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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은 6일 최근 일본 정부가 낸 ‘침략 전쟁의 역사 관련 조치’에 대한 재단 입장 자료를 통해 “일본 정부는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설 전시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철회하라”고 밝혔다. 최근 교도통신 보도로 내년 3월 도쿄의 한 공원에 이 같은 전시관을 연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동북아재단은 “독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이 같은 계획은 한반도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단은 또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일본 근대산업시설을 등재하면서 산업시설의 한국인 강제 동원과 강제 노동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이를 이행하지 않는 점을 비판했다.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 뒤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강제동원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으며, 공통 안내판은 물론이고 각 시설 안내판에도 거의 기술하지 않고 있다. 재단 측은 “이 같은 조치들은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해 온 일본 정부의 입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효꽈(효과·效果)’ ‘관껀(관건·關鍵)’ ‘교꽈(교과·敎科)’의 된소리 발음이 표준 발음으로 새롭게 인정됐다.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 수정 내용 40건을 최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안간힘은 ‘안깐힘’ 말고도 ‘안간힘’이라고 읽어도 되고, 순이익은 ‘순니익’ 또는 ‘수니익’으로 읽어도 된다. ‘반값’은 ‘반갑’뿐 아니라 ‘반깝’으로 읽어도 되며, 성적을 나타내는 숫자 ‘점수(點數)’의 발음 역시 ‘점쑤’와 더불어 ‘점수’가 새로 인정됐다. 새로 사전에 오른 단어도 있다. ‘기다랗게 되다’라는 뜻의 ‘기다래지다’가 표준어로 이번에 인정됐고 접두사 ‘기(旣)’도 ‘그것이 이미 된’ ‘그것을 이미 한’이라는 뜻과 함께 표제어에 더해졌다. ‘기구축’ ‘기출석’과 같이 사용할 수 있다. ‘노랫말을 고치거나 다시 짓다’라는 뜻의 ‘개사(改詞)’도 사전에 등재됐다. 듣는 이를 부르는 말 ‘이보십시오’가 새로 사전에 오르면서 ‘이보세요’ ‘이보쇼’ ‘이보시게’ ‘이봐요’ 등도 함께 등재됐다. 미망인의 뜻풀이는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에서 ‘남편을 여읜 여자’로 바뀌었다.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된다”는 각주가 달렸다. 널리 쓰이지만 아직 뜻풀이가 없던 말도 뜻이 추가됐다. ‘줄’ ‘줄을 대다’는 말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될 만한 사람과 관계를 맺다”라는 풀이가 더해졌다. “관리자에게 줄을 대어 승진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예시 문장도 실렸다. ‘올라오다’라는 단어에는 “컴퓨터 통신망이나 인터넷 게시판 따위에 글이 게시되다”라는 풀이가 추가됐고, ‘잎’에는 ‘꽃잎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추가됐다. ‘잘생기다’ ‘못생기다’ ‘잘나다’ ‘못나다’ ‘낡다’ 등은 형용사에서 동사로 품사가 수정됐다. ‘잘생겼다’ 등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 상태의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국립국어원은 설명했다. ‘빠지다’ ‘생기다’ ‘터지다’도 보조 형용사에서 보조 동사가 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개봉 예정이라는 소식에 원작인 동명 TV 드라마를 만든 일본 이와이 슌지 감독이 떠올랐다. 감독을 한국에 널리 알린 건 영화 ‘러브레터’. 국내 개봉은 1999년으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18년 전이다. 1999년에서 다시 18년을 빼면 1981년이고, 그해 국내 개봉한 해외 영화로는 ‘슈퍼맨2’ ‘13일의 금요일’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영화 ‘러브레터’에 관한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1999년 기준으로 그런 케케묵은 영화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실 ‘러브레터’는 국내에서 3번이나 재개봉됐고, 또다시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마치 ‘오겐키데스카∼ 와타시와 겐키데스(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냅니다)!’라는 주인공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기억도 묵어가고, 사람도 묵어가는데 영화는 여전히 설원처럼 차가운 처음의 느낌을 그대로 전한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남기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부제를 보고 펠리페 2세 시대의 국제정치 변동만이 담겼다고 생각하면 낭패를 볼 것이다. 1권에 담긴 1부 제목은 ‘환경의 역할’이다. 산지, 고원, 평야, 바다, 연안, 사막, 기후, 계절 등에 관한 서술이 이어진다. ‘아날 학파’의 거두로 20세기 역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저자(1902∼1985)는 이 같은 지리적 환경을 인간 행위의 배경이 아니라 기초적인 인간 활동을 지배하는 또 다른 행위 주체로 봤다. ‘지리적 시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 느리게 흘러간다. 반복적이고 거의 영속적이다. 저자는 2차대전 중 독일군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 이 책을 썼다. 훗날 ‘역사학의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역사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들을 통합하는 인간학 연구를 주도했다. 책은 역사를 3개의 시간대로 구분한다. 지리적 시간 다음은 ‘사회적 시간’이다. 이는 인간 집단 활동의 층위로, 넓은 의미의 사회사라고 할 수 있다. 2부가 여기 해당한다. 경제, 제국, 사회, 문명, 전쟁 등의 주제가 각각 상, 하로 나눠 담겼다. 마지막으로 정치 투쟁과 같은 ‘사건들의 역사’가 담긴 3부는 향후 출간 예정이다. 역사적 시간의 3분(分) 구조는 ‘구조―국면―사건’으로 변형돼 저자의 또 다른 고전 ‘15∼18세기 물질문명, 경제, 자본주의’(‘물질문명과 자본주의’로 번역 출간)로 이어졌다. 끊임없이 정보들이 이어지는 연구서이기에 웬만한 서양사 지식이 없는 독자가 읽기에는 만만치 않지만 ‘고전이 왜 고전인지’ 보여주는 깊이가 담겼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 직후 동아일보는 가장 먼저 호외를 내며 소식을 알렸고, ‘조선인 윤봉길’이라는 이름도 당일 호외를 통해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이는 당시 동아일보가 상하이의 통신원과 직접 교류하고 있었다는 걸 뜻하죠.” 독립기념관은 한국의 독립 의지를 만방에 알린 윤봉길 의사의 순국 85주기(19일)를 맞이해 2, 3일 일본 가나자와대에서 ‘윤봉길 의거와 세계평화운동’을 주제로 한일 공동 학술회의를 연다. ‘윤봉길 의거에 대한 국내외 언론 반응’을 발표하는 홍선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상하이와 직통하지 않고서는 이처럼 발 빠르게 보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동아일보는 1932년 4월 29일 윤 의사 의거 직후 첫 호외를 내고 “조선인이 폭탄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두 번째 호외에서는 머리기사 제목으로 “조선인으로 판명, 윤봉길, 연령 25세”라며 이름도 처음으로 밝혔다. 5월 1일까지 호외만 4번을 낸 신문도 동아일보뿐이다. 윤 의사의 사진을 처음으로 게재한 것도 동아일보 5월 3일자다. 윤 의사의 가족사진도 함께 실었다. 5월 4일자에는 윤 의사 체포 장면 사진을 실었고, 7일자에는 윤 의사와 가족의 근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8일자에는 일본 육군성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자 이를 토대로 임시정부를 비롯해 상하이의 독립운동 근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이후 윤 의사 순국 때까지 의거로 체포당한 안창호 선생의 국내 압송, 윤 의사 군법회의, 일본 호송 등 속보를 이어갔다. 그해 11월 22일자 윤 의사의 사형이 오사카에서 집행될 예정이라는 기사에도 윤 의사의 사진을 실었다. 홍 연구위원은 “당시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뒤로 언론 통제도 극심했던 상황”이라며 “동아일보가 ‘목숨을 걸었다’ 싶을 정도로 통제를 비집고 계속 윤 의사 관련 기사와 사진을 올리면서 민족지로서 사명을 다했다”고 말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도 윤 의사의 의거 당일 바로 호외를 내는 등 보도를 했다. 그러나 ‘조선인 윤봉길’에 대한 보도를 애써 지우려 하면서 폭탄 폭발 상황과 일본인 부상자의 피해, 그리고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정에 무게를 뒀다는 게 홍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당시 미국을 제외하고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해외 언론은 대체로 윤봉길 의거를 ‘테러 사건’으로 규정하고, 부상당한 일본인에 대한 동정과 중일 간에 추진하던 정전협상에 주목했다. 한편 다무라 미쓰아키 전 일본 호쿠리쿠대 교수는 학술회의 발표문 ‘세계사적 저항운동의 관점에서 본 윤봉길 의거’에서 “윤봉길의 의거는 프랑스의 반(反)나치 레지스탕스 활동과 같다”고 평가했다. 다무라 교수는 “레지스탕스는 점령군에게 타격을 주는 모든 활동”이라며 “조선의 의병투쟁이나 윤봉길의 의거는 히틀러 암살 시도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열강에 저항한 세계 독립운동사에 큰 의의를 지닌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변호사, 광복 뒤 반민특위재판부장, 붓으로 대한민국 법률 초안을 써내려 간 법전편찬위원장, 정권의 독재화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지켜낸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1887∼1964) 없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역사는 성립이 불가능하다. 김병로의 법률가적 면모에 집중한 일대기 ‘가인 김병로’(박영사)가 최근 발간됐다. 저자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1995년까지 대법원이 있던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 27일 만났다. “이승만 대통령의 진노를 샀던 판사들이 김병로 대법원장 재임 시기(1948년 8월∼1957년 12월)에는 자리와 소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 집권 연장 목적의 개헌에 반대하던 서민호 의원이 총격 사건으로 구속되자 안윤출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구속집행정지를 결정해 서 의원을 석방했다. 그러나 시위와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결정에 불만을 표하자 김병로 대법원장은 말했다.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항소하시오.” 이승만 대통령은 김 대법원장이 못마땅해 장관에게 “요즘 헌법(김병로) 잘 계시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교수는 “김병로가 대법원장이었다면 1959년 조봉암의 사형 판결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며 “김병로는 힘없는 신생 국가의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소신을 외풍으로부터 지킨 법조 윤리의 화신”이라고 말했다. 그 바탕은 극도의 청렴함과 강직함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변호사 개업을 하려는 판사를 김 대법원장이 “나도 죽으로 살고 있어요. 서로 죽을 먹어가면서 일해 봅시다”라며 만류한 일화도 전해진다. 920쪽에 이르는 이 책은 법학 지식을 바탕으로 가인의 활동과 고뇌를 추적했다. 가인이 독립운동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론했는지도 세밀하게 담겼다. “가인은 일제강점기 내내 광복 뒤 법률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일례로 피고인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구속기간을 제한하는 한국 형사소송법은 일본 미국 독일 등에도 유례가 없다. “독립운동가들이 붙잡히면 판결 뒤 복역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무기한 연장되는 수사와 재판입니다. 2, 3년 구속돼 있는 동안 고문당해서 죽거나 몸과 마음이 상합니다. 그들을 변호했던 김병로 선생이 6·25전쟁 중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초안을 만들며 집어넣은 것이지요.” 한 교수는 인터뷰에서 가인과 동아일보의 깊은 인연도 소개했다.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고하 송진우와 가인은 더없이 가까웠지요. 일본 유학 뒤 가인은 변호사, 고하는 언론에서 활약하며 상승작용을 했습니다. 언론은 독립운동가가 붙잡혀도 피고인을 직접 접촉 못 했지요. 가인이 변호하며 얻은 정보를 언론이 크게 보도하며 독립운동을 나라 전체에 알렸던 겁니다. 광복 뒤에도 헌법정신을 바탕으로 정권을 비판하는 가인의 기고가 동아일보에 제일 많습니다.” 한 교수는 “가인은 안창호, 김성수, 이인 등 지도자는 물론이고 홍명희, 허헌, 여운형 등 우파 중도파 좌파와 두루 절친했다”며 “한결같이 정치적 좌우를 가리지 않고 통합노선을 추구했다”고 강조했다. 자료 수집에만 10년이 걸렸다. 그동안 방학 때만 되면 ‘20세기에 들어가’ 살았고, 일제강점기 고문 관련 기사를 하도 읽어 자신도 몸에 통증이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한 교수는 “김병로 선생은 한국 법제, 사법, 법률, 윤리의 초석을 놓은 법의 거인”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고종이 아관파천 뒤 러시아가 조선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도록 약속하는 ‘비밀협정’을 러시아와 체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96년 고종이 보낸 러시아 특사단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모스크바 대관식에 참석해 외교 활동을 벌인 일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특명전권공사 민영환(1861∼1905)이 로바노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벌인 비밀협상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김영수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장은 ‘역사와 현실’ 12월호 게재 예정 논문 ‘명례궁 약정과 한-러 비밀협정을 통해 본 모스크바 대관식’(1896년)에서 일본, 러시아 등의 사료로 이 협상을 살폈다. 논문은 주한 일본 공사 가토 마쓰오가 고종을 독대하고 ‘한-러 비밀협정’의 내용을 입수해 1897년 12월 일본으로 보고한 자료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영환은 1896년 8월 “…조선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러시아는 병력으로 도와주거나, 혹은 다른 나라가 조선의 자주독립권을 방해하면 러시아는 특별히 공평히 처리하여…”라는 서신(조선정부명령)을 전했다. 로바노프 장관은 “러시아 황제에게 윤허를 받아 러시아 정부의 명령을 귀 공사에게 통고한다.…당연히 공평하게 처리하여 도울 것”이라는 내용을 서신으로 답했다. 다른 러시아 사료에도 로바노프가 “러시아 정부가 조선 왕실의 이익을 보호하는 가능한 협력과 행동을 제공한다”는 서신을 작성해 민영환에게 주었다고 나온다. 김 소장은 “이는 러시아의 군사적 조선 보호를 의미한다”며 “한-러 비밀협정은 러시아가 조선을 자국의 영향 아래 두려는 전략인 동시에 조선이 일본의 군사적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았던 러시아 정부가 조선 문제에서 이중적 입장을 취했으며 한-러 비밀협정은 체결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실제 러시아는 일본과 1896년 6월 ‘모스크바 의정서’를 비밀리에 체결하면서 필요하면 러시아와 일본이 공동으로 조선을 보호국화한다고 합의한 상태였다. 김 소장은 “한-러 비밀협정 뒤 조선은 압록강 두만강 울릉도의 삼림벌채권, 함경도 길주의 삼림자원 이권, 함경도 삼수와 담천 지역의 이권을 러시아에 주는 등 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천주교는 청와대가 최근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변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왜곡했다고 27일 항의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이날 공개 질의서를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며 사실을 바로잡으라고 촉구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26일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밝히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천주교는 “이는 마치 교황이 낙태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기본 입장 변화를 시사한 것처럼 발표해 매우 교묘한 방법으로 사실을 호도한 것”이라며 “한국 천주교회는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고 밝혔다. 또 “만일 청와대가 언급한 교황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의 ‘새로운 균형점’ 발언은 2013년 9월 예수회가 발행하는 잡지와 인터뷰에서 나왔다. 동성애자와 이혼자, 낙태한 여성에 대한 자비를 강조한 것으로 낙태를 허용하자는 뜻은 아니었다는 게 천주교계의 관점이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 청원에 23만여 명이 동의하자 청와대는 “중단됐던 ‘인공임신중절 수술 실태조사’를 내년 재개하고,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통해 사회적, 법적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유럽 급진주의 단체를 연구해 온 전문가들이 극우주의의 계보와 다양한 스펙트럼을 분석한 연구서다. 올 5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는 이민 반대와 유럽연합 탈퇴를 내세운 국민전선(FN) 후보 마린 르펜이 33.9%를 득표했다. 9월에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 연방 의회에 입성했다. 유럽에서 양당 체제가 무너지면서 극좌와 함께 극우의 부상이 심상치 않다. 책은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극우주의를 세 가지 모델로 분류한다. 네덜란드의 자유당은 이슬람 혐오주의를 바탕으로 엘리트주의를 규탄하는 한편 동성애자, 유대인, 여성 등 소수집단의 자유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 극단에는 그리스의 ‘황금새벽’이라는 운동이 있다. 이들은 파시즘의 민병대 형태에 영향을 받아 도시 폭동과 합법 선거운동 사이를 넘나들면서 사회주의적 투쟁을 한다고 여긴다. 나치즘의 영향도 받았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국민전선은 지지자들의 폭이 훨씬 넓다. 창립자 장마리 르펜은 민족주의적 포퓰리스트로 국내 엘리트와 외부의 침입자들이 국가를 쇠퇴시키고 있기에 구원자가 나타나야 한다고 호소했다. 딸인 현 대표 마린 르펜은 세계화로부터 자국민을 지키면서, 보호주의를 통해 기업의 이윤 창출을 최대한 보장하고 복지도 지키겠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여러 극우주의는 유럽연합에 대한 비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별로 없다. 저자들은 “최근의 극우주의는 1930년대의 그것과 다르고, 2008년 경제위기로 나타난 것도 아니다”라며 “급속한 세계화에 따른 사회 변동에 대한 적대적 반응”이라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수험표 가져가서 할인 받으세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수험표가 할인티켓으로 바뀐다. 시험 준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문화생활로 달래보는 건 어떨까. 23일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을 위해 공연계와 영화계가 할인 이벤트를 마련했다.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수험표와 신분증을 꼭 챙겨가야 한다. ○ 고가의 뮤지컬 티켓, 최대 반값 할인 7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1980년대 광부들이 대파업을 벌이던 시기, 영국의 한 탄광촌에 살던 빌리가 우연히 접한 발레에 빠져들어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제작사 신시컴퍼니는 28일부터 12월 8일까지 수험생 본인에 한해 전석 티켓가의 40%를 할인해준다. 티켓 수령 시 수험표를 깜빡하면 할인받은 차액을 지불해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서울 디큐브아트센터, 6만∼14만 원. ‘미친 가창력’으로 통하는 배우 홍광호와 고은성이 주인공을 맡은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도 수능 수험표를 제시할 경우 1인 2장까지 40% 할인해준다. 화∼금 평일 공연에 한해 수험생 할인이 적용된다. 단, 크리스마스인 25일은 제외된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6만∼13만 원. 추리소설 창시가로 알려진 실존 동명 작가의 삶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수험생 1인당 티켓 2장에 한해 반값 할인에 나선다. 단, VIP석을 제외한 R석, S석, A석만 할인 대상에 포함된다. 6만∼12만 원,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이외에도 창작 뮤지컬 ‘광화문 연가’(세종문화회관) ‘베어 더 뮤지컬’(백암아트홀)이 수험생 포함 1인 2장까지 40% 할인해 준다. 예술의전당도 나선다. 콘서트홀 무대에 오르는 ‘11시 콘서트’(12월 14일)와 ‘토요콘서트’(12월 16일)는 50% 할인하고, 1970년대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들의 세계 시민 성장기를 다룬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자유소극장)는 5만5000원의 정면석을 2만 원에 판매한다. 26일까지 열리는 전시 ‘무민 원화전’은 수험생 본인과 동반 1인에 한해 입장권 3000원 할인 및 오디오 가이드 무료 대여 혜택을 제공한다. ○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수험생 할인 CGV는 12월 15일까지 ‘청소년 브랜드 페스티벌’을 연다. 만 13∼18세의 중고교생이 수험표나 학생증을 제시하면 동반 1인까지 일반 2D 영화 표가 6000원이고, 일부 메뉴는 3000원을 할인해준다. 핫트랙스, 스무디킹, 교보문고, 디뮤지엄, 빕스, 계절밥상 등에서도 10∼80% 할인을 제공한다. 롯데시네마도 수능이 끝난 첫 주말인 25, 26일 수험생 본인이 수험표 지참 시 영화와 싱글콤보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ONEDAY PASS’를 1만5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12월 13일까지는 수험생들에게 일반 2D 영화가 6000원이다. 메가박스는 수험표나 학생증을 지참하면 영화 관람 티켓이 6000원이고 일부 세트 메뉴가 할인된다.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는 12월 6일까지 수험표를 지참하면 ‘땐뽀걸즈’를 무료로 볼 수 있다. 김정은 kimje@donga.com·조종엽 기자}

“각 개인 또는 집단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며 역사의 경로가 정해진다. … 어느 순간 떨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진실에 관심을 갖고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균열은 쉽게 봉합되지 못한다.” 올 4월 출간된 ‘민주주의 잔혹사’(홍석률 지음·창비) 1장 ‘우연과 우연의 연쇄반응: 박종철과 6월항쟁’에 나오는 구절이다. 1987년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이런 통찰에 썩 잘 어울리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 ‘1987’(12월 27일 개봉)의 제작보고회가 22일 열렸다. 광주의 아픔을 다룬 1000만 관객 영화 ‘택시운전사’에 이어 1980년대 정치적 격변을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올겨울 극장가의 ‘빅 시즌’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87’은 고문치사를 은폐, 축소하려는 세력과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의 대결을 다루면서 여러 사람들의 용기 있는 선택이 사슬처럼 맞물려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그린다. 이날 제작진은 “릴레이로 바통을 넘겨가며 계속 또 다른 주인공이 나오는, 새로운 형식의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에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대공수사처장 ‘박 처장’ 역은 김윤석이 맡았다. 김윤석은 “실존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며 “시대 속에서 어떻게 그런 인물이 생겨났는지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부검 없는 시신 화장’ 요구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이는 서울지검 ‘최 검사’ 역의 배우 하정우는 “시나리오를 보니 시대적 아픔을 전달할 뿐 아니라 극영화로서도 재미가 있어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배우 이희준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끝까지 매달리는 신문기자 ‘윤 기자’ 역을 맡았다. 윤 기자의 실제 모델은 1987년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 사건팀 고(故) 윤상삼 기자다. 윤 기자는 서울 용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응급조치한 의사 오연상의 용기 있는 증언을 특종 보도했다. 그는 “정의의 사도 같은 모습보다도 평범한 인간, 살아있는 진짜 기자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건의 진실을 담은 옥중 서신을 전달하는 교도관 ‘한병용’ 역은 유해진이 연기했다. 영화는 6월민주항쟁을 표현하기 위해 1987년의 서울시청 앞 광장과 명동거리, 연세대 정문 앞 등을 세트로 재현해냈다. 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2003년)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년) 등에서 독창적인 서사와 긴장감 넘치는 캐릭터 묘사를 선보였다. 장 감독은 “박종철 열사가 돌아가시고 6월민주항쟁이 일어나기까지 수많은 분들이 양심의 목소리를 내면서 온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온 이야기를 담았다”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꼭 돌아보고, 다시 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해 연출할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케이팝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19일(현지 시간) 축하공연을 펼치며 미국 TV에 정식 데뷔했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시어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아시아 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무대를 선보였다. 이날 팬들의 환호 속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한 방탄소년단은 새 앨범 ‘러브 유어셀프 승-허(LOVE YOURSELF 承-Her)’의 타이틀곡 ‘DNA’를 선보였다. 이날 주최 측은 방탄소년단의 자리를 가장 앞줄에 배치하고, 무대 순서도 공로상을 수상한 다이애나 로스의 무대 직전에 오르게 해 사실상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게 했다. 세계적 DJ 듀오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는 방탄소년단을 “인터내셔널 슈퍼스타란 말로도 부족한 팀이다”라고 소개했다. 해외 팬들도 ‘떼창’(관객들이 다 같이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행위)을 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시상에 참여한 할리우드 배우 앤설 엘고트는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직접 영상으로 찍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하고 “Oh my God! BTS!”라고 소리치며 폴짝폴짝 뛰기도 했다. 공연이 미국 ABC를 통해 전역에 생방송된 직후 미국 구글 트렌드 검색 순위에 방탄소년단이 1위로 올랐을 정도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시상식에서 한국어로 된 음악을 선보이는 것이 굉장히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올해로 45회째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는 ‘빌보드 뮤직상’ ‘그래미상’과 함께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으로 꼽힌다. 2012년 ‘뉴미디어상’을 받은 싸이가 MC해머와 함께 피날레 공연을 한 바 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브루노 마스가 ‘올해의 아티스트’를 비롯한 7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고(故) 신해철의 노래 ‘민물 장어의 꿈’에서 뱀장어는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바다로 간다. 내가 누군지 말해주는 곳이 고향이라면, 이는 시적 표현만은 아니다. 민물에 사는 뱀장어의 고향은 바다다. 우리가 먹는 뱀장어는 필리핀 인근의 따뜻한 바다, 미국장어나 유럽장어는 사르가소해(북대서양 서인도제도와 아조레스제도 사이 해역)에서 알을 낳는 것으로 추정한다. 책에 따르면 사르가소해에서 부화한 뱀장어 유생은 멕시코 만류를 타고 표류한다. 강 냄새는 맡아본 일도 없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이른 봄 대서양 연안의 강과 시내를 거슬러 오른다. 호수에서 8년 넘게 살며 살을 찌우고 다시 수천 km를 헤엄쳐 사르가소해에서 알을 낳고 죽는다. 이 책은 본능적으로 고향과 같이 특정한 장소로 향하는 조류, 어류 등 다양한 생물을 조명한다. 조류학자들은 영국 웨일스 앞바다에서 슴새를 잡아 슴새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놓아주었다. 슴새는 바다가 아니라 알프스산맥으로 방향을 잡아 341시간 10분 만에 자신의 둥지로 돌아왔다. 미국 동부 보스턴에서 놓아준 슴새도 12일 12시간 만에 5000km를 날아 집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고,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찾을까. 특히 이정표가 없는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는 동물들이 주목된다. 이런 새들은 낮에는 태양을 나침반처럼 활용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본다고 한다. 휘파람새는 실험에서 플라네타륨(별자리를 투영시켜 보여주는 장치)으로 보여주는 별자리에 따라 방향을 달리 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유리멧새가 북쪽 하늘의 별을 이정표로 삼는다는 것과 이들이 학습을 통해 별자리를 분간하고 방향을 추정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심지어 새들은 중력 방향에 대한 지구 자기장의 방향 차이를 감지해 위도를 알 수 있고, 지구 자기장의 이미지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뒤영벌, 큰까마귀 등을 연구해 동물행동학에서 업적을 냈고 수십 권의 저서를 낸 미국 버몬트대 명예교수다. 그 자신도 이직한 뒤 미국에서 가장 큰 삼림지대가 있는 메인주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지은 숲속 오두막에서 살며 관찰한 주변 동물들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비버나 벌 등 ‘동물들이 집을 짓고 가꾸는 법’도 책은 소개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이은상, ‘가고파’) 어딜 가나 ‘우리 집’이 제일 좋고, 명절이면 고향으로 향하는 게 사람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기억과 감정을 갖는 능력은 인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동물은 우리에게 없는 특정한 감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포항 지진’에 배트맨과 원더우먼은 당황했을까? 15일 오후 개봉한 ‘저스티스 리그’(감독 잭 스나이더)는 슈퍼맨이 사라진 틈을 노린 빌런(악당) 스테픈울프를 막기 위해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사이보그, 플래시 등이 맞서는 이야기다. 원래 대입 수험생들이 16일로 예정됐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딱 좋을 만한 영화. 그러나 15일 지진으로 수능이 일주일 연기돼 이후 흥행을 판가름하는 첫 주말 관객을 모으는 데 ‘수능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 영화 관계자는 “수능을 막 마친 관객층은 분명 흥행에 플러스 요소”라면서도 “개봉 뒤 일주일 동안 난 입소문을 듣고 수험생들이 이 영화를 선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추석과 겨울방학 사이에 놓인 11월은 전통적으로 영화 관람 비수기다. 그러나 영화가에서는 최근 ‘미니 시즌’이 형성됐다고 본다. 지난해 관람객 통계도 같은 비수기인 3, 4월 관객(각각 1127만, 1000만 명)보다 11월 관객(1268만 명)이 많았다. 최근 몇 년간 이 11월을 장악한 건 할리우드 등 외국 영화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통상 외국 영화가 상반기 중 3∼6월의 관람 수요를 이끌고, 7월∼이듬해 2월의 주요 시즌에 한국 대작영화 중심으로 판이 짜인다. 그러나 11월만은 2013년 ‘토르: 다크월드’(관객 304만 명), 2014년 ‘인터스텔라’(1031만 명),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545만 명) 등 외국 영화가 위력을 발휘했다. 지난해도 11월 한국 영화 관객이 459만 명(점유율 36.2%)인 데 비해 외국 영화는 809만 명(63.8%)이 봤다. 올해는 11월 1∼15일 외국 영화(51.8%), 한국 영화(48.2%)가 절반씩 관객을 나눈 상황. 지난달 25일 개봉해 한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내주지 않은 ‘토르: 라그나로크’(관객 439만 명)의 빈자리는 누가 차지할까. 팀플레이를 벌이는 DC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들(저스티스 리그)에게 일주일 간격을 두고 도전장을 내미는 한국 영화는 사기꾼들이 사기꾼을 속이며 팀플레이를 하는 ‘꾼’(감독 장창원)이다. 22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현빈 유지태 등의 캐스팅과 반전 있는 줄거리가 강점이다. 각자 딴생각을 하는 등장인물들의 플레이가 관객들의 두뇌 회전을 빠르게 만들 터. 15일 개봉한 ‘7호실’(감독 이용승)도 볼만한 블랙코미디 영화다. 서울 압구정동의 망해가는 DVD방을 배경으로 점점 인생이 꼬여가는 주인(신하균)과 알바생(도경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월세를 못 내는 상가 세입자와 빚에 내몰린 청년, 두 밑바닥 인생끼리 물어뜯는 모습이 ‘웃픈’ 영화다. ‘반드시 잡는다’(감독 김홍선)도 2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30년 전 미제 사건과 같은 수법의 살인이 시작되자 동네 터줏대감(백윤식)과 전직 형사(성동일)가 의기투합하며 펼쳐지는 스릴러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내년 중국에서 다시 ‘잭팟’이 터질까. 한중관계 해빙으로 유통업계에 활기가 도는 가운데 대중문화계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최근 한국 콘텐츠 기업에는 중국 내 다양한 업체로부터 내년 계획을 문의하는 연락이 잦아지고 있다. 관계자들은 “얼어붙은 황해가 녹는 느낌”으로 기대하면서도 “중국 당국과 여론이 아직 명확한 청신호를 띄우지 않아 내년 초까지는 관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영화부터 가상현실까지… 다시 찾는 한국 콘텐츠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신과 함께’(감독 김용화)의 제작사는 최근 중국 측으로부터 수입 문의를 받았다. 사드 갈등 이후 최근까지 중국에서 한국 영화 개봉이 중단됐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본보에 “중국 대형 배급사 2, 3곳에서 문의가 왔다”며 “심의 등을 고려하면 시간이 촉박해 동시개봉은 어렵겠지만 한국 개봉 한두 달 뒤에 중국 개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테마파크에 들어갈 가상현실 콘텐츠도 계약을 조율 중이다. 시각효과 기술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덱스터 스튜디오는 최근 중국 완다그룹의 광저우 테마파크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고 두세 개 파크와도 공급 협상에 들어갔다. 덱스터 관계자는 “한중관계 정상화 이후 중국 업체가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 협상이 수월해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 12월이 분기점… 흐르다 굳은 한류가 마중물 방송가에서는 중국 내 한류 콘텐츠 수입의 가늠자가 다음 달 한 차례 조정될 것으로 본다. iHQ 황기용 제작본부장은 “이달 중 중국 업체들이 한국 콘텐츠에 대한 심의를 넣으면 12월에 광전총국에서 허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연말 연초부터 한국 콘텐츠의 심의 통과 결과가 업계에서 확산되면 내년 분위기가 예상될 것”이라고 했다. 마중물은 사드 사태 이전에 합작투자나 편성이 확정됐다가 된서리를 맞은 콘텐츠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배우 이다해가 출연하는 드라마 ‘나의 여신 나의 어머니’는 지난해 중국 촬영까지 마쳤지만 방송이 무기한 연기됐다. 최준환 제이에스픽쳐스 본부장은 “최근 중국 제작사에서 ‘내년에 방영할 수 있게 됐다. 적당한 방송사를 물색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나의 여신…’은 한국 여성이 중국으로 시집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가요계에서도 공연, 방송 등 다양한 중국 내 혈맥이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중국의 쑤닝과 합작법인을 세운 FNC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현지에서 가요연습생을 발굴하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수출이 활기를 보일 것 같다”고 했다. 한동안 아시아 순회공연에서 중국 일정이 빠졌지만 중국 4, 5개 도시가 추가되면 자연히 한류 가수들의 아시아 투어 스케줄도 달라진다. 이 관계자는 “확대된 아시아 투어를 위해 국내 가수들이 음반도 더 내게 되면 내년 국내 음반시장 전체가 활기를 띠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한국 가수들은 중국 인기 소셜미디어인 웨이보를 통해 현지 팬과 해온 소통을 늘리며 중국 시장이 활짝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콘텐츠 표절 방지 장기적 대책 필요” 신중론도 나온다. 한 대형 가요기획사 임원은 “중국 정부에서 가시적인 움직임이 나오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다”면서 “그간 암암리에 중국 정부가 광전총국을 통해 자국 콘텐츠업계에 지령에 가까운 영향력을 행사해온 만큼 당장의 분위기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차제에 중국의 콘텐츠 표절 문제를 짚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tvN 인기 드라마 ‘도깨비’는 중국 내 해적판이 크게 유행했으나 마침 사드 정국이 와 마땅히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과 정식 구매 계약을 맺을 수 있다면, 프로그램 포맷을 구매하는 대신 한국 프로그램을 표절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한 대형 연예기획사 이사는 “해빙에 더해 지적과 제도 개선과 보완이 이뤄질 때 ‘일보 후퇴 후 이보 전진’, 즉 양국 콘텐츠 산업의 진정한 윈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희윤 imi@donga.com·조종엽·조윤경 기자}

“한동안 안타까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요. 문화라는 게 ‘자 이제 한한령(限韓令)이 풀렸으니까 원래대로 가십시오’라고 해서 금방 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겠어요? 오래전부터 쌓아 왔던 교류의 힘이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봐요.” 한류 스타 현빈(36)에게 최근의 한중관계 개선 뒤 문화 교류의 정상화 기대에 관해 13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현빈은 “얼마나 속도가 붙을지는 모르겠지만 한중이 좋은 시너지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빈은 22일 개봉하는 영화 ‘꾼’(감독 장창원)에서 사기꾼을 골라 속이는 사기꾼 ‘지성’ 역을 맡았다. 희대의 사기꾼 장두칠이 돌연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오지만 그에게 원한이 있는 지성이 박희수 검사(유지태)와 함께 장두칠을 추적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올 초 8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영화 ‘공조’에서 집념의 북한 형사 역을 맡은 데 이어 전형적인 장르 영화 출연이다. “전에는 여운이 남거나,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을 더 많이 했던 듯한데, 어느 순간 영화나 드라마라는 게 어찌 보면 관객과 시청자분들이 복잡한 데서 벗어나는 시간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현빈은 “물론 ‘만추’(감독 김태용) 같은 영화도 다시 찍고 싶다”면서도 “요즘은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웃기는 장면에서는 제대로 웃기는 것이 오락 영화가 주는 문화생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꾼’이 반전이 있는 영화, 캐릭터 각자의 사연과 재미가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지성은 판을 벌이는 인물인데, 극중 제 연기가 튀어서 득 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상 캐릭터도 그렇지만 제 연기도 일단 던져놓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그 다음 수를 놓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출연한 배우와 감독에 관해 묻자 칭찬이 이어졌다. “지태 형요? 진짜 영화‘꾼’이에요. 열정도 지식도 엄청나요. (춘자 역 아이돌 출신 나나는?) 밝은 에너지를 촬영 현장에서 주변에 퍼뜨리지요. (감독은 신인인데?) 되게 순수하시고, 배우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건 과감히 수용하시죠.” 톱스타다운 여유일까? 개봉을 앞뒀음에도 현빈은 ‘달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인터뷰 동안 시종 편안해 보였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려는 편이라 스스로를 좀 힘들게 하고 옭아매는 면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꼭 성과가 나는 것도 아니구나 싶었나요?) 네, 요즘은 좀 내려놓으려고 하지요.”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니(너), 내가 누군지 아니?” 영화 ‘범죄도시’(감독 강윤성)의 장첸(윤계상)이 내뱉는 중국 동포 말투의 대사다. 1000만 영화 ‘택시운전사’에 이어 영화계의 또 다른 승자는 ‘범죄도시’. 신인 감독에 티켓 파워가 검증되지 않은 주연 배우로 지난달 3일 개봉한 이 영화는 13일까지 약 67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흥행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개봉 초기 ‘청년경찰’에 이어 중국 동포를 범죄 집단처럼 묘사한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흥행은 또 다른 모양새다. ‘일 없니?’를 비롯한 영화 속 대사들이 유행어가 되는 모습은 꼭 소수자의 이미지 왜곡 차원에서만 해석되지도 않는다. 가벼운 편견은 모바일 차량 내비게이션에도 있다. 안내 음성으로 강원 경상 전라 제주도 사투리 등을 고를 수 있는데 충청도 사투리만 없다. 충청도 말투가 신속한 길 안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 탓이라고 추정한다. 충청도 말이 얼마나 경제적인지, 장첸의 대사를 충청도 식으로 바꿔 본다. “(나) 몰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글날은 10월 9일이 아니라 9월 30일? 한글 창제를 기념하고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한글날의 날짜 지정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장은 1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학자들이 훈민정음에 기록된 음력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하면서 실수가 있었다”며 “최근 행정안전부에 한글날을 9월 30일로 바꿔야 한다는 건의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세종실록에는 훈민정음이 음력으로 1446년 9월 ‘이루어졌다(成)’고 나오지만 날짜는 안 나온다.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 말미에는 ‘정통 11년(1446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이라는 글귀가 있다. 1945년 조선어학회는 이를 바탕으로 양력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했다. 상한은 상순, 즉 1∼10일이라는 뜻이다. 1945년 당시 한글학자들이 적어도 음력으로 1446년 9월 10일에는 해례본이 완성됐다고 보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전까지는 한동안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28일을 기념했는데 해례본의 발견으로 19일을 앞당겨 9일로 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양력 10월 28일 역시 환산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박 소장은 “1446년 음력 9월 10일은 양력으로 10월 9일이 아니라 9월 30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제공하는 음양력 변환 결과 당일은 당시 서양에서 사용한 율리우스력으로 1446년 9월 30일이 맞다. 박 소장은 “1582년 그레고리력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음양력 환산은 율리우스력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당시 음양력 환산을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도, 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라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된 10월 9일을 굳이 바꿔야 하느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박 소장은 “자신의 생일이 잘못된 걸 뒤늦게 알면 누구나 올바른 생일을 축하하지 않겠는가”라며 “늦었지만 후손 대대로 기념할 한글날의 날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책의 ‘착점’을 곱씹어 보자. ‘한국 사람’은 누구인가. “영어로 ‘코리안’은 어디에 살든지 코리안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어에는 그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남한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라고 하지만 북한 사람은 조선 사람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사는 코리안은 재미교포, 중국은 조선족, 중앙아시아는 고려인이다.” 미국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로부터 저자가 들은 이야기다. 저자의 고민은 이어진다. 지칭하는 단어뿐 아니라, 코리안을 공통적으로 묶는 언어 이념 종교 풍습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은 누구인가. 변치 않는 본질이란 없을 터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겸 원장인 저자는 정치적, 지정학적, 이념적 요소에 따라 다섯 가지 유형으로 한국 사람의 정체와 의미망을 분석하려고 한다. 먼저 ‘친중위정척사파’다. 병자호란과 명나라의 멸망을 겪은 조선 사람들이 사상적, 정치적, 국제정치적 정체성을 재정립하면서 그 뿌리가 탄생했다. 조선은 소중화 사상과 친명반청 사상을 구축하고 강력한 쇄국주의 체제와 이념을 태동시킨다. 이 같은 후기 조선의 세계관이 19세기 천주교의 도전, 양이의 출현을 맞아 위정척사로 이어진다. 다음으로 ‘친일개화파’는 19세기 말 일본을 새로운 문명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면서 탄생했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일본의 정치인, 경제인, 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조선에서도 그와 같은 급진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다. 그러나 친중위정척사파와 친청파의 저항에 몰락했다. ‘친미기독교(개신교)파’는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교육과 의료 선교를 통해 이념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된 조선 반도를 대신해 피난처이자 독립운동기지가 되면서 힘을 얻었다. ‘친소공산주의파’는 조선인의 러시아 이주,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형성돼 1919년 파리강화조약을 기점으로 더욱 확산된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서구 열강들이 피압박 민족들의 독립을 외면한 데 실망해 많은 독립운동가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로 전향했던 것. 마지막으로 ‘인종적 민족주의파’는 사회진화론의 맥락에서 구성된 민족주의를 다룬다. 5가지 유형이 모두 이번 책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출간된 건 전 5권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1권으로, 이보다 앞선 ‘조선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서 시작해 친중위정척사파까지만 각각 1, 2부로 나뉘어 담겼다. 저자는 “위정척사파도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것’을 지키고자 했으므로 민족주의자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건 ‘천하’로 대변되는 전통 중화문명이었다”며 “반면 민족주의자는 민족의 보전을 위해서는 전통을 버리고 이단과 외래 문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봤다”고 했다. 과거에서 다양한 근대의 가능성과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 애쓰기보다는 기존에 굳어진 인식의 틀에 머무른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수많은 사료를 검토하고 명료한 주장을 통해 한국인의 얼굴을 찾아나가려는 노고가 드러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처럼 어딘가 어정쩡하면서 참 재밌기도 힘들다. 9일 개봉하는 ‘미옥’(감독 이안규)은 누아르의 외피를 띤 멜로다. 헌데 감정의 밀도를 축적해나가려 애쓰지 않는다. 제목은 여자 이름인데, 극은 남주인공 임상훈(이선균)이 끌고 나간다.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기업으로 키워낸 나현정(김혜수)이 은퇴를 준비한다. 무협지로 치면 금 대야에 손을 씻고 이후로는 강호를 완전히 떠나는 이른바 ‘금분세수(金盆洗手)’를 하고 싶은 것. 그러나 강호의 의리는 은원(恩怨)을 잊지 않는 게 기본이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조직의 행동대장 임상훈의 억눌린 욕망이 분출하고, 나현정에게 약점을 잡힌 검사 최대식(이희준)이 앙갚음을 시도하면서 이야기가 얽혀든다. 영화는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에 등장하는 뒤틀린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관건은 멜로가 관객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가느냐다. 영화는 감정을 섬세하게 쌓아 나가는 장면들의 비중을 축소하면서 속도감과 ‘쫄깃함’을 얻었다. 일단 공감하고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눈을 떼기 어렵다. 그러나 처음에 공감이 안 되면 ‘왜 저렇게까지?’ 싶을 터다. 다수의 남자 관객은 별 상관없을 듯하다. ‘갖고 싶은 걸(예를 들어 ‘보스의 여자’라든가) 못 갖는’ 아이의 투정은 사실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이선균은 이런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이선균이 최근 10년간 출연한 영화 중 관객 200만 명이 넘게 든 영화를 보자. ‘내 아내의 모든 것’(2012년), ‘화차’(2012년), ‘쩨쩨한 로맨스’(2010년). ‘끝까지 간다’(2013년)를 제외하면 모두 어딘가 주인공의 내면에 ‘찌질한’ 구석이 있다. 언뜻 그만큼 조폭 행동대장이 안 어울리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그런 어정쩡함이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자연스럽다. 이제 찡그린 이마 주름이 자연스러운 그의 ‘쿨’하지 못한 모습은 제 욕망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쉽게 파고든다. 김혜수 역시 최근 어둠의 세계에 있는 여자 역을 되풀이해 맡으면서 이미지를 관객에게 각인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볼거리로서도 영화는 ‘화끈한(?)’ 편이다. 수능 시즌에 걸쳐 개봉하면서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수험생 관객의 상당수를 포기한 이 영화는 ‘청불’ 영화가 허용하는 연출의 폭을 제대로 활용했다. 폭력은 넘쳐나고, 잔혹한 장면은 ‘굳이 필요했나?’ 싶은 선을 넘나든다. 시작부터 ‘살색(노출)’이 스크린에 가득하다. ★★★★(★ 5개 만점) ▼ “결핍이 있는 인물… 멋지지 않아 좋았죠” ▼임상훈 역 맡은 배우 이선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7일 배우 이선균을 인터뷰한 서울 종로구의 카페 인근은 교통 정체가 극심했다. 이선균은 카페 인근의 한 부동산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왔다고 했다. 약속에 늦은 탓인지 다소 정신이 없어 보였지만 솔직했다. ―출연에 얽힌 사연은…. “임상훈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멋진 캐릭터가 아니라, 결핍이 있고 비뚤어진 사랑을 한다. 또 누아르에서 총 쏘는 배역을 해 보고 싶었다. 주윤발(저우룬파·周潤發)을 좋아했던 세대니까.(웃음) 그런데 내 연기가 아쉬웠다.” ―상훈과 비슷한 다른 작품의 캐릭터를 연구했나.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가 떠올라 부담이 됐다. 회사원처럼 ‘젠틀’한 모습을 연기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양아치’처럼 할지 고민했는데 확신을 못 가지고 어정쩡하게 한 면이 있다. 사실 상훈을 더 지저분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일종의 외근직이니 옷에 흙도 막 묻히고. (그 대신) 멜로 쪽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영화를 본 소감은…. “원래는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가 아닌데…. 주인공들 사이에 오랫동안 감춰뒀던 비밀과 응축됐던 공기가 폭발하는 게 더 잘 표현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