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택

이은택 팀장

동아일보 디지털랩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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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정책사회부, 산업부, 오피니언팀, 정치부, 국제부를 거쳤고 정책사회부 교육/노동팀, 사회부 사건팀 데스크를 지냈습니다. 현재는 디지털랩 디지털뉴스팀장으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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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27~202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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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이은택]일정 샜다고 기업인 회동 이틀전 무산시킨 靑

    김현철 대통령경제보좌관과 8대 그룹 최고경영자(CEO)의 20일 회동이 무산된 일을 두고 재계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원래 청와대 계획대로였으면 이들은 이날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로 모여 기업 현안이나 정부 경제정책 운용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눴어야 했다. 하지만 회동 이틀 전 언론을 통해 일정이 새나가자 청와대는 계획을 접었다. 회동 추진을 아는 한 재계 관계자는 “계획이 공개된 것을 청와대가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만남은 여전히 검토 단계로 확정이 안 됐다”고 해명했지만 아직 회동은 불투명하다. 언론을 통해 회동 무산 소식을 접한 기업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들은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일정을 조율한 대한상공회의소도 난감한 표정이다. 대한상의는 청와대의 요청을 받고 꼬박 한 달 전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8개 그룹 CEO와 일정을 조율하느라 진땀을 빼왔다. 청와대가 회동을 막판에 튼 이유는 비공개 일정인데 의도치 않게 공개됐다는 것이다. 참여 기업인 명단이 예상과 달라 취소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행여 알려지면 안 될 대화를 나눌 예정이어서 그랬던 것이라면 애초에 잘못된 만남을 기획한 것이다. 노동계를 의식해 대기업 그룹들과의 만남이 알려지는 걸 부담스러워했다면 현 정부는 언제까지 한쪽 날개로 나라 경제를 이끌려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참여 기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면 미리 알렸어야 한다. 어느 정권이든 기업인들과 소통 채널을 만들고 경제 현안에 머리를 맞대는 일은 바람직하다. 기업은 정부의 각종 지원이나 규제 철폐를 필요로 하고, 정부는 경제성장이나 일자리 창출에 기업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국가경제를 떠받치는 양대 축인 정부와 기업인의 만남은 부끄럽거나 숨길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의혹은 ‘비공개 만남’에서 잉태됐다. 김 보좌관이 비공개를 고집하는 지금 상황은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의심받을 여지가 크다. 무슨 일이든 당당하게 공개하고 만나는 편이 낫다. 일단 일정은 공개하고, 밝히기 어려운 대화는 비공개로 하면 된다. 의사소통은 내용만큼이나 형식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들은 이런 일에 대놓고 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운 처지다. 회동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대한상의 역시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갑 중의 갑’인 정부가 먼저 ‘을’의 마음을 헤아리고 세심하게 신경 쓰는 자세가 아쉽다. 이은택·산업부 nabi@donga.com}

    • 201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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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대 피임약… 외환위기땐 ‘IMF탈출’ 광고

    ‘아나보라 가격 인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요 사업목표의 하나인 인구 증가 문제에 따른 가족계획사업의 중요성에 비추어 정부에서는 먹는 피임약의 대량 염가 공급을 위해 관세를 면세했습니다.’ 1968년 1월 30일 동아일보에 실린 바이엘의 피임약 광고엔 정부 경제개발 계획까지 언급됐다. 박정희 정부는 소득이 낮은 국가에서 다산(多産)은 곧 식량 부족과 보건의료 문제 등 사회 전반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판단해 이런 정책을 폈다. 동아일보 지면 광고에는 시대에 발맞춘 기업의 우여곡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69년 3월 7일자엔 국내 처음으로 조선항공사업사에서 민영화된 대한항공 광고가 실렸다. 한진그룹 창업자인 고 조중훈 당시 대한항공 사장은 ‘국제항공계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대한항공을 이루어 놓을 것을 기약하는 바’라며 광고에 친필 한자 서명도 실었다. 1997년에는 주택은행, 1999년에는 한국토지신탁의 민영화를 알리는 광고가 실렸다. 한국 경제를 뿌리째 흔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도 광고에 흔적이 남았다. 본보 광고에 가장 먼저 IMF가 언급된 것은 1997년 12월 4일자였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는 ‘IMF의 치욕적 타결, 1년 반 안에 극복하겠습니다!’라는 선거 광고를 실었다.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삼미그룹 등 대기업 부도사태가 줄줄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한보철강은 1997년 1월 17일자에 ‘한보 당진제철소 냉연·열연공장 준공!’ 전면 광고를 낸 지 불과 6일 만에 부도가 났다. 위기는 기회를 낳는다고 했다. 한 컴퓨터 판매업체는 외환위기 사태 열흘 만에 ‘IMF 탈출 초특급 작전’이라는 이름의 컴퓨터 염가 판매 광고를 발 빠르게 냈다. ‘IMF 시대 필독서, 백만장자가 되는 법’ ‘IMF 시대, 영어가 경쟁력’(오성식 잉글리시) ‘최고의 품질로 IMF를 극복합니다’(에이스침대) ‘IMF 이겨내는 한국인의 힘’(파로마가구) 등 외환위기를 이겨내자는 광고문구는 경제위기를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승화시켰다. 에버랜드는 ‘가장 IMF답게 에버랜드로 오시는 법’이라며 대중교통 안내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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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의 이 한줄]‘클린 에너지’ 태양광이 여는 미래 혁명

    《‘태양광발전은 눈앞에 와 있다. 그리고 지금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산업을 붕괴시키고 있다.’ ―에너지 혁명 2030(토니 세바·교보문고·2015년)》 올해 한국을 달군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논쟁이었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신고리 원전 추가 건설이 잠시 중단됐고 전례 없는 ‘국민 공론화’까지 거쳤다. 우리 국민들은 에너지 문제가 심각한 사회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의 저자 토니 세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다소 급진적으로 ‘태양광 발전이 지배하는 미래’를 전망한다. 그는 현재의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발전은 물론이고 원자력 발전까지 20∼30년 내 모두 태양광 발전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태양광 발전 비중이 전체 발전량의 1%에도 채 못 미치는 우리나라에서 보기에는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근거가 있다. 책에는 가구 전문기업 이케아(IKEA) 사례가 언급됐다. 이케아의 판매점이나 물류센터는 거대한 상자 모양으로 옥상이 평평하다. 2013년 이케아는 미국 20개 주 39개 판매점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설치했다. 미국의 이케아 판매점 중 89%가 태양광 설비를 갖췄다. 세계 최대 유통체인 월마트도 옥상에 태양광발전을 구축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 27개국, 1만400개의 월마트 점포 모두에 태양광발전을 설치한다면 원자력발전소 9기 분량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태양광 예찬론자’인 세바 교수는 태양광 패널이 모든 건물 옥상을 뒤덮은 미래를 제시한다. 태양광발전 가격이 기존 화석연료 발전비용보다 저렴해지고 방식이 편리해지는 순간 교차점이 온다는 것이다. 이는 화석연료 산업의 붕괴, 내연기관 자동차의 멸종, 완전히 새로운 운송산업과 에너지산업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바 교수가 예찬한 ‘깨끗한 태양광의 미래’가 현 세대 안에 올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국가마다 자연환경도 다르고 에너지 정책도 다르다. 하지만 전 국민이 스마트폰과 엄지손가락으로 세계의 실시간 정보를 검색하고, 책상 위 인공지능(AI) 스피커가 사람과 대화하는 지금의 세상도 2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늘.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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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의, 中최대 기업연합체와 손잡아… “양국 경협 재가속”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한국과 중국이 함께 만들기로 약속한 한중 고위급 기업인 대화가 재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해소뿐만 아니라 양국 경제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가 14일 업무협약을 맺은 한중 고위급 기업인 대화는 내년에 가동된다. 총 28명으로 구성될 이 협의체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최태원 SK 회장, 쩡페이옌(曾培炎) CCIEE 이사장의 참여가 거의 확정적이고 나머지 25명은 내년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중국 현지에서 열린 업무협약 체결식에 한국 기업인을 대표해 참석했으며 이번 협의체 출범에도 산파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가 기대를 거는 이유는 모임의 성격 때문이다. 그간 한국과 중국 정치·경제계 모임이나 회동은 정부 간 또는 민간기업 간 만남의 성격이 짙었다. 이 때문에 양국 기업인들이 모여 나눈 이야기나 의제들이 정부에는 전달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반대로 정부 인사 간 접촉에서는 기업들의 실질적인 고충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출범한 협의체는 양국 재계에서 일명 ‘트랙(Track)1.5’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트랙1이 정부 간의 대화, 트랙2가 기업 간의 대화라면 이 협의체는 그 중간 성격이라는 것이다. 기업인뿐만 아니라 정부의 경제정책을 집행했던 전직 관료와 전문가 그룹이 합세했다는 점에서 이같이 분류됐다. CCIEE는 한국에는 다소 생소하지만 중국 최대의 기업 연합체 성격의 단체다. 2009년 중국 정부가 주도해 만들었고 경제, 외교 분야의 최고 브레인이 모였다. CCIEE 수장인 쩡 이사장은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국무원 부총리 등을 거친 민간외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국에서는 ‘최고의 경제 관리자’로 통한다. 페트로차이나, 시노켐, 캠차이나 등 중국의 국영기업과 민간기업 300여 곳이 CCIEE 회원이다. CCIEE는 이미 미국, 일본, 유럽연합(EU)과 트랙1.5 채널을 운영해 오고 있다. 2011년부터 미국과 구축해 경제 현안을 논의했다. 토머스 도너휴 미국 상의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과 워싱턴을 오가며 열린 회의에서 참석 회원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리커창 중국 총리,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 등을 접견해 무역·통상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채널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철폐 논의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일본과는 2015년 11월 도쿄에서 처음 회의를 연 뒤 2차 회의까지 이어졌다. 일본 측에선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 등이 참석했고, 중국 측은 중국은행, 페트로차이나 등이 참석해 무역, 투자, 금융 등의 이슈를 논의했다. 회의 멤버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나기도 했다. EU와는 올해 9월 처음 교류를 시작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트랙1.5는 정치적 환경 변화에도 경색되지 않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협의체 구성에 다양한 중국 전문가가 참여한다면 양국 경제협력의 수준과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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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 금호타이어 인수설 부인

    SK가 일각에서 불거진 ‘금호타이어 인수설’을 공식 부인했다. 현재 SK그룹이 진행하는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미미하고 금호타이어 강성노조도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15일 SK는 “SK그룹은 현재 금호타이어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공시했다. 이날 오전 일부 언론과 금융가에서 ‘SK가 금호타이어 채권단에 지분 인수를 타진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공시 요구가 올라오자 이를 부인한 것이다. SK가 먼저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SK 관계자는 “우리가 먼저 제안한 적 없다. 채권단 쪽에서 먼저 물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SK가 이날 인수설을 부인하기는 했지만 내부에서 검토는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그룹 중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여력이 있거나 인수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곳은 SK뿐”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타이어산업과 연결고리가 전혀 없고,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등도 약 1조 원에 달하는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기엔 자금 사정이 좋지 않거나 인수할 이유가 없다. SK가 그나마 석유화학 계열사(SK이노베이션)를 갖고 있어 타이어산업과 접점이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가 검토 끝에 인수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접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선 타이어 산업 자체가 전통 제조업이기 때문에 연구나 기술개발을 통해 이익률을 크게 높이기 어렵다. 게다가 금호타이어는 매년 노사가 대립하며 파업 사태를 겪어왔다. SK는 대부분의 계열사가 노사 갈등 없이 임금체계 개선 등을 합의해왔는데, 강성노조가 버티고 있는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면 SK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크다. 금호타이어 채권단에 따르면 현재 금호타이어 매수를 두고 채권단과 논의 중인 업체는 없다. 다음 주 금호타이어 실사 최종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까지 매수 희망자가 나오지 않으면 금호타이어는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보고서의 결론에 따라 현재처럼 채권단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상태로 남거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 법정관리를 통해 채무를 정리한 뒤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일명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 가능성도 제기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nabi@donga.com·송충현·서동일 기자}

    • 201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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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유화학업계, 중국발 훈풍에 함박웃음

    칼바람이 불어오는 13일 오전 인천 서구 율도터미널 제2부두. SK인천석유화학 공장에서 약 7km 떨어진 이곳에서 1만 t급 선박 한 척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중국 남동부 항구도시 다롄. 공장에서 7km를 뻗어 나온 예닐곱 가닥 파이프라인 뭉치들은 ‘로딩 암’(배에 액체를 집어넣거나 빼내는 설비)을 거쳐 선박 안으로 연결됐다. 그 안에서는 SK인천석유화학이 만든 순도 99.9%의 PX(파라자일렌)가 배로 옮겨지고 있었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석유화학제품 PX는 우리가 흔히 생활에서 접하는 플라스틱 용기, 페트병, 합성섬유 등 무궁무진한 제품의 원료로 쓰인다. SK인천석유화학이 창사 이래 이곳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부두에서 작업 중인 SK인천석유화학 관계자는 “여기서 수출되는 PX 거의 전량을 중국이 가져간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출항하는 PX 수출선은 매달 20척(약 85만 배럴) 정도다. SK인천석유화학은 단일 공장으로는 PX 생산능력 국내 최대(연 130만 t) 규모다. SK인천석유화학은 지난해 총 122만 t의 PX를 중국으로 수출했고 올해는 1∼3분기(1∼9월)에만 120만 t을 수출해 지난해보다 연간 수출량은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연이어 경신하며 함박웃음을 지은 석유화학업계가 서둘러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그와 무관하게 자체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를 늘리고, 인수합병, 제품 포트폴리오 강화 등을 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내년에는 중국 수출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생산량 증설에도 경쟁이 붙었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석유화학업체의 대(對)중국 수출량은 1∼10월 161억2700만 달러(약 17조5500억 원)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8%나 늘었다. 내년에는 중국의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현지 화학업체들의 가동률 하락과 폐플라스틱 수입 금지 조치로 인한 새 제품 수요 증가가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우호 메리츠종금 연구원은 “중국에서 불어오는 훈풍이 미국 ECC(ethane cracking center·에탄분해설비) 신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 우려를 압도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각 업체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동화, 스마트 설비 도입 및 운영에도 힘쓰고 있다. 이날 찾아간 SK인천석유화학 내 아로마공장 조정실은 세계 최고 기술력으로 손꼽히는 미국 석유화학기업 UOP사의 공정설계 기술을 그대로 도입했다. 연구개발 투자를 2014년 5100억 원에서 지난해 6800억 원으로 늘린 LG화학은 올해 이를 1조 원까지 끌어올렸다. 고부가가치 제품에 속하는 폴리올레핀, ABS,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의 매출도 상승 추세이고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 매출도 크게 올랐다. LG화학과 선두를 다투는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 화학기업 타이탄 지분 전부를 1조5000억 원에 인수했고 최근에는 현지 증시에 4조 원 규모로 상장시켰다. 한화토탈은 에틸렌, 프로필렌 등 제품 생산능력을 높이기 위해 설비 증설을 계속해 오고 있다. 한화토탈은 지난해 한화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1조 원 이상 영업이익을 냈다. 한화종합화학도 태양광 분야 발전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술 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관련 기업 상장(IPO)도 관심사다. SK는 SK루브리컨츠의 내년 상반기(1∼6월) 상장을 거의 공식화했고 SK인천석유화학도 2019년경에는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 한화종합화학, 현대오일뱅크, 에이케이컴텍 등도 상장 추진 및 성공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는 기업들이다. 이지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설비의 대규모 증설 우려가 줄어들면서 내년 양호한 수급 밸런스가 가능하고 정상화된 밸류에이션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인천=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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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中협력 모범’ 꼽힌 SK-CJ그룹 비결은?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천을 건넌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포럼에서 “동주공제의 마음으로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경제계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해빙기에 들어갈지 관심이 쏠린 가운데 SK와 CJ의 중국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협력 성공사례로 조명을 받았다. 두 사례 모두 중국에서 오랜 기간 꾸준히 협력을 추진한 것이 공통점이다. 이날 포럼에서 두 나라 기업인들은 ‘새로운 25년을 향한 한중 경제협력 방향’을 주제로 경제협력 성공사례를 공유하고 미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대표 협력사례로 선정된 SK중한석화는 SK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이 중국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과 합작해 세운 석유화학기업이다. SK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중국 프로젝트인 SK중한석화는 최근 4년간 1조3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올해도 이미 1∼3분기(1∼9월)에 세전이익 5300억 원을 올리며 연간 목표치(4100억 원)를 조기에 초과 달성했다. 지난달에는 7400억 원 규모의 설비 효율화 재투자를 발표했다. 이정훈 SK종합화학 중국투자관리실장은 사례 발표에서 “한국과 중국의 지리적, 경제적, 문화적인 근접성이 중한석화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 외 SK와 시노펙 최고경영진의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 강력한 추진력도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최태원 SK 회장은 2006년 후베이(湖北)성 당서기 면담을 시작으로 8년에 걸친 노력 끝에 2014년 중한석화를 출범시켰다. 당시 최 회장을 비롯한 양사 경영진은 추가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SK중한석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앞으로 제2, 제3의 중한석화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자”고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식품,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CJ그룹도 대표 협력사례로 선정됐다. 베이징에서 큰 인기를 끄는 CJ바이위(白玉) 두부 사업이 대표적이다. ‘백흘불염(百吃不厭·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두부를 사랑하는 중국 베이징에서 CJ그룹은 1위 사업자다. CJ그룹은 2007년 첫 진출 당시 유통 인프라 마련 방법으로 중국 얼상그룹과 합작회사를 세우는 방법을 택했다. 중국 기업의 유통 인프라와 CJ그룹의 마케팅 및 연구개발(R&D) 역량의 결합으로 지금의 성공을 거뒀다. 박근태 CJ그룹 중국본사 대표는 이날 “CJ그룹은 1994년 중국 대륙에 처음 진출한 뒤 현재 주요 4대 사업군에 모두 진출해 있을 정도로 중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은 중국 기업과 전략적 파트너십 등을 통해 윈윈할 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CJ그룹은 또 중국 모바일 결제서비스 위쳇페이, 알리페이 등과 연계해 멤버십 서비스를 진행하고, 텐센트 등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업체가 운영하는 동영상 플랫폼에 한국 콘텐츠 공급도 진행 중이다. 중국 기업으로는 전기자동차 분야 1위 업체인 BYD와 TV 제조업체 TCL의 사례가 발표됐다. BYD는 지난해 삼성전자의 투자를 받고 전기자동차 배터리 분야 협력을 모색 중이다. TCL은 삼성디스플레이의 액정표시장치(LCD) 관련 투자를 유치했으며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형 LCD 패널을 공급받고 있다. 이은택 nabi@donga.com·서동일 기자}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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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공장 방문에 장남 데리고 간 김승연

    김승연 한화 회장(65)이 문재인 대통령 방중(訪中)을 앞두고 중국 현지 공장 점검에 나섰다. 그룹의 주력 태양광 사업을 맡고 있는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34)도 동행했다. 12일 한화는 김 회장이 11일(현지 시간) 중국 장쑤성 난퉁시에 있는 한화큐셀 치둥공장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치둥(啓東)공장에서는 태양광 발전 관련 셀과 모듈이 생산된다. 김 회장은 중국 고사를 인용하며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중국 명언이 있듯 치둥공장이 미래 태양광사업을 이끌 큰 물결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중국 등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장점을 살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회장이 치둥공장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회장은 13일부터 문 대통령의 방중 경제사절단에도 참가한다. 이날 행사에는 장남 김 전무도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김 전무는 최근 한화 연말 인사에서 승진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승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 전무는 업무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논란이나 구설에 한 번도 오르지 않는 등 그룹 후계자 자리를 굳히고 있다. 한화는 이례적으로 두 사람이 함께 행사에서 사진을 찍은 모습도 공개했다. 김 회장과 김 전무가 외부 공식 행사에서 함께 사진 촬영을 한 것은 2011년 5월 그룹 핵심가치 선포식 이후 6년 만이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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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중 경제사절단 260여명… 역대 최대 규모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한다. 사드 갈등으로 얼어붙은 양국 경제관계가 해빙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11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총 260여 명 규모의 방중 경제인단을 발표했다. 한국 대통령의 역대 해외순방 경제사절단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중 때는 156명이 동행했고, 현 정부 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6월 방미(訪美) 때는 52명이었다. 재계 1위 삼성은 구속된 이재용 부회장 대신 지난달 승진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이 간다. 윤 부회장은 지난달 문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에도 동행했다. 현대자동차는 고령의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동행한다. 현대차는 사드 갈등으로 롯데와 더불어 큰 피해를 본 기업이다. 중국 투자를 늘리는 SK는 총수 최태원 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이 동행한다. LG는 구본무 회장 대신 구본준 부회장이 참석한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 두산은 박정원 회장, CJ는 손경식 회장, LS는 구자열 회장이 참석한다. 신동빈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롯데는 이원준 부회장(유통BU장)이, 포스코는 권오준 회장 대신 ‘중국통’ 오인환 철강부문 사장이 참석한다. 권 회장은 문 대통령의 6월 방미, 11월 인도네시아 방문 때도 동행하지 않았다. 한진은 조양호 회장 대신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참석한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정택근 GS 부회장도 참석한다. KT는 황창규 회장 대신 계열사 비씨카드 채종진 사장이 참석한다. 대기업 외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중견기업 29곳, 중소기업 160여 곳, 기관이나 단체 40여 곳도 참석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한 경제사절단은 13일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와 공동 개최하는 한중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한다. 일부 총수는 문 대통령과의 간담회, 국빈 만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14일에는 KOTRA 비즈니스 파트너십, 16일에는 한국무역협회 한중 산업협력포럼이 열린다. 이번 방중이 바로 양국 경제관계 해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6월 방미 때도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총 40조 원 규모의 직간접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미국 보호무역주의 해소를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 기업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을 검토하는 등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6월 방미 때도 중국과의 사드 갈등은 그보다 더 골이 깊은 문제이기 때문에 한 번의 방중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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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토탈, PE공장 증설 3620억 투자

    한화토탈이 폴리에틸렌(PE) 생산시설 증설에 3620억 원을 투자한다고 11일 밝혔다. 한화토탈은 이날 “합성수지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충남 서산 한화토탈 대산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계획대로 2019년 말 증설이 끝나면 연간 추가적으로 40만 t의 폴리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폴리에틸렌은 원유에서 얻어진 플라스틱 화학물질의 일종으로 각종 용기나 병, 포장용 필름, 섬유, 건축자재를 만드는 데 쓰인다. 한화토탈은 현재 연간 72만 t의 폴리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증설이 끝나면 연 생산 능력이 112만 t에 달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확대 능력과 가격경쟁력도 갖출 것으로 보인다. 한화토탈은 “새 공장은 하나의 압출기에서 투명한 색상 이외에 다양한 색상의 특화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고객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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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연 부총리, 박용만 찾아가 ‘재계 달래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예정에 없이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아 기업 달래기에 나섰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만나 다음 주부터 기업 현장을 직접 찾겠다는 약속도 했다. 박 회장이 국회를 찾아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기업 현장의 혼란이 ‘입법부의 책임’이라는 강성 발언을 쏟아낸 지 하루 만이다. 김 부총리는 박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혁신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기존 중소기업, 대기업도 현 정부 혁신성장의 중요한 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번 전달해 주신 제언집을 국무회의에서 모든 국무위원에게 전달했다”며 “제가 바로 대통령 옆자리에 앉기 때문에 따로 말씀드려 꼭 읽어보시라고 일독을 권해드렸다”고 했다. 박 회장은 지난달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 부총리를 만나 재계가 정부에 바라는 요구사항을 담은 제언집을 전달한 바 있다. 박 회장은 김 부총리의 발언에 “(기업이) 일을 벌이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 규제가 있었다면 없애주고, 허들에 막혀 새로 진출하기 어렵게 돼 있는 것도 풀어 달라. 가급적 기업들이 일을 많이 벌여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부총리는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모두 일자리를 유지하고 만드는 데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김 부총리는 “다음 주부터 기업들을 찾아가겠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산업 분야를 차별하지 않고 만나겠다”고 했다. 첫 방문 기업은 LG다. 김 부총리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14일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를 방문할 예정이다. 향후 기업 방문 일정은 대한상의가 조율한 뒤 기재부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총리와 박 회장의 회동은 전날 저녁 늦게야 결정됐다. 7일 박 회장이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기업들의 절박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단축 입법이 되지 않는다면 입법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자 기재부에서 대한상의에 급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재계 달래기’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성난 기업 여론을 달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김 부총리가 재계를 달래기 위한 소방수로 나섰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달라질 게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단축하는 입법안이 무산된 것도 여당 내 친노동계 의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여당 집행부도 손을 든 의원들을 설득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김 부총리의 이날 방문도 ‘퍼포먼스’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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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핵 가결후 1년, 달라진 대한민국 8개 분야 新풍속도

    9일은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박근혜 정부의 무능에 실망한 국민들이 촛불시위로 서울 도심을 메우자 여야는 압도적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전방위로 터져 나온 국정 농단 비리는 그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넓고 깊게 병들어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인(人)의 장막 속 제왕적 대통령을 떠받치는 폐쇄적인 청와대와, 정권의 장단에 맞춰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른 권력기관, 낯부끄러운 정경유착과 문화·체육계 비리까지 한국 사회에 켜켜이 쌓인 부조리와 모순이 한꺼번에 민낯을 드러냈다. 그 후 1년. 대한민국은 사상 첫 현직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 9년 만의 정권교체를 거치며 새로운 역사의 순간들을 지나왔다.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를 다시 만든다)’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국가 혁신을 내걸고 부처마다 적폐 청산 기구를 만들어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은 탈(脫)정치를 선언했고 국정 농단의 진원지가 됐던 체육계와 문화계도 뿌리 깊은 불공정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제도 개선을 시작했다. 하지만 과감한 개혁 요구와 우려가 엇갈리면서 진통도 뒤따르고 있다. 적폐 청산에 대한 피로감과 저항이 나타나는가 하면 급격한 경제·노동 개혁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2·9 탄핵소추안 통과’ 1년을 맞아 사회 전반의 달라진 변화상을 돌아보고 우리가 나아갈 이정표를 고민해 본다.  ● 청와대대통령에 대면보고 늘고 靑앞길 24시간 개방… “이벤트성 소통 대신 국회와 대화 확대를” 지적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1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은 청와대일 것이다. 대통령이 일하는 공간이 먼저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참모동인 여민관 3층에 집무실을 마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여민관에서 약 700m 떨어진 본관에서 주요 집무를 봤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 핵심 참모가 아니면 감히 청와대 본관에 갈 엄두를 못 냈는데, 지금은 대통령이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수직적인 청와대 업무 문화도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 정부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참모들이 대통령 발언을 받아 적기만 하는 풍경이 자주 연출됐다. 하지만 지금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와 각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토론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서관들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 국민청원제 운영 등 직접 민주주의 요소가 확대된 것도 눈에 띈다. ‘열린 청와대’ 기조하에 오후 8시 이후 통행이 금지됐던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공개된 것도 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 이벤트적 요소에 치우치거나, 국회와 소통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대변인에게만 맡기지 않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처럼 수시로 브리핑을 하겠다”고 했지만 취임 후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일하는 춘추관을 찾은 것은 한 번뿐이었다.   ● 공직사회상사 지시라도 정당성 따져묻는 공무원 늘어… 타부처와 협업땐 이메일-서류로 근거 남겨 국정 농단 사태를 온몸으로 겪은 공직사회는 업무 처리의 책임과 권한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투명성과 정당성을 중시하는 문화는 확산됐지만 한편으로는 책임질 만한 일은 아예 안 하겠다는 보신주의가 강화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블랙리스트 논란을 겪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서기관급 직원 A 씨는 “업무 지시에 대해 반문하는 후배들이 예전보다 늘었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상사의 지시라도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A 씨는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 쫓겨났으나 결국 명예를 회복한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사례가 교훈이 됐다”고 말했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도 생겼다. 정부 부처의 한 과장급 직원은 “다른 과나 타 부처와 협업할 때 반드시 이메일이나 서류로 근거를 남긴다”고 말했다. 다만 성과를 위해 부하 직원들을 압박해야 하는 상사들은 복잡한 심경이다. 지시사항을 꼼꼼히 기록하는 직원들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대통령 지시사항을 적은 안종범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수첩으로 인해 국정 농단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자신의 지시사항이 언제 부메랑이 돼 되돌아올지 불안하다. 업무지시에 아예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 정부 부처 공무원 B 씨는 “직무유기보다 직권남용의 형량이 더 높다”며 “문제될 만한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 재계삼성-SK “10억 이상 후원금은 이사회서 결정”… 주요 기업 기부금 집행 작년보다 13% 줄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탄핵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집단 중 하나가 기업이다. 특히 대기업은 최순실 일가에 대한 ‘뇌물공여’ 집단으로 낙인찍혀 사회적으로 ‘적폐’라는 굴레를 써야 했다. 기업들은 이후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바로 기부금 시스템이다. 더 이상 기부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가는 ‘검은돈’이 되지 않도록 기업에서부터 자정 노력을 기울였다. 삼성전자는 올 2월 이사회를 열고 ‘10억 원 이상 기부금, 후원금, 출연금’은 반드시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또 사전심사를 위한 심의회의를 만들고 분기마다 운영 현황, 집행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기로 했다. 과거에는 500억 원을 넘는 후원금 등에만 사내이사로 구성된 경영위원회를 거쳤는데 기준 금액도 대폭 강화하고 절차도 깐깐하게 바꾼 것이다. 같은 시기 SK그룹도 10억 원 이상의 후원금은 의무적으로 이사회 의결을 거치고 외부에 공개하기로 했다. 기부가 위축된 점은 ‘그늘’로 꼽힌다. 기업경영성과평가업체 CEO스코어 조사에 따르면 올해 1∼3분기(1∼9월) 국내 주요 기업들의 기부금 집행 규모는 총 9788억 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4%나 줄어든 규모다. 같은 기간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38.1% 늘었는데 기부금은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포항 지진을 계기로 다시 성금 물꼬가 조금씩 터지긴 했지만, 여전히 기업과 경제단체들은 쉽사리 연말 기부에 나서길 주저하는 분위기다.   ● 문화계블랙리스트 올랐던 예술가에 정부 지원 재개… 출판진흥원 등 심사위원 선발때 공정성 강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 지원에서 배제됐던 예술가와 단체들이 탄핵 이후엔 오히려 지원 사업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가 발표한 국내 최대 규모의 창작 지원 사업인 ‘2017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에선 22개 작품 중 5개가 지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극단의 작품이었다. 박근혜 정부 기간 무려 14차례에 걸쳐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돼 최대 피해자로 꼽힌 극단 ‘하땅세’가 대표적이다. 극단 놀땅은 같은 작품을 제출했는데 지난해에는 떨어지고 올해는 선정됐다. 문학계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터키 이스탄불국제도서전에 참가한 한국 작가 6명 중에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시인 안도현, 천양희, 소설가 김애란 등이 포함됐다. 출판계도 달라졌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올 7월 발표한 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790종에는 ‘윤이상 평전’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를 다룬 김탁환 작가의 소설 ‘거짓말이다’와 진보 성향의 공지영 작가 수필집 등이 대거 뽑혔다. 세종도서는 정부가 전국 공공도서관 등에 비치할 우수 도서를 선정해 구매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최근 문화예술지원기관들은 블랙리스트 집행기관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지원심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다. 문예위는 1000여 명의 후보자 풀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심의위원을 선발하고, 출판진흥원은 외부에서 추천받은 3∼5배수의 후보군 중에서 심사위원을 선발하고 있다.   ● 법조계檢, 피의자 인권침해 논란 밤샘조사 금지 추진… 전국법관대표회의 “인사 투명화” 大法에 요구 법조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주요 기관의 수장이 모두 바뀌며 가장 변화가 두드러진 분야 중 하나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이후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검찰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밥 총무’ 문화를 폐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밥 총무’는 부서의 막내 검사가 식사 참석 인원 확인, 메뉴 선정과 식당 예약 등을 하는 문화다. 검찰은 밥 총무를 없애고 부서 내 회식 횟수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인권 침해 논란을 빚어온 밤샘 조사를 금지하고 변호사가 없는 상태에서 검사가 피의자를 면담하는 일을 제한하는 등 피의자 인권을 대폭 강화하는 수사 관행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또 중요 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사검사와 상급자의 의견이 다를 경우 이를 기록으로 남기도록 해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로 한 것도 큰 변화로 꼽힌다. 법원도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부 개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와 1, 2심 법관 인사를 분리하는 ‘법관 인사 이원화’ 방침을 밝히며 개혁의 첫 청사진을 내놓은 상태다.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 외압 의혹을 계기로 꾸려진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도 4일 올해 마지막 회의를 열어 법관 인사 기준 투명화 방안 등을 대법원에 요구했다. 이들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개헌 논의에 대법원이 직접 참여해 사법제도 개혁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 노동계최저임금 대폭 오르고 朴정부 2대 지침 폐기… 靑-정부-노사정위 등에 노동계 출신 포진 “노총이 발전해야 대통령도 발전한다는 뜻에서 ‘노발대발’로 하겠습니다.” 10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계와의 대화’에서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꺼낸 건배 제의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계 인사들을 초청해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외국 정상급으로 대접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발대발’은 빈말이 아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 인상, 2대 지침(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폐기 등 노동계의 요구는 일사천리로 현실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 권력’이란 말까지 나온다. 현재 청와대에는 노동계 출신 행정관들이 다수 일하고 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물론이고 각종 위원회에도 노동계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렇게 형성된 ‘노동 권력’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직접 고용 명령, 김장겸 전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등 강성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급부상한 노동 권력은 현 정부의 적잖은 부담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근로시간 단축안은 노동계 반대로 연내 처리가 무산됐다. 최저임금 개편도 노동계의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 최근 건설노조는 마포대교를 점거하는 등 점점 강성으로 치닫고 있다. 노동계의 한 원로는 “노무현 정부 초기 친(親)노동 정책을 폈지만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등을 돌렸다”며 “노동계가 경제사회 주체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도 같은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체육계정유라 입시비리 불똥에 승마 특기전형 급감… 학점 모자라는 선수들 외부 대회 출전도 못해 “올해 승마 특기로 대학에 갈 학생의 절반 이상은 진학을 포기해야 할 상황입니다.” 승마 국가대표 출신의 한 지도자는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시발점이 된 ‘정유라 씨의 승마 비리와 이화여대 입시 비리’로 승마계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한탄했다. 그에 따르면 대학들이 승마 특기 적성 전형을 없애는 바람에 예년에 비해 고교 3학년 승마 특기 적성 입학 예정자 30여 명 중 반수 넘게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교육부가 2020학년도부터 체육특기자 전형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 그동안 쉽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인식된 ‘승마 특기자’는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승마장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선수가 아닌 승마를 즐기는 일반인들도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발길을 끊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수도권 승마장을 찾는 승마 동호인도 절반 이하로 줄었다. 문 닫는 승마장도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 한마디로 승마계는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한 승마 관계자는 “비리를 저지른 인간을 욕해야지 왜 승마까지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5년 가다 보면 승마하는 사람은 씨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대학의 체육계열 학사관리는 더욱 철저해졌다. 일정 학점을 따지 못하면 선수들에게 대회 출전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 이화여대 무용과 3학년 김모 씨는 “예전엔 가끔 휴강도 있었는데 수업과 관계없는 토론을 시키는 등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고 전했다.   ● 온라인의견 다르면 판사가 내린 판결에도 악플 공격… 일부 누리꾼은 익명성 뒤에 숨어 극단적 대결 올해 1월 19일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조의연’이라는 이름이었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51·사법연수원 24기)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날이다.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조 부장판사를 향한 선정적 비난과 유언비어가 쏟아졌다. 판사 개인을 향한 집단 공격은 이제 일상처럼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새 정부까지 출범했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는 아직도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폐’로 몰고 ‘악플 테러’를 가한다. 합리적 근거는 물론이고 일관성도 찾아보기 힘들다.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43·사법연수원 32기)는 올 3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편에서 ‘소신과 양심을 지키는 판사’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달 10일 강 판사가 김재철 전 MBC 사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적폐 판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반인도 예외는 아니다. 9월 ‘240번 버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누리꾼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고 서울시 홈페이지에 몰려가 “운전사를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뒤늦게 거짓이 밝혀졌지만 240번 버스 운전사는 회복하기 힘든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서울의 한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온라인 문화의 고질적 병폐가 더 심해졌다. 합리적 토론이 사라지고 익명성에 숨은 극단적 대결의 장이 됐다”고 지적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유근형 기자 noel@donga.com세종=이건혁 gun@donga.com / 유원모 기자·이은택 기자 nabi@donga.com김윤수 기자 ys@donga.com·유성열 기자 ryu@donga.com양종구 yjongk@donga.com·유덕영 기자·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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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연금, 기업 길들이는 칼로 이용되나

    “국민연금이 KB금융 주주총회에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에 찬성했다는 뉴스를 본 순간 머리칼이 주뼛 섰습니다.” “국민연금이 국민 돈이지 정부 돈입니까. 왜 정부 마음대로 의결권을 행사하나요.” 국민연금공단이 정부 방침에 따라 주주권 행사 조짐을 보이면서 재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기업들은 주주권 행사라는 원칙은 인정하지만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과정에서 정부 입김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구조라고 보고 있다. 특히 현 정부가 진보진영과 노동계 여론을 등에 업고 전방위로 대기업을 압박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정권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언제라도 기업을 흔들 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기업성과 평가업체 CEO스코어와 함께 매출 기준 상위 30대 기업을 분석해 보니 국민연금은 평균 8.89%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며 삼성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삼성물산 지분은 7.12%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기업의 경영권이나 지분을 둘러싼 쟁탈전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거나 이사회 구성에 영향을 미치면서 특정 기업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추진하면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해 5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중소기업중앙회, 코스닥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과 함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위해서는 공개적인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도입을 주문했다. 전경련은 “2014년 이 제도를 도입한 일본 상장사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기업이 투입한 자본에 대한 수익의 비율)을 분석한 결과 변화가 없다”며 무용론을 주장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의 이익률이 늘고 실업률이 줄어드는 등 제도의 효과를 봤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특성상 정부 입김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 전이지만 국민연금이 정권 입김에 얼마나 취약한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국민연금이 연금가입자의 수익성 증대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주주권을 행사하려는 순간 ‘사실상 국유화’ 논란 등은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을 목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려는 분위기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속 가능한 재벌개혁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정부의 환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니고 정의의 수호자도 아니다”라며 “연금 가입자의 충실한 자산 관리인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공공부문이 관리하는 자산을 동원해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역량에 의문을 갖는 시선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기금운용본부의 연간 주식 의결권 행사는 약 3000건에 이른다. 하지만 이를 심도 있게 검토할 수 있는 조직은 사실상 운용전략실 산하 책임투자팀 소속 7명에 불과하다. 대개 주주총회 2주 전쯤 나오는 안건을 촉박한 시간 안에 분석해야 한다. 사안이 중대한 경우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외부 기관에 자문을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대다수 안건은 내부에서 분석할 수밖에 없다. 외부 자문을 거치는 것도 완전한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KB금융의 노동이사 선임 건과 관련해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민연금에는 찬성을 권고한 반면 다른 기관 투자가들에게는 주주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노조의 이익에 치우칠 수 있다며 반대를 권고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의견을 낸 것은 주주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국민연금의 내부 의결권 행사 지침을 기계적으로 따랐기 때문이라는 게 기업지배구조원 측의 설명이다. 반면 글로벌 자문사인 ISS는 주주이익 침해 우려를 이유로 반대를 권고했으나 국민연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본 연금적립금관리운용(GPIF)처럼 아예 외부 위탁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은 국내 주식투자를 모두 외부에 맡기고, 펀드 내 주식에 대한 의결권도 자산운용사가 행사한다. GPIF는 결과를 모니터링하는 등 관리만 맡는다. 여기엔 “직접 투자를 하는 운용사들이 기업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대기업 계열인 자산운용사들이 기업친화적인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있지만 반대로 국민연금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산운용사들이 완전히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견해도 적지 않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의결권 행사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자위원회의 의결권 행사 과정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은택 nabi@donga.com·박성민 기자}

    •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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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만 “근로시간 단축 혼란, 입법안한 국회 책임”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이 7일 국회를 찾아가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내년부터 예상되는 기업 현장의 혼란을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의 절박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단축 입법이 되지 않는다면 입법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평소와 달리 수위 높은 발언도 쏟아냈다. 대한상의는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을 포함해 국내 기업 전체를 대표하는 단체다. 박 회장의 작심 발언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이 바짝 위축된 가운데 국회가 입법적인 해결을 미루는 데 대한 위기감의 반영이다. 박 회장은 이날 오전 11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실을 방문했다. 박 회장의 국회 방문은 올 들어 다섯번 째다. 홍영표 위원장과 환노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 국민의당 간사인 김삼화 의원이 함께 박 회장을 만났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이후 박 회장이 인사말을 시작하면서 굳어졌다. “답답한 마음에 국회를 다시 찾았다”고 운을 뗀 박 회장은 “최저임금제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근로시간 단축은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가 이대로 흘러간다면 국회의원들이 기업의 절박한 사정을 외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여야는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되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내용의 3당 합의안을 만들었지만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일부 여당 의원이 강하게 반대해 처리가 무산됐다. 박 회장은 “합의안에 반발도 많아 저로서도 기업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이 대단히 크다”면서도 “중소기업은 절대적으로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합의안 통과를) 입법부에 호소했다”고 했다. 최저임금제에 대해선 “취지와 달리 고(高)임금 근로자까지 편승하는 형태”라고 지적했다. 예상보다 강한 발언에 홍 위원장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홍 위원장은 “경제계에서 많은 우려가 있다고 들었고 보완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저희 상임위원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은택 nabi@donga.com·서동일 기자}

    •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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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 “근로시간 단축땐 12조 추가부담 우려… 보완입법 시급”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7일 국회를 찾아가 호소한 것은 불확실성에 떠는 기업들의 어려움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다. 박 회장은 2주 전인 지난달 23일에도 같은 사안으로 국회를 찾았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인들의 위기감이 크다. 이날 박 회장과 함께 국회를 찾은 이강신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은 “중소·중견기업이 많은 인천에서는 걱정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인천에서 중견기업인 영진공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날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중소기업 경제상황 인식 및 정책 의견 조사’에 따르면 기업인의 불안감이 그대로 표출됐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현안을 묻는 질문에 전체의 64.7%(복수응답)가 ‘근로시간 단축 및 최저임금 상승 등에 따른 고용시장 변화’를 꼽았다. 실제로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10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08년 8월 경기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이 성남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뒤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은 1주간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원칙적으로 정하고 12시간 내에서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해 연장근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1주간’을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으로 ‘5일’로 봤고 소송을 제기한 환경미화원들은 ‘7일’로 봤다. 정확한 명문 규정이 없어 생긴 일이다. 그간 성남시는 토, 일요일 근무를 휴일근로로 보고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했지만 환경미화원들은 ‘휴일근로+연장근로’로 보고 2배를 지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5년 9월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지만 지금까지 판결을 미루고 있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복지연구팀장은 “사회적 파장과 충격이 큰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가 입법적으로 해결하라는 대법원의 암묵적인 제스처”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달 28일 법안심사소위에서 합의에 실패하면서 법안 처리는 불투명해졌다. 이에 정부는 기존 행정해석을 폐기하는 방식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고 대법원은 판결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보고 내년 1월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도입(직원 300명 이상 2018년 7월, 299명 이하는 2020년 1월, 49명 이하는 2021년 1월 등)한다는 여야 합의안의 법제화가 계속 늦어지고 그 사이 대법원의 판결이 선고돼 근로시간 단축이 전면적으로 이뤄질 경우 기업들이 동시에 충격파를 받을 수 있다. 국회가 법을 만들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부와 정부에 떠넘기며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기업은 근로시간이 단축돼도 추가 고용이나 수당 지급에 다소 여력이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신정기 이사장은 “중소기업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작은 노동정책 변화에도 큰 타격을 받는다. 여야 잠정 합의안대로 대책을 세워야 할지, 더 지켜봐야 할지 종잡을 수 없어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우리나라 기업 전체가 12조 원이 넘는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중 약 8조6000억 원이 300명 미만 사업장이고 약 3조3000억 원은 30명 미만의 영세 소규모 사업장이다. 박 회장은 “규모와 형편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해 달라는 경제계의 호소가 치우친 의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합의안에 대해 기업의 반발도 거세고 기업을 설득하는 데 부담이 크지만 입법이 조속히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문제도 재계에서 수차례 현 정부와 정치권에 개선을 요구해 왔다. 7월 최저임금위원회가 11년 만에 두 자릿수 인상률인 ‘16.5%’ 인상을 결정한 데 대해 인건비 부담을 이기지 못한 일부 중소·중견기업은 공장의 해외 이전 의사를 밝혔고 패스트푸드 업계와 음식점, 주유소 등에서는 무인자동화기기 도입이 빠르게 확산됐다. 재계에선 외국같이 정기상여금 등을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지만 관련 제도 개선은 불투명한 상태다. 이은택 nabi@donga.com·서동일 기자}

    •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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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재위 ‘M&A 고용승계’ 완화… 법사위 ‘빈교실 어린이집’ 제동

    ● 법인세법 개정안 일부 수정“합병뒤 3년간 80% 승계유지 조항… 현실 동떨어진 과잉규제” 지적 수용신규채용도 고용승계 인정하기로과잉 규제 논란이 일었던 정부의 법인세법 개정안 중 고용승계 규정을 국회가 손질했다. 정부가 낸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기업 인수합병(M&A)이 얼어붙을 것이라는 재계의 반대를 정치권이 받아들인 것이다.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전날 열린 회의에서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법인세법 개정안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는 데 합의했다. 당초 기재부는 기업 합병 시 고용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자산 양도 차익에 대한 세금 납부를 연기해 주는 조건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합병회사가 합병이 이뤄진 뒤 3년 동안 피합병기업 직원 80% 이상의 고용을 승계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3년 동안 이 비율을 유지하지 못하면 근로자의 이직이나 퇴직 사유를 불문하고 법인세 연기 혜택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는 “개정안은 현재 기업 현실에 맞지 않는 과잉 규제로 기업의 인수합병 동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국내 중견기업의 연평균 이직률은 25%에 달한다. 국회는 이를 반영해 개정안 내용 중 ‘피합병기업 직원의 80% 이상’을 ‘피합병기업과 합병기업을 더한 직원 전체의 80% 이상’으로 바꿨다. 예를 들어, 직원 10명인 기업(A·피합병기업)을 직원 40명인 기업(B·합병기업)이 인수합병하는 경우 기재부 원안에 따르면 A 직원 3명 이상이 회사를 나가면 법인세 납부 연기 혜택이 박탈된다. 하지만 국회 수정안을 적용하면 A사와 B사를 합한 50명 직원 중 11명 이상이 회사를 나가기 전까지 혜택이 유지된다. 또 기존 정부안은 합병 뒤 새로 고용하는 직원 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존 재직 중인 직원 수만을 따졌으나, 국회 수정안은 합병 뒤 새로 고용하는 직원까지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기존 직원 10명이 나가도 새로 10명을 뽑으면 이직자나 퇴직자가 없는 것으로 인정해 준다는 의미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수정된 법안은 충분히 기업의 현실을 반영하고 규제 정도도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재심의 결정野 “교육계와 협의안해 문제” 반대… 복지장관 “활용 근거 만들자는 것”부모들 “이익단체 눈치보기” 분통쓰지 않는 초등학교 빈 교실에 국공립어린이집을 만들 수 있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 회부해 다시 심의하기로 했다. 야당 의원들이 “교육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아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해당 초등생이나 학부모, 교사가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데 이들 의견을 구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민간·가정 어린이집 충원율은 약 70%다. 이런 민간·가정 어린이집을 지원해 국공립으로 전환하면 영유아 안전 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상직 의원은 “초등학교 6학년이면 170∼180cm까지 크는데, 1m도 안 되는 영유아를 같이 섞어 보육하겠다니, 그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통계로 잡히는 유휴 교실도 병설 유치원을 먼저 확대해야 해서 (실제 국공립어린이집으로 활용할) 유휴 교실은 별로 없다”며 우회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러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해당 법률안은 강제 조항이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이라며 “이미 전국 20개 학교에서 (빈 교실을) 어린이집 등으로 활용하고 있어 그에 대한 근거 조항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공립어린이집을 확대하려는 복지부는 학교의 빈 교실 활용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보고 이 법안을 강력히 추진했다. 학교 내 어린이집 안전사고 책임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있고, 어린이집과 학교 사이 공간과 출입로를 분리하겠다는 대안까지 제시했지만 소위 회부를 막지는 못했다. 영유아 부모들은 국공립어린이집·유치원 확충이 다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그동안 민간 어린이집이나 사립 유치원의 압박에 관련 법안이 번번이 좌절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보육 기능까지 떠맡게 될 학교의 반발이 더해지자 의원들이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우경임 woohaha@donga.com·최우열 기자}

    • 201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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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비가뭄 겨우 넘자… 이제 내수 빙하기 걱정”

    “올해 들어 소비지표가 좋아졌다지만 현장에선 아직 그 온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경기가 풀린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찰나였는데 금리 인상 때문에 다시 시장이 얼어붙을까 걱정입니다.”(국내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 30일 한국은행이 전격 금리 인상을 발표하자 기업들은 산업계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충격파는 적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업종, 기업 규모에 따라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금리 인상이 ‘내수 빙하기’로 이어지는 상황까지도 정부가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금리가 인상되더라도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 대응에는 일정 부분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2010년 7월부터 2012년 6월 사이 단행됐던 2차 금리 인상 당시 농산물 가격과 유가가 불안정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최대 5%에 육박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 산유국들의 가격 조정과 중동 정세 불안으로 내년 유가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구원은 “금리 상승 국면에서 국제 유가가 계속 불안할 경우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이란 상품 제조비용이 늘어 가격이 오르고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플레이션은 기업의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이 가정 경제 위협, 소비 여력 축소로 이어지면 소비재 분야는 판매 감소와 매출 악화로 연결된다”고 경고했다. 실제 국내 경제 연구기관들은 하반기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을 ‘가계 경제 악화’로 예측하고 있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올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올 하반기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는 가계부채 증가(26.5%)가 가장 많이 꼽혔고, 기업투자 위축(24.5%) 소비 부진(22.5%)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번 금리 인상이 사전에 예상된 것인 만큼 기업들이 사전 대응책을 마련해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소비재와 직결된 유통업체는 이날 영향 분석에 분주했다. 지난해 ‘소비 가뭄’을 겪고 이제야 숨통이 트이나 했는데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에선 2012, 2013년부터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전세금이 폭등하고 이를 감당하지 못해 대출이 늘어난 시기”라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이자 부담이 늘어나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트렌드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더 싼 것을 찾기 위해 해외 직접구매, 온라인 비교 구매를 늘리고 유통기업은 연중 할인 행사를 여는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달리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들도 불안한 분위기였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의 60%가 변동금리인 상황에서 이번 금리 인상이 미칠 영향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의 투자 심리가 일정 부분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들은 비(非)은행 금융기관의 대출이 많아 체감 금리 인상은 더욱 크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환율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초기에 원화 강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중국이나 동남아 기업들과 ‘가격경쟁력’을 놓고 싸워야 하는 한국 기업들은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30일 한국무역협회가 중소 수출기업 215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65곳(30.7%·복수 응답)이 “환율 하락에 대한 자체 대응 방안이 없다”고 답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경기 회복이 일부 업종에만 국한돼 있는 만큼 본격적인 금리 인상 기조로 전환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은택 nabi@donga.com·김현수·정세진 기자}

    •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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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 배터리 분야에 1조원 ‘통큰 투자’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1조 원을 한꺼번에 쏟아붓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유럽 최대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신설에 8402억 원을, 국내 배터리 공장 증설에 2000억 원을 각각 투자한다. SK이노베이션은 30일 “헝가리에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공장을 설립 및 운영하고 여기에 총 8402억 원을 투자하기로 이사회가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헝가리 공장은 총 43만 m² 부지에 연간 생산능력 7.5GWh급으로 건설된다. GWh(기가와트시)는 전기에너지 양을 나타내는 단위다. 내년 2월에 착공할 예정이며 2020년 초 본격 양산을 시작해 주요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SK이노베이션이 신설할 유럽 공장은 유럽 전기차 배터리 공장 중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국내 전기차 배터리 1위 기업인 LG화학이 올해 완공한 폴란드 공장이 유럽 최대 전기차 배터리 공장으로 꼽힌다. LG화학은 4000억 원을 들여 이 공장을 지어 현재 샘플 제품을 시범 생산하고 있다. 2018년 제품이 본격 양산되면 매년 전기차 배터리를 10만 대 규모(약 6GWh)로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의 헝가리 공장이 완공되면 ‘유럽 최대 전기차 배터리 공장’의 지위를 내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 삼성SDI 등 경쟁 기업들도 이날 SK이노베이션의 투자 계획이 예상 밖이라는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은 충북 증평 정보전자소재 공장의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LiBS) 생산시설을 늘리는 데도 15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설비 12, 13호기를 증설하는데 공사가 끝나면 연간 분리막 생산능력이 약 5억 m²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전 세계 습식 분리막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도 7호 생산설비를 증설하는 데 500억 원을 투자한다. 서산 공장은 기존 1∼3호기가 가동 중이고 4∼6호기는 증설 중이다. 여기에 이번 투자로 7호기까지 더해지면 연간 생산능력은 총 4.7GWh에 달한다. SK는 올 5월부터 거의 매달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5월에는 SK이노베이션이 2020년까지 화학, 배터리 분야에 10조 원 투자 계획을 밝혔고 그 이후에도 미국 셰일가스 공동개발(SK이노베이션), 청주와 중국 반도체 클린룸 투자(SK하이닉스), 북미 셰일가스 사업(㈜SK), 울산CLX 탈황설비(SK에너지) 등의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11월에는 SK에너지, ㈜SK,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이 각각 투자 계획을 밝혀 한 달 새 4건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재계에서는 “최태원 SK 회장의 ‘닥투(닥치고 투자) 경영’이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지속 성장 가능한 사업구조 구축을 위해 전사적인 역량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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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년까지 美-日 일자리 줄고 인도는 늘어”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인공지능(AI)의 발전과 자동화 시스템의 확산 때문에 2030년 전 세계 일자리 중 최대 8억 개가 사라지고 대신 8억9000만 개가 새로 생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주로 생산관리, 패스트푸드 조리 등 예측 가능한 환경의 신체적 업무 일자리가 사라지고 대신 의료, 서비스 분야에서 새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봤다. 29일 맥킨지는 46개 국가의 800개 직업, 2000개 업무를 분석한 ‘없어지는 일자리와 생겨나는 일자리’ 보고서를 냈다. 우선 맥킨지는 2030년까지 세계 노동자의 15∼30%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구수로는 4억∼8억 명이다. 하지만 맥킨지는 같은 기간 다양한 분야에서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분석했다. 우선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으로 소비재, 건강, 교육 등의 분야에서 3억∼3억65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기술 도입과 인프라 및 건설 투자, 에너지 투자, 서비스업의 발전 등에서도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새로 생기는 일자리 규모는 총 5억5500만∼8억9000만 개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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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직률 年25%인데… M&A때 고용승계 80% 유지해야 稅혜택?

    기업 인수합병 시 고용승계를 하지 않으면 세금납부 연기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정부 세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가 난색을 표명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친노동 정책을 잇달아 내놓는 가운데 정부와 재계의 갈등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9일 국회와 재계에 따르면 9월 정부가 법인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데 대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국회와 정부에 ‘구조조정 지원세제 개정법안 검토’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전달하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 법안은 기업이 다른 기업을 합병할 때 피합병회사 근로자 중 80% 이상의 고용을 3년간 유지해야만 자산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이연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과세이연은 기업의 원활한 자금 운용을 위해 취득 자산을 팔 때까지 세금 납부를 연기해주는 제도다. 기획재정부는 법안에서 합병·분할 등기일 한 달 전에 고용하고 있던 근로자의 80% 이상을 그대로 고용승계하고 사업연도 종료일까지 유지하면 합병법인에 과세이연 혜택을 주기로 했다. 단, 합병·분할 뒤 3년 안에 고용승계 인원이 80% 미만으로 줄어들면 연기했던 법인세를 추징한다. 회생절차, 워크아웃 등을 진행 중인 부실기업은 이 같은 요건 적용에서 제외된다. 기재부는 “인수합병 등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이 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상의는 이 법안이 기업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먼저 3년간 고용 80%를 유지하려면 매년 이직률이 평균 7% 선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의 매년 이직률은 25%에 이른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2013년)에 따르면 이직자 중 76%는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이직’이다. 대한상의는 “근로자가 개인 사정으로 이직하는 등 사유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법인세를 추징하도록 해 입법 취지를 벗어난 과잉 규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합병 뒤 새로 고용하는 인원을 반영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한상의는 합병한 기업의 기존 근로자 10명 중 3명이 개인 사정으로 나가는 대신 3명 이상을 새로 채용해 근로자 수를 유지하거나 더 늘리더라도 무조건 법인세를 추징하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경직된 고용승계 요건 때문에 기업이 피합병회사의 근로자를 줄이지 않는 대신 역량과 관계없이 합병회사의 근로자를 먼저 내보내는 피해 발생도 우려했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 간 인수합병이 활성화돼야 기업이 발전하고 어려운 기업도 다시 변화를 꾀할 수 있는데, 이런 규제들로 인수합병이 얼어붙으면 결국 기업 도산과 근로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0%라는 고용유지 비율도 기업 현실을 제대로 다시 조사하고 이직률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상진 전문위원도 검토보고서에서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한 요건에 고용승계를 추가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이로 인해 기업 구조조정이 약화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고용환경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고용승계 조건이 기업 간 인수합병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80% 이상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구조조정 세제에 포함돼 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중소기업중앙회에도 의견을 물어봤는데 큰 반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재위 조세소위원회에서도 일부 의원이 기업 현실을 무시했다는 문제 제기를 해서 내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이은택 nabi@donga.com / 세종=박희창 기자}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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