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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시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이런 탓에 이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가면은 진짜 가면이 아니었다. 외계에서 온 기생생물이 들러붙어서는 떨어지지 않고 증식했던 것. 문제는 이를 제거하는 기술이 개발됐음에도 시몬 사람들 스스로 가면을 계속 쓰고 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이 소설집은 ‘시몬을 떠나며’를 비롯해 단편 14편을 담았다. 모두 ‘시몬을 떠나며’처럼 “아니 도대체 왜?”라는 호기심을 유발하며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책장을 넘길수록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28세 작가의 솜씨는 놀라울 정도다. 폐업 직전의 휴게소 옆에 있는 기이한 식당과 의문투성이 주인 이야기(‘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왜 주기적으로 애절한 사랑 노래가 음원 차트를 지배하는지 그 원인을 알기 위해 2040년대에서 2003년으로 온 ‘시간요원’ 이야기(‘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 등 모든 작품이 소재가 기발하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설정을 토대로 몰입감을 증폭시키는 서사 전개 방식이 돋보이는 이 소설집은 2003년 큰 인기를 얻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집 ‘나무’를 연상시킨다. 표제작 ‘행성어 서점’은 인류의 뇌에 ‘범우주 통역 모듈’을 심어 모든 은하의 언어가 자동 통역되는 세상에서 모듈 작동을 방해하는 글자로 인쇄된 책을 파는 서점 이야기다. 낯선 외국어로 가득한 서점을 거니는 이국적인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를 위한 서점인 셈. 작가는 “이 서점 책들은 읽히지 않음으로써 가치를 부여받았다”고 썼다. 동화 같은 상상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몇몇 소설은 궁금증만 키워놓고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한 느낌이다. ‘멜론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가 대표적. 오키드거리의 멜론 장수와 멜론 수레 앞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는 쌍둥이가 아님에도 똑같이 생겼다. 작가는 두 사람을 “동일한 존재의 다른 세계에 있는 판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건 이를 상쇄할 만한 참신한 이야기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이 카페 2층에서 대화는 금물이다. 지인과 함께 갔더라도 멀찍이 떨어져 앉아야 한다. 커다란 좌식 쿠션 의자에 몸을 기댄 다음 할 일은 앞을 보는 것. 한쪽 벽면 전체에 난 통창에 서울숲의 늦가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요 속에서 그저 멍하게…. 눈은 숲과 단풍으로 채우고 마음은 비워내면 된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입구에 위치한 카페 그린랩은 ‘숲멍’(숲을 보며 멍 때리기)으로 유명한 공간이다. 가을 단풍이 절정에 달하는 11월 초는 숲멍에 더해 ‘단풍멍’까지 하며 머리 식히기에 가장 좋은 시기. 해가 바뀐 이후 만 10개월간 쌓인 스트레스로 머릿속이 포화 상태가 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엔 루프톱까지 총 3층인 이 카페에서 침묵과 ‘멍’의 공간인 2층 스튜디오의 여섯 자리는 늘 만석이다. ‘멍 비용’은 1시간 반에 1만9000원. 호박팥차, 장미차 등 음료 한 잔과 시집이나 에세이 등 대여용 책 한 권, 미니 생화다발, 편지지, 신발주머니 등이 포함된 가격이다. 멍을 때리다 떠오르는 생각은 라탄 바구니에 담아주는 편지지에 끄적거리면 된다. 강원 춘천시 원창고개에 자리 잡은 베이크포레스트도 가을 숲멍 명소로 꼽힌다. 이 카페에서는 1, 2층 사방에 난 통창을 통해 단풍 든 대룡산 절경을 볼 수 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가을 풍경을 담아내는 각각의 통창은 미술작품 같다. 카페는 동남아에서 들여온 라탄 소재 의자와 조명으로 꾸며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 지역의 대형 숲속 카페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쑥으로 만든 포레스트 라테와 쑥 케이크를 먹으며 숲멍을 하다 보면 쫓기던 마음은 어느새 휴양지에 온 것처럼 여유로워진다. 마음에 스민 냉기를 온기로 바꿔줄 ‘불멍’ 카페도 인기다. 충남 당진시의 비채카페는 카페 정원에 불멍존 4곳이 있다. 사방이 트인 ‘오픈존’ 2곳과 달리 ‘시크릿존’ 2곳은 빨간 벽돌을 쌓아 만든 허벅지 높이의 벽으로 사방을 에둘러 놓아 한층 비밀스럽게 불멍을 즐길 수 있다. 주말 기준으로 4명이 3시간 동안 불멍을 즐기는 비용은 4만 원. 음료나 구워 먹을 고구마, 마시멜로 등 간식은 따로 주문해야 한다. 이 카페의 매력은 직접 팬 소나무 장작을 화로에 넣어 불을 피워 준다는 것. 소나무가 타며 나는 특유의 ‘타닥타닥’ 소리와 가을밤을 가득 채우는 송악산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캠핑의자에 앉아 불을 바라보면 뒤엉키고 널뛰던 마음도 차분해진다. 부산 동래구의 카페 퍼사운즈는 진짜 불 대신 불영상을 보며 불멍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가로 300cm 길이의 스크린 두 개를 이어 붙인 600cm 길이 스크린에선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모닥불 타는 영상이 반복해서 나온다. 스크린 앞에는 6∼8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영상 속 모닥불에 집중하며 생맥주나 커피를 마시다 보면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고도 근심이 줄어드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베이크포레스트, 퍼사운즈의 음료 가격은 일반 카페와 비슷하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이 카페 2층에서 대화는 금물이다. 지인과 함께 갔더라도 멀찍이 떨어져 앉아야 한다. 커다란 좌식 쿠션 의자에 몸을 기댄 다음 할 일은 앞을 보는 것. 한쪽 벽면 전체에 난 통창에 서울숲의 늦가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요 속에서 그저 멍하게. ‘숲멍’ ‘단풍멍’하며 스트레스로 꽉 찬 마음을 조금 비워내면 된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입구에 위치한 카페 ‘그린랩’은 ‘숲멍’으로 유명한 공간이다. 가을이 절정인데다 10개월간 쌓인 스트레스로 머릿속이 포화 상태가 되는 11월은 ‘숲멍’에 ‘단풍멍’까지 하며 머리 식히기에 최고의 시기다. 이런 시기인 덕에 루프탑까지 총 3층인 이 카페에서도 침묵과 ‘멍’의 공간인 2층 스튜디오의 여섯 자리는 늘 만석이다. ‘멍 비용’은 1시간 반에 1만9000원. 호박팥차, 장미차 등 음료 1종류와 시집이나 에세이 등 대여용 책 한 권, 미니 생화다발, 편지지, 신발주머니, 방명록 등이 포함된 가격이다. 멍을 때리다 말고 떠오르는 생각은 라탄 바구니에 담아주는 편지지 등에 끄적거리면 된다. 강원 춘천시 원창고개에 자리잡은 ‘베이크포레스트’도 가을 숲멍 명소로 꼽힌다. 이 카페는 1, 2층 사방에 난 수많은 통창을 통해 단풍 든 대룡산 절경을 볼 수 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가을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각각의 통창은 그 자체로 미술작품 같다. 카페는 발리 등 동남아 지역에서 들여온 라탄 소재 의자와 조명 등으로 꾸며 발리 우붓지역의 숲속 카페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쑥으로 만든 ‘포레스트 라떼’와 ‘쑥 케이크’를 먹으며 ‘숲멍’을 하다보면 쫓기던 마음은 어느새 여유로워진다. 늦가을 마음에 스며든 냉기를 온기로 바꿔줄 ‘불멍 카페’도 인기다. 충남 당진시의 ‘비채카페’는 카페 정원에 불멍존 4곳이 있다. 사방이 트인 ‘오픈존’ 2곳과 달리 ‘시크릿 불멍존’ 2곳은 허벅지 높이의 빨간 벽돌 벽으로 사방을 에둘러 놓아 한층 비밀스럽게 ‘불멍’을 즐길 수 있다. 주말 기준으로 4인이 3시간 동안 불멍을 즐기는 비용은 ‘낮불멍’ ‘밤불멍’ 모두 4만 원. 음료나 구워먹을 고구마, 마시멜로 등은 따로 주문해야 한다. 이 카페의 매력은 직접 팬 소나무 장작을 화로에 넣어 불을 피워준다는 것. 소나무가 타며 나는 특유의 ‘타닥타닥’ 소리와 가을밤을 가득 채우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캠핑의자에 앉아 ‘불멍’하다 보면 근심으로 뒤엉키고 널뛰던 마음은 조금이나마 차분해진다. 부산 동래구의 카페 ‘퍼사운즈’에서는 진짜 불 대신 ‘불영상’을 보며 ‘불멍’을 즐길 수 있다. 가로 300cm 길이의 스크린 두 개를 이어 붙여 만든 600cm 길이 스크린에선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모닥불이 타는 영상이 반복해서 나온다. 스크린 앞에는 6~8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일상을 잠시 벗어나 영상 속 모닥불을 보며 생맥주나 커피를 마시다 보면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고도 근심이 조금이나마 사라지는 듯한 효과를 볼 수 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그동안 2시간짜리 얘기를 해왔던 터라 6시간 동안 힘과 흥이 떨어지지 않도록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장화, 홍련’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57)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의 전 세계 공개를 앞두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가 연출한 첫 드라마 ‘Dr. 브레인’은 4일 글로벌 OTT 중 하나인 애플TV플러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4일 한국 서비스를 시작하는 애플TV플러스는 같은 날 첫 한국어 오리지널 드라마 ‘Dr. 브레인’을 공개하며 국내 OTT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3일 열린 ‘Dr. 브레인’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김 감독은 “드라마를 처음 만들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로웠다. 데뷔하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했다. 영화감독인 황동혁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메가히트를 친 이후 OTT 드라마 공개를 앞둔 영화감독들의 부담은 커질 대로 커져 있다. 그는 “모든 결과를 떠안고 가야 해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주인공인 천재 뇌과학자 고세원 역을 맡은 배우 이선균(46)도 “K콘텐츠가 엄청난 사랑을 받아 기쁘면서도 우리 작품 역시 사랑받고 싶다는 부담도 있다”고 했다. ‘Dr. 브레인’은 세원이 산 사람은 물론이고 죽은 사람 뇌에 접속해 기억을 읽는 ‘뇌동기화’에 성공하면서 이 기술로 아내와 아들이 당한 미스터리한 사고의 진실에 접근해가는 이야기다. 원작인 홍작가의 동명 웹툰은 세원이 뇌동기화를 통해 미궁에 빠진 여러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내용인데, 드라마는 세원의 가족 이야기로 확장했다. 이선균은 “처음엔 용어와 소재가 좀 어려웠는데 나중엔 다음 대본이 언제 나오냐고 물어볼 정도로 몰입감이 상당했다”고 했다. 드라마는 6부작으로 일주일에 한 회씩 공개된다. 시청자들이 전편이 동시 공개되는 소위 ‘넷플릭스 방식’에 익숙해 순차 공개는 애플TV플러스의 국내 시장 안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 감독은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데 대한 고민이 많았다”면서도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에게 자문해 이론적으로 증명되거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과학적인 내용을 가져와 흥미롭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 여성이 “18년 전 유명 영화감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해당 영화감독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1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여성 A 씨는 지난달 27일 강간치상 혐의로 영화감독 B 씨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 A 씨 측에 따르면 2003년 10월 해외에서 지인 소개로 B 감독을 만나 술자리를 가졌고, 이때 B 감독이 속옷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후 지인들과 호텔로 이동했는데 지인들이 잠든 후 B 감독이 방으로 불러 성폭행을 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A 씨는 당시 입었던 옷과 선물로 받았다는 속옷 등을 경찰에 제출할 예정이다. A 씨가 주장하는 사건은 18년 전 발생해 당시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 10년이 지난 상태다. 하지만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DNA 증거 등 혐의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경우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돼 수사기관이 수사를 할 수 있다. B 감독은 A 씨를 명예훼손 및 무고, 협박 등의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다. B 감독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A 씨를 성폭행한 사실이 전혀 없다. 속옷 선물을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B 감독 측은 “B 감독이 2003년 당시 지인의 지인이던 A 씨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성폭행 주장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깊은 관계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A 씨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시점 직후에도 B 감독은 A 씨 및 지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성폭행 피해가 있었다면 가능했겠느냐”고 말했다.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기원전 5000년 메소포타미아. 바다와 기암절벽이 그림처럼 펼쳐진 해변에 괴수 형상을 한 ‘데비안츠’ 여러 마리가 등장한다. 인간을 먹이로 삼는 돌연변이 포식자 데비안츠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인간들을 무차별 공격한다. 우주는 대혼란에 빠진다. 이때 하늘에서 등장한 비행선 ‘도모’. 여기서 내리는 이들은 10인의 히어로 ‘이터널스’다.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눈에서 에너지 빔을 쏘고, 필요에 따라 즉각 만들어내는 광선검과 화살로 공격해 데비안츠를 물리친다.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영화 ‘이터널스’는 시작부터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데비안츠와 이터널스의 치열한 대결 장면을 쏟아낸다. 불사의 종족인 이터널스 10인이 제각각 초능력을 보여주는 신을 비롯해 원시 배경과 고대인들, 최첨단 슈트를 입은 이터널스가 만들어내는 참신한 조화는 초반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영화는 이터널스가 행성 ‘올림피아’에서 지구에 도착한 7000년 전부터 시작해 고대 바빌론과 굽타 제국 등을 등장시킨다. 이터널스가 살아온 세월을 반영하는 고대왕국 세트장과 이들의 지구적 활동 범위를 보여주기 위해 카나리아 제도 등의 명소를 담아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블 영화사상 최고의 스케일’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이번 영화에서 국내 팬들의 관심을 모은 건 마블 영화에서 첫 한국인 히어로로 분한 배우 마동석의 활약상. ‘길가메시’ 역을 맡은 그의 존재감은 ‘테나’ 역의 앤젤리나 졸리, ‘이카리스’ 역의 리처드 매든 등 세계적 스타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이터널스 중 물리적 힘이 가장 강한 천하무적 전사로 묘사되는 길가메시는 데비안츠에게 ‘핵 주먹’을 휘둘러 맥을 못 추게 한 뒤 ‘최후의 불 따귀’를 날려 쓰러뜨린다. 화려한 초능력을 사용하는 다른 멤버들의 액션보다 이 묵직한 한 방이 더 눈길을 끈다. 테나와 그를 수천 년간 지켜온 길가메시가 함께 공격하는 장면은 두 배우의 ‘찰떡 호흡’을 보여준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오래전 세계 각국으로 흩어진 이터널스 멤버들을 모으는 여정을 다룬다. 해당 장면이 155분에 달하는 전체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마블 영화 중 두 번째로 길다는 이 영화가 길게 느껴지는 데 한몫을 하는 요소다. ‘세르시’(제마 챈)와 이카리스의 러브스토리를 다루는 부분도 다소 길고 반복되는 탓에 극의 흐름을 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인의 이터널스 중 ‘마카리’(로런 리들로프)를 청각장애인으로,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를 동성애자로, 원작 만화에서 남성이던 리더 ‘에이잭’(살마 하예크)을 여성으로 설정한 건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다양성을 반영했다는 평과 더불어 기계적 균형에만 집중한 어색한 구성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작품은 영화 ‘노매드랜드’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히어로물 데뷔작이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정의와 자연섭리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데 주력하면서 무거워진다. 마블 영화 시리즈를 챙겨 보지 않으면 이해가 어려운 전편들과 달리, 새로운 캐릭터와 세계관으로 시작되는 영화인 만큼 ‘마블 초보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건 장점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오랜 세월이 지나도 마치 최근에 개봉한 영화처럼 회자되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 속 대사는 영화 개봉 이후 태어난 10대, 20대도 유행어처럼 쓰고 있다. 2001년 가을 개봉한 멜로 영화 ‘봄날은 간다’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 속에서 은수(이영애)가 상우(유지태)의 차문을 덜컥 열며 내뱉는 “라면 먹을래요?”는 전 세대가 아는 희대의 명대사가 됐다. ‘구전’을 거치며 “라면 먹고 갈래요?”로 형태가 약간 바뀌었고 영화보다 더 노골적이고 야릇한 의미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 달라진 점. 세월이 흐른 만큼 20, 30대 중엔 이 대사를 SNL코리아의 개그우먼 안영미나 아프리카TV BJ로 활동한 도복순이 만든 유행어로 아는 이들도 많다. 올해는 ‘봄날은 간다’ 개봉 20주년. 영화는 22일부터 열리고 있는 강릉국제영화제를 계기로 영화 촬영지인 강릉에서 23일 재상영됐다. 영화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과 배우 유지태도 자리를 함께했다. 27일에도 한차례 더 상영한다. 재상영을 앞둔 21일 허 감독은 동아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이렇게 오랫동안 회자되고 게다가 강릉에서 재상영될 거라고는 촬영 당시엔 상상도 못했다”라며 “지금 젊은 세대들까지도 영화 속 대사를 쓰는 모습은 그저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라면 먹을래요?”는 2001년 영화 촬영 당시 즉흥적으로 만든 대사였다. 허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엔 “커피 한잔 할래요?”라고 돼있었다. “대사가 너무 재미없고 평범하더라고요. 배우들과 현장에서 논의한 끝에 바로 대사를 고쳤죠. 엄청난 고민 끝에 만든 게 아닌데 오래 회자되니 놀랍죠.(웃음)” 이 영화가 한국 멜로 영화의 교과서이자 명작이 된 이유로는 영화 속 연애가 살아 숨쉰다는 점이 꼽힌다. 영화는 두 사람이 호감을 가지는 과정, 연애가 시작되는 순간의 머뭇거림과 설렘, 평범한 일상을 함께하는 연애의 모습, 두 사람의 상대에 대한 감정 온도차 등을 솜씨 좋게 세공해낸다. 누군가의 실제 연애와 이별 과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연애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허 감독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같지만 가장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멜로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며 “제작진과 ‘연애담 집단 토론’을 하면서 각종 연애담을 발굴했고 열심히 연애담 취재를 했다. 그래서 영화 속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보인 것 같다”고 했다. 영화엔 동명의 노래인 가수 고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의 정서가 녹아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로 시작하는 노래다. 오래 전 허 감독 어머니는 아버지 환갑잔치에서 연분홍 치마를 입고 와서 이 노래를 불렀다. 허 감독은 “그때 처음 그 노래를 알았는데 노래엔 사랑, 세월, 젊은 날 등 지나가고 변하는 것들에 대한 ‘찬란한 슬픔’이 담겨있었다”라며 “그 노래의 정서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만든 게 ‘봄날은 간다’였다. 영화에 담긴 그런 정서를 아직도 사람들이 좋아해주시는 거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렇듯이 가끔 열어봤을 때 젊은 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지금 처음 보시는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연애나 세월에 대한 감정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않을까요.”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국 영화계 거목으로 임권택 감독과 함께 ‘장군의 아들’ ‘서편제’ ‘취화선’ 등 많은 작품을 제작한 이태원 전 태흥영화사 대표(사진)가 24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지난해 5월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1959년 영화 ‘유정천리’를 제작했지만 흥행 실패로 큰 빚을 졌다. 건설업 등을 하다 1974년 극장이 딸린 경기 의정부의 상가를 인수하면서 영화계로 돌아왔다. 제작자로 나선 건 1983년. 태창영화사를 인수해 태흥영화사로 이름 붙인 뒤 임 감독과 ‘비구니’ 제작에 돌입했다. 그러나 불교계의 반발로 제작을 중단했다. “다신 영화를 하지 않겠다”던 고인은 1984년 이장호 감독과 ‘무릎과 무릎사이’를 공동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제작에 나선다. 이 감독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매사에 힘이 넘치셨다. 1985년 ‘어우동’ 제작 때는 엑스트라 의상까지 시대별로 고증한 의상으로 바꿔주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던 과감한 분이셨다”고 애도했다. 고인은 임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영화계 거목 트로이카’로 불리며 한국 영화의 역사가 됐다. 임 감독과는 19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다시 손잡은 뒤 ‘장군의 아들’ ‘서편제’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등 총 11편을 함께 만들었다. ‘서편제’는 한국 영화로는 처음 서울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02년에는 ‘취화선’이 칸 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감독상을 받았다. 은관문화훈장,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영화 ‘공정사회’를 연출한 이지승 감독이 아들이다. 빈소는 서울세브란스병원, 유족으로는 부인 이한숙 씨와 딸 선희 아들 철승 효승 지승 씨가 있다. 발인은 26일 오전 10시, 02-2227-7556.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펀치를 날리거나 손바닥으로 강타하는 액션은 클로이 자오 감독이 제가 나온 영화들을 보고 연구를 많이 한 뒤 영화에 꼭 넣고 싶다고 한 겁니다.”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마블 스튜디오 영화 ‘이터널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마블 히어로 역을 맡은 배우 마동석은 22일 화상 언론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공개된 이터널스 예고편에는 히어로 ‘길가메시’로 출연한 마동석이 인류의 가장 오랜 적 ‘데비안츠’에게 펀치를 날리거나 손바닥으로 내려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불 주먹’ 한 방에 데비안츠는 공중으로 붕 뜬다. 영화 ‘범죄도시’ ‘부산행’ 등에서 그가 보여준 마동석표 맨주먹 액션과 닮은 신이다. 그는 “자오 감독이 내가 오랫동안 해온 복싱 같은 액션 스타일을 많이 적용해 길가메시 캐릭터를 만들어줬다. 감독과 마블이 원작 만화와 달리 길가메시를 아시안으로 바꾸는 등 그 캐릭터를 내게 주려고 많은 걸 바꿔줬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그가 이 영화를 택한 데는 자오 감독에 대한 팬심도 한몫했다. 자오 감독은 영화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200여 개 상을 휩쓸었다. 그는 “자오 감독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골고루 이해하는 굉장히 좋은 감독”이라고 했다. 자오 감독은 오디션도 보지 않고 그를 길가메시 역으로 낙점했다. 영화에서 길가메시는 7000년 전부터 모습을 숨긴 채 지구에서 살아온 불멸의 히어로 종족 ‘이터널스’의 일원으로 나온다. 같은 이터널스 종족 ‘테나’를 연기한 앤젤리나 졸리 등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졸리와의 촬영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졸리가 내 팬이라고 말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날 졸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화상간담회를 진행 중이던 마동석 뒤로 깜짝 등장해 그와 포옹하는 등 친분을 드러냈다. 졸리는 “그와 액션 신을 찍은 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나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마동석은 “이터널스 촬영을 계기로 앞으로도 마블과 계속 일하게 될 것 같다.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각각의 히어로들이 각자의 힘을 합칠 때 가장 강력한 히어로가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계기로 서로를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화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어린 시절 기자는 발가벗겨진 채 집 밖으로 쫓겨난 아이들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개중엔 네다섯 살 남짓한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무슨 큰 잘못을 했던 걸까. 기껏해야 심하게 떼를 쓴 정도의 잘못을 했다가 인생 최악의 수치를 당한 건 아니었을까. 저자는 자식이 멀리 가지 못하도록 벗겨놓고 그의 몸을 전시하는 건 부모가 자녀의 몸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자녀에 대한 전권을 확인하는 아동 학대라는 것. 저자는 “부모에게 아이는 ‘내 것이지만 고통을 공유하지 않는 몸’이라서 함부로 때리고 내던질 수 있는 이물(異物)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메일 답신을 쓰는 데 사용하는 문장도 아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소설 이외의 글을 발표하는 일이 드문 저자가 낸 첫 에세이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이후 바뀐 생활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담았지만 일상으로 범위를 한정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자신이 어떤 책갈피를 선호하는지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시에 사회 문제로 논의를 끊임없이 확장한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로 재탄생한 ‘빨간 머리 앤’을 본 일을 언급하며 앤이 겪은 학대와 고립을 말한다. 이를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으로 연결하고 나아가 아동 학대로 범위를 넓힌다. 독자들의 어린 시절 상처를 어루만지는가 하면, 관련 제도의 미비점을 비판하고 제도 개선도 요구한다. 저자는 자신이 세 살 때 바닷가에 간 경험을 매개로 혐오도 논한다. 파도가 무엇인지 몰랐던 어린 저자는 파도를 무시무시한 생물이라 상상한다. 상상의 결과는 파도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유럽에서 저자가 겪은 인종 차별도, 직접 목격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잘못된 상상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 ‘집콕’ 생활을 하며 관찰한 창밖 공터 풍경 등 일상 이야기와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고찰이 빽빽이 담겨 있다. 200쪽 남짓한 얇은 이 책이 어느 책보다 두껍게 느껴지는 이유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펀치를 날리거나 손바닥으로 강타하는 액션은 클로이 자오 감독이 제가 나온 영화들을 보고 연구를 많이 한 뒤 영화에 꼭 넣고 싶다고 한 겁니다.”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마블 스튜디오 영화 ‘이터널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마블 히어로 역을 맡은 배우 마동석은 22일 화상 언론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공개된 이터널스 예고편에는 히어로 ‘길가메시’로 출연한 마동석이 인류의 가장 오랜 적 ‘데비안츠’에게 펀치를 날리거나 손바닥으로 내려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불 주먹’ 한 방에 데비안츠는 공중으로 붕 뜬다. 영화 ‘범죄도시’ ‘부산행’ 등에서 그가 보여준 마동석표 맨주먹 액션과 닮은 신이다. 그는 “자오 감독이 내가 오랫동안 해온 복싱 같은 액션 스타일을 많이 적용해 길가메시 캐릭터를 만들어줬다. 감독과 마블이 원작만화와 달리 길가메시를 아시안으로 바꾸는 등 그 캐릭터를 내게 주려고 많은 걸 바꿔줬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앞서 부산행 흥행을 계기로 그의 액션 연기도 유명세를 타면서 할리우드로부터 수차례 러브 콜을 받았다. 그가 이 영화를 택한 데는 자오 감독에 대한 팬심도 한몫했다. 자오 감독은 중국계 미국인 여성으로 자신이 연출한 영화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200여 개 상을 휩쓸었다. 그는 “원래 마블 팬이었고 자오 감독 역시 팬으로서 매우 좋아했다”며 “자오 감독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골고루 이해하는 굉장히 좋은 감독”이라고 했다. 자오 감독은 오디션도 보지 않고 그를 길가메시 역으로 낙점했다. 영화에서 길가메시는 7000년 전부터 모습을 숨긴 채 지구에서 살아온 불멸의 히어로 종족 ‘이터널스’의 일원으로 나온다. 같은 이터널스 종족 ‘테나’를 연기한 안젤리나 졸리 등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졸리와의 촬영은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졸리가 내 팬이라고 말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날 졸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화상간담회를 진행 중이던 마동석 뒤로 깜짝 등장해 그와 포옹하는 등 친분을 드러냈다. 졸리는 “그와 액션 신을 찍은 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나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마동석은 “이터널스 촬영을 계기로 앞으로도 마블과 계속 일하게 될 것 같다.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넷플릭스 유료 가입자 수가 국내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공개(9월 17일)된 올 3분기(7∼9월)에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는 19일(현지 시간) 올 3분기에만 유료 가입자(계정 수 기준)가 438만 명이 늘었다고 밝혔다. 2분기 증가 인원(150만 명)의 약 3배에 달하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인 것. 이에 따라 넷플릭스 가입자는 총 2억136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날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오징어게임의 상징인 초록색 체육복을 입고 등장해 실적을 발표하며 “한국 콘텐츠 팀이 오징어게임을 발굴했다”며 “나와 공동 CEO 테드 서랜도스는 오징어게임의 세계적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징어게임은 공개 후 4주 만에 세계 1억4200만 계정이 시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연기를 하면서 느낀 최대치의 쾌락을 이 작품을 통해 느낀 것 같아요. 한소희 같지 않다는 반응이 가장 좋았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이네임’의 주연 배우 한소희(윤지우 역·사진)는 20일 화상 인터뷰에서 다소 들뜬 모습으로 이같이 말했다. 마이네임은 15일 공개 이후 17일부터 넷플릭스 TV쇼 부문 스트리밍 순위에서 세계 4위 자리를 지키는 등 인기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 한소희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그는 작품과 자신에게 각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을 두고 “되게 신기하다”면서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각국이 한국 드라마에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간도 등 기존 언더커버물과 달리 마이네임은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많이들 주목해 주시는 거 같다”라고 했다. 한소희가 마이네임에서 보여준 격투기 선수 못지않은 액션 연기를 두고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그가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불륜녀 여다경 캐릭터와 180도 다른 연기를 보여주며 변신에 성공하자 “배우 한소희의 인생이 마이네임 출연을 계기로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스스로를 ‘운동의 운 자도 몰랐던 사람’이라고 표현한 한소희는 “이번 작품은 스스로에게 미션을 준 뒤 내 한계를 실험해보는 계기가 됐다”라며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는 반응들이 너무 좋다”라고 했다. 호평을 받는 액션 연기를 두고는 “주변에서 ‘잘 싸우고 잘 때리더라’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라며 웃었다. “액션은 3개월 동안 많이 연습해서 촬영 땐 부담이 크진 않았어요.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는 겁을 먹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에 푹 빠지면 물불 안 가리는 제 성격이 잘 반영된 거 같아요. 이 작품으로 제 가능성을 작게나마 뚫은 듯합니다.” 총 8회 중 한 회도 빠짐없이 고강도 액션 장면이 담긴 만큼 촬영 중 부상도 많았다. 그는 “시즌2를 하게 된다면 죽을 것 같다. 그땐 초능력이라도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라며 웃었다. 고강도 액션 연기를 성공적으로 선보였지만 여전히 그는 연기 자체보다는 화려하고 예쁜 외모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외모를 ‘빈껍데기’라고 표현했다. “외관으로 저를 보여드리기보다 조금 예쁘지 않더라도 저의 많은 면들, 저만 아는 면들을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번 작품으로 동기 부여는 확실하게 된 거 같습니다. 앞으로 장막을 걷어낸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어요.”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나는 고졸에 거지라서 미군밖에 답이 없습니다. 헬프 미.” 최고참 병장이 윗옷을 벗은 채 외친다. 맨몸 상체에도 같은 말이 적혀 있다. 이를 낄낄대며 지켜보는 건 후임 병사들. 병장은 울음을 삼키며 같은 말을 반복하다 고개를 숙인다. 영화 ‘가치캅시다’의 한 장면이다. 영화 주인공은 카투사(KATUSA·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복무 중인 추혜진 병장(김기현). 카투사엔 명문대생, 고위급 자제가 많지만 추 병장은 고졸에 흙수저다. 계획 없이 사업에 손댔다가 번번이 실패하는 부모는 그를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취급한다. 휴가나 외박을 나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두 내놓으라고 닦달하기 일쑤. 부대에서도 든든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후임들은 별 볼일 없는 최고참을 무시하고 조롱한다. 가진 것 없는 추 병장은 후임에게 굽신거려야 한다. 공고해야 할 군대 내 계급마저 사회적 계급에 따라 역전된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 병장이 생각한 방법은 하나다. 미군이 되는 것. 영화 제목 ‘가치캅시다’는 주한미군이 한미동맹을 강조할 때 주로 쓰는 구호인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를 미국인 발음으로 표기한 것. 온갖 차별의 벽에 막힌 한국을 떠나 미국인이 되려는 그의 의지를 담았다. 그는 주한미군 고위급 인사의 추천을 받아 미군이 되려 애쓰지만 후임들의 거짓 신고로 미군 군용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쓴다. 누명을 벗어야 미군이 될 수 있는 그는 탄원서 서명을 받으려고 후임을 등에 태우고 말 흉내를 내는 등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4월 열린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학생 장편 부문 은상을 받았다. 카투사에서 2012∼2014년 고졸로 복무한 조승원 감독(30)의 장편 데뷔작이자 뒤늦게 한국영상대에 간 그의 졸업 작품이다. ‘미군이 되는 것’이라는 해결법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돈 많은 부모도, 학벌도 없는 청년에게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저학력 흙수저 청년이 겪는 좌절과 비루함을 담담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에 이어 ‘군대 수작’이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20대 청년과 군대 이야기를 다루지만 대다수가 한 번씩은 겪어본 차별이라는 보편적인 문제를 아우르고 있어 공감을 이끌어낸다. 조 감독은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군대 이야기 자체보다 2030세대가 각자의 배경에 따라 상대에게 가지는 혐오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추 병장은 갖은 굴욕을 버텨내고 미군이 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28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오징어게임’ 공개 약 한 달 만에 새로 선보인 또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이네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18일 기준 넷플릭스 TV쇼 부문 톱10 안에 한국 드라마가 3개나 포진하는 등 ‘K드라마’는 세계 시장에서 탄탄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15일 공개된 마이네임은 18일 현재 TV쇼 부문(영화 제외) 스트리밍 세계 4위에 올랐다. 16일 6위에 오른 뒤 17일부터 4위다. 국내 1위를 비롯해 미국 5위, 캐나다·브라질 4위, 일본 3위, 필리핀 2위 등 각국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K드라마의 힘을 보여주는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넷플릭스로 볼 수 있는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17일 종영)도 18일 현재 세계 7위에 올라 있다. 두 드라마의 글로벌 흥행 요인 중 하나는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후 K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이네임의 김진민 감독도 18일 화상 인터뷰에서 “오징어게임이 깔아준 판에 제가 살짝 올라간 느낌”이라며 “(오징어게임에 바로 이어진 작품인 데 대해)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한편으론 오징어게임이 한국 콘텐츠가 세계에서 크게 인정받은 데 큰 역할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오징어게임, 마이네임, 갯마을 차차차의 공통점은 전형적인 설정들 탓에 이야기의 흐름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이는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상투적이라는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측면이지만 글로벌 시장 공략에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진단이 있다. 클리셰를 과도하게 배제하면 이야기가 너무 새로워져 보편적인 정서에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K드라마 창작자들이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일부 파격적인 설정을 넣어 클리셰와 파격을 적절하게 배합해 내는 점이 작품을 성공으로 이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감독 역시 마이네임에서 위장 잠입하는 내용을 다룬 언더커버물의 공식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여성 단독 주인공(한소희)을 내세우는 파격 설정을 택했다. 김 감독은 클리셰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것에 대해 “언더커버물이라는 게 갈 수 있는 이야기 구조가 한정돼 있어 클래식한 부분에 집중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클리셰를 굳이 배제해 엄청 새로운 걸 하고자 하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클리셰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드라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오징어게임과 마이네임의 잇따른 성공은 넷플릭스의 K드라마에 대한 집중적인 마케팅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앞서 16일 블룸버그 통신은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의 가치를 투자비용인 2140만 달러(약 252억 원) 대비 40배가 넘는 8억9110만 달러(약 1조 원)로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회당 제작비 역시 오징어게임은 28억 원으로 기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기묘한 이야기’(95억 원)와 ‘더 크라운’(119억 원)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K드라마의 가성비와 경쟁력이 입증되고 있는 만큼 넷플릭스가 마케팅 역량을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K콘텐츠 붐을 넷플릭스가 주도해서 일으키려는 분위기가 읽힌다”며 “영미권 콘텐츠를 식상해하는 이들에게 넷플릭스가 K콘텐츠를 발굴해 세계 시장 점유율 확대의 발판으로 삼고 있고, 그간 마케팅에서 밀리던 K콘텐츠도 넷플릭스라는 거대 플랫폼을 만나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오징어게임’에 앞서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의 집’ 시즌3에는 이목을 끄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스페인 중앙은행에 침입한 강도 일당을 소탕하는 작전을 지휘하는 시에라 경감이다. 그는 만삭의 임신부다. 비록 드라마지만 만삭인 여성이 중대 사건 대응을 총괄하는 장면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줬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첫 여성 테뉴어(정년 보장) 교수인 저자 클라우디아 골딘은 임신과 육아 때문에 여성이 일 자체를 포기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 대졸 여성들을 태어난 시기별로 5개 그룹으로 나눈다. 그룹1은 1878∼1897년에 태어난 이들. 이 중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1958∼1978년에 태어난 그룹5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일군 여성들이 다수다. 저자는 이 ‘양립’의 이면은 여전히 어둡다고 지적한다. 여성들 상당수는 임신하거나 아이를 낳은 뒤 같은 직장에서도 승진에서 남성 동료에게 밀리고 있다고 느낀다. 부부 중 아이에게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사무실을 뛰쳐나올 수 있는 ‘온콜(on-call·비상대기)’ 임무를 맡는 건 대체로 여성이다. 그러려면 직장 내 업무 중에서도 근무시간에 유연성이 허용되는 비핵심 업무를 택할 수밖에 없다. 대개 이런 업무는 소득이 적다. 성별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다. 워킹맘이나 임신부가 더 강도 높은 업무를 하겠다고 요구해도 조직이 모성보호를 내세워 이를 수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시에라 경감과 같은 사례가 현실세계에선 소수에 그치는 이유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학교와 어린이집이 셧다운된 지난해 워킹맘들은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뒤통수를 맞는 상황에 봉착했다. 저자는 “사회적 차원에서 아동 돌봄 서비스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거나 노동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식의 다소 뻔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온 저자가 짚어본 여성들의 성평등을 향한 100여 년의 여정과 성별 소득격차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11 million. 한국 드라마가 세계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음을 알리는 기념비적 숫자다. 넷플릭스는 13일 트위터를 통해 “‘오징어게임’이 1억1100만 팬들에게 도달했다. 넷플릭스 출시 이후 가장 큰 작품이 됐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이 지난달 17일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된 후 이달 3일까지 17일간 2억900만 개의 가입 계정 중 절반이 넘는 1억1100만 계정이 이를 시청했다고 발표했다. 계정 1개당 최대 4명까지 시청 가능한 것을 고려하면 실제 오징어게임을 본 이는 1억1100만 명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한국 창작자의 이야기가 세계 1억 이상 구독 가구에 울려 퍼졌다”고 전했다. ○ 압도적 세계 1위…경쟁자가 없다넷플릭스는 그간 오리지널 콘텐츠는 공개 후 28일(4주)간의 시청 추이를 종합한 뒤 유의미한 수치만 발표했다. 이 수치는 통상 기업 실적과 함께 밝혔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실적 발표 일정과 무관하게 공개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은 세계 팬들로부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큰 사랑을 받은 만큼 시청 계정 수를 먼저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앞서 넷플릭스 드라마 중 시청 계정 수 1위는 지난해 공개된 미국 드라마 ‘브리저튼’이었다. 19세기 영국 사교계를 다룬 로맨스물로, 28일간 8200만 계정이 시청했다. 오징어게임은 17일째 1억1100만 계정을 기록해, 공개 28일째가 되는 14일이 되면 같은 기간 브리저튼의 기록을 배 이상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이날 “오징어게임은 94개국에서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1위에 올랐다”며 이례적으로 1위 국가 수도 공개했다. 별도의 ‘축하 영상’도 만들어 각국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여러 언어 자막이 달린 이 영상은 오징어게임 속 장면을 편집해 제작됐다. 드라마 속 게임 진행 성우가 “전 세계 1위를 차지한 오징어게임에 함께해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은 1억1100만 VIP 중 한 분이십니다”라고 한국어로 말하는 내레이션이 담겼다. 김민영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콘텐츠 총괄 VP(부사장)는 “넷플릭스가 한국에 투자하기 시작한 2015년 당시 목표는 세계적인 수준의 한국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었다”며 “상상만 했던 일을 오징어게임이 현실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 외신의 호평도 이어졌다. 미국 CNN은 13일 “오징어게임은 의미 있는 방식으로 시대정신(zeitgeist)을 강타했고, 문화현상이 됐다”고 보도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이 스릴러물은 공개 한 달도 안 돼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0일 “지난 몇 주간 대중문화 흐름을 요약해 달라고 한다면 여섯 단어를 고를 것”이라며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이라고 전했다. 이 통신은 지난달 오징어게임을 예로 들면서 “한국 창작자들은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 능력을 입증했다”며 호평했다. 넷플릭스가 국내 영상 제작에 더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넷플릭스는 올 한 해만 5500억 원을 한국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2016∼2020년 연평균 1540억 원이던 투자액을 대폭 늘렸다. 정지은 문화평론가는 “한국은 넷플릭스에 투자금 대비 최고의 콘텐츠가 나오는 가성비 좋은 시장이고, 창작자에게도 넷플릭스는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데다 세계로 나갈 길을 열어주는 매력적인 투자자”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제작비가) 입금되지는 않았지만 ‘D.P.’ 시즌2를 쓰고 있습니다. (원작 웹툰 작가인) 김보통 작가님과 얘기하면서요. 준비는 해놓아야 (제작하러) 가자고 할 때 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13일 진행된 ‘영화 만들기와 드라마 만들기’ 오픈토크에서 말했다. D.P.는 한국 군대 문제를 날것 그대로 담아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해 시즌2 제작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날 행사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 장항준 감독도 참석했다. 이들은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한국 콘텐츠가 세계로 나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회자되는 것에 대해 동료 감독으로서 자랑스럽다”며 “언어적 한계라는 족쇄를 OTT가 풀어주니 한국 작품들이 마음껏 날아다니고 있다. 많은 한국 작품이 세계인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킹덤1이 2019년에 공개됐는데 넷플릭스는 단 한 컷도 이래라저래라 한 것이 없었다”고 했다. 투자자들의 영향을 받았던 창작자들이 환영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 한 감독도 “극장용 상업영화였다면 ‘넣어도 되나’ 싶은 장면들을 D.P.에 모두 넣을 수 있었다”고 했다. OTT를 통해 러닝타임 제한에 대한 부담도 덜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들다 보면 돈도 많이 들이고 공들여 찍은 장면을 편집해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길게 이야기할 수 있다. 시청자에게 전달할 때도 유리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D.P.는 총 290분이다. 펼쳐서 보여주는 재미가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영화든 시리즈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시즌 1, 2가 인기를 끈 킹덤은 시즌3 제작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 김 감독은 “입금되는 거 봐서…”라고 농담하며 시즌3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하지 않았다. 최근 OTT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최초로 넷플릭스의 드라마 ‘지옥’과 ‘마이네임’을 초청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 장 감독은 “오징어게임처럼 한국 창작자들이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데 있어 온전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독립 장편 영화 촬영과 내년 2월 촬영 예정인 농구 영화 ‘리바운드’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올해 말부터 하정우와 함께 ‘피랍’ 촬영에 나설 예정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은 가입자가 시청한 드라마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넷플릭스가 지난달 17일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된 이후 이달 3일까지 17일간 세계 1억1100만 넷플릭스 가입 계정이 오징어게임을 시청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넷플릭스 계정, 즉 아이디 1개당 4명까지 시청 가능한 것을 고려하면 실제로 오징어게임을 본 전 세계인 수는 1억 1100만 명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13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징어게임이 공식적으로 1억 1100만 팬들에게 도달했다(reached). 넷플릭스 출시 이후 가장 큰 작품이 됐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이날 보도자료에서도 “한국 창작자의 이야기가 전 세계 1억 이상 넷플릭스 구독 가구에 울려퍼졌다”고 전했다. 넷플릭스는 그간 자사가 투자한 드라마 등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 공개 첫날을 포함한 28일간의 시청 추이를 종합한 뒤 유의미한 수치에 한해 이를 발표해왔다. 시청 계정 수치 는 통상 기업 실적 발표와 함께 밝혔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실적과 무관하게 공개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 팬들로부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큰 사랑을 받은 만큼 시청 계정 수를 먼저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앞서 넷플릭스 드라마 중 시청 계정 수 1위를 차지한 건 지난해 공개된 미국 드라마 ‘브리저튼’이었다. 이 드라마는 공개 후 28일간 8200만 계정이 시청했다. ‘오징어게임’은 17일만에 이를 훌쩍 넘어 1억 1100만 계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기존 기록을 갈아 치운 수준이 아니라 압도한 수준. 일각에선 공개 28일째가 되는 14일이 되면 같은 기간 브리저튼이 세운 기록을 두 배 이상 넘어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민영 넷플릭스 아시아 태평양 콘텐츠 총괄 VP는 “넷플릭스가 한국에 투자하기 시작한 2015년 당시 목표는 전 세계 팬들을 위한 세계적인 수준의 한국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었다”며 “상상만 했던 일을 ‘오징어게임’이 현실로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이날 “오징어게임은 (공개 이후) 총 94개국에서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1위에 올랐다”며 이례적으로 1위 국가 수도 공개했다. 그간 넷플릭스는 콘텐츠 순위를 공개할 경우 과도한 경쟁을 유발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려는 창작자의 의지가 꺾일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공개를 최소화해왔다. 넷플릭스는 이날 ‘축하 영상’도 만들어 세계 각국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한국어로 제작돼 세계 각국 언어 자막이 달린 이 영상은 오징어게임 속 일부 장면을 편집해 만들어졌다. 영상엔 오징어게임의 게임 진행 성우가 “전 세계 1위를 차지한 오징어게임에 함께해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오징어게임 열풍을 일으킨 1억1100만 VIP 중 한 분이십니다”라고 말하는 내레이션도 담겼다. 외신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CNN 방송은 13일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오징어게임은 시대정신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세계를) 강타했다. 오징어게임은 문화 현상이 됐다.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세계적인 히트작을 만드는 넷플릭스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도 10일(현지시간) “지난 몇 주간의 대중문화 흐름을 요약해 달라고 한다면 여섯 단어를 고를 것”이라며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에는 콘텐츠 산업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오징어게임의 흥행을 예로 들며 “한국 창작자들은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 능력을 입증했다”며 호평한 바 있다. 강성률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오징어게임은 단순하고 노골적인 설정을 했지만 그 안엔 음악과 미술, 이야기, 철학이 고도로 치밀하게 설계돼있다”며 “단순함과 심오함이 절묘하게 조화돼 세계인의 관심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열풍으로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오른 이는 이정재, 박해수 등 주연 배우만이 아니다. 게임에 참가한 이주노동자 알리로 등장하는 인도 출신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33)도 세계인이 주목하는 배우로 우뚝 섰다. 그는 오징어게임으로 한국에 온 지 11년 만에 한국은 물론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4일 200만 명을 넘었고 12일 현재 340만 명에 이른다. 트리파티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알리가 이런 반응을 얻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축복받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그가 한국에 온 건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 땅을 밟았다. 2006년 인도에서 연극 ‘스파르타쿠스’의 검투사 역할로 데뷔한 뒤 5년가량 배우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2011년 한예종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데뷔한 한국 작품은 2014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이었다. 당시 스리랑카남을 맡은 이후 영화 ‘아수라’ ‘럭키’ ‘승리호’,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 단역으로 등장하며 연기 내공을 다졌다. 그에게 비중 있는 조연을 맡을 기회가 온 건 오징어게임 오디션이 있던 지난해 2월. 그는 “황동혁 감독님이 알리는 덩치가 큰 인물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마른 편이어서 걱정이 컸다. 합격 통보를 받고 하루 종일 춤을 췄다.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199번 참가자 알리 캐릭터를 분석하면서는 고민을 거듭했다. “190여 개국 사람들 대부분이 알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를 처음 접하게 되는 거잖아요. 상투적인 설정을 따라가지 않으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려고 고민했습니다.” 그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역할은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어서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 연기의 폭을 넓힐 기회가 부족했다. 그는 “비슷한 역할 같지만 작품 맥락에 따라 한 명 한 명이 분명 다른 캐릭터인 만큼 모두 다르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면서도 “앞으로 액션, 로맨틱코미디, 사극 등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배역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일각에선 알리 캐릭터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미국의 한 대학교수가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알리가 게임 참가자들을 ‘Sir(사장님)’라고 부르는 등 복종하는 이미지로 묘사됐다며 인종차별 문제를 제기한 것. 이에 반박 글이 오가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 같은 논란에 그는 “사장님이라는 표현은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존칭이며 상우(박해수) 등에게 사장님이라고 하는 건 감사의 표현이다. 알리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주체적으로 관계를 맺는 캐릭터”라며 인종차별 지적을 일축했다. 한국 드라마 속 특정 인물 묘사 방식이 미국에서까지 논란이 되는 건 그만큼 K콘텐츠의 인기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콘텐츠는 영상, 연출 등 분야를 막론하고 상상을 뛰어넘는 성장을 보이고 있다”며 “많은 분들이 자신의 작품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런 분들(한국 배우, 제작자 등)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한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매일매일이 기대됩니다. 저는 한국어, 힌디어, 영어 등 3가지 언어가 가능한 만큼 앞으로 3배 더 많은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요. 저 자신보다 참여한 작품들과 연기한 배역들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