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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서류 조작이 드러난 폴크스바겐이 자동차 인증을 재신청할 경우 정부가 평소보다 더 까다로운 절차를 적용해 검증하기로 했다. 만약 폴크스바겐이 인증 취소에 불복해 소송을 내고 제품을 계속 판매하면 과징금 한도를 10배로 올린 개정법을 적용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26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폴크스바겐의 국내 법인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시험 성적서를 조작해 국내 인증을 받은 32개 차종 79개 모델의 자동차 인증을 다시 신청할 경우 ‘실제 확인검사’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인증은 서류검사와 실제 확인검사로 나뉘는데, 통상 97%는 서류검사만으로 통과된다. 하지만 환경부는 폴크스바겐 제품 중 엔진 종류가 다른 것들은 전부 실제 확인검사를 거치도록 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12일 폴크스바겐에 인증 취소 방침을 통보했고, 다음 달 2일 이를 확정할 방침이다. 업계에선 폴크스바겐이 인증 취소 및 판매 정지 처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해 차량을 계속 판매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개정 대기환경보전법이 시행되는 28일 이후에도 폴크스바겐이 해당 차종을 계속 판매하면 차종 1개당 과징금 상한을 100억 원(현행 10억 원)으로 상향 조정한 조항을 적용할 방침이다. 홍동곤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은 “폴크스바겐은 국내 인증에 소요되는 시일을 단축하려고 독일에서 판매한 차종의 시험 성적서를 그대로 들여와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정부가 최종적으로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이날 대표 당사자의 피해가 인정되면 피해 집단 전체가 배상받을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모델로 한 집단소송법은 개개인이 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대표 당사자가 소송에서 이길 경우, 피해자 전원에게 판결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박 의원은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국민에게 광범위하게 피해를 끼친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배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법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유근형 기자}
불법 서류 조작이 드러난 폴크스바겐이 자동차 인증을 재신청할 경우 정부가 평소보다 더 까다로운 절차를 적용해 검증하기로 했다. 만약 폴크스바겐이 인증 취소에 불복해 소송을 내고 제품을 계속 판매하면 과징금 한도를 10배로 올린 개정법을 적용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26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폴크스바겐의 국내 법인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시험 성적서를 조작해 국내 인증을 받은 32개 차종 79개 모델의 자동차 인증을 다시 신청할 경우 ‘실제 확인검사’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인증은 서류검사와 실제 확인검사로 나뉘는데, 통상 97%는 서류검사만으로 통과된다. 하지만 환경부는 폴크스바겐 제품 중 엔진 종류가 다른 것들은 전부 실제 확인검사를 거치도록 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12일 폴크스바겐에 인증 취소 방침을 통보했고, 다음달 2일 이를 확정할 방침이다. 업계에선 폴크스바겐이 인증 취소 및 판매 정지 처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해 차량을 계속 판매하려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개정 대기환경보전법이 시행되는 28일 이후에도 폴크스바겐이 해당 차종을 계속 판매하면 차종 1개당 과징금 상한을 100억 원(현행 10억 원)으로 상향 조정한 조항을 적용할 방침이다. 홍동곤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은 “폴크스바겐은 국내 인증에 소요되는 시일을 단축하려고 독일에서 판매한 차종의 시험 성적서를 그대로 들여와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정부가 최종적으로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이날 대표 당사자의 피해가 인정되면 피해 집단 전체가 배상받을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모델로 한 집단소송법은 개개인이 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대표 당사자가 소송에서 이길 경우, 피해자 전원에게 판결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박 의원은 “폴크스바겐 배출조작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국민에게 광범위하게 피해를 끼친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배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법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흡입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19년 전 입수하고도 이를 캐비닛에 넣어둔 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26일 나왔다.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과 정의당 이정미 의원, 송기호 변호사는 1997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제조를 고용노동부(당시 노동부)에 신고하면서 이 물질을 흡입했을 때 위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유해성조사결과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당시 보고서에는 “(PHMG를 흡입했을 때) 환자를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기고 병적인 증세를 보이면 의사의 진료를 받을 것” “(PHMG에) 오염된 물을 폐수 처리 시설이 있는 위생시설로 보내거나 폐기해야 함” 등 이 물질의 흡입 위험성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PHMG의 유해성을 공표하고 환경부 등 관계 부처에 통보해야 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PHMG는 2001년부터 옥시 등 3개 업체가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해 102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물질이다. 당시 노동부가 절차에 따라 PHMG의 흡입 위험성을 환경부 등에 경고했다면 대규모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술 더 떠 고용부는 최근까지 PHMG 유해성조사결과보고서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지난달 송기호 변호사가 자료를 요구했을 때 “SK케미칼이 애초에 제출하지 않은 것 같다”며 공개를 거부했다가 최근 다른 서류를 찾는 과정에서 해당 자료를 발견한 것.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당시 행정적 오류로 인해 공표·통보 절차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며 “당시 보고서는 SK케미칼이 분말 형태의 PHMG를 다루는 취급 근로자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될 거라곤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때 이른 더위와 A형간염의 유행 탓에 올 여름 감염병 환자가 급격히 증가한 나타났다. 25일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6월까지 A형 간염, 말라리아, 장티푸스 등 주요 여름철 감염병 7종으로 병원을 찾은 국내 환자가 3286명으로 집계돼 지난 한 해 전체 환자(2675명)보다 22.8%나 많았다고 밝혔다. 2011년(6559명) 이후 최고치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환은 A형 간염이다. 올해 6월까지 A형 간염 환자는 2897명으로 전체 여름철 감염병의 88.2%를 차지했다. A형 간염 환자는 2011년 5499명을 기록한 뒤 2012년 1179명, 2013년 849명으로 줄다가 다시 늘고 있다. 여름철 감염병 환자의 급증이 이른 무더위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감염병을 매개하는 곤충의 활동 시기가 빨라지고 음식이 상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돼 환자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실제로 물이나 음식을 통해 전파되는 살모넬라증, 어패류를 충분히 조리하지 않은 채 섭취할 경우 나타나는 비브리오 패혈증, 모기에 물려 발생하는 말라리아 등 수인성·식품매개 감염병 환자는 올해 6월까지 222건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202건)보다 4.9% 증가했다. 특히 진드기에 물려 발생하는 쯔쯔가무시증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환자는 올해 6월까지 760건으로, 전년 동기(270건)의 2.8배였다. 이는 봄철에 주로 활동하는 ‘대잎털진드기’가 평년보다 일찍 활동을 시작했고 개체 수도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는 여름철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손을 깨끗이 씻고 △음식물을 충분히 가열해 섭취하며 △조리한 음식은 오래 보관하지 않고 △집 주변에 고인물이 없도록 해 모기의 발생을 억제하며 △피부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낚시나 해수욕을 삼가고 어패류를 반드시 익혀먹도록 당부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피서지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응급 상황의 대응법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장성은 서울아산병원 피부과 교수, 김혁훈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도움말로 피서지에서 흔히 발생하는 응급상황 대처법과 건강 관리법에 대해 살펴봤다. ―계곡에 텐트를 치고 자다가 귀에 벌레가 들어갔다. “흔히 귀에 대고 불빛을 비추는데, 경우에 따라선 벌레가 귀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외이도 벽이나 고막에 손상을 줄 수 있다. 벌레는 보통 앞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이나 면봉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가까운 병원을 찾아 국소 마취제를 이용해 벌레를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식용유, 베이비오일 등 점성이 있는 액체를 귀에 넣어 벌레를 질식사 또는 익사시키는 방법도 있다. 벌레가 죽은 뒤에 고개를 반대쪽으로 기울이면 벌레가 빠져나온다. 다만 고막이 손상돼 있거나 귀가 덜 발달한 영유아는 병원에서 치료 받는다.” ―물놀이를 하고 나니 아이의 피부가 발갛게 붓고 물집이 잡혔다. “햇볕에 의한 화상도 불에 덴 것과 같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우선 피부에 찬물을 흘리거나 얼음물 주머니를 올려 표면 온도를 낮추고, 수분크림이나 알로에 성분이 있는 젤을 발라주면 화상으로 생긴 염증을 줄여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껍질이 일어나기 시작해도 억지로 벗기지 말고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도록 두는 게 좋다. 응급조치를 한 뒤에도 붉은 부위가 넓어지거나 수포가 추가로 생기면 감염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해수욕장에서 해파리에 쏘였을 때는 어떻게 하나.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해파리 등 독성 바다생물과 접촉해 신고가 접수된 환자는 2216명이다. 독성을 뿜는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올여름 지난해보다 출현율이 2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해파리에 쏘이면 우선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안정을 취하며, 쏘인 부위를 식초나 바닷물에 15∼30분 정도 담그는 게 좋다. 마시는 물이나 얼음으로 상처 부위를 씻으면 독이 더 퍼져 나갈 수 있다. 두드러기 정도의 약한 증상이면 플라스틱 카드나 조개껍데기로 촉수가 박힌 반대 방향을 긁어 촉수를 뽑아내면 된다. 하지만 어지럼, 구토, 두통, 호흡곤란 등이 생기면 구급차로 병원에 가야 한다.” ―당일치기로 계곡에 가려는데 식중독 걱정이 앞선다. “아이스박스를 이용할 땐 온도를 4도 이하로 유지시켜 음식에 세균이 번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조리할 땐 60도 이상으로 가열해 즉시 먹는 게 안전하다. 피서지에서 지하수나 약수를 마시는 건 가급적 삼가는 게 좋다. 지하수는 수돗물과 달리 염소로 소독하지 않은 것이어서 노로 바이러스 등 각종 식중독균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광연 인턴기자 아주대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유방암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반면 1인당 평균 진료비는 약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화된 식습관, 빠른 초경과 늦은 출산 등으로 인해 유방암 위험성이 높아진 가운데 검진을 통해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환자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24일 건강보험공단은 유방암으로 진료받은 환자가 2011년 10만4293명에서 지난해 14만1379명으로 35.6%나 늘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전체 진료비는 4414억 원에서 5962억 원으로 35.1% 뛰었지만 1인당 평균 진료비는 423만 원에서 422만 원으로 약간 줄었다. 유방암 검진 인원이 324만 명(대상자의 51.5%)에서 368만 명(60.9%)으로 늘어나는 등 초기에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비율이 높아진 덕에 거액의 의료비를 들여야 하는 중증 환자의 비율은 낮아졌다는 뜻이다. 노동영 서울대병원 헬스케어시스템강남센터 원장(유방외과 교수)은 “예전엔 유방암을 1기에 발견하는 환자가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절반이 넘는다”고 말했다. 유방암은 유방에 암 세포로 이뤄진 종괴(만져지는 덩어리)가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유방에 멍울이 만져지거나 유두에서 분비물이 나와 병원을 찾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부가 40세 이상 여성에게 2년마다 무료로 지원하는 유방암 검진에서 진단을 받는다. 유방암 환자는 진단받은 뒤에도 5년 이상 살 가능성이 91.5%나 된다. 방사선 치료, 내분비(항호르몬) 요법 등 보조적 치료법이 암을 극복하는 데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무료 검진이 적용되지 않는 20, 30대 여성은 매달 자가 진단을 하는 게 좋다. 지난해 20, 30대 유방암 환자의 1인당 진료비 부담은 각각 720만 원, 636만 원으로 40대(489만 원)나 50대(403만 원)보다 훨씬 컸다. 20, 30대 여성의 경우 전이성이 강한 ‘악성’ 유방암 환자의 비율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가 진단은 팔을 들어올린 뒤 손가락 두세 번째 마디로 유방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원을 그려가며 문지르면서 평소와 달리 혹이 잡히는지 살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고기보다는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고 음주를 삼가는 게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거나 초경이 빠르면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 손미아 강원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008∼2012년 9445명이었던 유방암 여성 사망자가 2028∼2032년엔 1만3973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며 여성의 야근, 초과근무 증가 등 노동 조건 악화도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고 분석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달 초 황달이 심한 갓난아이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아실에 맡겼던 산모 A 씨(33). 이 병원 간호사가 결핵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에 18일 부랴부랴 아이의 결핵 검사에 응했다. ‘음성’이라는 결과에 안도한 것도 잠시, A 씨의 아이가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O산후조리원은 20일 A 씨에게 “아이와 함께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A 씨는 “‘아이가 결핵에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활동성 결핵 신생아도 아닌데… 21일 질병관리본부와 이대목동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중환아실을 거친 신생아 166명에 대한 집단 조사가 18일 시작된 이후, 조사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산후조리원이 신생아의 입실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활동성 결핵’ 환자가 아니라면 타인에게 결핵균을 전파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근거 없는 공포가 번지는 모양새다. 또 다른 산모 B 씨(31)는 입원해 있던 산후조리원에 아이만 남긴 채 혼자 퇴원해야 했다. 아이는 역학조사에서 결핵 환자가 아닌 것으로 판정됐지만 산모는 감염됐을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B 씨가 임신 초기 이미 결핵 검사를 받았고 출산 후엔 결핵에 걸린 간호사와 직접 접촉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뒤가 안 맞는 조치다. 서울 양천구의 D산후조리원은 한 산모가 아이를 이대목동병원에서 분만할 예정이라는 이유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입원 예약을 취소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당국은 21일까지 이 같은 민원을 4건 접수했고, 실제 피해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열과 기침 등 증상이 나타난 활동성 결핵 환자일 경우에 기침 등을 통해 주변에 결핵균을 퍼뜨릴 수 있다. 하지만 결핵균에 감염됐더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잠복 결핵’ 보균자라면 결핵균이 전혀 전파되지 않는다. 결핵균이 폐가 아닌 림프샘(임파선)이나 내장에 숨어 있어 체외로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 “‘입원 거부’ 조리원 제재해야” 그런데도 산후조리원들이 결핵에 과민 대응하는 것은 활동성 결핵과 잠복 결핵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지난해 ‘결핵 산후조리원’ 사건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과 8월 대전 서구와 서울 은평구의 산후조리원에서 간호조무사 2명이 각각 결핵 판정을 받아 신생아 501명이 집단 조사를 받았다. 당시 활동성 결핵이 생긴 신생아는 없었고, 잠복 결핵은 50명으로 나타났다. 이후 당국이 산후조리원 종사자의 건강관리 의무 수준을 높이는 등 감염병 관리 기준을 강화하면서 업계에선 ‘결핵’이라는 단어만 언급돼도 입원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산모와 아이의 입원을 임의로 거부하면 산후조리원을 제재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모자보건법과 공정거래위원회 ‘산후조리원 표준약관’엔 산후조리원의 부당한 입원 거부를 막을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일단 “감염 위험이 없는 신생아는 입원을 거부하지 말라”는 협조 공문을 전국 산후조리원에 보낼 계획이다. 엄중식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결핵 예방·치료 정책은 강화하되 비과학적인 공포심은 줄일 수 있도록 결핵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적극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21일까지 이대목동병원이 결핵 간호사와 접촉했던 신생아 166명 중 150여 명(90.4%)을 검사한 결과 활동성 결핵 환자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조건희 becom@donga.com·이진한 기자·의사}
술병에 붙는 경고문구가 21년 만에 바뀐다. 임신 중 음주의 위험과 알코올이 발암물질임을 알리는 내용이 담긴다. 보건복지부는 9월부터 주류의 판매용기(술병)의 과음 경고 문구를 이처럼 보완하는 내용의 ‘흡연 및 과음 경고문구 등 표시내용’을 22일부터 행정 예고한다고 21일 밝혔다. 변경될 경고문구는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알코올은 발암물질로 지나친 음주는 간암, 위암 등을 일으킵니다.”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 청소년 음주는 성장과 뇌 발달 저해, 지나친 음주는 암 발생의 원인입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산을 일으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등 3가지다. 기존보다 임신부와 청소년에 대한 경고 수준을 높이고 과음이 초래할 수 있는 질환의 종류도 다양화했다. 주류 업체는 이 중 1개를 반드시 술병에 붙여야 한다. 복지부는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개정 건강증진법이 시행되는 9월 3일부터 새 경고문구를 적용할 방침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야생 진드기에게 물려 생기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으로 사망한 환자가 올해에만 5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진드기는 7∼9월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풀밭에 맨몸으로 눕지 않는 등 주의가 요구된다. 질병관리본부는 SFTS 환자가 18일까지 총 31명으로 집계돼 지난해 같은 기간(27명)보다 14.8% 늘었다고 20일 밝혔다. 국내에서 SFTS 환자는 2013년(36명) 처음 발견된 뒤 2014년 55명, 지난해 79명 등으로 점차 늘고 있다. SFTS에 걸리면 고열과 구토, 설사, 혈뇨 등 증상을 보이다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현재까지 환자 201명 중 59명(29.4%)이 숨졌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정부가 의료진과 교사 등 집단시설 근무자 145만 명의 결핵균 보유 여부를 전수 조사하기 위해 결핵 예산을 현재의 2배인 740억 원대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숨어 있는 결핵균을 미리 찾아내 씨를 말리겠다는 취지다. 이대목동병원과 계명대 동산병원 등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의 결핵 감염이 잇따라 발생하는 상황에서, 결핵 확산 조사에만 초점을 둔 현행 방식으로는 인구 10만 명당 80.2명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결핵 발병률을 선진국 수준(12명)으로 낮출 수 없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 韓 결핵 발병률, 阿수준 “오명 씻자” 740억 처방 ▼ 아프리카 수단공화국(북수단)과 비슷한 수준인 결핵 발병률을 낮추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팔을 걷었다. 19일 보건 당국은 내년 잠복 결핵 조사에 예산 350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방안을 예산 당국과 협의 중이다. 올해 국가 결핵 예방 관련 예산이 392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배 가까이로 늘리는 셈이다. 잠복 결핵은 아직 결핵이 발병하지는 않았지만 결핵균에 감염된 상태를 말한다. 이들 중 10%는 추후 결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미리 감염 여부를 파악해 결핵균을 없애는 것이 효과적인 확산 방지법으로 꼽힌다. 정부가 결핵 예산을 2010년 149억 원에서 2011년 445억 원으로 크게 늘리면서 결핵 환자 수 자체는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이후 예산은 390억 원대로 제자리걸음을 했고,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1년 2364명에서 2014년 2305명으로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이번 예산안이 반영되면 내년 중 의료기관 종사자 70만 명을 포함해 초중고교 교사, 산후조리원 직원 등 집단 시설 근무자 145만 명의 잠복 결핵을 일제히 검사할 계획이다. 그간 병·의원이 부담해야 했던 의료진의 결핵 검사비도 전액 지원한다. 결핵 환자가 급격히 늘기 시작하는 만 15세에 결핵균을 잡아내기 위해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과 협력해 고등학교 1학년생 52만 명과 학교 밖 청소년 5만 명의 잠복 결핵 여부도 전수 조사할 방침이다. 잠복 결핵을 조기에 찾아내 치료하면 의료비 지출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행 결핵 관리 지침에 따르면 초중고교 동일 학년에서 결핵 환자가 6개월 내에 2명 나오면 해당 학년의 학생 전원을, 3명 이상이면 해당 학교 학생 전원을 검사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8월 경남의 한 중학교에선 학생 1명이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아 같은 반 학생과 교사 등 102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추가 환자 2명이 확인돼 전교생(765명)이 검사를 받았고 최종 13명이 결핵 환자로 드러났다. 결핵 환자 1명을 미리 치료하면 수백 명의 검사비와 치료비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한편 질병관리본부와 이대목동병원은 19일까지 신생아 중환아실 간호사 A 씨(32·여)와 접촉한 환아 166명 중 127명(76.5%)을 검사한 결과 결핵에 감염된 환자는 없다고 밝혔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아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결핵에 걸린 것으로 확인돼 18일 보건당국이 확산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병·의원에서 결핵에 옮는 환자와 직원이 한 해 3000명이 넘어 대책이 요구된다. 이날 오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별관 검사실은 불안한 표정으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부모들로 북적였다. 오전 일찍 병원으로부터 “신생아 중환아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 씨(32·여)가 15일 직장 건강검진에서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으니 아이의 감염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연락을 받은 보호자들이다.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아이의 결핵 예방약을 처방받은 한 30대 보호자는 “아이가 이미 감염됐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서울시와 함께 역학조사반을 꾸려 A 씨가 지난 3개월간 접촉했던 신생아 160명의 결핵 감염 여부를 조사 중이다. A 씨의 동료 직원 50여 명 중에는 결핵 환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 측은 A 씨가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을 보이진 않았지만 결핵균이 사라질 때까지 자택격리로 치료할 방침이다. 대개 보름 정도 결핵약을 복용하면 타인에게 감염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다. 병·의원은 결핵이 확산되는 주요 경로다. 올해 3월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에선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B 씨(28)가 결핵에 감염돼 29명에게 결핵균을 옮긴 것으로 조사됐다. 질병관리본부가 이처럼 지난해 병·의원에서 발생한 결핵 환자 600명과 접촉한 환자·의료진 2만1486명을 검사한 결과 이 중 136명이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학교·어린이집(113명)이나 직장(35명), 교도소(30명), 군대(15명)에서 결핵이 옮은 환자보다 훨씬 많다. 아직 결핵이 발병하지는 않았지만 병·의원에서 결핵균을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 잠복결핵 보균자도 2950명이나 된다. 이에 따라 병·의원 내 결핵 감염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당국은 의료기관 종사자가 매년 잠복결핵 검진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지만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차례에 7만 원가량 드는 혈액검사 등 잠복결핵 비용을 병·의원 부담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신생아실, 중환자실 등에서 근무하는 ‘결핵 전파 고위험’ 의료진에겐 잠복결핵 검사·치료를 위해 정부가 지원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어른 다섯 명이 누우면 꽉 찰 듯한 작은 방, 고개를 드니 천장에 암호와 같은 글자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중동 지역의 전통 의상 ‘디슈다샤’를 차려입은 한 남성이 맨발로 들어오더니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엎드린다. 이곳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1층 무슬림 기도실. 화살표를 따라 메카를 향해 절하는 이 남자는 치료를 받기 위해 이역만리 한국까지 날아온 중동 환자의 가족이다.기도실에 주전자가 있는 이유 6일 문을 연 서울대병원 무슬림 기도실은 손과 발을 씻는 세족실과 남자 기도실, 여자 기도실로 이뤄져 있다. 전부 다 합해서 20m²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지만 이 병원 국제진료센터에는 숙원이었다. 수술실과 응급실을 늘릴 공간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세족실엔 샤워기뿐 아니라 플라스틱 주전자도 구비돼 있다. 같은 무슬림이어도 나라마다 기도하는 방식이 다른데, 중앙아시아 국가에선 기도 전 반드시 뒷물을 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수술을 지켜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 압둘라 라시드 씨(33)는 낮 기도를 마치고 기도실을 나오며 “예전엔 병실에서 기도하다 보니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거나 중간에 왕진하는 의료진이 드나들어 불편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은 기도실이 이슬람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 병원에서 일하는 중동 국적 직원과 환자, 보호자들에게 수차례 조언을 구했다. 이태원에서 예배용 카펫과 꾸란(이슬람 경전)을 사올 때도 중동 환자들의 감수를 거쳤다. 서울대병원만이 아니다. 중동의 많은 백혈병 환자가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찾는 서울성모병원에도 무슬림 기도실이 갖춰져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병실에서 중동 국가의 TV 채널을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가족이 함께 와 피부 관리까지 한국의 대형 병원들이 중동 환자 잡기에 신경 쓰는 일차적인 이유는 이들이 쓰는 의료비가 최근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오는 중동 환자는 지난해 6000명을 돌파해 6년 만에 10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들이 쓴 의료비는 80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 환자와 비교해 보면 중동 18개국에서 온 환자를 다 더해도 16분의 1도 안 되지만 이들이 쓰는 1인당 의료비는 중국인의 3, 4배다. 1990년대까지 중동 환자에게 의료 분야의 ‘약속의 땅’은 미국이었다. 2000년 한 해에 중동 환자가 미국에서 쓴 의료비는 14억 달러(약 1조7000억 원)였다. 하지만 이듬해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고 반(反)이슬람 정서가 강해지면서 미국을 찾는 중동 환자는 1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이후 중동 환자들은 독일 영국 등 유럽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로 발길을 돌렸다. 2000년대 후반 한국 의료 기술의 전문성과 안전성이 알려지며 중동 환자들이 국내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자국에선 간단한 진료를 보는 데도 몇 주, 큰 수술을 받으려면 최소 4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한국에선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신속히 받을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었다. 특히 2011년 아랍에미리트가 한국을 방문하는 자국 환자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환자 유입이 늘었다. 중동 환자는 의료비만 많이 쓰는 게 아니다. 중동 환자가 혼자 한국에 오는 것은 100명 중 2, 3명꼴일 정도로 드물다. 절반 이상은 배우자나 자녀 등 2명 이상 데려오고, 형제자매까지 함께 오는 사례도 흔하다. 이 때문에 중동 환자들은 취사가 가능한 레지던스나 호텔 스위트룸을 선호한다. 10명 중 6명은 국내에 한 달 이상 체류한다. 환자 1명을 유치하면 그와 함께 오는 식솔들이 한국에서 쓰고 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사막 기후인 아랍에미리트에서 온 여성 보호자는 피부 보습과 노화 방지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이들은 화장품 업체가 운영하는 고급 피부 관리숍에서 비만 관리나 노화 방지 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스파에 한방 약재 성분을 사용한 ‘한국형 스파’도 중동 환자의 보호자에게 인기가 높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중동 환자에게 미용성형 시술에 매기는 부가가치세 환급 △전문 통역사 양성 △보호자가 즐길 수 있는 관광 상품 개발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중동 ‘고향의 맛’ 내려 연구 거듭 ‘할랄식’은 병원들이 특별히 공들이는 부분이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할랄식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 처리 가공된 식품을 조리한 음식을 말한다. 돼지고기나 알코올을 사용해선 안 되고, 소나 닭도 성인 무슬림이 기도를 올린 뒤 도축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병원의 할랄식에 대한 중동 환자들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5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온 환자 116명을 조사해 보니 할랄식은 메뉴가 적고 섭취하기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대체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국내 병원이 중동 환자들에게 할랄식을 처음 내기 시작한 2010년경엔 환자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맛이 아니다”라거나 “도저히 못 먹겠다”라는 환자들도 있었다. 한국 환자가 해외에서 치료받을 때 어설프게 모양만 낸 김치찌개나 미역국만 계속 먹다 보면 제대로 기운을 낼 수 없는 것처럼, 중동 환자가 통역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비의료 서비스가 바로 할랄 음식이다. 각 병원 급식 담당과는 중동의 ‘어머니 손맛’을 내기 위해 학습조직까지 꾸리고 본격적으로 메뉴 개발에 나섰다. 현지의 맛을 가장 잘 재현한다는 중동 음식점을 찾아가 직접 조리법을 배우기도 하고, 국내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향신료를 중동 지역으로 출장 가는 직원에게 부탁해 사들이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할랄식 품평회를 열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간호사가 할랄식에 대한 평가를 듣는 병원들도 생겼다. 서울대병원은 1000명이 넘는 입원 환자 중 10여 명에 불과한 중동 환자를 위해 별도의 조리실에서 할랄식을 만들 정도다. 그 덕분인지 최근엔 환자들의 평가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윤여정 서울대병원 급식영양파트장은 “환자가 ‘고향에서 먹은 그 맛’이라고 말해 줄 때 가장 뿌듯했다”라고 말했다. 할랄 인증은 할랄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내 식료품과 의약품, 화장품 업계에선 20억 명이 넘는 무슬림 소비자를 잡기 위해 할랄 인증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건강기능식품 업체들은 할랄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을 무슬림이 아닌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적극 알린다. 종교나 인종을 떠나 깐깐한 인증 절차를 통과한 안전한 식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보단 의료 발전 계기로” 의료계에선 늘어나는 중동 환자를 ‘돈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내 의료 서비스 전반을 발전시킬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의 의료를 경험한 중동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국내 환자의 건강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외국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국제적인 질병 트렌드를 파악하고 국가별 질환의 특성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광웅 서울대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은 “까다로운 중동 환자를 상대하다 보니 채혈 시 장갑을 반드시 껴야 하고 쓰레기통을 비울 땐 반드시 비닐 전체를 갈아야 한다는 등 의료진의 작은 습관부터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로 들어오는 환자를 어떻게 관리할지를 넘어 각국의 움직임을 긴밀히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중동 환자 중 절반이 넘는 아랍에미리트에선 최근 한국의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티카’ 보험의 국외 의료비 보조 범위를 축소하기로 결정해 해외 의료관광이 전반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각국의 동향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환자 유치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조건희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박노명 인턴기자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4학년 }

여성가족부는 김희정 전 장관 시절 틈만 나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했다. 피해 실상을 인류사에 낱낱이 기록해 여성과 어린이가 다시는 그처럼 참혹한 성범죄를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여가부의 정체성에 걸맞은 숭고하고 현실적인 목표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직후 여가부의 태도가 달라졌다. 한 여성단체의 유네스코 등재 사업을 지원하기로 해놓고 막판에 이를 백지화했다. 강은희 현 장관은 취임식에서 관련 언급을 피했다. 취임사에 ‘∼해야 한다’는 표현이 23차례나 등장했지만 위안부 기록 문제에 대해선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는 모호한 표현만 썼다. 여가부가 불과 한 달 전의 자신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여가부는 지난달 기획재정부에 2017년도 예산을 요구하며 유네스코 등재 사업 예산 4억4000만 원을 자체 삭감해 버렸다. 이 사업을 2년 가까이 지켜봐 온 여가부 관계자에게 공무원이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의견을 물었다. 망설이던 이 관계자는 “기록유산으로 남기는 건 해야죠. 내년 예산도 (책정될 수 있도록) 남은 시간 동안 해 봐야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틀 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 장관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민간이 등재를 추진하고 있으니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에도 정부 차원의 지원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 여가부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만 달랐던 게 아니라 ‘겉과 속’도 달랐다. 정부는 한일 간에 유네스코 등재 사업을 보류하자는 등의 ‘이면 합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이라면 여가부는 원래 추진해온 대로 유네스코 등재 사업을 지원해 진정성을 입증하면 된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에 심사 제도를 바꾸라며 대놓고 압력을 넣는데 한국 정부만 합의하지도 않은 내용 때문에 눈치를 볼 필요가 있나. 많은 사람들은 강 장관이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여당 위원들이 전부 회의실을 박차고 나간 뒤에도 혼자 남아 야당 위원들을 설득하려 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지금 강 장관은 여가부가 걸어온 행적이나 실무진의 목소리를 외면할 게 아니라 특기를 발휘해 필요하면 외교부나 일본 정부와도 담판을 지어야 할 위치에 있다. 각 부처가 제 기능을 할 때 나오는 불협화음은 건전한 긴장 관계의 증거다. 그게 여성 인권을 상징하는 부처의 수장이 내야 할 진짜 불협화음 아닌가. 필자가 2011년 12월 1000번째 수요집회를 앞두고 김복동 할머니(90)를 만났을 때 그는 “한쪽 눈이라도 성할 때 일본이 ‘할매, 이제 고마 화 푸소, 미안했소’라는 걸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4년여가 지난 지금 김 할머니는 남은 눈마저 실명 위기라고 한다. 10일 유희남 할머니(87)가 별세하면서 위안부 생존자는 40명으로 줄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자, 지난달엔 무슨 갑(甲)질을 했는지 말해 봅시다.” 서울 은평구의 한 건물 3층에서 의사가 말을 꺼내자 둥글게 모여 앉아있던 환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저는 오랜만에 미역국을 끓여 먹었어요.” 다른 환자들이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조리극의 일부 같은 이 모습은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살림의원’에서 열린 갑상샘 질환 환자들의 반상회인 ‘갑들의 모임’의 한 장면이다. 의사와 환자들이 두 달에 한 번꼴로 둘러앉아 ‘못 본 새 어떤 갑질을 했느냐’는 인사로 시작하는 이 모임에선 질환과 관련된 노하우가 수다처럼 자유롭게 오간다. 살림의원은 은평구 주민과 의사가 2012년 함께 만든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동네병원. 환자가 곧 병원의 투자자인 셈이다. 의사 2명과 간호사 4명으로 구성된 작은 가정의원이지만 최근 조합원이 1800명을 돌파했다. 의사와 환자가 ‘30분 대기, 3분 진료’라는 말로 대표되는 위계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질환별 반상회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차별화된 시스템을 갖춘 덕이다. 조합원 중 상당수는 ‘갱년기 모임’ ‘탈모 모임’ 등 자신의 상태에 맞는 반상회에 참여해 서로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체크해주고 동석한 의사나 간호사로부터 조언도 듣는다. ‘갑들의 모임’에 2년째 참여하는 한 조합원은 “암 환자가 대다수라 분위기가 어두울 줄 알았는데, 환자들이 직접 재료를 챙겨와 회복에 좋다는 음식을 그 자리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고 틀린 부분은 동석한 의사가 바로잡아 주기도 하니 재밌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의사를 ‘옆집 이웃’처럼 편하게 생각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가족에게 응급 상황이 생기면 곧장 휴대전화에 입력된 의사의 번호를 눌러 조언을 듣는 일도 많다. 지난해 박모 씨(49·여)의 남편이 머리가 아프다며 갑자기 드러누웠을 때도 마찬가지다. 박 씨는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라고 생각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고, “뇌출혈 초기 증상일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서둘러 대형병원 응급실로 간 덕에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모든 의료협동조합이 살림의원처럼 제대로 굴러가는 건 아니다. 사무장이 의사를 고용하거나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사무장 병원’을 개설하는 편법 루트로 악용하는 사례가 많고, 취지대로 운영하려 해도 만성 적자에 시달릴 때도 많다. 하지만 살림의원은 다음 달 치과 의사 1명과 치위생사 4명을 새로 들여 ‘살림치과’를 만들 예정이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모은 출자금도 최근 9억 원을 넘었다. 모금과 조합 관리를 전담하는 유여원 경영이사(34·여)는 최근 SK가 후원하는 KAIST의 ‘사회적 기업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는 등 전문 경영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유 이사는 “누구나 평등하게 건강할 권리를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조합의 목표”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8개월 된 딸을 둔 김모 씨(31·여)는 가정용 살충제(모기약) 진열장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모기가 옮긴다는 지카 바이러스도 무섭지만, 혹시 가습기 살균제처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유해물질이 들어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모기장을 설치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모기약과 모기 기피제는 ‘의약외품’으로 지정돼 출시 전 성분의 독성을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 겉면에 ‘의약외품’이라고 표기된 제품을 정해진 용법과 용량에 맞게 사용하면 인체에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전기 훈증 방식(액상·매트형) 모기약에는 곤충의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피레스로이드’ 계열의 합성 화학물이 들어 있다. 피레스로이드는 두통, 구토, 발작을 일으킬 뿐 아니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비염, 천식의 위험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기가 들어올지 모른다고 온 집 안의 창문을 닫고 틀어두면 공기 중 피레스로이드 농도가 높아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뿌리거나(스프레이형) 피우는(코일형) 방식의 모기약은 살충 효과가 더 좋지만 인체 위험성도 더 크다. 창문을 닫고 이 제품들을 사용했을 때 미세먼지(PM10) 농도가 ‘매우 나쁨’(m³당 150μg)보다 10∼40배까지 치솟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부 해외 코일형 모기향은 1개를 피울 때마다 담배 2∼22개비에 들어있는 발암물질(포름알데히드)이 뿜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식약처는 2014년 피레스로이드 계열 ‘페르메트린’이 포함된 스프레이형 모기약은 자동분사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모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피부나 옷에 뿌리는 모기 기피제는 6개월 미만 아이에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 모기 기피제에는 디에틸톨루아미드(DEET)가 포함돼 홍조, 피부 과민 반응, 부종 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도 피부가 노출되는 팔이나 다리에만 사용하되 전체 인체 면적의 20% 이상에 쓰지 않는 게 좋다. 햇볕에 피부가 탔거나 염증이 있는 상태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탄 피부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조직이 손상돼 있기 때문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광연 아주대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8월 두 번째 기숙사 완공을 앞둔 가천대는 곧장 세 번째 기숙사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학생들이 편안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이길여 가천대 총장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가천대 가천관에서 만난 이 총장은 학생 중심의 학교 운영이 대학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이 모여 의대 입시 4위라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가천대 의학전문대학원이 의과대로 전환된 뒤 지난번 입시에서 입학 성적이 전국 4위에 올랐다. 비결이 궁금하다. “6년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 제공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학생과 학부모들이 좋게 평가해 준 덕분이지만, 거기엔 길병원이 두 차례 연속으로 ‘톱 3’ 연구 중심 병원에 들 정도로 질적인 성장을 거듭해 온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2만4000m² 규모의 의대 건물도 내년 7월 완공된다. 가천대는 의대뿐 아니라 인문대, 사회과학대, 공과대 등 모든 분야에서 커리큘럼과 신입생 성적 등이 질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기존 600실보다 큰 700실 규모의 기숙사를 짓고 세 번째 기숙사 건립을 추진하는 등 학생 복지에 집중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가천대 학생도 초중고교 시절부터 공부에 매달려 대학에 왔는데 취업이 어려우니 몸과 마음이 정말 지쳐 있다. 그래서 가천대는 학생 2만여 명 전원에게 가천대 길병원에서 무료로 종합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지도교수가 학생 5∼10명씩 졸업까지 책임지는 멘토링 시스템과 ‘인성 세미나’를 만든 것도 ‘인성을 겸한 지성인’을 키우자는 목표에 따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학생을 찾아내 학내에 파견된 정신과 전문의가 체계적인 상담을 해 주고 있다.” ―모든 국민이 그렇게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이 총장은 가천대 길병원 이사장이다). “사실 한국처럼 건강보험 제도가 잘 마련된 나라는 없다. 미국에선 의사가 종합검진 비용을 지불할 엄두를 못 내 건강을 방치하다가 뒤늦게 십이지장암을 발견해 고생하는 사례도 봤다. 고(故) 리콴유(李光燿) 전 싱가포르 총리가 영국 방문 중 뇌중풍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며칠 기다려야 한다’는 답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반면 한국은 일반인도 훨씬 적은 돈으로 더 높은 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의료계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할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의료기관의 역할인 것 같다. “1970년대에 낙후된 섬 지역에서 응급치료를 받지 못해 안타깝게 숨지는 환자를 수없이 봤다. ‘병원선(船)을 운영해서라도 살리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지만 당시엔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중 14년 전, 정부가 ‘권역응급의료기관’ 운영을 제의해 왔다. 경영 면에서는 손해였지만 숙원을 이룰 기회라고 생각해 받아들였다. 최초로 ‘닥터헬기’를 도입하고, 응급센터가 학대 아동과 자살 위험자까지 가려내 차별화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전담팀을 꾸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덕에 정부로부터 14년 연속 ‘최우수’ 응급센터라는 평가를 받았다. 길병원엔 ‘죽었다 살아난’, 즉 임사 체험을 했던 환자들의 축구 모임까지 있을 정도다.” ―교육계와 의료계의 원로로서 최근 청년층의 좌절 현상을 어떻게 보나. “청년들이 힘든 것, 노력해도 안 돼 좌절하는 것, 급기야 분노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참 안타깝다. 나도 사실 풍족하지는 않았던 중농 출신이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홀대를 받았으니 ‘흙수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네에서 굶어죽는 사람도 여럿 봤다. 사람이 오래 굶으면 몸이 붓다가 숨을 멈추더라. 우리 세대가 요즘 젊은이들보다 더 고생했다는 말은 아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청년 시절 고난을 겪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비슷하다는 말이다. 넘어져라. 실패해라. 그러고 바로 일어나야 한다. 난관은 앞으로 훨씬 더 많을 거다. 그래도 실망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과학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향후 20년은 종전의 20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를 위해서 실패를 거듭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바람이 강할수록 더 강하게 도는 바람개비처럼, 고난을 겪은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도 커진다. 답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사흘 밤낮 먹지도 자지도 않을 정도로 그 문제에 몰두해 보라. 그러면 답이 나온다.” 이 총장이 인터뷰용 사진 촬영을 마치고 잔디밭 위 돌길을 가로질러 가천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행비서에게 귀엣말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비서에게 무슨 얘기였는지 묻자 “요즘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어다니는 학생이 많은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으니 길을 재정비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이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를 호소하며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환자는 지난달 기준 3698명이다. 하지만 이 중 지원금을 받은 사람은 2013년 7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진행된 1, 2차 피해 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의 인과 관계를 인정받은 221명(6%) 정도다. 지원 항목도 수술비와 진료비 등에 한정돼 있으며 사망자 95명의 유가족에 대한 위자료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 등 시민단체는 2012년 3월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당번’으로 인해 피해를 본 환자 80명을 모아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지만 한국소비자원은 “보건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조정 절차를 개시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기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집단분쟁조정은 배상이 결정되면 조정을 신청한 당사자들뿐 아니라 같은 피해를 본 모든 소비자에게 확대 적용되는 선진국의 ‘대표 당사자 소송’과 비슷한 제도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2012년 소비자원이 이를 받아들였다면 지금쯤 인과 관계가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적절한 배상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긴 법정 싸움에 지쳐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악용해 가해 기업이 보상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막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옥시가 한국에서만 유해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고, 폴크스바겐이 미국과 달리 한국 정부엔 허술한 리콜 계획서를 내고 대응을 미루는 것도 국내 징벌적 손해배상 시스템이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것. 국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는 분야는 신용정보 누설이나 불법 하도급 등으로 제한돼 있고 배상액 상한도 피해 규모의 3배에 불과하다. 한편 국회는 6일 본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진상 규명과 피해 구제 등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를 채택했다. 국정조사 특위 활동 기간은 7일부터 10월 5일까지 90일이며 본회의 의결로 연장할 수 있다. 이번 조사는 △관련 업체의 책임 소재 및 피해 고의 은폐 의혹 규명 △정부 차원의 책임소재 규명 및 화학물질 관리 정책의 부실 점검 및 제도 개선 등이 목적이다. 조사 대상 기관은 국무조정실, 환경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정거래위원회, 국립환경과학원, 질병관리본부, 국가기술표준원,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등이다.조건희 becom@donga.com·유근형 기자}

《 정부도, 기업도 막을 수 있었다. 동아일보가 사건을 추적해 온 전문가들과 함께 가습기 살균제가 등장한 1994년부터 수거 명령이 내려진 2011년까지 정부와 화학기업이 남긴 관련 문건들을 분석한 결과 수백 명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적어도 6차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 과연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나. 20대 국회의 첫 국정조사가 7일 시작된다. 》 ○ SK케미칼 ‘죽음부른 독성물질’ 10년간 납품… 비극의 시작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 8월 수거되기 전까지 17년간 우리의 일상에 숨어 소중한 목숨을 야금야금 앗아갔다. 지난달까지 접수된 피해자가 3698명, 사망자가 698명이다. 이 과정에 관여한 업체와 정부 부처, 유관기관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살균제의 확산을 막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책임을 규명해야 할 업체 및 정부기관 5곳을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장, 송기호 변호사,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등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했다.① ‘살인 물질’ 10년간 납품한 SK케미칼 최악의 피해를 낸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다. 정부의 1, 2차 피해조사에서 사망자가 102명으로 집계됐다. 옥시가 2001년 제품의 주성분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으로 변경하면서 흡입 독성 시험을 생략한 게 사건 ‘원흉’으로 꼽힌다. PHMG를 사용한 제조사 3곳은 이번에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에 PHMG를 공급해온 SK케미칼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SK케미칼은 “PHMG에 흡입 독성이 있는 줄도, 해당 물질이 옥시에 납품되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SK케미칼이 2003년 PHMG를 SK글로벌(호주법인)로 수출하려 할 당시 호주 화학당국이 ‘분말 흡입 위험’을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조윤미 대표는 “SK케미칼이 어떤 경로로든 PHMG의 흡입 독성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납품해 온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② 첫 단추 잘못 끼운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당시 노동부)는 1996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SK케미칼(당시 유공)로부터 PHMG의 호흡기 과민성, 급성 독성 등을 조사한 ‘유해성·위험성 보고서’를 제출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고용부는 5일 “SK케미칼이 이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기록이 현재 남아 있지 않다”며 “애초에 받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당시 고용부가 PHMG의 흡입 독성 자료 제출을 강력히 요구했다면 옥시 등에 사용된 PHMG를 처음에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고용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크게 불거진 2011년 10월에야 PHMG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처음으로 작성했다.③ ‘에어로졸’인데 흡입 독성 평가 안 한 환경부 환경부는 2003년 한 업체가 고무·목재 보존제로 쓰겠다며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신청했을 때 피부와 경구 독성만 평가한 뒤 ‘유독물이 아니다’라고 고시했다. 주요 용도로 ‘스프레이, 에어로졸 제품 등에 첨가’가 명시돼 있었지만 흡입 독성은 시험하지 않았다. 6년 후 중소업체 버터플라이이펙트는 별다른 제약 없이 PGH를 원료로 ‘세퓨’를 출시했다. 세퓨는 다섯 번째로 많은 사망자(14명)를 낸 가습기 살균제다. 한 전문가는 “환경부나 국립환경과학원이 흡입 독성 자료를 요구했다면 그 14명은 지금도 숨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④ ‘자율안전확인’ 마크 달아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한 안전검사 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은 2007년 8월 코스트코의 ‘가습기클린업’에 ‘자율안전확인’ 마크를 달아줬다. 당시 연구원이 수행한 시험은 제품을 일정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내용물이 새지 않는지, 염산·황산 등 포함 여부였다. 가습기클린업의 주성분이었던 PHMG에 대한 검사는 없었다. 이처럼 산업부가 ‘안전’ 마크를 부여한 가습기 살균제 6종 중 2종 때문에 사망자 2명과 환자 16명이 발생했다. 황당하게 산업부는 폐 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지목돼 보건 당국이 역학조사를 진행하던 2011년 6∼8월에도 신규 가습기 살균제 2개에 ‘안전’ 마크를 추가로 부여했다.⑤ 현장 조사하고도 원인 못 밝힌 질병관리본부 질병관리본부는 2006년부터 의학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간질성 폐렴이 보고되자 2008년 4월 서울아산병원에서 환자 9명의 사례를 검사했다. 하지만 이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2011년 8월 2차 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의 원인물질로 추정된다고 결론 냈다. 2009∼2011년 3년간 발생한 환자는 2006∼2008년의 7배가 넘는다. 질병관리본부가 초기에 정밀한 역학조사 결과를 내놨다면 대규모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질병관리본부는 옥시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27명)를 낸 ‘가습기메이트’의 주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에 대해 제대로 된 추가 연구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는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안전성평가연구원에 PHMG, PGH뿐 아니라 CMIT, MIT의 흡입 독성 동물실험을 의뢰했다. 당시 연구진은 촉박한 실험 기간 탓에 CMIT, MIT에 대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이 같은 결과를 받아 들고 PHMG, PGH를 원료로 한 제품 6개만 수거하도록 한 뒤 CMIT, MIT에 대해선 추가 연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는 현재까지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한 SK케미칼 등의 방어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서울시가 청년활동수당(청년수당) 사업의 위탁 기관으로 사단법인 ‘마을’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사단법인 마을은 박원순 시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유창복 씨(55)가 설립을 주도, 첫 대표를 역임하고 올해 3월까지 이사직을 맡았던 곳이다.서울시 관계자는 4일 “청년수당 민간 위탁 기관 공모에 사단법인 마을 컨소시엄 등 두 곳이 응모했다”며 “이 중 마을 컨소시엄이 사업 운영에 적절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마을은 2012년 서울시가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만든 후 올해까지 5년째 ‘마을공동체종합 지원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마을공동체는 박 시장의 대표적 정책 중 하나다. 유 전 대표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 시장 캠프에서 정책자문단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말에는 서울시 ‘협치자문관’에 위촉됐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모든 이력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역량이 뛰어난 기관을 선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조만간 마을 컨소시엄과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마을 컨소시엄은 서울시 청년수당 사업 대상 3000명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청년수당 전체 예산 90억 원 중 위탁사업비는 10억 원이다. 서울시는 보건복지부의 ‘부동의(不同意)’ 입장에도 불구하고 4일 청년수당 대상자 모집을 시작했다. 복지부는 조만간 서울시에 청년수당 사업을 중단하라는 내용을 담은 시정명령을 발송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정명령에 불복하면 집행정지명령 절차를 진행하고, 이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 해당 자금 집행분만큼 내년도 교부세를 감액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황태호 taeho@donga.com·조건희 기자 [바로잡습니다]본보는 5일자 A14면에 ‘청년수당 위탁기관에 박원순 측근 업체 선정’이라는 제목으로 사단법인 마을의 대표가 유창복 씨이고, 지난해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사단법인 마을의 대표는 이상훈 씨이고, 사단법인 마을이 수행한 위탁사업에 대한 감사원 지적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