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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공개한 상업용 위성사진에 포착된 영변 핵시설 내 냉각수 배출 정황은 5MW 원자로 재가동을 보여주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7월 초부터 영변 원자로의 재가동 징후가 포착됐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난달 27일 연례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이기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한미 정보당국이 재가동의 유력한 정황으로 보고, 후속 동향을 추적 중”이라고 전했다. 북한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원자로를 다시 가동함에 따라 임기 말 남북 대화와 북-미 간 북핵 협상에 속도를 내려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기로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자로 가동 후 폐연료봉 재처리 가능성38노스는 “(인근) 구룡간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방출 수로를 통해 냉각수가 방출되는 모습이 위성사진에 보인다”고 했다. 북한이 냉각수 방출을 위해 새 통로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위성사진에는 원자로에서 구룡강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흘러나온 냉각수가 구룡강으로 이어지는 수로로 흘러가기 전 난류(亂流)를 형성한 장면이 보인다. 또 구룡강 남쪽으로 댐도 보인다. 38노스는 “이 댐 위에서 5MW 원자로와 실험용경수로용 저수지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몇 달간 지속돼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통상 발전용 원자로의 노심에는 핵연료(우라늄)를 채운 다량의 핵연료봉이 들어간다. 이후 핵분열(연쇄반응)을 통해 핵연료가 연소되면서 고열이 발생하는데 이를 식히는데 물이나 가스 등이 냉각재로 사용된다. 뜨거워진 냉각재를 다시 식히는 과정에 사용된 냉각수는 외부(바다, 강)로 배출된다. 이런 과정을 한치 오차없이 진행돼야 원자로를 안정적으로 가동할수 있다. 1986년부터 가동된 영변 원자로는 실험용 ‘흑연감속로’로 이산화탄소를 냉각재로 사용한다. 원자로 노심을 통과한 고온의 이산화탄소를 식히는데 사용된 냉각수는 인근 구룡강으로 배출되는 구조다. 38노스는 영변 핵시설의 냉각수 배출 정황이 포착된 것은 ‘2018년 봄(spring)’ 이후 처음이란 점에서 원자로 가동의 유력한 징후라고 지적했다. 원자로가 가동됐다면 폐연료봉(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수순도 기정사실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발전용이 아닌 영변 원자로의 가동목적은 핵물질(무기급 플루토늄) 생산뿐이기 때문이다. 연소가 끝난 폐연료봉을 꺼내어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로 옮겨 화학공정을 거치면 순도 90% 이상의 플루토늄을 추출할수 있다. 군 연구기관의 전문가는 “원자로 재가동이 맞다면 대미 협상용보다 핵 능력 증강 목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 일각에선 영변 원자로에서 일반 핵무기보다 5~10배의 폭발력을 갖는 증폭핵분열탄용 ‘트리티움(Tritium)’의 추출 가능성을 제기한다. 트리티움은 반감기가 12년에 불과해 주기적 증산이 필요한데 북한에선 영변 원자로가 유일한 생산시설로 지목된다. ● 靑 “대북 관여 시급 방증”이라 했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가 지속되는 상황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북 관여가 시급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보고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도록 대화와 외교에 대한 긴급한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미 당국은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고 ‘조건없는 대화’를 강조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대화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8개월밖에 않은 만큼 하반기에 대화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이후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 생산 프로그램의 첫 단계인 원자로 재가동을 시위하면서 셈범이 복잡해졌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대화를 강조하지만 도발에 보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정부는 2017년 북한이 도발을 이어가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최소한의 목표로 삼고 있겠지만 북한과 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북한이 지난달 초부터 영변의 5MW 원자로를 2년 반 만에 재가동하기 시작한 사실을 우리 정부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지난달 27일 1년여간 차단됐던 통신연락선을 복원했다. 정부 당국자는 30일 “미국과 공조를 통해 실시간으로 북한의 원자로 재가동 동향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정부는 긴밀한 한미 공조 아래 북한 핵·미사일 동향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통신선 복원 전부터 북핵 협상의 중요한 변수인 원자로 재가동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만 강조해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청와대 외교부 통일부 등 외교안보 부처는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위반인 원자로 재가동에 대해 우려나 유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7일 북핵 관련 보고서에서 원자로 재가동과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의 5개월 가동을 “심각한 문제”로 규정하고 “깊은 유감”을 표한 것과 상반된다. 이런 가운데 북핵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9일(현지 시간) 미국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이 긴요한 시점”이라며 “여러 분야에서 북한과 인도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패키지를 만들어 가기 위해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대북 지원 의지를 강조했다.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냉엄한 현실을 외면한 문재인 정권의 일방적인 대북 구애의 끝은 결국 돌고 돌아 또다시 ‘핵’이었다”면서 “대북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했다. 北, 바이든 향해 ‘영변 핵’ 시위… “美외교정책에 새로운 난제” 정부 “한미, 영변 재가동 이미 파악”북한이 지난달 초부터 영변 핵시설의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징후가 포착되면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2년 반 만에 ‘영변’이 북핵 협상의 핵으로 다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에 이른바 대북 적대시 정책 해제와 대북제재 완화 등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하노이 회담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마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시위를 시작한 것으로 봤다. 우리 정부는 원자로 재가동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위반임에도 우려나 유감 표시 없이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영변 핵 폐기와 대북제재 완화 교환을 기초로 하는 이른바 ‘스몰딜+α(플러스알파)’ 협상을 미국에 설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제안한 조 바이든 행정부도 일단 “대화의 시급성을 보여준다”며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모양새다.○ 정부 “영변 폐기-제재 완화부터 시작하자”영변 핵시설은 하노이 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내밀었던 회심의 카드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변의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 입회하에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할 테니 민생 관련 유엔 제재 5건을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뿐 아니라 북한의 핵시설 전체를 신고해야 한다고 맞서 협상이 결렬됐다. 리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은 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에서 “향후 비핵화 협상이 진전된다고 해도 첫 조치로 영변 폐기 이상은 내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9년 “영변은 북한 핵시설의 근간”이라며 “영변 핵시설 전부가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의미를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에 “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때 제기한 영변 폐기안에서부터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영변 핵시설의 폐기 의사를 밝힌 만큼 회담이 결렬된 지점에서 북-미가 다시 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 징후를 한미 공조를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하고도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하든 중요한 것은 북을 대화로 견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도발이 영변 폐기를 협상 시작의 모멘텀으로 삼으려는 정부 구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美 언론 “바이든에게 새로운 난제 될 것”북한이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은 ‘영변 카드’를 다시 꺼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적 노출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북제재 완화 등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해 핵물질 비축량을 늘리겠다는 위협이라는 것. 미국에 “하노이 때 놓친 영변 카드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노이 회담 때 북한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미국에 영변 핵시설 재가동의 책임이 있다는 시위”라고 했다. 또 “핵협상에서 상징성이 큰 영변을 다시 꺼내 북핵 협상을 자신들이 주도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5MW 원자로가 이미 협상 카드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북한은 영변 외에 평양 인근 강선을 비롯해 전역에 핵무기의 또 다른 원료인 우라늄 농축시설을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 외교관 출신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북한이 트럼프 시기에 퇴짜 맞은 영변 고물 핵시설을 들이밀며 미국에 단계적 비핵화 협상에 나서기를 종용하고 있다”면서 “영변보다는 (북한이 감추고 있는) 우라늄 고농축시설이 비핵화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30일 본보에 “(영변 핵시설 재가동은) 대화와 외교의 긴급한 필요성을 강조한다”면서 “(재가동) 활동 및 비핵화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북한과 대화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원자로 재가동이 “바이든 대통령 외교정책에 새로운 난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의 원자로 재가동에 대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국방백서 “北 영변 원자로서 플루토늄 50kg 생산” 1년 가동땐 플루토늄 4kg 추출… 나가사키급 핵폭탄 만들수 있어軍소식통 “北의 전쟁 억제력 언급… 영변 핵물질 비축 재개 의미 가능성”2018년 말 이후 멈춰 섰던 북한 영변 핵시설 내 5MW(메가와트) 원자로의 재가동 징후가 포착되면서 북한의 핵물질 생산량 등 위협 수위가 주목된다. 1986년부터 가동된 5MW 원자로는 100% 출력으로 운용하면 폐연료봉(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매년 8kg의 무기급 플루토늄(Pu)을 생산할수 있을 것으로 추정돼 왔다. 하지만 가동된 지 30여 년이 지난 원자로의 노후도를 감안할 때 1년 동안 생산 가능한 플루토늄 양은 4kg 수준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21kt(킬로톤·1kt은 TNT 1000t의 폭발력)급 플루토늄탄인 ‘팻맨’에는 약 6.2kg의 플루토늄이 사용됐다. 단순 계산으로는 5MW 원자로의 연간 플루토늄 생산량은 20kt급 핵폭탄 1발을 제작하기에도 충분치 않은 양이다. 하지만 북한이 30년간 축적한 핵기술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북한은 수백 차례의 고폭실험과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폭탄 제조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켰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폭발렌즈와 뇌관 수 증가, 코어(핵물질 위치부) 방식 개선 등 진보된 핵탄 설계기법을 적용하면 같은 양의 핵물질로도 폭발효율을 25% 이상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핵고도화 수준을 감안할 때 3, 4kg의 플루토늄으로 20kt급 핵폭탄을 충분히 제조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20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1986년 5MW 원자로 가동 후 재처리를 통해 50여 kg의 플루토늄을 생산했을 걸로 추정된다. 군 관계자는 “최근 북한 외무성이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며 최강의 ‘전쟁 억제력’을 비축해 나갈 것이라고 위협한 것이 원자로 재가동을 통한 핵물질 비축을 의미할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영변의 5MW 원자로는 원자폭탄보다 수십, 수백 배의 폭발력을 가진 증폭핵분열탄(수소폭탄)의 핵심 원료인 삼중수소의 생산 거점이라는 의심도 받아왔다. 리튬6을 채운 연료봉을 원자로에 넣고 대량의 중성자를 쬐여주면 삼중수소가 생산된다. 북한에서 이런 작업이 가능한 시설은 사실상 영변의 5MW 원자로뿐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사용한 수폭급 원폭도 5MW 원자로에서 생산한 삼중수소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산하 육군부는 지난해 7월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20∼60개의 핵무기를 보유 중이고 매년 6개를 추가 생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지난해에 이미 100개까지 늘렸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 정보당국도 영변 핵시설과 강선 등 북한 전역의 우라늄농축시설에서 연간 수백 kg의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이 100개 이상의 핵무기를 갖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7일 북핵 관련 보고서에서 “지난달 초부터 북한 영변 핵시설의 5MW(메가와트) 원자로에서 냉각수가 배출되는 등 원자로 가동과 일치하는(consistent with) 징후가 발생했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과거 5MW 원자로를 가동해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핵무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북한이 2018년 12월 이후 2년 반 만에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의 핵심인 5MW 원자로를 재가동하면서 북핵 문제가 다시 한반도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29일 입수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핵 관련 9월 연례 이사회 보고서는 “북한은 2018년 12월 초부터 올해 7월 초까지 5MW 원자로 가동 징후가 없었다”며 이같이 적시했다. 27일 IAEA 이사회에 제출된 이번 보고서는 위성사진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의 상황을 담았다. IAEA는 북한과 이란 등의 핵개발 상황을 감시·사찰하는 국제기구다. IAEA가 올해 5MW 원자로 재가동 징후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보고서는 또 “영변의 방사화학실험실에 증기를 공급하는 화력발전소가 올해 2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5개월가량 가동됐다”며 “이는 이전의 폐기물 처리나 유지보수 활동보다 상당히 긴 기간”이라고 명시했다. 특히 “5개월이라는 가동 기간은 북한이 과거 밝힌,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하기 위한 기간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방사화학실험실은 5MW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시설이다. 북한이 올해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보고서는 평양 인근의 강선에서도 내부 건설 작업이 이어지는 등 움직임이 계속 포착되고 있다고 밝혔다. 강선은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 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IAEA는 보고서에서 5MW 원자로 재가동과 방사화학실험실의 5개월 가동이 “새로운 징후(new indications)”라며 “심각한 문제(deeply troubling)”로 규정했다.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매우 유감스럽다(deeply regrettable)”고 비판했다.北, 영변 핵능력 건재 과시… ‘對美 핵협상 카드’ 재활용 나선듯北, 영변 핵시설 재가동북한이 2년 반 만에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은 대화 재개를 요구하는 미국에 핵무기 생산 능력과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7일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최근 5개월간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이 지속적으로 가동된 점에 주목했다. 5개월은 북한이 과거 5MW 원자로에서 꺼낸 폐연료봉 전체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데 걸린다고 밝힌 시간이다. 북한이 올해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상황을 감시해온 IAEA가 5MW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을 “새로운 징후(new indications)”라며 “심각한 문제”로 명시한 것은 그만큼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IAEA, 플루토늄 추출시설 ‘5개월’ 가동 주목 평안북도 영변의 5MW 원자로는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 북한의 핵심 핵시설이다. 원자로에서 꺼낸 폐연료봉을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5MW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은 영변 핵시설 가운데 핵무기에 탑재하는 플루토늄 생산의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은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거나 이를 외부에 과시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2007년 북핵 6자회담 합의에 따라 5MW 원자로 불능화를 약속하고 2008년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한 바 있다. 이후 핵시설 신고와 검증을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하다가 ‘불능화 중단’을 선언한 뒤 2018년까지 가동과 중단을 반복했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인 12월부터 가동을 중단하다가 올해 7월 초 돌연 가동을 재개한 징후를 IAEA가 포착한 것이다. IAEA 보고서는 특히 방사화학실험실이 2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약 5개월간 가동된 사실을 파악했다. 보고서는 “북한은 1992년 IAEA에 5MW 원자로에서 나오는 전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데 5개월이 걸린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은 2003, 2005, 2009년에 각각 약 5개월 동안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를 실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 기간 동안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2016년 4월에도 방사화학실험실 가동이 포착된 뒤 5개월 만에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했다. 보고서는 평양 인근의 강선과 실험용 경수로 내부에서도 건설 작업 등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北, 美에 ‘영변 카드’ 다시 내미나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을 재가동한 것은 북-미 대화 재개를 요구해온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6월 방한한 성 김 대북특별대표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냈다. 하지만 북한은 뚜렷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지난달 초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이다.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 가동을 재개한 2월 중순은 바이든 행정부가 뉴욕채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에 “조건 없이 마주 앉자”는 의사를 전달한 때다. 북한은 이때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대화 제의에 응하는 대신에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핵능력은 더 발전한다. 빨리 협상을 재개할 조건을 가져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영변’을 다시 북핵 협상 카드로 내미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직접 나서 “미국이 제재를 일부 해제하면 영변지구의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 입회하에 영구 폐기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회담은 결렬됐다. 정부의 북핵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9일부터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과 대응 방침을 논의한다. 영변 원자로에 플루토늄 추출 시설… ‘북핵 심장부’북 핵개발 단지 영변은…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와도 같은 곳이다. 과거 북한 핵위기 때마다 핵물질의 생산 거점이자 최우선 비핵화 대상으로 북-미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조성된 영변 핵시설은 여의도 면적의 약 3배(약 891만 m²) 규모의 부지에 1963년 도입한 소련제 연구용 원자로(IRT-2000) 등 400여 개의 부속 건물로 이뤄져 있다. 가장 핵심 시설인 5MW 원자로는 영국의 콜더홀 흑연감속로를 모델로 1979년 착공해 1986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이 원자로에서 우라늄을 연소시킨 뒤 나온 폐연료봉(사용 후 핵연료)을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에서 재처리하면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은 2002년 이후 최소 네 차례 이상 재처리를 통해 확보한 플루토늄 일부를 핵실험용 폭탄 제조에 사용했고, 현재 50여 kg을 보관 중인 것으로 한미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미 정찰위성은 5MW 원자로의 열기와 증기 방출 여부 등을 추적 감시하면서 재가동 징후를 파악해 왔다. 방사화학실험실은 길이 190m, 폭 20m의 6층 건물로 폐연료봉에 든 핵물질을 화학적으로 추출하는 퓨렉스(PUREX) 공정을 갖추고 있다. 영변 핵시설에는 2차 북핵 위기를 촉발시킨 우라늄 농축시설도 있다. 북한은 2010년 미국의 핵물리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이 시설을 서방세계에 처음 공개했다. 당시 헤커 박사는 “영변에 설치된 2000개의 원심분리기에서 연간 40kg 정도의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에 이 시설의 규모를 두 배가량 확장하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폭우로 영변 핵시설 인근의 구룡강이 범람해 핵시설의 냉각수 공급을 위한 펌프시설 등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정황이 포착된 바 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애비게이트 바로 앞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 기획자(planner)와 조력자(facilitator) 각 1명을 27일(현지 시간) 밤 드론(무인기) 공격으로 제거했다고 28일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공격에 사용된 MQ-9 리퍼 드론은 아랍에미리트(UAE) 미군기지에서 이륙한 뒤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주 주도 잘랄라바드의 외딴 지역까지 날아가 2명이 타고 있던 차량을 타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입수한 폭격지 영상을 보면 이번 드론 공습은 주택 한 채에 매우 제한된 손상을 남긴 정밀 타격으로 보인다. 공격이 이뤄진 뒤 영상에는 집 마당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옆에 릭샤(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이동 수단으로 이용하는 삼륜차)처럼 생긴 차량 한 대가 까맣게 그을려 있다. 집 벽면에는 파편이 튀어 구멍이 파인 게 보이고 건물 창문은 떨어져 나가 있다. WSJ에 따르면 이번 공습에는 특수 헬파이어 미사일 R9X가 사용됐다. 미사일은 폭발하는 대신 내장된 칼날 6개가 나오면서 타깃을 공격한다. 타깃을 핀포인트하는 공격으로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됐다. WSJ는 군에서는 이 미사일을 ‘닌자 미사일’ 또는 ‘나는(flying) 긴수(Ginsu·1970년대 많이 팔린 미국 식칼 브랜드)’라 부른다고 전했다. 이 미사일은 자동차, 빌딩 등 타깃 위에 꽂히도록 설계돼 인근 건물이나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한다. 미 정부는 2019년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이 미사일의 존재를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 무기로 2017년 1월 시리아에서 알카에다 2인자 아부 카이르 알 마스리, 지난해에는 이라크 공항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사살했다. 리퍼가 ‘하늘의 암살자’, ‘헌터 킬러(Hunter killer)’로 불리는 것도 이처럼 가공할 무기로 적국 수뇌부나 테러조직의 지휘부를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 작전’의 핵심 전력인 셈이다. 미국이 90여 대를 운용 중인 리퍼의 작전 수행에는 최첨단 군사기술이 총동원된다. 첩보위성이 수집한 표적의 위치나 이동 정보가 위성을 통해 네바다주 크리치 공군기지 등 미 본토의 지상 드론작전통제실에 전달되면 드론 조종사들이 위성망으로 수천 km나 1만 km 이상 떨어진 리퍼를 원격 조종하게 된다. 드론 조종사들은 리퍼 동체의 앞부분 하단에 장착된 공 모양의 최첨단 감시장비로 표적을 정밀 추적하다 사살 명령이 떨어지면 기체 날개에 탑재된 헬파이어 공대지미사일이나 레이저유도폭탄을 쏴 제거하게 된다. 테러 지휘부 등은 자신이 표적이 됐는지, 어디서 미사일이 날아오는지도 모른 채 기습을 당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에는 ‘경량급 리퍼’로 불리는 그레이이글(MQ-1C) 10여 대가 2019년부터 전북 군산기지에 배치돼 운용 중이다. 덩치와 무장이 리퍼보다 작은 그레이이글은 헬파이어와 바이퍼 스트라이크(GBU-44/B) 정밀유도폭탄을 장착하고 최대 30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다. 한반도 전역을 연속 비행하며 고화질 감시는 물론이고 유사시 아파치 공격헬기와 유무인 합동작전으로 북한 기계화부대 및 공기부양정 제거 임무도 수행한다. 군 소식통은 “리퍼처럼 적 지휘부 제거 작전도 가능해 북한엔 요주의 대상”이라고 전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와도 같은 곳이다. 과거 북한 핵위기 때마다 핵물질의 생산 거점이자 최우선 비핵화 대상으로 북-미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조성된 영변 핵시설은 여의도 면적의 약 3배(약 891만 m²) 규모의 부지에 1963년 도입한 소련제 연구용 원자로(IRT-2000) 등 400여 개의 부속 건물로 이뤄져 있다. 가장 핵심 시설인 5MW 원자로는 영국의 콜더홀 흑연감속로를 모델로 1979년 착공해 1986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이 원자로에서 우라늄을 연소시킨 뒤 나온 폐연료봉(사용 후 핵연료)을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에서 재처리하면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은 2002년 이후 최소 네 차례 이상 재처리를 통해 확보한 플루토늄 일부를 핵실험용 폭탄 제조에 사용했고, 현재 50여 kg을 보관 중인 것으로 한미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미 정찰위성은 5MW 원자로의 열기와 증기 방출 여부 등을 추적 감시하면서 재가동 징후를 파악해 왔다. 방사화학실험실은 길이 190m, 폭 20m의 6층 건물로 폐연료봉에 든 핵물질을 화학적으로 추출하는 퓨렉스(PUREX) 공정을 갖추고 있다. 영변 핵시설에는 2차 북핵 위기를 촉발시킨 우라늄 농축시설도 있다. 북한은 2010년 미국의 핵물리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이 시설을 서방세계에 처음 공개했다. 당시 헤커 박사는 “영변에 설치된 2000개의 원심분리기에서 연간 40kg 정도의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에 이 시설의 규모를 두 배가량 확장하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폭우로 영변 핵시설 인근의 구룡강이 범람해 핵시설의 냉각수 공급을 위한 펌프시설 등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정황이 포착된 바 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북한이 최근 종료된 한미 연합훈련을 맹비난하면서 선제 타격 등 최강의 ‘전쟁 억제력’을 비축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미 훈련 사전 연습일 시작일인 10일과 11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잇따라 비난 담화를 내놓은 뒤 26일 훈련이 끝날 때까지 잠잠하던 북한 당국이 다시 전면에 나서 비난을 내놓은 것. 이 때문에 고강도 도발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 외무성은 29일 ‘실제적인 억제력만이 평화와 안전보장의 유일한 무기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미국과 남조선(한국)의 이번 침략전쟁연습을 통해 우리는 외부적 위협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제거할 수 있는 국가 방위력과 선제 타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했다”고 밝혔다. 미국을 향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장본인이며 미국의 침략적 본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인식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우리는 날로 가증되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제압하고 영원히 전쟁이 없는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안아오기 위해, 불법무도하게 날뛰는 적대세력들에 강대강으로 맞서면서 최강의 전쟁 억제력을 부단히 비축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한미는 10∼13일 사전연습을 거쳐 16∼26일 하반기 연합훈련을 실기동 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진행했다. 북한의 반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참가 인원도 올 상반기 훈련보다 대폭 축소했다. 북한은 10일 한미 훈련을 비난하면서 413일 만에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을 다시 차단했다. 김여정은 “더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고, 다음 날 김영철은 “엄청난 안보위기를 시시각각 느끼게 해줄 것”이라며 위협 수위를 높였다. 다만 이후 훈련 기간에는 선전 매체를 통한 비난을 이어갔지만 도발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한미 정보당국은 향후 기습 도발 및 무력시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9월 9일 정권수립일을 기해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와 같은 고강도 도발을 강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지금 군은 ‘성폭력과의 전쟁’ 중이다. 석 달 사이 공군과 해군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한 여군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후폭풍도 거셌다. 성추행 뒤 81일 동안 고통을 호소해 온 공군 이모 중사가 5월 말 숨진 채 발견되자, 13일 만에 공군참모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으로 세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한 서욱 국방부 장관은 12일 사망한 해군 A 중사 사건으로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잇단 군 내 성폭력 사건을 “병영 폐습”이라 규정하고 네 차례에 걸쳐 철저한 수사와 병영 문화 개선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군을 뒤흔드는 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24일엔 육군 B 하사가 지난해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피해자의 언니는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문제가 개선되는 집단이라면 살아 있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나름의 자정 노력에도 땅에 떨어진 군에 대한 신뢰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계 실패 등 군 특수성에 기반한 사건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성폭력 사건의 후폭풍이 장기화되면서 지휘관들도 부대 지휘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 예하 부대 대대장은 “온 신경이 성 군기 관련한 조치에 쏠려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군 내부에서조차 후진적인 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과 성폭력 사건 처리,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을(乙) 중에 을 ‘女부사관’공교롭게도 공군과 해군에서 잇따라 발생한 성폭력 사망 사건 피해자는 모두 여군 중사였다. 이 중사와 A 중사 모두 성추행을 당한 직후 이를 상관에게 알렸지만 두 달여간 부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군 관계자는 “군의 성범죄 근절 대책은 ‘을 중에 을’인 여성 부사관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올해 기준 부사관은 약 17만 명인 전체 군 간부의 65.2%를 차지한다. 이 중 여성 부사관은 6.8%에 불과하다. 9.9%인 여성 장교보다도 비중이 작다. 하지만 지난해 군에서 발생한 771건의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하사와 중사가 58.6%로 가장 많았다. 대부분 5년 차 미만 초급 간부였다. 비중 자체가 작아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데다 남성 중심적 위계질서의 가장 말단에 위치해 있다 보니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16년 군 인사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여성 부사관의 기본 복무 기간은 3년으로 남성(4년)에 비해 1년이 적었다. 장기복무 심사 전 복무가 가능한 최소한의 기간조차 당국의 무관심으로 차별이 방치됐던 셈이다. 통상 부사관은 장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근무지 순환 주기가 길다. 한 곳에 더 오래 근무한다는 뜻이다. 특히 레이더 관련 임무를 수행했던 이 중사와 A 중사처럼 전문성을 요하는 보직일수록 조직 내 인력 순환은 더욱 폐쇄적이다. 출신별 지휘 관계와 친분을 앞세워 조직 보호를 명분으로 쉬쉬하고 방관하는 문화가 뿌리내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또 부사관에게 근무평정은 진급을 좌우하는 절대적 지표가 된다고 한다. 평가 권한을 쥔 부서장, 부대장의 부대 관리와 진급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침묵하기 쉬운 환경인 셈. 올해 말 진급심사를 앞두고 있던 11년 차 베테랑 A 중사는 성추행을 당한 뒤에도 가해자와 같은 사무실을 쓰며 74일 동안이나 정식으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해군의 한 여군 상사는 “피해를 신고해 봐야 진급에서 불이익과 부대 내 따돌림을 당할 텐데 ‘그냥 운이 나빴다’면서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이제야 주목받는 ‘2차 가해’, 기준 몰라 혼란이 중사와 A 중사는 성추행을 당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두 달여간 2차 피해로 인한 고통을 주변에 호소했다. 육군 B 하사에게 회유 등 2차 가해를 한 의혹을 받고 있는 간부 3명도 최근 기소 의견으로 군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원인으로 떠오른 2차 가해는 군 내 뿌리내린 온정, 보신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대체 인원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적당히 사과받고 넘어가야 한다는 안이한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한 예비역 여군 소령은 “‘성실한 친구인데 술 때문에 실수한 것’이라고 용인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2차 가해의 단초”라고 했다. 또 “가해자의 딱한 처지를 강조하는 지휘관도 있었다. 이렇게 쉬쉬하면서 수개월이 지나면 피해자는 신원이 알려지는 등 2차 가해에 노출됐다”고도 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부사관 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 여성 부사관의 74.3%는 인권침해 피해를 겪고도 ‘그냥 참고 지나갔다’고 답했다. 이유는 ‘부대가 시끄러워지거나’(28.1%) ‘진급, 인사평정 불이익이 우려돼서’(21.6%)였다. ‘즉각 시정요구’를 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없었다. 2차 가해가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행위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떤 행위를 2차 가해로 볼 것인가를 두고 부대원들의 혼란도 빚어지는 상황이다. 실제 A 중사의 부대장은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피해 사실을 언급한 혐의로 입건됐다. 앞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공군 이 중사의 전출 부대 대대장은 주간회의에서 “새로 오는 피해자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전입을 오니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 부대원들의 성 군기를 다잡아야 할 지휘관마저 후진적인 성인지 감수성으로 문제가 된 것이다.○ 일상 속 세심한 배려 정책화돼야이런 가운데 성폭력 등 비(非)군사범죄를 수사와 기소 단계는 물론이고 1심부터 민간에 이관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성범죄 사건 처리 과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엄정한 조치가 이뤄지는 선례를 구성원들이 직접 보면서 군 내 경각심을 심어줄 거란 기대가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남성 중심적인 부대문화나 피해자가 ‘내부 고발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 등이 바뀌지 않으면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독립성과 성범죄 신고 독려를 위해 2014년부터 도입된 성고충상담관 제도도 기대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이 많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면담이 일종의 ‘낙인’이 되는 폐쇄적인 분위기로 인해 상담관들이 피해자와의 신뢰 형성 및 비밀 보장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지휘관이 본인에게 상담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품는 등 부대 내 부정적 시선도 견뎌야 했다. 게다가 군 내 성고충상담관은 지난해 47명에 불과했다. 미군의 성폭력예방대응국(SAPRO) 제도를 참고해 인력과 독립성을 강화한 ‘성폭력 전담 조직’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군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일상 속 여군이 성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세심한 배려를 정책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지휘관이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주도할 성인지 감수성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예비역 여군 중령은 “현재 각 군에선 연간 한두 차례 지휘관들의 성인지력을 부대원들이 평가하고 이를 개별 통보하는데, 이 평가 빈도를 늘리거나 지휘관의 인사평점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美 “성범죄는 아군에 대한 아군의 공격”… 2차피해 없게 비밀 보장한채 사건 처리국방부내 ‘사프로’ 총괄기구 운영… 담당관 900명-피해자옹호관 1만명지휘체계 안 거치고 증거확보-상담… 신고때 인사 불이익 등 걱정 없어“아군(我軍)에 대한 아군의 공격이다. 해결해야만 한다.” 마크 밀리 미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5월 펜타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군 성범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군 성범죄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군에서도 직면한 문제다. 당시 밀리 의장은 군 내 성범죄 사건의 기소 권한을 떼어내는 데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2월 조 바이든 대통령 지시로 설립된 ‘독립검토위원회(IRC)’가 성범죄 기소 권한을 지휘관에서 분리하는 권고안을 제시하자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 한국의 민관군 합동위원회와 기능이 유사한 IRC 위원들은 조사 기간 90일 동안 600여 명의 군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지난달 82개의 권고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성범죄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 보호 및 대응 시스템은 2005년부터 국방부 산하에 성폭력 대응 총괄기구를 따로 둔 미군의 ‘사프로(SAPRO·Sexual Assault Prevention and Response Office)’ 제도가 참고 대상으로 꼽힌다. 현재 미군은 해외 파병을 포함한 모든 주둔지에서 연중무휴로 성폭력 신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성폭력대응담당관은 900여 명, 피해자옹호관은 1만10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 우리 군의 민간인 성고충상담관은 47명, 양성평등담당관은 120명이었다. 사프로 제도의 핵심은 피해자가 비밀을 보장받은 채 사건 처리 및 후속 조치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가 성추행 신고 직후 부대에 신고 사실이 알려져 생전에 2차 피해를 당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또 ‘제한적 신고’를 한 경우 사건이 군 지휘 체계를 거치지 않고 군 내 사건 수사도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피해자가 의료 서비스 및 법의학적 증거 확보, 상담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상담 내용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 지휘 계통에 공개되지 않으며 지휘관에겐 성폭력 발생 장소와 날짜, 피해자 성별만 보고된다. 피해자가 가장 염려하는 인사상 불이익 등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셈이다. 사건 신고 1년 뒤 피해자에게 ‘비제한적 신고’로 전환할지를 확인하는데, 만약 피해자가 계속해서 제한적 신고를 원할 경우 피해 기록은 5년 보존 뒤 파기된다. 비제한적 신고를 선택하더라도 사건 세부 내용은 합법적으로 알 권리를 지닌 소수 인원에게만 공개된다. 지난해 발생한 7816건의 미군 성범죄 사건 중 비제한적 신고는 5640건으로 제한적 신고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20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프로 제도의 도입을 촉구하며 “2차 가해가 일어나면 도저히 그 조직에서 살 수 없다. 인생에 꿈이 없어져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군 내 성폭력 문제를 ‘적폐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던 문재인 정부도 2018년 군 적폐청산위원회에서 사프로 제도를 참고한 민간인 참여 독립기구 신설 등 권고안을 냈지만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병영문화 개선을 목표로 출범한 민관군 합동위원회에서 이런 안이 개진될 수 있도록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합동위 활동이 공식 종료되는 다음 달까지 독립기구 설치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아프간인 391명 오늘 입국… 영주권 부여 검토 우리 정부의 현지 재건 활동에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인 조력자와 그 가족 391명이 26일 군 수송기를 타고 파키스탄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다. 우리나라가 인도적 이유로 제3국 국민을 대규모로 수송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5일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아프간 현지인 직원과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등 가족들이 내일 중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송 인원 중에는 5세 미만 영유아가 100여 명이고 8월에 태어난 갓난아기도 3명 포함됐다. 최 차관은 “이들은 난민이 아니라 한국 정부에 협력한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에 도착하면 충북 진천에 있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격리 2주를 포함해 약 6주간 머물 예정이다. 일단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한 뒤 장기 체류 비자로 변경된다. 정부는 개별 면담을 거쳐 영주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탈레반 봉쇄-격추 위험 뚫고… 영유아 100명 포함 전원구출 ‘미라클’정부, 8월초부터 대상 인원 추려… 카불 공항길 탈레반에 막힌 상황美, 탈레반과 민간인 이송 협의… ‘조력자들 버스로 공항 이동’ 허용미사일 회피 장치 갖춘 수송기 2대… 파키스탄-아프간 왕복하며 작전 ‘작전명 미라클(기적).’ 한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 조력자 구출 작전은 24, 25일(현지 시간) 작전명처럼 극도의 긴박감 속에 진행됐다. 아프간인들에게는 목숨을 건 선택이었고, 우리 정부로서는 왕복 2만 km를 비행해 적진에서 민간인을 구출하는 사상 초유의 시도였다. ○ 버스 타고 극적인 카불 공항행 당초 우리 정부는 427명을 수송하려 했다. 36명이 막판에 현지에 남거나 제3국 이송을 원하는 등 한국행을 포기해 391명만 한국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사실상 한국행을 원하는 아프간 조력자의 100%를 데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외국 정부 협력자들을 색출하고 있는 탈레반을 피해 카불 공항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미국이 탈레반과 협의해 안전을 보장해줬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전했다. 앞서 독일,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은 자국에 협력한 아프간인을 탈출시키는 데 실패했다. 아프간인들이 탈레반 검문을 뚫고 자력으로 공항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낙담을 넘어 황망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이 22일 탈레반과 협의해 외국 정부 조력자를 카불 공항까지 버스로 이송하도록 허용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수송을 위해 카불에 가 있던 우리 공관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23일 버스 6대를 발 빠르게 확보했다. 아프간인들에게는 “24일 정해진 시간까지 집결지로 오라”고 긴급 공지했다. 하루 만에 가족을 데리고 나온 아프간인들을 태운 버스는 25일 새벽에야 공항에 진입할 수 있었다. 미군과 탈레반이 함께 지키는 검문소를 여러 번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송기에 분유와 젖병 실어 수송 계획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슈퍼허큘리스(C-130J) 수송기 2대와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KC-330) 1대 등 3대에 탑승한 공군 요원들이 23일 극비리에 중간 기착지인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영유아를 위한 분유와 젖병, 수송기 바닥에 깔 매트리스를 충분히 실었다. 수송기들이 아프간 영공에 진입할 때는 탈레반 등 이슬람 무장세력의 지대공미사일 공격이 우려됐다. 군은 미사일 경고시스템과 회피 장비(플레어)를 갖춘 C-130J를 24일 카불 공항으로 보냈다. 카불 공항 인근 상공에 들어선 C-130J는 급강하와 급상승, 좌우 90도에 가까운 선회비행 등 지대공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각종 전술기동을 거쳐 활주로에 착륙했다고 군 소식통은 전했다. 이후 C-130J 2대는 번갈아 카불과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왕복하면서 아프간인 391명 전원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 정부는 아프간인을 난민으로 보고 국내 수용에 부정적인 일각의 여론을 고려한 듯 이들 대다수가 한국에 협력한 의사, 정보기술(IT) 전문가, 통역사 등 전문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7, 8년간 우리 정부와 일했던 사람들이고 (한국으로) 수송 전 관계기관 전문가가 다시 한 번 신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공덕수 전 아프간 바그람 직업훈련원 원장은 “바그람 미군기지에 있던 한국 병원과 직업훈련원 건물이 탈레반에 의해 폭파됐다. 조력자를 그대로 두면 처형될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우리를 도운 아프간인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우리 정부의 현지 재건 활동에 협력했던 아프간인 조력자와 그 가족 391명이 26일 군 수송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우리나라가 인도적 이유로 제3국 국민을 대규모로 수송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5일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아프간 현지인 직원과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등 가족들이 내일 중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송 인원 중에는 5세 미만 영유아가 100여 명이고 8월에 태어난 갓난아기도 3명 포함됐다. 최 차관은 “이들은 난민이 아니라 한국 정부에 협력한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에 도착하면 충북 진천에 있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격리 2주를 포함해 약 6주간 머물 예정이다. 일단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한 뒤 장기 체류 비자로 변경된다. 정부는 개별 면담을 거쳐 영주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작전명 미라클(기적)’ 한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간 조력자 구출 작전은 24, 25일(현지 시간) 작전명처럼 극도의 긴박감 속에 진행됐다. 아프간인들에게는 목숨을 건 선택이었고, 우리 정부로서는 왕복 2만 km를 비행해 적진에서 민간인을 구출하는 사상 초유의 시도였다. ● 버스 타고 극적인 카불 공항행 당초 우리 정부는 427명을 수송하려 했다. 36명이 막판에 현지에 남거나 제3국 이송을 원하는 등 한국행을 포기해 391명만 한국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사실상 한국행을 원하는 아프간 조력자의 100%를 데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외국 정부 협력자들을 색출하고 있는 탈레반을 피해 카불 공항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미국이 탈레반과 협의해 안전을 보장해줬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전했다. 앞서 자국에 협력한 아프간인을 탈출시키려던 독일은 수송기에 10명도 태우지 못했고, 벨기에는 한 명도 태우지 못했다. 현지인들 조력자들이 탈레반 검문을 뚫고 자력으로 공항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는 20여 개국 외교차관 회의에서 미국으로부터 이런 상황을 공유받은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낙담을 넘어 황당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20일까지만 해도 정부는 “공항에 도착하는 인원이 10명이건 50명이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22일 탈레반과 직접 협의를 해 한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간인들에 한해 카불 공항까지 버스로 이송하도록 허용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아프간인들은 미국이 거래하는 회사의 버스 6대에 나눠 타고 미군과 탈레반이 함께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했다. ● 군사작전 방불케 한 수송작전수송 계획은 군사작전을 방불케했다. 슈퍼허큘리스(C-130J) 수송기 2대와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KC-330) 1대 등 3대에 탑승한 공군 요원들이 23일 극비리에 중간 기착지인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수송기들이 아프간 영공 진입할 때는 탈레반 등 이슬람 무장세력의 지대공미사일 공격이 최대 위협으로 떠올랐다. 군은 미사일 경고시스템과 회피 장비(플레어)를 갖춘 C-130J를 24일 카불 공항으로 보냈다. 카불 공항 인근 상공에 들어선 C-130J는 급강하와 급상승, 좌우 90도에 가까운 선회비행 등 지대공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각종 전술기동을 거쳐 활주로에 착륙했다고 군 소식통은 전했다. 이후 공항에 대기 중이던 아프간인 26명을 1차로 태우고 이슬라마바드로 무사히 이동했다. 이후로도 C-130J 2대가 번갈아 카불과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왕복하면서 아프간인 391명 전원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 정부는 아프간인을 난민으로 보고 국내 수용에 부정적인 일각의 여론을 고려한 듯 이들이 대다수가 한국에 협력한 의사, 정보통신(IT) 전문가, 통역사 등 전문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 입국하는 아프간인들의 신원은 확실하다고도 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7~8년간 우리 정부와 일했던 사람들이고 채용할 때부터 신원조회를 확실히 했다. (한국으로) 수송 전 관계기관 전문가가 다시 한 번 신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우리를 도운 아프간인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이모 중사에 대한 2차 가해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노모 준위가 25일 법정에서 군 검찰이 짜깁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 준위는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2차 기일에 출석해 “(피해자 측이) 고소를 한 이후 수사도 받지 않고 현행범 체포되듯 지금까지 구속 수감돼 있다”며 “고소장 적시 내용이 명확치도 않고, 사실이 아닌데 무슨 이유로 초기에 구속된 것이냐”고 군 검찰을 비판했다. 이어 “유족 측 고소장과 군 검찰 공소장에 기재된 혐의 내용도 달라졌다”며 “(군 검찰이) 증거내용을 짜깁기하듯 해서 기소를 제기하려고 공소장을 작성한 것 아니냐”고도 했다. 노 준위기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은 국방부가 6월 1일 사건을 이관 받아 수사에 착수한 이후 처음이다. 그는 재판부가 일부 증거자료 조사를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하면서 방청하던 취재진 등이 퇴장하려고 하자 “기자분들 계시죠. 제가 지난번 (공판에) 출석을 안 해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노 준위측 변호인은 이날 노 준위에게 적용된 군인 등 강제추행 및 특가법상 보복협박, 면담강요 등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또한 피의자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 달라며 보석 허가를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군 검찰은 “증거조사에서 봤듯이 (노 준위의 주장과) 배치되는 많은 증언이 있었고, 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의 판단을 통해 구속된 상태”라며 “피고인은 구속 이후에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반박했다. 방청석에 있던 이 중사 유족 측 변호인도 “(노 준위가) 사건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데 대해 유감”이라며 보석불허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노 준위는 숨진 이 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이튿날인 3월 3일 강제추행 보고를 받은 뒤 정식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회유·협박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회식 도중 이 중사의 어깨를 감싸 안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육군 여성 부사관 A하사가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B중사의 여동생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억울하다는 취지의 반박 청원을 올렸다. 자신을 B중사의 여동생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오빠의 억울함을 들어주세요’ 제목의 청원글에서 “(피해자 측이 주장하는) 성폭력은 절대 있지 않았다”며 “하사가 먼저 여군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면서 눈물을 보이길래 (오빠가) 위로 차원에서 팔뚝을 두들겨 주었고, 이후 그녀는 연신 감사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관한) 4월 이후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성이 7월에 따로 불러 차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이해가지 않으며 이외에도 현재 주장과 맞지 않는 행동들이 많다”고 주장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갓 임관한 육군 여군 부사관이 부대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이 24일 뒤늦게 드러났다. 공군, 해군에 이어 육군에서도 군의 부실한 피해자 보호 시스템, 부대 내 2차 가해 등 군 내 성폭력 사건에서 드러난 고질적 병폐가 또다시 반복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육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의 성추행 신고 뒤에도 즉각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피해자의 형사고소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피해자 측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문제가 개선되는 집단이라면 살아있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관련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지만 “특별한 지시사항이나 말씀이 있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번에도 부대 내 전방위적 2차 가해이날 육군 등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임관한 A 하사는 부대 전입 직후 직속상관인 B 중사로부터 ‘교제하자’는 제의를 받고 거절한 뒤 5월부터 석 달간 성추행 등 피해를 당했다. 피해자의 언니 C 씨는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가해자는 상사라는 점을 이용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이어 평소 수위 높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았고 집요한 스토킹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에 A 하사는 지난해 8월 4일 선임의 도움으로 피해 사실을 부대에 신고했고, B 중사는 약 한 달 뒤 형사처벌 없이 해임 처분을 받고 전역했다. C 씨는 “사건 조사 과정에서 신고를 막으려는 회유 및 합의 종용이 있었고 적절한 분리 조치도 되지 않았다”며 부대 내 2차 가해가 이어졌다고 폭로했다. 한 간부는 “부대 분위기를 흐리지 말고 떠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또 부대 간부교육에서 피해자의 실명이 언급돼 ‘공식적인 성폭력 피해자이자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히거나 부대 내에 피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소문까지 퍼졌다고 한다. 육군은 “신고 다음 날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각 분리시켰다”고 했다. 이후 A 하사는 지난해 11월 부대를 옮겼다. C 씨는 “동생은 살기 위해 부대를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출 간 부대에서도 A 하사가 각종 소문으로 배척당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C 씨 주장이다. 그러면서 “건강했던 동생은 스트레스로 1년이 넘도록 고통 속에 있고 현재 수차례 극단적 선택 시도 끝에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호소했다.○ 수사 안 한 軍, 민간에선 기소성추행 사건에 대한 군의 본격적인 수사는 A 하사가 지난해 11월 민간 수사기관에 B 중사를 고소한 뒤에야 이뤄졌다. 석 달 전 사단 법무실은 피해자의 신고 의사를 고소 의사로 간주할 수 있었지만 징계 건으로만 처리했다. 신고 즉시 수사를 하지 않은 군과 달리 수원지검은 6월 B 중사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A 하사는 6월 공군 이모 중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시행된 군 성폭력 특별 신고 기간에 2차 피해 내용을 다시 신고했다. A 하사의 신고에 육군 중앙수사단은 부대 간부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군 검찰에 송치했고, 2차 피해와 관련된 간부들에게 징계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수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사건 처리의 적절성도 조사 중”이라며 “성폭력 근절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엄정 조치하겠다”고 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조만간 방한하는 영국의 최신예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 항모(6만 5000t·사진)가 이끄는 항모전단의 부산항 입항이 불발될 것으로 보인다. 항모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50여명 이상인데다 국내 코로나19 확산세 등을 고려한 것이다. 당초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은 28일경 해군 작전기지가 있는 부산항에 입항해 1주일간 기항하면서 함정 공개를 비롯한 다양한 군사교류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다. 2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군과 방역당국은 내부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퀸 엘라자베스 항모전단이 부산항에 입항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군이 조만간 관련 결정을 공식 발표하고, 영국측에도 외교경로로 양해를 구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앞서 영국 해군은 5월 퀸 엘리자베스의 방한 일정을 공개하면서 한국군에 부산항 입항을 요청햇고 이에 우리 군은 수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영국 항모의 방한은 1997년 이후 처음인데다 미영 주도의 인태 지역내 중국 견제 전략의 강화 신호로 해석돼 이목이 집중됐다.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은 부산항에 입항하지 않는 대신 인근 해상에서 대기 및 운항하면서 함재기를 활용해 한국 언론의 함정 취재를 일부 허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다른 군사교류 일정은 취소되거나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 5월 6개월간의 인도태평양 순방 일정으로 영국 포츠머스항을 출항한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은 인도양과 남중국해, 서태평양 등을 거치면서 미 항모전단 등 동맹국과 강도 높은 연합훈련을 실시해왔다. 3700여 명의 승조원이 모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했지만 돌파감염이 발생해 확진자가 한때 1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 취역한 퀸 엘리자베스 항모에는 영국 해군의 F-35B 스텔스전투기 8대와 미 해군의 F-35B 10대가 탑재됐다. 항모전단은 항모를 주축으로 구축함 2척과 호위함 2척, 지원함 2척, 핵추진잠수함 1척 등으로 구성됐다. 군 소식통은 “당초 계획대로 제주 남방이나 동해상에서 우리 해군과의 약식 해상 연합훈련은 실시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우리 공군의 F-35A스텔스전투기와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의 F-35B 스텔스전투기의 연합훈련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평화를 위해 공산군과 싸운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이 69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23일 가족 등과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방한한 기예르모 로드리게스 구스만 씨(92)와 알바로 로사노 차리 씨(87)가 주인공. 콜롬비아 참전용사 장교회 회장인 구스만 씨는 1952년 1∼12월까지 콜롬비아 파견대대 소대장으로 각종 전투에 참전했다. 차리 씨는 1952년 12월 육군 병사로 참전해 1953년 180고지 및 불모고지 전투 등에 참전했으며 현재 콜롬비아 참전협회장을 맡고 있다. 콜롬비아는 6·25전쟁 당시 중남미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1951년 6월 부산에 1개 보병대대 도착을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연인원 5100여 명이 참전해 213명이 전사하고 448명이 부상을 입었다. 금성진격전과 흑운토령 전투에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르는 한편 동해 보급품수송선단 호위작전 등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24일 강원 철원평화전망대를 방문한 뒤 25일 오전에는 대한민국 참전용사와 함께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70년 만의 재회의 시간을 갖고,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참배 행사를 진행한다. 이어 같은 날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하는 이반 두케 마르케스 콜롬비아 대통령과의 한-콜롬비아 정상 국빈만찬에 특별초청을 받아 참석하고, 26일 보훈처의 감사 오찬 등에 참석한 뒤 27일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 이번 초청 행사는 콜롬비아의 6·25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양국의 국제보훈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계획됐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보훈처는 매년 유엔 참전용사 초청 행사를 추진해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지난해 중단한 뒤 이번에 재개한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유엔 참전용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다양한 국제보훈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필자가 10여 년 전 국방부 산하 교육기관에 파견돼 현역 장교들과 함께 연수를 받던 때의 일이다. 당시 주한 미공군의 고위 지휘관이 2시간여에 걸쳐 한미 연합훈련의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하는 초빙 강의를 했다. 그는 강의 내내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연합훈련(연합지휘소훈련·CPX)의 한계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가령 훈련 시나리오(연합 작전계획)에 따라 개전 초 북한의 방공망과 핵·미사일 기지 등을 정해진 시간 내 모두 제거해야 하는데 훈련을 하다 보면 자꾸만 지체된다는 것이다. 지휘부의 의사결정 지연이나 엇박자 등이 주된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작전 반응시간’이 길어질수록 북한의 역공으로 아군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CPX와 병력·무기장비를 동원한 실기동훈련을 철저히 병행해 유사시 대응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게 연합훈련의 주된 목표라고 강조했다. 당시 필자에겐 사전에 각본을 짜고 하는 훈련에서도 이처럼 오차와 변수가 많은데 실전에선 오죽하겠느냐는 하소연처럼 들렸다. 어떤 치밀한 작전계획도 전쟁이 나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훈련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최첨단 무기가 등장해도 피를 담보로 한 전쟁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올 5월 환송 행사에서 “평시에 땀을 흘려야 전시에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취지다. 작전계획과 실제 전시 상황의 간극을 최소화하려면 실전 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것 외에 다른 첩경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연합훈련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다. 2018년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존의 3대 연합훈련은 모두 폐지됐고 그나마 연 두 차례의 CPX도 북한의 눈치를 살피느라 축소·중단되는 게 다반사가 됐다. 16일부터 시작된 올 하반기 CPX도 북한 김여정 노동장 부부장의 훈련 중단 압박을 의식한 나머지 상반기 훈련보다 참가 병력이 크게 줄었다. 전쟁 수행의 핵심축인 작전사(司)급 부대는 전시 편제에 따른 증원 인력을 운용하지 않고 현 인원만 참가하고 사단급 이하 부대는 수동적 응답만 하는 ‘대응반’만 가동하는 등 야전부대의 참여 수위도 최소화됐다. 이뿐만 아니라 대규모 연합 실기동훈련은 4년째 ‘올 스톱’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했다는 정부와 군의 주장도 미국이 일본과 호주 등 다른 동맹국과는 연초부터 대규모 실기동훈련을 활발히 진행하는 점에 비춰 보면 핑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연합훈련의 파행이 길어질수록 유무형의 부작용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당장 한미 양국군 간 조직력과 유대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언어 문화가 다르고 무기장비 및 교리도 상이한 한미 양국군이 유사시 ‘한 몸’처럼 움직이려면 정례적인 대규모 실기동훈련 등으로 손발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군은 1, 2년마다 보직이 바뀌다 보니 연합훈련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훈련 경험과 소통 노하우를 축적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유사시 투입되는 미 증원전력의 한반도 지형 및 작전환경 숙달 수준도 목표치를 밑돌 개연성이 적지 않다.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CPX가 아무리 정교해도 실제 무기·병력이 투입되는 실기동훈련과는 간극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합훈련은 2018년 이전과 비교해 양적 질적으로 후퇴했다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연합훈련의 파행이 2, 3년 더 지속될 경우 되돌리기 힘든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미 지휘관과 장병들의 전투 노하우 및 자신감이 형해화되면서 연합태세의 저하와 심각한 안보 공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한미동맹의 근간인 연합훈련을 대북 협상카드로 당연시하는 정부와 군의 안이한 인식 그 자체다. 국민 보호와 국가 안위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훈련조차 ‘협상칩’으로 남용하는 것은 북한의 오판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연합 방위태세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는 첩경은 연합훈련의 정상화를 통한 대비태세 완비라는 군 안팎의 고언(苦言)을 군 지휘부가 되새겨보기 바란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성추행 신고 사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된 해군 여성 부사관 A 중사에 대한 가해자의 2차 가해 의혹이 군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군이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현안보고 자료에 따르면 가해자인 B 상사(구속)는 A 중사를 성추행한 5월 27일부터 8월 6일까지 주임상사(입건)로부터 ‘행동 주의’ 조언을 받았다. 사건 당일 A 중사의 최초 피해 보고를 받은 주임상사가 구두로 경고한 것이다. 이후 B 상사는 피해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등 무시하는 행위를 지속했다고 군은 밝혔다. A 중사가 생전에 유족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호소한 가해자의 업무 배제 및 따돌림이 사실임을 군이 공식 확인한 것이다. 주임상사가 피해자의 보고 정황을 노출시키는 바람에 A 중사가 두 달 넘게 2차 가해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추가적인 성추행도 드러났다. B 상사는 민간 식당에서 A 중사의 손금을 봐준다면서 손을 만지는 성추행을 한 뒤 복귀 과정에서도 재차 팔로 목 부위를 감싸는 일명 ‘헤드록’으로 추행했다고 군은 설명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2차 가해를 포함한 전 분야를 낱낱이 수사해 엄정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A 중사 사망 후 처음 공개석상에 나온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유족분과 국민께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여야 국방위원들은 질타를 쏟아냈다. “군이 당장의 위기만 모면하려 한다”(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 “장관 지시를 밑에서 항명한 것이다. 장관 무능 아닌가”(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등 강한 질책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장관이 지시해도 영(令)이 서지 않은 것에 (서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장관 중심의 지휘체계가 무너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아프간 사태와 다를 게 뭔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서 장관은 “그렇게 비교할 건 아니다”라면서 “영을 잘 세우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천안함 폭침도발로 전사한 고 김태석 원사의 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군 간부의 길을 걷게 됐다. 20일 해군에 따르면 김 원사의 딸인 해나 씨(19)가 최근 ‘해군 군가산복무(군장학생) 장교’ 모집전형에 최종 합격했다.김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아빠를 따라서 군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2010년) 천안함 (폭침도발) 이후로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군인의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합격발표를 본 순간 너무 기뻐서 믿기지 않았다”며 “아버지처럼 훌륭한 장교가 되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군가산복무 장교 전형은 대학 재학 중 군 장학금을 받고 졸업 후 장교로 임관하는 제도다. 김 씨는 올해 초 우석대 군사안보학과에 입학한 뒤 이른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장교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고 한다. 이번에 군 장학생으로 선발됨에 따라 대학 졸업 후 해군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그는 이달 초 공군과 해병대 전형에도 합격했지만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싶어서 해군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고 한다.3녀 중 장녀인 김 씨는 어머니에게도 각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군인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도 하고 응원도 해주셨다“며 "사실 제일 합격 결과를 기다린 게 어머니셨는데 이젠 마음 편히 계셔도 된다, 큰딸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조만간 국립대전현충원내 ‘천안함 46용사’ 묘역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 ‘아빠가 바라시는대로 해군간부가 됐다’는 합격 소식을 전할 계획”이라고도 했다.김 씨의 합격 소식을 접한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격려와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피격 당시 천안함 함장을 지낸 최원일 예비역 대령은 자신의 SNS에 김 원사와 함께 케이크를 자르던 옛 사진과 함께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아빠가 지킨 슬픔의 바다를 딸이 희망의 바다로 다시 지키게 됐다”는 글을 올렸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아덴만 해역에 파병된 청해부대 35진 충무공이순신함(4400t급 구축함)의 승조원 300명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미접종자 5명이 조기 철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의 관련 질의에 “현지에서 백신 접종을 하려고 다각도로 노력하다가 (조기) 복귀시키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 의원에 따르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장병 5명은 15일 국내로 복귀했다. 앞서 6월에 부산에서 출항한 지 두 달여 만이다. 현재 청해부대 35진에서는 백신 1·2차 접종을 마친 295명이 남아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결원을 대체할 추가 파병을 계획하고 있느냐’는 신 의원의 질의에 “(조기 철수한) 5명은 부사관 1명과 취사병 4명으로 부대장이 현재 인원으로 가능하다고 보고해 추가 파병은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당초 군은 청해부대 35진에 백신 미접종자가 포함된 것에 대해 “출항전 유전자증폭(PCR)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왔고, 함정 운용에 필수인력이어서 승선토록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백신 미접종 상태로 파병된 청해부대 34진이 초유의 집단감염으로 조기 철수하는 사태가 터지자 군은 35진 미접종자의 현지 접종방안 등 관련 대책을 강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해군사관학교가 2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 1학년 생도의 이성교제를 허용하기로 했다. 신입생도의 조기 적응을 위한 보호 차원에서 1학년의 이성교제를 금지한 생도 생활예규 관련 규정을 고친 것이다. 해군 관계자는 “올 6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이성교제를 자진 신고한 생도 40여 명에 대해 해사가 중징계 처분을 내리자, 국가인권위는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중대하게 침해한 것”이라면서 규정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해사 측은 “사관생도의 건전한 이성교제 여건 보장을 위해 상담교육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학년별 집중 인성 및 리더십 교육 때 이성교제 관련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강압에 의한 이성교제 시도 등 규정 위반 행위를 구체화해 생활예규에 반영했다”고 전했다. 다만 사관생도와 훈육 및 교수 요원의 이성교제는 종전처럼 제한된다. 앞서 육군사관학교는 올 2월 생도 간 이성교제를 전면 허용하기로 하고 육군본부에 관련 규정 개정을 건의했고, 공군사관학교는 지난해 11월부터 1학년 생도 간 이성교제를 허용하고 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충남 논산의 육군훈련소에서 한 달 만에 또다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지난달 123명의 누적 확진자를 초래한 무더기 감염 사태가 재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육군에 따르면 18일 하루에만 훈련병 1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훈련소 입소 직후 예방적 관찰을 위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기간 중 두 차례의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후 이달 10일부터 격리가 해제돼 야외 훈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16일 감기 증상을 보인 훈련병 1명이 당일 신속항원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뒤 이튿날 재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고 한다. 이에 군이 최초 확진자와 같은 생활관에서 지내는 훈련병 16명에 대해 PCR 검사를 한 결과 10명이 추가로 확진됐다. 군과 방역당국은 이날 역학조사를 거쳐 확진자와 같은 교육대 인원 등 900여 명에 대해 PCR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달 발생한 집단감염처럼 이번에도 코호트 격리 해제 뒤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훈련병들이 무더기로 감염된 사례여서 이들과 동선이 겹치거나 같은 교육대 소속 훈련병들 가운데 추가 확진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군 관계자는 “확진자들 가운데 백신 접종을 마치고 입소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군과 보건당국은 지난달 12일부터 7∼9월 현역병 입영 대상자 가운데 희망자에 한해 화이자 백신 사전접종을 진행 중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천궁-II’ 지대공 유도무기(사진)가 품질인증사격시험에 성공했다고 국방기술품질원(원장 허건영·이하 기품원)이 18일 밝혔다. 품질인증사격시험은 연구개발 단계에서 충족된 국내개발 유도무기의 성능이 양산품에서 동일하게 구현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기품원에 따르면 최근 국방과학연구소의 안흥시험장에서 진행된 천궁-II의 항공기 요격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 발의 천궁-II는 발사 직후 표적 항공기에 모두 명중됐다고 한다. 지난달 탄도미사일 요격시험에 이어 항공기 요격시험까지 성공하면서 천궁-II는 본격적인 양산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천궁-II는 기존 천궁 유도탄에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품질인증사격시험을 총괄한 국방기술품질원 장봉기 유도탄약센터장은 “최초 양산단계에 있는 천궁-II의 품질이 완벽하게 검증된 것과 동시에 국내 최초로 탄도탄을 요격할 수 있는 국내개발 유도무기가 양산 단계에 본격 착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이 탄도탄 요격기술을 보유한 4대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이자 우수한 성능과 기술경쟁력을 갖춘 유도무기의 해외 수출에도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기품원은 설명했다. 천궁-II는 탄도탄과 항공기 공격에 동시 대응하기 위해 국내 기술로 개발된 중거리·중고도 지대공 요격체계다. 발사대 1기당 8발의 미사일이 장착되는 차량 탑재형 수직발사대와 다기능 레이더, 교전통제소로 이뤄져있다. 최대사거리는 40km, 요격고도는 15~20km로 알려져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