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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군부 쿠데타 발발과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로 미얀마의 혼란이 극심한 가운데 시위대 유혈 진압을 주도하고 있는 ‘33경보병사단’이 2017년 8월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족 집단학살을 자행한 부대와 동일 조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들은 로힝야족 민간인 수천 명을 살해하고 집단 성폭행했다. 방화도 저질렀고 400여 개 마을을 초토화했다. 이로 인해 최소 74만 명의 로힝야족이 이웃 방글라데시로 도피해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11일에도 보트로 인도양을 떠돌던 로힝야 난민 8명이 탈수증으로 숨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과거 로힝야족을 “전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라고 언급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76)이 집권 후 서구 일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당국의 로힝야족 탄압을 방관하고 묵인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로힝야족은 누구이고 왜 이런 처지에 놓였을까.○ 갈등 근원은 英 식민지배 로힝야족은 미얀마 주류 민족인 버마족과 인종 종교 언어가 모두 다르다. 몽골계 불교도인 버마족과 인도유럽계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외형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 국가인 미얀마에는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버마족 외에도 샨, 카렌, 라카인, 몬, 카친 등 130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있다. 1948년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후 여러 소수민족과의 유혈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미얀마 사회에서 군부가 득세하는 계기가 됐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소수민족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채 ‘불법이민자’로 규정하고 있다.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 남동부 치타공과 국경을 접한 미얀마 남서부 라카인주(州)에 주로 거주한다. 라카인의 옛 지명이 아라칸이어서 아라칸 무슬림으로도 불린다. 인구는 미얀마 전체 5400만 명의 약 3.7%인 최대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에도 일부가 거주한다. 로힝야어는 치타공 지역에서 쓰이는 치타공어와 흡사하다. 음성언어로는 큰 차이가 없어 소통이 가능하다. 다만 두 언어 모두 방글라데시 최대 언어인 벵골어와는 많이 다르다.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를 거친 후 아직까지 민족 종교 갈등에 신음하는 많은 나라처럼 로힝야족을 둘러싼 미얀마 내부 갈등의 근본 원인 역시 1824∼1948년 식민통치를 벌인 영국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영국은 버마족을 관리하기 위해 인도계 무슬림 등의 대규모 이주를 장려했다. 이들 무슬림에게 세금, 토지 등 각종 혜택을 부여했고 무슬림 역시 버마족 탄압에 앞장서 미얀마인의 원성을 샀다. 식민지배 시절 미얀마 상권을 장악한 인도계 무슬림에 대한 반발과 증오가 같은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으로도 번져 지금까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이 미얀마를 침공했을 때 로힝야족은 영국 편에, 버마족은 일본 편에 섰던 것도 양측 갈등을 키웠다. 영국은 자신들을 돕는 대가로 세계대전이 끝나면 로힝야족에게 자치지역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로힝야족은 스스로를 7세기경 미얀마 일대에 도착한 아랍 상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당국의 주장처럼 ‘뜨내기 이민자’가 아니며 1300년 넘게 이곳에서 거주한 ‘토착민’이란 의미다. 반면 군부는 식민지 시절 영국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미얀마인을 탄압했고 미얀마에 온 지도 오래되지 않았으니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한다.○ 군부가 대대적 탄압…대부분 문맹 1948년 독립 직후만 해도 로힝야족은 미얀마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로힝야족 출신으로 의회에 입성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인물들도 있다. 1961∼1964년 라카인주 북부에서 짧게나마 자치권도 보장받았다. 1962년부터 군부 독재가 시작되면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당시 쿠데타로 집권해 1988년까지 철권통치를 한 독재자 네 윈(1911∼2002)은 집권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교 사회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우고 로힝야족을 제국주의 잔재로 규정했다. 불교 사회주의는 현실 세계에서의 욕망 자제, 산업 국유화, 배타적 민족주의 등을 기반으로 한다. 네 윈은 대외교역을 대폭 줄이고 외국인을 추방하는 등 쇄국주의 노선을 걸었다. 특히 네 윈 정권은 1982년 미얀마 국민을 ‘영국 통치 이전부터 거주한 민족’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만들어 로힝야족을 제외시켰다. 라카인주를 벗어나는 이동 또한 엄격히 제한했다. 로힝야 인구를 줄인다며 로힝야족끼리의 결혼을 제한하고 자녀도 두 명까지만 둘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로힝야족은 사실상 기본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비참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기초교육도 받지 못해 대부분이 문맹이다. 2013년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akan Rohingya Salvation Army·ARSA)이란 로힝야 무장단체가 등장하면서 로힝야 민간인의 고난이 더 심해졌다. 이슬람국가(IS) 등 수니파 무장단체와 연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 단체는 종종 정부군 공격 등을 감행해 왔다.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65)은 ARSA 제거를 이유로 2017년 로힝야 민간인에 대한 전쟁범죄를 주도해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유엔은 “인종청소 의도로 대량 학살과 집단 성폭행이 자행됐다”며 흘라잉을 포함한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다. 미국 또한 2019년 흘라잉과 군 수뇌부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재무부 제재 명단에 올렸다. 흘라잉은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뜻의 비하적인 표현 ‘벵갈리’로 부른다. 그는 2018년 9월 로힝야족 민간인에 대한 전쟁범죄 혐의를 부인하며 “벵갈리가 있어야 할 곳은 방글라데시다. 그들이 미얀마에 있는 한 미얀마 법에 따라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수지의 외면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끌며 2015년 11월 총선에서 네 윈 집권 후 53년 만의 문민정부 출범을 이끈 수지 국가고문 역시 로힝야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지 고문도 로힝야 대신 ‘무슬림’이란 표현을 쓴다. 그는 집권 직후 ‘로힝야’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자신을 접견한 미 외교관에게도 ‘로힝야’란 말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2018년 영국 BBC 인터뷰에서는 “인종청소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강한 표현”이라며 집단학살을 간접 부인했다. 2019년 12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군을 두둔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아이콘이었지만 자국 내 민족 갈등에 대해서는 지배자의 전형적 태도를 고수한 수지 고문에게 서구 사회는 크게 실망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언론은 “로힝야에 대한 그의 입장은 비겁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주요 인권단체 역시 그가 받은 노벨 평화상을 박탈하라고 촉구했다. 문민정부 출범 후에도 군이 미얀마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은 모르는 바 아니나 노벨상 수상자로서의 명예와 권위에 스스로 흠집을 냈다는 비판이 거셌다. 로힝야 사태에 대한 애매한 태도로 수지 고문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줄어든 것이 군부에 이번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軍, 2020년 총선 무효화…정국 혼란 가속 미얀마 현지 매체 미얀마나우에 따르면 군부는 26일(현지 시간) 수지 고문이 이끄는 NLD가 압승했던 2020년 11월 총선을 무효화했다. 그간 “부정선거가 자행됐다”며 당시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쿠데타로 집권한 후 총선 자체를 아예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군의 계속된 유혈 진압으로 쿠데타 발발 후 이날까지 사망자는 6명으로 늘었다. 정국 혼란 격화로 로힝야 문제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군부와 미얀마 시민사회 모두 로힝야족을 거부하고 탄압했지만 쿠데타 후 로힝야족과 반정부 시위대가 규합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다급해진 흘라잉 역시 로힝야족에게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다만 군부와 시민사회 모두 자신들의 집권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로힝야족을 도구로 삼을 뿐 정작 이들의 처우 개선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 쿠데타 정국이 마무리되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양쪽 모두에게 배척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의 로힝야족 지도자 딜 모하메드는 쿠데타 직후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악랄한 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 국제사회 역시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나서 달라”며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할 뜻을 밝혔다.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젊은 시위대를 중심으로 “로힝야족의 반정부 시위 지지를 환영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역시 “로힝야족은 미얀마 국민과의 연대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차별을 끝내고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함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급해진 흘라잉은 8일 연설에서 과거와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날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 있는 로힝야족의 미얀마 송환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전히 ‘로힝야’란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주도한 집단학살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로힝야족을 불러들이겠다는 의지를 처음으로 내비쳤다. 수십 년간 군부가 로힝야족에 대한 일반 불교도의 반감을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이용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화해 제스처가 진심이 아닐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최영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미얀마 지역연구센터장)는 “군부 입장에서 로힝야족은 소수민족에도 포함되지 않는, 변방에서 사고 치는 집단 정도이지만 수지 고문을 공격하기 위해 로힝야족을 정치적 도구로 계속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수지 고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집권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수지 고문과는 달리 자신은 로힝야족을 포용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는 의미다. ‘군사정권’이란 공동의 적 때문에 그간 터부시하던 로힝야족을 포용하는 듯한 일반 국민의 태도 역시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회의론이 제기된다. 장준영 한국외국어대 동남아연구소장은 “대부분의 미얀마인은 로힝야족 문제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여긴다”며 불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대립이 뿌리 깊다고 진단했다. 미얀마 전문가인 이언 홀리데이 홍콩대 교수 역시 타임에 “이미 미얀마 국민과 로힝야족 간의 분열은 너무나 깊다”며 로힝야족을 향한 미얀마인의 차별적 인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조유라 jyr0101@donga.com·신아형·김민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국회의사당 폭동에 “실질적·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던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갑자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매코널 대표는 25일(현지 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2024년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로 나온다면 절대적으로(absolutely)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2주 전만해도 매코널 대표는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매코널은 13일 본회의장 발언대에서 “트럼프가 폭동에 책임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며 “국회의사당에 몰려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행동에 대해 “추한 직무유기”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일 성명을 내고 “매코널은 음침한 고집불통의 정치꾼”이라며 “그 같은 지도자가 주도하는 한 공화당은 다시 강해질 수 없다”며 반박했다. 그런데 매코널 대표가 25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 나오면 지지하겠냐는 폭스뉴스 기자의 질문에 “절대적으로 지지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매코널은 그러면서 “2024년까지는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알기로 대선을 준비하는 사람만 4명이다. 경선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또 국회의사당 폭동에 관해 트럼프를 비판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과거의 일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롭게 행정부가 들어섰고, 그 정부는 매우 좌파적”이라고 답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4일(현지 시간) 가수 레이디 가가의 반려견 세 마리를 산책 시키던 남성이 총에 맞았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 남성을 쏜 무장 강도들은 가가의 프렌치 불독 세 마리 중 두 마리를 납치해갔다. 가가 측은 반려견을 돌려준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50만 달러(약 5억 원)을 주겠다고 현상금을 내걸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가가의 반려견을 산책시키던 남성이 총 한 발을 맞았고, 병원으로 이송돼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이 남성은 24일 오후 9시 40분 경 선셋대로 근처의 노스 시에라 보니타 대로에서 걷다가 습격을 당했다. 흰색 닛산 자동차가 이 남성에게 접근했으며, 이 차에서 남성 2명이 내려 반려견을 훔쳐갔다. 경찰은 “피의자 두 명이 차에서 내려 피해자에게 총을 겨누고 개들을 내놓으라고 했으나, 피해자가 저항하자 총을 쏘고 3마리 중 2마리를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레이디 가가의 반려견임을 알고 접근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프렌치 불독은 미국에서 인기가 많은 품종으로 수천 달러에 거래된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1월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3명의 남성이 산책 시키던 여성을 폭행하고 프렌치 불독 1마리를 훔쳐가기도 했다. 가가 측은 두 마리의 강아지 ‘코지’와 ‘구스타브’를 찾기 위해 제보 이메일 계정을 만들고, 현상금을 내걸었다. 가가는 현재 영화 촬영을 위해 이탈리아 로마에 머물고 있다. 가가의 측근은 미국 연예매체 ET에 “가가는 이성을 잃은 상태다. 라이언은 단순한 도그 워커(반려견을 산책시켜주는 사람)가 아닌 가가의 친구이기 때문에, 가가가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같은 작품은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그려진 것들이다. 아를에서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폭발시키기 전, 고흐는 2년 간 파리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고흐는 모네, 피사로는 물론 앙리 툴루즈 로트렉 같은 후기 인상주의 작가와 교류했다. 이 시기 고흐가 그렸지만 100년 동안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던 그림이 경매에 나왔다. 24일(현지 시간) 가디언 등은 고흐의 ‘몽마르트 거리 풍경’(1887년)이 소더비 3월 경매에 나온다고 보도했다. 작품은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유명한 풍차인 ‘물랭 드 라 갈레트’ 주변 거리 풍경을 담고 있다. 소더비는 “고흐는 목가적인 풍차와 지극히 도시적인 카바레가 섞인 몽마르트의 독특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림의 주인은 프랑스의 소장가로 1920년 이 작품을 구매했다. 이 때 이후 100년 동안 가족들이 작품을 소장하며, 단 한 번도 외부에 보인 적이 없다고 한다. 7개의 카탈로그(작품 목록)에 이 작품이 올라있지만 전시된 적은 없는 이유다. 소더비는 3월 경매를 앞두고 런던, 암스테르담, 파리에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예상 가격은 500만~800만 유로(약 67~100억 원)다. 소더비 관계자는 “반 고흐의 몽마르트 시기 그림 대부분은 전 세계 유서 깊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며 “개인 소장 작품이 나온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고흐는 1886~1888년 2년 동안 파리에서 생활했다. 이 때 파리는 인상파 화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빛에 집중하는 인상파의 영향으로 고흐의 그림도 파리에서 조금씩 밝은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소더비는 “고흐의 독자적인 스타일은 몽마르트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경쟁 관계인 마약조직 간 세력 다툼으로 중남미 에콰도르의 교도소 3곳에서 최소 62명이 숨지는 대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23일 에콰도르 남부 쿠엥카, 태평양 연안 해안도시 과야킬, 중부 라타쿵가 교도소에서 모두 폭동이 일어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여파로 쿠엥카 교도소에서만 33명이 숨졌고 과야킬(21명), 라타쿵가(8명)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소셜미디어에는 피바다가 된 3개 교도소 및 훼손된 시신의 사진이 등장했다. 두 조직은 교도소 내 수감자 대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폭동 하루 전인 22일 경찰이 교도소 내 무기를 수색한 후 두 조직의 싸움이 격화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태가 악화되자 레닌 모레노 대통령은 교정시설의 무기, 탄약, 폭발물 등을 엄격히 통제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몇 년간 에콰도르 교도소 내 폭력 사태는 빈번하게 발생했다. 전국의 교정 시설이 총 2만700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현재 수감된 재소자가 3만8000명에 달할 정도로 과밀 상태인 것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에도 범죄조직 간 다툼으로 재소자 5명이 숨졌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시 인근의 외딴 마을. 이곳 경찰은 10일 부상당한 남성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현장에 가보니 젊은 남성이 팔이 묶이고 입은 틀어 막힌 채 쓰러져 있었다. 남성은 자신이 납치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납치는 자작극이었다. 이유는? ‘출근하기 싫어서.’ 23일(현지 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경찰은 일을 하기 싫어서 자신의 입에 천을 우겨 넣고, 손을 묶어서 납치를 가장한 브랜든 소울스 씨(19)를 허위 신고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소울스 씨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으며, 550달러(약 60만 원) 벌금을 낼 예정이다. 이 지역의 타이어 가게에서 일하는 소울스 씨는 납치극을 꾸민 당시 “오전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괴한이 들이닥쳐 머리를 때려 정신을 잃고 보니 이곳에 있었다”고 경찰에 말했다. 병원으로 이송돼 진단을 받은 그는, 납치 이유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아버지가 사막에 큰 돈을 숨겨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런데 조사가 진행될수록 그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병원 진단 결과 그의 머리에서는 어떠한 부상의 흔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또 소울스 씨의 핸드폰이나 자택 인근 폐쇄회로(CC)TV 조사에서도 납치의 정황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말을 입증하라는 경찰의 추궁 끝에 소울스 씨는 출근하기 싫어 납치극을 꾸며냈다고 실토했다. 소울스 씨가 일했던 ‘타이어 팩토리’의 관계자는 뉴욕타임스(NYT)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소울스 씨의 페이스북 계정에 따르면 그는 타이어 팩토리에 더 이상 일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군국주의, 물질주의, 성적 억압에 반대하는 ‘비트 세대’의 문화를 태동시킨 서점 ‘시티 라이츠’(City Lights)를 세운 시인 로런스 펄렝게티가 22일(현지시간) 자택에서 폐 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2세. 뉴욕타임스(NYT)가 ‘비트세대의 정신적 대부’라고 표현한 펄렝게티는 1956년 앨런 긴즈버그의 시집 ‘울부짖음’(Howl)을 출간하며 세계 문화사의 중요한 사건을 기록했다. 같은 해 갤러리에서 긴즈버그가 ‘울부짖음’을 낭독하는 모습을 본 펄렝게티는 다음날 바로 긴즈버그에게 전보를 보낸다. “훌륭한 커리어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시의 원고를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시티 라이츠’ 서점에서 출판사도 운영했던 펄렝게티는 결국 긴즈버그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러나 이듬해 외설 출판 혐의로 긴즈버그와 함께 체포돼 법정에 선다. 당시 심경에 대해 펄렝게티는 가디언에 “당시 나는 어렸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며 “평생 가둬두진 않을 테니 감옥에서 책을 실컷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슈가 되자 증언대에 수많은 서부의 문학인들이, 길에서는 독자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법원은 “사회적 중요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책을 선정적이라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다. 이는 수정헌법 1조에 관한 역사적 판결 중 하나로 꼽히며, 이 재판 후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작품도 출간될 수 있었다. ‘울부짖음’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시가 됐고, 시티 라이츠 서점은 ‘예술의 자유’를 상징하는 곳이 됐다. 시티 라이츠는 문학계에서 천대를 받았던 페이퍼백을 주로 판매한 서점이기도 하다. 또 긴즈버그는 물론 소설가 잭 케루악 등 기성 서점에서 잘 볼 수 없었던 비트세대 문학가들의 작품을 출간했다. 당시 서점으로서는 드물게 주말과 심야에도 영업해, 급진적인 문화 인사들이 교류하는 산실이 됐다. 1919년 뉴욕에서 태어난 펄렝게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복무하고, 프랑스 파리 소르본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1958년에 출간한 시집 ‘마음 속 코니 아일랜드’는 전세계 100만 권 이상 판매될 정도로 사랑 받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서점에 머물며, 자신을 찾아온 전 세계 문학 마니아들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었다. 2019년 샌프란시스코시는 그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3월 24일을 ‘로렌스 펠렝게티의 날’로 선정하고 한 달 내내 축제를 열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당시 스스로의 삶에 대해 자랑스럽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네요. ‘자랑스럽다’는 말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요. ‘행복했다’가 더 적절한 단어겠어요. 물론 ‘행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정말 골치 아파지겠죠.”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치광이나 그릴 그림(Could only have been painted by a madman).” 20세기 유럽 회화의 걸작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1893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의식하지 않으면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그림 속 문장은 오랜 기간 미스터리였다. 1904년 이 문장을 처음 언급한 덴마크의 한 평론가는 낯선 그림에 화가 난 관람객이 쓴 낙서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낙서가 아니었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은 22일(현지 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이 글귀는 뭉크가 직접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은 2022년 이전(移轉) 재개관을 준비하며 ‘절규’ 보존 작업과 심층 연구를 진행했다. 적외선 촬영을 통해 이 글귀는 그림이 완성된 후 연필로 쓴 것임을 확인했다. 뭉크가 남긴 노트와 일기 등 기록을 연구한 끝에 미술관은 이 글귀를 작가가 직접 썼다고 결론을 내렸다. 큐레이터 마이 브리트 굴렝 씨는 “단어 하나하나 대조해본 필적 증거는 물론이고 그림이 처음 공개됐던 1895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고려할 때 의심의 여지 없이 뭉크가 직접 쓴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은 1895년 그림 공개 후 뭉크에게 쏟아진 비난도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절규’가 처음 전시된 뒤 그림에 대한 분노 섞인 혹평이 쏟아졌고 작가가 미쳤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심지어 뭉크가 참석한 토론회에서 한 학생은 화가의 정신 상태가 의심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비난을 듣고 뭉크가 자신의 그림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글씨로 ‘미치광이나 그릴 그림’이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굴렝은 이때 받은 비난이 뭉크에게 큰 상처가 됐다고도 덧붙였다. 이후 수십 년간의 기록에서 뭉크는 ‘미치광이’라는 비난을 지속적으로 곱씹었다. 뭉크의 아버지와 누이는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자신도 1908년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뭉크는 1893년부터 1910년까지 4가지 버전의 ‘절규’를 그렸다. 그중 노르웨이 미술관 소장품은 가장 먼저 그린 작품으로 이 그림에만 연필로 글귀가 적혀 있다. 작품이 유리 액자 속에 보관된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이 문구를 보기는 쉽지 않다. 굴렝 씨는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야 정확한 글귀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글씨가 작다”며 “관객이 쓴 낙서라면 더 큰 글씨로 적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글귀가 적힌 연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술관은 이 작품을 뭉크의 다른 대표작인 ‘마돈나’ ‘생의 춤’ ‘담배를 문 자화상’과 함께 2022년 재개관 전시에 공개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치광이나 그릴 그림”(Could only have been painted by a madman)20세기 유럽 회화의 걸작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1893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의식하지 않으면 맨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그림 속 문장은 오랜 기간 미스터리였다. 1904년 이 문장을 처음 언급한 덴마크의 한 평론가는 낯선 그림에 화가 난 관객이 쓴 낙서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낙서가 아니었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은 22일(현지 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이 글귀는 뭉크가 직접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은 2022년 이전 재개관을 준비하며 ‘절규’ 보존 작업과 심층 연구를 진행했다. 적외선 촬영을 통해 이 글귀는 그림이 완성된 후 연필로 쓴 것임을 확인했다. 뭉크가 남긴 노트와 일기 등 기록을 연구한 끝에 미술관은 이 글귀를 작가가 직접 썼다는 결론을 내렸다.큐레이터 마이 브리트 굴렝은 “단어 하나하나 대조해 본 필적 증거는 물론이고 그림이 처음 공개됐던 1895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고려할 때 의심의 여지없이 뭉크가 직접 쓴 것”이라고 말했다.미술관은 1895년 그림 공개 후 뭉크에게 쏟아진 비난도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절규’가 처음 전시된 뒤 그림에 대한 분노 섞인 혹평이 쏟아졌고 작가가 미쳤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심지어 뭉크가 참석한 토론회에서 한 학생은 화가의 정신 상태가 의심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난을 듣고 뭉크가 자신의 그림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글씨로 ‘미치광이나 그릴 그림’이라는 글귀를 적었다는 것이다. 굴렝은 이 때 받은 비난이 뭉크에게 큰 상처가 됐다고도 덧붙였다. 이후 수십 년 간의 기록에서 뭉크는 자신에게 제기된 ‘미치광이’라는 비난을 지속적으로 곱씹었다. 그의 아버지와 누이는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뭉크 본인도 1908년 신경 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뭉크는 1893년부터 1910년까지 총 4가지 버전의 ‘절규’를 그렸다. 그 중 노르웨이 미술관 소장품은 가장 먼저 그린 작품으로 이 그림에만 연필로 글귀가 적혀 있다. 작품이 유리 액자 속에 보관된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이 문구를 보기는 쉽지 않다. 굴렝은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 정확한 글귀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글씨가 작다”며 “관객이 쓴 낙서라면 더 큰 글씨로 적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글귀가 적힌 연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미술관은 이 작품을 뭉크의 다른 대표작인 ‘마돈나’, ‘생의 춤’, ‘담배를 문 자화상’과 함께 2022년 재개관 전시에 공개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텍사스주가 기록적 한파와 정전으로 최악의 상황을 겪는 가운데 지역구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공화당·사진)가 따뜻한 날씨로 유명한 휴양지 멕시코 칸쿤으로 몰래 여행을 떠난 사실이 들통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크루즈 의원의 비밀 여행은 트위터를 통해 알려졌다. 17일(현지 시간) 밤 크루즈 의원이 가족과 함께 칸쿤행 비행기를 타는 사진이 공유됐다. 의혹이 제기되고 12시간이 지나서야 크루즈 의원 측은 “등교가 취소된 딸들을 위해 여행을 갔다”고 해명했지만 그가 떠나기 전 지인들에게 “집이 너무 춥다”며 추위를 피해 텍사스주를 떠나려는 뉘앙스로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18일 뉴욕타임스는 크루즈 의원의 부인이 측근들에게 “집이 너무 추워 얼어 죽을 것 같아 칸쿤 리츠칼턴 리조트로 떠나려고 한다”며 여행에 합류하라고 보낸 문자메시지를 입수해 보도했다. 크루즈 의원은 칸쿤으로 떠날 때 경찰 의전까지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주민들은 크루즈 의원 집 앞에서 ‘칸쿤 크루즈’의 사퇴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얀마 군부가 발포한 실탄에 맞아 뇌사 상태에 빠졌던 여성 먀 트웨 트웨 킨 씨(20)가 열흘 만에 숨졌다. 19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은 킨 씨가 이날 오전 병원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킨의 가족은 로이터와의 통화에서 사망 소식을 알리면서 “정말 슬프고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킨 씨는 1일 미얀마 쿠데타 이후 집회에 참가했다 사망한 첫 민간인이다. 9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의 반정부 시위에 참석한 킨 씨는 경찰의 물대포를 피해 버스정류장에 있던 중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군경의 실탄 사격에 머리를 맞았다. 13일에는 가족들이 뇌사 상태에 빠진 킨 씨의 산소호흡기 제거에 동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6일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을 추가 기소한 군부는 쿠데타 이후 첫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의 폭력 시위 때문에 경찰관 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관련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에 이어 영국과 캐나다는 미얀마 군부를 대상으로 제재를 결정했다. 18일 영국 외무부는 미얀마 국방 장관, 내무부 장·차관 3명의 자산을 동결하고 여행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날 캐나다도 미얀마 군부 인사 9명에게 제재를 부과했으며, 미국은 11일 미얀마 최고사령관 등 군부인사 10명과 기업 3곳에 제재 조치를 내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나의 게임스톱 투자는 펀더멘탈(튼튼한 기초·fundamental)에 기반했다.”, “내 투자 방식이 위험할 순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도 게임스톱 주식을 살 것이다. 지금 주가도 아주 매력적이다.” 월가를 흔들었던 ‘게임스톱’ 사태에 관한 청문회가 18일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 화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대왕개미’ 유튜버 키스 질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키스 질은 지난해 여름 ‘울부짖는 고양이’(Roaring Kitty)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레딧 증권 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에서 게임스톱 주식 매수를 추천하며 ‘개미의 난’을 주도한 인물이다. 최근 개미들은 “질이 직업 투자자임에도 개미 행세를 하며 오도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블래드 테네브 로빈후드 CEO, 가브리엘 플로트킨 멜빈 캐피탈 CEO, 켄 그리핀 시타델 CEO, 스티브 허프만 레딧 CEO 등도 참석했다. 아래는 청문회에서 나온 질과 테네브의 주요 발언이다.○ 키스 질(유튜버)“내가 인정하는 것은 게임스탑 투자를 통해 20배 넘는 수익을 거둔 것이 사실이라는 점이다. 또 현재 게임스탑 주가는 내가 이 회사에 대한 확신이 맞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부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채널 이름에 빗댄 발언). 나는 기관 투자자도 헤지펀드 매니저도 아니다. 나는 고객이 없고 돈을 받고 개인에게 투자 자문을 해주지도 않는다. 나는 게임스탑에 투자한 개미에 불과하고, 내 연구와 분석 결과를 소셜 미디어에 공유했을 뿐이다.” “주식 시장의 투명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나 같은 사람이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은 개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블래드 테네브(로빈후드 CEO)“우리는 유동성이 충분하다. 추가 투자를 받은 것은 유동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앱 이용자들이 게임스톱 주식 거래가 막혀서 분노한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만 매수 뿐 아니라 매도도 막았더라면 상황은 더 심각했을 것이다.” “주식 거래 제한에 대한 외부의 어떤 압력도 없었다.” “발생한 사태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로빈후드가 과거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실수로부터 배우고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스티브 허프만(레딧 CEO)“레딧은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게시글의 진실성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을 쏟고 있다. 이 일을 전담하는 별도의 팀도 운영 중이다. 레딧에 올라온 모든 글은 유저들이 직접 작성하고 추천하고 있으며, 여기에 조작은 발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번 사태(게임스탑)에 관해 우리는 어떠한 조작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텍사스주가 기록적 한파와 정전으로 최악의 상황을 겪는 가운데, 지역구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공화당)가 따뜻한 날씨로 유명한 휴양지 멕시코 칸쿤으로 몰래 여행을 떠난 사실이 들통 나 논란이 되고 있다. 크루즈 의원 측은 “등교가 취소된 딸들을 위해 여행을 갔다”고 해명했지만 그가 떠나기 전 지인들에게 “집이 너무 춥다”며 추위를 피해 텍사스주를 떠나려는 뉘앙스로 말한 사실도 드러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크루즈 의원의 비밀 여행은 트위터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17일(현지 시간) 밤 크루즈 의원이 가족과 함께 칸쿤행 비행기를 타는 사진이 공유됐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12시간이 지나서야 크루즈 의원 측은 해명에 나섰다. 그는 성명을 통해 “등교가 취소된 가운데 딸들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어젯밤 칸쿤으로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오늘 오후 나만 텍사스로 돌아 왔다”고 밝혔다. NBC뉴스는 크루즈 의원이 20일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급히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딸들의 여행을 따라가 준 것일 뿐이라는 해명도 거짓 논란에 휩싸였다. 18일 뉴욕타임스는 크루즈 의원의 부인이 측근들에게 “집이 너무 추워 얼어 죽을 것 같아 칸쿤 리츠 칼튼 리조트로 떠나려고 한다”며 여행에 합류하라고 보낸 문자 메시지를 입수해 보도했다. 칸쿤 리트 칼튼 리조트는 5성급 휴양지로 이곳 4인실은 1박에 최소 410달러가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텍사스주 오스틴과 휴스턴은 최근 며칠간 대규모 정전 사태는 물론 단수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몇 시간에 이르는 대기 줄이 생겨났고 최소 2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재난 상황에도 불구하고 크루즈 의원은 칸쿤으로 떠날 때 경찰 의전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원 의원은 통상 해외로 떠날 때 경찰의 의전을 받는다. 대표적 친트럼프 인사인 크루즈 의원의 논란에 대해 민주당은 의원직 사퇴 및 상원 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텍사스 민주당은 성명을 내고 “텍사스 역사상 최악의 위기 한 가운데 크루즈 의원이 칸쿤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비판했다. 트위터에는 ‘크루즈는 사퇴하라(#TedCruzRESIGN)’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달 20일 퇴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7일 폭스뉴스와 퇴임 후 첫 언론 인터뷰를 갖고 이날 폐암으로 숨진 극우 논객 러시 림보(70)를 ‘전설’이라고 추모했다. 특히 “림보는 우리가 대선에서 이겼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고 대선 조작설을 거듭 제기했다. 폭스뉴스는 이날 림보를 추모하는 방송을 편성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24분간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림보가 2016년 대선에서도 나의 승리를 점쳤고 정치와 인생에 관해 놀라운 본능을 지녔다”며 그의 방송이 애청자에게 일종의 종교적 경험이었다고 치켜세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종종 림보와 인터뷰를 가졌고 지난해 2월 민간인 최고훈장인 ‘자유의 메달’도 수여했다. 1951년 미주리주에서 태어난 림보는 청소년 시절부터 지역 라디오방송의 진행자로 일했다. 1988년 미 전역으로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극우 이념을 널리 설파했다. 지난달 의회 난입을 자행한 트럼프 지지자를 옹호하며 “이들은 품행이 바르고 존경스럽다. 폭력 사태의 책임은 극좌단체 안티파와 민주당이 후원한 선동자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임신중절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운동가를 ‘페미나치(페미니스트+나치)’, 노숙자 보호단체를 ‘온정적 파시스트’라고 폄훼하고 지구온난화를 사기라고 주장해 각종 설화에 휩싸였지만 극우 세력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림보는 이런 인기에 힘입어 TV, 출판업에까지 진출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2018년 그의 수입은 8450만 달러에 달했다. 공화당 출신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역시 림보의 죽음을 애도했다. 백악관 측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유가족에게 애도를 전했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집회가 2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17일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인파가 운집한 시위가 벌어졌다. 군부는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의원 15명을 포함해 총 17명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AP통신은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2대 도시 만달레이, 수도 네피도 등에서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최대 규모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군부의 강압적 대응과 수지 고문 추가 기소가 대규모 시위의 촉발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양곤에서는 도심 도로와 시외로 연결되는 길목에 자동차를 버려두는 ‘주차 시위’도 벌어졌다. 군경의 트럭 진입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차 유리에는 수지 고문의 얼굴 사진이 꽂혀 있었다. 톰 앤드루스 유엔 특별보고관은 성명을 내고 “미얀마 군이 양곤으로 이동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과거 이러한 움직임이 대규모 살상이나 구금을 야기했으며 대규모 폭력 사태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얀마 사태가 장기화되고 심각해지면서 각국 정부는 미얀마 내 자국민 철수 조치를 내리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양곤 주재 대사관의 비필수 정부 인력과 가족에 대해 14일부터 ‘자발적 출국’을 승인했다. 미얀마 주재 대만대표부는 현지 교민 철수를 위한 특별기를 21, 28일 두 차례 보낼 예정이다. 일본의 항공회사 전일본공수(ANA)는 귀국을 원하는 현지 일본계 기업 주재원과 가족들을 위해 19일 양곤을 출발해 나리타로 오는 임시 여객기를 운항한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시티은행이 지난해 실수로 송금한 9억 달러(약 1조 원) 중 일부를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16일 뉴욕타임스(NYT)는 “시티은행이 잘못 송금한 9억 달러 중 5억 달러(약 5500억 원)를 반환 받기 위한 소송에서 패소했다”며 “최근 몇 년 간 월가에서 일어난 최악의 사고”라고 보도했다. 이 사고는 시티은행이 화장품 업체 레블론의 대출 중개를 맡으며 발생했다. 당초 시티은행은 레블론을 대신해 채권이 있는 헤지펀드를 비롯한 금융 회사들에 이자 800만 달러(약 89억 원)만 송금하기로 했다. 그런데 실수로 원금까지 포함한 9억 달러를 이들 업체에 송금한 것이다. 통상 실수로 입금된 돈을 사용하면 처벌받지만 뉴욕 주는 받는 사람이 송금 실수를 인지하지 못할 경우를 예외로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뉴욕 연방지법은 시티은행이 송금한 10개 금융회사가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시티은행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시스템을 가진 은행 중 하나로 이곳이 10억 달러를 잘못 송금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판단했다. 시티은행이 잘못 보낸 금액이 원금·이자를 더한 액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점, 송금 업체 내부 직원들의 대화로 미루어 이들이 실수를 인지하지 못한 점을 근거로 삼았다. 대출 업체 측 변호인은 “법원의 사려 깊고 세심한 판결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티은행은 판결에 거세게 반발했다. 은행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송금한 돈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으며 전액을 되찾을 때까지 지속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시티은행이 낸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실수로 송금 받은 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미얀마 경찰이 16일 구금 중인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조치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17일 수지 고문의 구금 종료를 하루 앞두고 억지 죄목을 추가해 구금을 무기한 연장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수지 고문은 쿠데타가 발생한 1일부터 가택연금 됐고 허가 없이 수입 무전기를 사용해 수출입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수지 고문의 변호사는 16일 수도 네피도에서 판사를 면담한 뒤 취재진에게 “수지 고문의 기소 혐의에 방역조치 위반이 추가됐다”고 밝혔다. 방역 위반 및 무전기 불법 수입은 각각 최대 징역 3년, 2년이 가능하다. 미얀마 군부는 이날 첫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시민들의 폭력 시위 때문에 경찰관 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군경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새총과 고무탄을 쏘고 무차별적인 곤봉 세례를 퍼붓는 등 폭력 진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새총과 고무탄을 맞고 피 흘리는 시민, 군용 트럭에 탄 군경들이 차에 탄 채 새총을 겨누거나 곤봉으로 무차별 진압하는 장면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경 진압에도 시민들의 시위 참여 열기는 여전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미얀마 전역 100만 명의 공무원 중 30%가 반정부 시위에 동참했다. 행정부, 은행 및 세금 담당 관료가 상당수 포함돼 국정 운영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의료진의 시위 동참 또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당국은 16일 오전 1시부터 인터넷을 전면 차단했다. 15일에도 새벽부터 약 8시간 동안 인터넷이 끊겼다. 크리스틴 버기너 유엔 미얀마 특사는 “네트워크 차단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김민 kimmin@donga.com·이은택 기자}

미얀마 군경이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새총과 고무탄을 쏘고 무차별적인 곤봉 세례를 퍼붓는 등 폭력진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공무원, 의료진 등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일부 시민은 16일 최대도시 양곤 인근의 철로를 점거해 철도 운영을 중단시켰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시위대는 16일 양곤과 남부 말라윈 사이 철로 위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은 “우리의 지도자를 즉시 석방하라” “시민의 권력을 돌려달라”며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구금 해제 등을 촉구했다. 양곤 시위대는 주요 대학, 중앙은행 등에 집결해 시위 동참을 호소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 ‘만달레이’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2대 도시 만달레이에서 군경이 자행한 폭력을 고발하는 게시물이 잇따르고 있다. 새총과 고무탄을 맞고 피 흘리는 시민, 군용 트럭에 탄 군경들이 차에 탄 채 새총을 겨누거나 곤봉으로 무차별 진압하는 장면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미얀마 전역의 100만 명의 공무원 중 30%가 반정부 시위에 동참했다. 행정부, 은행 및 세금 담당 관료가 상당수 포함돼 국정 운영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국립만달레이병원의 한 의사는 NYT에 “독재 체제에서 일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행동이 군부를 무너뜨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당국은 16일 오전 1시부터 인터넷을 전면 차단했다. 15일에도 새벽부터 약 8시간 동안 인터넷이 끊겼다. 크리스틴 버기너 유엔 미얀마 특사는 “네트워크 차단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을 훼손한다. 은행 등 주요 분야의 업무를 방해하고 국내 긴장 상황을 고조시킬 수 있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군부에 항의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90년대 아르헨티나 경제에 빛과 그림자를 모두 남긴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이 14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0세. AP통신 등에 따르면 메넴은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했고 요로감염으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애도를 표하고 3일간 국가 애도를 선포했다. 시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변호사였던 메넴은 일찍 정계에 입문해 40대에 라리오하 주지사를 지냈다. 1989년 대통령 당선 이후 국영 기업 민영화, 가격 통제 정책 폐기, 달러 대비 페소화 환율을 1 대 1로 고정하는 ‘페그제’ 도입 등으로 심각했던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을 진정시켰다. 연 5000%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은 1993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외교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이후 단절됐던 영국과의 국교도 되살렸다. 재선에 성공한 그는 1999년까지 10년간 집권했다. 그러나 이 때 도입한 정책들은 부채 위기의 ‘씨앗’이 됐다. 집권 후반기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환율을 고정해 글로벌 경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었다. 집권 후반부터 심화된 경제 위기는 결국 2001년 대규모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이어졌다. 메넴 전 대통령은 횡령·부패 스캔들에 휘말리고 불법 무기 수출 의혹을 받기도 했다. 2003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2005년부터 상원 의원을 지냈다. 2001년 70세의 나이로 미스 유니버스 출신의 35세 칠레 여성과 재혼했다 10년 후 이혼했다. 1995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방한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났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러시아에서 후퇴하며 벌어진 전투에서 숨진 프랑스·러시아 군인들의 유해가 200년 만에 안장됐다. 13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은 러시아 서부의 뱌지마(Vyazma)에서 숨진 양측 군인 등의 유해 안장식이 각국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고 보도했다. 2019년 프랑스·러시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유해는 군인 120명, 여성 3명, 10대 소년 3명이다. 이날 안장식에 참석한 프랑스 육군 원수 조아생 뮈라의 후손은 “200년 전 프랑스와 러시아 군인들의 죽음이 평화와 우정의 가치를 일깨워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군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의 후손 율리아 키츠로보는 “세대가 지날수록 죽음과 시간은 모든 이들을 화해시킨다”고 추모사를 통해 밝혔다. 19세기 나폴레옹군은 러시아를 정복하겠다며 모스크바로 진격하지만, 기후 악조건 등으로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퇴각을 결정한다. 이 때 러시아군은 프랑스 군대의 후위를 쳐 궤멸시키는데, 이 전투가 바로 1812년 11월 3일 뱌지마 전투다. 프랑스군은 6000~8000명이 죽거나 포로로 잡혔고, 러시아군도 18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