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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글로벌.’ 금융의 경계를 넘어 세계로 도약하기 위한 하나금융그룹의 전략이다.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전략에 걸맞은 실적을 내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2021년 말 기준 국내 금융그룹 중 가장 많은 24개국에 진출해 있다. 213곳에 달하는 해외지점과 현지법인 등에서 4603명의 글로벌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글로벌 이익도 꾸준히 늘어 과거 3년간 평균 20%를 상회하는 높은 이익증가율을 보였다. 2021년 글로벌 이익은 6871억 원으로 전년 대비 23.6% 늘었다.중국 알리바바 등 제휴로 비대면 대출 63% 증가주목할 만한 것은 2019년 하나은행이 1조 원을 투자해 15% 지분을 인수한 베트남 국영은행 BIDV(개발산업은행)의 실적이다. 하나금융그룹과 BIDV는 리테일 뱅킹 확대, 포트폴리오 다변화, 리스크 관리 개선, 영업 시너지 창출을 핵심 추진 사항으로 설정했다. 한국에서 파견된 시너지추진단을 중심으로 40여 개 세부 과제를 수행해왔다.그 결과 BIDV 실적은 2021년 대폭 개선돼 관련 지분법 이익은 전년 대비 487.3% 늘어났다. 32% 수준이던 리테일 비중은 2021년 기준 38%로 증가하는 등 전통적으로 기업뱅킹에 편중돼 있던 BIDV의 체질이 변화되는 성과를 보였다.BIDV의 자산은 2021년 말 기준 1720조 동(약 91조 원)으로 전년 대비 16.3% 증가했다. 수익성도 개선돼 2021년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50.1% 증가한 10조8000억 동(약 5410억 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하나금융그룹의 지분법 이익도 1201억 원에 이른다.중국에서는 현지 금융기관 대비 부족한 대(對)고객 채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디지털 전략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나은행 중국법인은 2020년부터 중국의 유명 온라인 플랫폼인 알리바바, 시트립 등과의 제휴를 통해 비대면 개인 대출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1년 말 기준 중국법인 비대면 개인 대출 잔액은 전년 대비 63.3% 증가한 약 1조1000억 원, 이용 손님 수는 전년 대비 43.3% 증가한 68만 명을 나타냈다. 2021년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와 제휴를 맺었다. 하나은행 인도네시아법인은 2021년 7월 글로벌 정보기술 기업인 라인과의 제휴를 통해 국내 최초 모바일 기반 해외 디지털 은행인 라인뱅크를 개설했다. 라인뱅크는 시장에서 선보인 지 6개월 만인 2021년 말 신규 손님 수 30만 명을 돌파해 당초 목표였던 20만 명을 크게 뛰어넘었다. 이 같은 초기 성공을 기반으로 2022년 3월말부터 비대면 개인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뉴욕 런던 시드니 등에 IB 데스크 설치아시아와 미주 유럽 등은 시장 환경이 다르다. 따라서 하나금융그룹의 향후 글로벌 전략도 이원화된 체계로 실행된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고성장 아시아 시장에서는 증권, 소비자금융, 자산운용 등 비은행 부문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싱가포르에 자산운용사 HAMA를 설립했다. 신설 자산운용사는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중심으로 그룹 수익 기반 다양화를 위해 대체투자 자산에 투자할 계획이다. 앞으로 동남아 자산운용 허브로 육성할 방침이다. 투자 상품의 공급자 역할을 맡게 되고, 그룹 관계사 간 협업을 통해 상품 개발, 공급에서부터 대고객 접점에 이르는 금융 밸류체인이 완성된다.하나금융투자는 2021년 3월 베트남 BIDV의 증권 자회사인 BSC의 지분 35%를 인수하기 위해 1400억 원 규모의 지분인수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지분투자 이후 하나금투는 BSC의 2대 주주로서 경영 참여를 통해 디지털 전환 및 신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BSC의 디지털 플랫폼 리뉴얼을 통해 모바일 기반의 증권회사로 탈바꿈하는 동시에 베트남 내 ‘톱7’ 증권사로 육성할 계획이다.아시아에서 자회사 설립, 인수합병(M&A) 등의 전통적 방식과 함께 현지 업체에 대한 지분인수와 전략적 제휴 방식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지분투자 및 전략적 제휴 방식은 2019년 BIDV 지분 투자의 성과를 통해 유효성이 입증됐을 뿐 아니라 글로벌 진출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인력과 재원, 시간 부족을 만회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미주, 유럽, 중동 등의 시장에서는 투자은행(IB), 기업금융이 중심이 된다. 이를 위해 뉴욕 런던 싱가포르 시드니 4개 네크워크에 IB 데스크를 설치했다. 런던 싱가포르 2개 네트워크에는 자금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법인의 성장을 이끈 플랫폼 제휴 비대면 대출은 제휴 기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다른 지역에도 도입할 계획이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는 “선진 금융시장에서 협업을 통해 자본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올해 안에 글로벌 차세대 전산시스템을 모든 해외지점에 도입하고, 국내에서 높은 성과를 거둔 ‘페이퍼리스(종이 없는)’ 시스템을 해외 네트워크에 적용해나갈 방침이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글로벌 인재 선발, 육성 프로그램인 GT 제도를 통해 바로 해외근무 투입이 가능한 112명의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며 “연말까지 규모를 186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최근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대형 유통기업의 계열사 임직원 간담회가 열렸다. 사내 소통 강화를 위해 마련된 이날 회의는 뭔가 다른 모습이었다. 대표가 상석에 앉아 일사불란하게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참석자들은 직급 구분 없이 작은 책상을 둥그렇게 모아 앉거나 큰 책상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격의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이런 회의는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에서는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보수적 분위기의 롯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직적이고 체계적인 조직 문화는 롯데 유통 계열사들을 빠르게 성장시켰지만 지금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각광받는 시대다.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해 말 임원 인사에서 롯데 유통군 전체를 아우르는 총괄대표로 부임한 김상현 부회장이 있다. 실제 이날 회의는 ‘렛츠(Let’s) 샘물’이라는 명칭의 티미팅 형식으로 진행됐다. 명칭은 김 부회장의 영어 이름(샘)을 따서 ‘샘에게 물어보세요’라는 뜻을 담고 있다. 김 부회장은 자신의 초임 팀장 시절 성공과 실패 경험을 나누며 직원들과 소통했다. 당초 월 2회 이상 진행하기로 했던 티미팅은 좋은 반응을 얻어 3월에 세 차례나 열렸다. 1986년 미국 P&G에 입사해 유통에 발을 들여놓은 김 부회장은 이후 여러 글로벌 기업을 거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고 롯데 측은 설명했다. 그는 총괄대표 취임 전 직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취임 직후에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나는 샘 킴이나 김상현 님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언제든지 경청할 준비가 돼 있다”며 임직원들과의 만남을 제안한 것이 티미팅으로 이어졌다. 롯데 유통군의 또 다른 변화는 3월부터 직급 대신 ‘이름+님’을 활용한 호칭을 도입한 것이다. 호칭 도입을 위해 유통군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직원들의 선호도가 높은 호칭으로 선정했다. 변화의 바람에는 롯데 신동빈 회장의 의지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올 상반기(1~6월) 사장단 회의에서 혁신을 위한 조직 문화 개선을 강조했다. 롯데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유통군HQ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유통 계열사들도 이런 변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전통시장 고객 서비스 개선 업무를 담당하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기존의 다다익선 캠페인을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분야로 넓힌 ‘다다익선2.0’ 캠페인을 전개한다. 조봉환 소진공 이사장(사진 왼쪽)은 8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도깨비시장을 찾아 캠페인 활성화를 독려했다. 시행 4년 차를 맞는 다다익선 캠페인은 올해부터 ESG 분야로 확대돼 6개 분야로 운영된다. 기존 5개 실천 분야(결제 편의, 원산지·가격 표시, 환경 개선, 온누리상품권 유통, 화재·안전)와 ESG 전략을 매칭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환경을 고려해 모바일 결제 수단 활용도를 높여 종이 영수증 없는 전통시장을 만드는 형태다. 조 이사장은 이날 양파망을 재사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바구니를 활용해 직접 장보기에 나섰다. 이어 서울지역 특성화 시장 다다익선2.0 캠페인 운영 간담회도 열었다. 공릉동 도깨비시장을 비롯해 7개 서울지역 특성화 시장 상인회장이 참석한 간담회에서는 문화관광형 시장의 우수성과 전통시장 ESG 경영 활성화 방안이 논의됐다. 행사를 진행한 공릉동 도깨비시장은 가격 표시제 활성화를 위해 시장 자체 서포터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다다익선 캠페인 참여도와 고객 평가가 좋은 점포를 우수 점포로 인증하고 간판을 설치해 준다. 올해는 전체 106개 점포 중 15개 점포가 우수 점포로 선정됐다. 조 이사장은 “봄날을 맞아 전통시장을 많이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은 자신을 보좌할 여러 인재들이 필요합니다. 그 중 한 명이 대통령 전속 사진사입니다. 총리도 장관도 아니고 사진사가 뭐 그리 대수일까요? 뉴욕타임스는 버락 오바마 시대 이후 대통령 사진사의 중요성에 대한 의문은 더 이상 제기되지 않는다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진 한 장은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국정철학, 성과 등에 대한 열 마디 설명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것입니다. 2020년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 전속 사진사였던 피터 수자(68)에 대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람직한 대통령상을 그려낸 작가”라고 평했습니다. 수자는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제거작전 때 백악관 상황실 모습을 찍은 사진사입니다. 사진 전문가와 정치학자들로부터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사진을 보면 상황실에 모인 오바마 정부당국자들의 눈은 일제히 현지 작전 영상에 쏠려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희미한 존재’입니다. 정중앙 좌석에서 현지 영상을 상황실 스크린에 띄우는 임무를 맡은 마샬 웹 대령이 ‘주인공 포스’를 풍깁니다. 참석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통령이 입장하자 웹 대령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려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여기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당신”이라고 사양하며 구석에 걸터앉았다고 합니다. 1년여에 걸쳐 제거작전 수립을 지시하고 진행과정을 보고 받는 등 총사령관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실행 상황이 되자 실무자에게 최대한 길을 터주며 권위에 집착하지 않는 리더의 모습이 사진 속에서 그려집니다. 수자는 당시 상황실 내부에서 1시간 동안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에게 초점을 맞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2020년 다큐멘터리 영화 ‘내가 보는 방식(The Way I See It)’에서 밝혔습니다. 수자의 카메라가 만들어낸 또 다른 오바마 대통령의 이미지는 2009년 백악관 집무실을 방문한 흑인 소년의 사진에서 나타납니다. 국가안보실 직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백악관을 구경하러 온 5세 소년이 대통령에게 “머리를 만져봐도 되느냐”고 살며시 묻습니다. 소년의 질문에는 “대통령도 나처럼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일까”하는 궁금증이 내포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질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은 “만져 봐, 이 녀석!”하며 기꺼이 고개를 숙여줍니다. 이 사진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의 자긍심과 그 이면의 고뇌 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훗날 미셸 오바마 여사는 한 강연에서 “흑인 소년이 자신과 비슷한 머릿결을 가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머리를 만지며 무슨 생각을 했겠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습니다. 미셸 여사에 따르면 이 사진은 재임기간 8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을 드나들 때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시카고 선타임스 사진기자였던 수자는 2004년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부터 인연을 맺었습니다. 수자는 오바마의 첫 인상에 대해 “초선 상원의원이었지만 카리스마가 예사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백악관에 들어간 수자는 오바마 재임 8년 동안 200만장, 하루 평균 700여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장 많이 찍은 날은 하루 2000장씩 찍었습니다. 수자는 “오바마 대통령은 지근거리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도 한번도 중단시킨 적이 없었다”며 “시각적 이미지의 중요성을 아는 영리한 대통령”이라고 다큐 영화 ‘내가 보는 방식’에서 밝혔습니다. 백악관 공보국 소속의 사진팀은 4,5명으로 이뤄졌습니다. 총괄, 행정, 군사, 패션(퍼스트레이디 담당) 등 영역별로 나눠서 활동합니다. 대통령과 사진사는 개인적 유대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사진사도 함께 바뀌는 것이 관례입니다. 수자 역시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백악관 생활을 끝냈습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도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오바마 퇴임 후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혼란스러운 정치를 조롱하는 사회 풍자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나 발언이 논란이 될 때마다 이와 비교되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을 기발한 설명과 곁들여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녀사냥”이라는 트윗을 날리면 수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할로윈 때 마녀 복장을 입은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사진을 올리며 “약간 다른 종류의 마녀사냥”이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배신한 측근을 “개”라고 욕하자 오바마 대통령의 반려견 사진에 “진짜 대통령을 기다리는 진짜 개”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수자의 정곡을 찌르는 사진과 설명들은 2018년 ‘비판 날리기: 두 대통령의 초상’이라는 베스트셀러 사진집으로 나왔습니다, 2020년 수자의 작품 세계를 다룬 다큐 영화 ‘내가 보는 방식’도 개봉됐습니다. 수자로 인해 한껏 높아졌던 대통령 사진사에 대한 기대치는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되면서 크게 줄었습니다. 트럼프 전속 사진사였던 쉬알라 크레이그헤드(46)는 뚜렷한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사상 두 번째 여성 백악관 사진사라는 기대 속에서 출발한 크레이그헤드는 단조로운 행사 사진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정면을 응시하는 증명사진 분위기의 사진들을 주로 찍었습니다. 크레이그헤드의 대표작으로 자주 거론되는 사진은 2019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백악관 회의실에서 펠로시 의장이 백악관 관리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고삐 풀린 낸시, 무너져 내리다”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펠로시 의장을 조롱하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였지만 오히려 전원 백인 남성들로 이뤄진 트럼프 내각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펠로시 의장의 용기가 사진 속에서 부각됐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크레이그헤드는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사진을 공개할 지에 대해 일일이 자신의 허락을 거치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사에게 충분히 사진을 찍을만한 개인적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잦은 선탠 때문에 오렌지색으로 변한 자신의 얼굴 색깔을 밝아 보이게 해달라는 등의 외모 보정 요구를 자주 했다고 합니다. 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사로 널리 알려졌지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는 다큐 영화 ‘내가 보는 방식’에서 오바마-레이건 대통령의 공통점으로 “상대를 존중했고 도덕적으로 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을 잘 받는 대통령의 비결’에 대해 묻자 “카메라 렌즈는 자신을 향하지만 결국 국민을 비춘다는 것을 아는 대통령”이라고 답했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미래에셋은 ‘최초’로 통한다.”금융투자업계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미래에셋증권의 위상은 남다르다. 최초 뮤추얼펀드 판매, 최초 랩어카운트 출시, 최초 사모투자펀드(PEF) 모집, 최초 스마트폰 주식매매 서비스 등 다수의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미래에셋증권은 최근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2021년 금융투자업계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과 자기자본 10조 원을 동시에 넘어섰다. 2016년 대우증권을 인수할 때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밝힌 “영업이익 1조 원, 자기자본 10조 원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가 달성된 것이다.영업이익 1조·자기자본 10조 시대 활짝미래에셋증권은 1999년 12월 자본금 500억 원으로 설립됐다. 20년여 만에 200배의 성장을 일궈냈다. 업계에서는 “한국을 넘어 세계 자본 시장에서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외적 성장도 눈부시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는 국내 자산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적립식펀드 등 신개념 투자와 자산관리 방법을 제시해 ‘저축’에서 ‘투자’로, ‘직접 투자’에서 ‘간접 투자’로, ‘상품’에서 ‘자산 배분’으로 자본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이 회사의 공격적 행보는 국내 시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평소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을 강조해 온 박 회장은 2003년부터 홍콩을 교두보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은 물론 중국, 베트남, 브라질 등 신흥 시장으로 나아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현재 국내 78개 지점 및 세계 10개 지역에 해외법인 11개와 사무소 3곳을 운영하고 있다. 실적 면에서 업계 최초로 2년 연속 연간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했다. 2021회계연도(FY)에 영업이익 1조4855억 원, 세전순이익 1조6422억 원, 당기순이익 1조1834억 원(연결재무제표 기준)을 달성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한 점이 눈에 띈다. 국내외 수수료 수입 증가, 리스크 관리를 통한 안정적 운용수익, 대형 기업공개(IPO) 등 다양한 IB 거래의 성공적 수행, 해외법인 수익 기여 등 전 부문에 걸친 고른 성장 덕분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또한 해외주식자산 24조7000억 원, 연금자산 24조4000억 원(2021년 말 기준) 등의 성과를 일궜다. 이런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펼칠 수 있게 됐다. 올해 현금배당은 보통주 300원, 1우선주 330원, 2우선주 300원으로 결정했고, 자사주 2000만 주 소각을 진행했다. 약 3622억 원에 달하는 주주환원 정책으로 2021년 8월 약속했던 ‘주주환원성향 30% 이상 유지’ 정책을 뛰어넘는 규모다. 이 밖에 1000만 주 자사주 매입도 진행할 방침이다.AI 기술 접목한 ‘디지털 경영’ 선두주자올해 미래에셋증권은 디지털 혁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디지털 사업의 키워드를 ‘고객 경험 중심 시프트(Shift)’로 정했다. 종합자산관리 플랫폼 경쟁에서 확고한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존의 ‘상품’에서 ‘고객 경험’으로 중심 축을 전환한 차세대 모바일 앱을 상반기에 공개한다. 앱에 장착되는 초(超)개인화된 엔진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고도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최근 선보인 간편결제 서비스인 ‘미래에셋PAY(페이)’도 호평이다. 아이폰 전용 근거리 무선통신(NFC) 서비스인 미래에셋PAY는 매장에 설치된 태그 스티커에 기기를 갖다 대면 1¤3초 만에 결제가 된다. 미래에셋증권 계좌가 없어도 기존에 갖고 있는 신용·체크카드 등록만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인 마이데이터 사업권을 증권사 최초로 얻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시 전에 기능적합성 사전 심사와 고객의 금융정보 보호 안정성 등을 검증하는 ‘신용정보원 비공개 베타 테스트(CBT)’도 마쳤다. 특히 네이버인증을 도입해 스마트폰에 공동인증서(구 공인인증서)가 없어도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고객들이 이용하기가 편리해진 것이다. 자산통합조회 서비스도 금융사별, 계좌별 조회 기능에서 벗어나 국내주식, 해외주식, 펀드 등 고객이 보유한 금융상품별로 자산을 분류했다. 이를 기반으로 고객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전방위적으로 분석하는 초개인화 자산관리서비스(Customer 360 View)를 확대하고 있다.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부터 내부적인 ‘스마트워크’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직원별로 태블릿PC와 화상회의 계정을 지급했고 화상회의실도 구축했다. 프린트 출력 없는 회의를 진행하고 회의 내용을 쉽게 공유하도록 한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는 고객중심 경영 정신과 부단한 혁신을 통해 자본시장 성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한독상공회의소(KGCCI)는 6월 30일까지 ‘제8회 KGCCI 이노베이션 어워드’ 참가 신청을 받는다.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와 전략을 통해 한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한 기업들을 장려하고 양국의 비즈니스 협력 및 교류 증진을 위해 마련됐다. 한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모든 기업이 지원 대상이다. △혁신 수준 △시장 검증 여부 △기업 퍼포먼스 영향 △사회적 편익 등 네 가지 기준을 토대로 선발된다. 수상 기업에는 한독상공회의소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홍보 활동 지원과 국내외 사업 확장을 위한 비즈니스 파트너 미팅 기회가 제공된다. 비회원인 수상 기업에는 1년간 무료 회원권이 주어진다. 6월 30일까지 한독상공회의소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1) 후세인 요르단 국왕에게 전화할 것2) 무사 리비아 정보국장에게 전화할 것3)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에게 전화할 것4) 다른 의원들에게도 전화 돌릴 것5) 중국과의 회담 준비6) 무지방 요거트 살 것최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별세했습니다. 대다수 직장인들처럼 그녀도 장관 시절 하루 주요 일정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집무실 책상에 붙여놓았다고 합니다. 자서전 ‘마담 새크리터리’에 소개된 1998년 1월 28일 일정입니다. 자서전에 나온 올브라이트 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날이라는데 미국 외교의 책임자답게 빡빡한 일정입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마지막 항목 ‘무지방 요거트 살 것(Buy non-fat yogurt)’입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북한을 방문한 최초의 장관” “‘브로치 외교’의 창시자” 등 거창한 수식어의 정치인이 아닌 건강을 걱정하는 평범한 올브라이트 장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어 2003년 자서전 출간 때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외교적 업적은 널리 알려졌지만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여성으로서 그녀에 대해 공개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혼 경력이 있다는 것 정도가 알려졌습니다. 대부분의 장관들이 백악관에서 열리는 임명식 때 배우자가 옆에서 성경을 받쳐주는 것과 달리 1997년 올브라이트 장관 선서식 때는 딸들이 옆자리를 지켰습니다. 남편 조지프 올브라이트는 ‘뉴욕 데일리뉴스’를 발행하는 신문 재벌 출신의 언론인이었습니다. 자서전과 기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23년을 함께 산 부부는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며 이혼을 요구하면서 파경을 맞았습니다. 상대는 올브라이트 장관보다 훨씬 어리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부부는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남편의 결정력 장애는 이혼 과정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남편은 올브라이트 장관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이혼을 할지 말지 망설여진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당시 퓰리처상 후보로 올라있던 남편은 “상을 타면 이혼을 안 하고, 상을 못 타면 이혼을 하겠다”는 해괴한(?) 조건까지 내걸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이 불발로 돌아갔기 때문인지 1982년 부부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혼이 많은 미국이지만 공직에 진출한 정치인들은 원만한 결혼생활이 성공의 잣대가 되기 때문에 쉽게 이혼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 중반인 45세에 이혼을 택한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례적인 케이스”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최근 그녀의 부고 기사에서 전했습니다.올브라이트 장관은 이혼 후 커리어의 꽃을 피웠습니다. 워싱턴에서 발이 넓은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이뤘습니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이혼 이듬해인 1983년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였던 제럴딘 페라로 하원의원의 ‘과외 선생’으로 영입되면서부터입니다. 1984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는 외교 문외한이었던 페라로 후보의 속성 공부를 위해 조지타운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올브라이트 장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대학 은사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의 도움으로 1970년대 말 잠시 백악관 의회사무소에 근무한 적은 있지만 과외 교사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올브라이트 장관은 워싱턴에 넘쳐나는 ‘외교관 워너비’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페라로 후보는 대선 TV 토론에서 조지 H W 부시 부통령과 대결하며 까다로운 핵관련 이슈들도 척척 받아넘겼습니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주가도 함께 올랐습니다. 이후 조지타운대에서 테뉴어(종신교수직)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그녀의 이름 옆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가며 능력을 눈여겨보던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2년 당선 후 인수위원회 외교정책 담당 자리를 맡겼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출범과 함께 유엔주재 미국대사, 국무장관에 오르며 자신의 목표를 이뤘습니다. 과외 공부를 계기로 알게 된 올브라이트 장관과 페라로 의원은 평생 친구가 됐습니다. 훗날 페라로 의원은 올브라이트 장관에 대해 “가르칠 자료들로 터질 듯한 가방을 들고 비행기 트랩까지 나를 마중 나올 정도였다”며 “이런 열성의 뒤편으로 이혼 후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려는 결심이 보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혼에 대해 “충격(traumatic)이었다”고 자서전에 적었습니다. 당시 심정을 “조(남편)만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내 커리어의 어떤 계획도 포기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부모와 함께 살다가 22세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으로 직행한 그녀는 자립적인 삶에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이혼 위자료로 집과 주식 등을 양도 받아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지만 “남편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 때문에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통통한 체격과 자주 붉어지는 얼굴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댄스파티 때 외면 받기 일쑤였던 외모 열등감도 자존심 추락에 한 몫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올브라이트 장관은 홀로서기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 결혼시절 쌓은 인맥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접대했던 지식인 친구들에게 다시 연락을 해서 자신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올브라이트 외교 디너(Albright Foreign Policy Dinners)’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지인들끼리 모이는 소규모 토론회였지만 워싱턴에서 진지하게 정책을 토론할 수 있는 자리라는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이 모임이 입소문을 타면서 올브라이트 장관은 페라로 후보의 과외교사로 추천을 받게 되고 이후 독보적인 외교 커리어를 개척하는 데 발판이 됐습니다.개인사에 대한 얘기를 꺼리는 올브라이트 장관은 1999년 한 강연에서 “이혼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덕분에 오늘 여러분 앞에서 박수를 받는 위치에 서게 됐다”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겼습니다. 인생에서 이혼을 포함한 여러 고난을 만나게 되지만 이를 통해 자유로워지는 부분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한 결정을 하는 삶을 사는 기쁨”이라고 말했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미국에는 독특한 대통령 취임식 전통이 있습니다. 곧 대통령이 될 당선인과 물러나는 대통령이 같은 리무진을 타고 백악관을 출발해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까지 갑니다. 1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이지만 ‘비스트’라고 불리는 대통령 전용 리무진 뒷좌석에는 어색열매를 먹은 듯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대통령이 된다는 한 쪽의 희망감과 내려와야 한다는 다른 한 쪽의 아쉬움이 교차하는 동행길이기 때문입니다. 1981년 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 때 그런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리무진 뒷좌석에서 퇴임하는 지미 카터 대통령은 선거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고, 희망에 부푼 레이건 당선인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레이건 당선인은 할리우드 배우 시절에 자신의 보스였고 정치인 변신 때 큰 도움을 준 잭 워너 워너브라더스 영화사 설립자에 대한 얘기꽃을 피웠지만 카터 대통령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리무진에서 내려 취임식장으로 가면서 카터 대통령이 보좌관에게 물었습니다.“도대체 잭 워너가 누구야?” 조지아 주 땅콩농장 주인 출신으로 할리우드와 담쌓고 지냈던 카터 대통령은 레이건 당선인이 국정에 대한 의논보다 ‘시시한 연예계 잡담’에 열을 올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작가 조너선 앨터가 쓴 카터 전 대통령 전기 ‘최선: 지미 카터의 삶(2000년)’은 전합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카터-레이건 관계는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대통령직 인수”로 평가됩니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정도로 외교적 확장보다 내치에 중점을 뒀던 카터 대통령과 대외적으로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자 했던 레이건 당선인은 대선 유세 때부터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인수 과정에서 많은 파열음이 발생했습니다. 레이건 당선인은 대선 승리 직후 “카터 행정부와는 어떤 연관성도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카터 대통령은 대선 승리 후 백악관을 첫 방문한 레이건 당선인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메모도 하지 않아 마음이 상했다고 합니다.레이건 당선인 측은 카터 대통령에게 “일찍 방을 빼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퍼스트레이디가 될 낸시 레이건 여사는 백악관 재단장을 일찍 시작하고 싶어서 카터 대통령 부부에게 취임식 몇 주 전에 백악관에서 나가 대통령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로 옮겨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 여사가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이 요청은 실현되지 않았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개선장군이 된 듯한 레이건 당선인 측의 행동과 발언들은 무례한 측면이 있지만 당시 언론 기사들을 보면 카터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정치와 침체된 경제에 실망해 있던 국민들은 오히려 환영했습니다. 레이건 당선이 확정되자 카터 대통령 시절에 크게 줄었던 정부 직책들이 다시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너도나도 이력서를 들고 몰려들면서 워싱턴은 생기 있는 도시로 변했습니다. “장관에서 비서까지(from Secretary to secretary)”라는 유행어가 생겨날 정도로 채용 붐이 일면서 인재 풀이 확장됐습니다. 레이건 정권 인수 과정은 카터 인수위 때와 크게 달랐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에드윈 미즈 위원장이 이끄는 레이건 인수위는 1000명의 매머드 급으로 꾸려졌습니다. 인원은 많았지만 1달러의 상징적 급여를 받는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인수위 운영비용은 인원이 절반 정도로 적었던 카터 인수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레이건 인수위는 분야별로 나눠 각종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빨리 내각 진용을 채워나갔습니다. 1980년 11월 초 대선 승리 후 그 해 연말까지 7주 안에 주택도시개발부와 유엔주재 미국대사 등 2개 직책을 제외한 내각과 백악관 인선이 완료됐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인맥들이 중용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워싱턴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관리들이 대거 중용됐습니다. 덕분에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막히는 일도 거의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이런 속도전은 레이건 특유의 자유방임적 통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전임 행정부로부터 이념적 전환’이라는 대원칙 하에 레이건 당선인은 인수위에 결정권을 일임했고, 인수위는 헤리티지재단, 후버연구소 등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들과 손잡고 신속하게 인사 결정을 내렸고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레이건 인수위는 4년 전 카터 인수위가 지지부진한 일처리로 국민적 실망감을 준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워싱턴 정치 문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조지아 주지사에서 백악관으로 직행한 카터 대통령은 주요 보직 인터뷰를 직접 진행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었습니다. 지나치게 공을 들인 결과 인수위 활동 5주가 지나도 국무장관,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등 2개 직책밖에 채우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였지만 결국 조지아 주지사 시절 인맥이 중용돼 “시골뜨기 정부”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왔습니다. 백악관을 주도하는 조지아파와 내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워싱턴파 사이에 갈등도 자주 발생했습니다. 미국은 대통령직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지지만 정권 인수기에 벌어지는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정권 인수를 집중 연구하는 미국 싱크탱크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로 당적이 다른 관계에서 대통령 ‘배턴 터치’가 이뤄질 때 혼란은 자주 발생합니다. 배턴을 내주는 쪽이 재선 레이스에서 실패한 것이라면 혼란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워싱턴의 유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관련 보고서에서 정권 인수의 교훈을 “빨리 행동하라(act quickly)”라고 조언합니다. 인수 기간에 신속한 결정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새로운 정부의 방향성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미국 정치의 오랜 격언은 적어도 정권 인수기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올해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매입하는 밀 가격이 40kg당 3만9000원(일반 양호 등급)으로 정해졌다. 또 올해 정부의 국산 밀 비축량은 지난해보다 5600t 늘어난 1만4000t으로 정해졌다. 매입 품종은 국내 밀 생산농가에서 주로 재배하는 금강, 새금강, 조경, 백강 등 4개 품종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5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22년 국산 밀 비축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국산 밀의 안정적인 공급을 유도하고 소비 기반을 늘리기 위해 매년 일정량을 생산농가로부터 매입해 비축하고 있으며 매입 물량도 늘리고 있다. 올해 밀 매입 방식은 3가지 측면에서 개선된다. 우선 매입 시기가 6월로 앞당겨진다. 지난해 장마 기간인 7월 말에 매입하는 바람에 농가에서 밀 보관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함께 건조저장 시설이 부족한 지역을 대상으로 산물(産物) 매입이 시범 시행된다. 지역농협과 협력해 농가에서 생산한 밀을 인근 농협의 건조 시설을 이용해 건조한 뒤 정부에서 매입하는 방식이다. 시범 사업에는 4개 지역농협(군산 회현, 부안 하서, 무안 청계, 의령 동부)이 참여한다. 생산단지는 지역농협과 협의해 매입 일정과 물량을 정하게 된다. 또한 비축 밀 품질검사 전에 밀의 단백질 함량을 알고 싶은 농가는 인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사무소에 의뢰해 무료 분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김보람 농식품부 식량산업과장은 “최근 국제곡물가가 상승해 식량작물 수급을 안정시키는 게 중요해졌다”며 “국산 밀 비축 확대 등 밀 자급률 제고를 위한 제도적 지원을 꾸준히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하는 ‘성(聖)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 행사가 17일 백악관에서 열립니다. 이런 비판이 나옵니다. “지금 시국에 파티를 연다고?”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외교 총력전을 펴고 있습니다. 확전일로의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통령이 다른 한편에서 흥겨운 파티를 연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나올만합니다.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가 열리게 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적 의지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 패트릭의 날 행사를 열기 위해 취임 초부터 별렀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쯤 취임 후 백악관의 첫 파티로 성 패트릭의 날을 기념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렵게 되자 아일랜드 총리를 화상으로 연결해 ‘버추얼 파티’를 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올해는 팬데믹이 진정되는 추세를 보이자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총리 부부를 포함한 2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파티를 열기로 한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을 ‘미국-아일랜드 문화유산의 달’로 선포했습니다. 이런 분주한 움직임은 아일랜드계 조상을 둔 바이든 대통령의 ‘뿌리 사랑’을 보여줍니다. 성 패트릭의 날은 아일랜드 성직자였던 패트릭의 사망일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에게는 최대 축제날입니다. 아일랜드의 상징색인 녹색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맥주를 마시며 즐깁니다. 뉴욕, 시카고, 보스턴 등 100여개 도시에서 녹색 차림으로 행진하는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우리나라는 지도자급 인사들이 자신의 연고나 혈통을 거론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다인종 국가인 미국은 다릅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인종적 지역적 배경을 스스럼없이 공개합니다. 그 중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유달리 조상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통령입니다. 아일랜드는 바이든 대통령 연설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영웅으로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를 꼽습니다. 2020년 대선 유세 때는 히니의 시 ‘트로이의 해법’을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 전화를 걸면서 ‘트로이의 해법’ 시구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부통령 시절의 바이든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초청한 만찬에서 “내 아일랜드 외할아버지가 영국 개신교도들과는 말도 섞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 (그 중 한 명인 캐머런 총리와) 한 자리에 앉아 있다니 할아버지가 무덤에서 일어날 일이다”는 농담을 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올해로 정치 생활 50년을 맞는 바이든 대통령은 ‘평민 조(Average Joe)’의 이미지를 쌓아왔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보통 사람 이미지를 밀고 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일랜드 혈통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정치학자들은 분석합니다. 미국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저소득층 노동자 세력을 대변해왔기 때문입니다.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를 휩쓴 대기근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은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 모여 살다가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 등 인근 주로 퍼져나갔습니다. 1850년 미국으로 이주한 바이든 가문도 스크랜턴에 살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10살 때인 1952년 델라웨어로 옮겨갔습니다. 아버지의 중고차 영업이 성공하면서 바이든 가족은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렸지만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생존 지향적 실리주의는 정치인 바이든의 좌표가 됐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같은 원칙주의자가 아니라 반대 세력과의 타협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아일랜드계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일랜드 혈통을 강조하면서 ‘케네디 연상 효과’도 톡톡히 누렸습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는 아일랜드 혈통을 지닌 이들이 꽤 많습니다. 아일랜드 매체 ‘아이리쉬타임스’에 따르면 현대 역사만 봐도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친가 또는 외가 쪽에서 어느 정도든 아일랜드 혈통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백인 외가 쪽으로 5대조 이상 거슬러 올라가면 아일랜드 조상을 두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선명하게 ‘아일랜드계 대통령’으로 부각되는 인물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자신과 케네디 전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아일랜드에 뿌리를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언론에서는 바이든을 “케네디 사촌”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일랜드계, 가톨릭신자, 민주당 소속이라는 공통점 외에 개인사의 비극도 공유하고 있어 이런 비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정치인으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교통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바이든 대통령은 케네디 가문의 비극과 연결되면서 ‘역경 극복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바이든 대통령의 진한 아일랜드 사랑은 입방아에 오르기도 합니다. 국민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대통령의 자격으로 뿌리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은 다른 인종 및 지역 출신들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선후보 토론에서는 이민 문호 개방을 내세우며 “와스프(WASP·미국의 주류 계급인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는 아일랜드인을 깔보고 무시했다”고 주장한 것은 분열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백악관의 성 패트릭의 날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흥에 겨운 나머지 아일랜드에 대한 도를 넘는 애정 표현을 할까봐 주변에서는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합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악몽을 꿨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뉴욕타임스 기자들의 치열한 취재현장을 그린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제4계급(the Fourth Estate)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저녁 잠자리에서 악몽을 꾼 아이가 무섭다며 회사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옵니다. 엄마는 뉴욕타임스에서 백악관 취재를 담당하는 매기 하버만 기자(48). 정신없이 기사를 쓰던 하버만 기자는 아이가 계속 보채자 전화기에 대고 화를 냅니다. ’매정한 엄마‘라는 비판보다 일-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직장여성의 고충을 대변한다고 해서 2018년 영화 개봉 때 하버만 기자에게 동정론이 일었습니다.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이 다큐에는 여러 명의 뉴욕타임스 기자가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하버만 기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짜뉴스‘ 공세에 대항한 언론의 진실 추구 노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미국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스타 기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버만 기자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 거미줄처럼 빈틈없는 취재망을 쳐놓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비리와 정책상의 문제점에 대한 수많은 특종 기사를 터뜨렸습니다. ’백악관 관리들이 소셜미디어 상에서 가장 많이 팔로우하는 기자‘라는 타이틀에서 그녀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버만 기자는 러시아의 미 대선 불법 개입 의혹을 조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러시아 스캔들‘ 보고서에서 가장 많이 이름이 언급된 기자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외교정책의 근간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것도 그녀입니다. 그런 하버만 기자가 최근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취재의 기본도 모른다” “돈만 밝힌다” “유명해지더니 변했다” 등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그녀가 출간할 예정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 관한 책 때문입니다. 제목은 ’사기꾼(Confidence Man).‘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이 담길지 짐작이 간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올해 9,10월쯤 발간을 목표로 지금 하버만 기자는 열심히 집필 중입니다.이미 서점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다룬 책 50여종이 쫙 깔려있습니다. 대부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관찰한 기자나 전직 관리들이 쓴 책들입니다. 트럼프 친척들까지 저술 대열에 합류할 정도로 시장은 포화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하버만 기자의 책이 발간도 되기 전부터 예정 소식만으로 큰 화제가 되는 것은 그녀의 탄탄한 취재 실력과 폭넓은 정보망을 바탕으로 다른 트럼프 관련 저서들과는 차별화된 깊이 있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 동료 기자들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버만이 쓰면 다를 것” “벌써부터 기대된다” 등의 격려사를 남기며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록물 훼손 사건이 불거지면서 하버만 기자의 신간이 논란으로 떠올랐습니다. 기록물 훼손 사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대통령기록법을 무시하고 자신이 읽은 문건들을 찢어버리거나 숨기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는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15상자 분량의 대통령 기록물이 발견돼 국립문서관리청이 회수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미 하원 정부개혁감독위원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기록물 훼손 논란 속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중요한 문서들을 너무 많이 찢어서 백악관 사저의 화장실 변기에 버리는 통에 변기가 막히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도한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하버만 기자가 집필 중인 책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고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계속 연락을 이어왔다고 주변에 말했다는 사실도 하버만의 책에 담길 예정이라고 악시오스는 전했습니다. CNN 분석가로도 활동 중인 하버만 기자는 CNN에 출연해 보도 내용이 맞다고 확인했습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악시오스의 기사 링크와 함께 “곧 나올 나의 책에 들어있는 내용”이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미있는 뒷얘기들이 책에 포함됐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의도였겠죠.하지만 ’화장실 변기‘ 사건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가 기자의 취재 윤리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하버만 기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취재 중에 얻은 중요한 정보를 즉시 기사화해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나중에 자신의 책에 쓸 목적으로 묻어뒀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록물 훼손 습관에 관한 정보를 좀더 일찍 공개했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조치들이 마련됐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비판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트럼프 킬러‘로 이름을 날린 하버만 기자였기에 대중의 실망감은 더욱 컸습니다. 군사매체 ’스타즈 앤 스타라입스‘의 얼 스티븐스 편집장은 “책 발간을 염두에 두고 정보를 늑장공개하는 기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우려스럽다”며 “매기 하버만, 뉴욕타임스, 그리고 그 망할 놈의 책에 대해 듣는 것도 이제 지겹다”고 비판했습니다. “책 장사가 그렇게 중요했나요, 매기?” “귀중한 정보를 깔아뭉갠 매기, 축하해요” 등의 조롱이 소셜미디어에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논란은 하버만 기자가 처음이 아닙니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은 2020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을 인터뷰했을 때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확보하고도 자신의 책 ’격노(Rage)‘가 출간되는 9월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습니다. 우드워드 기자가 일찍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면 코로나19 대응 방침이 달라지고 사망자도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가열되자 하버만 기자는 반박에 나섰습니다. CNN에 다시 출연해 “문제가 된 정보들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입수해 묻어둔 것이 아니라 최근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후속 취재를 하면서 알아낸 것들”이라며 “나는 결코 정보를 아껴두는 기자가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하버만 기자와 뉴욕타임스가 신간 홍보에 쏟은 노력으로 볼 때 이런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버만 기자는 신뢰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지만 책의 화제성은 더욱 커졌다는 데서 위안을 찾을 듯 합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정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강화된 방역시설을 설치하고 검사 및 소독 강도를 높여나가는 방역대책을 추진한다고 지난달 21일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야생 멧돼지 ASF 양성 개체 검출 지역은 경기 강원 충북에 이어 경북 지역까지 남하했으며 전북과 경남으로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3월부터 영농 활동과 등산 인구가 늘어나면 오염원이 농장에 유입될 위험은 커지게 된다. ASF 확산을 가정할 경우 살처분 등으로 인한 농가 손실액은 1조6000억∼2조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농식품부는 1월 28일부터 ASF가 발생한 충북 보은, 경북 상주 울진과 인접 시군에 ASF 위험주의보를 발령했고 위험 지역 양돈농장을 긴급 점검했다. 4월까지 전국 양돈농장 총 5485호에 울타리, 전실, 방역실 등 중요 방역시설이 설치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와 농가를 독려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자율방역 수준을 높이기 위해 차단 방역을 철저히 하는 농가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 제외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또 방역시설 설치를 완료한 농가에 살처분 보상금을 더 많이 지급하는 등의 인센티브도 줄 방침이다. 이와 함께 AI 방역 관리도 강화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 8일 이후 가금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된 사례는 44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6% 감소했다. 하지만 겨울 철새의 북상이 완료되는 3월까지는 추가 확산 우려가 남아 있다. 이에 정부는 동진강, 삽교호 등 서해안 지역의 철새 도래지와 농장 진입로 등에서 소독을 강도 높게 시행할 계획이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보는 “ASF는 1년 내내 엄중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므로 전국 모든 양돈농장은 강화된 방역시설을 갖추고 방역수칙을 준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고병원성 AI 방역을 위해 농장 관계자는 출입 차량과 사람을 최소화하고 소독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지구촌 어디에서나 최대 관심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례총회에서 정치인들은 일제히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수장(首長)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58) 발언도 주목 받았습니다. CPAC 행사 첫째 날 연단에 오른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무능력한 대응에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비교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력은 정말 뛰어났다. 이란 공습에서부터 북한 억류 미국인 인질 석방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힘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런데 폼페이오 전 장관의 CPAC 연설이 화제가 된 것은 우크라이나 때문도, 잠깐 언급된 북한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몰라보게 달라진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넉넉한 몸집’으로 유명했던 폼페이오 전 장관은 홀쭉한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최대 잔치라 할 수 있는 CPAC 행사는 체중 감량 ‘애프터’ 폼페이오가 관객들 앞에서 선 가장 큰 무대였습니다. 외모적 변화에 쏠린 관심을 의식한 그는 체중 문제를 언급하면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그 많은 살을 뺐느냐’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 체중 감소는 정말 힘든 일이다. 앞으로도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최근 폭스뉴스, 뉴욕포스트 등과의 인터뷰에서 “2021년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에 걸쳐 90파운드(41kg)를 줄였다”고 밝혔습니다. 살을 빼기로 결심한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6월 12일 체중계에 올랐을 때 눈금이 300파운드(136kg) 부근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몸무게가 300파운드 언저리까지 간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부인 수전 여사 앞에서 선언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Today is the day).”곧바로 체중 감량 작전에 돌입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이 세운 원칙은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한다’입니다. 지하실에 아령과 유산소 운동 기구 몇 가지를 갖춘 간단한 운동실을 마련해 놓고 하루 30분 이상 땀을 흘렸습니다. 짧게 하더라도 거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일주일에 5,6회 운동실을 찾았습니다. 운동 시작 3,4주 후부터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셔츠의 목둘레가 헐거워지는 것을 볼 때의 기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식사 조절을 위해서는 탄수화물 음식을 끊고, 1회 식사량을 줄였습니다. 체중 감량 전 그는 치즈버거 애호가였습니다. 전임 국무장관들이 해외순방 때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 스타일이었던 것과는 달리 그는 호텔 룸서비스를 통해 치즈버거를 몇 개씩 주문해 놓고 밤새도록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습관 때문에 체중은 날로 불어 300파운드 중 100파운드는 최근 몇 년 새 늘어난 것이라 합니다. 다이어트에 돌입하면서 치즈버거를 끊었고, 감자튀김도 지난해 6월 이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의 체중 감량 스토리는 별로 새로울 게 없습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는 체중 감량의 일반적 과정을 거쳤습니다. 본인도 인터뷰에서 밝혔듯 “체중 감량의 승패는 개인의 결심 차이일 뿐”이라고 합니다. “전문가나 운동 트레이너, 영양사의 도움 없이 나에게 맞는 방법을 연구해 얻은 결과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비법’이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폼페이오 전 장관처럼 운동하고 식사를 조절한다고 해도 월 평균 15파운드(6.8kg)씩 몸무게를 줄인다는 것은 “믿기 힘든 결과”라고 의문을 나타냅니다. 나잇살이 붙게 되는 중장년 연령대를 고려할 때 특별한 지병 때문이 아니고야 파격적인 체중 감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는 헬스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이 같은 회의적 시선은 특히 진보 진영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회의론자들은 “2024년 대권 도전을 목표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체중 감량 동기와 과정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외과적 수술, 극도의 단식, 다이어트 보조제 등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죠. 진보 성향 매체 가디언은 “폼페이오의 체중 감량은 미심쩍은 측면이 있다”면서 “누구나 다 자신처럼 노력하면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관련 사설을 쓴 신문도 있습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의 정치적 고향인 캔자스 주의 유력 매체인 ‘캔자스시티스타’는 ‘이봐 친구, 진실을 말해 줘: 폼페이오가 90파운드를 뺀 것은 자신이 주장하는 방식 덕분이 아니다’라는 긴 제목의 사설에서 “(살을 뺀 뒤) 해쓱한 모습은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며 “짧은 기간에 많은 몸무게를 줄인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이전에도 체중 감량으로 화제가 된 정치인은 여러 명 있습니다. 145kg까지 나갔던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위에 실리콘 밴드를 삽입하는 수술로 폼페이오 전 장관과 비슷하게 40kg을 줄였습니다. 그는 2013년 위 수술을 받은 직후 수술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2008년, 2016년 두 차례 대선에 도전했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가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에 충격을 받고 다이어트를 선언해 130kg에서 80kg으로 줄였습니다. 그는 마라톤과 식이요법으로 성공했습니다.인구의 4분의 3이 비만 또는 초고도비만으로 분류되는 미국에서는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지출이 막대하고 체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지대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내보여야 하는 공인들은 몸무게를 포함한 외모에 대한 지나친 사회적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호소합니다. 허커비 전 주지사는 “내 몸무게가 (정치) 메시지를 가렸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폼페이오 전 장관 역시 한동안 질투 섞인 호기심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최근 미국 오리건 주 대법원이 주지사 도전을 선언한 니콜러스 크리스토프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62)에 대해 “출마 자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번 판결로 37년 동안 뉴욕타임스 기자 및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린 크리스토프의 첫 공직 출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주 이름 ‘오리건(Oregon)’에 빗대 크리스토프의 정치가 변신의 꿈이 “오리-건(Ore-Gone·사라져버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옵니다. 지난해 10월 크리스토프는 ‘희망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작별을 고하다’라는 마지막 칼럼을 쓴 뒤 민주당 소속으로 오리건 주지사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올해 11월 선출되는 오리건 주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1월 주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려고 했지만 퇴짜를 맞았습니다. 거주 요건 미달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오리건 주 선거법에 따르면 주요 공직에 출마하려는 후보는 선거일 이전에 최소 3년간 주에서 거주해야 합니다. 크리스토프는 뉴욕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오리건에 주택을 보유해왔다”며 법원에 항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주 대법원이 “출마 자격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법원은 크리스토프가 2020년 대선 때 뉴욕 주 유권자로 등록해 투표한 점, 자동차 운전면허증 주소가 뉴욕으로 돼있는 점, 세금납부 서류상 주소가 뉴욕인 점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유세 때마다 “오리건은 내 마음의 고향”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지만 10대 성장기 시절을 오리건에서 보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12세쯤 오리건으로 이사해 북부의 작은 도시 얌힐에서 자랐고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부모는 모두 오리건 주 포틀랜드대 교수를 지냈습니다. 이후 오리건을 떠나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유학한 뒤 뉴욕타임스에 입사했습니다.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고의 언론 뉴욕타임스는 유명 기자와 칼럼니스트를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토머스 프리드먼, 폴 크루그먼, 모린 다우드 등 다른 칼럼니스트들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미국에서는 이들과 함께 1990~2000년대 뉴욕타임스 칼럼 황금시대를 이끈 인물 중 한명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무실 책상에서 글을 쓰기보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해 ‘현장 칼럼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1990년 베이징 특파원 시절 천안문 사태를 생생히 전해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을 수상했고, 2006년 수단 다르푸르 인종학살 현장을 심층 보도해 코멘터리(의견비평) 부문에서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는 국제 이슈보다 국내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기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느라 국민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놓치고 있다”면서 언론의 반성을 촉구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크리스토프가 뉴욕타임스에 사표를 쓰고 공직 출마를 선언했을 때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즉흥적 일면을 가진 성격에서 나온 “심사숙고를 거치지 않은 결정인 듯 하다”는 분석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진로를 바꾼 사례는 상당히 많습니다. 대부분 중앙 언론보다는 지역 매체 출신이며, 정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경험 축적 차원에서 언론을 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늦지 않은 30~40대 나이에 커리어 전환이 이뤄집니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의 성공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앨 고어 전 부통령,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패트릭 뷰캐넌 전 백악관 공보국장 등은 지역 매체의 기자나 앵커 출신이며 40대가 되기 전에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치잡지 ‘내셔널리뷰’ 발행인 윌리엄 버클리, 소비자 보호 관련 글을 많이 쓴 랠프 네이더, 작가 고어 비달 등은 언론인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뒤 대통령이나 다른 공직에 도전한 적이 있지만 정치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알리고 이목을 끌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 성격이 강했습니다.크리스토프 본인이 각종 인터뷰를 통해 밝힌 출마 동기는 2020년 출간된 저서 ‘타이트로프: 희망을 찾는 미국인들’에 있습니다. 책은 미국 소도시들이 높은 실업률, 청소년 탈선, 마약, 노숙자 등의 문제로 인해 몰락되는 과정을 크리스토프가 자신의 고향인 오리건 주 얌힐을 사례로 들어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그의 얌힐 고교 동창생 4명 중 1명이 이미 사망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CNN에서 크리스토프가 진행을 맡은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습니다. ‘타이트로프’는 미국 소도시까지 침투한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을 ‘고장난 정치 시스템’에서 찾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직접 뛰어들어 시스템을 고쳐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민주당의 다른 경쟁 후보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액수인 260만 달러(31억원)의 선거자금을 모았습니다. 빌 게이츠(5만 달러), 링크트인 설립자(10만 달러), 위워크 설립자(5만 달러) 등 언론인 시절 크리스토프와 친한 기업가들이 선뜻 정치자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에 대한 비판 여론도 커졌습니다. 특히 오리건 주민들은 “우리 지역은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렇게 끔찍한 곳이 아니다”면서 반감을 표출했습니다. 크리스토프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고향의 부정적인 단면을 과대포장했다는 것입니다. 주 선관위가 크리스토프의 출마 자격을 문제 삼은 것도 지역 민심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년 거주 요건의 오리건 주 선거법이 지나치게 구식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를 무시하고 출마하려다가 무산된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원의 출마 불가 판결 후 크리스토프는 지역방송 인터뷰를 통해 “나의 주장을 계속 펼쳐나갈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출마할지, 언론계로 돌아올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듯 합니다. 향후 어떤 진로를 택하던지 ‘비호감’ 이미지만 낳은 이번 도전에 대해 “뉴욕타임스 명칼럼스니스트도 별수 없다”는 뒷얘기가 무성합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지적대로 크리스토프의 정치 도전기는 “자신이 애써 쌓아온 브랜드만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하이트진로가 ‘청정라거-테라’의 홈술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청정 콘셉트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도 준비 중이다. 하이트진로는 7일 집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청정라거-테라의 캔 라인업을 확대했다.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국내 시장 분위기에 성장과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이번에 출시한 새 용량은 400mL와 463mL이다. 캔 맥주 선택에 있어 소비자들이 용량과 가격을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것에 착안해 6개월간의 소비자 조사를 통해 최근 높은 선호도를 보이는 최적의 용량 400mL와 463mL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테라 캔은 250mL, 355mL, 400mL, 463mL, 500mL 등 총 5종의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이번에 출시한 테라 캔은 파격적으로 인하된 가격으로 판매 중이다. 355mL 캔에 비해 mL당 단가가 400mL 캔은 14.5%, 463mL 캔은 18.5% 저렴하다. 전국의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에서 8캔들이로 구입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하이트진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테라의 청정 가치를 담은 브랜드 활동을 이어간다. 지난달 하이트진로는 국내 대표 업사이클링 전문 브랜드 ‘큐클리프(CUECLYP)’와 친환경 활동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이트진로는 그동안 테라, 진로 등 주요 제품의 환경성적표지인증을 획득하고, 지난해 올바른 자원순환 문화의 확산을 위한 ‘청정 리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친환경 경영 활동에 앞장서 왔다. 하이트진로는 큐클리프와 함께 청정라거-테라의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자재를 친환경 공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제작해 소비자들을 위해 활용할 예정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4월부터 청정 리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감축해 환경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청정 리사이클 캠페인은 분리배출을 독려해 재활용 확대 등 소비자에게 올바른 자원순환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기획됐다. 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전문기업 ‘테라사이클’과 협업하고 ‘BGF리테일(CU편의점)’ ‘요기요’와 함께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오성택 상무는 “도전과 혁신을 지속해 나가고 침체된 시장 분위기에 성장과 활력을 불어넣고자 소비자 니즈에 부합하는 신규 캔을 출시했다”며 “테라의 본질이자 핵심 가치인 ‘청정’에 중점을 둔 소비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업사이클링 등 다양한 친환경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이게 웬 미친 짓이냐. 정부는 마약 파이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당장 집어치워라.” “ 어제는 ‘범죄와의 전쟁’을 외치더니 오늘은 마약 파이프 지원?” “마약 파이프라는 선물로 흑인 역사의 달(2월)을 축하하려는 것이냐.” 마약은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최근 마약 파이프 때문에 여론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지난해 말 조 바이든 행정부는 사회복지 단체들이 마약 중독자를 위한 치료용 의료기구를 갖출 수 있도록 총30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7일은 신청 마감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흡입 파이프처럼 마약 사용을 부추길 수 있는 기구 마련 용도로 지원금을 신청한 단체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정부는 마약 파이프에 지원금을 줄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보건부도 성명을 통해 “지원금은 마약 파이프 용도로 절대 쓰이지 않을 것”이라며 긴급 진화에 나섰습니다. 원래 정부가 제시한 치료기구 사례로는 과다남용 억제제, 주사기 처분용기, 응급약품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마약 파이프를 치료기구의 범주에 넣어 지원금을 신청한 단체들은 “중독자가 깨끗한 파이프를 쓰면 과다사용으로 인한 사망을 줄일 수 있어 마약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코카인, 메타암페타민 각성제 등 흡입용 마약 사용자들이 더러운 파이프를 재사용해 오남용과 치사율을 높인다는 문제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지적돼왔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을 포함한 국민적 여론은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중독자들이 침침한 방 안에서 마약 파이프에 불을 붙이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자라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프에 정부 돈을 대주는 것은 마약을 장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글들이 소셜미디어에 속속 올라왔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마약 문제에서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다른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약 사용과 거래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밀고 나갔다면 바이든 정책의 초점은 ‘피해 감소(harm reduction)’에 맞춰져 있습니다. 안전한 사용과 신속한 응급조치로 마약 사망사고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이런 정책의 청사진을 마련한 사람은 백악관 산하 국가마약통제정책국(ONDCP)을 이끄는 라훌 굽타 국장입니다. 인도 태생으로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건너온 그는 지난해 11월 ONDCP 국장에 임명됐습니다. 이전까지는 주로 정치인이나 전문 관료들이 도맡아온 ONDCP 수장 자리에 의학박사로는 처음 오른 것이어서 임명 당시부터 화제가 됐습니다. ONDCP는 ‘통제정책국’이라는 기관명에서 풍기듯이 지금까지 공급망 규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하지만 지역의료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굽타 국장은 출발점부터 달랐습니다. 그는 취임 직후 미국-멕시코 국경지대를 방문했습니다. 마약이 유입되는 국경지대는 신임 ONDCP 국장들의 단골 방문 코스입니다. 하지만 굽타 국장은 “응급실의 비극” “중독 지원 시스템” 등의 단어들을 입에 올렸습니다. 취임 일성으로 “카르텔 차단” “강력 처벌” 등 사법정의 실현에 중점을 뒀던 전임자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굽타’ 성(姓)을 가진 또 다른 유명인인 산제이 굽타 CNN 의학전문 기자와의 취임 기념 인터뷰에서 마약 문제를 “법이 아닌 의학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코로나19 전염병의 영향으로 마약 사용은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최근 미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심리적 폐쇄감 등으로 인해 2020년 4월부터 2021년 5월까지 10만 명의 미국인이 마약 남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간 수치로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의사 처방전만 있으면 간단하게 오피오이드 등의 아편계 진통제를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마약 소탕이라는 도달하기 힘든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안전한 사용으로 사망자를 줄여나가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 굽타 국장의 소신입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굽타 국장이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웨스트버지니아 주 공중보건국장 시절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인구도 적고 경제수준도 낮은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뉴욕 등 대도시를 제치고 마약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힙니다. 2016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52명으로 미국 전체 평균보다 3배 가까이 높습니다. 굽타 국장이 2014년 웨스트버지니아 주 보건국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약 사망자 887명 전원에 대한 상세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성별, 가족상황, 마약 구매 동기는 물론 응급실에 몇 차례 실려 갔는지 등 치료 과정에 대한 데이터도 구축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피오이드 등 마약 과다사용으로 인해 호흡곤란 등의 독성이 나타날 경우 이를 상쇄하는 아편성 길항제 날록손을 몇 분 내에 투여하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굽타 국장의 지휘 아래 마약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학교, 도서관, 직장 등에 날록손을 무료로 비치해놓고, 이동 치료소도 곳곳에 문을 열었습니다. 공공기관에 마약성 치료제를 공개적으로 비치해 놓는다는 점, 1회 투여당 40달러에 달하는 고가(高價)의 치료제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 등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덕분에 응급구조대 출동율과 사망률은 30~40%씩 낮아졌습니다.굽타 국장은 마약 파이프 논란이 불거진 뒤 “정부 기금이 파이프 마련 용도로 쓰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 여론 때문에 한발 물러선 것일 뿐 웨스트버지니아 시절의 경험에 비춰볼 때 지지하는 쪽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굽타 국장이 앞으로 내놓을 아이디어로 마약 안전 투여소 설치가 거론됩니다. 깨끗한 주사기로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분량을 투여할 수 있는 시설은 필요성이 인정되고 캐나다 유럽 등에서도 운영 중이지만 “마약 소굴을 마련해주는 꼴”이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마약 문제는 심각하지만 여론은 상당히 보수적인 미국에서 “안전한 사용”을 외치는 굽타 국장의 대책들이 상당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우유 값 산정 방식 개편을 추진하는 정부가 낙농업계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 수정안을 내놨다.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물량을 단계적으로 조정하고 낙농진흥회 이사회에 가격 결정 업무를 담당하는 소위원회를 두는 내용을 담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일 “지난해 말 발표한 ‘낙농산업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생산자단체의 주장, 유가공 업계와의 실무협의 결과 올해 원유(原乳) 생산 전망 등을 반영해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유 가격 상승세를 꺾기 위해 지난해 말 개선안을 통해 원유를 음용유(마시는 우유)와 가공유(치즈 아이스크림 등 가공 유제품용)로 나누고, 음용유 값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가공유는 더 싸게 거래하도록 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추진해왔다. 국산 원유 자급률은 2001년 77.3%에서 2020년 48.1%로 낮아졌다. 자급률 하락은 현재의 낙농산업 질서를 규정하고 있는 제도가 소비구조의 변화에 맞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지금까지 국내 원유 가격에 적용돼온 ‘생산비 연동제’는 수요에 관계없이 생산비가 오르면 가격도 오르는 구조여서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말 발표된 개선안은 유업체가 낙농가로부터 원유를 구매할 때 음용유 187만 t은 L당 1100원, 가공유 31만 t은 L당 800∼900원으로 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차등가격제가 적용될 경우 가공유 납품가 하락으로 유업체가 원하는 물량이 늘어나 낙농가로서는 손해를 보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산자단체들은 유업체들이 가공유를 더 많이 사들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데다 단기간 내 원유를 증산할 여력도 없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이에 농식품부는 “차등가격제에서 가공유가 차지하는 부분을 연도별로 단계적으로 늘려가겠다”는 양보안을 내놓게 된 것이다. 도입 첫해에는 음용유 대 가공유 비중을 190만 t-20만 t, 이듬해 185만 t-30만 t, 그다음 해 180만 t-40만 t으로 조정하는 식이다. 농식품부는 “수정안이 도입되면 첫해 농가소득은 현 제도를 유지할 때보다 1500억 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관심사인 낙농진흥회 이사회 구성에 대해서는 원유 구매 물량과 가격을 결정하는 소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15명으로 구성된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생산자 측 대표가 7명이어서 이사의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야 하는 회의 개최 조건에 생산자 측이 참석하지 않으면 논의를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점이 지적돼왔다. 개선안에서 정부와 학계, 소비자 측 인원을 늘리고 개의(開議) 조건을 삭제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생산자단체들은 “교섭권 무력화”라며 반발했다. 정부는 수정안을 통해 생산자·유업체 측 각 3명, 정부·학계·낙농진흥회 측 각 1명으로 이뤄진 소위원회를 두고 원유 가격과 거래량은 소위원회의 결정을 토대로 이사회에서 확정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농식품부는 “무엇보다 당사자인 낙농가와 유업체의 이해가 중요하다”며 “향후 온라인 설명회 등을 통해 생산자단체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최근 스티븐 브라이어 미국 연방 대법관이 은퇴 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모처럼 활짝 웃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브라이어 대법관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서서 “댕큐 댕큐”를 연발하며 그의 업적을 칭송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브라이어 대법관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손자와 함께 백악관에 놀러오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의 속은 타들어갑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이 올 11월 중간선거, 나아가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의 쓴맛을 볼 것이라는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브라이어 대법관이 ‘반강제적으로’ 은퇴를 선택한 것도 이런 위기감을 반영합니다.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4명이 선출 대상인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모두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처럼 물가가 안정된 나라에서 수십 년 만에 나타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 번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중점법안들,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감으로 이어지는 외교 불안 등 바이든 행정부에 악재는 갈수록 늘어갑니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석 지위를 잃을 경우 브라이어 대법관의 후임으로 진보 인사가 자리를 잇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공화당이 상원을 지배하게 되면 진보 대법관 지명을 막기 위한 로비를 하거나 과반수가 필요한 인준 표결 때 반대표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방해 공작’을 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화당이 아닌 브라이어 대법관을 지지해온 민주당 쪽에서 그에게 은퇴 압력을 가해왔습니다. 정치 판도가 바뀔지 모르는 중간선거 전에 빨리 젊은 진보 대법관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계산 때문입니다. 브라이어 대법관의 은퇴 결정은 바이든 행정부에게 위기감 해소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소식임에 분명합니다. 종신직인 연방 대법관이 은퇴를 선언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후임자 지명권자인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 체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중 흑인 여성 가운데 후임자를 지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후임 물색 작업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맡겼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검찰총장, 상원 법사위원회 소속 의원 등 법조 분야에서 쟁쟁한 이력서를 가진 해리스 부통령이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 연방항소법원 판사, 레온드라 크루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 대법관 등이 물망에 오르는데 최근 한 명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바로 해리스 부통령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후임자 물색 작업을 지휘하라고 맡긴 해리스 부통령을 민주당 일각에서 아예 후임 대법관으로 미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해리스를 대법원으로(Harris to Supreme Court)’ 움직임은 일선 의원들 사이에서 단순한 희망 사항으로 거론되던 것에서 점차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폭스뉴스 등 보수 성향 매체들이 해리스 대법관 가능성을 띄우기 시작했지만, 민주당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동조하는 20~30명의 의원들은 브라이어 대법관 은퇴 발표가 나오자마자 소셜미디어에 “해리스 대법관은 어떨까” 등의 메시지를 공유하며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해리스 대법관 행(行) 지지자들은 일거양득론을 펼칩니다. 부통령이 된 뒤 뚜렷한 업적이 없는 해리스 부통령이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법률가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 검찰총장을 지낼 때 강력 범죄 소탕, 소수 인종 차별 금지 등에서 업적을 쌓으며 상원의원으로 가는 발판을 삼았습니다. 상원의원이 된 뒤에는 법사위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2018년 성추문 의혹에 휩싸인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 때 그녀가 던진 날카로운 질문들은 지금도 ‘레전드’로 회자(膾炙)됩니다. 부통령의 빈 자리에 좀 더 나은 인물을 데려와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일거양득 셈법은 완성됩니다. 고령의 바이든 대통령이 불시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에 대비해 국정 수행 능력을 갖춘 부통령이 승계 작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은 당 내외에서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지난달 여론조사기관 레거의 조사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에 대한 긍정 평가는 42%인 반면 부정 평가는 56%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입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아무리 인기 없는 부통령이지만 부담스러운 짐을 덜어버리는 식으로 대법관으로 보낼 경우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을 삼가는 분위기입니다. 학계에서도 “부통령 교체에 따른 법적 절차를 연구해야 한다”면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CNN은 “가능성과 정당성이 크지 않다”면서 “이번 기회에 부통령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백악관은 인사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적극 반대하고 있습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현 부통령은 2024년 대선 때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백악관은 후임 대법관을 논의하는 회의 개최 사실을 알리며 회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상석에 앉아 회의를 하는 장면입니다. 해리스 대법관 불가 방침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언론 브리핑에서 거론될 정도면 정치권에서 상당한 논의가 진전됐고, 대통령도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대통령의 약점을 보완하되 대통령을 가려서는 안 된다.” 부통령의 역할에 대한 유명한 격언입니다. CNN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평가하는 유능한 부통령으로는 딕 체니(2001~2009), 앨 고어(1993~2001), 조지 HW 부시(1981~1989), 린든 존슨(1961~1963) 등이 꼽힙니다. 정치 경력은 부족하지만 국민적 인기가 높은 ‘워싱턴 아웃사이더’ 대통령과 ‘인사이더’로서 협상 경험이 풍부한 부통령 체제가 좋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스트’까지는 아니어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합(合)이 좋았던 부통령(2009~2017)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탄탄한 부통령 경력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 자신이 부통령 거취 문제로 분란을 경험하게 될 줄은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최근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동영상이 화제입니다. 유튜브나 CNN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어 원(Year One)’ 제목의 동영상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위원회가 제작했습니다. 미국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중환자실 간호사 등 일반 국민들이 출연해 바이든 행정부의 업적을 알리고 “대통령을 믿는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영상을 제작한 것은 최근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파른 하락 곡선을 그리는 것에 대한 위기감 때문입니다. 정치 전문매체 엑시오스에 따르면 지지율을 올려볼 목적으로 에미상 수상 경력의 전문 제작진을 고용해 수백만 달러를 투입한 비디오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그런데 바이든 홍보 동영상에서 정작 바이든 대통령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더 부각된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바로 진행자 겸 나레이터 역할을 배우 톰 행크스(62)입니다. 미 언론 기사들도 행크스 출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해진 공식대로 흘러가는 업적 홍보 동영상에서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할리우드 A급 스타 행크스이기 때문입니다. 4분 30분초짜리 동영상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4분 10초 쯤 너무 늦게 출연해 “나오는 줄도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동영상 초반부터 나오는 행크스는 “우리는 강하다, 용기 있다, 쓰러지지 않는다, 용감한 국민들의 나라 미국이다”라고 힘줘 말합니다. 보통 사람의 이미지를 가진 행크스가 양복도 아닌 캐주얼 셔츠 차림으로 등장해 미래를 낙관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대해 “신뢰가 간다”는 호평 일색입니다. “바이든보다 더 대통령답다” “이참에 당신이 대선에 나가라”는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행크스에게 대선 출마 얘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할리우드에서 그만큼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국민배우도 드뭅니다. 친(親) 민주당 연예인으로 유명한 그는 이전 대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바이든 등 민주당 후보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했고 정치자금을 기부했습니다. 대선 뿐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중요한 이슈들이 주민투표에 부쳐질 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모금운동을 벌이는 등 지역사회 문제에도 눈을 돌릴 줄 압니다. 행크스는 자신이 믿는 이슈라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할리우드 A급 스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높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배경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에 출연했던 것이 인연이 돼서 고(故) 로버트 돌 상원의원 등 공화당 정치인들이 주축이 됐던 ‘숨겨진 영웅(Hidden Heroes)’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워싱턴에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기념비를 세우고, 한국전 베트남전 2차 세계대전 등에 참전했던 군인들을 위한 복지기금을 모으는 이 캠페인을 위해 행크스는 보수 운동가들과 나란히 의회 증언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행크스는 권력의 감시자로서 언론의 역할을 당부하며 백악관 기자단에게 선물을 건넨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2004년 백악관을 구경 갔을 때 기자단이 미국의 웬만한 사무실이라면 모두 갖추고 있는 커피머신도 없이 일하는 것을 보고 커피머신을 선물했습니다. 2010년, 2017년에도 선물했습니다. 선물한 커피머신의 종류도 아메리카노만 만들 수 있는 기계에서 에스프레소 기능을 갖춘 모델로 진화했습니다. 2017년 선물 때는 기자들이 행크스가 동봉한 메모를 보고 “감동했다”며 속속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진실, 정의, 미국의 정신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 달라. 특히 ‘진실 부분’을 위해”라는 메모였습니다. “런, 포레스트, 런(run, Forrest, run)”은 공식 연설 무대에 오르는 행크스에게 청중들이 외치는 단골 구호입니다. 2018년 행크스가 선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우리 모두 선거합시다(We All Vote)’ 행사에 연사로 나섰을 때도 관중의 열띤 함성 때문에 제대로 연설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구호는 행크스의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영화인 ‘포레스트 검프’(1994년)에서 어린 시절 약한 다리 때문에 지지대에 의존해야 했던 검프가 지지대를 떨쳐버리고 달릴 때 친구가 응원하는 대사입니다. 빠른 주력 때문에 대학 미식축구팀에 들어간 검프가 공을 들고 달릴 때도 이 대사가 등장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달려라”는 의미지만 연설 무대의 행크스에게 보내는 “런”은 “출마하라”는 뜻이겠죠. 바이든 홍보 동영상 댓글 중에도 행크스를 응원하는 이 구호가 등장합니다. 미국인들이 원하는 할리우드 스타 출마자 명단에 행크스의 이름은 빠지지 않습니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 피플즈세이가 전국 성인 3만 138명을 대상으로 ‘대선에 출마했으면 하는 연예인은 누구인가’를 조사한 결과 행크스(20%)는 안젤리나 졸리(30%), 오프라 윈프리(27%)에 이어 3위에 올랐습니다. 남성 연예인 중에는 1위였습니다. 남성 중에서 윌 스미스, 조지 클루니,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화씨 9/11’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행크스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무어 감독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행크스처럼 널리 사랑받는 인물이 출마한다면 찍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며 “그에게 ‘내가 부통령 후보가 돼서 잡일은 다 해줄 테니 당신은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두 번이나 권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행크스가 사양했다고 하죠.만약 행크스가 출마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정치적 행동력, 유머감각, 여배우 리타 윌슨과 40년 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점 등을 고려하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바른생활 사나이’ 행크스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자녀 문제입니다. 둘째 아들 체스터는 약물중독, 인종차별 발언, 음주운전 등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요즘은 백신 접종 반대 운동을 벌여 2020년 영화 촬영차 호주에 갔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는 행크스 부부의 속을 썩이고 있습니다. 행크스의 아들 문제에 대해 “‘자식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사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페이스오프: 레티샤 대 이방카” “레티샤-이방카 대결의 승자는 누구?” 최근 레티샤 제임스 미국 뉴욕주 검찰총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법정 출두를 요청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자녀 이방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은 뉴욕주 검찰로부터 3년 넘게 세금 및 보험 사기 의혹 등으로 조사를 받아왔습니다. 법정에서 선서하고 증언을 해달라는 요청은 트럼프 그룹에 대한 조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미국 언론은 이번 사태를 두 여성 간의 대결 구도로 압축시켜 보도하고 있습니다. 산전수전 겪으며 바닥부터 올라간 흑인 여성 검찰총장이 백인 상류사회 출신의 이방카 트럼프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은 인종과 계급, ‘강 대 강’ 여성 대결 차원에서 흥미 유발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임 때부터 각종 의혹 때문에 의회, 법무부 특별검사팀, 각종 위원회 등으로부터 많은 조사를 받아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뉴욕 검찰 조사가 가장 무섭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뉴욕주 검찰의 뛰어난 수사력에 대한 반증입니다. 이 조직을 이끄는 여걸(女傑)이 올해 62세의 제임스 총장입니다. 뉴욕주 검찰총장은 700명의 검사와 1800명의 수사관 등을 통솔합니다. 급여 수준도 전국 검찰총장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각 주 정부마다 있는 검찰총장이라는 직책은 주의 모든 법률문제를 총괄하는 법무장관에 해당합니다. 모든 것의 중심지인 뉴욕주의 검찰총장은 다른 주의 검찰총장과는 위상 자체가 다르며 연방 법무장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실제로 뉴욕주 검찰총장의 상당수는 이후 주지사에 당선되는 출세 코스를 밟았고, 대통령의 야망까지 불태운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시키는 영리한 정치 감각까지 갖춘 제임스 총장은 현재 미국 법조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이슈메이커’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제임스 총장이 주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녀는 지난해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밝혀낸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수사 결과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제임스 총장은 1시간여 동안 독립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가 11명의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4개월간의 조사 결과가 담긴 165쪽짜리 보고서도 공개했습니다. 한국계인 준 김 전 뉴욕 남부지검장 대행 등과 함께 연단에 올라 수사 결과를 논리정연하게 밝히는 제임스 총장의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조사위 권한을 제임스 총장에게 주지 않기 위해 갖가지 묘책을 강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에게 권한을 부여할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쿠오모 주지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제임스 총장의 의중대로 꾸려진 조사위는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입증했습니다. CNN은 쿠오모 주지사 아래에 있지만 독립적인 수사권을 고수한 제임스 총장에 대해 “‘화이트 보이 클럽(white boys’ club)‘에 속한 전임 총장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분석했습니다. 2019년 취임한 제임스 총장은 여러 면에서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 뉴욕 주 최초의 흑인이자 여성 검찰총장입니다. 또한 검찰 조직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전임 총장들과 달리 그녀는 법률구조협회(LAS)라는 시민단체의 관선변호인 출신입니다. 학교도 워싱턴의 전통적인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 출신으로,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이나 뉴욕 주내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전임 총장들과 차이가 납니다. 수사력을 집중하는 사건도 차이가 있습니다. 전임 총장들이 주로 월가의 부정행위 조사에 주력했던 것과 달리 제임스 총장은 취임 후 일성으로 내놓은 것은 전미총기협회(NRA)에 대한 조사였습니다. “부정부패와 공금 오남용 투성이라는 증거를 확보했다”며 NRA 해체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공화당의 ’돈줄‘이자 최대 로비단체인 NRA가 실제로 해체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제임스 총장은 그동안 그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NRA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NRA가 포위됐다”며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역대 뉴욕주 검찰총장들은 화려한 업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이후 정치역정이 순조롭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뉴욕주 검찰총장 시절(2007~2010년) 미국 대학들의 학자금 대출 관행을 바꿔놓올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대학 학자금 부실 대출 조사를 지휘했습니다. 쿠오모에 이어 자리에 오른 에릭 슈나이더만 전 총장(2011~2018년)은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수사를 이끌며 주목받았지만 정작 본인이 4명의 여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엘리엇 스피처 전 총장(1999~2006년)입니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뉴욕 최대 마피아 조직인 감비노 패밀리를 기소해 일약 스타 검사가 됐습니다. 검찰총장이 된 뒤에는 금융기관들의 불공정 관행을 적발하는 성역 없는 수사로 “월가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주지사에 당선됐지만 ’엠퍼러스 VIP 클럽‘이라는 고급 매춘조직의 상습 이용자인 것이 드러나면서 당선 1년 2개월 만에 물러났습니다. 스피처 총장의 부인 실다 여사가 슬픈 표정으로 옆에 서서 “남편을 용서한다”고 밝힌 기자회견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전임 총장들과 비교할 때 제임스 총장은 출신 배경과 수사 집중 분야 등이 많이 다릅니다. 뉴욕에서 경제환경이 열악한 브롱크스 출신인 그녀는 기득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사로 주민들 사이에 인기도 높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여서 독선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해 보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