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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습격하려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한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됐던 북악산 북측 탐방로가 52년 만인 1일 일반에 공개됐다. 2007년 개방한 한양도성 성곽길(창의문∼와룡공원·2.2km)로만 탐방할 수 있던 북악산은 이제 서울 종로구 부암동 토끼굴과 북악스카이웨이 등 추가로 열린 출입구 4곳을 통해서도 오를 수 있다. 6일 찾은 북측 탐방로에서 부암동 토끼굴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철벽경계’라는 표석이 서 있는 대공(對空) 진지를 마주했다. 기관총이 설치돼 있다. 좀 더 올라가면 2006년까지 사용한 옛 경계초소가 나온다. 청와대 외곽 경계 담당인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이 사용했다. 제1경비단의 옛 군견 훈련장도 있다. 훈련기구가 일부 남아 있고, 나무 벤치가 들어섰다. 대통령경호처 관계자는 “북측 탐방로는 기존 군부대 통로로 시멘트를 걷어내고 나무 덱을 새로 놨다”고 설명했다. 청운대부터 곡장(曲墻)까지 성곽 북쪽 길도 공개됐다. 성곽 아래 철책을 치우고 탐방로를 냈다. 이곳에서는 각각 태조 세종 숙종 순조대에 축조된 성벽 모습을 온전하게 비교해 볼 수 있다. 성벽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곡장의 바깥 부분도 감상할 수 있다. 탐방로는 겨울(11월∼이듬해 2월)에는 오전 9시∼오후 5시 개방된다. 마감 2시간 전부터 입장이 통제된다. 개방 시간은 봄·가을(오전 7시∼오후 6시), 여름(오전 7시∼오후 7시) 각기 다르다. 북악산은 여전히 군사경계지역이어서 탐방로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2022년에는 숙정문에서 삼청공원까지 남측 탐방로도 열릴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819년 노예선 ‘르 로되르’가 아프리카를 떠난 지 15일이 지났을 무렵. 배에는 실명을 초래할 수 있는 전염병인 안염(眼炎)이 돌았다. 노예들의 충혈된 눈을 선원들은 무심코 넘겼고 결국 40명이 시력을 잃었다. 한쪽 눈을 잃은 선장은 맹인이 된 흑인 39명의 다리에 추를 묶고 바다에 던졌다. 상품 가치가 떨어진 노예를 파는 것보다 사망보험금을 받는 게 더 이득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끔찍한 이야기는 당시 노예무역에선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인격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는 노예에게 장애는 ‘흠결’이자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 건국 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한 부족에서 신체적 결함은 장애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결핍을 보완해 줄 공동체와 연결되지 못한 상태를 장애로 봤다. 책은 이렇게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장애의 개념을 렌즈로 미국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1492년 이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부족 사회가 펼쳐졌던 이 시기, 장애의 정의는 뚜렷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럽인이 북아메리카를 점령한 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때로는 노예 자체가 장애로 여겨졌고, 장애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이민법이 강화되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장애의 정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은 1968년부터 생겨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사회운동을 펼치며 스스로를 정의하길 시도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장애문화가 풍성해지고, 때때로 주류문화에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1988년 미국 농인학교인 갈로뎃 대학생들은 ‘농인(聾人)총장’을 요구하며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이고 승리를 쟁취했다. 저자는 헬렌 켈러의 정치 연설을 우연히 접한 뒤 장애역사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켈러와 그의 스승 앤 설리번의 정치적 삶에 주목한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는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던 공간이 전시실로 쓰인다. 일민 김상만(1910∼1994·전 동아일보 회장)의 집무실을 보존한 일민기념실이다. 권하윤 작가(39·사진)는 이곳에 ‘윤전기 멈춰요!’라는 네온사인 문구를 걸었다. 이는 1936년 동아일보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사진에서 유니폼의 일장기를 지운 ‘일장기 말소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서울 전시 설치를 마치고 프랑스에 있는 권 작가를 지난달 23일 화상통화로 만났다. 권 작가의 메인 작품은 1920년대를 가상현실(VR) 영상으로 재현한 ‘구보, 경성 방랑’이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에서 영감을 얻어 1920, 30년대 신문의 만문(漫文)만화(그림과 함께 긴 글을 덧붙인 만화)를 소재로 했다. 관객은 VR기기를 쓰고 그림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걷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권 작가의 말을 빌리면 ‘수공업에 가까운 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만문만화에서 영감을 얻었기에 (그림은) 흑백으로 하되 손맛을 살리고 싶었어요. 기술적으로 가상공간에 직접 그릴 수 있어서 가상에서 조각하고 바느질하듯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작품은 1920년대 경성을 산책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흑백의 드로잉이지만 축음기에 가까이 가면 소리가 나고, 전차에 올라타면 실제로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구보 씨가 도시를 방랑하듯 관객도 체험하길 바라는 의도의 설정이다. “영상 작업을 하며 처음엔 답답함도 많았죠. 내가 봐주길 바라는 부분을 놓치거나, 영상 자체를 보지 않고 지나칠 때도 많으니까요. 이번엔 보는 사람의 자유에 좀 더 맡기자고 생각했어요.” 관객이 전차에 올라타야 이야기도 진행된다. 이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체험 시간도 조금씩 다르다. 어느 순간 흰 바탕이 검은색으로 바뀌는데, 검열에 관한 작가의 관심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100년 전 신문에서 검열된 지면은 검게 칠해졌죠. 영상에서도 검은 바탕은 검열된 공간이에요. 이 속으로 들어가면 ‘일장기 말소 사건’이 나옵니다. 모던한 도시는 사실 극소수의 기록된 역사란 생각이 들었어요. 일장기 말소 사건은 처음으로 우리가 일본을 지운 상징적 사건이니 강조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국민’이라는 의식을 가다듬은 계기라고 느꼈다. 구구절절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짧은 순간의 열광을 시청각으로 표현한 이유다. 권 작가는 “관객이 VR기기를 어색해하지 말고 구보 씨가 느꼈던 움직임과 자유를 더 적극적으로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2011년 프랑스 국립현대예술학교인 르프레누아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2015년 파리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에서 신인작가상을 받았고, 2017년 VR 작품 ‘새 여인’으로 같은 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기술을 활용해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장소나 기억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호평 받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의 ‘이우환 공간’은 미술 마니아에게 본관보다 더 유명한 곳이다. 이우환의 주요 작품을 보기 위해 해외 여행객이 일부러 찾기도 한다. 지난달 21일부터 이 공간에서 이우환과 빌 비올라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Ⅱ: 빌 비올라, 조우’전을 통해서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전은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연례 기획전이다. 이 작가가 미술사 중심에 있다고 추천한 작가 중에 한 작가를 선별해 ‘이우환 공간’에서 소개하는 전시다. 지난해 첫 시리즈 주인공은 영국 조각가 앤터니 곰리였다. 이번 전시는 빌 비올라의 197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우환 공간에는 ‘이주’(1976년), ‘투영하는 연못’(1977∼79년), ‘엘제리드호(빛과 열의 초상)’(1979년)가 전시된다. 이때 빌 비올라는 영상을 극도로 클로즈업하거나, 아주 느리게 재생하고, 합성하는 기술 등을 활용해 예술적 메시지를 담으려 시도했다. 그가 국제적 명성을 얻은 출발점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이후 작품들은 미술관 본관에서 더 큰 규모로 만날 수 있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인 ‘인사’와 영국 런던 세인트폴성당에 영구 설치된 ‘순교자 시리즈’(2014년), 다섯 개의 영상으로 이뤄진 대형 설치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2002년) 등이다.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흔해진 지금의 관점에서는 시각언어의 새로움이 한눈에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좀처럼 감상하기 어려운 비올라의 작품을 큰 화면에서 몰입해 볼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미술관은 이달 중 ‘2020 현 시대에서 느끼는 빌 비올라’ 전시 연계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우환 공간 앞 야외에서 시민 5명이 빌 비올라와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부산의 이우환 공간은 일본 나오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이우환 미술관이다. 입지 선정부터 건축 기본설계, 디자인을 이 작가가 맡았다. 1층에는 ‘관계항-좁은문’, ‘물(物)과 언어’ 등 8개의 작품, 2층에는 대표 회화작품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바람과 함께’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4월 4일까지.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아내가 아닌 예술가 우향 박래현(1920∼1976)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20여 년 만이다. 그녀가 남긴 작품의 이름과 제작 시기도 이번에 새롭게 정리됐다. 그 결과물을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에서 열리는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 등 작품 138점과 그가 생전에 썼던 글이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가 열리기 전 박래현에 관한 최신 자료는 1997년 삼성문화재단이 발행한 ‘한국의 미술가: 박래현’이었다. 2011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운보와 우향: 40년만의 나들이’전이 열리기도 했지만 운보가 중심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박래현의 작품을 보던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박래현만 따로 봐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정말 박래현은 김기창의 영향을 받기만 했을까?’ 김기창과 박래현을 독자적인 두 명의 작가로 보자는 생각에서 이 전시는 시작됐다. 그러나 전작에 관한 자료가 없어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미술관과 박물관에 전화부터 돌렸다. 2018년 전시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주변에 소문도 많이 냈다. 입소문을 퍼뜨리면 숨은 작품이 등장할 거란 기대에서였다. 김 연구사는 “다행히 한 분 한 분이 서로 연결해 주어 ‘고구마 줄기를 캐듯’ 작품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1966년 태피스트리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개인 소장가가 갖고 있었던 작품은 처음에 박래현의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진위의 근거가 되어준 것은 1994년 발간된 김기창의 전작 도록. 사진이 취미였던 김기창이 남긴 1966년 부부전 사진에서 작품을 확인했다. 이렇게 구성한 전시에서 관객이 놀라는 것은 열성적인 예술가로서 박래현의 모습이다. 태피스트리 작품에서 그녀는 엽전, 철사, 목재는 물론이고 커튼 고리, 하수구 마개까지 다양한 재료를 결합해 조형 실험을 한다. 독일 바우하우스의 여성 작가 애니 앨버스(1899∼1994)가 직조 공방에서 태피스트리의 조형성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 1920년대다. 박래현은 1960년대 미국을 방문하며 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박래현의 대표 작품인 추상화의 새로운 맥락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생전에 엽전, 맷방석(맷돌 밑에 까는 방석) 또는 금줄(아이를 낳았을 때 부정을 막으려고 거는 새끼줄)에 비유되곤 했다. 김 연구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토속적 소재에만 비유되거나 역사인식이 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래현은 이들 작품에 대해 1967년 ‘태양의 생활력을 황색으로, 인간의 생명은 피로, 타산을 벗어날 수 없는 시대의 신중성을 흑빛의 침묵으로 나를 대변했다’고 썼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붉은색, 노란색, 검은색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다. 김 연구사는 초기 회화부터 판화까지 “도상과 질감, 색채와 조형성에서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며 “그 단서가 되는 작품을 한두 점씩 전시장에 배치해 두었으니 꼭 확인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년 1월 3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폐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수년간 찬밥 신세였다. 심지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도 트럼프 대통령이 NAFTA를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으로 대체한 것을 긍정 평가한다. NAFTA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해외로 유출한 원흉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유무역이 가져다 준 보이지 않는 이익이 많다고 반박한다. 25년 동안 NAFTA가 동네북이 된 것은 오히려 정치인 탓이다. 그들은 ‘백인 남성 노동자’의 표심을 노리기 위해 선거철만 되면 NAFTA를 비난했다. 트럼프는 물론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도 예외는 아니다. ‘무역은 금기어가 아니다(Trade is not a four-letter word)’라고 역설하는 책은 정치적 수사(修辭)에서 벗어나 무역을 원점에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무역이 급격히 확대된 만큼 그 양상도 복잡해졌다. 경제적 인과관계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역에 관심이 없어 ‘포퓰리즘 샌드백’이 됐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책은 일반인이 갖기 쉬운 무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고 큰 그림을 이해하기 쉽도록 서술됐다. 무역에 관한 대표적 오해는 ‘무역적자는 나쁘다’는 것이다. 2018년 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무역적자에 관한 내용을 37번이나 올렸다. 공포감을 조성하는 형용사와 함께 그는 “어마어마한 적자를 되찾아야만 한다” “미국이 눈 가리고 강탈당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우리가 미용실에 갈 때마다 돈을 쓰기만 한다고 해서 ‘돈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는 없다. 지불한 만큼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이야기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또한 “무역적자는 경제정책을 평가하는 가장 형편없는 기준”이라고 말한다. 2부로 넘어가면 일상에 작용하는 자유무역의 효과들이 펼쳐진다. 타코 샐러드, 자동차, 바나나, 아이폰, 교육,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통해서다. 멕시코 음식으로 여겨지는 타코 샐러드는 사실상 모든 재료를 미국산으로 만들 수 있다. 미국산 부품을 가장 많이 쓴 자동차는 놀랍게도 일본의 혼다 오디세이다. 반대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수출한 차는 BMW SUV다. 또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아이폰, 교육 수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진지한 무역 상품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존 F 케네디로 대표되는 미국이 번영했던 시절의 가치를 되새긴다. 자유로운 경쟁의 장에서 창의성을 통해 발전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자연스레 평화도 이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서술은 철저히 미국의 관점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전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변화의 거센 물결에 관한 해답이 비난하는 정치인이 아닌 똑똑한 시민에게 있다는 것은 절실히 공감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임시 휴관 중인 삼성미술관 리움이 내년 3월 재개관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리움은 2017년 3월 홍라희 관장과 홍라영 총괄부관장이 사임하면서 이후 3년여 동안 사실상 개점휴업 상황이었다. 올해 2월부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상설 전시마저 중단하고 임시 휴관하고 있다. 미술시장의 ‘큰손’인 리움의 재개관 소식이 알려지자 미술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리움이 다시 문을 열면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 이사장은 2018년 12월부터 리움의 ‘발전 논의·자문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때부터 그가 어머니 홍 전 관장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미술계에서는 이 이사장이 최근 몇 년간 여러 미술전에 조용히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돌곤 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중소 갤러리 연합전(展)을 찾았고,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국내 작가 개인전의 프라이빗 오프닝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삼성의 패션사업을 이끄는 등 디자인에 강점을 지닌 이 이사장이 파인아트를 다루는 미술관은 어떻게 운영할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재개관 이후 기획 전시도 적극적으로 개최할 것으로 보여 눈길이 쏠린다. 리움은 ‘개점 휴업’ 상황에 놓이기 직전 김환기 회고전과 서예전 ‘필(筆)과 의(意): 한국 전통서예의 미(美)’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취소됐다. 그 이전에는 애니시 커푸어,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등 굵직한 해외 작가 개인전도 개최했다. 삼성미술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리움의 빈자리에 대해 미술계에서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다시 문을 연다니 고무적이다. 민간미술관답게 발 빠르게 과감한 전시를 열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리움 관계자는 “내년 개관을 목표로 준비 중인 것은 맞지만 여러 변수가 있어 개관 일정이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2004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관한 리움은 설립자인 이건희 회장의 성 이(Lee)와 박물관(Museum)의 ‘um’을 조합해 이름을 지었다. 7900m² 대지에 마리오 보타(스위스), 장 누벨(프랑스), 렘 콜하스(네덜란드) 등 세계적 건축가 3명이 설계했다. 도자기 수집에 취미가 있었던 이 회장의 고미술품과 홍 전 관장의 현대미술로 이뤄진 소장품 규모도 방대하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금강전도(국보 217호), 금동미륵반가상(국보 118호), 금제귀걸이(보물 558호) 등 국보·보물 100여 점을 갖고 있다. 또 청전 이상범, 백남준, 이우환, 오윤, 이불 등 국내 작가와 앤디 워홀, 요제프 보이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젤름 키퍼, 장미셸 바스키아 등 해외 주요 작가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MBN은 종합편성채널 설립 당시 자본금 불법 납입에 대해 29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67)의 아들인 장승준 MBN 대표이사 사장(39)은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MBN은 이날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2011년 종편 승인을 위한 자본금 모집 과정에서 직원 명의의 차명 납입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며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사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MBN을 사랑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 장승준 사장이 경영에서 물러난다”며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노력으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방송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MBN은 종편 승인을 받기 위해 납입자본금 약 4000억 원 가운데 약 550억 원을 은행에서 차명으로 대출 받은 뒤 임직원 명의로 주식을 사들이고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올 7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장 사장에게 벌금 1500만 원, MBN 법인에는 벌금 2억 원을 선고했다. 앞서 MBN 최대주주인 장 회장은 전날 불법 자본금 납입 관련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견 청취 자리에 참석해 “최초 승인 당시 불법에 대해 몰랐으며 2018년 금융감독원 조사 시점에야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또 불법 자본금 납입 관련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장 사장이 매일경제신문 대표가 된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짧았다”고 밝혔다. 의견 청취 과정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가 없었다는 얘기가 나왔고, MBN은 하루 만에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방통위는 30일 전체회의를 열어 MBN에 대해 승인 취소나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의결할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가야 고분군 중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이후 도굴 피해를 심하게 입은 곳으로 꼽힌다. 이 고분군의 한 무덤에서 장신구 유물이 도굴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쏟아졌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지연)는 경남 창녕군 교동Ⅱ군 63호분을 발굴해 조사한 결과 비화가야 지배자의 금동관 금귀걸이 구슬목걸이 등을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것만 빼면 지난달 몸 전체 장신구 일체가 발굴된 경북 경주시 황남동 신라 고분과 비슷하다. 교동Ⅱ군 63호분은 5세기 중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의 2m 북쪽에 있는 39호분은 안에서 빵봉지, 고무대야, 양동이가 발견되는 등 도굴로 황폐화돼 있었다. 창녕 지역 비화가야 고분은 덮개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유물을 쉽게 훔칠 수 있는 구조여서 비화가야 유물은 그동안 금동관 조각이나 장신구만 확인됐을 뿐 전모를 알 수 없었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의 면면은 화려하다. 머리 위치에서는 높이 21.5cm 금동관이 확인된다. 나뭇가지 모양 장식이 3단으로 세워져 있고, 관테 아래에는 곱은옥과 금동구슬이 드리워져 있다. 관 속에는 관모(冠帽)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도 발견됐다. 양쪽 귀 부분에서는 굵은고리귀걸이 1쌍이, 목과 가슴에는 남색 유리구슬을 서너 줄로 엮은 구슬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은장식 손칼이 달린 은허리띠를 둘렀으며 양손에는 각각 은반지 1개(오른손), 3개(왼손)가 확인됐다. 오른 팔뚝 부분에서는 원형금판에 연결된 곱은옥과 주황색 구슬도 나왔다. 팔찌나 손칼을 장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 무덤의 주인을 키 155cm가량의 최고 지배계급이고, 긴 칼 대신 굵은귀고리와 손칼이 발견된 점을 감안해 여성으로 추정했다. 무덤 안팎으로 순장자가 최소 5명 묻힌 흔적도 나타났다. 이들은 무덤 주인공과 같은 방향으로 목관에 안치돼 낮은 계급은 아닐 확률이 높다. 무덤 구조와 출토된 토기는 전형적인 가야 양식이지만 장신구는 신라의 것과 유사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양숙자 학예실장은 “낙동강 동쪽에 있던 비화가야가 신라와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며 “다만 무덤 양식이 가장 보수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가야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묘역 중 미정비지역을 조사하다 63호분을 발견했다. 지난해 11월 대형 덮개돌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고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다음 달 5일 유튜브를 통해 이번 발굴조사에 참여한 단원들이 출연하는 실시간 온라인 발굴조사 설명회를 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주말인 17, 18일 부산 중구 중앙동에서는 평소와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됐다. 6·25전쟁 때 이산가족의 상봉 장소였던 ‘40계단’을 중심으로 골목길이 뻗은 이곳은 과거엔 피란민의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고, 지금은 소규모 점포들로 채워진 일상의 공간이다. 이 길들 사이로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와 비엔날레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팀과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미술계 인사들이 오가며 마주치고 인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주요 비엔날레들이 코로나19로 연기된 가운데 지난달 개막한 2020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를 관람하는 발길이 이어진 것이다. 이 풍경은 전시 감독인 야코브 파브리시우스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지난해 공모를 통해 감독으로 선정된 직후 그는 부산의 ‘도시 공간’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파브리시우스는 부산에 머물며 도보로 전시 공간을 물색했다. 그러다 중앙동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영도까지의 풍경과 역사성에 매료돼 이곳을 외부 전시 공간으로 선정했다. 그 결과 관객이 예술 작품은 물론 부산의 깊숙한 풍경을 마주하게 됐다. 미술계 인사는 “보통 외지인이 부산 여행을 오면 개발된 곳만 가게 되는데, 획일적 공간보다 부산의 지역색이 드러나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열 장의 이야기…’는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과 중앙동의 7개 소규모 공간, 영도 항구 옆 창고에서 열리고 있다. 문학가 11명이 부산에 머물며 쓴 글을 토대로 30여 개국의 시각 예술가 70여 명이 작품을 출품했다. 현대미술관 입구에는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언급상을 받았던 요스 더 그라위터르 & 하랄트 티스의 ‘몬도 카네’가 설치됐다. 입구를 가로막은 철창살을 지나면 이탈리아 작가 모니카 본비치니의 나무집 ‘벽이 계속 움직이면서’가 보인다. 가로 세로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은 노원희의 회화 작품 ‘창’으로, 나무 집 속 사진은 스탠 더글러스의 사진 작품과 연결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서용선의 ‘체포된 남자’까지, 시각적 효과를 세심하게 고려한 큐레이팅이 돋보인다. 미술계 인사들은 ‘랜선 큐레이팅’을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삼았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개막해 많은 기대를 했고, 같은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입장에서 참고가 됐다”며 “최근 운송료가 비싸졌음에도 온라인을 통한 긴밀한 협업을 통해 신작 조각과 회화를 실물로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11월 8일까지. 4000∼1만2000원.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전 세계에는 수세식 화장실이나 수돗물을 쓰는 사람보다 휴대전화기를 가진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2016년 기준). 2017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프리카에는 전기를 쓰는 사람보다 휴대전화기를 쓰는 사람이 훨씬 많다. 통화 가능 지역으로 가거나 충전하려면 몇 km를 걸어야 하지만 대다수는 개의치 않는다”고 보도했다. 수세식 화장실, 전기가 산업혁명을 의미한다면,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는 이를 앞질러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가 더 풍요로우면서 환경 친화적인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디지털비즈니스센터의 수석 연구원이다. 산업시대 인류는 자원을 채취하며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즉, 지구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를 창출한 것이다. 이에 반해 컴퓨터와 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은 자원을 덜 사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전화 통화뿐 아니라 인터넷, 사진·비디오 촬영, 메신저 등의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을 보자. 이 기기는 손바닥만 하지만 데스크톱 컴퓨터와 카메라, 캠코더, 팩스기를 대체하고 있다. 저술가이자 기업가인 피터 디어맨디스는 “현재 케냐 한가운데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마사이족 전사는 구글에 접속하는 순간, 15년 전 미국 대통령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장밋빛 미래의 더 구체적인 근거를 ‘낙관주의의 네 기수’로 설명한다. 네 기수는 기술 발전, 자본주의, 반응하는 정부, 대중의 인식이다. 기술과 자본주의가 협력해 효율성을 높이는 가운데 대중은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을 갖추고 정부가 이에 반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의 탐욕을 억제할 수 있는 규제 방법도 제안한다. 위기에 처한 생물종 보호,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탄소세 부과, 환경오염 기술에 대한 경제적 부담 높이기 등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책으로 가득한 원룸에 ‘야자나무’ 한 그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7년 어느 날 전철역에서 운명처럼 ‘테이블야자’를 만났다. 원하는 사람은 가져가라며 키우던 것을 ‘무료 나눔’하고 있었다. 가볍지도 않은 화분을 들고 낑낑대며 언덕길을 올랐다. 그렇게 화분을 하나둘씩 사 모으던 김시습 갤러리조선 큐레이터는 어느새 ‘식덕(식물 덕후)’이 됐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할수록 그의 집은 식물로 뒤덮여갔다. 테이블야자로 시작된 화분은 몬스테라, 필로덴드론, 앤슈리엄으로 늘어났다. 그러다 일부 식물에 수입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집착’에 빠지기도 했다. ‘식멍’(식물을 보며 멍을 때리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과 ‘식태기’(식물과 권태기의 합성어) 사이를 오가며 게임처럼 식물을 소비하는 행태에 회의감을 느꼈단다. 자아성찰이 곁들여진 ‘식덕’ 김시습에게 추천 장소와 팁을 들어봤다.○ 덕후의 추천: 원하는 식물을 얻으려면 ▽과천 화훼단지=정말 초심자라면 서울 서초구 양재꽃시장을 먼저 가보길 추천한다. 다양한 화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기에 두루두루 보면서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볼 수 있다. 경기 과천 화훼단지는 좀 더 난이도가 있다. 도매 취급하는 화원이 많아 양재보다 정비가 덜 되어 있다. 잘 찾으면 도매가로 좋은 화분을 ‘득템’할 수 있다. 다만 어리바리하게 서있다간 “소매 안 팔아요!” 소리를 듣게 되니, 화원에서 온 프로처럼 행동해야 한다. ▽청구원=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식덕’ 사이에선 유명한 희귀식물 농장.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지만, 직접 찾아가면 부부가 차를 내려주고 농장 구경도 시켜준다. 자세한 설명은 덤이다. 근처에 있는 희귀식물 카페 ‘꽃꽃한당신’도 식덕의 메카. 부모님이 운영하던 농장을 물려받은 아들이 희귀식물을 키우고 있다. ▽플랜트소사이어티1(PS1)=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작은 공간으로 디자이너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사무실을 차리면서 공간이 좋아 식물을 진열하고 팔기 시작했다. 디자이너의 감각이 돋보여 보는 재미가 있다. 식물과 관련된 전시나 흥미로운 행사도 열린다. 현재는 독일 디자이너 패트릭 토마스의 식물패턴 판화를 전시 중이다.○ 덕후의 팁: 과시가 아닌 자체의 즐거움을 김시습은 최근 아트선재센터에서 운영하는 웹진 ‘HOMEWORK’에 ‘식물이 식덕에게 등을 돌릴 때’라는 글을 기고했다. 계기는 6월 식덕 사이에서 일어났던 ‘필로덴드론 대란’이었다. 동남아에서 수입되는 필로덴드론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수입 금지가 되면서 값이 폭등했다. 여기에 가드닝 인구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식물을 마치 프라모델이나 명품, 주식을 사듯이 수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비싸고 희귀한 식물을 사 모으고 과시하는 것보다, 식물을 통해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또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예술 작품으로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듯이 말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경운박물관(서울 강남구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 1층)은 22일 특별기획전 ‘조선의 군사 복식, 구국의 얼을 담다’를 개최한다. 신미양요 150주년인 2021년을 맞아 조선이 외세에 맞서 국방을 위해 노력한 자취를 군사 복식(服飾)을 통해 재조명한다. 이 전시에는 1871년 신미양요 때 실제 전투에서 사용됐던 면제(綿製) 갑옷(등록문화재 제459호)을 비롯해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을 토대로 재현한 면제 갑주(甲胄)가 전시된다. 신미양요 때 강화도 광성보 전투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도 등장했다. 또 왕실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단(緞)갑주는 해외에서 환수된 뒤 국내 처음으로 공개된다. 전체 전시는 전쟁사와 시기별 군사 복식의 변천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무덤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무관의 관복, 조선 후기 보병용 가죽 갑옷과 투구를 볼 수 있다. 정묘호란 때 안주성에서 적군과 함께 자결한 남이흥 장군(1576∼1627)의 녹피방령포(鹿皮方領袍·사슴가죽으로 만든 네모난 깃의 옷),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미국 해군과 싸우다 전사한 어재연 장군(1823∼1871)의 사명기(司命旗·장수의 지위와 책무를 표시한 깃발·재현품), 고종 대 친군영 군복(재현품), 대한제국 신식 군복과 한국광복군 방한복 등을 선보인다. 광복군 창설 80주년을 기념해 백범 김구의 글씨와 그가 1945년 1월 광복군에 투신한 장준하(1918∼1975)에게 보낸 편지도 공개된다. 장경수 경운박물관장은 “국가의 중요성과 선조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의 정신을 보여주고자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2월 27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일랜드 코크의 좁고 어두운 펍에서 리베카 솔닛은 한 걸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굽은 무릎 탓에 게처럼 걷는 걸인을 동네 아이들은 두려움의 눈길로 봤다. 걸인의 걸음걸이는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과 연관돼 있었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장례식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가난한 부부는 죽은 막내아들을 차마 구덩이에 버릴 수 없어 관을 만들었지만 아이의 몸을 담기에 작았던 것. 결국 아이의 다리를 분질렀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있었고 훗날 코크를 떠도는 걸인이 됐다. 솔닛은 과거의 죽은 기록인 줄 알았던 역사가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매료된다. 아일랜드를 여행 중인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칠 걸인의 모습에서 역사와 기억에 관한 사유를 펼쳐나간다. 이 책은 솔닛이 26세이던 1987년, 족보를 연구하던 삼촌 덕분에 아일랜드 여권을 받게 되면서 떠난 여행으로 시작됐다. 한 달간 대부분을 걸어서 아일랜드를 누빈 그는 풍부한 조사와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길에서 혹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떠올린 단상을 적어둔다. 1997년 출간된 이 책은 4년 뒤 솔닛에게 명성을 안겨준 ‘걷기의 인문학’으로 발전됐다. 자신이 자란 미국 캘리포니아는 ‘뿌리 없는’ 지역이라 고백하는 그가 아일랜드로 떠난 것이 자신의 혈통을 찾기 위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길을 걸어가며 정해진 개념과 정의를 풀어헤친다. 더블린의 자연사박물관 구석에 진열된 나비 한 마리를 보고 반(反)제국주의자였던 로저 케이스먼트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식이다. 공식적 역사의 샛길로 향하며 살아있는 생생한 장면들을 건져낸다. 절정에 달하는 건 켄메어 환상열석(還狀列石)을 마주할 때다. 온갖 거창함과 장식이 사라진 벌거벗은 풍경 앞에서 그는 내면의 깊은 곳으로 파고든다. 혈통이라는 것이 믿으면 만들어지는 ‘신앙 고백’에 불과하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몸 하나만 남은 존재’가 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사회가 규정해주는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의 온전함을 이야기한다. 국내에서 솔닛은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유의 과정을 따라가면 고정된 개념에 그를 가두는 것이 오독임을 느낀다. 2017년 국내 강연에서도 페미니즘에 관한 질문만 받자 당황한 듯 “내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런 척해야 하는 자리인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책은 솔닛의 서술이 분열이나 편들어 주기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체제에서 배제된 인간의 이야기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책의 막바지에서 그는 아일랜드의 ‘트래블러’를 이야기한다. 유럽의 집시처럼 아일랜드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트래블러를 통해 유럽과 영국의 비주류로 간주된 아일랜드에서조차 차별받는 존재들이 있음을 말한다. 관광객을 위한 여행책자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틈바구니를 파헤치는 과정은, 지역을 속속들이 체득하는 여행의 지적 흥미를 일깨워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변시지 화백(1926∼2013)은 1975년 제주도로 귀향한 뒤 황토빛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그림을 본 일본인 화랑 대표는 변 화백에게 돈 봉투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식의 그림은 일본 시장과 맞지 않으니 더 이상 거래가 어렵겠습니다.” 지금까지 거래해온 것에 대한 인사치레의 돈 봉투를 끝으로 그림을 더 이상 사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변 화백은 꿋꿋이 자신만의 언어를 전개해 나갔다. 제주의 산방산, 형제섬을 배경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거친 붓질로 담아낸 그림들은 그에게 ‘폭풍의 화가’라는 별명을 안겨 주었다. 이 시기 그려진 주요 작품 40여 점을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리는 ‘변시지, 시대의 빛과 바람’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난 변 화백은 다섯 살 때인 1931년 가족과 일본으로 이주했다. 1945년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대 교수 데라우치 만지로(1890∼1964)의 문하생이 되어 서양 근대미술을 배웠다. 1948년 당시 일본 아카데미 화단의 주류였던 ‘광풍회’전에서 23세로 최연소 수상하고 이듬해 심사위원을 맡았다. 당시 심사위원은 보통 50대 이상이었다. 1957년 귀국한 뒤에는 창덕궁 비원(후원)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때만 해도 후기 인상주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는데, 국내에 머물러도 일본의 화랑에서 꾸준히 전시를 하며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고향으로 돌아가 화단이나 시장과도 멀리한 채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추구해 나간 것이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실험 과정을 볼 수 있다. 특히 평소 즐겨 쓰던 노란색뿐 아니라 흰색, 흑색, 녹색, 적색 등 다양한 색을 사용했다. 그의 미세한 색 터치는 도록으로는 좀처럼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시기 작품이 변 화백 작고 후 이 정도 규모로 서울에서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그가 국내 화단과도 가깝게 지내지 않고, 또 제주 시절 그림은 일본에서도 외면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림에서는 세상과 단절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나간 과정에서 느낀 심상이 전해진다. 11월 15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방탄소년단(BTS)의 케이팝을 잇는 다음 타자는 ‘미술 한류’가 될 수 있을까.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이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대규모 한국 미술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미술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LACMA는 2022년 ‘한국의 20세기 미술’전과 2024년 ‘한국 동시대 미술’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마이클 고번 LACMA 관장이 지난해 방한했으며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만나 기획전 개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의 20세기 미술’전은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의 근대미술을 조망하는 기획전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미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조선시대 예술이나 동시대 예술을 연구하고 작품을 수집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 왔다. 그런데 20세기를 비롯한 근대미술에 대한 조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체적인 전시 내용은 두 미술관이 논의하고 있는데 대략 조선시대 말부터 20세기 전반을 다룰 것으로 전해졌다. 청전 이상범(1897∼1972) 소정 변관식(1899∼1976)을 비롯해 이쾌대(1913∼1965) 등 20세기 대표 작가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LACMA 측은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성에 비해 간과된 시기를 조망하는 만큼 학술 세미나 개최, 전시 도록 출간은 물론이고 참고서적 출간도 검토 중이다. LACMA는 지난해 6∼9월 한국의 서예를 조망한 ‘선을 넘어서: 한국의 서예(Beyond Line: The Art of Korean Writing)’전을 열어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주요 서예 작품 90여 점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LACMA의 단독 개최였다. 반면 2022년과 2024년 열릴 두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주최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축적한 한국 근현대미술 연구 및 전시 성과를 통해 한국 미술을 더 잘 알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65년 개관한 LACMA는 미국 서부 최대 규모의 공립 미술관으로 고대부터 동시대까지 작품 약 1만4000점을 소장하고 있다. 한인이 많이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인구 다양성 표방에 중점을 둔 미술관이다. 북미에서 가장 많은 한국 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 미술 큐레이터도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제미술 최전선에 있는 조형 언어가 궁금하다면 이 전시를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전시는 예술 마니아들이 올해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은 기회이기도 하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8일 개막한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전 이야기다. 전시는 미국 뉴욕 출신 예술가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회화, 드로잉 등 150여 점을 선보인다. 작품 보험가액 1조 원, 전시장 보험료만 5억 원에 달하며 바스키아의 국내 전시로는 최대 규모다.○ 세계 관객 사로잡은 슈퍼스타 바스키아는 이미 ‘20세기를 대표할 작가’로 기록되며 전 세계를 매혹하고 있다. 2017년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 회고전은 미술관 사상 최다 관객(약 22만 명)이 들었다. 2019년 프랑스 파리 루이뷔통재단 미술관 전시도 그해 파리 최다 관객(67만6503명)을 기록했다. 같은 해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의 ‘바스키아 인 저팬’전은 국내 팬도 바다를 건넜다. 국내 전시도 개막 첫 주말 사전 예약 티켓 대부분이 매진됐다. 9일 오전 찾은 전시장에서는 개관 전부터 줄 선 관객을 볼 수 있었다. 특히 10∼30대 관객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이는 그가 1980년대 뉴욕의 대중문화를 흡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거리에서 그라피티로 활동을 시작했고, 거리의 언어를 캔버스로 옮겨 스타가 됐다. 개념에 갇히지 않은 폭발적인 언어는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의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가수 비욘세와 제이지 등 유명 연예인이 그의 팬을 자처한다.○ 생생한 충돌의 언어 전시는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를 보기에 아쉬움이 없을 만큼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초반에는 바스키아의 ‘SAMO’ 그라피티 사진이 보인다. 무작위의 벽에 스프레이 캔을 들고 쓴 글귀는 그가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 맥락 속에서 시각 언어를 만들어냈음을 보여준다. 그 다음 ‘Old Cars’ 등의 작품으로 거리의 언어가 캔버스로 옮겨진 과정을 볼 수 있다. 때 묻은 흔적, 상반된 형태의 충돌, 완성되지 않은 문장은 작품이 무한정 발산하도록 만든다. ‘A’ 등의 알파벳을 배치하는 등의 표현을 바스키아는 ‘눈으로 하는 랩(Eye Rap)’이라고 말했다. 바스키아가 20세기 대표 작가로 꼽히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1980년대 미국은 개념을 중심으로 한 ‘미니멀리즘’ 예술이 대세였다. 시각 언어를 최소화한 것이 ‘미니멀리즘’이라면 바스키아는 그 후 부상한 ‘신표현주의’의 출현을 예고했다. 내년 2월 7일까지. 1만∼1만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된 주요 목조 문화재의 재산 가치가 턱없이 낮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주요 궁·능 문화재 국유재산가액’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국왕 즉위식이나 대례를 거행했던 근정전의 국유재산가액은 32억911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복궁 내 자경전은 12억6904만 원, 사정전은 18억7524만 원, 수정전은 8억7670만 원이었다. 창덕궁의 정문이자 현존하는 궁궐 대문 중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돈화문의 국유재산가액은 14억4670만 원이었다. 국유재산가액은 문화재의 화재보험 가입 기준이 되는 금액으로 문화재청이 자체적으로 책정한다. 가액이 낮게 책정되면 화재가 났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보험금도 적다. 김 의원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11차)의 평균 거래가격이 44억 원이 넘는다. 문화재 재산 가치가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가치를 반영해 가액을 매길 경우 보험료가 비싸지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최고야 best@donga.com·김민 기자}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된 주요 목조 문화재의 재산가치가 턱없이 낮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주요 궁능문화재 국유재산가액’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국왕 즉위식이나 대례를 거행했던 근정전의 국유재산가액은 32억911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복궁 내 자경전은 12억6904만 원, 사정전은 18억7524만 원, 수정전은 8억7670만 원이었다. 국유재산가액은 문화재의 화재보험 가입 기준이 되는 금액으로 문화재청이 자체적으로 책정한다. 가액이 낮게 책정되면 화재가 났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보험금도 적다. 창덕궁의 정문이자 현존하는 궁궐 대문 중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돈화문의 국유재산가액은 14억4670만 원이었다. 창덕궁 내 인정문은 23억5319만 원, 부용정은 8815만 원이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던 창경궁 명정전은 12억5510만 원,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은 10억3519만 원이다. 덕수궁 중화전 및 중화문은 23억6382만 원, 함녕전은 10억1699만 원 등이었다. 김 의원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11차)의 평균 거래가격이 44억 원이 넘는다. 문화재 재산가치가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는 사실상 값으로 매길 수가 없기 때문에 일반 화재보험 논리와는 맞지 않는다. 문화재 가치를 반영해 가액을 매길 경우 보험금액이 높아지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47년, 14세이던 수전 손택은 소설가 토마스 만을 만난다. 10대 소녀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전화 한 통 덕분이었다. 손택은 그의 소설 ‘마의 산’을 읽고 전율을 느낀 뒤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찾아 무작정 전화를 했다. 이 당돌한 소녀를 만은 집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이 만남에서 손택은 실망하고 당황했다. 카프카와 톨스토이를 좋아하던 그에게 만은 고작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물었던 것. 흥미로운 여고생 정도로 취급당한 이 경험을 손택은 훗날에도 우스갯소리로 넘기지 못했다. 강한 자아와 인정 욕망, 이것이 그녀를 스타 지성인이자 뜨거운 행동가로 만들었다. 이 책은 ‘20세기 문단에서 극찬과 동시에 가장 엇갈린 평가를 받은’ 손택의 삶을 시간순으로 추적한다. 2004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 출간된 전기로 독일 비평가가 집필했다. 손택이 남긴 글과 풍부한 주변 인터뷰를 토대로 했다. 때때로 과장되거나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춰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손택은 ‘캠프에 관한 단상’ ‘사진에 관하여’ 같은 에세이로 명성을 얻었지만, 패션지 ‘보그’에 모델로 등장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스타성은 대단해서 출판사는 책 뒤표지에 유려한 추천사 대신 그의 사진을 싣기도 했다. 그는 내전이 한창이던 유고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고 9·11테러 직후엔 미국 부시 정부의 전쟁 선동을 비판해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유방암 투병 과정에서는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써서 ‘환자들을 위한 운동가’가 됐다. 손택이 대중과 지성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어떻게 줄다리기를 해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설가 네이딘 고디머는 손택을 이렇게 기억했다. “수전은 자신의 지성을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데 사용했습니다. 개인으로만 살기를 거부한 것이 그의 남달랐던 점입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