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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 배우 틸다 스윈턴(59·사진)과 홍콩 출신 영화감독 쉬안화(안 후이·73)가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공로상인 ‘명예 황금사자상’을 받는다. 베니스 영화제는 9월 2일부터 12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영화제 조직위는 틸다 스윈턴을 소개하며 “세계적 히트작인 ‘설국열차’와 ‘옥자’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일했다”고 언급했다. 또 알베르토 바르베라 베니스 영화제 감독은 “독특하고 파워풀한 연기로 20세기 말부터 입지를 다진 배우”라며 “예술과 사회 분야 모두에서 관행에 과감하게 도전했다”고 소개했다. ‘풍겁’(1979년)으로 데뷔한 쉬안화 감독은 홍콩 ‘뉴웨이브’의 주역으로 꼽힌다. 바르베라 감독은 “쉬안화는 이 시대 아시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중 한 명”이라며 “홍콩 픽션 영화에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평가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선왕조실록의 여러 사고본, 심사정의 ‘촉잔도권’과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한자리에서 보는 감동은 다시 만들기 어려운 기회입니다.”(박수희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학예연구관) 기관, 개인, 사찰 등 대여 기관만 34곳에 달하는 국보·보물 83건 196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21일 열리는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에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공동 기획한 이 전시는 2017∼2019년 새롭게 지정된 국보·보물 157건 중 일부를 제외한 유물을 모았다. 주최 측은 이번 전시가 국보·보물을 공개하는 사상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다. 국가 지정 문화재를 소개하는 전시 자체는 그간 단 한 차례만 열렸다. 같은 주제의 전시가 열린 것이 2017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공동 개최한 ‘선인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신국보보물전 2014∼2015’전이다. 이전까지는 국가가 지정하는 문화재라도 개인이나 사립기관이 소장한 경우 국민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새 보물…’전에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보물 22건이 공개돼 눈길을 모은다. 간송재단 소장품에는 국보·보물 40여 건이 포함돼 있는데, 이 중 23건이 2016년 이후 지정됐다. 당시 문화재청이 간송재단과 ‘문화재 보존과 관리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고 소장품 37점을 조사하고 보물로 지정했다. 특히 현재 심사정(1707∼1769)의 마지막 작품 ‘촉잔도권’과 이인문(1745∼?)의 ‘강산무진도’가 나란히 전시돼 눈길을 끈다. 각각 총길이가 8m, 8.5m에 이르는 두루마리 그림으로 희소성이 높다. 박수희 학예연구관은 “자체 전시를 주로 열고, 외부 대여를 하지 않는 간송미술관의 ‘촉잔도권’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산무진도’를 한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선 필 풍악내산총람도’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 ‘김정희 필 난맹첩’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 ‘신윤복 필 미인도’도 전시된다. 간송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외부에서 대거 대여해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송 측의 요청으로 서화류가 3주 단위로 교체 전시되므로, 세부 일정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고려청자의 초기 형태를 볼 수 있는 ‘청자 순화 4년명 항아리’(이화여대 소장)도 외부에는 처음 내놓는다. 청자가 푸른빛이 아닌 녹갈색을 띠고 있는데, 굽 안쪽에 제작 시기, 사용처,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1세기 후반 제작된 ‘호랑이 모양 띠고리’와 경주 황오동 무덤에서 출토된 신라 6세기 ‘금귀걸이’는 고대 한반도의 문화를 보여준다. 온라인으로 예약한 후 22일부터 관람할 수 있다. 휴관일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2시간 단위로 200명이 입장한다. 9월 27일까지. 3000∼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휴관해온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과 왕릉이 다시 문을 연다. 문화재청은 이 시설들을 22일 재개관한다고 20일 밝혔다. 재개관하는 시설은 서울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종묘와 태·강릉 정릉 의릉 선·정릉 헌·인릉, 경기 고양 서오릉과 서삼릉, 양주 온릉, 화성 융·건릉, 파주 삼릉과 장릉, 김포 장릉, 구리 동구릉, 남양주 광릉과 홍·유릉, 사릉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다. 궁궐과 왕릉은 관람 인원에 제한이 없으나 실내 관람 시설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하루 최대 1000명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인터넷 사전 예약제와 QR코드 기반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을 도입한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쓴 개인의 관람만 허용하며 입장에 앞서 체온을 측정한다. 관람객 동선도 겹치지 않도록 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단체관람과 교육 및 행사는 계속 중단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휴관해온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과 왕릉이 다시 문을 연다. 문화재청은 이들 시설을 22일 재개관한다고 20일 밝혔다. 재개관하는 시설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종묘, 고양 서오릉과 서삼릉, 양주 온릉, 화성 융·건릉, 파주 삼릉과 장릉, 김포 장릉, 서울 태·강릉과 정릉, 의릉, 선·정릉, 헌·인릉, 구리 동구릉, 남양주 광릉과 홍·유릉, 사릉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다. 궁궐과 왕릉은 관람 인원에 제한이 없으나 실내 관람 시설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수를 제한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하루 최다 1000명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인터넷 사전 예약제와 QR코드 기반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을 도입한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쓴 개인의 관람만 허용하며 입장에 앞서 체온을 측정한다. 그리고 관람객 동선도 겹치지 않도록 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단체관람과 교육 및 행사는 계속 중단한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인상파 작품은 지금이야 전 세계 대중의 사랑을 받지만 19세기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당시 어느 수집가는 “구입한 풍경화가 피사로 것임을 알고 처분했다. 인상파는 내 이념과 맞지 않고, 집에는 품격 있는 그림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상파가 예술가들의 힘만으로 인정받아야 했다면 그 진가가 드러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인상파는 섬세하고 열린 안목으로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과 함께 성장했다. 이 책은 그중 한 사람인 미술상 앙브루아즈 볼라르(1867∼1939)의 자서전이다. 세잔의 그림을 처음 보고 “복부를 맞은 기분”을 느낀 볼라르는 화상이 되자마자 그의 개인전을 연다. 르누아르와도 가깝게 지냈으며 드가, 고갱, 모네, 마네와도 교류했다. 갓 스무 살이 된 피카소를 소개받고 그의 파리 첫 전시도 열었다. 유명한 문학가이자 파리의 아방가르드 예술의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회고록에서 볼라르는 ‘화랑 문간에 손을 짚고 서서 행인을 지옥에 보낼 것처럼 인상을 쓰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를 본 볼라르는 “내가 상냥하고 유쾌한 성품을 타고나지 못해 안타깝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묘사처럼 자서전에서도 그는 자신의 개인적 삶이나 화상으로서의 일대기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세기말적 지각변동을 겪는 파리 미술계의 풍경을 생생하고 신랄하게 늘어놓는다. 책에서는 돈과 허세로 가득한 컬렉터들에 대한 냉소가 포착된다. 유명한 컬렉터인 이작 드 카몽도는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대뜸 “도대체 뭘 그린 겁니까”라고 묻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볼라르가 “목욕하는 여자들”이라고 하자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데 어디서 목욕을 하는 겁니까” 하고 다시 묻는다. 이에 볼라르가 말했다. “당신은 모르는 게 없으니 ‘그림보다 바보 같은 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것도 없다’는 말을 누가 했는지 아시겠죠?” 물론 꿋꿋한 후원자도 있었다. 동료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으로 가득했던 모네의 집 풍경은 감동적이다. 모네의 소장품을 본 볼라르는 “이 정도 수준의 소장품은 저명한 수집가에게서도 보기 어렵다”고 감탄한다. 그러자 모네는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사지 않으려 하는 그림만 가져왔소. 여기 그림 대부분은 화랑에서 팔리지 않고 굴러다니던 것들이지. 이들을 구입한 것은 대중의 무관심에 대한 항변이라오.” 최근에도 단기 투자용으로만 미술품에 관심을 쏟는 흐름이 있다. 이 책은 예술작품의 단단한 가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책 말미에 볼라르는 화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청년의 편지에 답장을 쓴다. “나는 돈을 버는 비결은 알지 못합니다. 미술 애호가들이 화랑에 오면 나는 졸고 있었지요. 손님들은 내 잠꼬대를 거절로 오해하고 금액을 더 높이 불렀고요. 정신을 차려보면 값이 올라가 있더군요. 은총이 있기를 빕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는 내년 여성 작가로만 구성된 기획전 ‘Women in Abstraction’을 연다.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 저평가된 여성의 역할을 재조명하겠다는 취지다. 전 세계 미술가 112명 중 최욱경(1940∼1985)도 이 전시에 포함됐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최욱경의 작품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하찮은 꽃 이파리나 새의 깃털. 보잘것없는 이 대상들이 나에겐 모두 흥미롭고 신비해 보인다. …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의 비상에서 내가 환희와 기쁨을 맛보고 사물의 이입을 연상하며, 움직임의 연결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움. 그것을 나는 환희라고 말하고 싶다.” 최욱경은 흔히 ‘요절한 천재’ ‘엘리트 코스를 밟은 화가’로 불린다. 교학도서주식회사를 창립한 최상윤과 조하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0세 때 김기창(1914∼2001) 박래현(1920∼1976) 부부의 화실에서 첫 미술 교육을 받는다.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대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작품과 기록 속 그는 엘리트보다 고독한 이방인에 가깝다. 자화상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년)에서 자신을 ‘세 번째 눈’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스스로를 ‘성난 여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그와 가깝게 지낸 작가 마이클 애커스는 “최욱경은 자신이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맞지 않는다고 자주 농담했다”고 회고한다. 1980년대 글에서 최욱경은 “남성 작가는 ‘화가 ○○○’이면 되는데 여성 작가는 왜 앞에 ‘여자’를 붙여야 하나”라거나 “여자로서의 감성과 체험에서 걸러져 나온 표상을 직접적으로 구사한 시각적 용어로 표현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자신의 작업실에 그는 ‘무무당(無無堂)’이란 이름을 붙였다. 느껴지는 허무를 그는 몸의 감각으로 극복하고자 몸부림쳤다. 1985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생을 마감했지만, 고독할지언정 스스로에게 솔직했던 그의 이야기는 이제야 걸맞은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최욱경 작가 (1940∼1985)▽1940년 서울 출생 ▽1963년 서울대 회화과 졸업▽1968년 미국 프랭클린 피어슨대 조교수▽1971년 서울 신세계갤러리 개인전▽1977년 미국 뉴멕시코 로즈웰미술관 개인전▽1985년 별세▽1987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30대 중반부터 여성화가들 이름 앞에 붙는 ‘규수’ ‘여류’라는 호칭에 조금씩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남성의 경우는 ‘화가 ○○○’이면 되는데 여성작가는 꼭 여자를 붙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1983년 7월 2일 일간지 칼럼 중)화가 최욱경(1940~1985)은 1966년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는 글귀가 적힌 작품을 내놨다. 캔버스 위에 종이를 콜라주로 붙이고 잉크로 그린 흑백 작품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3 EYES I DO HAVE’라고 적혀 있고 상단에는 조그마한 검은색 점 세 개가 나란히 박혀 있다. 이 점이 눈이라면 아래쪽 줄무늬는 옷과 일그러진 몸일 것이다. 왼쪽에는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쓴 듯한 ‘WOOK’ ‘KYUNG’ ‘ROOK’이 적혀 있다. 그림 속 형체는 그 자신인 것처럼 보인다. 최욱경이 가진 세 개의 눈은 무엇일까. 세 개의 눈을 가진 성난 여자미술사가 진휘연은 이 작품을 두고 “그가 미국에서 외국인 여성이라는 특별한 정체성에 대해 느끼고 관찰하는 과정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최욱경은 1963년 미국으로 유학한 뒤 평생 이방인처럼 살았다. 아시아인이자 여성으로. 한국에서도 낯선 ‘미국 스타일’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여겨졌다.그에겐 ‘요절한 천재’ ‘엘리트 코스를 밟은 화가’란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교학도서주식회사를 창립한 최상윤과 조하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0세 때 김기창(1914~2001) 박래현(1920~1976) 부부의 화실에서 첫 미술 교육을 받는다.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대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작품과 기록 속 그의 모습은 엘리트보다는 고독한 이방인에 가깝다. 남들이 보지 못한 부조리를 포착하는 ‘세 번째 눈’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최욱경이 미 뉴멕시코 로스웰미술관 레지던시에서 작업할 무렵. 친구였던 작가 마이클 애커스는 그가 한국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에 맞지 않는다며 자주 농담을 했다고 회고한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한국에선 성난 여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1966년 ‘성난 여자’를 그린 최욱경은 1971년 이후 국내에 머무를 때도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인식에 대해 일간지 기고나 대담을 통해 분명히 밝혀 나갔다.“이(남존여비) 관습을 고쳐가는 방법은 여자 자신에게 있다고 봅니다. 여성다움을 잃지 않고 자기의 똑똑함을 내세울 수 있어야 어디서든 남녀가 동등한 위치에 서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권 신장은 헌법을 고쳐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해결점은 우리 여성 자신에게 있습니다.”(최욱경 조미미 박미성 대담, 1979년 2월) “아직은 유아기적인 상태지만 여자로서의 감성과 체험에서 걸러져 나온, 여성의 의식에 관련된 표상을 창출시켜 직접적으로 구사한 시각적 용어로 표현, 전달하고 싶다.”(‘공간’ 1982년 5월)‘색채 추상’만으론 담을 수 없는 이야기그에게 붙는 또 다른 수식은 ‘추상화가’. 특히 추상표현주의 영향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폴록과 로스코, 고르키의 추상이 감정과 무의식을 표현하는 데서 출발했듯 최욱경도 모더니즘적인 추상만을 위해 작품을 전개하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 회화라고 말한다.“나는 내 인생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그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한다. 내 그림들은 그러한 추구의 결실이다. 나는 가끔 그림이 창조되는 과정이 내 생활과 꼭 같다고 느낀다.”(여성동아 1982년 3월)또 그가 미국에 머무르기 시작한 1960년대는 반전(反戰)운동과 페미니즘, 민권운동 등 다양한 욕망이 충돌했던 시기다. 그는 그림을 위한 그림에 갇히지 않고, 시대적 분위기를 그림 속에 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승자는 누구인가?’(1968) 속 인물은 젊은 나이에 사망한 친오빠를 상징한다.‘무무당’과 ‘생의 환희’1960년대 추상 회화에서 최욱경은 강렬한 색채 대비를 통해 공간의 활성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1970년대 말에 이르면 그림 속 형태의 질감이 좀 더 살아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흐드러진 꽃이나 깃털 같은 형태다. 1977년 대작 ‘환희’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나 사물에서 내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대상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마음속에서 화초처럼 자라기 마련이다. 나는 길을 걷다가도 하찮은 꽃 이파리나 새 깃털, 부서진 나비 날개 같은 것들을 줍는다. 보잘것없는 이 대상들이 나에겐 모두 흥미롭고 신비해 보일 때가 많다. … 가령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의 비상에서 내가 환희와 기쁨을 맛보고 사물의 이입을 연상하며 움직임의 연결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움. 그것을 나는 환희라고 말하고 싶다.”(여성동아 1980년 3월호) 이 무렵 그는 서울 여의도 아파트를 작업실 겸 집으로 쓰면서 그곳을 ‘무무당’(無無堂)이라 이름 붙였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으로는 좀처럼 규정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허무가 느껴진다. 허무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은 바로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었다. 꽃잎과 새의 깃털, 그리고 한국의 곳곳을 여행하며 보았던 산과 바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1985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1972년 최욱경은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을 발간했다. 시집 속 시 ‘나의 이름은’에서 그는 자신을 ‘이름 없는 아이’라 했다. 그러나 고독할지언정 스스로에게 솔직했던 그의 이야기는 조금씩 걸맞은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 한 때에/나의 이름은/ … 무지개 꿈 쫓다가/‘길 잃은 아이’였습니다./결국은/생활이란 굴레에서/아주 조그마한 채/이름마저 잊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랍니다./나의 이름은/‘이름 없는 아이’랍니다.”최욱경 작가(1940~1985)△1940년 서울 출생△1963년 서울대 회화과 졸업△1968년 미국 프랭클린 피어슨대 조교수△1971년 서울 신세계갤러리 개인전△1977년 미국 뉴멕시코 로스웰미술관 개인전△1985년 별세△1987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김민기자 kimmin@donga.com}

경매에 나온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또 유찰됐다. 15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경매에 겸재 정선(1676∼1759)의 화첩인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鄭敾筆 海嶽八景-宋儒八賢圖 畵帖·보물 제1796호)’이 출품됐다. 시작가 50억 원으로 경매에 오른 화첩은 당초 고미술 최고가 거래 기록을 깰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경매사가 3번이나 호가했음에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2013년 2월 보물로 지정된 이 화첩에는 금강산과 주변 동해안 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 8점, 송나라 유학자를 소재로 한 고사인물화 8점 등 총 16점이 수록됐다. 현재 고미술 작품 중 최고가로 거래된 것은 2015년 12월 서울옥션에서 3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보물 1210호 조선 후기 불화 ‘청량산괘불탱(淸凉山掛佛幀)’이다. 앞서 5월 케이옥션 경매에서도 간송 전형필(1906∼1962)의 후손이 내놓은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과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이 각각 시작가 15억 원에 출품됐으나 유찰된 바 있다. 이렇게 문화재가 경매에 나오는 것은 소장자의 재정난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출품된 겸재 화첩은 우학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이들 작품이 과도하게 높은 가격에 경매에 나온 것을 유찰의 원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화재는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하지만, 실제 경매에 나올 때는 수요자 등 시장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재가 거래된 경우가 많지 않아 합리적인 기준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거래된 문화재 가운데 보물은 18건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충남 부여 능산리 왕릉(사진)의 봉분 크기가 현재보다 큰 규모임이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백제 사비도읍기의 왕실묘역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에 대한 지하물리탐사 결과 백제 사비기 왕릉의 봉분은 현재 복원, 정비돼 있는 지름 20m 규모보다 훨씬 크게 조성되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15일 밝혔다. 지하물리탐사는 전기나 진동을 사용해 땅의 물리적 성질 변화를 측정하고 땅속의 구조물과 매장 문화재의 분포를 판단하는 고고과학 기술이다. 탐사 결과 무덤의 경계를 나타내는 호석(護石)으로 추정되는 석재 반응이 확인됐다. 이 호석의 존재로 유추하면 각 봉분은 지름이 25∼30m 규모로 현재보다 5∼10m가량 크다. 또 왕릉의 배치는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각각 두 기씩 모여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함께 조성했거나, 가족 단위로 무덤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사비기 왕릉으로, 당시 능원(陵園)제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받았다. 고분군 서쪽에 있는 능산리 사지(왕릉 주위에 세운 절터)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됐다. 이 지역은 1757년 제작된 ‘여지도서’에 능산(陵山)으로 표시돼, 조선 시대에도 백제 고분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발굴조사는 1915년 일본인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와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谷井齊一)가 처음 실시했으나 정식 보고서도 없이 간단한 설명과 사진 몇 장만 남았다. 현재는 1966년 보수공사 중 조사된 8호분과 함께 총 7기 고분이 정비돼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나는 너희 인간들이 결코 믿지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성운 언저리에서 불타 침몰하던 전함, 탄호이저 기지의 암흑 속에 번뜩이던 섬광. 그 모든 것이 곧,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 빗속에 흐르는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SF영화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1982년)의 절정인 옥상 결투 장면에서 리플리컨트(복제인간) 로이(룻거 하우어)의 마지막 대사다. 로이는 리플리컨트 사냥꾼인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살려준 뒤 이 명대사를 읊고는 ‘작동’을 멈춘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최근 출간된 ‘제임스 카메론의 SF이야기’(아트앤아트피플)에서 이 대사를 하우어가 직접 썼다고 밝혔다. 그동안 영화광들만 알고 있던 뒷이야기다. 책에 따르면 스콧은 마지막 촬영 전날 오전 1시 하우어가 트레일러로 자신을 불러 “대사를 좀 써봤어요” 하고 말을 건넸다. 각본상 대사는 “죽을 시간이야”였다. 하우어가 직접 쓴 대사를 읽어줄 때 스콧은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고 털어놨다. “우리는 나가서 한 시간 만에 그 장면을 찍었어요. 마지막에 룻거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죽을 시간이야’라고 말한 뒤 손에 들고 있던 비둘기를 놓아 버리죠.” 스콧 감독을 인터뷰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그 장면은 (수명 4년의 복제인간) 로이에게 영혼과 완전한 지각이 있다는 걸 말한다”고 덧붙인다. 이 책은 미국 제작사 AMC의 6부작 TV다큐멘터리 내용을 담았다. ‘아바타’의 캐머런 감독이 스콧 감독 및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커스, 크리스토퍼 놀런, 기예르모 델 토로 같은 거장들, 그리고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SF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스필버그와 루커스는 역설적으로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스필버그는 “영화 ‘ET’는 원래 부모님의 이혼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털어놓는다. 외계생명체, 우주, 시간여행, 괴물 등을 주제로 SF 전문가 6명의 에세이도 수록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30송이 해바라기’(사진)가 9일(현지 시간) 열린 소더비 홍콩 경매에서 약 1481만 달러(약 177억 원)에 팔렸다. 이는 아시아에서 판매된 서양 작품 중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서양 작가 최고가는 지난해 봄 소더비 홍콩에서 거래된 카우스의 작품(카우스 앨범·약 1496만 달러)이다. 해바라기 정물화인 호크니의 작품은 2011년 5월 미국 뉴욕 필립스 경매 이후 처음 경매에 다시 나왔다. 당시 낙찰가는 250만 달러(약 30억 원)였다. 작품은 코로나19로 예정된 공개 전시도 취소됐지만, 이번에는 추정가의 1.5배 가격에 팔렸다. 이에 따라 인상주의나 모더니즘 회화를 선호했던 아시아 컬렉터들의 취향이 동시대 미술 작가의 작품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현대미술 경매에서는 출품된 39점 중 3점만이 유찰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어딜 가나 부동산이 대화의 주제로 오르는 요즘, 대부분의 관심사는 투자와 자산 증식이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을 받고, ‘초등학교 품은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등 조언이 쏟아진다. 그런데 저자는 “대출에 발목 잡히기 싫어” 아파트를 거부하고, 오로지 독립할 자유를 위해 작은 빌라를 구매한다. 집을 사는 과정은 10년간 모은 돈과 은행 대출은 물론, 금연까지 해가며 돈을 쥐어 짜내는 분투기에 가깝다. 중개업자를 따라 ‘빌라 관광’을 다니고, 협상으로 매매가를 깎는 등 경험을 솔직하게 적었다. 부동산 투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기대했던 내용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주택 구매를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사람에겐 첫 경험에 관한 이야기가 솔깃하게 들릴 만하다. 저자도 결국 분투한 끝에 ‘2년마다 이사하지 않을 자유’를 얻었으니 말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오늘도 쾌변’(웅진지식하우스)은 그 가면을 가감 없는 쾌변(快辯)으로 내팽개친다. 저자는 대한민국 변호사 2만7880명 중 하찮은 1인을 자처하는 박준형 씨(39). “‘잘나가는 변호사’와 지구 열두 바퀴쯤의 거리가 있고 존재감은 중력의 2만7880분의 1조차 작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그를 9일 만났다. ―‘생계형 변호사’라는 필명으로 글을 연재했다. 첫 글을 쓴 순간은 어땠나. “거창한 계기는 없다. 혼자 야근하다 ‘집에 갈까’ ‘내일 할까’ 잡생각 중에 ‘브런치’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을 가볍게 표출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거창함, 허세를 극도로 거부한다. “변호사가 쓴 책이라면 절반은 어렵게 지식을 전달하고, 나머지는 눈물콧물 빼는 사건 이야기다. 나는 다른 길로, 이 바닥에 없으면 모르는 이야기를 재밌게 해보고 싶었다.” ―변호사를 향한 판타지에 ‘그게 아니에요!’ 항변하는 느낌이다. “변호사가 되면 좋은 삶이 보장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전혀 아닌 거다. ‘서초동 사람’ 대부분은 평범한 직장인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하기도 하다. 드라마처럼 멋있게 판사와 싸우는 일은 절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제가 해보니까요, 그건 아니던데요’ 하고 솔직히 말하면 재미도 있고,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소송전에선 빌런과 히어로의 구별이 의미 없다’ 등 찰진 표현이 번뜩인다. “에세이는 읽어본 지 오래됐고 책은 업무상 읽는 게 대부분이다. 어릴 때 ‘삼국지’는 열심히 봤다.” ―삼국지가 기발한 표현의 근원은 아닌 것 같다. “사실은 예능 PD가 꿈이었다. 꿈은 못 이뤘지만 TV나 글을 보며 재밌는 플롯을 상상하곤 했다. ‘무한도전’은 폐지될 때까지 챙겨 봤고, tvN의 ‘SNL 코리아’도 좋아했다. 주류보다 B급 코미디, ‘병맛’ 코드를 좋아한다.” ―사람을 웃기면 기쁜가. “당연하다. 말로 하는 ‘드립질’에는 약한 ‘키보드 워리어’다. ‘글로 쓸 때 재밌다’는 반응이 온다.” ―어쩌다 변호사가 됐나. “한 번도 이 일을 생각해본 적 없다. 비대면이 좋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마시기도 어렵다.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더라.” ―‘자갈치 부인’과 중국동포 에피소드는 찡하다. “귀화를 거부당한 중국동포는 납득이 안 됐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자갈치 부인’은 포기하지 않는 의뢰인 덕분에 ‘정의를 맛본’ 경험이었다.” ―딱딱한 판결문으로만 귀결되는 변호사 일의 인간적 모습이 생생하다. “여전히 변호사나 법조계에 오해가 많다. 과거 이미지로 ‘영업하려니’ 거창한 면이 있지만 속은 똑같은 직장인이다. 부담 없이 편히 봐주시면 좋겠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직도 피카소가 인기 있을까?’ 싶지만 피카소는 역시 피카소다. 서울 성동구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리는 ‘PRINCE|PICASSO’전 이야기다. 리처드 프린스의 콜라주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세라믹 작품 각각 10점을 선보이는 소규모 전시인데도 입소문으로 주말마다 관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이 전시는 피카소가 직접 빚은 세라믹 작품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 그간 경매 등에서 봤던 대부분 작품들은 피카소의 디자인으로 공방에서 제작한 ‘에디션’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에선 피카소가 직접 그리고, 손으로 꾹꾹 눌러 만든 형태의 흔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한 형상이나, 에게해 인근의 고대 그릇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도 보인다. 피카소가 도자기를 만든 곳은 프랑스 남부의 발로리스였다. 남프랑스 코트다쥐르에서 휴가를 보내던 피카소는 1946년 발로리스의 연례 도자기 전시를 방문한다. 이곳에서 알게 된 마두라 공방의 수잔, 조르주 라미에 부부에게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후 25년간 마두라 공방과 인연을 맺으며 600종 4000점 이상의 세라믹을 디자인했다. 피카소는 1년간 만든 작품으로도 대규모 전시 하나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다작이다. 여름휴가에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도자기를 만든 이유는 뭘까. 유약과 굽기에 반응하는 ‘회화와는 다른 기술’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상품성도 큰 매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피카소는 컬렉터들이 세라믹에 좀 더 쉽게 접근하길 바랐다. 그래서 ‘에디션’을 수백 점 생산해 가격을 낮췄고, 이들이 최근 10여 년간 국제 경매 시장에서 꾸준히 거래됐다. 에디션 작품은 보통 수억 원대를 호가하지만 저렴한 작품은 수천만 원대에도 팔린다. 사실 이 전시는 리처드 프린스의 콜라주가 메인이다. 도록 속 피카소의 그림을 뜯어내 프린스의 방식대로 변형한 작품으로 2012년 스페인 피카소 말라가 미술관 개인전에서 선보인 것들이다. 찢어져 너덜너덜한 가장자리와 가위로 오려진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프린스가 “나도 피카소만큼 대단한 화가다”라고 과시하는 듯하다. 그런데 아기자기하고 자유분방한 피카소의 세라믹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걸 막기가 어렵다. 전시는 3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때에/나의 이름은/낯설은 얼굴들 중에서/말을 잊어버린 ‘벙어리 아이’였습니다./타향에서 이별이 가져다주는/기약 없을 해후의/슬픔을 맛 본 채/성난 짐승들의 동물원에서/무지개꿈 쫓다가/‘길 잃은 아이’였습니다.’(최욱경의 시 ‘나의 이름은’) 1970년대 강렬한 추상 회화로 국내 화단에 깜짝 등장했던 미술가 최욱경(1940∼1985)의 작품이 내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관객을 만난다. 주로 체류하던 미국에서는 아시아 여성으로, 국전 중심의 보수적 국내 화단에서는 이방인으로 여겨지곤 하던 최욱경. 스스로를 ‘이름 없는 아이’로 칭했던 그의 작품이 조금씩 걸맞은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6일 미술계에 따르면 최욱경의 작품은 내년 5월 5일∼9월 6일 열리는 퐁피두센터의 ‘Women in Abstraction(추상 속 여성)전’에 포함됐다. 전 세계 작가 112명의 작품 40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로 그의 색채 추상 3점이 전시된다. 퐁피두센터 이후에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순회전(2021년 10월 22일∼2022년 2월 27일)을 연다. 이번 퐁피두센터 전시는 최근 국제 미술계의 ‘미술사 다시 보기’ 열풍에 발맞춰 백인 남성 중심의 기존 미술사를 벗어나 여성 작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앞서 미국 뉴욕 구겐하임에서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전은 60만 명이 찾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전시에도 클린트를 비롯해 루이스 부르주아, 바버라 헵워스 등 여성 거장의 작품이 걸릴 예정이다. 전시를 기획한 크리스틴 마셀 수석 큐레이터는 “기존의 많은 전시가 추상 예술에서 여성의 역할을 축소해 왔다”며 “부당하게 가려진 여성들의 작품을 재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은 국내 1세대 조각가 송영수(1930∼1970)의 개인전 ‘상념의 공간: 조각가의 스케치북’전(사진)을 9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송영수 조각가의 작고 50주기를 추모하는 전시로, 조각 작품 17점과 생전 남긴 스케치북 100여 권에 포함된 드로잉 및 에스키스(초벌그림) 1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 말 이후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1957년 국전 추천작가 자격으로 출품했던 ‘효’와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순교자’ 등이 전시된다. 작품 대부분은 인체와 나무, 새 등을 단순화한 형태로 구성돼 있다. 또 드로잉을 통해 작품을 구상하기까지의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송영수는 서울대 조소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부 한국인은 일본의 어려움을 고소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인도 이 책을 경고의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전 세계 부(富)의 16%를 차지하며 세계를 호령했던 경제대국이다. 1990년대 들면서 침체에 빠지더니 정치도 퇴행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잃어버린 10년’ 혹은 ‘잃어버린 20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상황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전망을 시도한다. 저자인 브래드 글로서먼은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퍼시픽포럼 선임고문이다. 그가 1991년부터 일본 마이니치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27년 동안 도쿄에서 다양한 개인과 집단을 만나며 일본 사회를 관찰한 경험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일본이 이미 경제 성장의 마지막 정점을 찍었으며 현재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대 일본을 덮친 4가지 충격으로 저자가 제시한 키워드는 이렇다. 첫째,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등 금융위기, 둘째 민주당으로의 짧은 정권 교체와 이후 자민당 독주, 셋째 센카쿠 열도 분쟁, 넷째 동일본 대지진. 아베 신조 정권도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위의 네 번의 충격을 거쳤음에도 구조와 태도의 한계가 여전히 일본을 옥죄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 한계 속에는 상대방을 좌절시키기 위한 ‘반대를 위한 반대’, 정치인이 전문성 없이 각료를 돌아가며 맡는 ‘가라오케 민주주의’ 등 정치의 무능이 있다고 분석한다. 게다가 시민사회에는 패배주의와 체념이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원전 사고가 총체적 인재로 드러나 일본의 ‘안전 신화’마저도 해체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이 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익과 자원에 대한 정확한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후 정부가 일본의 힘과 목적의 현실성에 맞춘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만큼 심각한 인구 문제에 봉착했고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 않고 있는 한국 또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강조한다. 비생산적인 기업(한계기업)을 떨쳐내지 않으면 일본처럼 ‘좀비 기업’ 퇴출을 거부한 대가로 큰 압박에 직면할 것이란 조언은 의미심장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작품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영역이며, 위작이나 저작권 다툼이 없는 한 사법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 25일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조수를 사용해 완성한 그림을 판매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 씨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미술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한 사실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할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첫 판결이었다. 미술계의 조수 사용이 르네상스 시대부터의 오래된 창작 방식임에도 ‘작품은 손으로 직접 그려야만 한다’는 일반 인식을 새롭게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 화단 안팎에서 나온다. 검찰은 조 씨가 화가 송모 씨의 그림에 덧칠과 서명만 해 자신의 것으로 속여 팔았다며 조수 송 씨를 ‘대작(代作)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수 송 씨는 작가가 아닌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하며 작품 거래에서 친작(親作) 여부를 필요한 정보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2심 변론을 맡은 구본진 변호사는 “현대미술은 손기술이 아닌 작가의 사상과 인식이 중요하기에 친작 여부가 작품 거래에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지 않는다”며 “이 사건이 유죄라면 박서보, 김창열, 데이미언 허스트 같은 국내외 유명 작가도 사기 혐의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수 사용 여부가 작품의 시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국제적 기준임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다양한 외신 기사로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창작의 자유가 침해될 정도로 형벌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주요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창작 방식은 작가가 선택할 문제임을 인정한 것이다. 예술가의 조수 사용에는 영세한 규모부터 대규모 스튜디오, 전체 작품의 일부부터 전부를 의뢰하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조수 사용을 사기로 본다면 그 방식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규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예술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고 사법권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그림은 (예술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 ‘미술 전공을 해야 예술을 한다’는 화단 일각의 견해도 성찰에 직면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인사는 “조영남을 비판하고 싶다면 비평으로 다룰 일을 법정에 가져갔던 것”이라며 “가수가 립싱크를 한다고 처벌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 조 씨는 이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을 출간했고 조만간 팝아트 관련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김민 kimmin@donga.com·신동진 기자}

“예술 작품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영역이며, 위작이나 저작권 다툼이 없는 한 사법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 25일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조수를 사용해 완성한 그림을 판매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 씨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미술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한 사실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할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첫 판결이었다. 미술계의 조수 사용이 르네상스 시대부터의 오래된 창작 방식임에도 ‘작품은 손으로 직접 그려야만 한다’는 일반 인식을 새롭게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 화단 안팎에서 나온다. 검찰은 조 씨가 화가 송모 씨의 그림에 덧칠과 서명만 해 자신의 것으로 속여 팔았다며 조수 송 씨를 ‘대작(代作)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수 송 씨는 작가가 아닌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하며 작품 거래에서 친작(親作) 여부를 필요한 정보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2심 변론을 맡은 구본진 변호사는 “현대미술은 손기술이 아닌 작가의 사상과 인식이 중요하기에 친작 여부가 작품 거래에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지 않는다”며 “이 사건이 유죄라면 박서보, 김창열, 데미언 허스트 같은 국내외 유명작가도 사기 혐의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수 사용 여부가 작품의 시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국제적 기준임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다양한 외신 기사로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창작의 자유가 침해될 정도로 형벌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주요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창작 방식은 작가가 선택할 문제임을 인정한 것이다. 예술가의 조수 사용에는 영세한 규모부터 대규모 스튜디오, 전체 작품의 일부부터 전부를 의뢰하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조수 사용을 사기로 본다면 그 방식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규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예술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고 사법권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그림은 (예술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 ‘미술 전공을 해야 예술을 한다’는 화단 일각의 견해도 성찰에 직면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인사는 “조영남을 비판하고 싶다면 비평으로 다룰 일을 법정에 가져갔던 것”이라며 “가수가 립싱크를 한다고 처벌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보물로 지정된 겸재 정선(1676∼1759)의 화첩이 경매에 출품된다. 케이옥션은 다음 달 15일 경매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796호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鄭敾筆 海嶽八景-宋儒八賢圖 畵帖)’이 나온다고 23일 밝혔다. 추정가는 50억∼70억 원이다. 이 화첩은 겸재가 금강산과 동해안 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 8점과 송나라 유학자를 소재로 한 고사인물화 8점 등 16점을 수록하고 있다. 서로 다른 주제인 산수화와 인물화로 구성한 것이 드문 예임을 인정받아 2013년 2월 28일 보물로 지정됐다. 현재 우학문화재단 소유로 용인대가 관리하고 있다. 진경산수화는 ‘단발령’ ‘비로봉’ ‘혈망봉’ ‘구룡연’ ‘옹천’ ‘고성 문암’ ‘총석정’ ‘해금강’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비로봉 혈망봉 구룡연 옹천 해금강은 겸재의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에는 들어 있지 않다. 기존 고미술품 최고 낙찰가는 보물 제1210호 ‘청량산괘불탱’이다. 2015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 추정가 40억∼150억 원으로 출품돼 35억2000만 원에 낙찰됐다. 출품작은 다음 달 4일부터 경매일까지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사전 예약 후 관람할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