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김현수 부장

동아일보 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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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hs@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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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원 “아동결식 해결, 힘모으니 길 열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은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행복얼라이언스 데이’ 개회사에서 “정부, 지자체, 시민 등 여럿이 힘을 모으니 길이 열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협력이 아이들을 위한 결실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행복얼라이언스는 최 회장의 제안으로 기업 정부 시민이 협력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결성된 사회공헌 연합체다. 2016년 참여 회원사 14개로 시작된 이래 4년 만에 100개로 늘어났다. 많은 기업이 참여한 덕에 4년여 동안 2만여 명에게 100만 끼를 제공했다. 그간의 성과를 공유하고 협력을 다짐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서 최 회장은 “기업과 사회가 힘을 합쳐 하나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사례를 만들고, 이를 통해 다른 사회 문제들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만들고자 했다”며 행복얼라이언스의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행복얼라이언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심각해진 아동 결식 문제 해결에 힘을 발휘했다. 3월 대구·경북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학교와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닫자 SK, SK하이닉스, 비타민엔젤스 등 10개사가 급식 중단 위기에 처한 아이 1500명에게 한 달간 4만2000끼니를 긴급 제공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은 “행복얼라이언스의 가치와 철학이 중국에도 뻗어가고 있다”며 SK와 중국 청소년 학습지원 공익단체인 광화기금회가 공동으로 결성한 ‘해피 러닝 얼라이언스’를 이날 소개하기도 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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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원 “힘 모아 아동결식 해결”…SK ‘행복 얼라이언스 데이’ 개최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행복 얼라이언스 데이’ 개회사에서 “정부, 지자체, 시민 등 여럿이 힘을 모으니 길이 열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협력이 아이들을 위한 결실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행복얼라이언스는 최 회장의 제안으로 기업·정부·시민이 협력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표로 결성된 사회공헌 연합체다. 2016년 참여 회원사 14개로 시작된 이래 4년 만에 100개로 늘어났다. 많은 기업들이 참여한 덕에 4년 여 동안 2만 여명에게 100만 끼를 제공했다. 그간의 성과를 공유하고 협력을 다짐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서 최 회장은 “많은 사회문제 중에서도 아이들이 영양 불균형에 놓이는 문제를 먼저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기업과 사회가 힘을 합쳐 하나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사례를 만들고, 이를 통해 다른 사회문제들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만들고자 했다”며 행복얼라이언스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행복얼라이언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심각해진 아동 결식 문제 해결에 힘을 발휘했다. 지난 3월 대구·경북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학교와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닫자 SK, SK하이닉스, 비타민엔젤스 등 10개 사가 급식 중단 위기에 처한 아이들 1500명에게 한 달간 4만2000끼니를 긴급 제공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은 “행복얼라이언스의 가치와 철학이 중국에도 뻗어가고 있다”며 SK와 중국 청소년 학습지원 공익단체인 광화기금회가 공동으로 결성한 ‘해피 러닝 얼라이언스’를 이날 소개하기도 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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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집단소송, 변호사 100만달러 챙길때 소비자는 30달러”

    “미국의 집단소송법 오류가 한국에서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1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미국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32차 한미재계회의 ‘기업투자·경영환경과 법률’ 세션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나왔다. 법무부가 미국식 제도를 본뜬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라 이날 법률 세션에서는 미국 집단소송법이 화두에 올랐다. 한 참가자는 “미국 집단소송법은 변호사에게만 득이 될 뿐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참석자도 “미국에선 변호사가 수백만 달러를 챙겨도 소비자가 쿠폰만 받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집단소송 변호사가 100만 달러를 챙길 때 소비자는 32달러를 받았다는 2015년 미국 소비자 보호당국의 통계자료도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세션에는 정진영 김재정 김앤장 변호사, 해롤드 킴 미국상공회의소 법률개혁원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들이 지적한 미국 집단소송법의 문제는 소송이 남발돼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에 비해 소비자의 실익이 적다는 점이다. 참석자들은 “미국은 2005년 집단소송법 통과 후 주법원에서 진행되던 다수의 집단소송이 연방법원으로 이전되면서 소송이 남발됐다”고도 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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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관 사장 ‘화훼 농가 돕기’ 동참

    김동관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사장(사진)이 조현상 효성그룹 총괄사장의 지명을 받아 ‘플라워 버킷 챌린지’에 동참했다. 플라워 버킷 챌린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화훼 농가를 돕자는 취지로 올해 2월부터 진행돼 온 릴레이 캠페인이다. 15일 한화솔루션에 따르면 김 사장이 이번 챌린지 참여를 계기로 서울시청 내 시민 휴게 공간인 시민청 만남의 정원에 ‘친환경 플라워 아트월’ 조성을 지원했다. 친환경 플라워 아트월은 벽면을 꽃과 식물로 장식한 전시물로, 실내 공기를 자연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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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정의선 최태원 구광모 두달만에 또 회동

    4대 그룹 총수가 최근 저녁식사 모임을 함께하며 협력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로하는 한편으로 다양한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 대표 등은 5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회동을 가졌다. 알려진 회동으로만 9월 이후 두 달 만의 만남이다. 4대 그룹 총수 중 맏형 격인 최 회장이 이번에도 회동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선대 회장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등에서 의견을 모았다면 세대교체가 이뤄진 현 4대 그룹 총수는 수행원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이를 정례화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번 회동은 지난달 별세한 고 이건희 회장을 기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회장 취임 축하의 의미도 더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자연스럽게 최 회장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수락 여부 등도 대화에 올랐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화두로 던지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경제단체를 이끄는 데 있어 4대 그룹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화제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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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고객-사회와의 동행’으로… 자본주의의 전환[인사이드&인사이트]

    “기업의 사회적책임은 이윤을 높이는 것이다.” 1970년 9월 13일, 세계적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 같은 제목으로 한 시대의 획을 긋는 기고문을 뉴욕타임스에 실었다. 이는 향후 50년 동안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으로 통했다. 바로 주주(shareholder)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글이었다. 50년 뒤인 2020년 9월 13일,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기고문 50주년을 맞아 흥미로운 기획을 했다. 저명한 경영자, 경제학자 등에게 ‘프리드먼의 생각에 동의하는지’를 물은 것이다.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마크 베니오프(세일스포스 창업자): “나는 프리드먼이 한 세대의 최고경영자(CEO)들을 세뇌했다고 생각한다. 주주가치에 대한 집착이 가져온 결과를 봐라. 끔찍한 경제, 인종, 건강의 불평등이다.” #하워드 슐츠(스타벅스 창업자): “금융위기 때 ‘직원들의 헬스케어 비용을 삭감하라’고 했던 기관 주주, 2013년 ‘스타벅스의 게이 권리 옹호가 이익을 해친다’고 비판한 한 주주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제든 주식을 팔아도 된다고. 프리드먼이 남긴 유산은 그의 잘못된 대답이 아닌 ‘기업의 책임이 무엇인지’ 던진 질문 그 자체에 있다.” NYT에는 대체로 프리드먼에 대한 비판이 돌아왔다. 반면 프리드먼이 교수로 재직한 시카고대가 주관한 기고문 50주년 특별 온라인 포럼에선 옹호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마침 프리드먼이 신념처럼 여겼던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반기가 세계 각지에서 불고 있기 때문에 논쟁은 더욱 뜨거웠다.○ 주주에서 이해관계자로… “철학적 전환”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역시 올해 7월 “주주 자본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은 ‘양심’ ‘사회적책임’ ‘공정’과 같은 단어를 빈번하게 쓰고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프리드먼이 무덤에서 들으면 벌떡 일어날 일’들이다. 왜 지금,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은 것일까. 처음 논쟁에 불을 지핀 곳은 주주 자본주의의 탄생지 미국이다. 지난해 8월 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은 기업의 목적을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번영으로 바꾸는 성명을 발표했다. 주주뿐 아니라 고객, 직원, 협력사, 지역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에게 기여하는 것이 기업의 미션이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배라 등 미국을 대표하는 CEO 181명이 참여했다. 이 성명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게 된 계기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요한 철학적 전환”으로 평했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요 주제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였다. 국내에서는 SK그룹이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기업 활동의 주요 목적임을 명시한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올해 2월 SK는 자체 경영헌장 격인 ‘SK경영관리체계(SKMS)’를 4년 만에 개정하며 기업 구성원뿐 아니라 고객, 주주, 사회 및 비즈니스 파트너 등 이해관계자의 행복 추구를 기업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이 같은 내용은 SK 계열사 정관에도 반영됐다.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업 경영 목표와 시스템을 주주에게서 이해관계자로 바꾸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됐다”고 강조했다. ○ 소득 양극화가 배경… 코로나도 불붙여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부상한 배경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 심화가 꼽힌다. 장기 저성장을 가져온 금융위기의 원인이 ‘도덕적’이지 못한 금융회사에 있었다는 것, 시장이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것, 그럼에도 거대 기업은 ‘대마불사’로 정부 지원을 받고 살아남은 것에 대해 많은 이가 분노했다. 구글, 아마존, 애플과 같은 혁신 기업이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 경제를 이끌었지만 정작 대다수 일반 국민이 취업할 수 있는 제조업은 침체됐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 상황이 거대 기업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정부에 ‘거대 기업을 규제하고 세금을 더 내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다. 이에 미 재계가 ‘우리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취지로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경은 4차 산업혁명이다. 인공지능(AI)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데이터가 필수다. 데이터는 사용자로부터 온다. 사용자가 기업의 이익에 기여하는 셈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자선사업과 거리가 멀다. 디지털 전환이 가져오는 초생산성 시대에 소비자들의 소득 확대가 없다면 기업들도 지속적으로 돈을 벌기 어렵다”며 “데이터 제공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필요성도 있기 때문에 (이익 환원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객과 근로자가 가치 지향적으로 변한 점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대두의 중요한 원인이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월마트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사건이 벌어졌다. 정부가 총기규제에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비판의 화살은 월마트로 향했다. ‘월마트는 임직원마저 총기 사고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계속 총을 팔아야 하는지’에 대해 비판과 질문이 쏟아지자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는 결국 총기 판매 제한 성명을 냈다. 심지어 정부에 총기규제 시행을 촉구한다고도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팬데믹은 기업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에 에너지를 줬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은 것”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은 록다운이 이어지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고, 이를 고객과 근로자 협력사 정부가 지켜봤다. 가게 문을 닫은 상황에서 주주의 단기적 가치를 위해 대규모 해고에 나설 것인가, 직원과 지역사회를 위해 고용을 유지할 것인가. 프랑스 럭셔리 기업 에르메스는 고용 유지를 택했다. 에르메스의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인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는 올해 8월 하퍼스바자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시대에 (회사는) 은신처가 돼줬다”며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도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경제적 은신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심리적 은신처였다”고 말했다. ○ 한국에서도 커지는 기업의 새 역할론 “기업의 시야가 너무 좁았던 점을 솔직히 반성한다.” 지난달 30일 최태원 회장은 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한 포럼 강연에서 “기업은 ‘돈을 버는 것’이란 목적이 너무 강해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었다”며 “자기 좋은 것만 하는 것은 다른 가치를 무시하는 일이다. 그러면 사회가 기업을 벌하든지 기업이 사회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새 역할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의 새로운 역할’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SK가 기업 정관에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기업의 핵심 가치로 포함시켰다면 삼성전자는 기업 비전으로 ‘동행’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50주년을 맞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우리 기술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자.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5월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도 어떤 의미에서는 ‘노동 3권 보장’ 등 삼성의 가치관을 밝히는 자리였다. 다만 미국과 한국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양상은 다소 다르다. 미국은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대척점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나왔다. 기업 경영진이 더 이상 주주에게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힘을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국은 기업 태동기부터 오너 일가와 동격인 경영진에 힘이 실려 있었고, 이에 대한 대척점으로 ‘경제 민주화’가 나왔다. 그래서 기관투자가나 소액주주에게 힘을 실어주는 주주 자본주의적 제도를 상법 개정 등으로 도입하는 과정에 있다. 한국 기업은 소액주주를 위한 주주 자본주의와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는 셈이다. 한편 해외에서는 한국과 일본식 윤리경영, 사업보국 이념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프리드먼은 기업은 세금을 내고, 정부와 국회가 그 돈을 공익을 위해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경영진이 자원 배분까지 나서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봤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주창한 기업들이 실제로는 환경 및 노동법 위반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학계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위선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브루킹스연구소에서는 기업의 변화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해주는 법률체계, 정부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경묵 교수는 “기업은 사업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라며 “기부를 많이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혁신적인 사업을 통해 더 많은 이해관계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홍석호 기자}

    •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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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대그룹 총수 회동…이재용 부회장 위로하고 현안 논의한 듯

    4대그룹 총수가 최근 저녁식사 모임을 함께하며 협력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로하는 한편 다양한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 대표 등은 5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회동을 가졌다. 알려진 회동으로만도 지난 9월 이후 두 달 만의 모임이다. 4대 그룹 총수 중 맏형 격인 최 회장이 이번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4대 그룹 총수 끼리 자주 별다른 의제 없이 친목 모임을 자주 갖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대 회장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등에서 의견이 오고갔다면 세대교체가 이뤄진 현 4대 그룹 총수는 자연스럽게 친목모임을 정례화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번 회동에선 부친상을 당한 이 부회장을 위로하고,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기리는 의미가 더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과 최 회장, 구 대표 모두 고 이건희 회장 빈소를 찾은 바 있다. 정 회장은 특히 영결식에도 참석하며 고인을 기렸다. 이번 회동에서는 정 회장의 회장 승진 등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자연스럽게 최 회장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수락 여부 등도 대화에 올랐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화두로 던지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경제단체를 이끄는데 있어 4대 그룹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화제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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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후’가 만드는 세계 최고의 기업[광화문에서/김현수]

    지난주 일요일 아침 기자들은 고속도로에서, 단풍이 물든 산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출근했다. 고 이 회장이 쓰러진 2014년 이후 틈틈이 기사를 준비했지만 막상 닥치니 취재할 일이 산더미였다. 장례기간 내내 고인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 통화하고, 글을 받고, 과거 인터뷰와 에세이를 꼼꼼히 읽으면서 고인을 가장 잘 표현할 한 단어가 생각났다. ‘덕후’(일본어 오타쿠를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우리말 조어)였다.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선문답”, “독특함”, “이해하기 어려움”과 같은 표현을 썼는데, 이와 관련된 일화들이 거의 ‘집착에 가까운 몰입’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영결식 추도사를 맡은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은 통화에서 “고인은 한번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이었다”고 했다. 그는 “고인의 방에 가본 은사님이 ‘부잣집 아들이니 경영학 책이나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방에 TV, 라디오 같은 전자제품이 꽉 차 있었다’고 하더라. 일찍부터 필생의 사업이 될 전자제품에 꽂혀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고 이 회장이 1997년에 낸 에세이집 곳곳에서도 이런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초등학생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외로웠던 고 이 회장은 영화와 전자제품 분해에 몰입하며 보냈다. 영화로는 경영 비전을, 전자제품 분해로는 반도체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는 ‘개를 기르는 마음’편이다. 일본 시절 혼자 있다 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다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 에세이에서도 특유의 몰입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세계견종협회가 진돗개를 ‘확실한 순종이 없다’며 한국 토종개로 등록해주지 않자 고인은 1969년 진도로 내려가 진도개 30마리를 사들인 뒤 사육사와 함께 이를 150마리로 늘려 순종을 만들었다. 고인은 “나는 아무리 취미생활이라도 깊이 연구해서 자기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삼성이 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도 운영했으니 요즘 말로 ‘덕업일치’(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것)를 이룬 것이다. 집착에 가까울 만큼 몰입했다는 점, 남들이 이해 못 해도 더 큰 비전으로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닮았다. 그도 음악에 심취한 경험이 아이팟과 아이튠스로 만개했고, 디자인 완벽주의가 애플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세대도, 주요 제품도, 경영 스타일도 다르지만 애플과 삼성이 2010년대 이후 세계 테크산업의 거두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탁월함의 바탕은 집착과 몰입이 아니었나 싶다. 아쉬운 것은 잡스와 달리 고 이 회장에 대한 기록이 다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잡스는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에게 자신의 평전을 쓰게 했다. 아이작슨은 잡스와 주변인 100여 명을 인터뷰해 900페이지에 달하는 전기를 냈고, 많은 이들이 그의 다각적인 면모를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고 이 회장은 2003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끝으로 기록을 멈췄다. 반(反)기업 정서가 커지면서 기업인은 솔직한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게 미덕처럼 남았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공과를 떠나 고인의 경영 철학에 대한 재평가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 반갑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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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역할에 진정한 비전 가졌던 기업인”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설립자 및 전 회장(79)이 지난달 25일 별세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추도하는 메시지를 1일 동아일보에 전해왔다. 퓰너 전 회장은 고 이 회장과 수십 년간 교류하며 우정을 쌓아온 인물이다. 이 회장은 퓰너 전 회장이 방한할 때면 종종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으로 그를 초대해 경제상황 및 주요 관심사에 대해 두루 의견을 나눠왔다. 이 회장은 퓰너 전 회장에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헤리티지 재단을 통해 미국 정·재계 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요청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퓰너 전 회장은 “헤리티지재단의 영광”이라며 흔쾌히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퓰너 전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이 회장과 두 팔을 벌려 진한 포옹을 나눴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1995년부터 매년 워싱턴DC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B.C. Lee Lecture’ 연례 세미나를 개최해오고 있다. 또 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접견실을 이병철실(B.C.Lee Room)로 이름 짓고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아래는 추도사 전문. 고 이건희 회장을 처음 만난 때는 1970년대 후반입니다. 당시 제가 서울을 자주 방문할 때였는데, 한 번은 이 회장과 만나 한미 경제 관계 등을 포함해 많은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쁘고 영광이었습니다. 부드럽지만 단단했던 그와 처음 나눈 악수부터 우리의 첫 번째 토론이 끝날 때까지 저는 그의 비전이 작은 체격을 넘어선 훨씬 큰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의 낙천적인 정신이 느껴졌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저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국 정·재계 인사들에게 이 회장을 소개할 영광을 가졌습니다. 모든 만남에서 그는 한미 동맹, 그리고 국제사회 속 한국의 역할에 대해 진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뛰어난 기업가이자 통찰력 있는 리더였습니다. 한국과 미국, 두 국가의 자유 국민과 자유 기업의 협력적 유대관계가 대대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것이 고 이건희 회장을 기리고, 그의 생기 넘쳤던 기업가 정신의 유산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미래로!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설립자 및 전 회장 I first met Chairman Lee in the late 1970s. During one my frequent visits to Seoul back then, I had the real pleasure and honor to meet him and talk about a number of topics of mutual interest including the US-Korea economic relationship. From my first handshake with him, which was gentle yet firm, to the end of our first set of discussions, it was very clear to me that his vision is far bigger than his rather small physique. I could also sense and deeply appreciate his can-do spirit of optimism, which I surely shared. In the years ahead I had the honor of introducing Chairman Lee to President Ronald Reagan and other American leaders. In all of my meetings he was a man of true vision for the U.S. Korean alliance and for South Korea‘s role in the world. He was both a remarkable entrepreneur and thought leader. It is my sincere hope that the cooperative kinship of free peoples and free enterprises in our two great nations,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continues to span the ocean for generations to come. That would be one of the most fitting ways of honoring the late Chairman Lee and passing his legacy of vibrant entrepreneurship to the future generations.Onward!Edwin J. Feulner, Ph.D.Founder and retired President of The Heritage Foundation서동일 기자 dong@donga.com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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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퓰너 “이건희 회장, 뛰어난 기업가이자 통찰력 있는 리더” 추도 메시지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설립자 및 전 회장(79)이 지난달 25일 별세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추도하는 메시지를 1일 동아일보에 전해왔다. 퓰너 전 회장은 고 이 회장과 수십 년간 교류하며 우정을 쌓아온 인물이다. 이 회장은 퓰너 전 회장이 방한할 때면 종종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으로 그를 초대해 경제상황 및 주요 관심사에 대해 두루 의견을 나눠왔다. 이 회장은 퓰너 전 회장에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헤리티지 재단을 통해 미국 정·재계 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요청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퓰너 전 회장은 “헤리티지재단의 영광”이라며 흔쾌히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퓰너 전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이 회장과 두 팔을 벌려 진한 포옹을 나눴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1995년부터 매년 워싱턴DC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B.C. Lee Lecture’ 연례 세미나를 개최해오고 있다. 또 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접견실을 이병철실(B.C.Lee Room)로 이름 짓고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아래는 추도사 전문. 고 이건희 회장을 처음 만난 때는 1970년대 후반입니다. 당시 제가 서울을 자주 방문할 때였는데, 한 번은 이 회장과 만나 한미 경제 관계 등을 포함해 많은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쁘고 영광이었습니다. 부드럽지만 단단했던 그와 처음 나눈 악수부터 우리의 첫 번째 토론이 끝날 때까지 저는 그의 비전이 작은 체격을 넘어선 훨씬 큰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의 낙천적인 정신이 느껴졌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저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국 정·재계 인사들에게 이 회장을 소개할 영광을 가졌습니다. 모든 만남에서 그는 한미 동맹, 그리고 국제사회 속 한국의 역할에 대해 진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뛰어난 기업가이자 통찰력 있는 리더였습니다. 한국과 미국, 두 국가의 자유 국민과 자유 기업의 협력적 유대관계가 대대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것이 고 이건희 회장을 기리고, 그의 생기 넘쳤던 기업가 정신의 유산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미래로!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설립자 및 전 회장 I first met Chairman Lee in the late 1970s. During one my frequent visits to Seoul back then, I had the real pleasure and honor to meet him and talk about a number of topics of mutual interest including the US-Korea economic relationship. From my first handshake with him, which was gentle yet firm, to the end of our first set of discussions, it was very clear to me that his vision is far bigger than his rather small physique. I could also sense and deeply appreciate his can-do spirit of optimism, which I surely shared. In the years ahead I had the honor of introducing Chairman Lee to President Ronald Reagan and other American leaders. In all of my meetings he was a man of true vision for the U.S. Korean alliance and for South Korea‘s role in the world. He was both a remarkable entrepreneur and thought leader. It is my sincere hope that the cooperative kinship of free peoples and free enterprises in our two great nations,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continues to span the ocean for generations to come. That would be one of the most fitting ways of honoring the late Chairman Lee and passing his legacy of vibrant entrepreneurship to the future generations.Onward!Edwin J. Feulner, Ph.D.Founder and retired President of The Heritage Foundation서동일 기자 dong@donga.com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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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원 “기업의 사회적 역할 다시 쓰겠다”

    “기업의 시야가 너무 좁았던 점 솔직히 반성합니다.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0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이 “SK (회장이) 아닌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새로 쓰고 싶다”며 이같이 밝혔다. 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제7회 21세기 인문가치포럼’ 개막식 초청 강연 자리에서였다. 최 회장은 여러 차례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해 왔지만 이번에는 특히 ‘SK를 넘어 기업인으로서 생각하는 기업의 역할론’을 설파해 주목을 받았다. 재계에선 “대한상공회의소 차기 회장 유력 후보인 최 회장이 수락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최 회장은 이날 나무가 베어진 숲 사진을 청중에게 보여준 후 “벌목사업만 두고 보면, 예전엔 나무를 최대한 많이 베어서 값 비싸게 파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숲의 환경, 정부의 규제, 근로자 보호와 같은 문제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기 좋은 것만 하는 것은 다른 가치를 무시하는 일이다. 그러면 사회가 기업을 벌하든지 기업이 사회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며 “기업은 ‘돈을 버는 것’이란 목적이 너무 강해서 공감 능력이 없었다”며 사회와 공감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기업의 미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소비자, 임직원, 정부, 시민단체 등 기업 이해관계자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경영을 말한다. 최근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도 “기업 평가는 매출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등으로도 이뤄져야 한다”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주창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저 역시 기업인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정신문화재단이 주관한 이날 포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세 안동시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강연은 최 회장이 직접 원고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최 회장이 받은 초고는 SK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 활동 중심으로 돼 있어, ‘SK 자랑이 아닌 청중이 공감할 내용이어야 한다’며 그간 기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담았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 수락으로 마음이 기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최 회장은 이를 두고 여러 달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상의 회장이 쉬운 자리가 아니다. 그룹 경영 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과제가 만만치 않다”며 “그럼에도 ‘재계의 구심점으로 4대 그룹이 나서야 한다’는 추대 움직임도 있어 고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차기 대한상의 회장은 내년 2월 열리는 서울상의 의원총회에서 부회장단 23명 중 1명을 합의 추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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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출근… “반도체 신화 이어가겠습니다”

    28일 오전 11시 고 이건희 회장의 운구 차량이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 들어섰다. 고인의 ‘마지막 출근’이었다. 오전 9시부터 5000∼6000명의 임직원이 화성사업장 도로 양편에 서서 고인을 기다렸다. 이 회장이 생전 마지막으로 기공식(2010년)과 준공식(2011년) 행사에 참가했던 제16라인 공장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등 유족이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내렸다. 방진복을 입은 임직원들이 웨이퍼를 들고 유가족을 맞았다. 유족들은 고인이 16라인 공장을 방문했을 당시의 영상을 함께 지켜본 뒤 다시 차에 올랐다. 운구 차량은 이후 경기 수원시 가족 선영으로 향했다. 한국 최대 글로벌 기업을 일궈낸 거목은 영면에 들어갔다. 이 회장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7시 20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홍 전 관장과 이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 함께 고인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아들 정용진 부회장, 조카인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빈소를 세 차례 찾았던 조카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이날 불참한 대신 부인 김희재 여사와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영결식을 찾았다. ▼ “반도체 신화 이어가겠습니다”… 임직원들 3000송이 국화로 배웅 ▼‘반도체 성지’ 수원에 영면한국 최대 글로벌 기업을 일군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마지막 출근길은 ‘반도체의 성지’였다. 1974년 주변의 만류에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후 평생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닦은 고인은 반도체 사업장에서 임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28일 오전 11시 이 회장을 태운 운구차량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출발점인 경기 화성시 반도체 사업장을 둘러본 뒤에야 장지로 향했다. 이곳은 이 회장이 생전에 가장 애착을 쏟았던 장소였다. 현장에는 임직원 5000∼6000명이 몰려 회사 측이 준비한 국화꽃 3000송이가 동이 났고 육아휴직한 직원들도 모습을 보였다. 화성사업장 곳곳에는 ‘회장님의 발자취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반도체 100년을 향한 힘찬 도약을 회장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반도체 신화 창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삼성 임직원 “잊지 않겠습니다” 화성사업장을 찾기에 앞서 오전 8시 20분 고 이건희 운구 차량은 이 회장이 거주하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과 이태원동 승지원, 리움미술관을 차례로 들렀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6년 5개월 만에 ‘귀가’한 셈이다. 승지원은 삼성그룹의 영빈관으로 이 회장은 이곳을 집무실로 주로 사용했다. 좌우명이자 선대 회장이 선물한 ‘경청(傾聽)’이란 휘호, 고인이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선물한 ‘삼고초려’ 그림도 이곳에 걸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화성사업장뿐만 아니라 삼성 계열사 곳곳에서 많은 임직원이 숙연한 분위기에서 고인을 애도했다. 서울 서초사옥에는 조기가 걸리기도 했다. 조문하지 못하는 임직원을 위한 삼성 온라인 추모관에는 14만여 명의 임직원이 방문해 3만여 개의 추모 글을 남겼다. 한 삼성전자 직원은 “코로나19로 대부분의 직원은 빈소에 들르지 못했다. 외부에서 볼 때 공과 과가 있다 하더라도 삼성에서 고인은 특별한 존재였다. 우리는 마음으로 애도하고 있다”고 했다. 고인은 오전 11시 55분 장지인 경기 수원시 선영에 도착해 영면에 들었다. 장지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뜻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 선산은 이 회장의 조부모와 증조부모 등이 묻힌 곳이다. 발인에는 이학수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 권오현 상임고문, 김기남 부회장, 정현호 사장, 이인용 사장 등도 함께했다.○ 반도체 초석 닦은 이건희 회장 고인의 운구가 마지막으로 반도체 사업장을 찾은 것은 평생 반도체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1974년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심했을 당시 삼성 경영진은 “TV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반도체를 만든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라며 반대했지만 이 회장은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이 회장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기술산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본 이 회장의 눈에 띈 사업이 반도체였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젊은 세대에게 심어주고 싶어 했다”며 “미국 일본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야말로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 진출 초기 전문 인력과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거의 매주 일본을 오가며 반도체 기술자를 만났다. 현직 일본 기술자를 주말에 몰래 한국으로 데려와 직원을 교육시킨 적도 많았다. 이 회장은 종종 반도체 산업의 핵심을 ‘타이밍’이라고 표현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 수조 원에 이르는 선행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에서 최적의 투자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피를 말리는 고통이 뒤따른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다.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은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반도체 사업장에 8인치 웨이퍼 양산 라인 도입을 결정하던 1993년이었다. 당시 반도체 웨이퍼는 6인치가 표준이었다. 8인치를 택하면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지만 기술적 부담이 컸기 때문에 경쟁사 모두 머뭇거리던 때였다. 한 번의 실패로 수조 원 이상의 자금을 허공에 날릴 수도 있었다. 이 회장은 ‘머뭇거리면 영원히 기술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결국 이 선택으로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 기업이 될 수 있었다. 일본 도시바 등과 기술력은 비슷했지만 생산력에서 앞선 삼성전자는 1993년 10월 메모리 시장 1위에 올라섰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전자 최고경영진과 임직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목표를 뒤쫓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세계의 리더가 되면 목표를 자신이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리더의 자리는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치열한 고민과 경험을 바탕으로 임직원들에게 한 당부였지만 이 회장 스스로를 다지는 말이기도 했다. 결국 고인은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자랑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초석을 닦았다.김현수 kimhs@donga.com·서동일 dong@donga.com·곽도영 기자}

    •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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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보]이건희 회장 영결식 마쳐…가족·임직원 등 마지막 배웅 속 영면

    25일 별세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영결식이 28일 오전 7시 20분부터 엄수됐다. 영결식은 오전 7시 반경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지하 강당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영결식은 이수빈 삼성 상임고문(회장)의 약력보고에 이어 고인의 50년 지기인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이 추도사를 통해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고, 참석자들의 헌화 순서로 진행했다. 이수빈 회장은 약력보고를 하면서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산업의 초석을 다지고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말을 이어가다 “영면에 드셨다”는 부분에서는 목이 멘 듯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김 전 회장은 “‘승어부’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로, 이것이야말로 효도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창업자인 부친을 훨씬 뛰어넘는 부를 이뤘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또 이 회장이 도쿄 유학시절 지냈던 2층 방이 전축, 라디오, TV로 가득했을 뿐 아니라 이 회장이 이를 모두 분해해 재조립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어 “부친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건희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듯이 이건희 회장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영상에서는 1987년 12월 삼성 회장 취임 이후 2014년 쓰러지기까지 변화와 도전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경영인 이건희, 사물의 본질 탐구에 몰두하는 소년 이건희, 스포츠 외교와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에 기여한 이건희 등 이 회장의 다양한 면면을 조망했다. 영결식은 약 50분가량 진행돼 8시 20분경 종료됐다. 영결식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과 홍라희 전 관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 김재열 사장 순으로 미니버스에 탑승해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이 부회장은 수척한 얼굴로 정면을 보며 걸어 나왔고,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은 고개를 숙인 채 나왔다. 이부진 사장은 감정이 복받친 듯 고개를 숙이고 오른손으로 마스크 쓴 입을 막기도 했다. 30분 뒤인 8시 50분경 지하주차장을 통해 운구차가 나갔다. 아무 장식이 없는 검정 리무진이 빠져나가는 동안 병원 관계자들과 삼성 관계자들이 예를 표했다. 운구차는 이건희 회장이 거주하던 용산구 한남동 자택과 이태원동 승지원(承志園), 리움미술관 등을 들른 뒤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일군 화성 및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임직원들과 작별의 정을 나눈다. 화성·기흥 사업장은 이건희 회장이 1984년 기흥 삼성반도체통신 VLSI공장 준공식을 시작으로 4번의 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애착이 깊던 곳이다. 이후 장지인 경기 수원시 가족 선영에서 영면에 든다.곽도영 기자 now@donga.com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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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중진국 트랩’ 걸릴까 걱정했던 이건희

    “주요 국가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2만, 3만 달러를 달성하기까지 걸린 기간을 조사해 주세요.” 2000년대 초 이건희 회장은 당시 삼성경제연구소에 나라별 소득 자료를 집요하게 요청했다. ‘오랫동안 1만 달러에 머무른 국가들은 왜 그런가’까지 따져 물었다. 삼성의 한 사장급 임원은 “당시 장기간에 걸쳐 나라별 소득 자료를 집요하게 요청하셨다. 나중에 보니 한국이 ‘중진국 트랩’에 걸려 더 발전하지 못할까 걱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결같이 “두 발 앞서 세상을 본 다시없을 경영인”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범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독특한 천재로 추억하는 이도 많았다. ‘조선시대 국민소득을 알고 싶다’든지, ‘대도시의 전봇대 개수’를 물었는데 알고 보면 나중에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은 “책을 한 달에 20권씩 읽는 것이 사실인지 묻자 ‘책을 워낙 많이 읽어 새 책을 봐도 아는 내용이 많다. 새로운 것 위주로 읽으면 그만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조문 마지막 날인 이날도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구광모 ㈜LG대표 등 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영결식과 발인은 28일 치러지며 장지는 경기 수원시 선영이다. 김현수 kimhs@donga.com·허동준 기자}

    •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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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에서 ‘여공’이란 말 쓰지 마라” 이건희 회장의 지시

    “삼성과 인연을 맺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도록 하는 게 내 꿈입니다. 그렇게 기원해주고 싶어요.” 2002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 직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고 한다. 이 회장 부부가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 초대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된 이 전 총장을 승지원으로 초청한 자리였다. 이 전 총장은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3시간 식사 자리에서 이 회장은 ‘인재를 길러야 사회도 잘되고 나라도 잘된다’고 강조했다. 많은 기업인을 만나봤지만 그렇게 크게 사고하고 나라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26일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서 ‘우리나라가 일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현실로 만들어줘 고맙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드렸다”고 말했다.○ “한번 맡기면 간섭하지 않는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는 다른 회사보다 긴 편이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1년간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지냈다.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은 “삼성 CEO들에게 ‘오너십’을 심어줬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의 비서실장이었던 현명관 전 마사회장은 “다른 회사 같으면 2억 원 쓸 때도 회장에게 보고했다면 삼성 CEO들은 10억∼20억 원은 물론이고 100억∼200억 원 범위의 사업을 할 때도 회장에게 일일이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프로젝트의 기간과 내용 등 큰 줄기는 논의해야 했다. 집행 단계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CEO 책임이었다. ○“도쿄에 까마귀가 몇 마리인가?” 이 회장은 듣는 사람이었다. 이마를 찌푸릴 뿐 불호령을 내리는 일도 드물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삼성 임원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이 회장의 질문이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지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갑자기 ‘도쿄에 까마귀가 몇 마리인 줄 아느냐’ ‘휴대전화를 반도체 없이 진공관 등으로 만들면 크기가 얼마나 되는 줄 아느냐’고 물으셨다”고 말했다. 질문의 배경을 알 수 없어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은 “반도체가 없다면 휴대전화 크기는 10층 건물 규모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진 전 장관은 “우리가 설마 하며 계산해 보니 그 말이 맞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사업에 대한 질문은 매서웠다. 하나에 대해 최소 5번 이상, 끝까지 파고들어 가야 직성이 풀렸다. 질문은 미래를 보는 혜안으로 이어졌다. 201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삼성의 성공 방식을 담은 논문이 실렸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회장은 1990년대에 이미 연구개발(R&D), 디자인, 브랜드 마케팅 투자를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18년여 근무한 김경원 세종대 부총장은 “20년 전부터 소프트웨어 인재를 1만 명 양성하라고 했는데 다들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구글이 등장한 이후 ‘소프트웨어 키우라 했더니 그동안 뭐 했나’라는 질책을 듣고서야 이해했다”고 말했다. ○ “한국이 잘돼야 삼성이 잘된다” 1993년 6월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증권실장이던 김 부총장은 연초부터 이직용 이력서를 쓰고 있었다. 선물로 받은 삼성 제품이 불량인 경우가 많아 ‘이런 불량품을 만드는 회사가 무슨 미래가 있겠나’ 싶었다고 했다. 마침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고 각 계열사에 ‘미션’을 줬다. 연구소에 내린 지시는 이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잘돼야 삼성이 잘됩니다. 이제부터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이 잘되는 길을 연구해 주세요.” 김 부총장은 “신경영은 삼성전자에는 불량률을 낮추라는 지시로, 삼성경제연구소에는 한국 발전 방안을 연구하라는 명령으로 전달된 한국 사회의 종합 발전 방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날 이후 김 부총장은 이력서 쓰기를 그만뒀다.○ “여성 키우지 않는 것은 낭비” 이 회장은 차별을 싫어했다. 학교나 성별을 이유로 필요한 사람을 쓰지 않는 것을 ‘낭비’로 여겼다. 1990년대에 이미 “지구의 절반은 여성인데, 어떻게 절반 없이 세계 최고의 기업을 키우느냐”며 여성과 남성 호봉 체계를 단일화할 것을 지시했다. 이경숙 전 총장은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을 잘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1990년대 초부터 여성 인력을 채용하고, 임원이 돼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여성 인재를 중시했다”고 말했다. 삼성에 ‘여공’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한 것도 이 회장이었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는 직장 내 ‘에티켓을 살리자’는 캠페인도 들어있었다.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으면 ‘신경영 사무국’에 신고하라고 했다. 당시 입사한 여성 직원들 중 현재 삼성의 임원으로 큰 사람들이 많다.○새벽회의-밤샘토론 즐긴 체력 이 회장은 새벽회의, 밤샘토론을 종종 했을 정도로 체력이 좋았다. 이 때문에 자택은 밤 또는 새벽에 임원들로 북적이기 일쑤였다. 현 전 회장은 “신경영 추진 당시 고민이 깊어지면 주요 임원을 불러 새벽까지 대화를 하기도 했다”며 “그럴 때면 이 회장도 아침이나 낮까지 잠을 잤다. (여느 경영인처럼)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진 경영인은 아니었지만 항상 에너지가 넘쳤다”고 말했다. 그 에너지는 평소에 즐기던 운동에서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모임 등 공식 행사뿐 아니라 해외 재계 인사들과 친목모임이 있을 때 골프를 즐겼다. 작은 체구지만 비거리도 짧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자랑했다. 승마와 스키도 이 회장의 취미였다. 술은 즐기지 않았다. 와인 한두 잔이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김현수 kimhs@donga.com·서동일·홍석호 기자}

    •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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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일류 일군 안목에 놀랐다” 취업난 젊은층, 이건희 리더십 재조명

    “예전엔 아버지 잘 만난 재벌 2세쯤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글로벌 기업을 만든 총수의 안목이 눈에 들어왔다.” 26일 서울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나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 등에선 전날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리더십을 조명하는 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운이었을까, 통찰이었을까. 반도체 진출의 진실이 정말 궁금하다”라거나 “착한 기업, 나쁜 기업의 프레임은 이분법적이다. 기업이 돈 많이 벌어서 일자리 많이 만들어주면 그게 착한 기업”이란 글이 눈에 띄었다. 이 회장이 별세한 지 이틀째. 재계와 학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이건희 신드롬’이 다시 불고 있다. 특히 2030 젊은 층 사이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는 가운데 취업난에 지친 젊은 층에는 고인의 ‘초일류 성공신화’가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날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정·재·관계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반도체를 비롯해 여러 제품에서 대한민국 경제계의 위상을 높였고 실질적으로 국가의 부를 만드는 데 기여하셨다”고 추모했다.▼“일자리 많이 만들면 착한 기업”… 이건희 다시 주목하는 젊은층▼“지금 어느 누가 정치나 사회에 소신 발언을 할 수 있을까요. 이건희 회장의 ‘사이다 발언’이 그래서 더 주목받으면서도 아쉬움이 큰 것 같습니다.” 26일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건희 신드롬’이 확산되는 배경에 대해 이같이 분석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기업인은 익명이나 경제단체 뒤에서 발언할 뿐 소신 발언을 쏟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정치력은 4류”라거나 “(정부의 경제 성적이)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한 발언 등을 두고 한 말이다. 실제로 한국에 혁신과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때로 강력한 비판으로, 때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초일류 성공신화’를 일궈낸 그의 혁신 DNA와 리더십에 대한 향수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30 젊은 층 “신선한 이건희 리더십” 특히 2030 젊은 층의 이건희 회장의 성과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직장인 김지혜 씨(36)는 “이 회장에 대해 사실 잘 모르다가 별세를 계기로 반도체나 스마트폰 탄생 스토리를 알게 됐다”며 “삼성에 대한 종합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자랑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주요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돈 많이 벌고 일자리 많이 만들어주면 그게 착한 기업”이란 글이 눈에 띄었다. “삼성이 일본 전자제품을 앞지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기를…”과 같은 글들이 적지 않았다. 정치인들 중 일부가 이 회장의 별세를 애도하면서도 “삼성이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고 발언하자 “기업인들의 성과를 무너뜨리지 않는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비판 글이 이어졌다. 25일부터 열린 삼성 온라인 추모관에도 오후 3시 기준 삼성 계열사 구성원들의 댓글 1만7500여 개가 달렸다. ○ “꿈과 희망이 그리운 시대”이건희 신드롬은 코로나19 사태에 여러 규제로 혁신이 실종된 시대라 더 큰 반향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취업난 등으로 일상에서 ‘거절’의 홍수 속에 살아 온 20, 30대 젊은 층에서 초일류를 일궈낸 삼성의 기업사가 새롭게 다가온다는 반응이 많다.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은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에 ‘삼성이 했으니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과 희망을 줬다”며 “취업난에 지친 20대 청년들은 과거 기업의 성공 신화와 성장 시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2000년대 초에도 이건희 신드롬이 불었던 적이 있다.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넘어서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넘치던 시대였다. 당시 이 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순위에서 1등을 하곤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오랜 저성장 속에서 이 회장처럼 미래를 내다본 강력한 리더십을 바라는 기류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오랫동안 반기업 정서 속에 한국 기업인의 리더십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이 회장 별세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도 한국 경제계에서 이 회장에 필적할 만한 리더십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뜨는 IT 기업도 있지만 삼성처럼 명실상부하게 글로벌 1등이 된 곳은 드물다. 오랫동안 기업의 잘못한 부분이 부각되다 새로 알게 된 삼성의 ‘글로벌 신화’가 젊은 층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했다.김현수 kimhs@donga.com·서동일·홍석호·곽도영·허동준 기자}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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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동차도 배터리 장착한 전자제품 될것… 반도체기술이 뒷받침 돼야” 20년전 예측

    평소 말수가 없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기록광’이었다. 특히 동아일보에는 삼성그룹 회장 취임 10주년을 맞아 1997년 4∼7월 ‘21세기 앞에서’라는 에세이를 연재했다. 이를 바탕으로 나중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책을 펴냈다. 이 회장의 에세이는 놀라울 정도로 현재에도 적용되는 통찰력이 살아 있다는 평을 듣는다. 여성 인재 등용부터 경제를 정치 논리에서 해방시키고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20여 년 전에 자동차가 전자제품이 될 것이라고 미래를 예측하는 등 경영자로서의 혜안이 두드러지는 부분도 많았다. 이 회장은 “오늘날 자동차는 부품 가격으로 볼 때 전기전자 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아마 전자 기술,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라고 적었다. 이 회장은 당시 “정보기술(IT) 기기는 물론 자동차에도 배터리가 필요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천재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인재경영을 강조했지만 ‘포수형 인재’에 대한 애정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찬호 선동렬의 강속구가 청량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항상 쭈그리고 앉아 투구를 리드하는 포수 없는 야구를 상상할 수 있나. 드러나지 않아도 팀의 승패를 좌우하는 역할이 포수다.” 이유가 있었다. 일만 잘하는 사람은 상사만 바라보는 ‘해바라기형 관리자’를 양산하는데,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선 ‘휴먼 네트워크’, 즉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혼자 똑똑한 사람보다 함께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강점을 갖게 된다. 포수처럼 그늘에 숨은 영웅이 대접받는 것이 선진기업, 선진국가다”라고 썼다. 이 회장은 예스맨(무조건 ‘예스’ 하는 사람), 스파이더맨(연줄에 기대려는 사람), 관료화된 인간(권위적인 사람), 화학비료형 인간(생색만 내는 사람)을 피해야 할 유형으로 들었다. “선친은 ‘기업은 곧 사람’이라고 수도 없이 말했다. 나는 조직을 망치는 사람을 겪었다. 이들은 능숙한 말솜씨로 여러 가지를 말하는데 대개 1인칭이 아니라 3인칭 화법을 즐겨 쓴다. ‘내가 하겠다’가 아니라 ‘사원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주인의식이 없는 것이다.” 그는 “경영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답한다”고도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동일한 사물을 보면서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는 ‘입체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같은 영화를 주연, 조연, 감독의 입장에서 여러 번 본 이유다. 이 회장은 기업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 핵심은 기업을 제대로 키우는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기업을 잘못 경영해 부실하게 만드는 것은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업인은 모름지기 기업경영의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기업을 알차고 살찌게 만들어 가야 한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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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자리 많이 만들면 착한 기업”… 이건희 다시 주목하는 젊은층

    “지금 어느 누가 정치나 사회에 소신 발언을 할 수 있을까요. 이건희 회장의 ‘사이다 발언’이 그래서 더 주목받으면서도 아쉬움이 큰 것 같습니다.” 26일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건희 신드롬’이 확산되는 배경에 대해 이같이 분석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기업인은 익명이나 경제단체 뒤에서 발언할 뿐 소신 발언을 쏟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정치력은 4류”라거나 “(정부의 경제 성적이)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한 발언 등을 두고 한 말이다. 실제로 한국에 혁신과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때로 강력한 비판으로, 때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초일류 성공신화’를 일궈낸 그의 혁신 DNA와 리더십에 대한 향수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30 젊은 층 “신선한 이건희 리더십” 특히 2030 젊은 층의 이건희 회장의 성과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직장인 김지혜 씨(36)는 “이 회장에 대해 사실 잘 모르다가 별세를 계기로 반도체나 스마트폰 탄생 스토리를 알게 됐다”며 “삼성에 대한 종합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자랑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주요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돈 많이 벌고 일자리 많이 만들어주면 그게 착한 기업”이란 글이 눈에 띄었다. “삼성이 일본 전자제품을 앞지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기를…”과 같은 글들이 적지 않았다. 정치인들 중 일부가 이 회장의 별세를 애도하면서도 “삼성이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고 발언하자 “기업인들의 성과를 무너뜨리지 않는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비판 글이 이어졌다. 25일부터 열린 삼성 온라인 추모관에도 오후 3시 기준 삼성 계열사 구성원들의 댓글 1만7500여 개가 달렸다. ○ “꿈과 희망이 그리운 시대” 이건희 신드롬은 코로나19 사태에 여러 규제로 혁신이 실종된 시대라 더 큰 반향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취업난 등으로 일상에서 ‘거절’의 홍수 속에 살아 온 20, 30대 젊은 층에서 초일류를 일궈낸 삼성의 기업사가 새롭게 다가온다는 반응이 많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은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에 ‘삼성이 했으니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과 희망을 줬다”며 “취업난에 지친 20대 청년들은 과거 기업의 성공 신화와 성장 시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0년대 초에도 이건희 신드롬이 불었던 적이 있다.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넘어서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넘치던 시대였다. 당시 이 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순위에서 1등을 하곤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오랜 저성장 속에서 이 회장처럼 미래를 내다본 강력한 리더십을 바라는 기류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오랫동안 반기업 정서 속에 한국 기업인의 리더십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이 회장 별세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도 한국 경제계에서 이 회장에 필적할 만한 리더십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뜨는 IT 기업도 있지만 삼성처럼 명실상부하게 글로벌 1등이 된 곳은 드물다. 오랫동안 기업의 잘못한 부분이 부각되다 새로 알게 된 삼성의 ‘글로벌 신화’가 젊은 층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했다.김현수 kimhs@donga.com·곽도영·허동준 기자}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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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신·소신 발언 그리워”…이건희 회장 타계에 ‘리더십’ 재조명

    “지금 어느 누가 정치나 사회에 소신발언을 할 수 있을까요. 이건희 회장의 ‘사이다 발언’이 그래서 더 주목 받으면서도 아쉬움이 큰 것 같습니다.” 26일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언젠가부터 기업인은 익명이나 경제단체 뒤에서 발언할 뿐, 소신 발언을 쏟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정치력은 4류”라거나 “(정부의 경제 성적이)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한 발언 등을 두고 한 말이다. 이 회장이 별세한 이후 재계와 학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이건희 신드롬’이 다시 불고 있다. 한국에 혁신과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때로 강력한 비판으로, 때로 미래를 내다본 혜안으로 ‘초일류 성공신화’를 일궈낸 그의 혁신 DNA와 리더십에 대한 향수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도, 직원도, 정치권도 “리더십 그립다”이날 이 회장의 경영 철학과 주요 업적이 보도되자 온라인 주요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 회장을 추모하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지금의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그런 인물이 우리나라에 또 나왔으면 좋겠다”, “삼성이 일본 전자제품을 앞지를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기를…”, “예전엔 아버지 잘 만난 재벌 2세쯤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글로벌 기업을 만든 총수의 안목이 들어왔다”, “기업이 돈 많이 벌어서 일자리 많이 만들어주면 그게 착한 기업” 같은 글들이 많았다. 직장인 김지혜(36) 씨는 “삼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한국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세계 1위에 올라선 건 누구나 자랑스럽게 생각할 한국의 성취”라고 말했다. 많은 해외 교포들이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에 삼성전자 기업 광고가 실리는 것을 보며 긍지를 느꼈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인들 중 일부가 이 회장의 별세를 애도하면서도 “삼성이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라는 발언을 하자 “기업인들의 성과를 무너뜨리지 않는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글이 이어졌다. 25일부터 열린 삼성 온라인 추모관에도 오후 3시 기준 삼성 계열사 구성원들의 댓글 1만7500여 개가 달렸다. 한 직원은 “입사와 더불어 배우게 된 회장님의 어록과 철학을 다시 생각하고 25년이 지난 현시점에도 여전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라고 적었다.● “꿈과 희망이 그리운 시대”이건희 신드롬은 코로나19 시대에 여러 규제로 혁신이 실종된 시대라 더 큰 반향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취업난 등으로 일상에서 ‘거절’의 홍수 속에 살아 온 20, 30대 젊은 층에서 초일류를 일궈낸 삼성의 역사가 새롭게 다가온다는 반응이 많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은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에서 최첨단 산업분야에 뛰어들어 세계 최고에 오르는 아주 예외적인 사례를 남겼다.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에 ‘삼성이 하는데 왜 우린 못하나’라는 꿈과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에도 이건희 신드롬이 불었던 적이 있다.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넘어서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넘치던 시대였다. 당시 이 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순위에서 1등을 하곤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오랜 저성장 속에서 이 회장처럼 미래를 내다본 강력한 리더십을 바라는 기류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곽도영 기자 now@donga.com}

    •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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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자동차… ‘몰입’이 세계 1등 기업 키웠다

    ‘은둔의 제왕(The Hermit King).’ 2003년 11월 24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다룬 커버스토리에 붙인 제목이다. 이 회장은 말수가 적었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몰입하는 걸 좋아했다. 당시 이 회장 인터뷰를 시도하다 실패한 뉴스위크가 붙인 이 별명은 수년간 이 회장을 따라다녔다. 이 회장은 은둔자 기질 탓에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후계자로 지목됐을 당시에도 사업가로 적합하지 않다며 반발하는 기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몰입을 통해 해법을 찾았으며, 이를 반드시 현실로 만드는 실행력을 갖고 있었다.○ 영화광, 자동차광…세계 1위는 몰입에서 출발 이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사업가 이병철의 3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의 사업이 바쁘다며 젖을 떼자마자 경남 의령군의 할머니에게 가서 자랐다. 이 회장은 할머니가 어머니인 줄 알고 자라다 3세가 돼서야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곧이어 터진 6·25전쟁과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마산, 대구, 부산으로 학교를 5번 옮겼다. 5학년이 되자 부친의 뜻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홉 살 많은 둘째 형(고 이창희 새한미디어 회장)과 함께 살면서 자신이 흥미를 가진 분야에 몰입하는 습관이 생겼다. 3년 동안 영화만 1300여 편을 봤다. 주인공, 조연, 감독 등 각각의 입장에서 분석하다 보니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 보는 습관도 생겼다. 영화감독을 꿈꾸기도 했던 이 회장은 “영화 분석을 통해 경영에 필요한 입체적 사고를 키웠다”고 주변에 말했다. 이 회장의 마니아적 기질과 관련된 일화는 수없이 많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유학 중에는 1년 반 동안 차를 여섯 번 바꾸며 자동차를 직접 분해하거나 조립했다. 각종 전자제품도 수없이 가져다 분해했다. 이런 습관은 경영자가 된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 1등 기업의 제품을 분해하고 삼성 제품과 비교하는 선진 제품 비교 전시회를 1990년대부터 매년 열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몰입 성향은 삼성을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냉철했지만 소탈했던 인간적 모습도 이 회장은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데다 평소 표정 변화를 거의 드러내지 않아 냉철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소탈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 회장의 고교 시절 담임교사를 맡았던 고 박붕배 서울교대 교수(2018년 별세)는 “친구들과 장난도 잘 치고 도시락도 뺏어 먹고 뺏기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잘난 체를 하지 않고 부자 아들이라는 티를 안 냈다”고 기억했다. 또 다른 고교 은사는 “나는 한참 뒤까지 그 애가 이병철 회장의 아들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이 회장과 함께 서울사대부고를 다닌 박영구 전 삼성코닝 사장은 “이 회장이 평소 참여하던 사내 고교 모임에 어느 날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편하고 좋다고 동문들을 따로 만나면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엔 섭섭했어도 나중엔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직원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흔쾌히 응했고, 구내식당에서 일반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모습도 종종 포착됐다. 이 회장은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를 들렀을 당시 그를 알아본 관람객들이 몰려들자 경계하는 수행원들을 물러나게 한 뒤 인사를 나눴고, 사인해 달라는 요청에도 흔쾌히 응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애견가로도 유명하다. 고인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자전적 에세이 중 ‘개를 기르는 마음’이란 편에서 “나는 6·25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부친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혼자 있다 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고 사람과 동물 간에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썼다. 1997년 영국의 애견단체인 ‘프로 도그스 내셔널 채러티’가 애견가에게 수여하는 ‘레슬리 스콧오디시 메모리얼’상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어느 날 한 임원을 불러 “사장들 가운데 보신탕 먹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뒤 명단을 적어 오라고 한 적도 있다. 당황한 임원이 “혼내실 것이냐”고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 “개를 한 마리씩 사주겠다.”이건혁 gun@donga.com·김현수 기자}

    •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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