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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래 누런 광목에 빨강, 파랑 물감으로 태극과 사괘가 선명히 그려졌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제국의 국기다. 세계 열강의 깃발 사이에서 자주독립국을 표방하며 펄럭였을 이 태극기에선 간절함과 당당함이 묻어난다.이 태극기는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 소장해온 문화유산. 8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광복 80주년 특별전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을 통해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11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를 비롯해 태극기 18점과 관련 자료 약 210점을 소개한다.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1883년 조선의 공식 국기로 선포된 이래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을 넘어 우리를 이어주고 역사를 기억하게 한 기호였다”며 “관람객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임을 깨닫는 기회가 바란다”고 밝혔다.올해 80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전국에서 기념 전시들이 다채롭게 열린다.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는 특별전 ‘귀환’이 12일 개막한다.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과 중국, 사할린 등에 남겨졌거나 죽을 고비 끝에 귀환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역사관 측은 “개인의 일상 회복보다는 사회 질서 유지를 우선시한 시대였기에 ‘잠재적 위험 요소’로 여겨지고 통제됐던 귀환 대상자들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한다”고 했다.이 전시에선 역사관이 최근 10년간 채록한 피해자들의 구술과 관련 기록, 이를 토대로 제작한 영상 등이 공개된다. 강제동원지 중에서도 험하기로 악명 높았던 일본 훗카이도의 탄광에 끌려간 조선인 귀환 대상자 1023명을 기록한 ‘귀선자 명부’,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초상과 증언 등을 아우른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서울 종로구 이회영기념관에선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을 재조명한 체험형 전시 ‘목소리’가 9월 7일까지 진행된다. 기념관 앞마당에 설치된 8개의 조형물에 귀를 대면 연극 배우들이 각 독립운동가의 시점으로 연기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강주룡(1901~1932)은 “그해 1931년 5월 새벽 나는 대동강 언덕 높은 정자 을밀대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갔어”라느 대사가 나온다. 시베리아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김알렉산드라(1885~1918), 3·1운동 당시 수원 만세투쟁을 이끈 김향화(1897~?) 등 8명의 목소리가 담겼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67년 9월 3일 이전까지 스웨덴 사람들은 왼쪽 차로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운전자들이 우측 주행이 보편화한 이웃 나라를 왕래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충돌 사고가 늘어났다. 그 대책으로 ‘우측 주행’이 제시됐다. 변화에 불편을 느끼는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의회는 안전을 위해 새 교통법을 강행했다. 그리고 몇 달 뒤부터 사고는 40% 감소했다. 책에 따르면 이처럼 사람이 개인적 불편을 감수하면서 적극적으로 순응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동참하는 경향은 오랜 ‘부족 생활’에 기인한다. 저자는 부족 생활을 “서로 연대하는 중첩된 집단들 속에서 지식을 공유하며 생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미개한 것’, ‘분열과 혐오의 원인’으로 치부되기도 했던 부족이라는 개념을 입체적으로 재탐색했다. 수백만 년 전 선사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부족의 역사를 횡단하면서 시사점을 포착한 책이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썼다.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으로는 ‘집단의 강건함’을 꼽는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했으나, 인근 씨족들을 배척한 문화가 생존에 걸림돌이 됐다고 봤다. 반면 호모사피엔스는 지역 씨족들과 거래하고 통합하면서 지식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선조의 지혜를 모방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세계 각지에서 집단적 갈등이 터져 나오는 오늘날, 부족주의를 화해와 협력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인류는 ‘그들’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편애하도록 프로그래밍됐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다른 ‘정치 부족’을 설득할 때는 ‘그들’의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진보적 환경운동가들이 보수 성향 정치인들에게 ‘탄소세’ 대신 ‘탄소 상쇄(Carbon Offset)’를 제안하는 식이다. 관용과 포용에 바탕을 둔 전통과 관습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 공격성을 잠재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저것들은 날마다 뭣이 저렇게 재미난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여름날. ‘버럭 할머니’가 아침부터 큰소리로 호통을 친다. 아기 달팽이들은 그저 할머니 텃밭에서 야들야들한 상추 잎을 살짝 맛봤을 뿐인데. 화가 머리끝까지 난 버럭 할머니는 달팽이들을 모조리 잡아 없애 버리겠다고 한다. 달팽이들도 기세를 모아 총력전에 나선다. 나뭇가지를 모아 새총을 만들고 ‘마법 열매’를 잔뜩 모은 것.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고르나 싶더니 아기 달팽이들을 척척 잡아서 휙휙 내던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만 할머니의 입으로 보라색 열매 하나가 쏘옥 들어가고…. 할머니는 오간 데 없이 웬 어린이가 달팽이들 앞에 선다. 어려진 할머니를 어쩜 좋을까. 달팽이 마을에 난리가 났다. 이에 ‘달팽이계의 메리 포핀스’ 달평 씨가 어려진 할머니를 돌보기로 한다. 어린이가 돼서도 “재미있는 게 없당게!” 화만 낼 뿐 도통 신나게 놀 줄 모르는 할머니. 결국 달평 씨의 손에 이끌려 뒷산 계곡으로 간다. 차츰 마음마저 어린이가 되며 시원한 계곡물로 풍덩 뛰어드는 할머니. 어린 독자에게도 어른 독자에게도 짜릿한 해방감을 안긴다. 모든 순간이 새롭고 즐거운 어린 시절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약 100년간 일본을 떠돌다 최근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경복궁 선원전(璿源殿·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 지내던 사당) 편액. ‘왕실의 뿌리’ 격인 선원전에 걸렸던 이 현판은 지난해 열흘에 걸쳐 귀향 채비를 했다. 특수 포장재로 전체를 감싸고 완충재, 단열재를 갖춘 운송용 상자에 3중으로 단단히 포장된 뒤 항온항습 차량과 비행기에 실려 한국에 돌아왔다. 국외에 있던 문화유산을 다시 가져오거나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문화유산을 해외로 반출하려면 육로를 달리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유물 운송 전문업체다. 1998년 국내 처음으로 미술품 전문 운송팀을 운영하기 시작한 1세대 업체인 ‘동부아트’의 전종진 대표(59)와 정연일 이사(45)를 4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문화유산은 작은 충격과 빛에도 훼손될 수 있기에 운송엔 상당한 기술과 요령이 필요하다. 소재에 따라 1차 포장재의 종류, 운송용 상자의 겹수, 들어 올리는 방식 등이 천차만별이다. 정 이사는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상태가 최대한 그대로 지속돼야 한다”며 “오동나무 등으로 만든 운송 상자 안에서 온도는 18∼22도, 습도는 45∼55%가 유지되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이들이 가장 긴장하는 건 ‘철기 유물’ 운송이다. 전 대표는 “수천 년 동안 땅에 묻혀 있다가 출토된 철기는 금관보다도 조심스럽다”며 “강화제, 윤택제를 뿌려 겉으론 견고해 보여도 금속성을 거의 잃은 상태라 까딱하면 바스러진다”고 했다. 전국 곳곳에서 대여 요청이 이어지는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는 최근 맞춤옷을 짜줬다. 전시 때마다 새로 짜거나 못질할 필요 없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운송 상자다. 최근엔 K컬처 열풍이 불면서 해외로 유물을 옮기는 일도 잦아졌다. 올해 말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도 동부아트가 운송을 맡게 됐다. 정 이사는 “예전엔 정부가 해외 전시를 ‘따와야’ 했다면, 요즘에는 한국 고미술을 소개하고 싶다는 외국의 러브콜이 쏟아진다”며 “국보급 문화유산일 경우 일부 국가에선 운송 차량 주위로 현지 경찰차나 사설 경호 차량이 따라붙기도 한다”고 했다. 전 대표는 ‘지붕조차 없는 트럭’에 국보를 싣고 다녔던 1980년대를 떠올리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40년간 한국 문화의 입지가 엄청 넓어진 만큼, 문화유산 운송 기술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전 작품을 운송, 설치하는 과정을 본 해외 현지 관계자가 ‘한국 작업자들을 데려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근현대 미술에 비해 문화유산 분야는 앞으로도 운송 시장 규모가 대폭 커지긴 쉽지 않다. 전시 횟수, 개인 간 거래 등에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해외 평가액이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금동반가사유상을 애지중지 옮겨도 막상 업체의 수입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솔직히 박물관이 ‘큰손’ 고객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함께 아끼고 돌본다는 자긍심은 누구 못지않다. “상자 안에 든 것이 피카소 그림이든 작자 미상의 고대 유물이든 그 가치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귀한 우리 유산을 안전하게 운송했을 때 따라오는 뿌듯함과 기쁨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전 대표)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순국을 앞두고 쓴 글씨 ‘녹죽(綠竹·푸른 대나무·사진)’이 12일 개막하는 광복 80주년 특별전에서 처음 공개된다. 주식회사 태인은 “10월 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리는 국가유산청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에서 안 의사의 유묵 ‘녹죽’을 일반에 처음 선보일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녹죽은 예부터 구전돼 온 오언시집 ‘추구(推句)’에 나오는 구절이다. 푸른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나타낸다. 이 유묵은 일본의 한 개인 소장자가 보관하다 올 4월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되며 존재가 알려졌다.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딸이자 이상현 태인 대표의 어머니인 구혜정 여사가 9억4000만 원에 낙찰받았다. 이 대표는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안 의사와 관련한 우표, 엽서 등을 찾아 기증해 왔다. 태인 측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전시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이 주최하는 이번 특별전에선 안 의사의 또 다른 유묵인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을 포함한 항일유산 110여 점이 전시된다. 3·1 독립선언서와 보존처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등도 관람객을 만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순국을 앞두고 쓴 글씨 ‘녹죽’(綠竹·푸른 대나무)이 12일 개막하는 광복 80주년 특별전에서 처음 공개된다.주식회사 태인은 “10월 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리는 국가유산청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에서 안 의사의 유묵 ‘녹죽’을 일반에 처음 선보일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녹죽은 예부터 구전돼 온 오언시집 ‘추구(推句)’에 나오는 구절이다. 푸른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나타낸다.이 유묵은 일본의 한 개인 소장자가 보관하다가 올 4월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되며 존재가 알려졌다. 고(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딸이자 이상현 태인 대표의 어머니인 구혜정 여사가 9억4000만 원에 낙찰받았다. 이 대표는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안 의사와 관련한 우표, 엽서 등을 찾아 기증해 왔다. 태인 측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전시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이 주최하는 이번 특별전에선 안 의사의 또 다른 유묵인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을 포함한 항일유산 110여 점이 전시된다. 3·1 독립선언서와 보존처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등도 관람객을 만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56년 경북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된 ‘석제 십자가’가 최근 첫 실측 조사를 거치면서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유입된 기독교 소수 종파의 유물이란 주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에 5세기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네스토리우스파’가 8, 9세기경 한반도에 전래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계명대 실크로드연구원의 영문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은밀하게 분명하게: 신라·발해 시대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된 네스토리우스파의 고고학 증거 추적’에서 “불국사 출토 석제 십자가를 처음으로 3차원 실측 조사한 결과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전형적 십자가임이 드러났다”고 했다. 논문에 따르면 석제 십자가 유물은 화강암 소재로, 가로세로 길이는 각각 약 24cm다. 네스토리우스파 십자가 특유의 ‘바깥쪽으로 벌어진 형태’를 띠고 있으며, 뒷면에선 거칠게 쪼아낸 흔적이 확인됐다. ‘경교(景敎)’로도 불리는 네스토리우스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네스토리우스(386∼451)가 주장한 신학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종파다. 그리스도가 신격과 인격이 각기 존재한다(이성설·二性說)고 주장해, 초기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신자들은 수 세기에 걸쳐 동아시아로 이동했고 주로 상인이나 석공 등으로 활동했다. 강 교수는 불국사 십자가가 “통일신라 시대에 실크로드로 이주해온 석공이 석탑 내부에 숨긴 유물”이라고 보고 있다. 강 교수는 특히 석제 십자가가 “석탑이나 건축물 일부에 끼우고자 일부러 쪼아낸 모양”이라며 “신라에서 석공으로 활동한 소그드인(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에 근거한 스키타이계 유목민)이 신앙을 실천하고 석탑 기단을 강화하고자 기단 내부에 부착했다고 본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당나라나 발해 등에서도 네스토리우스파 십자가 유물이 여러 차례 발굴됐다. 비신자나 외부인 눈엔 쉽게 띄지 않는 게 공통점이다. 당시 국제적 도시였던 경주는 외국인과 이국 문화를 활발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강 교수는 “불교 건축에 은밀한 표식을 남기는 건 이들이 신앙을 유지하는 주된 방식”이라며 “하지만 선교의 산물 또는 현대 기독교의 뿌리로 보긴 힘들다”고 했다. 다만 학계에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엔 출토 경위나 제작 방식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석제 십자가는 6·25전쟁으로 불국사가 파괴된 뒤 땅에 흩어져 있던 석재 중 하나로, 고고학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경신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던 숭실대 사학과 1기 졸업생은 “석등을 수리하던 중 불을 피울 돌을 찾다가 발견했다”고 최근 밝혔으나, 구체적 위치와 층위 등은 불분명하다. 불교 미술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는 “두꺼운 석조 부재를 연결하기 위해 ‘십자형’으로 다듬은 이음재일 가능성도 높다”며 “어떤 석탑의 일부였는지, 유물 제작 시기가 탑의 설립 시기와 일치하는지 등을 판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유물이 네스토리우스파의 흔적이 맞더라도, 종교 자체가 한반도로 전파된 증거로 보긴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소그드계 미술 전문가인 소현숙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형태를 보면 네스토리우스파 유물이 유력하다”면서도 “서역인을 모델로 한 경주 원성왕릉(괘릉) 무인(武人)상처럼 ‘도상’만 전파됐을 수 있다”고 했다. 석제 십자가와 함께 출토된 ‘구자모(九子母)상’은 달걀형 얼굴이나 넓은 소매 폭 등을 따졌을 때 12∼14세기 중국에서 제작돼 한반도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가유산청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12일부터 개최하는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과 관련한 다국어 영상이 5일 온라인에서 공개됐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공동 제작한 ‘빛을 담은 항일유산’ 영상은 이날 유튜브를 통해 한국어와 영어로 공개됐다. 4분 30초 분량의 영상은 일제 침략에 자발적으로 맞선 의병의 활약을 조명했다. 당시 의병 활동을 기록한 서신과 격문 13건이 포함된 ‘한말 의병 관련 문서’가 뒷받침 자료로 소개됐다. 19세기 말 주미 공사를 지낸 이범진(1852∼1911)과 대한제국 외교 역사에 대해서도 다뤘다. 이범진은 주미 공사로서 활동한 내용과 서양에 대한 인식 등을 일기 형태로 기록하고, 전 재산을 바친 뒤 자결했다. 한국어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차주영은 “근대기 항일 문화유산을 목소리로 전하게 돼 기쁘다”며 “많은 국내외 누리꾼이 시청해 주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은 10월 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56년 경북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됐던 ‘석제 십자가’가 최근 처음으로 실측조사를 거치면서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유입된 기독교 소수 종파의 유물이란 주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에 5세기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네스토리우스파’가 8, 9세기경 한반도에 전래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계명대 실크로드연구원의 영문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은밀하게 분명하게: 신라·발해 시대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된 네스토리우스파의 고고학 증거 추적’에서 “불국사 출토 석제 십자가를 처음으로 3차원 실측 조사한 결과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전형적 십자가임이 드러났다”고 했다.논문에 따르면 석제 십자가 유물은 화강암 소재로, 가로세로 길이는 각각 약 24cm다. 네스토리우스파 십자가 특유의 ‘바깥쪽으로 벌어진 형태’를 띠고 있으며, 뒷면에선 거칠게 쪼아낸 흔적이 확인됐다.‘경교(景敎)’로도 불리는 네스토리우스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네스토리우스(386~451)가 주장한 신학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종파다. 그리스도가 신격과 인격이 각기 존재한다(이성설·二性說)고 주장해, 초기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때문에 신자들은 수 세기에 걸쳐 동아시아로 이동했고 주로 상인이나 석공 등으로 활동했다. 강 교수는 불국사 십자가가 “통일신라시대에 실크로드로 이주해온 석공이 석탑 내부에 숨긴 유물”이라고 보고 있다. 강 교수는 특히 석제 십자가가 “석탑이나 건축물 일부에 끼우고자 일부러 쪼아낸 모양”이라며 “신라에서 석공으로 활동한 소그드인(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에 근거한 스키타이계 유목민)이 신앙을 실천하고 석탑 기단을 강화하고자 기단 내부에 부착했다고 본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당나라나 발해 등에서도 네스토리우스파 십자가 유물이 여러 차례 발굴됐다. 비신자나 외부인 눈엔 쉽게 띄지 않는 게 공통점이다. 당시 국제적인 도시였던 경주는 외국인과 이국 문화를 활발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강 교수는 “불교 건축에 은밀한 표식을 남기는 건 이들이 신앙을 유지하는 주된 방식”이라며 “하지만 선교의 산물 또는 현대 기독교의 뿌리로 보긴 힘들다”고 했다.다만 학계에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엔 출토 경위나 제작 방식에 근거가 부족하단 의견도 나온다. 석제 십자가는 6·25전쟁으로 불국사가 파괴된 뒤 땅에 흩어져있던 석재 중 하나로, 고고학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경신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던 숭실대 사학과 1기 졸업생은 “석등을 수리하던 중 불을 피울 돌을 찾다가 발견했다”고 최근 밝혔으나, 구체적 위치와 층위 등은 불분명하다.불교 미술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는 “두꺼운 석조 부재를 연결하기 위해 ‘십자형’으로 다듬은 이음재일 가능성도 높다”며 “어떤 석탑의 일부였는지, 유물 제작 시기가 탑의 설립 시기와 일치하는지 등을 판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유물이 네스토리우스파 흔적이 맞더라도, 종교 자체가 한반도로 전파된 증거로 보긴 어렵단 견해도 있다. 소그드계 미술 전문가인 소현숙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형태를 보면 네스토리우스파 유물이 유력하다”면서도 “서역인을 모델로 한 경주 원성왕릉(괘릉) 무인(武人)상처럼 ‘도상만’ 전파됐을 수 있다”고 했다. 석제 십자가와 함께 출토된 ‘구자모(九子母) 상’은 달걀형 얼굴이나 넓은 소매폭 등을 따졌을 때 12~14세기 중국에서 제작돼 한반도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가유산청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12일부터 개최하는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과 관련한 다국어 영상이 5일 온라인에서 공개됐다.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공동 제작한 ‘빛을 담은 항일유산’ 영상은 이날 유튜브를 통해 한국어와 영어로 공개됐다. 4분 30초 분량의 영상은 일제 침략에 자발적으로 맞선 의병의 활약을 조명했다. 당시 의병 활동을 기록한 서신과 격문 13건이 포함된 ‘한말 의병 관련 문서’가 뒷받침 자료로 소개됐다.19세기 말 주미공사를 지낸 이범진(1852~1911)과 대한제국 외교 역사에 대해서도 다뤘다. 이범진은 주미공사로서 활동한 내용과 서양에 대한 인식 등을 일기 형태로 기록하고, 전 재산을 바친 뒤 자결했다. 그의 일기는 공사관 서기생 이건호가 필사해 국가등록문화유산 ‘미사일록’(美槎日錄)으로 전해진다.한국어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차주영은 “근대기 항일 문화유산을 목소리로 전하게 돼 기쁘다”며 “많은 국내외 누리꾼이 시청해 주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은 10월 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다. 영상에서 소개된 유물을 포함해 국가지정유산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 국가등록문화유산 ‘독립운동가 서영해 관련 자료’ 등 110여 점이 전시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환경을 고려한 팝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 국내 가요계에선 ‘친환경 앨범’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환경을 고려하는 정책을 주요 경영 방침으로 공식화하는 K팝 기업이 등장하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아이돌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가 지난달 발매한 앨범 패키지 ‘별의 장: TOGETHER’는 크기가 가로 10cm, 세로 10cm, 폭 3cm에 불과하다. CD 대신 NFC(근거리무선통신) 카드 키링을 동봉해 일반적인 CD 지름(12cm)보다도 작다. 이렇게 실물 CD가 빠지면 앨범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총량도 줄어든다. 앨범 구성품 자체를 친환경 소재로 만들기도 한다. 이달 22일 발매할 예정인 ‘스트레이 키즈’의 정규 4집 패키지는 탄소 배출량이 일반 플라스틱보다 30%가량 적은 신소재로 만들어진다고 한다.K팝의 이러한 변화는 가요계 전체로 확산되는 추세다. 가수 임영웅은 지난달 29일 “이달 공개할 정규 2집에서 플라스틱 CD를 빼기로 했다”고 밝혔다. 앨범은 사진과 메시지, 참여자 명단 정도로 단출히 구성됐다. 아이돌이 아닌 가수로는 이례적인 시도다. 친환경 앨범에 CD 대신 주로 제공되는 음원 감상용 NFC 굿즈도 없다. 소속사 측은 “팬들의 정성과 응원이 부담이 되지 않길 바랐고, 환경적인 문제까지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친환경 앨범을 아예 정책으로 제도화한 곳도 있다. YG엔터테인먼트는 6월 발간한 지속가능경영(ESG) 보고서에 ‘친환경 앨범 로드맵’을 명시했다. “음반 제작 공급망 전반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유통망 내 친환경 운송 수단을 도입할 것”이란 계획이 담겼다. 다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관련 기업들이 올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온실가스 직간접 배출량은 하이브(14%)와 SM(15%), JYP(8%) 등이 전년보다 모두 늘어났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환경을 고려한 팝업 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 국내 가요계에선 ‘친환경 앨범’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환경을 고려하는 정책을 주요 경영 방침으로 공식화하는 K팝 기업이 등장하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아이돌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가 지난달 발매한 앨범 패키지 ‘별의 장: TOGETHER’는 크기가 가로 10cm, 세로 10cm, 폭 3cm에 불과하다. CD 대신 NFC 카드 키링을 동봉해 일반적인 CD 지름(12cm)보다도 작다. 이렇게 실물 CD가 빠지면 앨범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총량도 줄어든다. 앨범 구성품 자체를 친환경 소재로 만들기도 한다. 이달 22일 발매할 예정인 ‘스트레이 키즈’의 정규 4집 패키지는 탄소 배출량이 일반 플라스틱보다 30%가량 적은 신소재로 만들어진다고 한다.K팝의 이러한 변화는 가요계 전체로 확산되는 추세다. 가수 임영웅은 지난달 29일 “이달 공개할 정규 2집에서 플라스틱 CD를 빼기로 했다”고 밝혔다. 앨범은 사진과 메시지, 참여자 명단 정도로 단출히 구성됐다. 아이돌이 아닌 가수로는 이례적인 시도다. 친환경 앨범에 CD 대신 주로 제공되는 음원 감상용 NFC(근거리 무선통신) 굿즈도 없다. 소속사 측은 “팬들의 정성과 응원이 부담이 되지 않길 바랐고, 환경적인 문제까지 고려했다”고 부연했다.친환경 앨범을 아예 정책으로 제도화한 곳도 있다. YG엔터테인먼트는 6월 발간한 지속가능경영(ESG)보고서에 ‘친환경 앨범 로드맵’을 명시했다. “음반 제작 공급망 전반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유통망 내 친환경 운송수단을 도입할 것”이란 계획이 담겼다.다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관련 기업들이 올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온실가스 직·간접 배출량은 하이브(14%)와 SM(15%), JYP(8%) 등은 전년보다 모두 늘어났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을 짓는 목수인 국가무형유산 ‘대목장’(大木匠) 보유자가 25년 만에 배출될 전망이다.국가유산청은 1일 “대목장 보유자로 김영성, 이광복, 조재량 씨를 각각 인정 예고한다”며 “최종 인정될 경우 2000년 이후 25년 만에 대목장 보유자가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목장은 목재를 엄선해 다듬고, 건축 공사 설계와 감리까지 아우르는 목수를 일컫는다. 가구, 창호 등을 만드는 소목장과 구분된다. 이번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 씨는 1977년 고 고택영(1918∼2004) 보유자에게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 전통 도구와 기법을 보전하는 데 힘썼다. 이 씨는 20년 이상 도편수로 활동하면서 특히 전통 사찰을 짓고 수리하는 데 공을 들였다. 조 씨는 조선 후기 여러 궁궐 공사에 참여했던 도편수 최원식에서 조원재, 이광규, 신응수 등으로 내려오는 궁궐 건축의 기문(技門) 계보를 잇는다고 평가됐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저 검은 모자에 완전히 반했다(That black hat blew me up).”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중 사자 보이스의 노래 ‘유어 아이돌’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검은 모자’는 우리 전통 갓, 그중에서도 흑립(黑笠)을 가리킨다. 이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면서 해외에선 갓도 화제가 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갓끈 볼펜’ 굿즈가 품절되는 일도 벌어졌다. 정작 우리는 갓을 잘 알고 있을까? 민속학 전문가들로부터 조선 시대 갓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들어봤다. ①갓에도 집이 있다“습기 찰세라 노끈으로 팽팽히 당겨 두고(恐濕撑繩紏), 더럽혀질세라 갓집에 싸서 두네(惜汚套匣衣).”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문집 ‘아정유고(雅亭遺稿)’에서 갓집의 역할을 이렇게 썼다. 지난달 학술지 ‘민속학연구’ 제56호에 발표된 논문 ‘한국의 갓집 고찰’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당시 값비싼 물건이었던 흑립을 실내에 보관하거나 외부에서 운반할 때 갓집을 사용했다. 갓집은 주로 나무나 종이로 제작됐는데, 안팎을 당시 귀한 재료였던 색지, 문양지 등을 발라 꾸미기도 했다. 특히 나무로 된 갓집 중엔 내부를 붉은색 비단 등으로 마감하고 자물쇠를 갖춘 것도 있다. 형태도 다양해 원뿔 모양의 입롱(笠籠), 뚜껑을 여닫는 방식의 입갑(笠匣) 등이 있었다. ‘한국의 갓집…’ 논문을 쓴 허정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원은 “흑립은 말총과 가느다란 대나무로 만들어졌기에 쉽게 부러지거나 먼지가 앉았다”며 “착용자의 지위와 위신이 달린 기물이었던 만큼 이를 단정하게 보관하기 위한 갓집도 ‘의관정제(衣冠整齊)’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②비 오는 날엔 ‘갓 위에 갓’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엔 고깔 모양 ‘갈모’를 따로 챙겨 다녔다. 갈모는 갓 위에 덮어쓰는 용도로, 입모(笠帽) 또는 우모(雨帽)로도 불렸다. 기름을 먹인 종이에 가느다란 대나무살을 붙여 만들었다. 최은수 서울여대 패션산업학과 연구교수는 “흑립은 대나무를 명주실보다 가늘게 쪼개서 만들었기 때문에 물에 젖으면 조금만 손대도 찌그러졌다”며 “갈모는 눈비를 막는 우산이나 쨍한 볕을 막는 양산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갈모는 쥘부채처럼 접어서 소매나 도포 자락, 배낭에 넣어 다닐 수 있었다. 미국인 퍼시벌 로웰(1855∼1916)은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갈모를 두고 “조선은 친구의 우산을 탐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땅이다. … 작은 모양으로 깔끔하게 접을 수 있어 날씨가 맑을 때면 소매 속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③조선 시대 ‘갓 꾸미기’ 열풍 조선 시대엔 갓을 화려하게 꾸미려는 상류층 남성이 많아지면서 갓끈 장식 경쟁이 일었다. 양반들은 바다거북의 등껍질인 ‘대모(玳瑁)’, 산호, 옥, 마노(瑪瑙) 등으로 된 구슬을 알알이 연결해 갓끈으로 썼다. 장숙환 이화여대 의류학과 특임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갓끈은 기능보다 장식성에 치중하게 되면서 길이가 허리 밑까지 늘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사치를 조장하는 원인으로 지적돼 호화로운 일부 장식은 조정이 금지하는 일도 있었다. 최 교수는 “갓은 기품이 느껴지는 반투명한 검정 몸체에 다채로운 갓끈이 더해져 오늘날에도 섬세함이 돋보이는 패션 소품”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 방향성이 담긴 건국강령 문서가 보존 처리를 마치고 제 모습을 되찾았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29일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의 토대를 이루는 국가등록문화유산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보존 처리를 최근 완료했다”고 밝혔다. 보존 처리를 마친 건국강령 초안은 다음 달 12일부터 서울 덕수궁에서 열리는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 등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저 검은 모자에 완전히 반했다(That black hat blew me up).”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중 사자 보이즈의 노래 ‘유어 아이돌’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검은 모자’는 우리 전통 갓, 그중에서도 흑립(黑笠)을 가리킨다. 이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면서 해외에선 갓도 화제가 되고 있다. 정작 우리는 갓을 잘 알고 있을까? 민속학 전문가들로부터 조선시대 갓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들어봤다.① 갓에도 집이 있다“습기 찰세라 노끈으로 팽팽히 당겨 두고(恐濕撑繩紏), 더럽혀질세라 갓집에 싸서 두네(惜汚套匣衣)”.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문집 ‘아정유고(雅亭遺稿)’에서 갓집의 역할을 이렇게 썼다. 지난달 학술지 ‘민속학연구’ 제56호에 발표된 논문 ‘한국의 갓집 고찰’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당시 값비싼 물건이었던 흑립을 실내에 보관하거나 외부에서 운반할 때 갓집을 사용했다. 갓집은 주로 나무나 종이로 제작됐는데, 안팎을 당시 귀한 재료였던 색지, 문양지 등을 발라 꾸미기도 했다. 특히 나무로 된 갓집 중엔 내부를 붉은색 비단 등으로 마감하고 자물쇠를 갖춘 것도 있다. 형태도 다양해 원뿔 모양의 입롱(笠籠), 뚜껑을 여닫는 방식의 입갑(笠匣) 등이 있었다.‘한국의 갓집…’ 논문을 쓴 허정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원은 “흑립은 말총과 가느다란 대나무로 만들어졌기에 쉽게 부러지거나 먼지가 앉았다”며 “착용자의 지위와 위신이 달린 기물이었던 만큼 이를 단정하게 보관하기 위한 갓집도 ‘의관정제(衣冠整齊)’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② 비 오는 날엔 ‘갓 위에 갓’비가 쏟아질 것같은 날엔 고깔 모양 ‘갈모’를 따로 챙겨 다녔다. 갈모는 갓 위에 덮어쓰는 용도로, 갓모(笠帽) 또는 우모(雨帽)로도 불렸다. 기름을 먹인 종이에 가느다란 대나무살을 붙여 만들었다. 최은수 서울여대 패션산업학과 연구교수는 “흑립은 대나무를 명주실보다 가늘게 쪼개서 만들었기 때문에 물에 젖으면 조금만 손대도 찌그러졌다”며 “갈모는 눈비를 막는 우산이나 쨍한 볕을 막는 양산으로 썼다”고 설명했다.갈모는 쥘부채처럼 접어서 소매나 도포 자락, 배낭에 넣어 다닐 수 있었다. 미국인 퍼시벌 로웰(1855~1916)은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갈모를 두고 “조선은 친구의 우산을 탐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땅이다.…작은 모양으로 깔끔하게 접을 수 있어 날씨가 맑을 때면 소매 속으로 사라진다”고 했다.③ 조선시대 ‘갓꾸미기’ 여풍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인기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갓끈 볼펜’ 굿즈가 품절되는 일이 벌어졌다. 조선 시대엔 갓을 화려하게 꾸미려는 상류층 남성이 많아지면서 갓끈 장식 경쟁이 일었다. 양반들은 바다거북의 등껍질인 ‘대모(玳瑁)’, 산호, 옥, 마노(瑪瑙) 등으로 된 구슬을 알알이 연결해 갓끈으로 썼다. 장숙환 이화여대 의류학과 특임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갓끈은 기능보다 장식성에 치중하게 되면서 길이가 허리 밑까지 늘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사치를 조장하는 원인으로 지적돼 호화로운 일부 장식은 조정이 금지하는 일도 있었다.최 교수는 “갓은 기품이 느껴지는 반투명한 검정 몸체에 다채로운 갓끈이 더해져 오늘날에도 섬세함이 돋보이는 패션 소품”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푸른 조명이 비치는 무대 바닥에 아기 관객 15명이 엄마, 아빠와 함께 둘러앉았다. 막이 오르자 한 아기가 무대 중앙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그러나 아장아장 걸어갔다. 곳곳에 흩어진 황금빛 돌을 조막만 한 손으로 쥐기 위해서였다. 다른 아이들도 속속 부모 품을 벗어났다. 아기들은 두 팔과 다리를 사용해 무대를 마음껏 다니면서 ‘처음 만난’ 세상을 탐험했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는 울음을 쉽게 그치지 않았지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날 스페인 극단 엥그루나 테아트르의 공연 ‘내가 처음 만난 우주’엔 생애 처음 공연장을 찾았을 만 0∼24개월 아기들과 보호자들만이 관객으로 참여했다. 이 연극은 관객인 아기들이 무대에 올라 다채로운 빛과 소리, 사물을 느끼고 배우와 상호작용하도록 연출됐다. 공연을 완성하는 건 때론 울고 칭얼대면서 무대를 만드는 아기들이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제33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다.이날 생후 16개월 된 딸, 남편과 함께 극장을 찾은 주수미 씨(35)는 “문화센터 놀이 프로그램은 반응이 바람직한지에 따라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오늘 공연은 부모도 아이도 편안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 좋았다”며 “무대에서 아이들이 환히 웃는 모습 자체가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박하얀 씨(44)는 “평소 여섯 걸음밖에 못 걷는 아이가 오늘은 훨씬 많이 걸어 다녀 놀랐다. 공연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덕인 듯하다”고 했다.40분 길이의 공연은 대사 하나 없이 아기들의 호기심과 감각을 자극했다. 배우들은 입으로 작은 소리를 내거나 노래하면서 공을 굴리고, 끈을 찰랑이게 만들었다. 이 작품을 연출한 미레이아 페르난데스 씨는 “성인 관객과 달리 아기는 서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 같이 한곳을 바라보게 만드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며 “공연을 ‘보기’보다는 각자 탐험하면서 자기만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했다.최근까지도 국내엔 영아 대상 공연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동 대상 공연도 관람 가능 연령을 만 3세 이상으로 제한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 만난 우주’의 이번 축제 공연 4개 회차는 개막 한 달도 더 전에 전석이 매진됐다. 방지영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사장은 “영아 공연은 공간적 제약과 안전 우려 탓에 관객 수를 무작정 늘릴 수 없는데, 그에 비해 작품을 개발하고 무대 장치와 소품을 섬세하게 만드는 비용은 커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며 “하지만 유럽은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덕에 영아 공연이 활성화돼 있다”고 했다.아직 미미하지만 최근엔 국내에서도 공공단체를 중심으로 영아들에게도 문을 여는 공연이 하나둘 생겨나는 추세다. 앞서 5월 광주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만 3세 이하 영유아를 위해 국립극단과 공동 개발한 공연 2편의 막이 올랐다. 경기문화재단은 이달 30일까지 수원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제1회 ‘경기 아기공연예술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이 축제는 일본 극단 ‘야마노 온가쿠샤’의 연극 ‘숲속에서’를 비롯해 만 0∼36개월 영유아를 위한 공연과 강연 등으로 구성됐다.한 연극계 관계자는 “영유아와 가족이 자유롭게 문화예술을 즐기며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수년 전부터 확산하면서 작품 개발이 시작된 만큼 앞으로는 관련 공연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푸른 조명이 비치는 무대 바닥에 아기 관객 15명이 엄마, 아빠와 함께 둘러앉았다. 막이 오르자 한 아기가 무대 중앙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그러나 아장아장 걸어갔다. 곳곳에 흩어진 황금빛 돌을 조막만 한 손으로 쥐기 위해서였다. 다른 아이들도 속속 부모 품을 벗어났다. 아기들은 두 팔과 다리를 사용해 무대를 마음껏 다니면서 ‘처음 만난’ 세상을 탐험했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는 울음을 쉽게 그치지 않았지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이날 스페인 극단 엥그루나 테아트르의 공연 ‘내가 처음 만난 우주’엔 생애 처음 공연장을 찾았을 만 0~24개월 아기들과 보호자들만이 관객으로 참여했다. 이 연극은 관객인 아기들이 무대에 올라 다채로운 빛과 소리, 사물을 느끼고 배우와 상호작용하도록 연출됐다. 공연을 완성하는 건 때론 울고, 칭얼대면서 무대를 만드는 아기들이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제33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다.이날 생후 16개월 된 딸, 남편과 함께 극장을 찾은 주수미 씨(35)는 “문화센터 놀이 프로그램은 반응이 바람직한지에 따라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오늘 공연은 부모도 아이도 편안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 좋았다”며 “무대에서 아이들이 환히 웃는 모습 자체가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박하얀 씨(44)는 “평소 여섯 걸음밖에 못 걷는 아이가 오늘은 훨씬 많이 걸어 다녀 놀랐다. 공연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덕인 듯하다”고 했다.40분 길이의 공연은 대사 하나 없이 아기들의 호기심과 감각을 자극했다. 배우들은 입으로 작은 소리를 내거나 노래하면서 공을 굴리고, 끈을 찰랑이게 만들었다. 이 작품을 연출한 미레이아 페르난데즈 씨는 “성인 관객과 달리 아기는 서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 같이 한곳을 바라보게 만드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며 “공연을 ‘보기’보다는 각자 탐험하면서 자기만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했다.최근까지도 국내엔 영아 대상 공연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동 대상 공연도 관람 가능 연령을 만 3세 이상으로 제한하는게 보통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 만난 우주’의 이번 축제 공연 4개 회차는 개막 한 달도 더 전에 전석이 매진됐다. 방지영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사장은 “영아 공연은 공간적 제약과 안전 우려 탓에 관객 수를 무작정 늘릴 수 없는데, 그에 비해 작품을 개발하고 무대 장치와 소품을 섬세하게 만드는 비용은 커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며 “하지만 유럽은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덕에 영아 공연이 활성화됐돼 있다”고 했다.아직 미미하지만 최근엔 국내에서도 공공단체를 중심으로 영아들에게도 문을 여는 공연이 하나둘 생겨나는 추세다. 앞서 5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만 3세 이하 영유아를 위해 국립극단과 공동 개발한 공연 2편의 막이 올랐다. 경기문화재단은 이달 30일까지 수원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제1회 ‘경기 아기공연예술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이 축제는 일본 극단 ‘야마노 온가쿠샤’의 연극 ‘숲속에서’를 비롯해 만 0~36개월 영유아를 위한 공연과 강연 등으로 구성됐다.한 연극계 관계자는 “영유아와 가족이 자유롭게 문화예술을 즐기며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수년 전부터 확산하면서 작품 개발이 시작된 만큼 앞으로는 관련 공연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일본의 유명 정치인과 전직 배우 부부가 간밤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집에 불이 난 상태였고 동반 자살로 보였다. 그러나 부검 결과는 ‘화재 질식사로 위장한 교살’. 호흡기관에선 연기 입자가 검출되지 않았고 둘 다에게서 목 졸린 흔적이 발견됐다.그런데 그 자살 위장조차 어쩐지 일부러 들키도록 허술하게 설계된 듯하다. 찝찝해하던 수사본부에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협박 편지가 도착한다. 내용은 이렇다. ‘내 동기는 단순 명쾌하다. 세상을 속이고, 인간으로서 용서받지 못할 행위를 계속해 온 두 사람에게 제재를 가했다.’담당 형사 고다이 쓰토무는 곧장 범인을 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수사할수록 정체도, 범행 동기도 의문투성이라 마치 유령을 쫓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범인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가공범(架空犯) 같다.데뷔 40주년을 맞은 세계적인 추리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신작을 펴냈다. 1985년 첫 소설 ‘방과 후’를 낸 뒤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대표작을 포함해 무려 100편 넘는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국내에도 팬층이 두꺼운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서사는 속도감과 몰입감 있게 전개된다.소설은 성실하고 예민한 고다이 형사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자의 전작인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에 등장하는 천재 물리학자 등과 비교하면 범인(凡人)에 가깝다. 예측 불허하고 기발한 추론으로 수사를 휘어잡지는 않는다. 고다이 형사는 양파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내듯 사건에 얽힌 수많은 인물을 차례로 조사하면서 서서히 수사망을 좁혀 나간다.‘천재형’ 캐릭터가 아니기에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더 복잡하고 세밀하다. 용의자들이 무심코 쓰는 어휘의 차이나 값비싼 찻잔을 식기세척기에 넣은 사소한 행동 등에서 어렵사리 하나둘 실마리를 찾아 나간다. “가려운 곳에 손이 닿지 않는 것처럼 답답함만 쌓여 갔다”는 고다이 형사의 심경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가공범’은 작가의 여느 책과 마찬가지로,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덕에 손에서 책을 놓기 어렵다. 여기에 간결한 문체, 섬세한 심리 묘사가 긴장감과 몰입감을 배가한다. “방금까지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던 부부의 얼굴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굳었다”, “히라쓰카 원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다이가 한 말의 의미를 곱씹는 듯하더니 이윽고 자글자글한 주름으로 감싸인 눈을 부릅떴다” 등의 문장은 진짜 범인이 누구일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다만 반전이 지나치게 반복되는 부분은 누군가에겐 작위적이고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다. 반전 장치로 마련된 복잡다단한 인간사도 여러 드라마에서 봤던 것 같은 기시감을 풍긴다. 소설 중후반은 진범과 동조자의 범행 동기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가해 사실이 ‘인간적’으로 묘사되는 느낌도 없지 않다.히가시노 작가는 지난해 11월 일본 현지에서 이 책을 출간하면서 “이 소재를 작품으로 쓸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성실한 고다이 쓰토무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란 점에서 팬들에게는 반갑지만, 전작들과 비교해 반전의 충격이나 신선도는 좀 무뎌진 느낌도 든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1912∼2002). 그는 우승 부상인 ‘그리스 청동 투구’(보물)를 꼬박 50년 뒤에야 받았다. 1986년 독일에서 열린 올림픽 50주년 기념행사였다. 당시 손 선수는 “금메달을 두 번 받는 기분이다. 하나는 당시의 금메달이요, 또 한번은 오늘 이 청동 투구”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가 뒤늦게 받았던 청동 투구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코린토스에서 제작됐다. 올림픽 제전 때 승리를 기원하면서 신에게 바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오묘한 청록빛, 잘록하게 들어갔다가 유연하게 빠지는 모양새 등이 예사롭지 않다. 베를린 올림픽 당시 그리스의 한 신문사가 마라톤 우승자를 위한 부상으로 내놓았으나 손 선수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손 선수는 수십 년 뒤 투구를 받고서 “1976년 동아일보의 (투구 이야기) 보도를 본 재독 교포 노수웅 씨가 베를린 박물관들을 뒤진 끝에 찾아내 알려준 덕분에 반환 노력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청동 투구를 25일 개막하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에서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에선 손기정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과 월계관, 우승을 보도한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18건이 전시된다. 박물관 측은 “금메달과 월계관, 우승 상장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념 특별전 이후 14년 만”이라고 설명했다. 광복을 9년 앞둔 1936년 8월 15일, 손 선수가 한 외국인에게 ‘Korean 손긔졍’이라고 서명해 줬던 엽서도 처음 공개된다. 스포츠 관련 유물을 수집하는 허진도 씨가 1970년대 유럽의 한 경매에서 낙찰받은 엽서다. 권혜은 학예연구사는 “손 선수의 자서전에 따르면 손 선수는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국 사람들에게 한글로 서명을 해줬다”고 했다. 전시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일장기를 달고 달려야 했으나 조국을 품고 시상대에 올랐던 손 선수와 그 이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우리 마라톤 선수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손 선수는 1947년 제51회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는 태극기를 달고 감독으로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세계기록을 세운 서윤복 선수(1923∼2017)에게 “너는 조국을 위해 달릴 수 있다는 자긍심이 있다”고 격려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전시에선 그의 이런 여정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현한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