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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달 플랫폼 업체인 ‘도어대시’에 이달 초 소다음료인 환타 1병을 배달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2.5달러짜리 환타 1병의 배달료는 5배가 넘는 13달러. 이 내용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배달비의 적정가를 놓고 한판 논쟁이 벌어졌다. ‘아이스커피 1잔 배달에 9달러를 냈다’는 등의 유사 경험담이 속속 올라왔다. 한국보다 인건비가 훨씬 비싼 해외에서도 배보다 배꼽이 커진 배달비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배달천국 한국에서도 ‘배달비 1만 원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급증하는 배달 수요를 라이더들의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면서 배달비가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이다. 폭설 등으로 배달이 어려워진 시간대의 배달비는 2만 원을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배달 플랫폼 업체들의 단건 배달(주문 1건당 한 곳만 배달) 경쟁이 불붙으면서 라이더들의 몸값은 계속 뛰고 있다. 유튜브에는 ‘연봉 5000만 원 라이더’ ‘자전거로 월 400만 원 벌기’ 같은 동영상들이 인기다. ▷배달비 부담은 결국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사용자들의 불만도 쌓여 간다. ‘배달공구(공동구매)’ ‘배달 끊기 챌린지’ ‘셀프 배달’ 같은 궁여지책들이 나오고 있다. “택시로 음식을 배달받는 게 차라리 더 쌌다”는 실험담도 나왔다. 배달비 부담이 커진 음식점 업체들도 울상인 것은 마찬가지다. 25% 안팎이던 음식점의 마진이 5%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심지어 그동안 적용받아 왔던 배달앱 수수료 할인제도 곧 줄줄이 종료된다. ▷정부가 다음 달부터 ‘배달비 공시제’를 시행키로 했지만 사용자들은 시큰둥한 분위기다. 플랫폼별 배달비와 거리별 할증요금, 최소 주문액 등은 이미 주문할 때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정보여서 가격 상승 제한에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인 라이더들의 공급 부족 문제를 놔두고 탁상공론식으로 미봉책을 내놓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내 배달 라이더는 현재 약 30만 명. 학교 교사 수보다 많아졌다지만 아직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이 오르는 시장의 작동원리 자체를 건드리기는 어렵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배달 수요가 줄어들면 배달비도 다시 떨어질 것이다. 개발이 한창인 배달용 드론, 로봇의 상용화도 배달시장을 흔들 변수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은 자영업자와 소비자 양쪽 모두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다. 배달을 중단하자니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사회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 배달 서비스라도 쓰지 않으면 식당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인 자영업자들에게는 대안도 없다. 배달비는 언젠가 적정선을 찾겠지만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지지율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지도자다. 9·11테러 직후 90%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은 이라크전쟁 장기화의 피로감 등으로 임기 말 25%까지 떨어졌다. 최고치와 최저치 모두 역대급 기록을 쓰면서 격차가 65%포인트나 벌어지는 기록을 남겼다. 국정동력을 잃은 그는 사활을 걸었던 연금개혁에 실패했고 결국 민주당에 정권을 내어주고 말았다. ▷20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줄곧 미끄러진 지지율이 최근 최저치인 33%까지 내려갔다. 1982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7명의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 꼴찌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다음으로 낮다. 미국인의 절반이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좌절감’을 느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제 아무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조.” 친(親)트럼프 성향 보수 논평가들의 조롱과 공격은 노골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율 반등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의 대혼란으로 시작된 추락세는 198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인 인플레이션과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 빈부격차 심화, 극심한 사회분열 등으로 악화 일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는 하루에 70만 명씩 쏟아지고, 2조 달러대 매머드급 투자법안은 의회 장벽에 가로막혔다. 회의석상에서 꾸벅꾸벅 조는 78세 고령의 지도자에게서 위기 돌파 리더십은커녕 개인적인 매력도 찾기 어렵다. ‘돌아온 미국’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지쳐가고 피로감은 불만을 넘어 분노로 바뀌어간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단순히 인기 순위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든의 추락은 당장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직격탄이 된다.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빼앗길 경우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중반부터 조기 레임덕 현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워싱턴의 컨설팅 업체들은 벌써부터 민주당의 대패를 점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4년에 백악관을 되찾겠다”고 공언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부활’은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과도 직결되는 폭탄급 대외변수다. ▷지지율이나 인기는 거품이다. 실력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꺼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정책 결과로 인정받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정권의 추락은 치솟았던 지지율만큼이나 극적으로 참혹하다. 반전 드라마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30%대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을 80%대로 반등시키며 연임에 성공하는 스토리를 썼다. 바이든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어떤 그래프를 그려낼지 궁금하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최근 한 유튜브 채널이 진행한 ‘마기꾼(마스크+사기꾼) 대회’에서는 시청자들의 댓글이 폭발했다. 마스크 착용 사진과 벗은 사진이 다른 ‘반전’에 진행자들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고등학생 같았던 동안이 푸근한 아줌마 인상으로 확인되면서 웃음보가 터지기도 했다. 마스크를 썼을 때 얼굴이 더 예쁘거나 잘생겨 보인다는 의미의 ‘마기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생겨난 신조어다. ▷‘마기꾼’의 실체를 입증하는 과학적 연구 결과들이 주목받고 있다. 영국 카디프대의 연구 결과 마스크를 쓴 남성 혹은 여성에 대해 이성(異性)들이 평가한 매력 점수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경우보다 높았다. 외모 호감도가 낮은 사람이 마스크를 쓴 경우 매력 평가 점수가 최대 42% 올랐다는 지난해 미국 성형외과협회 연구도 나와 있다. ▷연구진은 ‘과장을 일삼는 뇌의 작동 원리’를 이유로 설명한다. 마스크를 쓰면 시각 정보가 눈에 집중되는데, 그 나머지를 뇌가 메우면서 전체를 더 멋지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자인 닉 채터가 분석했듯 ‘훌륭한 이야기꾼’인 뇌가 일종의 자동 완성 기능에 희망적 상상력을 결합해 인간을 속인 셈이다. 바이러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는 의료 전문가 이미지까지 더해지면 점수는 더 올라간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마스크 착용에 대한 서구 국가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마스크 착용자는 감염병에 걸린 환자나 범죄자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지난해 2월 캐나다 요크대는 마스크 착용 시 사람을 알아보는 인지능력이 15% 떨어지고 상호 교감이나 소통에도 방해가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이런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바이러스 차단 외에 다른 목적을 마스크에 가미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정치 구호나 환경 캠페인 문구 등을 적어 넣어 메신저로 활용하는 경우는 이제 흔하다. 옷 색깔과 조화를 맞추거나 화려한 장식을 넣은 마스크로 패션에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전문가와 의료진은 이번 연구 결과를 “마스크를 써야 할 또 다른 이유”라고 반기고 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감추는 마스크의 문제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마스크로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차단하거나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면서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마스크가 없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여러 이유로 마스크의 존재감은 코로나19 기세가 꺾이더라도 한동안 이어질 듯하다. ‘위드 마스크’ 시대에 외모와 내면 모두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마기꾼 효과’를 기대한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한국에서 왔네요? BTS 노래 들어본 적 있어요.” 요즘 미국 주요 도시 공항의 출입국심사대 공무원들은 한국 여권을 내미는 방문자들에게 종종 이런 코멘트를 건넨다. 불고기를 먹어봤다거나 ‘오징어게임’을 봤다며 말을 건네기도 한단다. 출입국심사 담당자들이 깐깐하기로 악명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가운 환대다. 입국 목적과 숙소, 체류 기간 등을 취조당하듯 심사받는 다른 외국인과 달리 가볍게 심사대를 통과하면서 으쓱해졌다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여권 파워’가 최고조로 발휘되는 순간이다. ▷한국의 여권지수가 올해도 최상위권에 올랐다. 국제교류 전문업체인 헨리앤드파트너스가 발표한 여권지수에서 한국은 독일과 함께 2위에 랭크됐다. 1위인 일본, 싱가포르 다음이다. 한국 일반여권으로 비자(사증)를 받지 않고, 혹은 간단한 절차만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나라는 현재 126개국. 관용여권으로는 149개국에 이른다. 20위까지 상위권은 유럽, 북미 국가가 대부분이다. ▷헨리여권지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각국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출된다. 무비자 국가 및 비자면제 협정을 맺은 국가가 많을수록 점수가 높다. 비자면제 협정을 체결한 상대국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국력이다. 선진국의 경우 협상 상대국의 경제력이나 지위는 물론 시민의식까지 검증한다는 게 외교부의 귀띔이다. 불법 체류자가 많은 저개발국,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하는 국가나 지역은 비자면제 협상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북한은 104위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39곳에 불과하다. ▷한국의 여권 파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더 두드러진다.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해외 입국을 제한당한 국가들은 2020년 이후 여권지수가 줄줄이 떨어졌다. 방문국 도착 시 발급되는 도착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된 탓이다. ‘여행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차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동 자유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선진 부국인 미국과 영국조차 이런 이유로 6위에 머물렀다. 반면 전 국민이 고강도 방역에 동참한 한국은 순위가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손바닥 크기의 얇은 수첩 한 권에는 여권번호와 인적사항만 적혀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나라의 위상과 국력, 국제사회의 평가가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여권지수 2위’는 한국이 이뤄낸 그만큼의 경제적, 외교적 성취를 보여주는 성적표다. 전 세계적인 K콘텐츠 인기가 끌어올린 국가 이미지도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한국은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환영받으며 해외 입국심사대를 자유롭게 통과하는 나라가 돼 가고 있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일은 전 세계 대부분의 비참함의 근원이다. 거의 모든 악이 일에서 나온다.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미국에서 1985년 출판된 ‘일의 폐기’는 서문에서부터 과격한 주장들을 쏟아낸다.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했던 저자 로버트 블랙은 자본주의의 근로 시스템을 비판하며 현대인을 종속시키는 노동에 의문을 제기한다. 최근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는 미국의 ‘반(反)노동’ 온라인 카페도 이 책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개설된 ‘반노동(Antiwork)’ 온라인 카페의 회원 수가 급증하고 있다. 2018년 12월까지만 해도 1만 명 미만이었던 회원 수는 불과 3년여 만인 이달 160만 명으로 불어났다. ‘부자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무직(無職)!’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디지털 공간에서 회원들은 불합리한 처우와 근무 환경을 고발하고 퇴사 관련 정보들을 공유한다. ▷반노동이라는 단어는 국내에서 노동계를 탄압하고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돼 왔다. 반면 미국에서의 ‘반노동’은 임금근로자로 조직이나 상사에 매여 일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강해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근무 방식, 환경의 변화와 함께 일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미국의 경우 천문학적 규모의 코로나19 지원금과 실업급여로 여유가 생긴 것도 이유로 꼽힌다. ▷반노동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절반은 여전히 풀타임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일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다는 더 나은 근무 환경과 보상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표를 부추기는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대사직(great resignation)’ 현상을 심화시킨다. 단기간에 자산소득을 불려 조기 은퇴하려는 조급함이 ‘한탕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드는 ‘파이어(FIRE)족’들의 증가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의 양극화 심화, 집값 폭등, 상대적 박탈감이 가져온 세태다. ▷일의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무의미한 야근이나 서류 업무는 마땅히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저녁이 있는 삶’도 중요하다. 인재 확보를 고민하는 기업들로서는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이 노동의 의미 자체를 퇴색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일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그 안에서 보람과 가치를 찾아가는 게 목적이기도 하다. 또한 작용에는 항상 단기적인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 시대가 끝난 뒤 노동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하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1827년 미국 국회의사당의 중앙 로툰다홀에서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의 아들이 아버지의 정적이었던 앤드루 잭슨의 지지자에게 뺨을 얻어맞고 가격당한 것. 성난 애덤스 대통령의 재발 방지 요청에 의회는 이듬해 의회경찰 조직을 신설했다. 당시 의회경찰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190여 년이 지난 2021년 성난 미국인 2000명이 무기를 소지한 채 몰려와 의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라고는. ▷1·6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가 1주년을 맞았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캐피톨 힐’이 유혈 폭력사태로 얼룩지는 장면은 미국인들에게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민주주의를 자유, 인권과 함께 건국의 기본 가치로 여겨온 미국에 씻기 어려운 치욕으로 기록됐다. 현재까지 703명이 기소되고 70여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진상 규명과 처벌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최소 1년 이상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아직도 현상금을 걸고 일부 용의자를 추적 중이다. ▷2020년 대선을 거치면서 극단으로 치달은 사회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의 정점을 찍은 이 사건의 상흔은 깊다. 불신과 반목 속에 정치권은 1년이 지나도록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을 둘러싼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대외적 자존심의 상처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미국이 반민주주의적 정책을 지적할 때마다 “당신들 문제나 잘 해결하라”는 비아냥거림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해외의 권위주의,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반발에도 직면한다. 브라질과 멕시코, 페루 등지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을 놓고는 “미국발 파급효과(spill-over)”라는 책임론이 거론됐다. ▷1·6 사태는 왜곡된 트럼피즘(Trumpism)의 극단적 분출이다. 미국인의 40%는 아직도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극우음모론 집단 ‘큐어논(QAnon)’이 퍼뜨리는 각종 주장들은 여전히 물밑에서 스멀거리고, 이는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폭발적으로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처벌 여부는 이에 기름을 부을 뇌관이다.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6 사태로 미국이 200년 넘게 공들여온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데에는 불과 7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제단체의 보고서에서는 ‘민주주의 후퇴국’으로 분류됐고, 미국인 10명 중 6명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어디 미국뿐이랴. 최근 10년간 전 세계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민주주의의 이상이 온전히 현실화하는 데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한국은 특별한 나라다. 미국의 ‘전쟁 영웅’으로 평가받는 부친 크레이턴 에이브럼스 전 육군참모총장은 물론이고 두 형과 장인, 매형이 모두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본인도 한미 간 방위비분담금협정(SMA)을 비롯한 동맹 이슈가 산적했던 시기에 한국에서 2년 반 넘게 주한미군을 이끌었다.최근 화상인터뷰로 만난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집 근처에서 숯불고기 한국 식당을 찾아냈는데 김치 반찬을 다섯 번이나 추가로 시켜먹었다”며 웃었다. “사람들이 한국 근무가 어땠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정말 멋졌다’고 답해준다”며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퇴임 후에도 한국 관련 현안을 상세히 팔로업하고 있는 듯 최근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 내용과 전시작전권 전환 상황에 대해서도 막힘없이 설명을 풀어냈다.》 그는 한미가 SCM에서 발표한 새 전략기획지침(SPG)에 대해 “북한과 중국 등의 역내 (위협) 변화를 반영한 매우 중요한 결과물”이라고 평가했고, 주한미군 규모를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조항이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한국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재확인한 상징적 조치”라고 했다.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서는 조건 충족에 필요한 예산 증액 및 한국군의 역량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이 부임 때부터 화제였다. “39년이 넘는 군 복무 중 주한미군사령관으로 한국 근무를 하게 된 것은 내 인생과 경력에서 정말 영광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미군이 들어본 적도, 알지도 못했던 땅에서 싸웠다. 나는 내 아버지와 두 형제의 헌신, 여기에 더해 150만 명에 이르는 한국전 참전 미군들의 헌신을 지켰다. 이것은 우리의 엄숙한 의무다. 미국은 한국을 폭정과 공산주의, 사회주의로부터 지켜내겠다고 약속했다. 아내와 나는 한국인을 사랑한다. 우리는 평생 갈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었다. 한국의 군 장성들과는 ‘배다른 형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다.” ―한미가 최근 발표한 새 전략기획지침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번 안보협의회의 가장 중요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이것은 내가 2019년부터 줄곧 요구해왔던 것이었다. 이 지침은 한국 방어에 대한 우리의 작전계획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매우 중요한 문서다. 이전의 지침이 만들어진 게 2010년이었는데 이후 한국은 물론이고 (인도태평양) 지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북한은 이제 고체연료 탄도미사일과 지대공 순항미사일을 보유했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했다. 중국은 어떤가. 2018년 이후 중국 항공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횟수가 300% 증가했다. 중국 공군은 러시아와 연합훈련을 하면서 한반도 상공을 일주했다. 중국은 일본과 대만, 필리핀의 영해와 영공은 물론이고 남중국해까지 항공 및 해상 병력을 크게 늘렸다. 11년 전에는 없던 큰 변화다. 전략기획지침은 이런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새 지침은 이런 변화를 모두 반영하고 있나. “또 다른 가장 큰 변화로는 한국의 국방개혁 2.0이 있다. 이에 따른 한국의 병력 감축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출산율 저하와 이로 인한 인구통계학적 변화 때문에 한국 정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국방개혁 2.0이 완료되면 대한민국 육군은 10만 명이 줄어든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북한의 공격이 있을 경우 새로운 전략지침의 관점에서 한국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새 지침이 2년 전에 승인됐더라면 좋았겠지만 이제 나왔으니 됐다. 많이 늦어졌다.” ―지난해 주한미군 감축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만8500명이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인가. “이 문제는 한미동맹에 관한 것이다. SCM 공동성명에 주한미군의 수를 명시한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재확인한 상징적인 조치다. 동시에 이것은 한국인을 향해 ‘미국이 함께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의 병력 규모는 적당하다고 본다.” ―전시작전권 전환에 필요한 조건 충족을 위해 어떤 부분을 더 채워야 하는가. “한미 양국은 2007∼2013년 시한을 설정하고 전작권 전환을 추진해 왔지만 막상 시한이 다가오자 한국 정부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계속 연기됐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임의적 시한 대신 조건에 기반을 둔 전환을 하자’고 했던 거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첫째, 한국군이 연합군을 이끌 수 있는 핵심 군사 역량의 확보를 위해 26가지 과제를 충족해야 한다. 두 번째는 한국이 항공 타격 능력과 미사일방어시스템(MDS) 역량을 갖추고 이를 연계, 통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무기체계 및 장비 등의) 역량 확보가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전작권 전환을 할 수 있는 안보환경이 되는지에 대한 정보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 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으로 보나. “몇 년(several years) 더 걸릴 것이다. 아마도 2028년쯤 될 것으로 본다. 필요한 역량을 모두 획득하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리고 돈도 많이 든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재임 당시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축소, 민간 시위로 인한 훈련장 사용 부족 등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공개석상에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준비태세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작심발언을 하기도 했다. ―훈련 부족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쓴소리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전 훈련을 위한 접근권을 확보하는 것은 지난 10년간 어려운 과제였다. 한밤중에 포격과 총소리, 헬리콥터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는 시민들의 불만 제기에 정부가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을 이해한다. 로드리게스 실탄 사격장에서의 오발 사고도 있었다. 미국은 재발을 막기 위해 700만 달러를 투입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좋은 방문객이 되고 싶고, 한국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준비태세를 갖추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은 긴장이 완화되고 도발도 줄어든 상태지만 이 상황은 당장 다음 주에라도 바뀔 수 있다. 한국 측 카운터파트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처음으로 대중연설을 하게 됐을 때 나는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준비태세를 유지해야 할 한미연합사령관으로서의 신성한 책임이 있었다. 한국인들 앞에서 정직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주한미군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2020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합의에 이르지 못해 미군기지 내 군무원들이 무급휴직 상태에 놓였을 때였다. 내가 사랑하는 한국인들과 미국 국방부 직원들이 거기에 있었다. 이들은 내 사람들이다. 노부모를 모시며 가족을 챙기고 아이들을 먹이고 집세를 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무급휴직은 끔찍했다. 고맙게도 한미 양국이 인건비 우선 지급에 합의하면서 석 달 만에 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1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내용은 군인으로서 그의 자부심과 동맹에 대한 단단한 확신으로 가득했다.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을 지켜 달라”였다. “한미 관계는 롤러코스터처럼 부침을 거듭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에 대한 신뢰를 잃지 말라. 왜냐하면 이것은 정말로 중요하니까.”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1960년 출생△ 1982년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 2015년 8월∼2018년 10월 미국 육군 전력사령부 사령관△ 2018년 11월∼2021년 7월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미국이 주도한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과 민주주의 정상회의로 미중 갈등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협의체)’와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가 결성한 3자 협의체)’를 출범시키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이 신냉전의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정체에 빠진 북핵 문제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 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허드슨연구소에서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이사장 남시욱)과 한미안보연구회가 공동 주최한 제35회 국제안보학술회의에서 한미 안보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과 북핵 문제를 두고 한국의 바람직한 외교 전략에 대한 격론을 벌였다.》 “한국은 아시아의 ‘콕핏(cockpit·투계장)’이다.” 니컬러스 에버스탯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미중 갈등이 한국 안보에 미칠 영향을 언급하며 이같이 지적했다. 에버스탯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억제(deterrence) 정책과 대중국 유화정책이 있었지만 지금 이 두 정책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1971년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던 헨리 키신저의 중국 방문으로 열린 미중 데탕트 시대가 미중 갈등으로 막을 내리고 있는데다 중국, 북한의 핵위협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지면서 한반도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 특히 한미 안보전문가들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핵무기 사용 조건을 상대의 핵공격 위협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단일목적(sole purpose)’ 원칙을 도입하면 한국에 제공된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이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윌리엄 뉴컴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위원은 “불확실성이 있으면 상대가 모든 가능성에 대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핵우산 약속에는 불확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의 핵재무장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이제 대북정책은 어떻게 북핵을 억제하고 동맹의 안전을 보장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핵균형(nuclear parity) 전략을 내놨다. 원자력 핵잠수함 배치 등을 통한 미국의 핵우산 강화는 물론 전술핵 재배치, ‘환태평양 민주 핵동맹(Trans-Pacific Democratic Nuclear Alliance)’이 필요하다는 것. 이에 대해 뉴컴 전 위원은 “한국의 핵개발에 대해 100% 반대한다”며 “(한국의 핵무장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해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미중 갈등 격화 속에 한미 동맹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감소되고 있는 만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과 밀착하기보다는 한미관계 및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고든 창 변호사 겸 대북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팬데믹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 됐다”며 “김정은은 2020년 1월 중국과의 국경을 폐쇄하도록 명령하면서 북한과 중국의 무역 규모는 80% 이상 떨어졌다”고 했다.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한일 간 관계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임스 듀랜드 국제한국학회지 편집장은 “문재인 정부가 일본과의 협상에서 안보·경제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했지만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2021년 국방백서에 중국을 일본의 가장 중요한 위협으로 지목했다”며 “이 같은 중대한 변화로 (일본이) 어떠한 형태의 3자 협력도 추진할 전망이 극도로 낮아졌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병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북핵·미사일 위협이 상존하는 만큼 일본은 한국 미국과의 3자 협력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라며 “한국은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 일본 등과 동맹 체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선 대북제재의 실효성을 높여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존 틸럴리 한미안보연구회 공동회장은 “근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북한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북한의) 잔인한 독재를 멈출 수 있냐는 것”이라며 “사이버 억지(cyber deterrence)와 북한 정권 핵심을 겨냥한 더욱 강력한 제재 등 다양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北인권, 남북대화에 밀려선 안돼… 대북전단법 폐기를” “김정은과 대화로 인권 해결 못해… 北주민에 직접 실질적 정보 줘야”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안보학술회의 중 ‘인권과 한반도의 미래’ 세션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인권문제를 후순위로 미루는 접근방식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조지 허친슨 한미안보연구회 이사는 “북한 인권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핵무기나 식량부족, 남북간 협력 부족이 아니라 북한의 헌법과 인권을 부정하는 정권”이라며 “지금까지 인권문제가 이런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종속되는 의제가 돼 왔다”고 지적했다. 대북 압박 차원에서 강조되기도 했던 북한의 인권문제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북한의 관여를 촉진시키기 위해 후순위로 밀렸고 결국 완전히 방기돼 버렸다는 진단이다. 허친슨 이사는 “한국에서 북한 인권은 보수와 진보 간 이념적 논쟁의 대상”이라며 “보수와 진보 양쪽의 접근방식에서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진보 쪽에서 더 많은 진척이 필요하다”며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북한의 논리도 받아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보수 진영을 향해서도 “인권문제를 무기화해선 안 된다”며 쓴소리를 했다. 그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인권에 관심이 전혀 없는 김정은 정권을 상대하지 말고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해야 한다”며 대북전단법의 수정 혹은 폐기를 촉구했다. 또 2016년 통과된 북한인권법 등 한국이 갖고 있는 북한인권 관련법들부터 충실히 이행하라고 조언했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가 열린 12월 10일이 ‘세계인권의 날’임을 상기시킨 뒤 한국이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불참한 결정을 비판했다. 그는 “유엔이 북한인권결의안을 매년 채택하고 이 문제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반인권 범죄로 다뤄질 가능성을 인식한 북한이 인권 문제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며 한국과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앞으로 몇 달 안에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검토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한 북한의 봉쇄정책이 풀리는 시점에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교수는 “북한 인권에 대한 지난 30여 년의 기록은 완전한 실패”라며 “중단기적으로 북한 인권침해와 군사적 도발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외부 정보가 유입되고 경제 협력이나 지원이 이뤄지면서 인권상황이 개선되는 연쇄 효과는 북한에서는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학술회의 참가자 명단◆ 개회사▽ 개회 연설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 공동회장(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존 틸럴리 한미안보연구회 공동회장(전 한미연합사령관)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오인환 국제한국학회 부의장브루스 벡톨 미국 텍사스주 앤젤로주립대 교수◆ 패널토의1(사회: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 발표자 △ 제임스 듀랜드 국제한국학회지 편집장 △ 고든 창 변호사 겸 대북 전문가 △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토론자 △ 윌리엄 뉴컴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위원 △ 최병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 니컬러스 에버스탯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 오찬 연설 △ 존 틸럴리 한미안보연구회 공동회장(전 한미연합사령관)◆ 패널토의2(사회: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 발표자 △ 조지 허친슨 한미안보연구회 이사 △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 △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교수▽ 토론자 △ 트로이 스탠거론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 브루스 벡톨 미국 텍사스주 앤젤로주립대 교수 △ 홍성표 아주대 교수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3년간의 특파원 근무 종료를 앞두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한 관계자에게 ‘앞으로 어떤 기자가 워싱턴에 오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경제와 기술, 인공지능(AI) 같은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정치와 외교안보의 중심인 워싱턴에 경제 전문가를? 멈칫하는 기자에게 그는 “미국이 요즘 대외적으로 ‘경제안보’ 이슈들에 얼마나 진심인지 안 보이느냐”고 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달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방한 행보는 인상적이었다. 11년 만이라는 USTR 대표의 한국 방문은 일본, 인도를 아우르는 아시아 순방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가 무려 50분간 한국의 한 라디오방송과 인터뷰를 가진 것은 워싱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번 주에는 호세 페르난데스 국무부 경제차관이 한국을 찾는다.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 참석이라는 목적 자체는 새로울 게 없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새 변이인 오미크론 확산 우려가 커진 시점에 방한해 대면 회의를 강행한다는 데 눈길이 간다.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 열린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에 참석하려던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방한을 취소하고 화상회의로 돌린 것과 대조적이다. 외교안보의 관점에서 글로벌 경제를 들여다보고 이를 정책적으로 엮으려는 미국의 시도는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면서 급속히 속도를 내고 있다. 백악관이 직접 주재한 반도체 공급망 대책회의에는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장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동시에 참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해외에서 공급망 회의를 주재하는 등 직접 나선다. 워싱턴발 경제 기사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21세기의 쌀’이라는 반도체의 공급 부족 문제를 놓고 기자는 삼성,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의 워싱턴 사무소를 취재했다. SK와 LG의 배터리 분쟁을 놓고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결정 체계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물류대란과 인플레이션 악화 속에 ‘테이퍼링’을 비롯한 미국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챙겨야 했다. ‘대포동 미사일’ 같은 북한의 무기 이름이 훨씬 익숙한 기자에게 이런 미션들은 때로 낯설고 막막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중 간 패권 경쟁에서 결국 핵심은 경제”라고 말한다. 군사력 증강과 대만해협 같은 외교안보 이슈도 중요하지만, 중국의 부상을 막겠다는 미국의 근본적인 문제 인식의 핵심은 경제에 꽂혀 있다는 말이다. 아시아 경제블록을 구축해 주도권을 쥐려는 기 싸움도 팽팽하다. 한 당국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라니까(It‘s the economy, stupid!)’를 새삼 상기시키며 “요즘 외교안보 상황에서 이 문장이 자주 생각난다”고 말했다. 요즘 워싱턴의 주요 인사 중에서 북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종전선언도 여기서는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북한 문제는 한국에 여전히 최우선 순위의 안보 이슈이지만, 여기에만 매달리기에는 경제와 기술 패권 등 분야에서 미중 간 전략 경쟁이 너무 정신없이 돌아간다. ‘경제안보’가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는 흐름 속으로 맹렬히 달려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재명, 윤석열 대선캠프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들이 경제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파원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는 기자도 내년에는 5G 같은 통신과 기술, 경제 공부를 더 할 생각이다. 경제가 결국은 국가안보니까.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글로벌 안보의 물밑 흐름을 잡아낼 수 없는 시대가 됐으니까.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백악관 비밀경호국(SS)의 한국계 총책임자가 연말 퇴직 후 월스트리트의 새 직장으로 옮긴다고 블룸버그통신이 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SS 총책임자인 데이비드 조(사진)는 현직에서 물러난 뒤 내년 1월 3일 뉴욕의 헤지펀드 그룹인 시타델의 보안 담당 부책임자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억만장자 케네스 그리핀이 만든 헤지펀드 그룹 시타델은 운영자금 규모가 430억 달러에 이른다. 데이비드 조는 백악관 SS에서 25년 이상 근무했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SS 대통령경호국을 담당하는 총책임자 자리까지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SS의 ‘넘버 2’에 올랐다가 바이든 대통령 취임 때부터 그를 경호하는 최고 책임자가 됐다. 취임식 때부터 줄곧 바이든 대통령을 밀착 경호하며 어디에서나 그와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계속 찍혔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미국 보건당국이 9일(현지 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추가 접종) 대상을 기존 18세 이상에서 16세 이상 청소년으로 확대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어린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방침을 밝힌 오스트리아는 내년 2월부터 접종 거부자에게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날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지 6개월이 넘은 16∼17세 청소년에게 부스터샷을 접종할 수 있도록 긴급사용을 승인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로셸 월렌스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도 FDA의 결정이 나온 직후 이를 승인하면서 “16, 17세 청소년들은 백신 2차 접종을 한 지 6개월이 되자마자 부스터샷을 맞을 것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앞서 화이자 측은 부스터샷이 항체 생성량을 늘려 코로나19 새 변이인 오미크론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이 연령대에 부스터샷 승인이 난 백신은 현재까지 화이자 백신이 유일하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19일 18세 이상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부스터샷 접종이 허용된 뒤 백신 2회 접종 완료자의 25%인 5000만 명 정도가 부스터샷을 맞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의 볼프강 뮈크슈타인 보건장관은 9일 “3개월마다 정해진 날까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14세 이상을 대상으로 최대 3600유로(약 479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신부와 의학적 이유로 접종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의무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다. 과태료 액수는 소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부의 접종 의무화안은 야당도 대체로 지지하고 있어 의회에서도 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스트리아는 최근까지 인구(904만 명)의 약 68%가 백신 접종을 완전히 마쳐 유럽에서 접종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지난달 하순에는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1만5000명을 넘기도 했다. 호주는 5∼11세 아동의 화이자 백신 접종을 10일 승인했다. 1, 2차 접종 간격은 성인(3주)보다 긴 8주를 권고했다. 독일은 9일 과거 병력이 있는 5∼11세를 대상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권고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미국 보건당국이 9일(현지 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의 접종 대상을 기존 18세 이상에서 16세 이상 청소년으로 확대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날 화이자-바이오엔테크 코로나19 백신의 접종을 완료한 지 6개월이 넘은 16~17세 청소년에게 부스터샷을 접종할 수 있도록 긴급사용을 승인했다고 이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FDA의 이날 결정은 부스터샷이 항체를 키워 코로나19의 신종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는 화이자 측의 연구 결과가 나온 직후에 내려졌다. 로셸 월렌스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FDA의 결정이 나온 직후 곧바로 이를 승인했다. 월렌스키 국장은 부스터샷이 바이러스 방어에 효과가 있다는 초기 연구 데이터를 인용하며 “16세와 17세 청소년들은 백신 2차 접종을 한 지 6개월이 되자마자 부스터샷을 맞을 것을 권장한다”고 했다. 이 연령대에 부스터샷 승인이 난 백신은 현재까지 화이자 백신이 유일하다. 모더나와 얀센 백신은 아직까지 18세 이하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부스터샷 승인을 받지 못했다. CDC에 따르면 16세와 17세의 미국 청소년 중 3분의 2에 달하는 550만 명은 최소 1회 이상 백신을 접종했고 470만 명은 2차 접종까지 마쳤다. 이중 2차 접종을 한 지 6개월이 넘어 부스터샷을 맞을 수 있는 청소년은 260만 명이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전국어린이병원(NCH) 감염병 책임자인 옥타비오 라밀로 박사는 “16, 17세 청소년들은 집 밖에서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이들과 지역사회를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16세 미만 어린이들에 대한 부스터샷 접종의 승인 여부는 추가 분석 결과가 나와야 판단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19일 18세 이상 모든 성인을 상대로 부스터샷 접종이 허용됐다. 현재까지 백신 접종을 끝낸 사람의 25%인 5000만 명 정도가 부스터샷을 맞았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백악관 비밀경호국(SS)의 한국계 총책임자가 연말 퇴직 후 월스트리트의 새 직장으로 옮긴다고 블룸버그통신이 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SS 총책임자인 데이비드 조는 현직에서 물러난 뒤 내년 1월 3일 뉴욕의 헤지펀드 그룹인 시타델의 보안 담당 부책임자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억만장자 켄 그리핀이 만든 헤지펀드 그룹 시타델은 운영자금 규모가 430억 달러에 이르는 대형 펀드다. 데이비드 조는 백악관 SS에서 25년 이상 근무했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SS 대통령경호국을 담당하는 총책임자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SS의 ‘넘버 2’에 올랐다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때부터 그를 경호하는 최고 책임자가 됐다. 취임식 때부터 줄곧 바이든 대통령을 밀착 경호하며 어디에서나 그와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지속적으로 포착됐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북-미 정상회담 당시 세부 경호 사항을 북측과 협상하고 관련 내용을 꼼꼼히 점검해 진행한 공로로 2019년 국토안보부로부터 우수 공직자에게 수여하는 금메달을 받았다. SS 내에서는 아시아계 소수인종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통령 경호에 필요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전 세계 110개국 정상을 모아 주최하는 이틀간의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9일(현지 시간) 열렸다. 이에 반발해 온 비초청국 중국은 하루 전인 8일 100여 개국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대규모 인권포럼을 개최하며 맞불을 놨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 화상으로 진행한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쇠퇴해 왔다는 통계를 인용하며 “민주주의를 새롭게 하는 것은 각 세대가 노력해야 하는 시급한 문제로 이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글로벌 도전들에 의해 더 악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권위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워 해외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그들의 억압적 정책을 ‘더 효과적인 것’으로 정당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에 초대하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로 불린 존 루이스 전 미국 하원의원이 생전에 남긴 ‘민주주의는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다’라는 말을 언급하기도 했다. 각국 정상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이날 회의에서 민주주의 증진과 이를 위한 글로벌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의 반발에도 미국이 보란 듯이 초청한 대만은 샤오메이친 주미 대만대표부 대표가 참석했다. 맞대응을 하고 나선 중국은 전날 베이징에서 개막한 ‘2021 남남(南南) 인권포럼’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축하 서한을 보내 “세계 각국은 자기 나라 실정에 맞는 인권 발전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9일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서한에서 “중국은 시대 조류에 따른 인권 발전의 길을 성공적으로 걷고 있다”며 “14억 인민이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남(南南)’은 지구 남반구에 개발도상국이 몰려 있다는 데서 나온 말로, 서방국 중심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대다수 개도국이 초청됐음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중국은 미국이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뒤 서방국들이 잇따라 동참하는 흐름을 막기 위해 자국을 겨냥한 인권 공세 차단에 부심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친강(秦剛) 주미 중국대사의 내셔널인터레스트 기고문과 관영매체의 선전 공세를 통해 “세계에는 미국식 민주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실정에 맞는 인민민주주의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본회의 첫 세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인류가 민주주의와 함께 역사상 경험한 적이 없는 번영을 이루었지만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불평등과 양극화, 가짜뉴스, 혐오와 증오 등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개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확고히 보장하되 모두를 위한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하며 가짜뉴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킬 자정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반세기 만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극복하면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적극 협력하고 기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베이징 겨울올림픽, 종전선언 등 중국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북부의 한 대로변을 찾았다. 도로 전체가 공사로 한창이었다. 근처의 대형 고속도로와 동네 국도를 잇는 진입로를 건설하기 위해 서너 대의 굴착기가 쉴 새 없이 땅을 파고 있었다. 인부들 또한 바쁘게 현장을 오갔다. 한 히스패닉계 인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거의 일을 하지 못했는데 최근에 다시 시작했다”며 “곳곳에서 공사가 많아 일을 할 기회가 더 많아질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5일 미국 의회가 1조2000억 달러(약 1440조 원) 규모의 ‘인프라투자 및 일자리 법(IIJA·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을 통과시키면서 최근 미국 전역에서는 도로 항만 교량 상수도 건설, 인터넷망 구축 사업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1930년대 루스벨트 행정부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 정책을 폈던 것처럼 조 바이든 행정부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을 이겨내고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굳히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전체가 거대한 공사판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최강대국의 낙후된 현실 미국은 21세기 들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지출하는 바람에 정작 국내에는 많은 예산을 쓰지 못했다. 넓은 국토를 보유해 50개주 곳곳에 행정력이 미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인프라 상태가 낙후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인프라 분야 경쟁력 순위에서 미국은 141개국 중 13위(2019년 기준)에 머물고 있다. 1위인 싱가포르, 2위 네덜란드에 이어 일본(5위) 한국(6위) 독일(9위) 아랍에미리트(12위)보다도 떨어진다. 분야별 성적표를 보면 전기 공급 인프라와 상수도에서 23위, 철도 분야에서 48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악관의 분석 또한 다르지 않다. 백악관이 지난달 내놓은 인프라 현황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고속도로와 주요 도로의 약 20%, 전체 길이로는 17만3000마일(약 27만6800km)에 이르는 도로 상태가 열악한 것으로 판정됐다. 보수가 필요하다고 분류된 교량 또한 4만5000개에 달했다. 보수가 필요한 버스는 2만4000대, 기차는 5000대, 기차역은 200개로 집계됐다. 공항과 항만의 효율성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내 공항은 세계 상위 25위 국제공항에 단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미국 항만 역시 세계 상위 50위 안에 한군데도 포함되지 못했다. 4년마다 한 번씩 미국의 인프라 상황을 점검해 등급을 매기는 미국 토목학회는 3월 발표한 올해 평가에서 미국 인프라 시설을 ‘C―’로 매겼다. 4년 전 ‘D+’보다 조금 낫지만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 따내기’ 경쟁도 치열 낙후된 인프라와 국내 투자 부족, 이에 대한 미국인의 불만은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창한 ‘미국 우선주의’가 힘을 얻은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인프라투자 법안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현 상황을 완전히 바꾸겠다며 추진한 대표적 야심작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특히 이 법안이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직 최종 통과되지 못한 사회복지 법안 등과 함께 향후 10년간 최대 매년 15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백악관의 계산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법안이 내수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되도록 공사에 필요한 자재는 미국산을 우선 사용할 것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1억2000만 달러 중 가장 많은 1100억 달러는 도로와 교량의 보수 및 신규 건설에 쓰인다. 철도(660억 달러), 대중교통(390억 달러), 공항(250억 달러), 항만(170억 달러) 등에도 상당한 돈이 책정됐다. 브로드밴드 등 초고속 인터넷망 투자에도 650억 달러를 투입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역점 사업인 기후변화 대응에도 상당한 돈이 쓰인다. 버스 여객선 등 화석연료 비중이 높은 대중교통에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75억 달러가 투입된다. 또 다른 75억 달러는 미국 전역에 전기차 충전소 50만 개를 새로 짓는 데 쓰인다. 지역별로는 50개 주 중 각각 인구 2위와 1위 주인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에 가장 많은 돈이 할당됐다. 50개 주정부, 건설업계, 법률회사, 로비회사 등은 1조2000억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타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워싱턴의 대형 법률회사 넬슨멀린스에서 건설 분야 자문을 맡고 있는 로버트 앨퍼트 파트너 변호사는 “건설, 엔지니어링, 회계 등 관련 업계의 주요 회사 및 기관들은 인프라 법안 통과 전부터 물밑 작업을 활발하게 시작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을 때부터 인프라 법안 등을 통해 많은 돈이 풀릴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고 설명했다.中 견제까지 노리는 다목적 투자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 핵심 목표인 중국 견제와도 맞물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관세 부과 및 제재 등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미국의 본질적 경쟁력을 확 높여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의도다. 바이든 대통령 또한 지난달 뉴햄프셔주 연설에서 “인프라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의 인프라 투자가 20년 만에 중국을 앞선다”며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켜 내수를 부양하고 중국 또한 견제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인프라 투자 순위는 현재 전 세계 36위를 기록하고 있다. 순위 자체는 높지 않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금액은 미국을 훨씬 앞선다. 미국은 이번 인프라 법안 통과 전까지 GDP의 불과 1.2%만 인프라에 투자했다. 반면 중국은 5.6%를 투자하고 있다. 특히 첨단 정보기술(IT) 분야의 투자는 미국을 훨씬 앞선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중국에는 이미 3만5000km의 초고속 철도망이 깔려 있고, 2035년에는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채드 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관세를 더 많이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자체의 비즈니스와 인적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프라 투자뿐 아니라 미국 노동자의 사회안전망,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체계 등도 중국보다 뒤떨어진다며 미국 사회 전체가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한국계 영 김 의원(사진)과 마이클 매콜 의원 등 미국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35명은 7일(현지 시간) “북한 정권의 비핵화 약속이 없는 일방적인 한국전쟁 종전선언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김 의원 등은 이런 내용을 담은 공동 서한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앞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한에서 “종전선언은 한반도의 미군과 지역 안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며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하기 전에 미군의 한반도 철수를 고려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은 미국 안보에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고 미국 한국 일본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들이 미국에서 열린 심포지엄 화상 회담에서 맞붙었다. 양측은 워싱턴의 주요 외교안보 전문가와 학계 인사들 앞에서 대북, 대미 정책 등을 놓고 서로 다른 접근법과 관점을 드러냈다. 7일(현지 시간) 워싱턴 인근 샐러맨더 리조트에서 최종현학술원이 주최한 ‘트랜스 퍼시픽 대화’에 이 후보 측에서는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지낸 위성락 전 러시아대사가, 윤 후보 측에서는 캠프의 외교안보 정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화상으로 참석했다. 김 교수는 외교부 2차관을 지냈다. 먼저 발언한 위 전 대사는 “이재명 후보의 대북정책은 이데올로기적이고 유화적이라는 오해를 자주 받는데 사실이 아니다”며 “이 후보는 대북정책에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 후보가 자신 같은 실용주의자를 선거대책위 실용외교위원장 자리에 앉힌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위 전 대사는 이 후보의 대북정책 방향으로 △제재와 압박 및 인센티브 병행 △평화 구축과 비핵화 프로세스 각각의 진전 및 시너지 모색 △국제사회의 협력과 남북대화의 상호 보완적 작동 △단계적 접근(step by step) 등을 소개했다. “유연한 방식으로 대북 관여와 협상을 추진하면서도 북한의 잘못된 행동과 약속 파기에는 정면 대응하겠다”고 했다. 반면 김 교수는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면서도 “지난 30년간 쉬운 단계를 앞세웠던 시도로는 지속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북한이 첫 단계부터 어려운 조치들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이 비핵화 성과를 낼 때까지 국제사회의 제재는 유지돼야 한다”고 했고 이 후보 측이 주장해온 ‘스냅백(snap back) 방식’의 제재 완화에 대해선 “북한이 신뢰를 깨더라도 제재를 되돌리기 쉽지 않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며 평화협정과 함께 가야 하는 종전선언을 왜 이 시기에 따로 떼어내 별도로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미 간 외교+국방(2+2) 장관회의 외에 외교+경제 장관이 머리를 맞대는 또 다른 ‘2+2’ 회의를 신설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데 이어 9, 10일 열리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통해 대중국 압박 수위를 끌어올릴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첫 화상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긴장 완화를 시도한 지 약 3주 만에 다시 미중 갈등이 급속히 고조되는 분위기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7일(현지 시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해 설명하는 사전 브리핑에서 이번 회의의 목표가 권위주의, 부패, 인권침해 대응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회의는 공동 대응을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들에 맞서는 것”이라며 민주주의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놓겠다고 했다. “언론인을 보호하고 미디어 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 민주사회에서 기술의 역할 등을 논의하는 세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브리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대만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었다. 브리핑을 진행한 고위 당국자는 정상회의에 초청된 110개국 중 대만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만은 선도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투명하고 적극적이며 활기찬 민주주의 증진과 관련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강력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만은 또 새로운 기술을 더욱 투명한 정부 운영을 위해 사용하고 허위정보에 맞서는 보호장치를 실행하는 데도 글로벌 리더”라고 치켜세웠다. 이 당국자는 대만의 참여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대만은 전체주의에 맞서고 대내외적으로 인권 존중을 증진한다는 정상회의 목표에 의미 있는 헌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대만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초청한 것을 두고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해 ‘전체주의’와 ‘인권 유린’에 맞서는 대만의 역할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압박도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우즈라 제야 미국 국무부 시민안보·민주주의·인권 담당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이 민주주의 정상회의 기간에 한국 일본 같은 동맹과 올림픽 보이콧에 대해 논의할 것이냐’는 질문에 “올림픽과 관련한 우리 입장을 매우 명확히 했다”며 “우리는 그것을 전 세계 파트너들과 공유했고 일반 대중과도 공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가운데 청와대가 “현재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중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보이콧에 동참할 경우 한중 관계에 후폭풍이 클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미 동맹국인 호주 뉴질랜드가 보이콧 동참을 선언한 데 이어 영국과 일본 정부도 보이콧 수위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느낄 압박감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8일 “미국이 보이콧을 발표하기 전 우리 측에 미리 알렸고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외교적 보이콧을 할지는 각국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 핵심 관계자는 “최소 차관급 이상으로 정부 사절단을 꾸려 올림픽에 참석해야 한다고 본다”며 참석에 무게를 뒀다. 극도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올림픽까지 두 달 가까이 남은 만큼 시간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 사절단의 참석 여부를 미리 공개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9, 10일 바이든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첫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 등 세계 110개국 참석자들에게 보이콧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백악관은 7일(현지 시간) “이번 회의는 권위주의와 부패, 인권 유린에 맞서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 정부는 8일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정부 “올림픽 사절단, 최소 차관급 이상”… 보이콧땐 中보복 우려 美의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 않기로청와대가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에 일단 동참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8일 밝힌 건 결국 보이콧에 대한 중국의 강한 거부감과 경제적 보복 가능성, 남북 관계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8일 “최소 차관급 이상으로 사절단을 꾸려야 한다”고 했다. 미중 간 선택을 요구받는 ‘외교적 딜레마’ 속에서 중국 인권을 문제 삼은 동맹국인 미국의 보이콧에 참여할 경우 생길 이득보다 한중 관계에 미칠 파장으로 인한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청와대는 “정부의 올림픽 참석과 관련해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도 함께 내놓았다. 청와대는 개막식 직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 사절단의 참석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직접 동참 압박에 나설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어 올림픽 개막식 전까지는 최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갈등의 중심에 서는 것을 피해 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장 중국 외교부는 이날 우리 정부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한중 간) 상호 지지는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를 보여주고 ‘올림픽 공동체’라는 점을 표현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6일(현지 시간)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화하기 전부터 보이콧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청와대를 중심으로 외교부 국가정보원 등까지 의견을 조율해 동참 여부에 따른 득실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8일 “보이콧 동참을 하지 않는다는 방향성은 며칠 전부터 어느 정도 정해졌다”며 “전날 미국이 보이콧을 공식 선언한 뒤 우리 입장을 집중 조율했고, 동참하지 않는 방향으로 오늘 오전 내부 방침을 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일단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기로 한 건 미국의 공식 선언 후 중국의 반발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 다른 관계자는 “중국이 즉각 ‘결연한 반격’을 예고하지 않았느냐”며 “이 메시지는 미국보다는 보이콧 동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동맹국들을 겨냥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최근 요소수 부족 사태에서 보듯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상황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올림픽을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에 반전을 꾀할 계기로 삼으려는 기대도 하고 있다. 다만 청와대는 향후 미국의 동참 요청 수준과 미 동맹국들의 보이콧 동참 릴레이 현실화 여부를 변수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경제 분야 등 다른 영역과 연계해 보이콧 동참 메시지를 전할 경우 원점에서 다시 우리 입장을 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북한의 올림픽 참석 여부도 변수다. 북한은 올해 도쿄 올림픽에 앞서 일방적으로 불참을 통보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징계를 받아 올림픽에 선수단 파견이 어려워진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다. 북한의 조기 불참이 확정되면 우리로선 올림픽에 동참할 이유 중 하나도 사라진다는 것이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이 기업 경영에서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미국이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첨단설비 반입을 금지한 것과 관련해선 대응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샐러맨더 리조트에서 최종현학술원이 주최한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Trans-Pacific Dialogue)’ 행사장에서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지정학 리스크보다 더 큰 리스크는 기후변화”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미중 갈등은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고 해결책 내면 되는 사안인 반면에 기후변화는 에너지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문제”라며 “하다못해 반도체를 만들든, 석유화학을 하든, 정유업을 하든 전부 다 바꿔야 하는 숙제”라고 말했다. 정유, 석유화학 등 SK그룹의 주요 사업 부문을 언급하며 탄소중립 체제 적응을 향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밝힌 것이다. 최 회장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 견제 차원에서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반입을 막은 것을 두고 “아마도 비용이 더 들어가는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중국 공장은 계속 돌아가고 용인에도 더 투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현상이 나타나면 그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미국 내 반도체 투자 계획을 묻는 질문엔 “미국도 큰 시장이니 투자를 생각해 본다”라면서도 “어떤 준비가 필요하고 과연 지속가능한 해법이 되는지를 스터디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최 회장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을 묻는 질문엔 “아직은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