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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기업 임원과 일반 직원의 천문학적인 보수 격차를 개혁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앞으로 EU 28개 회원국의 상장기업 1만여 곳에서 일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의 보수 상한선을 주주들이 승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미셸 바르니에 EU 역내시장·서비스담당 집행위원은 9일 “2006년에서 2012년 사이에 프랑스 주가는 평균 34%밖에 오르지 않았지만 상장기업 임원 보수는 94%나 증가했다”며 “임원 급여와 성과 간의 연관성이 부족하고 소득 불평등 심화가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해치고 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원회의 제안에 따르면 회원국 기업들은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주주총회가 CEO의 임금을 제한할 수 있는 표결권을 갖도록 했다. 또 주주들은 매년 임원과 직원들의 임금 격차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도록 했다. 이 보고에는 임원들의 보수 수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담겨 있어야 한다. 영국의 경영진 연봉 추적단체인 ‘하이 페이 센터’는 올 1월 보고서에서 영국 런던 증시인 FTSE의 상장기업 100곳의 임원들 연봉이 평균 430만 파운드(약 75억 원)로 일반 직원의 2만6500파운드(약 4600만 원)의 133배였다고 밝혔다. 보수 격차는 2002년 107배보다 더 늘어났다. 미국의 보수 격차는 평균 270배(2012년 350개 대기업 기준)에 이른다. 이 단체는 “영국의 CEO들은 일반 직원들이 1년 동안 버는 연봉을 2.5일에 얻는다. 임금 격차가 큰 회사에서 노동쟁의, 질병, 이직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EU는 이미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봉 50만 유로가 넘는 은행권 임원에게 보너스가 연봉의 2배를 넘지 않도록 규제해왔다. 이 규정은 EU에서 활동하는 은행뿐만 아니라 글로벌 헤지펀드 투자회사에도 적용됐다. 지난해 스위스에서는 CEO와 직원 간의 보수 격차를 12배 이내로 강제하는 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그러나 “스위스 기업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반론이 우세해 부결됐다. 현재 EU 13개국이 주주들에게 임원진의 보수를 제한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있지만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에는 이러한 제한이 없다. 또 영국은 보너스 한도를 놓고 법정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은행권은 보너스 대신에 임원의 고정 급여 인상이나 수당 지급 등 다른 형태로 보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바르니에 EU 집행위원은 “임금 격차를 해소하려는 각국의 노력이 불충분하다. EU 역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기업에 대해 공통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임원 보수 제한 방침에 대한 반론도 일고 있다. 헨드릭 뒤토이 영국 인베스트애셋 대표는 “유럽 기업의 경쟁력에 불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매슈 펠 영국산업연맹(CBI) 경쟁시장 담당 디렉터는 “주주들이 회사의 임금구조에 시시콜콜 관여하기 시작하면 기업 경영의 효율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한국계 입양아 출신인 플뢰르 펠르랭(한국명 김종숙·41·사진)이 프랑스 통상관광 국무장관(Secretaire d’Etat)에 임명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9일 펠르랭 장관은 외국과의 통상 관련 업무와 관광, 재외 프랑스인 업무 등을 담당하는 장관에 올랐다. 펠르랭은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초대 내각에서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장관에 임명돼 2년간 일했다. 통상관광 부문은 이번에 정부조직 개편으로 경제부에서 외교부 산하로 옮긴 부처로, 펠르랭 장관은 앞으로 로랑 파비위스 외교장관과 함께 일한다. 펠르랭 장관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됐다. 16세에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해 그 이듬해 상경계 그랑제콜인 에세크(ESSEC)에 진학했고 파리정치대(시앙스포), 국립행정학교(ENSA) 등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번 개각을 앞두고 많은 중소기업과 정보통신 기업인들이 트위터에서 ‘펠르랭을 지키자(#Keep fleur)’는 캠페인을 벌일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가 높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우리는 과거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현재가 더욱 소중합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았던 우정과 친밀함을 성취했습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이 과거 독립전쟁기의 앙금을 털고 역사적인 화해에 나섰다. 마이클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8일 아일랜드 정부 수반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영국을 국빈 방문해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두 나라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다”며 “화합과 존중으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자”고 역설했다. 700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 온 아일랜드는 1919∼1921년 2년 반에 걸쳐 처절한 독립전쟁을 벌였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게릴라전과 영국군의 잔인한 보복으로 두 나라에서 14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두 나라는 1921년 휴전을 하면서 아일랜드 남부의 26개 주의 독립을 허용하고 북부 신교 지역인 6개 주는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존속시켰다. 1950, 60년대 영국은 상점에 ‘아일랜드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을 걸 정도로 아일랜드와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 IRA는 1970년부터 1997년까지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북아일랜드의 분리 독립투쟁은 2007년 ‘세인트앤드루스 협정’이 체결되면서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양국 관계의 급반전 돌파구는 2011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열었다. 당시 아일랜드를 방문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일랜드 독립투쟁 희생자 기념비에 헌화하며 갈등의 과거사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BBC는 “아일랜드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문은 20년 전에 성사될 수 있었는데 두 나라의 망설임 때문에 미뤄져 왔다”고 보도했다. 20대 시절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잉글랜드를 찾기도 했던 히긴스 대통령은 연설에서 “영국 사회에서 활약하는 아일랜드계 주민들의 존재에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북아일랜드 상황에 대해서는 “영구적이고 창조적인 화해의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여정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날 런던 서부 교외의 윈저성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공식 만찬에는 히긴스 대통령뿐 아니라 마틴 맥기니스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석장관(63)도 참석해 여왕을 위해 ‘역사적인 건배’를 해 눈길을 끌었다. 맥기니스 장관은 IRA의 사령관을 거쳐 반영 정당조직 신페인당 정치인으로 활동해온 인물. 맥기니스 장관은 지난해까지 의원을 지내면서 여왕에게 충성 서약을 하는 절차를 문제 삼아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 출석을 거부하는 ‘결석주의’ 운동을 주도해 왔다. 그의 영국 왕실 연회 참석에 대해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에 투항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렇지만 북아일랜드 신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대표는 “우리 당이 관용과 평등에 기반을 두고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방문”이라고 평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곳에 남은 신부도, 외국인도 나 하나뿐이다. 내겐 그들이 무슬림으로도, 기독교인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삶을 갈구하는 인간이 보일 뿐이다. 내가 어떻게 이곳을 떠날 수 있겠는가.” 7일 오전 시리아 정부군에 2년 넘게 포위된 격전지 홈스에 있는 예수회 수도원. 주변의 만류에도 끝까지 시리아에 남아 피란민들을 돕던 네덜란드 출신의 프란시스 판데르 뤼흐트 신부(72)의 숙소에 복면을 쓴 괴한이 나타났다. 그는 신부를 수도원 밖으로 끌어낸 뒤 구타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신부는 머리에 총탄 2발을 맞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최근 3년간 총 14만 명이 희생된 시리아 내전에서 죽음은 일상의 장면이 됐다. 그러나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에 등장한 가브리엘 신부처럼 내전의 고통 속에서 현지인과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시리아의 이방인 성자(聖者)’의 삶에 뜨거운 반향이 일고 있다. 예수회 소속인 판데르 뤼흐트 신부는 1964년부터 시리아에 정착해 50년 이상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했다. 아랍어에 능통하고 정신치료 훈련도 받았던 그는 1980년대에 홈스 외곽에 장애인 지원센터와 농장을 세워 장애인과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왔다. 판데르 뤼흐트 신부는 특히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주민 간 대화에 힘을 쏟았다. 판데르 뤼흐트 신부의 열정에 이슬람 반군 내 강경파 일부조차 그 뜻을 따를 정도였다. 반정부 측의 아보 모아즈 씨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보통사람들이든,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든, 혁명전사들이든, 모두가 판데르 뤼흐트 신부를 사랑하고 존경했다”며 애도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뒤 판데르 뤼흐트 신부는 10개의 교회에 남아 있는 소수 기독교인 및 무슬림들과 함께 홈스를 지켰다. 아울러 유튜브를 통해 아랍어, 프랑스어, 영어 등 각국 언어로 시리아의 참상을 전했다. 그러나 정부군이 도시를 포위하는 상황이 2년 이상 장기화하면서 홈스는 식량과 구호품 전달통로가 막혀 극심한 고통에 내몰리며 점점 ‘무법의 정글’로 변해갔다. 판데르 뤼흐트 신부는 1월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굶주림에 도덕은 사라졌다. 인간이 야생동물로 바뀌고 있다”고 참상을 전했다. 하루 뒤인 1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시리아 내전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사흘간의 휴전이 선포됐다. 당시 주민 1500명이 기아와 질병을 피해 홈스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판데르 뤼흐트 신부는 시리아 주민들과 고통을 함께하겠다며 홈스에 남았다. 시리아 예수회의 한 신부는 “그곳에 남겠다는 건 그의 자발적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로마 바티칸 교황청은 이날 성명에서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한 ‘평화의 사도’였다”고 애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에서 “큰 어려움 속에서도 시리아 국민들의 곁을 지킨 영웅적인 판데르 뤼흐트 신부를 살해한 것은 비인도적인 폭력 행위”라고 비난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우크라이나 정부가 독립을 선언한 도네츠크와 하리코프 주 등 동남부 지역 주도(州都)에 특수부대를 파견해 반정부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섰다. 미국과 러시아는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 정부도 참여하는 4자 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외교적 해결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러시아 시위가 일어난 하리코프 시에서 ‘대테러(anti-terrorist)’ 작전을 벌여 정부청사 등을 장악하고 있던 분리주의자 70여 명을 체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8일 보도했다. 전날 시위대가 정부 건물을 장악하고 독립선언서를 채택한 도네츠크 시에도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가 들어가 친러 시위대가 점거했던 보안기관 청사를 탈환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교부는 우크라이나 동부 3개 지역 시위에 대한 중앙정부의 강경 대응이 “내전을 촉발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존 케리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전화 통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외교적 해법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두 장관이 미국, 러시아, EU, 우크라이나가 참여하는 4자 회담을 이달 18일까지 개시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사상 첫 민주적 정권교체를 위한 아프가니스탄 대선이 탈레반의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5일 무사히 치러졌다. 전체 유권자 1200만 명의 58%인 약 700만 명이 투표권을 행사해 2009년 대선(31.5%) 때보다 투표율이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선거 결과는 다음 달 14일 나온다. 대선후보 8명 중 누구도 과반을 얻기 힘들 것으로 보여 다음 달 28일 결선투표에는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65)과 압둘라 압둘라 전 외교장관(54)이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6일 파지와크아프간뉴스(PAN)가 입수한 일부 투표소의 초기 개표 결과에 따르면 가니 전 재무장관이 42.1%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1위를 휩쓸었던 압둘라 전 외교장관은 40.7%를 얻었다. PAN의 개표 결과는 1%를 조금 넘는 13만 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전체 투표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아프간 선거관리위원회가 24일 발표할 잠정집계의 가늠자로 보인다. 가니 전 재무장관은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미국이 선호하는 인물. 미 컬럼비아대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땄고 세계은행과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를 지낸 친(親)서방 성향이다. ‘반(反)카르자이-반탈레반’ 기치를 내건 압둘라 전 외교장관은 안과의사 출신으로 반탈레반 연합체인 ‘북부동맹’을 이끌다 암살당한 아흐마드 샤마수드 장군의 최측근이다. 파슈툰족 부친과 타지크족 모친 사이의 혼혈이다. 두 사람의 대결은 아프간 최대부족 파슈툰족(가니)과 2위 타지크족(압둘라)의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3선 금지 조항으로 출마하지 못한 카르자이 대통령은 막후에서 가니를 밀고 있다. 무함마드 나지불라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탈레반에 살해됐기 때문에 퇴임 후 안전판이 절실한 상태다. 압둘라 후보는 타지크족 외에도 하자라족, 우즈베크족 등 소수민족의 지지를 업고 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2일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개각을 단행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마뉘엘 발스 신임 총리의 제청을 받아 경제 관련 부처 장관을 교체하면서 자신의 첫 동거녀였던 세골렌 루아얄 전 사회당 대표를 환경에너지 장관으로 임명하는 개각을 발표했다. 2007년 사회당 대선 후보로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중운동연합(UMP) 후보와 맞붙었던 루아얄은 올랑드 대통령과 30년 가까이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네 자녀를 두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경기 회복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피에르 모스코비시 재무장관을 경질하고 대신 미셸 사팽 노동부 장관을 재무장관에 임명했다. 또한 아르노 몽트부르 산업부 장관이 경제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계 입양인으로 2012년부터 중소기업·디지털경제장관으로 일해 온 플뢰르 펠르랭(김종숙)은 이번에 교체됐다. 몽트부르 경제장관이 펠르랭 장관의 디지털 부문을 함께 맡게 됐다. 발스 장관의 총리 임명으로 공석이 된 내무장관에는 베르나르 카즈뇌브 예산부 장관을, 노동장관에는 올랑드 대통령의 친한 친구인 프랑수아 레브사망 디종 시장을 임명했다. 로랑 파비위스 외교장관과 장이브 르 드리앙 국방장관, 크리스티안 토비라 법무장관은 유임됐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좌파의 사르코지’로 불리는 마뉘엘 발스 프랑스 내무장관(51·사진)이 지방선거 참패로 위기에 몰린 프랑스 집권 사회당 정부의 신임 총리로 발탁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연설에서 “이번 선거를 통해 나타난 메시지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메시지는) 변화가 부족하고 너무 느렸으며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해 실업률이 높았고 사회정의가 충분하지 못하며 세금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뒤 정국 돌파를 위해 발스 장관을 총리로 지명했다. 취임 초기 사회주의 노선에서 친기업 정책으로 돌아선 올랑드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책임협약’을 밀어붙일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발스 신임 총리는 2011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주당 35시간 근로제’ 철폐와 기업비용 절감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주장하며 사회당에서 가장 자유주의적 경제노선을 걷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발스 총리는 만 20세에 프랑스로 귀화했으며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리오넬 조스팽 총리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후 11년간 파리 교외의 에브리 시장으로 재직했으며 2011년 사회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올랑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또 발스 신임 총리는 내무장관 시절 치안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불법이민자에게 초강경 정책을 펴 전임 우파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와 닮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그는 지난해 “집시들의 삶의 방식은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 그들은 루마니아나 불가리아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연간 1만 명 이상의 집시를 추방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발스 장관의 총리 지명에 대해 오히려 우파가 환영하고 좌파 진영은 내분 양상이다. 사회당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유럽생태녹색당(EELV) 소속인 세실 뒤플로 국토주택장관은 “발스 총리 아래에서는 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ELV는 “신임 총리에 대한 지지를 결정하기 위해 먼저 노선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올랑드와 발스의 관계”라고 평했다. 발스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40∼60%대로 올랑드 대통령보다 2∼3배 높다. 르몽드는 발스가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 경쟁자라는 점에서 이번 인사를 “(재선을 노리는) 올랑드의 위험한 도박”이라고 평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미국과 러시아가 크림 반도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협상을 시작했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연방제’ 실시를 요구 조건으로 내세워 난항을 겪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지난달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4시간 동안 긴급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8일 통화에서 외교적 해결에 합의한 데 따라 마련된 것이다. 러시아는 이날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연방제 실시, 러시아와 유럽연합(EU) 사이에서 군사 정치 중립화, 크림 합병 인정 등을 요구하는 초강경 협상안을 제시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가 통일된 국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면서 “지역마다 각자의 경제적 방식과 언어 문화 종교를 선택하는 연방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의 협상안은 크림자치공화국을 넘어 친러 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지역까지도 자치공화국으로 독립시켜 분할통치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케리 장관은 “러시아의 크림 합병은 불법”이라며 “우선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병력을 철수하라”고 촉구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빛의 도시(la ville lumi`ere)에서 늘 그림자로 일해 왔던 그녀가 파리의 첫 마담 르 메르(Madame le maire·여성 시장)에 오르다.”(유럽1) 프랑스 파리시에서 첫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 2001년부터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을 13년간 보좌해온 사회당(PS)의 안 이달고 부시장이 주인공이다. 파리 코뮌 붕괴로 폐지됐던 파리시장직이 1977년 부활한 이후 여성이 시장에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30일 결선투표가 치러진 파리시장 선거는 좌우파 양당이 내세운 여성 후보 간 맞대결이었다. 집권여당 후보인 이달고는 제1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나탈리 코시위스코모리제 전 교통환경장관(40)을 여유 있게 물리쳤다. 개표 결과 이달고 부시장의 득표율은 54.5%, 코시위스코모리제 후보는 45.5%였다. 파리는 전통적으로 진보적 성향이 강하고 외국인 거주비율이 높다. 이달고의 당선에도 이민자 출신, 여성, 친서민 정책이 좌파 유권자들을 결집시켰다는 평이다. 스페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세 때 프랑스 리옹으로 이주했으며 14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이달고 가족은 리옹의 작은 공공 임대주택에서 가난하게 살아 온 반면 상대 후보인 코시위스코모리제는 프랑스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난 엘리트다. 일간 르피가로는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고 평했다. 이달고가 보좌해온 들라노에 현 시장은 무인 자전거 대여 시스템인 벨리브(Velib)를 도입했고 파리 센 강변에 인공 백사장 등을 조성해 바캉스를 즐기게 하는 등 친서민 정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달고도 이번 선거에서 전기 오토바이를 대여하는 스쿠트리브(Scootlib)를 비롯해 공공주택·유치원 건설 등 서민을 겨냥한 공약을 내놓고 표를 끌어모았다. 임기 6년의 파리시장은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겨지는 자리다. 18년간 파리시장을 지낸 자크 시라크도 1995년 대통령에 당선된 바 있다. 프랑스에는 1944년에야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는 등 남성 중심적 정치 문화가 뿌리 깊다. 여시장의 등극에 따라 앞으로 치러질 대선에서도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달고는 이날 당선 연설에서 “파리의 첫 여성 시장이 뜻하는 도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고의 파리시장 당선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최소한의 체면을 살려줬다. 파리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집권 사회당이 참패했다. 전국적으로 40%의 표를 얻은 사회당 연합은 46%를 득표한 중도우파 UMP에 제1당 자리를 내주게 됐다. 또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도 7%를 득표해 1972년 창당 뒤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FN은 베지에와 프레쥐스 등 12곳에서 시장을 당선시켰고 지방의원도 1200명 이상을 배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집권 사회당의 이번 선거 참패가 최악의 경기침체, 높은 실업률, 아마추어적인 정책운용 때문이라는 지적에 따라 올랑드 대통령은 대대적인 개각과 감세, 친기업 정책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장마르크 에로 총리는 이날 TV 인터뷰에서 “진실을 마주할 순간이다. 이번 선거는 정부와 여당의 참패이며 내 책임도 크다”고 인정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을 방문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대접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시 주석에게 레드카펫까지 깔아주며 환대했지만 독일은 중국의 인권상황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28일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중국 정상으로는 8년 만에 독일을 국빈 방문한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의 오찬자리에서 ‘법치주의 확립’을 강조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독일과 중국은 같은 규칙을 적용받는 국제질서의 한 부분이라면서 “인권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유엔 헌장이 그 틀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시 주석과 정상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의견을 폭넓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사회의 창의성을 증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독일 일간 디벨트는 “시진핑에게 인권이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독일이 중국에 대해 인권문제를 지적한 것은 경제적 자신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에어버스 등 여객기 70대 구입을 비롯해 180억 유로(약 26조 원) 규모의 투자계약이라는 선물보따리를 가져온 시 주석을 위해 베르사유 궁전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열고 샹젤리제 8차로 대로를 하루 종일 통제하는 등 극진히 대접했다. 한편 시 주석은 유럽 방문에서 가는 곳마다 현지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등 과거 지도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는 벨기에 몽드지에 기고한 글에서 “벨기에는 유럽의 심장이다. 심장의 박동에 힘이 있을수록 중국과 유럽 간 협력 관계에 더 많은 혈액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또 일본에 대해서는 전후 처리의 모범국인 독일과 비교해 비판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친다)’ 외교를 펼쳤다. 시 주석은 28일 일제의 난징 학살 당시 중국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던 독일인 존 라베를 거론하며 “그의 일기에 대학살의 내막이 상세히 나와 있고 이는 당시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됐다”고 강조했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8일 전화 통화를 갖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30일 밤 프랑스 파리에서 회담을 열어 구체적인 해법을 논의했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8일 유럽 순방을 마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1시간에 걸친 통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해결책을 서면으로 먼저 제시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의 이러한 움직임은 러시아가 경제적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크라이나 사태 ‘출구전략’에 시동을 건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먼저 러시아가 군대를 철수하고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과 주권을 더는 침해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야 외교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한편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29일 러시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을 의도나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전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했다”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크림의 여신이여, 내 마음도 합병해 달라!” 러시아에 합병된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의 미녀 검사인 나탈리야 포클론스카야(34)가 연일 화제를 모으며 글로벌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다. 이달 11일 크림공화국의 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된 포클론스카야의 첫 기자회견 동영상은 금세 17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푸른색 제복에 요정처럼 앳돼 보이는 미소녀 같은 얼굴, 매혹적인 금발머리, 접시처럼 커다란 눈동자는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여주인공” “전투 준비를 막 마친 여전사”(BBC)라는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가와이(귀엽다)’를 외치는 일본 누리꾼들이 포클론스카야를 모델로 그린 캐릭터 만화작품 수십 점을 올려놓자 그의 캐릭터는 트위터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12년간 조직폭력 전담 검사로 일했던 포클론스카야는 지난달 25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축출한 야당 시위대를 가리켜 “깡패들이 길거리에서 활보하는 나라에서 사는 게 부끄럽다”며 사직서를 제출한 뒤 고향인 크림공화국으로 낙향했다. 크림공화국 검찰조직에서 최고위직으로 초고속 승진한 그는 같은 날 첫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향해 “반헌법적 쿠데타 세력이 나치즘을 선동하고 있다”며 강펀치를 날렸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옛 내무부 산하 특수부대 ‘베르쿠트’ 요원들을 탄압한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일본에서 시작된 열광적인 팬덤은 러시아와 유럽에서도 급증하는 추세다. 러시아의 한 작곡가는 ‘귀여운 나타샤’라는 노래에서 검사인 포클론스카야에게 “제발 나를 소환하라, 나를 심문해 달라”고 애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27일 포클론스카야를 국가반역과 권력찬탈 공모 혐의로 지명수배를 내린 데 대해서도 누리꾼들은 “내 마음속 그녀를 나도 수배한다”고 패러디했다. ‘G4U’라는 게임회사는 그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력이 짧은 30대 여검사의 검사장 발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합병해 국제적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비난 여론을 누그러뜨리려 미녀를 내세웠다는 것. 이 전략은 실제로 먹히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무조건 지지한다” “이번 싸움은 내게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됐다. 가자 크림으로!”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영국의 한 블로거는 “그녀는 포르노 스타가 아니라 노련한 솜씨를 가진 정치인”이라며 “얼굴이 예쁘다고 우크라이나의 소름끼치는 비극적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페이스북에선 그의 이름을 사칭한 가짜 계정도 만들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할리우드 스타인) 패리스 힐턴으로 상징되는 ‘인스턴트 셀리브리티’ 현상”이라며 “안 그래도 알 수 없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점점 더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평했다. 포클론스카야는 이런 인기에 놀라는 표정이다. 그는 러시아 TV채널 NTV와의 인터뷰에서 “한 번도 소셜미디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인터넷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포켓몬 같은 존재가 아니다. 현재 가장 큰 국제분쟁과 관련된 사건을 총괄 지휘하는 검사장으로서 일의 성과로 평가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나탈리야 포클론스카야::1980년 크림자치공화국 예프파토리아 출생2002년 국립 카르키프 국제관계대학 졸업2002년 크림공화국 수도 심페로폴 검찰청 검사(조직폭력, 환경범죄 담당) 2011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중앙검찰청 수석검사2014년 크림공화국 검찰청 검사장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탈리아 출신의 기호학자이자 중세연구가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 에세이집 ‘적을 만들어라’(그라셋)가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이 책에는 율리시스부터 위키리크스까지 다양한 주제를 오가며 경쾌하게 쓴 에코의 에세이가 묶여 있다. 책은 에코가 수년 전 미국 뉴욕에서 한 택시운전사와 만난 일화로 시작한다. 파키스탄 출신의 택시운전사는 에코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그럼 당신 나라의 적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가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자 택시운전사는 당신 나라와 역사적으로 영토분쟁을 하거나, 국경에서 전쟁을 하거나,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거나 죽였던 나라는 어디냐고 다시 물었다. 에코는 “반세기 전에 마지막 전쟁(2차 세계대전)을 마친 후에는 전쟁을 한 적이 없으며, 지금은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택시운전사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사람이나 국가가 적이 없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따졌다. 에코는 “이탈리아의 게으른 평화주의에 대한 보상을 해주기 위해 2달러의 팁을 더 주고 내렸다”고 회상했다. 에코는 그날 이후로 자주 이 질문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2008년 5월 이탈리아 볼로냐대에서 ‘적을 만드는 것’에 대한 주제를 갖고 강의를 했다. 에코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사실 이탈리아에 적이 없던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가졌다. 외부에 적이 없었을 뿐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무수한 적이 싸우고 있었다. 북부와 남부의 경제갈등, 파시스트와 빨치산, 마피아와 국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 사법부…. 에코는 고대 로마에서부터 중세, 근대, 현대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며 ‘적을 만든다’는 개념을 성찰한다. 그는 최근 프랑스 아르테 TV에 출연해 “중세의 마녀부터 유대인, 이방인, 흑인, 동성애자, 범죄자, 매춘부, 오사마 빈 라덴까지 적은 끊임없이 만들어졌다”며 “지금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새로운 국제적 공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코는 심지어 “적이 없다면, 적을 만들라”라고 말한다. 자칫 파시스트의 철학으로 오인될 수 있는 도발이다. 그러나 에코가 말하는 적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가 아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필요한 존재다. 우리는 ‘타자’의 관점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적은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 도덕과 부도덕, 아름다움과 추함을 깨닫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개인은 괴물과 싸움을 통해 성숙한 영웅이 된다.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도 자아(ego)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그림자(Shadow)’로 불리는 이 부분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자아를 성숙하게 하는 동맹 같은 존재다. 한반도 주변에도 가까이 살기엔 버거운 이웃(또는 적)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성숙하게 해주는 존재가 아닐까.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미국 등 주요 7개국(G7)이 24일 크림 반도 합병과 관련해 주요 8개국(G8) 체제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기로 한 가운데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들이 제재에 반대하면서 국제사회 세력구도가 양분되는 기류다. 브릭스 소속 외교장관들은 25일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성명을 내고 “G7의 (러시아) 제재에 반대하고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러시아가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중국이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며 러시아에 힘을 실어줘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중국 유력 일간지 신징(新京)보는 26일 ‘G8이 G7으로 바뀌는 건 별것 아니다’라는 외부 기고에서 “G8은 정식 회원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축출을 말할 나위가 못 된다”고 비판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가 운영하는 하이와이왕(海外網)도 G8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을 영토와 인구, 국내총생산(GDP) 등의 항목별로 분석하며 G7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천연가스 자국 내 생산량은 수요의 16.7%에 불과하다”며 자원 강국인 러시아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이 같은 중국의 반응은 시진핑(習近平) 체제 이후 러시아와 신(新)밀월을 구가하며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대(對)서방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정상 취임 뒤 첫 방문국으로 서로 상대국을 택했다. 지난해에만 네 차례 회담을 가졌다. 일각에서는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와 티베트 문제에서 국제적 비판을 받고 있는 중국이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을 암묵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자국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작심하고 러시아 깎아내리기에 나섰다. 그는 25일 헤이그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지역강국일 뿐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도 미국의 강경 노선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러시아의 크림 합병 선언을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외교전략 재검토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일단 다음 달로 예정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의 러시아 방문과 경제 관련 회담 등을 보류할 방침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가 물러서지 않으면 올가을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도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크렘린은 “러시아와 서방국가 간의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며 강온 양면 전술을 구사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25일 “G8에서 러시아는 전문가부터 장관급까지 폭넓은 인사들이 다양한 현안에 참여해 왔다”며 “G8이 아니더라도 다른 통로를 통한 국제협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베이징=고기정 koh@donga.com파리=전승훈 / 도쿄=박형준 특파원}
북한은 천안함 폭침 4주기인 26일에도 천안함 폭침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재개했다. 2월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상호 비방 중상을 중단하기로 한’ 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국방위원회 검열단 비망록’을 발표하고 천안함 폭침에 대해 “동족 대결광들이 고안해낸 초유의 특대형 모략극”이라며 “천안호(천안함) 사건을 더 이상 북남(남북)관계 개선을 막는 인위적인 장애물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5·24 대북(제재)조치를 철회하라”로 덧붙였다. 이에 통일부는 “북한은 천안함 폭침에 사과하고, 관계자들에 대한 조치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날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남조선(한국) 집권자가 국제무대에 나가 ‘신뢰’니 ‘평화’니 하는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마치 ‘통일의 사도’인 양 가소로운 놀음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평통은 한국군이 24일 백령도 등 서해 5도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비판하는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으나 한국 국방부는 “대북전단은 민간단체가 살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서세평 대사는 30, 3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일본과의 국장급회담 의제로 일제강점기 군 위안부 보상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밝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합병 사태와 관련해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24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체에서 러시아를 제외키로 했다. 또 러시아에 추가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 경제 지원을 골자로 하는 ‘헤이그 선언’을 채택했다.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 G7 정상들은 90분간 별도 회동을 갖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다. 이들은 회의 직후 낸 성명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략을 바꿀 때까지 G8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하고 올해 6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릴 예정이던 G8 정상회담도 취소하기로 했다. 그 대신 G7은 같은 기간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기로 했다. NATO는 “크림에 남아 있는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 이웃 국가인 몰도바 내 러시아인 밀집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분리 독립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G8 체제 자체에 미련이 없다”며 반격에 나섰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날 헤이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방이 G8에 관심 없다면 우리도 매달리지 않는다. G8은 비공식 클럽(모임)이기 때문에 누가 회원카드를 발급하는 것도 아니며 애초 회원을 쫓아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G7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까지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러시아에 대해 에너지, 금융, 국방 등의 후속 제재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미국은 천연가스 수출을 무기로 삼고 있는 러시아에 압박 카드를 내놓았다. 미 에너지부는 24일 총 70억 달러를 투자해 오리건 주 쿠스 베이에 세우는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조던 코브 에너지 프로젝트’가 자국의 LNG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에도 수출할 수 있도록 조건부 승인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최종 허가를 받으면 이 LNG 터미널을 통해 로키산맥을 포함한 캐나다산 천연가스를 하루 최대 2266만 m³ 규모로 20년간 수출할 수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유럽이 이 천연가스를 수입하면 러시아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그러나 환경 검토와 규제 당국의 최종 승인 등 절차를 더 거쳐야 해 실제 수출이 시작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의회는 또 러시아 무기수출업체 로소보론엑스포르트와 미국 간 모든 거래를 금지토록 하는 법안을 이번 주 심사할 예정이다. 미국 공화당 댄 코츠 상원의원(인디애나)은 24일 미국 정부가 로소보론엑스포르트와 협력해 군사 장비를 설계·생산·판매하는 모든 거래를 금지하고 기존 계약도 중단시키는 내용의 우크라이나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 산업부는 25일 국립병원 및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에서 서방국가에서 생산된 의료기기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11년 기준으로 러시아의 의료장비 및 기타 소모품 시장은 약 60억 달러 규모로 이 중 73%는 독일 미국 일본산 수입품이다. 러시아는 관세동맹 회원국인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에서 생산된 의료기기 수입만 허용함으로써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친(親)러시아 무장세력이 크림 반도 남서부에 있는 우크라이나 벨베크 공군기지를 포위한 가운데 최후까지 기지를 지키던 우크라이나 남녀 군인이 22일 ‘눈물의 결혼식’을 올렸다. 우크라이나 공군 통신장교 이반 베네라와 간호장교 갈리나 볼로샨치크는 세바스토폴 인근 벨베크 공군기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기지를 포위한 친러 무장병력이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한 뒤에도 기지를 지키고 있었다. 주례를 맡은 벨베크 기지 사령관 율리 맘추르 대령은 이들이 예물과 꽃다발을 교환하자 “전 세계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고 말했다. 신부는 꽃을 받으며 눈물을 훔쳤고 부부는 손을 잡고 기지 영내를 행진했다. 동료 부대원들은 샴페인으로 건배하고 춤을 추며 결혼을 축하했다. 하지만 축하 분위기는 이내 혼란에 파묻혔다. 러시아제 장갑차를 앞세운 무장병력이 곧바로 정문을 밀고 들어와 폭발물을 터뜨리고 총격을 가한 끝에 기지를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2명의 우크라이나 군인이 총상을 입었고 맘추르 대령은 체포됐다. 곳곳에서 우크라이나 기지가 점거되자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임시대통령은 이날 “국가안보위원회에서 우리 군의 철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당국의 군 철수 명령은 이번 사태가 발생한 이후 처음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지난달 말 염수정 추기경 서임식을 취재하기 위해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을 찾았다. 베르니니가 만든 청동 기둥,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놓인 유서 깊은 공간에서 교황과 전 세계 추기경들이 함께 집전하는 예식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됐다. 미사 시작 전 성가대의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교황이 십자가 지팡이를 손에 쥐고 천천히 입장했다. 뒤쪽 신자석부터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서더니 모두들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번쩍번쩍.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신자나 취재진뿐이 아니었다. 자줏빛 수단을 입은 주교들까지 체면 불고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교황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이 곳곳에서 이채로웠다. 삼종기도 때 교황을 보기 위해 광장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에게도 교황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 스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지 1년. 소탈하고 검소한 생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안아주는 따뜻한 웃음, 인간성을 말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교황의 ‘심플함’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뿐만이 아니다. 가장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조직인 바티칸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프란치스코는 현실 정치인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가 내세운 원칙은 간단했다. 바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스스로의 존립을 위한 규칙과 절차에만 얽매이는 집단에서 벗어나 병든 사회의 ‘야전병원’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거리에서 병든 노숙인을 안아주고 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의 행보는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정치권 내부의 복잡한 싸움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경고로도 해석된다. 프란치스코는 또한 ‘낡은 규칙의 파괴자’였다. 교황궁 대신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잤고 교황 전용 방탄차 대신 승용차를 탔다. 중세 황제를 연상케 하는 ‘알현식’도 없앴다. 그는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불려온 바티칸 은행에 대한 감사를 글로벌 민간 회계기업에 맡기는 등 재정개혁을 위해서도 과감히 칼을 들이댔다. 상식처럼 굳어져 버린 인습을 타파하는 것, 낭비와 비효율을 과감히 줄이는 것은 이 시대 정치개혁의 필수과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개혁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에는 조급함과 변덕스러움도 엿보인다. 기대 수준이 높아진 대중들은 프란치스코가 취임 1주년이 지난 뒤에도 뭔가 가시적인 개혁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를 의식해서였을까. 교황은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슈퍼맨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선거 때만 되면 개혁이 화두로 떠오른다. 후보들은 복마전 같은 부패 타파를 약속하며 자신만이 적임자요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개혁을 하면서 자신을 내세우거나 세력을 키우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을 내려놓고 나눠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변화를 향한 희망을 이끌어냈다. 올해 8월 교황의 한국 방문은 세계의 시선을 동아시아로 집중시킬 것이다. 그가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반도 주민들에게 어떤 치유의 말을 해줄지 기대된다. AP통신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뒤 “가톨릭이어서 행복하다”는 신자들이 크게 늘었다며 이를 ‘프란치스코 효과’라고 분석했다. 우리에게도 ‘한국인이어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지도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이 16일 러시아와의 합병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는 러시아 군의 삼엄한 경계 속에 이날 오전 8시(한국 시간 오후 3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진행됐다. 투표 결과는 17일 새벽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크림 주민의 약 60%가 러시아계인 점을 감안하면 결과는 뻔해 보인다. CNN은 “투표 결과 70∼80%의 찬성으로 러시아 귀속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통합’인가, ‘우크라서 독립’인가 이번 주민투표 문안에는 크림 분리독립에 대한 반대 표시가 없어 논란이 일고 있다. ‘①러시아 연방 구성원으로 러시아에 통합되는 것을 지지하는가 ②우크라이나 일부로서 크림자치공화국의 ‘1992년 헌법 회복’을 지지하는가’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다. 크림 의회는 옛 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한다는 내용의 새 헌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중앙정부가 불허해 갈등을 빚었다. 그러던 1995년 ‘상당한 정도의 자치권’을 부여받는 대신 우크라이나 헌법을 따르는 방식으로 정리됐다. 따라서 ‘1992년 헌법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내용의 ②번은 사실상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크림자치공화국의 현상 유지를 위한 선택지는 없는 셈이다.○ 푸틴, 크림공화국 받아들이나 주민투표에서 러시아 합병이 결정되면 크림자치공화국은 즉각 실행 절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크림자치공화국 의회 의장은 3월 안에 귀속 절차를 모두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러시아 하원도 21일 크림 병합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사태 초기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을 합병하지 않고 친(親)러시아 독립국으로 남겨둔 채 실효적으로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푸틴이 서방과의 극한 대결을 감수하고 크림을 합병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크림이 자발적 합병을 원하는 상황에서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강조한 푸틴이 서방과 ‘굴종적’ 타협을 하면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러시아, 우크라 동부까지 넘보나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넘어 우크라이나 동부(친러 성향) 지역에 군사 개입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5일 러시아 공수부대원 약 40명이 헬기로 우크라이나 동부 헤르손 주의 한 마을에 침투했으며 지상으로 진입한 120여 명은 마을에 있는 천연가스 공급기지를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키고 지상군을 동원해 러시아군을 격퇴했다고 밝혔다. 이날 동부 하리코프 시내에서는 친러 시위대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무장세력 간 총격전이 벌어져 2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했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임시 대통령은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자금을 대는 것은 러시아 요원들”이라며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 서방의 러시아 고립정책 효과 있을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5일 긴급회의를 열어 크림 주민투표 효력을 무효화하려는 결의안을 표결했으나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중국은 기권했고 나머지 13개 이사국은 찬성했다.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러시아를 고립시킬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와 비자면제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있는 러시아 인사의 입국 금지와 EU 내 자산동결을 예고했다. 미국은 러시아 기업과 은행의 미국 금융 시스템 접근을 차단하는 ‘이란식 경제제재’도 검토 중이다. 주요 8개국(G8) 회원국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는 방안도 본격 논의되고 있다.○ 크림 주민투표 국제법 위반인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주민투표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반인지를 판단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사실상 없다. 국제법은 국가 기본권의 하나로 ‘영토보전’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지위(분리독립 또는 자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도 인정한다. 강대국들은 상황에 따라 입맛에 맞는 조항을 인용하고 있다. 2008년 투표로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자결권 조항을 들어 코소보 독립을 지지했고 러시아는 영토보전 조항 등을 들어 반대했다. 지금은 정반대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김기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