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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신천지예수교(신천지)가 “신도들은 코로나19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23일 김시몬 신천지 대변인은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성도들은 당국의 방역 조치를 믿고 일상생활을 해온 국민이자 피해자”라며 “성도에 대한 혐오와 근거 없는 비난 자제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또 “대구교회 성도 전체 명단을 보건당국에 넘겼지만, 이것이 유출돼 지역사회에서 강제 휴직이나 차별, 모욕, 심지어 퇴직 압박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신천지는 “대구교회 성도 중 연락이 닿지 않았던 670명 중 407명은 검사를 받도록 했고, 장기간 교회 출석하지 않아 연락되지 않는 253명은 연락 시도 중”이라며 “사태 조기 종식을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협조하겠고, 당국의 모든 조치에 협력할 것을 성도 여러분께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신천지는 앞서 22일 전국 교회와 부속기관 1100곳의 주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신천지 총회 산하 12지파에는 본부·지교회 74곳, 부속기관 1026곳이 있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242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170곳, 전라와 경상이 각각 128곳이었다. 신천지 측은 주소를 공개한 교회 및 부속기관에 18~21일 방역 작업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또 대구교회 성도 9000여 명과 이곳을 찾은 다른 지역 신도 201명, 확진자 접촉자에 대해 자가 격리시켰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신천지가 공개한 자료에 대해 “경기도에서 확보한 자료와 일부 차이가 있다”며 “경기도민 중 16일 대구 집회에 참석한 신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세부적 자료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며칠 새 급증했다. 띠지에 적힌 에릭 토너 미국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대학 의학 박사의 “우리는 전염병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막상 표지를 펼쳐보니 책은 바이러스가 아닌 박테리아에 관한 이야기다. 주제만 보면 어렵고 무거울 것 같지만, 인간미가 뚝뚝 묻어나는 글 속에 첫 장부터 푹 빠져든다. 시작은 2014년 10월 어느 날. 흑인 정비공 잭슨이 간이침대에서 괴로운 듯 몸부림치며 저자를 찾아온다.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은 그를 검사해 보니 슈퍼버그에 감염된 상태. 맞는 약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 그에게 동료 톰 월시가 ‘달바반신’ 연구를 제안한다. 잭슨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 그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책 제목인 ‘슈퍼버그’는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박테리아를 말한다. 미국 뉴욕 프레스비테리언 병원 의사인 저자는 이 슈퍼버그에 맞설 항생제를 상용화하기 위해 벌인 임상실험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저자는 수차례 거절을 당한 끝에 2017년 7∼11월, 2018년 2∼9월 사전, 사후 연구를 진행한다. 달바반신은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도 받았지만, 부작용 가능성 때문에 임상실험이 필요했다. 이 과정을 서술하며 그는 왜 부작용을 정밀하게 따져봐야 하는지, 또 임상실험 연구윤리는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역사 속 사례를 들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페니실린을 개발한 알렉산더 플레밍은 물론이고 유대인을 대상으로 잔혹한 생체실험을 했던 나치의 만행까지도 언급돼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백미는 그가 임상실험 대상자들을 만나며 털어놓은 이야기를 열거하는 부분이다. 연구 성과를 위한 수단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피험자를 대하려는 노력이 묻어난다. 자신의 실험에 응해 준 피험자들의 사연을 인간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피험자 중에는 나치의 생체실험을 당했던 피해자도,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 두 사람이 한 병실에 모이게 된 것을 아이러니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사려 깊다. 정체 모를 질병이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하는 요즘,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게도 만든다. 역사는 플레밍은 기억하지만, 시판되는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약품 니스탄틴을 개발한 엘리자베스 헤이즌과 레이철 브라운은 기억하지 않는다.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들을 적절하게 소개하며, 명성이 아닌 사명감으로 움직인 사람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스케치해 보여준다. 독서 인구가 줄어든다는 요즘, 책의 유용성은 바로 이런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전문 분야의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내부자가 된 듯 생생하고 명확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19년 4월 봉준호 감독의 전화 인터뷰를 통역하다 그가 언급한 영화 제목을 놓쳤을 때 다른 사람이 (통역) 자리를 차지하겠구나 싶었다. … 어느새 오스카 트로피 6개로 여정이 끝났다.”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 과정에서 봉 감독의 절묘한 통역사로 찬사를 받은 최성재(샤론 최·사진) 씨가 19일 미국 연예 주간지 버라이어티에 지난 6개월간 이어진 여정의 소회를 담은 기고를 보냈다. 기고에서 “불면증과 문화 차이를 극복하려 평생 본 영화와 봉 감독의 명확한 표현에 의존했다”고 밝힌 최 씨는 “그럼에도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자신의 성공이 운으로 얻어졌다고 생각해 불안해하는 심리)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유일한 치료제는 “무대에 오르기 전 10초간의 명상과 ‘사람들은 내게 관심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어렸을 때 2년간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자신을 한국인이기에는 너무 미국적이고, 미국인이라기에는 너무 한국적인 ‘이상한 혼종’으로 만들었다는 최 씨는 “두 가지 언어를 오가는 것은 내 삶의 방식”이라며 “나는 20년간 나를 통역했다”고 했다. “보통 사람이 1만 단어를 안다면 2개 언어 구사자는 각 언어의 5000단어만을 안다고 한다. 평생 두 언어 사이에서 애를 먹었고 그래서 시각언어를 지닌 영화에 빠졌다.” 미국의 저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홀리혹 하우스’에서 잡지 뉴욕매거진과 한 인터뷰를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봉 감독이 직관적으로 (홀리혹 하우스라는) 공간을 읽어내는 모습은 카메라, 공간, 캐릭터라는 ‘영화의 삼위일체’에 대한 마스터클래스를 듣는 듯했다.” 그는 “당분간 노트북과 씨름하며 보낼 것 같다. 내게 남은 유일한 통역은 나 자신과 영화뿐”이라며 글을 마쳤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19년 4월, 전화 인터뷰 중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영화 제목을 놓쳤을 때, 다른 사람이 이 자리를 차지하겠구나 싶었다.…그 후 나는 프랑스 칸에서 한국 영화가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는 장면을 목격했다.” 봉 감독의 통역사 최성재 씨(샤론 최)의 기고문을 19일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가 독점 공개했다.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고사해한 최 씨가 10개월간의 ‘오스카 레이스’를 보낸 소감을 담담한 글로 공개해 눈길을 끈다. 그는 “(미국에서) 6개월은 새로운 도시와 좋은 소식, 목소리를 지키기 위한 허니레몬티로 가득 찬 시간 이었다”며 “순식간에 할리우드의 심장에 빨려 들어간 믿을 수 없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끝나면 다가올 우울함을 달래려 1월은 바닷가에서 보내기로 작정했다”고 털어놨다. 칸 영화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고국의 영화에 감동 받는 모습이 뭉클했다”고 했다. “어릴 때 미국에서 보낸 2년은 나를 이상한 ‘혼종’으로 만들었다. 미국인이 되기엔 너무나 한국적이며, 한국인이기엔 너무나 미국적인, 그렇다고 한국계 미국인도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책과 영화로 꾸준히 영어를 익혔지만, 정작 대학을 다니려고 로스앤젤레스(LA)에 갔을 때 ‘잘 지내?’라는 인사에도 답하기 어려웠다. 언어 때문에 사람들에게 내 생각의 절반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영화도 두 곳 이상의 문화를 담기는 무척 어렵다. 그런데 ‘기생충’은 순식간에 장벽을 허물었다. 나는 이틀만 통역을 맡기로 했지만, 결국 폐막식 날 무대 뒤에서 ‘기생충’의 수상을 숨죽이며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오스카 레이스’에도 함께 하게 된 그는 “나의 나머지 1년은 모두 유튜브에 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일로 이전의 기억을 지우기 바쁜 시간이었다. 불면증과 문화 차이를 극복하려고 평생 본 영화들에 기댔고, 봉 감독의 명확한 표현에 의존했다.”고 적었다. “봉 감독의 배려와 대학에서 그에 관해 논문을 쓴 경험이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자신의 성공이 운으로 얻어졌다고 생각해 불안해하는 심리)과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잘못 옮길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무대 뒤에서의 10초 명상과 ‘사람들이 보는 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생각만이 유일한 치료제였다.” 그는 ‘오스카 레이스’가 영광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유머 넘치는 봉 감독와 배우 송강호의 이야기에 터지는 웃음, ‘기생충’ 출연진이 배우조합상을 수상하고 나온 기립 박수, 그리고 봉 감독이 마틴 스코세지에게 경의를 표하는 반짝이는 순간을 직접 경험한 것은 특권이다.” 그리고 평소 흠모했던 영화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뻐하는 모습에 봉 감독이 ‘성덕’(starstruck)이라고 놀렸다고도 했다. 그는 “다가올 시간에는 그들과 함께 다시 일하게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아마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홀리혹 하우스’에서 진행한 봉 감독의 뉴욕 매거진 인터뷰를 그는 기억의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아름다운 라이트의 건축 안에서 봉 감독이 직관적으로 공간을 읽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스터클래스를 듣는 듯했다. 자신의 비전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봉 감독의 능숙함은 그가 조여정의 화보를 연출했을 때 더 빛났다. 유머와 재치가 곁들어진 빠른 판단력은 많은 영감을 줬다.” 그러면서 “두 가지 언어를 오가는 것은 나의 직업이 아니라 오히려 생존 방식”이었다고 털어놨다. “나는 20년 동안 나를 통역해야만 했다. 한 심리학자가 언젠가 내게 말하길, 1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 1만 단어를 안다면, 2개 국어 구사자는 각 언어의 5000단어만을 안다고 했다. 나는 평생 두 언어 사이에서 애를 먹었다. 그래서 영화의 시각 언어에 빠져들게 됐다. 영화는 나의 내면이 외부와 소통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통역과 비슷하지만, 억지로 단어에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또 “통역은 뇌의 언어적 능력이 아닌 유연한 사고 능력을 요구한다”며 “공교롭게도 유연함이 ‘기생충’을 이 자리에까지 오게 해줬다”고 덧붙였다. “유연함은 이해와 공감을 넓혀준다. 공감은 ‘타자’와 나를 연결해주는 다리다. 그리고 나는 덜 외롭기 위해 이야기꾼이 되기로 했다. 이 글은 오스카 레이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나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 대한 것이다. 봉 감독이 인용한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처럼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기에, 나는 지금 한국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 받는 관심이 순간에 불과할 것임을 안다고 털어놨다. “내 얼굴이 소셜미디어 피드에 뜨는 경험은 참 이상했다. 트위터에 내 이름이 비아그라 광고에 해시태그로 언급되는 걸 보고, 지금의 유명세가 반짝 인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화장품 광고 제안이 왔다고도 들었다. 나는 영화에 대한 관심을 퍼뜨려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다. 한국 정부가 2월 9일을 ‘기생충 국경일’로 정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다음번엔 내 이름이 나의 이야기(작품)를 통해 언급되었으면 좋겠다.” 그는 화려한 시간에서 벗어나 작품에 몰두할 것이라며 글을 마쳤다. “당분간 나는 노트북과 씨름하며 보낼 것 같다. 내게 남은 유일한 통역은 내 자신과 영화뿐이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미술계도 휘청하고 있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상반기 주요 행사인 ‘아트바젤 홍콩’은 취소됐다. 갤러리와 미술관도 전시회 개막식을 치르지 않거나 전시를 미루는 분위기다. ‘아트바젤 홍콩’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중(反中) 시위 여파로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는데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7일 취소를 공식 발표했다. 아트바젤 측은 참여 갤러리가 낸 부스 비용의 75%를 환불할 방침이다. 부스 비용은 1만9500달러(약 2300만 원)에서 10만 달러(약 1억1800만 원) 이상이다. 아트바젤 홍콩에 참여하려던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아직 작품을 운송하지 않아 손해는 줄었지만 오랜 기간 준비했기에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갤러리 가운데는 관객 감소를 우려해 전시를 연기한 곳이 적지 않다. 국제갤러리는 제니 홀저와 박서보 개인전을 미뤘다. D뮤지엄은 21일로 예정된 ‘SOUNDMUSEUM: 너의 감정과 기억’전 개막을 다음 달 25일로 미뤘다. D뮤지엄 관계자는 “설치는 하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더 많은 관객이 볼 수 있도록 개막일을 옮겼다”고 말했다. 19일부터 23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C홀에서 ‘2020 화랑미술제’를 여는 한국화랑협회는 자구책을 마련했다. 110개 참여 갤러리의 개별 부스를 모두 촬영해 네이버 ‘아트 윈도’에 온라인 공개하기로 한 것. 다만 작품 목록이나 가격은 ‘아트 윈도’에 공개를 결정한 갤러리의 작품만 확인할 수 있다. ‘2020 화랑미술제’ 개최 결정은 코엑스 측과의 계약 조건도 영향을 미쳤다. 최웅철 화랑협회장은 “개최일 기준으로 열흘 이전까지 취소할 경우 위약금 80%에 2년간 장소 배정에서 배제돼 지속적인 개최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전체 갤러리의 의견을 물었더니 75개 갤러리가 개최를 찬성한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드높인 예술인에게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가 ‘숟가락을 얹는’ 관습이 영화 ‘기생충’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영화 속) 기택 네 반(半)지하 집 세트 복원’부터 ‘봉준호 영화박물관’까지 봉준호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봉 감독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달서병)이 “대구 남구에서 태어나 세계에 이름을 떨친 봉 감독은 한국의 자랑”이라며 “대구 신청사 앞 두류공원에 봉준호 영화박물관을 건립해 관광 메카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대구 남구는 “봉 감독이 어렸을 때 살던 주택을 중심으로 영상문화사업이나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4·15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예비후보들 사이에서는 ‘봉준호 카페거리’ ‘봉준호 생가 터 조성’ ‘봉준호 동상’에 ‘기생충 조형물 설치’ 공약까지 등장했다. 온라인에서는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삼성역 옆에 있는 거대한 양손 모양의 ‘강남스타일’ 조각상이 떠오른다. ‘기생충 조형물’은 막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기생충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집 세트가 조성됐던 경기 고양시의 이재준 시장은 “세트를 복원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이고 스토리가 있는 문화관광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 없이 인기에만 편승해 기념관 등이 생긴다면 지속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봉 감독과 작품 자체에 누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 반면교사가 ‘백남준 기념사업’이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 1990년대 귀국했을 때 그의 명성에 기대어 각종 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았다. 기념관도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참담하다. 백남준 작품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백남준 에스테이트’는 한국 미술계 누구와도 협조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 저작권자에 대한 인식과 존중도 없이 백남준의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협의도 없이 백남준의 이름을 건 미술관을 세우려는 시도들이 신뢰를 허물었다. 올해 세계 5개 도시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열리지만 국내 어떤 미술관도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고국에서 볼 수 없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생충 공약’을 내건 정치인과 지자체는 봉 감독이나 제작사 측에 저작권 문의라도 한번 해봤을까. 16일 귀국한 봉 감독의 미국 일정 전에 이들 공약이 쏟아진 걸 보면 매우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기생충’을 보기는 했을지도 궁금하다. 훌륭한 예술작품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도 전에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가슴 아프다. 소프트파워는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부가적으로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어두운 식으로는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시리아 제국의 니네베 왕궁 부조의 생생한 표현과 중국 현대미술가 차이궈창의 설치 미술 작품을 비교하는 글로 시작된다. 고대 미술이라고 하면 그리스 조각상(그나마도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을 떠올리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만들어진 조각의 사실적이고 생생한 표현도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움을 준다. 책은 이런 예술 작품들이 왜 감동을 주는지, 그 원인을 ‘생경함’에서 찾아낸다. 영국에서 미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저자는 ‘세계 100대 작품으로 만나는 현대미술 강의’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이번 책 또한 전통적 미술사 흐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생경함을 키워드로 여러 작품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로 구성됐다. 새로운 관점보다 미술사의 기초를 큰 틀에서 다시 짚어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실과 직물을 키워드로 역사를 돌아본다. 그 중요성이 총보다 강하다면서 말이다. 이집트 미라를 감쌌던 리넨부터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레이스, 그리고 최초로 달에 안착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옷까지. 역사를 하나의 테마로 풀어낸 책은 종종 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성의 일’이었기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테마를 복원해 흥미롭다. 예를 들어 박물관에 가면 유럽을 정복했던 바이킹의 나무배만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배는 여성들이 짠 돛이 없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중세 잉글랜드 왕국이 부상한 경제적 원동력도 양모 산업이다. 실과 바늘이 자아내는 아름다움과 사회를 추동하는 인간의 욕망을 렌즈로 해서 가려진 역사를 조명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복식사를 전공하고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자였던 저자의 글은 치밀하고 맛깔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디즈니 같은 거대 회사가 아니다 보니 물량 대신 감독을 갈아 넣는 식으로…. 엄청난 양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송)강호 형님은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쌍코피도 흘렸다.”(봉준호 감독) 아카데미상(오스카)은 심사위원이 아닌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약 8400명의 투표로 결정된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배급사와 스튜디오가 엄청난 예산과 물량을 투입해 홍보전을 펼친다. 마치 선거운동을 방불케 해 ‘오스카 캠페인’이라고 부른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캠페인 전담팀이 상설 조직으로 있고, 통상 최대 3000만 달러(약 358억 원)를 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영화 최초로 ‘오스카 캠페인’에 뛰어든 ‘기생충’은 CJ ENM과 북미 배급사인 네온(NEON)이 나서며 100억 원대를 들였을 것으로 영화계는 추정한다. 미국 콜로라도주 텔루라이드 영화제(지난해 8월 30일)를 시작으로 토론토 영화제(9월 5일), 뉴욕 영화제(9월 27일) 등 북미권 영화제 참석으로 개봉 전 ‘붐 조성’ 작업을 했다. 봉 감독도 500번 이상의 외신 인터뷰, 100여 차례 GV에 나섰다. 미국감독조합 제작자조합 등 직능단체를 대상으로 시사회를 열고 파티도 가졌다. 그는 “첫 개봉 주에는 하루에 몇 군데씩, 봉고차 탄 유랑극단처럼 움직였다”고 했다. 캠페인의 목적은 결국 입소문과 흥행이다. ‘기생충’은 지난해 10월 뉴욕 로스앤젤레스 3개 상영관에서 개봉했으나 오스카상 후보 지명 후 미국 내 상영관이 1060개로 늘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북미 수익은 9일 기준 3437만 달러(약 410억 원), 글로벌 수익은 1억6426만 달러(약 1960억 원)에 이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샤론 최가 오늘 밤의 이름 없는 영웅(unsung hero)이다.”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맡은 최성재(샤론 최·사진) 씨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9일(현지 시간) 시상식 후 영국 출신 언론인 피어스 모건(55)이 트위터에서 그를 ‘이름 없는 영웅’으로 칭송했다. 지난달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 씨를 비롯한 비영어권 영화감독들의 통역자 이야기를 엮어 별도 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샤론 최가 화제였다’는 질문도 나왔다. 봉 감독은 “(최 씨가)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그 내용이 정말 궁금하다”고 했다. 최 씨는 전문통역가가 아니며 한국 국적으로 미국 대학을 나와 영화를 공부했다. 본인의 영화도 촬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각국의 문화적 차이는 물론이고 영화라는 분야에 관한 이해도도 높아 매끄러운 통역이 가능했다. 여기에 감독의 말을 놓치지 않는 기억력과 맥락에 맞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발력도 갖췄다. 봉 감독은 “샤론 덕분에 모든 캠페인이 잘 굴러갈 수 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 씨는 지난해 5월 프랑스 칸 영화제부터 봉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같은 해 12월 미국 NBC ‘투나이트 쇼’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지난해 1월 넷플릭스로 공개된 일본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의 프로그램은 ‘미니멀리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소비에 중독돼 ‘예쁜 쓰레기’(쓸모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디자인 때문에 갖고 싶은 물건을 일컫는 말)를 사 모으던 세태에 ‘잘 버리기’에 관한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의 이름을 줄여 ‘곤마리 정리법’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정리의 기술’은 곤도가 미국에서 출간한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은 2014년 출간한 ‘정리의 힘’으로 2년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8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정리의 힘’이 “정리는 마인드가 90%”라며 설레지 않는 물건 버리기를 강조했다면, ‘정리의 기술’은 ‘설레는 물건 구별법’ ‘공간 수납법’ 등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안내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의 확산으로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던 아트바젤 홍콩이 취소됐다. 아트바젤을 운영하는 MCH 그룹은 6일 보도자료를 내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 및 확산으로 취소했다”고 밝혔다. 아트바젤은 1970년 스위스 바젤의 갤러리스트들이 시작한 아트페어로 바젤, 마이애미비치, 홍콩에서 매년 열린다. 아트바젤 홍콩은 주로 아시아 컬렉터가 모이는 행사로 국내는 국제갤러리, PKM갤러리, 학고재, 조현화랑 등이 참가하고 있다. 아트바젤 측은 보도자료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국제 보건비상사태로 선포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며 “대안을 찾기 위해 갤러리스트, 컬렉터, 외부 전문가 등과 논의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홍콩의 상업 갤러리들은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홍콩의 45개 갤러리로 구성된 홍콩아트갤러리협회(HKAGA)는 “서구에서 극히 제한적이고 근시안적인 보도와 코멘트가 이어지고 있다”며 아트바젤 개최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참여 갤러리에 고지된 내용에 따르면 아트바젤은 이번 페어 취소로 부스비의 75%를 환불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참고로 아트 바젤 마이애미비치가 2001년 9·11 테러로 개최 두 달 전에 취소됐을 때는 다음해 개최될 페어의 부스비로 이월된 바 있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현대미술을 후원하는 ‘CONNECT, BTS’ 프로그램이 모두 공개됐다. CONNECT, BTS는 ‘국적 장르 세대가 다른 미술작가들이 방탄소년단과 협업한 글로벌 현대미술 전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달 14일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독일 베를린,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미국 뉴욕과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 ‘다양성’ 주제, 간섭 없는 지원 CONNECT, BTS는 ‘다양성을 키워드로 각국에서 전시를 연다’라는 독립큐레이터 이대형 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씨는 “BTS가 다양성과 연결이라는 이번 프로젝트의 전체적 방향성을 즉각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이 씨가 총괄 기획을 하고 국가별 프로젝트 기획은 베를린 마르틴그로피우스바우 미술관 관장인 스테파니 로젠탈,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큐레이터인 벤 비커스와 케이 왓슨, 뉴욕 아트 딜러인 토머스 아널드 등이 맡았다. 런던에선 덴마크 출신 야코브 스텐센의 작품 ‘카타르시스’를 공개했다. 베를린에선 퍼포먼스 프로그램인 ‘치유를 위한 의식’ 그룹전(展)이 열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설치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가 ‘플라이 위드 에어로센 파차’를 공개했고, 뉴욕에서는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설치작품 ‘뉴욕 클리어링’이 전시됐다. 서울에서는 영국 작가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설치작품과 강이연 작가의 프로젝션 매핑 작업을 각각 선보이고 있다. 전시 작품 기획은 다양성과 연결이라는 화두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각 기획자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이 씨는 “기획자 선정에 BTS가 동의했고 참여하는 작가와 화상 통화도 진행했다”며 “강 작가는 BTS적인 요소를 작품에 넣었고 다른 작가들은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5∼10년간 고민했던 작업을 그대로 이어갔다”고 말했다. 곰리의 전시는 지난해 영국 로열아카데미 개인전에서 선보인 ‘클리어링’ 시리즈의 뉴욕 버전이고, 사라세노의 ‘에어로센’이 2015년 시작한 프로젝트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예술센터 등과 협업한 작품인 점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 ‘단발성 후원’에 그치지 않기를… 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BTS가 협업한 흔적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CONNECT, BTS가 “엄밀한 의미의 협업이 아니라 재정적 후원”이라는 것이다. 구사마 야요이와 루이비통이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가방 제작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협업과는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예술가를 후원해 후원자에게 돌아올 좋은 이미지를 취하는 ‘네이밍 스폰서’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는 CONNECT, BTS에 대한 후원 규모를 1000만 파운드(약 153억 원)로 추정했다. 해외 공공 미술관은 재정 부족 타개를 위해 기금 모금 전담 부서를 운영한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 큐레이터는 “후원자가 큰 결격 사유가 없고 조건 없는 지원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미술가를 좀 더 후원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묻어난다. 해외 미술계와 접촉이 잦은 한 기획자는 “저평가된 국내 작가의 신작 제작이나 해외 진출을 도왔다면 훨씬 뜻깊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BTS가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이나 간송 전형필(1906∼1962)같이 작가를 지켜보는 인내심과 진정성을 갖고 앞으로 이런 프로젝트를 지속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김민 kimmin@donga.com·임희윤 기자}

80대인 영국 작가 로즈 와일리(86)가 ‘핫한 신인 작가’로 떠오른 건 76세이던 2010년이었다. 당시 그는 영국 남동쪽에 있는 켄트주의 16세기 시골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시골집에는 팔리지 않은 그림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러다 미국 워싱턴 여성예술박물관에서 열린 ‘주목해야 할 여성’전에 영국 작가로 유일하게 출품하며 깜짝 주목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와일리의 판화 22점과 원화 1점을 볼 수 있다. ‘내가 입던 옷’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그가 과거에 입었던 옷에 관한 기억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간결한 선 드로잉에 노란색만 칠해진 ‘노란 수영복’, 눈에 멍이 든 것처럼 푸른 안경을 과장해서 표현한 ‘블루’ 등의 작품이 있다. 와일리의 그림은 이집트 고대 문명부터 영국의 축구 선수 존 테리,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 등 친숙한 소재를 경계 없이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밀레니얼 작가의 그림이었다면 눈길이 가지 않았겠지만, 시골 마을에 작업실을 둔 70대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이 매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공책에 끼적인 낙서처럼 자유롭고 재기 발랄한 표현을 보면 왠지 모를 용기와 희망이 솟아난다. 지극히 회화적인 표현은 같은 영국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를 떠올리게 한다. 또 일상적 소재를 활용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에 팝아트적 요소도 다분하다. 이번 전시는 대형 작품이 적어 아쉽지만 12월 4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별도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어 ‘맛보기’용 전시로는 괜찮을 듯하다. 1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동아일보의 100번째 생일상, 순백의 ‘내일을 담는 100년의 상(床)’ 위에 알록달록한 빛깔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미래의 100년을 함께할 젊음들이 자유롭게 꿈을 펼치길 희망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1064스튜디오가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길이 230cm의 대형 목걸이가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공개된다.》 백색의 ‘한국의 상(床)’ 위로 길이 230cm의 가느다란 금색 선이 찰랑이며 내려온다. 황동과 14K 금이 섞인 얇은 프레임 안에는 색색의 아크릴이 반짝인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로비에 설치된 ‘한국의 상’에서 4일부터 공개되는 1064스튜디오의 대형 목걸이 아트피스다. ‘한국의 상’은 올해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의 브랜드를 보여주는 ‘쇼룸’이자 모두에게 열린 개방형 아트 플랫폼이다. 특히 세계 무대를 향해 도전하는 국내 청년 작가와 100년을 젊은 감각으로 해석한 오브제를 선정해 전시를 연다. 이번에는 독특한 디자인만으로 해외에 진출한 1064스튜디오와 동아일보가 협업해 대형 아트피스를 제작했다. 3일 설치작업을 위해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노소담 대표(29·사진)를 만났다. 노 대표는 “동아미디어센터 외관에 ‘한국의 색’을 설치한 다니엘 뷔렌을 좋아한다”며 “뷔렌의 색에서 영감을 얻어 목걸이를 새롭게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뷔렌의 대형 작품이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데 비해 노 대표는 목걸이 프레임의 금빛 톤에 맞춰 노란색과 오렌지 계열을 더 강조했다. 목걸이 형태는 2017년 선보인 ‘빛의 움직임(Movement of Light)’ 컬렉션을 확대하고 변형한 것이다. 이 컬렉션은 1064스튜디오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미국, 일본 디자인 스토어에 입점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1064스튜디오는 지난해 글로벌 온라인 쇼핑 사이트 ‘네타포르테’가 론칭한 ‘코리안 컬렉티브’에 포함되며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2000년 설립된 네타포르테는 한 달 사용자가 700만 명이 넘는 대규모 쇼핑 사이트다. 지난해 이 사이트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내 브랜드는 단 5개로, 2015년 설립한 신진 스튜디오가 이름을 올려 관심을 모았다. 비욘세의 스타일리스트가 협찬을 요청하고 클로이 카다시안이 직접 주얼리를 구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 대표는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와 콩스탕탱 브랑쿠시(1876∼1957)를 꼽았다. 디자이너보다 건축가, 조각가를 좋아한다는 그의 성향처럼 1064스튜디오의 주얼리도 비정형이지만 단순하면서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조각작품같이 과감한 형태를 해외 바이어가 알아보고,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점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이번 ‘한국의 상’에 전시된 것처럼 대형 목걸이를 제작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그는 털어놨다. 스튜디오 구성원 5명이 수작업으로 한 달간 매달려 목걸이를 완성했다. 노 대표는 “도전을 좋아해 일을 벌였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언제 끝이 날까 막막했다”면서 “완성되는 걸 보니 ‘도전하면 못할 게 없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웃었다. 그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올해 설날 연휴가 지난 후 열린 첫 전시이기에 더욱 뜻깊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경제 전망도 좋지 않고 청년들은 때로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죠. 저 역시 그럴 때가 있지만 반짝이는 색을 보며 함께 꿈과 희망을 가져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시는 28일까지. 자세한 내용은 한국의 상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에서 ‘유재석’급 인기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가드 엘마레의 2017년 미국 공연 중 한 장면이다. “미국인들은 파리를 참 좋아해요. 제가 파리에서 왔다고 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파리의 이야기를 늘어놓아요. 다 듣고 난 뒤 전 이렇게 말했죠. ‘도대체 그 도시는 어딥니까?’” 파리에 관한 미국인의 판타지를 총망라한 또 다른 콘텐츠로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년)를 꼽을 수 있다.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나 장 콕토,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를 만나고 19세기 말에는 로트레크, 드가, 고갱을 마주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파리가 낭만의 ‘원천’인 셈. 2010년대를 사는 엘마레가 당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는 세계인이 동경하는 낭만적 시기 파리의 문화사를 3권에 나눠 다룬다. 정확한 시기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직후인 1871년부터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다. 인상파 작가인 모네, 마네를 비롯해 에밀 졸라, 드뷔시,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샤갈, 프루스트, 샤넬, 만 레이, 르코르뷔지에…. 문화사가에게는 쓸 거리 가득한 화수분 같은 시기다. 1권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는 프로이센군에게 점령당하고 끝내 패전한 직후를 다룬다. 먹을 게 없어 쥐까지 잡아먹어야 했던 참혹한 비극이 파리지앵에겐 상처로 남았던 때다. 이때 예술가들은 전통을 벗어나 조금씩 ‘개인’의 가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권은 파리로 찾아온 스페인 청년 피카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1900년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아프리카의 강렬한 시각 언어를 비롯한 유럽 밖 문명의 발굴을 파리는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이사도라 덩컨, 스트라빈스키, 장 콕토 등 많은 예술가가 ‘빛의 도시’로 이끌려 찾아왔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싸구려 목조 공동주택 ‘바토 라부아르’에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막스 자코브 등이 예술로 파리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디자이너 폴 푸아레는 군복을 만들고, 과학자인 마리 퀴리는 이동식 엑스레이 팀을 꾸렸다. 전쟁 후 파리는 ‘재즈 시대’, ‘광란의 시대’로 불리는 황금기를 맞이한다. 3권 ‘파리는 언제나 축제’가 다루는 시기다. 과학의 비약적 발전은 물론 코르셋 없는 티셔츠 같은 코코 샤넬의 패션 혁신이 일어난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집들을 위한 ‘돔-이노 시스템’(표준화된 모듈식 주택)을 제안한다. 특별한 주제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파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의 방대한 문화사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그때 그 시절’ 파리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막 촬영을 처음 한 게 30년 전이죠. 미국 여행 중 만나게 된 사막에서 나를 더 벗겨 놓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 내려놓고 대면한다는 기분이었죠. 그 매력에 빠져 사막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작가 이정진(59)의 개인전 ‘보이스(VOICE)’가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이정진은 미국 서부 지역을 여행하며 자연의 원초적 순간들을 포착해왔다. 한지 위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프린트한 사진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작업을 2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이정진: 에코―바람으로부터’에서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전시에는 다시 디지털 방식을 결합한 작업을 내놓았다. 작가는 “아날로그 작업을 20년간 해왔는데, 물리적인 부분에서나 조정하는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며 “원래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더 미세하게 나타낼 수 있어 디지털에 매력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보이스’ 연작은 미국과 캐나다의 산, 바다, 숲을 담았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프린트한 작품들이다. 세로로 긴 족자 형태인 ‘오프닝’은 필름카메라로 촬영해 한지에 아날로그 프린트를 한 뒤 고화질 스캐닝 후 보정작업을 거쳐 다시 한지에 디지털 프린트한 작품이다. 작가는 ‘오프닝’의 세로 형태에 대해 “인간이 제한된 인식의 테두리를 넘어 무념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또 자연의 일부를 통해 전체를 통찰하는 ‘열림’의 의미에서 제목을 달았다고 한다. 2월 1일에는 오후 2시부터 PKM갤러리 별관에서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열린다. 3월 5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암중모색(暗中摸索).’ 늘 어렵다던 국내 미술계와 미술시장의 실태는 지난해 수치로도 나타났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한 ‘2019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4482억 원이었다. 2014년부터의 성장세가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상황은 어둡지만 길을 더듬어서라도 찾아야 할 미술계 관계자 10명에게 2020년 전망을 물었다. 미술계 공공기관과 시장 종사자는 물론이고 전문가 개개인의 의견도 엇갈렸다. 중론을 찾기보다 각론을 최대한 소개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미술과 역사의 맥락을 잇다’ 미술은 시대와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명제로 정립됐다. 나치 치하의 음울한 역사를 토대로 작품세계를 펼친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생존 작가 중 최고로 인정받는다. 올해 국내에서도 미술로 역사를 돌아보는 움직임이 꿈틀댄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을 서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만 타이베이, 독일 쾰른 등 4개 도시에서 준비해 비엔날레 기간(9월 4일∼11월 29일) 광주에서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도 한국전쟁 70주년 기획전을 개최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올해 화두는 사회적 의제와 미술사의 맥락이 닿도록 해 미술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 미술가 약진 ‘주목’ 미술시장은 보합(保合)을 예상하는 의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크게 성장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성 미술가의 약진을 전망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양혜규 작가는 5월 영국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함경아와 김수자 작가도 올해 처음 개최되는 미국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트리엔날레에 참가한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박래현 최욱경 구정아 남화연 등 여성 미술가의 활약과 함께 회화 이외의 다양한 장르에 대한 관심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단색화 작가의 건재함’을 화두로 꼽았다. 이 회장에 따르면 국제갤러리는 3월 박서보, 9월 이우환 개인전을 선보이고 독일 뒤셀도르프 제로 재단은 6월 권영우 개인전을 연다. 이 회장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재개관 소장 기념품전에서 하종현의 ‘접합’ 초기작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개선을 위한 해외 진출 절실 미술시장 개선을 위한 과제로는 해외 진출 등을 꼽았다. 김선정 대표는 “해외 미술계로 진출하지 않고서는 국내 미술시장 침체를 극복할 수 없다”며 “K-아트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수반되면 국내 시장도 탄탄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술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요구했다. 이현숙 회장은 “미술품을 사치품이나 재테크 수단으로 보는 경향은 여전하다”며 “작품을 구입해 작가를 지지하는 생산자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컬렉터가 성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도 “미술 생태계 전반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후 안정기에 접어든 전국 국공립미술관 관장들이 차별화된 전시로 이슈를 선도하려는 물밑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기획자 출신인 주요 미술관 관장들이 서울 중심의 미술계 판도를 전국적으로 다양화하는 양상을 전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세계 미술계의 미션인 다양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객을 수용하는 미술관의 접근성 확보가 화두”라고 짚었다.○ ‘아티스트 피(fee)’ 해결해야 올해 해결 과제로는 ‘아티스트 피(artists fee·작가사례비)’를 들었다. 아티스트 피는 미술관 전시에 출품한 작가가 받는 대가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창작 대가 기준(안)’이 시범 운영 됐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일부 지적이 있었다. 최은주 관장은 “올해부터 현장에서 적용될 아티스트 피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데 정부가 적극 홍보하고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혜경 관장도 “문체부가 권고사항으로만 제시할 게 아니라 예산 등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정 대표는 “연구용역을 의뢰해 체계와 규정을 만들어 실행하는 단계인데 문제점이 많다”고 했다.설문 응답자 명단(10명·가나다순)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이사,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지호 화이트블럭 시각예술연구소장,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정재호 갤러리2 대표,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굽이굽이 펼쳐진 풍경의 한가운데 반사경이 톡 튀어 나왔다. 차를 운전하다 굽은 길을 만나면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듯,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는 이야기다. 한국화가 김선두(62)의 ‘느린 풍경’은 삶에서도 필요한 느림의 순간을 풍경으로 표현한다. 22일부터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김선두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김선두의 작품은 장지(한지)에 바탕 작업을 하지 않고 바로 색을 중첩한다. 옅은 색을 겹겹이 올리면서 종이가 색을 머금게 한다. 흑백에 갇히지 않은 화려한 채색과 재기발랄한 구도가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소재를 활용한 것도 특징이다. 누구나 쉽게 감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전시장의 ‘철조망 블루스’(2018년)는 도시에서 흔히 보는 철조망을 활용해 굽이치는 선의 리듬감을 자아낸다. ‘마른 도미’(2019년)는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도미의 기괴한 모습을 강조해 그렸다. 작가는 “한 몸을 유지했을 때는 생명을 지닌 물고기가 양극단을 향해 찢어져 내면 없이 외피만 남은, 죽은 몸이 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자화상 ‘행―아름다운 시절’(2019년)은 20대 후반 시절 작가의 모습과 지워진 달력을 겹쳤다. 겹겹이 세월이 쌓이면서 먼지처럼 뿌옇게 되는 매일의 일상이 과거의 자신과 같다는 이야기다. 김선두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표지를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는 오원 장승업의 그림 대역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는 장지화 16점과 유화 3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3월 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모네에서 세잔까지’는 예루살렘 이스라엘박물관의 인상파 작품 컬렉션 중 106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클로드 모네, 폴 세잔, 폴 고갱 등 잘 알려진 인상파 화가들을 포함해 피에르 보나르(1867∼1947), 카미유 피사로(1830∼1903),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1796∼1875) 등이 그린 풍경화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전시장에 가면 세잔과 고갱의 풍경이 서로 마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짜임새 있는 구도를 갖춘 세잔의 풍경과 개성을 확실하게 밀고 나간 고갱의 풍경을 대비해 보는 것이 흥미롭다. 서울에서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기회다. 아쉬운 건 전시의 기획력이다. 제목에는 국내에서 잘 알려진 모네를 앞세웠지만 모네의 작품은 3점만 전시된다. 또 ‘걸작전’이라고 하기엔 작품 사이즈가 크지 않다. 해외여행으로 주요 미술관을 돌아본 관객의 눈을 만족시키기엔, 작가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보여줄 만한 대표작도 충분하지는 않다. 현재 전시는 ‘수경과 반사’, ‘자연과 풍경화’, ‘도시 풍경’, ‘초상화’ 등 소재에 따라 나눠져 있다. 각 코너의 시작 부분에는 각 풍경의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보다는 인상파에 관한 거시적 설명만 나열돼 있다. 고갱과 세잔의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색채가 왜 특이한 지 등에 대해 초보 관객은 느낌만 갖고 떠날 수밖에 없다. 매년 방학 때마다 열리는 인상파 전시를 반복해 인상파에 대해 동경심을 품은 관객을 겨냥했다는 것 외에는 전시 주제나 구성의 차별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