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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소속 부대 참모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의병 제대한 이모 씨(22)가 당시 받았던 정신적 충격으로 기억상실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의 변호인 측은 14일 해병대사령부 군사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서 “이 씨가 주치의로부터 ‘간헐적 해리성 기억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리성 기억장애는 뇌의 이상이 아닌 정신적 충격 등 심리적인 이유로 나타나는 기억상실증이다. 실제로 이날 열린 2차 공판에서 이 씨는 사건 당시 정황을 전혀 진술하지 못했다. 이 씨는 피고인인 참모장 오모 대령(47)의 변호인 심문뿐 아니라 검찰의 심문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답했다. 이 씨는 자신이 작성한 진술서의 자필 서명을 확인한 뒤 “진술서에 쓰여 있다면 그 내용이 맞을 것”이라는 답변만 했다. 현재 이 씨는 이 같은 기억상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등 증상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권센터 측은 “이 씨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나 다니던 대학교 이름, 집에 가는 길 등을 상당 시간 기억하지 못하다가 다시 기억해 내는 등 기억상실 증세가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 씨가 성추행 사건으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양측 변호인은 이 씨의 심문을 비공개로 할 것인지와 이 씨의 전 여자친구에 대한 증인 채택 등에 대해서도 공방을 벌였다. 이 씨의 심문은 결국 공개로 진행됐고, 여자친구의 증인 채택 여부는 재판부가 추후 판단하기로 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안장식은 14일 오후 3시부터 약 30분 동안 유가족과 시민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서 엄수됐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의 약력보고, 정희경 청강학원 이사장과 강태욱 민주주의이념연구회장의 조사, 박관용 전 국회의장(장례위원장) 등의 분향과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정 이사장은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민주적으로 통일된 조국을 보셨을 텐데 안타깝다”며 “민족분단과 갈등의 참담한 현대사를 온몸으로 아파하시면서 살았으니 이제는 모진 풍상을 거두시고 깊은 마음속의 하나님 품에서 위로와 칭찬을 받으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황 전 비서의 시신은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생,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 안경모 전 교통부 장관 등이 묻힌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의 26번 자리에 안치됐다. 고인의 관을 싸고 있던 태극기를 벗기고 하관한 뒤 수양딸 김숙향 씨(68)는 허토를 위해 삽으로 흙을 떠서 뿌리다 입술을 깨물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하관 후 묘역 앞에는 ‘제26호 국가사회공헌자 황장엽의 묘’라고 쓰인 목비가 세워졌다. 김 씨는 “고인은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한 동포의 가슴속에 오늘도 내일도 살아 있을 것”이라며 “고인의 위업을 승계하는 것이 국민들의 관심과 격려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 빈소인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영결식은 내내 무거운 분위기였다. 고인의 영정과 국민훈장에 이어 태극기로 감싼 관이 운구되자 영결식장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230명이 수용 정원인 서울아산병원 1층 영결식장은 조문객으로 가득 찼고 일부는 문 밖에서 추도했다. 박관용 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북한 민주화의 깃발이 평양에 힘차게 꽂히는 그날 이 영정을 다시 모시고 선생님을 보내 드리겠다”면서 “7000만 송이 국화꽃을 밟으시며 편안히 천국의 계단에 오르시길 바란다”고 명복을 빌었다. 심호흡을 해가며 추도사를 읽던 조명철 전 김일성종합대 교수는 끝내 북받치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흐느꼈다. 이내 장내의 훌쩍임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특히 ‘값없는 시절과 헤어짐은/아까울 것 없건만/…/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가나/걸머지고 걸어온 보따리는 누구에게 맡기고/가나”라는 고인의 유작 시가 낭송될 땐 장내 울음소리가 높아졌다. 영결식을 마친 뒤 오동나무관이 영구차로 향하는 길엔 인민군 출신 탈북자로 구성된 북한인민해방전선 회원 20여 명이 양쪽으로 도열해 거수경례를 올렸다. 추모객 상당수는 국립대전현충원까지 고인과 동행했다. 장례위원회에서 준비한 45인승 버스 4대는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추모객들은 운구차가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일부 북한인권단체 회원은 플래카드를 펴고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10일 심장마비로 별세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4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치됐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부터 빈소인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고인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고인의 유일한 가족인 수양딸 김숙향 씨(68)와 장례위원회 관계자, 북한인권단체와 탈북자단체 회원 등 350여 명이 참석했다.장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들어온 조의금 2억2000만 원 가운데 장례비용으로 쓰고 남은 돈과 앞으로 모을 성금을 합쳐 황 전 비서의 유지를 기리는 가칭 ‘황장엽평화재단’을 만들어 활동한다는 데 측근들이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며 “제자들이 황 전 비서에게 바치는 기념 논문집도 조만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1997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탈북 공작을 담당했던 권영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부장 등이 1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조문에 맞춰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빈소를 찾아 조문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황 전 비서의 측근들에 따르면 권 전 부장은 12일 오전 김 전 대통령과 같은 시간에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김 전 대통령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권 전 부장은 1994∼1998년 안기부장으로 일하면서 각종 대북 공작을 총지휘했다. 황 전 비서의 탈북은 김 전 대통령의 임기 말에 성사된 쾌거였지만 그해 대선을 앞둔 ‘북풍’ 공작이 아니냐는 논란도 거셌다.권 전 부장의 지휘를 받아 실무를 담당했던 이병기 전 안기부 2차장과 그가 이끌었던 공작팀도 이날 오후 빈소에 들러 육개장으로 함께 저녁을 하고 헤어졌다. 권 전 부장도 이 자리에 합석할 예정이었으나 개인 사정이 생겨 안기부 공작팀 전체 회합은 성사되지 못했다.당시 황 전 비서와 함께 탈북했던 김덕홍 전 탈북자동지회장은 장례위원회 고문이면서도 13일 오후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당초 12일 오후 또는 13일 오전 조문할 예정이었다. 김 전 회장은 2002년 미국 방문 문제로 의견충돌을 겪은 뒤 황 전 비서와 소원해졌다. 그는 2009년 5월 한 세미나에서 “황 전 비서가 아직도 주체사상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비난하기도 했다.한편 황 전 비서를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경찰 경호팀 요원들은 10일 황 전 비서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경호하고 있다. 북한의 암살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특공무술 유단자 등으로 엄선된 이들은 시종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빈소를 지키던 한 탈북자는 “경호팀이 첫날에는 정신없이 사태 수습에 주력했지만 이틀째인 11일부터는 황 전 비서를 떠나보낸 것에 대한 황망한 심정이 얼굴에 가득하다”고 말했다.군인 출신 탈북자들로 구성된 북한인민해방전선(북민전)도 10일 밤부터 10명씩 조를 짜 빈소를 지키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인 지난달 9일 발족한 이 단체는 인민군 대위 출신인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가 대표를 맡고 군인 출신 탈북자 200여 명이 회원이다. 김 대표는 “발인과 하관식에 회원 대부분이 참가해 경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10일 사망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북한민주화위원장)의 영결식이 14일 오전 10시 빈소인 서울 송파구 풍납동 현대아산병원 영결식장에서 엄수된다. 영결식은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조사, 추도사 낭독 순으로 진행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고인의 유해는 운구차에 실려 경찰 사이드카 두 대의 호위 속에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으로 이동해 안장된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13일 오전 10시경 빈소를 찾아 헌화한 뒤 “장례가 원활히 치러지도록 경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는 1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황 전 비서 추모대회를 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3일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그는 “황 선생의 별세가 북한에 대해 희망을 갖거나 오해를 하고 있던 일부 국민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좋은 교육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방명록에 ‘북한의 많은 변화가 있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적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조문한 뒤 “황 전 비서는 용기 있는 결단을 해서 남한 사회에 북한의 허구성과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해주고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위해 애쓴 분”이라고 평가했다. 소설가 이문열 씨는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황 전 비서는) 우리 시대의 소설적인 인물”이라며 “직접 만나 들었던 얘기들과 남한에서 쓰셨던 책들을 바탕으로 후에 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한나라당 이상득 고승덕 의원 등도 빈소를 찾아 헌화했다. 경찰 측은 10일 밤부터 13일 오후 9시까지 3700여 명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의 전·현직 납치담당상인 야나기다 미노루(柳田稔) 법무상과 나카이 히로시(中井洽) 전 국가공안위원장은 이날 빈소에 조의문과 조화를 보냈다. 납치담당상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전담하는 각료로 일본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지한파인 에드 로이스 하원의원(공화당)은 “황 전 비서는 북한의 잔혹한 독재정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만방에 설파함으로써 자유를 지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줬다”며 “이제는 편안히 영면하기를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2003년 서울에서 황 전 비서를 면담했던 로이스 의원은 그해 10월 그의 미국 방문을 주선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장례 3일째인 12일 정치인과 일반인의 조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황 전 비서에게 1등급 훈장을 추서했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오전 황 전 비서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정부가 추서한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전달했다. 맹 장관은 “국무회의에서도 이의 없이 훈장 추서가 결정됐다”고 말했다. 장지도 사실상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확정됐다. 아웅산 테러사건 희생자 중 1등급 훈장이 추서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황 전 비서 역시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는 요건을 갖춘 것. 이날 오후 빈소를 찾은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황장엽 선생은 역사의 아픔이니 고인에 대해 생전과 사후 모두 국가가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며 ‘안전하게 영면하실 수 있게 조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 명예 장례위원장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빈소를 찾아 30분간 머무르며 유족을 위로했다. 김 전 대통령은 “황 선생은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으니 미국으로 망명하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내가 망명할 거면 탈북해서 왔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 애국자였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저와 점심 드시는 것을 큰 위안으로 삼으셨는데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나와 황 선생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남한에) 오셔서 사람들과 접촉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만났다”며 “황 선생이 탈북한 뒤 부인도 미국에서 자살하고, 아들도 자살하고 딸도 죽고 가족이 하나도 없어 얼마나 외로웠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오후 8시 반경에는 천안함 유족협의회 이정국 전 대표와 나재봉 전 천암함장례위원장이 빈소를 찾아 헌화했다. 이 전 대표는 “황 전 비서도, 저희도 분단이 낳은 비극을 겪은 사람들”이라며 “많은 분이 그런 생각 때문에 오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입장을 따진 후 조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원로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오세훈 서울시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도 이날 빈소를 찾아 헌화했다. 이날 오전 11시에는 황 전 비서의 입관식이 수양딸 김숙향 씨(68)와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궁중식으로 진행됐다. 대전 대덕구 분향소 마련 한편 대전 대덕구청에도 황 전 비서의 분향소가 마련됐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이다. 이날 대덕구는 “재향군인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유총연맹 대덕구지회 등 3개 단체가 ‘분향소를 만들고 싶으니 장소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해 대강당을 제공했다”고 밝혔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어르신은 북한의 독재가 3대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속상해 분사(憤死)하신 것입니다.”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인 김숙향 씨(68·사진)는 11일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고인의 빈소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 전 비서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는 김 씨는 이날 약 20분간 인터뷰를 하면서 북받치는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었다.김 씨는 “어르신이 최근 북한의 3대 독재 세습에 크게 진노하며 ‘국제사회에서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내부의 권력투쟁 때문에 곧 무너질 것이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르신은 남한 국민 중 올바르지 못한 정체성을 가진 일부 국민에게 북한의 독재체제 실상을 알리기 위해 한 시간도 낭비하지 않으려 뛰어다니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7년 망명한 이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10년간 이어지면서 고인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는 것. 김 씨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나면서 이제 뜻을 제대로 이뤄 보시려고 동분서주하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인은 자신의 탈북 때부터 도움을 준 김 씨를 수양딸로 삼아 13년 동안 친딸처럼 아끼며 정신적인 위안을 받았다. 김 씨는 황 전 비서의 사실상 유일한 국내 가족이자 상속인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황 전 비서의 한 지인은 “김 씨는 황 씨의 남한 생활 적응은 물론이고 저술 및 대외활동 등 각종 어려운 문제를 도맡아 처리했다”며 “황 전 비서는 외부인을 만날 때 자주 김 씨를 칭찬했다”고 전했다.김 씨는 “어르신께서 저를 처음 보셨을 때도 ‘이렇게 정직한 여자가 있느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이어 “돌아가시기 3일 전에도 ‘앞서가는 사람이 아프면 안 된다’며 편지와 전화 등으로 끊임없이 챙겨주셨다”고 했다. 나들이를 좋아했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바깥출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황 전 비서는 생전에 1년에 한 번씩 수양딸과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을 걷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김 씨는 “미국의 최고 번화가인 뉴욕을 꼭 방문하고 싶어 하셨는데 이젠 이룰 수 없게 됐다”며 “어르신의 큰뜻을 보필하면서 피를 나눈 것보다 더 큰 의지가 됐는데 착잡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동영상=故 황장엽 빈소, 조문행렬 이어져}

11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발걸음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장례위원회는 건물 1층에 황 씨의 빈소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일반인들의 조문도 받기 시작했다. 탈북자단체와 북한인권단체 등으로 구성된 ‘고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장 통일사회장 장례위원회’ 측은 이날 오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명예장례위원장으로 하고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 노재봉 전 국무총리, 정희경 청강재단 이사장을 공동 장례위원장으로 확정한 뒤 본격적인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이날 오전 10시경에는 김무성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 6명이 빈소를 찾아 헌화했다. 김 원내대표는 “황 씨는 2300만 북한 동포들이 폭정으로 고통 받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큰 희생을 했다”며 “국가가 예를 갖출 수 있도록 당 차원에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오 특임장관과 이회창 대표는 빈소에서 만나 고인의 장례 절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탈북자단체와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들의 조문도 줄을 이었다. 황 씨가 고문으로 있던 탈북군인출신 단체 ‘북한인민해방전선’ 회원들은 이날 자신들의 마크가 새겨진 군복을 입고 빈소를 찾아 헌화했다. 자유총연맹 회원 10여 명도 찾아와 황 씨의 영정 앞에 꽃을 바쳤다. 오후에는 박홍 신부(전 서강대 총장)가 빈소를 찾아 생전에 가깝게 지냈던 개신교 관계자들과 함께 기도를 올렸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빈소를 찾아와 헌화했다. 현 장관은 빈소를 나서며 “국립현충원에 모시는 것과 훈장을 추서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귀남 법무부 장관도 빈소를 찾아 40여 분간 합석해 장례위원회 측과 이야기를 나눴다.그러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지도부는 이날 빈소를 찾지 않았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 측은 “황 전 비서의 조문과 관련해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현재 조문 계획은 없지만 당내에서 ‘조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과 자유를 비판한 황 전 비서의 언행은 우리 헌법 정신에도 부합한다”며 “진보성향 시민단체와 정당도 황 전 비서의 별세를 애도하고 뜻을 같이 기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오후 늦게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전달했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보낸 수십여 개의 화환이 빈소에 도착했다. 오후 9시 반경에는 한 60대 남성이 술에 취한 채 빈소로 난입해 “절만 하고 나가겠다”며 고함을 치는 등 소란을 피워 경찰들이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한편 이날 오후에는 황 씨의 수양딸인 김숙향 씨와 일부 장례위원이 참여한 가운데 황 씨의 입관식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장례위원회가 조금 더 정리된 뒤 예를 갖춰 입관식을 치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해 하루 연기됐다. 입관식은 12일 오전 11시에 열린다.장례위원회 측은 “병원 빈소뿐 아니라 강남구 논현동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에도 임시분향소를 설치하고 시민들의 조문을 받고 있다”며 “일반인도 많이 오셔서 조문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류원식 기자 rews@donga.com▲동영상=故 황장엽 빈소, 조문행렬 이어져}

“처음 만날 땐 군인 같았지만 알고 지내면 위트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0일 오후 11시경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장로회신학대 주선애 명예교수(86·여·사진)는 황 전 비서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1924년생으로 황 전 비서보다 한 살 적은 주 교수는 고향이 평양으로 황 전 비서와 동향이다. “2002년 처음 만난 이후 같은 시기 같은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동질감에 빨리 친해진 것 같다”고 주 교수는 전했다. 주 교수는 황 전 비서와 매일 오전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부음을 접한) 10일에도 오전 8시 반경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다른 일이 바빠 바로 확인하지 않았는데 돌아가셨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일어나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매일 오전 8시 반경 잠에서 완전히 깬 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곤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황 씨를) 처음 만났을 땐 무서웠다”고 2002년 당시를 떠올렸다. 주변을 의식한 탓에 낯선 사람과는 인사도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황 전 비서에게 매일 오전 전화를 걸고 자주 만나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후 주 교수와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황 전 비서는 보안 문제 때문에 장거리 여행에 많은 부담을 느꼈지만 경기 양평은 3, 4회 정도 나들이를 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주 교수는 “황 전 비서는 밥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을 정도로 고기를 좋아했으며 특히 닭고기를 좋아했다”며 “이번 달에도 양평에 있는 안식관(개신교 여전도사 양로원)에 가서 토종닭 요리를 먹기로 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고 말았다”며 고개를 숙였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10일 새터민들은 차분하게 대책을 논의하면서도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새터민 원로들과 탈북단체 관계자들로 구성된 북한민주화위원회 회원들은 이날 서울 강남구 논현2동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에 모여 경찰 수사 속보를 주시하면서 대책을 논의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김영수 부위원장은 “탈북자들의 삶에 힘을 주시던 분이었는데, 팔다리가 다 떨어진 심정”이라며 “편찮으셨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가셔서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후원회 김일주 회장도 “남북통일을 위해 내려오신 건데 그날을 못 보고 가셨다”며 말끝을 흐렸다. 북한 인권 관련 시민단체에서도 애도를 표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탈북자 인권운동 단체의 정신적 지주이자 새터민들의 아버지 같은 분이 돌아가셨다”며 “10일 오전 임진각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행사에 황 전 비서께서 참여하시기로 했었는데, 행사 1시간을 남겨두고 비보를 들었다”고 비통해했다. 박 대표는 “황 전 비서는 최근에도 새터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의 3대 세습에 대해 ‘북한 주민을 한 번도 리드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후계자가 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불편해하셨다”고 전했다. 윤성욱 한국자유총연맹 대변인도 “민족의 평화통일과 북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오신 고인의 업적에 경의와 함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진보성향 단체인 사회민주주의연대 주대환 대표는 “북한 사정에 해박하셔서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라며 “아직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비보를 접하게 돼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도 황 전 비서의 사망 소식에 일제히 애도의 뜻을 전했다. 1997년 황 전 비서가 망명했을 당시 대통령으로서 외교적인 노력으로 황 전 비서의 한국 입국을 성사시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황장엽 선생은 전쟁을 막고 북한 세습독재의 허구를 통렬하게 질타하던 훌륭한 애국자였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도 “북한 체제에 항거하고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희생까지 마다하지 않은 남북 분단시대의 큰 별이자 영웅”이라며 “한반도에 중대한 정세변화가 예견되는 이 어려운 시점에서 황 선생님의 서거는 매우 안타깝고 충격적인 일”이라고 애도했다.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많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 회복, 민족의 평화를 위한 고인의 용기 있는 행동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황장엽 선생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세운 학자이면서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장관석 기자 jks@donga.com이유종 기자 pen@donga.com}
GM대우 ‘라세티’의 기술문건을 유출해 자사 자동차 ‘C100’ 설계 및 제작에 적용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된 러시아 자동차 회사 ‘타가즈’의 한국 법인인 ‘타가즈코리아’ 직원 7명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재욱 판사는 7명의 피고인 중 황모 씨(43·연구개발센터장)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부하 직원인 정모 씨 등 5명에게는 징역 8개월∼1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다만 황 씨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에 대해서는 2년간 집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오모 씨에게는 벌금 400만 원이 선고됐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사무소 분들께 잘 부탁드립니다.” 6일 오전 8시 50분경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50대 남성의 주머니에서는 이런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시신 주변엔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열한 살 난 장애인 아들을 둔 윤모 씨(52)로 밝혀졌다. 아들은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다 최근에 일감까지 끊겨 생활고에 시달리던 윤 씨는 아들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돼 지원금을 받거나 장애아동부양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주민센터 등에 알아봤지만 “대상이 아니다”라는 대답만 들었다. 윤 씨는 돈을 벌 능력이 있는 자신이 살아있기 때문에 아들이 지원을 못 받는 것으로 여겼다. ‘나만 세상에 없으면 아들은 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5일 오전 식구들에게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선 윤 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윤 씨는 1997년 지금의 아내인 김모 씨(54)와 결혼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혼인신고도 하지 못했다. 주민등록상 윤 씨의 아들은 부모가 없는 고아가 된 셈이라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자격이 생겼지만 가장 소중한 아버지를 잃게 됐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절굿공이 아래서 짓이겨지는 쌀은 얼마나 괴로운가! 그러나 수없이 두들김을 당한 다음에는 목화처럼 하얗게 쏟아진다….” 6일 오전 이화여대 이화·삼성교육문화관 대형강의실에서 베트남 출신 웬티투프옹 씨(21)가 호찌민의 어록을 한국말로 또박또박 읽어나가자 300명 가까이 모인 청중 사이에서 “와∼” 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은 이날 언어교육원 수강생과 교환학생 등 외국 출신 학생 10명이 참가하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했다. 1부 참가자로 나선 외국인 5명이 더듬거리며 말을 하는 초급, 중급 수준이었다면 2부에 나선 5명은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뽐내는 학생들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가 아니라 “이 자리를 ‘빌려’”라고 올바로 말하는 등 한국 사람들도 틀리기 쉬운 어휘 사용법이나 문법을 정확히 지키는 참가자도 있었다. 어렸을 적 사연을 발표하면서 동화구연을 하듯 우는 연기, 놀라는 연기 등을 능숙하게 해 내는 지원자도 눈에 띄었다. 파키스탄에서 온 방기 아남 씨(여·교양학부 3학년)는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한 듯 지도 선생님의 손을 꼭 잡는 모습을 보였다가도 단상에 올라가자 정확한 표준 발음과 억양을 사용하고 여유 있게 청중을 바라보는 모습도 보였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바트르하노바 가우하르 씨(22)는 “한국어와 카자흐스탄어는 같은 알타이어 계통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뒤 고국에 돌아가면 한국어 사전과 교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초·중급자들의 1부 발표와 고급자들의 2부 발표 사이에는 같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축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언어교육원 내 댄스동아리 회원 5명은 이날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와 이효리 등 한국 유명 가수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춰 관중의 환호를 받았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서울 마포구 주상복합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60여 m 높이의 대형 타워크레인 2대가 붕괴되면서 타워크레인 기사와 공사장에서 작업하던 인부 등 2명이 숨졌다. 6일 오후 2시 34분경 마포구 합정동 서교자이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4호기의 붐대(크레인이 달린 긴 팔 부분)와 조종석이 떨어져 나가면서 아래쪽에 있던 1호기의 붐대를 덮쳤다. 이 사고로 4호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 문모 씨(48)가 현장에서 사망했고 사고 현장 아래쪽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정모 씨(34)는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이날 사고 현장에는 인부 630여 명이 일하고 있었으나 경상자 1명을 제외하고는 추가 인명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타워크레인 1호기 조종사와 사고 상황을 목격한 공사현장 관계자들을 상대로 사고 경위를 조사하기로 했다. 또 시공업체와 하청업체 등을 상대로 안전관리 규정을 준수했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2일 오후 2시경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신구중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서 축구공을 사이에 두고 20여 명이 두 줄로 섰다. 하지만 이들 중 절반가량은 중학생이 아닌 40대 초중반의 ‘아저씨’ 들이었다. 신구중학교 ‘아버지회’가 아이들과 함께 체육대회를 연 것. 아버지회는 이 학교 학생들의 아버지로 구성된 학부모 모임이다. 신구중 아버지회는 올해 3월 처음 생겼다. “아버지도 자녀 교육과 학교 생활에 관심을 가져야 공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김평배 교장이 아버지들을 직접 설득했다. 처음 20명으로 시작했지만 6개월 만에 회원이 50명으로 늘었다. 아버지들은 일단 자녀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기준 아버지회 회장은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하면 아이들과 하루에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치기 힘든 때가 많아 대화를 하기 매우 힘들다”며 “이 때문에 아버지회를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체육대회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기획한 행사다. 최근에는 학생들과 산행을 하거나 대학 교수를 초청해 아버지와 자녀들이 함께 듣는 과학교실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번 학기에는 정신과 전문의를 초청해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강의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버지회 활동을 하는 가정의 어머니들도 “(남편이) 아버지회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아이와 대화도 자주 하고 아이 교육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들의 전문성을 살려 학생들이나 학교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아이들과 대화하다가 “밤에 학교 주변이 어둡다”는 ‘제보’를 들은 아버지회에서는 조명 분야에서 일하는 회원들이 중심이 돼 구청 등 관계기관에 가로등 밝기를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이들이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는 강연도 계속 준비할 예정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매달 한 번 모임을 열고 행사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신경을 쓰고 있지만 아버지의 ‘애정’에 목말랐던 학생들은 더 시간을 내달라는 ‘투정’을 부리는 모양이다. 이 학교 학생회장인 최지훈 군(14)은 “아버지회 행사를 통해서 아버지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이런 행사가 자주 열리면 학생들끼리도 더욱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한 번 놀아보지 않겠어?” 초등학교 동창생이자 어릴 때부터 ‘절친’이었던 박모 씨(38)와 이모 씨(A·38), 또 다른 이모 씨(B·38)는 어느 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런 생각을 서로에게 털어놨다. 15∼19세 때부터 도둑질을 시작한 이들에게 ‘논다’는 말은 절도행각을 뜻하는 말이었다. 판은 더 커지고 수법은 대담해졌다. 1년간 이들이 턴 곳만 148가구, 훔친 금품과 현금은 총 4억5000만 원어치에 이르렀다. 침입한 집에 혼자 있는 부녀자를 욕보이는 패륜적 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 가스배관 타고 10분 만에 털어 첫 범행 장소로 택한 곳은 이 씨(A)가 살던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가. 수십 년 ‘절친’ 답게 손발도 척척 맞았다. 이 씨(B)가 렌터카를 이용해 박 씨와 이 씨(A)를 범행 대상 지역으로 실어 나르면 이들은 범행 장소가 겹치지 않도록 ‘담당 구역’을 정해 재빠르게 골목으로 사라졌다. 몰래 들어가기가 쉽고 방범이 허술한 공동주택이 주로 범행 대상이 됐다. 이들은 지하층과 1층은 물론이고 2, 3층까지 쉽게 침입했다. 가스배관의 이음매를 연결하는 볼트 등 돌출된 부분을 사다리로 활용했다. 창살 모양의 방범창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발로 조금만 힘주어 밀면 쉽게 휘어졌다. 한 집을 터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안 된다. 한 번 ‘출동’하면 한 사람당 3, 4가구씩 털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서울 곳곳에서 1주일에 2, 3차례씩 집을 털었다. 박 씨는 혼자 있는 여성에게는 성폭행을 해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신고하지 못하도록 알몸 사진까지 찍었다. 지난해 2월 송파구 방이동에 사는 25세 여성을, 올해 7월에는 양천구 신정동에 사는 30세 여성을 성폭행했다. 25세 여성은 피해 직후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으며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컴퓨터 조립판매 가게를 운영하던 이 씨(A)는 훔친 컴퓨터 부품 중 비싼 물건은 장물로 내다 팔고 싼 물건은 자신의 가게에서 조립하는 컴퓨터에 붙여 내다 팔기도 했다.○ 명품 구입, 도박으로 탕진 이들은 훔친 돈으로 성실히 사는 중산층이 누리기 힘든 호화 생활을 했다. 박 씨는 강남구 삼성동에 월세 160만 원짜리 오피스텔을 얻어 살면서 고급 승용차를 두 달마다 바꾸고 140만 원짜리 루이뷔통 구두 등 명품으로 치장했다. 유흥업소 여종업원에게 1000만 원을 주고 ‘계약 동거’를 하기도 했다. 이 씨(A)는 해외 골프장과 고급 숙소 이용권이 포함된 유명 리조트 회원권을 구입했다. 스크린 경마에도 빠져 한 판에 1000만 원을 베팅하면서 돈을 탕진했다. 화면 속을 달리는 말에게 뿌린 돈만 수억 원이었다.○ 좀도둑에 지갑 털려 덜미 그러나 이들의 절도 행각은 훔친 수표를 다시 좀도둑에게 도둑맞으면서 덜미가 잡혔다. 도난 신고된 수표가 든 지갑을 사우나 사물함에 넣고 휴게실에서 잠들어버린 사이 사우나에 좀도둑이 들어와 이 지갑을 훔쳐간 것. 좀도둑은 이 수표를 사용하면서 지갑 속에 있는 박 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뒷면에 이서했다. 경찰이 수표 뒷면에 적힌 박 씨의 주민번호 등을 토대로 뒤를 쫓기 시작해 덜미가 잡힌 것이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수사 시작 이후 박 씨 신원을 파악했지만 바로 검거하지 않고 박 씨의 주변을 잠복하며 뒤를 밟았다. 결국 경찰은 잠복수사 4개월 만인 지난달 10일 박 씨를 검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두 명의 이 씨와 이들이 훔친 귀금속을 되판 장물아비 최모 씨(50) 등 4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절도 혐의로 체포했다. 박 씨에겐 성폭행 혐의가 추가됐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가스배관의 돌기를 밟고 위로 올라갔던 만큼 가스배관에 표면이 매끄러운 덮개를 씌우고 방범창도 강도가 센 것을 골라 설치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3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A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50층이 넘는 건물 4개동으로 구성된 이 아파트 건물 주변은 모두 폭 10∼20m의 정원에 둘러싸여 있었다. 보기에는 좋지만 불이 났을 때 소방차가 가까이 접근할 공간이 없었다. 그나마 식재된 수종(樹種)은 10m 이상 되는 소나무와 전나무 등이었다. 부산 해운대구 우신골든스위트 화재를 계기로 고층 주상복합건물의 화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서울에는 1998년 강남구 도곡동 아크로빌 분양 이후 30층 이상 주상복합건물만 총 120여 채에 이른다.○ 정원에 ‘차량 지상진입 금지’까지…소방차는 어디로?동아일보 취재진은 3일 고층 아파트의 소방안전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해 광진구와 양천구 등 서울의 주요 주상복합건물 세 곳을 둘러봤다. 이날 기자가 직접 가본 주상복합아파트는 모두 지상으로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는 구조였다. A아파트는 단지 내 자동차 출입구가 두 곳뿐으로 모두 지하주차장과 연결됐다. 단지 전체에 둘러친 울타리 중 한 곳에 넓은 대문을 설치했지만 역시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산책로만 설치돼 있었다. 또 다른 초고층 아파트인 양천구 목동의 B, C주상복합아파트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곳은 도로변에 위치해 소방차 접근은 가능했지만 정원으로 돌진해 들어가지 않는 한 지상 차량 출입이 불가능했다. 박형주 경원대 소방시스템학과 교수는 “소방차가 진입하더라도 15층 이상은 방재가 힘든데 건물 주위에 정원까지 만드는 것은 ‘소화(消火) 포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목동의 주상복합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부산 화재 이후 길이 막혀 소방차 진입이 안 되면 어떻게 하나 부쩍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저층에 상가가 설치된 주상복합건물의 ‘특수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양천구 목동 C아파트 건물은 상가로 사용하는 아래층이 아파트보다 훨씬 크게 지어져 있었다. 소방차가 건물 가까이 접근해도 아파트 건물까지 사다리를 펼치거나 건물 아래 에어매트를 설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특히 한 주상복합건물은 백화점 위에 지어져 화재가 나면 접근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내부 방재가 최선의 대책방재전문가들은 주상복합과 같은 고층건물은 화재 시 내부 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차량 진입이나 에어매트 등 일반적인 방재활동이 초고층 건물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주상복합의 경우 안전점검 결과에 따라 ‘집값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며 안전점검 자체를 기피하는 사례가 많아 평소에도 점검이 쉽지 않다”며 “평소 화재대비 훈련과 가스 점검 등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채광을 위해 방화문을 열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을 닫아 놓아야 연기 및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화재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내려와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방화셔터 점검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국내 대표적인 주상복합건물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평소에도 주민들이 화재에 민감해 조그만 연기가 나도 아파트 1층 생활안전센터에 즉각 신고하곤 했다”며 “이번 사건 이후 주민들이 화재 관련 이슈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것 같다”고 말했다.한편 국회에는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이 계류돼 있다. 50층 이상, 높이 200m 이상인 초고층 건물의 경우 30층마다 대피층을 만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한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를 포함해 50층 이하 주상복합아파트는 이 법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서울에만 31층 이상 50층 미만 주상복합아파트가 모두 110곳에 이르는데 화재가 발생하면 뾰족한 대비책이 없다는 얘기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동영상=부산 해운대 화재현장- 고층주상복합 오피스텔 우신골드스위트}
서울남부지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손왕석)는 30일 국회 기물을 파손한 혐의(공용물건손상)로 기소된 민주당 문학진, 민주노동당 이정희 국회의원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벌금 200만 원과 50만 원을 각각 선고했다. 민주당 당직자 4명에게도 1심과 같은 벌금 400만∼500만 원이 선고됐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민주당 당직자 2명에게는 “적법절차에 따라 공무를 집행하던 경위를 밀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은 유죄”라며 1심과 달리 벌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2008년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상정 과정에서 출입문과 집기를 부순 혐의로 기소됐다.}

“과외수업을 받는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신문과 책을 많이 읽어야 해.” 24일 숭실대 교정에서 만난 새터민 김금주 씨(20·여·숭실대 경영학과 2학년·사진)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새터민 후배들에게서 ‘대학 입시 노하우와 사회에 잘 적응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강조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다른 사회의 문화를 익히고 논리를 갖추려면 책과 신문을 꼼꼼히 읽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2004년 부모님과 헤어져 북한을 떠난 새터민 6년차 김 씨는 대학 입학 후 뉴질랜드 배낭여행,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오면서 후배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새터민들은 형편이 넉넉지 못한 경우가 많아 해외여행을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김 씨의 안전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서울 양천경찰서 보안과 최경숙 경위는 “금주는 성격이 쾌활해 친구가 많은 데다 새터민 어린이집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등 마음 씀씀이도 넓다”고 말했다. 김 씨는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지침들은 자신도 지키고 있는 것들이라고 했다. 매일 신문을 꼼꼼히 읽고 책은 한 달에 4∼6권씩 독파한다는 것. 올해 상반기에 다녀온 캐나다 어학연수도 책을 읽으면서 쌓은 글 솜씨 덕을 봤다. 글쓰기 공모전에서 2번 입상해 받은 상금을 어학연수 비용에 보탠 것. 김 씨는 최근 새터민 대학생들과 함께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모임을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또 북한 관련 책을 펴내고 싶어 틈틈이 글도 쓰고 있다. 그런 김 씨가 후배 새터민들을 끔찍이 챙기는 이유는 이렇다. “아시겠지만, 새터민 청소년들은 정신적 혼란을 느낄 때가 많아요. 후배들은 저보다 조금이라도 혼란을 덜 느끼고 자랐으면 좋겠어요.”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공원에 농민 9000여 명이 모였다. 매년 가을 개최하는 ‘전국농민대회’가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 것. “수확기 쌀값을 보장하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강행을 중단하라”는 농민들의 ‘결연한’ 목소리는 다른 해 농민 집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를 전달하는 방법은 확연히 달랐다. 작년까지는 집회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쌀을 길바닥에 뿌리거나 도로에 쌀 포대를 쌓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지만 올해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최 측인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올해 전국농민대회 집회 신고를 하면서 경찰에 “올해는 자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집회도 평화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매년 11월에 열던 행사도 올해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를 고려해 두 달이나 앞당기는 등 국가 행사에 협조하는 모습도 보였다. 경찰도 이에 화답했다. 경찰은 매년 농민대회에 4000∼5000명의 경비병력을 투입해 질서 유지에 나섰지만 올해는 800명만 현장을 지켰다. 과격시위 진압에 대한 걱정을 덜면서 여의도공원 주변 교통 흐름을 관리하는 등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한농련이 집회를 끝내고 여의도공원에서 여의도역까지 2km 구간을 행진할 때는 “행진에 참가하는 농민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경찰 측은 “한농련 측에서 먼저 평화적으로 집회를 열기로 약속한 만큼 이들이 준비한 집회가 안전하게 끝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했다”고 밝혔다. 한농련은 “어려운 농심(農心)을 전달하는 것이 행사의 목적이기 때문에 평화 집회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한농련은 그동안 과격 투쟁 위주의 집회시위 문화를 고민해 온 농민단체다. 지난해 말 상급단체인 ‘농민연합’을 탈퇴하고, 쌀 소비 촉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대안 중심’의 농민운동을 펴겠다는 뜻도 표명했다. 지금껏 시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농민들의 집회 시위는 ‘쌀 포대 퍼포먼스’나 경찰과의 대치 등 과격한 측면이 많았던 것이 사실. 그러나 한농련의 평화적인 집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길은 한층 부드러워졌고, 이들의 절절한 ‘목소리’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농련의 평화 집회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집회·시위를 준비하는 시민단체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시민단체들은 시위를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과격한 투쟁구호’인지, ‘다양성’인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이원주 사회부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