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김현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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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hs@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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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과 단절됐던 소녀, 주례 서달라고 왔을때 가슴 뭉클”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들고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봤어요. 왜 살았을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너는 평생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라던 엄마의 모진 말이 생각났고, 그게 진짜일까 봐 겁이 났어요.” 소녀티를 벗지 못한 젊은 엄마는 그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19일 서울 서초구 청소년행복재단에서 만난 김지희 씨(25·가명)는 대부분 덤덤히 이야기했지만 어떤 대목에선 감정이 격해졌다.김 씨의 엄마는 스무 살에 낳은 딸에게 악에 받친 말을 퍼붓곤 했다. “너는 평생 불행해질 거다.” “너는 평생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할 애다.” 학교를 보내지 않으려는 엄마 때문에 결석도 다반사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이웃의 신고로 아동학대가 인정됐고 엄마와 결별했다. 이후 김 씨는 청소년보호시설을 전전하며 친구들과 무리지어 수리 중인 빈집이나 아파트 옥상, 지하에서 생활했다. 17세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 버티는 게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친한 동생과 여관방을 찾았고 이불에 불을 붙였다. 불은 순식간에 번졌고 소녀들은 눈앞에 닥친 죽음에 허둥대다 정신을 잃었다. 큰 화재로 번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깨어 보니 남은 건 얼굴을 포함해 전신의 28%에 3도 화상을 입은 몸이었다.김 씨는 2011년 방화 미수범으로 소년원에 갔다. 시설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살았다. 안 그래도 단절된 세상에서 더 움츠러들었다. 그때였다. 법무부 공익법인인 한국소년보호협회의 당시 회장 이중명 아난티그룹 회장(76)이 네 차례의 흉터 수술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1년 뒤 출소한 김 씨를 호텔 리조트 그룹인 아난티 계열사 골프장에 취직까지 시켰다. 살면서 타인의 호의라곤 받아본 적이 없던 소녀는 의심부터 들었다. ‘왜 나를 도와줄까.’ 취업한 지 한 달여 만에 도망쳤다. “그땐 내가 소중한 사람이란 걸 몰랐어요.” 2014년부터 소년보호협회 이사장을 맡게 된 이 회장은 김 씨를 수소문했다. 결국 김 씨는 2016년부터 소년보호협회에서 일했다. 비슷한 처지의 청소년을 보며 그는 할 일을 직감했다. 김 씨는 남편을 만났고 지금은 23개월 된 아들도 있다. 김 씨는 얼마 전 이 회장에게 편지를 썼다. “할아버지를 만나고부터 하고 싶은 게 생긴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 피라미드같이 생긴 표가 나온다. 한 명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이 두 명을 도와주는 식으로, 온정은 퍼져 나가는 것이다. 나도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 싶다.” 이 회장은 지난달 청소년행복재단을 출범시켰고 이사장을 맡았다. 더 적극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청소년들의 실질적 자립을 돕기 위해서다. 김 씨를 비롯해 그간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이날 재단을 찾은 것도 관련된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 재단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육, 장학, 주거 지원 등에 나선다. 이 회장은 “나도 어렵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대학등록금을 버느라 성적은 늘 낙제점이었다. 평생 이렇게 힘들게 살 것 같아 죽으러 산에 올라갔던 적도 있다. 내 눈에 보이는 어려운 아이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아난티 남해호텔 인근 남해해성고등학교 이사장이기도 하다.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살리기 위해 2006년 선뜻 맡았다. 이날 청소년행복재단에는 또 다른 김지희들이 있었다. 김민석 씨(25)는 성악가를 목표로 음대 입학 준비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은 김 씨에게 레슨비를 지원했다. 김 씨는 “여덟 살에 처음 가출했다. 가족이 때려 멍투성이였다. 늘 외로웠지만 아무도 없었다. 또래 집단에서 관심받으려고 힘을 과시했고 발을 빼기도 쉽지 않았다. 내겐 그저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했다. 이들은 입을 모았다. “나 같은 아이들 몇 명을 맡아 언니, 오빠가 되어 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장점을 살리게 될 것이다. 가족이 되어 주고 싶다.” 이 회장도 “지희가 주례를 서달라고 했을 때, 민석이가 노래를 열심히 부를 때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재단을 통해 많은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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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사회가치 변화 맞춰 노사관계 새틀

    삼성이 18일 자사의 노사관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한 것은 81년간 ‘비노조 경영’을 유지해온 삼성의 정책에 중요한 분기점을 맞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발표는 ‘노조 탄압’이라는 논란이 다시는 재연되지 않도록 기존의 노사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이라며 “일부 계열사를 넘어 삼성 전체로 확대될 것으로 보여 의미가 크다”고 봤다.○ 81년 ‘비노조 경영’ 원칙 사라져 1938년 창립 이래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뜻에 따라 ‘더 큰 보상을 통해 노조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는 ‘비노조 경영’을 고수했다. 1980년대에 노동운동이 거세질 때에도 노조가 없었다. 범(汎)삼성가인 신세계, CJ그룹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회사에 노동조합을 둬선 안 된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삼성 내부에서도 “창업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된다’고 한 것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사실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1985년 이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조가 있는 것이 회사나 종업원을 위해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삼성은 노조가 없어도 사우회, 협동회 등의 조직을 통해 협조가 잘되고 있으며 물질적 정신적 대우에 있어서 다른 회사보다 소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적이 있다. 삼성전자는 2009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비노조 정책’ 설명을 싣고 이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노조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복수노조 설립이 합법화되면서 논란은 거세졌다. 17일 1심에서 26명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난 삼성물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도 복수노조 설립 움직임이 불씨가 됐다. 신세계그룹 이마트에서도 2012년 제1노조가 결성되는 등 범삼성가의 비노조 경영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비노조 정책이란 표현을 뺐다. 삼성전자에는 올 들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지부 노조가 생겼다. 삼성전자서비스에는 협력사 직원들이 만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산하 지부가 있다가 협력사 직원들이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삼성 내 민노총 노조가 생긴 셈이 됐다. 현재 삼성 계열사 10여 곳에 노조가 설립된 상태다.○ “강성노조 확산” 우려도 지난해 포스코에 민노총 산하 노조가 결성된 데 이어 삼성전자에도 한국노총 지부가 생겨 사실상 10대 그룹 주요 계열사에 모두 상급단체 소속 노조가 들어선 상태다. CJ그룹은 ㈜CJ에는 노조가 없지만 CJ대한통운에는 민노총 지부가 있다. 삼성이 비노조 정책 폐기를 사실상 선언함에 따라 노조 설립이나 가입이 더욱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기업마다 강성노조 활동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임금 및 단체협약 관련 갈등이 생기거나 기업 경영 현안과 상관없이 상급단체와 발을 맞추기 위한 노조의 활동이 늘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여러 걱정스러운 면이 있지만 사회적 가치가 변하고 있고, 이에 부합하는 노사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기업들의 숙제”라고 말했다.김현수 kimhs@donga.com·유근형 기자}

    •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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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非노조 경영’ 81년만에 사실상 폐기

    삼성이 창립 81년 만에 비(非)노동조합(노조) 경영 원칙을 사실상 폐기한다. 외부 비판을 받아들이고 시대적 흐름에 맞게 노사 문화를 정립하겠다는 취지다. 18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공동 입장문을 내고 “노사 문제로 인해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회사 안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 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했다. 전날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관련 재판 1심 판결에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법정 구속되는 등 26명에게 유죄가 인정됐다. 1938년 삼성 창립 이래 81년 동안 삼성은 노조가 없어도 될 정도로 임직원의 권익과 복리 증진을 선제적으로 보장해 주겠다며 ‘비노조 경영’ 원칙을 인사노무 철학으로 내세웠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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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非노조 경영’ 81년만에 사실상 폐기…“미래지향 노사문화 정립”

    삼성이 창립 81년 만에 비(非)노동조합(노조) 경영 원칙을 사실상 폐기한다. 외부 비판을 받아들이고 시대적 흐름에 맞게 노사 문화를 정립하겠다는 취지다. 18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공동 입장문을 내고 “노사 문제로 인해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회사 안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 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했다. 재계는 삼성이 비노조 경영 원칙 폐기를 선언한 것으로 해석했다. 전날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관련 재판 1심 판결에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법정 구속되는 등 26명에게 유죄가 인정됐다. 1938년 삼성 창립 이래 81년 동안 삼성은 노조가 없어도 될 정도로 임직원의 권익과 복리 증진을 선제적으로 보장해 주겠다며 ‘비노조 경영’ 원칙을 인사노무 철학으로 내세웠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재판 당사자들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죄라고 주장하더라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적인 회사’라는 이미지를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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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강력한 준법감시 체계 만든다

    삼성이 강력한 준법감시 체계 구축에 나선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전 계열사에 감시 체계를 일상화하겠다는 취지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삼성의 주요 사업 분야별 대표 계열사 사장 10여 명이 이날 모여 준법경영 체계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로펌 태평양 변호인들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달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3번째 공판에서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에 “앞으로도 정치 권력자로부터 똑같은 요구를 받을 경우 뇌물을 공여하겠느냐”면서 “그런 요구를 받더라도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다음 재판 기일 전까지 제시해 달라”고 했다. 이 부회장 측이 “삼성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한 요구를 받고 수동적으로 지원했으니 다른 기업들의 사정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자 방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한 것이다. 다음 재판 기일은 내년 1월 17일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재판부의 요구에 형식적인 답보다 실질적으로 계열사별로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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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법행위 원천 차단할 시스템… 이재용의 ‘준법 프로그램’ 준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의 10개 사업 분야별 대표 계열사 사장 10여 명이 17일 모여 준법감시 체제 구축에 나선 데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 일정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심리를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6일 “정치권력자로부터 (뇌물을 달라는)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다음 재판 기일 전까지 제시해 달라”고 밝혔다. 내년 1월 17일이 다음 재판 기일이어서 삼성으로서는 한 달 정도밖에 여유가 없다. 앞서 정 부장판사는 10월 25일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을 언급하면서 실효적 준법감시 제도 마련 등을 주문했다. 정 부장판사는 당시 “삼성 내부에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이 사건과 같은 범죄가 재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과 그에 따른 미국 대기업들이 시행하는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참고하기 바란다”고 했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은 미국의 기업문화(corporate culture)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의 위법 행위를 억제할 장치를 만들어 범죄 행위를 방지하고 감지하며 보고하는 내부 시스템을 만들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해 존폐의 위기에 처할 정도의 벌금을 설정한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실효적인 감시체제를 만들 수밖에 없고, 재판부는 이를 철저히 검증하게 된다. 본보가 입수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에 따르면 기업이 실효적이고 진정성 있는 ‘준법감시 및 윤리프로그램(compliance and ethics program)’을 구축할 경우 재판부가 형량을 줄여줄 수 있다. 이 기준은 1991년 미국 연방 양형위원회가 연방법상의 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한 양형을 정할 때 연방 판사가 참고할 기준인 ‘기업에 대한 연방 양형 가이드라인(FSGO)’을 제정해 의회에 제출하며 생겨났다. 제8장에 명시된 FSGO는 기업이 유죄로 확정된 경우, 감형을 받기 위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기업에 대한 최종적 처벌을 감경하는 두 요소는 첫째 자율 준수 및 윤리프로그램의 존재, 둘째 자기보고(self-reporting)와 협업, 책임 인정이다. 이 중 자율 준수 및 윤리프로그램이 바로 이 사건 재판부가 명시한 준법감시 체제다. 삼성의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모인 것은 각 사업 분야별 특수한 환경에 맞게 일상적인 감시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효성이다. 삼성이 형식적인 준법감시 체제에 대한 계획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재판부가 무조건적으로 감형을 해준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가 참고하라고 한 제8장은 구체적이면서도 실효적인 체제를 요구하며, 이를 평가할 기준도 세세히 갖추고 있다. 제8장에 따르면 준법감시 체제에는 △범죄행위 방지를 위한 기준 및 절차 △효과적 훈련 프로그램 실시 △정기 평가 △내부고발자 보호 시스템 △인센티브와 제재 등이 요구된다. 삼성이 새 준법감시 체제를 마련하면 다른 대기업들에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박상준 speakup@donga.com·김현수 기자}

    •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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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 돌입… 반도체-폴더블폰 집중 논의

    삼성전자가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내년 사업 방향을 논의한다. 사장단 인사에 앞서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 것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처음이다. 1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일까지 사업부문별 주요 임원과 해외 법인장 등이 모여 2020년 경영 전략을 논의한다. 16∼18일은 모바일(IM)과 소비자가전(CE) 부문, 18∼20일에는 반도체(DS) 및 디스플레이(DP) 부문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김기남 DS부문장(부회장), 김현석 CE부문장(사장), 고동진 IM부문장(사장)이 부문별 회의를 주재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예년대로 불참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매년 6월과 12월에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어왔다. 각 부문장 주재로 글로벌 시장 상황과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다. 그간 12월 회의는 사장단 인사 이후에 열려 새로운 부문장이 새로운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올해처럼 사장단 인사가 유예된 상태에서 글로벌 전략회의가 열린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사장단 인사는 2017년 5월에야 발표됐다. 이번 회의에서는 미중 무역분쟁 추이 등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와 경제 상황을 분석하고 위기 극복 방안이 집중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부문의 경우 세계 반도체 경기 진단과 시스템반도체 투자 진행 상황 등이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부문은 내년 초 나올 새로운 폴더블폰 판매 전략과 중국 시장 공략이, 소비자가전 부문은 다음 달 예정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 준비 상황 점검 등이 논의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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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전자 8K TV, 美소비자기술협회 ‘8K UHD’ 첫 인증

    LG전자가 자사 2020년형 8K TV 전 제품이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CTA)의 ‘8K 초고화질(UHD)’ 인증을 받았다고 15일 밝혔다. TV 업체 중 이 인증을 획득해 공개한 업체는 LG전자가 처음이다. 미국 CTA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전시회인 CES를 주최하는 기관으로, 내년 1월부터 새로 정립한 ‘8K UHD’ 인증 기준을 운영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내년에 출시하는 모든 8K TV에 8K UHD 인증 로고를 적용하고, 1월 열리는 CES 2020에서 대거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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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中 시안공장에 9조5000억 추가 투자

    삼성전자가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반도체 공장에 80억 달러(약 9조512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단행한다. 시안은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다. 12일 중국 시안시정부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강봉용 삼성전자 부사장은 최근 시안시 위원회 왕하오(王浩) 서기 등을 만나 “80억 달러 규모의 (시안 제2공장) 2단계 투자가 순조롭게 시작됐다”고 전했다. 앞서 10월 중국 리커창 총리는 10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찾아 “이 공장에 총 150억 달러가 투자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시안 반도체 제2공장에 3년간 총 70억 달러(약 8조323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리 총리의 ‘150억 달러 투자’ 발언으로 삼성이 8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 바 있다. 삼성전자는 1차 투자로 지난해 2공장을 착공해 올해 말 완공할 예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2월 설 연휴 기간 시안을 찾아 2공장 생산 현장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2공장은 3차원 V낸드플래시를 생산하게 된다. 현지 언론인 시안일보는 “삼성전자의 2단계 투자는 2021년 하반기 완료될 것”이라고 전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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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래는 백조 세탁기에” “애니콜, 한국 지형에 강하다”

    “빨래는 시간의 낭비입니다. 빨래는 금성 백조 세탁기에 맡기시고, 여유 있는 현대가정을 가꿔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1970년 7월 30일 신제품 출시를 앞둔 금성사(현 LG전자)의 ‘백조 세탁기’ 신문광고 문구. 금성은 1969년 국내 최초로 국산 세탁기 백조(WP-181)를 내고 소비자들에게 세탁기가 왜 필요한지 설파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새로운 상품을 알리는 광고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백조 세탁기는 국내 최초 합성세제 ‘하이타이’와도 관계가 깊었다. 광고 하단에 “세탁기용 합성세제로 럭키 하이타이를 권합니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하이타이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신구 당시 락희유지(현 LG생활건강) 상무의 하이타이 개발을 측면 지원한 것이 바로 금성사의 백조 세탁기다. 마침 금성사가 1964년 세탁기 개발에 착수해 ‘빨래에는 세탁비누가 최고’라는 당시 임원들의 반대를 잠재울 수 있었다. 1966년 출시한 하이타이와 1969년 나온 백조 세탁기는 이른바 ‘공동 마케팅’을 통해 한국의 빨래 문화를 바꾼 것이다. 1979년 12월 17일. 40년 전 서울 명동 일대에 ‘핫 플레이스’ 롯데백화점이 생겼다. 롯데백화점 본점 광고는 ‘백화점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줬다. 당시 광고에는 “롯데쇼핑은 21세기 쇼핑스타일을 창조하는 수도 800만 시대 초현대식 백화점”이라며 “값싼 연필 한 자루에서 귀금속에 이르기까지 30만여 종의 물건을 갖췄다”고 썼다. 당시 백화점 세일 코너, 화려한 분수대, 식당가, 어린이 놀이공간 등은 물건을 사는 것이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쇼핑 문화를 알렸다. 1994년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은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 당시 세계 1위 휴대전화 업체 모토로라가 한국 시장을 뒤흔들려 하자 ‘애니콜은 산이 많은 한국 지형에 맞춰 개발한 국산’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 밖에 1993년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 남성 화장품 ‘트윈엑스’의 ‘나, X세대? 나를 알 수 있는 건 오직 나!’, 1999년 SK텔레콤의 이동통신 브랜드 ‘TTL’의 ‘처음 만나는 자유, 스무 살의 011’ 등은 젊은층의 부상을 반영한 광고 문구로 통한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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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넓고 아직 할일 많은데…”

    “서른세 살에 회장님을 만나 정말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점은 다음 세대에서도 존경을 받았으면 좋겠어요.”(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76) “1975년 은행에 취직했는데 김우중 회장이 함께 일하자고 찾아왔습니다. 나보다 후배였지만 이분이라면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부터 35년을 함께했네요. 아직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인데 먼저 가서 안타깝습니다.”(이경훈 전 ㈜대우 회장·84) 10일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사진)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는 김 전 회장과 함께 세계를 누비던 ‘대우맨’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우리도 한번 세계로 나가보자”며 뭉쳤던 청년들은 백발이 성성했다. 이들을 이끌던 김 전 회장은 폐렴으로 11개월 동안 입원해 있다가 전날 오후 11시 50분,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1990년대 말 ㈜대우의 무역부문 사장을 맡았던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장은 “마지막에 따로 남긴 말씀은 없었다. 다만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에서도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진행하던 글로벌청년사업가(GYBM) 양성사업이 앞으로 잘 유지되고 잘되면 좋겠다는 말을 평소에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소박한 가족장을 치르기 원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며 영욕을 누렸던 거인의 떠나는 길을 배웅하는 조화와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의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가 놓였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 배우 이병헌 등 각계 인사 3000여 명이 빈소를 찾아 김 전 회장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수원=허동준 hungry@donga.com / 김현수 기자}

    •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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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에 개척정신 불어넣어… 세계경영 신화 묻혀 안타까워”

    “10여 년 동안 고인의 전속 사진사로 함께 세계를 누볐어요. 출입국 도장을 하도 찍어서 80페이지짜리 여권을 8권 썼네요.” 이문근 전 대우 회장비서실 사진담당(60)은 1987년에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함께 파키스탄에 갔다. 여권 8권의 시작점이었다. 대우건설은 파키스탄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하고 있었다. 김 전 회장이 이 씨와 동행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20주년을 맞았던 대우그룹이 사사를 정리했는데 김 전 회장은 너무 글만 가득해 잘 읽히지가 않는다며 이 씨에게 “30주년 사사에는 사진을 멋지게 넣자”고 했다. 10일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만난 이 씨는 “호주와 뉴질랜드만 빼고 세계 구석구석을 다 다녔다”고 했다. 대우자동차의 히트상품 ‘르망’이 파키스탄 영업용 택시를 석권했을 때, 1992년 한중 수교, 한-베트남 수교 등 역사의 현장에도 함께했다. 하지만 사진이 담긴 사사는 끝내 나오지 못했다. 30주년이던 1997년에 외환위기가 오면서 대우그룹의 경영이 흔들렸고 1999년 해체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양말도 직접 빨던 세계경영 창시자 고인의 빈소를 찾은 옛 대우맨들은 김 전 회장의 별세를 애도하며 대우의 세계경영 정신이 잊혀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경훈 전 ㈜대우 회장(84)은 “김 회장은 ‘내 눈에는 세계 곳곳이 바닥에 전부 금이 깔린 것 같다’고 했다는데 실제 해외를 누벼 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76)은 “외환위기 때 정부와 잘 타협해서 (리스크를) 조금 줄였으면 대우가 해체되지 않았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대우맨들은 고인이 1분 1초를 아껴가며 쉬지 않고 일하던 경영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 회장은 해외출장 때마다 설렁탕을 파는 한식당을 찾았다고 한다. 밥 말아 후딱 먹고 일어서기 좋았기 때문이다. 꼬리곰탕을 시킨 어느 임원은 좀 늦게 나오는 바람에 한 숟갈 뜨다 말았다고 했다. 밥을 5분이면 다 먹는 회장이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사장(78)은 출장을 가서 같은 방을 쓸 때 먼저 잠이 들었다가 오전 4시에 깨어 보니 김 전 회장이 책을 보고 있었다는 일화를 꺼냈다. “왜 안 주무시나요”라고 물었더니 “오전 8시에 조찬이 있어서 잠을 안 자고 미리 책을 읽는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김 전 사장은 “열흘 전 나를 잘 못 알아보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맞이해서 손만 꼭 잡고 있었다”면서 “고인은 가족이면서 큰 스승이었다. ‘다음 세대가 잘살기 위해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가 그 양반의 생각이었다”며 애통해했다. 고인은 또 출장지에서 직접 양말을 빨고, 땀 찬 정장 재킷에 묻은 소금기를 직접 털어낼 만큼 소탈했다고 한다. ○ 하루 조문객 3000명, 해외서도 줄지어 정계와 재계에서도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주호영 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빈소를 찾았다. 재계에서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모자가 나란히 빈소를 찾아 약 40분간 머물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등도 조문했다. 고인이 ‘양아들’로 불렀던 배우 이병헌도 다녀갔다. 이 밖에도 고인이 생의 마지막까지 애정을 쏟았던 글로벌청년사업가(GYBM) 출신 20여 명이 한국을 찾아 애도를 표했다. 롯데 황 부회장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할 때 고인이 일궈 놓은 네트워크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프런티어 정신(개척자 정신)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한진 조 회장은 “김 회장의 작은아들과 친구”라며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왔다”고 했다. 현대차 정 수석부회장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따로 추도사를 내고 “회장님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헌신적인 애국자였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1998년 9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고인의 경기고 후배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과거 압축성장 시기 대표적 경영인이었다. 이런 분들이 경제를 빨리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일할 땐 잠도 제대로 안 자면서 젊을 때 박력 있게 일했는데 이제 편히 쉬길 바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베트남, 중국, 미국 등지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베트남 하노이 한인회는 이날 “고인은 한국과 수교하기 전부터 베트남 정부의 개혁과 개방에 이바지했고, 그 결과 현재 많은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터전을 잡을 수 있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인이 생전에 베트남에서 머물던 번찌 골프장에 빈소가 마련돼 11일부터 조문객을 맞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도 분향소가 마련됐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시 대우병원에도 분향소가 마련돼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김현수 kimhs@donga.com / 수원=허동준 / 김예윤 기자}

    •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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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배지만 배울 점 많아”…故김우중과 ‘세계경영’ 추억 나눈 대우맨들

    “서른세 살에 회장님을 만나서 정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점은 다음 세대에서도 존경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76) “1975년 은행에 취직했는데 김우중 회장이 함께 일하자고 찾아왔습니다. 나보다 후배였지만 이 분이라면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때부터 35년을 함께 했네요. 아직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인데 먼저 가서 안타깝습니다.”(이경훈 전 ㈜대우 회장·84) 10일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수원 아주대병원 영안실에는 김 회장과 세계를 누비던 ‘대우맨’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김 회장은 폐렴으로 11개월 동안 입원해 있다 전날 오후 11시 50분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빈소는 이날 오전 10시에 열렸지만 대우맨들은 빈소가 열리기 전부터 모여들어 과거 ‘세계경영’의 추억을 나누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90년대 말 ㈜대우의 무역부문 사장을 맡았던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장은 “마지막에 따로 남기신 말씀은 없었다. 다만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에서도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진행하던 해외청년사업가 양들성 사업이 앞으로 잘 유지되고 잘 되면 좋겠다는 말을 평소에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소박한 가족장을 치르기 원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며 영욕을 누렸던 거인의 떠나는 길을 배웅하는 조화와 조문객은 끊이지 않았다. 김 회장의 빈소 양 옆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 이명박 등 전현직 대통령,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명의의 조화가 놓여져 조문객들을 맞았다. 이날 오후 3시까지 1100여 명이 빈소를 찾아 김 회장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수원=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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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우중 前 대우그룹회장 타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사진)이 9일 오후 11시 50분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3세.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측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전했다. 장례식은 가족장 형태로 3일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은 폐렴 등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1년여간 투병생활을 하면서 본인의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어록으로 유명한 김 전 회장은 한국에 세계경영을 널리 알린 선구적 기업인이었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중, 경기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무역 업체이던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 만 31세이던 1967년 자본금 500만 원으로 대우실업㈜을 세웠다. 이후 수출 중심 전략과 인수합병으로 대우그룹을 한국 재계 2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1989년 출간한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발간 5개월 만에 100만 부가 팔리며 인기를 모았다. 세계경영의 꿈을 품고 당시 많은 인재가 대우그룹에 입사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1999년 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해체되면서 그는 해외 도피생활을 했고, 2006년 징역 8년 6개월에 17조 원대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징역형에 대해서는 2008년 1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빈소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 유족으로는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아들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딸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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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대우신화 일궈낸 세계경영 선구자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삶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는 500만 원으로 매출 71조 원의 재계 2위 기업을 일으킨 ‘세계경영’의 선구자였고, 분식회계와 경영비리로 얼룩진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낙인 찍혔다. 생의 마지막 10여 년은 청년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며 세계경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2017년 대우그룹 5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들(청년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고 죽으면 세상에 흔적을 잘 남긴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어린아이처럼 웃던 모습이 선합니다.” 대우그룹 최연소 임원으로 김 전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했던 백기승 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은 1990년대 초 김 전 회장으로부터 대우의 경영철학을 표현할 문구를 찾으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1967년 대우실업을 설립한 이후 김 전 회장의 시선은 늘 해외 수출에 있었다. 당시 회의에서 ‘세계경영’이란 문구가 나왔다. 백 전 원장은 “그 얘기를 들으시곤 ‘바로 그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전 회장을 독선적 경영인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지만 직원들에게 늘 열려 있었다”며 “인사를 단행할 때에도 늘 대상자의 마음을 살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전 회장과 대우는 한국의 경제성장 신화 그 자체였다. 자원도 기술도 없던 한국은 차입을 통해 중화학공업에 투자하고 수출로 급속히 성장했다. 대우도 그랬다. 김 전 회장은 서울 충무로에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직원 5명, 자본금 500만 원으로 ‘대우실업’을 만들었다. 업종은 수출. 셔츠와 내의류를 동남아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김 전 회장의 타고난 영업능력으로 대우는 1년 만에 대통령표창을 받을 만큼 성장했다. 수출로 번 돈은 한국기계공업, 옥포조선, 새한자동차 등 제조업 인수합병에 쓰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른 한국은 세계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김 전 회장이 1989년 펴낸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신드롬을 일으킨 것은 이 같은 대한민국의 자신감을 반영했다. 1990년대 대우는 대한민국의 자신감을 자부심으로 끌어올렸다. ‘세계경영’을 앞세운 김 전 회장은 1년 365일 중 280일을 해외에 체류할 정도로 폴란드, 헝가리, 중국, 베트남 등지로 뻗어나갔다. 대우의 해외 고용인력은 1993년 2만2000명에서 1998년 15만2000명으로 늘었다.○ 해외 도피의 나락으로 한국도 대우도 1997년 외환위기 앞에서 맥없이 당했다. 수출을 하려면 수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원-달러 환율이 두 배 가까이 오르자 빚더미에 앉은 꼴이 됐다. 게다가 대우는 차입경영에 의존했다. 금리가 30% 이상 뛰자 속수무책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던 그는 1998년 초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으로 ‘500억 달러 무역흑자론’을 내걸었다. 대우그룹 출신인 심준형 김앤장 고문은 “원화가치가 절하됐다는 것은 한국에 수출경쟁력이 생겼다는 의미도 된다. 김 전 회장은 수출을 확대해 외화를 벌어들여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당시 경제관료들은 한국 기업의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해 김 전 회장과 충돌을 빚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우그룹 전 임원은 “당시 청와대에서 경제수석 등과 큰 소리로 부딪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우자동차만 매각하면 다른 계열사는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여러 차례 “내가 전경련 회장을 맡지 않았더라면 경제관료들과 갈등을 빚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대우 해체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말해왔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경제관료들과의 갈등이 해체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차입을 통한 과잉 투자가 외환위기 충격을 가져온 주범이라는 시각도 여전히 맞서고 있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중국 옌타이에서 열린 자동차부품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종적을 감췄다. 외환위기에 대한 대우 책임론이 거세지고 검찰이 수사에 나설 기미가 보이자 잠적한 것이다. 2005년 한국에 돌아온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9253억 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청년에 대한 애정 김 전 회장은 대우 회장 시절부터 전문경영인을 자처했다. 회사를 2, 3세에게 승계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여전히 대우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 ‘대우맨’들은 김 전 회장이 사적으로 ‘오너’의 지위를 남용한 것을 보지 못했다고 전한다. 1990년 당시 23세이던 장남 선재 씨는 미국에 온 어머니를 공항으로 모시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고 한다. 대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가족 일에 회사 직원을 동원하는 일을 멀리 했다. 사적인 일은 철저하게 가족들이 해결하려 했다”고 전했다. 청년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대우는 199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취업이 어려운 이들의 고향으로 통했다. 직접 면접도 보며 이들의 진취적인 면모를 북돋워 세계경영을 이끄는 주역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2008년 사면 이후 주력한 일도 청년양성 사업이었다. 주로 베트남 하노이에 머물며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글로벌 청년사업가) 육성 사업을 시작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운영하는 GYBM은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취업이나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을 모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우그룹 신입사원을 뽑듯 창업의지와 도전정신이 있는 젊은이들을 선발해 교육하는, 이른바 ‘김우중 사관학교’다. 연간 20, 30대 청년 200여 명이 새로 선발돼 동남아 현지에서 교육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이 좀 나아지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살았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2년간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청년 교육을 시작했고…. 내가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고 죽으면 세상에 흔적을 잘 남긴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도전정신을 주문하기에 앞서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외국에 나가 보면 대한민국 사람처럼 똑똑한 사람이 없다. 청년들을 나무라기 전에 기성세대들이 기회를 만들어 줬는지 생각해야 한다. 교육을 하다 보면 처음에 꿈이 없던 학생들이 3개월만 지나면 스스로 변하는 걸 느낀다. 우리가 봐도 눈빛이 달라진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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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故김우중, 韓경제성장의 신화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삶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는 500만 원으로 매출 71조 원 재계 2위 기업을 일으킨 ‘세계경영’의 선구자였고, 분식회계와 경영비리로 얼룩진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낙인 찍혔다. 생의 마지막 10여 년은 청년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며 세계경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2017년 대우그룹 5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들(청년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고 죽으면 세상에 흔적을 잘 남긴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다”고 말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어린 아이처럼 웃던 모습이 선합니다.” 대우그룹 최연소 임원으로 김 회장을 가까이 보좌했던 백기승 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은 1990년대 초 김 회장으로부터 대우의 경영철학을 표현할 문구를 찾으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김 회장이 1967년 대우실업을 설립한 이후 김 회장의 시선은 늘 해외 수출에 있었다.당시 회의에서 ‘세계경영’이 문구가 나왔다. 백 원장은 “그 얘기를 들으시곤 ‘바로 그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전 회장을 독선적 경영인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지만 직원들에게 늘 열려 있었다”며 “인사를 단행할 때에도 늘 대상자의 마음을 살폈던 게 기억이 남는다”고 했다. 김 전 회장과 대우는 한국의 경제성장 신화 그 자체였다. 자원도 기술도 없던 한국은 차입을 통해 중화학공업에 투자하고 수출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대우도 그랬다. 김 전 회장은 서울 충무로에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직원 5명, 자본금 500만 원으로 ‘대우실업’을 만들었다. 업종은 수출. 셔츠와 내의류를 동남아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김 전 회장의 타고난 영업능력으로 대우는 1년 만에 대통령 표창을 받을 만큼 성장했다. 수출로 번 돈은 한국기계공업, 옥포조선, 새한자동차 등 제조업 인수합병에 쓰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한국은 세계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김 전 회장이 1989년 펴낸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가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신드룸을 일으킨 것은 이 같은 대한민국의 자신감을 반영했다. 1990년대 대우는 대한민국의 자신감을 자부심으로 끌어올렸다. ‘세계경영’을 앞세운 김 전 회장은 1년 365 중 280일을 해외에 체류할 정도로 폴란드, 헝가리, 중국, 베트남 등지로 뻗어나갔다. 대우의 해외고용인력은 1993년 2만2000명에서 1998년 15만2000명으로 늘었다. ●해외 도피의 나락으로 한국도 대우도 1997년 외환위기 앞에서 맥없이 당했다. 수출을 하기 위해 수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원 달러 환율이 두 배 가까이 오르자 빚더미에 앉은 꼴이 됐다. 게다가 대우는 차입경영에 의존했다. 금리가 30% 이상 뛰자 속수무책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던 김 전 회장은 1998년 초 당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으로 ‘500억 달러 무역 흑자론’을 내걸었다. 대우그룹 출신인 심형준 김앤장 고문은 “원화가치가 절하됐다는 것은 한국이 수출경쟁력이 생겼다는 의미도 된다. 김 전 회장은 수출을 확대해 외화를 벌어들여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당시 경제관료들은 한국기업의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국제금융기구(IMF)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해 김 전회장과 충돌을 빚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우그룹 전 임원은 “당시 청와대에서 경제수석 등과 큰 소리로 부딪힌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우자동차만 매각하면 다른 계열사는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뒤통수를 맞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여러 차례 “내가 전경련 회장을 맡지 않았더라면 경제관료들과 갈등을 빚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대우 해체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말해왔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경제 관료들과의 갈등이 해체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차입을 통한 과잉투자가 외환위기 충격을 가져온 주범이라는 시각도 여전히 맞서고 있다. 김 전회장은 1999년 10월, 중국 엔타이 열린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종적을 감췄다. 외환위기에 대한 대우 책임론이 거세지고 검찰이 수사에 나설 기미가 보이자 잠적한 것이다. 2005년 한국에 돌아온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 사면됐다. ●청년에 대한 애정 김 전 회장은 대우 회장시절부터 전문경영인을 자처했다. 회사를 2, 3세에게 승계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여전히 대우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 ‘대우맨’들은 김 전회장이 사적으로 ‘오너’의 지위를 남용한 것을 보지 못했다고 전한다. 1990년 당시 23세이던 장남 선재 씨는 미국에 온 어머니를 공항에서 모시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고 한다. 대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가족 일에 회사 직원을 동원하는 일을 멀리 했다. 철저하게 사적인 일은 가족들이 해결하려 했다”고 전했다. 청년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대우는 199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취업이 어려운 이들의 고향으로 통했다. 직접 면접도 보며 이들의 진취적인 면모를 세계경영을 이끄는 주역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2008년 사면 이후 주력한 일도 청년양성 사업이었다. 주로 베트남 하노이에 머물며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글로벌 청년사업가) 육성 사업을 시작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운영하는 GYBM은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취업이나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을 모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우그룹 신입사원을 뽑듯 창업의지와 도전정신이 있는 젊은이들을 선발해 교육하는, 이른바 ‘김우중 사관학교’다. 연간 20, 30대 청년 200여 명이 새로 선발돼 동남아 현지에서 교육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이 좀 나아지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살았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2년간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청년 교육을 시작했고…. 내가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고 죽으면 세상에 흔적을 잘 남긴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도전정신을 주문하기에 앞서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외국 나가 보면 대한민국 사람처럼 똑똑한 사람이 없다. 청년들을 나무라기 전에 기성세대들이 기회를 만들어 줬는지 생각해야 한다. 교육을 하다 보면 처음에 꿈이 없던 학생들이 3개월만 지나면 스스로 변하는 걸 느낀다. 우리가 봐도 눈빛이 달라진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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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타계…향년 83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3세.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측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전했다. 장례식은 가족장 형태로 3일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은 폐렴 등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약 1년여 간 투병 생활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어록으로 유명한 김 전 회장은 한국에 세계경영을 널리 알린 선구적 기업인이었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중, 경기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무역 업체이던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 만 31세이던 1967년 자본금 500만 원으로 대우실업㈜을 세웠다. 이후 수출 중심 전략과 인수합병으로 대우그룹을 한국 재계 2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1989년 출간한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발간 5개월 만에 100만 부가 팔리는 인기를 모았다. 세계경영의 꿈을 품고 당시 많은 인재들이 대우그룹에 입사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1998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1999년 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해체되면서 해외 도피생활을 했고, 2006년 징역 8년 6개월에 17조 원대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징역형에 대해서는 2007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하고,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 유족으로는 미망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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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철, 반도체 진출 도쿄선언’ 최고의 장면

    “반도체 산업에 대해 신앙에 가까운 집념을 갖고 계시는데 계기가 뭔가요?” 1985년 11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의 대담에서 동아일보 기자가 이렇게 질문하자 이 회장이 답했다. “내가 일본에서 만난 이나바 히데조 박사가 ‘앞으로 산업은 반도체가 좌우한다. 경박단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또 1982년 미국에 가보니 반도체 진출이 늦어질수록 뒤처진다는 마음이 굳어져 현지에서 본사로 전화를 걸어 준비하라고 했지요.” 1983년 2월 8일, 이 회장은 반도체 중에서도 첨단 기술인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유명한 ‘도쿄 선언’이다. 당시 삼성은 가전제품용 고밀도집적회로(LSI)도 겨우 만들던 때라 미국 인텔이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었다. 이 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잘못하면 삼성그룹 절반 이상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성이 아니면 이 모험을 하기 어렵다고 봤다”고 회고했다. 도쿄 선언은 동아일보가 외부 자문위원 30명과 함께 선정한 ‘한국 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중 최고의 순간으로 꼽혔다. 동아일보가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경제·경영학계, 이공계 교수, 경제단체 연구원장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2위와 3위는 한국 경제의 오늘을 떠받치고 있는 철강과 자동차 출발의 순간이었다.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에서 처음 쇳물을 배출한 장면, 1976년 한국 최초의 독자 개발 승용차 ‘포니’의 탄생이 각각 뽑혔다. 최원식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는 “자동차는 당시 첨단산업의 대표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김현수 kimhs@donga.com·염희진 기자}

    •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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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못할거라 했지만… ‘반도체-철강-포니차’ 보란듯 해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래 청진에 가자. 어디 가서 어떤 노동을 해도 지금보다야 못하겠는가.”(정주영 동아일보 에세이 ‘나의 기업 나의 인생’ 중) 1931년 강원 통천군 시골마을의 배고픈 열여섯 살 소년은 구장집이 받아보는 동아일보에 실린 구인광고를 보자 가슴이 뛰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드릴 땔감 값을 1, 2전씩 빼돌려 가출 자금을 모았다. 첫 번째 가출은 아버지에게 덜미 잡혀 실패로 끝났다. 세 번째 가출도 동아일보에 난 부기학원 광고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소를 판 돈을 훔쳐 서울로 야반도주해 부기학원을 다녔다. 몇 달 뒤 아버지가 찾아와 “종손은 고향을 지켜야 한다”고 하소연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네 번째 가출은 성공이었다. 서울 쌀가게의 배달원 정주영은 특유의 바지런하고 정직한 성품으로 주인과 손님의 신용을 얻었다. 주인이 쌀가게를 넘겨준 1937년, 22세의 청년 정주영은 서울 신당동 일대 ‘경일상회’ 사장이 됐다. 이 쌀가게는 오늘날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을 탄생시킨 사업 밑천이 됐다.○ 기업가 정신으로 일군 한국 기업 100년 동아일보가 자문위원 30인과 함께 100개를 선정한 ‘한국 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중 상위 20개 가운데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장면만 6개였다. ‘한국 최초의 독자개발 승용차 포니’(1976년·3위), ‘현대차 설립’(1967년·6위), ‘현대중공업 1호선 진수 및 인도’(1974년·8위) 등이 해당된다. 1915년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19년 3·1운동 이후 등장한 신문, 철도, 산업화 등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조선·자동차·건설 강국을 일궈낸 정 회장의 삶 자체가 한국 경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위 중 삼성과 관련된 장면도 6개다. 1위인 ‘이병철 도쿄 선언’(1983년)을 비롯해 ‘삼성전자 설립’(1969년·4위), ‘이건희 신경영선언’(1993년·7위) 등이다. 포항제철 건설과 관련된 ‘포항제철 첫 쇳물 생산’(1973년·2위), ‘박태준의 하와이 구상’(1969년·15위)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미국에서 제철소 건설에 필요한 차관을 얻는 데 실패한 박태준 당시 포철 사장이 하와이에서 목 놓아 울다가 대일청구권 자금 활용 아이디어를 떠올려 오늘날 포스코를 만든 그 장면이다. 정구현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은 정부가 먼저 중화학산업 육성책을 내놓았고 기업이 이에 발맞춰 경제성장을 이뤘다. 당시 한국으로서는 불가능한 과제를 가능케 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들의 출현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1919년 첫 근대식 주식회사로 꼽히는 경성방직(경방)이 등장한 이후 창업가 정신으로 뭉친 기업인들이 농업 한국을 경공업 한국으로, 이어 중화학공업 한국, 첨단 전자산업 한국으로 퀀텀점프시키는 주역이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이 제철소, 조선소, 자동차 공장,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세계는 비웃었다. 투자나 기술 자문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현대차 설립이 1967년인 것은 마침 미국 포드가 1966년 한국에 진출할 목적으로 사업 파트너를 찾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회사를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포드가 기술 이전이 가능한 합작사 설립에는 발을 빼자 현대차는 독자 생존밖에 답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포니’다.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포철 용광로에서 쇳물이 나오자 박태준 사장을 비롯한 창립요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1968년 세계은행이 “한국의 제철공장은 엄청난 외환비용에 비춰 경제성이 의심되므로 종합제철 건설을 연기하고 노동 및 기술 집약적인 기계 공업 개발을 우선 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 5년 만의 쾌거였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한국에 전자산업을 뿌리내린 혁신적 기업인이었다. 한국 최초의 라디오, TV, 세탁기, 냉장고는 모두 금성사(현 LG전자)에서 나왔다. 한국인의 일상을 바꾼 화장품(럭키크림), 하이타이(최초의 합성세제) 등도 LG의 작품이었다. ▼ “불가능을 가능하게… 기업가 정신이 오늘의 한국 일궈내” ▼○ 한국을 넘어 세계로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선언’은 한국이 ‘품질 경영’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한 획기적 순간이다. 시작은 일상에서 비롯됐다. 삼성 사내방송인 SBC가 한 프로그램에서 세탁기 뚜껑이 불량인데도 라인 작업자가 태연하게 부품을 칼로 깎아낸 뒤 대충 끼워 맞추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했다. 당시 일본에서 독일로 출장길에 올랐던 이 회장은 기내에서 이 소식을 듣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 비서실로 전화해 200여 명의 삼성 수뇌부를 독일로 불러들였다. “아내와 자식만 빼놓고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명언이 이때 나왔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미국이 일본 견제에 나서면서 ‘엔고’ 시대가 열렸다. 세계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값이 비싸지면서 1990년대 초반 한국 상품은 잘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불량품을 칼로 깎아 억지 제품을 만드는 수준의 품질로는 일류기업 근처에도 못 간다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었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 학장은 “1990년대 삼성의 혁신적 경영방침, 조직개편 등은 많은 다른 기업에 영향을 줬다. 품질경영 선언 역시 재계로 확산돼 한국 기업의 체질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00년 이후 글로벌 정상에 오르는 한국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2000년 한국 조선산업이 수주량, 건조량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휩쓸었다. 2006년 삼성전자 TV는 소니를 이기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1999년 미국에서 실시한 파격적인 10년, 10만 마일 무상 보증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아 자동차 5대 메이커가 되기도 했다. 1986년 ‘엑셀’로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지 13년 만이었다.○ 이동통신·인터넷·뉴 키즈의 등장 1990년대 인터넷과 이동통신, 386 기업인의 등장은 한국 경제의 지형을 또 한 번 바꿨다. 현재 재계 3위인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우여곡절 끝에 김영삼 정부 출범 둘째 해인 1994년 인수했다. 1996년 세계 최초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통신강국으로 떠오르게 됐다. 1995년 한메일이라는 e메일 서비스를 바탕으로 한 다음의 등장(19위)과 1999년 네이버 서비스의 시작(12위)은 ‘뉴 키즈’ 기업인 시대를 예고했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27세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32세에 회사를 차렸다. 한국 기업사의 주요 명장면 중에는 화려하게 등장했다 허무하게 사라진 ‘대우 해체’(1998년·10위)도 있다. 세계 경영의 자부심, 외환위기의 아픔, 어떤 기업도 영원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장면이었다. ▼ 자문위원 30명, 5개분야 나눠 사건 중요도 평가 ▼퀀텀점프 100장면 어떻게 뽑았나동아일보가 내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선정한 ‘한국 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은 취재팀이 자문위원 30명과 함께 자료 수집, 설문, 분석 등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한국 기업사 주요 사건을 연도별로 1차 선정한 후 이를 △한국 기업사 △기술혁신 △거시경제 사건 △인수합병(M&A) △혁신 상품 및 브랜드 등 5가지 분야로 나눠 자문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경제·경영학을 비롯한 이공계 분야 대학교수, 국책연구소, 경제단체, 전직 관료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은 중요한 장면에 순위를 매겼고 취재팀은 이를 바탕으로 총 100개를 확정했다. 자문위원 명단(30명·가나다순)△ 권오경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한국공학한림원 회장 △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겸 대외부총장 △ 김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 김승우 순천향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경영부총장 △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나정효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 △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 서영경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이니셔티브(SGI) 원장 △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 양현봉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실장 △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 △ 정구현 연세대 명예교수 △ 정희철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 △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최원식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 하영원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 한상만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 김현수 kimhs@donga.com·염희진·황태호 기자}

    •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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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이노, 中 배터리 셀 공장 ‘BEST’ 준공

    SK이노베이션이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합작해 중국 장쑤성 창저우시 금탄경제개발구에 건설한 배터리 셀 공장 ‘BEST’의 준공식을 5일 열었다. 이날 열린 준공식에는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쉬허이 베이징자동차 동사장, 왕옌 베이징전공 동사장, 창저우시 왕취안 당서기, 진탄구 디즈창 당서기 등 약 500명이 참석했다. BEST의 준공으로 SK이노베이션은 해외에 첫 글로벌 배터리 셀 생산 거점을 확보하게 됐다. 또 중국 5대 자동차 기업으로 꼽히는 베이징자동차, 중국 유력 전자부품 제조사인 베이징전공과 합작사를 설립함으로써 향후 중국 배터리 시장 선점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는 평가다. BEST 공장은 16만8000m²(약 5만 평) 부지에 전극라인 2개, 조립라인 4개, 화성라인 4개가 들어섰다. 생산능력이 전기자동차 약 15만 대 분량인 7.5GWh에 달하며 2020년 본격 양산이 시작된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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