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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4계절 링크’ 마련 등 꾸준한 빙상인프라 투자 결실쇼트트랙 편식 벗어났지만 雪上 종목 노메달 극복 과제로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메달 14개(금 6, 은 6, 동메달 2개)를 수확하며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단순히 메달 수만 많아진 게 아니다. 그동안 금메달이 한 개도 없었던 피겨와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세계 정상을 밟으며 명실상부한 겨울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 최고 성적의 원동력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린 데는 금 3개와 은메달 2개를 따낸 스피드 스케이팅이 단연 일등 공신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빙속의 눈부신 성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착실한 준비와 인프라 구축에서 그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 빙상연맹은 ‘밴쿠버 프로젝트’를 마련해 일찌감치 준비에 나섰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은 밴쿠버 대회 개막 1년 전부터 캐나다 캘거리와 밴쿠버에서 전지훈련을 하며 현지 적응력을 높였다. 이번 올림픽에 선수들의 스케이트화를 관리하는 ‘날갈이’ 전문가 2명을 동행한 것에서도 빙상연맹의 아낌없는 지원을 엿볼 수 있다. 2000년 1월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 문을 연 것도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이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가 됐다. 이 스케이트장이 생기기 전까지 대표팀 선수들은 겨울에만 이용할 수 있는 태릉선수촌과 강원도 춘천의 야외 빙상장에서 한 철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에 3개의 금메달을 안긴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이상 한국체대)가 모두 이 실내 스케이트장의 수혜자다. ○ 메달 편식 해소 한국은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까지 따낸 31개의 메달 중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은메달과 동메달 1개씩을 목에 걸었을 뿐 나머지 29개의 메달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겨울올림픽에서 10위권 이내의 성적을 올리고도 북미나 유럽 등 겨울 스포츠 강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이유가 이런 메달 편식 때문이다. 메달 편식은 한국이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설 때마다 경쟁국들이 물고 늘어지는 아킬레스건이기도 했다. 2014년 소치 대회를 유치한 러시아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의 메달 편식 해소로 겨울올림픽 유치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2개)보다 더 많은 금메달을 땄고 김연아(20·고려대)는 올림픽 사상 첫 피겨 금메달을 한국에 안겼다. 김연아는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겨울올림픽의 꽃 여자 싱글에서 숨이 막힐 정도의 압도적인 연기로 우승하면서 ‘한국은 쇼트트랙만 잘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단숨에 잠재웠다. 그러나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여전히 노 메달에 그친 설상(雪上) 종목은 한국 겨울스포츠의 과제로 남았다.○ 중국 약진, 일본 몰락 중국은 28일 현재 금 5, 은 2, 동메달 4개로 7위에 올라 사상 첫 10위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쇼트트랙에서 4개, 피겨에서 1개의 금메달이 나와 스케이팅 종목에 다소 치우쳤지만 프리스타일 스키에서도 메달 3개(은 1, 동메달 2개)를 따내며 설상 종목에서 가능성을 보였다. 중국은 컬링에서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면에 일본은 추락했다.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유일한 메달이었던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로 간신히 체면을 유지했던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은 3, 동메달 2개로 금메달을 손에 넣지 못했다. 일본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8년 만에 다시 노 골드에 그쳤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박성인 단장 “7년전 ‘밴쿠버 프로젝트’ 비로소 결실”“김동성 사건 겪고 절치부심… 빙상강국 도약 너무나 행복… 꿈나무 키워 위상 지킬 것”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린 한국 선수단을 이끄는 박성인 선수단장은 8년 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때 마음고생을 톡톡히 했다. 당시 한국 선수단은 쇼트트랙에서만 4개의 메달(금 2, 은 2개)을 따는 데 그쳤다. 당시에도 선수단장을 맡았던 그는 김동성이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의 ‘할리우드 액션’ 때문에 금메달을 빼앗기면서 국제빙상경기연맹에 항의하고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경기 외적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밴쿠버 올림픽 폐막을 하루 앞둔 28일 캐나다 밴쿠버 하이엇호텔에 있는 코리아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박 단장은 “빙상 3개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빙상 강국이 됐다. 단장으로서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김동성 사건’ 등을 겪은 뒤 1년을 준비해 ‘밴쿠버 프로젝트’를 만들었다”며 “그 결과 이번 대회에서 쇼트트랙뿐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에서 금메달을 따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단장은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은 무조건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며 후진 꿈나무들을 빨리 육성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빙상 강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뜻을 밝혔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또 이번 대회에서 하위권에 맴돈 설상 종목에 대해 “내가 맡은 종목은 아니지만 단장으로서 말한다면 단시간에 성과를 낼 수는 없다. 10년을 내다본다는 마음으로 오랜 투자를 해야 평창이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는 2018년경에 경기력이 어느 정도 올라올 것”이라며 장기적인 투자를 촉구했다.밴쿠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모든 게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26일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끝낸 뒤 눈물을 보인 이유를 묻자 김연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슨 뜻일까. 모든 것을 걸고 준비해온 올림픽이 끝났다는 말일까. 아니면 선수생활을 이제 그만두겠다는 의미일까. 4대륙선수권과 그랑프리 파이널, 세계선수권에 이어 겨울올림픽까지 제패하면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더는 오를 곳이 없어진 김연아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현재로선 추측과 소문만 무성하다. 일단 김연아에 앞서 올림픽 정상을 밟았던 피겨 여제들이 걸어간 길을 살펴보면 은퇴 후 프로 전향 가능성을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1984년 사라예보와 1988년 캘거리 대회를 2연패한 옛 동독 출신의 카타리나 비트를 포함해 대부분의 올림픽 챔피언들이 프로 전향을 택했다. 비트는 프로 전향 후 세계 각국을 돌며 아이스 쇼 공연을 했고 회사를 직접 차려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1992년 알베르빌 대회 우승자 크리스티 야마구치, 1998년 나가노 대회 챔피언 타라 리핀스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금메달리스트 세라 휴스(이상 미국), 2006년 토리노 대회 1위 아라카와 시즈카(일본)도 올림픽 후 프로로 무대를 옮겼다. 화려한 외모의 비트와 깜찍한 얼굴의 리핀스키는 프로생활을 접은 뒤에는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김연아의 연예계 진출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연아가 선수생활을 계속하기로 한다면 이제 목표로 삼을 만한 것은 비트 이후 나오지 않고 있는 올림픽 2연패 정도다. 소치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2014년이면 김연아는 24세가 돼 피겨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비트가 올림픽을 2연패할 당시 23세였고 아라카와도 25세에 금메달을 딴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일단 김연아는 3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기로 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다시보기 = 김연아, 완벽한 연기…세계신기록 금메달}
"모든 게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26일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끝낸 뒤 눈물을 보인 이유를 묻자 김연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슨 뜻일까. 모든 것을 걸고 준비해 왔던 올림픽이 끝났다는 말일까. 아니면 선수 생활을 이제 그만두겠다는 의미일까. 세계선수권과 그랑프리 파이널에 이어 겨울올림픽까지 제패하면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진 '피겨 여왕' 김연아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로선 추측과 소문만 무성하다. 일단 김연아에 앞서 올림픽 정상을 밟았던 피겨 여제들의 경우를 감안하면 은퇴 후 프로 전향 가능성을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다. 옛 동독 출신의 카타리나 비트는 1984년 사라예보와 1988년 캘거리 대회 2연패 후 프로로 전향해 세계 각국을 돌며 아이쇼 공연을 했고 회사를 직접 차려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 2018년 뮌헨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 대표를 맡은 그는 이번 겨울올림픽에서는 독일의 공영방송 ARD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우승자 크리스티 야마구치, 1998년 나가노 대회 챔피언 타라 리핀스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금메달리스트 사라 휴즈(이상 미국), 2006년 토리노 대회 1위 아라카와 시즈카(일본) 등이 모두 올림픽 후 프로로 전향했다. 화려한 외모의 비트와 깜찍한 얼굴의 리핀스키는 프로 생활마저 접은 뒤에는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김연아의 연예계 진출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의 프로 전향설이 잠시 논란이 됐을 때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는 "결정된 건 없다. 하지만 올림픽 결과에 따라 은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연아가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로 한다면 이제 목표로 삼을 만한 것은 비트 이후 나오지 않고 있는 올림픽 2연패 정도다. 소치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2014년이면 김연아는 24세가 돼 피겨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비트가 올림픽을 2연패할 당시 23세였고 아라카와도 25세에 금메달을 딴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스벤 크라머르(네덜란드)는 쿨 가이? 24일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에서 코치의 어이없는 실수로 메달을 놓친 뒤 분을 삭이지 못하던 크라머르가 헤라르트 켐커르스 코치와 화해하고 호흡을 계속 맞추기로 했다. 크라머르는 25일 “어제는 화가 많이 났다. 하지만 그만한 일로 코치와 갈라설 수는 없다”며 “그동안 켐커르스 코치와 함께한 시간은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켐커르스 코치와 대화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지난 일을 마음속에 오래 담아 두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켐커르스 코치와의 화해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크라머르는 켐커르스 코치와 호흡을 맞춘 지난 5년간 세계선수권과 유럽선수권에서 모두 7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번 올림픽 5000m에서도 우승하며 찰떡궁합을 과시해 왔다. 이런 관계 때문인지 전날 고글을 내팽개치고 스케이트 날로 빙판을 걷어차면서 불만을 표시했던 크라머르는 “어제 같은 실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며 켐커르스 코치를 감쌌다. 크라머르는 전날 1만 m에서 12분54초50의 가장 빠른 기록으로 결승선을 지났지만 켐커르스 코치의 오판으로 인코스를 연달아 달리는 바람에 실격 처리됐고 이승훈(한국체대)이 금메달을 땄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김연아가 26일 열리는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자신의 희망대로 마지막 순서를 피했다. 24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역대 최고 점수(78.50점)로 1위를 한 김연아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프리스케이팅에 나설 수 있게 됐다.24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에서 열린 프리스케이팅 조 추첨에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 1위 자격으로 가장 먼저 추첨에 나서 4조 헝겊 주머니에서 3번을 뽑았다. 이에 따라 김연아는 24명의 선수가 6명씩 4개조로 나눠 치르는 프리스케이팅에서 21번째 선수로 나서게 된다. 쇼트프로그램 1∼6위는 맨 뒤인 4조에 속한다. 김연아는 조 추첨이 끝난 뒤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 바로 앞 차례에 나와 연기를 했던 아사다 마오(일본)는 프리스케이팅에서는 김연아 바로 뒤에 출전하게 됐다. 김연아의 바로 앞은 안도 미키(일본)로 정해졌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2위를 한 아사다(73.78점)보다 4.72점을 앞섰다. 김연아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고도 프리스케이팅에서 우승을 놓친 경우가 있기는 해도 김연아의 최근 컨디션을 감안하면 이번에 아사다에게 따라잡힐 확률은 높지 않다. 김연아는 16번의 시니어 국제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 순위보다 프리스케이팅 순위가 낮았던 적이 6번 있었다. 이 중 3차례는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고도 역전 우승을 내줬다. 김연아는 2007∼2008시즌 이후 12개 대회에서 우승을 놓친 적은 두 번뿐일 만큼 적수가 없는 ‘절대 지존’이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출전한 2009∼2010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안도에게 뒤져 2위를 하고도 프리스케이팅에서 점수를 만회해 역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쇼트프로그램에서 벌어 놓은 점수로 프리스케이팅에서 편하게 연기를 한다’는 종전의 평가도 단번에 잠재웠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다시보기 = 김연아, 쇼트프로그램 퍼팩트 연기}

《한국체대 07학번 3인방의 전성시대다. 24일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에서 이승훈(22)이 한국에 5번째 금메달을 안기면서 대학 동기 모태범(21), 이상화(21)와 메달 색깔을 맞췄다. 모태범과 이상화는 1989년생으로 1988년생인 이승훈보다 한 살 아래지만 둘 다 생일이 2월로 빨라 셋은 같은 해에 한국체대에 입학했다.》이승훈-모태범-이상화 전성시대 예고김관규 감독 “3명 악바리 근성 닮은 꼴”이번 올림픽에서 이들 3인방 전성시대의 서막을 알린 것은 이승훈이었다. 이승훈은 14일 스피드스케이팅 50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겼다.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에서 따낸 아시아 선수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어서 이승훈은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이에 질세라 모태범과 이상화는 각각 16일과 17일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에서 잇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체대 07학번의 파워를 세계에 알렸다. 모태범은 18일 1000m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했다. 3인방 전성시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셋 중 유일하게 금빛 메달을 손에 넣지 못하고 있던 이승훈은 1만 m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하면서 마침내 동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중 한국체대 재학생은 3학년인 07학번 3인방을 포함해 1학년 1명, 2학년 2명, 4학년 1명 등 모두 7명이다. 이들 중 메달을 딴 선수는 07학번 3인방뿐이다. 24일 현재 한국이 딴 금메달 5개 중 3개, 전체 메달 10개의 절반인 5개(은 2개)가 이들 3인방의 것이다. 한국체대는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이들의 맹활약을 알리는 내용을 사진과 함께 올려 셋의 전성시대를 축하했다. 김관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43)은 “셋은 성격도 다르고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훈련 일정을 짜도 군말 없이 소화해내는 악바리 근성을 갖췄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들의 전성시대가 절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다시보기 = 빙속 이승훈, 1만m 금메달…올림픽 신기록}
피겨스케이팅은 겨울올림픽의 꽃이다. 그중에서도 여자 싱글은 꽃 중의 꽃으로 불린다. 김연아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역대 20번째 올림픽 피겨 여제(女帝) 등극을 노린다. 2006년 토리노 대회까지 19명의 피겨 여왕이 올림픽 무대를 수놓았다. 제1회 겨울올림픽은 1924년 샤모니 대회이지만 여자 싱글은 1908년 런던과 1920년 앤트워프 여름올림픽 때도 정식 종목이었다. 올림픽을 빛낸 피겨 여왕 중 팬들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선수는 옛 동독 출신의 카타리나 비트다. 1984년 사라예보와 1988년 캘거리 대회를 2연패한 비트는 1980년대 은반을 평정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캘거리 대회에서 비제의 카르멘에 맞춰 선보인 화려하고 강렬한 그의 연기는 피겨 역사에 길이 남을 명품으로 꼽힌다. 비트 이후 올림픽 2연패는 나오지 않고 있다. 1968년 그르노블 대회 우승자 페기 플레밍(미국)은 미녀 스케이터의 원조다. 미국 언론들이 김연아를 플레밍 이후 가장 압도적인 금메달 후보로 평가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플레밍은 1960년대 후반 적수가 없는 ‘은반 위의 언터처블’로 통했다. 아라카와 시즈카(일본)는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아시아 국적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일본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아라카와는 당시 사샤 코언(미국)과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등 쟁쟁한 우승 후보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김연아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던 크리스티 야마구치(미국)는 1992년 알베르빌 대회 금메달리스트. 일본계인 야마구치는 당시 트리플 악셀을 앞세워 금메달에 도전한 일본 피겨의 희망 이토 미도리와의 맞대결로 큰 관심을 모았다. 이토는 은메달에 머물렀다. 1928년 생모리츠, 1932년 레이크플래시드,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대회를 3연패한 소냐 헤니(노르웨이)와 1998년 나가노 대회 챔피언 타라 리핀스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우승자 세라 휴스(이상 미국)도 빠뜨릴 수 없는 여제들이다. 김연아가 우상으로 꼽은 미셸 콴(미국)은 세계선수권에서 5번이나 우승했지만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콴은 나가노 대회에서 은메달,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는 동메달에 그쳤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피겨스케이팅은 겨울올림픽의 꽃이다. 그 중에서도 여자 싱글은 꽃 중의 꽃으로 불린다. 김연아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역대 20번째 올림픽 피겨 여제(女帝) 등극을 노린다. 2006년 토리노 대회까지 19명의 피겨 여왕이 올림픽 무대를 수놓았다. 제1회 겨울올림픽은 1924년 샤모니 대회이지만 여자 싱글은 1908년 런던과 1920년 앤트워프 여름올림픽 때도 정식 종목이었다.올림픽을 빛낸 피겨 여왕 중 팬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또렷이 남은 선수는 옛 동독 출신의 카타리나 비트다. 1984년 사라예보와 1988년 캘거리 대회를 2연패한 비트는 1980년대 은반을 평정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캘거리 대회에서 비제의 카르멘에 맞춰 선보인 화려하고 강렬한 그의 연기는 피겨 역사에 길이 남을 명품으로 꼽힌다. 비트 이후 올림픽 2연패는 나오지 않고 있다. 1968년 그레노블 대회 우승자 페기 플레밍(미국)은 미녀 스케이터의 원조다. 미국 언론들이 김연아를 플레밍 이후 가장 압도적인 금메달 후보로 평가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플레밍은 1960년대 후반 적수가 없는 '은반 위의 언터처블'로 통했다.아라카와 시즈카(일본)는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아시아 국적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일본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아라카와는 당시 사샤 코헨(미국)과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등 쟁쟁한 우승 후보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김연아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던 크리스티 야마구치(미국)는 1992년 알베르빌 대회 금메달리스트. 일본계인 야마구치는 당시 트리플 악셀을 앞세워 금메달에 도전하던 일본 피겨의 희망 이토 미도리와의 맞대결로 큰 관심을 모았다. 이토는 은메달에 머물렀다.1928년 생모리츠, 1932년 레이크플래시드, 1936년 가르미쉬 파르텐키르헨 대회를 3연패한 소냐 헤니(노르웨이)와 1998년 나가노 대회 챔피언 타라 리핀스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우승자 사라 휴즈(이상 미국)도 빠트릴 수 없는 여제들이다. 김연아가 우상으로 꼽은 미셸 콴(미국)은 세계선수권에서 5번이나 우승했지만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콴은 나가노 대회에서 은메달,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는 동메달에 그쳤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22년을 기다린 브라이언 오서의 금메달.’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자신의 모국 캐나다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에서 애제자 김연아를 내세워 22년 만의 금메달 획득에 재도전하는 오서 코치(49)의 사연을 22일자 인터넷판을 통해 보도했다.1988년 캐나다 캘거리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 출전한 오서는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지금의 김연아처럼 그의 우승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서는 트리플 플립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에게 0.1점 차로 뒤져 은메달에 그쳤다. 당시 둘의 대결은 ‘브라이언 전쟁’이라 불리며 관심을 끌었다.오서는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며 당시 느꼈던 좌절감을 떠올렸다. 이런 이유로 뉴욕타임스는 결전을 앞둔 김연아의 부담과 긴장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오서를 꼽았다. 오서도 “나 이외의 누구도 연아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서는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하지만 연아가 금메달을 따더라도 1988년에 내가 놓친 금메달을 내놓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농담으로 결전을 앞둔 애제자의 긴장을 풀어줬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많은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며 시합을 한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죄송합니다."(스키점프 국가대표 김현기 미니홈피) 지난해 영화 '국가대표'의 흥행으로 과거 어느 겨울올림픽 때보다 많은 팬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 화려한 비상을 꿈꿨던 스키점프 대표팀이 4년 뒤 러시아 소치 대회를 기약하며 밴쿠버 겨울올림픽 경기를 모두 마쳤다. 한국 스키점프는 아직 세계 수준과의 격차가 컸다. 21일 캐나다 휘슬러 올림픽파크에서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키점프 라지힐(125m) 결선 1라운드에 출전한 김현기(27)와 최흥철(29·이상 하이원)은 모두 40위 밖으로 밀려 30위까지 주어지는 결선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김현기는 107.5m를 날아 거리 점수 28.5점에다 기술 점수 49.5점을 더해 합계 78점으로 42위에 그쳤다. 98.5m를 난 최흥철은 거리 점수 12.3점과 기술 점수 44점을 합쳐 56.3점으로 전체 50명 중 49위에 머물렀다. 최용직(28·하이원)을 포함해 3명이 출전한 한국은 이로써 노멀힐(95m)과 라지힐에서 한 명도 결선 최종 라운드에 오르지 못한 채 대회를 마쳤다. 23일 단체전이 남아 있지만 한국은 이번 대회 출전권을 3장밖에 따내지 못해 4명이 팀을 이루는 단체전에는 나가지 못한다. 선수들은 팬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에 보답하지 못한데 대해 아쉬워하면서 4년 뒤 재도전을 다짐했다. 최흥철은 자신의 미니 홈피에 "많은 응원과 관심 감사드립니다.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려 했는데 실망을 드려 죄송합니다"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하고 다시 일어서 4년 뒤 올림픽에선 꼭 세계를 놀라게 만들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밝혔다. 한편 라지힐 결선 최종 라운드에서는 138m를 날아 합계 138.9점을 받은 시몬 암만(28·스위스)이 우승을 차지해 노멀힐에 이어 2관왕을 차지했다. 이로써 암만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2관왕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스키점프 제왕'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이종석기자 wing@donga.com}

너무 세게 깨물었나…. 밴쿠버 겨울올림픽 시상식에서 메달을 깨물던 선수의 이가 부러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뒤늦게 알려졌다. 루지 남자 싱글에 출전한 다비트 묄러(28·독일)는 15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메달을 깨물어 달라는 사진 기자들의 요청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기쁨이 너무 지나쳤던 걸까. 메달을 꽉 깨무는 순간 앞니의 끝부분이 깨져 버린 것. 묄러는 “아프지는 않았지만 이가 깨진 부분이 사진에 잡힐까봐 신경이 쓰였다”고 말했다. 올림픽 메달을 돈으로 계산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따져 보자면 묄러처럼 메달을 깨물다 이가 부러지는 경우 메달 값보다 치료비가 더 든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메달은 지름이 10cm, 두께 0.6cm로 역대 겨울올림픽 메달 중 가장 크다. 올림픽 메달은 규격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최소 지름 6cm, 두께 0.3cm를 넘도록 하고 있다. 은메달과 동메달은 100% 순은과 순동이지만 금메달은 100% 순금이 아니다. 금메달은 92.5% 이상의 은과 6g 이상의 금으로 만들어진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흑인선수와 겨울올림픽 ‘흑색 탄환’ 샤니 데이비스(28·미국·사진)가 18일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4년 전 이탈리아 토리노 대회에서 겨울올림픽 개인 종목 사상 첫 흑인 금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데이비스는 이 종목을 2연패한 최초의 선수가 되면서 백인의 독무대로 여겨지던 겨울스포츠에서도 흑인이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1980년 美-加선수 첫 출전 1924년 1회 대회가 열린 겨울올림픽에 흑인 선수가 처음 출전한 것은 불과 30년 전인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대회부터였다. 당시 미국에서 2명, 캐나다에서 1명의 흑인 남자 선수가 봅슬레이에 출전했다. 이로부터 8년 뒤 메달을 딴 첫 흑인 선수가 나왔다. 피겨 여자 싱글의 데비 토머스(미국)는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어 최초의 흑인 메달리스트가 됐다. 토머스는 1986년 세계선수권에서 3연패에 도전하던 옛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를 꺾고 우승해 흑인 최초의 금메달이 기대됐던 ‘흑진주’였다. 흑인 최초의 금메달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나왔지만 개인 종목은 아니었다. 봅슬레이 여자 2인승의 보네타 플라워스(미국)와 아이스하키의 제롬 이귈라(캐나다)가 주인공.○ 1988년 女피겨서 메달 신고 흑인들이 겨울올림픽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건 겨울스포츠가 대부분 값비싼 장비를 갖춰야 해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흑인들은 주로 눈과 얼음을 보기가 상대적으로 힘든 지역에 산다는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체육과학연구원 김광준 박사는 “흑인은 순간적으로 힘을 끌어올리는 근섬유가 발달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한다면 겨울스포츠에서도 육상 단거리 못지않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날갈이’를 아시나요? 한국이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를 석권하면서 스피드스케이팅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데는 ‘보이지 않는 손’의 기여가 컸다. 그 주인공은 스케이트 날을 가는 것을 포함해 선수들의 스케이트화를 정비해 주는 2명의 전문가로,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오세종 씨(사진)와 쇼트트랙 대표팀 출신의 김동민 씨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이번 대회에 이들과 동행한 건 4년 전 토리노 대회 때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 출전한 이강석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경기 시작 1시간 30분을 앞두고 발목을 단단히 고정해 주는 스케이트화 윗부분 끈이 끊어져 버린 것. 다급해진 이강석은 경기장 인근에 있던 스케이트숍을 어렵사리 찾아 가까스로 정비를 마쳤다. 하지만 컨디션 조절에 쏟았어야 할 시간을 스케이트화 정비에 허비하고 말았다. 4년 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빙상연맹은 전문가를 모셨고 이번 대회에서 효과를 봤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경기장의 빙질과 온도에 맞춰 스케이트화의 날을 조금씩 손질한다. 일반인들은 느끼기 힘들지만 예민한 선수들은 날의 미세한 차이에도 경기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 토리노 대회까지는 선수들이 직접 스케이트화의 날을 갈았다. 하지만 선수들이 날을 갈면 정비 전문가들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몸을 푸는 시간도 빼앗기게 된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겨울올림픽에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8회째인 1960년 미국 스쿼밸리 대회부터다. 1932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대회 때 시범 레이스를 치렀지만 28년이 지나서야 정식 종목이 됐다. 한국은 스쿼밸리 대회에 김경희와 한혜자가 500m, 1000m, 1500m, 3000m에 출전했지만 모두 20위권 밖에 처졌다. 이후 20년 넘게 세계 수준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던 한국은 유선희의 등장으로 희망을 엿보기 시작했다. 1988년 캐나다 캘거리대회 500m에서 13위를 한 유선희는 4년 뒤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에서 500m 9위로 톱10에 진입했다. 유선희는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 500m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5위에 올랐지만 첫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한국이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 사이 북한과 일본, 중국은 모두 올림픽 첫 메달을 따냈다. 북한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회 3000m에서 한필화가 은메달을 땄다. 한필화는 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딴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됐다. 일본은 하시모토 세이코가 1992년 알베르빌 대회 1500m에서 동메달로 첫 메달을 신고했다. 당시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던 하시모토는 이번 밴쿠버 대회 일본 선수단장을 맡고 있다. 중국 역시 알베르빌 대회에서 예차오보가 500m와 1000m에서 2개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본과 중국은 이후로도 몇 개의 메달을 추가했지만 금메달은 없었다. 하지만 한국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지 50년 만에 이상화(한국체대)가 첫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했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대회 500m에서 5위에 머물러 아쉽게 메달을 놓쳤던 이상화의 이번 우승으로 한국은 아시아 최초의 금메달 획득 국가가 됐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올림픽을 3번이나 개최하는 국가라는 자신감이 지나쳤던 걸까.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대회 운영 미숙과 실수가 연일 나와 캐나다가 체면을 구기고 있다. 이에 따른 참가 선수들의 불만과 항의도 잇따르고 있다. 16일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이 나온 남자 500m 경기에선 치명적인 일이 벌어졌다. 2명의 선수가 짝을 지어 20개 조로 나눠 진행된 1차 레이스에서 앞선 10개 조의 레이스가 끝나고 빙판을 정리하기 위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정빙기가 작업 도중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이 때문에 30분으로 예정됐던 빙판 정리 시간이 1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경기가 지연됐고 후반부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다. 남은 레이스를 다른 날로 미뤄야 할지를 검토해야 할 정도로 빙질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문제가 된 정빙기 제조사의 경쟁사와 스폰서 계약을 했기 때문에 기계 교체가 즉시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루머까지 돌아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늦게나마 기계가 수리돼 경기가 계속 열릴 수 있었지만 미국 선수를 포함해 후반부에 출전한 선수들은 “빙질 상태가 전반부 때와 다르다”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운영 미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차 레이스 시작을 앞두고는 기록을 표시하는 전광판 오작동으로 다시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한국 피겨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는 '피겨 여왕' 김연아(20·고려대)의 완벽 연기에 트집을 잡던 심판이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도 김연아의 점수를 매기게 됐다. 김연아에게는 악재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최근 발표한 여자 싱글 테크니컬 패널에 로리올 오버윌러 마리암(스위스) 심판이 포함됐다. 점프의 회전수 부족 등을 판단해 감점 여부를 결정하는 테크니컬 스페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마리암 심판은 그동안 '교과서 점프'라 평가받던 김연아의 연기에 이해하기 힘든 감점을 줘 논란이 됐던 심판이다. 김연아는 2008~2009시즌 시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깔끔하게 처리했지만 플립 점프에서 롱 에지 판정을 받아 0.80점이 깎였다. 마리암 심판이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였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쇼트프로그램에서도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로 9명의 심판 중 8명으로부터 가산점을 받았다. 하지만 마리암 심판은 이 때도 점프 회전수 부족을 이유로 김연아에게 감점을 줬다. 마리암은 최근 스위스 기자와 인터뷰에서 "김연아는 과대평가된 선수"라고 발언해 한국 팬들 사이에 심판 자질론까지 거론됐다.이종석기자 wing@donga.com}

동부가 하승진 없는 ‘이빨 빠진 호랑이’ KCC를 꺾고 공동 3위로 올라섰다. 동부는 9일 전주에서 열린 KCC와의 방문 경기에서 김주성의 맹활약을 앞세워 80-71로 이겨 4연승을 달렸다. 30승(14패) 고지에 올라선 동부는 KCC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동 3위가 됐다. 1위 모비스(32승 12패)를 포함한 상위 네 팀의 승차가 2경기 이내로 좁혀져 선두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주성은 하승진이 올스타전에서의 종아리 부상으로 빠진 KCC의 골밑을 휘젓고 다니며 승리에 앞장섰다. 김주성은 양 팀 최다인 22점을 넣었고 리바운드도 11개를 잡아냈다. 어시스트(7개) 3개가 모자라 이번 시즌 자신의 두 번째 트리플 더블을 아깝게 놓쳤다. 동부는 이광재(14득점), 조나단 존스(12득점), 마퀸 챈들러(11득점) 등 주전들이 고르게 득점에 가세했다. 하승진의 공백으로 7일 모비스전에서 이번 시즌 팀 최다 점수차(22점) 패배를 당하며 체면을 구겼던 KCC는 지난해 11월 14일 삼성전 패배 이후 87일 만에 연패에 빠졌다. 3쿼터 3분경부터 10점 차 리드를 허용한 뒤 줄곧 끌려가던 KCC는 4쿼터 4분가량을 남기고 강병현의 3점포로 67-69로 2점 차까지 추격했으나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4쿼터 막판 아이반 존슨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책을 저질러 공격의 맥을 끊은 데다 자유투가 부진한 게 패인이 됐다. 존슨은 팀 실책(15개)의 절반에 가까운 7개의 실책을 남발했고 KCC는 17개의 자유투를 얻었지만 9개만 넣었다. 하승진의 대타로 나선 KCC 강은식은 데뷔 후 첫 두 자릿수 득점(16득점)을 기록하며 분전했으나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부산에서는 홈팀 KT가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제스퍼 존슨을 앞세워 SK를 86-71로 눌렀다. 존슨은 14득점, 13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지난달 5일 김주성에 이어 이번 시즌 두 번째 트리블 더블의 주인공이 됐다. 31승 13패가 된 2위 KT는 모비스와의 승차를 1경기로 좁혔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은 점쟁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바마 대통령의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 우승 팀 예상이 적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 때 “슈퍼볼에서 누가 이길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나는 열세일 것으로 평가받는 뉴올리언스 세인츠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답했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와 도박사들은 당대 최고의 쿼터백 페이턴 매닝이 버티고 있는 정규시즌 최고 승률 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가 우세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8일 뚜껑을 열어 보니 전문가나 도박사들이 아닌 오바마 대통령의 예상이 적중했다. 게다가 이번에도 지난해처럼 ‘역전 우승’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슈퍼볼이 열리기 전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우승을 점쳤다. 패색이 짙던 피츠버그는 경기 종료 35초를 남기고 극적인 역전 터치다운으로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를 두고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오바마의 개입’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대학체육위원회(NCAA) 농구와 미국프로농구(NBA) 우승 팀도 맞히는 예지력을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뉴올리언스와 인디애나폴리스의 지역구 하원의원을 포함한 상하원 의원과 장관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슈퍼볼 경기를 TV로 시청하면서 자신의 예상이 실현되는 기쁨을 맛봤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미국 중남부의 작은 도시 뉴올리언스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급습으로 쑥대밭이 됐다. 이곳을 연고로 하는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뉴올리언스 세인츠는 홈구장인 루이지애나 슈퍼돔도 문을 닫자 1년간 전국을 떠돌며 경기를 했다. 하지만 인구 20만 명이 조금 넘는 뉴올리언스의 팬들은 ‘떠돌이 홈팀’에 변함없는 사랑과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뉴올리언스 세인츠는 단순한 미식축구 팀을 넘어 뉴올리언스의 정신적 지주였다.》인디애나폴리스에 재역전… 창단 43년만에 첫 우승“불가능을 이뤘다” 팬들 열광… MVP 쿼터백 브리스뉴올리언스가 제44회 슈퍼볼 정상에 올랐다. 뉴올리언스는 8일 마이애미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31-17로 역전승하며 빈스롬바르디 트로피를 품에 않았다. 1967년 창단 후 43년 만에 맛본 첫 우승이었다.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경기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전문가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NFL 최고 쿼터백 페이턴 매닝을 앞세워 2007년 이후 3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인디애나폴리스가 우세할 것으로 봤다. 인디애나폴리스는 1쿼터 7분경 맷 스토버의 필드골로 선취점을 올렸고, 1쿼터 종료 42초 전 피에르 가르송이 터치다운을 성공시켜 10-0으로 앞서갔다. 2쿼터 들어 뉴올리언스가 6점을 따라붙었고 3쿼터에서는 두 팀이 역전을 한 번씩 주고받은 끝에 인디애나폴리스가 17-16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채 4쿼터를 맞았다. 유력한 우승후보 인디애나폴리스의 기운은 3쿼터에서 소진됐지만 뉴올리언스는 4쿼터에서 더욱 펄펄 날았다. 뉴올리언스는 4쿼터 중반 쿼터백 드루 브리스의 패스를 받은 제러미 쇼키의 터치다운으로 재역전에 성공한 뒤 종료 3분 전 매닝의 패스를 가로챈 트레이시 포터의 74야드 폭풍 질주 터치다운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최우수선수(MVP)에는 터치다운 패스 2개를 성공시키며 매닝과의 야전사령관 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브리스가 뽑혔다. 정규시즌에서 70.6%의 패스 성공률(1위)을 무기로 가장 많은 터치다운 패스(34개)를 기록한 브리스는 이날 39개의 패스를 시도해 32개를 성공시키는 82.1%의 높은 성공률을 자랑했다. 터치다운 패스 1개를 기록한 매닝은 45개의 패스 중 31개만 연결시켜 성공률 68.9%. 창단 후 처음 진출한 슈퍼볼에서 우승을 이룬 브리스는 팬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 누가 생각했겠느냐. 뉴올리언스 시민들이 우리 뒤에 든든히 버티고 있어 이길 수 있었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미국 중남부의 작은 도시 뉴올리언스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급습으로 쑥대밭이 됐다.이 곳을 연고로 하는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뉴올리언스 세인츠는 홈구장인 루이지애나 슈퍼돔도 문을 닫자 1년간 전국을 떠돌며 경기를 했다. 하지만 인구 20만 명이 조금 넘는 뉴올리언스의 팬들은 '떠돌이 홈팀'에 변함없는 사랑과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뉴올리언스 세인츠는 단순한 미식축구 팀을 넘어 뉴올리언스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 뉴올리언스가 제44회 슈퍼볼 정상에 올랐다. 뉴올리언스는 8일 마이애미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31-17로 역전승하며 빈스롬바르디 트로피를 품에 않았다. 1967년 창단 후 43년 만에 맛본 첫 우승이었다.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경기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전문가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NFL 최고 쿼터백 페이턴 매닝을 앞세워 통산 세 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인디애나폴리스가 우세할 것으로 봤다. 인디애나폴리스는 1쿼터 7분경 맷 스토버의 필드골로 선취점을 올렸고, 1쿼터 종료 42초 전 피에르 가르손이 터치다운을 성공시켜 10-0으로 앞서갔다. 2쿼터 들어 뉴올리언스가 6점을 따라 붙었고 3쿼터에서는 두 팀이 역전을 한 번씩 주고받은 끝에 인디애나폴리스가 17-16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채 4쿼터를 맞았다. 유력한 우승후보 인디애나폴리스의 기운은 3쿼터에서 소진됐지만 뉴올리언스는 4쿼터에서 더욱 펄펄 날았다. 뉴올리언스는 4쿼터 중반 쿼터백 드루 브리스의 패스를 받은 제레미 쇼키의 터치다운으로 재역전에 성공한 뒤 종료 3분 전 매닝의 패스를 가로챈 트레이시 포터의 74야드 폭풍 질주 터치다운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최우수선수(MVP)에는 터치다운 패스 2개를 성공시키며 매닝과의 야전 사령관 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브리스가 뽑혔다. 정규시즌에서 70.6%의 패스 성공률(1위)을 무기로 가장 많은 터치다운 패스(34개)를 기록한 브리스는 이날 39개의 패스를 시도해 32개를 성공시키는 82.1%의 높은 성공률을 자랑했다. 터치다운 패스 1개를 기록한 매닝은 45개의 패스 중 31개만 연결시켜 성공률 68.9%. 창단 후 처음 진출한 슈퍼볼에서 우승을 일군 브리스는 팬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 누가 생각했겠느냐. 뉴올리언스 시민들이 우리 뒤에 든든히 버티고 있어 이길 수 있었다"며 감격의 눈물의 흘렸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