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원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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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재원 기자입니다.

jawon1212@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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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23%
우주/천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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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3%
인물/CEO3%
  • 코로나 변이 얕봤나… “추적 감시 연구 소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다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재확산 원인인 변이 추적과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데이나 크로퍼드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의대 유전체과학과 교수는 “백신 접종과 국가별 방역수칙이라는 변수가 더 많은 변이를 등장하게 하고 있다”며 “변이에 대한 분석 부족으로 글로벌 코로나19 대응이 위기에 빠지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14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플로스 제네틱스’에 공개했다. 크로퍼드 교수는 미 국립보건원(NIH) 유전학 분야 수석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미국 인류유전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유전체 분석 전문가다.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14일 세계 하루 확진자는 55만4510명이다. 4월 29일 90만3036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지난달 말까지 감소해 한때 20만 명대까지 내려갔다가 이달 들어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감소세로 접어들었다가 잠잠해질 만하면 새로운 변이가 등장해 확산세가 커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에서 유행한 알파 변이, 국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인도 유래 델타 변이에 이어 최근에는 남미에서 유행 중인 람다 변이까지 변이가 글로벌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변이는 유전체 전장 분석을 통해 발견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파력이나 치명률이 높은, 혹은 백신을 무력화하는 위협적인 변이가 인간의 감시를 피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RNA 바이러스는 복제할 때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DNA 바이러스와 달리 복제 과정에서 생긴 오류를 수정하는 기전이 없다. 필연적으로 복제 때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 30킬로베이스(kb)로 염기 3만 개가 연결돼 있어 한 번 복제할 때마다 평균 3번꼴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분석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변이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14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 누적 확진자가 1억8876만 명을 넘었는데도 감염병 바이러스 게놈 데이터 공유 프로젝트인 ‘국제인플루엔자데이터공유이니셔티브(GISAID)’에 보고된 유전체 전장 분석 건수는 225만3612건에 머물고 있다. 전체 확진자 가운데 약 1%에 대해서만 분석이 이뤄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변이로 인한 인류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시급히 분석 건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크로퍼드 교수도 이번 서신에서 “코로나19를 포함해 현재 글로벌 감염병 대응 방식은 확진자 숫자와 입원율, 치명률을 따지는 데만 초점을 맞춰 왔다”며 “이제는 대응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크로퍼드 교수는 변이 분석을 통해 전파력과 질병 중증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내 팬데믹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가 새로운 전염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변이 발생의 방향과 진화 과정을 실시간으로 이해하는 게 팬데믹 대응에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매일 끊임없이 진화하는 변이를 추적할 기반 기술은 이미 충분히 마련돼 있다.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은 30억 쌍인데 현재 기술로 이를 모두 분석하는 데 하루 정도 걸린다. 동시에 최대 50만 명까지도 함께 분석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염기는 3만 개에 머문다. 하지만 GISAID에 보고된 변이분석 건수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미국의 경우 확진자 대비 변이 분석 비율이 1.87%에 불과하다. 기술은 충분한데도 변이 분석을 등한시해 왔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크로퍼드 교수는 부족한 자금 지원과 변이 샘플 수집 문제, 데이터 공유를 둘러싼 경직된 규정 등을 이유로 들었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분석률을 높이는 것은 변이 특성을 파악해 그에 맞는 방역정책을 펼치는 것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정부도 “지난달 국내 바이러스 게놈 분석률이 18.3%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5∼10% 수준을 상회한다”며 “앞으로 20% 정도의 분석률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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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신 무력화’ 변이 계속 등장할 수도…“‘이것’ 부족 때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다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재확산 원인인 변이 추적과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나 크로포드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의대 유전체과학과 교수는 “백신 접종과 국가별 방역수칙이라는 변수가 더 많은 변이를 등장하게 하고 있다”며 “변이에 대한 분석부족으로 글로벌 코로나19 대응이 위기에 빠지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14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플로스 제네틱스’에 공개했다. 크로포드 교수는 미 국립보건원(NIH) 유전학 분야 수석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미국 인류유전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유전체 분석 전문가다.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14일 세계 하루 확진자는 55만4510명이다. 4월 29일 90만3036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지난달 말까지 감소해 한때 20만 명대까지 내려갔다가 이달 들어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감소세로 접어들었다가 잠잠해질만 하면 새로운 변이가 등장해 확산세가 커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에서 유행한 알파 변이, 국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인도 유래 델타 변이에 이어 최근에는 남미에서 유행 중인 람다 변이까지 변이가 글로벌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변이는 유전체 전장 분석을 통해 발견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파력이나 치명률이 높은, 혹은 백신을 무력화하는 위협적인 변이가 인간의 감시를 피해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RNA 바이러스는 복제할 때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DNA 바이러스와 달리 복제과정에서 생긴 오류를 수정하는 기전이 없다. 필연적으로 복제 때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 30킬로베이스(kb)로 염기 3만 개가 연결돼 있어 한 번 복제할 때마다 평균 3번꼴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분석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변이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14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 누적 확진자가 1억8876만 명을 넘었는데도 감염병 바이러스 게놈 데이터 공유 프로젝트인 ‘국제인플루엔자데이터공유이니셔티브(GISAID)’에 보고된 유전체 전장 분석 건수는 225만3612건에 머물고 있다. 전체 확진자 가운데 약 1%에 대해서만 분석만 이뤄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변이로 인한 인류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시급히 분석건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크로포드 교수도 이번 서신에서 “코로나19를 포함해 현재 글로벌 감염병 대응 방식은 확진자 숫자와 입원률, 치명률을 따지는 데만 초점을 맞춰왔다”며 “이제는 대응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크로포드 교수는 변이 분석을 통해 전파력과 질병 중증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알아내 팬데믹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가 새로운 전염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변이 발생의 방향과 진화과정을 실시간으로 이해하는 게 팬데믹 대응에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매일 끊임없이 진화하는 변이를 추적할 기반 기술은 이미 충분이 마련돼 있다.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은 30억쌍인데 현재 기술로 이를 모두 분석하는데 하루 정도 걸린다. 동시에 최대 50만 명까지도 함께 분석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염기는 3만 개 머문다. 하지만 GISAID에 보고된 변이분석 건수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미국의 경우 확진자 대비 변이 분석 비율이 1.87%에 불과하다. 기술은 충분한데도 갖추고도 변이 분석을 등한시해왔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크로포드 교수는 부족한 자금 지원과 변이 샘플 수집 문제, 데이터 공유를 둘러싼 경직된 규정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나마 유럽연합(EU)이 2월 ‘헤라 이큐베이터’라는 변이 연구 프로그램을 착수하는 등 최근 들어 변이 추적이 시작된 상태다.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최우선 과제로 변이 감시를 꼽으며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관련 예산 2억 달러(약2300억 원)을 배정했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분석률을 높이는 것은 변이 특성을 파악해 그에 맞는 방역정책을 펼치는 것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정부도 “지난달 국내 바이러스 게놈 분석률이 18.3%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5~10% 수준을 상회한다”며 “앞으로 20% 정도의 분석률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크로포드 교수는 이메일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는 거주 국가 상관없이 계속 돌아다니며 변이를 일으키고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전 세계적 감시가 필요하다”며 “한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게놈 감시에서 계속해서 우수한 결과를 공유해 왔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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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 용의자의 알리바이, 사실일까?… “소지품에 묻은 흙은 알고 있다”

    2007년 11월 호주 남부 도시 애들레이드에 사는 10세 여자 어린이가 납치된 뒤 성폭행을 당하는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집에서 훔친 신용카드를 사용한 28세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남성이 훔친 카드를 사용했다는 사실 외에 성범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하면서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호주 과학수사대(CSI)는 용의자 신발에 묻은 흙에서 단서를 찾았다. 수사팀은 여러 차례 피해자 집 주변을 샅샅이 훑어 토양 샘플을 채취해 용의자 신발에 남은 흙과 같은 성분의 흙을 찾는 데 성공했다. 이는 용의자와 피해자의 직접 접촉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로 채택됐고 용의자는 2009년 7월 미성년 성폭행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았다. 흙에서 범죄 흔적을 찾아내는 ‘토양 포렌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달 6일 열린 지구화학 분야 세계 최대 학회인 ‘골드슈미트 콘퍼런스’에서는 이보다 한 단계 발전한 토양 포렌식 방법이 공개됐다. 사건 현장을 찾아가 토양을 채취하던 방식에서 더 나아가 사전에 지역별 토양 특성을 지도와 함께 저장했다가 사건이 발생하면 신발, 옷, 차량에서 채취한 샘플과 비교해 용의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진일보한 방식이다.○ 범인의 옷에 범죄 현장 위치 정보 남아 패트리스 드 카리타 호주 캔버라대 국립법의학연구센터 교수는 8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많은 국가가 광물 탐사와 토지 이용 의사 결정을 목적으로 토양 데이터베이스를 이미 구축해 놓고 있다”며 “데이터베이스와 범인 신발에 묻은 흙만 대조해도 충분히 기소가 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문이나 DNA는 과학수사에서 범인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도 용의자의 신원을 알아내기 어려운 사례가 실제 현장에서 종종 일어난다. 예를 들어 머리카락 한 올만 남아 있어도 용의자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모근이 남아있지 않으면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다. 토양 포렌식은 이를 보완할 방법 중 하나로 2000년대 초 과학수사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토양에는 흙과 돌 외에도 동물과 식물에서 나온 유기물이 섞여 있다. 유기물과 무기물 종류는 수없이 많아 토양 성분도 사실상 무한한 조합을 이룬다. 불과 1m 떨어진 토양의 성분이 서로 다를 정도다. 벽돌과 유리조각처럼 인간이 만든 다양한 인공 물질들까지 토양에 섞이면서 위치에 따라 성분 차이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토양의 이런 특성은 신발, 옷 같은 개인 소지품이나 차량 외부 및 바퀴에 묻은 흙만 확인해도 범인이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알아낼 수 있게 했다. 범인이 자신의 알리바이를 거짓으로 진술했는지 판별이 가능해진 것이다.○ 수사 대상 지역 좁히는 데 도움 특히 입자가 작은 진흙이나 모래는 쉽게 옷과 신발에 달라붙지만 눈에는 잘 안 띈다. 범인이 범행 직후 혈흔처럼 잘 띄는 흔적을 지울 수는 있지만 옷에 묻은 토양을 완벽히 제거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법과학자들은 푸리에변환적외선분석기(FTIR)라는 장치로 옷이나 신발에 파고든 토양을 찾고 있다. 시료에 백색 빛을 쬐인 뒤 반사되는 전체 파장을 이용해 물질의 화학적 구성을 분석하는 장치다. X선 형광분광기도 활용되고 있다. 시료 표면에 엑스선을 쬐여 여기서 나온 형광 X선 색깔로 성분을 알아내는 장비다. 토양 시료가 흰색이나 회색빛을 띠면 석회 성분을 포함하고 검은색이나 회색빛을 띠면 각각 유기물과 수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다. 빨간색이나 갈색, 노란색을 띠면 토양에 철 화합물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카리타 교수팀은 북캔버라 일대 260km²에 이르는 지역에 대해 이런 토양 정보를 구축했다. 북캔버라 지역을 가로세로 각각 1km인 정사각형 격자(셀)로 나눠 토양 샘플을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무작위로 채취된 샘플 3개를 받아 어디서 수집된 것인지 추적했다. 연구팀은 비교 결과 전체 면적 260km² 가운데 최소 60%, 최대 90%에 이르는 지역을 제외할 수 있었다. 카리타 교수는 “상당수 국가는 이미 토양 데이터베이스가 잘 구축돼 있어 별도로 샘플을 채취할 필요가 없다”며 “범죄수사에 활용한다면 그만큼 경찰이 조사할 대상 지역을 좁히고 수사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과 함께 과학수사 선진국 중 하나로 꼽힌다. 입국자들의 옷과 수하물, 신발, 여권에 묻어 있는 모래나 먼지를 분석해 테러 용의자 입국을 차단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관련 연구를 전담하고 있다. 한강에서 실종된 뒤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 씨의 양말에 묻은 흙도 국과수가 분석했다.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토양 포렌식 관련 장비나 기술들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어 국내 기술력도 해외에 못지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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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에 여성 이름을 가장 많이 쓴 도시는?

    전 세계 도시를 돌아보면 거리 이름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경우가 많다. 2019년 미국 워싱턴은 미항공우주국(NASA) 본부 앞 거리인 ‘E 스트리트 SW 300’의 이름을 ‘히든 피겨스 웨이(Hidden Figures Way)’로 바꿨다. 1960년대 미국 유인 우주탐사 프로그램에 공헌한 숨은 공로자인 흑인 여성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영국 런던에는 윈스턴 처칠 전 총리, 프랑스 파리에는 위대한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이런 거리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영국 케임브리지 노키아벨연구소와 킹스칼리지 런던대,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독일 뮌헨공대, 덴마크 코펜하겐IT대 연구팀은 거리 이름을 통해 도시의 문화적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1일 발표했다. ‘스트리토노믹스’라는 이름의 이 방법은 거리 이름을 통해 도시와 도시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사회공학 분석법이다. 거리명에 사용된 인물의 직업과 성별, 생존 연대 등을 정량화해 해당 도시가 중시하는 문화적 가치를 엿보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서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도시인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 영국 런던, 미국 뉴욕의 4932개 거리명을 분석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도시에 남녀 차별이 있는지, 어떤 직업을 엘리트로 우대하는지, 얼마나 개방적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분석 결과 빈은 여성의 이름을 딴 거리가 가장 많은 도시로 꼽혔다. 분석 대상이 된 빈의 거리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4%가 여성의 이름을 따왔다. 오스트리아 출생의 19세기 여성주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헬렌 디너가 대표적이다. 런던도 거리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로 나타났다. 반면 뉴욕은 26%, 파리는 4%만이 여성의 이름을 가져왔다. 파리는 현대적 수도로 변모하던 1860년대에 큰 가치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 등 이 시기에 활동한 인물들이 거리명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가 다시 성장하던 시기를 살던 인물이, 런던은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도시를 재건하던 조지 3세 통치기(1760∼1820년)의 인물이 많았다. 비교적 현대적 도시인 뉴욕은 1950년대 이후 인물이 주를 이뤘다. 네 도시는 공통적으로 예술가를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도시별로 중시하는 직업군에 차이가 있었다. 파리에는 작가와 과학자, 군인의 이름을 딴 거리가 많다. 빈은 법조계 인사와 소방 경찰 등 사회필수인력이, 런던은 왕실과 정치인, 군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뉴욕은 9·11테러 희생자가 거리명의 36%를 차지해 테러에 대한 경각심과 희생자에 대한 추모 정신이 도시가 추구하는 가치에 녹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은 거리명에 다른 나라 출신 인물을 쓰는 경우가 45%로 가장 많았다. 나치의 참상을 보여주는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대표적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숨어살며 ‘안네의 일기’를 썼지만 빈은 그녀를 기억했다. 그만큼 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고 외국인에 대해 개방성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반면 국제화된 도시로 알려진 런던은 14.6%, 파리는 10.9%, 뉴욕은 3.2%만 외국인 이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리오스 콘스탄티니데스 노키아벨연구소 연구원은 “도시의 거리명은 해당 사회가 중시해온 가치를 담고 있다”며 “이를 잘 활용하면 도시의 문화를 연구하고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를 추적할 있다”고 밝혔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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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습해오는 미세플라스틱 공포… 위해성 연구는 ‘걸음마’ 수준

    지난달 25일 경남 거제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 위해성분석연구센터 연구실. 한 연구원이 샬레에 담긴 미세플라스틱의 분자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적외선 분광기를 가동했다. 샬레는 유리로 만든 납작한 원통형 용기를 말한다. 연구원은 “이 미세플라스틱은 남해 바닷물에서 직접 수집한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크기”라며 “바닷물을 여과지에 거르고 광학현미경으로 입자를 찾은 뒤 적외선 분광기로 분석해야 미세플라스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우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전 세계 해양은 물론이고 극지방까지 퍼져 있다. 문제는 미세플라스틱 오염도와 해양생물에 대한 위해성, 인체 영향 등에 대한 연구가 현재 걸음마 단계라는 점이다. 홍상희 해양과기원 생태위해성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연안의 미세플라스틱 오염도와 독성, 위해성 연구는 이제야 전 세계적으로 시작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식별 어려운 미세플라스틱… 데이터도 부족 미세플라스틱은 통상 1μ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5mm의 플라스틱을 일컫는다. 마모되거나 태양광 분해 등에 의해 잘게 부서져 생성된다. 낚싯줄이나 스티로폼 부표, 페트병, 섬유 등에서 만들어진다. 얼굴에 발라 문지르다가 물로 씻어내는 클렌징이나 스크럽 제품에도 미세플라스틱이 있다. 해양 미세플라스틱은 유기물질과의 구별이 필요한데 해양환경 내 유기물질이 워낙 많아 이를 제거하고 걸러내기도 쉽지 않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17년 기준 해마다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950만 t이며 이 중 15∼31%가 미세플라스틱이라고 밝혔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5대 환류대 연구소’가 2007∼2013년 24회에 걸쳐 바다 표본을 채취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한 결과 지구 전체 해양에 약 26만9000t에 이르는 미세플라스틱이 존재한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2050년까지 누적 330억 t에 달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국내 연안과 해양의 미세플라스틱 양도 계속 늘 것으로 전망된다. 홍 책임연구원팀은 2015년부터 6년간 국내 연안 96곳과 바깥 해역 22곳의 바닷물 및 해저 퇴적물에 쌓인 미세플라스틱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를 지난달 24일 공개했다. 연구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미세플라스틱 오염도는 증가 추세를 보였지만 오염도는 아직 해양생물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홍 책임연구원은 “현재처럼 플라스틱 사용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관련 규제 정책도 동일하다면 2066년 국내 연안의 10%, 바깥 해역의 0.6%가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돼 해양생물에게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됐다”며 “2100년에는 연안의 82%, 바깥 해역의 22%가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홍 책임연구원은 또 “이 같은 분석은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자료들만 활용해 나온 연구 결과란 한계가 있다”며 “지금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해양생물이나 인체에 대한 미세플라스틱의 유해성을 조사하려면 데이터가 더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 “해양생물·인체 독성·위해성 연구 부족”해양과학자들은 미세플라스틱의 해양생물에 대한 위해성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독성 자료와 지역 해양 미세플라스틱 오염도에 대한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양생물뿐 아니라 인체에 대한 미세플라스틱의 유해성도 마찬가지다. 김승규 인천대 해양학과 교수팀은 2018년 소금을 통한 미세플라스틱 섭취가 연간 수천 개 이상에 이를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홍 책임연구원은 “관련 연구가 부족한 상태”라며 “해양생물의 경우 물을 통한 미세플라스틱 섭취를 가정해 볼 수 있지만 사람의 경우 호흡과 음식물 섭취 등 경로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노출 실험이 어렵기 때문에 포유류를 활용해 실험한다. 홍 책임연구원은 “이제 막 관련 연구들이 시작되려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입자가 작을수록 독성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세포막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산화방지제 같은 첨가제가 다량 들어가 있어 몸안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또 해양 환경에서 주변 오염물질을 흡착할 수도 있다. 2018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펴낸 한림연구보고서에서 김규원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는 “산업 농업에서 사용되는 중금속이나 발암물질로 알려진 벤조피렌 등 독성물질이 흡착된 미세플라스틱이 세포막을 뚫어 침투하면 신경계나 면역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미세플라스틱 규제에 필요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지역별 미세플라스틱 오염도와 관련 독성 자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임운혁 해양과기원 남해연구소장은 “미세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이 분해돼 발생하기 때문에 발생원을 찾기 쉽지 않아 규제하기도 어렵다”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규제 정책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거제=김민수 기자 reborn@donga.com·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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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룡, 추운 북극권서도 번식했다”

    북극에서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와 초식공룡인 케라톱스를 비롯해 최소 7종의 아기공룡 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번 발견으로 공룡이 저위도 지방은 물론 차디찬 북극에서도 사계절 내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며 새끼를 낳고 살았을 것이란 최근 학설에 힘이 실릴 것으로 고생물학자들은 보고 있다. 패트릭 드러큰밀러 미국 알래스카대 박물관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25일 미국 알래스카 북부 콜빌강 유역의 절벽에서 7종에 이르는 새끼공룡 뼈를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커런트바이올로지’에 보고했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공룡이 양서류나 파충류처럼 외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냉혈동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북극에서 발견된 공룡 뼈의 일부는 알에서 막 부화한 상태로, 또 다른 일부는 알에 들어 있는 상태였는데 이는 공룡이 따뜻한 저위도 지역으로 이동해 알을 낳았다는 기존의 학설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냉혈동물은 외부 온도가 떨어지면 활동이 불가능해지고 동면이나 휴면 상태에 빠지게 돼 극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극지에서 공룡 뼈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공룡이 온혈동물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연구팀은 2011년부터 알래스카에서 절벽에 직접 올라 퇴적물을 퍼내고 돌과 흙을 제거한 뒤 연구실로 가져와 현미경으로 뼈를 찾아냈다. 드러큰밀러 관장은 “공룡 알은 부화하기까지 보통 3∼6개월 걸리는데 봄에 알을 낳고 새끼가 태어나도 나이가 너무 어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위도가 낮은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다”며 “공룡이 북극에서 알을 낳았다는 것은 계절에 따라 옮겨 다니지 않고 둥지를 틀고 계속 머물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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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개 단 고체 발사체 연구… 소형 위성 활용 ‘점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사거리를 제한하던 미사일 지침이 종료되면서 국방부가 공중과 해상에서 위성을 실어 우주로 발사체를 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했다. 우주 발사체는 인공위성이나 우주망원경, 탐사선을 우주 궤도에 실어 나르는 유일한 운송수단이다. 발사체는 엔진이 사용하는 연료 종류에 따라 고체 발사체와 액체 발사체로 나뉜다. 국방부와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이 가운데 언제든 필요한 시점에 위성을 궤도에 쉽게 올려놓을 수 있는 고체 우주발사체에 관심을 두고 있다.○ 고체 발사체, 구조 간단하고 쉽게 발사 가능국내에서 개발된 우주발사체는 러시아와 공동 개발해 2013년 1월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KSLV-1)와 10월 첫 발사를 목표로 독자기술로 개발 중인 누리호(KSLV-2)가 전부다. 나로호 1단과 누리호의 1∼3단은 케로신(등유)과 액체산소를 결합한 액체 연료를 연소시켜 추력을 얻는 액체 엔진이 들어간다. 액체 발사체는 목표한 궤도로 정확히 위성을 실어 나르기 위해 터보펌프와 연소기, 가스발생기 등 엔진 기술과 정밀한 액체 연료 연소 기술이 들어간다. 그만큼 개발이 어렵다. 반면 고체 발사체는 빨리 타지만 폭발하지 않는 고체연료를 연소시켜 추력을 얻는 방식이다. 다이너마이트의 원료로 쓰이는 니트로글리세린이 연료로 쓰이는데, 가운데 빈 공간에 불을 붙이면 급격한 연소가 일어난다. 연소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알루미늄 분말을 넣기도 한다. 연소가 시작되면 고온·고압의 가스가 배출되고 이를 통해 수십 kg에서 수천 kg에 이르는 위성과 화물을 우주로 실어 나르는 추력을 얻는다. 한번 연소가 시작되면 연소실의 고체 연료를 모두 태우는 방식이라 연료통이자 엔진이라는 간단한 구조를 가진다. 개발이 상대적으로 쉽고 제작비용도 액체 발사체의 약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필요한 시점에 언제, 어디서든 쉽게 발사가 가능하다는 것도 고체 발사체의 장점이다. 나로호나 누리호와 같은 액체 우주발사체는 발사 전 연료인 케로신과 산화제인 액체산소를 극저온 상태로 유지한 채 발사 반나절 전부터 주입해야 한다. 반면 고체 발사체는 연료를 넣은 상태로 보관이 가능해 언제든 발사가 가능하다. 연료 주입에 필요한 연료 공급장치와 지상 설비도 간소한 편이다. 그만큼 첩보위성의 눈을 피해 재빠르게 발사할 수 있다. 다만 고체 발사체는 액체 발사체보다 비추력이 약하다. 비추력은 연료 1kg이 1초 동안 소비될 때 발생하는 추력을 계산한 것이다. 값이 클수록 성능이 좋다는 뜻인데, 고체 발사체는 200∼270초, 액체 발사체는 300∼400초 정도다.○ 해외서도 개발 활발…독자 우주정찰에 기여해외에서도 고체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우주에 활발히 위성을 보내고 있다. 일본은 3단 고체발사체 ‘엡실론’을, 유럽우주국(ESA)은 4단 고체발사체 ‘베가’를 개발했다. 이들 발사체는 길이 25∼30m의 중형급 발사체로 고도 500∼700km에 1.5t의 위성을 실어 나를 수 있다. 미국은 퇴역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주발사체로 개조해 ‘미노타우로스’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다. 미국의 애드러노스, 중국 싱지룽야오 등 스타트업들도 소형 고체 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독자적인 발사체 대신 액체 우주발사체를 보조하는 부스터로 활용하고 있다. 유럽 아리안스페이스의 ‘아리안’과 인도의 ‘GSLV-3’가 2개의 고체 부스터를 쓰고 있다. 미국이 달 탐사에 활용하기 위해 개발하는 스페이스론치시스템(SLS)도 중형 고체 발사체보다도 큰 54m 길이의 고체 부스터를 활용한다. 전문가들은 액체 우주발사체가 정기노선 버스라면 고체 발사체는 ‘택시’에 해당한다고 평가한다. 액체 발사체가 많은 위성과 화물을 우주로 실어 나른다면 고체 발사체는 짧은 기간에 원하는 궤도로 자주 위성을 실어 나를 수 있어서다. 고상휘 한화 방산부문 상무는 “저비용의 고체 발사체로 소형·초소형 위성 제작과 발사 횟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미사일 제작 참여 경험이 있는 한화 등을 중심으로 고체 우주발사체 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무 시리즈를 통해 고체 미사일 국산화에 성공한 경험이 있고 발사 경험도 풍부해 고체 발사체 개발을 위한 기틀을 충분히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주 정찰자산을 확보하려면 군집위성을 도입하는 등 위성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김경근 국방과학연구소 국방위성체계개발단 1팀장은 “한국은 일본과 유럽 고체 발사체와 비슷한 기술을 갖췄으면서도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낮아 가격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재원 jawon1212@donga.com·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 20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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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이즈, 불치병서 만성질환으로…“당뇨환자보다 건강관리 더 쉽다”

    “당장 죽는다는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잠들기 전에 약만 한 알씩 먹으면 됩니다. 치료제 덕분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습니다.” 11년째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앓고 있는 한 환자는 투병기에서 이렇게 밝혔다. 과거 에이즈는 원인도 모르고 치료제가 없는 데다 치사율도 높아 ‘20세기 흑사병’ ‘천형(天刑)’이라 불리던 공포의 대상이었다.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비롯해 숱한 유명인과 일반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하지만 첫 환자가 공식 보고된 지 40년을 맞은 지금은 과학계와 의료계, 편견에 맞선 환자들의 오랜 노력으로 당뇨,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수준으로 관리가 가능해졌다.○ 1981년 에이즈 첫 확인… 원인은 미스터리 에이즈는 1981년 6월 5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주간보고에서 처음 등장했다. 폐렴 증상을 보인 남성 5명이 면역세포에 손상을 입은 특이 사례가 발견됐으며 이 중 2명은 이미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미 CDC가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 비슷한 사례가 더 있는 것을 확인했고,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보고됐다. 1980년대 에이즈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병이었다. 초창기 환자의 8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성관계, 수혈로 몸속에 들어와 면역세포를 파괴시키는 바이러스다. HIV에 감염되더라도 증세를 느끼지 못하고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다 감염 등 합병증과 함께 갑자기 발병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첫 환자 보고 이후 마지막 공식 통계가 나온 2019년 12월까지 전 세계 감염자는 7600만 명, 사망자는 3300만 명에 이른다. 한국에서는 1985년 첫 환자가 보고됐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후 2019년까지 1만3857명이 HIV에 감염된 것으로 집계된다. 2013년 이후에는 해마다 1000명 안팎의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 주요 감염경로를 보면 성 접촉 감염이 가장 많은 95% 이상을 차지했다. 치명적인 질병의 등장에 과학계는 처음에는 허둥거렸다. 정체불명 질병의 원인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팀이 HIV가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고했다. 하지만 HIV의 기원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원숭이에서 발견되는 원숭이면역결핍바이러스(SIV)에서 1930년대에 분리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치료제 47종 나와…백신 개발도 진행 첫 에이즈 치료제는 한국에서 첫 환자가 보고된 뒤 2년 후인 1987년 공개됐다. HIV 증식을 억제해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는 항레트로바이러스제인 ‘지도부딘’이다. HIV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리보핵산(RNA) 바이러스의 한 유형인 레트로바이러스다. 숙주세포인 면역세포에 들어간 바이러스가 RNA의 유전정보를 DNA로 전달하는 역전사 과정을 거쳐 숙주의 DNA에 들어가 증식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돌연변이로 면역 기능을 상실한다. 지도부딘은 바이러스의 RNA가 DNA로 역전사하는 과정을 억제해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현재까지 공식 승인을 받은 에이즈 치료제는 47종에 이른다. 치료제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메스꺼움과 설사, 두통 같은 부작용도 줄었다. 환자들은 이제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한때 치명률이 80%에 달하던 에이즈가 이제는 치료제만 있으면 6개월 안에 통제할 수 있는 질병이 됐다고 설명한다. 에이즈 전문가인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몇몇 국가의 노력으로 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수십억 달러가 투입됐다”고 말했다. 30년간 국내 에이즈 환자 62명을 추적해온 조영걸 서울아산병원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치료제가 개발된 덕분에 당뇨 환자보다 에이즈 환자들이 건강을 관리하기가 더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나온 치료제들로는 완치가 어렵다. 지난해 8월 미국의 면역치료 전문기관인 라곤연구소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치료제를 통해 에이즈가 완치된 사람이 3명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과학계는 에이즈를 극복할 궁극의 치료제 개발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2월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팀은 숙주세포에 숨어 있는 HIV를 잡아내는 방법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에이즈를 예방할 백신 개발도 진행 중이다. 그간 진행된 임상이 완료된 경우는 6건에 그친다. 조 교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HIV는 ‘움직이는 목표’로 불린다”며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도 변이가 많다보니 치료제 개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치료제가 고소득 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고 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여전하다는 점은 극복할 과제라고 지적한다. 김 사무총장은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관심이 줄었는데 에이즈 퇴치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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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영장, 어디에 쓸까?

    영국에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영장이 들어선다. 폭 40m, 수심 50m로 16층짜리 건물 하나가 들어가는 규모다. 단순히 사람이 수영을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우주 비행사 훈련과 해저탐사 로봇의 시험이 진행된다. 영국 민간투자회사 ‘블루어비스’는 2일(현지 시간) 영국 남서부 콘월의 뉴키 공항 부지에 이 같은 수영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정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뉴키 공항은 부지 내에 ‘에어로 허브’라는 공간을 마련하고 기업에 사업장으로 쓰도록 제공하고 있다. 블루어비스가 짓는 수영장에는 4200만 L의 물이 채워진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 17개와 맞먹는 양의 물이다. 지붕은 개폐가 가능하고 무장을 하지 않은 F-15K 전투기 2기(30t)를 수조에서 들어올릴 크레인도 설치된다. 2023년 문을 열 이 과학 실험용 수영장 건설에는 약 1억5000만 파운드(약 2368억 원)가 투입된다.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것은 수영장을 앞으로 늘어날 우주인 훈련에 제공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수영장은 각국의 우주인 훈련 기관에선 ‘중성부력’ 실험실로 불린다. 중성부력은 부력과 중력의 힘이 동일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마치 무중력 상태인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러시아 로스코스모스, 유럽우주국(ESA) 등 우주기관들이 저마다의 훈련용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다. 우주비행사들은 우주로 나가기 전 적응 훈련을 수영장에서 진행한다. 미국의 유인 달 탐사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와 이후 화성 탐사,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민영화 등이 추진되면서 잠재적인 우주인 훈련 수요는 늘고 있다. 이 밖에도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 버진갤럭틱이 민간 우주 여행을 추진하면서 훈련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블루어비스는 우주인 훈련 외에도 수중 영화세트, 심해 잠수사 훈련센터, 수중 국방로봇 실험 등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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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감염자 잡아내는 ‘전자코’ 나왔다

    이스라엘 과학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를 냄새로 판별할 수 있는 ‘전자코’를 개발했다. 1분 20초 만에 증상이 있는 감염자를 찾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무증상 환자를 더 잘 식별할 수 있어서 주목된다. 노암 소벨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신경생물학부 교수 연구팀은 몸에서 나오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에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구별하는 후각센서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3일 공개했다. 사람의 몸은 장기마다 서로 다른 화학 분자인 VOCs를 뿜어낸다. 이 때문에 후각이 사람보다 약 40배 뛰어난 개가 암과 당뇨, 결핵, 말라리아 등 질병은 물론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냄새로 찾아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월 독일 하노버대 연구팀은 개가 코로나19 확진자를 판별하는 정확도가 94%에 이른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코로나19 확진자 26명을 대상으로 코 안쪽에서 나는 냄새를 분석했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미감염자 26명의 냄새도 확인했다. 500회에 걸쳐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감염자에게서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VOCs와 유사한 화학물질이 나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런 VOCs 구성을 찾아내는 전자코를 개발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운영하는 드라이브스루 진단검사소를 찾은 503명의 냄새를 전자코로 분석했더니 유증상 감염자를 찾아내는 민감도가 71%로 나타났다. 실제 감염자 10명 중 7명을 찾아냈다.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민감도는 75.8%로 더 높았다. 연구팀은 “추가 연구로 민감도를 더 끌어올릴 것”이라며 “지금 수준에서도 대량으로 빠르게 진단검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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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가루가 말했다… 지구 식생이 4000년 전부터 급변했다고

    5월은 1년 중 꽃가루가 가장 많이 날리는 시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요즘엔 기침을 유발하는 꽃가루는 특히 유쾌하지 못한 불청객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꽃가루는 수만 년 동안의 기록을 담고 있는 ‘타임캡슐’로 높이 평가한다. 미국과 호주, 노르웨이, 독일 등의 연구자로 구성된 국제연구팀이 꽃가루를 분석해 지난 1만8000년 동안 지구 식생의 변화상을 알아냈다. 온드레이 모틀 노르웨이 베르겐대 생물과학부 교수와 에릭 그림 미국 미네소타대 지구과학부 교수팀은 4000년 전 지구에 전례 없는 급격한 식생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21일 발표했다. 연구팀에 현재의 기후위기를 촉발한 18세기 산업혁명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광범위한 식생 변화가 일어났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은 작은 꽃가루였다. 꽃가루는 식물의 정자를 품고 있다가 암술에 닿으면 꽃가루관을 내밀어 정자를 넘긴다. 꽃가루는 정자를 품고 있어 외부 세포벽은 매우 단단한 편이다. 세포벽은 스포로폴레닌이라는 단단한 단백질로 싸여 있어 황산에도 녹지 않고 고온고압 상태에서도 수만 년 보존된다. 꽃가루는 크기가 지름 100μm(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 이하로 작지만 식물의 종류마다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꽃가루는 연대별로 호수나 늪지의 퇴적물에서 발견되는데 이를 분석해 그 당시의 상황을 알아낼 수 있다. 과학자들이 꽃가루를 식물의 타임캡슐과 같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나무 나이테나 산호의 뼈대도 과거 상황을 추리하는 단서로 쓰인다. 하지만 꽃가루는 이 단서들보다 더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연구팀은 고생물학 연구자료 공개 플랫폼인 ‘네오토마 고생물학 데이터베이스’에 공유된 꽃가루 1181개를 분석했다. 남극 대륙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수집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꽃가루는 1만8000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북미와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서 꽃가루의 종류가 급격히 달라지는 현상이 동일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전 지구의 식생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때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이 빙하기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보고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인 약 1만1000년 전 식생 변화가 정점을 찍은 후 약 4000년 전까진 식생에 큰 변화가 없었다. 연구팀은 “이미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한 인간의 토지 사용과 농업, 도시화 등 영향이 식생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지구 식생 변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구팀은 “인류의 직접적 영향과 인류로 인해 발생한 기후변화가 지구 식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식생 변화 속도는 다시 한 번 신기록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앞서 꽃가루를 이용해 인류 활동이 온난화의 한 원인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미국 와이오밍대 연구팀은 2018년 북미와 유럽의 꽃가루 화석 642개를 분석해 인간 활동이 없었다면 지구의 기온은 떨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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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학연구 세포주 95%가 유럽계… 다양화 시급”

    영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3월 기준 영국 내 1700만 명 이상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분석한 결과 흑인과 아시아인의 치명률은 백인에 비해 약 2배나 높았다. 미국 보건당국도 3월 기준 코로나19 사망자 중 흑인 비율이 18%를 넘는다고 밝혔다. 흑인 인구 비중 12.5%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라틴계도 백인에 비해 감염률은 물론이고 입원율, 사망률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시아계는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지속적으로 제기된 감염병의 인종별 취약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의·과학자들은 불평등한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권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이 같은 현상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나아가 백신 개발 등 전체 의·과학 연구에도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맨다 케이프스데이비스 호주 시드니대 세포은행장과 소피 자이에르 미국 코넬대 공대 연구원은 “현재 의학 연구에 사용되는 모든 인간 세포주의 95%가 유럽계”라며 “의학 연구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14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셀’에 공개했다. 세포주는 생체 밖에서 배양이 가능한 동일한 형질의 세포집합을 의미한다. 인간에서 유래한 세포주를 외부에서 배양해 세포 생물학이나 유전학, 생명공학 연구에 활용한다. 개발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들도 이 실험단계를 거쳤다. 인간 세포주에 약물의 반응성을 보고 안전성을 확인한 후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등 다음 단계 개발로 넘어간다. 여러 실험단계를 거쳐도 실제 상용화 단계에서는 희귀 혈전증 발생 등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희귀 혈전증 부작용이 대표적이다. 혈전증도 인종별 차이가 나타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백인들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색인종의 경우 접종자 수 자체가 적어 아직 유의미한 연구 데이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서한을 작성한 연구자들은 개발된 의약품들이 모든 인종에서 동일한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는 증거들이 쌓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현재 사용되는 인간 세포주의 대부분이 1960∼70년대 공급됐으며 주로 유럽계 사람들이 그 원천”이라며 “전 세계를 뒤흔든 인종차별 반대 시위인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의·과학 연구의 근간인 세포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유럽계 95% 외에 5%는 아프리카계에서 얻은 세포주다. 전 세계 의학연구에 쓰이고 있는 아시아, 히스패닉계 세포주 비율은 거의 제로(0)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에서 아시아계가 아닌 세포주를 가져다 연구에 활용하는 일이 다반사다. 고려대 줄기세포연구소장을 지낸 김병수 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세포주 관련 연구개발(R&D)이 신약 개발 등 응용에 집중돼 있다”며 “세포주 구축은 의학 연구에 있어 근간이 되는 연구이지만 중요성이 간과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세포주 다양성 확대를 위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장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연구센터장은 “국내에도 한국인의 세포주를 보관하고 있는 은행들이 있는데 이를 전 세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우리도 해외 세포주 은행들처럼 자원 공유를 통한 적극적인 과학적 기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병수 교수도 “다양성을 높인 세포주 구축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며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정밀의학’도 결국 유전자만이 아닌 그 기능이 발현된 세포를 분석해야 성취 가능하다”고 밝혔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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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잉위잉’ 자기장도 전력으로 다시 쓴다

    형광등을 켜면 종종 ‘위잉위잉’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전기 변압기 근처에서도 이런 소리가 들린다. 전류가 흐르는 도체 주변에서 항상 생기는 자기장이 물체와 맞닿으며 나오는 소리다. 미국 연구팀이 도체 주변에서 나오는 자기장을 컴퓨터 메모리 전력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인 미국 인텔도 함께 연구에 참여하며 이 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존 헤런 미국 미시간대 재료과학및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자기장을 전력으로 전환하는 소재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12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자기장은 전류끼리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면서 미치는 힘이 작용하는 공간을 뜻한다. 전기가 흐르는 주변에는 반드시 자기장이 생긴다. 전도율이 매우 높은 전깃줄과 절연성이 좋은 피복을 사용해도 전기의 일부분이 자기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전기에너지로 만들어진 자기장은 지속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자기장이 발생하면 전기에너지의 효율은 떨어진다. 과학자들은 사라지는 자기장을 전력으로 다시 변환해 전기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연구를 이어왔다. ‘자왜소재’와 ‘압전소재’를 활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자왜소재는 자기장에 반응해 소재의 형태가 바뀌는 특성을 갖고 있다. 압전소재는 형태가 바뀌면서 압력이 가해지면 전력을 만들어내는 소재다. 이 둘을 결합해 자왜소재의 변형을 압전소재에 전달하면 외부 자기장을 전력으로 바꿀 수 있다. 헤런 교수팀도 이 방법을 활용해 자기장을 전력으로 전환하는 효율을 기존보다 10배 높인 소재를 개발했다. 자왜소재는 보통 갈륨을 원료로 사용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기술의 한계로 갈륨을 일정량 이상 자왜소재에 넣지 못했다. 연구팀은 갈륨을 촘촘히 박아 넣을 수 있는 ‘분자선 에피택시(MBE)’라는 기술을 이용해 갈륨의 양을 기존보다 2배 늘려 효율을 10배로 높였다. 연구팀은 현재 인텔과 함께 이 소재를 컴퓨터 메모리에 쓸 수 있도록 소형화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며 이미 관련 특허 출원도 완료했다. 국내에서도 자기장을 전력으로 활용하는 응용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류정호 영남대 신소재공학부 교수팀은 지난해 12월 자기장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변전 설비 안전감시 센서를 만들었다. 류 교수는 헤런 교수팀 연구 결과와 관련해 “MBE가 고가의 공정이라는 게 단점이지만 소재의 기존 한계를 극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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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개 벤 3세 아이… 아프리카 最古 무덤

    현생인류의 발원지인 아프리카에서 약 7만8300년 전 사람 무덤이 발견됐다. 태어난 지 2년 6개월에서 3년 사이로 추정되는 소년의 무덤으로,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현생인류 무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소년은 잎으로 만든 베개를 옆으로 베고 누워 무릎을 가슴 쪽으로 굽혀 웅크린 형태로 발견됐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장례의례 기원과 그 변천사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리아 마르티논토레스 스페인 국립인류진화연구센터 소장과 니콜 부아뱅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소장, 미하엘 페트라글리아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교수 국제연구팀은 케냐 남동쪽 한 동굴에서 시신(사진)을 무덤에 매장한 흔적을 찾았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6일 발표했다. 인류의 장례의례 기원과 그 진화는 매우 뜨거운 관심을 받는 논쟁거리다. 약 35만 년 전 유럽에서 나타난 네안데르탈인은 12만 년 전에도 땅을 파고 시신을 매장한 흔적이 수십 개씩 발견됐다. 반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무덤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남부 아프리카와 북부 아프리카에서 찾은 약 6만9000년에서 7만4000년 전 사이 무덤이 전부다. 연구팀은 2013년 동굴 발굴 작업 중 땅에 묻혀 있던 뼈를 발견했다. 이후 발굴을 이어가다 2017년 이 뼈가 원형 구덩이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구덩이는 동굴의 바닥보다 3m 정도 더 깊었다. 연구팀은 “일부러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넣은 뒤 동굴 바닥에서 퍼낸 퇴적물을 덮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의 흙무덤과 비슷한 매장 방식이다. 연구팀은 케냐 국립박물관 실험실로 뼈를 옮겨 그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냈다. 남겨진 뼈에서 발견된 치아 2개를 분석한 결과 생후 2년 반에서 3년 사이 남자 호모 사피엔스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이 뼈에 ‘음토토’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프리카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로 ‘아이’를 뜻한다. 연구팀은 뼈를 감쌌던 흙을 분석한 결과 시신이 매장된 뒤 재빨리 흙으로 덮였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음토토가 사망하자 의도를 가지고 빠르게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시신에 나뭇잎과 동물 가죽으로 만든 수의를 입힌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소년에 대한 진정한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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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물 주면 사라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플라스틱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대부분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지는 마스크는 땅속에 묻어도 썩지 않아 새로운 오염원으로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3월 한국인은 2.3일당 마스크 1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버려지는 폐마스크가 2000만 개라고 보면 연간 73억 개 이상이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이에 과학자들은 막대한 폐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찾고 있다. 특히 썩거나 녹아 없어져 친환경적인 이른바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주목하고 있다. ○까다로운 분해조건이 활용에 제약 플라스틱은 땅에 묻어도 수백 년간 썩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남아있는 게 보통이다. 반면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땅에 묻으면 썩어서 사라진다. 원료의 특성 덕분이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재료로는 짚, 톱밥, 식물성 기름 등이 있는데 주로 옥수수 전분에서 유래한 PLA란 물질이 쓰인다. 뜨거운 음식을 담거나 아기가 물거나 빨아도 환경호르몬은 물론이고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아 안전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공기가 잘 통해 기존 플라스틱 비닐보다 과일이나 야채가 더 신선하게 유지된다는 장점도 있다. PLA를 땅에 묻으면 식물의 자양분이 되는 퇴비처럼 자연스럽게 썩는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썩으려면 온도 58도 이상, 수분 70% 이상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조건을 갖춰야 반년에 걸쳐 90% 이상 분해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쓰는 제품들이 크게 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처리 조건을 만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설프게 썩으면 미세플라스틱을 만드는 원인이 되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다른 플라스틱을 오염시키는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효소 이용 퇴비화 촉진 기술 개발최근에는 좀더 쉬운 조건에 분해가 이뤄져 기존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쉬팅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재료과학 및 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물만 있으면 상온에서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달 22일 공개했다. 쉬팅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플라스틱은 땅에 묻고 따뜻한 물만 부어주면 상온에서도 일주일 만에 80%가 사라진다. 물의 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분해 속도는 빠르다. 온도를 50도까지 올리면 6일 이내 완벽한 분해도 가능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플라스틱 제작 단계에서 PLA를 잡아먹는 효소를 넣었다. 효소가 따뜻한 물에 노출되면 PLA의 단단한 구조를 풀어줘 분해가 더욱 빨리 일어나게 하는 원리다. 알랭 마르티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 연구원팀은 플라스틱 페트병 하나를 10시간 안에 90% 이상 분해하는 획기적인 효소를 발견해 지난해 4월 네이처에 공개했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효소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방법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플라스틱 병 하나를 분해하는 데 며칠씩 소요되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이 발견된 효소는 현재까지 보고된 어떤 효소보다 플라스틱 분해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도 최근 문제가 심각한 폐마스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3월 황성연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소재연구단장팀은 한 달 안에 100% 자연 분해되면서도 습기에 강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마스크용 생분해 플라스틱 필터를 개발했다.○2025년 10조 원 규모 시장으로 성장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은 3억5900만 t으로 이 중 절반인 1억5000만∼2억 t이 쓰레기 매립지나 자연에 버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과 탄소 저감을 위한 대안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선택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기존의 플라스틱 일회용 식기와 그릇, 비닐 포장재, 농업용 비닐 등을 대체하고 있다. 중국도 올해부터 그릇이나 식기, 비닐봉지 등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360i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생분해성 플라스틱 시장은 지난해 51억 달러(약 5조6814억 원)에서 2025년에는 두 배인 약 89억 달러(약 9조9146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외 석유화학기업들도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노바몬트, 미국 다이머같이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도 있다. 국내에서는 CJ제일제당과 LG화학, SK종합화학 등이 생분해성 플라스틱 시장에 뛰어들었다. 황 단장은 “국내에 아직까지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매립할 수 있는 전용매립장이 없어 시중에 유통된 생분해성 플라스틱 중 70% 이상이 소각되고 있다”며 “소비자에게만 재활용이나 처리를 맡기지 말고 플라스틱 생산자들이 전용매립장을 만들도록 하는 등 정책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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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사 위기 ‘크리스마스트리’ 살리자”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구상나무는 9개 집단 서식지가 있는데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을 제외한 나머지 6곳은 1ha(헥타르·축구장 1.5배 넓이)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이마저도 최근 수년 새 기후변화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임효인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이달 8일 경남 거창군 금원산 정상(해발 1353m)을 향해 나 있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차 안에서 구상나무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구상나무는 신생대 3기 마이오세(2300만 년∼510만 년 전)부터 해발 1000m 이상 한반도 고지대에 살아온 고유종이다. 해외로 수출돼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알려지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점차 터전을 잃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2013년 구상나무를 기후변화로 자생지 분포 면적이 급속히 줄어든 위기종으로 분류했다. 산림과학원과 금원산산림자원관리소는 2019년 구상나무 보존을 위해 키 20∼30cm의 어린 구상나무 1350그루를 심고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세계인의 사랑 받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위기 연구팀을 태운 차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뚫고 한참을 달려 해발 1000m 부근에 이르렀다. 이곳부터 다시 1시간을 더 가야 구상나무 복원 시험지가 있다. 임 연구사와 채승범, 서한나 연구사는 복원사업이 시작된 2019년부터 분기마다 자료 수집을 위해 산을 오르고 있다. 시험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이 편안해지는 구상나무의 초록색이 흙 색깔과 대비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연구팀은 어린 구상나무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복원 시험지의 습도와 온도, 바람 세기 등 환경을 점검했다. 소나뭇과에 속하는 구상나무는 5, 6월 잎 끝에 솔방울 같은 꽃이 피는데, 노란색과 분홍색, 자주색 등 여러 아름다운 색깔을 낸다. 모양이 아름다워 정원 문화가 잘 발달한 유럽이나 북미 등지에서는 개량을 거쳐 관상수와 공원수로 쓰인다. 산림과학원이 금원산에 심은 어린 구상나무들은 유전자 분석을 거친 좀 특별한 묘목들이다. 임 연구사는 “구상나무 같은 고산지역 침엽수종은 다른 나무와 달리 생장이 느리고 관리가 어려워 복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지리산과 한라산, 금원산 지역의 구상나무 종자 중 높은 온도에 적응하고 생장이 빠른 유전자를 가진 종자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더위에 강한 구상나무 유전자를 찾아내기 위해 국내에 서식하는 구상나무 300그루의 유전자(DNA)를 분석해 이를 자료화하고 금원산의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개체를 찾아냈다. 한때 구상나무의 낙원으로 불렸던 금원산은 2018년 인공위성 관측과 현장 조사 결과 구상나무의 서식 면적이 0.6ha까지 줄고 20그루도 채 남지 않았다. ○급격한 서식지 쇠퇴 우려 최근 기후변화로 고지대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구상나무가 뿌리박고 있는 땅은 급격히 메마르고 있다. 겨울철 기온이 올라가면서 적설량이 줄어 봄에 공급되는 수분량도 줄고 있다. 이 때문에 수분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구상나무가 하얗게 말라 죽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되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병해충의 공격도 늘고 있다. 2019년 제주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분포 면적은 2006년 738ha에서 2015년 626ha로 줄었다. 같은 해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지리산 반야봉 일대 1km²에 서식하던 구상나무 1만5000여 그루 중 47%인 6700여 그루가 말라 죽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원산과 전남 백운산, 경북 가야산 등 구상나무 소규모 군락지의 경우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임 연구사는 “소규모 군락지들은 구상나무의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그만큼 외부 환경에 대처할 능력이 떨어진다”며 “이에 따라 대규모 군락지보다 서식지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구상나무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여러 군락지 중에서도 금원산이 이런 경향이 짙었다. 연구팀이 금원산을 유전자 분석을 통한 복원 시험지로 택한 이유다. ○기후변화 적응한 유전자 찾아 멸종위기 극복기후변화에 잘 적응한 구상나무를 옮겨 심은 결과는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3년차 분석 결과 어린 구상나무 생존율이 99%로 나타났다. 어린 구상나무들을 처음 심었을 때 평균 16cm 정도였는데 1년에 8cm씩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에 적응한 유전자를 찾아낸 것 외에도 양묘장에서 묘목을 키운 것도 복원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상나무는 발아율이 50% 미만으로 양묘가 쉽지 않다. 김대헌 금원산산림자원관리소 생태수목원담당은 “구상나무 양묘 노하우를 개발해 매달 200∼300그루씩 길러내고 있다”며 “국립수목원의 지원을 받아 현재 양묘장에서 2500그루 정도 구상나무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구상나무 복원 사업은 2022년까지 진행한다. 금원산산림자원관리소에서 기르고 있는 2500그루 중 1600그루는 전북 무주군 덕유산 지역에서, 900그루는 지리산에서 복원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임 연구사는 “이번 구상나무 서식지 복원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구상나무의 유전 다양성 복원 기술을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거창=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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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과 10배 뛰어나고 값도 저렴… 형보다 나은 ‘차세대 백신’ 온다

    세계 각국에서 감염병 예방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 단체인 ‘패스(PATH)’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만들 차세대 후보물질인 ‘NDV-HXP-S’에 대해 브라질과 태국, 멕시코, 베트남에서 임상시험에 착수했다고 5일(현지 시간) 밝혔다. 이 물질은 분자설계 기술을 활용해 현재 접종 중인 백신보다 더 강력한 항체를 생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계란을 활용해 원료비가 싸고 제조도 간편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외에도 코로나19를 포함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 다른 모든 코로나바이러스를 잡는 범용 백신과 상온 보관이 가능한 백신도 속속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1세대 코로나19 백신보다 효과가 크고 단점을 보완해 ‘2세대 백신’으로 불린다.○‘효과 10배’ 2세대 코로나19 백신 NDV-HXP-S는 코로나19 사태로 새롭게 등장한 미국 화이자와 모더나의 메신저RNA(mRNA) 백신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표면 스파이크 단백질의 유전물질을 넣어 사람 몸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 침투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항체를 생성하게 한다. NDV-HXP-S도 같은 원리다. 다만 몸에 침투한 스파이크 단백질의 위장을 막는 물질인 ‘프롤린’의 수가 더 많다는 차이가 있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사람 몸에 들어오면 인간 세포에 결합한 후 구조가 바뀐다. 튤립과 같은 모양에서 창처럼 뾰족해지는데, 이런 변화를 막아야 백신의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다. 단백질 아미노산의 일종인 프롤린이 이런 변화를 막는 역할을 한다. 현재 개발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프롤린 분자 2개를 사용한 반면 NDV-HXP-S는 6개가 사용된다. 이 물질을 개발한 제이슨 매클렐런 텍사스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는 “프롤린이 많을수록 더 안정적으로 스파이크 단백질 변화를 막을 수 있어 항체 효과가 10배 정도로 올라간다”고 했다. 이 물질의 1상 임상은 7월 종료될 예정이다.○보관, 운송, 생산 쉬운 백신 개발 1세대 백신은 안전성과 효능을 보장하면서도 매우 빠르게 개발됐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과 접종에 최소 5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이들 백신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 1년도 안 되는 시점에 접종이 시작됐다. 하지만 백신 보관과 운송 조건, 생산이 까다로워 저개발 국가들의 도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세대 백신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단점들을 보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특히 계란이 백신 생산 부족 문제를 해결할 구세주로 떠올랐다. 미국 마운트시나이 아이컨 의대 연구팀은 계란에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를 넣어 배양하고, 배양된 유전자로 백신을 제조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계란 1개면 5∼10회 접종분의 백신을 만들 수 있다. 이미 중저소득 국가에 설립한 독감 백신 생산 설비를 활용하면 연간 약 10억 명분의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NDV-HXP-S도 계란을 활용해 대량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 제약사 노바백스는 보관과 운송이 편리한 백신을 개발했다. 나방 세포를 이용해 만든 이 백신은 상온 2∼8도에서 보관할 수 있어 운송이 용이하다. 지금까지 임상 3상에서 96.4%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5월쯤 노바백스 백신 사용 승인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변이 대응 백신도 국내에서 개발 중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6일 현재 전 세계에서 임상 단계에 있는 백신은 86개, 전 임상 단계는 186개다. 국내에선 SK바이오사이언스와 셀리드 등 5개 기업에서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할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현재 1, 2상 단계이며 내년 상반기 긴급사용 승인을 얻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변이 대응을 위해 차세대 백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감염병 전문가 77명 중 66.2%가 현재 개발된 백신들이 1년 내 효과가 없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백신 접종이 일부 국가에서만 이뤄지고 있고, 그사이 기존 백신이 효과를 보이지 않는 변이가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변이에 대응할 백신을 포함해 차세대 백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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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대형산불 주범 ‘양간지풍’ 실체 확인

    ‘마치 불씨가 도깨비처럼 날아다녔다.’ 성종 20년(1489년) 2월 24월 강원 양양에서 일어난 불에 대해 실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불씨는 주변 가옥 205채와 낙산사 관음전을 태운 다음 간성(현 고성)까지 번져 향교와 가옥 124채를 태웠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이처럼 2∼4월 강원 영동지역을 집어삼킨 대형 산불에 관한 기사가 12건이나 기록돼 있다. 봄철 이 지역에 불씨를 널리 퍼뜨려 대형 산불로 이어지게 하는 강풍의 정체는 ‘화풍(火風)’이라는 별명을 가진 ‘양간지풍(襄杆之風)’이다.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이라는 뜻으로 두 지역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국내 기상전문가와 산불 전문가들은 이론적으로만 설명하던 이 바람을 처음으로 실측, 분석해 지난달 30일 결과를 공개했다. ○양간지풍 첫 특별관측 강원지방기상청과 국립기상과학원, 강릉원주대, 동해안산불방지센터 등 13개 기관 전문가가 참여한 연구팀은 지난해 3∼5월 강원 인제와 양양, 진부와 대관령, 강릉에 723대의 관측장비를 설치하고 바람의 특성 규명에 나섰다. 국지풍인 양간지풍만 따로 떼어내 분석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봄철 중국에서 한반도로 따뜻한 이동성 고기압이 다가서면 태백산맥 상공에는 역전층이 형성된다. 보통은 고도가 올라가면 기온은 떨어지지만 역전층에선 기온이 올라간다. 서쪽에서 불어온 바람은 이 역전층과 산맥 산등성이를 통과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기가 압축되면서 공기 흐름이 급격히 빨라진다. 함인화 강원기상청 예보과 주무관은 “공기가 산맥을 넘어 동해안을 만나면 마치 수문을 연 댐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듯 풍속이 급격히 빨라진다”며 “그 결과로 산맥 동쪽 경사면인 영동 지방에 매우 강한 바람이 분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관측에서 양간지풍 바람길을 따라 지상부터 대기 상층까지의 3차원(3D) 자료를 얻었다. 이 결과 그간 이론상으로만 설명하던 역전층 높이와 양간지풍의 실체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양간지풍이 불기 전 동해안 고도 1.2∼2.0km 사이에 형성된 역전층 고도가 지상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아랫부분의 대기가 역전층에 눌려 압축되고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역전층 하층은 지상에 점점 가까워지다가 어느 순간 소멸하고 상층은 위로 상승하는데 이때 아주 강한 바람이 동남쪽으로 부는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박유정 강원기상청 주무관은 “첫 관측 자료라 양간지풍의 특성이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역전층의 움직임에 따라 양간지풍이 발생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대형 산불 대응 위한 2차 연구 진행 국내에서 일어나는 산불은 주로 건조한 봄철에 집중된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일어난 산불은 620건으로, 이 중 355건이 3, 4월에 집중됐다. 유독 강원 영동 지역은 이 시기 강한 바람을 타고 불이 크게 번지는 유형이 반복되고 있다. 소방당국이 해마다 이때가 되면 잔뜩 긴장하는 이유다. 특히 2019년 4월 고성 속초 산불 때 불었던 강풍은 바람의 강도를 표시하기 위해 만든 ‘보퍼트 풍력계급’ 12단계 중 7단계인 ‘센바람’부터 11단계인 ‘왕바람’까지 아우른 것으로 나타났다. 센바람은 나무가 흔들리고 걷기가 힘들 정도이고, 왕바람은 건물이 손상을 입는 수준이다. 작은 불씨가 대규모 산불로 이어진 데는 이런 변화무쌍한 바람이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양간지풍에 대한 이해가 초보 수준에 머문다고 보고 있다. 바람이 시작하는 발생 조건과 정확한 진행 방향의 유형을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박 주무관은 “과거에는 관측 자료가 부족해 수치모델과 특성을 추정하는 쪽으로 주로 연구가 집중됐다”며 “지금도 국지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발달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미 3월 16일부터 2차 관측에 들어갔다. 연구팀은 횡성에서 대관령, 강릉으로 이어지는 바람길을 따라 해마다 관측에 나설 계획이다. 김백조 기상과학원 재해기상연구부 팀장은 “양간지풍의 발생 패턴을 예측해 이를 대형 산불 대응에 활용할 수 있다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산불 현장 지휘 본부와 산불 진압 소방관들에게 유용한 정보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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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블루, 뇌과학으로 이겨낸다

    1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뇌연구소 연구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완치된 57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찍은 모습을 공개했다. 영상 분석 결과 57명 가운데 41명의 뇌에서 괴사 증상이 일어나는 허혈성 병변과 관류 이상, 미세 출혈 흔적이 나타났다. 코로나19가 뇌를 공격한 흔적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뇌 연구자들도 연구에 나서고 있다. 뇌 신경과학 분야에서 진행되던 우울증 연구의 가장 큰 숙제로 코로나19 우울증(코로나 블루) 해결 문제도 떠올랐다.●코로나 이후 우울증 위험군 급증 현실화 코로나19 우울증 문제가 제기되기 전에도 우울증은 정서적 측면 외에도 인간 뇌에 직접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우울증 환자는 겉으로 보이는 행동도 그렇지만 뇌 구조도 정상인과 다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어린이병원(CHLA) 사반 연구소 연구팀은 2017년 만성 우울증 환자의 대뇌 피질이 정상인과 구조적인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정상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분자정신의학’에 소개했다. 연구팀은 41명의 우울증 환자의 뇌를 MRI로 촬영했는데 만성우울증 환자의 뇌는 전두엽과 측두엽, 정수리엽의 피질이 건강한 사람보다 두꺼운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국립대 연구팀도 지난해 우울증 환자 5934명과 건강한 사람 4911명의 뇌를 비교한 결과,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기억과 감정을 조절하는 뇌 영역인 ‘해마’의 크기가 정상 해마보다 3% 정도 작아졌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그동안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주력하다 보니 코로나 우울증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까지 충분한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뇌 연구자들은 코로나19 우울증이 만성화할 경우 충분히 이런 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구자욱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뇌 과학을 통한 정신 질환 진단과 치료는 아직 시작 단계지만 팬데믹과 같은 강력한 사회적 충격이 발생한 뒤 몇 개월 안에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 우울증 관련 뇌 연구를 하루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1월 발표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우울 위험군은 지난해 12월 기준 2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8년 10월 조사 때 3.8%보다 5배 이상 올라간 수치다. 코로나 우울증은 해외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영국 서리대 연구팀은 23일(현지 시간) 영국 일반 시민 25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젊은층의 우울증이 코로나19 이전보다 2배 증가했다는 결과를 국제학술지 ‘정신과연구’에 공개했다.●우울증 유발-억제하는 뇌 유전자 현재 우울증 치료에는 항우울제와 향정신성의약품이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19 우울증이라고 예외는 없다. 뇌 연구자들은 약물 치료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일부 부작용도 있어 유전자 치료 같은 근원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억제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찾아내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강효정 중앙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뇌는 인체와 다른 별도의 면역반응을 갖고 있다”며 “뇌 속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우울감을 조절하는 신경세포를 망가뜨려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이런 연구는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로 인간 표준 게놈지도가 완성되면서 가능해졌다. 과학자들은 뇌 측위 신경핵에 있는 유전자인 ‘Slc6a15’와 뇌 해마 영역에 있는 ‘뉴리틴’이 우울증과 관련된 것으로 확인했다. 한쪽에선 미세 전기자극을 통한 적극적인 치료 방법도 찾고 있다. MRI와 함께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우울증에 걸린 환자의 뇌를 관찰한 뒤 이상 활동을 보이는 뇌 부위에 전기자극을 주는 치료법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지난해 4월 이 방법을 활용한 치료 연구에서 우울증 치료 효과가 90%에 달한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아직은 코로나19 치료에 활용하기까지 검증 과정을 더 거쳐야 하지만 과학자들은 치료율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 우울증 진단을 선진화하는 방법도 개발되고 있다. 현재는 전문의와의 대화나 관련 질문지를 푸는 방식이지만 전문의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과학자들은 뇌파를 통한 우울증 진단 방법과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새로운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지난해 11월 병원에 가지 않고도 간단히 우울증을 진단하는 뇌파 측정 장비를 공개했다. 이승환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뇌파는 감마와 베타, 알파, 세타, 델타 등 종류가 다양한데 특정 파형의 많고 적음에 따라 뇌 질환을 진단한다”고 말했다. 우울증 환자의 세포로 미니 뇌를 키워 뇌 회로의 변화를 분석해 진단과 치료법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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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번 세척해도, 1000번 구부려도 끄떡없는 ‘전자섬유’

    물에 빨거나 말릴 수 있고 둘둘 말거나 늘려도 되는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전자섬유 기술이 개발됐다. 현재는 세척과 건조는 100회 정도, 구부리거나 늘리는 것은 1000번 정도까지만 가능하지만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어 옷이나 대면적 디스플레이 소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펑후이성 중국 푸단대 거대분자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100회 이상 세척하고 건조해도 성능에 문제가 없는 전자섬유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10일자(현지 시간)에 공개했다. 이 전자섬유는 길이 6m에 너비 25cm로 이를 오토바이 운전자의 팔목에 옷감처럼 감아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활용하거나 스마트폰과 연결해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 바람도 잘 통해 옷을 지어 입을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전자섬유는 섬유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면서 전기적 특성을 가진 웨어러블용 전자소재다. 현재 웨어러블 기술은 일반 천에 센서 같은 딱딱한 전자소자를 붙이거나 전도성 섬유로 전자소자를 연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옷을 구기거나 세탁할 때 고장이 나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펑 교수 연구팀은 천을 짜는 실에 전자소자의 기능을 부여하는 방법을 찾았다. 연구팀은 지름이 수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인 전도성 섬유와 발광 섬유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자섬유를 짰다. 전도성 섬유와 발광 섬유는 교차점마다 빛을 내는데, 이런 방식으로 유연한 섬유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전자섬유에 손을 갖다대면 촉감에 반응해 글자가 입력되는 키보드 기술도 개발했다. 옷소매에 펼쳐진 디스플레이에 손을 대면 글자가 입력되는 방식이다. 펑 교수는 “장기적으로 사람의 뇌파를 측정하는 신호와 전자섬유를 연동하는 기술도 개발될 수 있다”며 “언젠가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려주는 통역기 역할을 하는 전자섬유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내에서도 임정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광전소재연구단 책임연구원팀이 세탁이 가능한 전자섬유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하고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에 공개했다. 트랜지스터는 전류나 전압 흐름을 조절해 신호를 증폭하고 스위치 역할을 하는 전자섬유 구현에 필수적인 부품이다. 연구팀은 트랜지스터의 전극 위에 보호막을 씌워 세탁한 후에도 성능을 유지하도록 했다 전자섬유를 사용한 웨어러블 의류는 극한 상황에서 활동하는 군인이나 작업자들이 가장 먼저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를 적게 쓰거나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전자섬유 기술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샌디에이고) 연구팀은 사람 몸에서 나오는 땀에 포함된 효소를 바이오 연료로 전환하는 기술과 몸통·팔이 부딪히며 생기는 마찰로 전력을 생산하는 웨어러블 셔츠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9일(현지 시간)자에 공개됐다. 셔츠를 입고 10분 정도 달리기를 한 후 액정표시장치(LCD)가 달린 손목시계를 30분 동안 구동할 만한 전력을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자유롭게 세탁이 가능하며 에너지를 저장할 수도 있다. 미국 스타트업 리타이센스는 운동화에 넣을 수 있는 깔창형 전자섬유를 개발해 걷기나 달리기 방식을 올바르게 개선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재원 jawon1212@donga.com·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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