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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피리를 부는 소년이 서 있습니다.소년의 눈동자는 정면을 응시하고, 오므린 입술은 그가 연주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피리를 따라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소년의 손가락 하나가 올라와 있고, 수직으로 올라간 시선은 그 아래 금관 악기로 이어집니다. 이 흐름을 소년이 두르고 있는 흰 띠가 부드럽게 감아올리죠.이 그림에서 이렇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흐름을 만드는 요소는 더 있습니다.소년이 입고 있는 재킷의 나란히 달린 금장 단추, 모자의 장식이 만드는 V 모양, 바지의 옆단에 붙은 검은 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살짝 내민 왼발이 있죠.이 왼발이 그림 모서리로 향하며 마치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을 줍니다.공중에 떠 있는 사람이 작품은 인상파 화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에두아르 마네가 1866년 그린 ‘피리 부는 소년’.1914년부터 1947년까지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다가 1986년 오르세 미술관의 소장품이 된 마네의 대표작 중 하나죠.이 그림에서 생동감을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소년을 감싸고 있는 텅 빈 배경입니다.다른 19세기 그림들이 전시된 곳에서 이 그림을 보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습니다.다른 작품 대부분은 여러 인물이 등장하거나, 도시나 자연의 배경이 복잡하게 놓여 있는데 이 그림은 사람 1명만 강조해 그렸기 때문입니다.다른 작품들은 1명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리더라도, 의뢰를 받아 그린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 또는 그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넣고 싶은 오브제들이 그림의 배경을 채웁니다.마네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구성은 흔히 드러납니다.그런데 이 작품에서 마네는 ‘배경을 채우고 싶은 욕심’을 과감하게 버리고 노란빛이 도는 회색으로 가득 채워버렸습니다.심지어 바닥과 벽의 경계마저 지워버려 소년이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죠. 사진과 그래픽 기술 활용이 손쉬워진 지금에는 이렇게 인물만 잘라서 단색 배경에 놓은 다음 강조하는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그런데 이 작품은 마네가 무언가를 선전하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살롱전에 출품해서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보여주기 위해 공들여 그린 것이라는 점이 다릅니다.마네는 여기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걸까. 이 그림을 그리기 3년 전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공개했고, 여기서 붓 터치가 거칠고 구도가 이상하다는 지금의 시각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비판을 받습니다.이에 상심해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나는데요. 여기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벨라스케스를 만나다“벨라스케스가 그린 작품 옆에 전시되니 티치아노가 그린 초상화도 경직되고 생기가 없어 보이는군.”마네가 마드리드에서 프라도 미술관을 보고 난 뒤 친구 화가 팡탱 라투르에게 보낸 편지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마네는 이뿐 아니라 “벨라스케스를 본 것만으로도 여행한 보람이 있었다”, “벨라스케스는 화가들의 화가”라고 극찬하죠. 그러면서 ‘피리 부는 소년’처럼 배경을 삭제하고 그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인물화에 감탄합니다.“(그림에서) 배경은 사라지고 강렬한 검은 옷의 사람의 주변엔 오로지 공기만이 둘러싸고 있었다.”사람의 주변에 공기밖에 없었다는 표현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이렇게 인물을 극도로 강조할 수 있는 벨라스케스의 기법을 마네는 곧바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합니다.이뿐 아니라 벨라스케스가 초상의 대상으로 누구를 택했는가에 대해서도 그는 유심히 관찰하는데요. 마네는 벨라스케스가 그린 난쟁이 초상화 연작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난쟁이 초상화 연작들. 특히 정면을 바라보고 주먹을 양옆으로 내리고 있는 초상화 작품은 진짜 그림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해 만든 수작이야.”정리하면 마네는 배경을 삭제한 인물화, 또 난쟁이를 모델로 한 인물화에서 감명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것이 마네의 눈에 왜 그렇게 신선하게 보였을까. 19세기 프랑스 미술은 원근법과 해부학을 토대로 한 이탈리아 하이 르네상스 회화를 추종하는 ‘신고전주의’가 주류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이와 달리 스페인 미술은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같은 거장들이 등장해 ‘아카데미 미술’에서 다소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역사화나 종교화에 녹였고, 고야는 심지어 당시 스페인의 전쟁 같은 정치적 상황이나 인간의 내면까지 파고듭니다.따라서 배경을 삭제한 인물화는 ‘사람 그 자체’를, 게다가 난쟁이를 모델로 한 인물화는 ‘아웃사이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니 마네가 깜짝 놀란 것이었습니다.에밀 졸라의 옹호마네는 벨라스케스처럼 평범한 사람을 배경 없는 초상화로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3세 근위대 군악대에 소속된 10대 소년을 모델로 세웠고, 마네는 이 소년을 “스페인의 귀족처럼 대접”했습니다.이 소년의 얼굴과 자신이 자주 함께 일했던 모델들의 얼굴을 합해 마네는 익명의 인물을 만들어냅니다.그 결과 국가를 통치하는 왕도, 돈이 많은 귀족도 아닌, 역사 속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 인물도 아닌, 그저 피리를 부는 이름 모를 소년이 커다랗게 강조된 초상화가 탄생합니다.마네는 이 작품을 1866년 살롱전에 보냈지만, 역시나 아카데미 회원들은 이 그림을 거절했습니다. 역사화나 영웅 초상화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카데미에겐 도발 같은 주제였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마네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거절 소식을 듣고 화가 난 마네의 친구이자 문학가, 에밀 졸라는 마네의 사실적인 그림 스타일, 그리고 권위가 아니라 인물에 집중하는 모던한 그림의 내용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옹호하는 글을 신문 연재 기사로 내보냈죠.마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자금을 모아 그 해 열린 만국박람회에 부스를 차리고 자기 작품을 전시했습니다.독특한 스타일의 회화는 곧바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습니다.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었지만 역시 눈 밝은 사람들은 이 그림에 바로 호기심을 가졌습니다.1872년 뒤랑 뤼엘이 이 그림을 사들였고, 마네의 친구인 장 바티스트 포르, 다시 뒤랑 뤼엘, 그리고 아이작 드 카몽도 공작이 이 그림을 소장했습니다. 그리고 카몽도 공작이 세상을 떠날 때 국가에 기증하며 이 작품은 루브르와 오르세에서 전 세계 관객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6일(현지 시간) 타계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속 세상을 살아 보는 느낌이라는 연극 ‘슬립 노 모어’, 인간 본성과 정체성을 심오하게 탐구한 걸작이란 평을 받은 ‘지킬 앤 하이드’, 2023년 미국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여성 1인극 ‘프리마 파시(Prima Facie)’. 해외에서 호평 받으며 인기를 모았던 연극들이 올해 한국에서 잇따라 초연된다. 8월 한국 관객을 만나는 ‘슬립 노 모어’는 관객이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방을 옮겨 다니며 보는 몰입형 연극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기본 줄거리로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레베카’와 마녀재판을 연상케 하는 미스터리하고 충격적인 장면들로 구성돼 있다. 대사 없이 몸짓과 춤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한 공간에서 차례대로 전개되지 않고 배우들이 각 공간에서 1시간 길이의 동일한 연기를 총 3번 반복한다. 가면을 쓴 관객들이 관심 있는 캐릭터를 따라다니며 관람하도록 구성돼, 보는 사람마다 같은 연극을 다른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연극은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뒤 2011년부터 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0년 이상 장기 공연됐다. 한국 공연은 뉴욕 공연을 토대로 한다. 뉴욕에선 6층 건물 전체를 무대로 사용했는데, 한국은 지난해 문을 닫은 서울 중구 대한극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연장을 만든다. 제작사 미쓰잭슨 관계자는 “옛 대한극장 내부를 공연장으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며 설명했다.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에서 처음 선보인 뒤 “고전의 충격적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는 평을 받은 연극 ‘지킬 앤 하이드’도 3월 4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 2관에서 초연된다. 스코틀랜드 극작가인 게리 맥네어가 원작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지킬의 친구인 ‘어터슨’의 시점으로 재해석한 1인극이다. 이준우가 연출하고, 배우 최정원 고훈정 백성광 강기둥이 출연한다. 최정원은 2019년 이후 6년 만의 연극 출연이다. 글림컴퍼니 제작. 8월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프리마 파시’는 여성 1인극이다. 성범죄 사건 변호를 전문으로 하는 유능한 변호사였던 테사가 성폭행 피해자가 되면서 겪는 2년의 세월을 그린다. 배우 한 명이 테사를 포함한 여러 인물을 연기하며 법정 드라마와 개인의 트라우마를 결합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테사가 변호사에서 피해 당사자가 되면서 변화하는 법체계에 대한 시각, 법정 시스템의 모순과 피해자가 겪는 어려움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2019년 호주 시드니에서 초연됐으며 2022년 런던 웨스트엔드, 2023년 뉴욕에서 공연했다. 영국 올리비에상 ‘최우수 신작’ ‘최우수 여우주연상’ 등도 받았다. 영국 맨부커상을 받은 원작과 2013년 리안(李安)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잘 알려진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도 11월 국내 초연될 예정이다. 2023년 토니상 3관왕을 받은 작품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여기 피리를 부는 소년이 서 있습니다. 소년의 눈동자는 정면을 응시하고, 오므린 입술은 그가 연주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피리를 따라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소년의 손가락 하나가 올라와 있고, 수직으로 올라간 시선은 그 아래 금관 악기로 이어집니다. 이 흐름을 소년이 두르고 있는 흰 띠가 부드럽게 감아올리죠. 이 그림에서 이렇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흐름을 만드는 요소는 더 있습니다. 소년이 입고 있는 재킷의 나란히 달린 금장 단추, 모자의 장식이 만드는 V 모양, 바지의 옆단에 붙은 검은 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살짝 내민 왼발이 있죠. 이 왼발이 그림 모서리로 향하며 마치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을 줍니다.공중에 떠 있는 사람 이 작품은 인상파 화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에두아르 마네가 1866년 그린 ‘피리 부는 소년’. 이 그림에서 생동감을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소년을 감싸고 있는 텅 빈 배경입니다. 이 작품에서 마네는 ‘배경을 채우고 싶은 욕심’을 과감하게 버리고 노란빛이 도는 회색으로 가득 채워버렸습니다. 심지어 바닥과 벽의 경계마저 지워버려 소년이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죠. 사진과 그래픽 기술의 활용이 손쉬워진 지금에는 이렇게 인물만 잘라서 단색 배경에 놓은 다음 강조하는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마네가 무언가를 선전하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살롱전에 출품해서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보여주기 위해 공들여 그린 것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마네는 여기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걸까요. 이 그림을 그리기 3년 전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공개했고, 여기서 붓 터치가 거칠고 구도가 이상하다는 지금의 시각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에 상심해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나는데요. 여기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벨라스케스를 만나다“벨라스케스가 그린 작품 옆에 전시되니 티치아노가 그린 초상화도 경직되고 생기가 없어 보이는군.” 마네가 마드리드에서 프라도 미술관을 보고 난 뒤 친구 화가 판탱라투르에게 보낸 편지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마네는 이뿐 아니라 “벨라스케스를 본 것만으로도 여행한 보람이 있었다” “벨라스케스는 화가들의 화가”라고 극찬하죠. 그러면서 ‘피리 부는 소년’처럼 배경을 삭제하고 그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인물화에 감탄합니다.“(그림에서) 배경은 사라지고 강렬한 검은 옷의 사람 주변엔 오로지 공기만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렇게 인물을 극도로 강조할 수 있는 벨라스케스의 기법을 마네는 곧바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또 벨라스케스가 초상의 대상으로 누구를 택했는가에 대해서도 그는 유심히 관찰하는데요. 마네는 벨라스케스가 그린 소인(小人) 초상화 연작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특히 정면을 바라보고 주먹을 양옆으로 내리고 있는 초상화 작품은 진짜 그림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해 만든 수작이야.” 이때 스페인 미술은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같은 거장들이 등장해 ‘아카데미 미술’에서 다소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역사화나 종교화에 녹였고, 고야는 심지어 당시 스페인의 전쟁 같은 정치적 상황이나 인간의 내면까지 파고듭니다. 따라서 배경을 삭제한 인물화는 ‘사람 그 자체’를, 게다가 소인을 모델로 한 인물화는 ‘아웃사이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니 마네가 깜짝 놀란 것이었습니다.에밀 졸라의 옹호 마네는 벨라스케스처럼 평범한 사람을 배경 없는 초상화로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3세 근위대 군악대에 소속된 10대 소년을 모델로 세웁니다. 그 결과 국가를 통치하는 왕도, 돈이 많은 귀족도 아닌, 역사 속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 인물도 아닌, 그저 피리를 부는 이름 모를 소년이 커다랗게 강조된 초상화가 탄생합니다. 마네는 이 작품을 1866년 살롱전에 보냈지만, 역시나 아카데미 회원들은 이 그림을 거절했습니다. 역사화나 영웅 초상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카데미엔 도발 같은 주제였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네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거절 소식을 듣고 화가 난 마네의 친구이자 문학가 에밀 졸라는 마네의 사실적인 그림 스타일, 그리고 권위가 아니라 인물에 집중하는 모던한 그림의 내용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옹호하는 글을 신문 연재 기사로 내보냈죠. 마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자금을 모아 그해 열린 만국박람회에 부스를 차리고 자기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독특한 스타일의 회화는 곧바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습니다.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었지만 역시 눈 밝은 사람들은 이 그림에 바로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1872년 뒤랑 뤼엘이 이 그림을 사들였고, 마네의 친구인 장 바티스트 포르, 다시 뒤랑 뤼엘, 그리고 아이작 드 카몽도 공작이 이 그림을 소장했습니다. 그리고 카몽도 공작이 세상을 떠날 때 국가에 기증하며 이 작품은 루브르와 오르세에서 세계 관객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됐습니다.※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개신교계 일부 단체들이 최근 서부지법 폭력 난입 사태와 관련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비판하고 나섰다.한국기독교장로회는 19일 “법원 난동 배후 전광훈은 참회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소위 목사라는 전광훈은 가짜 뉴스에 근거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사법부의 법 집행을 방해하고, 공개적으로 폭동을 주문하며, 소요와 난동의 배후 노릇을 함으로 한국 기독교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고 했다. 장로회는 “그는 ‘국민저항권은 헌법 위에 있다’ ‘국민저항권이 시작됐기 때문에 윤 대통령도 구치소에서 우리가 데리고 나올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며 “민주주의 법치를 무너트리는 내란 선전·선동의 핵심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민주주의 근간인 법질서를 괴하는 전광훈은 국민과 한국 기독교 앞에 참회하고 사법 난동에 책임지라”고 했다.교회개혁실천연대도 20일 “한국교회는 초법적 폭력사태 주동하는 전광훈을 당장 출교 제명하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냈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입장문에서 “전광훈은 폭력을 부추기며 근거도 없는 막말로 선동하여 윤석열 지지자들을 자극했다”며 “이는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반 신앙적 행태”라고 했다. 또 “폭력행위와 이를 조장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한국교회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정의와 평화의 원칙을 기반으로 폭력을 비판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민기 선생님과 학전에 함께 주셔서 더욱 뜻깊은 상입니다. 선생님이 지난해 7월 작고하셨는데, 상황이 좋았을 때 받았다면 더 기뻤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지만….”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20일 열린 ‘KT와 함께하는 제61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김성민 학전 실장의 수상 소감은 담담하지만 울림이 적지 않았다. ‘김민기와 학전 소극장’이 특별상을 받아 대표로 무대에 오른 그는 “학전은 33년간 해온 작품과 활동의 기록을 꾸준히 정리하고 있다”며 “이러한 기록이 학전이 유지된 힘이었기에 잘 정리해서 결과물을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김옥란 심사위원장은 “학전은 극단 이름처럼 모를 심듯 젊은 연극인을 양성하고 한국 창작 뮤지컬의 토대를 닦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날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단은 “2024년은 어느 해보다 다양하고 활기찬 시도가 많았던 해였다”고 전했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새로운 주제가 본격적으로 부상했고, 청소년과 어린이극에서도 과감한 시도가 잇따랐다. 기후 위기와 생태, 지속 가능성 등의 주제를 구체적이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선보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심사위원단은 “동아연극상은 연극계의 새로운 도전과 과감한 실험을 항상 응원해 왔다”며 “수상자와 수상단체, 연극인 모두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 인사를 드리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작품상은 ‘하얀 밤을 보내고 있을 너에게’와 ‘화성에서의 나날: 파트1’이 공동 수상했다. ‘하얀 밤을…’의 박해성 연출가는 “다양한 관점을 지닌 창작자들이 모여 서로 조율하며 만든 공연이 상을 받아 무척 뜻깊다”고 말했다. 해당 작품으로 연출상도 받은 그는 “동료들을 오랫동안 응원하고 동행하며 함께하는 사람이 되겠다”고도 밝혔다. ‘화성에서의…’의 윤성호 연출가는 “작가와 연출, 배우, 스태프 모두가 힘을 합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 연극이기에 작품상을 받아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연기상은 ‘간과 강’과 ‘진천 사는 추천석’에 각각 출연한 송인성, 조영규 배우가 수상했다. 송 배우는 “평생에 한 번 받아볼 수 있을까 꿈꿨던 동아연극상을 받아 헛살지 않았다고 인정을 받은 것 같다”며 기뻐했다. 희곡상은 ‘비명자들 3막: 나무가 있다’를 쓴 이해성 작가, 무대예술상은 ‘활화산’의 임일진 디자이너가 받았다. 새개념연극상에는 ‘이상한 어린이연극: 오감도’를 제작한 종로아이들극장과 공놀이클럽이 받았다. 이 연극에 출연한 어린이 배우 10명은 함께 무대에 올라 큰 박수를 받았다. 유인촌신인연기상은 배우 백종승과 최호영, 신인연출상은 ‘공동창작실패 다큐멘터리: 생존자프로젝트는 생존할 수 있을까’의 본주 연출가에게 돌아갔다. 이날 시상식엔 원로 연극인 김우옥 연출가와 정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 김명화 작가 겸 연출가, 김옥란 평론가, 전인철 연출가, 김정호 배우 등이 참석했다. 전년도 신인연기상 수상자인 권은혜 배우가 사회를 봤다. 그 밖에 천광암 동아일보 논설주간을 포함한 200여 명이 자리를 빛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0일부터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함께 열리고 있는 개인전의 주인공 샘 길리엄(1933∼2022)과 케네스 놀런드(1924∼2010). 작업 방식이나 내용은 무척 다르지만, 1960년대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던 ‘워싱턴 색채파’ 추상화가들로 공통점이 적지 않다. 그런데 길리엄의 작품들은 놀런드보다 10배 가까이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길리엄이 흑인 작가라는 점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국내 미술관과 갤러리가 세계 미술계에 불고 있는 ‘블랙 신드롬’를 반영한 듯 최근 주목받는 흑인 미술가들을 잇달아 소개하고 있다. 갤러리 화이트큐브(서울 강남구)도 흑인 작가 툰지 아데니이존스를 올해 첫 전시로 소개했으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서울 용산구)은 8월 마크 브래드퍼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역시 거장 반열에 오른 장미셸 바스키아 같은 흑인 미술가에 대한 인기가 적은 건 아니지만, 이처럼 동시대 흑인 미술가들이 여럿 소개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BLM이 불 지핀 ‘할렘 르네상스’ 구세대 추상화가로 분류되던 길리엄이 최근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건 백인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 벗어나려는 글로벌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김경미 페이스갤러리 PR 디렉터는 “2010년대 후반부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흑인 예술가들을 적극 알리는 분위기를 만든 게 계기”라며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인 ‘비바 아르테 비바’의 메인 공간에 길리엄의 작품이 설치되며 (주요 작가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운동도 이런 흐름에 한몫했다. 특히 시위 확산과 함께 1920∼40년대 뉴욕 할렘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화·예술 부흥 운동인 ‘할렘 르네상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해졌다. 지난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개최한 대규모 기획전 ‘할렘 르네상스와 범대서양 모더니즘’이 대표적이다. 흑인 작가들의 회화, 조각 등 160점을 소개한 이 전시는 현지에서 “편견 속에서 다뤘던 흑인 문화를 이제야 바로잡았다”는 극찬을 받았다. 물론 흑인 미술에 대한 주목은 정치적 올바름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2004년 터너상을 받은 잉카 쇼니바레처럼, 특유의 감각적 색채와 조형 의식이 화려한 시각 언어를 선호하는 최근 시장의 흐름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화랑가는 정치색 옅은 작품 선호 한국 미술계도 흑인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취향은 다소 다르다. 국내에선 인종차별 등 주제 의식보단 작품 자체의 조형성이 주로 선택의 기준이 된다. 길리엄 역시 당대 정치 흐름과 상관없는 추상화를 그렸고, 아데니이존스도 캔버스 전면의 꽃잎, 나뭇잎 등 추상적인 패턴이 도드라진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구상보다 대체로 가격이 저렴하며, 깔끔하고 예쁜 작품을 선호하는 국내 컬렉터의 취향과 잘 맞는 편”이라고 전했다.하지만 최근엔 흑인 작가들의 정치적 메시지에 더 끌린다는 국내 컬렉터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개인 소장가인 류지혜 씨는 최근 해외 갤러리에서 흑인 여성의 정체성을 담은 섀넌 보노, 노예무역을 다룬 퍼비스 영의 작품을 구매했다. 류 씨는 “처음엔 도상이 좋아 끌렸지만, 점점 작품에 내재된 시대적 관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며 “나의 오래된 가치관이나 편견을 돌아보게 해줘서 끌렸다”고 말했다. 강성은 전시 기획자는 “할렘 르네상스처럼 한국도 다양한 정치적 격동기를 보낸 만큼 국내 미술가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인권에 대해 다룬 작품을 연구하고 그 가치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할렘 르네상스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미국 남부에서 벗어나 대거 이주를 시작하며 1920∼40년대 뉴욕 할렘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화 예술 운동. 랭스턴 휴스(시인)와 조라 닐 허스턴(소설가), 알랭 로크(철학자), 에런 더글러스(화가), 듀크 엘링턴(음악가), 루이 암스트롱(음악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인종 차별에 저항하며 흑인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작품들을 창작해,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등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에서 한국계 큐레이터가 처음으로 주요 미술관 관장에 선임됐다. 미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미술관은 14일(현지 시간) “이소영 박사(사진)를 차기 관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미술관 재단 및 아시안 아트 위원회 이사회의 살레 유 의장은 “이 박사는 아시아 및 아시아계 미국 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관객과 소통하며 창의적이고 열린 태도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컬럼비아대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첫 한국계 미술 큐레이터로 15년간 일하며 ‘다이아몬드 산: 한국 미술의 여행과 노스탤지어’(2018년), ‘신라: 한국의 황금 왕국’(2013년), ‘리움 삼성미술관의 한국 분청사기’(2011년)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2018년부터 하버드대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소장품 확대 및 전시 기획, 교육 프로그램 등을 이끌기도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티 소믈리에 50대 엄마와 20대 영상 감독 아들. 자연과 건강에 관심 많은 30대 식물 전문가(플랜티스트)와 요리사 부부, 그리고 40대 갤러리스트. ‘예술 작품은 어떤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을까’란 질문에서 출발해 소장자의 생활 공간을 상상해 전시를 구성한 독특한 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성동구 디뮤지엄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획한 ‘취향가옥: 아트 인 라이프, 라이프 인 아트’전이다. 이번 전시는 부부나 모자 같은 5명의 가상 인물을 먼저 창조했다. 그리고 이들의 취향과 정체성, 감각을 설정해 공간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첫 번째 공간은 상반된 두 개의 취향이 공존하는 ‘스플릿 하우스’다. 두 개의 입구로 분리된 집은 한쪽은 아들, 한쪽은 엄마의 공간이다. 20대 아들의 공간엔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일본과 한국 젊은 작가 작품들이 배치됐다. 반면 엄마의 자리엔 이승조, 박서보, 김환기 등 원로 작가 작품들이 걸렸다. 다음 전시장 ‘테라스 하우스’로 넘어가면 30대 부부의 공간이 펼쳐진다. 클로드 비알라, 이강소, 이은, 프랭크 스텔라 등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 배치됐다. 테라스엔 가구와 도예 작품을 제작하는 로마넬리 부부의 가구나 오브제가 눈길을 끈다. 특히 이 ‘집’ 입구엔 파블로 피카소의 석면 판화가 걸려 있다. 종이 작품인 데다 색감이 알록달록해 관객들 반응이 좋다고 한다. 마지막 ‘듀플렉스 하우스’도 독특하다. ‘맥시멀리스트’ 취향의 40대 남성 갤러리스트를 주인으로 상상하고 꾸몄다. 복층 구조의 넓은 공간에 알렉산더 칼더의 종이 작품부터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 작품, 또 하비에르 카예하의 커다란 조각 작품 등 다양하게 배치했다. 장 프루베, 핀 율 같은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도 배치됐다. 전시 관람이 누군가의 집을 방문해 취향을 엿보는 기분이 들도록 공간을 꾸민 건 무슨 연유일까. 대림문화재단 관계자는 “대림미술관 기획전에서 일부 공간에 가구를 배치해 집처럼 보이게 하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적이 있다”며 “이번 전시는 그런 아이디어를 최대로 끌어 올리는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각 공간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러 나이대를 설정한 것도 이유가 있다. 이 관계자는 “대림미술관 하면 2030세대가 찾는 곳으로 여겨졌는데, 팬데믹 시기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다른 연령대의 방문도 늘어났다”며 “이런 흐름에 맞춰 30∼50대 관객의 취향에 맞춘 공간도 조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콘셉트가 인상적이지만, 그간 외부로 공개된 적이 거의 없던 대림문화재단 소장품이 다수 나온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70여 명의 국내외 예술가 작품 300여 점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재단 소장품이다. 전시된 면면을 보면 트렌디한 디자인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이 많다. 그런 가운데 ‘스플릿 하우스’에 김환기 작품 2점도 걸려 있어 “이 작품들이 여기에 있었느냐”고 신기해하는 관객 반응도 적지 않다. 5월 1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티 소믈리에 50대 엄마와 20대 영상 감독 아들. 자연과 건강에 관심 많은 30대 식물 전문가(플랜티스트)와 요리사 부부, 그리고 40대 갤러리스트. ‘예술 작품은 어떤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을까’란 질문에서 출발해 소장자의 생활 공간을 상상해 전시를 구성한 독특한 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성동구 디뮤지엄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획한 ‘취향가옥: 아트 인 라이프, 라이프 인 아트’전이다.이번 전시는 부부나 모자 같은 5명의 가상 인물을 먼저 창조했다. 그리고 이들의 취향과 정체성, 감각을 설정해 공간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첫 번째 공간은 상반된 두 개의 취향이 공존하는 ‘스플릿 하우스’다. 두 개의 입구로 분리된 집은 한쪽은 아들, 한쪽은 엄마의 공간이다. 20대 아들의 공간엔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일본과 한국 젊은 작가 작품들이 배치됐다. 반면 엄마의 자리엔 이승조, 박서보, 김환기 등 원로 작가 작품들이 걸렸다.다음 전시장 ‘테라스 하우스’로 넘어가면 30대 부부의 공간이 펼쳐진다. 클로드 비알라, 이강소, 이은, 프랭크 스텔라 등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 배치됐다. 테라스엔 가구와 도예 작품을 제작하는 로마넬리 부부의 가구나 오브제가 눈길을 끈다. 특히 이 ‘집’ 입구엔 파블로 피카소의 석면 판화가 걸려 있다. 종이 작품인데다 색감이 알록달록해 관객들 반응이 좋다고 한다.마지막 ‘듀플렉스 하우스’도 독특하다. ‘맥시멀리스트’ 취향의 40대 남성 갤러리스트를 주인으로 상상하고 꾸몄다. 복층 구조의 넓은 공간에 알렉산더 칼더의 종이 작품부터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 작품, 또 하비에르 카예하의 커다란 조각 작품 등 다양하게 배치했다. 장 푸르베, 핀 율 같은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도 배치됐다.전시 관람이 누군가의 집을 방문해 취향을 엿보는 기분이 들도록 공간을 꾸민 건 무슨 연유일까. 대림문화재단 관계자는 “대림미술관 기획전에서 일부 공간에 가구를 배치해 집처럼 보이게 하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적이 있다”며 “이번 전시는 그런 아이디어를 최대로 끌어 올리는 실험”이라고 설명했다.각 공간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러 나이대를 설정한 것도 이유가 있다. 이 관계자는 “대림미술관하면 2030 세대가 찾는 곳으로 여겨졌는데, 팬데믹 시기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다른 연령대의 방문도 늘어났다”며 “이런 흐름에 맞춰 30~50대 관객의 취향에 맞춘 공간도 조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전시 컨셉트가 인상적이지만, 그간 외부로 공개된 적이 거의 없던 대림문화재단 소장품이 다수 나온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70여 명의 국내외 예술가 작품 300여 점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재단 소장품이다. 전시된 면면을 보면 트렌디한 디자인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이 많다. 그런 가운데 ‘스플릿 하우스’에 김환기 작품 2점도 걸려 있어 “이 작품들이 여기에 있었느냐”고 신기해하는 관객 반응도 적지 않다. 5월 1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항아리 모양으로 웅크린 한 남성. 그 앞엔 쩍 갈라진 항아리가 있다. 자신을 가뒀던 항아리가 깨졌는데도 그대로 웅크린 이 사람. 그림 위엔 ‘4인방이 사라진 뒤에야 나 자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비웃으려 이 글을 쓴다’고 적혀 있다. 4인방이란 문화대혁명 때 권력을 장악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의 측근(장칭, 왕훙원, 장춘차오, 야오원위안)들을 일컫는다.혁명이 끝났음에도 독 안에 갇혀 아무 말 못 하는 지식인을 비판한 이 작품은 랴오빙슝의 ‘자조’. 지난해 말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회화’전에서 만날 수 있다.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중국미술관에 대여를 요청하면서도 ‘정말 올 수 있을까’ 궁금했던 작품”이라며 “그만큼 이번 전시는 중국 근현대 수묵화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다”고 했다.국립현대미술관이 중국 국가미술관인 중국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수묵별미’전은 한국과 중국의 근현대 수묵채색화 148점을 소개한다. 중국에서도 자주 공개하지 않는 국가 지정 ‘1급’ 작품 5점도 포함됐다. 다음 달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봐두면 좋을 작품들을 배 학예사와 꼽아 봤다.① 우창숴 ‘구슬 빛’우창숴(1844∼1927)는 치바이스, 자오즈첸과 함께 20세기 한국 화단이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다. 해당 작품은 등나무 줄기가 어지럽게 얽힌 모습을 리드미컬한 선과 화면 구성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해 작가의 호쾌하고 자유로운 개성이 듬뿍 묻어난다. 배 학예사는 “이응노의 ‘생맥’ 같은 추상화적인 작품이 수묵화 고유의 전개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짐작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했다. ② 쉬베이훙 ‘전마’수묵화를 그리던 중국 작가들은 서양 회화를 접하며 해부학과 원근법에 바탕을 둔 표현 방식에 눈을 뜬다. 쉬베이훙은 중국에서 이런 ‘사실주의 운동’에 앞장선 작가다. ‘전마’는 전투마가 달리다 갑자기 옆을 보는 모습인데, 수묵화 특유의 선 그리기 방식과 번짐 기법이 서양화 표현 방식과 결합돼 현대인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③ 장다첸 ‘시구를 찾는 그림’장다첸은 한국에도 작품이 많고, 대만 타이베이 고궁박물관 옆에는 장다첸 기념관이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작가다. 배 학예사는 “장다첸은 연꽃 그림으로 유명한데, 초기작은 중국 사람도 보기 힘들 만큼 귀하다”며 “중국 측이 내줘서 감동받았다”고 했다. ‘원나라 4대가(황공망, 예찬, 오진, 왕몽)’의 양식을 따라 소나무와 오동나무, 사람을 그린 작품. 장다첸이 자신의 화법을 다듬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④ 판제쯔 ‘석굴 예술의 창조자’중국 대학생의 채색화 공부에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한국이 채색화의 원류로 고구려 고분 벽화를 거론하는 것처럼 중국에선 돈황 석굴 벽화를 원류로 여긴다. 때문에 채색화 전통을 계승한다고 할 때 돈황 벽화를 따라 그리며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그 장면 자체를 담고 있어 흥미롭다.⑤ 첸쑹옌 ‘금수강남 풍요로운 땅’중국에서 수묵화가들은 ‘문인’ 계급이었다. 때문에 문화대혁명 이후 한량 취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치바이스가 작가로 살아남고 블루칩으로 선전되는 건, 그가 목수 출신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 첸쑹옌은 “우리 산수화도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경작이 이뤄지고 전기가 들어오며 풍요로워진 중국 땅을 그렸다.배 학예사는 “중국 현대미술은 그간 갤러리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위주로 국내에 소개됐다”며 “국가가 지정한 ‘문물급’ 작품 30여 점이 대거 한국에 선보이는 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한국화 작품도 함께 소개된다. 한국 전시가 끝나면 함께 중국을 순회할 예정이다. 한국화와 중국 수묵화를 비교하며 우리만의 독창성이나 개성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2월 1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세계 4대 보석 수집가’로 꼽히는 일본 아리카와 가즈미 앨비언아트 대표(사진)의 보석 컬렉션 200여 점이 한국을 찾았다. 3월 16일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 ‘디 아트 오브 주얼리(The Art of Jewellery):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은 프랑스 나폴레옹,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썼던 보석부터 세계에 단 3점만 있는 ‘조각계의 라파엘로’ 발레리오 벨리가 만든 십자가 등을 공개한다. 전시 공간 연출은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가 맡아 눈길을 끈다. 전시 개막을 맞아 지난해 12월 한국을 찾았던 아리카와 대표는 “나는 불교 신자여서 인연에 대해 생각해 봤다”며 1500년 전 일본과 한국의 인연을 언급했다. “6세기 백제 성왕께서 일본에 불상과 경전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나도 이것을 믿습니다. 그때 일본이 한국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어요. 아름다운 보석을 소개해 당시 받은 은혜의 1억분의 1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시대 작품부터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와 17∼18세기 유럽, 19세기 나폴레옹과 빅토리아 시대, 아르누보, 벨 에포크, 아르데코 등 광범위한 시대의 작품을 다룬다. 아리카와 대표도 “(내 컬렉션을)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 등 세계 박물관에서 70회 정도 전시했지만, 이번처럼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긴 역사를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아리카와 대표가 꼽은 주요 작품은 ‘벨리의 십자가’와 19세기 독일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보석 세트다. 벨리의 십자가는 16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정교한 세공 기술이 돋보인다. 받침대는 1762년 프랑스 파리의 금세공인이 제작했다. 뷔르템베르크 왕가 보석 세트는 100개가 넘는 핑크 토파즈를 활용한 티아라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브로치로 구성됐다. 이 밖에 나폴레옹 1세가 바사노 공작에게 선물한 브로치, 알폰스 무하가 만든 코르사주 장식품, 빅토리아 여왕이 포르투갈 여왕에게 선물한 팔찌 등도 관객들과 만난다. 구마 건축가가 디자인한 전시 공간은 보석의 질감을 돋보이게 했다. 광택이 없는 투박하고 어두운 천을 배경에 깔아 ‘대비의 미’를 극대화했다. 각 전시 부문마다 배경 천을 다양하게 배치하고 관객 동선은 은은한 조명을 따르도록 만들었다. 보석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오브제 ‘빛의 격자’와 ‘그림자의 격자’도 전시장 입구 로비와 휴식 공간에 설치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세계 4대 보석 수집가’로 꼽히는 일본 아리카와 카즈미 알비온아트 대표의 보석 컬렉션 200여 점이 한국을 찾았다. 3월 16일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 ‘디 아트 오브 쥬얼리(The Art of Jewellery):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은 프랑스 나폴레옹,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썼던 보석부터 세계에 단 3점만 있는 ‘조각계의 라파엘로’ 발레리오 벨리가 만든 십자가 등을 공개한다. 전시 공간 연출은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가 맡아 눈길을 끈다.전시 개막을 맞아 지난해 12월 한국을 찾았던 아리카와 대표는 “나는 불교 신자여서 인연에 대해 생각해 봤다”며 1500년 전 일본과 한국의 인연을 언급했다. “6세기 백제 성왕께서 일본에 불상과 경전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나도 이것을 믿습니다. 그때 일본이 한국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어요. 아름다운 보석을 소개해 당시 받은 은혜의 1억분의 1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이번 전시는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시대 작품부터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와 17~18세기 유럽, 19세기 나폴레옹과 빅토리아 시대, 아르누보, 벨 에포크, 아르데코 등 광범위한 시대의 작품을 다룬다. 아리카와 대표도 “(내 컬렉션을)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 등 세계 박물관에서 70회 정도 전시했지만, 이번처럼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긴 역사를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아리카와 대표가 꼽은 주요 작품은 ‘벨리의 십자가’와 19세기 독일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보석 세트다. 벨리의 십자가는 16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정교한 세공 기술이 돋보인다. 받침대는 1762년 프랑스 파리의 금세공인이 제작했다. 뷔르템베르크 왕가 보석 세트는 100개가 넘는 핑크 토파즈를 활용한 티아라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브로치로 구성됐다. 이밖에 나폴레옹 1세가 바사노 공작에게 선물한 브로치, 알폰스 무하가 만든 코르사주 장식품, 빅토리아 여왕이 포르투갈 여왕에게 선물한 팔찌 등도 관객들과 만난다.구마 건축가가 디자인한 전시 공간은 보석의 질감을 돋보이게 했다. 광택이 없는 투박하고 어두운 천을 배경에 깔아 ‘대비의 미’를 극대화했다. 각 전시 부문마다 배경천을 다양하게 배치하고 관객 동선은 은은한 조명을 따르도록 만들었다. 보석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오브제 ‘빛의 격자’와 ‘그림자의 격자’도 전시장 입구 로비와 휴식 공간에 설치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봉준호 감독(56·사진)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2019년)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미키 17’이 다음 달 28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10일 “봉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미키 17’이 2월 28일 한국에서 처음 상영된다”며 “주인공 미키를 연기한 배우 로버트 패틴슨도 20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키 17’의 글로벌 개봉일은 3월 7일로 예정돼 있다. ‘미키 17’은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을 받은 ‘기생충’ 이후 봉 감독이 6년 만에 발표하는 작품이다. 미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2022년 공상과학(SF) 소설 ‘미키 7’이 원작으로, 얼음으로 뒤덮인 우주 행성 개척에 투입된 복제 인간 미키의 이야기를 그린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테넷’ ‘더 배트맨’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패틴슨이 주연을 맡았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과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헐크로 사랑받은 배우 마크 러펄로도 출연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에 따르면 봉 감독과 패틴슨 등은 20일 한국에서 ‘미키 17’의 일부 영상 상영회를 함께한 뒤 무대 인사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한국에 처음 방문하는 패틴슨은 차기작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봉 감독의 나라에 가고 싶다”며 일정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키 17’은 미국에서도 지난해부터 올해 가장 기대되는 영화 중 하나로 꼽히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 CNN방송은 ‘2025년 기대작 11’에서 해당 영화를 언급하며 “SF 코미디로 보이지만 우주 공간에서 위험한 임무를 맡은 복제 인간을 통해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고 소개했다. 미 대중문화매체 버라이어티도 “봉 감독의 새로운 SF 스릴러 영화”라며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아바타: 불과 재’ 등과 함께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선정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마음을 그림으로 담은 책 두 권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한 권은 의료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조카를 함께 돌보는 고모가 직접 쓰고 그렸다. 다른 한 권은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를 발달장애를 가진 그림 작가가 그렸다.‘내 사랑 조카’는 조카를 위해 그림을 배우기로 결심한 고모의 이야기부터 마음을 휘젓는다. 고모는 “무엇을 그리고 싶냐”는 강사의 질문에 “조카를 그리고 싶다”고 말한 뒤 펑펑 눈물을 쏟는다. 이후 매주 조카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기 시작했다. 그림 속에서 조카는 코에 달린 줄로 우유를 먹는다. 배 속에 있을 때 산소가 잘 전달되지 않아 뇌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콧줄은 물론 산소포화도 측정기, 흡인기 등 의료 기기를 달고 일상을 살아간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소아 중환자실로 직행해 가족의 마음을 졸이게 했지만, 여러 힘겨운 치료를 버텨내며 소중한 존재로 자라난다. 책에는 조카의 성장 과정, 그리고 그 사이사이 ‘나’의 모습을 관찰한 자화상을 담고 있다. 조카를 돌보는 고모는 누군가 ‘이젠 네 인생을 살라’고 하거나, 조카의 안부를 묻다가 “어디가 좋아졌어? 말해? 먹어? 걸어?”라고 하면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해 막막함을 느꼈다고 한다.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울 복잡한 사정과 감정들 때문이다. 고모는 그 속내를 도화지에 풀어놓으며 “조카를 돌보는 일이 사실은 나를 돌본 것”임을 깨닫는다. ‘내 사랑 조카’를 스스로 “상부상조 성장기”라고 부르는 이유다.그런 의미에서 ‘아기나무들’은 또 다른 상부상조 성장기라 할 수 있다. 발달장애 작가가 영등포에 살고 있는 두 엄마의 이야기를 하나의 가상 이야기로 엮은 다음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지역 주민들이 참가한 ‘당신의 영등포를 그림책으로 만들어 드립니다’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림책은 쌍둥이를 낳고 키우면서 ‘한 명을 안아주며 한 눈으로는 다른 아이를 보고 있었던’ 기분, 어떨 땐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들에게 미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경험, 어느덧 부쩍 큰 아이를 보며 느끼는 뿌듯한 감정 등이 담겼다. 아이를 키워 봤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는 이런 장면들을 먼저 선으로 그은 다음 각 구역을 크레파스로 마음껏 색칠해 나간다. 두 책 모두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따스함이 한 장 한 장 깊이 배어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봉준호 감독(56)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2019년)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미키 17’이 다음 달 28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된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10일 “봉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미키 17’이 2월 28일 한국에서 처음 상영된다”며 “주인공 미키를 연기한 배우 로버트 패틴슨도 20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키 17’의 글로벌 개봉일은 3월 7일로 예정돼 있다.‘미키 17’은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을 받은 ‘기생충’ 이후 봉 감독이 6년 만에 발표하는 작품이다. 미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2022년 공상과학(SF) 소설 ‘미키 7’이 원작으로, 얼음으로 뒤덮인 우주 행성 개척에 투입된 복제 인간 미키의 이야기를 그린다.출연진도 화려하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테넷’ ‘더 배트맨’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패틴슨이 주연을 맡았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과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헐크로 사랑받은 배우 마크 러펄로도 출연한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에 따르면 봉 감독과 패틴슨 등은 20일 한국에서 ‘미키 17’의 일부 영상 상영회를 함께한 뒤 무대인사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한국에 처음 방문하는 패틴슨은 차기작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봉 감독의 나라에 가고 싶다”며 일정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미키 17’은 미국에서도 지난해부터 올해 가장 기대되는 영화 중 하나로 꼽히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 CNN방송은 ‘2025년 기대작 11’에서 해당 영화를 언급하며 “SF 코미디로 보이지만 우주 공간에서 위험한 임무를 맡은 복제 인간을 통해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고 소개했다. 미 대중문화매체 버라이어티도 “봉 감독의 새로운 SF 스릴러 영화”라며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아바타: 불과 재’ 등과 함께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선정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구스타프 클림트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이 ‘여인들의 초상화’입니다.클림트는 의뢰로 사교계 여성을 그리는가 하면, 상징에 빗댄 여자들의 누드를 그리고, 작업실에서는 이런 누드화의 모델을 선 여자들의 적나라한 포즈를 그렸습니다.생전 클림트는 “나라는 사람은 흥미로울 구석이 하나도 없다”며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림을 봐달라”며 사생활을 숨기려 했죠.그러나 수많은 여인을 그림으로 남긴 데다, 세상을 떠난 뒤 ‘숨겨둔 자식’들 10여 명이 유산을 요구하며 나타나 ‘클림트의 여인들’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 이야깃거리입니다.오늘은 그 중 평생 클림트와 함께했던 여인이자 ‘키스’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뮤즈, 에밀리 플뢰게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바람둥이’ 클림트 눈 감아준 헌신적 여자?클림트와 플뢰게는, 클림트의 동생과 플뢰게의 언니가 결혼하며 사돈 관계로 알게 됩니다.클림트가 29세 젊은 화가일 때, 17세인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을 그렸는데,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모델로 흔히 그림을 그렸던 시기입니다.이후 클림트 형제들은 중요한 그림 커미션을 따내며, 그림 사업을 확장합니다. 플뢰게 자매 역시 ‘슈베스턴 플뢰게(플뢰게 자매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패션 디자인을 시작해, 두 가문이 사업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았습니다.그러다 에른스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클림트가 조카의 후견인이 되면서 에밀리 플뢰게와 구스타프 클림트는 가까워집니다.두 사람은 빈의 사교 행사에 자주 함께했고, 사람들은 플뢰게를 ‘클림트 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클림트가 죽을 때까지 둘은 결혼하지 않았고, 같이 살지도 않았습니다. 클림트는 어머니와 여동생, 누나들이 함께 살며 뒷바라지했고, 플뢰게도 언니, 동생 및 가족과 함께 살았죠.이 때문에 예전의 클림트 전기에서는 플뢰게와 클림트가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했다’거나, 플뢰게가 ‘바람둥이 클림트’를 눈 감아준 헌신적 여자로 묘사했습니다.그런데 최근 미술사학자들은 가부장적 시각에서 벗어나 플뢰게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데요. 클림트의 모델, 뮤즈라는 렌즈를 버리고 플뢰게의 삶을 보면 그녀 자체로도 성공한 사업가이자 시대를 앞서갔던 디자이너였음이 드러납니다.‘슈베스턴 플뢰게’ 전성기엔 직원 80명클림트는 평생 플뢰게의 초상을 4차례 그렸는데, 여기서도 플뢰게의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17, 19세 때 초상에서 플뢰게는 얌전한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19세 때 초상은 아름다운 정원과 공주풍 드레스가 눈길을 끌지만, 플뢰게의 포즈와 표정은 어색한 듯 경직되어 있죠.9년 뒤인 1902년.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다부진 입은 그대로지만 ‘비엔나 공방’ 디자이너들이 즐겨 사용했던 패턴의 원피스를 입고 턱은 약간 위로 든 모습이 자신감 넘칩니다.플뢰게가 입고 있는 옷은 당시에는 호불호가 갈리는, 낯선 스타일이었습니다. 허리가 조이지도 않고 패턴도 여성적 드레스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죠.특히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신체를 과도하게 억압하는 옷을 바꾸자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시작한 ‘개혁 드레스’(Reform Dress)의 영향도 보입니다.이런 옷을 좋아하는 건 지성인과 아방가르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었죠. 플뢰게 자매들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1904년 빈에 패션 상점 ‘슈베스턴 플뢰게’를 열고 이런 옷을 만들었습니다.재밌는 건 클림트의 그림이 보여준 새로운 시도를 플뢰게 자매가 패션의 영역에서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년 프랑스와 런던을 방문했던 플뢰게는 폴 푸아레에게 영감을 얻었고, 또 클림트와 절친했던 비엔나 공방 디자이너, 건축가와도 활발히 협업했습니다.이때 슈베스턴 플뢰게에 가면 비엔나 공방 스타일 인테리어에 콜로먼 모저가 디자인한 가구가 놓여 있고, 또 각종 실험적인 공예품들이 비매용 장식품으로 진열되며 세련된 취향과 감도를 자랑했습니다. 유럽의 도버 스트릿 마켓 같은 ‘편집샵’의 초기 형태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받습니다.그러면서 비엔나 공방 스타일을 낯설어하는 고객에겐 여전히 귀부인 스타일의 옷을 제작해 주면서 수익을 내는 수완도 갖췄습니다. 덕분에 슈베스턴 플뢰게는 전성기에 직원을 80명까지 두었고, 1차 세계대전 뒤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고, 나치의 유대인 핍박으로 문을 닫기 전에 30년 넘게 영업을 이어 갔다고 합니다.‘감각의 파트너’ 클림트를 사랑하다이렇게 플뢰게가 성공한 사업가였음을 주목한 독일 미술사학자 수자나 파르치는 “플뢰게가 클림트를 위해 ‘자기희생’(self-sacrifice)을 하고 눈 감아준(renunciation)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그녀가 자기 사업과 커리어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 비춰보면 부적절하다”며 “플뢰게가 클림트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음을 감안하면 각자를 존중하는 파트너십은 그녀에게도 득이 됐을 것”이라고 말합니다.실제로 클림트는 자신에게 초상을 의뢰하는 부유한 중산층 고객을 플뢰게에 소개하며 도움을 주었고, 디자인에 관해서는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직접 옷을 함께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두 사람은 매년 여름 함께 휴가를 떠났는데, 이곳에서 플뢰게가 새롭게 디자인한 옷을 입고 홍보용 사진을 찍을 때, 대부분은 클림트가 찍어줬습니다.1980년대에는 클림트가 플뢰게에 보낸 엽서 400장이 발견됐는데, 그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파리에 와보니 이곳 사람들은 더 과감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누구도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않아. 당신이 파리를 무척 좋아했을 것 같아.”그러다가 플뢰게가 시장 조사를 위해 해외로 떠나면 클림트는 “미디(에밀리의 애칭), 왜 그렇게 빈을 빨리 떠났어? 파리에 그렇게 급하게 가야만 했던거야?”하고 묻거나, 자신이 빈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는 “내 귀여운 미드리첸, 미데사, 미디(에밀리의 애칭들)에게 돌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기뻐. 그녀가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올까? 어쨌든 돌아가면 만나게 될 테니까”하고 애정 표현을 했습니다.클림트가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에밀리를 불러줘’였고, 유산 절반을 그녀에게 남겼다고 하죠. 이 유산 대부분은 미완성 작품, 그림, 드로잉이었는데 플뢰게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작품과 소장품을 팔지 않고 자택에 ‘클림트의 방’을 만들어 보관했다고 전해집니다.클림트의 복잡한 관계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회화와 디자인에서 ‘새로움’을 찾으려 했던 꿈과 희망이 두 사람을 강하게 연결해 준 고리가 아니었을까. 또 한 사람의 일방적 희생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감각의 파트너’로 함께한 것이 오랜 시간 애정을 지키게 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문학가 박완서(1931∼2011)가 작고한 뒤 새롭게 발견된 산문 다섯 편이 책으로 출간됐다. 7일 발행된 산문집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없다면’(문학동네·사진)에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박완서 작가의 미발표 원고 다섯 편이 실렸다. 이 책은 2005년 출간됐던 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에 다섯 편을 추가해 새로 발간된 것이다. 박 작가의 딸인 호원숙 작가는 서문에서 “새롭게 들어간 글 다섯 편은 모두 우연히 발견했다”며 “어머니가 스크랩해 놓은 이 글들은 마치 ‘이런 글도 있었단다’ 하며 어머니가 건네주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새로 발견된 수필은 겨울을 지나 새봄을 맞는 이들에게 응원을 전하는 ‘겨울나무 같은 사람이 되자, 삶의 봄을 만들자’와 하루 여행을 마무리하며 얻은 깨달음을 쓴 ‘내 나름으로 누리는 기쁨’, 어릴 적 고향에서 뱀장어를 잡던 기억을 그린 ‘어린 시절, 7월의 뱀장어’, 대하소설 ‘미망’을 쓴 계기를 담은 ‘미망(未忘)에서 비롯된 것들’, 백두산에 가서 본 장대한 풍경을 묘사한 ‘천지, 소천지, 그리고 어랑촌 가는 길’ 등이다. ‘내 나름으로 누리는 기쁨’에서 박 작가는 친구와 강릉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가 길을 잘못 든 동네에서 우연히 맛있는 백반집을 발견하고 “내 나름으로 생각하면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 바로 “호강”이라는 깨달음에 대해 얘기한다. ‘어린 시절, 7월의 뱀장어’엔 가난한 시절 숙부가 잡아준 뱀장어를 구워 먹었던 추억이 담겼다. ‘미망에서 비롯된 것들’에선 미망을 쓴 계기가 어린 시절 숙부에게 들은 이야기를 잊지 못해서였다고 털어놓는다. “너무 오래 가지를 키웠나 보다. 장장 오천 장이 넘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며 “대부분의 내 소설은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음에서 비롯된 것들”이라고 썼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요즘 미술계에선 영상 매체와 디지털 기기를 어릴 때부터 접했던 한국의 20, 30대 작가들이 첨단 기술을 활용해 만든 미디어 작품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작가들은 화려한 화면 효과 혹은 편집 기술로 기존 작품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송예환 작가는 영상을 설치하는 방식부터 다르게 해 주목받는다. 8일 개막한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의 개인전 ‘인터넷 따개비들’과 미술관 송은의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지난해 12월 17일 개막)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신선하고 독특해 관람하는 재미가 작지 않다. ‘따개비들’을 비롯한 송 작가의 작품들은 얼핏 보면 조그마한 전광판이 다닥다닥 모여 영상을 송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영상은 천장의 빔프로젝터에서 투사된 것이다. 전광판처럼 보이는 패널은 종이를 조립해 만든 조각이다. 웹 디자이너로도 일했던 작가가 온라인 공간을 코딩으로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오프라인 공간에서 종이를 차곡차곡 쌓고, 영상의 위치를 계산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6일 개인전에서 만난 송 작가는 “웹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및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사용자 친화적’인 서비스를 개발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정말 사용자를 친구처럼 위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작품은 온라인 플랫폼이 정한 방향대로 세상을 보고 물건을 구매하는 인터넷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정보의 바다’라는 표현처럼 인터넷 공간을 물에 비유해 작품에 ‘따개비’나 ‘소용돌이치는 물’ 같은 형태를 차용한다. 그러나 그것을 구성하는 종잇조각은 격자무늬에 갇혀 자유롭기보다는 꽉 짜였고, 체계적이다. 여기에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사람의 손 모양, 입술에서 나온 말이 미끄러져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는 영상을 담아 작가의 문제의식을 표현했다. 송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 ‘젊은 모색’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지갤러리와 미술관 송은의 전시는 각각 2월 15일, 2월 22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요즘 영상 매체와 디지털 기기를 어릴 때부터 접했던 한국의 20, 30대 미술가들이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미디어 작품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작가들은 독특한 서사, 화려한 화면 효과 혹은 편집 기술로 작품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이런 가운데 송예환 작가는 영상을 설치하는 방식을 다르게 해 주목받고 있다. 송 작가가 8일 개막한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의 개인전 ‘인터넷 따개비들’과 미술관 송은의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지난달 17일 개막)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따개비들’을 비롯한 작품들은 얼핏 보면 조그마한 전광판이 다닥다닥 모여 영상을 송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영상은 천정의 빔프로젝터에서 투사된 것이고, 전광판처럼 보이는 패널은 종이를 조립해 만든 조각이다. 웹 디자이너로도 일했던 작가가 온라인 공간을 코딩으로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오프라인 공간에서 종이를 차곡차곡 쌓고, 영상의 위치를 계산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6일 만난 송 작가는 “웹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및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사용자 친화적’인 서비스를 개발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정말 사용자를 친구처럼 위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며 “내 작품은 온라인 플랫폼이 정한 방향대로 세상을 보고 물건을 구매하는 인터넷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작가는 ‘정보의 바다’라는 말처럼 인터넷 공간을 물에 비유하는 데서 착안해 작품에 ‘따개비’나 ‘소용돌이 치는 물’ 같은 형태를 차용한다. 그러나 그것을 구성하는 종이 조각은 격자무늬에 갇혀 자유롭기보다는 꽉 짜였고, 체계적이다. 여기에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사람의 손 모양, 입술에서 나온 말이 미끄러져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는 영상을 담아 작가의 문제의식을 표현했다.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젊은 모색’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지갤러리와 미술관 송은의 전시는 각각 2월 15일, 2월 22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 하면 떠오르는 동네들이 있다. 국내 대형 갤러리가 모인 서울 종로구 삼청동, 외국계 갤러리들이 즐비한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청담동. 최근엔 전통적인 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성북구 성북동에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늘어나며 미술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해 12월 대구의 유명 갤러리인 우손갤러리가 성북동에 서울 전시장을 마련하는가 하면, 2017년 성북동에 자리 잡은 제이슨 함 갤러리는 지난해 신관을 열었다. 게다가 서세옥미술관과 라인문화재단 미술관 등도 성북동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미술계는 성북동의 어떤 매력에 빠진 걸까.● 큰 단독 주택, 전시장으로 갤러리스트들은 성북동의 고급 주택을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주목했다. 서울 도심에 둥지를 틀려면 건물을 새로 짓거나 기존 상가 건물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성북동에선 규모 있는 단독 주택을 근사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우손갤러리 서울관은 50년 넘은 붉은 벽돌 건물을 1년 동안 리모델링했다. 이전까지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관저로 쓰였던 건물이다. 지금은 1·2층은 전시 공간으로, 지하 1층과 3층은 갤러리 고객을 위한 공간이 됐다. 이은주 우손갤러리 디렉터는 “갤러리가 밀집한 삼청동이나 번잡한 강남에 비해 성북동은 차분한 분위기가 강점”이라고 했다.2017년 성북동에 자리 잡은 제이슨 함 갤러리도 지난해 기존 전시장 옆 건물로 갤러리를 확장했다. 원래는 옆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으려 했는데, 이 건물의 독특한 모양을 본 스위스 출신 현대 미술가 우르스 피셔가 “이곳에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고 해 원형을 유지한 채 사용하고 있다. 건축주가 손수 지었다는 건물은 1층은 동그란 돌벽이, 2층은 유리창이 있다. 피셔는 이 건물을 전부 하얗게 칠하고 개인전 ‘Feeling’을 열었다. 성북동이 전통적 부촌이라는 점도 갤러리를 끌어들이는 요소다. 제이슨 함의 함윤철 대표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보면 부잣집에선 ‘성북동입니다’ 하고 전화 받는 장면이 나와 성북동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며 “이 지역의 터줏대감들도 잠재 고객이겠다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연과 문화유산은 미술관으로 “불편한 성북동으로 왜 오라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도심에서 멀지 않다는 것, 수돗물이 아니라 우물물을 먹는다는 것, 꽃이 피고 숲이 있고 단풍이 들고 새가 운다. 달도 산협(山峽)의 달은 월광이 다르다.” 성북동에 살았던 김환기(1913∼1974)가 남긴 글이다. 실제로 김환기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인이 성북구에 살았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은 “도심과 달리 자연이 살아 있고, 과거엔 서울시가 아니어서 집값도 저렴해 가난한 예술가들도 작업실로 삼았다”고 했다. 2009년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도 국내에선 처음으로 자치구가 만든 미술관이다. 1978년 서세옥 김기창 등 예술가들이 만든 ‘성북장학회’가 지방자치단체와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미술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이런 배경도 성북동이 주목받은 중요한 이유가 됐다. 2028년에는 서세옥이 50년 넘게 살았던 한옥 ‘무송재’ 옆에 ‘서세옥미술관’이 개관한다. 미술관 자리는 서세옥의 아들 서도호의 작업실이 있던 곳이다. 2021년 서세옥 유족이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등 3342점을 바탕으로 연구 및 전시도 이뤄질 예정이다. 서세옥의 차남인 건축가 서을호가 미술관 설계를 맡았다. 라인문화재단도 2026년 개관을 목표로 성북동에 약 1만 ㎡ 규모의 현대 미술관을 준비하고 있다. 재단은 미술관 사전 프로그램으로 강남구 삼성동 비영리전시공간 ‘프로젝트 스페이스 라인’에 ‘모든 조건이 조화로울 때’를 열고 있다. 이 전시는 조경 디자이너 박소희와 미술가 박기원을 초청했는데, 성북동 미술관에서도 자연이 중요한 요소가 될 예정이다. 고원석 디렉터는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넓은 정원을 보유한 현대 미술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