복직이었다. 이 씨는 “다시 일할 수 있고, 아이들을 볼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몸 상태는 어떨까. 극심했던 피로는 거의 사라졌다. 월경도 다시 규칙적으로 이뤄졌다. 더 이상 멍도 들지 않는다. 이 씨는 콩팥 이식 수술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건강 점검을 받고 있는데, 현재까지 아무런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씨가 웃으며 말했다. “첫 번째 삶을 보내고 두 번째 삶이 시작됐다고 받아들였어요. 하루하루가 소중한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답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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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경케미칼, 아라미드 핵심원료 TPC 공장 착공

    애경케미칼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사업구조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성장성이 높은 신규 사업을 통해 미래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애경케미칼은 이를 위해 최근 울산석유화학단지에서 아라미드 섬유의 핵심 원료인 ‘테레프탈로일 클로라이드(TPC)’ 공장 착공식을 가졌다. TPC 공장은 애경케미칼 울산공장의 유휴 부지에 들어선다. 올 연말 완공과 내년 초 양산을 목표로 한다. 이 공장에서만 약 1만5000t 규모의 TPC를 생산한다. 애경케미칼은 향후 아라미드 시장 성장과 TPC 수요 증가 추세에 따라 생산 규모를 확장할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아라미드는 가벼우면서도 철보다 5배 이상 강하다. 열에도 강하다. 섭씨 500도가 돼도 불에 타지 않는 내열성을 갖추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여러 제품의 소재로 사용된다. 자동차 타이어의 마모를 보완하는 소재로 사용되는데, 수요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5G 광케이블 통신 인프라 구축에 활용되면서 아라미드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나아가 자동차, 항공우주 및 방위 산업에도 아라미드 섬유의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더불어 경량 및 고강도 소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글로벌 아라미드 시장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글로벌 아라미드 수요는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5% 증가했다. 앞으로 2030년까지 연평균 6%의 안정된 성장이 예상된다. 실제로 아라미드 생산 기업들 또한 잇달아 증설을 단행하고 있다. 아라미드 섬유 시장이 커짐에 따라 아라미드의 핵심 원료인 TPC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국내 아라미드 섬유사는 주원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애경케미칼의 TPC 생산은 수입 대체 효과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된다. 애경케미칼 관계자는 “수입 TPC의 경우 들여오는 과정에서 굳어 버리기 때문에 이를 녹여서 활용해야 한다. 반면 국내에서 생산하면 액상 상태로 공급할 수 있어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애경케미칼은 열을 활용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빛을 이용해 TPC를 생산할 방침이다. 열을 활용하면 유해가스인 이산화황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 빛을 이용하는 ‘광 공법’은 이산화황 가스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 염화수소를 포집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게 애경케미칼의 설명이다. 애경케미칼은 이런 점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애경케미칼 관계자는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글로벌 환경 규제가 점차 강화되면서 유해가스 발생이 없고,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생산 구조는 애경케미칼은 물론 국내 아라미드 생산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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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암-자가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생존율 높여”

    혈액암 중에서 가장 환자가 많은 질병은 림프종이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다발골수종 증가 추세가 가파르다. 림프종은 백혈구 일종인 림프구에 생기는 종양을, 다발골수종은 골수에 생기는 종양을 뜻한다. 림프종과 다발골수종은 급성백혈병과 달리 1기, 2기 같은 병기(病期)가 존재한다. 급성백혈병으로 악화할 수 있는 골수증식종양이란 질병도 있다. 각각의 질병에 대해 알아본다.● 혈액암 중 림프종 비율 가장 높아림프종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크게 호지킨 림프종과 비(非)호지킨 림프종으로 나눈다. 박영훈 이대목동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20대에는 호지킨 림프종이 많이 생기다가 50대가 되면 비호지킨 림프종 발생률이 늘어난다. 60대 이후에는 다시 호지킨 림프종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비호지킨 림프종이 95% 정도이며 나머지가 호지킨 림프종이다. 림프종에 걸리면 림프절이 부어오를 때가 많다. 특히 턱 밑이나 쇄골 같은 부위가 두드러지게 붓는다. 사타구니 주변 림프절도 커질 수 있다. 해당 부위에서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눌렀을 때 빡빡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박 교수는 “이런 증세가 나타나면서 체중이 감소했고, 야간에 식은땀이 난다면 림프종을 의심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림프종을 진단하려면 림프절 조직을 전반적으로 검사해야 한다. 따라서 동네 의원이나 작은 병원에서는 정확한 진단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의심 소견이 나왔다면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치료법은 악성도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대체로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한다. 다만 아주 작은 부위에만 국한된 호지킨 림프종이라면 방사선 치료만 할 수도 있다.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할 때는 미세한 암세포까지 죽이기 위해 고용량 항암제를 투입한다. 이 경우 피를 만드는 세포들까지 모두 죽어 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미리 자신의 조혈모세포(자가조혈모세포)를 추출했다가 항암치료가 끝나면 다시 이식한다. 최근에는 이른바 4세대 치료제로 부르는 카티(CAR-T) 세포치료도 제한적으로 시행한다. 림프종의 경우 암이 사라짐을 뜻하는 ‘완전관해(寬解)’ 비율은 70∼80%에 이른다. 다만 15% 정도는 암이 재발한다. 이를 감안한 림프종 완치율은 50∼60%다. ● 다발골수종, 증가 속도 빨라 다발골수종은 최근 국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혈액암이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유전자 변이나 인구 고령화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발골수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아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무증상 단계를 거쳤다가 고령이 된 후 다발골수종으로 악화하기도 한다. 다발골수종은 형질세포에서 발생한 암이다. 형질세포는 백혈구 일종으로 항체 생산에 관여한다. 이 형질세포가 암으로 바뀌며 비정상적인 항체가 만들어진다. 비정상적인 항체 덩어리는 뼈를 침범하고 녹이면서 골절을 유발한다. 신장으로 가면 신부전을 일으킨다. 조혈모세포가 줄어드니 빈혈이 생긴다. 골수검사를 비롯해 여러 검사를 통해 확진한다. 적잖은 환자들이 허리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으로 잘못 알고 병원에 갔다가 발견한다. 박 교수는 “X레이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뼈가 녹아 있다면 다발골수종을 의심할 수 있다. 골다공증(뼈엉성증)이 심하지 않은데 압박성 골절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건강검진에서 이유 없이 빈혈, 단백뇨, 신장 기능 나쁨, 허리통증이 나타난다면 다발골수종 여부를 검사해 보는 게 좋다. 환자에게는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한다. 이때 림프종과 마찬가지로 자가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건강 상태가 지나치게 좋지 않거나 70세 이상 고령이라면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이 어렵기 때문에 항암화학요법만 진행한다. 다발골수종은 완치가 쉽지 않은 병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생존율이 1∼2%에 불과했다. 요즘에는 50% 가깝게 생존율이 높아졌다. 박 교수는 “재발이 잦아서, 완치한 줄 알았는데 다시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지속적으로 경과를 관찰해야 하는 병”이라고 말했다.● 골수증식종양, 약물로 조절 가능 특정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해 조혈모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증가하는데, 이 병을 골수증식종양이라고 한다. 혈액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유전자 변이 및 골수 검사를 통해 진단한다.골수증식종양은 적혈구 증가증, 혈소판 증가증, 일차성 골수섬유증, 만성 골수성 백혈병 등 네 종류로 나눈다. 어떤 유형이냐에 따라 증세와 치료법 모두 다르다. 이세원 이대목동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병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적혈구 증가증이라면 얼굴이 빨개진다. 적혈구 수가 증가함에 따라 혈전증이나 심부전증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처방한다. 혈소판 증가증일 때는 멍이 들 때가 많다. 이때도 혈전증을 막기 위해 아스피린을 처방하거나 혈소판 수치를 조절하기 위한 약을 투입한다. 일차성 골수섬유증이라면 골수가 섬유화하면서 피를 만드는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빈혈 증세가 나타난다. 수혈을 자주 받아야 하는 등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병을 방치하면 10년 동안 10% 정도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악화한다. 이 교수는 “좋은 약이 많이 나오면서 조절만 잘 하면 일차성 골수섬유증이나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평생 급성으로 악화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경우 생존율은 90%를 웃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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