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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작게 보였다. 의지하는 줄은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손은 땀으로 가득 찼다. 아찔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이 도전이 아들 이동헌 군(16)에게 힘이 될 수만 있다면 괜찮았다. 이 군의 아빠 이성준 씨(47)는 높이 89m, 17층 옥상에서 그렇게 래펠링(rappelling·고정된 줄에 매달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것)을 했다. 땅바닥까지 내려오는 데 5분이 걸렸다. 처음 한 걸음은 두려웠지만 태권도 사범인 이 씨는 곧 적응했다. 아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절로 환호성이 나왔다. 이 씨는 “우리 아들과 같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아찔했지만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군은 지난해 초 골육종(뼈에 악성종양이 생기는 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1년 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지금은 통원치료 중이다. 하지만 앞으로 3년은 더 병원을 오가야 한다. 병원 신세를 진 탓에 중학교 3학년을 한 해 더 다니게 됐다. 장래 희망이던 경찰은 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이 되려고 따놓은 태권도 4단도 이제는 소용이 없다. 이 씨는 주말이면 늘 아들 곁을 지켰다. 5일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한 빌딩에서 열린 ‘희망을 위한 로프’ 행사는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이 마련했다. 이 재단 캐나다 지부에서 2012년 시작한 래펠링 행사는 이날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열렸다. 이날 이 씨를 비롯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자원봉사자 10명이 줄에 몸을 맡겼다. 난치병 아이들 가족부터 난치병을 완치한 이들까지 기꺼이 참여했다. 격투기 단체 ‘로드FC’ 소속 김형수 씨(29)도 아이들을 위해 줄을 잡았다. 김 씨 역시 어린 시절 난치병인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았다. 지금은 완치됐다. 김 씨는 “경기장에 섰을 때보다 옥상에 오른 순간이 더 떨렸다. 아이들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사촌동생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전했다. “완치될 때까지 난치병 환자를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는 약속이었다. 일부 참가자는 슈퍼 히어로 복장을 하고 빌딩을 내려왔다. 재단 측은 내년에는 래펠링 참가자를 더 모으려고 한다. 더 많이 참가해야 난치병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는 생각에서다. 재단 관계자는 “12월 포털 사이트 등에서 난치병 환자를 위한 모금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영정 속에서 배우 김주혁 씨(45)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생전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웃음, 눈물을 주던 모습 그대로였다.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김 씨의 발인이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발인 전 약 40분간 비공개로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결식에서는 생전 고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종교 의식은 따로 진행되지 않았다. 운구 행렬 뒤를 김 씨의 연인인 배우 이유영 씨(28)가 지인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이 씨는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운구차 앞에서는 한참을 고개 숙여 묵념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에서 한 TV 예능프로그램 촬영 중 김 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상경해 3일 내내 빈소를 지켰다. 이 씨 외에도 수많은 연예계 지인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고인이 최근 출연해 사랑받았던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의 멤버인 배우 차태현 씨, 가수 데프콘 등이 참석했다. 장례식장을 내내 지켰던 차 씨는 이날 끝내 눈물을 보여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함께 출연했던 가수 정준영 씨는 방송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지난달 29일 출국해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김 씨의 옛 연인인 배우 김지수 씨도 함께 고인을 추모했다. 이 밖에 배우 황정민 정진영 유준상 천우희 문근영 씨 등 영화계 인사들도 김 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소속사 나무엑터스는 “고인의 따뜻하고 올곧은 인품과 열정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생전 아름다운 행보를 걸어 온 고인의 명복을 빌어 달라”고 했다. 김 씨의 팬 100여 명도 김 씨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김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일부 시민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고인의 시신은 화장한 뒤 아버지인 배우 김무생 씨(2005년 사망) 등이 안장돼 있는 충남 서산시의 가족 납골묘에 안치됐다. 1998년 SBS 공채 8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 씨는 드라마 ‘카이스트’를 시작으로 ‘프라하의 연인’ 등 드라마에 출연했다. ‘광식이 동생 광태’ ‘홍반장’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해 관객들로부터 사랑받기도 했다. 유작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흥부’와 ‘독전’을 남겼다. 고인은 유명 배우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후광 없이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고 차량 분석을 시작했다. 사고가 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결함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국과수 관계자는 “차량 감정 결과는 한 달가량 뒤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신규진·조윤경 기자}
영화배우 김주혁 씨(45)는 교통사고 당시 안전벨트를 착용했고 차량의 에어백도 정상 작동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에 따라 김 씨가 갑자기 운전능력을 상실한 이유를 놓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사고 당시 김 씨를 구조했던 소방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김 씨는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고 에어백도 작동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은 급발진 등 차량 자체의 결함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김 씨의 차가 갑자기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 이유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보통 이 같은 차량 사고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단서가 블랙박스다. 해당 차량에는 각종 운전기록이 담겨 있는 사고기록장치(EDR)가 없다. 블랙박스가 사실상 유일한 단서다. 하지만 현재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설치 여부도 불확실하다. 차체가 심하게 찌그러져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다. 경찰은 사고 현장 일대에서도 블랙박스를 찾지 못했다. 2014년 출시된 김 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는 블랙박스가 기본 사양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씨에게 차를 판매한 딜러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 차량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뢰해 분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 씨가 진정 효과가 있는 전문의약품을 한 달가량 복용 중이었다는 증언에 대해 경찰은 “부검 결과에서 약품이 검출되면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부검 결과는 약 일주일 후 나온다. 해당 약품은 피부과나 정신건강의학과 등에서 많이 처방된다. 졸음이나 피로, 드물게 부정맥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경찰은 “유족으로부터 김 씨가 약을 복용 중이라는 진술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김 씨가 사고 당일 방문할 예정이던 서울 강남의 한 의원에서 이날 김 씨 진료 여부를 확인했다. 한편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김 씨 빈소에는 연예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이날부터 일반 시민의 조문도 이뤄졌다.황성호 hsh0330@donga.com·신규진 기자}
교통사고로 숨진 영화배우 김주혁 씨(45)가 최근 진정 효과가 있는 전문의약품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불안, 긴장을 완화시키고 가려움증에도 효능이 있어 널리 쓰이는 약이다. 하지만 신경계나 심혈관계 부작용 탓에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사고 원인으로 약물 부작용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31일 김 씨의 한 지인은 “김 씨가 약 한 달 전부터 A약품을 복용했다”고 말했다. 본보가 확인한 약통에는 겉면에 ‘김주혁’이란 이름과 함께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라’고 적혀 있었다. 30일 치 약통에는 알약 15정가량이 남아있었다. 이 약은 피부과나 정신과에서 주로 처방한다. 몸에 두드러기가 심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할 경우에 쓰인다. 수술 전후 불안에 따른 긴장감을 낮출 때도 사용하는 등 병원에서 많이 처방하는 약이다. 다만 부작용 가능성 때문에 투약 방식이나 분량 등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졸음이나 두통, 피로 등이다. 드물게 경련과 운동장애, 방향감각 상실 그리고 알레르기로 인한 급성 쇼크인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오기도 한다. 김 씨는 평소 담배를 피웠지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등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고 한다. 소속사 측은 “김 씨가 앓고 있던 지병이 없으며 복용하던 약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씨가 평소 다니던 서울 강남의 B의원도 확인할 예정이다. 김 씨 소속사에 따르면 사고 당시 그는 B의원에서 매니저를 만날 예정이었다. 김 씨는 사고 2시간 전에 해당 의원과 전화했다. 유족 측은 경찰에 B의원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B의원은 피부미용 쪽 진료를 주로 하는 곳이다. B의원 관계자는 “김 씨가 이날 예약 확인 전화만 하고 오지 않았다”면서 “평소 피부 관리 외에는 다른 것을 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력한 사인 중 하나로 꼽혔던 심근경색은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김 씨의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김 씨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머리뼈 골절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1차 소견을 내놨다. 국과수는 다른 심장 문제나 약물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직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과수 관계자는 “정확한 부검 결과는 일주일 정도 후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의 안전띠 착용 여부는 확실치 않다. 사고 당시 김 씨를 구조했던 소방관들은 김 씨가 안전띠를 착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김 씨에게서 술 냄새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급발진 등 김 씨 차량의 결함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난 김 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는 사고기록장치(EDR)가 장착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EDR는 △자동차 주행 시간 △속도 △조작 행위 등이 자동으로 기록되는 장치다.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다. 경찰은 EDR를 분석해 사고 원인을 규명할 방침이었으나 해당 SUV(벤츠 G63 AMG)는 2014년 제작돼 EDR가 없었다. 국내에선 EDR 장착이 의무가 아니다. 벤츠 차량은 2016년 출고 차량부터 EDR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빈소는 이날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졌다. 빈소에는 연인인 배우 이유영 씨(28)를 비롯해 김 씨가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관계자 등 연예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황성호 hsh0330@donga.com·신규진·조동주 기자}

영화배우 김주혁 씨(45·사진)가 30일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는 자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운전하다 추돌사고를 일으킨 뒤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 아파트 출입문 입구에 충돌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목격자는 “김 씨가 추돌 직후 가슴을 움켜쥐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 경위와 김 씨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이르면 31일 김 씨를 부검할 계획이다.○ 두 차례 추돌 후 100m 돌진 사고는 이날 오후 4시 20분경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삼성 앞 영동대로에서 일어났다. 편도 7차로의 대로다. 김 씨의 SUV(벤츠 G63 AMG)는 2차로에서 영동대교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김 씨 차량은 3차로를 달리던 그랜저 승용차를 한 차례 들이받은 뒤 멈춰 섰다. 그랜저 운전자가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방향을 바꾼 순간 김 씨 차량이 갑자기 급가속하며 그랜저 옆 부분을 다시 들이받았다. 앞으로 돌진한 김 씨 차량은 우측 인도를 향해 3개 차로를 순식간에 가로질렀다. 그랜저 운전자는 경찰에서 “벤츠 운전자가 내 차를 들이받고 잠시 정차하는 사이 가슴을 움켜잡더니 갑자기 인도로 돌진했다”고 말했다. 김 씨 차량은 도로와 인도 사이에 있는 30cm 높이의 턱을 넘은 뒤 화단을 지나 40cm 높이의 철제 난간까지 뚫고 인도로 올라섰다. 김 씨 차량은 80m가량 인도를 질주하다 아파트단지 북문 기둥을 들이받고 경사진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 김 씨 차량은 45도 경사에 1.5m 높이의 계단에서 빠른 속도로 구르며 천장과 운전석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졌다. 인도 곳곳에는 검은색 스키드마크가 선명히 남아있었다. 김 씨가 인도에서 제동페달을 밟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 차량이 인도를 질주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사고 원인은 아직 분명치 않다. 일단 목격자 진술로 볼때 김 씨의 몸에 갑자기 이상이 생겼을 수 있다. 윤영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정확한 원인은 부검을 통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가슴을 움켜쥔 상태에서 돌진했다면 80% 이상은 심근경색이다. 가슴에 심한 통증이 오고 부정맥이 발생해 의식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 유족은 “지병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차량 결함 등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충격에 빠진 연예계 김 씨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연예계 동료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이 2013∼2015년 출연했던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의 연출을 맡았던 유호진 전 KBS PD(몬스터유니온 PD)는 “급하게 연락을 받아서 경황이 없다. 지금은 도저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고인은 2005년 별세한 배우 김무생 씨의 아들로 1998년 SBS 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드라마 ‘카이스트’ ‘프라하의 연인’과 영화 ‘YMCA 야구단’ ‘싱글즈’ ‘홍반장’ ‘방자전’ ‘광식이 동생 광태’ 등 멜로와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에서 매력을 선보였다. 2013년 12월부터 2년간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에 출연해 엉뚱하고 소탈한 모습을 드러내 친근한 배우로도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 함께 출연한 17세 연하 배우 이유영 씨(28)와 연인 사이로 발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올해는 그에게 ‘제2의 전성기’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아르곤’에서 열정적인 언론인 김백진 기자 역할을 맡아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안타깝게 유작이 됐다. 올 1월에는 현빈, 유해진 씨와 함께 출연한 영화 ‘공조’가 누적 관객 78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27일 열린 제1회 서울어워즈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고인은 “영화로 첫 상을 받았다. 연기한 지 20주년인데 큰 상을 받게 됐다”며 소감을 전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신규진·유원모 기자}

“뭐야, 이 미친놈!” 28일 오전 2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서 한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핼러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복장으로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신데렐라 드레스 차림의 여성에게 쏠렸다. 좀비로 분장한 한 남성이 술에 취한 채 여성의 얼굴과 허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문제의 남성은 여성의 항의에 미안한 기색도 없이 키득거리며 함께 온 일행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동을 지켜보던 기자의 얼굴 옆으로 담뱃불이 휙 스쳐갔다. 불을 붙인 담배를 든 한 남성이 친구와 어깨동무를 한 채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가 손에 든 담배는 잠시 뒤 간호사 복장을 한 여성의 등에 닿았다. 담배 불똥이 흰 옷 위로 튀었다. 이태원 일대에서 27일 열린 핼러윈 축제가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무질서가 판을 쳤다. 이태원 중심가의 한 클럽. 투명한 창 너머로 교복 차림의 여성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한 중년 남성이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었다. 문제의 남성은 여성들의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까지 해가며 한참 동안 ‘몰래카메라’ 촬영에 열중했다. 선정적인 차림의 여성만 찾아다니며 카메라로 현장 생중계를 하는 BJ(인터넷방송 진행자)도 종종 눈에 띄었다. 거리 곳곳에선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했다. 스파이더맨 등 영화 캐릭터 복장을 한 취객 한 무리가 도로로 몰려나와 주행 중인 차량 옆으로 쓰러졌다. 한 남성은 “내 발이 밟힐 뻔했다”며 차량 운전자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정차 중인 택시 보닛 위에 큰대자로 누워서 잠든 남성도 있었다. 택시 운전사는 “깜빡 못 보고 출발이라도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혀를 찼다. 인도에는 깨진 병 조각이 나뒹굴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여성들은 총총걸음으로 유리 조각을 피하느라 애를 먹었다. 클럽과 술집 화장실은 핼러윈 축제 참가자들이 남긴 분장용 물감 얼룩으로 난장판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이태원 일대의 유동인구는 20만 명으로 평소 금요일 밤의 2.5배나 됐다. 취객이 늘면서 경찰을 찾는 허위 신고도 급증했다. 28일 오전 2시 반경 한 공용화장실 비상벨을 통해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급하게 출동했다. 하지만 신고가 접수된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허탕을 친 출동 경찰관은 “술에 취해 신고용 벨을 잘못 누르는 경우가 잦다. 오늘 같은 날은 (장난 삼아) 일부러 누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분장 때문에 오해도 빚어졌다. 이날 오전 5시경 만취한 20대 남성들이 싸우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출동했다. 현장에는 피투성이가 된 남자들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상처 입은 분장을 한 남성들이었다. 이태원 파출소는 아예 시장통으로 변했다. 술에 취한 채 행패를 부리다 수갑이 채워진 한 남성은 경찰관들에게 “이거 풀라고. 이 어린 놈의 ××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곁에 있던 술에 취한 여성은 파출소 바닥에 연신 침을 뱉었다. 짧은 머리의 한 남성은 술이 덜 깬 상태로 경찰관에게 “담배 한 대만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파출소 안은 신고자와 붙잡혀 온 사람들로 날이 샐 때까지 북적였다. 취객의 욕설에 시달리던 한 경찰관은 “밤새 사건 사고가 하도 많아서, 자꾸 무전을 치다 보니 아예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하소연했다.구특교 kootg@donga.com·황성호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뇌물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도식이 26일 열렸다. 다음 달 14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을 맞는 날이다.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진행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은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친박(친박근혜)계 집회를 방불케 했다. 추도식장 입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주장에 서명을 받았고 ‘박근혜 대통령 즉각 석방’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추도식에는 조원진 공동대표를 비롯한 대한애국당 소속 500여 명 등 2200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둘째 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63)은 추도사에서 “정당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 죄형법정주의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앞으로 역사의 법정에서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맹자 고자장구하(告子章句下) 얘기를 형님께 해주셨을 것 같다”고 했다. 맹자 ‘고자’ 편에 나오는 ‘하늘이 큰일을 맡기려고 할 때는 반드시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육체를 힘들게 하여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는 구절에 박 전 대통령이 처한 상황을 빗댄 것이다. 추도사를 마치자 “박근혜 대통령님 만세”라고 여기저기서 외쳤다.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 배지를 단 60대 여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켜주실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보다 추도식을 찾은 자유한국당 등 옛 여권 정치인은 적었다. 현역 의원 중에는 대한애국당 조 공동대표, 자유한국당 이헌승 의원만 참석했다. 지난해에는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과 새누리당 의원 대부분이 자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출당을 권고한 류석춘 한국당 혁신위원장은 봉변을 당했다. 이날 오전 10시 반경 류 위원장이 추모식장 지정석에 앉자 추모객 10여 명이 주위에 몰려왔다. 이들은 “박근혜가 박정희 딸이다. 네가 박근혜를 죽였다. 집으로 꺼져라”라고 고함쳤다. 류 위원장은 사복 경찰관 등의 보호를 받으며 쫓기듯 자리를 떴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시련’을 겪었다. 추도식 후 헌화를 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앞에 놓인 조화를 본 일부 추모객이 “저 조화 치워”라고 소리치자 현충원 측이 묘역 옆으로 옮겨 놓았다. ‘문재인’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게 뒤집어 땅에 놓았다. 현충원 측은 “추모객이 훼손할까 봐 조화 위치를 잠시 바꿨다”고 해명했다. 이날 추도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인 경북 구미와 일제강점기에 교사로 일한 경북 문경에서도 열렸다.최지선 aurinko@donga.com·황성호 기자}
여기저기서 “휴” 하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10명 넘는 사람이 모였지만 대화도 별로 없었다. 일부는 초조한 듯 눈을 감았고 일부는 바닥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20일 오전 10시경 울산 울주군청 브리핑룸의 모습이다. 이들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울주군 주민들이다. 얼굴마다 신고리 5, 6호기의 미래를 정할 공론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긴장감이 가득했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이 마침내 “공사 재개를 권고한다”고 발표하자 이들은 “와” 하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마침내 김 위원장의 설명이 끝나자 주민들은 “10년 감수했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도 있었다. 주민대책협의회 이상대 위원장(65)은 상기된 얼굴로 “무더위 속에 전국을 돌며 집회를 연 고생이 모두 잊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도와 환영, “처음부터 잘못된 출발” 이 시각 울산시민의 관심은 공론조사 결과에 쏠렸다. 공사 재개를 찬성 또는 반대하느냐에 따라 곳곳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공론화위원회 결정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갈등을 매듭짓자는 바람이었다. 공사 재개 권고로 큰 걱정을 덜게 된 건 신고리 5, 6호기 공사현장 근로자들이다. 공사가 완전히 중단될 경우 대다수 일용직 근로자는 다른 건설현장으로 옮겨야 할 처지다. 이미 3개월가량의 중단 기간에 300명 가까운 근로자가 다른 현장을 찾아 떠났다. 이날 현장에는 근로자 850여 명이 출근해 삼삼오오 모여 발표를 지켜봤다. 휴대전화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여럿이 함께 발표를 듣는 모습도 보였다. 공사 재개 결정 직후 근로자들은 “마음고생이 많았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근로자 권모 씨(40)는 “만약 공사가 완전히 중단되면 해외 건설현장을 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며 “공사 재개 권고가 났으니 이제 근처에 가족이 함께 머물 집을 구해야겠다”며 활짝 웃었다. 철근반장인 송홍근 씨(60)는 “근로자 절반이 원전 건설현장에서만 일한 30, 40대 경력자”라며 “공사가 중단되면 이들의 앞길이 완전히 막힐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이 크게 줄어 속앓이를 하던 지역 상인들은 크게 반겼다. 일부 식당에서는 점심 손님들에게 공사 재개를 환영하는 의미로 음료수를 제공했다. 울주군 서생면에서 10년째 식당을 하는 우영옥 씨(60·여)는 “3개월 동안 아예 장사를 접고 전국으로 집회를 하러 다녔다”며 “이제 손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장열 울주군수는 이날 “처음부터 잘못된 출발이었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어 다행스럽다”고 밝혔다.○ 유감과 실망, “공론화 기간 너무 짧아” 공사 재개를 반대한 단체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18일부터 울산시청 앞에서 철야 집회를 이어가던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자 오전에 열려던 기자회견을 3시간 늦췄다. 운동본부는 “공론화위 권고안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울산지역의 원전 수를 줄이는 데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주요 환경단체는 권고 내용을 수용하면서도 “탈원전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시민들의 숙의를 통해 내려진 이번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결정과 별개로 원전 축소는 지속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린피스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등 재앙과 같은 원전 사고를 겪으며 전 세계는 이미 탈원전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세계는 원전과 화석연료 대신 재생가능에너지로 몰리고 있는 만큼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변함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참여단이 공론화 기간 보여준 진중한 토론 모습과 판단을 존중한다”며 “다만 수십 년 간 온 국민이 핵 발전의 필요성과 안전성, 경제성 정보를 일방적으로 접해온 상황에서 공론화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찬반이 엇갈리는 환경 이슈는 공론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부안 방폐장(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나 밀양 송전탑처럼 국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반대파가 집단적으로 나서면서 충돌을 하게 된다”며 “이번처럼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어떤 의견에 도달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울산=황성호 hsh0330@donga.com / 정재락·김윤종 기자}
청탁금지법 시행 후 한국인의 윤리적 민감성이 커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법 적용 대상자들은 청탁금지법이 규제하는 사안 밖의 윤리 문제에는 다소 둔감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장영균 서강대 교수(경영학)와 오세형 한양대 교수(경영학) 연구팀은 최근 펴낸 논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른 윤리적 민감성 변화에 대한 연구’ 에서 한국 사회 변화를 이같이 분석했다. 윤리적 민감성이란 특정 윤리 이슈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를 말한다. 정도가 높아질수록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은 공무원 등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자 48명을 비롯해 158명을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난해 9월 28일 한 달 전과 두 달 후 각각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청탁금지법 시행 후 법 적용 대상자와 비(非)대상자 모두 윤리적 민감성이 높아졌다. 대상자 윤리적 민감성은 4.05에서 4.53(만점 6.0)으로, 비대상자는 4.06에서 4.63으로 향상됐다. 장 교수는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청탁금지법이 윤리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인지하는 능력을 높여준 것으로 보인다”며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윤리수준을 높일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법 적용 대상자는 청탁금지법과 관련 없는 윤리 문제에 대해서는 주목도가 낮아졌다. 이들 집단에서는 청탁금지법 적용을 받는 행위가 아닌 경우 민감성이 4.98에서 4.74로 떨어졌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전인 2015년에 비해 지난해 품위 손상과 유용 및 횡령으로 처벌받은 공무원은 각각 45.5%, 24.5% 늘어났다.황성호기자 hsh0330@donga.com}
옛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이 주축인 새민중정당과 민중연합당이 합쳐 민중당을 창당했다. 통진당은 2014년 말 “헌법상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가 해산 결정을 내렸다. 민중당은 1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통진당 출신 김선동, 김재연 전 의원을 비롯해 약 1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민중당은 출범선언문에서 “밖으로는 대미 추종외교와 대북 적대정책, 안으로는 개발 중심 경제정책과 소수 엘리트만의 정치체제가 여전히 굳건하다”며 “촛불혁명 정신을 계승한 정치세력 출범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민중의 직접 정치 만세”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출범식 이후 서울 광화문 일대 2개 차로를 점거한 채 종로1가 보신각 방면으로 1시간가량 행진했다. 이들은 ‘민중의 적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철회하라!’ ‘이석기를 석방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었다. 민중당 청년당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미친 트럼프 OUT’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했다. 새민중정당은 지난달 창당 당시부터 “통진당의 재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새민중정당 소속 김종훈, 윤종오 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통진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민중당은 이 국회의원 2명을 보유한 원내정당이 됐다. 민중당 측은 “통진당에 참여한 분들도 촛불혁명에 맞춰 변화하며 (민중당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공사장 타워크레인이 또 무너져 근로자 3명이 숨졌다.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는 발생하면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정부는 사고 때마다 대책을 내놓지만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10일 오후 1시 36분 경기 의정부시 낙양동 민락2지구 26층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해체가 진행 중이던 타워크레인이 갑자기 무너졌다. 이 사고로 14층 높이 기둥 부분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4명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염모 씨(50) 등 3명은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한 명은 안전장비가 아파트 10층 높이에 걸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중상이다. 또 지상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1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사고는 해체가 이뤄지던 타워크레인 상층부의 날개 부분이 붕괴되면서 발생했다. 해체하려면 타워크레인 기둥 부분을 조정해야 하는데 이때 날개 부분의 균형이 흐트러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과 소방당국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올 5월 경기 남양주시에서도 아파트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이 부러져 3명이 숨지는 등 사상자 5명이 발생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 6월까지 타워크레인으로 인한 사고는 23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17건이 작업관리 및 안전조치 미흡이 원인이었다. 타워크레인 사고가 계속되자 행안부는 지난달 고용노동부에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자격 기준을 강화하는 등 안전대책을 강화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고용부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2차 재해를 막기 위해 공사현장에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도 이날 사고 현장을 방문해 “대책본부를 구성해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엄중 조치하라”고 지시한 뒤 “인명사고를 낸 업체가 3년 내 또 사고를 내면 퇴출시키는 등의 타워크레인 중대재해 예방대책을 조만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의정부=황성호 hsh0330@donga.com / 유성열 기자}

서울 모 중학교 3학년 A 양(15)은 최근 자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애스크 에프엠(ASKfm)’에 올라온 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앱은 페이스북과 연동돼 특정 사용자에게 익명 누리꾼이 질문하는 방식이다. 질문을 받는 사람은 신상정보가 공개되지만 질문을 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A 양 앱에는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거론하며 성희롱하는 듯한 질문이 잇달아 올라왔다. A 양이 최근 학교 운동장에서 뛰다 넘어질 때 상황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들이었다. A 양은 “글이 올라온 후로는 운동장에서 놀지도 못하게 됐다”며 “경찰에 알릴까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위험수위’ 온라인 10대 문화 10대 온라인 놀이 문화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52) 아들은 지난해 이 애스크 에프엠으로 피해 여학생을 성희롱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주범 김모 양(17)과 공범 박모 양(18)은 온라인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만나 잔혹한 살인을 저질렀다. 특히 최근 일선 학교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애스크 에프엠이다. 성희롱부터 외모 비하까지 상대를 괴롭히는 일이 빈번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질문한 상대방을 어떻게 추적하느냐’라는 질문이 수십 건이다. 그만큼 피해를 본 청소년이 많다는 방증이다. 앱 개발사 측은 “질문과 답변이 더 원활해지도록 익명 질문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취지로 개발 의도를 설명해뒀지만 이런 의도와는 동떨어진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익명이다 보니 청소년들은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비뚤어진 질문을 퍼붓는 10대들은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 2학년 B 군은(14)은 “평소 좋아하지 않는 친구의 외모를 놀렸다가 경찰에 잡힐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뒤늦게 미안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뒤늦게 학교 차원에서 대응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 한 중학교에서는 애스크 에프엠에서 학생들의 성희롱 사례가 잇달아 벌어지자 조치에 나섰다. 지난달 중순 학교 측은 학생회를 통해 ‘학교가 직접 처벌하겠다’는 메시지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판에 올려 가해자의 자수를 권고했다.○ 광범위 유행 ‘캐릭터 설정극’ 자신을 유명 아이돌로 설정해 SNS에서 대화하는 ‘멤버놀이’는 10대 여학생 위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대화방에서 “나는 방탄소년단의 ○○○”라는 식으로 설정하고 그 멤버처럼 행동한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나 라인 같은 SNS에서 쉽게 참가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놀이를 하면서 10대들이 잘못된 성(性)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멤버놀이에 참여해 친분이 쌓이면 온라인에서 채팅으로 성행위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 멤버놀이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 여러 명에게 온라인에서 성추행 당하는 것을 이르는 ‘돌○○’, 다수가 모인 채팅방에서 성관계를 하는 ‘공○’이라는 용어도 버젓이 쓰이고 있다. 한 멤버놀이 참가자를 모집하는 홍보글에서는 “공○보다는 음담패설이 끌린다”며 “하려면 상황을 설정해서 와라”고 하기도 했다. 멤버놀이에서 더 진화한 형태가 인천 초등생 살인범들이 활동한 캐릭터 커뮤니티다. 10대뿐만 아니라 20, 30대도 참가하는 캐릭터 커뮤니티는 아예 가상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역할놀이를 한다. 이 사건 주범과 공범은 살인사건을 주제로 한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극적인 글로 더 주목받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의 심리가 온라인에서 각종 일탈이 벌어지는 한 요인”이라며 “10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앱의 한도를 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 국회의원의 중학생 아들이 또래 여학생을 성추행, 성희롱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경찰은 가해 사실 일부만 학교에 통보했다. 학교 측은 이를 바탕으로 ‘특별교육 5일’ 징계를 내렸고, 가해자와 피해자는 계속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21일 경찰과 학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A 군(15)은 올 3월 가정법원에서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수강을 명령받았다. A 군은 2015년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했고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피해자를 성희롱했다. 피해 여학생은 성희롱을 당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당시 A 군이 만 14세 미만으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觸法少年)이라 지난해 11월 가정법원에 곧바로 송치했다. 경찰은 A 군의 범행 가운데 성희롱 사실만 학교에 통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측에서 피해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다”며 “성추행은 모든 피해를 학교 측에 통보할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열린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에서는 A 군에게 특별교육 5일의 징계 처리를 내렸다. 학폭위는 학교 관계자와 학교전담경찰관(SPO) 등이 모여 가해 학생의 징계 수준을 판단하는 기구다. 판단 기준은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 △화해 5가지로, 0∼4점까지 점수가 매겨진다. 이 학교에서는 10점이 넘으면 출석이 정지되고, 16점이 넘으면 전학 조치가 이뤄진다. A 군은 총 6점을 받았다. 심각성(3점)은 높고, 고의성(2점)은 보통으로 판단됐다. 지속성은 1점이 매겨져 낮은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반성과 화해는 모두 0점이 매겨졌다. 학폭위 관계자는 “A 군이 깊게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와 화해를 해 이같이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A 군과 피해자는 같은 학교에서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피해자 측은 A 군에게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관계자는 “A 군과 피해자의 학급 편성을 일부로 멀리 떨어지게 배치하는 등 신경 썼다”고 말했다. A 군의 아버지인 여당의 전 국회의원은 1차 성추행이 발생했을 당시에 현직이었다. 본보는 해당 전 의원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황성호 hsh0330@donga.com·신규진 기자}

제26회 소충·사선문화상 대상에 정대철 국민의당 상임고문(통일시대준비위원장)이, 특별상에 황호택 동아일보 고문이 선정됐다.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위원장 양영두)는 19일 공적심사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또 방송인 김혜영 씨(언론·방송), 나종우 전북문화원 연합회장(문화예술), 김영만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의약), 김홍장 충남 당진시장(모범공직), 황금영 순천종돈장 대표(농업), 김정자 전 전북여성단체협의회장(향토봉사)을 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소충·사선문화제는 전북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축제다. 올해 55회 문화제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전북 임실군 등에서 열린다. 문화상 시상식은 문화제 마지막 날 오후 4시 30분 임실군 관촌면 국민관광지 사선대광장에서 열린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큰 불은 꺼졌다. 건물 바닥에서만 불길이 조금 보였다. 고비는 넘긴 셈이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오래된 목조건물이라 곳곳에 숨은 불씨가 언제 되살아날지 모른다. 잔불 제거도 어렵다. 목조건물은 천장을 뜯고 물을 뿌린다. 문화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석란정(石蘭亭)은 문화재가 아니지만 보존 가치가 높았다.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다. 직접 건물 안에 들어가야 했다. 잔불 제거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17일 오전 4시경 강원 강릉소방서 A 소방위(47)는 다른 소방관 3명과 함께 석란정 안으로 들어섰다. 3명 중 2명이 숨진 이영욱 소방위(59)와 이호현 소방사(27)다. 고인이 된 두 사람은 석란정에서 가장 가까운 경포119안전센터(경포센터), A 소방위와 나머지 1명은 조금 거리가 있는 다른 119안전센터 소속 진압대원이다. 앞서 A 소방위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불길은 거의 잡힌 상태였다. 이 소방위와 A 소방위는 잘 아는 사이다. 경력도 각각 30년, 21년으로 선임급이고 안전센터 위치도 멀지 않아 화재 현장에 함께 출동한 경우가 많았다. 베테랑인 두 사람을 중심으로 진압대원 4명은 잔불 제거를 위해 건물 내부에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바닥을 뜯어낸 뒤 물을 넣으려는 것이었다. 나무로 된 바닥의 불길을 잠재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작업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바닥을 뜯고 물을 넣는 것까지 성공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A 소방위가 조금 먼저 밖으로 나왔다. 혹시 외부에 잔불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 이 소방위 등 나머지 3명도 뒤를 따랐다. 출입구까지 두세 걸음 정도 남았을 때 ‘꽝’ 하는 굉음이 이어졌다. 굵은 기둥과 기왓장이 이 소방위와 이 소방사를 덮쳤다. 손쓸 틈이 없었다. 나머지 대원 한 명은 머리에 기왓장을 맞았지만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다. A 소방위는 “보통 건물이 무너질 때 기우뚱하거나 갈라지는 소리가 나는데 그날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몇 초 차이로 두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는 살았다”며 괴로워했다. 21년 동안 A 소방위는 현장에서 다치는 동료를 많이 봤다. 하지만 눈앞에서 동료가 죽음을 맞은 건 처음이었다. 특히 이 소방위의 순직은 큰 충격이었다. 같은 119안전센터 소속은 아니지만 이 소방위는 특별한 선배 중 한 명이었다. 긴박한 현장에서 당황하지 않고 늘 차분하게 후배들을 이끌며 화재를 진압하던 선배였다. 18일 119안전센터에서 만난 A 소방위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힘겨워했다. 그는 “(동료를 보낸 아픔이) 아마 평생 남을 것 같다”라며 “(트라우마도) 소방관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석란정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합동감식을 벌였다. 현장에서는 페인트 등 인화물질이 담겼던 것으로 보이는 용기 4개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석란정 관리자 소유로 화재의 직접 원인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했다. 석란정은 근처에 사는 이모 씨(80)가 관리하며 창고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전기설비가 있지만 수년 전 단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강원 강릉의료원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김 장관은 유족을 위로한 뒤 “두 분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제도 개선을 확실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지방직 신분으로 광역자치단체 소속인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바꾸는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강릉=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늘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던 우리 아들이 왜 여기 있죠….”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말했다. 자신보다 아버지 걱정만 하던 아들은 소방관 정복을 입은 채 영정 속에 있었다. 아들의 눈빛은 여전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아버지를 향했다. 17일 강원 강릉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경포119안전센터 이호현 소방사(27)의 아버지 이광수 씨(55)는 “전날도 근무 나가며 ‘식사 챙겨 드시고 걱정 마시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경 강릉시 경포 석란정(石蘭亭) 화재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숨졌다. 이 소방사의 ‘멘토’였던 이영욱 소방위(59)도 함께 희생됐다. 30년 경력의 베테랑인 이 소방위는 내년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해병대 전역 후 이 소방사는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과에 편입하며 뒤늦게 소방관을 준비했다. 이 소방사는 소방관을 준비하며 주변에 “나중에 결혼한 뒤 태어날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올해 1월 소방관의 꿈을 이룬 뒤 그는 “남을 도우면서도 이만큼 자랑스러운 직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소방관이라는 일의 자부심이 컸다. 이광수 씨는 “우리 호현이가 노량진 쪽방에서 독하게 소방관 시험을 준비했는데…. 그토록 바라던 소방관을 1년도 못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소방사 빈소에는 상복을 입은 여자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내년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계절별로 여러 사진을 찍어 놓기로 했다. 그러나 올여름 이 소방사가 정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 됐다. 이 소방사의 고모는 영정 앞에 술잔을 놓으며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던 조카가 죽어서야 술맛을 본다”며 울먹였다. 동료들은 “이 소방사가 항상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멘토인 이 소방위는 ‘잉꼬부부’로 소문났다. 재치가 넘쳐 늘 가족을 즐겁게 해주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싫은 소리, 화 한 번 내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비보에 이 소방위의 아내는 이날 남들의 부축을 받지 않고는 걸을 수도 없었다. 이 소방위의 형 이영환 씨(71)는 “금실이 너무 좋은 부부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2000년대 초 어머니(91)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자 이 소방위는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6남 2녀 중 일곱째인 이 소방위는 쉬는 날이면 빠짐없이 요양원을 찾아 노모의 말동무 역할을 했다. 그의 소원은 매일같이 노모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그는 “퇴직하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매일 뵙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정년퇴직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그는 늘 현장을 지켰다. 주변에서 “말년인데 몸 생각하라”고 말해도 그는 사이렌이 울리면 가장 먼저 장비를 챙겼다. 동료들은 “최고참인데도 이날 새벽 호출을 받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 불 앞에서 늘 앞장서던 선배였다”고 말했다. 이 소방사는 베테랑 이 소방위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이 소방위 역시 현장에 출동하면 이 소방사를 아들처럼 여기며 가르쳤다. 최상규 경포119안전센터장은 “한 팀을 이뤄 화마와 싸워 온 동료를 잃게 돼 너무 안타깝다”며 “강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던 이 소방위와 팀 막내로 센터 분위기를 밝게 만들던 이 소방사가 순직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소방관에게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된다.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거행된다.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강릉=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강릉=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늘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던 우리 아들이 왜 여기 있죠….”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말했다. 자신보다 아버지 걱정만 하던 아들은 소방관 정복을 입은 채 영정 속에 있었다. 아들의 눈빛은 여전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아버지를 향했다. 17일 강원 강릉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경포119안전센터 이호현 소방사(27)의 아버지 이광수 씨(55)는 “전날도 근무 나가며 ‘식사 챙겨 드시고 걱정 마시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경 강릉시 경포 석란정(石蘭亭) 화재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숨졌다. 이 소방사의 ‘멘토’였던 이영욱 소방위(59)도 함께 희생됐다. 30년 경력의 베테랑인 이 소방위는 내년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해병대 전역 후 이 소방사는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과에 편입하며 뒤늦게 소방관을 준비했다. 이 씨는 “우리 호현이가 노량진 쪽방에서 독하게 소방관 시험을 준비했는데…. 그토록 바라던 소방관을 1년도 못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소방사의 고모는 영정 앞에 술잔을 놓으며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던 조카가 죽어서야 술맛을 본다”며 울먹였다. 동료들은 “이 소방사가 항상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6남 2녀 중 일곱째인 이 소방위는 치매 증상이 있는 노모(91)를 열심히 보살폈다. 그는 “퇴직하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매일 뵙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주변에서 “말년인데 몸 생각하라”고 말해도 그는 사이렌이 울리면 가장 먼저 장비를 챙겼다. 동료들은 “최고참인데도 이날 새벽 호출을 받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 불 앞에서 늘 앞장서던 선배였다”고 말했다.강릉=최지선 aurinko@donga.com / 황성호 기자}

17일 오전 3시 51분 강원 강릉소방서로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불이 난 곳은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石蘭亭). 전날 오후 9시 45분경 발생했다가 소방대원에 의해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약 400m 떨어진 경포119안전센터(경포센터) 소방관들이 긴급 출동했다. 석란정은 1956년 지어진 목조 건축물이다. 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경포를 지킨 건물인 데다 다시 살아난 불이라 소방관들은 진화에 전력을 다했다. 그 덕분에 8분 만에 불길을 잡았다. 소방관들은 30분 가까이 현장을 지켰다. 혹시 남았을 불씨 걱정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 4시 29분경 건물 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영욱 소방위(59)와 이호현 소방사(27)가 나란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뒤 굉음과 함께 낡은 지붕과 벽체가 무너졌다. 구조에 나선 동료들이 10여 분 만에 두 사람을 찾아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석란정은 목조기와 건물이다. 높이 10m, 면적 40m² 규모. 철거가 예정된 무허가 건물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 건물 외벽에 금이 가는 등 이상이 제기됐다. 이런 상태에서 전날 화재로 기둥이 약해지고 물을 많이 머금어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소방본부 관계자는 “문화재는 아니나 보존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진화하려다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소방관이 발견된 지점은 출입구 근처였다. 붕괴 조짐이 보여 빠져나오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화재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건물 내부에는 전기시설이 없다. 실화 등 외부 요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근처에 폐쇄회로(CC)TV는 없다. 석란정은 높이 3m가량의 펜스에 둘러싸여 있다. 다만 10m가량 떨어진 대형 호텔 공사 현장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다. 현장에서는 시너통 1개가 발견됐다. 건물 관리인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직접적인 화재 원인으로 보기 어렵지만 불길을 확산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화재에 취약한 석란정이 두 차례 발화와 진화를 통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며 “화재 원인을 다각도로 조사 중이다”고 밝혔다. 이 소방사는 소방관을 준비하며 주변에 “나중에 결혼한 뒤 태어날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올해 1월 소방관의 꿈을 이룬 뒤 그는 “남을 도우면서도 이만큼 자랑스러운 직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소방관이라는 일의 자부심이 컸다. 이 소방사 빈소에는 상복을 입은 여자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내년에 결혼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계절별로 여러 사진을 찍어 놓기로 했다. 그러나 올여름 이 소방사가 정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 됐다. 이 소방위는 ‘잉꼬부부’로 소문났다. 재치가 넘쳐 늘 가족을 즐겁게 해주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싫은 소리, 화 한 번 내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 초 어머니(91)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자 이 소방위는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지금도 쉬는 날이면 빠짐없이 요양원을 찾아 노모의 말동무 역할을 했다. 그의 소원은 매일같이 노모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이 소방사는 베테랑 이 소방위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이 소방위 역시 현장에 출동하면 이 소방사를 아들처럼 여기며 가르쳤다. 최상규 경포119안전센터장은 “한 팀을 이뤄 화마와 싸워 온 동료를 잃게 돼 너무 안타깝다”며 “강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던 이 소방위와 팀 막내로 센터 분위기를 밝게 만들던 이 소방사가 순직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소방관에게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된다.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거행된다.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강릉=이인모 imlee@donga.com·황성호·최지선 기자}
비는 야속하게도 화마(火魔)를 잠재우지 못했다. 9월의 셋째 주말(16~17일) 강원 강릉시는 먹구름에 휩싸여 간혹 떨어지는 빗줄기로 적셔졌다. 그러나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石蘭亭)에서 16일 오후 9시 45분경 발생한 불길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 불은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곧 진압됐지만 이튿날 오전 3시 52분경 석란정 바닥에서 다시 피어올랐다. 경포119안전센터 소속 이영욱 소방위(59)와 이호현 소방사(27)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이유였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9개월로 끝난 자랑스러운 제복 “‘걱정 마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우리 아들이 왜 여기 있죠….” 17일 두 ‘영웅’의 빈소가 차려진 강릉시 강릉의료원. 이 소방사의 아버지 광수 씨(55)는 아들의 순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복을 입은 영정 속 아들은 여전히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하는 눈빛이었다. 광수 씨는 “전날도 근무 나가면서 ‘식사 챙겨 드시고 걱정 마시라’고 했는데…”라며 허망해했다. 이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경 경포 석란정(石蘭亭) 화재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렸다. 이 소방위도 함께였다. 둘은 18분 뒤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곧 숨을 거뒀다. 소방공무원이 된 지 9개월이 된 이 소방사와 30년 경력으로 내년 말 정년퇴직을 앞둔 이 소방위는 ‘멘티’와 ‘멘토’처럼 묶인 한 조였다. 이 소방사는 해병대 전역 후 뒤늦게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과에 진학해 소방관의 꿈을 키웠다. 그는 평소 주변에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그만큼 소방관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소방관만큼 자랑스러운 직업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가 최근 간식을 양 손에 한가득 든 채 모교를 찾아 “강릉 전체를 책임지는 소방대원이 되겠다”고 말한 까닭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빈소를 찾은 가족들과 친구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사의 고모는 그의 영정 앞에 술잔을 놓으며 “남들 지켜야 한다고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던 조카가 죽어서야 술맛을 본다”며 울먹였다. 광수 씨는 “우리 호현이가 노량진 쪽방에서 독하게 소방관 시험을 준비했는데…그토록 바라던 소방관을 1년도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눈물로 보낸 평생의 단짝 ‘잉꼬 부부’로 동네에서 소문이 난 이 소방위의 아내는 빈소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아들의 어깨에 기대 힘겹게 빈소에 앉아 있었다. 재치가 넘쳐 늘 가족을 즐겁게 해주던 남편이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화 한번 내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비보에 이 소방위의 아내는 남들의 부축을 받지 않고는 걸을 수도 없었다. 이 소방위의 형 영환 씨(71)는 “금실이 너무 좋은 부부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6남 2녀 중 일곱째인 이 소방위는 치매증상이 있는 노모(91)를 열심히 보살폈다. 그는 “퇴직하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매일 뵙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 소방위는 퇴직 전 공로연수 대상자로 현장근무에서 빠져도 되지만 사이렌이 울릴 때면 앞장서서 출동했다. 동료들은 “최고참인데도 이날 새벽 호출을 받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 불 앞에서 늘 앞장서는 선배였다”고 말했다. 한편 두 소방관의 죽음에 동료들은 비통해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이 소방사는 베테랑 이 소방위를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한다. 이 소방위는 이 소방사와 함께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아들처럼 여기며 가르쳤다. 최상규 경포119안전센터장은 “한 팀을 이뤄 화마와 싸워온 동료를 잃게 돼 너무 안타깝다”며 “강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던 이 소방위와 팀 막내로 센터 분위기를 밝게 만들던 이 소방사가 순직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소방관에게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된다.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거행된다.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강릉=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강릉=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 “‘마녀사냥’이 내게도 닥칠지는 몰랐다. 자살까지 생각했다.” 11일 “아이 혼자 내렸다”며 버스를 세워 달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매몰차게 묵살했다는 잘못된 인터넷 글로 고통을 겪은 서울의 240번 시내버스 운전사 김모 씨(60)의 말이다. 김 씨는 인터넷에 올라온 숱한 악의적 글 때문에 사흘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혼자 많이 울었다고 했다. 진실을 밝히려니 두려움이 앞섰다고도 했다. 14일 동아일보와 만난 그는 마음고생을 털어놓으면서도 억울함에 간혹 몸서리쳤다. 》 “너무 고통스러워 자살 생각까지 들더군요. 마녀사냥이라는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사람 인생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는 건지….” 240번 시내버스 운전사 김모 씨(60)는 14일 서울 중랑구 한 공터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울먹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고 피부는 거칠었다. 지난 사흘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을 때, 부르튼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김 씨는 11일 오후 6시 반경 서울 광진구에서 “아이 혼자 내렸으니 세워 달라”는 엄마 A 씨의 요청을 무시하고 다음 정류장까지 버스를 몰았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그러나 사건을 조사한 서울시는 13일 ‘당시 김 씨가 아이 혼자 버스에서 내린 사실을 알 수 없었고 A 씨 안전을 고려해 바로 정차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김 씨는 A 씨를 내려준 뒤 1시간쯤 뒤인 11일 오후 7시 반경 동료 운전사들에게서 “인터넷에 240번 기사를 비판하는 글이 떠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사건을 처음 인터넷에 올린 누리꾼은 ‘미친 기사 양반’ 등 험악한 표현으로 김 씨를 비난했다. 김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오후 9시 반경 인터넷을 직접 확인한 김 씨는 자신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옥이 시작됐다. 그는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이 너무 많아 떠올리기도 싫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밥 한 끼 먹을 수도, 잠 한숨 잘 수도 없었어요. ‘운전사를 강력히 처벌하라’는 댓글을 보면 화가 치밀면서도 앞으로 몰아칠 고통이 두려웠습니다.” 충격을 받은 김 씨의 손발은 가끔씩 마비된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김 씨는 “사흘간 가족과 정말 많이 울었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12일 오후 2시경 두 딸은 김 씨가 보는 앞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김 씨는 “딸애가 울면서 키보드를 쳤다”면서 또 눈시울을 붉혔다. 두 딸은 혹여나 김 씨에게 더 큰 비난이 쏟아지지 않을까 더 조심했다고 한다. 김 씨는 13일 오후 서울시가 ‘김 씨의 위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하고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안정을 되찾아 갔다. “오늘(14일) 아침 인터넷에 들어가서 저를 옹호해 주는 글들을 보니 긴장이 풀려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족들도 그제야 웃음을 보였다. 딸들은 “아빠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김 씨는 아이 엄마 A 씨에게 욕을 했다는 오해를 가장 억울해했다. “기사 경력 33년 동안 단 한 번도 승객에게 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이 엄마가 ‘아저씨’ ‘아저씨’ 하는 소리만 들렸어요. 아이 엄마가 큰소리로 부르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듣지 못했을 겁니다.” 처음 ‘왜곡된’ 글을 올린 누리꾼이 공개 사과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김 씨의 고통은 끝나지 않은 듯했다. 이 누리꾼은 “기사에게 사과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사과는 받지 못했다. “인터넷을 볼 때마다 나를 비난하는 글만 눈에 들어와요. 이번 일이 죽을 때까지 나를 괴롭힐까 두렵습니다. 내가 망가진 것보다 회사 이미지에 먹칠하고 동료들이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 만들어 더 가슴 아프기도 하고요.” 33년째 버스를 운전하는 그는 회사의 ‘이달의 친절상’을 4차례, ‘무사고 운전포상’을 2차례 수상했다. 7월 정년을 맞았지만 회사가 요청해 1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다음 주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신규진 newjin@donga.com·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