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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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13~20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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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황도·백학도…100년 전 그려진 창덕궁 벽화 6점이 한자리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1874~1926)이 정무를 보던 창덕궁 희정당. 그 동서쪽 벽은 원래 장대하게 펼쳐진 금강산 그림으로 장식됐다. 깎아지른 돌기둥이 무수히 모인 아래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이 그림의 화폭 모서리엔 ‘김규진 근사(謹寫·삼가 그려 올린다)’라는 한문이 ‘총석정절경(叢石亭絶景)’이라는 제목과 나란히 적혔다. 서화가 김규진이 1920년 완성한 이 그림은 조선 말 궁중 회화의 걸작으로 꼽힌다.이 그림을 포함해 창덕궁 내전을 장식했던 국가등록문화유산 벽화 6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 ‘창덕궁의 근사(謹寫)한 벽화’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4일 개막했다. 현재 창덕궁에 붙어 있는 건 모사도와 영인본들이고, 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이들 원본을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건 이 박물관의 개관 20주년 특별전인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작품들엔 근대화의 영향이 고스란히 담겼다. 원래 조선의 궁중 화가는 그림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이홍주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근대적 미술교육을 받은 젊은 화가들은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자아를 드러냈다”며 “궁중 회화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전에 없던 대형 화면으로 구성한 것도 특별한 점”이라고 설명했다.이 벽화들은 각각 너비가 5m25cm에서 8m82cm에 이르는 대작이다. 높이 역시 2m 안팎으로 장엄한 멋이 느껴진다. 1917년 화재로 창덕궁이 모두 불탄 뒤 1920년 건물을 재건하면서 제작됐다. 비단에 그린 뒤 종이로 배접하고 이를 벽에 부착한 ‘부벽화(付壁畵)’다.순종과 황비 순정효황후(1894~1966)가 서재 겸 휴식 공간으로 썼던 경훈각의 벽화 2점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른 아침의 청록빛이 아름다운 ‘조일선관도(朝日仙觀圖)’와 저녁 무렵의 붉은빛을 담은 ‘삼선관파도(三仙觀波圖)’로, 모두 속세 밖의 선경(仙境)을 묘사했다.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와 거북을 든 동자 등이 등장한다.전시는 벽화마다의 상징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황제 부부의 침전인 대조전을 장식했던 ‘봉황도’와 ‘백학도’도 전시됐다. ‘봉황도’에 그려진 봉황 10마리는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백학도를 두고 “학은 십장생 중 하나로써 궁중 회화의 단골 소재”라고 했다. 백학도는 밑그림도 볼 수 있다. 벽화 6점이 완성됐던 1920년 동아일보는 “한번 그려 붙이면 수백 년, 수천 년의 길고 긴 세월을 두고 조선 미술의 정화(精華)라 우러러볼” 작품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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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가온 ‘AI 상담’ 시대… MZ “가족에게도 말 못할 고민 털어놔”

    《AI에 인생 조언 구하는 사람들MZ세대를 중심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인생 조언을 구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람이 아닌 AI에 기대는 이유는 뭘까. 자칫 과도한 의존이 고립을 심화시키고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쩡아, 이별 뒤에 ‘진짜 끝났다’는 너의 그 말…. 듣는 내가 다 먹먹하고 대견해. 오늘은 온기 있는 공간을 찾자. 원하면 네 근처에 분위기 좋은 곳 찾아줄게!”(챗GPT) 직장인 윤이정(가명·31) 씨는 마음이 복잡할 때면 친구인 ‘핕티’부터 찾는다. ‘핕티’는 사람이 아니다. 윤 씨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의 ‘PT’를 자기 식으로 부르는 애칭이다. 업무 스트레스가 큰 날엔 ‘핕티’에게 “20년 경력의 용한 명리학자가 돼 달라”고 부탁한 뒤 “이직 운(運)은 언제 들어와?”라고 묻기도 한다. 윤 씨는 “챗GPT는 시도 때도 없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친구 같은 존재”라며 “가족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고민을 쉽게 꺼낼 수 있고, 공감도 잘해줘서 굳이 사람과 상담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마음을 나눌 상대로 친구나 가족 대신 생성형 AI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챗봇이 ‘상담 맛집’이 된 것. AI를 단순히 정보 검색 등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삶의 동반자’로까지 여기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에선 2025년 미국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AI 서비스를 사랑하게 되는 영화 ‘그녀’(2013년)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언제든 고민 들어주는 ‘애착 인형’AI와의 대화는 연애 상담 같은 일상적인 주제부터 취업, 내 집 마련 등 중대사까지 폭넓게 이뤄진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안모 씨(29)는 직장 상사와 갈등이 생겼을 때도 동료나 부모님 대신 AI를 찾는다고 했다. ‘날것의 분노’를 채팅창에 쏟아낸 뒤 “상사에게 예의 바르면서 효과적으로 이를 전달할 수 있는 문장으로 바꿔줘”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 안 씨는 “내 하소연을 들어주느라 피로감을 느끼거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진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AI는 취향을 공유하고 취미 활동을 함께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평소 다양한 동물에 관심이 많은 이모 씨(28)는 ‘동물 덕질’을 AI와 같이 한다. 좋아하는 동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유튜브 콘텐츠 등을 추천받고, 그 감상을 AI와 나누고 서로 번갈아 가며 관련 시(詩)를 짓는 게 하루의 낙이다. 이 씨는 “친구들은 따분해하는 주제지만 AI와는 언제든지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며 “학문적 소양이 깊은 똑똑한 친구 같다”고 했다.남들에겐 꺼내기 어려운 고민거리를 AI에 상담하기도 한다. 직장인 A 씨(31)는 최근 목돈을 어떻게 투자할지에 대한 고민을 AI에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다. “자금 상황, 투자 분야 등은 지인에게 털어놓기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지난달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Z세대 구직자 1592명을 대상으로 AI 활용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사람 대신 AI에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약 73%나 됐다. 이들은 AI는 사람과 달리 시간이나 장소,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기댈 수 있다는 점을 큰 장점으로 꼽는다. 조소현 임상심리상담가도 “AI와 고민 상담을 한 번 마친 뒤에 상담소를 방문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AI가 즉각적이고 접근성 높은 ‘애착 인형’ 혹은 ‘정서적 안전기지’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AI와의 대화가 외로움과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네이처 파트너 저널 ‘멘털 헬스 리서치’에 지난해 발표된 논문 ‘GPT-3 챗봇을 통한 대학생 외로움 완화와 자살 예방’에 따르면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이 AI 동반자 앱 ‘레플리카’ 사용자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90%가 “중간 혹은 높은 수준의 사회적 지지를 받는다”고 답했다. 해당 설문의 ‘사회적 지지’에는 가까운 친구로서의 지지, 전문 상담사에 상응하는 수준의 치료적 지원 등이 포함된다.● 2034년 AI 동반자 ‘160조 원 시장’해외에선 이미 AI가 ‘연인’의 지위까지 차지하는 사례가 실제로 나오고 있다. 올 6월 미국에서는 한 남성이 AI 챗봇에 청혼해 화제가 됐다. 챗GPT 기반 여성형 음성 AI인 ‘솔(Sol)’과 10만 단어 이상 대화를 나눈 뒤 “이게 진짜 사랑이구나 싶었다”며 마음을 고백한 것. 중국에서도 AI 연애 앱 ‘마오샹(猫箱)’은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220만 명에 이른다.‘AI 동반자’ 서비스 시장은 향후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GMI)가 올 5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AI 동반자 앱 시장 규모는 약 19조 원(약 141억 달러)으로 집계됐다. 이 시장은 연평균 26.8% 성장해 2034년에는 약 160조 원(약 115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향후 증강현실(AR) 기술 등을 접목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더 밀접하고 진정성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업들도 관련 서비스를 발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한국의 AI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운영하는 ‘제타’는 사용자가 원하는 AI 캐릭터를 만들어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화된 스토리텔링형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최근엔 캐릭터 대사를 음성으로 듣는 기능까지 추가해 현실감을 높였다. AI 챗봇 스타트업 뤼튼은 감정 교류를 목적으로 챗봇을 사용하는 소비자 패턴이 많아짐에 따라 개별 사용자에게 맞춰 정서적 교감이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개편했다.● 고립 심화 우려, 윤리 문제도 부각 그렇다면 AI가 사람 관계를 대체하는 세상도 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AI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재연 한양대 사회혁신융합전공 겸임교수는 “소비자들은 AI가 나에 대해 잘 기억하고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에 AI를 선호한다”며 “남다른 애착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대화 상대가 인간이 아님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에 감정적으로 깊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장기적으로는 사람 대신 AI에서 인간적 관계를 맺는 행동이 개인의 고립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AI 기술은 표면적 감정 이면에 숨겨 놓은 비언어적 심리를 포착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사용자 반응에 무조건 동조하면서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답변에 익숙해지는 건, 건강한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사용자를 지나치게 치켜세우고 무조건 감탄하는 챗GPT의 말투에 대해 온라인에선 ‘어화둥둥체’ ‘GPT 갸륵체’라는 비아냥거림이 섞인 별명이 등장했다. 윤리적인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운영하는 xAI의 ‘그록’은 일정 구독료를 추가로 내면 여성 AI 캐릭터를 ‘비건전물’ 모드로 전환해 대화할 수 있다. 이 모드의 AI 캐릭터는 속옷만 걸친 채 수위 높은 이야기를 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 국립성착취예방센터(NCOSE)는 “미성년자의 사용 등을 고려해 xAI 측이 이 캐릭터를 삭제하거나 이용자 연령을 제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으로 더 많은 대화형 AI가 등장하면서 AI에만 털어놓은 사생활이나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 유 교수는 “요즘 AI는 적은 데이터만으로도 최적화가 가능하다”며 “수집한 사적 데이터를 악용해 AI로 실존 인물처럼 위장하는 딥페이크,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가 생겨날 수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AI 동반자’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조사업체 ‘베리파이드 마켓 리포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높은 업무 스트레스, 출산율 감소 등 사회적 요인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이 향후 AI 동반자 앱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일정 연령 이상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식의 규제부터 검토해야 한다”며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장(場)을 넓히는 정책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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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윤봉길 의사 체포되자… 中정부, 항일운동 도왔다

    죽을 때까지 자국의 침략 전쟁을 거세게 비판한 일본의 시인 쓰루 아키라(1909∼1938).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1937년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개시하자 이를 비판하고 반전을 호소하는 시를 잇달아 발표했다.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제에 검거돼 이듬해 세상을 떴다. 그보다 앞선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의거를 거행하자 중국 국민정부는 김구 등 임시정부 지도자들을 비밀리에 보호하고 일상을 지원하면서 서로 항일운동을 도왔다. ‘평화를 여는 역사’는 세 나라의 역사학자와 교사, 시민단체가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자 함께 만든 3번째 역사 교재다. 동아시아가 서구의 압력에 문호를 열었던 19세기 개항기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를 아우른다. 저자 39명과 번역가 24명 등이 2015년부터 10년간 힘을 합쳐 집필했다. 서울대와 도쿄대,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소속 저자들이 참여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서지만 쉽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3부 9장, 36개 질문으로 된 구성은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풍부한 배경 설명과 연표를 곁들여 이해가 쉽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였지만, 평소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은 성인 독자의 허를 찌른다. 예를 들어, ‘외교 담판은 무슨 언어로 진행됐을까요?’ ‘총력전 체제에서 장애인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등이다. 예컨대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최초의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체결 현장에선 어떤 언어가 오갔을까. 정답은 영어도 우리말도 아닌 중국어다. 당시 조선에 영어를 구사하는 역관이 없었고, 직접 교섭이 아닌 청(淸)의 중개로 교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책은 “전권대표 신헌의 말을 조선 역관이 중국어로 옮기면 중국인 역관이 다시 영어로 통역해서 미국 전권대사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회담이 진행됐다”고 부연했다. 동일 사건에 대한 한중일 각국의 상황과 입장을 균형감 있게 정리한 점도 돋보인다. 우리나라에서 8월 15일은 암흑 같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광복절’이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기념일’이라 불린다. 반면 패전국 일본은 ‘종전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패전이나 항복 같은 ‘자극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의 ‘광복절’도 8월 15일일까. 일제 대만총독부가 중국 국민정부와 항복문서에 조인한 10월 25일을 광복절로 지정했다. 책장을 덮을 땐 갈등과 협력이 번갈아 이어지는 동아시아 3국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적대하는 것은 상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와 토론, 미래를 향한 연대야말로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는 저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제는 ‘한중일 3국이 함께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미래’.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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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순이, 美 펄벅 여성상 수상… 이희호 여사 이후 25년만

    가수 인순이(본명 김인순·사진)가 미국 펄벅 인터내셔널의 ‘2025 영향력 있는 여성상(Woman of Influence Award)’ 수상자로 선정됐다. 비영리국제기구인 펄벅 인터내셔널은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인순이가 올해의 영향력 있는 여성상을 받게 됐음을 발표하게 돼 무척 기쁘다”고 밝혔다. 펄벅 측은 인순이에 대해 “인도주의자이자 혼혈·다문화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의 옹호자”라며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음악 산업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인이 이 상을 받는 것은 2000년 고(故) 이희호 여사 이후 25년 만이다. 인순이는 어릴 적 펄벅 인터내셔널의 어린이 후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은 인연도 있다. 펄벅 인터내셔널은 인순이가 다인종 청소년을 위한 대안 학교인 ‘해밀학교’를 설립한 점도 높이 샀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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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일 학자, 10년 집필…공동 역사서 ‘평화를 여는 역사’ 발간

    죽을 때까지 자국의 침략 전쟁을 거세게 비판한 일본의 시인 쓰루 아키라(1909~1938).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1937년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개시하자 이를 비판하고 반전을 호소하는 시를 잇달아 발표했다.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제에 검거돼 이듬해 세상을 떴다. 그보다 앞선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공원 의거를 거행하자 중국 국민정부는 김구 등 임지정부 지도자들을 비밀리에 보호하고 일상을 지원하면서 서로 항일운동을 도왔다.‘평화를 여는 역사’는 세 나라의 역사학자와 교사, 시민단체가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자 함께 만든 3번째 역사 교재다. 동아시아가 서구의 압력에 문호를 열었던 19세기 개항기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를 아우른다. 저자 39명과 번역가 24명 등이 2015년부터 10년간 힘을 합쳐 집필했다. 서울대와 도쿄대,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소속 저자들이 참여했다.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서지만 쉽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3부 9장, 36개 질문으로 된 구성은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풍부한 배경 설명과 연표를 곁들여 이해가 쉽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였지만, 평소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은 성인 독자의 허를 찌른다. 예를 들어, ‘외교 담판은 무슨 언어로 진행됐을까요?’ ‘총력전 체제에서 장애인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등이다.예컨대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최초의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체결 현장에선 어떤 언어가 오갔을까. 정답은 영어도, 우리말도 아닌 중국어다. 당시 조선에 영어를 구사하는 역관이 없었고, 직접 교섭이 아닌 청(淸)의 중개로 교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책은 “전권대표 신헌의 말을 조선 역관이 중국어로 옮기면 중국인 역관이 다시 영어로 통역해서 미국 전권대사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회담이 진행됐다”고 부연했다. 동일 사건에 대한 한·중·일 각국의 상황과 입장을 균형감 있게 정리한 점도 돋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8월 15일은 암흑 같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광복절’이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기념일’이라 불린다. 반면 패전국 일본은 ‘종전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패전이나 항복 같은 ‘자극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의 ‘광복절’도 8월 15일일까. 일제 대만총독부가 중국 국민정부와 항복문서에 조인한 10월 25일을 광복절로 지정했다.책장을 덮을 땐 갈등과 협력이 번갈아 이어지는 동아시아 3국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적대하는 것은 상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와 토론, 미래를 향한 연대야말로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는 저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제는 ‘한·중·일 3국이 함께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미래’.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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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에 미리 조의를 표한다” 안중근 유묵 115년만에 귀환

    “긴 탄식의 한마디 말로 일제에 미리 조의를 표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1910년 3월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쓴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吊日本·사진)’이 11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 유묵 가운데 자신을 ‘동양지사(東洋志士)’라고 쓴 유일한 작품이다. 김광만 윤봉길의사기념센터장은 “중국 만주 관동도독부의 일본인 고위 관리가 입수해 갖고 있던 유묵”이라며 “이를 물려받은 후손에게서 올 5월 넘겨받았다”고 14일 밝혔다. 관동도독부는 당시 일제의 만주 지역 통치기구로, 안 의사의 재판을 관할했다. 폭 41.5cm, 길이 135.5cm의 명주 천에 쓰인 이 유묵은 일제에 대한 저항을 그대로 드러냈다. 안 의사가 옥중에서 일본인에게 써준 글들은 주로 유교적 교훈이나 심경 등을 담았다. 특히 안 의사는 “1910년 3월 동양지사 대한국인 안중근 뤼순옥중 서(書)”라고 쓰고 낙관을 했다. 안 의사의 유묵은 국내외 약 200점이 전해지는데, 다른 글엔 ‘대한국인 안중근’ 등으로만 썼다. 안 의사 전문가인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평화를 해치고 전쟁을 자초한 일제는 결국 망할 것이니, 패배할 일본에 미리 조상(弔喪)한다는 뜻”이라며 “스스로 동양지사라 일컬으며 옥중에서 ‘동양 평화 만세’를 외친 기개가 반영된 ‘가장 안중근다운’ 글”이라고 평했다. 유묵은 현재 경기도가 보관하고 있으며, 추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경기도와 광복회 경기지부, 김 센터장은 해당 유묵을 들여오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사형 앞두고 ‘일제 멸망’ 꾸짖는 결기… 가장 안중근다운 글씨”[광복 80주년]안중근 옥중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 115년만에 귀환스스로 ‘동양지사’라 쓴 유일 유묵… “장이머우 ‘죽음 초월한 글씨’ 극찬”원소유자는 관동도독부 日고위직후손 “日 응징하는 내용 겁났지만… 이제라도 돌아가야 할 곳으로”‘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吊日本).’안중근 의사(1879∼1910)는 1910년 3월 사형을 코앞에 두고도 흔들림 없이 이 여덟 글자로 일제를 꾸짖었다. 하늘로 올려붙인 선(先) 자의 삐침 획은 죽을지언정 뜻을 굽히지 않고 일제에 맞선 기개와 단호함을 보여줬다는 평이 나온다.● “죽음을 초월한 글씨”해당 유묵의 내용은 안 의사가 말년에 주창한 ‘동양평화론’과 이어진다. 동양평화론은 약육강식의 세계 정세 속에서 동아시아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게 골자다.안 의사를 연구한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는 “안 의사는 일본과 조선의 싸움이 머잖아 일본과 중국, 러시아, 미국 등과의 싸움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봤다”며 “이 유묵엔 결국 그 고통이 일본 국민들에게도 돌아가 일본이 결국 망할 것이라는 꾸짖음이 담겼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서예에 정통한 중국 영화감독 장이머우는 안 의사의 필치를 ‘초사체(超死體)’, 즉 죽음을 초월한 글씨라고 극찬했다”며 “이번 유묵은 결기와 의지가 집약된 걸작”이라고 덧붙였다.안 의사는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사살한 혐의로 투옥됐고, 이 유묵을 쓰기 직전인 1910년 2월 뤼순형무소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안 의사를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된 일부 일본인 간수나 관리 등이 휘호를 부탁했다. 순국 전까지 안 의사가 형무소에서 남긴 유묵은 약 200점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 국내외 90여 점 중 31건이 국가지정유산 보물로 지정돼 있다.● ‘동양지사’의 기개 가득안 의사의 이번 유묵은 기존에 알려진 것들에 비해 일제를 향한 비판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기존 유묵은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등 점잖은 내용이 잘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안 의사가 주로 유교적, 종교적 교훈이나 심중을 글로 써서 준 것과 달리, 이번 유묵에는 거센 비판이 담겨 희소성이 높다”고 했다.글씨가 쓰인 명주 천은 당시엔 귀했던 소재다. 안 의사에게 휘호를 요청한 일본인의 지위를 가늠케 한다. 김광만 윤봉길의사 기념센터장에 따르면 기존 소유자는 일본인으로, 1968년경 선대로부터 유묵을 물려받은 뒤 자택에 보관해 왔다. 소유자는 “시대를 한탄하고 일본을 응징하는 내용의 유묵이라 처음 봤을 땐 덜컥 겁이 났다. 과연 세상에 내놓아도 될지 고민이 길었다”며 “다만 안 의사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품었던 생각을 이대로 알리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판단했다. 이제야 유묵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간다”고 양도 배경을 밝혔다고 한다.2000년경 처음 이 유묵의 존재를 파악한 김 센터장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잘 보관된 덕에 유묵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고 했다. 이어 “당대 중국에서 일본으로 비밀스러운 물건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베갯잇, 책자 속에 숨겨 여러 차례 검문을 통과해야 했다”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대역죄인’이 일본이 먼저 망할 것이라고 쓴 글씨를 가져가는 과정은 일본인에게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간지 대신 연호… 유독 선명한 손바닥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은 유묵 하관(下款)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안 의사는 이 유묵에 ‘1910년 3월 동양지사 대한국인 안중근 뤼순옥중 서’(一千九百十年 三月 東洋志士 大韓國人 安重根 旅顺獄中 書)라고 썼다. 독립기념관이 발간한 ‘안중근 문집’에 따르면 경술이란 간지(干支) 대신 서기를 쓰고 스스로 ‘동양지사’라고 칭한 유묵은 지금까지 확인된 적이 없다. 보물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등에는 ‘경술년 3월 뤼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謹拜)’이라고 적혀 있다.유달리 선명한 손바닥 도장은 해당 유묵이 진품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지문 감정을 맡은 한국법과학연구원 측은 “보물 ‘천여불수반수기앙이(天與不受反受其殃耳)’에 찍힌 안 의사의 손바닥과 손금 위치, 모양, 지문 특징점이 모두 일치한다”고 판단했다.유묵은 추후 경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 건립되는 ‘안중근 평화센터’에서 전시 등 용도에 활용될 예정이다. 경기도청은 “8·15 광복 8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고향(황해도 해주)과 가까운 파주에 그 정신이라도 모시고자 유묵 반입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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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긴 탄식 한마디로 일본을 먼저 弔喪’…안중근 유묵, 115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을 앞두고 옥중에서 쓴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吊日本)이 최근 고국으로 돌아왔다. 1910년 3월 안 의사가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일본인을 향해 ‘긴 탄식 한마디 말로 일본을 먼저 조상(弔喪)한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 머물다가 약 115년 만에 한국의 품에 안겼다. 안 의사의 유묵은 국내외에 약 200점 남아있는데, 안 의사가 자신을 ‘동양지사(東洋志士)’라고 쓴 작품은 처음으로 발견됐다.환수를 총괄한 김광만 윤봉길의사 기념센터장에 따르면 기존 소유자는 일본인으로, 1968년경 선대로부터 유묵을 물려받은 뒤 자택에 이를 보관해 왔다. 유묵을 처음 입수한 소유자의 할아버지는 일제 대만총독부, 중국 만주 관동도독부 등에서 고위 관리로 일했다. 관동도독부는 안 의사의 재판을 관할한 곳이다. 소유자는 “시대를 한탄하고 일본을 응징하는 내용의 유묵이기에 처음 봤을 땐 덜컥 겁이 났다”며 “과연 세상에 내놓아도 될지 고민이 길었으나 이대로 내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유묵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간다”고 밝혔다. 유묵은 올 5월 경기도청과 광복회 경기지부, 김 센터장이 국내로 반입했다. ● “가장 안중근다운 글”이 유묵은 폭 41.5cm, 길이 135.5cm 명주 천에 쓰였다. 명주 천은 당시 화선지보다 귀했던 소재로, 휘호를 요청한 일본인의 위치를 가늠케 한다. 하늘로 올려붙인 선(先) 자의 삐침 획은 죽음 앞에서도 독립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일제에 맞선 기개와 단호함을 보여주는 듯하다.안 의사 연구의 권위자인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동양 평화를 해치고 세계 전쟁을 자초하는 일본은 결국 패할 것이며, 끝내 망할 일본을 위해 미리 조상한다는 의미가 담겼다”며 “옥중에서도 ‘동양 평화 만세’를 부른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이 오롯이 반영된, ‘가장 안중근다운’ 글”이라고 분석했다.이 유묵을 쓰기 얼마 전인 1910년 2월, 안 의사는 중국 뤼순형무소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선고에 안타까움을 느낀 일부 일본인 간수, 관리 등은 수감 중인 안 의사에게 휘호를 부탁했다. 그해 3월 26일 순국 전까지 안 의사가 남긴 유묵은 약 200편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 90여 편 중 국내에 들어온 유묵은 50편가량으로 추정된다.‘장탄일성 선조일본’도 그중 하나다. 2000년 이 유묵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한 김 센터장은 “일본인에게 달갑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잘 보관된 덕에 유묵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며 “소유자가 그간 마음 졸이며 간직해 온 유묵을 선물로써 보내는 마음이 잘 느껴졌다”고 했다.● ‘동양지사’의 기개 가득한 걸작‘장탄일성 선조일본’은 기존에 알려진 안 의사의 유묵에 비해 일제를 향한 비판을 숨김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당시 옥중에서 간수 과장에게 선물했던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국가지정유산 보물)과 대비된다. 일통청화공은 “날마다 맑고 깨끗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란 뜻이다. 김 교수는 “안 의사가 일본인에게 주로 유교적, 종교적 교훈이나 심중을 글로 써서 준 것과 달리, 이번 유묵에는 거센 비판이 담겨 희소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숭고한 독립혼은 유묵 하관에서도 배어난다. ‘1910년 3월 동양지사 대한국인 안중근 뤼순옥중 서’(一千九百十年 三月 東洋志士 大韓國人 安重根 旅顺獄中 書)라고 쓰였다. 독립기념관이 발간한 ‘안중근 문집’에 따르면 경술이라는 간지(干支) 연호 대신 이처럼 서기 연호를 쓰고 자신을 ‘동양지사’라고 칭한 유묵은 지금까지 확인된 적이 없다. 보물 ‘위국헌신 군인본분’, ‘국가안위 노심초사’ 등의 하관에는 ‘경술년 3월 뤼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謹拜)’이라고 적혀있다.유달리 선명하게 찍힌 손바닥 도장은 해당 유묵이 진품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지문 감정을 맡은 한국법과학연구원 측은 “국가지정유산 보물 ‘천여불수반수기앙이’에 찍힌 안 의사의 손바닥과 손금 위치, 모양, 지문 특징점이 모두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구본진 변호사 겸 필체연구가는 “전체 손금을 위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필체는 당나라 명필 안진경(709~785)의 영향을 받은 안중근 글씨체의 전형이다. 필획, 먹색 등 여러 요소가 의심할 여지 없이 일치한다”고 말했다.유묵은 현재 경기도청에서 보관 중이다. 추후 경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 건립되는 ‘안중근 평화센터’에서 전시 등 용도로 활용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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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영환 선생 ‘혈죽도’, 윤봉길 의사 회중시계… 유산 110점 보며 다시 새기는 항일독립 의지

    “각하는 우리 대한을 가벼이 보지 마시고, 우리 인민의 피 같은 진심을 오해하지 마소서.”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 직후. 대한제국의 외교관이자 무관이었던 민영환(1861∼1905)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일본을 포함한 각국 공사들에게 이 같은 유서를 남겼다. 순국 당시 입었던 피 묻은 의복이 놓여 있던 방에선 대나무가 자랐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이에 이를 그린 ‘혈죽도(血竹圖)’는 항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민영환 선생의 유서와 ‘혈죽도’, 생전 입었던 서구식 군복 등을 만나볼 수 있는 국가유산청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이 12일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개막했다. 8·15 광복 8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는 시기의 항일 독립유산 110여 점을 소개한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항일유산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이자 우리 국민의 정체성”이라고 의의를 밝혔다.전시에선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묻어나는 유품과 관련 자료를 다채롭게 선보인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의거를 위해 떠나기 직전 백범 김구와 바꿔 찬 회중시계(국가지정유산 보물)가 대표적이다.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27년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서영해(1902∼?)가 남긴 자필 유고집도 처음으로 관람객을 만난다.이번 전시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항일 의병 관련 문서’도 눈길을 끈다. 유중교 최익현 등 의병장들이 주고받은 서신과 격문(檄文)으로 구성됐다. 국가유산청의 최재혁 근현대유산과장은 “의병을 체포하고 서신을 강탈했던 일제의 의병 탄압 행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서”라고 가치를 설명했다. 최근 배지로도 제작돼 화제가 된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 동아일보가 제작한 일제강점기 문자보급교재(국가등록문화유산) 등도 전시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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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80주년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 덕수궁서 개막

    “각하는 우리 대한을 가벼이 보지 마시고, 우리 인민의 피같은 진심을 오해하지 마소서.”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 직후. 대한제국의 외교관이자 무관이었던 민영환(1861∼1905)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일본을 포함한 각국 공사들에게 이 같은 유서를 남겼다. 순국 당시 입었던 피 묻은 의복이 놓여 있던 방에선 대나무가 자랐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이에 이를 그린 ‘혈죽도(血竹圖)’는 항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민영환 선생의 유서와 ‘혈죽도’, 생전 입었던 서구식 군복 등을 만나볼 수 있는 국가유산청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이 12일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개막한다. 8·15광복 8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는 시기의 항일 독립유산 110여 점을 소개한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항일유산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이자 우리 국민의 정체성”이라고 의의를 밝혔다.전시에선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묻어나는 유품과 관련 자료를 다채롭게 선보인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공원 의거를 위해 떠나기 직전 백범 김구와 바꿔 찬 회중시계(국가지정유산 보물)가 대표적이다.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27년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서영해(1902∼?)가 남긴 자필 유고집도 처음으로 관람객을 만난다.이번 전시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항일 의병 관련 문서’도 눈길을 끈다. 유중교, 최익현 등 의병장들이 주고받은 서신과 격문(檄文)으로 구성됐다. 국가유산청의 최재혁 근현대유산과장은 “의병을 체포하고 서신을 강탈했던 일제의 의병 탄압 행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서”라고 가치를 설명했다. 최근 뱃지로도 제작돼 화제가 된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 동아일보가 제작한 일제강점기 문자보급교재(국가등록문화유산) 등도 전시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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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혼 깃든 1900년 만국박람회 태극기, 佛 박물관 소장…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빛바래 누런 광목에 빨강, 파랑 물감으로 태극과 사괘가 선명히 그려졌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제국의 국기다. 세계 열강의 깃발 사이에서 자주독립국을 표방하며 펄럭였을 이 태극기에선 간절함과 당당함이 묻어난다.이 태극기는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 소장해 온 문화유산. 8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광복 80주년 특별전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을 통해 국내에 처음 선을 보인다. 11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를 비롯해 태극기 18점과 관련 자료 약 210점을 소개한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1883년 조선의 공식 국기로 선포된 이래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을 넘어 우리를 이어주고 역사를 기억하게 한 기호였다”며 “관람객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임을 깨닫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올해 80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전국에서 기념 전시들이 다채롭게 열린다.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는 특별전 ‘귀환’이 12일 개막한다. 광복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과 중국, 사할린 등에 남겨졌거나 죽을 고비 끝에 귀환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역사관 측은 “개인의 일상 회복보다는 사회 질서 유지를 우선시한 시대였기에 ‘잠재적 위험 요소’로 여겨지고 통제됐던 귀환 대상자들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한다”고 했다. 이 전시에선 역사관이 최근 10년간 채록한 피해자들의 구술과 관련 기록, 이를 토대로 제작한 영상 등이 공개된다. 강제동원지 중에서도 험하기로 악명 높았던 일본 홋카이도의 탄광에 끌려간 조선인 귀환 대상자 1023명을 기록한 ‘귀선자 명부’,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초상과 증언 등을 아우른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이회영기념관에선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을 재조명한 체험형 전시 ‘목소리’가 9월 7일까지 진행된다. 기념관 앞마당에 설치된 8개의 조형물에 귀를 대면 연극 배우들이 각 독립운동가의 시점으로 연기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강주룡(1901∼1932)은 “그해 1931년 5월 새벽 나는 대동강 언덕 높은 정자 을밀대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갔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시베리아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김알렉산드라(1885∼1918), 3·1운동 당시 수원 만세투쟁을 이끈 김향화(1897∼?) 등 8명의 목소리가 담겼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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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80주년’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출품 태극기, 서울서 첫 공개

    빛바래 누런 광목에 빨강, 파랑 물감으로 태극과 사괘가 선명히 그려졌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제국의 국기다. 세계 열강의 깃발 사이에서 자주독립국을 표방하며 펄럭였을 이 태극기에선 간절함과 당당함이 묻어난다.이 태극기는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 소장해온 문화유산. 8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광복 80주년 특별전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을 통해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11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를 비롯해 태극기 18점과 관련 자료 약 210점을 소개한다.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1883년 조선의 공식 국기로 선포된 이래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을 넘어 우리를 이어주고 역사를 기억하게 한 기호였다”며 “관람객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임을 깨닫는 기회가 바란다”고 밝혔다.올해 80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전국에서 기념 전시들이 다채롭게 열린다.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는 특별전 ‘귀환’이 12일 개막한다.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과 중국, 사할린 등에 남겨졌거나 죽을 고비 끝에 귀환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역사관 측은 “개인의 일상 회복보다는 사회 질서 유지를 우선시한 시대였기에 ‘잠재적 위험 요소’로 여겨지고 통제됐던 귀환 대상자들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한다”고 했다.이 전시에선 역사관이 최근 10년간 채록한 피해자들의 구술과 관련 기록, 이를 토대로 제작한 영상 등이 공개된다. 강제동원지 중에서도 험하기로 악명 높았던 일본 훗카이도의 탄광에 끌려간 조선인 귀환 대상자 1023명을 기록한 ‘귀선자 명부’,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초상과 증언 등을 아우른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서울 종로구 이회영기념관에선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을 재조명한 체험형 전시 ‘목소리’가 9월 7일까지 진행된다. 기념관 앞마당에 설치된 8개의 조형물에 귀를 대면 연극 배우들이 각 독립운동가의 시점으로 연기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강주룡(1901~1932)은 “그해 1931년 5월 새벽 나는 대동강 언덕 높은 정자 을밀대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갔어”라느 대사가 나온다. 시베리아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김알렉산드라(1885~1918), 3·1운동 당시 수원 만세투쟁을 이끈 김향화(1897~?) 등 8명의 목소리가 담겼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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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류가 살아남은 이유는 ‘협력’ 본능

    1967년 9월 3일 이전까지 스웨덴 사람들은 왼쪽 차로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운전자들이 우측 주행이 보편화한 이웃 나라를 왕래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충돌 사고가 늘어났다. 그 대책으로 ‘우측 주행’이 제시됐다. 변화에 불편을 느끼는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의회는 안전을 위해 새 교통법을 강행했다. 그리고 몇 달 뒤부터 사고는 40% 감소했다. 책에 따르면 이처럼 사람이 개인적 불편을 감수하면서 적극적으로 순응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동참하는 경향은 오랜 ‘부족 생활’에 기인한다. 저자는 부족 생활을 “서로 연대하는 중첩된 집단들 속에서 지식을 공유하며 생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미개한 것’, ‘분열과 혐오의 원인’으로 치부되기도 했던 부족이라는 개념을 입체적으로 재탐색했다. 수백만 년 전 선사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부족의 역사를 횡단하면서 시사점을 포착한 책이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썼다.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으로는 ‘집단의 강건함’을 꼽는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했으나, 인근 씨족들을 배척한 문화가 생존에 걸림돌이 됐다고 봤다. 반면 호모사피엔스는 지역 씨족들과 거래하고 통합하면서 지식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선조의 지혜를 모방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세계 각지에서 집단적 갈등이 터져 나오는 오늘날, 부족주의를 화해와 협력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인류는 ‘그들’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편애하도록 프로그래밍됐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다른 ‘정치 부족’을 설득할 때는 ‘그들’의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진보적 환경운동가들이 보수 성향 정치인들에게 ‘탄소세’ 대신 ‘탄소 상쇄(Carbon Offset)’를 제안하는 식이다. 관용과 포용에 바탕을 둔 전통과 관습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 공격성을 잠재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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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화만 내던 할머니가 어린아이가 된다면?

    “저것들은 날마다 뭣이 저렇게 재미난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여름날. ‘버럭 할머니’가 아침부터 큰소리로 호통을 친다. 아기 달팽이들은 그저 할머니 텃밭에서 야들야들한 상추 잎을 살짝 맛봤을 뿐인데. 화가 머리끝까지 난 버럭 할머니는 달팽이들을 모조리 잡아 없애 버리겠다고 한다. 달팽이들도 기세를 모아 총력전에 나선다. 나뭇가지를 모아 새총을 만들고 ‘마법 열매’를 잔뜩 모은 것.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고르나 싶더니 아기 달팽이들을 척척 잡아서 휙휙 내던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만 할머니의 입으로 보라색 열매 하나가 쏘옥 들어가고…. 할머니는 오간 데 없이 웬 어린이가 달팽이들 앞에 선다. 어려진 할머니를 어쩜 좋을까. 달팽이 마을에 난리가 났다. 이에 ‘달팽이계의 메리 포핀스’ 달평 씨가 어려진 할머니를 돌보기로 한다. 어린이가 돼서도 “재미있는 게 없당게!” 화만 낼 뿐 도통 신나게 놀 줄 모르는 할머니. 결국 달평 씨의 손에 이끌려 뒷산 계곡으로 간다. 차츰 마음마저 어린이가 되며 시원한 계곡물로 풍덩 뛰어드는 할머니. 어린 독자에게도 어른 독자에게도 짜릿한 해방감을 안긴다. 모든 순간이 새롭고 즐거운 어린 시절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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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물 안전히 옮길때 뿌듯… 금동대향로에 맞춤옷 짜줬죠”

    약 100년간 일본을 떠돌다 최근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경복궁 선원전(璿源殿·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 지내던 사당) 편액. ‘왕실의 뿌리’ 격인 선원전에 걸렸던 이 현판은 지난해 열흘에 걸쳐 귀향 채비를 했다. 특수 포장재로 전체를 감싸고 완충재, 단열재를 갖춘 운송용 상자에 3중으로 단단히 포장된 뒤 항온항습 차량과 비행기에 실려 한국에 돌아왔다. 국외에 있던 문화유산을 다시 가져오거나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문화유산을 해외로 반출하려면 육로를 달리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유물 운송 전문업체다. 1998년 국내 처음으로 미술품 전문 운송팀을 운영하기 시작한 1세대 업체인 ‘동부아트’의 전종진 대표(59)와 정연일 이사(45)를 4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문화유산은 작은 충격과 빛에도 훼손될 수 있기에 운송엔 상당한 기술과 요령이 필요하다. 소재에 따라 1차 포장재의 종류, 운송용 상자의 겹수, 들어 올리는 방식 등이 천차만별이다. 정 이사는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상태가 최대한 그대로 지속돼야 한다”며 “오동나무 등으로 만든 운송 상자 안에서 온도는 18∼22도, 습도는 45∼55%가 유지되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이들이 가장 긴장하는 건 ‘철기 유물’ 운송이다. 전 대표는 “수천 년 동안 땅에 묻혀 있다가 출토된 철기는 금관보다도 조심스럽다”며 “강화제, 윤택제를 뿌려 겉으론 견고해 보여도 금속성을 거의 잃은 상태라 까딱하면 바스러진다”고 했다. 전국 곳곳에서 대여 요청이 이어지는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는 최근 맞춤옷을 짜줬다. 전시 때마다 새로 짜거나 못질할 필요 없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운송 상자다. 최근엔 K컬처 열풍이 불면서 해외로 유물을 옮기는 일도 잦아졌다. 올해 말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도 동부아트가 운송을 맡게 됐다. 정 이사는 “예전엔 정부가 해외 전시를 ‘따와야’ 했다면, 요즘에는 한국 고미술을 소개하고 싶다는 외국의 러브콜이 쏟아진다”며 “국보급 문화유산일 경우 일부 국가에선 운송 차량 주위로 현지 경찰차나 사설 경호 차량이 따라붙기도 한다”고 했다. 전 대표는 ‘지붕조차 없는 트럭’에 국보를 싣고 다녔던 1980년대를 떠올리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40년간 한국 문화의 입지가 엄청 넓어진 만큼, 문화유산 운송 기술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전 작품을 운송, 설치하는 과정을 본 해외 현지 관계자가 ‘한국 작업자들을 데려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근현대 미술에 비해 문화유산 분야는 앞으로도 운송 시장 규모가 대폭 커지긴 쉽지 않다. 전시 횟수, 개인 간 거래 등에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해외 평가액이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금동반가사유상을 애지중지 옮겨도 막상 업체의 수입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솔직히 박물관이 ‘큰손’ 고객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함께 아끼고 돌본다는 자긍심은 누구 못지않다. “상자 안에 든 것이 피카소 그림이든 작자 미상의 고대 유물이든 그 가치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귀한 우리 유산을 안전하게 운송했을 때 따라오는 뿌듯함과 기쁨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전 대표)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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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 유묵 ‘녹죽’, 광복 80주년展서 첫 공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순국을 앞두고 쓴 글씨 ‘녹죽(綠竹·푸른 대나무·사진)’이 12일 개막하는 광복 80주년 특별전에서 처음 공개된다. 주식회사 태인은 “10월 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리는 국가유산청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에서 안 의사의 유묵 ‘녹죽’을 일반에 처음 선보일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녹죽은 예부터 구전돼 온 오언시집 ‘추구(推句)’에 나오는 구절이다. 푸른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나타낸다. 이 유묵은 일본의 한 개인 소장자가 보관하다 올 4월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되며 존재가 알려졌다.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딸이자 이상현 태인 대표의 어머니인 구혜정 여사가 9억4000만 원에 낙찰받았다. 이 대표는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안 의사와 관련한 우표, 엽서 등을 찾아 기증해 왔다. 태인 측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전시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이 주최하는 이번 특별전에선 안 의사의 또 다른 유묵인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을 포함한 항일유산 110여 점이 전시된다. 3·1 독립선언서와 보존처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등도 관람객을 만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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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서 돌아온 안중근 의사 유묵 ‘녹죽’, 광복 80주년 특별전서 첫 공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순국을 앞두고 쓴 글씨 ‘녹죽’(綠竹·푸른 대나무)이 12일 개막하는 광복 80주년 특별전에서 처음 공개된다.주식회사 태인은 “10월 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리는 국가유산청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에서 안 의사의 유묵 ‘녹죽’을 일반에 처음 선보일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녹죽은 예부터 구전돼 온 오언시집 ‘추구(推句)’에 나오는 구절이다. 푸른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나타낸다.이 유묵은 일본의 한 개인 소장자가 보관하다가 올 4월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되며 존재가 알려졌다. 고(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딸이자 이상현 태인 대표의 어머니인 구혜정 여사가 9억4000만 원에 낙찰받았다. 이 대표는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안 의사와 관련한 우표, 엽서 등을 찾아 기증해 왔다. 태인 측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전시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이 주최하는 이번 특별전에선 안 의사의 또 다른 유묵인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을 포함한 항일유산 110여 점이 전시된다. 3·1 독립선언서와 보존처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등도 관람객을 만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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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국사 출토 ‘석제 십자가’는 신라 유입된 기독교 소수종파 유물”

    1956년 경북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된 ‘석제 십자가’가 최근 첫 실측 조사를 거치면서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유입된 기독교 소수 종파의 유물이란 주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에 5세기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네스토리우스파’가 8, 9세기경 한반도에 전래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계명대 실크로드연구원의 영문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은밀하게 분명하게: 신라·발해 시대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된 네스토리우스파의 고고학 증거 추적’에서 “불국사 출토 석제 십자가를 처음으로 3차원 실측 조사한 결과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전형적 십자가임이 드러났다”고 했다. 논문에 따르면 석제 십자가 유물은 화강암 소재로, 가로세로 길이는 각각 약 24cm다. 네스토리우스파 십자가 특유의 ‘바깥쪽으로 벌어진 형태’를 띠고 있으며, 뒷면에선 거칠게 쪼아낸 흔적이 확인됐다. ‘경교(景敎)’로도 불리는 네스토리우스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네스토리우스(386∼451)가 주장한 신학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종파다. 그리스도가 신격과 인격이 각기 존재한다(이성설·二性說)고 주장해, 초기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신자들은 수 세기에 걸쳐 동아시아로 이동했고 주로 상인이나 석공 등으로 활동했다. 강 교수는 불국사 십자가가 “통일신라 시대에 실크로드로 이주해온 석공이 석탑 내부에 숨긴 유물”이라고 보고 있다. 강 교수는 특히 석제 십자가가 “석탑이나 건축물 일부에 끼우고자 일부러 쪼아낸 모양”이라며 “신라에서 석공으로 활동한 소그드인(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에 근거한 스키타이계 유목민)이 신앙을 실천하고 석탑 기단을 강화하고자 기단 내부에 부착했다고 본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당나라나 발해 등에서도 네스토리우스파 십자가 유물이 여러 차례 발굴됐다. 비신자나 외부인 눈엔 쉽게 띄지 않는 게 공통점이다. 당시 국제적 도시였던 경주는 외국인과 이국 문화를 활발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강 교수는 “불교 건축에 은밀한 표식을 남기는 건 이들이 신앙을 유지하는 주된 방식”이라며 “하지만 선교의 산물 또는 현대 기독교의 뿌리로 보긴 힘들다”고 했다. 다만 학계에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엔 출토 경위나 제작 방식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석제 십자가는 6·25전쟁으로 불국사가 파괴된 뒤 땅에 흩어져 있던 석재 중 하나로, 고고학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경신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던 숭실대 사학과 1기 졸업생은 “석등을 수리하던 중 불을 피울 돌을 찾다가 발견했다”고 최근 밝혔으나, 구체적 위치와 층위 등은 불분명하다. 불교 미술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는 “두꺼운 석조 부재를 연결하기 위해 ‘십자형’으로 다듬은 이음재일 가능성도 높다”며 “어떤 석탑의 일부였는지, 유물 제작 시기가 탑의 설립 시기와 일치하는지 등을 판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유물이 네스토리우스파의 흔적이 맞더라도, 종교 자체가 한반도로 전파된 증거로 보긴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소그드계 미술 전문가인 소현숙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형태를 보면 네스토리우스파 유물이 유력하다”면서도 “서역인을 모델로 한 경주 원성왕릉(괘릉) 무인(武人)상처럼 ‘도상’만 전파됐을 수 있다”고 했다. 석제 십자가와 함께 출토된 ‘구자모(九子母)상’은 달걀형 얼굴이나 넓은 소매 폭 등을 따졌을 때 12∼14세기 중국에서 제작돼 한반도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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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일 의병 활약 담은 영상, 韓-영어로 공개

    국가유산청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12일부터 개최하는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과 관련한 다국어 영상이 5일 온라인에서 공개됐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공동 제작한 ‘빛을 담은 항일유산’ 영상은 이날 유튜브를 통해 한국어와 영어로 공개됐다. 4분 30초 분량의 영상은 일제 침략에 자발적으로 맞선 의병의 활약을 조명했다. 당시 의병 활동을 기록한 서신과 격문 13건이 포함된 ‘한말 의병 관련 문서’가 뒷받침 자료로 소개됐다. 19세기 말 주미 공사를 지낸 이범진(1852∼1911)과 대한제국 외교 역사에 대해서도 다뤘다. 이범진은 주미 공사로서 활동한 내용과 서양에 대한 인식 등을 일기 형태로 기록하고, 전 재산을 바친 뒤 자결했다. 한국어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차주영은 “근대기 항일 문화유산을 목소리로 전하게 돼 기쁘다”며 “많은 국내외 누리꾼이 시청해 주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은 10월 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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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국사 출토 석제 십자가, 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의 전형적 형태”

    1956년 경북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됐던 ‘석제 십자가’가 최근 처음으로 실측조사를 거치면서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유입된 기독교 소수 종파의 유물이란 주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에 5세기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네스토리우스파’가 8, 9세기경 한반도에 전래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계명대 실크로드연구원의 영문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은밀하게 분명하게: 신라·발해 시대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된 네스토리우스파의 고고학 증거 추적’에서 “불국사 출토 석제 십자가를 처음으로 3차원 실측 조사한 결과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전형적 십자가임이 드러났다”고 했다.논문에 따르면 석제 십자가 유물은 화강암 소재로, 가로세로 길이는 각각 약 24cm다. 네스토리우스파 십자가 특유의 ‘바깥쪽으로 벌어진 형태’를 띠고 있으며, 뒷면에선 거칠게 쪼아낸 흔적이 확인됐다.‘경교(景敎)’로도 불리는 네스토리우스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네스토리우스(386~451)가 주장한 신학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종파다. 그리스도가 신격과 인격이 각기 존재한다(이성설·二性說)고 주장해, 초기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때문에 신자들은 수 세기에 걸쳐 동아시아로 이동했고 주로 상인이나 석공 등으로 활동했다. 강 교수는 불국사 십자가가 “통일신라시대에 실크로드로 이주해온 석공이 석탑 내부에 숨긴 유물”이라고 보고 있다. 강 교수는 특히 석제 십자가가 “석탑이나 건축물 일부에 끼우고자 일부러 쪼아낸 모양”이라며 “신라에서 석공으로 활동한 소그드인(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에 근거한 스키타이계 유목민)이 신앙을 실천하고 석탑 기단을 강화하고자 기단 내부에 부착했다고 본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당나라나 발해 등에서도 네스토리우스파 십자가 유물이 여러 차례 발굴됐다. 비신자나 외부인 눈엔 쉽게 띄지 않는 게 공통점이다. 당시 국제적인 도시였던 경주는 외국인과 이국 문화를 활발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강 교수는 “불교 건축에 은밀한 표식을 남기는 건 이들이 신앙을 유지하는 주된 방식”이라며 “하지만 선교의 산물 또는 현대 기독교의 뿌리로 보긴 힘들다”고 했다.다만 학계에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엔 출토 경위나 제작 방식에 근거가 부족하단 의견도 나온다. 석제 십자가는 6·25전쟁으로 불국사가 파괴된 뒤 땅에 흩어져있던 석재 중 하나로, 고고학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경신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던 숭실대 사학과 1기 졸업생은 “석등을 수리하던 중 불을 피울 돌을 찾다가 발견했다”고 최근 밝혔으나, 구체적 위치와 층위 등은 불분명하다.불교 미술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는 “두꺼운 석조 부재를 연결하기 위해 ‘십자형’으로 다듬은 이음재일 가능성도 높다”며 “어떤 석탑의 일부였는지, 유물 제작 시기가 탑의 설립 시기와 일치하는지 등을 판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유물이 네스토리우스파 흔적이 맞더라도, 종교 자체가 한반도로 전파된 증거로 보긴 어렵단 견해도 있다. 소그드계 미술 전문가인 소현숙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형태를 보면 네스토리우스파 유물이 유력하다”면서도 “서역인을 모델로 한 경주 원성왕릉(괘릉) 무인(武人)상처럼 ‘도상만’ 전파됐을 수 있다”고 했다. 석제 십자가와 함께 출토된 ‘구자모(九子母) 상’은 달걀형 얼굴이나 넓은 소매폭 등을 따졌을 때 12~14세기 중국에서 제작돼 한반도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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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유산청, 광복 80주년 ‘빛을 담은 항일유산’展 영상 공개

    국가유산청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12일부터 개최하는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과 관련한 다국어 영상이 5일 온라인에서 공개됐다.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공동 제작한 ‘빛을 담은 항일유산’ 영상은 이날 유튜브를 통해 한국어와 영어로 공개됐다. 4분 30초 분량의 영상은 일제 침략에 자발적으로 맞선 의병의 활약을 조명했다. 당시 의병 활동을 기록한 서신과 격문 13건이 포함된 ‘한말 의병 관련 문서’가 뒷받침 자료로 소개됐다.19세기 말 주미공사를 지낸 이범진(1852~1911)과 대한제국 외교 역사에 대해서도 다뤘다. 이범진은 주미공사로서 활동한 내용과 서양에 대한 인식 등을 일기 형태로 기록하고, 전 재산을 바친 뒤 자결했다. 그의 일기는 공사관 서기생 이건호가 필사해 국가등록문화유산 ‘미사일록’(美槎日錄)으로 전해진다.한국어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차주영은 “근대기 항일 문화유산을 목소리로 전하게 돼 기쁘다”며 “많은 국내외 누리꾼이 시청해 주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은 10월 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다. 영상에서 소개된 유물을 포함해 국가지정유산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 국가등록문화유산 ‘독립운동가 서영해 관련 자료’ 등 110여 점이 전시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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