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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당내 추진단을 설치하고 속도전에 돌입했다. 지역균형발전을 앞세운 ‘슈퍼 여당’이 행정수도 완성을 목표로 강력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가운데 미래통합당 안에서도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충청권 민심을 흔들 핵심 이슈에 정국이 ‘행정수도 이전’ 블랙홀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김태년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제안한 20일 비공개 고위전략회의를 열고 향후 추진 로드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일단 현행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여야 합의를 통해 ‘행정수도법’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되 여야 합의가 안 되면 국민투표나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액션플랜’을 마련해 당 지도부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당 차원의 ‘행정수도법’ 발의도 준비하고 있다. 김두관 의원은 22일 “당과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당 추진단에 법안을 제출하겠다”며 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을 발의하려다 미뤘다. 통합당 지도부는 “이미 위헌 결정이 난 사안”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당 일각에선 찬성론이 나오고 있다. 충남이 지역구인 5선의 정진석 의원은 이날 “개헌이 전제가 된 밀도 있는 숙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야권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국회 이전 문제 등은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김지현 jhk85@donga.com·최우열·강성휘 기자}
여권이 행정수도 이전을 핵심으로 하는 지역 균형발전 이슈를 대대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국가 균형발전은 물론이고 현 정부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이어 행정수도 이전 이슈를 다시 꺼낸 데에 문재인 대통령과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의원이 가세했다. 김 원내대표는 21일 “행정수도 완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회에 ‘행정수도 완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면 얼마든지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며 “개헌이나 국민투표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야 합의로 행정수도 이전을 결정하면 2004년과 같은 위헌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날 광주를 찾은 이낙연 의원도 기자들과 만나 “모든 것을 다 (세종시로) 옮긴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한 뒤 “2004년 당시 관습 헌법이라는 논리가 이상하지 않으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여야 협의 과정에 따라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국판 뉴딜은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국가 발전의 축을 이동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며 “한국판 뉴딜은 지역 경제 회복의 발판이 되고, 중장기적으로 국가 균형발전을 한 차원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부터 수도권의 공공기관 추가 지방 이전 계획을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균발위는 혁신도시 평가 용역 결과를 곧 공개해 추가 이전 로드맵을 만들 예정이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도 지역 균형발전 카드가 서울 등 수도권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 대안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해구 전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총선 평가 토론회에서 “편안한 곳에서 생활하고 싶어 하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건 인간의 본성”이라며 “행정수도 문제는 단순히 부동산 값이 올라서 옮겨야겠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토 발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매물을 내놓았던 몇몇 집주인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전화가 옵니다. 그래도 아직은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올리진 않고 있습니다.” 21일 경기 구리시 갈매지구.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언급하면서 태릉골프장 일대로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이 일대는 예상외로 차분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사장은 “개발을 논의해보자는 차원이라 관망세”라며 “육군사관학교 등도 개발 대상에 포함될지에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태릉골프장과 인접한 노원구 공릉동, 중랑구 신내동 일대도 ‘일단은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논란으로 일대가 들썩였던 강남권과 대조적이었다. 여기엔 정부 규제로 집 사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서울 외곽이라는 입지 등을 고려할 때 시세 차익이 크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또 서울 노원구와 중랑구 모두 기업이 거의 없어 신규 수요 유입에 한계가 있고 갈매지구는 지하철 8호선 개통 등 교통 호재로 집값이 이미 많이 오른 상태다.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를 이번에 막은 만큼 노후 임대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용적률을 높여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평균 140% 수준인 임대아파트 용적률을 끌어올려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방안이다. 향후 5년 이내 재건축 연한이 도래하는 임대아파트가 3만5000채로 서울 강남권에는 개포동 SH대치1단지, 수서동 SH수서1·6단지가 있다. 하지만 입주민 이주나 철거 등에 시일이 꽤 걸려 당장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으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도 다음 주중 공급대책 발표를 목표로 태릉골프장 개발을 놓고 관계 기관과의 본격적인 협의에 착수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장 태릉골프장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그린벨트 해제를 위해 서울시와 실무 협의를 해야 한다. 태릉골프장과 담장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는 육사 부지를 포함시켜 택지 규모를 골프장 약 85만 m² 1만 채 규모에서 150만 m² 2만 채 수준으로 확대시킬지 여부도 관건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육사는 군(軍)에서 상징성이 큰 데다 이전 부지를 찾아야 해 당장 결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그간 관계부처나 공공기관 간 이견으로 벽에 부딪혔던 공급대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27일 ‘정부소유 수도권 골프장에 공공임대주택을 짓자’라는 주택공급 토론회를 개최한다. 여권 관계자는 “다른 부처들이 소유한 수도권 골프장까지 활용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정부는 서울 내 다른 택지를 찾는 데도 속도를 내고 있지만 태릉골프장 규모에 버금가는 또 다른 택지가 포함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서울 도심 재개발, 재건축 활성화, 도심 고밀 개발을 위한 규제 완화를 주요 대책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순구 soon9@donga.com·강성휘·김하경 기자}
‘친문(친문재인) 핵심’이자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전재수 의원(부산 북-강서갑)이 내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이후 여권에서 내년 재·보선에서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전 의원은 17일 라디오에서 “대의명분적 측면에서나 실리적 측면에서 우리(민주당)가 이번에 반성하고 후보를 안 내는 게 맞다”고 했다. 또 “이참에 우리가 확실하게 죽자. 확실하게 죽을 때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전 의원은 ‘부산뿐 아니라 서울시장 후보도 내지 않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래야 한다”고 답했다. 2022년 3월 대선을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은 2016년 20대 총선부터 이번 총선까지 연이어 네 차례나 전국단위 선거에서 승리했다”며 “임기 1년 정도인 서울과 부산시장을 포기하고 대선 승리를 위한 명분을 축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 “전에 시장 선거 나온 사람이 또 나오겠느냐”며 연합공천 가능성을 일축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도 “전에 서울시장을 두 번 한 사람이 또 나오겠느냐”고 했다. 한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긴급 비공개 회의를 소집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섹스 스캔들’로 지칭한 정원석 비대위원에 대해 2개월 활동 정지를 권고했다.강성휘 yolo@donga.com·윤다빈 기자}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이 17일 주택 공급 방안 중 하나로 그린벨트 해제가 검토되는 것에 대해 “정부가 이미 당정 간 의견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당정이 최근 그린벨트 해제 등을 포함해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김 실장은 이날 라디오에서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된 논란을 풀어가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며 “부동산과 관련해선 모든 정책 수단을 메뉴판 위에 올려놓는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서울시가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하는 데 대해 “당연하다. 수십 년 된 문제”라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이견을 조정하고 지역 주민의 반발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다. (관건은) 그것을 만들어 가느냐의 여부”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안정화를 위해 주택 공급 확대 등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만큼, 서울시가 반대하는 그린벨트 해제안도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도 그린벨트 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토교통부는 15일 부동산 대책 관련 당정협의를 열고 ‘주택 공급 확대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해 도심 용적률 규제 완화 등의 공급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관계자는 “보존가치가 낮은 3∼5등급 그린벨트는 해제해 택지로 활용하는 게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정부와 서울시에 꾸준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당정이 서울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공급 확대 방안의 필요성을 재확인하자 지역 부동산은 들썩이고 있다. 서초구 내곡동 서초포레스타 2단지(전용면적 84m²)는 5일 13억4000만 원에 매매됐으나 현재 2억 원 이상 높은 15억5000만 원 호가의 매물이 등장했다. 강남구 세곡동 강남LH1단지(전용면적 59m²)도 한 달 전보다 1억 원 넘게 오른 12억 원을 호가한다. 군 골프장이 있는 태릉 인근 아파트 가격도 들썩이며 골프장 인근 경기 구리시 갈매지구 갈매역아이파크(전용면적 84m²)는 최근 일주일 동안 7억5000만 원에서 8억2000만 원으로 호가가 올랐다. 시장에서는 서울시가 그린벨트 해제를 강하게 반대해 해제까지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보존가치가 낮아 해제 가능성이 높은 3등급 그린벨트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토부가 그린벨트를 직권으로 해제할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와의 협의 상황과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직권 해제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편 김 실장은 내년도 최저임금(8720원)이 역대 최저 인상률을 기록한 것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상당히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를 들으신 후 ‘국민들께서 어떻게 받아들일 건가’라고 질문해서 제가 ‘최저임금은 지금 상황에선 많이 올리기 어렵다’고 답을 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국민이 (이번 결정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러 보완책을 통해 사회의 안정성을 키워 나가겠다”고 밝혔다.박효목 tree624@donga.com·강성휘·정순구 기자}

다주택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처분을 의무화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안이 발의됐다. 민주당 신정훈 의원은 17일 고위공직자 본인과 배우자 등 이해관계자가 실거주 1주택 외 부동산을 보유했을 경우 이를 60일 이내에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게 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는 국무위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1급 공무원, 교육감 등이다. 부동산 정책 주무 부서인 국토교통부의 경우 고위공무원도 대상에 포함된다. 신 의원실 관계자는 “국토부 공무원의 경우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 제도와 같이 4급 이상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대상이 된 고위공직자들이 60일 이내 이를 처분하지 않거나 거부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겼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및 국토교통부 소속 1급 이상 고위공무원 16명 중 다주택자는 5명이다. 21대 국회의원 중에서도 88명이 지난 총선 후보자 등록 당시 본인과 배우자를 합쳐 2채 이상 주택을 갖고 있다고 신고한 것으로 집계됐다. 강성휘기자 yolo@donga.com}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이 17일 주택 공급 방안의 하나로 그린벨트 해제가 검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부가 이미 당정 간 의견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당정이 최근 그린벨트 해제 등을 포함해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을 재확인한 것. 김 실장은 이날 라디오에서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된 논란을 풀어가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며 “부동산과 관련해선 모든 정책 수단을 메뉴판 위에 올려놓는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서울시가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하고 있는 데 대해 “당연하다. 수십 년 된 문제”라며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이견을 조정하고 지역 주민의 반발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다. (관건은) 그것을 만들어 가느냐의 여부”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안정화를 위해 주택 공급 확대 등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만큼, 서울시가 반대하는 그린벨트 해제안도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도 그린벨트 해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는 15일 부동산 대책 관련 당정협의를 열고 ‘주택공급확대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해 도심 용적률 규제 완화 등의 공급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관계자는 “보존가치가 낮은 3~5등급 그린벨트는 해제해 택지로 활용하는 게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다는 입장을 정부와 서울시에 꾸준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한편 김 실장은 내년도 최저임금(8720)원이 역대 최저 인상률을 기록한 것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상당히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를 들으신 후 ‘국민들께서 어떻게 받아들일 건가’라고 질문을 해서 제가 ‘최저임금은 지금 상황에선 많이 올리기 어렵다’고 답을 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국민이 이번 (이번 결정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러 보완책을 통해 사회의 안정성을 키워나가겠다”고 밝혔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6일 사실상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여권의 차기 대선 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이 지사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에 이어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2위로 올라선 상황에서 줄곧 자신의 발목을 잡던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됐기 때문. 부동산 대책 후폭풍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등 잇따른 악재로 궁지에 몰렸던 민주당도 이날 판결에 일단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이 지사는 이날 선고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숨쉬는 것조차 감사하다”고 했고, 라디오에선 “지옥에서 다시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청 앞에선 취재진 및 지지자들에게 이 지사는 “내가 전에 (스스로) ‘변방 장수’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가진 정치적 자산이 없는 사람이라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던 게 사실”이라며 “오물을 뒤집어쓴 상태여서 털어내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 상태에서 주어진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향후 행보를 묻는 질문에는 “다음에 어떤 역할을 할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지사는 “나는 공식 조직도, 계보도, 지연도, 학연도 없는 외톨이다. 국민들이 그런데도 지지해주는 건 시장, 도지사로서 역할을 조금은 성과 있게 봐주셨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지사가 남은 2년 임기 동안 특유의 저돌적인 추진력을 앞세워 여권 내에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사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신천지 관련 시설에 대한 신속한 강제조사 및 재난기본소득 선제 지급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왔다. 이 지사는 최근 여론조사업체 한길리서치가 이달 4∼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직전보다 5.5%포인트 상승한 20% 지지율로 2위를 유지하며 이낙연 의원(28.8%)과의 격차를 줄였다. 한 여권 관계자는 “여배우 스캔들에 조폭 연루설 등으로 지지율 폭락도 경험했던 만큼 이 지사가 구설수는 최소화하고 중도층까지 포섭할 수 있는 정책으로 승부를 보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지사의 이른바 ‘여배우 스캔들’ 당사자인 배우 김부선 씨는 이날 재판 결과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F××× you”라는 영어 욕설을 적기도 했다. 이 지사의 ‘생환’은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민주당 대표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당내에선 이 지사 측근들이 김부겸 전 의원과 연합해 ‘반(反)이낙연 전선’을 형성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날 이 지사는 최근 지지율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낙연 의원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내가 아직 1위에 올라간 적은 없다”며 웃으면서 “이 의원 인품이 훌륭하셔서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적극적으로 하시는 일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재명계’가 21대 국회에 많이 입성하지 못했다”며 “4·15총선을 앞두고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만나며 ‘친문’ 성향 지지층 포섭에 애를 써 온 이 지사가 우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남은 과제”라고 했다. 여권 내 대표적인 ‘이재명계’인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날 본회의장에서 이 지사에게 “고생 많았네. 이제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차분히 나아가세”라는 휴대전화 텔레그램 문자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김지현 jhk85@donga.com·강성휘 기자}

야당은 16일 박원순 전 시장 관련 고소 사실이 사전 유출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상대책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은 과연 성범죄 사실에 대한 조사 사실을 누가 박 시장에게 사전에 전달했느냐는 문제”라며 “검찰이 알려줬는지, 청와대가 알려줬는지 분명한 답을 내릴 것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박 시장의 죽음과 관련해 명확한 해석을 소명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성범죄를 조장한 의심을 받는 서울시가 그런 능력이 있는가. 검찰이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했던 대통령의 침묵과 민주당의 재편 감싸기에 여성과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며 “국정조사와 청문회 소집 요구에 즉각 응하라”고 요구했다. 통합당 여성 의원들은 이날 ‘문재인 정권의 선택적 침묵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찰과 검찰수사가 미진하면 특별검사와 국정조사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일단 민관합동조사단의 진상조사 내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재 조사관을 배정해 조사에 착수했고 경찰도 수사를 하고 있다”며 “청문회든 국정조사든 그건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한편 박 전 시장의 조카라는 인물이 페이스북에 “장례절차 협의를 위해 서울시 관계자와 (민주당) 의원 몇 분, 그리고 유족대표로 내가 참석했다”며 “유족들은 애초부터 가족장으로 조용히 마친다고 했으나 의원 한 명이 ‘절대로 안 된다, 그렇게 보내드릴 수 없다’며 서울특별시장을 주장했다”고 써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다. A 씨 주장에 대해 민주당 이경 상근부대변인은 “원래 가족들이 가족장을 원했던 것은 맞다”면서도 “여당 의원이 설득했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했다. 박 전 시장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이었던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서울시장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서울시가 유족의 최종적 동의를 구했을 것이다.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이재명 경기지사가 16일 사실상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여권의 대권 구도도 출렁일 전망이다. 최근 여권 내 확실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2위로 올라선 이 지사의 발목을 잡았던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부동산 대책 후폭풍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등 잇따른 악재로 궁지에 몰렸던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판결에 일단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민주당 한 의원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박 전 서울시장까지 주요 주자들이 줄줄이 낙마한 마당에 이 지사까지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았다면 당장 내년 재보궐 선거는 물론이고 대선에도 빨간불이 켜질 상황이었다”며 “다행히 대선은 물론이고 당장 다음달 당대표 선거도 흥행 측면에서는 성공했다”고 했다. ● ‘이재명표 정책’ 이어질 듯2년 넘게 이어진 재판 변수에서 자유로워진 이 지사는 앞으로 대선행보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이날 선고 후 경기도청 앞에서 향후 행보를 묻는 질문에 “다음에 어떤 역할을 할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정할 것”이라며 “제게 주시는 역할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지사가 남은 2년 임기 동안 특유의 ‘사이다 발언’과 정책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입지’ 다지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사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신천지 시설에 대한 강제조사 및 재난기본소득 선제 지급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지사를 둘러싼 도덕성 논란은 있지만 특유의 어젠다 세팅 및 추진 능력이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어필한 것도 무시하기 어렵다”며 “법적 리스크도 사라진 만큼 수면 아래 있던 잠재적 지지층까지 결집하며 당분간 이 지사의 여론 지지율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 지사는 최근 여론조사업체 한길리서치 조사(4~7일·1004명 대상·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에서 직전보다 5.5%포인트 상승한 20% 지지율로 2위를 유지하며, 이낙연 의원(28.8%)과의 격차를 줄였다. 한 여권 관계자는 “여배우 스캔들에 조폭 연루설 등으로 지지율 폭락도 경험했던 만큼 이 지사가 앞으로 구설수는 최소화하고 중도층까지 포섭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지사의 이른바 ‘여배우 스캔들’ 당사자인 배우 김부선 씨는 이날 재판 결과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FXXX you”라는 영어 욕설을 적기도 했다. ● 복잡해지는 당 내 구도 이 지사의 ‘생환’은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 내에선 이 지사 측근들이 대거 김부겸 전 의원과 연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차기 대선 후보자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의원과의 경쟁구도가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는 것. 김 전 의원은 이날 선고 직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민주당원으로서 오늘은 참 천만다행인 날”이라며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이 의원도 페이스북에 “경기도정에 앞으로 더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코로나19 국난극복과 한국판 뉴딜 성공을 위해 이 지사와 함께 일하겠다”고 했다. 당내에서 이 지사 측근으로는 정성호·백혜련·김영진 등 경기 지역 일부 의원들이 꼽힌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재명계’가 21대 국회에 많이 입성하지는 못했다”며 “4·15 총선 때 김경수 경남지사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만나며 ‘친문’ 성향 지지층 포섭에 애를 써 온 이 지사가 친문 지지층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남은 과제”라고 했다. 한 당 관계자는 “‘적의 적은 친구’인만큼 현재로선 가장 큰 거인을 쓰러트리기 위한 반 이낙연 전선 집결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답변하는 이 의원과 좌고우면하지 않고 ‘사이다 발언’을 하는 이 지사의 개인 성향이 정반대에 가깝기 때문에 당 내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쉽지 않은 상대라는 평가가 많다”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사진)이 15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여성가족부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인들이 다 같이 참여해 냉정하고 정확하게 문제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자체 조사로는 진상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취지다. 권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울시 내부적으로) 피해자의 호소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과정이 있었다”며 “1차적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고 지적했다. 외부 기관이 참여한 진상조사위 구성을 제안한 권 의원은 ‘고소인 측 역시 진상조사위에 참여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고 “그런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다. 권 의원은 특히 민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잇달아 성추문 논란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해 “권력을 가진 고위층이 주변에 일하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힘이 위력인데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감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년 재·보선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모두 여성 후보를 내는 것을 절충안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인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을 지내고 21대 민주당 비례대표로 선출된 권 의원은 1986년 박 전 시장이 변호를 맡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이기도 하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15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여성가족부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인들이 다 같이 참여해 냉정하고 정확하게 문제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자체 조사로는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취지다. 권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울시 내부적으로) 피해자의 호소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과정이 있었다”며 “1차적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고 지적했다. 외부 기관이 참여한 진상조사위 구성을 제안한 권 의원은 ‘고소인 측 역시 진상조사위에 참여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고 “그런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다. 권 의원은 특히 민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잇따라 성추문 논란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해 “권력을 가진 고위층이 주변에 일하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힘이 위력인데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감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권력자들의) 회피하고 거부하려는 마음이 조직 내에서 굉장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반성해야 할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을 지내고 21대 민주당 비례대표로 선출된 권 의원은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이기도 하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정부와 여당이 서울 주택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본격 논의하기로 했다. 이르면 이달 중 구체적인 공급 방안이 발표된다. 정부는 “서울의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곳에 공급을 늘리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국토교통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 대책 관련 당정협의를 열고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주택 공급 확대 범정부 테스크포스(TF)’ 출범을 선언하며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해 도심 용적률 규제 완화 등의 공급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7·10부동산대책을 통해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도시 주변 유휴부지 등 신규택지 발굴 △공공 재개발·재건축 △도심 공실 상가·오피스 활용 등을 부동산 공급 확대 TF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린벨트 해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그린벨트 해제도 테이블에 올려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당정에 따르면 이른바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구)의 세곡동, 우면산 일대, 수서역 인근 그린벨트 지역이 해제 대상으로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TF 출범과 함께 이날 국토부와 기획재정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 등은 ‘주택공급확대 실무기획단’ 첫 회의를 서울시청에서 열고 세부 공급방안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기획단 단에서 안건이 구체화 되면 주택공급확대 TF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욕설을 내뱉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사과하기로 한 건 그만큼 여론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전반적인 여론뿐만 아니라 당 지지층의 핵심 기반인 20, 30대 여성들이 민주당의 성인지감수성 부족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 대표가 전날 ‘대리 사과’로 넘어가려던 건 아니고, 비공개 회의 후 급하게라도 입장을 표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전달한 것”이라며 “이르면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연히 사과를 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으로선 당장 내년 4월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대한 부담감이 작지 않은 상황이다. ‘윤미향 사태’에 이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지지율이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명확한 수습 없이는 안희정 오거돈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장 ‘미투 사건’까지 줄줄이 부각되면서 선거 참패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번 사안이 자칫 정권 레임덕을 불러오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에 따른 지지율 하락세가 이번 사건으로 더욱 가속화되지 않도록 잘 마무리 짓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 필요”심상치 않은 여론 변화에 이날 민주당 내에선 진상조사 요구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박용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고통스럽겠지만 당은 당대로, 서울시는 서울시대로 할 일이 있다”며 당 차원의 진상 파악과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박 의원은 “당이 그동안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진 않았는지, 선출직 공직자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 등이 형식적 수준에 그쳤던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며 “피해자 측에서 호소한 내용과 관련해 서울시의 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 관계자는 “피해자를 직접 불러 얘기를 들어볼 수도 없고, 수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당 차원의 진상조사가 현재로선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다만 피해자 주장대로 서울시가 도움 요청을 묵살했는지에 대한 진상조사는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높여 오고도 정작 이번 사태에선 침묵으로 일관해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받았던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이날 서울시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여성 의원 전원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진상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 지원 시스템과 공공기관 내 성희롱 예방 및 피해자 불이익 금지 제도화를 위한 입법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당권에 도전한 김부겸 전 의원도 서울시 인권위원회 조사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내년 재·보궐선거에 대한 우려도 드러냈다. 김 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민주당 당헌에는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보궐선거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며 “하지만 당의 명운이 걸린 큰 선거인 만큼 대국민 사과를 해서라도 후보를 내는 걸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역시 당권에 도전장을 낸 이낙연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에서 정리된 입장을 곧 낼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뒤늦은 자성 목소리 영결식 당일까지 ‘애도가 우선’이란 메시지로 일관하던 민주당 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져 나왔다. 박 전 시장의 최측근이자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의 공적 업적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적 한계와 과오까지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성찰할 일”이라며 “고인으로 인해 고통과 피해를 입었다는 고소인의 상처를 제대로 헤아리는 일이 급선무”라고 적었다. 비례대표인 이수진 의원도 “추모의 마음은 제 가슴속에 간직하겠다”며 “실체적 진실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를 저 자신에게 구하겠다”고 했다. 송기헌 의원도 이날 라디오에서 “1000만 인구 서울시의 시장 공백에 대해 민주당 입장에서 죄송하다”며 “장례가 잘 됐기 때문에 이제부터 피해자의 목소리를 좀 더 신중하게 듣고 2차 가해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데 당이 더 신경쓰겠다”고 했다.김지현 jhk85@donga.com·강성휘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이 법정 출범 예정일인 15일을 넘기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는 7월 중 출범도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박사방 사건 변호인을 전날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으로 선정한 것을 두고 14일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간단한 검증만으로도 이를 걸러낼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급한 마음에 당의 스텝이 더 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기헌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참 죄송하고 한 번 돌아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누구든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국민들께서 느끼시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고 재차 사과했다. 민주당은 변호사들이 수임한 사건을 일일이 알기 어렵다고 해명했지만 당원게시판 등에서는 “나도 지난달부터 장성근이 박사방 변호사인걸 알았는데 무슨 검증을 한 거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실제 대법원 홈페이지의 ‘나의 사건검색’에 박사방 관련 재판의 사건번호를 입력하면 장성근 전 경기중앙변호사회장이 변호사로 등록돼 있다. 사건번호는 일부 언론 보도 등으로 이미 알려져 있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도 쉽게 조회할 수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7월 공수처 출범도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이 한 차례 삐긋한데다, 공수처 출범을 위한 후속법안들도 언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공수처가 하루속히 문을 열고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 협조를 부탁한다”면서 “정부는 공수처의 안정적인 업무 수행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강조했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없냐는 질문에 욕설을 내뱉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사과를 고려하고 나선 건 그만큼 여론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전반적인 여론 뿐 아니라 당 지지층의 핵심 기반인 20~30대 여성들이 민주당의 성인지감수성 부족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 대표가 전날 ‘대리 사과’로 넘어가려던 건 아니고, 비공개 회의 후 급하게라도 입장을 표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입장을 전달한 것”이라며 “이르면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연히 사과를 해야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으로선 당장 내년 4월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윤미향 사태’에 이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가뜩이나 지지율이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명확한 수습 없이는 안희정-오거돈 등 다른 지자체장 ‘미투 사건’까지 줄줄이 부각되면서 선거 참패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번 사안이 자칫 정권 레임덕을 불러오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에 따른 지지율 하락세가 이번 사건으로 더욱 가속화되지 않도록 잘 마무리 짓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당 차원 진상조사 필요”심상치 않은 여론 변화에 그 동안 애도를 표하던 민주당 의원들도 당 차원 조사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박용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고통스럽겠지만 당은 당대로 서울시는 서울시대로 할 일이 있다”며 당 차원의 진상파악과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박 의원은 “당이 그동안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선출직 공직자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 등이 형식적 수준에 그쳤던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며 “특히 피해자 측에서 호소한 내용과 관련해 서울시의 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피해자를 불러 얘기를 들어볼 수도 없는 거고, 수사권한이 없기 때문에 당 차원의 진상조사가 현재로선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다만 피해자 주장대로 서울시가 도움 요청을 묵살했는지에 대한 진상 조사는 필요하다”고 했다. 당권에 도전한 김부겸 전 의원도 서울시 인권위원회 조사를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내년 재·보궐 선거에 대한 우려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김 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민주당 당헌에는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보궐선거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며 “하지만 당의 명운이 걸린 큰 선거인만큼 대국민사과를 해서라도 후보를 내는 걸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송기헌 의원도 이날 라디오에서 “(진상 규명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긴 어렵지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없도록 하는 데 신경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 뒤늦은 자성 목소리영결식 당일까지 ‘애도가 우선’이란 메시지로 일관하던 민주당 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져 나왔다. 박 전 시장의 최측근이자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의 공적 업적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적 한계와 과오까지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성찰할 일”이라며 “고인으로 인해 고통과 피해를 입었다는 고소인의 상처를 제대로 헤아리는 일은 급선무”라고 적었다. 비례대표인 이수진 의원도 “추모의 마음은 제 가슴 속에 간직하겠다”며 “실체적 진실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를 저 자신에게 구하겠다”고 했다.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높여오고도 정작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받았던 민주당 여성의원들도 이날 2차 피해 방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낼 예정이다. 당 관계자는 “김상희 국회부의장이 주도해 민주당 여성의원 전체 이름으로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임대차 3법을 7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거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 여당의 정책 수단을 총동원할 것”(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13일 오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영결식 직후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7월 임시국회에서 강력한 입법 드라이브를 예고하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부동산 대책 실패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며 위기를 맞은 민주당이 박원순 전 시장 사망을 계기로 한 지지층 집결을 동력으로 정국 반전 시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부동산 시장 정상화법’ 발의를 예고하며 여당의 부동산 강경책에 대립각을 세운 미래통합당은 박 전시장 성추문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역공에 나설 태세다. 이날 민주당은 7·10 부동산 대책 후속입법을 7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해찬 대표는 “입법을 서둘러 늦어도 이번 7월 국회에서 모든 것이 처리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실수요자 대상 공급 확대 정책도 확정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발표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7·10 대책은 투기 이익을 근절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며 “세수 증대 의도는 전혀 없다”며 증세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주거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 여당의 정책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며 당내 부동산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계속 후속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고용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다주택자들이 팔지 않고 버텨보겠다는 반응이 있다고 하는데, 굉장한 부담을 안게 될 것이고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시장에 확실한 시그널을 주기 위해 임대차 3법 등은 반드시 7월 국회에서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맞서 통합당은 여당의 부동산3법을 ‘세금 3종 폭탄’으로 규정하고 공세 강도를 높였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세제를 동원해서 부동산 옥죄겠다는 조치가 과연 성공 가능성이 있느냐”고 했다. 민주당이 ‘강력 입법 드라이브’를 예고한 만큼 앞으로 7월 임시국회에서도 여야 간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당장 이날 오후 민주당 김영진·통합당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에서 만나 야당 몫의 국회 부의장 및 정보위원장 선출, 21대 국회 개원식 일정 등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을 잡으려면 부의장 및 정보위원장 선출이 완료돼야 한다. 국회는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박 후보자와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요청안 접수 20일째가 되는 27일까지 청문 절차를 마치고 경과보고서를 채택해야 한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정보위원장 선출을 서둘러야 한다. 통합당이 거부한다고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했다. 다만 민주당 원내관계자는 “통합당이 끝내 버티기에 돌입할 경우 우리로서도 뾰족한 수는 없는 게 사실”이라며 “통합당을 압박할 수 있는 말들은 이어가고 있지만 결국 뭘 양보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일부 극성 친문 지지층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고소한 피해 여성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면서 2차 가해 논란으로 확산되자 더불어민주당이 뒤늦게 제지에 나섰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1일 서면 논평을 통해 “(서울시 직원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의 유포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행동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강 수석대변인은 “지금은 어떤 사실도 밝혀진 바 없다”며 “온라인상에서 관련 없는 사람의 사진을 유포하거나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가짜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현행법 위반”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 내에선 민주당의 초기 대응이 극렬 지지층의 2차 가해 빌미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전날 박 전 시장 빈소를 찾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성추행 의혹 대응 계획을 묻는 취재진을 향해 ‘××자식’이라고 쏘아붙이면서 여권 지지층의 2차 가해를 방치하는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내 당원 게시판에도 이 같은 당 지도부의 대응을 지적하는 비판 글들이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다. 한 지지자는 “약자의 편에 서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든다더니 상식밖의 논란과 사건에 이제는 어떤 기대도 안 남았다”며 “더불어성추행, 더불어범죄당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지지자는 “정의니 인권이니 먼저 운운한 건 이 정당이다. 인권에 높고 낮음이 있냐”며 “다음 총선 때 이런 작태에 분노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두고 봐라)”라고 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큰 별이 졌다.” 11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숙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린 정 장관은 “고인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군 건설에 초석을 놓은 영웅이셨다”면서 유족을 위로했다. 빈소에는 첫날(11일)부터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당정청 주요 인사들이 대거 다녀갔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빈소를 찾아 “(고인은) 집안 형님과 함께 창군동지회 멤버였다”는 인연을 공개했고,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해군 대장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하얀 국화꽃을 영전에 올리며 추모한 뒤 절도 있는 동작으로 ‘뒤로 돌아’ 자세를 취하며 군인의 예를 갖췄다. 12일엔 정세균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등이 조문 대열에 합류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도 다녀갔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유족을 접견하고 나서는 이해찬 대표를 향해 보수 유튜버들이 “누가 친일파냐. (일본) 천황에게 고개 숙여 절한 김대중이 친일파다”, “어떻게 장군님을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느냐”고 고함을 치면서 빈소를 지키는 관계자들과 잠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빈소 앞 복도에는 육군 의장대 10여 명이 부동자세로 예를 갖춘 가운데 고인이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황을 신성모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장면 등 사진 10여 장과 동영상이 전시됐다. 고인의 영정 앞에 놓인 태극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등은 생전의 위업을 증언하는 듯했다. 백 장군에겐 ‘살아 있는 6·25 전쟁 영웅’ ‘죽음보다 패전을 두려워한 용장’ 등 숱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6·25전쟁 발발부터 정전협정 체결 때까지 1128일간 1사단장과 최연소 육군참모총장 등을 맡아 숱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공산군과 격전을 치렀다. 1사단장 시절 최대 격전인 ‘다부동 전투’에선 공포에 질려 퇴각하는 부하들을 가로막고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수 없다”면서 “내가 앞장설 테니 날 따르라. 내가 물러서면 날 쏴라”라고 권총을 들고 독려해 승리를 일궜다. 이는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평양 진격의 발판을 만든 것으로 한미 양국군에 전설로 회자된다. 백 장군은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인정받는 전쟁 영웅이었다. 주한미군은 그를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들은 “한국전쟁의 영웅이신 백선엽 장군님”이라는 말로 이취임사를 시작하는 게 전통이 됐다. 그럼에도 고인은 생전에 ‘노병’으로 불러달라면서 “시대가 부여한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1군단장 시절 휴전회담의 초대 한국군 대표 당시 에피소드도 회자된다. 당시 맞은편의 이상조 북한군 소장이 빨간 색연필로 “제국주의의 주구는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고 쓴 것을 보여주며 자극했지만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고 그는 회고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일도 유명하다. 1949년 군 내 남로당 연루자를 가려내는 숙군 작업 당시 정보국장이던 고인은 남로당 연루 혐의로 조사를 받던 박정희 당시 소령의 구원 요청을 수용해 상부에 재심을 요청했고, 그 덕택에 박 소령은 불명예 제대로 처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고인은 1940년대 일본군(간도특설대) 복무 이력으로 친일파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와 광복회 등은 그가 자서전 등에서 언급한 간도특설대 활동 내용을 근거로 독립군을 토벌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그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독립군을 본 적이 없다.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강성휘 기자}

백선엽 장군의 장지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최종 결정됐지만 안장 위치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군 원로들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 데 이어 미래통합당이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나섰다. 반면 일부 단체들은 백 장군이 ‘친일파’라며 현충원 안장 자체를 반대했다.○ 군 원로들 “정부, 서울현충원 안장 의지 없다” 육군과 국가보훈처는 11일 백 장군 유족의 뜻에 따라 대전현충원 내 장군 2묘역 안장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백 장군이 별세한 다음 날인 11일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겠다는 의사를 육군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백 장군은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이자 6·25전쟁 영웅으로 평가돼 온 만큼 공로로 보면 현충원 안장 자격엔 문제가 없다. 다만 서울현충원은 1996년 장군 묘역이 다 찬 상태다. 대전현충원에는 장군 묘소를 위한 공간이 23곳 남아 있다. 애초 백 장군은 이명박 정부 당시부터 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이 다 찬 점을 고려해 서울현충원의 사회공로자 묘역에 안치하는 방안이 논의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현충원 안장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나타나자 유족들은 한때 경북 칠곡군의 6·25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 현장에 안장하는 것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백 장군 측 관계자는 “정부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아쉬움도 있다”고 전했다. 유족의 결정에도 일각에선 6·25전쟁 전사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서울현충원의 상징성을 감안해 백 장군을 이곳에 안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군 원로들 사이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현충원 내 국가원수 묘역이 다 찼음에도 안장됐던 사례가 거론되며 ‘정부의 의지가 결여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예비역 장성은 “대통령들도 산을 깎아 자리를 만들었다. 서울현충원에 안장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만 있었어도 해결됐을 문제”라고 했다. 육군협회도 11일 “백 장군이 서울현충원 전우들 곁에 영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예비역 장성 등 군 원로들은 11일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백 장군의 빈소를 찾아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백 장군은 생전에 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을 다녀가기도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 장관은 이에 “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이 다 찼다”면서도 “보훈처에 (원로들의) 의견을 다시 전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나라냐” vs “대전도 안 된다” 12일 빈소를 찾은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정세균 국무총리를 만나 백 장군의 서울현충원 안장을 촉구했다. 주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왜 동작동(서울현충원)으로 모시지 못하느냐고 항의했다. (노 실장은) 답변은 하지 않고 갔다”고 전했다. 그는 빈소 방명록에 “감사합니다 구국의 전쟁 영웅! 죄송합니다 잘 모시지 못해서!”라고 적었다. 주 원내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백 장군을 서울현충원에 모시지 못한다면 이게 나라인가”라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백 장군 별세 사흘째인 12일까지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해 온 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과거 친일 행위에 대해 생전 진심 어린 사과만 했어도 공도 높이 평가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걸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0명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 행위자의 시신, 유골을 파묘’하는 법을 발의했다. 여권에선 벌써부터 “법이 통과되면 백 장군도 이장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단체는 백 장군의 대전현충원 안장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군인권센터는 “백 씨가 갈 곳은 현충원이 아니라 야스쿠니신사”라고 주장했다.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도 “6·25전쟁 공로가 인정된다고 독립군을 토벌한 친일파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인가”라며 “진정 나라를 위해 살아온 영웅이었다면 조용히 선산에 묻히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신규진 newjin@donga.com·강성휘·이은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