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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일생을 살펴보면 행운을 타고난 것처럼 보입니다. 1884년 첫 오페라 ‘빌리’를 내놓았을 때부터 선배 대작곡가 베르디의 전속사인 리코르디에 점찍혀 ‘베르디의 후계자’로 육성되었습니다. 1896년부터 4년 간격으로 내놓은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은 각각 흥행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세계 오페라계의 표준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푸치니 역시 쉽지 않은 ‘인정투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라보엠’과 ‘토스카’는 평론가들로부터 “눈물 질질 짜는 여성취향”이라는, ‘토스카’는 “프랑스적 퇴폐주의의 산물”이라는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나비부인’에 이어 미국에서 발표한 ‘서부의 아가씨’도 “급진적이다” “매력적인 선율미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런 평론가들의 반응은 때로 구약성경의 솔로몬 판결 이야기에 나오는 아기처럼 푸치니를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겼습니다. 새로운 수법을 선보이면 “이탈리아 전통에서 벗어났다”는 눈 흘김을 받았고,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려 하면 “예전 작품을 반복한다”는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가 죽기 6년 전인 1918년 내놓은 ‘3부작’(일 트리티코)은 당시 그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푸치니는 여기서 아예 짧은 단막 오페라 세 편을 하룻저녁 무대에 올리는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상반된 성격의 세 작품을 공연하면 어떤 비평가든 최소 한 작품에는 만족할 걸로 여겼던 것입니다. 첫 막 ‘외투’는 당대 유행을 좆아 무산계급 주인공의 치정 살인극을 소재로 했습니다. 둘째 막 ‘수녀 안젤리카’는 푸치니의 장기였던 ‘여주인공이 보호받지 못하고 가엾게 죽어가는 멜로극’으로 만들었습니다. 셋째 막 ‘자니 스키키’는 전통극 형식을 빌리면서 푸치니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코믹 오페라풍을 가미해 ‘전통과 도전’ 양쪽을 모두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 도박은 성공했습니다. 평론가들은 만족했으니까요. 만족의 대부분은 마지막 막인 ‘자니 스키키’에 쏠렸지만. 15~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솔오페라단이 푸치니의 ‘일 트리티코’ 전 3막을 공연합니다. 제6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참가작 중 하나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대음악가들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음악 거장들과의 친분으로 엮여 자주 나타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와 레스피기 등에게 걸작 발레곡을 위촉했던 디아길레프, 베르디와 푸치니의 성공에 큰 역할을 한 리코르디 등 공연 흥행사들은 특히 중요합니다. 리코르디는 악보 출판업자이기도 했죠. 출판업자를 꼽아보자면 베토벤과 슈베르트 시대에 활동했던 안톤 디아벨리(1781∼1858·사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토벤이 쓴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가장 먼저 기억됩니다. 그는 자기가 쓴 왈츠 주제를 당대 주요 작곡가 50명에게 주고 변주곡을 쓰도록 했습니다. 흘겨보자면 ‘돈으로 위세를 부린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베토벤은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진지하게 작업에 참여해 33개의 변주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불리는 1권이 되었고, 다른 작곡가들이 쓴 변주는 ‘디아벨리 변주곡 2권’이 되었습니다. 그는 무명 작곡가였던 슈베르트의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1821년 처음으로 슈베르트 가곡 ‘마왕’의 악보를 출판했고, 이후에도 계속 악보를 내 주었습니다. 슈베르트가 1828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을 때 그는 슈베르트 작품 대부분의 판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슈베르트는 점차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디아벨리의 출판사에 현금을 벌어다 주었습니다. 오늘 베토벤의 변주곡이나 슈베르트 ‘마왕’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전, 라디오에서 두 사람이 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인생의 폭풍우(Lebensst¨urme)’를 듣고 큰 인상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일찍 죽은 슈베르트도 예사롭지 않은 인생의 경로를 폭풍우에 비유했구나….”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이 멋진 제목은 슈베르트가 죽은 뒤 디아벨리가 악보를 출판하면서 마음대로 붙인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폭풍우’는 내달 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2015 서울 스프링축제-포푸리’ 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 제러미 메뉴인과 그의 부인인 한국 출신 무키 리 메뉴인이 연주합니다. 제러미 메뉴인은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의 아들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두 곡의 ‘크로이처 소나타’가 연주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과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가 협연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1803년), 그리고 이경선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김호정이 호흡을 맞추는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1923년)입니다. 왜 두 곡은 제목이 같을까요? 야나체크의 곡은 현악4중주인데 왜 ‘소나타’라는 이름이 있을까요? 음악 작품의 제목과 형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리스트의 ‘전주곡(Les Preludes)’은 전주곡 형식의 작품이 아니라 교향시입니다. ‘전주곡’이란 제목이 붙은 이유는, 시인 라마르틴이 쓴 ‘인생은 미지의 노래에 대한 전주곡’이란 표현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 ‘크로이처 소나타’도 이와 비슷합니다.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에 영감을 받아 1889년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가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다가 그 열정적인 모습에 아내를 의심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베토벤의 소나타에 대해 위험할 만큼 정열적인 작품으로 암시했습니다. 야나체크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이 소설을 표제로 삼아 쓴 현악4중주입니다. 그런데 이 곡 자체는 톨스토이에 대한 오마주(숭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야나체크는 톨스토이의 소설에 대한 반감을 담아 이 곡을 썼습니다. 당시 야나체크는 유부녀인 시테슬로바라는 여성과 연애 중이었으며, 톨스토이가 작품 속에서 결혼제도를 엄정한 도덕률로 얽어맨 데 대한 항의의 마음을 곡에 담았습니다. 야나체크의 이 곡은 베토벤의 소나타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프라하의 봄·1988년)’에 쓰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두 곡의 크로이처도, 톨스토이의 소설도 요즘 같은 봄날에 어울리는 열정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나체크의 시각이 지지할 만한 것이건, 아니건 말이죠.유윤종 gustav@donga.com}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두 곡의 ‘크로이처 소나타’가 연주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과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가 협연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1803), 그리고 이경선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김호정이 호흡을 맞추는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현악사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1923)입니다. 왜 두 곡은 제목이 같을까요? 야나체크의 곡은 현악사중주인데 왜 ‘소나타’라는 이름이 있을까요? 음악작품의 제목과 형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리스트의 ‘전주곡(Les Preludes)’은 전주곡 형식의 작품이 아니라 교향시입니다. ‘전주곡’이란 제목이 붙은 이유는, 시인 라마르틴이 쓴 ‘인생은 미지의 노래에 대한 전주곡’이란 표현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야나체크의 현악사중주 ‘크로이처 소나타’도 이와 비슷합니다.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에 영감을 받아 1889년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가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다가 그 열정적인 모습에 아내를 의심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위험할 만큼 정열적인 작품으로 암시했습니다. 야나체크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이 소설을 표제로 삼아 쓴 현악사중주입니다. 그런데 이 곡 자체는 톨스토이에 대한 오마주(숭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야나체크는 톨스토이의 소설에 대한 반감을 담아 이 곡을 썼습니다. 당시 야나체크는 유부녀인 시테슬로바라는 여성과 연애 중이었으며, 톨스토이가 작품 속에서 결혼제도를 엄정한 도덕률로 얽어맨데 대한 항의의 마음을 곡에 담았습니다. 야나체크의 이 곡은 베토벤의 소나타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프라하의 봄·1988)’에 쓰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두 곡의 크로이처도, 톨스토이의 소설도 요즘 같은 봄날에 어울리는 열정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나체크의 시각이 지지할만한 것이건, 아니건 말이죠.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의 U 청색의 O, 모음들이여/나는 언젠가 너희들의 내밀한 탄생을 말하리라….” 프랑스 19세기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모음시’입니다. 소리만으로 구성된 알파벳 모음에서 엉뚱하게도(?) 색채를 읽은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감각들 사이에 연관을 짓는 것을 ‘공감각’이라고 합니다. 특히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공감각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사진)은 특정 음높이가 특정의 색채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C음은 빨강, D는 노랑, A는 초록이라는 식이죠. 이 음이 대표하는 C장조 D장조 등 조(調)도 이런 색채와 결부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910년 작곡한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에서는 아예 이 색채들을 내뿜는 ‘색광(色光) 피아노’를 사용해서 관객이 자신과 똑같이 색채를 느끼도록 했습니다. 스크랴빈 외의 다른 음악가들도 똑같이 음에서 색을 느낄까요? 글쎄요. 제가 프로 음악가들에게 물어본 바로는 “근거 없는 얘기다” “나도 음에서 색깔을 느끼지만 스크랴빈과는 다르다” 등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소리에서 색을 느낀 것 외에도 스크랴빈은 여러 점에서 독특한 작곡가였습니다. 신을 내적 직관에 의해 직접 체험한다는 이른바 ‘신지학(神智學)’에 몰두했고, 화음을 9개까지 겹쳐 쌓는 독특한 화성법을 선보였습니다. 낭만주의 이전의 음악 문법을 송두리째 해체한 음악도 나올 대로 다 나온 오늘날, 스크랴빈의 음악은 오히려 보수적으로 느껴질 정도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그가 기존의 음악 문법을 혁신한 방법은 다른 작곡가들과 닮지 않은 자기만의 것이었습니다. 이달 27일은 그의 타계 100주년 기념일입니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시벨리우스에 비해 스크랴빈에게 비춰지는 조명은 미미할 정도이지만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16일 오후 8시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러시안 시리즈’ 리사이틀에서 스크랴빈의 피아노소나타 4번, 24개의 전주곡 작품 11, 12개의 에튀드(연습곡) 작품 8 등을 연주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의 U 청색의 O, 모음들이여/나는 언젠가 너희들의 내밀한 탄생을 말하리라….” 프랑스 19세기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모음시’입니다. 소리만으로 구성된 알파벳 모음에서 엉뚱하게도(?) 색채를 읽은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감각들 사이에 연관을 짓는 것을 ‘공감각’이라고 합니다. 특히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일수록 공감각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은 특정 음높이가 특정의 색채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C음은 빨강, D는 노랑, A는 초록이라는 식이죠. 이 음이 대표하는 C장조 D장조 등 조(調)도 이런 색채와 결부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910년 작곡한 ‘프로메테우스:불의 시’에서는 아예 이 색채들을 내뿜는 ‘색광(色光) 피아노’를 사용해서 관객이 자신과 똑같이 색채를 느끼도록 했습니다. 스크랴빈 외의 다른 음악가들도 똑같이 음에서 색을 느낄까요? 글쎄요. 제가 프로 음악가들에게 물어본 바로는 “근거 없는 얘기다” “나도 음에서 색깔을 느끼지만 스크랴빈과는 다르다” 등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소리에서 색을 느낀 것 외에도 스크랴빈은 여러 점에서 독특한 작곡가였습니다. 신을 내적 직관에 의해 직접 체험한다는 이른바 ‘신지학(神智學)’에 몰두했고, 화음을 9개까지 겹쳐쌓는 독특한 화성법을 선보였습니다. 낭만주의 이전의 음악 문법을 송두리째 해체한 음악도 나올 대로 다 나온 오늘날, 스크랴빈의 음악은 오히려 보수적으로 느껴질 정도이지만, 1차 세계대전 이전에 그가 기존의 음악 문법을 혁신한 방법은 다른 작곡가들과 닮지 않은 자기만의 것이었습니다. 이달 27일은 그의 타계 100주년 기념일입니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시벨리우스에 비해 스크랴빈에게 비춰지는 조명은 미미할 정도이지만,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16일 오후 8시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러시안 시리즈’ 리사이틀에서 스크랴빈의 피아노소나타 4번, 24개의 전주곡 작품 11, 12개의 에튀드(연습곡) 작품 8 등을 연주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라 폴리아’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이탈리아 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5-12 제목으로 알려졌죠. 하지만 이밖에도 헨델, 살리에리, 마르티네스, 제미냐니 등이 작곡한 수많은 ‘라 폴리아’가 있습니다. 폴리아란 바로크시대에 유명했던 음악 형식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기타를 칠 줄 아는 분은 한번 기타를 들고 코드를 짚어보시죠. D단조를 예로 들면 Dm-A-Dm-C-F-C-Dm-A. 이렇게 여덟 개의 코드가 반복됩니다. 이런 화음의 바탕 위에 느릿한 3박자로 음악이 흘러갑니다. 약간은 비감하고, 약간은 장중한 느낌입니다. 15세기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인들은 바로 이 코드진행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폴리아를 들으면 ‘중세 또는 르네상스 느낌’을 짙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폴리아의 느낌을 현대에 응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 출신의 대중음악가 방겔리스입니다. 음악사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그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맞아 1992년 발표된 영화 ‘1492 콜럼버스’ 주제음악에 바로 이 폴리아의 화음진행을 응용했습니다. 장중한 이 주제음악에서 르네상스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인 베토벤도 자신의 교향곡 5번 C단조에 폴리아를 슬쩍 삽입했다는 점입니다. 느릿한 2악장, 금관이 힘차게 영웅적인 주제를 연주한 뒤 분위기가 잦아듭니다. 조용한 가운데 갑자기 목관악기들이 착착 행진하는 것 같은 선율을 연주합니다. 이 악장 첫 주제를 단조로 바꾼 것이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바로 폴리아의 화음진행입니다. “이거 뭔지, 알아보겠어?”라는 듯한, 베토벤의 미소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왜 베토벤은 근대적 교향곡의 한가운데 옛날 형식을 삽입한 것일까요. ‘나는 혁신가이지만 옛날 음악도 깊이 연구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일까요, 그냥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악상에 폴리아의 화음진행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그의 내면에 들어가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귀가 안 들리는 그에게 제자나 비서가 물었다면, 오늘날 남아 있는 그의 손글씨 대화록에 한마디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아쉽기도 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라 폴리아’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이탈리아 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5-12 제목으로 알려졌죠. 하지만 이밖에도 헨델, 살리에리, 마르티네스, 제미냐니 등이 작곡한 수많은 ‘라 폴리아’가 있습니다. 폴리아란 바로크시대에 유명했던 음악 형식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기타를 칠 줄 아는 분은 한번 기타를 들고 코드를 짚어보시죠. D단조를 예로 들면 Dm-A-Dm-C-F-C-Dm-A. 이렇게 여덟 개의 코드가 반복이 됩니다. 이런 화음의 바탕 위에 느릿한 3박자로 음악이 흘러갑니다. 약간은 비감하고, 약간은 장중한 느낌입니다. 15세기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인들은 바로 이 코드진행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폴리아를 들으면 ‘중세 또는 르네상스 느낌’을 짙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폴리아의 느낌을 현대에 응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 출신의 대중음악가 반젤리스입니다. 음악사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그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맞아 1992년 발표된 영화 ‘1492 콜럼버스’ 주제음악에 바로 이 폴리아의 화음진행을 응용했습니다. 장중한 이 주제음악에서 르네상스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인 베토벤도 자신의 교향곡 5번 C단조에 폴리아를 슬쩍 삽입했다는 점입니다. 느릿한 2악장, 금관이 힘차게 영웅적인 주제를 연주한 뒤 분위기가 잦아듭니다. 조용한 가운데 갑자기 목관악기들이 착착 행진하는 것 같은 선율을 연주합니다. 이 악장 첫 주제를 단조로 바꾼 것이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바로 폴리아의 화음진행입니다. “이거 뭔지, 알아보겠어?”라는 듯한, 베토벤의 미소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왜 베토벤은 근대적 교향곡의 한가운데 옛날 형식을 삽입한 것일까요. “나는 혁신가이지만 옛날 음악도 깊이 연구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일까요, 그냥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악상에 폴리아의 화음진행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그의 내면에 들어가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귀가 안 들리는 그에게 제자나 비서가 물었다면, 오늘날 남아있는 그의 손글씨 대화록에 한 마디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 아쉽기도 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지난달 21, 24,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 객석에서는 예전에 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LG와 함께하는 제11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참가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전 세계에서 온 심사위원들로부터 특별한 ‘멘토링’을 받는 자리를 가진 것입니다. 이 사흘은 각각 1, 2차 예선과 준결선 참가자의 당락이 가려진 날입니다. 다음 회 경연에 진출하지 못한 연주자들만 이고르 오짐(러시아), 조엘 스미르노프(미국) 등 연주가와 교육가로 이름 높은 심사위원 11명으로부터 그동안의 연주에 대한 평가와 충고를 들었습니다. 의욕과 기대 속에 참가한 콩쿠르에서 목표 도달에 실패한 저녁이지만, 이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의 표정이 마냥 어둡지는 않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명교사들로부터 유익한 충고를 듣게 되었다는 설렘도 느껴졌습니다. 심사위원들은 “한층 ‘노래하는’ 표현을 익혔으면 좋겠다”라는 전반적인 충고부터 “주제가 처음 나올 때는 네가 사용한 보잉(활긋기) 방향이 좋아. 하지만 두 번째는 바꾸었으면 좋았겠지. 예를 들어…” 하면서 직접 팔로 보잉 시범을 보이며 입으로 바이올린 선율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올해 처음 도입된 이 자리가 크게 유익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적의 한 참가자는 “나를 가르친 선생과는 다른 의견이었고 어느 쪽이 맞다는 확신은 없지만, 콩쿠르 심사위원들이 어떤 점에 주목하고, 어떻게 다르게 보는지를 알게 돼 큰 도움이 됐다. 다른 참가자들의 연주 수준도 높아서 놀랐는데, 콩쿠르의 수준과 권위가 한층 높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콩쿠르를 경쟁의 자리를 넘어 특별한 배움의 장으로 만든 자리였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오늘날 ‘문화예술의 옹호자’로 칭송받는 코시모 메디치(1389∼1464)는 어느 모로 보나 헛된 곳에 돈을 쓸 인물이 아니었다. 가문에서 두 번째로 1434년 피렌체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지만 그의 핏줄에는 처음 모직물 거래로, 이어 은행업으로 실속 있게 부를 축적한 상인 가문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었다.그의 부친 조반니 디 비치 대에 야심 차게 뛰어든 권력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중세와 르네상스기를 통틀어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도시 대(對) 도시의 투쟁을 겪고 있었다. 피사에 패한 루카는 피사의 위성도시가 되었으며, 기울어 가는 종탑까지 쌓아올리며 위세를 과시했던 피사도 마침내 피렌체에 종속됐다. 도시국가의 모든 자원은 무역과 군비에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됐다. 메디치가는 당대 복식부기의 완성자로도 알려진 가문이었다. 모든 ‘끝자리’가 맞아야 했다. 》 코시모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지배자였다. 마르고 침착한 인상이던 그는 검소한 차림으로 시내를 걸어 다녔고 누구하고나 대화했다. 위세와 오만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부와 영화란 얼마나 덧없는지 집안의 전승 일화를 통해 들었고, 권력이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도시국가들과 가문들의 경쟁으로 알고 있었다. 오직 예술과 학문만이 권력과 돈을 뛰어넘는 영광을 이름으로 남길 수 있었다. 도시와 가문이 소유한 건축물과 예술품은 소유자의 위용을 과시하고 경쟁자에게 경외감을 심어 주는 무형의 방어력이기도 했다. “돈 쓰는 것은 버는 것보다 훨씬 큰 즐거움을 안겨 준다”는 코시모의 말은 후손들에게 전승됐다. 예술가와 학자에게 아낌없이 돈을 쾌척한다는 얘기는 곧 신용이었다. 알프스 너머의 귀족들도 이 말을 듣고 메디치 은행에 돈을 맡겼다. 피렌체의 시민들도 이 가문이 도시에 최고의 영광과 자부심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알았고 지지로 보답했다. 메디치의 지배자들은 늘 당대에서 가문이 끝날 것을 염려했지만 그들의 권력은 약 350년을 지속했다. 그 사이 네 명의 교황과 두 명의 프랑스 왕비가 이 가문에서 나왔다. 코시모 메디치는 전 유럽과 오스만튀르크에까지 사람을 파견해 문헌을 수집했다. 그리스 로마 문헌과 성서 관련 문헌을 포함한 고대 사본이 1만 점 이상, 파피루스 사본도 2500점에 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피렌체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그는 플라톤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세웠으며, 조각가 도나텔로와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를 초청해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평등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브루넬레스키가 완성한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은 당대의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건축사의 기념비로 남았다. 코시모의 병약한 아들에 이어 도시의 지배권은 1469년 손자 로렌초(1449∼1492)에게 넘어갔다. ‘위대한 로렌초’로 불린, 탁월한 지배자요 경영자였다. 경쟁 도시들에 대한 세심한 균형 외교로 피렌체가 북이탈리아의 균형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인문적 교양 덕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라는 세 큰 별이 그의 후원을 받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당대 이 도시는 유럽과 나아가 세계의 문화 수도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발전한 ‘발레’는 카테리나 데메디치(1519∼1589)가 1533년 프랑스 왕세자빈이 되면서 프랑스 궁정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같은 세기 말 피렌체 지식인들이 창안한 새 장르 ‘오페라’는 4세기를 넘어 음악과 연극, 미술, 건축에 이르기까지 유럽 예술을 규정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을 만나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메디치 가문이 돼 주시고 문화예술 분야의 투자와 지원을 확대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메디치 가문은 공상가가 아닌 현실주의자였다. 먼저 꿈과 이상을 자신들의 행복의 원천으로 삼았고, 이어 이를 시민들 공통의 재산으로 만들었으며, 나아가 고품격의 ‘브랜드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어 효율적으로 재투자되는지 꼼꼼히 계산하고 실행한 능력 있는 조직이었다. 효율화와 수많은 경쟁 속에서 ‘행복의 선순환’을 잃어 가는 사회. 고성장의 한계점에서 창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고민하는 한국, 이 시대가 오늘 이곳에서의 메디치 가문을 찾는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지난달 21, 24,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 객석에서는 예전에 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LG와 함께하는 11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참가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전세계에서 온 심사위원들로부터 특별한 ‘멘토링’을 받는 자리를 가진 것입니다. 이 사흘은 각각 1·2차 예선과 준결선 참가자의 당락이 가려진 날입니다. 다음 회 경연에 진출하지 못한 연주자들만 이고리 오짐(러시아), 조엘 스미르노프(미국) 등 연주가와 교육가로 이름 높은 심사위원 11명으로부터 그동안의 연주에 대한 평가와 충고를 들었습니다. 의욕과 기대 속에 참가한 콩쿠르에서 목표 도달에 실패한 저녁이지만, 이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의 표정이 마냥 어둡지는 않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명교사들로부터 유익한 충고를 듣게 되었다는 설렘도 느껴졌습니다. 심사위원들은 “한층 ‘노래하는’ 표현을 익혔으면 좋겠다”라는 전반적인 충고부터 “주제가 처음 나올 때는 네가 사용한 보윙(활긋기) 방향이 좋아. 하지만 두 번째는 바꾸었으면 좋았겠지. 예를 들어…”하면서 직접 팔로 보윙 시범을 보이며 입으로 바이올린 선율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올해 처음 도입된 이 자리가 크게 유익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적의 한 참가자는 “나를 가르친 선생과는 다른 의견이었고 어느 쪽이 맞다는 확신은 없지만, 콩쿠르 심사위원들이 어떤 점에 주목하고, 어떻게 다르게 보는지를 알게 돼 큰 도움이 됐다. 다른 참가자들의 연주 수준도 높아서 놀랐는데, 콩쿠르의 수준과 권위가 한층 높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콩쿠르를 경쟁의 자리를 넘어 특별한 배움의 자리로 만든 자리였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지난주 수요일부터 나흘 동안 매일 파가니니(사진)의 바이올린 독주곡 ‘24개의 카프리스(광시곡)’를 들었습니다. ‘LG와 함께하는 제11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가 올해 바이올린 부문으로 열리고 있는데, 1차 예선 과제곡 중 ‘24개의 카프리스 중 두 곡(연주자가 임의 선택)’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경연에 참가한 연주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곡은 마지막 곡인 24번입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온갖 어려운 기교를 이 곡에 집어넣었습니다. 형식상으로도 ‘기교 자랑’을 하기 좋게 ‘주제와 변주곡’ 형식을 택했는데, 온갖 기술적 도전이 이어지는 변주부와 달리 주제는 친근하고 외우기 쉽습니다. 한번 들으면 “아∼ 이 선율이군” 하실 겁니다. 원곡인 카프리스도 유명하지만, 후대의 많은 음악가들도 이 주제를 따다가 자기 나름대로 편곡해 새로운 작품으로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 작곡가들의 면면도 ‘으리으리’합니다. 브람스는 이 주제에 28개의 변주를 붙인 피아노곡 ‘파가니니 변주곡’을 썼습니다. ‘피아노의 귀신’으로 불렸던 리스트도 이 주제를 사용한 ‘파가니니 대연습곡’을 남겼습니다. 라흐마니노프도 피아노와 관현악이 협연하는 ‘파가니니 광시곡’을 썼습니다. 20세기에도 블라허, 리버만, 루토스와프스키, 시마노프스키 등의 작곡 명인이 이 주제를 사용해 변주곡과 협주곡 등을 썼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스타인,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 등도 이 주제를 변주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주제는 대중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베니 굿맨, 잉베이 말름스틴, 조 스텀프, 헬로윈 등이 이 선율을 자신의 음악에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인기 음악게임에도 이 선율이 사용됐습니다. 몇 년 전 LG OLED TV 광고에도 이 선율이 쓰여 이탈리아 바이올린 같은 ‘생생한 컬러’를 강조하는 데 한몫했습니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강력한 유전자가 생명체를 통해 퍼져 나가는 것처럼, 마음에 쏙 들어오는 책 구절이나 매력적인 선율과 같은 강력한 ‘문화적 유전자’도 계속 복제되어 퍼져 나간다”고 말했습니다. 파가니니가 카프리스 24번에 썼던 주제는 그런 강력한 문화적 유전자로 들기 좋은 사례이겠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지난 주 수요일부터 나흘 동안 매일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독주곡 ‘24개의 카프리스(광시곡)’을 들었습니다. ‘LG와 함께하는 제11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가 올해 바이올린 부문으로 열리고 있는데, 1차 예선 과제곡 중 ‘24개의 카프리스 중 두 곡(연주자가 임의선택)’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경연에 참가한 연주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곡은 마지막 곡인 24번입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온갖 어려운 기교를 이 곡에 집어넣었습니다. 형식상으로도 ‘기교 자랑’을 하기 좋게 ‘주제와 변주곡’ 형식을 택했는데, 온갖 기술적 도전이 이어지는 변주부와 달리 주제는 친근하고 외우기 쉽습니다. 한번 들으면 “아~ 이 선율이군” 하실 겁니다. 원곡인 카프리스도 유명하지만, 후대의 많은 음악가들도 이 주제를 따다가 자기 나름대로 편곡해 새로운 작품으로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 작곡가들의 면면도 ‘으리으리’합니다. 브람스는 이 주제에 28개의 변주를 붙인 피아노곡 ‘파가니니 변주곡’을 썼습니다. ‘피아노의 귀신’으로 불렸던 리스트도 이 주제를 사용한 ‘파가니니 대연습곡’을 남겼습니다. 라흐마니노프도 피아노와 관현악이 협연하는 ‘파가니니 광시곡’을 썼습니다. 20세기에도 블라허, 리버만, 루토스와프스키, 시마노프스키 등의 작곡 명인이 이 주제를 사용해 변주곡과 협주곡 등을 썼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스타인, 피아니스트 파질 세이 등도 이 주제를 변주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주제는 대중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베니굿맨, 잉베이 맘스틴, 조 스텀프, 핼로윈 등이 이 선율을 자신의 음악에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인기 음악게임에 도 이 선율이 사용됐습니다. 몇 년 전 LG OLED TV 광고에도 이 선율이 쓰여 이탈리아 바이올린 같은 ‘생생한 컬러’를 강조하는데 한 몫 했습니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강력한 유전자가 생명체를 통해 퍼져나가는 것처럼, 마음에 쏙 들어오는 책 구절이나 매력적인 선율과 같은 강력한 ‘문화적 유전자’도 계속 복제되어 퍼져나간다”고 말했습니다. 파가니니가 카프리스 24번에 썼던 주제는 그런 강력한 문화적 유전자로 들기 좋은 사례이겠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맑은 것도 아니고, 흐린 것도 아니고. 따뜻해진 것도 아니고, 한겨울처럼 추운 것도 아니고. 매년 이 계절은 희뿌연 마음의 혼돈을 불러옵니다. 그렇지만 봄은 분명 문턱에 있습니다. 이런 때 저는 두 종류의 새를 떠올립니다. 우연히 둘 다 영국 새입니다. 작곡가 랠프 본윌리엄스(1872∼1958)의 ‘종달새의 비상’과 프레드릭 딜리어스(1862∼1934)의 ‘봄날 뻐꾸기의 첫 울음소리를 듣다’입니다. 본윌리엄스의 곡은 김연아의 2006∼2007시즌 프리스케이팅 배경음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기도 하죠. 두 곡의 악상은 다르면서도 어딘가 비슷합니다. 부유하는 듯한, 꿈꾸는 것 같으면서 음울하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미소 짓는 것 같지도 않은 이른 봄의 대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긴 겨울을 무사히 넘긴 어린 새들은 새봄을 맞아 비행을 연습하고, 성숙한 새들은 짝을 찾아 노래하겠죠. 이 두 작품의 몽롱한 분위기는 같은 시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들인 드뷔시와 라벨의 작품을 떠올리게 합니다. 본윌리엄스나 딜리어스가 ‘인상주의’ 작곡가로 분류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관현악이 가진 희뿌연 느낌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인상주의라면 음악보다 모네나 마네의 프랑스 회화를 먼저 떠올리게 되죠. 그런데 이들의 선조격인 화가는 영국에서 먼저 태어났습니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입니다. 빛의 효과를 중시해 윤곽선을 흐리게 하고 안료를 중첩시켜서 몽롱한 효과를 낸 그의 그림은 이후 출현하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모네도 그의 작품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연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어느 해보다 활짝 피어날 올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월 30일부터 인상주의 화가들이 활동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을 여행하기 때문이죠. 노르망디로 가기 전에 런던에서는 터너가 그린 빛과 몽롱함의 효과에 취해보고자 합니다. ‘유럽 모던 인상파의 고향 영국·프랑스-고흐 모네 터너의 아틀리에를 갑니다’ 여행입니다. 함께 가실 분? tourdonga.com유윤종 gustav@donga.com}
맑은 것도 아니고, 흐린 것도 아니고. 따뜻해진 것도 아니고, 한겨울처럼 추운 것도 아니고. 매년 이 계절은 희뿌연 마음의 혼돈을 불러옵니다. 그렇지만 봄은 분명 문턱에 있습니다. 이런 때 저는 두 종류의 새를 떠올립니다. 우연히 둘 다 영국 새입니다. 작곡가 랄프 본윌리엄스(1872~1958)의 ‘종달새의 비상’과 프레데릭 딜리어스(1862~1934)의 ‘봄날 뻐꾸기의 첫 울음소리를 듣다’입니다. 본윌리엄스의 곡은 김연아의 2006~2007시즌 프리스케이팅 배경음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기도 하죠. 두 곡의 악상은 다르면서도 어딘가 비슷합니다. 부유하는 듯한, 꿈꾸는 것 같으면서 음울하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미소짓는 것 같지도 않은 이른 봄의 대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긴 겨울을 무사히 넘긴 어린 새들은 새봄을 맞아 비행을 연습하고, 성숙한 새들은 짝을 찾아 노래하겠죠. 이 두 작품의 몽롱한 분위기는 같은 시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들인 드뷔시와 라벨의 작품을 떠올리게 합니다. 본윌리엄스나 딜리어스가 ‘인상주의’ 작곡가로 분류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관현악이 가진 희뿌연 느낌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인상주의라면 음악보다 모네나 마네의 프랑스 회화를 먼저 떠올리게 되죠. 그런데 이들의 선조격인 화가는 영국에서 먼저 태어났습니다. 조세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입니다. 빛의 효과에 중시해 윤곽선을 흐리게 하고 안료를 중첩시켜서 몽롱한 효과를 낸 그의 그림은 이후 출현하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모네도 그의 작품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연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어느 해보다 활짝 피어날 올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월 30일부터 인상주의 화가들이 활동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을 여행하기 때문이죠. 노르망디로 가기 전에 런던에서는 터너가 그린 빛과 몽롱함의 효과에 취해보고자 합니다. ‘유럽 모던 인상파의 고향 영국/프랑스-고흐 모네 터너의 아틀리에를 갑니다’ 여행입니다. 함께 가실 분? tourdonga.com유윤종 gustav@donga.com}

저는 합창부가 유명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강당에서 우렁찬 합창으로 부르던 노래를 때로는 합창부 친구들 네 명이 교실에서 중창으로 불렀습니다. 한 파트를 여러 명이 부르던 노래를 파트마다 한 명이 부르니 웅장한 맛은 덜했지만 깔끔하니 나름의 색다른 묘미가 느껴졌습니다. 이런 것을 ‘소노리티(sonority)가 다르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말로 ‘울림’이라고 할까요. 소리의 크기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독일에서는 ‘하모니무지크(Harmoniemusik)’라는 연주 형식이 유행했습니다. 대체로 오중주 정도의 목관앙상블로 연주하는 실내악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하모니무지크를 위한 새 음악들을 창작했고, 점차 교향곡과 같이 편성이 큰 음악을 하모니무지크용으로 편곡해서 듣는 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오디오가 없던 시절에 귀족이나 부호가 거실에서 교향곡을 듣는 색다른 경험도 멋졌지만, 대곡을 큰 편성으로 듣는 것과 달리 각 파트를 명료하게 듣는 것도 웅장함 못지않은 매력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독일의 ‘MDG’처럼 하모니무지크로 연주되던 레퍼토리를 전문으로 발굴하는 음반사도 생겼습니다. 하모니무지크와는 다른 일이지만, 오늘날 전 세계 콘서트홀을 장악하고 있는 구스타프 말러(사진)의 교향곡도 실내악단용으로 편성을 줄여 잘 연주됩니다. 그 계기는 아널드 쇤베르크가 편곡한 말러의 ‘대지의 노래’였습니다. 말러는 이전의 작곡가들에 비해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사용했지만, 그 울림은 비교적 실내악적으로 ‘깔끔’한 편이었습니다. 쇤베르크는 이 점에 착안해 더 간소하게 울리는 말러를 선보였고 이것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입니다. 이후 다른 음악가들도 쇤베르크의 방법과 비슷하게 말러의 교향곡들을 간소한 편성으로 편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민간 오케스트라인 안디무지크필하모니아가 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연주에 이어 13일엔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4번을 실내악 버전으로 선보이는군요. 국내 음악가가 편곡한 악보를 사용한다니 한층 과감한 음향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저는 합창부가 유명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강당에서 우렁찬 합창으로 부르던 노래를 때로는 합창부 친구들 네 명이 교실에서 중창으로 불렀습니다. 한 파트를 여러 명이 부르던 노래를 파트마다 한 명이 부르니 웅장한 맛은 덜했지만 깔끔하니 나름의 색다른 묘미가 느껴졌습니다. 이런 것을 ‘소노리티(sonority)가 다르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말로 ‘울림’이라고 할까요. 소리의 크기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독일에서는 ‘하모니무지크(Harmoniemusik)’라는 연주 형식이 유행했습니다. 대체로 오중주 정도의 목관앙상블로 연주하는 실내악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하모니무지크를 위한 새 음악들을 창작했고, 점차 교향곡과 같이 편성이 큰 음악을 하모니무지크용으로 편곡해서 듣는 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오디오가 없던 시절에 귀족이나 부호가 거실에서 교향곡을 듣는 색다른 경험도 멋졌지만, 대곡을 큰 편성으로 듣는 것과 달리 각 파트를 명료하게 듣는 것도 웅장함 못지않은 매력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독일의 ‘MDG’처럼 하모니무지크로 연주되던 레퍼토리를 전문으로 발굴하는 음반사도 생겼습니다. 하모니무지크와는 다른 일이지만, 오늘날 전 세계 콘서트홀을 장악하고 있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도 실내악단용으로 편성을 줄여 잘 연주됩니다. 그 계기는 아놀드 쇤베르크가 편곡한 말러의 ‘대지의 노래’였습니다. 말러는 이전의 작곡가들에 비해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사용했지만, 그 울림은 비교적 실내악적으로 ‘깔끔’한 편이었습니다. 쇤베르크는 이 점에 착안해 더 간소하게 울리는 말러를 선보였고 이것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입니다. 이후 다른 음악가들도 쇤베르크의 방법과 비슷하게 말러의 교향곡들을 간소한 편성으로 편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민간오케스트라인 안디무지크필하모니아가 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연주에 이어 13일엔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4번을 실내악 버전으로 선보이는군요. 국내 음악가가 편곡한 악보를 사용한다니 한층 과감한 음향을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도는 도마도(토마토), 레는 레몬주스에, 미는 밀감을 넣어, 파는 팥을 만들어….” 어릴 때 친구들과 부르던 ‘도레미송’입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도레미송’을 우리말로 번안한 것이죠. 전학 온 친구가 다른 가사로 불러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마리아 수녀가 아이들에게 계이름을 가르치기 위해 가사를 붙이는 걸로 나옵니다. “도는 암사슴(doe), 레는 햇살(ray)…” 실제 마리아 수녀가 이 가사를 사용했을 리는 없죠. ‘doe’ ‘ray’는 오스트리아에서 쓰는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니까요. 마리아 수녀가 아이들에게 계이름을 가르쳤는지는 사실 의문입니다. 어린이들이 계이름으로 노래하는 것은 영화 배경인 1930년대 유럽에서 매우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헝가리 작곡가인 코다이 졸탄(사진)은 노래 선율에 가사 대신 계이름을 붙여 부르면 음감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1935년부터 음악교육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다이는 영화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도레미 노래’를 만들기도 했고, 계이름을 손으로 표시하는 ‘계이름 손기호(記號)’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작곡가로서 그는 헝가리 민담을 관현악으로 표현한 ‘하리 야노스’ 모음곡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업적은 음악교육 분야에서 한층 뚜렷했습니다. 음악교육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긴 작곡가로는 코다이 외에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로 유명한 카를 오르프가 있습니다. 오르프는 특히 박자교육을 강조해 캐스터네츠, 탬버린과 같은 전통 타악기를 음악교육에 활용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코다이와 오르프가 개발한 어린이 음악교육 방법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이름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계이름은 20세기 인물인 코다이나 오르프보다 훨씬 오래됐습니다. 11세기 이탈리아 수도사 겸 작곡가였던 귀도 다레초는 마디마다 첫 음이 한 음씩 올라가는 라틴어 성가에 착안해 해당 음의 가사를 따서 웃(Ut)-레-미-파-솔-라로 이어지는 6음의 계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이후에 ‘웃’은 발음하기 쉬운 ‘도’로 바뀌었고 ‘시(티)’가 추가되었죠. 코다이의 48번째 기일인 3월 6일을 앞두고 그가 강조했던 계이름과 음악교육에서의 업적을 돌아보았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저는 러시아 혁명 전까지 200년 이상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 있습니다. 21일에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안나 카레니나’를 관람하며 이 문화대국의 깊은 전통을 실감했습니다. 톨스토이의 대하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알지만 발레는 잘 모르셨다고요? 이번에 본 작품은 생존 러시아 작곡 거장 셰드린의 음악에 알렉세이 라트만스키가 2004년 안무한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이 작품도 멋졌지만, 저는 공연을 보면서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보리스 예이프만이 안무한 2005년 작품 ‘안나 카레니나’가 머릿속에 겹쳐졌습니다. 물론 차이콥스키는 안나 카레니나라는 스토리에 맞춰 발레곡을 쓰지 않았습니다. 교향곡 ‘만프레드’, ‘햄릿’ 서곡, 교향곡 6번 ‘비창’을 비롯한 차이콥스키의 명선율들을 편집한 발레입니다. ‘비창’은 알아도 ‘만프레드’ 교향곡이나 ‘햄릿’ 서곡은 많은 분들에게 생소할 겁니다. ‘만프레드’는 영국 문호 바이런의 시를 교향곡으로 만든 작품이고,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쓴 관현악곡입니다. 그런데 ‘만프레드’의 3년 뒤 ‘햄릿’을 작곡하면서 차이콥스키는 노트에 ‘만프레드처럼 들리지 않게’라고 써두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햄릿’과 ‘만프레드’의 분위기는 많이 비슷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돈키호테와 비교되는 ‘우유부단’의 주인공으로서 햄릿의 프로필은 널리 알려져 있죠. 동시에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회의’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알프스를 방랑하는 만프레드도 ‘햄릿적’인 주인공입니다. 차이콥스키 자신도 음악사상 가장 심한 자기 회의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의 편지와 일기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재능이 없다” “지루하다” “가치 없다”는 가혹한 평가가 가득합니다. 결국 ‘만프레드’와 ‘햄릿’ 모두 차이콥스키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심각한 자기 회의와 자기혐오는 그를 이끌어가는 동력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형편없이 게으르니까 스스로를 얽어매야 한다”며 매일의 작업시간표를 만들어 작곡시간을 강제했고, 그 결과 수많은 멋진 작품이 탄생했으니까요.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영혼을 피폐해질 정도로 죄어 인류에게 풍성한 선물을 주었다고 할까요.유윤종 gustav@donga.com}

1848∼1849년 전 유럽을 뒤흔든 시민혁명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민주화나 자치권 부여 같은 요구사항이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고, 유럽의 정치적 지형에도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겉만 요란했던’ 혁명은 그보다 반세기 전의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반세기 후 제1차 세계대전과 공산혁명보다 더 많은 작곡가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시기가 마침 낭만주의 음악의 융성기로 많은 작곡 거장이 음악 혼을 꽃피우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찬찬히 살펴볼까요. 오스트리아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이탈리아 혁명을 진압한 보수파 장군 라데츠키를 찬양하는 ‘라데츠키 행진곡’을 썼습니다. 그의 아들인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진보파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가를 연주하다 수배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슈만의 부인이자 명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는 연주여행 후 집으로 돌아가다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히자 길을 막는 사람들을 호되게 꾸짖고 통과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혁명으로 운명이 크게 바뀐 사람으로는 바그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수 왕정의 체포영장이 발부돼 파리로, 취리히로 도주 생활을 했고 12년 동안 독일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한편 오스트리아의 억압 속에서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에서는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 등 애국적인 소재를 오페라로 만들었던 베르디가 애국의 영웅으로 받들어지면서 한껏 인기를 높였습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원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던 체코인들에게 혁명의 열기는 한층 높았습니다.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는 프라하의 카를 다리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혁명이 좌절된 뒤 그는 급진파로 찍혀 설 자리가 없어졌고 스웨덴의 예테보리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 했습니다. 오늘날엔 그의 동상이 카를 다리 옆에 서 있습니다. 정치적 지형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작곡가들의 삶에 뚜렷한 선을 그은 혁명. 그 기폭제가 되었던 프랑스 파리의 2월혁명이 1848년 2월 22∼24일 일어났습니다. 이맘때면 바그너나 스메타나의 명선율을 듣고 싶어지는 이유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