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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선 회화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강세황(1713∼1791)의 ‘자화상’(보물·사진)을 비롯해 회화 26건을 새로 선보인다. 박물관은 상설전시관 서화실 전시 작품을 교체하고, 지난해 구입한 ‘자화상’과 국외박물관 한국실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보존처리를 마친 19세기 ‘호렵도(胡獵圖)’ 등을 공개한다고 최근 밝혔다. 강세황이 70세에 그린 이 자화상은 관복을 입을 때 쓰는 오사모(烏紗帽)를 쓴 채 옷은 평상복을 입은 것이 특징이다. 박물관은 “‘마음은 산림에 있으나 몸은 조정에 있다’는 그림 속 글귀와 연결되는 것으로, 현실과 이상의 모순을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호렵도는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 작품으로 금니(金泥·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를 사용해 장식성을 높였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 매 그림의 독창성이 드러난 정홍(1720∼?)의 ‘해돋이 앞의 매’ 등 세화(歲畫·새해를 축하하는 그림), 겨울 풍경과 사냥 장면 그림 등이 전시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08년 어느 날 전북 군산.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17세 남성이 상투를 잘랐다. 일본으로 건너가는 도항증(渡航證)을 막 얻은 참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부안군 줄포에 있는 집안 어른들은 장손인 그의 유학을 완강하게 반대했다. 일본행 배를 타기 이틀 전, ‘모친 급환’이란 편지와 함께 줄포에서 머슴이 그를 데리러 왔다. 급히 본가로 가던 남성은 편지가 자신의 일본행을 만류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채고 다시 군산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부모에게 용서를 비는 편지를 쓰고 상투 자른 사진을 찍어 보낸 뒤, 친구와 함께 시모노세키행 배에 오른다. 그는 훗날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이다. 함께 유학한 친구는 그의 평생 동지로 동아일보사 사장과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고하 송진우 선생(1890∼1945)이다. 만약 두 사람이 당시 유학을 가지 않고 발길을 되돌렸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촌탐사’는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이진강 인촌기념회 이사장과 황호택 전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인촌 선생의 발자취를 탐사한 책이다. 책 표지에 실린 문구 ‘밝은 길을 찾아가다’는 인촌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는 저자들의 취재 과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6년의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인촌은 자신의 꿈이던 교육 사업에 뛰어들었다. 백두산에서 이름을 따온 ‘백산학교’ 설립을 추진했지만 조선총독부는 불허했다. 하지만 인촌은 부친을 설득해 얻어낸 자금으로 1915년 경영난에 빠진 중앙학교를 인수했다. 처음엔 이마저 허가하지 않던 총독부의 세키야 학무국장을 설득할 당시 대화가 전해진다. “청년을 교육해서 무얼 하려는가.”(세키야) “우리 민족도 남과 같이 잘 살게 하고 싶소.”(인촌) “바보 같은 소리! 조선인의 교육은 조선총독부가 잘하고 있다.”(세키야) 하지만 인촌은 대학 인맥까지 동원해 결국 허가를 얻었고, 중앙학교는 3·1운동의 책원지(策源地)이자 민족교육의 터전이 됐다. 인촌은 첫 부인 고광석 여사를 여읜 뒤, 정신여학교 학생으로 3·1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경으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른 이아주 여사(1899∼1968)와 재혼했다. 이 여사의 애국정신에 감복했기 때문이었다. 전언에 따르면 이 여사에겐 일본 순사에게 채찍으로 맞아 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인촌의 넷째 아들 김상흠(1919∼1991)은 1939년 항일결사 단체인 조선학생동지회를 결성했다가 일제에 적발돼 1년 넘게 복역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당시 사건으로 연락책이던 며느리 고완남(1920∼1991)도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혹한의 함흥형무소에서 아이를 유산했다. 저자들은 “인촌은 첩첩산중에 밤길을 가는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여러 관련 장소를 직접 다니며 ‘발로 쓴’ 책이어서 현장의 분위기가 살아있다. 이 이사장은 “인촌이야말로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와 격랑의 해방공간을 살면서 민족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나라의 독립,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온 힘을 쏟은 민족교육의 선각자요, 문화민족주의자이자 인간자본의 표상임을 깨닫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해방 뒤 중간파 세력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이라는 역사적 연원이 있어요.” 최근 연구서 ‘또 다른 사회주의―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역사비평사)을 펴낸 윤덕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63)은 지난달 23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 책은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기원을 처음으로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은 연구의 결과물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30년을 근무한 윤 연구원은 2022년 퇴직 이후에도 일제강점기와 해방 뒤 좌우파 민족운동의 연속성을 규명하는 데 매진해 왔다.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운동이라고 하면 대개 박헌영(1900∼1955)이나 조선공산당 등 공산주의운동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윤 연구원에 따르면 1920년대 중후반부터 소련 및 코민테른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적지 않게 생겨났다. 상당수는 사회주의뿐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고 한다. 윤 연구원은 “일제강점기엔 사회민주주의운동이 없었다는 게 기존 학계의 시각이었다”며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식민지라 의회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우파그룹은 없었지만 ‘좌익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1920년대 초에 시작된 물산장려운동 역시 민족주의 운동이란 통념과 달리 운동 초기엔 오히려 사회민주주의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운동의 성격이 더 컸다고 한다. 윤 연구원은 “물산장려운동의 전국화를 주도한 건 조선청년회연합회와 배후의 상해파 고려공산당 국내부(국내 상해파)였는데, 주도 인물인 장덕수(1894∼1947)와 나경석(1890∼1959) 등이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낙후한 사회경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자본가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했으며, 합법 투쟁도 중시했다. 윤 연구원은 “그들은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 경제적 제반 권리를 위한 투쟁, 민족 차별 철폐 등 민주주의 민족운동을 중시했다”며 “민족혁명이 이런 민주주의적 과제를 이뤄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해방 이후로도 이어졌다. 중국에서 민족유일당운동에 앞장섰던 원세훈(1887∼1959), 북풍파 사회주의그룹의 지도자인 김약수(1890∼1964), 사회주의 이론가로 유명했던 유진희(1893∼1949) 등이 사회민주주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민주당에 참여해 한민당이 진보적 사회경제 정책을 천명하는 데 일조했다. 앞서 윤 연구원은 초기 한민당이 보수적 지향에서 우파 사회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합 정당이었으며, 결성 당시 한민당과 자매단체인 국민대회준비회의 부장급 이상 간부 36명 중 90% 이상이 민족운동 관련자라는 걸 실증한 바 있다. 윤 연구원은 “1946년 좌우합작운동을 계기로 한민당에서 탈당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민중동맹’ 등 해방 정국의 중간파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윤 연구원은 2023년 발간한 연구서 ‘세계와 식민지 조선의 민족운동’(혜안)에서는 민족운동을 ‘타협’과 ‘비타협’ 구도로 설명하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런 구분은 실증적으로도 맞지 않고, 민족운동에 대한 이해를 협소한 틀에 가둔다”며 “당대 세계의 사상사적 흐름 속에서 일본과 서구의 정치사상 및 운동의 전개를 동시적으로 비교 분석해야 비로소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해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민족운동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요즘은 설이 아니어도 한복 맵시를 뽐내며 고궁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복의 우아함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특히 많은 이들이 아름답다고 손꼽는 게 치마의 풍성함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최근 발간한 ‘한국 복식 문화사’에 실린 글 ‘조선 후기 여성 패션과 아름다움’(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연구소 연구원)을 통해 우리가 아는 한복 치마와 저고리가 어떻게 등장했는지 들여다봤다.한복 치마를 살피려면 먼저 그와 짝을 이루는 저고리의 변화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민주 연구원에 따르면 조선 후기로 가면서 여성의 저고리는 길이가 극도로 짧아졌고, 소매통은 좁아져 팔뚝의 선을 드러냈다. 이런 저고리는 유학자의 눈엔 ‘요망스러운 옷’으로 보였다. 이덕무(1741∼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이렇게 썼다. “소매에 팔을 꿰기가 몹시 어려웠고, 한 번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졌으며, 심한 경우에는 팔에 혈기가 통하지 않아 살이 부풀어 벗기 어려웠다. 그래서 소매를 째고 벗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요망스러운 옷일까.” 그러나 이 연구원은 “이런 옷이 노소와 신분을 따지지 않고 확산했던 건 누구나 인정하는 아름다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봤다.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면서 치마는 자연스레 가슴 위로 올려 입게 됐다. 그 속으로 껴입은 속옷은 치마를 부풀리는 효과가 있었다. 여성성을 강조한 ‘하후상박(下厚上薄)’형의 새로운 치마저고리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이전까지 한국인이 착용했던 치마저고리와는 전혀 달랐다. 고구려 이후 조선 초까지도 저고리 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왔고, 치마는 허리에 둘러 입었다. 이 연구원은 “17∼18세기 서양에서 여성성을 강조한 스타일이 유행한 것과 비슷한 흐름 속에서, 한복 치마 역시 착장법(着裝法)이 창의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슴 위로 올라와 흘러내리는 치마 끝을 누르느라 팔이 불편해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허리띠를 사용했다. 치마의 색은 대체로 푸른색이었는데, 저고리 아래로 치마 색과 대비되는 흰색의 말기를 넓게 대 허리를 강조하기도 했다. 오늘날로 치면 ‘하이웨이스트’ 스타일로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를 낸 셈이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중국인은 한복을 ‘한푸(漢服)’라고 부르며 치마저고리마저 중국 명나라의 옷이라고 억지 주장하고 있다. 이에 관해 이 연구원은 “중국은 심의(深衣·춘추전국시대 등장한 상하의가 하나로 이어진 옷)의 원피스형과 유군(상의에 유·襦, 하의에 군·裙을 입는 방식)의 투피스형이 공존하다가 청나라 때 치파오를 입으며 다시 원피스형으로 발전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후 줄곧 투피스형의 치마저고리를 착용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복식은 늘 살아 숨쉬는 문화적 산물”이라며 “오랜 세월 한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직물을 바탕으로 당시 사람들의 미의식을 반영해 형성된 복식이야말로 진정한 ‘전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본이 약탈해 간 불상이 다시 돌아오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불상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한일 양국의 교류 전시회 등을 고민 중입니다.”충남 서산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은 24일 고려 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절에 돌아온 것을 알리는 고불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14세기 제작돼 일본으로 건너간 이 불상은 2012년 10월 한국인 도둑들이 일본 쓰시마섬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 왔다. 법적 다툼 끝에 일본에 돌려주기로 결정됐으나 반환에 앞서 부석사 측이 “불상을 모시고 법회를 열게 해 달라”고 간논지에 요청했고, 간논지가 이를 받아들여 잠시 부석사로 옮겨지게 됐다. 불상은 25일부터 5월 5일 부처님오신날까지 100일 동안 대중에게 공개된다. 불상이 부석사에 돌아온 건 연구자들이 왜구가 약탈한 것으로 추정하는 1378년을 기준으로 647년 만이다.이날 부석사 입구에는 ‘불상의 귀향’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렸고, 도착 전부터 불상을 보려는 신도들이 몰렸다. 신도 김부용 씨(74)는 “우리 불상이 다시 일본으로 가는 게 안타깝다”라며 “반드시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합장을 했다. 이날 오전 무진동 차량에 실려 대전 유성구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을 출발한 불상은 오후 부석사에 도착해 설법전으로 옮겨졌다.이 불상은 높이 50.5cm, 무게 38.6kg으로 1973년 일본에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한국 밀반입이 적발되자 간논지는 “도난품인 만큼 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부석사는 “원래 우리 불상으로, 왜구에 약탈당한 문화재”라며 법원에 소유권 소송을 제기했다. 불상 안에선 1330년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 부석사에 봉안하려고 제작했다는 내용의 발원문이 발견됐다. 하지만 2023년 10월 대법원은 ‘취득 시효가 완성됐다’며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라고 최종 판결했다.이번 공개 행사가 끝나면 불상은 5월 11일 전에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반환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날 고불식과 이운식에 참석한 다나카 셋코 전 간논지 주지는 “불상의 (일본) 인도를 위해 힘써 주신 한일 양국 정부와 의회, 대한불교조계종 등 많은 관계자께 거듭 감사드린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서산=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여자가 먼저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이어서 곧 남자가 그렇게 한다”로 소설은 시작된다.남자, 쇼팽을 ‘엄숙하게’ 연주하는 70세의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비톨트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연주회를 마치자 여자, 주최 측 임원인 베아트리스가 다소 공격적으로 묻는다. “가장 중요한 감정은 무엇인가요? 행복이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죠?” 사실 그녀는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예술을 변명해 보시라고요!”이번엔 남자가 곤란하게 할 차례다. 몇 달 뒤 여자에게 남자의 이메일이 날아온다. ‘바르셀로나 근처 도시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있으니 방문해달라’는 것. “나(비톨트)는 당신 때문에(for you) 여기에 있습니다.” 남자는 고백한다. “디어 레이디(Dear Lady)… 당신은 내게 평화를 줘요.”1943년 전쟁 중 폴란드에서 태어나 굶주렸을 남자와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1967년생 여자 사이는 나이 차만큼이나 거리가 있다. 인사할 때 볼에 닿던 남자의 입술은 여자에게 ‘마른 뼈’ 같다. 여자는 말한다. “당신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세계에 속하고, 나는 내가 일상적으로 진짜 세계라고 부르는 다른 세계에 속해요.” 그리고 말하고 싶다. “가엾은 바보 같으니라고! 당신은 너무 늦게 왔어. 잔치는 끝났어.”200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저자의 작품 중 드문 연애 소설이다. 폴란드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과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1804∼1876)의 사랑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 문장이 건조한 것 같은데 위트가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인 도둑들이 2012년 10월 일본 쓰시마섬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 온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일본 반환을 앞두고 100일 동안 공개된다.24일 이 불상을 넘겨받은 충남 서산 부석사는 불상이 돌아온 사실을 부처님께 고하는 고불식을 열고, 이튿날인 25일부터 올해 부처님오신날인 5월 5일까지 불상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후 불상은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이 불상은 높이 50.5㎝, 무게 38.6㎏으로 1973년 일본에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한국인 절도범 4명이 훔쳐 부산항으로 밀반입해 처분하려다 경찰에 적발되자 간논지와 일본 정부는 “도난품인 만큼 일본에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2016년 부석사는 “원래 우리 불상으로, 왜구에 약탈당한 문화재”라며 법원에 소유권 소송을 제기했다.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해 1330년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 부석사에 봉안하려고 제작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10월 대법원은 ‘취득시효가 완성됐다’며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라고 최종 판결했다.불상은 그동안 대전 유성구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보관돼왔다. 24일 국가유산청은 간논지의 다나카 세스료 주지, 나가사키현청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계 서약서를 체결하고 불상을 일본 측에 인도했다. 이에 앞서 부석사 측이 “불상을 모시고 100일간 법회를 열게 해 달라”고 간논지에 요청했고, 이를 간논지가 받아들이며 불상은 잠시 부석사로 옮겨지게 됐다. 왜구에 약탈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14세기를 기준으로 하면 600여 년 만에 부석사에 돌아온 셈이 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서울이 내다보이는 야경은 아름답지만, 화장실은 얼어붙을 듯 춥고 집 주변에선 하수구 냄새가 진동했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옥탑방에 묵었던 외국인 관광객이 남긴 에어비앤비 후기다. 또 다른 후기에선 “경사가 짐을 끌고 오르기 힘들 정도다. 맞은편 집에서 당신이 보일지도 모른다”며 당혹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K드라마 주인공이 낭만적인 삶을 살던’ 옥탑방을 기대했거나 화려한 ‘루프톱 하우스’를 예상했다가 낭패를 본 기색이 역력하다. 한류 붐을 타고 한국 문화가 세계에 확산되면서 낳은 독특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한류문화사전’(이하 사전)을 발간한 이유 중엔 이런 오해를 막자는 의도도 담겼다. 표제어 443개를 선정했는데 한국 문화에 관심 깊은 외국인들이 다수 참여했다. 한국인인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타인의 시선에선 흥미로운 문화는 뭐가 있을까. 사전에서 옥탑방은 ‘날씨에 민감하고 범죄 예방과 화재에 취약한 구조임에도 도시 속 낭만을 누리는 주거지로 묘사된다’고 설명했다. 집필자로 참여한 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류학전공 교수는 “드라마 등 콘텐츠에 등장하는 옥탑방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서울의 야경을 누리는 듯한 ‘기분’을 제공하지만, 실은 열악한 주거 환경이란 사실을 은폐한다”고 했다. 블랙핑크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부른 노래 ‘아파트(apt.)’로 관심을 모은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사전은 ‘한국의 근대화가 낳은 독특한 산물로서 한국인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편찬 자문에 참여한 네덜란드 유튜버 바르트 판 헤뉘흐턴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떠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배타적인 공간”이라고 평했다.‘온수 매트’도 표제어로 등장했다. 외국에선 ‘드라마에서 배우가 바닥에 깔고 눕는데, 굉장히 아늑해 보인다’며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표제어 선정에 참여한 한 외국인은 “한국 여행을 와서 온수 매트를 켜고 누웠을 때 온몸이 따듯해지는 느낌이 좋았다”며 “아마존에서 팔면 사고 싶다”고 했다. 사전은 ‘역사적으로 온수 매트는 한국의 온돌 난방에서 이동형으로 발전되어 개발된 취침용 매트로, 사실상 이동형 온돌’이라고 부연했다. 사전에 다수 등재된, 한국어에서 특히 발달한 맛에 관한 표현도 외국인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담백하다’는 개운하고 산뜻한 맛을 나타내는 형용사지만, 한국인은 매운탕이나 설렁탕도 지나치게 짜거나 기름지지 않으면 담백하다고 한다. 맛 표현이 사람에 대한 표현으로 확장하면 해석의 난도는 더 올라간다. 표제어 선정에 참여한 40대 외국인은 “싱거운 사람이란 대사가 드라마에 나오는데, 사람이 어떻게 싱거울 수 있냐”며 “한국어는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을 묘사하는 표현이 다양한데, 특히 성격을 음식처럼 말하는 게 특이하다”고 했다. ‘시원하다’ ‘말아먹다’ 역시 마찬가지다. ‘밥 한번 먹자’가 “가까운 관계임을 표현하는 형식적인 인사”란 점도 독특하다.‘식당 앞치마’도 외국인에겐 굉장히 낯설다. K드라마를 보며 밥 먹을 때 왜 앞치마를 하는지 궁금해한다고 한다. 식당 앞치마는 고기를 굽거나 국물을 끓이기에 음식이 옷에 튈 염려가 많은 한국만의 문화다. 사전은 “한국의 독특한 외식 문화를 볼 수 있는 일면”이라고 했다. 이번 사전은 한국민속대백과 편찬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특별판이다. 원고지 4600여 장 분량, 사진도 800장에 이른다. 민속학, 사회학 등 분야별 전문가 129명이 참여했다. 영어판 발간 등도 준비되고 있다. 장상훈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사전이 ‘한국 문화 바로 알기’의 길잡이로 국내외에서 널리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찰방(察訪·역참 담당 관리)은 사람을 불러다 꿩을 잡게 했다. 마침 산 중턱에 큰 노루가 풀 속에 자고 있었는데, 활 한 방으로 가슴을 뚫어 쓰러뜨렸다. 바로 잡아서 간은 날로 먹고 고기는 구워 두고 점심으로 먹었다.” 조선 중기 오희문(1539∼1613)의 일기 ‘쇄미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팔자 좋은 양반이 사냥 나들이라도 나선 것 같지만, 이 글이 쓰인 때는 임진왜란이 이어지던 1593년 4월로 오희문은 피란 중이었다. 그는 일기에 “굶주림이 점점 심해져 백성이 날마다 굶어 죽는다”며 “나도 머지않아 구렁을 메우겠지”라고 쓰기도 했다. 오희문 일가는 살아남기 위해 틈만 나면 물고기를 잡고, 꿩을 사냥하고, 나물을 뜯었다. 전란으로 농토에서 유리된 이들에게 누구의 소유도 아닌 산과 개천이 생존의 토대가 됐던 것이다. 오항녕 전주대 대학원 사학과 교수는 17일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가 주최한 학술대회 발표문 ‘일상과 피난, 그리고 공유지’에서 조선의 공유지인 산과 숲, 개천, 연못 등 이른바 ‘산림천택(山林川澤)’의 가치를 쇄미록을 통해 들여다봤다. 오 교수는 동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특히 전쟁이 발발한 1592년에 기아가 심각했는데, 산림천택에 기대 목숨을 부지한 이들이 이듬해 농사를 짓고 의병에도 참여하면서 왜군에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가 쇄미록에 주목한 건 들판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거나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등 공유지에서 이뤄진 경제 활동이 통상의 사료엔 거의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세(田稅)와 공물을 전세화한 대동세(大同稅)의 비율이 1 대 3인 것으로 미뤄 국가의 입장에서 공유지인 산림천택과 텃밭이 백성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답의 3배에 이른다고 봤다. 오 교수는 “전란이 아닌 평시에도 공유지는 조선 사람들의 일상을 유지하는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조시대엔 모든 땅이 왕토(王土)라는 관념이 있었지만, 산림천택은 왕도 사사로이 가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관리에게 나눠줄 토지가 부족해지면 개간을 전제로 공유지를 떼어주기도 했다. 광해군 대에 들어서는 내수사(內需司·왕실 재산 관리 관청) 등의 공유지 침탈이 잦았다. 오 교수는 “조선은 인조 이후 침탈을 제어하고 숙종 때는 제한하는 등 공유지를 보호했다”며 “귀족과 국왕이 공유지를 차지한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조선의 경제 활동 연구는 사적 소유의 발달에 초점을 두고 이뤄졌기에 ‘유교 국가의 사회 안전망’이었던 공유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산림천택 같은 사회 안전망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찰방(察訪)은 사람을 불러다 꿩을 잡게 했다. 마침 산 중턱에 큰 노루가 풀 속에 자고 있었는데, 활 한 방으로 가슴을 뚫어 쓰러뜨렸다. 바로 잡아서 간은 날로 먹고 고기는 구워 두고 점심으로 먹었다.”조선 중기 양반 오희문(1539~1613)의 일기 ‘쇄미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팔자 좋은 양반이 사냥 나들이라도 나선 것 같지만 이 글이 쓰인 때는 임진왜란 중인 1593년 4월로 오희문은 피란 중이었다. 그는 일기에 “굶주림이 점점 심해져 백성이 날마다 굶어 죽는다. 나도 머지않아 구렁을 메우겠지”라고 쓰기도 했다. 오희문 일가는 살아남기 위해 틈만 나면 물고기를 잡고, 꿩을 사냥하고, 나물을 뜯었다. 전란으로 농토에서 유리된 이들에게 누구의 소유도 아닌 산과 개천이 생존의 토대가 됐던 것이다.오항녕 전주대 대학원 사학과 교수는 17일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 발표문 ‘일상과 피난, 그리고 공유지’에서 조선의 공유지였던 산과 숲, 개천, 연못 등 이른바 ‘산림천택(山林川澤)’의 가치를 쇄미록을 통해 들여다봤다. 오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특히 전쟁이 발발한 1592년의 기아가 심각했는데, 산림천택에 기대 목숨을 부지한 이들이 이듬해 농사를 짓고 의병도 참여하면서 왜군에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오 교수가 쇄미록에 주목한 건 들판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거나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등 공유지에서 이뤄진 경제 활동이 통상의 사료엔 거의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세(田稅)와 공물을 전세화한 대동세(大同稅)의 비율이 1대 3인 것으로 미뤄 국가의 입장에서 공유지인 산림천택과 텃밭이 백성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답의 3배에 이른다고 봤다. 오 교수는 “전란이 아닌 평시에도 공유지는 조선 사람들의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기반이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왕조시대엔 모든 곳이 왕토(王土)라는 관념이 있었지만 산림천택은 왕도 사사로이 가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관리에게 나눠줄 토지가 부족해지면 개간을 전제로 공유지를 떼어주기도 했다. 광해군 대에 들어서는 내수사(內需司·왕실 재산 관리 관청) 등의 공유지 침탈이 잦았다. 오 교수는 “조선은 인조 이후 침탈을 제어하고 숙종 때는 제한하는 등 공유지를 보호했다”며 “귀족과 국왕이 공유지를 차지한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조선의 경제 활동 연구는 사적 소유의 발달에 초점을 두고 이뤄졌기에 ‘유교 사회의 사회 안전망’이었던 공유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오늘날에도 산림천택 같은 안전망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서양의 해부학이 중국에 소개됐을 때, 무엇보다 ‘뇌가 인간의 지각과 사고를 담당한다’는 생각이 주목받았다고 한다. 기존 중국적 관념에선 사유 기관으로서의 ‘심(心)’과 생명의 중심으로서의 ‘심장’을 하나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장 따로, 마음 따로’라면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영역이 나뉘게 된다. 이는 한의학의 토대는 물론, ‘심’을 인간 본성의 근원으로 여기는 성리학 전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서양 과학의 도입부터 최근까지의 중국의 ‘과학’에 관해 다각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과학 도입 초기 중국에서 ‘사이언스(science)’는 ‘새인사(賽因斯)’로 음역됐다. ‘새(賽)선생’은 ‘덕(德)선생’(democracy)과 함께 ‘민주’와 ‘과학’을 추구한 1919년 중국 5·4운동의 주요 구호가 됐다. 과학이 ‘공(孔) 선생’(공자)의 지위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오늘날 중국의 과학굴기도 다룬다. 2015년 중국의 투유유 교수가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중국 본토 과학자가 순수하게 중국 내에서 연구한 업적으로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건 처음이었다. 문제는 그의 연구가 절정에 달했던 때가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0년대였다는 점. 그는 국가 지원이나 연구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개인의 의지와 역량만으로 뛰어난 결과를 냈다. 과학 연구에서 제도와 체제를 중시하며 집단 연구를 장려하던 중국 정부로선 그의 수상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었다고 한다. 풍부한 도판이 이해를 돕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林茂雄(임무웅), 沈相鳳(심상봉), 石岡俊植(석강준식), 海本順玉(해본순옥), 豊原匡雄(풍원광웅)…. 모두 태평양전쟁 당시인 1945년 2, 3월 이오지마(硫黄島) 전투에서 숨진 조선인들의 이름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이들의 사망 사유는 ‘옥쇄(玉碎)’로 기록됐다. 사망 당시 나이는 대부분 20대 초중반이고, 18세도 있었다. 다른 민족의 침략전쟁에 강압과 회유로 끌려가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청년들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80년이 흘렀음에도 고인들은 여전히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붙잡혀 있다. 조선인 군인과 군속은 이오지마에 최소한 200명이 있었는데, 사망한 137명 중 군인 22명은 모두가 나중에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 영(靈)이란 것이 있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생전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미명 그대로 “천황을 위해 기쁘게 죽은” 이들의 일부가 돼 있다는 걸…. 야스쿠니신사 한국인 무단 합사 철회를 요구하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의 소송이 17일 또 최종 기각됐다. 이 신사에 한국인 2만여 명이 합사돼 있다는 걸 알게 된 유족들은 2001, 2007년 일본 법원에 합사 철회 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2013년 유족 27명이 낸 세 번째 소송마저 이날 일본 최고재판소(우리의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한 것이다. 유족들은 “침략전쟁의 정신적 지주, 침략자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내 아버지와 형제를 합사한 것은 우롱과 모욕일 뿐”이라며 합사 철회를 요구했다. “아들마저 일본한테 빼앗겼다고 울부짖던 할머니 모습이 생생합니다. 어째서 제 아버지를 일본을 위해서, ‘천황’을 위해서 죽은 사람으로 취급합니까.”(육군 군속으로 동원돼 팔라우에서 숨진 이낙호 씨 아들 명구 씨) “가족들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사망했다는 것도 알려주지 않고 합사하겠다고 묻지도 않았다니 말이 됩니까. 지금도 식민지 시대입니까.”(해군 군속으로 동원돼 북태평양에서 숨진 동선홍 씨 아들 정남 씨) 일본 법원은 “타자의 신앙 행위에 대해 관용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해 왔다. 역사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관용’을 요구한 것이다. ‘합사 대상자의 이름이 외부에 공표되지 않아 명예가 훼손됐다고 볼 수 없다’고도 했고, 이번엔 ‘국가가 전몰자 명부를 제공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까지 냈다. 핵심을 피해 가면서 유족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소리다. 일본 측은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었다. 앞서 일본 법원은 합사된 조선인들이 ‘일본인으로서 죽었다’는 야스쿠니신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인에겐 유족 원호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 ‘전후 일본 국적을 잃었다’는 이유다. ‘시베리아 포로’ 보상금에서도 한국인과 대만인은 제외했다. 유골 수습 문제도 ‘나 몰라라’ 회피했다. 한국인이 자기들 좋을 때만 일본인이 될 수 있나. 침략전쟁의 중핵이었던 야스쿠니신사에 식민지 출신 사망자를 합사해 놓고 있는 건 일본이 여전히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명예교수는 합사된 이들을 두고 “영령이란 이름의 수인(囚人)”이라고 했다.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이다. 일본이 한 걸음이라도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이들을 야스쿠니라는 감옥에서 풀어줘야 할 것이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중세 유럽의 ‘사치 금지법’은 인간의 욕망을 규칙으로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관료들이 황금 레이스나 벨벳 장식 등의 착용을 금지하면 디자이너들은 이내 더욱 사치스러운 장식을 개발했다. 금지하는 속도가 유행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새로운 규칙은 끊임없이 발표됐다. 1294년 프랑스의 ‘사치 금지 조례’도 부르주아 계층이 흑담비 모피를 입는 것을 금지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례는 오히려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상류층을 흉내 낼 수 있는지에 관한 안내서처럼 쓰였다. 독일 막스 플랑크 과학사 연구소의 명예소장인 미국의 저명 과학사학자가 ‘규칙(rule)’의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측정 및 계산의 도구로서의 규칙(알고리즘), 따라야 할 모델로서의 규칙(패러다임), 사회 통제와 관련된 법률(법) 등 세 가지로 나눠 규칙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규칙’의 ‘규(規)’ 자에 그림쇠(컴퍼스)라는 뜻이 있는 것처럼 규칙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 단어 ‘카논(kanon)’도 길이를 재는 도구인 ‘자’와 관계가 있다. 이 단어는 줄기가 꼿꼿해서 저울대나 막대 자로 쓰였던 식물 ‘물대’를 가리키는 셈족 언어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카논’에선 수학적 정확성, 복제를 위한 모델, 법령 등 세 가지 의미가 파생됐다고 한다. 카논에 해당하는 고대 라틴어 단어 ‘레굴라(regula)’는 “유지하고 지시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영어 단어 ‘ruler’도 ‘자’와 ‘통치자’라는 뜻을 모두 가지게 됐다. 저자는 규칙엔 예외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규칙의 의미와 의의를 고찰하면서 시대를 가로지르며 철학과 과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다룬다. 평범한 독자라면 꽤 어렵게 느낄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부제는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2022년 미 프린스턴대 출판 당시 원제목은 ‘Rules: A Short History of What We Live By’.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선 시대 길몽(吉夢)을 사고판 기록이 공개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순천 박씨 충청공파 문중과 진주 강씨 법전 문중이 기탁한 자료에서 ‘꿈 매매 문서’ 2점을 찾아냈다고 8일 밝혔다. 진흥원이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1814년 2월 대구에 사는 박기상은 청룡과 황룡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꿨고, 다음 달 3일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는 친척 아우 박용혁에게 이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팔았다. 문서(사진)엔 ‘매몽주(買夢主·꿈을 산 사람)’ 박용혁이 급제 후 관직에 오르면 ‘몽주(夢主·꿈 주인)’ 박기상에게 1000냥을 주기로 했다고 적었다. 두 사람이 수결(手決)했고, 친척 2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1840년 2월 경북 봉화에 사는 진주 강씨 집안의 여자 하인 신씨는 청룡과 황룡이 서로 엉켜 있는 꿈을 꾸고는 주인의 친척 동생인 강만에게 청홍백 삼색실을 받고 꿈을 팔았다. 문서엔 몽주인 ‘반비(班婢) 신(辛)’과 증인으로 나선 남편 박충금의 수결이 있다. 정종섭 국학진흥원장은 “길몽을 사고파는 일은 오늘날에도 친숙한 습속”이라며 “일반적으로 구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꿈 매매 문서는 매우 희귀한 자료”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2·3 불법 계엄은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점집을 운영한 것으로 확인돼 더 큰 충격을 줬다. 이전에도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주변의 무속인들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나 공천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권력 주변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최근 무속의 영향력이 이전에 비해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교종교학과 신비주의 전문가인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57)를 2일 만나 한국의 샤머니즘과 종교적 특징에 관해 물었다. 성 교수는 “종교적 직관 역시 이기심을 벗어나 공공성과 공적 이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며 “지성과 윤리를 동반하지 않으면 파멸로 귀결될 뿐”이라고 강조했다.》―최고 권력자와 정치 행위가 무속인의 점사(占辭)와 관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샤머니즘은 굉장히 원초적이고 가장 오래된 종교라고 할 수 있고, 정치와 종교는 과거에도 긴밀하게 결합했던 게 사실이다. 좋고 나쁜 걸 가르는 관건은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있다. 종교든 무속이든 공공의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이기심이나 사적 욕망 충족에 쓰이면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윤 대통령 부부 주변에 무슨 ‘도사’니 ‘법사’, ‘보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그들이 만약 자그마한 직관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지적, 윤리적으로 훌륭했다면 그런 식으로 썼겠나. 종교적 직관이 발달한 사람이 지성과 윤리 영역에서 어긋나 있으면 오히려 더 위험하고 더 빨리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된다. 또한 고위공직자는 평범한 개인과는 요구되는 공공성의 정도가 다르다. 국사(國事)에 무속이 개입됐다는 얘기가 이렇게까지 많이 나온 적이 있나 싶다.”―‘도사’들이 정작 사태가 이렇게 될 것을 몰랐다. 종교에선 미래 예측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기독교, 불교 등) 큰 종교의 교리에도 미래 인류 역사에 대한 예측이 담겨 있긴 하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 전통은 행동과 무관하게 개인의 미래가 결정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 붓다는 ‘너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너의 현재와 과거를 보라’고 했다. 과거의 흐름, 지금 하는 일이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얘기다. 성경에서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것도 같은 뜻이다. 누군가에게 미래에 대한 직관이 있다고 해도, 어렴풋할 뿐 명확하고 완벽한 형태로 보이는 건 아니라고들 한다.”―새해를 맞아 점을 보려는 이들이 꽤 있다.“점 보는 것 자체를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만약 어느 무속인이 ‘무슨 달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고 치자. 언행을 조심하면 되고, 설령 나쁜 일이 닥친다 해도 마음의 준비를 잘하면 자신이 성숙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당이 부적을 사라거나 굿을 하라고 한다? 당연히 피해야 한다. 샤먼도 제대로 된 이들은 끊임없이 수행해서 맑은 사람이 돼야 무업(巫業)을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 사(邪)가 끼어서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누구를 해코지하는 게 목적인 무당은 소위 ‘영빨’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기심이나 개인의 욕심을 위해 혹세무민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오래 가겠나.”―‘내 말만 따르면 된다’는 무당도 있는데….“예수도 십자가 위에서 죽음 직전 회개한 강도는 구원했지만 그러지 않은 강도는 구하지 못했다. 붓다는 누군가가 많은 재물과 음식으로 천도재를 지내며 망자를 좋은 곳으로 보내 달라고 하자 ‘너희는 나무를 가라앉게 하고, 쇠를 뜨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자기의 업(業)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물며 샤먼이 누군가의 삶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큰 종교인들이 항상 강조하는 덕목이 겸손이다. 섭리든 신의 뜻이든 미래든 개인의 삶이든 특정한 누군가가 모두 이해하거나 결정할 순 없다고 말한다.”―샤머니즘과 종교는 무엇으로 구분되나.“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고 인간의 궁극적 삶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 차원과의 통합적 관계에서 나온다고 본다는 점에서 종교는 샤머니즘과 연속성이 있다. 하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서 점집에 가지,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서 가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 종교는 종교적 직관으로 알게 된 존재를 지성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며, 그 통찰을 가지고 타인과 어떻게 함께 살지를 윤리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샤머니즘과 큰 차이가 있다.”―종교 신비주의와는 통하는 구석이 있지 않나.“의식이 변형된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차원의 직접 체험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선 상통한다. 하지만 샤먼이 거기서 그치는 데 비해 신비주의는 존재의 근본적, 궁극적 원천 혹은 실재와 하나가 돼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얻으려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런 차원의 샤머니즘은 아메리카 원주민 정도를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요즘 한국에서 샤머니즘이 전보다 더 확산했다는 의견도 있다.“원래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세계 종교가 강한 나라에선 샤먼이 사라진다. 세계 종교가 센데 무속도 강한 한국은 굉장히 특이한 사례다. 한데 최근 제도화된 종교가 약화했다. 점술가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은 십수 년 전이라면 종교인들의 항의에 지상파에서 방영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무속이 개인의 삶에 직접 다가가면서 과거 종교가 해주던 역할을 일부 대신해주고 있다. 젊은층의 실용주의적 태도도 한 원인이다. 젊을수록 무종교인이 많은데, 이들은 샤머니즘을 전통적 종교의 세계관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또 샤먼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제도적 종교가 따라가지 못하는 방식으로 기동성 있게 사람들 사이로 파고드는 것도 한 이유다.”―한국인 중 무종교인이 60%에 이른다는데….“그렇다고 그 60%가 모두 유물론자냐면 또 그렇지 않다. 무종교인 가운데 8, 9할은 종교인은 아니어도 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본다. 기존엔 종교성이 제도화되고 조직화된 종교를 통해서만 구현됐지만 20세기 들어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진 않다’는 이들이 생겨났다. 특정 종교에 소속된 신도는 아니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차원을 인식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이들이다.”―종교와 영성이 꼭 같지는 않다는 뜻인가.“우리나라도 불자는 주는데, 템플스테이하는 사람은 늘지 않나. 가톨릭 성지인 산티아고 길을 순례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천주교인이 아니다. 명상이 기존 종교의 맥락을 벗어나 확산하는 것도 요즘 시대의 특징이다.”―미래엔 과학의 발전과 함께 종교의 영역이 더 축소되지 않을까.“인공지능(AI)이 사람의 역할 중 많은 것을 대체한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은 유물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와 마음의 깊은 차원들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데 더욱 집중하지 않을까. 과거엔 소수의 사람만 종교적 수행이 가능했다면 미래엔 누구나 영성을 추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종교 간의 벽도 오늘날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한국인의 종교적 특징은….“인간이 수행 등을 통해 깨달음 같은 비범한 종교적 체험을 하고 존재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굉장히 널리 받아들인다. 이런 경향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이다. 일부 종교에선 궁극적 실재와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위험한 주장이다.”―더 설명한다면….“한국인은 신기(神氣)가 강하다. 굿판이 벌어지면 참여자들이 집단적 엑스터시 상태에 이른다. 교회의 부흥회도 흑인과 한국인이 가장 열정적이라고 하지 않나.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음주가무’ 기록에서부터 오늘날 BTS까지, 신명 나게 노는 것도 너무 잘한다. 신기만으론 문화를 발전시키기가 어려운데 문기(文氣)도 강하다. 한쪽이 세면 한쪽이 약하게 마련인데 우리는 둘 다 세다. 팔만대장경을 만들었고, 유교 이념으로 조선 500년을 운영했다. 중국에서도 그렇게 세게 못 했다. 단군 신화부터가 천손이 강림해서 정치와 종교의 이상,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를 실행하려고 한 것 아닌가.”―그래서 갖게 된 정신적 특성이 있다면….“신기와 문기는 모두 현실의 삶과 맥락을 넘어서는 걸 지향한다. 지상의 질서를 벗어나 이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한국인만큼 개인과 공동체에 대해 높은 이상을 가진 이들도 드물다. 그래서 타협이 잘 안 되고, 갈등도 심하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큰 탓에 굉장히 고통스럽다는 뜻이기도 하다.”―작금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나.“개인의 삶도 사건이 일어난 당시엔 모르지만 나이를 먹은 뒤 더 큰 의미의 틀에서 통합이 된다. 우리 현대사가 식민지배를 겪고 외부에서 들어온 이데올로기와 관념 체계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면서 분단까지 됐지만 나라가 망하진 않았다. 이번 계엄도 결국 실패했다. 억압돼 있던 트라우마가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 내부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분출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이라는 게 죽지만 않으면 인간을 성숙시키잖나. 한국이 온갖 갈등을 넘어 스스로의 세계사적 내러티브를 긍정적으로 완성할 것이라고 본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똥’은 본능적 혐오의 대상이다. 저자는 음성 파일을 텍스트로 바꾸는 인공지능 알고리즘마저도 ‘똥’과 같은 단어를 걸러낸다는 걸 깨닫는다. 유아도 똥은 싫어한다. 생후 2년 6개월만 돼도 음식을 두고 옆에서 ‘개똥’이라고 부르면 안 먹으려고 한다. 그런 똥이 ‘뜻밖의 보물’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미국은 똥의 22%를 땅에 매립한다. 매립지에선 빗물이 스며들면서 고농도 유기화합물이 침출돼 주변의 토양과 물을 오염시킨다. 사람의 장(臟) 속에서 방귀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가스를 방출하기도 한다. 2019년 미국에서 인간과 관련된 모든 메탄가스 배출량의 15%가 고형폐기물 매립지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나오는 가스는 대강 태워 없애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포집해 정제하면 에너지로 쓸 수 있다. 요리와 산업, 운송용 연료로 쓰면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도 있다. 남은 분뇨 슬러지 역시 ‘바이오숯’이란 연료로 바꾸면 삼림 벌채를 늦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똥엔 영양분이 많다.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 본사를 둔 한 회사는 주민들의 똥을 수거해 활용한다. 배설물을 음식물 쓰레기와 혼합해 사료용 곤충인 ‘아메리카동애등에’ 유충에게 먹여 키우는 것이다. 이 유충은 몸무게의 40% 이상이 단백질이어서 동물 사료 보충제의 좋은 원료가 된다. 또한 물고기 먹이로도 쓸 수 있다. 최근엔 공공연히 인분을 처리해 퇴비로 쓰는 미국 도시가 늘고 있는데, 과거 똥거름을 썼던 한국에선 ‘오래된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의학 치료 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똥을 장에 주입하기도 한다. ‘대변 미생물총이식’(FMT)이라고 부르는데, 항생제 치료가 어려운 특정 박테리아 감염을 치료하고자 장에 이로운 박테리아를 똥으로 직접 이식하는 방식이다. 요즘엔 삼중 코팅된 알약을 삼키면 된다고 한다. 이 밖에도 생태계 순환에서 똥의 역할, 똥에 대한 혐오감의 역사·문화적 배경, 건강의 지표와 질병 추적의 도구로서 똥의 가치 등을 책은 소개한다. 저자는 “지구를 지배하는 거대 동물로서 인간은 자연의 순환과 일치하는 가치의 순환을 복원할 책임이 있다”며 “똥은 그런 변화의 시작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미국 문화는 너무 오래 탁월함보다 평범함을 중시해 왔다. …수학 올림피아드 챔피언보다 졸업 파티 여왕을, 졸업생 대표보다 운동 선수를 더 대단하게 보는 문화에선 최고의 엔지니어가 탄생하지 못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미국 정부효율부 수장에 지명된 기업가 출신의 비벡 라마스와미가 27일 미국의 인재 육성 문화를 비판했다. 그는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대부분의 미국 부모는 (수학 과학 공부를 많이 시키는) 이민자 부모를 부정적으로 보고, 평범한 미국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을 비웃는다”며 “(이런 식이면) 우리는 중국에 엉덩이를 걷어차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일론 머스크 역시 미국 기업이 외국인 엔지니어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에는 재능이 매우 뛰어나면서 동시에 의욕이 넘치는 엔지니어가 너무 적다”고 X에 썼다. “그들(미국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미국에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 정도라니, 최근 글로벌 기술 패권 다툼 속 인재 확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새삼 느껴진다. ▷두 사람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인공지능(AI) 수석정책고문으로 지명된 인도계 IT 전문가 스리람 크리슈난을 지원 사격하는 차원에서 해당 글을 썼다. 크리슈난은 앞서 해외 고급 두뇌들에겐 제한 없이 미국 영주권을 발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두고 극우 활동가 로라 루머가 “미국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고급 인력 도입 문제를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기존 지지층과 머스크 등 빅테크 인사가 충돌한 모양새다. ▷미국은 경제에 이민자와 외국인의 기여가 어마어마하다. 1990∼2010년 미국 총생산성 향상의 30∼50%는 외국에서 온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근로자의 덕으로 설명된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정책재단(NFAP)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상위 AI 기업 43곳 가운데 28곳이 이민자가 공동 설립한 회사이고, AI 관련 대학원생의 70%가 유학생이다. 프로그래머 등 전문직 취업 비자(H1B)로 외국인을 가장 많이 채용하는 회사는 아마존이고, 구글 메타 애플 IBM 등이 모두 상위 10위 안에 든다. ▷트럼프 진영 내 알력보단 우리 실정이 걱정이다. 수학 올림피아드 챔피언보다 ‘의대 합격’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판국이니 부족한 STEM 인재를 해외에서라도 모셔와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 취업자가 100만 명이 넘어도 고급 인력의 비중은 미미한 게 사실이다. 한국을 글로벌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기 전 H1B 비자로 지내다가 세계 1위 기업을 만든 머스크 같은 사례가 우리에겐 불가능하다고 미리 한계를 지을 이유가 없다.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3일 밤 국회에 무장 군인이 들이닥치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적지 않은 국민들이 불안에 시달렸다. 반헌법적 비상계엄이 준비되고 실행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분노도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받은 충격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과거의 것이 된 줄로만 알았던 ‘내란’이나 ‘대통령 탄핵’ 같은 단어를 우리 사회가 다시금 마주하는 데엔 무의식적 배경이 있지 않을까. 국제정신분석협회가 인증한 국내 최초의 정신분석가 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73)를 19일 만났다. 정 교수는 “분노를 추스르고 이번 사태를 우리 사회가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국민의 충격이 컸습니다. ‘계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저는 3일 밤 일찍 자고 다음 날 일어나니 계엄이 일어나고 해제까지 돼 있더군요. 국민이 균일한 집단이 아니니 받아들이는 것도 달랐을 겁니다. 앞선 험난한 세월을 겪은 세대는 충격보다는 ‘안타깝다, 어리석다’는 기분이 더 크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던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더 놀랐을 것이라고 봅니다.” ―‘탄핵 촉구’ 집회에선 케이팝이 불리고 응원봉이 등장했습니다. “일상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이번 사태를 만나 적지 않은 이들이 불안과 분노를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집회 현장을 콘서트장 같은 축제로 만들어 놀이의 형식으로 승화시키며 현명하게 충격을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위기를 대처하는 역량과 우리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를 확인하게 됩니다. 만약 그 분노의 에너지가 미국이나 프랑스의 시위처럼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어졌다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정신적 외상의 양이 늘어나게 됐을 겁니다. 집회를 보며 저는 우리 전통문화, ‘탈춤의 해학’을 떠올렸습니다. ‘놀이’는 정신분석에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놀 줄 모르는 사람은 변화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 긴장이 지속되면 국민의 정신건강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우울, 불면 같은 증상이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급성보다 만성 스트레스가 건강에 훨씬 더 해롭습니다. 정치인들이 빨리 해결을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긴장 상태를 증폭하고 만성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피분석자로 경험한 바가 없으니 대단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정신분석 이론으로 일반적인 해석을 한다면, 특정 직역에서 오래 일했던 경험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지난 직역(검사)에서 굳어진 판단, 행동 방식과 세상을 읽어내는 패턴이 직역과 역할이 (대통령으로) 달라진 후에도 그대로 옮겨와서 표현됐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는 있겠습니다. 이를 정신분석에서는 ‘전이(轉移) 현상’이라고 하며 정신분석이 아닌 인간관계, 사회 현상에서도 흔히 일어납니다. ‘위반자는 처단한다’는 계엄 포고령도 그런 맥락으로 읽힙니다.” ―그래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되는 면이 있습니다. “공격성은 정신분석에서 다루는 심리 현상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정신의 역동(力動)으로 살펴보면 자살과 타살은 공격성의 관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봅니다. 적을 공격하다가 그 공격성이 방향을 바꿔서 자신을 향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파괴적 행위를 하게 됩니다. 무기를 던졌는데 다른 사람을 죽이면 타살이고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기가 맞으면 자살이 되는 거지요. 딱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은 정치 갈등이 유난히 거센 것 같습니다. “냉소적으로 들릴 수는 있겠으나 정치인에 대한 기대가 지나친 측면도 있습니다. 영국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컷(1896∼1971)은 좋은 어머니는 완벽한 어머니가 아니라 ‘대충 괜찮은 어머니(good-enough mother)’라고 했습니다. 국민과 정치 지도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인데, 현실에선 불가능한 완벽한 지도자를 꿈꾸면 낙망(落望)과 좌절을 너무 일찍, 너무 세게 느끼게 됩니다. ‘완벽한 지도자’는 환상일 뿐입니다. 심리적 거리를 적절하게 지키면서 객관적으로 ‘대충 괜찮은 지도자’를 양성하고 선택하려 하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과 행동이 될 것입니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지도자를 너무 이상화(理想化)하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어릴 적엔 ‘우리 부모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자라면서 결점도 알게 되고 탈(脫)이상화를 하는 게 정상적인 성장 과정입니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자신의 부모를 완벽하다고 이상화한다면 오히려 부모-자식 사이에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자신이 따르는 정치 지도자가 명백한 잘못을 해서 법과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는데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된다면 안타깝고 고통스러워도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 양극단에서 감정적 반응과 공격이 격렬한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학의 개념으로 풀어보면 갓난아기의 마음에는 배고플 때 즉시 젖을 주는 ‘좋은 엄마’가 있고, 돌봐주지 않는 ‘나쁜 엄마’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기가 자라면서 따로 생각하던 두 사람의 엄마를 한 사람으로, ‘아, 한 엄마 속에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가 같이 있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통합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아기는 어른이 돼도 세상을 흑(黑)과 백(白)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따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사람들을 ‘아군 아니면 적’으로 나누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지지하는 지도자의 흠결은 못 보게 됩니다. 정신분석학에선 이러한 심리 기제를 ‘분열(splitting)’이라고 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고 봅니다.” ―중간지대가 넓어야 좋다는 뜻인가요. “돌아가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대한민국엔 회색분자가 많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회색조차도 짙고 묽은 정도가 수없이 다양한데,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회색 자체를 용납하지 않으니 싸울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됩니다. 선명하지 않으면 잘못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비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마치 ‘흑백논리’가 선명하고 최선인 것처럼 최면을 걸어도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그 함정에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탓일까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엄청나게 짧은 시간 안에 이뤘지만 심리적 측면에선 왕조시대의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 사회로 넘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사는 집에는 담장과 대문,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면서도 마음의 경계 침범은 쉽게 허용합니다. 그러니 ‘가짜 뉴스’나 선동에 휩쓸립니다.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흑백논리에 휩쓸리면 우리가 지금껏 힘들여 쌓아 온 것들이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국방, 경제, 의료가 이미 무너지고 있잖습니까.” ―계엄군으로 투입된 이들도 정신적 외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군인은 명령을 따르도록 훈련된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소극적으로 움직이면서 계엄의 실패를 유도한 이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외부의 비난이 있다면 멈춰야 합니다. 정신적 문제가 나타나는 이들에겐 국가가 전문적인 치료를 제대로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 문제를 풀기 위한 장기적 해법이 있다면…. “문해력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문해력이 작가에게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자신의 세상을 읽고 쓰는 능력’은 모두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현상을 두고 극단적으로 분열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건 읽기가 제대로 안 되는 탓입니다. 또 상대방의 단점만 읽을 뿐 장점을 읽어내지 못하니까 합리적 통합 방안을 제안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집니다.” ―이번 사태를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단주의에 물들어 ‘투사’(投射·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적인 생각 등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면서 ‘네 탓이다’, ‘누구누구 물러가라’만 외쳐선 우리가 진일보하기 어렵습니다. 양복 입은 정당인, 정치인들도 도포 입은 조선시대 당파들과 무엇으로 차별화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합니다. 이번 사태를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가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상대를 억압하고 공격하기보다는 공동체 개념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기 성찰을 하는 이들이 늘어야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고, 차세대 지도자도 그런 이들 사이에서 나와야 할 겁니다.” 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정신분석가△1976년 서울대 의과대학 졸△1985∼2017년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1999∼2003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2004년∼ 국제정신분석협회 정회원△2009년∼ 미국정신분석협회 정회원△2009∼2017년국제정신분석협회 한국스터디그룹 창립회장△2021년 현대정신분석아카데미 공동 창립△저서: ‘프로이트의 의자’(2009년) 등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한국 현대 정치사 연구의 권위자이며 방대한 사료를 치밀하게 검토하는 학자로 정평이 나 있는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63)가 자신의 30년 연구를 응축한 책 ‘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사 연구 1∼6’(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을 최근 완간했다. 1∼3권의 부제는 ‘박정희 제거 공작 편’, 4∼6권은 ‘전두환 제거 구상 편’이다.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난 이 교수는 “‘독재의 옹호자’나 ‘선한 후원자’라는 미국의 표상은 모두 한쪽에 치우친 허상에 불과하다”며 “미국은 어떨 때는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이라는 이상을, 또 다른 때는 안보 유지라고 하는 현실을 중시하는 다면적 국가”라고 했다. 이 교수 인터뷰는 3일 낮 진행됐고, 최근 일어난 반헌법적 비상계엄 사태에 관해 5일 추가로 일부 관련 질문을 했다.》―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4일 이번 계엄 사태를 두고 “매우 문제 있고 위법한 행동으로 예측할 수 없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심하게 오판한 것 같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미국 측이 계엄 시도를 미리 알았다면 윤 대통령을 말렸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미국 백악관은 “윤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는 한국 국회의 표결을 존중한 것에 대해 안도한다”, “민주주의는 한미 동맹의 근간”이라고 했다. “미국이 1980년대식의 헌정 유린을 반기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재임 1977년 1월∼1981년 1월) 당시에도 미국은 동맹국 지도자의 반헌법적 조치로 안정이 손상될 것 같으면 지도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교체를 고려했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도 친위 쿠데타를 계획했다고 책에서 밝혔다. “1986년 11월 직선제 개헌 요구가 거세지자 전두환이 장세동 안기부장에게 특명을 내려 계엄령을 준비했다. 11월 8일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한 뒤 밤 12시를 기해 국회 해산과 동시에 계엄을 선포할 계획이었다. 한데 11월 6∼8일 개스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방한해 전두환과 야당 지도자들을 만난다. 시거 차관보는 ‘한국군이 병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간 정권이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미국이 친위 쿠데타를 막은 정황이 짙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국면에서 미국의 역할은…. “그해 2월 시거 차관보는 공개 연설에서 군부 지배를 문민화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전두환에게 7년 단임제 공약 실천을 압박하는 한편 개헌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다음 달 방한한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군부정권 연장에 반대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한국 국민의 저항에 직면하자 바로 정책을 뒤집었다. 군부독재를 지지하다간 반미주의가 확산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정부에 민주화를 요구하고 군부의 개입을 강력히 반대했다.” ―미국은 전두환 정권을 비교적 일관되게 지지했다는 것이 통념인데…. “미국은 1979년 12·12사태의 주모자인 전두환 소장을 경원시했고, 신군부의 등장을 막으려 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전두환의 예편을 요구했다. 1980년 초 신군부에 대항하는 역(逆)쿠데타 지원을 검토하고, 나아가 전두환을 암살하려고 했던 정황도 있다. 그러다 군(軍) 내 지지가 탄탄한 전두환을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방침을 바꾼 것이다. 전두환은 김대중 사면과 맞바꿔 5공화국 출범 승인을 얻어냈는데, 만약 김대중을 죽였다면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을 것이다. 미국의 전두환 제거 구상은 1987년 6·29선언을 통해 우회적으로 달성됐다고 본다.” ―오랫동안 미국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의 배후로 지목됐다. “신군부의 병력 이동을 묵인한 책임이 있는 건 맞다. 항쟁의 마지막 국면에서 당시 시민군 지도자 윤상원이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윤상원의 조정 능력을 믿지 못한 대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대사는 미국이 한국인을 대신해 전두환을 막을 순 없다고 봤는데, 만약 중재 요청이 카터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여지가 있다고 본다.” ―1979년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살해에도 미국의 힘이 작용했나. “미국이 배후에서 김재규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10·26사태 한 달 전 글라이스틴 대사가 김재규를 만나 ‘정권 교체’를 논했다. 신호를 보낸 거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미국은 자신들의 행동과 말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박 전 대통령의 몰락에 일조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썼다. 미국 측 핵심 인사가 남길 수 있는 최대한의 고백이다.” ―미국이 박정희 정권을 몰락시키려고 한 까닭은…. “부마항쟁이 한 계기가 됐다. 미국은 민중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북한의 남침을 불러일으킨다고 봤다. 한국이 공산주의에 넘어가면 일본이 위태롭고, 다음으로 하와이와 캘리포니아가 위태롭고, 워싱턴까지 도미노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4·19나 6월 민주항쟁 당시에도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민중의 편에 서서 민주화로 나아가도록 물꼬를 텄다. 미국의 대한 정책의 첫 번째 목표는 한국의 공산화를 막는 것이었지만 그런 면에서 한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후원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내부의 동력 덕이 아닌가. “그렇다. 힘의 원천은 한국민이다. 미국이 민주주의 편에 서지 않았다고 해도 지체됐을 뿐 민주화는 이뤄졌을 것이다. 다만 미국은 영향력을 행사해 배후에서 민주화를 앞당기는 한편 혁명적 열기가 온건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향해 흐르도록 만들었다.” ―미국이 직접적 개입보다 은밀한 개입을 선호한 까닭은…. “노골적으로 개입했다가 민중들이 반미로 돌아서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카터 대통령이 우려했던 것도 한국이 ‘제2의 이란’이 되는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정치에 개입했나. “미국은 김영삼 대통령의 민족주의적 지향이 불편했다.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전 미국이 한국에 불과 몇억 달러를 지원해 돕지 않은 건 한국의 정권 교체를 유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 뒤에도 역대 정권 교체 국면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엔 미국의 힘과 개입 정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되지 않았나. “미국의 절대적인 힘은 변화가 없는데, 한국의 힘이 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상하 관계에 가까웠던 동맹이 상호 의존 관계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힘이 약해지면 상대적으로 주변국의 힘이 다시 강해지고, 19세기 말처럼 친중 친러 친일 등으로 분열하는 상황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앞으로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38선을 그으며 소련과 함께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 북한 남침을 후원한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 6·25전쟁 당시 멸망하던 북한을 구해준 중국, (한반도를 강점했던) 일본 등 분단을 만든 배후의 4강이 분단 체제 극복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미국과 중국이 ‘결자해지’해야 하는데 상호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평화 공존을 통해 장기적으로 통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한국이 미중과 남북미를 중재할 수 있는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 ―미국이 38선을 긋지 않았다면? “한반도가 통째로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되거나 폴란드처럼 위성국가가 됐다가 1991년에야 독립 또는 체제 전환을 했을 것이다. 해방 뒤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게 최선이었겠지만 차선으로 반쪽에서라도 미국식 체제를 수립해 북한 같은 나라가 안 되게 만든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공헌이다.” ―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구하게 됐나. “정치외교학과 79학번인데 감옥에 간 변혁주의자 친구들에게 책임감을 느꼈고, 1984년에 대학원에 들어갔다. 사회주의 체제를 대안으로 봤던 1980년대 현대사 연구는 미국을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과 반미주의가 팽배했다. 우리 현대사가 민족해방(NL)파 친화적인 주제다. 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와 사회주의권 몰락을 계기로 미국을 현실 그대로 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연구하며 입장이 바뀐 건가. “자주파에 공명하는 편이었는데, 현실을 보면 동맹파에서 배울 점이 있었다. 지금은 자주와 동맹의 대립을 지양하자는 주의다. 용미(用美)랄까. 미국의 정치 개입사를 밝혀 앞으로 우리 국익을 잘 챙기기 위한 교훈을 얻자는 목적으로 책을 썼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진보 진영 일각에선 광주를 유혈 진압한 신군부의 편에서 민중이 피를 흘리게 만든 존재로 본다. 보수 일각에선 6·25전쟁에서 한국을 구하고 경제 성장을 도운 은인으로 본다. 하지만 미국은 마냥 선한 제국도 그렇다고 악당도 아니다. 국면에 따라 자국의 안보만 우선하기도 했지만 한국이 북한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되면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도 했다. 공산화 방지라는 현실적 목표를 위해 민주 인권 자유를 국면마다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유동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독재의 편이냐, 민주의 편이냐 하는 단선적 질문은 지양돼야 한다. 선악이 다 있는 야누스 같은 존재이고, 변화무쌍한 나라이므로 다이내믹하고 다층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학생들에게 수업 중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허용했더니 수업 시간의 최대 40%까지 딴짓을 하더라.”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 의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다양한 기관의 통계와 연구 결과를 종합 분석해 내놓은 ‘전국 학교 디지털화 전략 의견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노트북을 켠 학생은 켜지 않은 학생보다 수업 내용 질문에 대한 정답률도 30%가 낮았다. 디지털 도구가 주의력을 산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수학과 독해 부문에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이 낮은 경향도 발견됐다. ▷의견서의 분석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컴퓨터로 필기하는 학생들은 종이와 펜을 사용하는 학생들보다 성적이 더 나빴다. 또 학생들에게 디지털 기기로 필요한 지식을 검색하도록 하면 깊이 있는 지식을 얻기보다 대강의 얕은 지식만 얻게 될 소지가 크다고 한다. 학생들이 콘텐츠를 종이가 아니라 화면으로 읽으면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다. 흥미 위주로 대강 줄거리만 파악하면 되는 웹 소설과 달리,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한강 작가의 작품이 디지털 기기론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내년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수학 영어 정보 수업에 전면 도입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이후 단계적으로 이를 다른 학년과 과목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AI 교과서는 콘텐츠가 다양하고 기초, 심화 등 학생별 맞춤형 학습을 지원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집에서도 쇼트폼 콘텐츠 등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가 학교 수업마저 디지털 기기로 받으면 의존이 더 심각해질까 봐서다. 디지털 기기의 역사가 짧아 뇌와 어린이 청소년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우리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 쓰는 곳은 독일과 미국의 일부 주(州) 등 소수다. 교실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의무화했던 핀란드는 유턴해 다시 종이책을 사용하고 있다. 문해력 저하 등 부작용이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도입이 불과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도 AI 교과서 완성본이 공개되지 않은 점도 걱정을 키운다. 실물이 없으니 어떻게 가르칠지 아직도 감이 안 잡힌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구독료 등으로 2028년까지 4년 동안 2조∼7조 원의 적지 않은 예산이 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교육부는 약 3년 동안은 기존의 서책형 교과서와 병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작용이 어른거리고 준비도 부족해 보이는 정책을 쫓기듯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