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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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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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남북한 관계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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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3%
  • [12일 남북 당국회담]北 김성혜, 朴대통령 2002년 방북때 수행했다

    남북 당국 간 회담 실무접촉에 북한 수석대표로 나온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방북했을 때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여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이 수많은 대남 협상 전문가를 제쳐 놓고 이례적으로 여성인 김 부장을 회담대표로 파견한 것도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던 2002년 5월 11∼14일 3박 4일간 개인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방문 상황이 기록된 유튜브 화면을 보면 김 부장은 박 대통령의 모든 방문 코스에 박 대통령 바로 옆에서 함께 다니며 안내했다. 김 부장은 검은 양장 차림에 손가방을 들고 동행했으며 비가 오는 날에는 박 대통령에게 우산을 씌워 주며 따르기도 했다. 동영상 속에는 모란봉 전망대에 올랐을 때 김 부장이 박 대통령에게 “이 우(위)에가 중앙떼레비죤 방송입니다”라고 설명해 주고 박 대통령이 웃으며 “예, 제가 설명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음성도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이 평양산원 평양지하철 동명왕릉 등을 방문했을 때도 김 부장은 나란히 보조를 맞추면서 걸었다. 화질 때문에 정확히 확인하긴 어렵지만 5월 13일 백화원초대소에서 박 대통령이 김정일과 만났을 때에도 옷차림 등으로 볼 때 김 부장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멀찍이 동행했다. 이를 감안하면 김 부장은 37세 때인 2002년에 이미 북한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그가 북한 실세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청와대 관계자는 10일 남북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급을 놓고 남북이 진통을 겪고 있는 것과 관련해 “(수석대표의) 격(格)이 서로 맞지 않으면 시작부터 상호 신뢰하기가 다소 어려운 대목이 있지 않겠느냐”며 “격을 맞추는 것은 회담에 임하는 기본 자세”라고 말했다. 이어 “비슷한 위치에 있는 분들끼리 책임 있게 (회담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상식적인 얘기”라며 “(수석대표의 급은) ‘국제적 스탠더드’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9, 10일 무박 2일의 밤샘 협상을 벌인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수석대표의 위상을 장관급에 해당하는 ‘책임 있는 당국자’로 명기하자는 한국 정부의 제안을 끝까지 반대했다. 북한은 11일 0시까지도 대표단 명단을 보내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남측은 대표단의 구성은 물론이고 회담을 장관급으로 할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보내오는 대표단의 수위에 맞춰 남측 대표단을 확정해 북측에 통보할 예정이다. 북한 대표단의 숙소 겸 회담장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로 정해졌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주성하·조숭호 기자 zsh75@donga.com}

    • 201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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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주성하]김정은과 세트장, 그리고 용기

    지난해 8월 김정은이 낡은 목선을 타고 연평도에서 수 km 떨어진 무도에 나타났을 때 기자는 그가 섬 주둔 병사들과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주목했다. 사진 속에는 목이 가느다랗고 눈이 움푹 들어간, 얼핏 봐도 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것이 확연한 앳된 병사가 여럿 보였다. 김정은 옆에 선 병사는 키가 150cm도 안 돼 보였다. 김정일 시대엔 상상할 수 없었던 사진이었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한다면서 수시로 군부대를 방문했다. 하지만 그가 방문하는 부대는 몇 달 전부터 열심히 꾸며놓은 세트장이었다. 기자 역시 북한에 있을 때 어느 부대의 진지 경관 공사에 동원된 적이 있다. 김정일은 몇 달 뒤 이 부대를 방문해 잘 꾸며놓았다고 칭찬했다. 김정일이 찾는 부대의 영양실조 환자들은 건장한 병사들로 교체됐다. 시찰 코스에 의례적으로 포함되는 부대 식당엔 전체 군단이 달라붙어 채워놓은 육류와 산나물 같은 부식물이 늘 가득 차 있었다. 북한의 모든 정보를 독차지한 김정일이 이런 내막을 몰랐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김정일에겐 현실을 마주할 용기도, 이를 극복할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현지시찰이란 체제유지를 위한 쇼였을 뿐이었고, 연기를 위해선 세트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정은은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 김일성의 1940∼1960년대 스타일을 열심히 학습해 모방했다. 그러니 당시의 김일성은 세트장은 찾아다니지 않았음도 잘 알 것이다. 김일성은 한 농장에서 보름 넘게 지내며 현실을 파악했고, 낡은 초가집에서 잠도 잤다. 허름한 목선을 타고 영양실조 군인들과 사진을 찍은 모습을 보며 나는 김정은에게 기대를 걸어보려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후 사진에선 영양실조 환자들이 사라졌다. 그는 다시금 아첨쟁이들이 준비한 세트장에서 웃고 있었다. 집권 1년 반이 지났건만 그는 북한에서 가장 경제 상황이 열악한 함흥 이북은 아직 찾지도 않았다. 지도자에겐 현실을 피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해도. 고난과 시련의 현실은 영웅의 탄생을 준비하는 세트장이 될 수도 있다. 1960년대 누구도 한국에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을 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찾아가 “선배님,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머리를 숙이고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한 종자돈을 얻어왔다. 누구도 지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굴하다 하지 않는다. 김정은이 세트장을 벗어난다면 절반은 성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기차역이나 장마당에 불시에 가 봐도 좋다. 그에게 인민을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느 현실도 그에게 결단의 용기를 주겠기에. 북한의 전격 제안으로 내일 남북당국 간 회담이 서울에서 열린다. 기자는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의 용기를 찾아보고 싶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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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 “교실 디지털 혁명, 한국 본받아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학교 교실의 디지털화를 강조하면서 또다시 한국 교육을 모범사례로 들었다. 6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한 중학교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고속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미국 학생은 약 20%에 불과하지만 한국 학생은 100%가 고속인터넷을 사용한다”며 “미국은 20%, 한국은 100%”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5년 안에 99%의 미국 학생이 고속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게 하라고 행정부서에 지시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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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북송 9명’ 역공… 체제선전 카드로 이용할 듯

    북한이 지난달 28일 라오스에서 평양으로 북송된 탈북 청소년 등 9명과 관련해 남쪽을 향해 역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탈북 청소년 문제는 지금까지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규탄하고 북한은 침묵을 지켜온 것과는 크게 다른 양상이다. 북한은 북송 8일째인 5일 조선적십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적십자회 대변인은 이번 사건을 “어린 청소년을 유인 납치해 남조선으로 집단적으로 끌어가려다 발각된 반인륜적 만행 사건”으로 규정한 뒤 남측을 향해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주모자들을 엄중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또 “수십 명의 청소년을 유괴 납치해 비밀 은신처에 가둬놓고 온갖 악행을 감행했으며 성경과 찬송가를 외우지 못하면 몽둥이로 구타해 온몸에 멍이 들고 정신적 압박으로 말투까지 이질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청소년들은 지금 안정을 되찾고 있으며 국가의 보살핌 속에 자기의 희망과 미래를 마음껏 꽃피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김영호 참사관도 5일 유엔 인권위이사회가 열린 직후 똑같은 주장을 했다. 김 참사관은 한국 TV 방송 등과의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에 대한) 안전상의 문제는 훗날 보면 알 것이며 사진이나 동영상을 포함한 보도를 기대해 보라”고 말했다. 북한 외교관이 한국 TV 카메라 앞에서 긴 시간 일문일답을 주고받은 것은 이례적으로 본국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통해 볼 때 북한은 적절한 시점에 기자회견을 열어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을 등장시킬 가능성이 커졌다. 9명이 한꺼번에 나와 자신들이 중국에서 선교사의 ‘가혹행위’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증언하고 어쩔 수 없이 남쪽으로 끌려갈 뻔했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탈북 청소년 북송을 계기로 확산되는 국제사회의 인권 공세를 약화시키고 남측을 향해서는 “북한 주민들을 납치해가는 행위를 중단시키라”며 역공세를 펼 것으로 보인다. 또 북송 청소년들이 “김정은 원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었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김정은의 ‘따사로운 품’을 칭송하는 합창을 하면 북한 주민들을 감동시키는 극적 내부 선전효과도 얻을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재입북 탈북자들을 내세워 여러 차례 유사한 기자회견을 진행해 체제 선전에 활용한 바 있다. 기자회견은 6일 조선소년단 창립 67주년을 맞아 개막한 ‘소년단 7차 대회’ 이후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축제 마당에 ‘탈북’ ‘납치’ 등이 거론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이 선전에 활용될 경우 이들을 구명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각하기 위해 적절한 교육과 대우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서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송환된 것은 국제법상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성명을 5일 발표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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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인도-파키스탄 핵무기 1년새 10기씩 늘어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의 핵탄두 보유량이 지난해 각각 10기가량 증가했다고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2일 밝혔다. 반면 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와 미국은 핵탄두 수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SIPRI에 따르면 지난해 240기 정도였던 중국의 핵탄두는 올해 250기로 늘었다. 현행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가운데 중국만 유일하게 핵탄두를 늘렸다.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225기와 300기로 지난해와 변동이 없었다. 비공식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은 예년 수준인 80여 기를 유지한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과 러시아는 2010년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따라 지난해 각각 300기와 1500기의 핵탄두를 감축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7700기, 러시아는 85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SIPRI는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들어 이들 국가를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SIPRI는 재래식 전력 분야에선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가 떠오르는 신흥 무기 공급원이라고 지목했다. SIPRI는 중국을 제외한 전통적 핵강국이 핵무기를 감축하거나 동결함에 따라 8개국이 보유한 전체 핵무기가 지난해 1만9000기에서 올해 1만7265기로 줄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핵 위협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핵탄두 수가 줄어든 대신 새로운 핵무기 운반 체제를 실전 배치했거나 배치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일부 국가의 핵무기 수준이 향상됐기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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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배지’ 등장

    북한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초상이 새겨진 배지가 등장했다고 중국 내 대북소식통들이 3일 전했다. ‘김정은 배지’는 지난달부터 평양에서 목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체 주민이 아닌 일부 간부층을 중심으로 배포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배지가 체제 출범 1년 6개월 만에 등장한 것은 그리 이른 시기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체제 특성상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 배지가 배포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에선 배지도 신분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표처럼 여겨진다. 김일성, 김정일 배지는 노동당 간부용이 따로 있다. 김정은 배지를 고위층에 먼저 배포한 것은 고위층에 노동당의 두터운 신임과 특혜를 받는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북한판 ‘선물 정치’에 해당한다. 하지만 배지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려는 주민들의 욕구가 워낙 크기 때문에 김정은 배지도 조만간 북한에 널리 퍼질 것으로 보인다. 배지 제작을 담당하는 만수대창작사 직원들은 새로운 배지가 나올 때마다 몰래 여분의 배지를 제작해 장마당에서 비싼 값으로 팔아왔다. 현재 북한에서 제일 고가에 거래되는 배지는 노동당기를 바탕으로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이 함께 들어간 일명 ‘쌍상’ 배지로 노동당 고위 간부용이다. 새로 나온 김정은 배지는 희소성 때문에 쌍상보다 더 비싸게 장마당에서 거래될 것으로 보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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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9명 강제북송 파문]“대사관, 밀입국 벌금 낼 돈 없으면 한국行 늦춰”

    몇 년 전 한국 입국에 성공한 탈북여성 A 씨는 4월 초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8세 아들이 도착해 대사관이 보호하고 있는데 현지 당국에 내야 하는 밀입국 벌금 300달러와 한국행 비행기 삯 400달러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 돈을 보내지 않으면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애 판정을 받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A 씨는 발을 동동 구르다 지난주 겨우 돈을 마련해 보냈다. 며칠 뒤 아이는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정부가 탈북동포들이 한국에 오기까지 드는 경비 지원을 중단하고 본인들이 부담하라고 하면서 탈북동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에 들어간 탈북동포 중에는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라오스 정부에 내야 할 벌금 300달러를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을 거쳐 라오스까지 오면서 빈손으로 온 사람이 적지 않다. 벌금을 내지 못하면 본인은 물론 그와 함께 한국행을 기다리는 다른 탈북자도 출발이 늦춰지기도 한다. 돈이 없는 탈북아동의 벌금은 그들을 중국에서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대신 물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나마 한국행 비행기 삯은 한국에 연고자가 없으면 한국 정부가 요금을 부담하지만 연고자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부담시킨다고 탈북동포들은 말했다. 태국은 몇 년 전까지 탈북자에게 6000밧(약 22만4200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못 내면 감옥에 30일 동안 가뒀다. 올 초부터 벌금 액수가 중국돈 400위안(약 7만4000원) 정도로 낮아졌다. 탈북지원 단체들은 “목숨 걸고 가까스로 제3국까지 온 탈북자들에게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라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고 호소한다. 이는 ‘탈북 비용’을 상승시켜 탈북 자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1509명. 이 중 90% 이상이 라오스나 태국을 거쳐 들어온다. 이들이 지난 한 해 라오스 및 태국에 낸 벌금은 2억 원에 못 미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금액은 오랜 도피 생활을 하는 탈북 동포들에겐 거액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해당국 입장에서 불법 입국자인 탈북동포들을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지원하면 외교적으로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벌금을 못 내 한국에 못 오는 사례는 사실상 없으며 벌금 문제를 공식화하는 것은 앞으로 탈북자의 한국행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런 이유로 정부 내부지침으로는 공식 지원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예외적으로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 돕기로 했고 실제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 구출 활동을 벌이고 있는 B 씨는 “탈북동포들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는 것은 탈북동포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는 헌법 정신을 정부 스스로가 어기는 것”이라며 “탈북동포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민간단체를 활용하는 등 여러 방안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주성하·조숭호 기자 zsh75@donga.com}

    • 201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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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中통과비자 이용 하루만에 강제북송

    라오스에 추방된 뒤 중국을 거쳐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등 9명은 북-중 접경지역 특히 양강도 혜산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15세와 16세 소녀가 둘이고 남자 7명은 △23세 △20세(2명) △19세 △18세(2명) △16세로 파악됐다. 탈북자들은 한두 명씩 중국 지린(吉林) 성 창바이(長白) 현 등으로 넘어와 변경지역을 떠돌다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선교사 부부는 이들을 비교적 안전한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으로 데려와 돌봤다. 선교사 부부는 인원이 늘어나자 이달 초 버스를 빌려 번호판을 바꿔가며 열흘 동안 중국 남쪽으로 이동해 라오스 국경을 넘었다.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메콩 강을 건너 6월 전에는 한국대사관으로 들어가겠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영주권자인 선교사 부부가 라오스 지리를 잘 몰랐던 탓에 라오스 국경수비대의 검문검색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007 작전’처럼 전광석화로 이뤄진 강제 북송 북한 당국이 ‘꽃제비’ 생활을 하다가 탈북한 뒤 라오스에서 적발된 이들 9명을 라오스 정부로부터 인도받은 지 하루 만에 비행기를 3번 이용하면서 곧바로 북으로 압송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북한은 중국을 거치면서도 중국의 법망을 교묘히 따돌려 중국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사실상 처음 공개된 대규모 탈북 사건이다. 북한 당국은 중국도 아닌 제3국에서 이들을 전격 압송하는 데 성공하면서 체제 단속 시스템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베이징(北京) 소식통은 “김정은 정권은 탈북을 대표적 체제 위협 행위로 규정해온 만큼 이번 강제 북송은 탈북 움직임을 막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속전속결식 북송이 최선책이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현재 라오스에선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 직항이 없다. 선박을 이용할 경우 몇 달이 걸리고, 게다가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는 인권 문제로 확대되면 북한 정권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북한은 타국을 경유하되 해당 국가의 법률에 저촉되지 않고 최대한 신속하게 북송하는 ‘통과비자’라는 방법을 찾아냈다. 통과비자는 24시간 안에 제3국으로 출국하는 비행기 티켓이 있는 경우 중국에선 도착 후 심사 없이 받을 수 있다. 도시 2개까지는 경유가 가능하다. 과거 이런 사례는 거의 없었다. 탈북자 북송 사건은 중국 내에서 중국 당국에 적발되는 탈북자에 국한됐다. 중국은 한국공관 진입에 성공한 탈북자들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한국행을 묵인해 왔다. ○ 일반 꽃제비보다 처벌 수위 높아질 듯 북한이 북송된 탈북 청소년 등을 어떻게 처벌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지금까지 북한 당국은 미성년 꽃제비인 경우 중국에서 북송돼 왔어도 훈계 처벌만 하고 꽃제비 집단 수용소인 구호소에 보내곤 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한국으로 향하다 체포됐다는 점, 선교사와 함께 오랫동안 머무르며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던 점 때문에 처벌의 수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만 18세가 지난 탈북 청소년의 경우 성인에 준한 처벌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 향하다 체포된 경우 일반적으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다. 북한이 지금까지 재입북 탈북자 기자회견 등을 통해 탈북자들을 국정원의 배후 조종으로 납치돼 억지로 남쪽으로 끌려간 사람들이라고 주장해 왔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탈북 청소년 등이 북한 당국의 이용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은 올 들어 탈북 꽃제비 문제가 한국과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자 “탈북 꽃제비를 근절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북-중 국경 마을에 주민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일부 마을을 소개(疏開)했으며 국경에 초소를 더욱 촘촘히 배치하고 철조망을 세웠다. 또 휴대전화 추적 장비를 도입해 국경을 오가는 통신을 단속했다. 이 때문에 탈북자가 크게 감소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북한 보위부 해외반탐처인 3처는 최근 탈북자 귀환 특수 공작조를 만들어 해외에 파견했으며 중국 당국도 이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한다.베이징=이헌진·고기정 특파원, 주성하·이정은 기자 mungchii@donga.com}

    •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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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탈북 꽃제비 9명 라오스서 中추방… 北요원이 바로 평양 압송

    라오스에서 붙잡힌 북한 ‘꽃제비’ 출신 청소년 등 9명과 라오스 이민국에 수용돼 있던 성인 탈북자 3, 4명이 중국을 거쳐 곧바로 북송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압송에는 북한 당국의 강력한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동남아 지역의 주요 탈북 루트가 상당 기간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15∼23세의 남자 7명, 여자 2명과 성인 탈북자 3, 4명은 27일 오후(현지 시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비행기에 태워져 중국으로 추방됐다. 이들은 이날 밤 항공편으로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에 도착해 공항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28일 베이징(北京)으로 와 오후 1시경 고려항공을 통해 평양으로 이송됐다. 라오스 당국은 이들의 신병을 북한 요원들에게 인도했다. 북한 요원들은 꽃제비 등 탈북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여행 서류와 항공권을 미리 준비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북송을 위해 비엔티안 공항의 정기 항공편이 4시간 동안 기다린 뒤 오후 2시 40분경 이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당초 이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추방되면 중국 정부와 협상을 거쳐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 또는 제3국행이 가능하도록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한 측이 ‘통과 비자(TWV·Transit Without Visa)’를 통해 이들을 빼돌리면서 허사가 됐다. 북한은 이 탈북자들이 중국에 입국하면 비자가 없어서 불법 입국자 신분이 되고 중국 측이 신병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통과 비자로 쿤밍과 베이징을 거쳐 바로 평양으로 이송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 정부가 중국에 강력히 협조를 요청했지만 중국 측은 이번 건에 대해서는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꽃제비 등 탈북자들이 송환된 건 아쉽지만 중국 역시 한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건이 한중 관계의 일면을 반영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북송된 꽃제비 9명은 이달 10일 한국인 선교사 부부(미국 영주권자)의 도움으로 중국-라오스 국경을 넘다가 라오스 경찰에 적발돼 억류돼 있던 상태였다. 2002년부터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해온 선교사 부부는 꽃제비 출신의 탈북자들을 미국으로 데려가 일반 가정에 입양시키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라오스 당국은 북한 측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이들의 신병을 북한 쪽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들의 호송을 위해 비행기에 함께 탄 몇 명의 북한 사람들은 일반 여권이 아닌 다른(특수) 여권을 갖고 있었다”고 말해 이들이 북한 보위부 인사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외교부는 탈북자 12, 13명에 대한 추방 사실을 보고받은 직후인 27일 저녁 윤병세 장관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베이징=고기정·이헌진 특파원, 주성하·이정은 기자 koh@donga.com}

    •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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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주성하]평양에서 배운 ‘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김일성대에서 배웠다. 대학을 방문하는 전대협 학생들을 연도에서 환영할 때 부르라고 했다. 학내 스피커를 통해 누군가가 선창하는 노래를 한 번, 두 번 합창으로 따라 부를 때 우리는 어느새 이 노래가 지닌 비장함에 물들어 있었다. 김일성대에서 한국 노래를 가르쳐 준 것은 그때가 아마 유일할 것이다. ‘아침이슬’은 평양고사포병부대에서 배웠다. 북한 대학생들은 6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대공포부대에서 근무해야 한다. 어느 밤 중앙당 간부의 아들인 명철이가 대공포 상판 위에 올라가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노래는 긴 밤 당직 근무에 시달리던 우리들을 단숨에 전염시켰다. 어느 나라 노래인지 누구도 묻지 않았다. 어떤 날엔 중대 대열 합창으로 아침이슬을 부르기도 했다. 김정일 호위병 출신도, 장관의 아들도, 보위부 고위 간부 아들도 모두 함께 불렀다. 그리고 2∼3년 뒤 이 노래는 북한 전역에 확산됐다. 북한은 1998년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정했다. 하지만 지금도 술자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북한 주민이 적지 않다. 탈북하기 전까지 나는 밤하늘의 어둠을 벗 삼아 임을 위한 행진곡과 아침이슬을 조용히 부르곤 했다. 함성도 맹세도 산자도 존재할 수 없는 그 땅의 긴 밤을 홀로 서러워하며…. 그러다 끝내 그 서러움을 모두 버리고 탈북이라는 목숨 건 거친 광야에 나섰다. 한국에 와서 북한에 전해주고 싶은 노래가 또 생겼다. 수습기자 시절 열흘 넘게 시위 현장을 따라다니며 배운 ‘불나비’란 노래다. 내가 일하는 동아일보사 앞은 시위의 단골 장소다. 때론 퇴근하다 시위대가 합창하는 노랫소리에 끌려 한참을 서서 입속으로 함께 부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북한에서 벗이 돼 주었던 그 밤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가슴에 한이 맺혀서다. 아직은 너무나 젊은데, 피가 뜨거운데 정작 아무것도 못하고 그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억울해서다. 여기가 평양이고, 청와대가 노동당 중앙당 청사이고, 시위대가 평양시민들이라면…. 지금 당장 북에 갈 수 있다면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과 같은 허울뿐인 멍에에 갇혀 노예로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임을 위한 행진곡과 불나비를 가르쳐주고 싶다. 동독에서 외쳤던 ‘우리가 인민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오늘날 이 노래가 가장 필요한 곳은 다름 아닌 북한이다. 진압군과 대치한 평양 시위대의 맨 앞줄에서 다른 이들과 어깨를 겯고 “산자여 따르라”를 목청껏 부르는 상상을 하면. 오! 내 마음은 터질 것 같다. 북한의 4중, 5중의 감시망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시위도 조직될 수 없다는 것은 잘 안다. 설령 어찌어찌하여 사람들이 시위대로 변해 거리에 나온다 해도 순식간에 시체더미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꿈을 꾸는 존재다. “다행히도 난 아직 젊은이라네.” 내 생전에 꿈이 이뤄지기를.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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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짜술에 말춤까지… 칸 영화제 ‘가짜 싸이’ 소동

    프랑스 칸 영화제에 가짜 싸이가 나타나 소동을 일으켰다고 뉴욕포스트가 23일 보도했다. 정체불명의 이 남성은 선글라스에 올백 머리까지 싸이와 거의 똑같은 복장을 하고 20일부터 사흘간이나 제66회 칸 영화제를 휘젓고 다녔다. 고급 파티를 찾아다니며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말춤’을 추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프랑스 라디오 방송과 횡설수설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또 칸 해변의 최고급 마르티네즈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에 수백만 원짜리 크리스탈 로제 같은 고급 와인을 3병이나 마시는가 하면 밤에는 유명 스타들이 찾는 칼턴호텔에서 파티를 하기도 했다. 가짜 싸이는 인근 모나코에서도 비슷한 행세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싸이와 비슷한 차림새를 한 데다 3명의 경호원까지 대동하고 다니는 바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을 수밖에 없었다. 외신은 가짜 싸이가 중국인으로 정체가 드러나자 잠적해버렸다고 전했다. 한편 진짜 싸이는 22일 “칸에 또 다른 ‘나’가 있는 것 같다”며 “그에게 인사를 전해 달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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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조선중앙TV 30분간 태극기 깜짝 노출, 왜?

    북한이 전 주민이 시청하는 조선중앙TV에 한국의 국기인 태극기가 나오는 장면을 30분 넘게 공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매체가 의도적이라고 할 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태극기를 공개적으로 노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태극기를 인정한다는 것은 한국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지금까지 태극기를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조선중앙TV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전날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북한 4·25체육단 소속 김혁봉-김정 조가 한국의 이상수-박영숙 조를 꺾고 금메달을 딴 혼합복식 결승 경기를 30여 분이나 녹화중계했다. 이때 북한은 스코어보드 속에서 인공기와 태극기를 표시한 그래픽을 화면에 나란히 띄워 그대로 방영했다. 과거 각종 국제경기에서 태극기가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장면에선 모자이크 처리를 하던 녹화중계의 전례와 크게 달라진 것이다. 가까운 예로 북한은 2010년 12월 제16회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과 중국의 여자배구 결승 경기를 녹화중계하면서 스코어보드 속의 중국 국기는 그대로 두고 태극기만 모자이크 처리해 방영한 일이 있다. 북한의 이번 태극기 노출은 의도적인 것이라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은 경기를 방영하면서 자체 제작한 스코어보드를 사용했다. 여기에 ‘남조선’(한국)이라고 적은 국명 옆에 태극기 그래픽을 삽입했다. 태극기가 없어도 되지만 굳이 넣었다는 점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직접 지시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의 속내를 모르는 상태에서 주민 전체가 지켜볼 TV 화면에 목숨을 걸고 자의로 태극기를 그려 넣으라고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은 북한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 TV에 태극기가 아주 잠깐 노출됐던 사례가 없지는 않다. 남북 간 화해 분위기가 고조됐던 2002년 북한은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4강까지 올랐던 경기들을 녹화중계했고, 당시 골대 뒤쪽에 걸려 있던 태극기가 스치듯 노출됐다. 하지만 이는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경기 중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편집을 하지 못해 벌어졌던 ‘사고’로 보인다. 북한은 지금까지 주민들에게 태극기가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통제했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북한이 스포츠 분야의 남북 단일팀을 구성할 때 한반도기를 고집한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북한에서 태극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탈북자 인터넷신문인 뉴포커스가 지난해 8월 탈북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북한에 있을 때 태극기를 알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4%가 “전혀 몰랐다”고 답변했다. 2000년 이전 탈북자 중에선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태극기를 알았다는 16%는 몰래 한국 드라마를 봤거나 일부 고위층 출신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이번 태극기 방영은 대남 관련 프로그램 방영에서 획기적인 변화이긴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속내를 짐작하기가 쉽지는 않다. 김정은이 폐쇄적인 아버지와는 다른 지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방영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에 한류가 급속히 확산돼 더이상 억지로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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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北 “식량 자체 해결하라” 공장에 땅 배분

    북한이 올봄부터 협동농장 토지를 각 공장 기업소에 분양한 뒤 농사를 지어 식량을 해결하도록 했다고 북한 내부 소식통이 16일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협동농장 토지 중 비옥도가 낮거나 방치된 땅을 해당 지역 공장에 종업원 수에 맞춰 분양한 뒤 파종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위임했다. 비옥한 토지는 농민들이 계속 농사짓도록 했다. 노동자 1인당 분양 면적은 해당 토지에서 예상되는 수확량이 생산자의 1년분 배급량과 맞먹게끔 정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가령 노동자 1인당 1일 표준배급량이 600g일 경우 이 노동자는 1년에 219kg을 배급받게 된다. 이 공장이 지정받은 농장의 1평(3.3m²)당 평균 곡물생산량이 1kg이면 해당 공장은 노동자 1인당 약 200평의 토지를 분양받는 것이다. 하지만 당국이 예상 수확량을 해당 농장의 비옥한 토지 생산량에 맞추어 책정하는 바람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탈북지식인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공장에서 생산한 양곡을 협동농장 생산량에 포함시키는 대신 해당 공장엔 생산량을 돈으로 환산해 지불하는 방식을 도입했다”고 15일 전했다. 이를 미루어볼 때 북한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양곡을 직접 소비하도록 하는 현물 분배 방식과 생산량만큼 돈을 지불하는 현금 분배 방식을 동시에 도입해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장 노동자들에게 돈을 주는 경우 식량은 국가 배급소에서 사게 할 수 있다. 새 정책은 대다수 공장의 가동이 중단돼 할 일이 없는 노동자들을 사실상 농민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한편 북한은 지난해 6·28 방침을 통해 도입하기로 한 가족단위 경작제도도 시범적으로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올해부터 가족단위 경작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내용은 동아일보가 지난해 6월 26일과 9월 25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NK지식인연대는 “가족 구성원 중 농민이 많은 경우는 가족끼리, 농민이 적은 경우는 분조 단위로 농사를 짓게 한다”며 “대신 농작물은 국가에서 지정한 것만 심게 한다”고 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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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식량의 최후보루’ 군량미 창고 열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식량의 최후 보루인 ‘군량미’를 헐었다. 3년 남짓한 6·25전쟁을 의식해 3년 치 군량미를 확보해온 북한은 1990년대부터 점차 비축 군량미를 줄이더니 최근 최후의 비상 곳간인 ‘3개월 군량미’마저 축내기 시작한 것. 북한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16일 북한이 전쟁물자로 비축한 군량미(일명 2호 창고)를 풀어 올봄 춘궁기를 넘기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군량미를 꺼내 주민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한 시점은 올 3월 초. 중국 접경지역의 북한 주민들은 당시 “3월 초 전시 비상식량이라며 각 가정에 옥수수 15kg씩을 배급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며 주민들을 각종 군사훈련에 내몰자 “장사도 못하게 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는 불만 여론이 커진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북한이 군량미 창고를 열기 시작한 뒤 최근까지 군량미로 주민들에게 배급을 주고 있다는 정황은 평양 혜산 청진 등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확인되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성인에겐 매달 보름치, 부양가족은 열흘 치 식량을 3개월째 주고 있다. 다만 평양엔 5월 초순까지 1인당 현미 500g씩 3차례 주었을 뿐 아직 보름치는 다 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군량미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풀리고 있으며 농촌지역에선 아직 2호 창고를 열지 않은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농장을 끼고 있고 개인 뙈기밭 농사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농촌에 비해 도시의 식량난이 더 심각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 대북소식통은 16일 “초기에는 군량미 창고에서 꺼낸 마대를 그대로 배급소에 실어갔는데 여론이 좋지 않아 지금은 마대는 없애고 식량만 나눠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꽁꽁 닫혀 있던 군량미 창고 문을 열고 보니 ‘중국 글자’가 적힌 옥수수 마대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우리나라 군량미 창고엔 중국 강냉이만 차 있었다”고 수군거렸다. 북한은 2호 창고를 지역별로 갖고 있으며 창고마다 비축한 식량의 종류는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쟁에 대비한다면서 3년 치 식량을 쌀로 비축해 왔다. 매년 수확하는 햅쌀을 창고에 넣고 3년 묵은 쌀은 배급으로 푸는 방식이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비축 식량의 질은 따지지 않고 양만 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군량미 창고엔 옥수수만 차게 됐다. 다만 지역에 따라 중국에서 지원받은 옥수수를 채워 놓기도 하고 국산 옥수수를 채워 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북 무상지원 식량 규모는 연간 최대 50만 t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 北 당국 “핵 가져 군량미 많이 둘 필요 없어” ▼한 고위층 탈북자는 “군량미 창고를 열면 반역죄로 처벌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간부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량미만큼은 절대 손을 대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상대로 “이제는 우리가 핵을 가졌기 때문에 전쟁을 몇 달씩 할 필요가 없고 현대전은 며칠 안에 끝나기 때문에 군량미를 많이 보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2월 핵실험 때 탁구공만 한 핵폭탄을 터뜨리는 데 성공해 이젠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현재 주민들은 군량미 배급이 6월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해마다 봄철 춘궁기에 치솟던 식량 가격도 3월 이후 소폭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현재 어느 정도의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 소식통은 “경제난이 2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군량미 비축량도 계속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3년 치 비축량이 1년 치로 줄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반년 치로 다시 줄어들었다는 것. 이마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3개월분이면 된다”며 비축량을 또 줄였다고 한다. 북한의 1년 소비 식량 규모가 약 400만 t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군량미 창고엔 100만 t 정도가 비축돼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군량미를 풀면서 상당수 2호 창고는 바닥을 드러냈을 것으로 보인다. 군량미 창고를 연 데 대한 북한 내부의 여론은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통들은 “군량미 창고라도 열어 굶어 죽지 않게 해주니 아버지 때보다 낫다”는 평가와 “벌써 아버지 때 물려준 마지막 곳간을 털어먹고 내년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한탄도 나온다고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 201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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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클럽, 한미동맹 60주년 세미나

    전현직 미주 특파원 모임인 한미클럽(회장 봉두완)은 1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 콘퍼런스룸에서 KEI와 공동 개최한 세미나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동맹 60주년을 맞은 한미 관계와 양국 대북 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토론했다. 최영진 주미 대사는 축사에서 “양국 동맹이나 대북 정책, 경제 관계 등의 측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아주 성공적이었으며 새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찬순 전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의는 한국 안전 보장 측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양국 간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의 핵연료 재처리 이슈도 기술적으로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찬 전 연합뉴스 특파원(전 연합뉴스·연합TV 사장)은 “채찍과 당근 두 가지 방안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대북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며 ‘창조적 대북 정책’을 주문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이사장,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에번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도 토론자로 참석했다.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 201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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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젤리나 졸리 “양쪽 유방 절제-재건술 받았다” 고백

    할리우드 톱스타 앤젤리나 졸리(38·사진)가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해 최근 양쪽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고 14일 밝혔다. 졸리는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린 ‘내 의학적 선택’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자신에게 유방암과 난소암 위험 인자가 있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BRCA1으로 알려진 유전자 때문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였고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50%에 이르렀다”며 “이번 수술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5%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졸리의 어머니인 배우 마르셀린 버트란드는 난소암에 걸려 2007년 57세로 사망했다. 졸리는 “난소암 위험인자보다 유방암 위험인자가 더 심각했고 수술도 상대적으로 더 복잡해 유방 수술부터 먼저 했다”고 설명했다. 또 2차례의 유방 절제술을 받고 이후 세 번째 수술로 유방 재건술도 받았다며 최근의 발전된 의학기술로 인해 그 결과가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섹시함의 아이콘으로 여성성을 강조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온 졸리는 “(이번 수술로 인해) 여성성을 조금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성을 결코 해치지 않는 강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유방암으로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의학 검진의 발달로 여성들이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해 유방 절제술을 받는 사례가 해외에서 늘어나고 있지만 졸리처럼 유명하고 젊은 스타가 이 같은 수술을 받고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지금껏 치료 과정을 숨겼지만 다른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내가 겪은 일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신문에 기고한 동기를 설명했다. 졸리는 “2월 2일 치료를 시작해 지난달 27일 마칠 때까지 브래드 피트가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며 “다정하고 배려심이 많은 피트 같은 파트너가 있어 난 정말 운이 좋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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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대 장정남을 인민무력부장에… 김정은 ‘軍수뇌 밀어내기’

    북한이 한국의 국방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을 75세인 김격식에서 50대의 소장파 장정남 상장(한국의 중장급)으로 교체한 사실이 13일 확인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부인 이설주의 인민내무군 협주단 공연 관람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이 대동한 인민무력부장을 장정남으로 소개했다. 4일만 해도 조선중앙통신은 인민무력부장을 김격식으로 호명했다. 따라서 최근 열흘 사이에 인민무력부장이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4월 소장(한국의 준장급)으로 진급한 장정남은 2011년 11월 중장으로 승진했으며 최근 상장으로 진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까지 강원도 최전방 지역을 맡는 인민군 제1군단장을 지냈다. 지난해 10월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 때 한국으로 넘어온 병사가 북한군 1군단 소속이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주도했던 북한 군부의 대표적 강경파 김격식 전 부장은 지난해 10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후 약 7개월 만에 물러났다.○ 세대교체의 서막인가 장정남이 인민무력부장으로 임명된 것은 단순한 직책 변동을 넘어서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군부 최고위직이던 인민무력부장은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의 자리가 더 중시되면서 군부 내 서열 3위 정도로 위상이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대외적으로 북한군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자리다. 그동안 군 장성들에겐 사실상 정년이 없어 계급 인플레가 심했다. 지난해까지 북한군 대장 위의 특수한 계급인 차수는 9명. 대장은 수십 명, 상장 중장까지 치면 수백 명에 이르러 중장이라 하더라도 사실상 한국의 준장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2년 전만 해도 중장이던 장 부장이 인민무력부장이 된 것은 한국으로 치면 준장이 2년 만에 국방장관까지 오른 셈으로 ‘파격 중의 파격’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의 신임이 두텁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불과 50대인 장 부장이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됨에 따라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훨씬 위인 장 부장의 군 선배 수백 명이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의 인민무력부장 임명은 북한군 세대교체의 신호탄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장성 수백 명이 물러나면 군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가 종말을 맞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김 씨 일가의 군부 장악력 커지나 김정은이 자신의 후견자인 고모 김경희나 장성택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장 씨를 무력부장에 임명했다고 보긴 어렵다. 김경희와 장성택이 현재 북한군 대장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는 수십 명의 대장 중 한 명이지만, 장 부장 임명을 시작으로 군부 고위층을 정리하면 김경희와 장성택은 자연스럽게 군부 내 최고 실권자로 자리를 굳히는 셈이다. 북한군에 대한 김정은의 지배력도 더 굳건해질 수 있다. 북한의 경제개혁을 반발해온 군 수뇌부가 정리되면 김정은이 자신의 의도대로 체제 변화를 이끄는 것도 훨씬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올 1분기(1∼3월)에 주도했던 대내외 강경정책이 군 수뇌부를 몰락시킨 빌미가 됐을 가능성도 크다. 북한은 2월 핵실험을 계기로 한국과 미국을 향해 도발하고 위협하면서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내부적으로 준전시에 해당하는 동원령을 내렸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김정은이 군부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별 효과가 없음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3월 군부대를 9번 방문했던 김정은은 4월에는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았다. 군부대 방문 때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장성택은 4월 김정은 공식행사 10번 중 9번을 수행했다. 군부와 장성택의 위상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의 불안정성은 더욱 증가 북한은 최근 전방을 담당하는 군단장을 모두 교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전방군단은 총 4개로 휴전선을 따라 서해에서 동해 방향으로 4, 2, 5, 1군단 순서로 배치돼 있다. 서해 5도와 황해도를 담당하며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켰던 4군단장은 변영선에서 이성국 상장으로 교체됐다. 변영선은 중부전선을 담당하는 5군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5군단장 자리를 내준 이영길은 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승진했다. 작전국장은 총참모장을 보좌해 실제 군사작전을 담당하는 핵심 참모다. 작전국장을 맡았던 최부일은 인민보안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과 수도권 등 가장 민감한 지역을 담당하는 2군단장은 김형룡에서 제3의 인물로 교체됐다. 김정은의 대대적인 군인사가 북한의 최대 기득권층인 군부에 칼을 뽑은 것이라면 집권 이후 최대의 도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도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많다.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은 낮지만 망명 등 돌출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능력 대신 김정은과의 친밀도에 따라 벼락 진급을 하면 군의 사기도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벼락 진급한 군인이 성과를 만들려 하는 과정에서 대남도발을 할 수도 있다.주성하·조숭호 기자 zsh75@donga.com}

    • 201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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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적의 생환 뒤엔 ‘신의 선물’ 있었다

    1120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혹한 건물 붕괴 현장에서 하늘은 한 생명에게 생존의 기적을 허락했다. 지난달 24일 붕괴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사고현장에서 17일 만에 구조된 19세 여성 레슈마 베굼 씨가 기적의 주인공이다. 베굼 씨는 8층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2층 계단에서 뛰어 내려오다가 붕괴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머리카락만 잔해 더미에 끼었을 뿐 다른 상처는 없었다. 그가 갇힌 공간은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특히 신이 그를 위해 마련한 선물인 듯 손이 닿는 주변엔 점심용 간식박스와 생수병까지 있었다. 베굼 씨는 구출 이틀 전까지 간식을 먹었으며 물이 떨어졌을 땐 파이프로 흘러내린 빗물을 마셨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크기의 공간이 그에게 허락돼 있었던 것. 그는 며칠 전부터 구조대의 작업 소음을 들었다. 파이프를 힘껏 두드렸지만 중장비의 소음에 가냘픈 구조요청은 묻혔다. 그러다가 매몰된 지 408시간 만인 10일 드디어 한 구조대원이 철 파이프를 두드리는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마지막 생존자가 발견된 것은 지난달 28일. 이후 12일간 섭씨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로 인해 형체를 구분하기 어려운 부패한 시신만 발견돼 구조대도 희망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자 구조대는 즉각 중장비를 세운 뒤 망치와 정으로 통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한 여성 생존자를 구출하던 중 그라인더가 일으킨 불꽃으로 가스가 폭발해 여성과 구조대원 모두 사망한 아픈 기억이 있었던 터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길을 만들었다. 40여 분 뒤 건물 잔해에 갇혔던 여성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의료진은 베굼 씨가 신장 기능이 쇠약해졌지만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굼 씨는 방글라데시 북부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16세에 결혼해 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이 도망간 뒤 홀로 다카에 와서 취직했다. 월급은 50∼60달러(약 5만5400∼6만6500원). 이제 그는 ‘방글라데시 생명과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는 당시 19세이던 박승현 씨(여)가 17일 만에 구조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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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20대 교통여경이 김정은 암살 막았다?…돌연 '영웅' 칭호

    북한이 평양의 여성 교통경찰대원에게 “불의의 정황 속에서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 옹위했다”며 영웅 칭호를 수여해 그 ‘속사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 등에서 교통 질서유지 활동을 하는 여성이 ‘혁명의 수뇌부를 옹위했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혁명의 수뇌부는 김정은을 의미한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5일 오후 8시 메인 뉴스의 첫 보도로 “불의의 정황 속에서 수령결사옹위의 영웅적 희생정신을 발휘해 혁명의 수뇌부의 안전을 결사 보위한 리경심 동지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1급을 수여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6일과 7일 잇따라 이 씨의 화선입당(특출한 공로를 세운 자를 심사 없이 즉각 노동당에 입당시키는 것)과 영웅 메달 수여식 등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방송은 평양시 인민보안국 교통지휘대 지구대 대원인 이경심 씨를 전국이 따라 배워야 할 ‘시대의 영웅’으로 홍보하고 있다. 북한은 ‘불의의 위급한 정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 씨가 교통경찰임을 감안할 때 그가 김정은의 차량이 위험에 빠진 순간 목숨을 내건 용기로 이 상황을 수습했다는 추정이 유력하다. 일단 김정은이 탄 차량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이 유력하지만, 이것이 교통사고로 은폐된 암살 시도였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수시로 동정이 보도되던 김정은이 북한이 한반도의 위기지수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던 4월 초에 갑자기 2주 동안이나 행적이 묘연해 의문이 증폭된 바 있다. 이 씨의 근무지는 평양 모란봉구역 인민군교예극장 앞 사거리다. 이곳은 중앙당 청사와 김정은의 저택에서 불과 몇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김정은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목이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2006년 9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타고 있던 S600벤츠 승용차가 폐차될 정도로 교통사고를 당하고 장 부위원장의 허리도 크게 다친 곳이다. 당시 북한군 트럭이 장 씨의 차를 뒤에서 받았다. 이 때문에 당시 교통사고가 장 씨에 대한 암살 시도였다는 소문이 평양에 퍼지기도 했다. 김정은의 차량은 이동 시 주변 교통까지 차단시킬 정도의 최고 경호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경호원들을 제치고 거리에서 교통수신호를 전달하던 교통경찰이 상황을 수습했다는 점은 의문이다. 공화국 영웅은 북한의 훈장 중 최고등급으로 살아서 받기는 매우 힘들다. 더구나 결혼 전인 20대 젊은 여성이 영웅칭호를 받고 전국의 귀감으로 내세워지는 것은 웬만한 공적으로 불가능하며 김정은이 직접 지시를 하지 않고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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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서 여성 3명 10년간 납치-감금… 범인은 옆동네 3형제

    미국에서 10, 20대 나이에 실종됐던 여성 3명이 10년가량 감금돼 있다 뒤늦게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CNN방송 등 미국 언론은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경찰이 시내 중심가의 한 가옥에서 2002년부터 2004년 사이 실종됐던 여성 3명을 찾았다고 6일 보도했다. 피해 여성 3명이 감금됐던 주택은 납치 실종된 곳에서 불과 몇 km 떨어진 한동네여서 충격이 더했다. 이날 오후 실종 여성 중 한 명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웃 주민 찰스 램지 씨였다. 그는 “길을 걸어가는데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문을 발로 쾅쾅 걷어차고 있었다”고 말했다. 램지 씨가 다가가자 이 여성은 겨우 손이 빠져나올 만큼 열린 문틈으로 자신이 납치 감금돼 있으니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램지 씨의 도움으로 문을 열고 빠져나온 이 여인은 곧장 옆집으로 달려가 911에 신고했다. 이 여성은 17세 생일을 하루 앞둔 2003년 4월 21일 패스트푸드점 버거킹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던 어맨다 베리 씨(27)였다. 베리 씨의 모친은 딸이 사라진 충격으로 2006년 47세에 세상을 떴다. 베리 씨는 경찰에 “다른 여성 2명도 갇혀 있으니 납치범이 돌아오기 전에 빨리 구해 달라”고 말했다. 전화를 받고 곧바로 출동한 경찰은 베리 씨가 탈출한 집에서 또 다른 실종 여성인 지나 디지저스 씨(23)와 미셸 나이트 씨(32)를 찾았다. 디지저스 씨는 14세 때인 2004년 4월 2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사라졌다. 나이트 씨는 21세 때인 2002년 8월 23일 사촌 집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실종된 베리 씨와 디지저스 씨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수차례 언론에 보도됐다. 올 1월에는 한 교도소 수감 죄수가 실종된 베리 씨의 시체에 대한 가짜 매장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4년 6개월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나이트 씨는 경찰이 그가 가출했을 것으로 추정해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경찰은 세 여성을 납치 감금한 혐의로 납치 피해자가 갇혀 있던 집의 주인인 히스패닉계의 아리엘 카스트로 씨(52) 3형제를 체포했다. 카스트로 씨의 형(54)과 동생(50)은 이웃에 살고 있었다. 카스트로 씨의 이웃들은 그가 선량한 학교 버스 운전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체포될 당시에는 학교 버스 운전사 일은 그만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들은 카스트로 씨가 이웃과도 전혀 이상한 점 없이 어울렸으며 기타도 잘 치던 평범한 동네 이웃이었다고 증언했다. 감금된 여성들을 구출했던 램지 씨도 “카스트로 씨와 평소 바비큐도 함께 해 먹던 사이였지만 전혀 낌새를 못 챘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카스트로 씨가 납치한 여성들과 면식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용의자의 삼촌인 카에사르 카스트로 씨는 “우리 집안과 디지저스 집안 사람들은 같이 컸다”고 말했다. 경찰은 체포된 용의자들을 조사하고 있지만 조사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실종 여성들이 감금돼 어떻게 10년 동안이나 철저히 외부와 격리돼 있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적잖은 의문이 남는다. 이들이 갇혀 있었던 저택은 대로변에 있었으며 옆집과도 바로 붙어 있고 높은 울타리도 없었다. 아직 주택 내부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감금된 여성들이 10년 동안 외부에 도움을 청할 기회가 없었는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베리 씨는 경찰에 전화하면서 “내가 10년 동안 뉴스에 계속 나왔던 사람”이라고 밝혀 감금돼 있는 동안 자신의 실종을 언론이 크게 다뤄 왔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현재 구출된 세 여인은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고 있으며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베리 씨가 탈출할 때 자신의 딸(6)을 데리고 나왔다고 밝혔다. 딸은 베리 씨가 성폭행을 당해 낳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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