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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미국 대선에도 출마했던 힙합 뮤지션 카녜이 웨스트의 2010년 앨범 표지엔 이 작가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음산한 기운을 자아내는 녹색 배경에 와인잔을 든 발레리나가 겁먹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몸은 사람이지만 눈은 만화 캐릭터 같아 인간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다. 미국 작가 조지 콘도(63)의 작품이다. 웨스트와의 협업 이후 웨스트의 아내이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 킴 카다시안의 에르메스 버킨백에 그림을 그려주고,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과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만든 콘도는 화가라기보다 셀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인기 덕에 국내에도 마니아가 적지 않은 콘도의 작품 20여 점이 한국을 찾았다. 서울 성동구 더페이지갤러리 ‘조지 콘도’전은 그의 대형 회화 작품과 드로잉, 청동조각을 선보인다. 미 뉴햄프셔 출신의 콘도는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장에 전시된 그림 중 가장 최근작인 ‘Red and Green and Purple Portrait’(2019년)는 그의 자화상이다. 만화처럼 기괴하고 큰 눈, 신경질을 내는 듯한 이빨, 시점이 각기 달라 뒤틀어진 얼굴, 화가 난 듯 그은 검고 굵은 외곽선은 콘도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그는 현재 뉴욕에서도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자신의 최근 그림에 대해 “미국을 분열시키는 불평등에 관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스타일의 초상화는 2010년에도 볼 수 있었다. 콘도는 영국 여왕을 광대 같은 캐릭터로 묘사한 작품을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 전시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콘도는 “여왕의 누드를 그리고 싶었는데 영국 법에 금지돼 못 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을 소재로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앤디 워홀이 메릴린 먼로를 그렸듯 미 팝아티스트들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콘도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워홀의 ‘팩토리’에서 조수로 일했고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과 절친한 사이였음을 밝혔다. 워홀이 사망했을 때 그의 침대 옆에는 콘도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2009년 작품들(‘Choo Choo’ ‘Michael J. Frog’ ‘Daffy Duck’)에서는 워홀의 영향도 보인다. 그림 속 주인공은 만화 캐릭터 모습을 하고 있다. 콘도는 캐릭터의 부리를 두 개 그리거나, 등에서 입이 자라나는 것처럼 형태를 왜곡해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카녜이 웨스트의 앨범 제목 ‘나의 아름답고 어둡고 뒤틀린 판타지(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콘도의 작품과도 딱 들어맞는 이유다. 2005년 그린 작은 그림들은 콘도가 멤피스 지역에 머물며 작업한 것이다. 자신이 다녔던 레스토랑, 슈퍼마켓, 공연장 등을 일기처럼 기록한 뒤 정사각형 캔버스에 기호화해 담았다. 바비큐를 먹었던 ‘Bozo‘s Bar-B-Q’, 맥주를 마신 ‘그린 비틀’, 공연을 감상했던 아티스트 ‘앨 그린’이 캔버스에 담겼다. 뉴욕에서 콘도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바스키아의 작품과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듯하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프리즈 아트페어를 가보니 백남준 작품이 국내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더라고요.” 3일부터 ‘백남준’전을 열고 있는 리안갤러리 서울 안혜령 대표의 말이다. 안 대표는 “비디오아트를 시작한 백남준은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만큼이나 중요한 작가인데 정작 우리는 아직도 그를 잘 몰라 안타깝다”고 했다. 백남준(1932∼2006)의 작품 27점을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평면 작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많다. 캔버스 회화가 6점, 판화 10점이다. 텔레비전 조정화면 같은 오방색 배경 위에 그림을 그린 ‘무제’(1994년)나 조각 작품을 토대로 한 판화 ‘진화, 혁명, 결의’(1989년) 등을 볼 수 있다. 회화 작품에서는 한자, 한글, 로마자 등 문자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안 대표는 “설치 작품보다 소장하기 쉬운 회화 작품이 해외에서도 인기”라며 “한자와 한글이 재밌는 요소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도 볼 수 있다. 전시장 지하에 설치된 ‘볼타’는 안 대표가 25년간 소장한 작품이다. “‘볼타’는 제임스 코한 갤러리에서 구매한 뒤 줄곧 집의 식탁 옆에 놓았던 작품이에요. 백남준을 너무 좋아해 그가 세상을 떠난 날 제가 가진 작품의 불을 전부 껐다가 켜는 ‘추모식’도 했어요. ‘볼타’는 개인적 애착이 많아 판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갤러리스트가 되기 전 컬렉터였던 그는 2007년 갤러리 개관 전부터 백남준의 설치 작품만 9점을 갖고 있었다. 안 대표는 “진짜 컬렉터라면 미술사적으로 이미 입지가 확고한 백남준 작품 한 점은 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컬렉터들이 유독 고장 같은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대담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미국 작가 댄 플래빈 작품도 형광등이 깨지거나 수명이 다하면 현지에 주문해 바꿔야 하거든요. 저도 직접 해본 적이 있어 잘 알아요. 네온이나 형광등보다 더 수명이 긴 브라운관을 이제는 조금 덜 두려워해도 되지 않나요?” 전시는 내년 1월 1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번에 발굴된 유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둑돌입니다. 고분의 주인공은 여성으로 추정되는데, 바둑이 신라 때도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7일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심현철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경북 경주시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발굴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 무덤에서는 금동관, 금드리개 같은 장신구, 돌절구·공이, 운모 등과 함께 바둑돌이 함께 발굴됐다. 44호분의 주인공은 키가 150cm 전후인 신라 최상위 계층 여성으로 추정된다. 금·은·유리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단 가슴걸이는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의 무덤에서만 확인되는 디자인이다. 또 금동관, 귀걸이, 팔찌 등 장신구가 작아 미성년자일 가능성이 높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무덤 주인공의 발치에서 나온 바둑돌 200여 점이다. 지름 1∼2cm, 두께 0.5cm 내외의 작은 돌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모두 신라에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많아 중국에서 사신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통일신라시대 효성왕도 왕위에 오르기 전 친한 사람과 바둑을 뒀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그간 신라시대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 천마총, 금관총 등 최상위 계층 남성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만 출토됐다. 역사 기록에 남성만 바둑을 뒀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그간의 발굴 결과와 통념상 바둑은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그런데 이번 발굴로 신라 여성도 바둑을 뒀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됐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를 겹쳐 만든 장식품도 수십 점 발견됐다. 녹색과 금색 빛이 나는 비단벌레의 날개 2개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가장자리를 금동판으로 고정했다. 비단벌레는 삼국시대 동아시아에 광범위하게 서식했으나 지금 한반도에서는 멸종위기생물이다. 이 장식품은 마구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4호분의 발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부장궤에 겹겹이 쌓여 있는 유물의 진면모를 확인하고,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와 축조 과정을 복원해 그 결과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삼성출판박물관(관장 김종규)이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책으로 걸어온 길’을 열고 있다. 삼성출판박물관은 1990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개관해 2003년 종로구 구기동으로 이전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지난 30년간 개최한 26회 전시 중 중요 자료를 엄선해 선보인다. ‘교과서 특별기획전’ ‘한국 신문학 특별기획전’ ‘한국 여성문화자료 특별기획전’ ‘저자 서명본전’ ‘50∼70년대 우리 출판물 특별전’ ‘우리 책의 표지화와 삽화’ ‘잡지를 읽다’ ‘근현대 여성 작가 특별전’ ‘금서(禁書) 특별전’ 등의 하이라이트와 만날 수 있다. 전시 자료 중 이인직의 ‘은세계’(1908년),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년) 등 희귀 자료가 적지 않다. 또 박물관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학촌 이범선 작가(1920∼1981)의 ‘학촌서실’도 개관·운영 중이다. 소설 ‘오발탄’으로 유명한 작가의 도서, 일기장, 창작 노트, 미정리 원고, 서간철, 안경, 인장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가 10주기 당시 유족이 기증한 것이다. 삼성출판박물관은 국내의 유일한 출판 박물관으로 인쇄문화, 포스터류, 작가 유품, 친필 원고, 출판 관련 문화 자료 10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별전은 2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소아 변비부터 잦은 복통과 설사, 그리고 하루에도 100번씩 이어지는 트림. 저자의 진료실을 찾은 이 환자들 증상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잘못된 음식을 먹어서, 아니면 위장 기관에 문제가 있어서? 문제의 원인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바로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 ‘소확혐(小確嫌)’이다. 책 서두에 소개된 18개월 된 수미는 반년이 넘도록 변비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저자를 찾는다. 아이의 부모에게 저자는 “‘현상’에 불과한 변비에 초점을 맞추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변비는 병이 아니다”라고 한다. 문제는 이유식을 시작한 아이의 변이 딱딱해지면서 느끼는 통증이었다. 이것이 두려운 기억이 되었는데 가족들은 연유도 모른 채 계속해서 아이의 배변에 집착하고 있었다.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이겨내도록 지켜보라는 처방이 내려진다. 시간이 지나고 수미는 더 이상 배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매달리는 요즘, 저자가 정반대인 ‘혐오스러운 기억’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나쁜 기억을 회피하거나 어설프게 컨트롤하면서 잠깐의 위안을 얻는 동안 더 큰 문제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감기다. 감기는 치료약이 없다. 그런데 ‘혹시’를 염려하는 부모와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 의사의 합심으로 항생제 처방이라는 결과가 탄생한다. 항생제를 과도하게 복용하면 정작 필요할 때 내성 때문에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에도 순간의 소확혐 때문에 부모와 의사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놀랍게도 병이 없던 아이를 환자로 만든 사람이 가족이나 의사”라고 꼬집는다. 이 책은 강도 높은 나쁜 기억인 트라우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일상적 나쁜 기억에 집중한다. 매일의 평범한 삶에서 대다수가 저마다의 소확혐을 갖고 살아가는데도 그것을 다루는 데 미숙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1장의 기억에 관한 뇌과학적 지식으로 출발한다. 기억이 인지에서 출발해 저장되는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과정을 보고 나면 심리학은 물론 경제학, 공학이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된 사례들이 등장한다. 왜 인간은 나쁜 기억을 피하는지, 그 방법은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 대목에서 책은 소아청소년의 질병을 넘어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론이 된다. 매일매일 ‘소확행’을 이룬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풀지 못한 소확혐을 쌓아가고 있다면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 ‘치유’로 가면 결국 문제는 똑바로 선 자신의 자아, 주변에 대한 신뢰와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확혐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어설프게 개입해 사태를 악화시키기보다 중심을 잡고 스스로 헤쳐 나가도록 믿고 지켜봐주는 것처럼 말이다. 진료실을 넘어선 폭넓은 이야깃거리와 인간을 향한 따스한 눈길이 돋보이는 책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병풍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사진)’가 약 한 달간 공개된다.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4일 개막해 내년 1월 10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해학반도도, 다시 날아오른 학’을 통해서다. 지난해 7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데이턴미술관의 업무협약을 통해 국내에 들어와 약 16개월간의 복원 작업을 거친 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공개되는 것이다. 해학반도도는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십장생도’의 소재 가운데 바다와 학, 복숭아를 강조해 그린 그림을 말한다. 조선 말기 궁중에서 크게 유행해 왕세자 혼례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위해 수십 점이 제작됐다. 해학반도도의 복숭아는 3000년마다 한 번 열매를 맺어 오랜 수명을 의미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해학반도도는 높이 244.5cm, 폭 780cm로 현재 남아 있는 10여 점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금박을 사용해 데이턴미술관이 입수할 때만 해도 일본 회화로 알려졌다. 그러다 2017년 이도 미사(井戶美里) 일본 교토공예섬유대 교수와 김수진 성균관대 초빙교수가 현지 조사를 통해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 그림은 1920년대 미국인 찰스 굿리치가 서재를 꾸미기 위해 구매했고 그의 사후 데이턴미술관에 기증됐다. 굿리치가 그림을 구매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문화재청과 한국조폐공사의 후원으로 여섯 개의 판 형태로 변형된 병풍을 원래 12폭으로 되돌려 보존 처리했다. 온라인 국제 학술행사도 개최된다. 25일까지 데이턴미술관 관계자, 한일 회화 전문가, 보존처리 담당 전문가의 주제 발표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튜브 계정에 순차적으로 공개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퍼져나가기 직전인 2007년.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중국 작가의 회화 작품이 590만 달러(약 65억 원)에 낙찰된다. 당시 중국 현대미술 최고가를 기록해 화제가 됐던 이 작품은 웨민쥔(岳敏君·58)의 ‘처형’이다. 이 무렵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중국 미술 시장은 주목과 동시에 ‘거품’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받았다. 시장의 지속 가능성과 관계없이 분명한 건 자국 작가에게 흔쾌히 지갑을 여는 중국 ‘큰손’의 존재감이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생겨난 중국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전시 두 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는 ‘유에민쥔 개인전: 한 시대를 웃다!’가 열린다. 웨민쥔의 작품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남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를 닮은 이 남자는 동구권 붕괴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등 중국이 겪은 일련의 현대사에 대한 냉소를 상징한다. 2007년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처형’에 대해 당시 소더비는 “톈안먼 사태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며 “중국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회화”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웨민쥔의 회화와 조각 작품 40여 점을 볼 수 있다. 비록 ‘처형’은 복제화가 걸렸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만든 대규모 회화 작품들이 전시됐다. ‘잔디에서 뒹굴다’(2009년)와 해골이 등장하는 ‘연인 1’(2012년)이 있으며, 한 전시실은 ‘웃음이 웃음이 아니다’ 조각 연작 시리즈로만 구성됐다. 근작에서는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언급보다 팝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 작품에 배트맨이나 도라에몽 같은 대중문화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최근 작품들을 통해 한때 ‘정치 팝’으로 분류되기도 했던 웨민쥔의 작품세계가, 정치적 상황을 떠나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관객이 직접 판단해볼 수 있을 듯하다. 1만∼1만5000원. 내년 3월 28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중국동시대미술 3부작: 상흔을 넘어’가 열린다. 회화보다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설치 미술이나 퍼포먼스 작품이 주를 이루는 전시에는 주진스, 쑹둥, 류웨이 등 세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각각 1954년생, 1966년생, 1972년생으로 세대가 나뉘어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작품들의 커다란 스케일이다. 쑹둥만 해도 초기 작품은 ‘입김’(1996년)처럼 퍼포먼스를 하고 사진을 찍거나, 거울을 활용한 재치 있는 영상 작품 ‘조각난 거울’(1999년)이 눈에 띈다. 그런데 최근 작품 ‘상흔’(2020년)은 전시장 입구 로비를 가득 채울 정도로 수많은 잡동사니로 구성됐다. 종이를 활용한 주진스의 ‘남과 북’(2020년)도 현재 전시장에 맞게 사이즈를 줄였다고 한다. 2000원. 내년 2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화가 산정(山丁) 서세옥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사진)가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대한민국예술원은 3일 “유족 측이 조문객의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른 후 별세 사실을 알려드리게 됨을 양해 바란다”고 밝혔다. 고인은 1960년대 수묵 추상으로 한국화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1970년대에는 인체의 형태를 단순화한 ‘사람들(군무)’ 시리즈를 선보였다. 대표 브랜드가 된 이 시리즈는 간결한 붓질로 사람이나 집 등을 상징적인 기호의 형태로 화폭에 담았다. 고인은 192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한학자이자 독립운동을 지원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문을 공부하다 광복 후 미술로 진로를 바꿨다. 1946년 서울대 미술학부가 설립됐을 때 1회생으로 입학해 근원 김용준(1904∼1967)의 영향을 받았다. 20세 때인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6세에 서울대 교수, 32세에 국전 심사위원이 됐다. 40년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과 회장을 지내는 등 명성과 권위를 함께 누렸다. 1960년대에 민경갑 정탁영 전영화 등과 ‘묵림회’ 활동을 했다. 이때 전통재료를 활용한 추상 작업을 시작했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1969년 이탈리아 국제회화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8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자신의 작품 100점을 기증했다. 고인의 아들 서도호 씨도 ‘집’과 ‘군상’을 활용한 설치미술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0년 1월 1일 서울대 미대생 김병종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주인공이 됐다. 그가 응모한 ‘자유와 동질화의 초극’이라는 제목의 평론은 200자 원고지 100장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만난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67)는 “그림과 글로 창작 욕망을 분출했던 제 개성을 일찍부터 알아준 곳이 동아일보”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글과 그림은 저에게 밥과 반찬처럼 어우러졌습니다. 신춘문예를 시작으로 동아일보의 기획 시리즈 ‘새로 쓰는 선비론’의 삽화도 그리고, 객원논설위원으로 글을 쓰기도 했지요.” 40년 전 하숙방에서 그가 꼼짝 않고 썼던 미술평론은 한국 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 문예 이론가와 동양의 고전을 참고했다. 작가로서 자신의 좌표를 짚어보려 했던 시도가 신춘문예라는 장(場)을 통해 공적 이론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그해 김 교수는 중앙일보 희곡 신춘문예에도 당선됐고 전국대학생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 덕분에 그를 인터뷰하러 온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와 동아일보 옛 사옥(현재 일민미술관)을 찾았던 기억도 생생하다고 했다. “일민 김상만 회장을 복도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단아하고 인자한 모습이 기억납니다.” 소설가 최명희(1947∼1998)가 그와 같은 해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함께 등단해 김 교수는 최명희의 작품에 서평을 써주며 오랜 인연을 맺었다. 김 교수는 고교 2학년 때 여성동아에 ‘에디트 피아프’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문화계에서는 ‘여성동아’의 영향력이 특히 컸다고 말했다. “박수근 화백이 등장하는 박완서 선생의 '나목'은 1970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 당선작이지요. 1972년 여성동아 공모에 당선된 정혜연의 장편소설 ‘배회하는 바위들’에는 주인공의 남편이 동아일보 입사시험에 줄줄이 낙방해 동아일보 앞을 지나가면 침을 ‘퉤’ 뱉었다는 문장도 등장합니다(웃음).” 그는 2001년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2013년에는 ‘동아광장’의 필진으로 활동했다. “문화와 예술론,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삶을 훈훈하고 윤기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죠.” 그의 지론은 2018년 서울대 정년퇴임 연설에도 반영됐다. 미대 교수로는 서울대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 연설을 한 그는 “훌륭한 농부가 되기 위해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눈앞의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여전히 모든 글을 직접 손으로 쓴다는 그는 ‘글로 된 매체’의 힘은 축소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는 수십 년간 종이를 다룬 미술가입니다. 아무리 인터넷 문화가 가속되어도 신문을 넘겨 읽고 행간의 의미를 되새기는 맛 때문에 신문은 죽지 않을 겁니다. 프랑스의 르몽드,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 선진국 매체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문의 건재함은 그 나라의 독서층, 혹은 지식인층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성 백제시대(1∼5세기)의 왕성 터로 유력한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의 축조 방법에 대한 단서가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폭 40∼50m, 추정 높이 11m에 둘레가 약 4km로 대규모인 풍납토성 축조의 비결은 나무 기둥이었다고 1일 밝혔다. 연구소는 최근 풍납토성 서쪽 성벽을 평면으로 절개해 단면을 확인했다. 그 결과 성벽을 쌓아 올리기 위해 세운 나무 기둥들이 발견됐다. 풍납토성의 몸체를 이루는 흙더미인 ‘토루’마다 길이 60∼70cm의 나무 기둥이 88∼162cm 간격으로 설치됐다. 풍납토성은 중심 골조인 1토루를 쌓아 올린 다음, 그 위에 토루를 덧대어 2·3토루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2토루와 3토루의 경계에서는 성벽 경사면의 반대 방향으로 박힌 나무 기둥과 기둥을 받치기 위한 석재도 확인됐다. 그간 풍납토성은 수차례 증축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여러 가설이 제기되며 의견이 분분했다. 이번 발굴에서 처음에 지어진 부분(1·2토루)과 증축된 부분(3토루) 사이 얇게 깐 석재가 발견돼 새로운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2021년 정밀조사를 진행해 축조 방식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권순철 화백(76)은 1989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살았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귀국해 보낸 1년이 근래 고국에서 보낸 가장 긴 시간이다. 이 기간에 권 화백은 1000호짜리 대작들에 몰두했다. 그중 한 작품인 ‘백두’(284×680.5cm)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흔적 Trace’에서 볼 수 있다. 권 화백의 개인전은 2016년 대구미술관 전시 이후 4년 만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권 화백은 “체력이 버텨줄 때 큰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라면 대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세계적 작가들이 대규모 작품을 하는데, 한국에서도 스케일 큰 작품이 많이 나와야죠.” 권 화백은 대작 시리즈를 위해 프랑스에서 캔버스도 가져왔다. 그러나 작업 공간이 마땅치 않아 서울 광진구 중곡동 화실을 정리하고 경기 고양시에 새 화실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백두는 물론이고 ‘얼굴’ 같은 대작 여러 점을 작업하고 있다. 권 화백은 “작가로서 스스로의 생각이나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라며 “한라산도 파노라마로 펼쳐 보이고 싶다”고 했다. “이번 전시장에 내놓은 ‘한라’는 4∼5년 작업한 작품입니다. 기존 작업실에서는 가로로 길게 펼칠 수 없어 한계가 있었는데, 한라산의 평평하고 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요.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진 산이 한국에 많습니다. 화가에겐 조형적으로 행복한 일이죠.” 그에게 산은 얼굴만큼 오래된 주제다.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기 전 서울 성북구 집에서 살 때는 캔버스를 들고 나가 수락산 도봉산 관악산을 현장에서 하루 종일 그리곤 했다. ‘쉬르 플라스’(sur place·현장에서)로 그리지 않은 그림은 생명력이 약하고 형상만 나온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침에 산을 가면 복잡한 기운이 돌아요. 그 후 점심, 저녁으로 가면 점점 해가 저물며 산의 색도 잦아들고 형상만 남죠. 저는 그것을 산의 ‘뼈’만 남는다고 합니다. 프랑스에 가서도 이 이야기를 늘 했는데, 해가 완전히 지고 컴컴해지면 산의 바위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웅크린 사람 같은 모양이 되거든요.” 산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권 화백은 원(元)대 황공망(1269∼1354)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를 언급했다. “손으로 그린 것 같은 흔적이 없으면서 빈틈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만한 산의 정수(精髓)를 표현한 서양화가가 폴 세잔”이라고 덧붙였다. ‘정수’나 ‘본질’이란 말을 그는 자주 꺼냈다. 그림은 사람 손에서 시작하지만 작위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의 본질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지금도 너무 늦었다”며 “이제 복잡한 것들을 최대한 줄이고 싶다”고 했다. “파리에도 조그마하지만 그 나름의 사회가 있어 어른 노릇을 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은 줄이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작업에 전념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희망보다는 조급함이 앞선다”는 말에서 비로소 그가 자신과의 승부에 전념할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가 대중을 또 한 번 놀라게 한 건 2017년이다. 40대 일본인 사업가가 그의 작품 ‘무제’(1982년)를 1억1050만 달러(약 1245억 원)에 낙찰받으면서다. 미국 작가 경매 사상 최고가여서 대중의 눈길이 쏠렸다. 그 사업가 이전에 바스키아의 작품을 소장한 대표적 컬렉터가 둘 있다.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뉴욕의 아트 딜러 호세 무그라비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국내 최대 바스키아 회고전 ‘장미셸 바스키아: 거리·영웅·예술’은 무그라비의 소장품으로 구성했다. 구혜진 수석 큐레이터는 2년 전 겨울, 뉴욕 중심가 호화로운 빌딩에 있는 무그라비 사무실을 찾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앤디 워홀, 제프 쿤스, 카우스 등 값비싼 팝아트 작품이 그를 맞았다. 바스키아의 작품 두 점은 무그라비의 집무실 가장 깊숙한 곳에 걸려 있었다. 나머지 작품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바스키아의 미술사적 가치와 문화적 영향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도 눈길을 끈다. 바스키아의 첫 개인전 작품으로 높이 2m, 가로 4m를 넘는 대작 ‘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는 보험가액이 2000억 원을 넘는다. 이 작품을 비롯한 회화, 드로잉 150여 점의 보험가액은 1조 원이나 된다. 전시장 보험료만 5억 원 이상이다. 화려한 면면만큼 전시를 준비하는 데도 무척 까다로웠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예술 전문 변호사가 대동해 결정을 내렸다. 바스키아가 거리에서 활동을 시작했기에 작품의 상태도 제각각이어서 회화 작품에 붙은 먼지 한 톨까지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작품이 올 때와 갈 때의 상태를 비교하는 ‘컨디션 체크’를 하기 위해서다. 바스키아 작품에는 소장자뿐 아니라 저작권사와 재단도 관여한다. 이들 모두에게서 전시 내용과 텍스트, 도록까지 동의를 얻어야 했다. 전시장 초입의 ‘SAMO’ 사진들도 사진가가 직접 배열 순서까지 정했다. 미술관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 전시 기획에 5억∼10억 원이 소요된다면 바스키아전은 비용이 5배 이상 들었다. 미술관이 이 모든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충분히 그렇다고 미술계는 평가한다. 바스키아전 개최가 미술관의 평판을 좌우하는 레퍼런스가 되기 때문이다. 공연으로 유명한 영국 바비컨센터는 바스키아 개인전으로 개관 사상 최다 관객을 모았다. 구 큐레이터는 “원화를 고집해 어렵게 만든 전시”라며 “바스키아 작품을 이 정도 규모로 보는 것은 10년 내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19년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인 조덕현 작가(63)의 신작이 대구미술관 개인전 ‘그대에게 to thee’에서 전시되고 있다. 사진을 기반으로 한 회화 작업을 선보인 조 작가는 2015년 일민미술관 개인전 ‘꿈’을 통해 가상의 이야기를 선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이때 만들어진 ‘조덕현 서사’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조 작가는 동명이인의 영화배우 조덕현, 소설가 김기창과 협업해 가상의 인물 ‘조덕현’을 만들어냈다. 1914년 태어나 1995년 사망한 가상의 인물 조덕현은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 1930년대 중국 상하이로 건너간다. 이곳에서 중국 감독 쑨유의 ‘The Big Road’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큰 역할을 제안받지만 중국 공산당과의 마찰로 출연이 무산된다. 말년에는 영화 제작자에게 사기를 당해 가산을 탕진하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이른다. 이인성미술상은 지난해 그에게 상을 수여하며, 서사적 구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2019 이인성미술상 선정위원회는 “조덕현 작가의 작품은 역사를 재현해 밀도 높은 구성력으로 인간의 대서사시를 표현했으며, 미술의 본원적인 의미와 사회와의 관계를 꾸준히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번에 새롭게 공개한 ‘플래시포워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티프로 했다. 유다의 자리에 가상의 조덕현을 배치했으며, 2014년 아프가니스탄 ‘국경 없는 의사회’ 병원 폭격 현장, 폼페이 화산 폭발, 17세기 루벤스의 그림, 1950·60년대 한국 영화계 등의 도상을 합성했다. 이 작품을 마주 보고 있는 ‘1952, 대구 1―8’은 6·25전쟁에 참여한 미군 장교 에드거 테인턴 주니어가 촬영한 대구 능금시장의 사진을 토대로 한다. 조 작가는 “이 작품을 그리며 이인성과 박수근 등 선배 화가 작품들이 떠오르며 깊이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2017년 선보였던 ‘에픽상하이’ 시리즈, 일민미술관에서 선보인 작품을 새로운 형태로 구성한 ‘박싱 언박싱’(2020년), 내성천의 모래를 재료로 한 설치 작품 ‘모래성’(2020년), 대형 스크린에 식물을 투영하고 윤이상의 음악을 삽입한 설치 작품 ‘음의 정원’(2020년) 등 5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플래시포워드’에 이르기까지 관객을 고려한 세심한 공간 연출과 동선이 흥미롭다. 조 작가는 “이번에 내놓은 신작은 인간의 탐욕과 서구 문명의 한계를 노출한 코로나19라는 재난을 다양한 도상을 통해 은유적으로 담아 관객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유추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인성미술상은 올해 20주년을 맞는다. 이인성미술상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대표적 작가인 이인성(1912∼1950)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가 제정한 상이다. 이를 기념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선정된 역대 수상자 18명의 작품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수상자로 김종학 이강소 이영륭 황영성 김홍주 김구림 이건용 김차섭 안창홍 등이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17일까지. 입장료 700∼1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됐을 때 그린 ‘세한도’와 단원 김홍도의 것으로 전하는 ‘평안감사향연도’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4일부터 ‘세한도’, ‘평안감사향연도’를 포함해 작품 18점을 전시하는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을 연다.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는 제주도에 유배된 김정희가 자신의 고난과 이를 견디게 해준 벗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한도 원작의 크기는 가로 70cm, 세로 33.5cm이지만 당시 청나라와 조선의 문인 각각 16인과 4인의 감상문이 담기며 길이 1469.5cm의 대작이 됐다. 세한도 원작 전시는 네 번째이지만, 감상문이 담긴 두루마리는 2006년 처음 공개된 후 14년 만에 다시 공개됐다. 전시의 1부 ‘세한-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에서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 씨(91)가 최근 기증한 세한도와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등 15점을 만날 수 있다. 고화질 스캔 영상을 통해 그림과 글씨도 자세히 볼 수 있다. 학자인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가 1940년 일본으로 가져간 세한도를 1944년 손재형이 되찾아온 일화도 영상으로 소개한다. 2부 ‘평안-어느 봄날의 기억’에서는 평안감사가 부임한 것을 기념한 잔치를 묘사한 ‘연광정연회도’, ‘부벽루연회도’, ‘월야선유도’ 등 3폭으로 구성된 ‘평안감사향연도’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림에 관련된 학술 정보, 과학적 분석에 관한 내용도 함께 소개한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3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세한도에는 추사의 쓸쓸함과 제자에 대한 고마움이 잘 나타나 있다. 가치를 논할 수 없는 위대한 그림을 감상할 기회를 주신 손창근 선생과 가족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3000∼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품 보존가라 하면 딱 두 가지를 떠올려요. 일본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 영화 ‘인사동 스캔들’의 김래원. 사라진 그림을 감쪽같이 다시 만들어내는 줄 아는 분도 있죠. 막연한 환상 뒤의 실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미술품 보존을 다룬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생각의힘)를 펴낸 김은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44)의 말이다. 13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김 학예연구사는 과학고와 KAIST에서 공부한 전형적인 ‘이과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화 보존을 공부하러 영국 뉴캐슬 노섬브리아대로 유학을 떠났다. 이과생은 왜 그림에 빠졌을까? “어릴 때 그림을 곧잘 그려 사생대회에서 상도 받았어요. 예고를 갈 만한 형편은 안 됐고, 이과생이 가진 과학적 마인드를 예술 작품에 접목시킬 수 있는 것이 보존임을 알게 됐죠.” 그가 유학을 떠난 것은 1998년. 미술관이나 재야에서 일하는 복원가를 만나며 국내 현장에서 분야의 열악함을 알게 된 후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책 속에 언급한 사례는 대부분 서양 근대 이전의 미술품이고, 구본웅이 그린 시인 이상의 얼굴 ‘친구의 초상’이나 백남준의 ‘다다익선’ 등 국내 작품도 다뤘다. 국내 복원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아서다. “국내 작품들이 영국에 비해 젊은데 상태는 더 나쁜 경우가 많습니다. 10년 전 서승원 작품에서 물감층이 떨어져 다시 메웠는데, 나중에 작가로부터 ‘마스킹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 물감을 일부러 떨어뜨린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깜짝 놀라 작품을 원상태로 돌려놓았어요. 그만큼 작품 관련 기록이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아요.” 백남준의 ‘다다익선’ 복원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미술관은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다익선을 철거하자는 의견도 나올 정도였죠. 그 가운데서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과학이 매번 뚜렷한 답이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그는 복원가가 하는 일의 성격이 작품을 고치는 ‘의사’에서 작품을 둘러싼 이해를 조정하는 ‘협상가’로 바뀔 것이라고 봤다. “현대미술 영역이 넓어지면서 작품에 관여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작가는 물론 유족, 큐레이터와 설치 전문가 등 다양하죠. 각기 다른 요구 가운데 가장 나은 방향을 찾고 후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이 복원가의 일이 될 겁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뉴욕타임스(NYT) 올해의 책 100선에 선정됐다. 22일(현지 시간) NYT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의 영역판 ‘Kim Jiyoung, Born 1982’가 서평 담당 에디터들이 선정한 ‘2020년의 주목할 만한 책 100선(100 Notable Books of 2020)’에 뽑혔다. NYT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언어로 젊은 아내이자 엄마인 한 전형적인 한국 여성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겪는 곤경은 성차별적 사회의 영향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뉴욕타임스(NYT) 올해의 책 100선에 선정됐다. 22일(현지시간) NYT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의 영역판 ‘Kim Jiyoung, Born 1982’가 서평 담당 에디터들이 선정한 ‘2020년의 주목할 만한 책 100선’(100 Notable Books of 2020)에 뽑혔다. NYT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언어로 젊은 아내이자 엄마인 한 전형적인 한국 여성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겪는 곤경은 성차별적 사회의 영향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제이미 장이 영어로 번역해 지난해 4월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꼭 읽어야할 올해의 책 100권에도 포함됐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손꼽히는 불교 회화 연구자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67·사진)가 ‘한국불교회화명품선’ 시리즈 첫 권을 펴냈다. 한국 불교 회화의 ‘명품’ 40점을 엄선해 책 한 권이 작품 한 점을 다루는 시리즈다. 첫 ‘주인공’은 일본 혼가쿠지(本岳寺)에 소장된 ‘석가탄생도’다. 조선시대 전기 그림인 석가탄생도는 1997년 일본 야마구치현립미술관의 ‘고려·이조(조선)의 불교미술전’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이듬해 정 교수는 제107회 미술사학회월례발표회에서 ‘조선초기의 석가탄생도’를 주제로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그림이 일본으로 간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표구 흔적을 통해 17세기 중엽 이전부터 일본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로로 길게 접힌 자국이 있어 임진왜란 때 비정상적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책은 석가탄생도의 전체 모습과 세부 사진을 고화질로 수록했다. 석가탄생도는 일본에 전파된 후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며 광범위하게 유포돼 신앙의 대상이 됐다. 이 그림의 모방작들은 한국 불교미술이 일본에 미친 영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책에는 지바현 고마쓰지(小松寺)부터 후쿠오카시립미술관 등에서 발견한 모방작 18점 중 7점의 도판을 실었다. 1997년 석가탄생도를 본 정 교수는 일본 각지에서 나온 ‘문화재보고서’와 ‘전시도록(圖錄)’을 샅샅이 살폈다. 일본의 미술사 연구자들에게 모사본에 관해 집요하게 물었다. 그 결과 찾아내서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책 속에 모였다. 책에는 독일 쾰른 동양미술관이 소장한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도판도 수록했다. 정 교수는 유성출가상이 석가탄생도와 한 세트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석가탄생도의 중심 내용이 ‘월인석보’(1459년·세조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 엮음)에 기반하는데 유성출가상도 도상학(圖像學)적 근거를 월인석보에 두고 있고 세부 표현에서도 유사성이 발견됐다. 정 교수는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20여 년 전 이 책의 간행 필요성을 귀띔해줬고 최근 젊은 동료들도 ‘그간 모은 불화 사진을 정리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과 다름없다’고 해 책을 내게 됐다”며 “이 시리즈를 통해 해외 한국 불화의 효과적 활용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200부만 출간된 한국불교회화명품선은 한국미술연구소 웹사이트나 전화로 구매할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타트업에서 고군분투 중인 기획자, 개발자들의 구미를 당길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각각 세계 최고의 기업인 아마존, 애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기업을 다뤘다. 한 권은 가로세로 6cm의 조그마한 카드 리더기로 아마존을 이긴 ‘스퀘어’를, 다른 한 권은 ‘해적당’의 나라 스웨덴에서 시작해 애플을 꺾은 플랫폼 ‘스포티파이’에 관한 책이다. 한국 진출을 앞둬 국내에도 익숙한 ‘스포티파이’를 다룬 책은 ‘스포티파이 플레이’다. 무료로 음원 스트리밍을 제공해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그 전략으로 이용자 3억 명, 시가 총액 60조 원, 전 세계 92개국에 진출한 거대 기업이 스포티파이다. 스웨덴의 경제지인 ‘다겐스 인두스트리’의 경제부 기자 2명이 집필했다. 두 저자는 수 년에 걸쳐 내부 자료와 극비문서 및 내외부 관계자 인터뷰를 토대로 이 기업에 닥친 위기와 해결 과정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불법 영화, 음원 파일 공유가 빈번하게 이뤄졌던 P2P(개인 간 거래) 서비스인 ‘토렌트’나 ‘파이러트배이’가 스포티파이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기업은 초기 끊김 없이 음악을 듣는 기술적 방법에 집중했고 저작권은 다음이었다. 사용자를 확보하면 돈은 따라온다는 전략이 맞아떨어졌고 수익의 대부분을 음반사나 퍼블리셔에 제공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책은 “음반사가 아티스트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꼬집는다. 이 때문에 미국 진출 후에는 밥 딜런, 테일러 스위프트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이 서비스에 음원 제공을 중단했다. 그러나 대다수 내용은 이 기업이 난관을 헤쳐나간 과정을 중립적으로 다룬다. 텐센트나 마윈까지도 스포티파이에 투자를 원했다는 이야기들이 경영자에게 솔깃하게 다가올 듯하다. ‘언카피어블’은 트위터의 창립자 잭 도시와 함께 ‘스퀘어’를 만든 짐 매켈비가 직접 집필했다. 매켈비는 세인트루이스의 청년 시절부터 지역으로 강연 오는 기업가에게 ‘차를 태워주겠다’고 제안하며 조언을 구했던 야심만만한 청년이다. 유리공예로 돈을 벌던 그는 ‘소상공인도 카드결제를 쉽게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스마트폰 이어폰 단자에 꽂는 카드 리더기를 개발한다. 저가와 단순화 전략으로 소비자를 공략했던 ‘스퀘어’는 광고 한 번 없이 창업 4년 만에 매출을 초기의 13배인 5억5000만 달러(약 6000억 원)로 끌어올린다. 심지어 똑같은 서비스를 30%나 저렴하게 제공하는 아마존의 움직임에도 별 다른 대응 없이 살아남는다. 1년 뒤 아마존은 패배를 선언하고, 자신의 고객들에게 ‘스퀘어’를 보냈다. 그 후 ‘우리는 무엇이 달랐을까’를 고민한 매켈비는 그에 관한 답을 ‘혁신 쌓기 전략’으로 설명한다. 혁신 쌓기 전략은 혁신이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혁신은 기존에 정의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만 이뤄진다. 이것을 이루려는 사람은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또 전례 없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이 과정에서 쌓인 작은 혁신들은 결국엔 누구도 한 번에 모방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테면 ‘카카오뱅크’가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젊은 소비자를 사로잡았지만 시중은행이 단순히 인터페이스만 바꾼다고 똑같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카뱅’의 해결책은 그보다 더 복잡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매켈비는 이런 맥락을 스퀘어가 살아남은 과정은 물론이고 뱅크오브이탈리아, 이케아,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사례에 적용해 친절하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그래도 가장 흥미로운 건 스퀘어가 어떻게 시작하고 문제에 대처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사업에서는 ‘어떻게’만큼이나 ‘언제’가 중요하다거나 ‘수익성보다 더 큰 것을 추구하라’ 등 진솔한 조언이 인상적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개인전을 앞둔 올 9월 서울 종로구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최정화 작가(59)는 ‘볼품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했다. “무능한 아버지 아래 힘들었던 가정에서 다섯 형제를 키운 어머니가 자신의 ‘창조주 여신’”이라면서 말이다. 가진 게 없어도 “못생긴 화분에 조화를 꽂고, 잡동사니를 쌓아 올리는 아줌마의 손길이 바로 예술”이라고 했다. 그에게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의 미술감독을 맡긴 박찬욱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박 감독은 2009년 경기도미술관 강연에서 “가난한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모든 것을 꾀죄죄하게 묘사하는 데 불만이 있었다”고 했다. “실제 가난한 집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빈약함이 아닌 풍부함이다. 뭐 하나 버리지 않아 쌓여 있고, 어울리지 않을 것을 끼워 넣고… 거기서 굉장한 아름다움이 나오지 않나. 그런 점이 (이 영화에서) 만족스러웠다.” 수차례 미술관 개인전을 연 미술가이자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소장인 최 작가는 1990년대 ‘올로 올로’ ‘스페이스 오존’ ‘살바’ 같은 복합 문화 공간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빈티지 소품이나 노출 인테리어를 활용한 당시 디자인은 요즘 ‘뉴트로(뉴+레트로·새로운 복고)’라는 트렌드가 됐다. 장정일의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 ‘301, 302’나 ‘모텔 선인장’ 등의 미술감독도 맡았다. 일상 소품을 화려하게 재해석하며 팝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가 이번엔 ‘경남도민’과 전시를 꾸몄다. 지난달 22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살어리 살어리랏다’전이다. 이번 전시는 “경남의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를 만들자”는 김종원 경남도립미술관장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김 관장은 “현대미술관은 역사를 다뤄야 하는데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다”며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를 주제로 미술관이 가야 할 방향을 찾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올 4∼8월 경남 지역을 답사했다. 창원의 폐스티로폼 처리장에서 만난 해양 쓰레기는 작품 소재가 됐다. 전시 작품 ‘폐선’은 이곳에 버려진 배를 세척하고 에폭시를 활용해 물이 고인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120년 역사의 마산 청과물시장에서는 손수레를 발견했다. 대부분 40∼50년간 사용한 것으로 과일 상인들이 먹고살고, 자식 공부시킬 수 있도록 해준 물건이다. 고(古)가구와 현대적 물건을 결합한 작품 등을 미술관 1, 2층의 1, 3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앞마당에는 도민 617명이 보내온 밥솥 냄비 식기 등 783점으로 쌓은 높이 24m의 탑 ‘인류세(人類世)’가 놓였다. 2층의 2전시실에는 식기를 보내온 사람들의 사연과 사진도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1000명의 이름을 마산의 한 재봉사가 한 땀, 한 땀 새겨 작품 ‘당신이 기념비입니다’가 탄생했다. 3층 전시실에는 경남 지역 커뮤니티인 ‘공유를 위한 창조’ ‘비컴 프렌즈’ ‘돌창고프로젝트’ ‘팜프라’의 활동상을 소개하는 팝업 전시 ‘별유천지’도 마련됐다. 김재환 학예연구사는 “미술관의 공공성을 확장하는 방식을 실험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내년 2월 14일까지, 300∼1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