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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억 원을 기부했다. 이 재단은 정부의 ‘제3자 변제안’ 방침에 따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해 왔는데 최근 재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재단 등에 따르면 한경협과 대한상의는 이달 3, 4일 각 15억 원씩 총 30억 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앞서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인 포스코가 2023년 3월과 지난해 9월 두 차례에 걸쳐 60억 원을 기부한 뒤로 국내 기업이 포함된 경제인 단체가 기부를 한 건 처음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한일 경제협력 활성화 차원에서 한경협과 함께 기부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023년 3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재단의 재원을 국내 한일 청구권 협정 수혜 기업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포스코를 제외한 다른 기업들은 기부금을 출연하지 않았다. 재단은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 67명 중 22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배상금을 받아야 할 피해자는 45명이 더 있고, 피해자 한 명당 배상금은 최소 2억∼3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부로 재단은 앞으로 피해자 12∼18명에게 더 배상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됐다.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 재원을 마련하려면 최소 60억 원 이상의 추가 기부가 필요할 것으로 재단은 보고 있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
국민의힘 일각에서 대선 출마 요청을 받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사진)가 국민의힘 경선 후보 등록이 마무리되는 이번 주에도 사퇴 없이 미국의 상호관세 협상 관련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정부 등에 따르면 한 권한대행은 이번 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의 방미 결과를 보고받고 미국의 관세 부과와 관련해 산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등 경제 일정을 수행할 예정이다. 한 권한대행이 경선에 참여하려면 15일엔 사퇴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뒤 출마 신청서를 내야 하지만 한 권한대행의 경선 참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부와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다만 한 권한대행은 대선 불출마 여부에 대해서도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 등 모호성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이날 일제히 한 권한대행 추대론을 견제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당 일각에서 국가 비상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 중인 한 총리(권한대행)마저 흔들고 있다”고 했고, 안철수 의원은 “한 권한대행은 국내 서민경제, 외교, 관세를 포함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집중해도 버거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도 “대행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해 주기를 부탁한다”고 했다. 친한동훈계인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한덕수 차출설) 각본을 쓴 건 물러난 대통령과 여사 측근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에 한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억 원을 기부했다. 이 재단은 정부의 ‘제3자 변제안’ 방침에 따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해왔는데 최근 재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재단 등에 따르면 한경협과 대한상의는 이달 3, 4일 각 15억 원씩 총 30억 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앞서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기업인 포스코가 2023년 3월과 지난해 9월 두 차례에 걸쳐 60억 원을 기부한 뒤로 국내 기업이 포함된 경제인 단체가 기부를 한 건 처음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한일 경제협력 활성화 차원에서 한경협과 함께 기부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023년 3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재단의 재원을 국내 한일 청구권 협정 수혜 기업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포스코를 제외한 다른 기업들은 기부금을 출연하지 않았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이후 기업들이 합병과 분사를 거듭하면서 어떤 기업이 수혜 기업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부금을 출연하면 이사진이 배임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재단은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 67명 중 22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배상금을 받아야 할 피해자는 45명이 더 있고, 피해자 한 명당 배상금은 최소 2억~3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부로 재단은 앞으로 피해자 12~18명에게 더 배상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됐다.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 재원을 마련하려면 최소 60억 원 이상의 추가 기부가 필요할 것으로 재단은 보고 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전산 시스템이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비상계엄 선포 9일 뒤인 지난해 12월 12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내고 이렇게 주장했다. 국가정보원 점검으로 선거관리위원회 서버의 보안이 부실하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하며 선관위가 제대로 개선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상계엄으로 군을 동원해 확인하려 했다는 주장이었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도 탄핵심판 변론에서 “중국이 하이브리드전을 전개할 수 있다”며 거듭 선관위 해킹 가능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선관위에서 일부 보안 문제가 확인됐다고 해서 선거 결과를 뒤바꾸는 ‘부정선거’를 저지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 전자 투표를 도입하지 않은 만큼 유권자들이 실물 투표용지에 기표해 투표하고 개표 요원들이 수검표도 진행하고 있다. 또 정당 추천 참관인이 그 결과를 점검하고 있으며 각 후보에게 실시간으로 개표 정보가 전달된다. 설령 해커가 선관위 내부 직원들과 협력해 선관위 서버를 뚫고 해킹해 투표 결과 등을 조작한다 하더라도, 실물 투표지와 대조하는 과정에서 확인될 수밖에 없는 만큼 서버 해킹을 통해 선거 결과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선관위 서버 뚫렸다” 주장은 사실 아냐 선관위 서버를 해킹해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2023년 10월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선관위 보안 점검 결과 발표 이후로 불이 붙었다. 국정원은 가상 해커 역할을 한 직원이 인터넷을 통해 선관위 내부망과 선거망까지 침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선관위가 ‘망분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선관위 직원들이 일반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내부망과 선거 관리에 사용되는 선거망이 겹치는 접점으로 해커가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 이 점검 결과는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선관위 서버가 국정원에 뚫렸다”는 주장에서부터 “선관위 서버가 북한과 중국 해커에게 뚫렸다”는 음모론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선 선관위 수원 선거연수원에서 체포된 중국인 90명이 주일미군 기지로 압송돼 부정선거 관여를 자백했다는 허위 정보가 유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선관위 서버가 국정원과 해커에게 뚫렸다”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선관위는 밝혔다. 당시 점검은 선관위가 신속한 진단을 위해 방화벽을 비롯한 일부 보안 시스템을 해제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 선관위도 “보안 시스템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서버를 뚫지 못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국정원도 점검 대상이었던 선관위 일부 장비에서 해킹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국정원 보안 점검으로 드러난 일부 보안 취약점에 대해서는 “취약한 비밀번호를 바꿨고 보안 패치를 설치했으며 통합선거인 명부 서버에 접근 통제를 강화하는 등 시급한 사안에 대한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국가사이버안보위원회 구성해 선거 보안 점검”다만 당시 국정원 조사에서 미흡한 망분리와 허술한 비밀번호 관리 등 선관위 보안 시스템에 문제들이 발견된 만큼 해커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여러 차례 공격한다면 선관위 서버가 해킹당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서버 보안 취약점에 대해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선관위는 일정 자격 요건이 되는 민간 기관을 협력업체로 지정해 보안 컨설팅을 받아 왔다. 정부 부처는 매년 국정원 등으로부터 정기 점검을 받지만 헌법기관인 선관위와 국회, 법원행정처는 점검 대상에서 빠져 있다. 외부 점검 대상에서 제외된 선관위의 보안 담당 인력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는 3명에 불과했고, 관련 예산도 연간 10억 원 안팎에 그쳤다.이 때문에 국회와 민간, 정부가 참여하는 별도의 ‘국가사이버안보위원회’를 만들어 매년 보안 시스템을 점검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보안 점검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자는 것. 미국에서도 국토안보부의 사이버 보안 및 인프라보안국(CISA)이 주지방 선거기관의 보안을 점검하고, 민관 합동으로 운영되는 정보 공유 및 분석센터(ISAC)가 사이버 위협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관제탑 역할을 한다. 캐나다는 정부 산하 통신보안기관(CSE)이 선거관리관사무소를 점검하고 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보안 점검을 할 역량이 있는 곳은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이라며 “민간이나 국회가 위원회에 함께 참여하면서 견제하고 정부 부처의 기술적인 역량만 활용하면 된다”고 했다.선관위에 사이버 공격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보안 점검을 비롯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전자정부법을 개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미 국회에는 선관위원장이 사이버 위협이 발생했을 때 국정원장에게 통보토록 하는 전자정부법 개정안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선관위의 사이버 보안 책임자를 외부 전문가로 채용해 전문성을 제고하고 외부와 소통 접점을 늘리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선거인 명부 데이터베이스(DB)에 대해선 자료 변경 여부와 로그 기록이 전부 저장돼 추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선거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온열질환자 속출과 위생 불량 논란이 빚어진 2023년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의 조기 파행에는 운영 주체였던 조직위원회와 주무 부처였던 여성가족부, 대회를 유치한 전북도의 부실한 대처 등 ‘총체적 부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직위는 폭염이 예상되는 8월에 나무가 거의 없는 야영장에서 행사를 하면서도 생수나 얼음을 부족하게 준비했고, 대회 직전까지 화장실 등을 설치하지 못했는데도 부처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여가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도 국무회의에 ‘시설 설치 완료’라며 허위 보고를 했다. 전북도는 잼버리 야영장으로 적합하지 않은 부지를 충분한 검토 없이 선정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감사원, “야영장 부지 선정부터 소홀”10일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원은 전북도의 개최지 선정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잼버리 야영장이었던 새만금 갯벌은 지반 높이가 낮고 새만금호와 접해 있어 침수 위험이 컸다. 그런데도 전북도의 담당자는 2015년 7월 현장을 육안으로만 둘러보고 이곳을 잼버리 후보지로 정했다. 전북도는 또 새만금개발청이 9518억 원을 들여 부지를 개발하고, 포플러나무 10만 그루를 심겠다는 계획서를 한국스카우트연맹 측에 냈지만 감사원은 계획서 내용이 허위라고 봤다. 새만금청이 잼버리 부지를 개발하기로 한 적도 없고, 전북도가 염해성 토양인 잼버리 부지에 나무가 자랄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전북도는 부지를 매립해야 잼버리를 개최할 수 있다고 판단해 2017년 9월 당정청 회의에서 정부에 농지관리기금으로 부지를 매립해달라고 요청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지를 조성하는 데만 쓸 수 있는 기금으로 부지를 매립하면 위법 소지가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재검토 요청 이후 1845억 원을 투입해 부지를 매립해줬다. 감사원은 잼버리 부지에 대해 “제대로 된 야영장으로 만들려면 6년 4개월 공사 기간이 필요한 부지였다”고 밝혔다.● 사무총장, 총리에게 “화장실 청소, 뭐가 대수냐” 잼버리 개최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다. 조직위는 화장실 청소 등 현장 용역을 맡기로 한 업체가 10억 원의 추가 비용을 요구하자 오히려 “청소를 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비위생적인 화장실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대회 사흘 만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현장 점검에서 직접 화장실 변기를 닦기도 했다.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은 감사원에서 “다음 날 한 총리가 ‘화장실 청소가 안 된 곳이 있다’고 했는데 최창행 (당시) 조직위 사무총장이 ‘화장실 청소가 제대로 안 된 게 뭐가 그렇게 대수입니까’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대회 현장에선 ‘화상벌레’에 물린 피해자가 속출했는데, 조직위는 애초에 방역 전문가가 한 명도 없고 방제 용역을 수행한 적도 없는 회사에 방제 용역을 줬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 전 총장은 “폭염 물자로 실효성이 없다”며 얼음 구매를 중단시켰고, “수돗물을 마시면 된다”며 참가자들에게 생수를 하루에 1인당 1병만 지급했다. 잼버리 정식 행사 사흘 전 미리 입소한 참가자들 사이에서 온열 질환자가 여럿 발생했지만 조직위는 탈진을 막기 위한 염분 알약을 주지 않았다. 감사원은 허위 보고 등에 관여한 공무원 등 6명은 수사기관으로 넘겼고, 공무원 5명에 대해선 징계 통보했다. 퇴직한 김 전 장관과 최 전 총장 등 7명에 대해서는 비위 행위를 인사 기록으로 남겨두라고 했다. 전북도와 여가부는 “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여러 가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엉터리 투표지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게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올 2월 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피청구인석에 앉아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발언 기회를 얻어 이렇게 말했다. 비상계엄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보낸 건 ‘엉터리 투표지’로 불거진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이었다. 변호인단은 투표관리관 인장이 뭉개져 빨갛게 보이는 ‘일장기 투표지’나 접힌 흔적이 보이지 않는 ‘빳빳한 투표지’ 등을 언급했다.윤 전 대통령이 언급한 투표지들은 2020년 제21대 총선 당시 발견된 것들이다. 이미 2022년 대법원이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민경욱 전 의원이 낸 소송에서 재검표와 감정을 거쳐 “정상 투표용지”라고 판단한 것들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도 이 투표지들은 여전히 부정선거 의혹을 확산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하고 있다.‘빳빳한 투표지’에 대해 대법원은 “상당수에서 접힌 흔적이 확인됐다”며 “일부 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지는 선거인이 애초에 접지 않고 투표함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일장기 투표지’에 대해 대법원은 “(잉크가 들어 있어 인주가 필요 없는) 도장에 인주를 묻혀 찍었을 때 관인이 뭉개질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장이 다발처럼 붙은 투표지에 대해 대법원은 “정전기 때문에 붙은 것”이라는 감정 결과를 받아들였고, 접착제 등이 묻은 투표지에 대해선 “회송용 봉투의 접착제 등이 묻을 수 있다”고 했다.부정선거론자들은 당시 대법원 결론에 대해 “재검표에서 드러난 물증을 대법원 판결이 왜곡했다”고 주장하지만 재검표 과정에 참여했던 복수의 관계자들의 의견은 달랐다. 재검표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현장에선 민 전 의원 측 요구에 따라 사전투표용지 4만여 장의 일련번호(QR코드)를 전부 프로그램으로 분석했고, 결과는 문제없음으로 나왔다”며 “그 결과를 대법관 3명은 물론이고 부장판사와 대리인단들도 모두 지켜봤다”고 했다.다만 ‘이상한 투표지’가 한번 발견될 경우 수년간 부정선거 의혹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만큼 전문가들 사이에선 선관위가 투표사무원들에게 “제대로 인쇄되지 않은 용지는 절대 배부하지 말라”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투표지 인쇄 후 수작업 등으로 인쇄 상태를 확인하는 등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전투표용지를 당일 투표용지와 똑같이 제작하고 투표지마다 일련번호를 매겨 사후 검증이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며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겪지 않도록 논란을 없애는 차원”이라고 했다. 현재 투표일 당일 배부되는 용지에는 투표관리관이 일일이 도장을 찍는 반면, 사전투표용지는 선관위가 대량 제작을 위해 투표관리관 도장까지 일괄 인쇄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전투표용지에도 현장에서 일일이 도장을 찍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유권자가 오래 대기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온열질환자 속출과 위생 불량 논란이 빚어진 2023년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의 조기 파행에는 운영 주체였던 조직위원회와 주무 부처였던 여성가족부, 대회를 유치한 전북도의 부실한 대처 등 ‘총체적 부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직위는 폭염이 예상되는 8월에 나무가 거의 없는 야영장에서 행사를 하면서도 생수나 얼음을 부족하게 준비했고, 대회 직전까지 화장실 등을 설치하지 못했는데도 부처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여가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도 국무회의에 ‘시설 설치 완료’라며 허위 보고 했다. 전북도는 잼버리 야영장으로 적합하지 않은 부지를 충분한 검토 없이 선정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감사원, “야영장 부지 선정부터 소홀”10일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원은 전북도의 개최지 선정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잼버리 야영장이었던 새만금 갯벌은 지반 높이가 낮고 새만금호와 접해 있어 침수 위험이 컸다. 그런데도 전북도의 담당자는 2015년 7월 현장을 육안으로만 둘러보고 이곳을 잼버리 후보지로 정했다. 전북도는 또 새만금개발청이 9518억 원을 들여 부지를 개발하고, 포플러나무 10만 그루를 심겠다는 계획서를 한국스카우트연맹 측에 냈지만 감사원은 계획서 내용이 허위라고 봤다. 새만금청이 잼버리 부지를 개발하기로 한 적도 없고, 전북도가 염해성 토양인 잼버리 부지에 나무가 자랄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전북도는 부지를 매립해야 잼버리를 개최할 수 있다고 판단해 2017년 9월 당정청 회의에서 정부에 농지관리기금으로 부지를 매립해달라고 요청했다. 농림부는 농지를 조성하는 데만 쓸 수 있는 기금으로 부지를 매립하면 위법 소지가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재검토 요청 이후 1845억 원을 투입해 부지를 매립해줬다. 감사원은 잼버리 부지에 대해 “제대로 된 야영장으로 만드려면 6년 4개월 공사 기간이 필요한 부지였다”고 밝혔다.● 사무총장, 총리에게 “화장실 청소, 뭐가 대수냐”잼버리 개최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다. 조직위는 화장실 청소 등 현장 용역을 맡기로 한 업체가 10억 원의 추가 비용을 요구하자 오히려 “청소를 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비위생적인 화장실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대회 사흘 만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현장 점검에서 직접 화장실 변기를 닦기도 했다.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은 감사원에서 “다음날 한 총리가 ‘화장실 청소가 안 된 곳이 있다’고 했는데 최창행 (당시) 조직위 사무총장이 ‘화장실 청소가 제대로 안 된 게 뭐가 그렇게 대수입니까’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대회 현장에선 ‘화상벌레’에 물린 피해자가 속출했는데, 조직위는 애초에 방역 전문가가 한 명도 없고 방제 용역을 수행한 적도 없는 회사에 방제 용역을 줬던 것으로 나타났다.최 전 총장은 “폭염 물자로 실효성이 없다”며 얼음 구매를 중단시켰고, “수돗물을 마시면 된다”며 참가자들에게 생수를 하루에 1인당 1병만 지급했다. 잼버리 정식 행사 사흘 전 미리 입소한 참가자들 사이에서 온열 질환자가 여럿 발생했지만 조직위는 탈진을 막기 위한 염분 알약을 주지 않았다. 여가부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지만 국무회의에서 보고하지 않았고 오히려 언론에 시설 설치가 완료됐다고 알렸다.감사원은 허위 보고 등에 관여한 공무원 등 6명은 수사기관으로 넘겼고, 공무원 5명에 대해선 징계 통보했다. 퇴직한 김 전 장관과 최 전 총장 등 7명에 대해서는 비위 행위를 인사 기록으로 남겨두라고 했다. 전북도와 여가부는 “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미국의 25% 상호관세 부과 조치가 9일 본격적으로 시행된 가운데 정부는 향후 대미 협상에서 관세율 인하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의 첫 통화에서 ‘원스톱 쇼핑(ONE STOP SHOPPING)’을 언급하며 통상과 안보를 망라한 한미 현안이 향후 한꺼번에 논의될 수 있다는 의중을 드러낸 가운데 정부도 조선업, 액화천연가스(LNG) 등 다른 협력 분야를 관세 인하의 레버리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상 간 대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앞으로 구체적인 대화에 대해 안을 만들어 통상 당국과 사안별로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향후 협상에서 상호관세와 연계될 가능성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관세와 방위비(만 연동하는) 패키지는 아니다”라며 “한 권한대행은 (통화에서) LNG, 조선, 무역균형 등 세 가지를 한꺼번에 말했다”고 전했다. 만약 미국에서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및 인상을 요구할 경우 이를 관세 문제뿐만 아니라 조선, LNG 등 미국이 한국에 기여를 기대하는 분야들과 함께 한 테이블에서 다뤄 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다만 한 권한대행은 무역적자 폭을 줄일 구체적인 방안이나 LNG 투자 규모 등 수치를 제시하진 않았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원스톱 쇼핑에 대해 “패키지로 빨리 이뤄지는 게 원스톱”이라며 “다만 비관세장벽(non-tariff) 문제, LNG 프로젝트 계획 등이 구체화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8일(현지 시간)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방미한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한 권한대행 통화 이후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통상 협의를 진행했다. 정 본부장은 미국 입국 직후 취재진과 만나 “목표는 상호관세를 아예 없애는 것이고 정 어렵다면 일단 낮춰 나가는 것인데 협상은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단계별로 접근을 해서 미 측과 원만한 협의를 이끌어 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선 분야가 (대미 관세 협상에서) 굉장히 중요한 협상 카드”라고 했다. 특히 안 장관은 “한 권한대행 통화 이후 미 측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시그널이 나오고 있다”며 “제가 조만간 미국에 갈 계획이며 정 본부장이 돌아오면 이번에 미국과 협의한 내용을 파악해 범부처적으로 분석하겠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지난해 1월 13일 대만의 한 초등학교. 오후 4시까지 투표소였던 이곳 교실은 투표 종료 한 시간 만에 개표소로 바뀌었다. 사무원이 투표함에서 기호 2번이 적힌 분홍 투표지를 꺼내 들어올렸다. 다른 사무원은 기호 2번 후보자 이름 옆에 바를 정(正) 자를 적었다. 총통과 부총통, 입법의원(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이날 대만의 1만7795개 투표소에선 이런 수개표가 6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일각에선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개표 과정의 조작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대만처럼 투표소에서 전자개표기(투표지 분류기)를 배제한 전면 수개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개표소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투표함이 뒤바뀌는 일을 막을 수 있고 전자개표기 오작동으로 인한 결과 조작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부정선거를 믿지 않지만, 괜한 논란을 야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본투표일을 이틀 이상으로 늘린 뒤 전면 수개표하는 방안을 고려함 직하다”고 말했다. 대만식 전면 수개표를 도입하려면 먼저 사전투표나 우편으로 진행되는 거소투표 결과 등을 어떻게 개표할지가 합의돼야 한다. 대만은 중국의 선거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 투표일에 본적지에서만 투표할 수 있고 재외국민도 귀국해 투표한다. 수개표를 하는 프랑스도 사전투표제가 없다. 개표 과정에 막대한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걸림돌로 꼽힌다. 한국에서 전면 수개표 방식을 도입할 경우 투·개표 당일에 투입되는 선거관리위원만 최소 7배 수준으로 늘려야 할 것으로 선관위는 추산하고 있다. 유·무효표를 판단하는 선거관리위원은 지난해 총선에 2000명 가까이 투입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당참관인이나 소방, 경찰 인력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자개표보다 수개표의 오류가 더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수개표는 오류가 있을 때 다시 개표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투·개표사무원을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선관위가 전자개표기로 분류한 투표지를 사무원이 손으로 확인하는 수검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자 공무원노동조합이 “고강도 강제 노역”이라며 공개 반발했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8일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64·사법연수원 23기)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58·〃 21기)를 8일 지명했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헌정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한 권한대행의 월권이라는 논란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국회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명 철회를 요구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입장문을 내고 이 처장과 함 부장판사를 지명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또 국회가 추천한 마은혁 재판관과 지난해 12월 27일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마용주 대법관도 이날 임명했다. 이 처장과 함 부장판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해 임명된 문 재판관과 이 재판관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지명·임명권을 행사하는 자리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26일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마 재판관과 조한창 정계선 재판관에 대한 임명을 보류해 다음 날 민주당 주도로 탄핵소추된 바 있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이 처장과 함 부장판사를 지명한 배경에 대해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에서 의결될 수 있고, 경찰청장 탄핵심판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헌재 결원 사태가 반복돼 결정이 지연될 경우 대통령 선거 관리와 필수 추가경정예산 준비, 통상 현안 대응 등에 심대한 차질이 불가피하고 국론 분열도 격화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등이 주도한 탄핵 추진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 권한을 행사한 이유로 꼽은 것이다. 이날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 처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학 및 사법연수원 동기다.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취소 소송에서 변호인을 맡았으며 지난해 12월 4일 이른바 ‘삼청동 안가 회동’에 참석해 비상계엄에 공모했다는 의혹으로 고발되기도 했다. 함 부장판사는 1995년 청주지법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으며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을 거친 행정법 전문가로 꼽힌다. 한 권한대행은 조만간 두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는 최대 30일 안에 청문 절차를 마쳐야 하는데, 이 기간이 지나면 국회가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더라도 대통령이 직권으로 임명할 수 있다. 민주당은 “헌법재판소를 내란 세력이 장악하려는 ‘알박기’ 시도”라며 “명백한 위헌이자 월권”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자기가 대통령이 된 걸로 착각한 것 같다”며 “토끼가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민수 대변인은 “권한쟁의 심판 및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률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완규 함상훈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한다”며 “국회는 인사청문회 요청을 접수하지 않겠다.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했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주한미군 2만8500명 규모는 적절하다고 본다. 중요한 건 병력의 구성이다.”지난해 11월까지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 육군을 지휘했던 찰스 플린 전 미국 태평양육군사령관은 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부대 유형이 현재와 미래 위협에 적합한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보, 병참, 미사일 방어, 지휘통제, 사이버, 전자전, 특수작전 등 7가지 분야를 언급하면서 “이 같은 새로운 형태의 병력 구성이 필요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 견제와 미 본토 방어를 우선시하는 미군의 전략 재편을 시사한 가운데 인도태평양 지역 미 육군을 3년 넘게 총괄해 온 플린 전 사령관도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론에 힘을 실은 것이다. 플린 전 사령관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플린의 동생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분야 요직에 발탁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인물이다.》플린 전 사령관은 최근 중국의 대만 포위훈련 등을 두고 “매우 위험한 궤적을 밟고 있다”며 “한미연합군은 중국이 대만에 대해 군사 행동을 취하는 비상사태에 어떻게 대비할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군과 미군이 한반도 바깥으로 전력을 전개(project)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면서 주한미군의 군수물자를 일본, 필리핀에서의 훈련에서 사용했던 사례 등도 거론했다.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으로 북핵 억지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해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필리핀에 배치된 중거리 미사일 포대인 ‘타이푼’이 있는데 한국이나 일본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전진 배치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1기인 2019년 옛 소련과 맺었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했고 지난해 냉전 이후로는 처음으로 필리핀 루손섬에 타이푼 포대를 배치했다. 한반도에 중국과 러시아를 사거리로 한 중거리 미사일 포대가 배치되면 ‘사드(THAAD)’ 사태 못지않은 반발이 나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2성 장군으로 미 태평양육군사령부에서 근무했던 당시와 비교했을 때 중국군의 활동은 10년에 걸쳐 비교 자체가 안 될 만큼 공격적인 수준으로 변화했다. 중국은 매우 위험한 궤적을 밟고 있는데, 우리는 이 속도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 다만 중국의 대만 침공이 당장 임박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대만해협을 건너는 침공 작전은 매우 복잡하고 위험 부담이 큰 어려운 작전이다. 하지만 중국은 꾸준히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중국 견제에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고 보나.“우선 한미연합군은 한반도에서 지속적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수행해야 한다. 한미가 높은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중국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 태세를 갖추는 차원이다. 다음으로 한국군과 미군이 한반도 바깥으로 전력을 전개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 한미연합군과 동맹은 한반도에서 강한 전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한국군이 지역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역내 동맹국과 파트너들을 안심시키는 신호가 될 수 있고, 중국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경고가 될 수 있다.” ―한국에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기대하나.“한국군은 한반도를 넘어 다른 지역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포병 부대가 호주에서 진행된 ‘탤리스먼 세이버’ 훈련에 참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비축해둔 군수 물자를 한미 정부 승인 아래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본, 호주 등에서의 훈련에 사용한 사례도 있다. 한국군이 알래스카와 하와이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미국 내에서 미군과 함께 훈련하는 것도 한국군의 지역 내 존재감을 높이는 중요 요소다.” ―한국군이 대만 위기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인가. “한국군이 대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나 분쟁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중국과 대만 사이에 위기나 분쟁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중국해, 남중국해, 황해에서 발생하는 사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제1도련선(the first island chain)’ 북측 측면에 위치해 있다. 일본과 필리핀도 대만의 양측 날개에 위치한 만큼 영향권 안에 있다. 그런 만큼 한반도에 주둔한 한미연합군은 중국이 대만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경우, 무력 충돌이건 중대한 위기이건 간에 어떤 비상사태(contingencies)에 대비해야 할지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미중이 충돌하면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이 동원될 것으로 보나. “한미 간의 사전 협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일 간 협의도 마찬가지이고, 궁극적으로는 한미일 3자 협의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관계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며 지속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미일 고위 지도자들이 만나 이 삼각 협력을 어떻게 심화할지 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정치적 협의는 군 지도자들에게 연합훈련이나 교육, 안보협력 개혁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할 수 있는 ‘면허증’을 부여해 주는 만큼 군사 협력 등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한미군의 규모나 구성 변화 가능성은….“개인적으로 현재 2만8500명의 병력은 한반도를 둘러싼 위협 환경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건 종류다. 미군과 한국군이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현재 배치된 부대 유형이 현재와 미래의 위협에 적합한지 재검토하는 것이다. 위협의 성격과 작전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에 동맹도 발 맞춰 나가야 한다. 정보, 병참, 미사일 방어, 지휘통제, 사이버, 전자전, 특수작전 같은 새로운 형태의 병력 구성이 필요할 수 있다. 한국에 주둔 중인 병력 유형은 1980년대, 1990년대, 심지어 2000년대 초반과도 다를 수밖에 없고 2025년, 2030년, 2035년에 필요한 부대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일 수 있다.” ―미국에선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에 조기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한국군이 충족해야 할 일련의 조건들이 있다. 이 조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평가되고 검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 지휘부가 최종 권고를 하겠지만 전작권 전환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결정이다.” ―북핵 해결을 위해선 확장억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는데….“미국 내에서는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미국의 핵 삼축 체계(nuclear triad)를 현대화하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추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예산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핵 삼축 체계만이 억제력의 전부가 아니다. 또 하나는 핵·생화학·방사능 등 오염된 전장에서 생활하고 작전하고 싸우는 능력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더러운 전장’에 자주 노출되지 않았기에 훈련 수준과 대비 태세가 많이 떨어졌다. 적이 우리 군대가 오염된 환경에서도 작전 가능하다는 걸 안다면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무기의 효과가 줄어들 것이다.” ―미국에서도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다시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결정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정책적 문제다. 이 외에도 미국은 새로운 무기 시스템을 이미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한 사례가 있다. 필리핀에 배치된 중거리 미사일인 ‘타이푼’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 일본 정부나 다른 국가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전진 배치를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중거리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가 억제력 강화에 도움이 될까. “다영역작전부대는 장거리 정밀 타격, 신형 장거리 타격 능력뿐만 아니라 전자전, 사이버, 우주 작전 수행 능력을 통합할 수 있다. 또 그 정보를 융합해 연합국들과 함께 공동 타격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공동 타격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억제력의 핵심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이런 종류의 다영역 작전부대를 한국에 배치하는 방안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주둔비용인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요구할까. “지난해 체결된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대해 차기 미국 행정부가 재협상을 하자고 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가 분담금의 100%를 부담하라는 요청을 받더라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파병 대가로 러시아가 중요 군사기술을 이전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로부터 북한의 기술 이전은 핵 기술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두고 협상할 경우 미국은 러시아에 ‘북한에 대한 기술 이전을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 논의가 이뤄져야만 한국과 일본, 미국과 전 세계 모두의 안전을 담보할 것이다.”찰스 플린 전 미국 태평양육군사령관△1963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미들타운 출생△1985년 로드아일랜드대 경영학 학사, ROTC 통해 임관△2002∼2004년 504 공수보병연대 2대대장(아프간·이라크 파병)△2007∼2008년 82공수사단 제1여단전투단 여단장(이라크 파병)△2009∼2010년 합참본부장 보좌관, 국제안보지원군(ISAF) 사령관 비서실장(아프간 파병)△2014∼2016년 제25보병사단장(하와이)△2016∼2018년 미 태평양육군 부사령관△2019∼2021년 미 육군본부 작전·계획·훈련 부참모장△2021∼2024년 미 태평양육군사령관고도예 기자 yea@donga.com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18일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재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재판관 후임으로 두 후보자를 세워 대통령 추천 몫의 재판관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명백한 위헌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며 반발해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 앞서 발표한 대국민 입장문에서 “(최상목)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점, 경찰청장 탄핵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지명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헌재 결원 사태가 반복되어 헌재 결정이 지연될 경우 대선 관리, 필수추경 준비, 통상현안 대응 등에 심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며, 국론 분열도 다시 격화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국무회의 참석자 및 권한대행 측에 따르면 한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신임 재판관 후보자 지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권한대행은 입장문에서 “제가 오늘 내린 결정은 그동안 제가 여야는 물론 법률가, 언론인, 사회원로 등 수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숙고한 결과”라며 “저는 법적 검토를 거친 뒤, 오늘 오전 동료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여쭙고 저의 결정을 실행에 옮겼다”고 말했다. 이어 “사심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고자 최선을 다했으며, 제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음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한 권한대행의 지명을 둘러싼 논란은 대통령 몫의 재판관을 추천할 권한이 있느냐는 문제와 더불어 이 처장이라는 후보가 적합한지를 놓고 확산할 전망이다. 검찰 출신인 이 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윤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법제처장으로 임명된 뒤 국회 추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임명 거부 등 윤 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거나 합헌적 유권 해석을 내놓아 “법적 방패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의 ‘유훈통치’냐”는 비판이 제기된다.이 처장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 당일인 지난해 12월 4일 당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함께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비밀 회동에 참석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계엄 선포에 대한 법률 대응방안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삼청동 안가 회동 뒤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도 드러나 민주당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한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제청과 국회 동의 과정을 마친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와 함께 민주당이 추천해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임명했다. 지난해 12월 26일 국회에서 선출된 지 104일 만이자, 헌재가 마 재판관 임명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지 40일 만이다. 한 권한대행은 “마 재판관님과 두 분의 합류를 통해 헌법재판소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헌정질서의 보루라는 본연의 사명을 중단없이 다해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을 거세게 비판했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대행의 대통령 추천 헌법재판관 지명은 위헌적 행태를 더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라며 “이는 묵과할 수 없고 민주당 입장에서 좌시할 수 없는 문제로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한 대행이 지명한 이 처장은 12·3 내란 직후 ‘안가회동’을 했던 사람이다. 내란의 공범이고 죄질이 매우 안 좋은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을 지명한 것 자체가 내란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민주당은 여기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국민의힘은 한 권한대행의 마 재판관 임명을 두고 유감을 표하면서도 이 처장 등 재판관 후보자들을 지명한 것을 환영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세미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마 후보자 임명은) 잘못된 결정”이라면서도 “한 대행께서 오는 18일 공석이 되는 헌법재판관 2명을 지명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네가 대통령이냐.”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인사 문제와 관련해 주변에서 이의를 제기할 때 이같이 격노했다고 한다. 인사권자라는 권위에 기대 반대 의견을 묵살하며 자신이 정한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특히 2024년 3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자신의 ‘20년 지기’인 검찰 수사관 출신의 주기환 당시 비례대표 후보를 당선권에서 배제하자 윤 전 대통령은 보란 듯이 다음 날 대통령민생특보에 임명했고 반대하는 참모진에게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몇 달 뒤 주 특보는 금융공기업인 유암코 상임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윤 전 대통령의 독단과 고집을 참모진조차 제어하지 못하면서 윤 전 대통령의 측근 중용 경향이 짙어졌다는 평가다. 윤석열 정부에선 검찰 인맥 이외에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충암고 인맥이 주요 라인을 형성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이후 이 장관에 대한 책임론이 거셌지만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충암고 동기인 정재호 전 주중대사는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대중 외교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고 재임 내내 공관 갑질 논란에 시달렸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민정수석실을 없애는 동시에 추천과 검증을 분리해 공정성을 높이고 대통령실의 권한을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으로 이관했지만 부실 검증은 이어졌다. 검찰 출신들이 인사 및 사정 라인을 차지했지만 인사 검증 시스템은 오히려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4명의 장관급 후보자가 낙마했다.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7월 초 도어스테핑에서 “그럼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며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라.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2대 국가수사본부장에 지명된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물러났고,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비상장주식을 재산 신고에서 누락했다는 의혹 등으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인사 검증 부실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오히려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서로 검증 책임을 미루면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졌다. 고위공직자 후보자 찾기가 어려워지자 돌려막기식 인사가 빈번해졌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윤석열 정부 시작과 함께 주미대사를 거쳐 국가안보실장을 지냈고, 다시 국정원장으로 임명됐다. 지난해 8월에는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보실장으로, 장호진 안보실장은 7개월 만에 외교안보특보로 연쇄 이동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서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윤 전 대통령은) 인재 풀을 스스로 가장 협소화시킨 대통령”이라며 “깊은 연고가 있는 사람들만 쓰며 최소한의 탕평 인사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이념적으로 변해 간 것”이라고 지적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질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8일 오전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조기 대선 일자 확정 안건을 심의한 뒤 공고할 계획이다. 대선 당일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파면 이후 60일 안에 대선을 치르도록 하고 있으며 선거일 50일 전 공고돼야 한다. 이에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10일 파면됐을 당시에도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파면 60일째인 5월 9일을 대선일로 지정했다. 선거에 입후보하려는 공직자는 선거일 30일 전인 5월 4일까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57일간의 대선 레이스 일정에 따라 각 정당은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대선 후보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7일 당 경선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대선일이 확정 공고되는 대로 경선 체제에 돌입할 예정이다. 제21대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확정과 동시에 다음 날인 6월 4일부터 곧바로 임기를 시작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구성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대선 당일 예정돼 있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6월 모의평가 일정을 변경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8일 국무회의에서 대선 날짜가 확정되는 대로 6월 모의평가 날짜를 조정해 공지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연기가 유력한 상황이다.‘6월 3일’ 일정표 나온 조기 대선출마 단체장 내달 4일 사퇴 시한내달 10, 11일 각당 후보자 등록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질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대선 일정의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이 같은 일정을 확정하면 공식선거운동은 5월 12일부터 시작된다. 이에 맞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4월 말∼5월 초 최종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는 등 정치권이 대선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 공식 선거운동은 5월 12일 시작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궐위가 발생하면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뽑아야 한다. 한 권한대행이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날로부터 60일이 되는 날인 6월 3일을 대선일로 정하려는 건 대선 기간에 따른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미로 풀이된다. 헌법이 부여한 기간을 모두 사용해 각 대선 후보 및 유권자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정부의 선거 준비 기간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4일 곧바로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같은 날부터 공직선거법 제90조에 따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현수막 등 광고물이나 시설의 설치가 금지됐다. 일반 선거라면 선거일 120일 전부터 금지되지만, 궐위선거이기 때문에 ‘선거 실시가 확정된’ 당일부터 적용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홍보국은 즉각 의원실 등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관련 포스터를 철거해 달라’는 공지를 내기도 했다. 6월 3일 대선일을 기준으로 각 정당이 선출한 대선 후보들은 5월 10일과 11일에 후보자 등록을 해야 한다. 또 대선에 출마하려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장관 등 공직자는 선거일 30일 전인 5월 4일 밤 12시까지 사퇴해야 한다. 각 당들이 조기 대선 경선 기간에 대해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일”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공식 선거운동은 후보자 등록이 끝난 5월 11일 다음 날인 5월 12일부터 6월 2일까지 22일간 진행된다. 이번 조기 대선의 첫 투표인 재외국민 투표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9일째인 5월 20일부터 5월 25일까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전투표는 5월 29, 30일 이틀간 진행된다. 투표 시간은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본투표는 6월 3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이뤄진다. 통상적인 선거(오후 6시 투표 마감)와는 달리 이번 대선 투표 마감 시간이 2시간 늦은 오후 8시인 건 궐위에 따른 선거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표율이 이번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조기 대선으로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 투표율은 77.2%로 2000년대에 실시된 대선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다. ● 4월 말∼5월 초 각당 후보 정해질 듯 이 같은 일정에 따라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주요 정당들은 4월 말∼5월 초에 당내 경선을 마무리하고 당의 최종 대선 후보를 선출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경우 본경선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치러진 19대 대선처럼 권역별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당시 전국을 호남과 충청, 영남, 수도권·강원·제주 등 4개 권역으로 나눠 순회경선을 실시한 뒤 3주 내에 후보 선출을 마쳤다. 당내에선 경선 기간을 그때보다 더 줄여 2주 안에 마무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7일 경선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한 국민의힘은 9일 1차 선관위 회의를 연다. 당내에선 “경선 흥행을 위해 경선 기간을 후보자 등록 직전까지 최대한 늘려 잡아야 한다”는 주장과 “조속히 본선 후보를 확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함께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선관위 관계자는 “확정된 후보자의 서류 제출 등을 감안하면 4월 말까지는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며 “자세한 사항은 회의에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무슨 이상주의자냐.”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검사 시절부터 가깝던 한 인사는 윤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됐을 때와 취임했을 때 “여소야대 상황인 만큼 2024년 4월 총선 전까지는 대통령 됐다고 생각하지 말라. 야당과 협조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지만 이 같은 핀잔을 들었다고 전했다. 야당과 소통하지 못하고 정치 실패를 불러온 윤 전 대통령의 기본 인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 선언 9개월 만에 국회 경험 없이 대통령에 당선된 윤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야당과의 불통은 물론이고 수직적 당정관계를 형성하며 여권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부패범죄 등을 주로 다뤄온 특수부 검사 경험이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상명하복의 수직적 문화를 갖고 있는 검찰 조직에 30년 가까이 몸담아온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와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당수를 거론하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협치를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인 푸른색 넥타이도 맸다. 하지만 이 같은 초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야당도 국정에 비협조로 일관하고 ‘줄탄핵’ 등 국정 운영에 발목을 잡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영수회담 제안을 거부하고 야당 주도로 통과한 법률안에 25차례 거부권 행사로 맞받았다. 여당과의 갈등도 정권 내내 이어졌다. 대선 과정에선 손을 잡았던 친윤(친윤석열) 진영을 동원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사실상 내쫓으며 선거연합을 해체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23년 1월 전당대회가 시작되자 ‘윤심(尹心) 논란’을 일으키며 당을 좌지우지하려고 했다. 친윤계와 대통령실은 나경원 의원의 불출마를 압박했고 안철수 의원을 향해서 “가짜 윤심팔이”라며 공개 저격하기도 했다. 아끼는 검찰 후배였던 한동훈 전 대표와는 김건희 여사 문제를 계기로 갈라섰다. 윤 전 대통령은 시민사회계와 언론과도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뉴라이트 성향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임명해 죽마고우인 연세대 이철우 교수의 아버지 이종찬 광복회장과도 결별했고 지난해 광복절 기념식은 사상 처음으로 정부와 독립운동단체들이 기념식을 따로 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언론과의 도어스테핑을 도입하며 소통을 강조했지만 2022년 9월 미국 뉴욕 방문 기간에 불거진 비속어 논란 이후 61회 만에 중단됐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은) 자기편이면 무조건 선이고 자기편이 아니면 악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판단을 했다”며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없고 훈련돼 있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지적했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 여러분 뜻을 받들어 다음 정부가 차질 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차기 대통령 선거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이 8일 국무회의에서 대선일을 지정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차기 대선일은 6월 3일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담화에서 “헌정 사상 두 번째로 현직 국가원수의 탄핵이라는 불행한 상황이 발생한 것을 무겁게 생각한다”며 “안보와 외교에 공백이 없도록 하고, 통상전쟁 등 현안 대처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며 치안질서 확립과 재난에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확인한 뒤 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로 이동해 치안 상황을 점검했다. 이어 국무위원들과의 비공개 긴급 간담회에서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통상, 치안 등 현안을 놓지 말고 자리를 지켜달라”고 당부했고,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열어 안보 상황을 점검했다. 한 권한대행은 다음 주 국무회의를 열어 대선일을 공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통화를 갖고 윤 전 대통령 파면 60일이 되는 6월 3일을 대선일로 지정하는 것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당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를 잘해서 꼭 승리하기 바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일 오후 5시경 서울 한남동 관저를 방문한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나 “성원해준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윤 전 대통령은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는 입장을 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할지에 대해선 침묵을 이어가면서도 국민의힘 지도부에 자신의 파면으로 열리게 된 조기 대선 승리를 당부한 것이다.● 145자 입장 낸 尹, 승복 메시지 없어윤 전 대통령은 오후 1시 55분경 변호인단을 통해 배포한 145자짜리 입장문에서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며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문을 읽으며 오전 11시 22분 기준으로 파면을 선고한 지 2시간 33분 만이었다. 탄핵 이후 주로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한 감사의 메시지만 내온 것과 달리 이날 입장문에는 ‘지지자’ 대신 ‘국민’을 언급한 것. 다만 윤 전 대통령은 헌재가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린 데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불복 논란을 의식한 듯 유감 표명은 없었지만 승복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한남동 관저를 찾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를 만나 “최선을 다해준 당과 지도부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고 신동욱 수석대변인이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또 “비록 이렇게 떠나지만 나라가 잘되기를 바란다”며 “대선과 관련해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당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를 잘해서 꼭 승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신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사실상 헌재의 파면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한남동 관저에 머무르며 TV 생중계를 통해 헌재 선고를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공판기일이 열리는 만큼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고인 신분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헌재가 8 대 0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윤갑근 변호사는 헌재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완전히 정치적인 결정으로밖에 볼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21세기 법치주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참담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변호인단 내부에선 4 대 4로 기각될 거란 의견이 많았고 인용되더라도 소수 의견이 1, 2명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만장일치 결과가 나오자 충격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 봉황기 내리고 군부대 尹 사진도 철거 대통령실은 이날 윤 전 대통령의 파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정진석 비서실장과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등 3실장을 포함한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진 전원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일괄 사의를 표명했지만 한 권한대행은 이를 반려했다. 총리실은 “현재 경제와 안보 등 엄중한 상황하에서 한 치의 국정 공백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시급한 현안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이날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기대하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 등 업무 복귀 시나리오를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헌재가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자 20분 뒤인 오전 11시 40분경에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건물 앞에 태극기와 함께 게양돼 있던 대통령 봉황기가 내려졌다. 봉황기는 1967년 1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처음 사용된 국가 수반의 상징으로, 대통령 재임 중 상시 게양된다. 직원들과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용산 대통령실 내부에 설치된 전광판 화면도 꺼졌다. 대통령의 활동과 행보 영상을 담아 송출해 온 전광판은 그간 윤 전 대통령의 직무 정지 기간에도 계속 켜져 있었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각각 대사관 등 재외공관과 군부대 지휘관실 및 회의실 등에 걸려 있던 윤 전 대통령 사진도 철거됐고 행정안전부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기록물 이관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와 외교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가 만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들도 헌재의 파면 선고 이후 윤 전 대통령 계정에 대한 ‘팔로’를 중단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사진)은 미국이 한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데 대해 “협상의 신호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향후 한미 협상 과정에서 관세를 낮추기 위해선 조선업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에서 한국이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플라이츠 부소장은 3일 세종연구소 주최로 열린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동아시아 안보’ 주제 포럼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해 “협상을 거치면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유럽과 달리 한국은 협상 과정에서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이츠 부소장은 트럼프 1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을 지냈고 최근까지 트럼프 2기 정권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다.플라이츠 부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딜 메이커(deal maker)’”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로 조선업과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방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알래스카 개발 사업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며 압박해 온 만큼 한국이 이를 토대로 관세율 조정에 대해 미 측과 협상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플라이츠 부소장은 “현재 텍사스의 LNG 선박이 한국으로 오는 데 3주 넘게 걸리지만 알래스카를 통하면 일주일로 단축된다”라면서 “한국의 장기적 에너지 안보에 크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차기 한국 정부에서 우선순위 과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 해군의 성장을 따라잡기 위해 미국은 해군 함정 건조 분야에서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그는 “우라늄 농축 등 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해지는 방향이 돼야 한다”며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의 필요성도 밝혔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을 4일로 지정한 가운데 윤 대통령 측과 대통령실은 입장 표명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다.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칩거 중인 윤 대통령은 선고일이 지정된 데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여당 지도부 등 여권 인사들이 잇따라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의사를 밝힌 것과는 달리 침묵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 관계자는 “따로 승복 메시지를 낼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 법률대리인단 석동현 변호사는 2월 19일 “헌법재판소 결과에 대통령이 당연히 승복할 것”이라면서도 “결정이 최대한 공정하고 적법하게 되기를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결과와 그 이유를 모르는데 의견을 미리 말하기 어렵다”며 “선고 전에 승복 여부에 대한 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차분하게 헌재의 결정을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그동안 헌재 심리가 예상보다 길어지자 재판관들의 의견이 팽팽히 갈리면서 교착상태에 빠졌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날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했다. 대통령실은 수석회의에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증가한 ‘3월 수출입동향 결과’에 대한 보고와 함께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장벽 보고서’ 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관계 부처와 함께 보고서에서 제기된 사항과 업계 영향을 살피고 대응 방안을 강구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이 정상적으로 국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알리면서 윤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드러낸 것으로도 풀이된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한국이 미국산 무기 구매 시 기술 이전 등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절충교역(Offset)’ 관행에 대해 미 행정부가 비관세 무역장벽이라고 지적했다. 전 세계 방위산업 분야에서 통용되는 조건부 무기 거래 관행인 절충교역이 미국의 무역장벽 목록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내놓은 ‘2025 국가별 무역장벽(NTE)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방위 절충교역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방위 기술보다 국내 기술 및 제품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며 “계약 규모가 1000만 달러(약 147억 원)를 넘으면 외국 계약자에 절충교역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무기를 살 때 기술 이전, 부품 지원 등을 요구하는 것을 처음으로 무역장벽으로 언급한 것이다. USTR은 해마다 자국 산업 의견을 받아 3월 말에 NTE 보고서를 내는데, 이번 보고서는 2일 상호관세 발표를 앞둬 특히 주목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부과할 때 비관세 장벽까지 고려해 관세율을 정하겠다고 밝혀 이번 보고서 지적이 향후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제기되기 때문이다.미국이 국제적인 관행을 한국 고유의 문제인 것처럼 지적한 것을 두고 방산 관련 협상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이 한국에 대미(對美) 무역흑자 폭을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방산 쪽에서 미국 제품 수입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의 방산업체들이 이에 앞서 한국과의 거래에서 느꼈던 불만이나 아쉬움 등을 이번 기회에 지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USTR은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시장 지배적 플랫폼 규제 법안도 무역장벽이라고 꼽았다. 또 한국이 반도체 등 국가핵심기술 분야에서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은 것도 올해 새롭게 지적했다.한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1일 4대 그룹 총수들과 첫 민관합동 ‘경제안보 전략 TF(태스크포스)’ 회의를 열고 “우리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선진화해서 우리 경쟁력도 높이고 외국으로부터 오는 도전을 완화시키기 위한 툴(도구)로서 충분히 활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의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비관세 장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