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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이야말로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요즘 청춘들의 멘토입니다.” 소리꾼 김영옥 씨(65)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완창 판소리 사설집 ‘이순신가’(SNS출판)를 펴냈다. 충무공의 젊은 시절 방황부터 자기를 내던진 리더십까지, 고통과 슬픔을 이겨낸 삶을 판소리로 되살려냈다. “충무공의 할아버지가 기묘사화에 연루돼 아버지도 관직에 못 나갔습니다. 충무공은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남의 밭에서 일하는 ‘알바생’이었어요. 진로가 막막했던 당시 심경은 ‘글을 익혀 문신될까, 무예 익혀 무장될까, 흙을 벗 삼아 사기장이 땀방울로 욕망을 씻을 건가’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죠. 그러나 숱한 실패 끝에 서른둘에 무과에 급제합니다. 충무공은 나약한 청춘이 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간 자립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김 씨는 고 한농선 명창(1934∼2002)으로부터 판소리 ‘흥부가’를 전수받았다. 2000년도에 여수시립국악단장을 맡은 후 충무공을 소재로 한 창무극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20∼30분짜리 단막극이었지만 여수 시민들의 반응은 열렬하고 뜨거웠다. 이후 6년간 ‘난중일기’를 비롯해 충무공 관련 문헌을 섭렵하며 3만7554자 분량의 판소리 사설을 창작했다. 다시 2년간 선율을 입혀 8년 만에 판소리 이순신가를 완성했다. 2008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4시간 동안 이순신가를 완창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 ‘적벽가’가 있습니다. 중국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을 그린 노래예요.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왜 200년 동안 적벽가만 불러야 했을까요. ‘이순신가’는 단지 영웅 일대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임진왜란을 이겨낸 민초들의 애잔한 한을 풀어내는 우리의 문화입니다.” 김 씨는 이순신가를 준비하면서 꿈속에서도 충무공을 여러 차례 만났다고 했다. 그는 스물다섯 살에 여수로 시집온 뒤 시부모와 함께 여수 내 충무공 유적지를 돌봐왔다. 김 씨는 “6·25전쟁의 여파로 다 쓰러져가는 충민사(忠愍祠)를 목재업 하시던 시아버지께서 직접 수리해 주시고, 시어머니는 매년 명절이면 충무공과 전라좌수영 소속 장군들의 비석이 있는 진남관에 음식을 준비해 제사를 올리시곤 했다”며 이러한 인연이 판소리 ‘이순신가’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올해는 임진왜란 420주년인 데다 대선의 해인 만큼 더욱 충무공 리더십을 되새겨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충무공은 늘 자신을 버리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며 “요즘 정치인들은 자기부터 거두려고 애쓰다 보니 거짓과 이기심이 난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순신 뮤지컬과 오페라도 있지만, 충무공의 면모를 제대로 알려면 끈끈한 판소리로 4, 5시간 녹록하게 들어야 제맛입니다. 효심, 남을 속이지 않는 마음, 자신을 버리는 자세 등 21세기에 세계인들에게 알리고픈 메시지를 판소리에 담았습니다.” 김 씨는 올해 들어 충남 계룡대 해군본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등의 초청으로 충무공에 대한 강연과 판소리 공연을 여러 차례 펼쳐왔다. ‘이순신학’을 공부하는 해군사관학교 생도들 앞에서도 공연했던 김 씨는 “머리로 이순신을 공부했겠지만 판소리를 통해 이순신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제 거리는 한여름의 푸른색을 뒤로하고 곧 총천연색으로 물들 것이다. 잠시 그 화려한 색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빛을 잃은 세상을 맞게 되고 회색빛 하늘, 그리고 가끔은 하얀색으로 변한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늘 보면서도 잊고 지내는 색이 있다. 까만색이다. 아이들을 상상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까만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림책들이 있다. ‘앗 깜깜해’(존로코 지음·다림)는 우리가 잊고 있는 까만 밤의 세계가 주는 특별한 선물을 깨닫게 해준다. 책을 열면 네모난 아파트 단지에 네모난 불빛이 가득한 장면이 양쪽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캄캄함 속에 놓이게 된다.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은 방안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장난도 치고 옥상에 올라가 까만 밤하늘에 드리워진 아름다운 별빛과도 눈을 맞춘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길거리로 나가 공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기도 한다. 캄캄한 밤이 문명의 이기에 빼앗겼던 사람의 온기를 되찾게 해주고 밤이라는 또 다른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브루노 무나리 지음·비룡소)는 표지를 장식하는 까만색과 블루의 조화가 강렬해 눈길을 끈다. 책을 열면 책에 대한 상식을 뛰어넘는 독특한 세계가 펼쳐진다. 깜깜한 밤에 조그만 책 한가운데를 지나는 반딧불의 움직임을 좇다보면 풀숲을 지키는 다양한 생명체들을 보게 된다. 또 그들이 인도하는 동굴 속을 들어가면 온갖 벽화와 선사시대 흔적들도 만난다. 간결한 글, 자유로우면서 감각적인 이미지, 입체적 구성, 다양한 종이의 질감들, 그것들과 어우러진 환상적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메네나 코틴 지음·고래이야기)은 까만 바탕색에 텍스트는 흰 글자인 그림책이다. 여기에 점자가 함께 제시된다. 그림은 부조 형식으로 종이에서 위로 약간 올라와 있어서 눈을 감고 손끝으로 그림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인 토마스라는 소년이 다양한 색깔들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내가 어떻게 색깔을 느끼는지 들어볼래?’하면서 말이다. 색깔들은 오감을 자극하는 시적인 언어로 묘사된다. 노란색은 코를 톡 쏘는 겨자 맛이고…. 가장 놀라운 반전은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로 색깔을 안내하는 소년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까만색 하나만으로도 넘치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조월례 아동도서평론가}

18세기 말 산업혁명기부터 노동당이 최초로 강력한 단독정부를 구성했던 1947년까지 150여 년에 걸친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집약했다. 근대 자본주의가 최초로 성숙한 나라였던 영국은 노동조합운동뿐 아니라 정치투쟁과 협동조합운동 등 다양하고 풍부한 투쟁의 역사를 이어왔다. ‘경제투쟁’(교섭, 파업, 노동쟁의)과 ‘정치투쟁’(의회개혁운동, 급진 정당 결성) 등 세대별로 변화해왔던 영국 노동운동의 흐름을 통사 형식으로 서술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곧 추석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날 기회입니다. 어른들이 차례준비를 하는 동안 할머니나 할아버지 곁에 앉아 살갑게 이야기를 나눠 보세요. 그분들의 어린 시절이나 결혼 무렵 이야기도 은근히 여쭤보면 어떨까요. 이럴 때 이 동화책을 읽어 드리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고만녜’는 1899년 기름진 농토를 찾아서 북간도로 이주해간 김신묵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딸은 그만 낳으라고 이름도 그렇게 지었던 시절이죠. 고만녜는 배움을 갈망합니다. 그 갈망은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이들 중 하나는 문익환 목사로 자라게 됩니다. 지도나 집 그림을 바탕으로 사진과 그림을 오려 붙여 표현한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고 정겹습니다. 공들인 그림이 주는 묵직함이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이지만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초등 3∼4학년 이상은 돼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초등 5∼6학년 이상일 경우 책장을 덮고 나서 ‘무옥이’(상상의힘)의 제1부나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삼인)을 읽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독후활동-콜라주 기법으로 가족사진 만들기준비물: 큰 종이, 친척들의 옛날 사진, 가위, 풀, 종이, 사인펜 같은 그림 도구, 잡지 그림. 1.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삼촌, 고모, 엄마, 아빠의 옛날이야기를 듣는다. (예를 들어 ‘할머니 할아버지의 결혼식 날 일어난 일’과 같은 식으로)2. 앨범에서 친척들의 옛날 사진을 찾는다.3. 찾은 사진을 얼굴이 잘 나오도록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출력한다.4. 종이에 얼굴을 붙이고 옷도 그려 붙여 모양을 따라 오린다. 옷을 그리기 힘들면 잡지에 실린 그림 중에 옷 부분만 크기를 잘 맞추어 오려 붙일 수도 있다. 5. 오려놓은 사람을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어울리게 배치하여 붙이고 바탕 그림을 보충한다. (그림책 3, 23쪽 참조)김혜진 어린이책교육 연구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테러로 인한 대형 폭발사고, 경제위기로 인한 생활기반의 붕괴…. 대형 재난은 인류 역사의 일부다. 지구 최후의 날을 그린 ‘2012’나 ‘딥 임팩트’ 같은 영화에는 불타는 도시에서 약탈과 파괴, 살인과 폭동이 난무하는 가운데 공포에 휩싸여 달려가는 군중이 등장한다. 그러나 과연 대형 재난이 이 같은 디스토피아의 모습이기만 한 것일까. 세계 각국의 재난기록을 조사하고 수많은 재난 피해자를 인터뷰해온 저자는 재난 속 인간행동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재난은 지옥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종종 ‘유토피아’를 발견한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중이 패닉에 빠져 폭동을 일으킨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주장은 소수 권력자의 두려움이 불러일으킨 상상이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있던 수천 명은 아무런 통제 없이도 두 줄로 서서 계단을 내려오며 침착하게 대피했다. 오히려 재난을 당했을 때 가장 큰 위험요소는 ‘엘리트 패닉’이다. 시스템 붕괴에 당황한 국가기구 엘리트의 잘못된 판단이 피해를 걷잡을 수 없이 확대시키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9·11테러 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어리둥절해하며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누비고 다닌 행동은 ‘엘리트 패닉’의 전형이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당시 도시 전체로 화재가 번진 것은 군대가 방화선을 구축한답시고 수많은 건물을 폭파시켰기 때문이다. 생필품을 구하려는 시민들까지 ‘약탈자’로 간주해 사살 명령을 내린 탓에 인명피해도 컸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뉴올리언스에서도 연방정부와 시정부는 ‘군중이 폭도로 변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시민들을 슈퍼돔과 컨벤션센터에 몰아넣어 고립시켰고 뉴올리언스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재난 속 대중의 실제 행동은 어떨까. 많은 사람이 ‘대중은 이기적이며 재난 후엔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대부분 구조대가 아니라 이웃 생존자들이다. 저자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를 돕는 과정에서 잊고 지내던 유토피아를 떠올리고 강렬한 기쁨을 체험한다”고 말했다. “이재민의 천막들, 문짝과 덧문과 지붕 조각으로 얼기설기 얽어놓은 우스꽝스러운 길거리 급식소들이 도시를 점령하자 유쾌한 소란은 일상이 되었다. 달빛이 비추는 긴긴 밤 내내, 사람들은 어디서건 천막에서 흘러나오는 기타와 만돌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급식소를 지나칠 때면 어둡고 후미진 곳에서 은밀한 도피처를 찾은 연인들이 나지막이 소곤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때도 있었다. 혼인신고 담당 공무원은 1906년 4월과 5월에 혼인신고서 발급 건수가 그 어느 해 같은 기간보다 많았다고 증언했다.”(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우편배달부 에드윈 에머슨의 증언) 이처럼 재난에서 유토피아가 발견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재난은 원인이 분명하고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지만, 고립된 현대인에게는 복잡하게 꼬인 일상이 더욱더 재난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대재난은 혁명이나 종교 축제와 유사한 성격마저 띤다. “많은 혁명 반대자들이 동의하듯이 만일 ‘혁명이 재난’이라면, 그 이유는 ‘재난 역시 일종의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재난과 혁명은 연대와 불확실성, 가능성, 체제의 전복과 같은 측면들을 공유한다. 규칙들이 깨지고 많은 문이 열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저자가 유토피아적인 분석으로만 내달린 것은 아니다. 1923년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군부와 대중이 합세해 조선인들을 살해했던 사건도 책에 담았다. 그러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등에서 보듯 재난은 우리 속에 잊혀졌던 이타적 본성을 깨우는 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명이 예전에 없던 재난을 만들 수도, 재난을 더욱 키울 수도 있는 시대, 재난에 대한 국가권력과 시민사회의 대처 방식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46)이 처음 쓰는 성인 소설 ‘캐주얼 베이컨시(The Casual Vacancy·사진)’가 27일 영미권, 28일 독일과 프랑스에서 동시 출간된다. 미국에서는 초판만 200만 부가 서점에 깔릴 예정이다. 작품은 가상의 전원도시인 영국 패그퍼드 시를 배경으로 정치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다. 패그퍼드 교구회에서 일하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갑자기 사망한 뒤 보궐선거가 치러지는데 이후 예기치 못한 폭로와 광기가 마을을 뒤덮는다. 마이클 피치 리틀브라운 출판사 부회장은 “512쪽에 이르는 소설을 읽다 보면 휴머니티, 유머, 사회에 대한 관심, 생생한 캐릭터가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를 연상케 한다”고 소개했다. 다른 지역에서의 번역판 출간은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롤링의 저작권 대행사인 ‘블레어 파트너십’이 인터넷에서 해적판이 나돌 것을 우려해 27일 영문판이 발간된 뒤에야 번역할 수 있도록 각국 출판사에 원고를 미리 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해적판 우려국’으로 찍힌 이탈리아 핀란드 등 유럽의 출판사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내놓기 위해 서둘러 번역 작업을 하기로 했다. 한국과 일본 등에서도 12월 초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해리포터’를 발간했던 문학수첩이 출간을 맡는다. 문학수첩은 롤링 측에 새 소설의 판권료로 100만 달러(약 11억2000만 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철 문학수첩 대표는 “원제는 ‘빈 의자’ ‘결원’ ‘공석’ 등으로 번역되지만, 번역하지 않고 원제 그대로 가는 것도 검토 중”이라며 “일본 고단샤는 번역어 제목을 공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롤링은 전 세계에서 4억5000만 권 이상 팔린 ‘해리포터 시리즈’(7권)로 6억2000만 파운드(약 1조1000억 원)를 벌어들였다. 세계 출판계는 ‘롤링에게 책 읽는 법을 배웠다’는 해리포터 독자들이 그의 성인 소설에도 열광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롤링은 27일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퀸엘리자베스홀에서 사인회를 한다. 다음 달 16일에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개 인터뷰와 사인회를 하는 등 책 홍보를 위한 월드투어에 나선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발칙하고 자극적인 ‘19금’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시공사·사진) 시리즈가 국내 전자책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8일 출간된 이 시리즈의 1∼4권이 전자책 베스트셀러 순위 1∼4위를 휩쓸었다. 인터넷 서점 YES24에 따르면 이 시리즈의 전자책 비중은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친 전체 판매량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발간된 도서들의 전자책 평균 판매 비중이 6%인 데 비하면 더욱 두드러지는 수치다.‘그레이…’ 전자책이 잘 팔리는 이유는 뭘까. 여성 독자들이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걸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책이다.” “내가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이 책을 읽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봤을지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27세 억만장자 남성과 21세 여성의 파격적인 사랑을 그린 이 시리즈의 전자책 구매자들 중 여성의 비중은 83.1%나 된다. 여성 구매자 중에서는 30, 40대가 66.4%, 20대가 22.6%다. 김병희 YES24 디지털사업본부 선임팀장은 “평소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40대 여성들에게까지 전자책이 확산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여성들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성인물을 즐기고 싶은 욕구가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원 인터파크 e북 사업팀장은 “‘그레이…’를 통해 전자책을 처음 구입한 신규 고객이 52%에 이르고, 평일이나 낮보다는 한가한 주말과 심야시간대에 전자책 다운로드가 많은 것도 특징”이라고 전했다. ‘그레이…’는 아마존에서 전자책 최초로 100만 부를 돌파한 책이기도 하다. 출간 3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3000만 부가 팔렸으며, 그중 1000만 부가 전자책인 것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자책은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로 3만 부, 박범신의 ‘은교’가 2만5000부다. ‘그레이…’는 한 달도 안돼 전자책으로만 3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시공사의 조근형 전자책 팀장은 “‘그레이…’ 전자책은 올해 말까지 10만 부가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내 전자책 시장에서 10만 부 돌파는 아마존의 100만 부 돌파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민연금은 젊을 때 은행에 넣어놨다가 은퇴해서 받는 내 돈이다?”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면 청년실업률이 높아진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정치사회학자인 김윤태 교수(고려대)가 복지국가 정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대선을 앞둔 지금 복지국가 정책 논의를 심화하겠다는 의도로 대담집을 출간했다. 두 사람은 복지국가 정책이 국민의 안정적인 삶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불안(보육, 교육, 의료, 일자리, 주거, 노후 문제)을 해소하는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과제에 집중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리랜서는 최고경영자(CEO)이면서 상사이고, 동시에 부하이기도 하다. 성실함과 책임감이 없으면 당장 ‘밥줄’이 끊긴다. 프리랜서에겐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프리랜서처럼 일한다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당선자이자 20년간 프리랜서 기획자, 편집자 등으로 일한 저자가 총정리한 프리랜서 인생 노하우다. 그는 “프리랜서에겐 연습이 없다. 프리랜서는 거절하면 안 된다. 프리랜서는 어떤 사람과도 일할 수 있도록 원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목욕탕은 아이들에게 신나는 공간이기도 하고 고행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텀벙텀벙 물장난, 뽀글뽀글 비누거품으로 신나지만, 놀다 보면 엄마가 부르시죠. 몸 구석구석을 말끔히 닦아야 하는 고행의 시간이 바야흐로 다가온 것입니다. 아휴! 이 책은 그런 목욕탕의 기억에 대한 판타지입니다. 그곳에 아이들과 아주 잘 놀아주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님이라네요. 아주 오래된 목욕탕 벽에 그려진 그림 속에서 슬며시 등장하는 모습이 정말 그럴듯합니다. ‘인형장난 전문가’라는 작가는 장면마다 인형들을 만들고, 어울리는 위치에 배치하고, 인형의 눈높이에 몸을 낮추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공들인 오랜 시간의 결이 놀랍습니다. 또한 손으로 빚어 만든 인형이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감탄하면서 보게 되는 책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목욕탕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인공 ‘덕지’가 선녀님과 했던 물놀이도 찾아보고, 그 외에 아이들이 목욕탕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을 생각하며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다 읽고 나면 선녀님 드시던 ‘요구릉’ 한 병 쪼오옥 빨면서 선녀님과 덕지 인형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책의 작가처럼 자기가 만든 인형 세워두고 사진도 찍고요.○ 독후활동-찰흙으로 등장인물 만들기준비물은 찰흙 두 덩어리, 찰흙판, 붓, 아크릴 물감 1. 책 속 인물들의 표정을 세세히 살핀다.2. 찰흙으로 선녀님과 주인공 ‘덕지’를 만들어 본다. 찰흙 한 덩어리 정도의 분량으로 한 사람을 만든다. 몸 전체를 만들어도 좋고, 표정에 집중해서 얼굴만 만들어도 좋다.3. 찰흙으로 만든 등장인물은 그늘에서 이틀 정도 말린다. 4. 잘 마른 찰흙 인형에 아크릴 물감으로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만든 인형은 책 속 인형과 다른 재질이므로 목욕물 속에 넣어서는 안 된다.5. 만든 인형을 적당한 곳에 배치하고 사진을 찍는다. 김혜원 어린이책교육연구가}

“경제 분야에서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87)는 본보와의 인터뷰(본보 8월 25일자 A3면 참조)에서 이렇게 말했다. 6일 한국 국가신용등급이 처음으로 일본을 앞질렀다는 소식에 그는 분명 반가워했을 것이다. 이 자서전에서 마하티르 전 총리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에서 배우자는 ‘동방정책’을 펴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동방정책 이전에 우리 국민은 스스로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억압된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한 일이라면, 우리도 잘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말레이시아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그는 22년의 통치 기간에 자신의 조국을 후진적 농업국가에서 전 세계 17위 무역대국으로 키워냈다. 또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맞서 ‘아시아적 가치’를 내건 상징적 인물로 주목받았다. 그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긴축재정 대신 독자적 금리 인하와 고정 환율로 위기를 극복했다. 이 두툼한 자서전에 그는 자신의 철학과 생을 꼼꼼하게 담아냈다. 장기독재와 경제성장 정책으로 ‘말레이시아판 박정희’로 불리기도 한 그는 서방세계와 제3세계 사이에서 절묘한 외교력을 발휘했으며, 뿌리 깊은 종족 간 갈등을 봉합하고 이슬람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대선을 앞둔 한국의 정치 리더십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초췌한 얼굴로 찾아온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했다.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걱정거리를 털어놓는데 큰아들 얘기다. 키가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두드러지게 잘하는, 한마디로 엄친아다.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부모님의 이야기에 토를 다는 법도 없고 정해주는 교육내용을 거부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던 그 애가 요즘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유치원 때부터 판사가 꿈이라던 아이가 갑자기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했단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축구였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아야 엄마가 축구하는 시간을 허락해주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야단을 하면서 어릴 적부터 판사 된다고 공부하지 않았느냐, 지금 운동하기는 늦었다며 설득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도리어 소리까지 지르더라는 것이다. “제발, 내가 되고 싶은 것 되면 안 돼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은 자신의 진로를 확정짓는 것보다 이렇게 저렇게 고민해보고, 자신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를 자꾸 생각해보는 게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 아이나 부모들은 지나치게 빨리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려 한다. 일찌감치 한 우물을 제대로 파야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저 하나 잘살면 바랄 게 없다’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꿈을 개인 한 사람의 행복에 묶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가 펴낸 ‘꿈을 꼭 가져야 하나요’(한림출판사)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이 꿈과 관련해 고민해 보았을 질문에 동화 형식으로 답을 해준다. ‘꿈을 꼭 가져야 하는지’ ‘꿈을 바꾸어도 되는지’ ‘꼭 남들이 부러워하는 꿈을 가져야 하는지’ ‘꿈을 이루는 방법은 모두 같은지’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생각해보는 동안 아이들은 자기 안에 있던 소중한 꿈의 씨앗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꿈이 자기만 행복하게 하고 자신만을 잘살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엇이 되는 것’만을 중시하며 달려가다가 그것을 이룬 후 자기 혼자 잘산다면 그게 과연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이 청소년에게 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라’(명진출판)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 아름다운 꿈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무엇이 될까만을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되어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자꾸 묻는다. 무엇이 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것, ‘꿈 그 너머의 꿈’을 갖는 것이 청소년기의 과제임을 깨우쳐주고 있다.오길주 경민대 독서문화콘텐츠과 교수}

13일 개봉하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폭군이었던 광해군(1575∼1641)이 졸지에 개혁군주가 된 사연을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갑자기 쓰러진 광해군을 대신해 보름간 ‘가짜 왕’이 된 만담꾼 하선이 백성의 피폐한 삶을 구하고, 실리외교를 하는 개혁정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은 조선시대 내내 대표적인 ‘혼군’(昏君·판단이 흐린 임금)으로 불렸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광해군은 실용주의 외교와 대동법을 추진해 민생을 개혁한 택민(澤民) 군주로 재평가됐다. 광해군을 실용주의 중립외교의 개혁군주로 재해석하는 것은 보수-진보, 남북한의 역사학자들에게서 공통적이다. 심지어 광해군을 ‘민족 화해와 통일의 거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해결할 지혜를 줄 수 있는 인물’로 평가하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는 일본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키치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1933년 조선사편수회 간사였던 그는 광해군을 ‘실용주의 외교로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군주’라고 평가했다. 저자는 “유럽 계몽주의자들에게 중세가 암흑기였듯이, 근대주의적 역사관에서 인조반정 이후 조선 후기는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일 뿐 빨리 끝났어야 할 해체기로 바라본다”며 “이런 관점에서 광해군이 재평가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동법이 양반 지주들의 반대로 실패했다’는 통념과 달리 저자는 광해군과 핵심 집권세력이 대동법에 반대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후금에 대한 실리외교도 기조나 원칙, 상황을 제어할 능력도 없이 펼쳐진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숱한 옥사와 대동법 실패, 궁궐 공사에 국력을 낭비하다 보니 당시 국방에 쓸 자원과 군비가 허술해졌다”고 지적했다. “광해군 재임 기간은 조선에게는 ‘잃어버린 15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동아시아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여름휴가 때 제주 섭지코지 언덕 위에 새로 개장한 아쿠아플라넷(제주해양과학관)을 구경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어류인 고래상어 두 마리를 그곳에서 보았다. 그레이 블루 빛깔의 등줄기 위에 뿌려진 하얀 점들, 볼 양쪽에 찢어진 5개의 아가미, 주변을 따라다니던 빨판상어들…. 그 늠름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휴가지에서 돌아온 후 나흘 만에 비극적인 소식을 들었다. 아쿠아플라넷 제주에 전시돼 있던 고래상어 중 한 마리가 폐사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의 최후 모습을 본 듯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다. 아이들도 휴대전화로 직접 찍은 고래상어의 사진을 보며 이 소식을 믿을 수 없어 했다. ‘상냥한 거인’으로 불리는 고래상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데다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도 인기가 높다. 케냐에서는 ‘신이 고래상어의 등에 실링 동전을 뿌려 놓은 것 같다’는 의미에서 ‘파파실링기’라고 부르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등에 별이 가득 찬 듯이 보인다’는 뜻에서 ‘마로킨타나’(많은 별)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후 변화와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한반도에도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어류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아쿠아플라넷의 고래상어는 약 두 달 전에 제주 애월읍 하귀 앞바다에서 어부들이 쳐 놓은 정치망(물고기가 들어오도록 쳐 놓은 대규모 그물)에 걸려 잡혔다. 두 마리 중 ‘파랑이’가 죽은 후 아쿠아플라넷 측은 악화된 여론에 따라 남은 ‘해랑이’를 조만간 제주 앞바다에 놓아줄 것이라고 한다. 고래상어를 놓아주는 일을 놓고 일각에서는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다. 고래상어가 다시 연안에서 그물에 걸려 죽을 수 있으니 수족관이 더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돈을 벌기 위한 인간의 욕심일 뿐이다. 애당초 계절에 따라 태평양, 인도양 등을 오가며 수천 km를 이동하고, 심해에서 1000m 깊이까지 잠수하는 고래상어를 수족관에 가둔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었다. 아쿠아플라넷이 ‘동양 최대의 수족관’이라고 해도 가로 23m, 높이 8.5m의 수조는 최대 18m까지 자라는 고래상어에겐 1평도 안 되는 좁은 감방일 뿐이다. 실제로 아쿠아플라넷에서 봤던 고래상어는 불과 1, 2분이면 한바퀴 돌아와 지친 눈빛을 관람객들과 마주쳤다. 잠수부에게 한 줌의 먹이를 얻기 위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 대양을 휘젓던 위대한 고래상어는 어쩌다 삶의 고해에서 꼼짝 못하는 샐러리맨 같은 신세가 돼 버렸을까.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고래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은 깊은 바다에서 섬처럼 떠다니는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동해바다’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던 것은, 그곳에 작고 예쁜 고래 한 마리가 살고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었다. 영화 ‘그랑블루’가 감동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돌고래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지던 주인공의 미소 때문이었다. 고래는 역시 바다에 있어야 고래다. 수족관에 갇힌 고래는 더는 꿈을 꾸게 하지 못한다. 이제 곧 ‘바다의 아름다운 별’로 되돌아갈 고래상어 ‘해랑이’. 부디 동해와 남해를 넘어 태평양까지 맘껏 헤엄치기를. 다시는 안락한 삶의 정치망에 걸려들지 않기를. 더는 유리창에 갇혀 거짓 연기를 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기를. 다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상어의 꿈’을 꾸기를….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영국 돌링킨더슬리(DK)의 ‘자연사’ 대백과 사전은 지구 생명의 역사 40억 년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생물도감이다. 전 세계에서 19개 박물관과 국립동물원을 보유한 스미스소니언협회의 전문가가 촬영한 화보 5000컷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국내에서 1년간 번역과 편집을 마친 파일을 해외로 다시 보낸 뒤 3개월간 인쇄 제작 선박 운송을 거쳐 완제품 형태로 수입됐다. 사진집이나 그림책은 이처럼 한국어판도 해외에서 인쇄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이유는 △인쇄의 질이 각국 번역판에 따라 달라지지 않도록 하고 △각국 출판사의 공동 제작으로 저작권 및 인쇄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다.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편집장은 “국내 인쇄의 질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지만, 나라에 따라 명도와 채도의 세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영국 본사가 총괄해 이탈리아 독일 홍콩 등지에서 인쇄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인쇄하는 경우는 세계 수십 개국 출판사가 저작권을 공동 구입해 비용을 줄이는 형태로 진행한다. 이 때문에 출판사 측이 초판부터 5000∼1만 부씩 대량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재고량이 떨어질 경우 재주문하는 데도 수개월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1년치를 미리 주문하는 것이다. ‘고릴라’ 그림으로 유명한 영국의 동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도 전량 해외에서 인쇄한다. 특히 입체 그림책인 팝업북은 제작 설계 노하우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해외에서 제작까지 전부 해오는 경우가 많다. 정가 3만 원인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북 ‘용과 괴물들이 펼치는 전설의 세계’(비룡소)도 해외에서 제작됐으며 초판을 1만 부 이상 주문했다. 이 밖에 ‘1900년 이후의 미술사’(세미콜론) ‘아트 앤드 아이디어’(한길사)처럼 도판이 중요한 미술책도 해외에서 인쇄해 수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해외 유명 출판사가 일부 국가에서 일어나는 번역판 판매부수 조작을 막기 위해 직접 인쇄 및 제작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혜영 웅진주니어 에디터는 “예전엔 팝업북처럼 제작이 어려운 동화책만 직접 인쇄했는데, 요즘에는 일반적인 그림책까지도 해외 출판사가 직접 인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유명 출판사들이 저작권 인세를 확실히 관리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가을장마에 태풍까지 연일 비소식이다. 비는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비 내리는 날의 축축함, 한여름 소낙비의 거센 느낌, 빗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 등이 어른들의 것이라면 아이들은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본다. 장화 신고 물 고인 웅덩이를 첨벙거려 보기, 얼굴을 하늘에 대고 비 맞아보기, 우산 들고 비 오는 소리 들어보기, 비가 떨어지는 모습 살펴보기, 비 오는 날 나무 색깔 살펴보기, 비가 오면 먹고 싶은 것 말해보기, 비 오는 날 어떤 색깔의 우산을 쓰고 싶은지 말해보기…. 이걸 다 해볼 수 없다면 비에 관한 그림책을 열어보자. 아이들은 비 오는 날 우산 펼치기를 좋아한다. ‘노란우산’(류재수 글·그림)은 글자 하나 없이 발랄한 색깔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회색빛깔 골목길에 노란 우산을 중심으로 우산들이 하나씩 나타나면서 색색의 우산으로 채워지는 모습은 아이들 특유의 밝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온전히 전달한다. 톡톡톡 비 오는 소리가 곧 들릴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림책에 동봉된 CD에 담긴 경쾌한 피아노 소리와 다채로운 색깔의 조화가 곁에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우리나라 그림책의 고전이다. 투투둑, 촤라락, 톡토톡, 후드득 후드득 하는 빗소리의 즐거움은 어느 음악소리 못지않게 귀를 즐겁게 한다. 비 오는 소리를 말로 표현해 보는 놀이를 해보고 싶을 때는 ‘야 비온다’(이상교 글·이성표 그림)를 펼쳐보자. 파란색과 초록색을 섞어놓은 듯한 표지에 흰 글씨로 쓰인 ‘야 비온다’라는 제목은 이 책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 책을 열어 빗소리를 나타내는 여러 의성어를 따라해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다. 이 그림책을 볼 만한 또래 아이가 우산을 선물로 받고 비를 기다리는 모습부터 비를 맞는 아이들의 신나는 몸짓, 비 오는 날의 풍경들까지 물빛을 배경으로 청량한 색감으로 표현했다. 이혜리의 ‘비가 오는 날에’는 잿빛 하늘에서 굵은 소낙비가 쏟아지는 장면들을 강렬하게 담았다. 비 오는 날 모두 무얼 할까. 사자는 입을 크게 벌려 실컷 빗물을 마신다. 나비는 날개가 젖을까 봐 살살 걸어 집으로 간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첨벙첨벙 물장난을 치고 호랑이는 동굴 속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용은 비를 뿌리고…. 그런데 아빠는 비가 오는 날 무얼 하실까. 동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책은 검은색만으로도 비 오는 날의 풍경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요즘처럼 날씨가 변덕스러울 때는 ‘즐거운 비’(김향수 글·서세옥 그림)도 추천할 만하다. 비가 내리는 현상을 경쾌하게 표현한 그림책이다. 글자를 그림처럼 배치하고 그림은 춤을 추듯 폭염에 이어 비 오는 날의 기분을 흥겹게 표현한다. ‘비가 와도 폴짝폴짝, 흥에 겨워 덩실덩실, 아이도 어른도 비춤을 추네’라는 내용이 그림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조월례 어린이도서평론가}

정말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가 느릿느릿 학교에 가다가 사자를 만나 같이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 가면 ‘잭 톨’이라는 친구가 늘 아이를 괴롭힙니다. 아이 옆에서 얌전히 수업을 듣던 사자가 잭 톨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카르릉!’ 울부짖더니 잭 톨을 쫓아갑니다. 잭 톨은 별거 아닌 친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잭 톨이 아이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사자가 내일도 오냐고 묻는 군요. 아이가 당당하게 말합니다. “언젠가 틀림없이 올 거야. 조심해 너, 잭 톨!” 학교들이 개학을 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여러 경험을 하는 공간입니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고민이 생기는 곳이지요. 고민이란 것이 원래, 남이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기에게는 우주 전체만큼의 무게를 가집니다. 그럴 때 누군가가 자신을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것을 느끼면 맞설 힘이 생기게 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자처럼 말이죠. 사자 등에 타서 그 갈기를 잡고 신나게 달리던 책 속 주인공은 그 순간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그 주인공이 여러분이라면 어떻습니까? 그 마음을 담아 ‘사자를 탄 마음카드’를 만들어 봅니다.○ 독후활동-사자를 탄 마음카드 만들기 준비물은 A4 용지 크기의 마분지, 연필, 색연필, 사인펜 등 그림 도구, 자, 칼. 1. 직사각형 종이 긴 쪽 절반 위치를 연필로 보일 듯 말 듯 표시한다. 2. 사자를 타고 가는 아이 모습을 그리는데 아이 부분이 절반 표시 위쪽으로, 아이를 태우고 가는 사자를 아래쪽에 오게 그려서 색칠한다. 3. 위쪽에 그린 ‘사자를 타고 가는 아이의 모습’을 선을 따라, 절반 표시한 부분까지만 칼로 오린다. 종이를 절반 표시 기준으로 산 모양으로 접는다(그림 참조). 4. 카드 안쪽에는 든든한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적고, 잘 보이는 곳에 세워둔다.김혜진 어린이책교육 연구가}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다른 모든 학문이 진보하는 동안 정치 기술은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으며, 4000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고 한탄한 바 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군국주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일본이나, 올해 대선을 앞두고 부정선거, 공천 뒷돈 같은 구시대적 정치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한국을 보면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한 것 같다. “사람이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라고? 이 말은 ‘탭댄스를 추는 지렁이’나 ‘초식사자’라는 말처럼 정말 웃기는 얘기다!” 독일의 철학자인 저자는 인간에 대한 적절한 호칭이 ‘호모 데멘스(Homo Demens)’, 즉 ‘광기의 인간’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에서 그는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한 문장으로 정치, 종교, 경제, 교육, 문화 전반에 만연한 인간의 어리석은 광기를 풀어나간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개별 인간은 현명한 ‘호모 사피엔스’였다가도, 집단을 이루는 인간은 ‘호모 데멘스’로 돌변하기 십상이다. ○ 인간이여, 뇌벌레에 감염되었나? 저자는 ‘뇌벌레’라는 은유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다. 간디스토마의 유충은 개미의 신경중추에 침투해 개미의 행동을 조종한다. 개미의 머리 속에 침투한 이 ‘뇌벌레’는 개미를 풀잎 끝에 매달리게 해 염소나 양, 소, 토끼 등에게 잡아먹히도록 한다. 간디스토마가 최종 숙주인 동물의 간에 도달하기 위해 개미를 이용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데올로기 뇌벌레에 감염된 인간에게도 이와 유사한 행동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드는 예 중 하나가 종교다. “가상의 친구(신·神)를 옆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출정하는 정신 나간 침팬지는 없다”는 단언이다. 수많은 기업은 일회용품 소비를 부추긴다. “누구도 혼자라면 자원을 이렇듯 단시간 내에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놓지 않겠지만, 무리를 이룬 인간은 이런 행동을 과감하게 할 정도로 어리석어진다.” 국제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독일 연금기금은 ‘유로화의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에 자금을 투자했다. 독일 국민은 연금을 보장받기 위해 유로화의 제살 깎아먹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웃긴’ 상황인 것이다. 저자는 “‘나보다 좀 더 멍청한 다음 사람’에게 떠넘기는 ‘행운의 편지’식 국제금융시장은 붕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예견한다. ○ 어리석음의 총합은 ‘어리석은 정치권력’ 그런데 이런 모든 어리석음의 총합이 바로 ‘어리석은 정치권력’이다. 현대의 정치인들에게선 소신 있는 노선을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여론조사’ 보고서가 정치인들에게 절대적인 신탁으로 등장한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눈치를 더 많이 보는데도, 유권자들은 선거 때 어느 정당에 표를 던질지 결정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저자는 여러 매체의 인터뷰어이자 기고가로 활동했다. 수년간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과 인터뷰하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스템의 합리성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벌거숭이 임금님’에 나오는 왕의 신하들처럼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옷자락을 받는 시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저자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금기를 깨뜨리는 개인의 이성적 행동”이라고 말한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도 ‘어른들의 어리석은 속임수’에 아랑곳하지 않는 단 한 명의 꼬마가 궁정 전체의 광기를 무너뜨렸다. 그는 “대중의 지배적인 어리석음은 지배자의 어리석음으로 이어진다”며 바보 권력에 대한 저항을 촉구했다. 저자가 주장하듯 몇몇 개인의 이성적 각성으로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인간의 비이성적 문화가 깨질지는 의문이다.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이 책의 카타르시스는 각 페이지에 가득한, 명백히 정신 나간 종인 인간에게 쏟아 붓는 언어적 모욕을 대할 때 더없이 완벽해진다”고 평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는 시인 백석(1912∼1995)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불리는 백석이 분단 이전에 발표했던 시들을 수록한 시화집이다. 황주리, 전영근, 서용선 등 화가 10명이 백석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을 시와 함께 실었다. 안도현, 장석남, 문태준 시인 등은 자신의 시가 백석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평안북도 방언으로 토속적인 풍속을 그려내 현대 시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백석의 시 세계에 대한 해설도 담겼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의 배우자 김정숙 씨가 펴낸 책의 제목이 눈길을 끌고 있다. 김 씨는 27일 각계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어쩌면 퍼스트레이디, 정숙 씨, 세상과 바람나다’(미래를소유한사람들)를 펴냈다. 이 책은 김 씨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영화감독 임순례 씨, 가수 이은미 씨, 방송인 김제동 씨 등 10명의 인사와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정치, 사회, 문화 등 폭넓은 주제로 주고받은 대화를 생생하게 담아내는 동시에 질문자로서 김 씨가 느낀 소회를 담담한 필체로 풀어냈다. 제목에 나오는 ‘어쩌면 퍼스트레이디’는 출판사 측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유머러스한 콘셉트로 제안한 것. 출판사 관계자는 “문 후보 캠프에서 인쇄 직전에 전화를 걸어와 ‘제목에서 그 부분을 좀 빼달라’고 요청해왔다. 유권자들에게 ‘여성이 너무 나선다’는 이미지를 줄 수도 있고, 역풍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그는 “후보 부인이 너무 엄숙한 것보다는 젊은이들과 소통하기에 좋은 제목이라 저자의 동의를 얻어 그대로 출간했다”고 덧붙였다. 김 씨도 이 책의 서문에서 “책 제목의 ‘어쩌면 퍼스트레이디’가 아주 민망해 죽겠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강권’으로 못내 그냥 두기로 했다. 이 책엔 나뿐만 아니라 10명의 인터뷰이, 그리고 출판기획자까지 수많은 사람의 수고가 함께 들어 있어 내 고집만 세우는 것이 미안한 까닭”이라고 밝혔다. 간혹 대통령의 부인이 회고록을 펴내는 사례는 있지만, 대선 경선 후보의 부인이 선거 과정에서 책을 펴낸 것은 드문 일이다. 김 씨는 서문에서 “이 책은 남편을 도우려고 시작했다”며 “하지만 나는 남편 뒤에서 꽃만 들고 서 있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남편을 도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