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석

강경석 차장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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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 시청팀, 법조팀과 정치부 정당팀을 출입했습니다. 정치 개혁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coolup@donga.com

취재분야

2025-10-29~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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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때 방문객 급증, 숲은 보건 인프라”… 獨, 숲길 걸으며 명상 ‘마음챙김’ 앱 개발도

    “숲은 국가 공중보건의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유럽 30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 유럽산림연구소(EFI)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봉쇄 기간 독일의 숲 이용객을 연구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개방된 장소인 숲은 전염 우려가 적고, 고립된 사람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공중보건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EFI에 따르면 2020년 3월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시행되기 전 독일 서부의 본 주변 도시지역 숲 방문객은 하루 평균 290명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3월 22일∼4월 28일 방역 대책 시행 중에는 방문객이 하루 평균 690명으로 늘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방문객이 약 140%가 증가한 것. 방문객 최고치는 봉쇄가 풀린 직후인 같은 해 6월 4일 1275명이었다. 숲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도 달라졌다.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20, 30대 젊은층,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지역 외부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EFI는 “새로운 방문객들이 늘어나 숲이 사회 전반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게 됐다”며 “도시 지역의 산림 정책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숲은 마음먹고 찾아야 하는 특별한 공간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시간대에 수시로 숲을 찾게 됐다. 코로나19 봉쇄 전엔 방문객들이 주로 평일 출퇴근 직전이나 직후에 숲을 방문했다. 하지만 봉쇄 기간엔 재택근무로 인해 대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특히 토요일은 숲이 가장 한산했던 날에서 가장 붐비는 날로 바뀌었다. 주로 쇼핑하던 인구가 숲으로 향한 것으로 분석됐다. 독일에선 전통적으로 숲이 ‘정서적 치유 공간’으로 여겨진다. 독일어에 ‘숲속에서 느끼는 편안한 고독감’을 뜻하는 발타인잠카이트(Waldeinsamkeit)란 고유한 단어가 있을 정도다. 이런 숲의 정서적 가치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재조명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잔 라자야 루 EFI연구원은 “방문객들이 숲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평온함 찾기’로 조사됐다”며 “숲의 영적 가치가 재평가되는 르네상스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산림보호협회는 이런 수요를 고려해 ‘마음챙김’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방문객이 스스로 숲길을 걸으며 호흡하고 명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앱이다. 이 앱은 구체적으로 몇 초간 걷다가 몇 초간 호흡할지, 나무 향을 어떻게 맡을지 소개하고 있다. 마음챙김 앱이 나온 뒤 독일 전역에는 ‘마음챙김 숲길’ 9곳이 추가로 조성됐다. 이 숲길에선 방문객들이 표지판에서 QR코드를 스캔해 숲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서비스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토르스텐 뮐러 씨는 BBC 인터뷰에서 “앱은 숲 방문객이 호흡에 집중하도록 돕거나 숲의 색상 구조 질감 등 세부적인 모습을 관찰하도록 유도한다”며 “독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숲에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고 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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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나무’ 77%… 한국, 숲도 고령화

    “무조건 심고 키우기만 한다고 좋은 숲이 아닙니다.” 지난달 27일 강원 춘천시 가리산.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은 멀리서 봤을 땐 풍성해 보였다. 하지만 숲속으로 들어가자 키 큰 나무들 사이에 갇혀 썩은 나무들이 보였다. 김아름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는 탓에 햇빛을 못 봐 광합성도 못 하고 말라 죽은 것”이라며 “나무들도 전반적으로 고령화돼 탄소 흡수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가리산뿐만이 아니다. 국내 숲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한민국 국토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면적은 세계 평균(31%)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산림 선진국에 비해 숲을 활용하지 못해 무늬만 ‘숲의 나라’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경제적 충격과 재난 위기가 일상화된 ‘그린스완(Green Swan)’ 시대에 숲 활용도를 높이는 과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28일 해외 산림 선진국을 취재한 결과 일본은 ‘명품 숲’을 만들어 인구 유입과 지역 소득 향상의 계기로 삼았고, 지역소멸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독일은 멈춰버린 제철소 위에 도시숲을 조성해 생명을 불어넣거나 숲에서 나온 목재 부산물 등 바이오매스(생물자원)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했다. 뉴질랜드는 나무를 심고 가꾸고 쓰는 선순환으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약 115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황폐화된 숲이 다시 푸르러졌다. 국토 대비 산림 비율(6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네 번째로 높다. 동시에 한국은 열대 목재 수입량 세계 4위로, 자급률은 15%에 그친다. 영국 프랑스 등은 자급률이 50∼80%에 달한다. 국내 숲은 탄소 저감 효과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나무 중 77.2%가 30년생 이상이기 때문이다. 주요 수종은 심은 후 평균 25년이 지나면 탄소 흡수량이 줄어든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이제는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는 양적 성장을 넘어 탄소 저감, 산림안보, 지역경제와의 연계 등 숲을 제대로 활용하는 질적 성장을 꾀할 때”라고 강조했다. 31일 산림청 분석 결과 숲 활용도를 높일 경우 산림산업뿐만 아니라 관광 등 부가가치를 더한 전체 매출액은 현재 161조 원(2021년 기준)에서 2030년 206조 원, 2073년 606조 원까지 커진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매출액 162조 원의 4배 수준이다. 산림산업 일자리도 현재 61만 명에서 2073년 204만 명까지 증가한다.그린스완(Green Swan)기후변화가 초래할 사회 경제적 충격과 극단적 재난 위기 등을 일컫는 용어. 예기치 못한 경제 위기를 뜻하는 블랙스완을 변형한 것으로, 2020년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했다. 韓 ‘목맥경화’… 115억그루 심었지만 늙은 나무 방치, 선순환 안돼[‘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1〉 韓日 ‘숲 정책’ 살펴보니 나무 다닥다닥… 어린 나무까지 ‘골골’필요 목재 85% 수입… 年 7조 달해선진국, 청년-중년나무 고루 분포… “숲, 양적성장 넘어 이젠 질적 성장을” 성인 1명이 쉽게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나무 직경은 평균 30cm에 불과했다. 양팔로 나무를 안고도 두 손이 포개질 만큼 얇았다. 다닥다닥 붙어 자란 탓에 생장이 억제돼서다. 나뭇가지도 뿌리에 가까운 아래쪽부터 많이 나 있었다. 나무는 가지가 뻗어 나간 자리에 생기는 옹이가 많을수록 목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지난달 27일 찾은 강원 춘천시 가리산의 풍경이다.● 아직까진 ‘무늬만’ 숲의 나라 반면 같은 잣나무인데도 관리를 해준 숲의 풍경은 달랐다. 산림청이 ‘숲가꾸기 시범림’으로 관리하고 있는 공간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굵고 곧게 뻗은 나무가 많았다. 2년생 묘목을 심은 뒤 건강한 나무만 남기는 솎아베기 과정을 거쳤다. 우량한 나무 주변에 있는 병든 나무, 굽은 나무, 노쇠한 나무는 잘라줬다. 그 결과 방치된 숲의 잣나무는 직경이 30cm 안팎에 불과했지만, 관리된 숲에선 잣나무 직경이 50cm 안팎까지 자랐다. 굵을 뿐만 아니라 길고 반듯하게 자라 목재로서 쓰임새도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리를 받은 나무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 산사태 발생 시 말뚝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석범 춘천국유림관리소장은 “국내 대부분의 산이 나무를 심기만 하고 가꿔 주지 않아 적정 밀도보다 과밀한 상태”라며 “나무도 농작물처럼 제때 ‘수확’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아야 자연이 선순환한다”고 말했다. 국내엔 전국 어디에나 푸른 숲이 있고 나무도 빼곡하게 심어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숲 관리는 빈약하다는 의미다. 국내 목재 수요량의 8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하는 열대 목재만 매년 7조 원 규모로 세계 4위다. 수입량이 많다 보니 인도네시아에서 원목 수출을 제한하면 국내 목재 가격이 요동치기도 한다. 윤 소장은 “목재를 해외에서 벌크선으로 수입해 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며 “자국에서 생산한 목재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게 탄소 중립 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숲에는 30년생이 넘어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줄기 시작한 나무가 10그루 중 7그루(77.2%)가 넘는다. 중부지방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30년생일 때는 1ha(헥타르)당 12.1t 이지만 60년생이 되면 1.8t으로 7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다. 국내 산림면적에서 탄소 흡수량이 비교적 높은 ‘어린 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1∼10년생 4%, 11∼20년생 3%, 21∼30년생 11%에 불과하다. ● ‘목(木)맥경화’ 뚫어 미래 성장기반으로 산림 선진국은 나이 든 나무를 수확해 목재로 활용하고 새 나무를 심는 ‘산림 선순환’이 자리 잡았다. 어린 나무, 청년 나무, 중년 나무를 고루 분포시켜 탄소를 계속 흡수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 철근, 콘크리트, 플라스틱은 한 번 사용하면 끝이지만 목재는 수확한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으면 20, 30년 뒤에 다시 목재로 쓰인다. 사실상 지속가능하게 쓸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인 셈이다. 일본 독일 등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며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국내 숲은 녹화사업 이후 숲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킨 사례가 많지 않아 이른바 ‘목(木)맥경화’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국내 산촌의 89.5%가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0세대 가임여성 인구 비율이 0.2 미만인 지역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전남 장흥군 등의 사례처럼 ‘명품 숲’을 발굴해 관광 자원화하고 산촌 주민 공동체와 연계한 소득 사업을 발굴하면 인구 절벽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흥군은 편백숲에 치유의 숲, 숙박 및 체험시설을 조성해 연간 67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장흥군 인구 3만6000명의 18배가 넘는 방문객을 유치하고 연계소득 1240억 원을 창출했다. 경북 울진군도 금강소나무 지역에 숲길을 조성해 인구 4만7000명의 3배가 넘는 15만 명이 매년 방문하는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산림 선진국은 숲을 산업과 문화관광 자원이자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양적 성장을 넘어 이젠 질적 성장으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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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30곳 손잡은 日시골 “숲속 오피스로 지역소멸 위기 대응”

    “나무를 올려다보시겠어요? 소리가 다르죠?” 지난달 28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기리시마(霧島)시 기리시마 긴코완 숲에서 만난 산림 세러피 가이드 우스자키 노키(臼崎のき·70) 씨가 웃으며 권했다. 삼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등 사전을 찾아봐도 생소한 이름의 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새 소리와 어우러졌다.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대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인구가 약 12만 명에 불과한 기리시마시는 숲을 주요 관광자원으로 내세우면서 연간 560만 명(2022년 기준)의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 감소 위기를 겪는 지방으로서는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한국과 비슷하게 국토의 75%가량이 산인 일본은 숲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인구 감소를 막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에는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데 주력한 반면, 이후에는 숲을 활용해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역 활성화를 꾀하는 쪽으로 적극 나서고 있다. ● 관리 대상에서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 기리시마시는 2007년 4곳의 ‘산림 세러피 로드’를 지정했다. 표고 500∼700m 높이에 길이 900m∼2.5km로 체력이 약한 사람도 천천히 1∼2시간가량 걸으면서 숲을 즐길 수 있다. 4곳 모두 지역 전통 관광 명소인 천연온천 인근에 있어 ‘산책 후 온천’을 매력으로 내세운다. 이곳에서는 4∼12월 9차례의 정기 산림 세러피 투어를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게 숲을 체험할 기회를 준다. 지역에서 운영하는 ‘가이드 클럽’에 신청하면 개별 투어도 가능하다. 관광객 누구나 가볍게 산책하며 숲을 즐길 수 있다. 이날 숲 인근 호텔에서는 관광버스 2대로 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밤에는 온천을 즐기고 낮에는 숲을 산책하며 자연을 즐겼다. 하마다 겐 기리시마시 관광PR과 주무관은 “숲은 온천과 더불어 지역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며 오사카 등 대도시 고교 수학여행 팀도 찾는다고 귀띔했다. 숲을 활용한 관광 자원과 소니 등 지역 내 대기업 공장 등의 영향으로 이 지역 인구는 2000년 12만7900명에서 지난해 12만3135명으로 20년 넘게 12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숲과 산을 활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산림 서비스 산업이 각광받고 있다. 일본 임야청 측은 “관광, 건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산림을 활용해 체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용객에게는 새로운 숲 체험 기회를 주고 해당 지역에서는 새로운 고용과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기업 제휴 맺으며 인구절벽 해결책 활용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으로 한국에도 익숙한 일본 나가노(長野)의 시골 마을 시나노(信濃)정은 지역의 유일한 자원인 산, 숲을 적극 활용해 지역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이곳은 1960년 1만3700명에서 최근 8000명대로 인구가 줄며 인구절벽에 직면한 곳이다. 과거 여느 다른 지역처럼 도로 확장, 쇼핑센터 유치 등에 주력했던 이곳은 2000년대 들어 발상 전환에 나섰다. 우리 지역에 ‘없는 것’을 만들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지역에만 ‘있는 것’을 찾아 가꾸자는 데 지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 2004년 ‘에코 메디컬 힐링 빌리지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치유의 숲’ 프로그램 조성에 나섰다. 적설량이 많아 겨울 스키장으로 유명한 ‘구로히메 고원’에 1.2∼7km의 숲길을 조성하고 산림욕, 맨발 진흙체험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산림 메디컬 트레이너’는 방문객에게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일본 주요 기업들이 ‘치유의 숲’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30곳 넘는 기업이 이곳과 제휴를 맺어 연간 5000여 명의 각 기업 직원이 숲을 이용한다. 제휴 기업 직원들이 숲을 이용하면서 이 지역 숙박시설, 식당 수익 증가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고향 기부금’도 납부해 옥수수, 블루베리 등 지역 특산물 구입에도 앞장서는 ‘1석 3조’ 효과를 거둔다. 제휴 기업에 화답하기 위해 시나노정은 2019년 ‘노마드 워크 센터’라는 원격 근무 시설을 만들었다. 40명 수용이 가능한 이곳에서는 기업 단위로 사용 신청을 받아 5일간 30만 엔(약 270만 원)을 받는다. 주중에 일하면서 오후에는 카약, 등산, 요가 등을 즐길 수 있다. 기업 만족도는 높다. 일본 전기부품 업체 TDK람다는 시나노정과 협정을 맺고 2008년부터 매년 신입사원 연수를 이곳 숲에서 진행한다. 그 전까지는 3년 차 미만 직원 퇴직률이 12%에 달했지만 숲 연수를 실시하면서 1%로 떨어졌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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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은 ‘숲타디움’

    산림 면적이 2508만 ha로 국토의 68%에 달하는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기에 적극적인 산림 육성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전체 숲의 40%가 인공림이며, 일본 내 어느 산이든 키를 훌쩍 넘는 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과거의 ‘숲 보호’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임야청에 따르면 휴양림 등 정부가 지정한 숲을 이용한 인구는 자국 인구보다 많은 연간 1억4000만 명에 달했다. 숲을 쉽게 접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의 관심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임야청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 392곳 중 60%가 숲, 임업, 목재와 관련한 활동을 현재 하고 있거나 실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단순한 사회 공헌 차원을 넘어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숲, 임업에 기여하려는 기업들의 의지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전체 숲의 1.5% 정도인 26만7000ha에 597곳을 ‘레크리에이션 숲’으로 지정하고 있다. 자연 휴양림, 실외 스포츠 등 목적에 따라 지정해 이런 활동을 정부가 보유한 국유림에서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한다. 활용 방식은 다양하다. 일본 중부 야마나시현에는 ‘포레스트 어드벤처’라는 곳이 있다. 공중 걷기 등 숲 즐기기가 가능한 시설을 숲을 해치지 않고 마련했다. 이른바 ‘자연 공생 아웃도어 파크’라는 개념으로 정비한 숲 체험 시설이다. 인기를 끌면서 전국 35개 시설로 늘어났고 연간 50만 명이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일본 유명 리조트 기업인 호시노그룹은 투숙객에게 산림 산책, 승마, 산악자전거, 야간 곤충 관찰 등 다양한 숲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전통 목조건축 강국인 일본은 나무를 활용한 건축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2020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인 도쿄 국립경기장은 ‘산림 스타디움’이라는 콘셉트로 전국 47개 광역단체의 삼나무로 경기장 처마를 꾸미는 등 철골과 나무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건축물을 지었다. 멀리서 보면 숲으로 덮여 있는 느낌이 나고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곳곳에서 목재를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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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불 할퀴고 간 울진… 2년 지났지만 아직도 ‘탄내’

    지난달 28일 오후 2시. 경북 울진군 북면 한 야산의 정상. 김영훈 울진국유림관리소장이 새까맣게 그을린 소나무의 몸통을 어루만졌다. “비가 올 때면 항상 흙냄새가 향기롭게 풍기던 곳인데 아직도 희미한 탄내가 콧속을 파고드네요.” 손에는 거무튀튀한 잿물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선 채로 죽어 있는 나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시선을 돌리자 벌거숭이처럼 변한 휑한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린스완(Green Swan)’에 대비해 국내 숲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형 화재 등 재난 후 신속한 복원과 사전예방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2년 전 대형 화재를 겪은 울진-삼척의 숲이다. 2022년 3월 4일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 삼척까지 번졌던 초대형 산불은 무려 213시간 동안 서울 면적의 약 35%에 이르는 2만923ha(헥타르)를 태웠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당시 산불 피해를 입었던 곳들에선 죽은 나무가 뿌리째 뽑인 후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 소장은 “죽은 나무는 벌채해야 하고, 일대는 민둥산이 된다”며 “대형 산사태 피해가 일어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집을 잃었던 주민 181가구 가운데 30가구는 아직도 임시 컨테이너 주택에 머물고 있었다. 산불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울진 인구의 약 22%인 1만여 명은 송이 등 임산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최근엔 수확을 못 하고 있다. 대를 이어 송이 농가를 운영해 온 이운영 씨(51)는 “죽어서 눈감을 때까지 울진에서 송이를 볼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 범위가 워낙 방대한 탓에 복구는 여전히 더디다. 울진군에 따르면 군 전체 피해 면적 1만4140ha 중 현재까지 벌채 면적은 1800ha에 불과하다. 자연복구 지역을 제외한 인공복구 범위 6900ha를 기준으로 보면 약 26%만 벌채가 진행됐다. 울진군 관계자는 “벌채 작업이 끝난 구역도 묘목 식재가 완전히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평균 기온이 올라 산불이 일상화되고 있어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권춘근 연구원은 “산불 발생 시 진화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 담수지를 산불 위험 지역마다 조성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산불이 나면 진화 차량 등 장비가 진입할 수 있는 임도(林道)를 계획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원전 주변이나 군부대 탄약고 주변처럼 초대형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도 대비책으로 제시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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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이형주 동아일보 광주호남취재본부 부장 모친상

    ◇강영자 씨 별세·이형문 KT부장 형주 동아일보 사회부 광주호남취재본부 부장 모친상· 박인규 전 근로복지공단 광주본부장 장모상=20일 광주 천지장례식장, 발인 22일 오전 10시 30분 062-527-1000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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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수 저출산 지원 정책은 소득기준 폐지해야[광화문에서/강경석]

    “저출산을 복지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한참 전에 넘어섰다.” 최근 한 중앙 부처 공무원은 저출산 문제와 관련한 각종 대책에 대해 “소득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정하던 것도 이젠 다른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온라인에서 신생아 특례대출을 소득 기준에 따라 다르게 지급하는 정책을 놓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지원 대상 소득 요건을 연간 1억3000만 원 이하로 한정하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거나 출생신고에 남편 이름을 올리지 않는 편법을 공유하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소득 기준의 경계선에서 지원 여부가 엇갈린 부부들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복지 정책에 대해선 모두에게 지급하는 무차별적 현금 살포성 정책 대신 꼭 필요한 대상자에게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미 저출산 문제가 복지의 영역을 넘어선 지 오래라는 게 문제다.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에 대해선 소득 기준을 폐지한 것처럼 필수 분야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지원 대상자를 늘려야 한다. 소득 기준을 운운하며 행정적인 잣대로만 접근하는 건 안이한 발상이다. 서울에 사는 한 맞벌이 30대 가장은 “소득 기준으로 부모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 아니냐”며 “주택자금대출 같은 주거 정책까진 아니더라도 육아 돌봄 정책은 소득 기준을 따질 게 아니라 누구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13년 전 정치적 명운을 걸고 선택적 복지를 주장했던 오세훈 서울시장마저 저출산 위기 앞에선 각종 지원 정책에 대해 소득 기준은 물론이고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마저 하나둘씩 폐지하는 판이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도 신년 간담회에서 “모든 저출산 정책에서 소득 기준을 폐지하자”며 정책 대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저출산 문제처럼 지독하게 해법을 찾지 못하는 분야도 없다. 결혼부터 임신, 출산, 육아, 보육, 교육, 입시, 취업, 그리고 다시 자녀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반세기 동안 이런 삶의 궤적 곳곳에 산적해 있는 문제를 방치한 대가를 이제야 치르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선 저출산 공약을 대대적으로 내놨고, 자녀 1명을 출산할 때마다 1억 원을 내놓겠다는 기업까지 나타났다. 그럼에도 지난해 10∼12월 합계출산율은 0.65명,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출산 정책은 대대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당장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전문가들은 최소 5년, 길게는 10년은 지나야 정책 효과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한다. 소득 기준 폐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병원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의료 공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고,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저출산 문제는 잠시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선출직 공무원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책임감으로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흔들림 없이 끌고 가야 한다. 수년 뒤에 있을 선거만 염두에 두고 유권자의 눈앞에 당장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표퓰리즘 정책만 남발해선 나라의 미래가 없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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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저출산 위기 극복하려면 이민자 받아들일 준비해야

    5년 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해 5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해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법으로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경제학적으로 이민이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연구들이 있다”며 “육아 관련 복지를 개선하고 일-가정 양립 등 포괄적 정책이 필요한데 많은 국가에서 이미 채택한 방법이 이민 정책”이라고 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특별비자 도입 정책을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적 석학의 이 같은 주장은 이르면 올 상반기 중 서울시에서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가 이달 초 저출산 극복을 위한 ‘탄생응원 프로젝트’ 중 하나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다만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필리핀 국적 100명만 고용하는 소규모 사업이라 아직까진 말 그대로 시범 사업에 불과하다. 2022년 유엔이 내놓은 세계인구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운용해 왔던 싱가포르는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 1.02명을 기록해 238개국 중 다섯 번째로 낮았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인구절벽에 직면하게 된 우리나라와 달리 싱가포르는 약 80년 뒤 인구가 소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가사도우미 등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민 정책 때문이다. 싱가포르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구 564만 명 중 싱가포르 국민은 355만 명(약 63%)에 불과하다. 157만 명(약 28%)은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 52만 명(약 9%)은 영주권자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이민자라는 뜻이다. 우리도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과 함께 싱가포르처럼 적극적으로 외국인을 받아들여야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이민청 설립에 열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만난 한 고위직 공무원은 “냉정하게 돌아보면 우리나라는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 중 하나”라며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수용하겠다고 하지만 솔직히 우리 정서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커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주변에서 서구권 출신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던 이가 우리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동남아시아 등 일부 국가 출신에겐 혐오감마저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걸 직접 목격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이민자와 외국인을 대하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 구글 창업자 모두 이민자였고, 챗GPT 개발사 오픈AI 최고기술책임자도 알바니아 출신 이민자다. 미국 내 상위 인공지능(AI) 기업 43개 중 28개 창업에 이민자가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민자에게 허드렛일이나 맡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저출산으로 나라가 없어질지도 모를 상황에서 어쩌면 이민자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된 지 오래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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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억 소리’ 나는 저출산 정책… 효과 따져 장기 대책 세워야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서울시 간부회의에서 “현금을 지급하고 출산율을 올리려는 시도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문했다고 한다. 오 시장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는 “실·국장들에게 파격적인 출산 인센티브와 동시에 미래를 대비하는 선제적 정책 과제 준비를 주문했다”며 “미리 내다보고, 먼저 준비하겠다”고 썼다. 최근 곳곳에서 현금성 지원을 늘리는 저출산 정책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오 시장이 제시한 방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17년 전인 17대 대선 당시만 해도 ‘신혼부부에게 1억 원 제공’을 내걸었던 허경영 후보의 공약은 현실화하기 어려운 황당한 내용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젠 1억 원 안팎을 지원한다는 저출산 정책은 흔한 내용이 돼버린 지 오래다. 인천시는 지난해 12월 인천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총 1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1억 플러스 아이드림’을 발표했다. 이에 질세라 경남 거창군은 출생아 1인당 1억1000만 원을, 충북 영동군은 최대 1억240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저출산 대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민간 기업도 동참했다. 부영그룹은 2021년 이후 태어난 자녀가 있는 직원에게 자녀 1인당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전남 해남군의 저출산 정책은 한때 ‘땅끝마을의 기적’으로 불렸을 만큼 모범 사례로 꼽혔다. 2000년 인구 10만 명이 무너지자 2012년부터 출산장려금 300만 원을 현금으로 줬다. 50만 원이었던 출산장려금을 6배나 늘려 전국 최고 수준으로 지급했다. 불과 1년 만에 출생아가 300여 명 늘어난 810명을 기록하며 출산율 2.47명을 기록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후 해남군은 2018년까지 전국 기초지자체 출산율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문제는 출산장려금을 받았던 4가구 중 1가구가 해남군을 떠났다는 것이다. 육아, 교육, 의료 등 인프라가 충분치 않다고 느낀 부모들이 지원금만 받고 살기 좋은 지역을 찾아 나선 셈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연구진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의뢰로 지난해 작성한 ‘저출산 정책 평가 및 핵심 과제 선정 연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1∼40%에서만 출산지원금이 출산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는 인구 10만 명 이상 100만 명 미만 도시에서 모두 출산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인센티브가 아예 없는 것보다 ‘억 소리’ 나는 저출산 정책이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한 40대 맞벌이 직장인 엄마의 푸념은 새겨들을 만하다. “돈이 없어서 애를 못 낳는 게 아니잖아요. 언제 키우고 언제 학교 보내나요. 엄두가 안 나서 안 낳는 거죠.” 결국엔 맞벌이로 일하는 부모라도 마음 편하게 아이를 맡긴 뒤 일할 수 있고,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육아휴직 제도를 확산하고 직장 어린이집 등 육아 인프라와 교육 시설을 늘리는 노력도 상상력을 발휘해 ‘1억 원 현금 지급’과 같은 파격적인 정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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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저출산과의 전쟁 선포한 경북도지사의 절박함

    경북도는 18일 ‘저출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중앙정부 중심의 저출산 대책을 지방정부 중심으로 대수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굳이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쓴 이유에 대해 “다소 과격해 보일 수 있지만 전시 상황에 준하는 위기라는 심정으로 저출산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초 경북도 모든 부서 직원에게 업무 영역과 관계없이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책 아이디어를 내도록 했다. 열흘 넘게 진행한 브레인스토밍에서 주택 정책을 비롯해 일·가정 양립, 완전 돌봄, 외국인 정책 등 분야를 막론하고 정책 아이디어 266개가 모였다. 이 중에서 10개를 추려 발표하고 전 직원과 전문가, 맞벌이 육아 중인 도민, 예비 부부 등 300여 명이 모여 끝장 토론을 벌였다. 신혼부부에 연 1% 금리로 3억 원을 대출해 주고 6년 이내에 아이 2명을 낳으면 전액 변제해 주거나, 김천혁신도시에 유명 대형 학원을 유치해 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아이디어 등을 내놨다. 업무 보고 다음 날 이 지사는 통화에서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더라도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며 “현금 지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가 육아를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출산 극복 시범도시를 만들어 이곳에서 성공한 정책들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며 “적당히 하는 척만 하다간 정말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라도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역시 18일 총선 공약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여당은 육아휴직 급여를 210만 원으로 올리고, 배우자 출산휴가를 1개월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앞세웠다. 부부간 육아 부담 격차를 줄이고,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대책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야당은 소득, 재산과 상관없이 모든 신혼부부에게 현금을 지원해 출산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자녀를 2명 이상 낳으면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는 내용도 담았다. 지방자치단체와 국회 모두 저출산 극복에 한목소리를 낸 건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절박함이었다. 인구가 줄어드는 걸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는 지자체는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여야는 눈앞에 다가온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메가톤급 공약을 발표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당장 국민의힘의 저출산 공약에 대해선 “공무원과 대기업 직원이나 체감할 만한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민주당을 향해선 “연간 필요한 28조 원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란 비판이 제기됐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누가 어떤 이슈를 먼저 선점하느냐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실현할 수 있는 공약만 발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수도권 도시의 서울 편입을 둘러싼 메가시티 공약도 어젠다를 선점하기 위해 여권에서 선제적으로 제시했지만 당장 실현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저출산 공약만큼은 정치권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미 저출산 문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경쟁의 관점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관점에서 다뤄야 하는 문제가 된 지 오래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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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의장의 ‘저출생 개헌’… 흘려듣기엔 위기 심각해[광화문에서/강경석]

    김진표 국회의장은 4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10년 후 대한민국을 위한 제안’을 발표하며 “국가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저출생 문제 해결을 헌법에 못 박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발표문 8556자 중에서 인구절벽의 위기를 강조하며 저출생 해법을 언급한 내용이 첫 대목부터 5000자 넘게 이어졌다. 국회의장이 신년 간담회에서 직접 저출생 문제를 강조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임기를 5개월가량 남겨놓은 김 의장의 신년사에선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1987년 이후 멈춰버린 개헌 논의는 대통령제 권력 구조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해관계 탓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헌법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제기됐지만, 이런 논의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동력도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김 의장이 새해 화두로 던진 ‘저출생 개헌’은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이슈였다. 다만 9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비롯해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이른바 쌍특검법을 둘러싼 팽팽한 여야 대치 정국이 펼쳐져 있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상황에서 저출생 개헌 주장은 어쩌면 한가한 소리처럼 들렸을지 모른다. 김 의장의 주장이 실제 개헌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데도 김 의장의 저출생 개헌 주장을 마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인구절벽의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저출생 위기에 대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구난방식 대책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것만 증명됐다”며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인구절벽의 문제를 심각한 국가 위기 상황으로 상정해 장기 과제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 국가 과제로 보육과 교육, 주택 등 인구 감소 정책을 개헌안에 명시해 국민투표를 통해 정해야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고 일관된 정책 수단과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병력 감소와 노동력 부족, 긍정적인 이민 정책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발표문 중에선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6일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문제를 더욱 엄중하게 인식하고 원인과 대책에 대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직접 인구절벽 위기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만큼 국회의장이 제기한 특단의 대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야 한다. 저출생 문제처럼 여야 모두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국가적 과제는 많지 않다. 대통령이 앞장서고, 국회에서 여야가 합심해 국가적 정책을 완성하는 것만큼 국민이 바라는 모습이 또 있을까. 개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저출생 문제와 관련한 해법을 여야가 함께 마련할 수 있길 기대한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극단적 ‘증오 정치’가 확산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가 정치권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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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이 저출생 대책을 직접 챙겨야 하는 이유 [광화문에서/강경석]

    윤석열 대통령은 올 3월 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대통령이 직접 저고위 회의를 주재한 건 2015년 11월 이후 7년 4개월 만이었다. 이후 정부 내에선 올 연말 전 윤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저고위 회의를 주재하면서 일·가정 양립 대책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여권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책 우선순위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고, 당장 표가 안 되는 저출생 대책 발표는 후순위로 밀렸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최근 필자와 만나 “총선에서 승리해야 저출생이든 민생이든 관련 입법을 추진할 수 있다”며 “윤석열 정권의 명운이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이라 총선에서 승리할 특단의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들으면서 ‘윤석열 정권’ 대신 ‘대한민국’이, ‘총선 승리’ 대신 ‘저출생 문제 해결’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각에선 여야가 상대적으로 이견이 없는 저출생 문제를 여권이 주도적으로 공론화하고 대책을 마련해 입법 드라이브를 걸었다면 여소야대 지형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기울어진 운동장 탓만 하면서 집권 초반을 허비하느니 주어진 여건을 활용해 국정을 이끌어가는 실력을 국민에게 보여줬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저출생 문제는 오늘내일 먹고살 걱정이 우선인 국민에겐 와닿지 않는 이슈다. 대책의 효과가 수십 년 후에나 가시화되기 때문에 4년 뒤, 5년 뒤 당선과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권에도 관심이 없는 주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에 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다뤄지며 국내에서 반짝 이슈로 떠올랐지만 그때뿐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 0.78명은 1994년 독일 통일 직후 혼란에 빠졌던 동독 지역 0.77명과 근접한 수치다. 지금 이 추세라면 두 세대가 지난 50여 년 뒤 우리나라 국민은 17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한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7개월이 지났다. 주변에 윤 대통령의 최대 성과가 무엇인지 여러 명에게 물었다.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공조를 강화한 외교안보 성과를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내치와 관련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뚜렷한 성과가 아직 없다 보니 임기 5년인 대통령으로선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어떻게든 확보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질 만하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다. 이미 똑똑해진 유권자들은 오직 눈앞의 선거만을 바라보고 내놓는 선심성 공약엔 감동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직접 저출생 정책을 챙기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저출생 여파의 직격탄을 맞을 젊은 세대는 적어도 진정성을 느끼지 않을까. 선거를 치르려면 결국 유권자인 국민이 있어야 한다. 눈앞에 닥쳐온 저출생 위기를 방치하고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동안 선거도, 국민도, 나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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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서울시의 저출생 정책이 반가운 이유

    2011년 1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주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복지정책에 대해 오 시장은 “무상의료, 무상보육을 앞세워 비양심적 매표 행위를 하고 있다. 망국적 무상 쓰나미를 막지 못하면 국가가 흔들린다”고 날을 세우며 시장직을 걸었다. 필자는 당시 서울시 출입기자였다. 무상급식 이슈가 전국적 화두가 되면서 서울시 관계자들로부터 왜 선택적 복지가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당시 주민투표율이 개표 기준인 33.3%에 미달해 25.7%에 그치며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한 채 오 시장은 사퇴해야 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시장직은 민주당이 차지했다. 그 이후 사석에서 오 시장을 만날 때마다 그는 시장직을 걸었던 걸 후회하면서도 선택적 복지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피력했다. 그런데 최근 만난 40대 직장인 여성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의외였다. 이 여성은 “서울시가 난임부부 시술비를 소득 기준 구분 없이 지원해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보건복지부의 난임 시술비 지원은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지원받을 수 없어 맞벌이 부부는 사실상 꿈도 못 꿨다”고 했다. 오 시장이 저출생 대책만큼은 보편적 복지를 수용한 것이다. 서울시는 올 3월부터 난임 시술비 지원 소득 기준을 폐지했고, 모든 출산 가정에 산후조리비 1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가 존폐의 문제가 걸린 저출생 위기 탓이다. 난임 시술을 받으려면 한 달에 서너 차례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시술비는 많게는 400만, 500만 원이 든다. 3년 넘게 난임 시술을 받고 있다는 30대 직장인은 “어떻게 해서든 출생률을 높이겠다는 정부가 난임 시술비는 소득 기준에 따라 주는 걸 보고 현장을 모르는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서 내놓은 한심한 정책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년 1월부턴 전국 어디서든 소득 기준과 관계없이 난임 시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월 소득 일정액 이하 가정이나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에게만 지원했지만 보편적 복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남은 숙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원래 보건복지부가 담당했던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사업은 지난해부터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갔다. 지자체마다 예산 사정이 다르다 보니 서울처럼 상대적으로 넉넉한 곳은 문제가 없지만 살림이 팍팍한 곳은 예산 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지자체 사업이라고 뒷짐만 진 채 수수방관한다면 재정난을 겪는 지역에선 난임부부 지원 사업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올 8월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을 국가 사업으로 다시 전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11년 전 시장직을 걸었던 오 시장도 저출생 문제만큼은 한발 물러섰다. 정부 역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난임부부 지원 사업을 정부 사업으로 다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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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메가시티와 지방시대, 함께 이루겠다는 자기모순

    “적어도 대통령실에서 먼저 아이디어를 낸 건 아니다.” 여권 관계자는 최근 국민의힘이 제기한 ‘김포시 서울 편입’ 방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에 김포시를 편입시켜 초광역도시를 만들겠다는 김기현 대표의 발표는 당내에서도 지도부 몇 명을 제외하곤 몰랐다고 한다. 깜짝 발표였던 셈이다. 김 대표도 애초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지난달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로 궁지에 몰린 여당이 국면을 전환시킬 묘수라고 판단해 밀어붙였다고 한다. 경기 평택에서 3선에 성공한 유의동 정책위의장 등 수도권 전현직 의원들도 적극 움직이며 대통령실을 설득해 물꼬를 텄다. 파장은 컸다. 약 60년 만에 서울이 대대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곳곳에서 피어났고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평가는 반등했다. 서울과 인접한 12개 기초자치단체에서는 구리 광명 과천 성남 하남 고양 등 가릴 것 없이 들썩이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40대 직장인도 “지금은 강동구가 송파구와 강남구를 받쳐 주는 외곽 지역이지만 하남시가 편입되면 강동구가 서울의 중심에 가까워지는 셈”이라며 “도심과 가까울수록 집값이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문제는 이번에 발표한 메가시티 구상이 철저한 ‘총선용 전략’이란 점이다. 국민의힘은 메가시티라는 단어 대신 ‘뉴시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여당에 수도권 대승을 안겨다 준 ‘뉴타운 전략’을 떠올리게 하는 작명이다. 지난해 20대 대선 레이스 당시 윤 대통령이 내놓은 450쪽 분량의 공약집에는 ‘메가시티’라는 단어가 딱 세 번 나온다. 그나마 충청권 메가시티, 새만금 메가시티 등 지방 균형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됐다. 공약집에선 “역대 정부가 다양한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시행했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이 이어졌고 지방의 경쟁력이 약화됐다”고도 했다. 사전에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탓에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들까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 김포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행정안전부 장관 출신 유정복 인천시장은 “정치 쇼”라며 “총선 앞두고 혼란만 초래하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청년들은 지금도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다. 정부는 올 7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를 만들고, ‘이제는 지방시대’란 슬로건을 앞세워 이달 초 박람회도 열었다. 박람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확대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런데 8일 친윤(친윤석열)계 포럼 초청 강연에서 이 장관은 “지방은 서울, 수도권, 비수도권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쓴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총선용 전략이라고 폄훼할 게 아니라 선거 덕분에 새 어젠다를 제시한 걸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나 지방 균형발전 같은 국가적 과제는 당정이 합심해도 달성하기 힘들 때가 많다. 지금처럼 곳곳에서 인지 부조화가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메가시티와 지방 균형발전 모두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이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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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나라가 없어질 위기에도 저출생 손 놓은 정치권

    “대학 입시요? 무조건 외국 대학 보내야죠. 국내 대학 보내서 뭐 해요. 나라가 없어지게 생겼는데….” 최근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를 만나 얘기하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이른바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학부모인데 입시를 물었더니 난데없이 저출생 현상을 거론하는 답이 돌아온 것이다. 대치동 학부모는 대한민국 어느 학부모보다 교육 정책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최신 입시 전략과 트렌드를 선도하는 전문가들이다. 이 학부모도 이미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며 학군을 고려해 사는 곳까지 대치동으로 옮긴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이러다 수십 년 후 나라가 없어질지 모르는데 아이를 의대나 법대에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최근 이런 얘기를 하는 강남 엄마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했다. 저출생 문제를 먼 미래가 아닌 코앞에 닥친 위기로 인식하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40년 전인 1983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는 평균 2.06명이었다. 합계출산율이 2.1명 미만이면 저출산국가로 분류되는 기준에 따라 그때 이미 저출산국가로 분류됐다. 그런데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아 출산율은 계속 곤두박질쳤고 2001년 초저출산국가(1.3명 미만)가 됐다. 그 이후인 2005년에야 정치권은 부랴부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만들고 예산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15년 넘게 280조 원을 투입한 결과는 처참하다. 지난해 출산율은 0.78명,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저출생 경고등은 수십 년 전부터 켜져 있었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선심성 현금 지급 정책만 남발했을 뿐 문제를 해결하지도, 문제의 심각성을 국민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21대 국회에선 인구위기특별위원회를 꾸려놓고 10개월 동안 회의를 고작 4차례 열었다. 저출생 관련 법안은 435개 발의했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건 19개에 불과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모두 지난해 대선에서 저출생 해결을 공약했지만 체감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내년 총선 공천에 사활을 거는 국회의원들은 국가적 과제인 저출생 문제 대신 지역구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여권에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책임 공방을 벌이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대선주자급 정치인들이 서로 견제하느라 유치한 논쟁을 하는 그 순간에도 저출생 상황은 더 악화되고, 국가적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여당 대표를 지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저출생 문제 해결 못 하면 나라 망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지만 국가적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고민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만난 정치인 중 누구로부터도 저출생 문제를 진정성 있게 고민한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정치인들이 강남 엄마들보다 저출생 문제에 무관심하다면 정말로 나라가 망할지도 모를 일이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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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앞으로 다가온 2024년 美 대선…미리보는 관전 포인트 3가지는

    2024년 11월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이 1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 매치를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최종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엔 모두가 “예측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1년 6개월 전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불과 24만7077표(0.73%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던 박빙 승부가 미국 대선에서도 펼쳐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내년 미 대선에서 맞붙게 될 것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이들이 직면하게 될 과제와 주요 변수를 미국 기자들과 미 싱크탱크 관계자, 정치학 교수 등의 분석을 토대로 정리해봤다. ①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 구성의 변화미 대선이 우리나라 대선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에 의해 치러지는 간선제와 직선제가 혼합된 방식이라는 것이다. 전체 득표수가 많더라도 50개 개별 주(州)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2016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6415만 표를 얻어 트럼프(6223만 표)보다 약 192만 표를 더 얻었지만 23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데 그쳐 290명을 얻은 트럼프가 최종 승자가 됐다. 앞서 2000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엘 고어 후보도 전체 득표수에선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전국적으로 약 54만 표 앞섰지만 결국 선거인단 5명(266대 271)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이처럼 미 대선의 최종 성패를 가르는 선거인단은 주별 인구비례에 맞춰 배분된다. 지난 2020년 대선 기준 538명의 선거인단은 50개 주마다 2명씩인 상원의원(100명)과 하원의원(435명) 숫자를 더한 뒤 워싱턴DC 선거인단 3명을 더해 구성됐다. 문제는 내년 대선에선 미 인구수에 맞춰 분포된 주별 선거인단 수가 바뀐다는 점이다. 10년마다 집계하는 인구통계에 따라 텍사스 등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주 인구는 늘었지만 북동부 미시간 오하이오 뉴욕주 등은 인구가 줄었다.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지역이자 50개 주 중에서 선거인단이 가장 많이 걸려있는 캘리포니아(54명) 역시 인구가 줄어들어 선거인단 숫자도 줄게 됐다. 내년 미 대선 선거인단 숫자 변화는 아래와 같다. 선거인단 변화해당 주(괄호는 바뀐 선거인단 수)2명 증가텍사스(40)1명 증가콜로라도(10), 플로리다(30), 몬태나(10), 노스캐롤라이나(16), 오리건(8)1명 감소캘리포니아(54), 일리노이(19), 미시간(15), 뉴욕(28), 오하이오(17), 펜실베이니아(19), 웨스트버지니아(4)이같은 선거인단 구성의 변화가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 중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 동서센터 주최로 최근 미 워싱턴을 방문해 만난 미 조지워싱턴대 토드 L 벨트 정치경영대학원장(Director of Graduate School of Political Management)은 “내년 대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은 선거인단이 1명 늘어난 노스캐롤라이나”라며 “전통적으로 공화당 강세지역인 텍사스가 2명 늘고, 민주당 강세지역인 캘리포니아나 뉴욕이 1명씩 줄어든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② 줄어든 ‘스윙 스테이트’또 다른 변수는 ‘스윙 스테이트(경합주)’ 숫자가 2020년 대선에 비해 대폭 줄어든 것이다. 미 현지에선 과거 미 대선의 향방을 좌지우지했던 ‘스윙 스테이트(경합주)’ 숫자는 2020년 대선에 비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스티브 허먼 미국의소리(VOA) 선임기자는 필자 등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미국 내에선 내년 대선 결과에 애리조나, 네바다, 위스콘신, 펜실이베니아 등 4개 주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결국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90% 이상의 에너지와 인력을 이곳 4개 주에 쏟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버지니아주립대 정치센터도 애리조나, 위스콘신, 네바다와 조지아를 경합주로 예측했다. CNN 역시 “경합주가 아무리 많아도 7, 8곳을 넘지 않을 것”이라며 “4곳 이하로 역대 최저일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처럼 스윙 스테이트가 줄어든 현상은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 중 누구에게 유리할까. 스티브 허먼 기자는 “민주당도 공화당도 아닌 제3의 후보가 스윙 스테이트에서 대선 결과를 좌지우지할만한 득표를 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전체 선거인단 분포 등을 기준으로 추측해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 인기 투표가 아니라 선거인단 투표라는 점에 비춰볼 때 당장 내일 대선이 치러진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③ 정치적 양극화, 바이든과 트럼프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정치적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변수로 꼽힌다. 양쪽 극단에 있는 유권자층이 얼마나 결집하느냐가 전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극성 트럼프 지지자의 경우 진보, 보수, 중도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유권자층에 ‘트럼프 지지층’이라는 새로운 유권자층이 생겨났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라 이들의 결집력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유권자들이 정당이 아닌 후보 개인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내년 미 대선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벨트 교수는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다른 차원의 논의는 원래 어느 정당을 선호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정당을 더 싫어하느냐는 것”이라며 “지난 대선에서 이른바 ‘샤이 트럼프’라고 불렸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이 전통적인 여론조사에서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것처럼 내년 대선에선 ‘안티 트럼프’라고 부를 수 있는 반(反)트럼프 유권자층의 규모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령화 이슈에 발목이 잡혀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경우 트럼프 지지층의 결집력이 한층 더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이드리엔 포크트 CNN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실망한 민주당 지지층은 바이든의 재선 도전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건강 문제를 노출할 경우 트럼프와 공화당 지지층을 결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우 2020년 대선 뒤집기 시도 혐의 등으로 4차례나 형사 기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화당 경선 레이스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본선 결과를 예측하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많다. 허먼 선임기자는 “투표는 마지막 순간에 결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여론조사에서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에 질려서 아예 투표를 안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실제 투표를 하는 사람이 누구일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202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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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세계가 주목하는 건 ‘한류’일 뿐 ‘한국’이 아니다

    “최근 한국 문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평생 경험해보지 못했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상황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는 1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필자 등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협력 관계와 향후 전망에 대해 설명하다가 “이 얘기는 꼭 하고 넘어가고 싶다”며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미 조지타운대에서 국제정치학과 한국학을 강의하는 빅터 차는 “20년 전 처음 한국학 강의를 시작했을 때 수강생은 재미교포 2세 등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학기 수강생이 50여 명까지 늘었는데 아시아계 학생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가 첫 수업에서 한국학을 수강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북한 핵 문제 등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답한 학생은 국방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1명뿐이었다. “단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룩한 나라에 대해 궁금했다”고 답한 학생 역시 2, 3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모두 “K팝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최근 10년간 미국 대학의 외국어 수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국어만 유일하게 60% 이상 급증했다는 미국 현대언어협회 조사 결과도 소개했다. 필자는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을 방문해 빅터 차 등을 만났고 CNN, CBS, 공영 라디오 NPR, 허핑턴포스트 등에 속한 기자들과 토론할 자리가 있었다. 미국 기자들 역시 “계층과 세대를 불문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입을 모았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른바 ‘국뽕’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이 ‘한국’이 아닌 ‘한국 문화’에만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가능성에 대해 묻자 한 기자는 “솔직히 미국 내에서 엑스포 이슈는 전혀 관심 대상이 아니다”라며 “최근 부산을 방문해 설명을 들은 뒤에야 한국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국내에서 정부와 기업들이 유치전에 ‘올인’하는 것과는 온도 차가 컸다. 최근 국내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어떨까. 하와이가 지역구인 에드 케이스 미 민주당 하원의원은 14일 필자와 만나 “과학적 증거를 확인해보면 위험은 최소화됐다고 생각한다. 하와이에도 방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만큼 많진 않다”고 했다. 또 “아무래도 (한국) 국내 정치와 얽혀 있는 부분이라 (반대하는) 반응이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반응을 접하며 어쩌면 한국인 상당수는 한류에만 주목할 뿐 한국에 대한 객관적 시선은 외면해 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정부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부실 운영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높아지자 K팝 콘서트를 열어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더 이상 K팝과 한류 이미지를 만능열쇠 삼아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한류를 향한 찬사에 도취된 와중에 정작 한국이라는 나라가 잊힐 수 있기 때문이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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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물 건너간 의경 재도입… 누구 책임인가

    최근 여권 관계자로부터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발표했던 ‘의경 재도입’ 방침이 사실상 무산된 배경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한 총리는 지난달 23일 흉악 범죄 대책을 발표하는 대국민 담화에서 “의무경찰제 재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하루 만에 총리실은 “경찰 인력을 현장 중심으로 재배치하고 추가 보강이 필요하면 재도입도 검토하겠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설명자료를 배포해 ‘적극 검토’라는 말을 주워 담으며 수위를 낮춘 것이다. 통상 국무총리가 직접 “적극 검토하겠다”고 하면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관례다. 한 총리는 발표 당시 “국민의 안전한 일상과 생명을 반드시 지켜낸다는 정부의 비상한 각오”라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한 총리 말이 무색하게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경 재도입 논의를 두고 “쉽게 동의할 사안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협의한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병력 자원이 부족해 폐지한 의경 제도를 부활시킬 순 없다는 취지였다. 총리가 직접 나서 발표한 사안을 둘러싸고 해프닝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정부 내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이 작용한 결과”라고 전했다. 그는 “기획재정부 출신이 중용된 최근 장차관급 인사 발표 이후 기재부 장관 출신 한 총리에게 힘이 쏠리는 걸 견제하려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런 흐름에서 정권 유력 인사가 의경 재도입 논의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했다. 실명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이 관계자의 설명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런 얘기를 듣긴 했지만 터무니없는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조선시대 당파싸움에서나 나올 법한 말까지 나오는 건 그만큼 의경 재도입 논의 발표 및 번복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총리실의 속내도 궁금했다. 하지만 총리실 관계자는 “한 총리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답변한 대로 의경 재도입 검토가 백지화된 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총리실 측이 대국민 담화 발표에 배석했던 윤희근 경찰청장이 8000명이란 숫자를 언급하면서 일이 커졌다고 푸념한 걸 들었다”고 했다. 당시 윤 청장은 “8000명 정도 운영하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서로를 탓하는 상황에 경찰도 억울함을 드러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잇따른 강력범죄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경찰 조직 논리 때문에 과도하게 의경 재도입을 주장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정부의 비상한 각오를 담아 흉악 범죄 대책으로 내놓은 의경 재도입 논의는 결국 없던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치안 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적어도 치안과 관련해선 정부가 불안한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발표를 번복해 오히려 불신을 키우는 일이 다시 있어선 안 될 것이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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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112는 국민이 마지막 기댈 곳… 경찰의 거짓말 반복돼선 안돼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은 윤희근 경찰청장 인터뷰 자리에서 필자가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불거졌던 경찰의 허위 출동 논란에 대한 경찰 수장의 생각이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15일 발생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지도 않았는데 112 신고 처리 시스템에 허위로 출동한 것처럼 처리했다며 경찰관 6명을 수사 의뢰했고,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윤 청장의 대답은 예상외로 명확했다. 그는 “우리 현장 경찰관을 신뢰한다. (국무조정실 발표에 대해) 절차적으로 아쉬운 건 있지만 나름 공정하게 가고 있다고 본다. 허위 보고는 아니라고 신뢰한다”고 했다. “수사 중이라 개인적 입장을 밝히는 건 부적절하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피해 가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는 달랐다. 국무조정실은 수사 의뢰 발표 당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출동했던 현장 경찰들의 범죄 혐의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에 가까울 만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경찰은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국무조정실 발표 이틀 만에 참사 당일 현장에 출동했던 오송파출소 소속 순찰차 블랙박스 영상까지 공개했다. 진실게임까지 감수하면서 경찰이 반발한 배경에는 112 신고를 둘러싼 ‘거짓말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1년 전 경찰은 경기 수원시 주택가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피살 사건과 관련해 미숙했던 초동 대처에 대한 비판이 일자 거짓말로 일관해 논란을 키웠다. 당시 피해자는 경기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에 전화를 걸어 “○○초등학교 조금 지나서 ○○놀이터 가는 길쯤에 있는 집이다. 성폭행당하고 있다. 빨리요. 빨리요”라고 알렸다. 하지만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살해범 오원춘에게 납치돼 문을 걸어 잠근 채 생사의 경계선에서 사투를 벌이던 피해자에게 “자세한 위치 모르겠어요?”라며 반복해 묻느라 골든타임을 날려 버렸다. 경찰은 처음엔 “장소도 모른다는 내용의 15초가량의 짤막한 신고 내용이 전부였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7분 36초간 신고 전화가 끊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경찰은 담당 간부들을 모두 경질하고 대대적 감찰을 벌였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핼러윈 참사 때도 경찰청에서 “일반적인 불편 신고 정도였다”고 한 112 최초 신고에 실제로는 구체적인 장소와 압사 가능성까지 언급됐지만, 경찰은 사고 직전까지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경찰청 특별감찰을 통해 이태원파출소 직원들이 출동하지 않고도 출동했다고 경찰 내부 시스템에 입력한 사실이 적발됐다 국민들은 재해든 범죄든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112에 전화를 걸어 마지막 기댈 곳을 찾는다. 윤 청장의 말처럼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경찰의 112 신고 대처가 11년 전, 그리고 지난해와 달랐길 바란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경찰의 거짓말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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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당권 주자들, 강원 총출동 ‘尹心 마케팅’

    국민의힘 차기 당권 주자들이 28일 강원도에서 열린 당원 교육에 일제히 참석해 표심 잡기에 열을 올렸다. 권성동 김기현 윤상현 안철수 의원(선수 및 가나다순)과 황교안 전 대표는 이날 오전 박정하 의원의 강원 원주갑 지역구 당원 교육에 참석한 데 이어 오후엔 유상범 의원 지역구인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으로 향했다. 강원도가 지역구인 권 의원은 “당내 의원들이 주저할 때 제일 앞장서서 윤석열 후보를 만났고 우리 집에서 캠프가 시작됐다”며 “윤 대통령과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고 ‘친윤(친윤석열) 마케팅’에 나섰다. 김 의원은 “자기는 죽어도 대통령을 살리고 당을 살리기 위해 그림자처럼 뒷바라지하는 당 지도부가 구성돼야 한다”며 “대통령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대표 되겠다고 하는 건 망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윤 진영의 유승민 전 의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 의원은 대선 기간 윤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 간 화해를 주선했다고 자평한 뒤 “우리 당이 똘똘 힘을 합치는 데 김기현이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자신이 외연 확장의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대통령 선거는 후보끼리 비교하지만 총선은 당 대표끼리 비교한다”며 “우리 당 대표가 변화를 상징하면 표를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과 장제원 의원을 둘러싼 ‘김장 연대’를 견제하는 발언도 나왔다. 윤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을 팔고 다니는 자칭 윤핵관들은 모두 수도권 출마를 선언하라”며 “김 의원은 울산을 떠나 서울 출마를 선언하라”고 썼다. 당 대표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내년 2월 초까지 당권 주자들 사이의 신경전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20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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