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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백제시대(1∼5세기)의 왕성 터로 유력한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의 축조 방법에 대한 단서가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폭 40∼50m, 추정 높이 11m에 둘레가 약 4km로 대규모인 풍납토성 축조의 비결은 나무 기둥이었다고 1일 밝혔다. 연구소는 최근 풍납토성 서쪽 성벽을 평면으로 절개해 단면을 확인했다. 그 결과 성벽을 쌓아 올리기 위해 세운 나무 기둥들이 발견됐다. 풍납토성의 몸체를 이루는 흙더미인 ‘토루’마다 길이 60∼70cm의 나무 기둥이 88∼162cm 간격으로 설치됐다. 풍납토성은 중심 골조인 1토루를 쌓아 올린 다음, 그 위에 토루를 덧대어 2·3토루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2토루와 3토루의 경계에서는 성벽 경사면의 반대 방향으로 박힌 나무 기둥과 기둥을 받치기 위한 석재도 확인됐다. 그간 풍납토성은 수차례 증축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여러 가설이 제기되며 의견이 분분했다. 이번 발굴에서 처음에 지어진 부분(1·2토루)과 증축된 부분(3토루) 사이 얇게 깐 석재가 발견돼 새로운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2021년 정밀조사를 진행해 축조 방식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권순철 화백(76)은 1989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살았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귀국해 보낸 1년이 근래 고국에서 보낸 가장 긴 시간이다. 이 기간에 권 화백은 1000호짜리 대작들에 몰두했다. 그중 한 작품인 ‘백두’(284×680.5cm)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흔적 Trace’에서 볼 수 있다. 권 화백의 개인전은 2016년 대구미술관 전시 이후 4년 만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권 화백은 “체력이 버텨줄 때 큰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라면 대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세계적 작가들이 대규모 작품을 하는데, 한국에서도 스케일 큰 작품이 많이 나와야죠.” 권 화백은 대작 시리즈를 위해 프랑스에서 캔버스도 가져왔다. 그러나 작업 공간이 마땅치 않아 서울 광진구 중곡동 화실을 정리하고 경기 고양시에 새 화실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백두는 물론이고 ‘얼굴’ 같은 대작 여러 점을 작업하고 있다. 권 화백은 “작가로서 스스로의 생각이나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라며 “한라산도 파노라마로 펼쳐 보이고 싶다”고 했다. “이번 전시장에 내놓은 ‘한라’는 4∼5년 작업한 작품입니다. 기존 작업실에서는 가로로 길게 펼칠 수 없어 한계가 있었는데, 한라산의 평평하고 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요.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진 산이 한국에 많습니다. 화가에겐 조형적으로 행복한 일이죠.” 그에게 산은 얼굴만큼 오래된 주제다.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기 전 서울 성북구 집에서 살 때는 캔버스를 들고 나가 수락산 도봉산 관악산을 현장에서 하루 종일 그리곤 했다. ‘쉬르 플라스’(sur place·현장에서)로 그리지 않은 그림은 생명력이 약하고 형상만 나온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침에 산을 가면 복잡한 기운이 돌아요. 그 후 점심, 저녁으로 가면 점점 해가 저물며 산의 색도 잦아들고 형상만 남죠. 저는 그것을 산의 ‘뼈’만 남는다고 합니다. 프랑스에 가서도 이 이야기를 늘 했는데, 해가 완전히 지고 컴컴해지면 산의 바위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웅크린 사람 같은 모양이 되거든요.” 산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권 화백은 원(元)대 황공망(1269∼1354)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를 언급했다. “손으로 그린 것 같은 흔적이 없으면서 빈틈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만한 산의 정수(精髓)를 표현한 서양화가가 폴 세잔”이라고 덧붙였다. ‘정수’나 ‘본질’이란 말을 그는 자주 꺼냈다. 그림은 사람 손에서 시작하지만 작위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의 본질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지금도 너무 늦었다”며 “이제 복잡한 것들을 최대한 줄이고 싶다”고 했다. “파리에도 조그마하지만 그 나름의 사회가 있어 어른 노릇을 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은 줄이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작업에 전념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희망보다는 조급함이 앞선다”는 말에서 비로소 그가 자신과의 승부에 전념할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가 대중을 또 한 번 놀라게 한 건 2017년이다. 40대 일본인 사업가가 그의 작품 ‘무제’(1982년)를 1억1050만 달러(약 1245억 원)에 낙찰받으면서다. 미국 작가 경매 사상 최고가여서 대중의 눈길이 쏠렸다. 그 사업가 이전에 바스키아의 작품을 소장한 대표적 컬렉터가 둘 있다.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뉴욕의 아트 딜러 호세 무그라비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국내 최대 바스키아 회고전 ‘장미셸 바스키아: 거리·영웅·예술’은 무그라비의 소장품으로 구성했다. 구혜진 수석 큐레이터는 2년 전 겨울, 뉴욕 중심가 호화로운 빌딩에 있는 무그라비 사무실을 찾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앤디 워홀, 제프 쿤스, 카우스 등 값비싼 팝아트 작품이 그를 맞았다. 바스키아의 작품 두 점은 무그라비의 집무실 가장 깊숙한 곳에 걸려 있었다. 나머지 작품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바스키아의 미술사적 가치와 문화적 영향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도 눈길을 끈다. 바스키아의 첫 개인전 작품으로 높이 2m, 가로 4m를 넘는 대작 ‘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는 보험가액이 2000억 원을 넘는다. 이 작품을 비롯한 회화, 드로잉 150여 점의 보험가액은 1조 원이나 된다. 전시장 보험료만 5억 원 이상이다. 화려한 면면만큼 전시를 준비하는 데도 무척 까다로웠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예술 전문 변호사가 대동해 결정을 내렸다. 바스키아가 거리에서 활동을 시작했기에 작품의 상태도 제각각이어서 회화 작품에 붙은 먼지 한 톨까지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작품이 올 때와 갈 때의 상태를 비교하는 ‘컨디션 체크’를 하기 위해서다. 바스키아 작품에는 소장자뿐 아니라 저작권사와 재단도 관여한다. 이들 모두에게서 전시 내용과 텍스트, 도록까지 동의를 얻어야 했다. 전시장 초입의 ‘SAMO’ 사진들도 사진가가 직접 배열 순서까지 정했다. 미술관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 전시 기획에 5억∼10억 원이 소요된다면 바스키아전은 비용이 5배 이상 들었다. 미술관이 이 모든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충분히 그렇다고 미술계는 평가한다. 바스키아전 개최가 미술관의 평판을 좌우하는 레퍼런스가 되기 때문이다. 공연으로 유명한 영국 바비컨센터는 바스키아 개인전으로 개관 사상 최다 관객을 모았다. 구 큐레이터는 “원화를 고집해 어렵게 만든 전시”라며 “바스키아 작품을 이 정도 규모로 보는 것은 10년 내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19년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인 조덕현 작가(63)의 신작이 대구미술관 개인전 ‘그대에게 to thee’에서 전시되고 있다. 사진을 기반으로 한 회화 작업을 선보인 조 작가는 2015년 일민미술관 개인전 ‘꿈’을 통해 가상의 이야기를 선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이때 만들어진 ‘조덕현 서사’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조 작가는 동명이인의 영화배우 조덕현, 소설가 김기창과 협업해 가상의 인물 ‘조덕현’을 만들어냈다. 1914년 태어나 1995년 사망한 가상의 인물 조덕현은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 1930년대 중국 상하이로 건너간다. 이곳에서 중국 감독 쑨유의 ‘The Big Road’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큰 역할을 제안받지만 중국 공산당과의 마찰로 출연이 무산된다. 말년에는 영화 제작자에게 사기를 당해 가산을 탕진하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이른다. 이인성미술상은 지난해 그에게 상을 수여하며, 서사적 구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2019 이인성미술상 선정위원회는 “조덕현 작가의 작품은 역사를 재현해 밀도 높은 구성력으로 인간의 대서사시를 표현했으며, 미술의 본원적인 의미와 사회와의 관계를 꾸준히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번에 새롭게 공개한 ‘플래시포워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티프로 했다. 유다의 자리에 가상의 조덕현을 배치했으며, 2014년 아프가니스탄 ‘국경 없는 의사회’ 병원 폭격 현장, 폼페이 화산 폭발, 17세기 루벤스의 그림, 1950·60년대 한국 영화계 등의 도상을 합성했다. 이 작품을 마주 보고 있는 ‘1952, 대구 1―8’은 6·25전쟁에 참여한 미군 장교 에드거 테인턴 주니어가 촬영한 대구 능금시장의 사진을 토대로 한다. 조 작가는 “이 작품을 그리며 이인성과 박수근 등 선배 화가 작품들이 떠오르며 깊이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2017년 선보였던 ‘에픽상하이’ 시리즈, 일민미술관에서 선보인 작품을 새로운 형태로 구성한 ‘박싱 언박싱’(2020년), 내성천의 모래를 재료로 한 설치 작품 ‘모래성’(2020년), 대형 스크린에 식물을 투영하고 윤이상의 음악을 삽입한 설치 작품 ‘음의 정원’(2020년) 등 5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플래시포워드’에 이르기까지 관객을 고려한 세심한 공간 연출과 동선이 흥미롭다. 조 작가는 “이번에 내놓은 신작은 인간의 탐욕과 서구 문명의 한계를 노출한 코로나19라는 재난을 다양한 도상을 통해 은유적으로 담아 관객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유추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인성미술상은 올해 20주년을 맞는다. 이인성미술상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대표적 작가인 이인성(1912∼1950)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가 제정한 상이다. 이를 기념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선정된 역대 수상자 18명의 작품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수상자로 김종학 이강소 이영륭 황영성 김홍주 김구림 이건용 김차섭 안창홍 등이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17일까지. 입장료 700∼1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됐을 때 그린 ‘세한도’와 단원 김홍도의 것으로 전하는 ‘평안감사향연도’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4일부터 ‘세한도’, ‘평안감사향연도’를 포함해 작품 18점을 전시하는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을 연다.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는 제주도에 유배된 김정희가 자신의 고난과 이를 견디게 해준 벗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한도 원작의 크기는 가로 70cm, 세로 33.5cm이지만 당시 청나라와 조선의 문인 각각 16인과 4인의 감상문이 담기며 길이 1469.5cm의 대작이 됐다. 세한도 원작 전시는 네 번째이지만, 감상문이 담긴 두루마리는 2006년 처음 공개된 후 14년 만에 다시 공개됐다. 전시의 1부 ‘세한-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에서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 씨(91)가 최근 기증한 세한도와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등 15점을 만날 수 있다. 고화질 스캔 영상을 통해 그림과 글씨도 자세히 볼 수 있다. 학자인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가 1940년 일본으로 가져간 세한도를 1944년 손재형이 되찾아온 일화도 영상으로 소개한다. 2부 ‘평안-어느 봄날의 기억’에서는 평안감사가 부임한 것을 기념한 잔치를 묘사한 ‘연광정연회도’, ‘부벽루연회도’, ‘월야선유도’ 등 3폭으로 구성된 ‘평안감사향연도’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림에 관련된 학술 정보, 과학적 분석에 관한 내용도 함께 소개한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3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세한도에는 추사의 쓸쓸함과 제자에 대한 고마움이 잘 나타나 있다. 가치를 논할 수 없는 위대한 그림을 감상할 기회를 주신 손창근 선생과 가족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3000∼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품 보존가라 하면 딱 두 가지를 떠올려요. 일본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 영화 ‘인사동 스캔들’의 김래원. 사라진 그림을 감쪽같이 다시 만들어내는 줄 아는 분도 있죠. 막연한 환상 뒤의 실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미술품 보존을 다룬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생각의힘)를 펴낸 김은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44)의 말이다. 13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김 학예연구사는 과학고와 KAIST에서 공부한 전형적인 ‘이과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화 보존을 공부하러 영국 뉴캐슬 노섬브리아대로 유학을 떠났다. 이과생은 왜 그림에 빠졌을까? “어릴 때 그림을 곧잘 그려 사생대회에서 상도 받았어요. 예고를 갈 만한 형편은 안 됐고, 이과생이 가진 과학적 마인드를 예술 작품에 접목시킬 수 있는 것이 보존임을 알게 됐죠.” 그가 유학을 떠난 것은 1998년. 미술관이나 재야에서 일하는 복원가를 만나며 국내 현장에서 분야의 열악함을 알게 된 후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책 속에 언급한 사례는 대부분 서양 근대 이전의 미술품이고, 구본웅이 그린 시인 이상의 얼굴 ‘친구의 초상’이나 백남준의 ‘다다익선’ 등 국내 작품도 다뤘다. 국내 복원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아서다. “국내 작품들이 영국에 비해 젊은데 상태는 더 나쁜 경우가 많습니다. 10년 전 서승원 작품에서 물감층이 떨어져 다시 메웠는데, 나중에 작가로부터 ‘마스킹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 물감을 일부러 떨어뜨린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깜짝 놀라 작품을 원상태로 돌려놓았어요. 그만큼 작품 관련 기록이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아요.” 백남준의 ‘다다익선’ 복원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미술관은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다익선을 철거하자는 의견도 나올 정도였죠. 그 가운데서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과학이 매번 뚜렷한 답이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그는 복원가가 하는 일의 성격이 작품을 고치는 ‘의사’에서 작품을 둘러싼 이해를 조정하는 ‘협상가’로 바뀔 것이라고 봤다. “현대미술 영역이 넓어지면서 작품에 관여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작가는 물론 유족, 큐레이터와 설치 전문가 등 다양하죠. 각기 다른 요구 가운데 가장 나은 방향을 찾고 후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이 복원가의 일이 될 겁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뉴욕타임스(NYT) 올해의 책 100선에 선정됐다. 22일(현지 시간) NYT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의 영역판 ‘Kim Jiyoung, Born 1982’가 서평 담당 에디터들이 선정한 ‘2020년의 주목할 만한 책 100선(100 Notable Books of 2020)’에 뽑혔다. NYT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언어로 젊은 아내이자 엄마인 한 전형적인 한국 여성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겪는 곤경은 성차별적 사회의 영향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뉴욕타임스(NYT) 올해의 책 100선에 선정됐다. 22일(현지시간) NYT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의 영역판 ‘Kim Jiyoung, Born 1982’가 서평 담당 에디터들이 선정한 ‘2020년의 주목할 만한 책 100선’(100 Notable Books of 2020)에 뽑혔다. NYT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언어로 젊은 아내이자 엄마인 한 전형적인 한국 여성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겪는 곤경은 성차별적 사회의 영향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제이미 장이 영어로 번역해 지난해 4월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꼭 읽어야할 올해의 책 100권에도 포함됐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손꼽히는 불교 회화 연구자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67·사진)가 ‘한국불교회화명품선’ 시리즈 첫 권을 펴냈다. 한국 불교 회화의 ‘명품’ 40점을 엄선해 책 한 권이 작품 한 점을 다루는 시리즈다. 첫 ‘주인공’은 일본 혼가쿠지(本岳寺)에 소장된 ‘석가탄생도’다. 조선시대 전기 그림인 석가탄생도는 1997년 일본 야마구치현립미술관의 ‘고려·이조(조선)의 불교미술전’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이듬해 정 교수는 제107회 미술사학회월례발표회에서 ‘조선초기의 석가탄생도’를 주제로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그림이 일본으로 간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표구 흔적을 통해 17세기 중엽 이전부터 일본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로로 길게 접힌 자국이 있어 임진왜란 때 비정상적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책은 석가탄생도의 전체 모습과 세부 사진을 고화질로 수록했다. 석가탄생도는 일본에 전파된 후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며 광범위하게 유포돼 신앙의 대상이 됐다. 이 그림의 모방작들은 한국 불교미술이 일본에 미친 영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책에는 지바현 고마쓰지(小松寺)부터 후쿠오카시립미술관 등에서 발견한 모방작 18점 중 7점의 도판을 실었다. 1997년 석가탄생도를 본 정 교수는 일본 각지에서 나온 ‘문화재보고서’와 ‘전시도록(圖錄)’을 샅샅이 살폈다. 일본의 미술사 연구자들에게 모사본에 관해 집요하게 물었다. 그 결과 찾아내서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책 속에 모였다. 책에는 독일 쾰른 동양미술관이 소장한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도판도 수록했다. 정 교수는 유성출가상이 석가탄생도와 한 세트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석가탄생도의 중심 내용이 ‘월인석보’(1459년·세조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 엮음)에 기반하는데 유성출가상도 도상학(圖像學)적 근거를 월인석보에 두고 있고 세부 표현에서도 유사성이 발견됐다. 정 교수는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20여 년 전 이 책의 간행 필요성을 귀띔해줬고 최근 젊은 동료들도 ‘그간 모은 불화 사진을 정리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과 다름없다’고 해 책을 내게 됐다”며 “이 시리즈를 통해 해외 한국 불화의 효과적 활용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200부만 출간된 한국불교회화명품선은 한국미술연구소 웹사이트나 전화로 구매할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타트업에서 고군분투 중인 기획자, 개발자들의 구미를 당길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각각 세계 최고의 기업인 아마존, 애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기업을 다뤘다. 한 권은 가로세로 6cm의 조그마한 카드 리더기로 아마존을 이긴 ‘스퀘어’를, 다른 한 권은 ‘해적당’의 나라 스웨덴에서 시작해 애플을 꺾은 플랫폼 ‘스포티파이’에 관한 책이다. 한국 진출을 앞둬 국내에도 익숙한 ‘스포티파이’를 다룬 책은 ‘스포티파이 플레이’다. 무료로 음원 스트리밍을 제공해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그 전략으로 이용자 3억 명, 시가 총액 60조 원, 전 세계 92개국에 진출한 거대 기업이 스포티파이다. 스웨덴의 경제지인 ‘다겐스 인두스트리’의 경제부 기자 2명이 집필했다. 두 저자는 수 년에 걸쳐 내부 자료와 극비문서 및 내외부 관계자 인터뷰를 토대로 이 기업에 닥친 위기와 해결 과정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불법 영화, 음원 파일 공유가 빈번하게 이뤄졌던 P2P(개인 간 거래) 서비스인 ‘토렌트’나 ‘파이러트배이’가 스포티파이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기업은 초기 끊김 없이 음악을 듣는 기술적 방법에 집중했고 저작권은 다음이었다. 사용자를 확보하면 돈은 따라온다는 전략이 맞아떨어졌고 수익의 대부분을 음반사나 퍼블리셔에 제공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책은 “음반사가 아티스트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꼬집는다. 이 때문에 미국 진출 후에는 밥 딜런, 테일러 스위프트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이 서비스에 음원 제공을 중단했다. 그러나 대다수 내용은 이 기업이 난관을 헤쳐나간 과정을 중립적으로 다룬다. 텐센트나 마윈까지도 스포티파이에 투자를 원했다는 이야기들이 경영자에게 솔깃하게 다가올 듯하다. ‘언카피어블’은 트위터의 창립자 잭 도시와 함께 ‘스퀘어’를 만든 짐 매켈비가 직접 집필했다. 매켈비는 세인트루이스의 청년 시절부터 지역으로 강연 오는 기업가에게 ‘차를 태워주겠다’고 제안하며 조언을 구했던 야심만만한 청년이다. 유리공예로 돈을 벌던 그는 ‘소상공인도 카드결제를 쉽게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스마트폰 이어폰 단자에 꽂는 카드 리더기를 개발한다. 저가와 단순화 전략으로 소비자를 공략했던 ‘스퀘어’는 광고 한 번 없이 창업 4년 만에 매출을 초기의 13배인 5억5000만 달러(약 6000억 원)로 끌어올린다. 심지어 똑같은 서비스를 30%나 저렴하게 제공하는 아마존의 움직임에도 별 다른 대응 없이 살아남는다. 1년 뒤 아마존은 패배를 선언하고, 자신의 고객들에게 ‘스퀘어’를 보냈다. 그 후 ‘우리는 무엇이 달랐을까’를 고민한 매켈비는 그에 관한 답을 ‘혁신 쌓기 전략’으로 설명한다. 혁신 쌓기 전략은 혁신이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혁신은 기존에 정의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만 이뤄진다. 이것을 이루려는 사람은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또 전례 없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이 과정에서 쌓인 작은 혁신들은 결국엔 누구도 한 번에 모방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테면 ‘카카오뱅크’가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젊은 소비자를 사로잡았지만 시중은행이 단순히 인터페이스만 바꾼다고 똑같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카뱅’의 해결책은 그보다 더 복잡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매켈비는 이런 맥락을 스퀘어가 살아남은 과정은 물론이고 뱅크오브이탈리아, 이케아,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사례에 적용해 친절하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그래도 가장 흥미로운 건 스퀘어가 어떻게 시작하고 문제에 대처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사업에서는 ‘어떻게’만큼이나 ‘언제’가 중요하다거나 ‘수익성보다 더 큰 것을 추구하라’ 등 진솔한 조언이 인상적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개인전을 앞둔 올 9월 서울 종로구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최정화 작가(59)는 ‘볼품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했다. “무능한 아버지 아래 힘들었던 가정에서 다섯 형제를 키운 어머니가 자신의 ‘창조주 여신’”이라면서 말이다. 가진 게 없어도 “못생긴 화분에 조화를 꽂고, 잡동사니를 쌓아 올리는 아줌마의 손길이 바로 예술”이라고 했다. 그에게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의 미술감독을 맡긴 박찬욱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박 감독은 2009년 경기도미술관 강연에서 “가난한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모든 것을 꾀죄죄하게 묘사하는 데 불만이 있었다”고 했다. “실제 가난한 집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빈약함이 아닌 풍부함이다. 뭐 하나 버리지 않아 쌓여 있고, 어울리지 않을 것을 끼워 넣고… 거기서 굉장한 아름다움이 나오지 않나. 그런 점이 (이 영화에서) 만족스러웠다.” 수차례 미술관 개인전을 연 미술가이자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소장인 최 작가는 1990년대 ‘올로 올로’ ‘스페이스 오존’ ‘살바’ 같은 복합 문화 공간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빈티지 소품이나 노출 인테리어를 활용한 당시 디자인은 요즘 ‘뉴트로(뉴+레트로·새로운 복고)’라는 트렌드가 됐다. 장정일의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 ‘301, 302’나 ‘모텔 선인장’ 등의 미술감독도 맡았다. 일상 소품을 화려하게 재해석하며 팝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가 이번엔 ‘경남도민’과 전시를 꾸몄다. 지난달 22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살어리 살어리랏다’전이다. 이번 전시는 “경남의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를 만들자”는 김종원 경남도립미술관장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김 관장은 “현대미술관은 역사를 다뤄야 하는데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다”며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를 주제로 미술관이 가야 할 방향을 찾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올 4∼8월 경남 지역을 답사했다. 창원의 폐스티로폼 처리장에서 만난 해양 쓰레기는 작품 소재가 됐다. 전시 작품 ‘폐선’은 이곳에 버려진 배를 세척하고 에폭시를 활용해 물이 고인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120년 역사의 마산 청과물시장에서는 손수레를 발견했다. 대부분 40∼50년간 사용한 것으로 과일 상인들이 먹고살고, 자식 공부시킬 수 있도록 해준 물건이다. 고(古)가구와 현대적 물건을 결합한 작품 등을 미술관 1, 2층의 1, 3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앞마당에는 도민 617명이 보내온 밥솥 냄비 식기 등 783점으로 쌓은 높이 24m의 탑 ‘인류세(人類世)’가 놓였다. 2층의 2전시실에는 식기를 보내온 사람들의 사연과 사진도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1000명의 이름을 마산의 한 재봉사가 한 땀, 한 땀 새겨 작품 ‘당신이 기념비입니다’가 탄생했다. 3층 전시실에는 경남 지역 커뮤니티인 ‘공유를 위한 창조’ ‘비컴 프렌즈’ ‘돌창고프로젝트’ ‘팜프라’의 활동상을 소개하는 팝업 전시 ‘별유천지’도 마련됐다. 김재환 학예연구사는 “미술관의 공공성을 확장하는 방식을 실험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내년 2월 14일까지, 300∼1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청와대를 습격하려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한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됐던 북악산 북측 탐방로가 52년 만인 1일 일반에 공개됐다. 2007년 개방한 한양도성 성곽길(창의문∼와룡공원·2.2km)로만 탐방할 수 있던 북악산은 이제 서울 종로구 부암동 토끼굴과 북악스카이웨이 등 추가로 열린 출입구 4곳을 통해서도 오를 수 있다. 6일 찾은 북측 탐방로에서 부암동 토끼굴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철벽경계’라는 표석이 서 있는 대공(對空) 진지를 마주했다. 기관총이 설치돼 있다. 좀 더 올라가면 2006년까지 사용한 옛 경계초소가 나온다. 청와대 외곽 경계 담당인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이 사용했다. 제1경비단의 옛 군견 훈련장도 있다. 훈련기구가 일부 남아 있고, 나무 벤치가 들어섰다. 대통령경호처 관계자는 “북측 탐방로는 기존 군부대 통로로 시멘트를 걷어내고 나무 덱을 새로 놨다”고 설명했다. 청운대부터 곡장(曲墻)까지 성곽 북쪽 길도 공개됐다. 성곽 아래 철책을 치우고 탐방로를 냈다. 이곳에서는 각각 태조 세종 숙종 순조대에 축조된 성벽 모습을 온전하게 비교해 볼 수 있다. 성벽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곡장의 바깥 부분도 감상할 수 있다. 탐방로는 겨울(11월∼이듬해 2월)에는 오전 9시∼오후 5시 개방된다. 마감 2시간 전부터 입장이 통제된다. 개방 시간은 봄·가을(오전 7시∼오후 6시), 여름(오전 7시∼오후 7시) 각기 다르다. 북악산은 여전히 군사경계지역이어서 탐방로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2022년에는 숙정문에서 삼청공원까지 남측 탐방로도 열릴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819년 노예선 ‘르 로되르’가 아프리카를 떠난 지 15일이 지났을 무렵. 배에는 실명을 초래할 수 있는 전염병인 안염(眼炎)이 돌았다. 노예들의 충혈된 눈을 선원들은 무심코 넘겼고 결국 40명이 시력을 잃었다. 한쪽 눈을 잃은 선장은 맹인이 된 흑인 39명의 다리에 추를 묶고 바다에 던졌다. 상품 가치가 떨어진 노예를 파는 것보다 사망보험금을 받는 게 더 이득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끔찍한 이야기는 당시 노예무역에선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인격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는 노예에게 장애는 ‘흠결’이자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 건국 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한 부족에서 신체적 결함은 장애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결핍을 보완해 줄 공동체와 연결되지 못한 상태를 장애로 봤다. 책은 이렇게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장애의 개념을 렌즈로 미국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1492년 이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부족 사회가 펼쳐졌던 이 시기, 장애의 정의는 뚜렷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럽인이 북아메리카를 점령한 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때로는 노예 자체가 장애로 여겨졌고, 장애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이민법이 강화되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장애의 정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은 1968년부터 생겨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사회운동을 펼치며 스스로를 정의하길 시도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장애문화가 풍성해지고, 때때로 주류문화에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1988년 미국 농인학교인 갈로뎃 대학생들은 ‘농인(聾人)총장’을 요구하며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이고 승리를 쟁취했다. 저자는 헬렌 켈러의 정치 연설을 우연히 접한 뒤 장애역사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켈러와 그의 스승 앤 설리번의 정치적 삶에 주목한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는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던 공간이 전시실로 쓰인다. 일민 김상만(1910∼1994·전 동아일보 회장)의 집무실을 보존한 일민기념실이다. 권하윤 작가(39·사진)는 이곳에 ‘윤전기 멈춰요!’라는 네온사인 문구를 걸었다. 이는 1936년 동아일보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사진에서 유니폼의 일장기를 지운 ‘일장기 말소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서울 전시 설치를 마치고 프랑스에 있는 권 작가를 지난달 23일 화상통화로 만났다. 권 작가의 메인 작품은 1920년대를 가상현실(VR) 영상으로 재현한 ‘구보, 경성 방랑’이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에서 영감을 얻어 1920, 30년대 신문의 만문(漫文)만화(그림과 함께 긴 글을 덧붙인 만화)를 소재로 했다. 관객은 VR기기를 쓰고 그림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걷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권 작가의 말을 빌리면 ‘수공업에 가까운 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만문만화에서 영감을 얻었기에 (그림은) 흑백으로 하되 손맛을 살리고 싶었어요. 기술적으로 가상공간에 직접 그릴 수 있어서 가상에서 조각하고 바느질하듯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작품은 1920년대 경성을 산책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흑백의 드로잉이지만 축음기에 가까이 가면 소리가 나고, 전차에 올라타면 실제로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구보 씨가 도시를 방랑하듯 관객도 체험하길 바라는 의도의 설정이다. “영상 작업을 하며 처음엔 답답함도 많았죠. 내가 봐주길 바라는 부분을 놓치거나, 영상 자체를 보지 않고 지나칠 때도 많으니까요. 이번엔 보는 사람의 자유에 좀 더 맡기자고 생각했어요.” 관객이 전차에 올라타야 이야기도 진행된다. 이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체험 시간도 조금씩 다르다. 어느 순간 흰 바탕이 검은색으로 바뀌는데, 검열에 관한 작가의 관심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100년 전 신문에서 검열된 지면은 검게 칠해졌죠. 영상에서도 검은 바탕은 검열된 공간이에요. 이 속으로 들어가면 ‘일장기 말소 사건’이 나옵니다. 모던한 도시는 사실 극소수의 기록된 역사란 생각이 들었어요. 일장기 말소 사건은 처음으로 우리가 일본을 지운 상징적 사건이니 강조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국민’이라는 의식을 가다듬은 계기라고 느꼈다. 구구절절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짧은 순간의 열광을 시청각으로 표현한 이유다. 권 작가는 “관객이 VR기기를 어색해하지 말고 구보 씨가 느꼈던 움직임과 자유를 더 적극적으로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2011년 프랑스 국립현대예술학교인 르프레누아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2015년 파리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에서 신인작가상을 받았고, 2017년 VR 작품 ‘새 여인’으로 같은 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기술을 활용해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장소나 기억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호평 받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의 ‘이우환 공간’은 미술 마니아에게 본관보다 더 유명한 곳이다. 이우환의 주요 작품을 보기 위해 해외 여행객이 일부러 찾기도 한다. 지난달 21일부터 이 공간에서 이우환과 빌 비올라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Ⅱ: 빌 비올라, 조우’전을 통해서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전은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연례 기획전이다. 이 작가가 미술사 중심에 있다고 추천한 작가 중에 한 작가를 선별해 ‘이우환 공간’에서 소개하는 전시다. 지난해 첫 시리즈 주인공은 영국 조각가 앤터니 곰리였다. 이번 전시는 빌 비올라의 197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우환 공간에는 ‘이주’(1976년), ‘투영하는 연못’(1977∼79년), ‘엘제리드호(빛과 열의 초상)’(1979년)가 전시된다. 이때 빌 비올라는 영상을 극도로 클로즈업하거나, 아주 느리게 재생하고, 합성하는 기술 등을 활용해 예술적 메시지를 담으려 시도했다. 그가 국제적 명성을 얻은 출발점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이후 작품들은 미술관 본관에서 더 큰 규모로 만날 수 있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인 ‘인사’와 영국 런던 세인트폴성당에 영구 설치된 ‘순교자 시리즈’(2014년), 다섯 개의 영상으로 이뤄진 대형 설치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2002년) 등이다.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흔해진 지금의 관점에서는 시각언어의 새로움이 한눈에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좀처럼 감상하기 어려운 비올라의 작품을 큰 화면에서 몰입해 볼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미술관은 이달 중 ‘2020 현 시대에서 느끼는 빌 비올라’ 전시 연계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우환 공간 앞 야외에서 시민 5명이 빌 비올라와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부산의 이우환 공간은 일본 나오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이우환 미술관이다. 입지 선정부터 건축 기본설계, 디자인을 이 작가가 맡았다. 1층에는 ‘관계항-좁은문’, ‘물(物)과 언어’ 등 8개의 작품, 2층에는 대표 회화작품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바람과 함께’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4월 4일까지.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아내가 아닌 예술가 우향 박래현(1920∼1976)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20여 년 만이다. 그녀가 남긴 작품의 이름과 제작 시기도 이번에 새롭게 정리됐다. 그 결과물을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에서 열리는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 등 작품 138점과 그가 생전에 썼던 글이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가 열리기 전 박래현에 관한 최신 자료는 1997년 삼성문화재단이 발행한 ‘한국의 미술가: 박래현’이었다. 2011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운보와 우향: 40년만의 나들이’전이 열리기도 했지만 운보가 중심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박래현의 작품을 보던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박래현만 따로 봐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정말 박래현은 김기창의 영향을 받기만 했을까?’ 김기창과 박래현을 독자적인 두 명의 작가로 보자는 생각에서 이 전시는 시작됐다. 그러나 전작에 관한 자료가 없어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미술관과 박물관에 전화부터 돌렸다. 2018년 전시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주변에 소문도 많이 냈다. 입소문을 퍼뜨리면 숨은 작품이 등장할 거란 기대에서였다. 김 연구사는 “다행히 한 분 한 분이 서로 연결해 주어 ‘고구마 줄기를 캐듯’ 작품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1966년 태피스트리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개인 소장가가 갖고 있었던 작품은 처음에 박래현의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진위의 근거가 되어준 것은 1994년 발간된 김기창의 전작 도록. 사진이 취미였던 김기창이 남긴 1966년 부부전 사진에서 작품을 확인했다. 이렇게 구성한 전시에서 관객이 놀라는 것은 열성적인 예술가로서 박래현의 모습이다. 태피스트리 작품에서 그녀는 엽전, 철사, 목재는 물론이고 커튼 고리, 하수구 마개까지 다양한 재료를 결합해 조형 실험을 한다. 독일 바우하우스의 여성 작가 애니 앨버스(1899∼1994)가 직조 공방에서 태피스트리의 조형성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 1920년대다. 박래현은 1960년대 미국을 방문하며 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박래현의 대표 작품인 추상화의 새로운 맥락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생전에 엽전, 맷방석(맷돌 밑에 까는 방석) 또는 금줄(아이를 낳았을 때 부정을 막으려고 거는 새끼줄)에 비유되곤 했다. 김 연구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토속적 소재에만 비유되거나 역사인식이 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래현은 이들 작품에 대해 1967년 ‘태양의 생활력을 황색으로, 인간의 생명은 피로, 타산을 벗어날 수 없는 시대의 신중성을 흑빛의 침묵으로 나를 대변했다’고 썼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붉은색, 노란색, 검은색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다. 김 연구사는 초기 회화부터 판화까지 “도상과 질감, 색채와 조형성에서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며 “그 단서가 되는 작품을 한두 점씩 전시장에 배치해 두었으니 꼭 확인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년 1월 3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폐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수년간 찬밥 신세였다. 심지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도 트럼프 대통령이 NAFTA를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으로 대체한 것을 긍정 평가한다. NAFTA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해외로 유출한 원흉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유무역이 가져다 준 보이지 않는 이익이 많다고 반박한다. 25년 동안 NAFTA가 동네북이 된 것은 오히려 정치인 탓이다. 그들은 ‘백인 남성 노동자’의 표심을 노리기 위해 선거철만 되면 NAFTA를 비난했다. 트럼프는 물론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도 예외는 아니다. ‘무역은 금기어가 아니다(Trade is not a four-letter word)’라고 역설하는 책은 정치적 수사(修辭)에서 벗어나 무역을 원점에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무역이 급격히 확대된 만큼 그 양상도 복잡해졌다. 경제적 인과관계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역에 관심이 없어 ‘포퓰리즘 샌드백’이 됐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책은 일반인이 갖기 쉬운 무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고 큰 그림을 이해하기 쉽도록 서술됐다. 무역에 관한 대표적 오해는 ‘무역적자는 나쁘다’는 것이다. 2018년 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무역적자에 관한 내용을 37번이나 올렸다. 공포감을 조성하는 형용사와 함께 그는 “어마어마한 적자를 되찾아야만 한다” “미국이 눈 가리고 강탈당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우리가 미용실에 갈 때마다 돈을 쓰기만 한다고 해서 ‘돈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는 없다. 지불한 만큼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이야기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또한 “무역적자는 경제정책을 평가하는 가장 형편없는 기준”이라고 말한다. 2부로 넘어가면 일상에 작용하는 자유무역의 효과들이 펼쳐진다. 타코 샐러드, 자동차, 바나나, 아이폰, 교육,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통해서다. 멕시코 음식으로 여겨지는 타코 샐러드는 사실상 모든 재료를 미국산으로 만들 수 있다. 미국산 부품을 가장 많이 쓴 자동차는 놀랍게도 일본의 혼다 오디세이다. 반대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수출한 차는 BMW SUV다. 또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아이폰, 교육 수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진지한 무역 상품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존 F 케네디로 대표되는 미국이 번영했던 시절의 가치를 되새긴다. 자유로운 경쟁의 장에서 창의성을 통해 발전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자연스레 평화도 이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서술은 철저히 미국의 관점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전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변화의 거센 물결에 관한 해답이 비난하는 정치인이 아닌 똑똑한 시민에게 있다는 것은 절실히 공감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임시 휴관 중인 삼성미술관 리움이 내년 3월 재개관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리움은 2017년 3월 홍라희 관장과 홍라영 총괄부관장이 사임하면서 이후 3년여 동안 사실상 개점휴업 상황이었다. 올해 2월부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상설 전시마저 중단하고 임시 휴관하고 있다. 미술시장의 ‘큰손’인 리움의 재개관 소식이 알려지자 미술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리움이 다시 문을 열면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 이사장은 2018년 12월부터 리움의 ‘발전 논의·자문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때부터 그가 어머니 홍 전 관장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미술계에서는 이 이사장이 최근 몇 년간 여러 미술전에 조용히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돌곤 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중소 갤러리 연합전(展)을 찾았고,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국내 작가 개인전의 프라이빗 오프닝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삼성의 패션사업을 이끄는 등 디자인에 강점을 지닌 이 이사장이 파인아트를 다루는 미술관은 어떻게 운영할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재개관 이후 기획 전시도 적극적으로 개최할 것으로 보여 눈길이 쏠린다. 리움은 ‘개점 휴업’ 상황에 놓이기 직전 김환기 회고전과 서예전 ‘필(筆)과 의(意): 한국 전통서예의 미(美)’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취소됐다. 그 이전에는 애니시 커푸어,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등 굵직한 해외 작가 개인전도 개최했다. 삼성미술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리움의 빈자리에 대해 미술계에서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다시 문을 연다니 고무적이다. 민간미술관답게 발 빠르게 과감한 전시를 열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리움 관계자는 “내년 개관을 목표로 준비 중인 것은 맞지만 여러 변수가 있어 개관 일정이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2004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관한 리움은 설립자인 이건희 회장의 성 이(Lee)와 박물관(Museum)의 ‘um’을 조합해 이름을 지었다. 7900m² 대지에 마리오 보타(스위스), 장 누벨(프랑스), 렘 콜하스(네덜란드) 등 세계적 건축가 3명이 설계했다. 도자기 수집에 취미가 있었던 이 회장의 고미술품과 홍 전 관장의 현대미술로 이뤄진 소장품 규모도 방대하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금강전도(국보 217호), 금동미륵반가상(국보 118호), 금제귀걸이(보물 558호) 등 국보·보물 100여 점을 갖고 있다. 또 청전 이상범, 백남준, 이우환, 오윤, 이불 등 국내 작가와 앤디 워홀, 요제프 보이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젤름 키퍼, 장미셸 바스키아 등 해외 주요 작가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MBN은 종합편성채널 설립 당시 자본금 불법 납입에 대해 29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67)의 아들인 장승준 MBN 대표이사 사장(39)은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MBN은 이날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2011년 종편 승인을 위한 자본금 모집 과정에서 직원 명의의 차명 납입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며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사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MBN을 사랑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 장승준 사장이 경영에서 물러난다”며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노력으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방송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MBN은 종편 승인을 받기 위해 납입자본금 약 4000억 원 가운데 약 550억 원을 은행에서 차명으로 대출 받은 뒤 임직원 명의로 주식을 사들이고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올 7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장 사장에게 벌금 1500만 원, MBN 법인에는 벌금 2억 원을 선고했다. 앞서 MBN 최대주주인 장 회장은 전날 불법 자본금 납입 관련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견 청취 자리에 참석해 “최초 승인 당시 불법에 대해 몰랐으며 2018년 금융감독원 조사 시점에야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또 불법 자본금 납입 관련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장 사장이 매일경제신문 대표가 된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짧았다”고 밝혔다. 의견 청취 과정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가 없었다는 얘기가 나왔고, MBN은 하루 만에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방통위는 30일 전체회의를 열어 MBN에 대해 승인 취소나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의결할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가야 고분군 중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이후 도굴 피해를 심하게 입은 곳으로 꼽힌다. 이 고분군의 한 무덤에서 장신구 유물이 도굴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쏟아졌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지연)는 경남 창녕군 교동Ⅱ군 63호분을 발굴해 조사한 결과 비화가야 지배자의 금동관 금귀걸이 구슬목걸이 등을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것만 빼면 지난달 몸 전체 장신구 일체가 발굴된 경북 경주시 황남동 신라 고분과 비슷하다. 교동Ⅱ군 63호분은 5세기 중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의 2m 북쪽에 있는 39호분은 안에서 빵봉지, 고무대야, 양동이가 발견되는 등 도굴로 황폐화돼 있었다. 창녕 지역 비화가야 고분은 덮개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유물을 쉽게 훔칠 수 있는 구조여서 비화가야 유물은 그동안 금동관 조각이나 장신구만 확인됐을 뿐 전모를 알 수 없었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의 면면은 화려하다. 머리 위치에서는 높이 21.5cm 금동관이 확인된다. 나뭇가지 모양 장식이 3단으로 세워져 있고, 관테 아래에는 곱은옥과 금동구슬이 드리워져 있다. 관 속에는 관모(冠帽)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도 발견됐다. 양쪽 귀 부분에서는 굵은고리귀걸이 1쌍이, 목과 가슴에는 남색 유리구슬을 서너 줄로 엮은 구슬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은장식 손칼이 달린 은허리띠를 둘렀으며 양손에는 각각 은반지 1개(오른손), 3개(왼손)가 확인됐다. 오른 팔뚝 부분에서는 원형금판에 연결된 곱은옥과 주황색 구슬도 나왔다. 팔찌나 손칼을 장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 무덤의 주인을 키 155cm가량의 최고 지배계급이고, 긴 칼 대신 굵은귀고리와 손칼이 발견된 점을 감안해 여성으로 추정했다. 무덤 안팎으로 순장자가 최소 5명 묻힌 흔적도 나타났다. 이들은 무덤 주인공과 같은 방향으로 목관에 안치돼 낮은 계급은 아닐 확률이 높다. 무덤 구조와 출토된 토기는 전형적인 가야 양식이지만 장신구는 신라의 것과 유사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양숙자 학예실장은 “낙동강 동쪽에 있던 비화가야가 신라와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며 “다만 무덤 양식이 가장 보수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가야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묘역 중 미정비지역을 조사하다 63호분을 발견했다. 지난해 11월 대형 덮개돌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고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다음 달 5일 유튜브를 통해 이번 발굴조사에 참여한 단원들이 출연하는 실시간 온라인 발굴조사 설명회를 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