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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종교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수많은 사람이 종교를 통해 삶의 위안을 얻고 있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이 종교 때문에 삶의 파탄을 겪고 있다. 굳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뉴스에서 접하는 충돌과 분쟁의 상당 부분이 종교 간의 갈등이다. 그러한 갈등은 가까이는 이웃 간의 화합을 저해할 뿐 아니라, 심지어 대량살상을 야기하고 국제난민의 발생을 초래한다. 그 원인이 종교라기보다는 종교로 포장된 정치적이거나 기타의 세속적인 욕망에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종교가 악용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수많은 종교 구성원이 그러한 갈등의 프레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할 수 없다. 망명 티베트의 지도자를 넘어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을 통해 “종교는 더이상 미래를 이끌 수 없다. 이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불교라는 종교의 지도자인 그가 종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달라이 라마의 과감함과 솔직성이 있으며, 그 인격의 위대함이 있다. 종교가 아니라 특정 단체의 지도자라고 해도 그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한계를 넘어선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달라이 라마가 ‘종교를 넘어’라고 주장한 것이 종교를 무시하거나 인류에 대한 종교의 기여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역할을 지구촌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그 개별성으로 인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재설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종교와 보편적 도덕을 분리하자는 제안에서 뚜렷해진다. 개별 종교는 더이상 그 자체로는 보편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자체의 형이상학적 입장에 입각해 도덕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이제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모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도덕의 확립을 통한 지구촌 인류공동체의 형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그 보편적 도덕에 대하여 현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현세적으로’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알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세속적 가치를 추종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그의 책 후반부는 불교적인 도덕을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덕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곧, 윤회나 업 등 현대적 합리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보편적 지성에 호소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다른 종교전통을 지닌 사람들에게도 불교로 개종하거나 불교적인 내용을 어렵게 배우려 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친숙한 전통을 소중히 하라고 이야기한다.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을 통해 인간적 경험과 심리학을 비롯한 최신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활용한다. 그는 권위적인 종교지도자나 난해한 사실을 늘어놓는 학자가 아니라 누구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논의를 전개하는 현명하고 합리적 대화자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말 번역도 깔끔하고, 친절하면서도 간명한 역자 주는 이 책을 더욱 편히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류제동 성공회대 연구교수}

“국산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 같아 요즘 살맛이 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들고 다니는 ‘타조 백’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던 한 제조업체의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조윤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은 “국산 제품은 맞지만 이 브랜드는 아니다”라고 해명자료를 냈지만, 유명 인사의 해외 명품만 회자되던 인터넷 공간에서 신선한 사건임은 틀림없었다. 국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일까. 박 당선인이 취임식 때 입을 의상부터 액세서리까지 관심을 끈다. 국제 무대에서 패션은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 돼 왔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1997∼2001년 재직)는 외교협상 무대에서 벌, 나비, 거미, 악어 모양 등 200여 개의 브로치를 활용했던 ‘브로치 외교’로 유명했다. 미셸 오바마 미 대통령 부인은 서민들이 즐겨 입는 중저가 기성복 브랜드를 잘 소화해내고, 영국의 세손빈 케이트 미들턴도 자국 디자이너의 제품을 세계에 알리는 패션 아이콘으로 활약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제1비서 김정은의 부인인 이설주가 공식 석상에 입고 나오는 짧은 스커트와 구두, 명품백은 평양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듯 정치 지도자에겐 직접적인 연설보다는 패션이나 제스처, 유머와 같은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대중적 이미지를 높이는 데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대통령이 읽는 책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 위에 넌지시 책을 놓아둠으로써 미디어와 지식인층, 대중과 폭넓게 소통하곤 했다. 대통령이 읽는 책에는 단기적 현안보다는 자신이 지향하는 나라에 대한 비전과 중요한 정책의 통찰이 담겨 있을 때가 많다. 또한 미묘한 관점의 변화를 전달할 때도 안성맞춤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건강보험 개혁 논쟁 과정에서 “우리는 한 세기 동안 건강보험 문제를 얘기해 왔다. 나는 지금 (건강보험 개혁의 선구자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전기를 읽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책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신의 노력이 ‘역사와의 대화’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 당선인은 자전 에세이에서 20대에 부모를 잃고 난 뒤 ‘열국지’ ‘중국철학사’ ‘로마사 논고’ ‘인간석가’ ‘법구경’ 등 동서양 철학과 경전을 탐독하며 내면을 성찰했던 독서 편력을 자세히 소개했다. 인수위원회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출판계 대표를 불러서 현안을 들었던 것도 출판계에선 처음 있는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자신의 의상이 국내 어느 디자이너의 브랜드라고 확인해 준 적이 없듯이, 정치활동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책을 인용해 본 사례가 매우 적다. 대통령이 옷과 책을 정치에 활용하는 것은 꼭 출판계, 패션업계의 활성화를 위한 건 아니다. 이는 앞뒤가 꽉 막힌 위기의 순간에 국민과 소통의 활로를 뚫는 요긴한 수단이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2007년 8월의 일이다. 실크로드 탐사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 비행기를 탔는데 승무원이 물었다. “이 주변에 무슨 유명한 관광지가 있나요. 여기 올 때마다 선생님처럼 배낭을 메신 여행객이 많아서요.” 나는 신장(新疆)이 실크로드 핵심지역이며 여기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실크로드 탐방객일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인사치레인지 알 수 없지만 승무원은 자신도 꼭 실크로드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지나갔다. 나는 처음에 굉장히 이상했다. 손님들 모시고 신장을 오가는 승무원이 이곳 사정을 그렇게도 모르나. 항공사에서는 이런 교육도 안 하나. 그러나 자리에 앉아 생각해보니 그 승무원이 이해가 됐다. 배우지 않아서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모두 실크로드를 배운다. 단 학교에서 배우는 실크로드는 모두 옛 이야기다. 그곳이 현재 어디인지 지금 사정은 어떤지는 관심 밖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실크로드 관련 전문서적과 교양서도 다르지 않다. 서역, 장건, 석굴사원, 사람과 상품과 종교가 오갔던 길, 이 길이 한반도까지 이어진다는 것 등 천편일률적이다. 반면에 일부 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은 주로 신장의 환경문제와 민족분규를 이야기한다. 어떤 역사 과정을 거쳐 현재처럼 환경이 파괴되고 민족분규가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원적 설명은 하지 않고 현상만 이야기한다. 이런 접근은 신장의 현재 상황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방해함은 물론이고 종종 심각한 과장을 불러온다. 대표적 사례가 베이징 올림픽 전 발생한 폭탄테러와 2009년 7∼8월에 일어난 위구르족과 한족의 폭력충돌이다. 당시 인터넷과 신문 방송에는 사진자료와 함께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어디에도 사건 현장이 문명의 십자로인 실크로드의 현장이라는 설명은 없다. 이는 실크로드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현재 문제에 무지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실크로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현재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현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과거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장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책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실크로드와 현대 신장이 별개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이 문제를 해결할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미국 조지타운대 제임스 밀워드 교수다. 그는 청대 중앙아시아 변경 문제에 관한 현존 최고의 학자다. 저자는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1978년부터 이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의 교과서가 될 만하다. 교통의 요충지, 문명의 십자로로서 신장의 지리적 위치와 자연환경, 그 안에서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저자는 치밀한 고증과 요령 있는 설명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간다. 이 책을 받고 누구보다도 반가워한 사람은 필자다. 사연이 있다. 원서가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즉시 주문하여 번역을 결심했지만 차일피일 마루다 번역본을 받아보게 됐다. 후회와 반가움이 겹쳤다. 좋은 책을 내손으로 번역해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그래도 누군가 해서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베이징 출장 중 꼬박 이틀을 투자하여 완독했다. 먼 옛날 이 땅에서 살다간 누란왕국의 미녀, 이 땅을 여행한 장건, 이 땅을 침략한 유목민, 이 땅을 거점으로 장사를 한 소그드인, 이 땅을 신장으로 만든 건륭황제 그리고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위구르인과 한족 중국인의 이야기 등 신장의 과거와 현재가 그림처럼 그려진다.이평래 한국외국어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1, 2권 합쳐 800쪽이 넘는 이 책에는 각주가 하나도 없다. 중국의 역사와 외교, 문화와 관련된 묵직한 내용을 담았는데도 말이다. 36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1992년 한중수교부터 6자회담까지 오로지 중국문제에만 매달려온 최장수 주중 대사인 저자는 “자료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고 나눈 대화의 기록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그래서 각주가 없다”고 말했다. 김 전 대사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1년 대사로 발령받아 노무현 정부 5년을 거쳐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까지 6년 반을 근무했다. 한중수교 협상의 주역이었던 그는 황장엽 망명사건, 북한 핵문제, 탈북자 문제, 마늘 분쟁, 중국산 김치파동 등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중국 문화에 대한 지식과 중국 내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수많은 외교문제를 풀어왔다. 이 책은 외교관의 시각에서 바라본 중국이다. 1권인 ‘떠오르는 용’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이다. 집필 기간은 1994년부터 8년. 중국어로 먼저 출간돼 런민(人民)일보에 소개된 후 중국의 최고지도자들도 많이 읽는 책이 됐다. 2권 ‘영원한 이웃, 끝없는 도전’에는 저자가 한중관계의 외교 현장에서 겪었던 생생한 비화가 담겨 있다. 책에는 외교관이나 중국 관련 연구자뿐 아니라 사업을 하는 직장인, 유학생까지 참고할 만한 조언이 많다. 저자는 책의 곳곳에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중국인들이 항상 느리다고 생각하지 말라’ ‘무조건 높은 사람만 만나려고 하지 말라’ ‘인맥은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잡는 것이다’ 등 중국인을 이해하는 법을 적어놓았다. 그는 “중국에는 13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며 “몇 명의 중국인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지고 함부로 중국인 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감정을 자극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익에도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국의 스타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가 신작 ‘생명의 경이(Wonders of Life)’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전작 ‘우주의 경이’ ‘태양계의 경이’와 마찬가지로 BBC에서 먼저 방영돼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브라이언 콕스는 ‘양자 우주’를 비롯한 여러 대중 과학서를 저술한 작가이자 교수이다. 그는 또 데이비드 애튼버러와 패트릭 무어에 이어 과학 TV프로그램의 진행을 책임질 BBC의 차세대 스타로 꼽힌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 콕스의 신작 ‘생명의 경이’는 지난달 24일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두 권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국 작가 앤드루 코언과 함께 저술한 이 작품에서 콕스는 생명의 근원과 진화론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생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끝나는가? 왜 몇몇 동물들은 특정한 방식으로 진화했는가? 콕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식하는 ‘사마귀새우’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사마귀새우는 만 개가 넘는 육각형 렌즈로 구성된 눈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섬세하고 뛰어난 시력이라고 한다. 물론 사마귀새우가 처음부터 뛰어난 시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콕스를 매료시킨 것은 이 엄청난 시력을 사마귀새우에게 안겨준 진화의 법칙이었다. 그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10억 종류 이상의 생명이 존재하지만 생명을 정의하는 법칙들은 의외로 몇 가지 단순하고도 핵심적인 것에 그친다. 그는 바깥세상을 탐지하고, 이에 반응하려는 감각이 바로 생명 진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콕스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유카탄 반도의 지하 담수 동굴과 마다가스카르의 외딴 섬 등 전 세계의 오지들을 여행한다. 다양한 장소들에서 수집한 독특한 동물들은 그가 주장하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마침내 ‘인간의 진화’에 도달한 그는 인간의 진화 또한 이 ‘감각론’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 많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간의 반응 감각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생명의 진화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진화의 끝, 즉 생명의 마지막은 어떻게 찾아오는 것일까? ‘과학서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는 법칙을 깨고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는 작가는 이번에도 새로운 진화론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진보진영도 이제는 북한에 핵무기 개발과 정치범수용소의 문제점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보수층을 향해 남북한 화해협력과 경제교류를 요구하려면 말이죠.”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멤버였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53)이 최근 책 ‘대한민국 진화론’(미래를소유한사람들·사진)을 펴냈다. 그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제기해 1년 징역형을 받고 지난해 12월 25일 만기 출소했다.정 전 의원은 지난 대선 이후 갈 길을 잃어버린 진보진영에 “‘멘붕’도 사치다. 좌절은 개나 줘버려라”며 ‘돌직구’를 던졌다. 또 “‘나꼼수’는 다시 하지 않겠다”며 “가족과 함께 경북 봉화의 비나리마을로 내려가 도시와 농촌을 연계하는 생활협동조합형 시민사회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인은 무엇인가.“민주당은 단일화만 이루면 이길 수 있다는 정치공학적 안일함에 빠져 있었다. 상대방은 권력의 탐욕에 빠진 보수세력일 뿐이라고 우습게 봤다. 그러나 막상 선거를 치러 보니 민주당은 준비가 부족했다. 정권을 얻겠다는 절실함 간절함 측면에서 새누리당에 패배했다.”―박근혜 정부가 잘하리라고 보는가.“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야당도 국민행복을 놓고 여당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대한민국 진화론’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미국이나 유럽은 좌우 진영이 정책을 주고받으며 한 단계씩 진화해왔다. 우리나라의 보수 진보도 상대편을 타도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보수층이 남북화해,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해 들어주길 원한다면 진보진영도 북한의 핵개발과 인권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북한 핵개발은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지 보수의 담론이 아니라고 본다.”현란한 입담과 함께 모든 말은 자기자랑으로 끝난다고 해서 ‘깔때기’란 별명을 가진 그는 1년의 수감생활 탓인지 훨씬 진지해진 분위기였다. ‘나꼼수’에 대해서도 “2011년 10·26 재·보궐선거 이후 재미만 추구했을 뿐 콘텐츠 업그레이드에 실패했다”며 “멤버들이 콘서트하고 팬덤에 빠지면서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어준 주진우 씨 등 나꼼수 멤버들이 대선 직후 출국해 귀국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무슨 판단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쫄지 말고 돌아오라”고 말했다.그는 민주당에도 ‘자기부정’을 통해 거듭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의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전제 아래 28명에 이르는 민주당 3선 이상 중진의원이 과감히 지역구를 참신한 인물들에게 양보하고 대구와 경북, 부산으로 지역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봄가을은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만 남을 것 같은 시절입니다. 유난히 춥고 눈 많은 올겨울, 반가운 친구처럼 찾아온 책이 있습니다. 책 속 겨울은 그저 지나가는 계절이 아닙니다. 반갑게 만났다 헤어지는 친구이며, 떠났다가도 세 계절 지나 다시 만날 친구입니다. 물론 겨울을 친구 삼아 놀던 아이는 점점 자라겠지만요.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겨울이 아이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아이 손엔 방패연, 뒤서거니 앞서거니 강아지도 따라 갑니다. 아이는 겨울이 안내하는 들판을 지나 숲을 찾고 언덕에 올라 바다와 마을을 봅니다. 겨울이 불러다 준 바람을 타고 방패연은 하늘 높이 오릅니다. 나붓나붓 내려 쌓인 눈 위로 썰매도 타고, 챙챙 고드름 칼싸움도 합니다. 강아지도 신이 나서 뛰어놉니다. 겨울과 아이가 눈사람을 만듭니다. 둘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어요. 더, 더 놀고만 싶은 아이는 새로 사귄 친구를 자기 집 안으로 초대합니다. 하지만 겨울은 철모르는 친구가 아닙니다. 내일 또 만나 놀자며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내지요. 한밤중에 자다 깬 아이는 달빛 아래 온통 반짝이는 겨울과 희고 고요한 세상을 봅니다. 겨울은 생각만큼 빨리 떠나진 않을 것 같았지요. 2002년 ‘가을을 만났어요’가 출간되었을 때 아, 이건 사계절 시리즈로 나오겠거니 했지만 10년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10년, 잊을 만한 때 이 책 ‘겨울을 만났어요’가 나왔습니다. ‘그렇지! 이건 시리즈였어!’ 내심 반가웠답니다. 글은 가을과 마찬가지로 이미애 작가가 썼습니다. 조금 긴 한 편의 시와 같은 글입니다. 겨울이라는 친구의 서늘한 눈빛과 짓궂은 장난기를 노련한 그림 작가 이종미가 차분한 색감과 풍부한 앵글로 벼려냈습니다. 겨울 이야기지만 따뜻합니다. 난방이 충분해 한겨울 칼바람이 아프기만 한 아이들은 진짜 겨울을 만날 기회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겐 충분한 공감이 될 것입니다. 떠나보내기 전에 우리가 잠시 잊었던 그 ‘겨울’을 만나세요.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에너지와 국제정치, 지정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대니얼 예긴은 20년 전 ‘황금의 샘(The Prize)’이라는 책으로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는 에너지 미래학자다. 60대 후반 원숙함의 경지에 접어든 저자의 신작(원제 ‘The Quest’)은 역시 문제를 보는 깊이와 넓이에서 정점에 이른 석학의 면모가 엿보인다. 하지만 원숙함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저자가 여전히 에너지 분야의 최전선에서 상충된 가치를 지닌 매우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명쾌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견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가령 석유 문제와 관련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그는 이 책에서 석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의식의 산물인 ‘피크 오일(Peak Oil)’ 이론의 한계와 회피 방안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피크 오일이란 석유 생산의 정점을 의미하며, 동시에 석유 생산의 감소가 시작되는 지점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에너지 학자들 사이에서 그 존재 여부에 대한 많은 논란을 야기할 뿐 아니라 기업전략과 국가정책 형성에서 혼란과 오류의 근원이 되어 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과거 주장을 번복하면서 지금은 ‘피크 오일’ 이론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대신 그는 ‘고원(高原·plateau) 이론’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이 이론은 당분간 석유 생산이 늘어날 것이며, 언젠가 그 생산이 정점에 달하더라도 마치 고원 지대처럼 상당 기간 평탄면을 유지하다가 감소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세계의 주목을 끈 바 있는 셰일가스(퇴적암인 셰일층에 매장돼 있는 천연가스)와 전기차,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현황을 설명하고,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역시 ‘에너지, 안보, 그리고 현대 세계의 재편’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의 미덕은 에너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포괄적인 설명과 개별 사실들의 역동적인 네트워킹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에너지의 위기라고 하면 자원에 대한 물리적 고갈을 떠올린다. 특히 화석연료에 관한 전통적인 위기 관념에서 이러한 통념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에너지의 위기라는 관념 자체를 포괄적이고 본질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과거의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가 경험했던 에너지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물리적 위기’가 아니라 ‘지상의 위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가 말하는 지상의 위험이란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다양한 지정학적 변수들을 일컫는 것이다. 1, 2차 오일쇼크나 걸프 전쟁을 떠올려 보면 저자의 관점은 쉽게 이해된다. 또한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에너지 자원이 국제 금융 시장에서 파생상품의 주된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도 지상의 위험에 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의 물리적 위기는 기술의 혁신을 통해 줄곧 예기치 않게(기술 혁신을 주도한 사람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원대한 야망은 결코 예기치 않은 것이라 할 수 없지만) 해결됐으며, 최근에 천연가스 분야에서 ‘진정한 혁신’으로 평가되는 셰일가스의 경우도 물리적 위기에 대한 인류의 문제 해결 능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석유의 역사를 설명하고 셰일가스의 현황을 분석했으며,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조망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 이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에너지 자원을 말하고 있다. 바로 ‘에너지 이용 효율성(Efficiency)’이라는 에너지 자원이다. 그 어떤 에너지 자원보다 중요하고 생태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에너지 자원은 바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생활 방식과 기술이라는 점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가치관의 변화와 기술 혁신의 진정한 융합을 의미하는 이용 효율성 개념은 극적 반전 효과를 거두며 둔중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올겨울 유난히 추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연일 정전 위험과 석유 값 상승을 경고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에너지 자원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박물관에는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의 조각상이 있다. 카이로스는 무성한 앞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앞 머리카락을 쉽게 붙잡을 수 있지만 그냥 지나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뒷머리가 없는 대머리인 데다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날을 들고 있어 정확한 판단과 빠른 결단을 요구한다. 그는 ‘기회의 신’이다. 이 책은 한국 일본 미국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창업주 9인의 이야기를 담은 경영에세이다. 그들이 어디서 기회를 찾았고, 어떻게 그 기회를 붙잡고 도전했는지 방대한 자료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이번에 나온 1권 ‘누구의 인생도 닮지 마라’는 한국의 1세대 기업가인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의 삶을 조명했다. 젊은 시절 현실을 불평하던 가출 소년, 중도 포기가 다반사였던 부적응아, 몰락해가는 선비 집안의 아들이었던 그들이 어떻게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기회를 모색해왔는지 추적한다. 2권은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 이나모리 가즈오를, 3권은 미국의 헨리 포드, 존 데이비슨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를 다룰 예정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선생님 돌아오실 건가요?(왕정중 지음·다섯수레)=1999년 대만을 뒤흔들었던 9·21대지진 당시 군복무 중이던 저자는 “선생님 제대 후에도 돌아오실 건가요”라는 학생들의 말에 도시에서의 삶을 던지고 인생을 바꾼다. 두 번이나 대만 교사 대상을 수상한 산간벽지 시골학교 선생님의 감동적인 이야기. 1만3000원.○ 정치심리학(데이비드 패트릭 호튼 지음·사람의무늬)=심리학이 정치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인 정치심리학을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입문서. 투표행동, 집단학살, 인종차별, 테러리즘 등을 심리학으로 살펴본다. 2만 원. ○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매튜 A 크렌슨·벤저민 긴스버그 지음·후마니타스)=미국의 정부와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민주주의를 개인민주주의로 바꾸어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 책. 2만3000원.○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조선의 정체성(박석희 최식원 황금희 지음·미다스북스)=조선시대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세종의 일상을 이야기하듯 풀어내며 조선의 역사를 되짚는다. 2만5000원.○ 마르크스의 사랑(피에르 뒤랑 지음·두레)=서거 130년을 맞은 카를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면을 새롭게 조명했다. 특히 부인과 딸에 대한 사랑, 친구 지인들과 나눈 우정에 초점을 맞췄다. 1만3000원.○ 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앤 커소이스·존 도커 지음·작가정신)=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를 비교 분석하는 데서 시작해 역사와 역사연구에 대한 상반된 담론들을 방대하게 전개한다. 2만8000원. ○ 창밖 뉴욕(마테오 페리콜리 지음·마음산책)=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무용가 영화감독 사진작가 소설가 등 뉴요커 63명의 창밖 풍경을 그렸다. 1만5000원. ○ 히말라야 유랑(이훈구 지음·사진예술사)=X-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원정대와 함께 2011년 8월부터 6개월 동안 인도 네팔 파키스탄에 머물며 찍은 사진집. 4만 원.○ 힐링의 마케팅(이진우 지음·문학의전당)=현대자동차에서 30년 동안 근무했던 저자가 직원들에게 매일 아침 교육용 자료로 준비했던 마음 치유의 글 모음. 1만2000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승리했다. 고전연구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바보야, 문제는 몸이야!”라고 외친다. 저자는 스마트폰 열풍, 성형천국, 동안열풍, 성조숙증, 폐경, 공개 프러포즈, 꽃미남 열풍 등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몸에 대한 인식을 경쾌하게 꼬집는다. 손가락 하나만으로 모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 스마트폰의 불빛이 사람들의 ‘양기(陽氣)’를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의 몸은 왜 필요한 것일까? 저자는 21세기 인문학의 화두는 ‘몸과 우주’라고 단언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던 몸에 대한 깨달음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령 요즘 ‘미시족’ 엄마들은 아이를 등에 업지 않고 앞으로 안아서 키운다. 그러나 아이를 안고 있으면 엄마의 심장과 아이의 심장이 마주 보게 돼 맞불이 붙는 형국이 된다. 반면 엄마의 등에는 족태양방광경이라는 경맥이 지나가기 때문에 서늘하다. 아이는 엄마의 등에서 심장의 양기를 차분하게 수렴하고, 엄마의 등 뒤에서 흥미진진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 또한 남의 시선을 의식한 ‘공개 애정표현’의 남발이 왜 우리 몸의 ‘정(精)’을 메마르게 하는지, 여성의 폐경이 왜 아쉬움이 아니라 축복인지 설명하는 부분도 신선하다. 책은 저자의 전작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그린비),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북드라망)에 이은 3번째 ‘동의보감’ 관련 책이다. 의역학(醫易學)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비평 에세이로 지난해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을 묶은 것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 쪽이었다. 시위대가 운집해 있던 그곳에서 은퇴한 약사가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테네에 도착해 공항버스에서 막 짐을 내리려는 순간, 아테네 민주주의 심장인 신타그마 광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경제전문가 작가 방송인으로 활약해온 박경철 씨(49·안동신세계연합의원 원장)가 그리스 문명의 현장을 답사한 책을 펴냈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와 전국을 순회하며 ‘청춘콘서트’를 했던 그는 2011년 겨울부터 그리스,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이집트 등을 떠돌았다. 그의 책은 10권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리스에 대해 두 가지 관심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신화, 올림포스, 하얀 대리석의 나라라는 몽환적 이미지이고, 또 하나는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비탄과 고통의 나라입니다.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 속에는 엄청난 공백이 있습니다.” 그의 책은 하얀 대리석 돌무더기로 남아 있는 신전이 화려한 빛깔로 채색돼 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비잔틴 시대, 19세기 터키 지배, 20세기 독립전쟁, 최근의 경제위기까지 그리스의 역사를 넘나들며 그리스 문명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간다. 그는 지난해 여름 그리스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법안이 통과되던 날에도 그리스 국회의사당 앞 10만여 명의 시위대 중에 맨 앞줄에 서 있었다. 그는 “외신에서 폭동사태를 묘사한 ‘불타는 그리스’의 이미지와는 달랐다”고 기억했다. 수천 년 이어져온 그리스의 ‘공동체 정신’이 위기 속에서도 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해발 5000m가 넘는 수백 개의 산 속에 200여 개의 폴리스 공동체가 발전해온 나라입니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올리브 농장, 친구의 레스토랑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서 보듯 그리스에는 지금도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흔해요. 그리스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낮을 정도로 개인의 고립무원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어요.” 박 씨는 이런 그리스인의 태도를 폭넓은 수용성이라는 그리스 문명의 본질에서 찾았다. 20세기 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미국 중국처럼 세계를 힘으로 제패하는 패권주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그리스는 다르다는 얘기였다. “그리스도 지중해를 중심으로 ‘마그나 그라키아’라는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했어요. 그러나 착취와 약탈 대신 문명의 교류를 추구했어요.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을 점령한 후 그리스인의 군복을 벗고 페르시아 옷을 입을 정도였죠. 우리나라까지 전파된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는 착취와 약탈로 이룰 수 있는 문화가 아닙니다. 21세기형 ‘융합과 수용’의 문화지요.” 박 씨는 지난 대선에서 벌어진 세대 및 이념갈등에 대해 “조급하게 비난하기보다는 서로 상대방의 선택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마음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에서는 세대갈등이 거의 없어요. 윗세대는 지혜와 문화를 전달해주는 스승으로 존중되죠. 그리스는 어릴 적부터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배웁니다. 반면 우리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요. 타인을 자꾸만 경쟁상대로 보니까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죠. 넘어진 사람에게 손길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승화’시켜 주는 적극적인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때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안녕하세요. 제 아버님께서 주신 한문 액자가 집에 걸려 있지만 글 내용을 알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딸들과 아내에게 설명해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철범 씨·59) 결혼하면서 받은 액자, 집안 대대로 내려온 병풍과 족보…. 걸어놓고 바라보는 것까지는 좋지만 정작 그 내용을 모를 때가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고전 자문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2008년 시작된 이 서비스는 매년 1000여 건씩 의뢰가 들어오다 지난해에는 1600여 건으로 크게 늘었다. 번역원은 일반인이 글씨를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ask.itkc.or.kr)으로 보내면 번역해준다. 두세 쪽 정도는 무료이고 양이 많으면 약간의 수수료를 받는다. 지난해 가을 광주에 사는 채영옥 씨(73)는 “고향인 담양의 효자각에 걸려 있는 18대조 할아버지의 효행 내용을 알고 싶다”며 ‘효자평강채공정려기(孝子平康蔡公旌閭記)’라는 제목의 현판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왔다. ‘함께 부모의 묘를 지키던 호랑이가 꿈에 나타나 구해달라고 해 순창 범칫말에 가서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줬다’는 내용이었다. 번역원은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조선 중종 때 관련 기록도 찾아 보내줬다. 벼루 도자기 같은 일상용품에 새겨진 글씨를 알고 싶다는 내용도 많다. 한 시민이 보내 온 밥그릇 뚜껑에는 ‘부(富) 귀(貴) 다남(多男)’이란 글자가 있었다. 번역원은 “밥을 먹으면서도 ‘부자 되고, 높은 자리 오르고, 자식 많이 낳기’를 기원한 조상들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퇴계 이황의 친필, 세종시대 과거급제 합격증처럼 문화재급 보물로 추정되는 것도 있었다. 노성두 고전번역원 연구원(50)은 “소장품의 진품 여부는 사진을 통해 알 수 없지만 일상 속에서 고전의 향기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은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은 백만장자 장애인과 그를 돌보는 흑인 청년의 유쾌한 우정을 그렸다. 어느 날 백만장자가 흰 캔버스에 빨간색 물감이 흩뿌려진 작품을 수만 유로에 사들이는 걸 보고, 흑인 청년은 집으로 돌아와 파란색 물감으로 대충 붓질해 직접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촉망받는 현대작가의 작품’으로 포장돼 또 다른 부자에게 고가에 팔려나간다. 숙련된 기교보다는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현대미술을 풍자한 영화장면이다. 이처럼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프로를 위협하는 아마추어가 곳곳에서 생겨난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합성한 ‘프로추어(Proteur)’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최근 가요계에서도 이러한 논쟁이 뜨겁다. MBC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3개월 동안 컴퓨터로 작곡을 배운 개그맨 박명수가 작곡하고 정형돈이 부른 ‘강북멋쟁이’가 소녀시대, 백지영 같은 톱가수들을 제치고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가요계는 이러한 대중의 반응에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의 인기프로그램에 의한 음원시장 교란이 한류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가요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무엇보다 대중이 선택한 결과를 가요계가 무슨 근거로 ‘값싼 취향’으로 몰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음악성이 높다고 해서 꼭 유행가가 되는 건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벌써 ‘강북멋쟁이’를 패러디한 UCC 비디오가 넘쳐난다. 박명수는 본의 아니게 ‘강북멋쟁이’를 통해 기존 가요계의 권위를 깨부수는 통쾌한 풍자에 성공했다. 그는 반복되는 리듬, 일렉트릭 사운드, 후크송 후렴구를 컴퓨터로 배합해 만든 ‘인스턴트 음악’쯤은 개그맨도 몇 주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공장처럼 찍어내는 천편일률적인 댄스가요 시장을 이끌어 온 대형 기획사들은 외부 탓을 하기보다 먼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대중의 자연스러운 선택을 비난하는 시각은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이후 일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이런 천박한 수준의 국민들이 정말 싫다” “이민가고 싶다”는 글이 쏟아졌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인기는 “선거 후 집단 우울증에 빠진 48%에 대한 위로”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대선 결과를 놓고 원인을 분석하거나 스스로를 성찰하기보다 아직도 재검표 주장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복잡계 경제학자인 존 캐스티는 ‘대중의 직관’(반비)이란 책에서 “전문가들의 합리적 예측보다는 대중이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신념이나 느낌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더 정확하게 바라본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스마트 대중’의 시대, 프로나 엘리트가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시각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혹시 식민지 시대 일제가 “민도(民度)가 뒤떨어진 조선 민중”이라고 폄훼한 시각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려는 데 따른 영토분쟁은 17세기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현재의 대한민국보다 훨씬 잘 대응했어요. 이는 ‘죽도기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68·사진)가 조선 숙종 재임기인 17세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 쓰시마(對馬) 현의 침탈계획 전모를 담은 문서총집 ‘죽도기사(竹島紀事·한국학술정보)’ 5권을 13권으로 편역해 냈다. ‘죽도기사’에는 조선인 어부 안용복 납치사건을 계기로 쓰시마 현이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문제를 제기했던 1693∼1699년 조선과 교류한 외교문서, 내부 작전회의, 통역관 회의 내용이 모두 들어 있다. 당시 조선은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 근거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증명했고, 에도 막부는 결국 “울릉도(독도)에는 일본인이 사는 것도 아니고 일본이 취한 것도 아니므로 일본인이 건너다니면 안 된다”는 ‘다케시마도해금지령’을 내렸다. “죽도기사는 17세기 말 안용복이 일본에 가서 활동한 내용을 날짜별로 기록한 대단히 중요한 자료입니다. 당시 일본인의 독도에 대한 인식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1차 자료지요.”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7∼8세기 일본의 고대사를 주로 연구해온 권 교수는 2006년부터 17세기 독도와 관련된 일본의 고문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자료들은 행서나 초서로 돼 있어 국내에는 제대로 번역돼 소개되지 못했다. 권 교수는 일본의 재야사학자 오니시 도시테루(大西俊輝·67) 박사와 3년간 협업한 끝에 ‘죽도기사’를 한국어와 현대 일본어로 편역 출간했다. 그는 “한국 학자들은 일본 사료 전체를 읽기보다는 일본 학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해독한 자료나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이 인용한 것을 재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다 보니 전체 문맥과는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하고, 일본 학자들로부터 일본 자료를 보지 않는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권 교수는 “일본의 사료를 잘 분석해보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스스로 모순되는 논리를 드러내는 대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법적인 논리로 풀려는 이유는 국제법 논쟁에서는 양측 당사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상황논리를 잘 전개하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도는 기본적으로 역사문제입니다. 사료를 통해 역사적 정통성을 밝혀내면 한국 땅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음모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하드커버로 된 두툼한 경영학 책이 하룻밤 새 읽혔다. 스토리의 힘이었다. 이 책에는 숫자나 도표, 어려운 개념용어 대신 100편이 넘는 스토리가 등장한다. 스토리는 단순한 ‘사례’가 아니다. 일정한 서사구조를 갖추고 감동과 은유, 반전과 놀라움을 통해 마지막 순간에 깨달음을 주는 내러티브다. 스토리텔링은 인류 역사에서 리더십의 요체였다. 고대의 샤먼부터 중세의 음유시인,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영웅 전설까지….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은 청중이 얼마나 잘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를 위해 노래의 리듬, 시의 운율, 이야기 구조가 활용됐다. 그러나 요즘엔 이야기의 자리를 공식 보고서, 메모, 정책 매뉴얼이 대신하고 있다. 회의에선 얼마나 따분하고, 졸리고, 감동 없는 말들이 오고 가는가.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당장 스토리텔링을 시작하라’는 게 이 책의 조언이다. 저자는 글로벌기업 프록터앤드갬블(P&G)에서 20년간 근무한 리더십 및 커뮤니케이션 교육 전문가. 그는 최고경영자(CEO) 앞에서의 첫 프레젠테이션 경험을 들려준다. 그는 심혈을 다해 자료를 준비했지만 앨런 래플리 P&G 회장은 발표를 듣는 20분간 스크린을 등지고 앉아 한 번도 슬라이드 화면을 보지 않았다. 대신 발표자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는 깨달았다. “회장은 중요한 것은 내 입에서 나오지, 스크린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스토리텔링이란 공식회의에서건 복도에서의 잡담이건, 아니면 수백 명 앞에서 하는 연설이건 일대일 토론이건 언제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책에는 스토리를 통해 어떻게 변화를 위한 비전을 수립하고, 동기와 영감을 주며, 기업문화를 바꿔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컨설턴트를 지망하는 대학생들이 지방법원장으로부터 과제를 의뢰받았다. 배심원단의 심의 과정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조사 끝에 직사각형 테이블이 놓인 배심원 심의실에서는 상좌에 앉은 배심원이 대화를 지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생들은 배심원들이 둥근 테이블에 앉아야 활발한 토론과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조사 결과를 본 지방법원장은 만족해하며 다음과 같은 지시를 모든 법원에 내렸다. ‘즉시 배심원실에 있는 둥근 테이블을 모두 제거하라. 그 자리에 직사각형 테이블을 놓으라.’” 이 스토리는 반전의 결말로 끝난다. 법원장의 진짜 목적은 배심원들의 심의 과정이 활기를 띠지 못하도록 해 재판 심리가 지연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대학생들은 그해 리포트 점수로 A를 받았지만, 자신들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신입 조사원들에게 이 스토리를 말하며 프로젝트에 착수하기 전 명확한 ‘목표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친다”고 말한다. 백 마디의 지침보다 스토리 한 편은 잊히지 않는 생생한 교훈을 던져준다. 스토리텔링은 일상생활에서도 요긴한 기술이다. 저자는 스토리텔링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나만의 스토리를 수집하라’고 조언한다. 책이나 인터넷에서도 스토리를 찾을 수 있지만 역시 가장 공감을 얻는 스토리는 내 인생의 경험담이다. 책의 말미에 주제별로 스토리를 분류하고 활용하는 법을 담은 부록도 쓸 만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오늘 소개하는 책은 동유럽에 있는 체코의 동화입니다. 이 나라의 동화가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외국 동화가 많이 번역되어 책으로 나오지만, 의외로 그 대상이 되는 나라가 다양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영미 문화권과 일본의 동화가 대부분이고 서유럽 몇 나라의 동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출간은 참 반가운 일입니다. ‘바츨라프 르제자치’라는 작가의 이름이나 ‘프란티크’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조금 낯설지만, 그것 또한 새로운 나라의 문학작품을 읽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일 것입니다. 먼 나라 어느 골목길의 모습은 우리 이웃이 사는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힘 있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 그 사이의 부당함에 속상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프란티크는 부당함에 속상해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골목길 사람들의 떠들썩한 일상 속에서 ‘정의’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이 나름의 정의를 실천하고, 주변의 어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든든하게 아이를 지지하는 과정이 작위적이지 않아서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책입니다. 외국 동화를 읽은 후에는 그 나라가 어디 있는지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문학작품을 통해 알게 됩니다. 그렇게 읽은 책의 나라를 찾아보다 보면 또 다른 나라의 책들도 궁금해지겠죠?○ 독후활동: 내가 읽은 책 지도에 표시하기준비물: 세계지도 전도(혹은 사회과부도에 나와 있는 세계지도 복사본), 사인펜 1. 세계지도 전도를 벽에 붙인다. 2. 이 책이 출간된 ‘체코’를 찾아 동그라미를 친다. 3. 체코 근처에 책 제목 ‘대장간 골목’을 써 넣는다.4. 다음에 외국의 동화나 그림책을 읽으면 그 나라와 책 제목을 표시한다. 5. 이렇게 1년 정도 표시하다 보면 책 읽기가 어느 나라에 편중되는지 짚어 볼 수 있다. 김혜원 어린이독서교육연구가}

‘레미제라블’처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꾸로 드라마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소설도 인기다. 지난해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월 초 출간 1주일 만에 2만 부나 팔려 나갔다. 21세기북스는 올해 드라마, 영화 콘텐츠를 소설로 만드는 전담팀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영화 개봉이나 드라마 종영에 맞춰 나오는 영상 소설의 작가는 누구일까. 원작 대본과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직접 소설화한 것일까? ‘피에타’ ‘반창꼬’ ‘돈 크라이 마미’ ‘써니’ ‘응답하라 1997’ ‘아이두 아이두’ 등 영화와 드라마 소설, 게임과 만화 스토리를 개발해 온 콘텐츠창작 그룹 ‘박이정’을 찾아 이 같은 궁금증을 해결했다. 서울 구로구 온수동의 한 빌라에 자리 잡은 ‘박이정’의 사무실은 벌집을 연상케 했다. 109m²(약 33평)의 공간에 상주 작가 10명의 집필공간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이야기 공장’이었다. 이들이 영화,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작업을 하는 기간은 평균 6주, 길어야 두 달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보통 서너 명이 한 팀이 돼 작업이 끝날 때까지 집에도 못 가고 밤샘작업에 매달린다. 특히 드라마는 ‘쪽대본’ 촬영 관행 탓에 작가도 ‘결말을 모른다’고 할 때가 있어서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 종영 전까지 책을 내야 하는 저희로서는 피가 마르죠. 작가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을 발휘해 보기도 하고, 인터넷 게시판 여론을 살펴보면서 소설로 창작해 냅니다. ‘연가시’의 경우 영화 속에서는 잘 이해가 안 됐던 생물학적 지식을 보충하는 등 캐릭터의 심리묘사, 시대고증, 배경지식 등을 보충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팀 작업이 필수입니다.”(양수연 작가·36) 새벽형, 달밤형 등 작가들의 집필 취향은 각각 다르지만, 작업용 컴퓨터는 꺼지는 법이 없다. 글을 쓰다 지친 사람들은 사무실 한쪽에 마련돼 있는 남녀별 2층 침대에서 쓰러져 잔다. 한여름엔 에어컨까지 돌려야 하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이 나와 한전 직원이 찾아온 적도 있다고 한다. ‘박이정’의 목정균 대표(36)는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비뢰도’(현재까지 총 29권)를 쓴 인기 무협소설 작가. 다른 작가들도 방지연(SF 판타지), 이금영(청소년물 및 게임 스토리), 방진하(역사물) 작가 등 각자 전문 분야가 있다. ‘박이정’(넓고 정밀하다는 뜻)이란 이름은 한자성어 ‘박이부정(博而不精)’에서 나온 말이다. “‘박이정’이 구로구에 자리 잡게 된 것은 부천(만화, 애니메이션 중심지)과 홍대(출판사가 많은 지역)의 중간에 있어서예요. 최근에 판교로 이사 간 구로디지털단지의 게임업체들도 주 고객이었고요.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작가는 24명이고, 게임 개발엔 수많은 인원이 참여합니다. 순수소설 창작은 혼자 하는 게 좋겠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원 소스 멀티 유스’ 콘텐츠 개발은 각 분야 전문가가 협동작업을 하는 게 ‘신속성’과 ‘퀄리티(질)’를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협업을 하지만, 영화 ‘피에타’의 경우는 황라현 작가가 두 달간 홀로 작업했다. 황 작가는 “‘피에타’가 취향에 맞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다”며 “청계천 뒷골목과 황학동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주인공들의 심리를 상상하며 소설로 재창작한 일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바쁜 가운데서도 가끔씩 택시 한 대에 가득 타고 심야영화를 보러 가는 ‘풀 택시 파티’를 연다. 만화스토리 전문 방지연 작가(35)는 “서른이 넘은 작가는 ‘감(感)’이 떨어지면 끝”이라며 “매달 100여 권의 신간을 구입하고, 베스트셀러 책은 물론이고 TV드라마 영화도 빼놓지 않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정건희 인턴기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 중국 일본 어린이 100명이 함께 그린 동화책 12권이 나왔다. 필자들은 모두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APCEIU)이 지난해 8월 경주에서 개최한 ‘한일중 어린이 동화교류 2012’ 참가자들이다. 일주일간 열린 이 행사의 주제는 ‘빛’이었다. 아이들은 10명씩 한 반을 이뤄 반별로 동화책 한 권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먼저 ‘빛’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스케치한 뒤 각각의 그림을 모아 어떻게 하나의 줄거리로 만들 수 있을지 통역을 통해 토론하며 이야기를 붙여갔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 중 ‘손큰이의 대모험’은 한쪽 팔이 유독 굵고 큰 사내아이 손큰이가 팔을 치료하기 위해 빛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줄거리. 이 이야기는 우연한 실수에서 비롯됐다. 한 어린이가 남자아이를 그리면서 실수로 팔을 너무 크게 그렸는데, 반 아이들이 이 캐릭터를 좋아해 만장일치로 동화책의 주인공 ‘손큰이’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작품 ‘희망의 빛으로’에서는 이 행사에 참가한 박경태 군(대구매곡초교 6학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빛’ 하면 떠오르는 것이 ‘어둠’이라고 대답한 경태 군에게 빛을 찾아주자는 의견이 모아져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장래 희망이 천문학자라고 밝힌 박 군은 이야기 속에서도 별을 관찰하며 빛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 이렇게 해서 ‘마음의 빛’ ‘희망을 찾아서’ ‘꿈이 가득한 우주’ ‘기묘한 달빛 여행’ ‘태양을 피하는 방법’ 등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은 동화책이 탄생했다. 삐뚤빼뚤한 손글씨와 그림체가 그대로 살아있는 책에는 한국어와 일본어, 중국어가 번갈아가며 적혀 있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 현에서 온 마쓰모토 아즈사 양은 “빛(光)이라는 단 한 글자의 단어인데, 모두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다르니까 재밌고 즐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전국공공도서관협회와 다문화가족 전문 여행사인 플라이어스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도서관과 다문화실에 기증할 외국 어린이 동화책을 모으기 위해 ‘지구촌 북크로싱’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해외 여행객들이 현지의 어린이 그림 동화책을 가져오면 5권 이내에서 가져온 권수만큼 국내 신간 동화책으로 바꿔준다. 정용선 플라이어스 대표는 “북크로싱 운동을 통해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한국 문화뿐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나라의 문화도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밝혔다. 1599-5663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527년에 사망한 마키아벨리는 죽은 지 40년쯤 지났을 때부터 이미 ‘공공의 적’으로 규정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권모술수와 이중 전략의 미덕을 찬양한 ‘악의 교사’로 규정했고, 독재자를 위한 지침서를 쓴 사악한 정치 이론가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정치공학적 시각이나 처세술 책으로 바라본 기존의 편견을 걷어낼 것을 주문한다. 그는 10여 년간 마키아벨리의 수많은 저작과 편지를 입체적으로 연구한 끝에 마키아벨리의 역사적, 인문학적 면모를 새롭게 재해석해냈다. 마키아벨리가 “철저하게 약자의 시선으로 권력의 속성을 파헤치고, 약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려 했던 ‘약자들의 수호성자’였다”는 시각이다. 그는 우선 마키아벨리의 삶 자체가 ‘마키아벨리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마키아벨리의 아버지는 평생 가난했던 ‘스페치오(세금미납자)’였다. 그도 늘 가난에 쪼들렸으며, 공직에서 해고당할까 두려워했고, 공직에서 파면된 뒤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했으며, 실업자로 무려 15년 동안 빈둥거리는 삶을 살았던 불쌍한 인물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외교정책을 총괄했던 피렌체 공화국은 이탈리아에서도 최약체국이었다. 프랑스 샤를 8세의 침공 때 가장 먼저 항복을 선언했던 피렌체는 체사레 보르자(1475∼1507)와 교황 율리우스 2세(1443∼1513)의 이탈리아 정복전쟁 당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말년에는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군대의 침략도 목격해야 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의 인생 최악의 시기에 쓰였다. 1512년 피렌체 공화국이 무너지고 메디치가가 복귀하면서 공직에서 해임된 그는 투옥돼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이후 15년간 실업자로 은둔 생활을 하면서 낙심과 절망 속에서도 ‘군주론’ ‘로마사 논고’ ‘전쟁의 기술’ 같은 명저를 남겼다. ‘군주론’은 “군주란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 편하다” “군주는 사자의 사나움뿐 아니라 여우의 교활함도 갖춰야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오해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는 분열된 이탈리아의 소국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법을 역설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말년의 마키아벨리는 청년들에게 ‘로마사’ 등 고전을 가르치고, 약자들을 응원하는 ‘만드라골라’라는 코미디 작품을 써 대성공한다. 저자는 “마키아벨리는 약자들에게 ‘더이상 당하고 살지 마라’며 스스로의 힘을 키워 살아남고, 희망을 갖는 법을 가르친 인문학자”라고 평가했다. 연세대 신학과 교수인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가의 이야기를 다룬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르네상스 창조경영’ 등의 책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에도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집, 피렌체 시뇨리아 정청의 집무실, 마키아벨리가 외교여행을 떠났던 프랑스, 로마냐 지역 등을 직접 답사해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어 흥미를 더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