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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사진)가 30일부터 3월 8일까지 중국 베이징(北京) ‘진르(今日)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인 진르미술관에서 한국 화가가 개인전을 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해 7월 국빈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서울대에서 강연한 것이 계기가 돼 성사됐다. 당시 서울대 측은 강연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김 교수가 그린 ‘서울대 정문’ 그림을 선물로 건넸다. 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시 주석에게 선물한 그림을 계기로 미술관 측에서 전시회 개최를 제의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김 교수가 서울대에 재직하면서 30여 년간 그려온 ‘생명’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회 이름도 ‘김병종의 생명지가(生命之歌)’다. 김 교수가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생명 시리즈로 내놓은 작품 80여 점이 전시된다. 김 교수가 전시회를 여는 진르미술관은 장샤오강(張曉剛), 쩡판즈(曾梵志), 웨민쥔(岳敏君) 등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나 서구의 저명 화가들이 전시를 기획하는 곳이다. 김 교수는 그동안 베이징 비엔날레, 베이징 아트페어, 상하이 순회전시회 등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중국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기는 처음이다. 김 교수는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한중미술협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해 부회장을 맡으면서 한중 미술 교류에 기여해 왔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23일 오후 해가 어둑해 질 무렵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 밑 결승점을 바로 앞두고 데이비드 게팅(39)은 자신의 발가락 일부가 동상 끝에 떨어져 나가고 아킬레스건이 모두 망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무릎도 통증이 심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며칠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이날 ‘7일 이내, 7개 대륙에서 7번의 풀코스’(7-7-7코스)를 달려야 하는 ‘2015 월드 마라톤 챌린저’에서 우승하는 순간 참았던 고통이 성취감과 함께 밀려왔다. 수의사로 일하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게팅은 7일 동안 59시간 비행기를 탔고, 3만8000km를 이동했으며 295.4km는 두 발로 뛰었다. 게팅의 기록은 ‘7일 25시간 36분 3초’. 이 대회 기록은 대회를 주최하는 단체 대표인 리처드 도노반의 ‘4일 22시간 3분’. 마라토너들이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면 24시간 이내에는 다시 뛰기 어렵다고 하지만 ‘챌린지’는 ‘7-7-7’이 필수로 참가 자체만으로도 괴력을 인정받는다. 첫 레이스는 남극 ‘유니언 빙하’. 게팅은 혹한과 눈보라 속에도 3시간 21분35초에 달려 구간 2위인 호주의 더글러스 윌슨을 30분 이상 앞섰다. 그는 발가락 일부가 동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고도 뛰었다. 남극 마라톤 완주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으로 직감했다. 그는 “주변 풍경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첫 구간 주파를 마치고 1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칠레 푼타 아레나스 해안에서 두 번째 코스에 도전했다. 두 구간을 마쳤을 때 그는 40분가량을 다른 11명의 참가자들보다 앞서고 있었다. 미국 마이애미 구간에서는 수면 부족과 피로 등으로 윌슨이 게팅을 앞섰다. 이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게팅이 윌슨을 15초 앞섰으나 비가 계속 내린 모로코 마라케츠에서는 다시 선두를 내줬다. 게팅과 윌슨은 모로코에서는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새벽 1시에 출발했다. 둘은 경쟁자이면서 어둠과 고통을 함께 하는 동료였다. 게팅은 “우리 중 누가 없었다면 모로코 구간은 완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고 격려하면서 뛰었다”고 말했다. 윌슨이 19초를 앞섰다. 두바이에서는 아예 서로가 서로를 끌며 3시간 43분6초의 같은 기록으로 나란히 구간 결승점을 넘었다. 게팅은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는 경쟁자였으나 점차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같은 팀이라는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서로 도왔다”고 말했다. 피로와 시차 적응, 수면 부족 그리고 섭씨 50도 안팎의 온도차만이 완주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쟁자이자 적이었다. ‘극지 달리기 어드벤처’라는 단체가 주관해 매년 열리는 ‘챌린지’는 참가비가 3만2000 유로(약 3900만원)로 참가 인원은 12명으로 제한된다. 참가비에는 대회를 전후한 숙소와 식사, 비즈니스 항공권, 비상시 긴급 서비스 제공료가 포함된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이 올해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을 맞아 외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열병식 행사를 갖겠다고 밝혔다. 23일 홍콩 원후이(文匯)보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푸정화(傅政華) 베이징 시 공안국장 겸 공안부 부부장(차관급)은 전날 열린 베이징 양회(兩會·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자문위원회에 출석해 “중국 역사상 외국 수뇌부가 참석하는 첫 열병식이 될 것”이라며 이 같은 계획을 공개했다. 이번 열병식은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의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국가기념일인 9월 3일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 부부장은 어느 나라 정상이 초청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우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참석이 유력하다. 러시아가 올해 5월 모스크바에서 개최하는 2차 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그동안 북한의 후견국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역시 초청 대상 정상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중국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며 “중국은 올해 전승기념 행사를 외국 정상들도 참석하는 국제 행사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조숭호 기자}

한국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국적 이탈·상실자)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까지 한국 국적을 버린 사람은 1만8279명으로 한국 국적을 신청한 사람(1만5488명)보다 많았다.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이미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한국에서 그나마 있던 사람들마저 떠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재외동포는 한국에 자산이 될 수도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동포 수도 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을 떠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한국 사람이 모두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민족의 이동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전 세계로 한국 사람이 뻗어가고, 또 전 세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는데도 이들에 대한 정책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조선족’을 향한 편향된 시각도 한몫한다. 외교부는 올해 목표로 재외동포로 구성된 글로벌 한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통일 준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려면 먼저 동포들이 한국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한국을 위해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재외동포 700만 명 시대. ‘한국 사람(한민족)’의 외연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국경 없는 세상이 돼버린 지금, 재외동포는 어떤 존재이며 한국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짚어봤다. ▼ “신임장 없지만 우리도 외교관”… 지구촌 176개국 진출 ▼‘무조건 미국’에서 변하는 이주 트렌드 지난해 한국 국적을 버린 사람은 한국 국적을 신청한 사람을 크게 웃돌았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적 포기자(국적 이탈·상실자)는 1만8279명. 국적 취득(귀화, 국적 회복) 신청자 1만5488명보다 2791명 많았다. 2009년 이후 한국 국적 신청자가 더 많은 것이 추세였다. 2010년 5월 개정 국적법이 적용돼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복수국적이 가능해지면서부터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국적 순유출’로 나타나면서 한국 이탈로 추세가 돌아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적을 상실한 사람의 목적지는 미국(1만548명), 캐나다(3332명), 일본(1653명), 호주(1145명) 순이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국적을 왜 버리는지 사유를 적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재외공관에 ‘해외이주신고서’를 내면서 쓴 이주 형태를 보면 전통적 유형인 ‘연고이주’(친인척 소개로 이주) 수는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464명이던 연고이주는 이듬해 536명을 정점으로 301명(2011년), 225명(2012년), 173명(2013년)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반면 취업이주와 사업이주, 기타이주로 종류가 다양해졌다.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주 대상국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 출신으로 해외에 살다가 그곳에 뿌리를 내리겠다고 결심한 사람(현지 이주자)은 미국이 2946명이었다. 반면 일본은 3266명으로 최근 5년 사이 처음으로 미국을 앞질렀다. 최근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의외의 현상이다. 또 ‘기타’로 분류된 국가에서 현지 이주자로 신고한 사람도 1112명으로 2009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로 동포들이 뻗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위상 커진 한민족, 조직력은 걸음마 지금까지 해외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분포는 특이했다. 미·중·일·러 주변 4강에 전체 재외동포의 대부분(86.3%)이 몰려 있었기 때문. 이들은 식민지배와 냉전의 질곡 속에 못사는 2등 나라, 분단국 출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1952년 18개국 56만8000명이던 재외동포가 2012년에는 176개국 701만 명으로까지 숫자가 늘었고 사회적 위상도 인적 자원으로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올라가고 있다.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은 260여만 명인 반면 체류국 국적을 취득한 ‘시민권자’는 440여만 명으로 2배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한인 정치인 17명이 당선됐으며 김용 세계은행 총재,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국무부 부차관보 등 정관계 진출도 크게 늘었다. 캐서린 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Korean chair)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일본 싱크탱크와 학계에 포진한 한국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동해 병기법안을 통과시키고 각지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등 한국에 유리하도록 여론을 돌려세운 것도 동포의 힘이었다. 문제는 동포들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체계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유대인 로비단체 ‘공공정책협의회(AIPAC)’가 짜임새 있는 활동과 압도적인 영향력으로 미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반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는 “미국 의회가 움직이면 백악관이 움직이고, 백악관이 나서면 행정부가 변한다”며 풀뿌리부터 여론주도층까지 단계별 공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포들에 대한 정책도 컨트롤타워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조직법상 재외동포 정책은 외교부 장관이 종합 수립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오는 ‘재한(在韓)’동포가 크게 늘고 있는데도 외교부는 이에 대한 정책 권한이 없다. 총리실 소속 ‘재외동포정책위원회’가 동포정책을 심의·조정하도록 돼 있으나 실제로는 법무부(출입국) 고용부(노무) 보건복지부(입양) 선거관리위(재외선거) 병무청(병역) 등으로 업무가 흩어져 있다. 1997년 설립된 재외동포재단을 동포청(廳) 또는 동포위원회로 키우자는 논의도 말만 무성할 뿐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한국이 필요로 하는 ‘재한동포들’ 지난해 1∼11월 재외동포 비자(F-4)를 받아 입국한 사람은 32만2833명.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수다. 전년 같은 기간(25만7752명) 대비 125%로 늘었다.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영주(F-5), 방문동거(F-1) 비자를 받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 국적 재외동포를 모두 합치면 70만1985명에 달한다. 이처럼 ‘재한동포’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도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7년 중국동포 방문취업제(쿼터 30만 명)를 도입하면서 획기적으로 입국 문호를 넓혔다. 귀화와 재외동포 비자 발급 기준도 완화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동포의 귀화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외국인력 유치를 위해 재외동포의 취업 제한을 추가로 완화하기로 했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데 동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당국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인구정책연구본부장은 “지금처럼 저출산이 계속되면 2050년에는 군 병력이 현재보다 12만3000명 부족해질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한국 체류 동포 86%는 중국 출신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중국 국적 동포는 60만4553명으로 전체 외국 국적 동포의 86%에 달한다. 사실상 대부분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렇지만 중국동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이중적이다. 노동력 부족 상황인 한국 사회는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에서 그들을 필요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백안시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오원춘, 박춘봉 등 최근 입길에 오른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공교롭게도 조선족으로 밝혀지면서 인식이 더욱 나빠졌다. 김형식 전 서울시의회 의원 살인청부 사건의 주범도 조선족 팽모 씨였다. ‘조선족 아줌마가 없으면 서울시내 음식점 중 80%는 문 닫아야 한다’는 우스개가 무색하게 중국동포의 강력범죄 뉴스가 한번 뜨면 직업소개소에는 “조선족은 무서워서 못 쓰겠다. 차라리 돈도 적게 요구하는 동남아나 중동 사람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나온다고 한다.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과거 있었던 중국동포의 페스카마호 사건(선상 반란 살인), 인신매매 소재 영화 등을 거론하며 “추방하라”, “일자리를 뺏으라” 등 폄훼하는 글로 도배되는 게 현실이다. ‘조선족’은 한국 3D 업종에만 종사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한국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해 취업하거나, 석·박사 과정으로 진학하기 위해 제3국으로 떠나거나, 한국 경험을 토대로 중국에서 창업을 하는 등 종사하는 업종과 진로 형태가 다양하다. 김봉섭 재외동포재단 교육지원부장은 “미국 내 조선족이 10만 명을 웃돌고 일본에도 동북 3성 출신 학생이 5만 명에 육박하는 등 중국동포들의 직업군과 거주지가 여러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미 한민족도 초국경사회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공부하고 생활은 미국에서 하는 ‘순환이주’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동포, 의무는 없이 권리만 누린다? 다른 지역 출신들도 중국동포보다 사정이 조금 나을 뿐 비난과 질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납세, 정치 참여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다. 할 일(의무)은 하지 않고 혜택(권리)만 누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미동포인 가수 유승준 씨의 병역 기피 사건이나, 1600억 원대 세금을 부과받았다가 추징 면제된 ‘구리왕’ 차모 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같은 복지 논란까지 가세했다. 고국이 힘들 땐 외국 생활을 누리다가 선진국 수준에 다다르자 노후 복지혜택을 즐기자는 것 아니냐는 게 비난의 핵심이다. 하지만 재외동포라는 자산의 역량을 끌어내 한국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보면 병역, 납세의 ‘형평성’ 원칙은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국적법상 이중국적인 남성은 만 18세가 되는 해에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병역을 이행하지 않는 한, 38세까지 국적을 이탈할 수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태어난 A 씨는 병역 면제가 목적이라면 38세까지 한국에 안 들어오면 된다. 얼마든지 병역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A 씨는 38세 이전에는 미국·캐나다 사관학교에 입학하거나 공직에 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국 국적을 포기할 방법이 없고 미국 정부는 이중국적자를 미군이나 공무원으로 뽑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병역 자원이 안 될 A 씨라면 병역을 면제하는 게 낫지 않으냐며 수차례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지금까지 모두 기각됐다.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중과세 방지 원칙에 따라 거주지에만 세금을 내면 되지만 실제 ‘거주지’가 어디냐를 두고 과세 당국과 재외동포 사이의 법정 다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 참여도 대승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에 살면서, 한국을 위해 기여한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왜 투표권을 주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해외에 있는 재외동포는 국적을 초월해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집단이다. 이들은 현지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동시에 모국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해야 하는 이중 목표를 갖고 있다. 임채완 전남대 교수(세계디아스포라학회 회장)는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도 그들에게 한국 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모국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전형적 네트워크 정책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다만 모국을 떠난 지 20년이 넘으면 참정권을 제한하는 영국 사례 등을 참고해 제도를 보완할 필요는 있다. 국제관계 석학인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 강연에서 “미국이 인구 13억의 중국보다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전 세계로부터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결집해 중국 한(漢)족보다 창의적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피와 섞여 살면서도 한국의 뿌리를 잊지 않는 재외동포 700만 시대, 한국도 순수성보다 다양성이 창의적인 경쟁력의 토대가 된다는 나이 교수의 말을 곱씹어 볼 때가 됐다. ▼ “차별 당해도 모국은 나 몰라라”… 남몰래 우는 한인들 ▼재일동포 2세인 김민정(가명·44·여·도쿄 거주) 씨는 공문서에 일본식 이름(통명·通名) 대신 한국 이름을 사용한다. 국적도 한국이다. 결혼도 재일동포와 할 정도로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의료보험증은 일본식 이름으로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제가 한국인이란 사실을 알면 한 단계 아래로 봅니다. 혹시 의사가 저를 얕보고 대충 치료하면 안 되잖아요. 한국인이란 사실을 숨기려면 의료보험증에 일본식 이름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재일동포는 약 89만 명. 재일 외국인 중 중국인 다음으로 많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100년이 넘었고 숫자도 많지만 재일동포들의 힘은 아직 약한 편이다. 보이지 않는 차별도 수시로 당하고 있다.재일동포 사회의 성장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 직전 재일 조선인 수는 236만5263명에 달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귀국길에 오르지 못했다. 귀국해도 먹고살기가 막막해서였다. 1947년 외국인등록령에 따라 등록한 재일 조선인은 59만8507명. 이들이 재일동포 사회를 이루는 원류가 됐다. 1945년 10월 ‘재일본조선인연맹’(1955년 5월 재일조선인총연합회로 개명)이 결성됐다. 이 단체가 점차 좌익 성향을 보이자 보수계 인사들은 1946년 10월 ‘재일본조선거류민단’(1948년 10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 개명)을 만들었다. 한때 북한 김일성 정권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1984년까지 재일동포 9만여 명을 북송할 만큼 영향력이 컸던 총련은 냉전 해체와 북한 경제의 와해로 지금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빠졌다. 반면 민단도 신규 단원 등록이 뜸해지고 고령화하면서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임의단체’인 민단을 법인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한편 1980년대 이후 한국 유학생이나 비즈니스맨들이 일본에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했다. 일명 ‘뉴 커머(new comer)’로 불리는 이들은 신오쿠보(新大久保) 일대에 거대 상권을 형성했고 2001년 5월엔 재일본한국인연합회(한인회)라는 단체도 결성했다. 재일동포 사회가 형성된 지 100년 이상 지나면서 일본 내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계에선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 롯데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 빠징꼬 업계 최대 그룹인 마루한의 한창우 회장이 꼽힌다. 정계에서도 일본에 귀화한 박경재(일본명 아라이 쇼스케·新井將敬) 씨와 백진훈(일본명 하쿠 신쿤·白眞勳) 씨가 각각 중의원과 참의원의 의원으로 당선됐다. 학계는 강상중 씨가 재일동포 중 처음으로 국립 도쿄대 교수로 임용돼 화제가 됐다. 이외에도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등 수백 명의 한국인 교수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1960년대 높은 인기를 누렸던 가수인 이춘미(일본명 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 야구선수 장훈 등도 동포 출신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고위 공무원이나 판검사 등 최고위직에 재일동포 출신이 거의 없다. 혹시 있다고 치면 일본에 귀화한 인물이다. 재일동포지만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면서 그들이 동포인지 아닌지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민단의 한 간부는 “재일동포들이 높은 지위로 올라갈수록 독도와 역사인식에 대해 의견을 밝혀야 한다.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일본 땅’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없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재일동포가 일본의 핵심 주류사회에 들어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풀뿌리 정치서 성과 낸 미국 지난해 11월 4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캘리포니아 주 하원에 입성한 재미동포 영 김 의원은 미주 한인의 주류 정치 참여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는 1990년 당시 주 상원의원이던 에드 로이스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을 돕는 것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한인이라는 신분을 약점이 아닌 이점으로 활용해 지역구의 한인 유권자를 관리하고 북한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정책 보좌로 워싱턴 정치권에 이름을 알렸다. 한인사회는 그가 로이스 위원장의 자리를 물려받아 연방 하원까지 진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14년은 미주 한인사회의 정치력이 양적,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한 해로 평가된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 주 의회와 교육위원 등 선출직 공무원 자리에 출마한 한인 후보 25명 가운데 17명이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미국 버지니아 주 상원은 주내 모든 공립학교가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된 교과서로 수업을 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지사의 서명을 거쳐 이 법은 지난해 7월부터 공식 발효됐다. 지명의 단일 표기를 원칙으로 하는 미국 지방자치단체가 동해 병기 원칙을 받아들인 것은 버지니아 한인들의 힘이었다. 지난해 미주 한인들은 정치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첫걸음도 내디뎠다. 지난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미주 한인 풀뿌리 활동 콘퍼런스(KAGC)’가 그것. 해마다 3월 워싱턴 한복판의 컨벤션센터에 수만 명이 운집하는 재미 유대인 로비단체 ‘공공정책협의회(AIPAC)’만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한국판 AIPAC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크다. 고급인력 늘면서 중국 동포 분화 현상 조선족, 조선족 동포, 재중 한인, 재중 동포, 중국 동포, 중국 교포, 연변 동포. 중국 국적을 가진 동포만큼 다양하게 불리는 ‘외국 국적 동포’도 없다. 여러 호칭만큼이나 중국 국적 동포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태도도 다양하다. 1992년 한중 수교 직후에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동포들과 접촉이 먼저 이뤄져 중국 동포 하면 ‘연변 동포’ 또는 ‘연변 조선족’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또 중국 변방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전통 문화를 잊지 않게 하고 경제적으로도 도와야 한다는 정서가 많았다. 반면 초기 한국에 온 동포들이 주로 식당 종업원이나 공장 근로자, 막노동에 종사하면서 ‘중국 동포=3D 종사자’라는 인식을 심었고 지금도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조선족 동포’들이 대륙을 여는 큰 자산이자 우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실제로 수교 20여 년 만에 중국이 한국의 제1 교역국으로 부상하는 데는 동포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접촉이 늘면서 갈등도 늘어나 사기사건 등 불미스러운 일도 없지 않았다. 중국 국적 동포들은 ‘3-3-3’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때 연변 등 동북 3성에 있던 조선족의 3분의 1은 한국, 3분의 1은 산하이관(山海關) 남쪽의 전 중국으로 흩어지고 나머지 3분의 1만 남았다는 것을 말한다. 한중 교역과 인적 교류가 늘고, 한국 정부의 동포에 대한 포용적인 비자 정책 등으로 한국과 중국 국적 동포의 관계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2013년 9월 시작된 ‘재외 동포 비자(F-4)’는 만 60세 이상의 모든 외국 국적 동포와 일정 조건을 갖춘 60세 미만 동포에게 사실상 한국 체류의 길을 활짝 열었다. ‘5년 복수로 2년 연속 체류’가 가능하고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연장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4년 4월부터 발급된 ‘동포 방문 비자(C-3-8)’는 60세 미만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에 발급한 ‘조선족’ 신분만 확인되면 3년 복수 유효로 90일간 체류가 가능해 사실상 한국 방문의 제한을 없앴다. 2013년 말 현재 한국 체류 중국 재외 동포는 45만 명이 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8만7633명에 이른다. 중국 정부의 10년 주기 인구 및 민족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조선족’ 인구가 183만929명으로 30%가량이 한국으로 왔다. ‘3-3-3’으로 중국 재외 동포가 분화한 만큼 이들을 포용하고 한민족의 자산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한국 안팎의 동포 유대 강화 마련해야 최근 주목을 받는 것은 ‘한국 내 중국 국적 동포’들이다. 이들 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 지식을 가진 엘리트 계층이 많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재외 동포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제3세대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의 활동을 밑거름으로 중국으로 돌아가 크고 작은 기업을 일군 사람도 늘고 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을 잇는 전문인으로 활약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한국 체류 중국 국적 동포 중에는 국적을 바꿔 더이상 ‘중국 동포’가 아닌 사람도 늘고 있다. 법적으로는 ‘귀화한 조선족’ ‘돌아온 한국인’이 됐지만 정서적으로 융화하지 못해 다시 중국 국적 환원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동북 3성에 남은 동포들에게 민족 정체성을 보존하고 한국과 유대감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다. 중국이 소수민족을 직접 지원하는 문제를 민감하게 여기는 만큼 ‘세련된 접근법’이 필요하다.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 김도균 영사는 중국 국적 동포와 한국이 보다 발전적으로 공존하는 시스템으로 ‘재정착 순환 구조’를 수립하는 데 한국 정부와 동포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베이징=구자룡 / 워싱턴=신석호 / 도쿄=박형준 특파원}

“40여 년 한국 문학을 연구하면서 지금처럼 흥분되기는 젊어서 신채호 선생을 연구할 때와 박사 학위 논문 준비로 ‘북학파’를 만날 때 이후 3번째입니다.” 중국인들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인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중국 현대 문학과 한국’ 총서 10권을 발간한 김병민 전 연변대 총장(65·사진)은 이렇게 기쁨을 나타냈다. 김 전 총장은 총서를 주중 한국문화원에 기증했다. 김 전 총장은 “식민지 시대 일제의 탄압과 감시 때문에 한반도의 지식인들이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이 중국 문학 작품에 오히려 생생히 담겨 있다는 것에 놀라 작업을 시작했다”며 “중국에는 왜 윤봉길 의사 같은 분이 없는지 개탄하는 중국인들의 시를 보면서 나라 잃은 비통함을 함께 느끼는 역사적 문화적 연대의식을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의 작업은 한중 문화교류의 초석을 다지는 면에서도 의미가 깊다. 우선 한족 학자인 사회과학원 리춘광(李春光) 교수와 연변대 최일 교수, 수원과학대 김재욱 교수 등이 공동으로 참여한 한중 합작품이다. 연변대 ‘과(跨)문화연구중심’ 이사장도 맡고 있는 김 전 총장은 지린(吉林) 성 정부의 지원을 받아 총서 발간을 주도했다. 특히 윤봉길 의사 관련 단편소설 1편, 희곡 3편, 시 3편, 산문 4편 등 11편이 처음 공개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 공원 거사 직전 윤 의사의 인간적인 갈등과 가족에 대한 사랑 등도 곡절하게 담겨 있다. 김 전 총장은 “일부 작품은 중국 사회주의 정부 수립 후 달라진 시대 상황 때문인지 내용이 바뀐 것도 있다. 이번 총서에서는 모두 과거 원문만을 찾아 모았기 때문에 자료적 의미에서도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올해 연봉이 지난해보다 62% 올랐으나 미국 대통령 등 서방 주요국 지도자에 비하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관영 차이나데일리를 인용해 20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의 월급이 7020위안(약 119만원)에서 1만1385위안(약 193만원)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시 주석의 월 소득은 베이징(北京) 거주자 연평균 소득의 두 배에 달한다. 신문은 시 주석의 연봉이 달러화로는 2만2256달러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기본급인 40만 달러의 5.5%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본급 외에도 매년 기본 경비(5만 달러)와 교제비(1만9000달러) 출장비(10만 달러) 등 추가 수당을 받는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 부부는 세금을 빼고 48만1000달러를 소득으로 신고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지도자는 리센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로 220만 싱가포르 달러(약 180만 달러)를 연봉으로 받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6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2억 504만6000원을 받아 처음으로 연봉이 2억원을 넘어섰다. 중국 정부는 공무원 임금을 2006년 이후 동결했으나 시진핑 정부에서 반(反) 부패를 강조하면서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정 부패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서 공무원 봉급 인상을 최근 발표했다. 시 주석 등 최고위층의 급여 내역이 공개되기는 이례적이다. 중국에서 공직자 재산공개가 정치 개혁의 한 화두가 되고 있으나 진전은 되지 않고 있다.베이징=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국가통계국 마젠탕(馬建堂) 국장은 20일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발표하면서 성장 감속에 대한 우려보다는 경제 구조조정에 따른 성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16년 만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세계 2위 경제 규모인 중국 경제 운용이 큰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은 지난해 3분기(7∼9월) 성장률이 7.3%로 떨어지자 목표 달성을 위해 같은 해 11월 이자율을 내리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베이징(北京)의 한 소식통은 “7.4% 성장률도 비록 목표치에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통계를 희망 사항에 맞춘 측면이 읽힌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금융위기 같은 특별한 악재가 없었음에도 목표 달성에 실패해 ‘집권 공산당의 불패 신화’에 흠집을 남기게 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공산당의 리더십은 항상 정확하다고 해왔기 때문에 성장률 저하와 같은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도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고 꼬집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성장률 목표치를 발표한 것은 1985년부터다. 이때 이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1989년과 1998년 두 번이다. 1989년에는 그해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한 데 대해 미국과 유럽 등이 제재를 가한 것이 그 요인이다. 1998년에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이어지면서 한국 태국 등 주변 국가들의 경기 후퇴가 중국에 악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 미국이 ‘리먼 쇼크’에 빠진 가운데서도 목표치 8%를 훨씬 초과한 9.6% 성장을 달성했다. 그 이듬해에는 9.2%의 성장률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세계 경제 성장 엔진임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이어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다만 글로벌 위기의 타격을 줄이고 내수 위주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위주로 한 4조 위안의 내수 자금을 풀었으나 과도하게 풀린 돈 때문에 거품 경제 후유증을 낳았다. 그 영향이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섣불리 과거와 같은 성장 촉진책을 꺼내 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달 20일부터 22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포럼에 참가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어떤 비전을 제시할지,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올해 성장률 목표를 어느 정도까지 낮출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1989년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계기로 당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실각했던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10주기 추도식이 17일 베이징(北京)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이날 톈안먼 동북쪽 둥청(東城) 구 푸창(富强) 후퉁 6호의 자택 주변에는 경찰들이 방문객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한 뒤 들여보내는 등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은 일부 홍콩 언론 외에는 일체의 국내외 언론 기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추도식에는 가족과 과거 자오 전 총서기의 비서, 그리고 일반 시민 등 600명가량이 찾았다고 홍콩 빈과일보는 보도했다. 참석자 중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비서를 지내고 자오 전 총서기와는 친구였던 99세의 리루이(李銳), 자유주의 성향의 잡지 옌황춘추의 두다오정(杜導正) 사장 발행인 등이 있었으나 오랫동안 정치 비서를 지낸 바오퉁(鮑¤)은 여전히 참석이 금지됐다. 딸 왕얜난(王雁南) 씨는 “올해는 일부 언론도 들어올 수 있게 하는 등 과거에 비해 감시가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왕 씨는 “직접 찾아와 조문하는 민중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부친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두 사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이후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자오의 이름을 검색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통제가 완화된 것”이라며 “하지만 자오 전 총서기의 복권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신(習仲勛) 전 부총리는 개혁파인 자오쯔양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등과 뜻을 같이해 말년에는 덩샤오핑으로부터 밀려난 바 있다. 바오퉁은 최근 “중국은 정치 개혁 측면에서는 답보 상태”라며 “시 주석은 부친의 유지에 따라 ‘다른 의견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하고 정치 개혁을 추진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홍콩 RHTK 방송이 보도했다. 자오 전 총서기는 화장된 뒤 유골이 아직 안장되지 못하고 자택에 안치돼 있다. 가족들은 2013년 12월 자오 전 총서기 부인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외부에 합장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팔이 없다고요? 발이 있잖아요” 차이나데일리 등 중국 언론은 어려서 사고로 두 팔을 잃었지만 발가락으로 장부를 기재하는 24세 청년의 이야기를 최근 전했다. 주인공은 저장(浙江) 성 융캉(永康) 시 구산(古山) 진의 후샤루(胡夏露) 씨. 그가 30㎡ 남짓한 가게를 운영하며 쓴 장부를 보면 품목과 수량 가격 등이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글씨체도 한자 획을 그을 때 필요한 힘이 다 들어가 있고 절도가 있다. 하지만 글씨는 손가락이 아니라 발가락으로 썼다. 왼발가락으로 장부를 붙들고 오른발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끼워진 펜으로 쓰고 있다. 그의 사연을 전하는 저장일보는 “기자가 현장에서 발가락으로 직접 쓰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후 씨는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어머니가 도와주는 것 말고는 가게 운영에 필요한 모든 일을 혼자 다 처리한다고 한다. 곡식과 야채를 손님이 주문하는 양만큼 덜어서 저울에 달아서 준다. 다만 잔돈을 거슬러 가는 것은 손님의 몫이다. 그는 식사나 양치질, 옷 입기 등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활동도 다 혼자서 한다. 후 씨는 8살에 부주의로 고압 전선에 접촉돼 두 팔을 절단해야 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씩 발과 발가락을 이용해 해결해 나갔다. 물론 혼자서 책장을 넘기며 책도 본다. 그는 다른 친구들이 뛰어 노는 시간에도 공부에 매달려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베이징의 한 대학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베이징에 가 면접을 보는 날 대학 측은 ‘신체적인 조건’을 이유로 입학을 거절했다. 후 씨는 고향으로 돌아와 잠시 실의에 빠졌으나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며 어렵게 사는 부모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장에 나가 두 발로 물건도 집어주면서 거들었다. 그의 꼼꼼한 일처리와 정성이 주변에도 알려져 장사가 잘되고 일부 후원금도 들어와 후 씨는 작은 가게까지 마련하게 됐다. 그는 항상 자신과 주위에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팔은 없지만 다리가 있다. 인생에서 아무리 큰 어려움을 만나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는 돈을 더 벌어 좀 더 큰 슈퍼마켓을 차리는 것이 꿈이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동아일보가 특종 보도한 ‘북한 탈영병의 조선족 살해’ 사건 이후 중국이 북한과 접경지대에 민병대를 배치하기로 했다고 중국 국방부 발행 ‘중국국방보’가 14일 보도했다. 국방보는 이날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와 인민해방군 자치주 분구가 민간인 신분인 민병대를 접경지역에 투입해 순찰과 경계 근무를 서도록 했다”고 밝혔다. 옌볜의 소식통은 “국경에 민병대가 등장하기는 3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국방보는 “중국과 북한 국경이 1000km가 넘고 상황이 복잡해 군대에만 의지해서는 적절히 통제하기 어렵다”며 “당정군경민(黨政軍警民)이 오위일체로 방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말 옌볜자치주 허룽(和龍) 시 난핑(南坪) 촌에서 북한 탈영병이 중국 조선족 4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이 지역의 치안 불안이 노출된 데 따른 것이다. 옌볜 소식통은 “북한과 접한 변경 마을에 며칠 전부터 ‘민병대’ 또는 ‘자위대’를 조직하도록 했다”며 “주로 야간에 2명이 1개 조가 되어 마을 주변에서 순찰을 돌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병대는 과거에 주로 청년들로 구성됐지만 지금은 청년이 없으면 연령을 불문하고 남자들로 민병대를 조직하도록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한국인 마약 사범이 지난해 말 사형이 집행된 데 이어 한국으로 마약을 팔아넘긴 용의자들이 붙잡히는 등 중국에서 한국 관련 마약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1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상하이(上海) 공안국은 최근 필로폰을 한국으로 밀매한 혐의로 10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공안은 중국 조선족 6명이 주축이 된 이 밀매 용의자들을 체포하고 필로폰 8.5kg과 총기 2정도 압수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광둥(廣東) 성에서 마약을 구매한 뒤 상하이와 지린(吉林) 산시(陝西) 성 등에 팔거나 여성의 체내에 숨겨 한국으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주범 격인 류(柳)모 씨가 한국에 있으면서 밀매단을 지휘한 것으로 보고 한국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앞서 한국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30일 한국인 14명이 광둥 성 광저우(廣州) 바이윈(白雲) 공항에서 이틀 전인 28일 오전 호주로 출국하려다 체포돼 구속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국에 체류하던 야구동호회 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kg 이상의 마약을 소지한 것으로 전해졌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후임 지사 후보들이 모두 반대하는 사안을 현직 지사가 허가를 내줬다는 것도 문제지만, 허가대로 하면 제주도와 중국 등 투자자들에게도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초고층 빌딩 건설로 한라산이 가리는 등 경관을 해치고 교통 상하수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허가를 번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투자자들도 이해를 하게 됐습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9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이렇게 강조했다. 지난해 7월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취임 이후 처음 중국을 찾은 그의 3박 4일 일정은 다른 지자체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첫날인 9일 관영 신화통신을 찾은 데 이어 10일 오전에는 중국국제방송(CRI), 오후에는 관영 중국중앙(CC)TV와 환추(環球)시보, 중국왕(中國網)과 잇달아 인터뷰를 했다. 11일에는 다궁(大公)보 등의 중화권 언론 8개사와 만나고 12일에는 상하이로 가 현지 언론과 합동 간담회를 갖는다. 원 지사가 새해 벽두 ‘중국 언론 설명 투어’에 나선 것은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후 전임 지사 시절(5월 28일) 허가가 난 ‘제주 드림타워’의 건축허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뒷수습이다. 중국 언론은 지사가 바뀌니 ‘볜롄(變검·변검)하느냐’며 한국 행정에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변검은 얼굴에 쓴 가면을 순간적으로 바꾸는 중국의 전통 공연이다. 원 지사는 “마치 반중국적이라는 왜곡된 시선이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방중 목적을 말했다. 당초 56층 218m로 허가받았던 드림타워는 중국 뤼디(綠地)그룹과 동화투자개발이 38층 168m 높이로 변경했고 교통대책도 보완됐다. 사업 최종 승인은 심의위원회의 절차가 남았다. 하지만 원 지사가 중국에 와 설명하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중국 투자자와 제주도가 맞서기보다 협력하는 모양새를 갖췄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 지사는 2013년 초 6개월간 베이징대에서 연수하며 중국과 중국어를 배웠다. 그는 “중국이 한국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어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제주도에 대한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 286만 명이 찾았고, 외국인 직접투자가 도착 금액 기준 5억4800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도 중국 투자 때문이다. 2010년 ‘5억 원 이상 부동산 투자자에게 거주 비자를 주고 5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주겠다’는 제도가 도입된 뒤 지난해 말까지 거주 비자를 받은 외국인 1007명 중 98.5%인 992명이 중국인이다. 올해는 첫 영주권자도 나온다. 원 지사는 “제주를 사랑하는 중국인들은 소중하고 고마운 파트너”라며 “제주의 청정 자연,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윈윈의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원 지사의 ‘설명 투어’는 오해를 풀고 소통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소신이 관철됐다고, 그래서 중국 투자자들이 모두 승복했다고 안심할 것은 아니다. 뤼디그룹 고위 관계자는 “중국 사업가는 중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관(官)과 맞서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치밀한 실용성에 따른 것이지 모두 승복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무비자로 중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제주도는 중국이 한국을 보는 창(窓)과 같은 곳이다. 제주의 관광과 투자 정책이 어떻게 인식되는가는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지사는 ‘윈윈을 위한 소신’이라고 하지만 ‘변검’으로 받아들여질 것은 없는지 따져보는 데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에서 항공기 출발 지연에 불만을 품고 승무원과 다투던 승객들이 활주로로 이동 중인 여객기의 비상구를 열어 결국 여객기가 회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베이징(北京)으로 가는 둥팡(東方)항공 2036 여객기는 당초 9일 오후 8시 45분에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의 창수이(長水) 공항을 이륙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출발한 이 여객기가 예정보다 늦은 오후 9시 20분경에야 창수이 공항에 도착한 데다 비가 섞인 눈이 내리는 바람에 더 늦어졌다. 환불 요구 및 탑승 거부 소동 끝에 이튿날인 10일 오전 1시 40분 승객 153명이 탑승을 마쳤다. 이번엔 여객기 동체에 얼어붙은 눈과 얼음을 제거하는 작업이 오전 3시 45분경부터 진행되면서 또다시 지연됐다. 이때 객실 공기 순환 장치 작동이 30분가량 중단됐다. 한 여성이 불편을 호소했고, 승객들은 이 여성에게 어떤 전염성 질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승무원들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부기장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자 승객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사이 여객기는 탑승구 브리지를 떠나 활주로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때 여객기 왼쪽 한 개와 오른쪽 두 개의 비상문이 열렸다. 오전 4시 25분경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비상구를 연 승객들을 억류했다. 일부 승객은 기장이 승객에게 욕을 하는 등 자제력을 잃었기 때문에 그에게 조종을 맡길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임의로 비상구를 여는 것은 안전을 위협하고 공항 항공기 질서에도 큰 혼란을 줄 수 있는 심각한 행위라고 말했다고 징화(京華)시보가 11일 전했다. 경찰은 비상문을 연 저우(周)모 씨와 이륙 반대 등 사태를 선동한 여행사 가이드 리(李)모 씨(여)에게 15일 구류 처분을 내렸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지난해 12월 27일 발생한 북한 탈영병의 중국 조선족 4명 살해 사건에 대해 북한이 중국 정부에 유감을 표시했다.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 후 이 사건 처리에 대한 질문을 받고 “중국은 북한 측에 항의의 뜻을 전했으며 북한은 해당 사건 발생에 유감을 표시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조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훙 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개별 형사 안건으로 북-중 양국이 모두 중시하고 있다”며 “사건 발생 후 중국 경찰이 즉각 검거 작전에 나섰으며 체포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범인은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변경에서 일어난 탈북 병사의 살해 행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5일 동아일보 보도 이후 중국 외교부가 즉각 사건 발생을 확인하고 북한에 항의의 뜻을 밝힌 이후에도 중국 관영 언론이 자국민 살해 사건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사건 이후 중국에서는 북-중 국경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해 ‘불법 월경’(탈북)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정치적 난민이 아닌 ‘경제적 불법 월경자’로 보고 있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경 단속을 강화하고 중국 내 탈북자에 대한 단속 및 북송 강화 조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유족들에 대한 보상도 어떻게 이뤄질지 관심이다. 이 사건에 앞서 지난해 9월 3일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북한 민간인 남성의 중국인 일가족 3명 살인 사건 희생자 유족은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3000위안(약 54만 원)의 위로금을 받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인들은 말을 잘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남의 말이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인기 연예 프로그램에서 우리도 한때 유행했던 만담에 해당하는 ‘샹성(相生)’이 지금도 빠지지 않는다. 웬만한 크기의 중국 공항 서점에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것이 있다. 유명 인사들의 강연 비디오다. 영어 강사로 출발해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馬雲) 등 기업인이나 사회 명사들의 동영상 강연이 비디오에 담겨 있다. 베이징에서 택시를 타면 투박하고 분명하지도 않은 베이징 방언으로 주로 옛날 고전의 한 대목과 뒷얘기 등을 늘어놓는 방송을 기사가 끊임없이 틀어놓고 듣는다. 이런 중국 사회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난해 11월에 출간된 책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분투도 멈추지 않는다(生命不息 折騰不止·사진)’가 왜 인기를 끄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제목만 보면 깊은 사색을 통한 통찰이 유려한 문장으로 쓰였을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전문 작가의 글이 아니다. ‘한 이상주의자의 분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중국 최대 영어교육 학원그룹의 인기 영어강사 출신이자 기업인 뤄융하오(羅永浩·44)의 강연 모음집이다. 2009년에 진행된 ‘영어강습 전국대학 비영리 순회강좌’, 2010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베이징의 극장에서 진행된 3차례의 ‘한 이상주의자의 창업 이야기’ 강연회 등이 담겼다. 이 책은 중국의 책 전문 사이트인 당당왕(當當網) 등에서 꾸준히 10위 안에 머물고 있다. 독자들은 이야기를 듣듯이 책에 빨려 들어간다. 뤄융하오는 명사들의 평론과 블로그 등을 연결하는 뉴보왕(牛博網), 스마트폰 부품업체인 추이쯔커지(錘子科技·영어명 Smartisan) 등을 창업하거나 개설했는데 그럴 때마다 했던 연설들도 실렸다. 그의 얘기 속에서 독자들은 한 기업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과 빠른 변화 때문에 ‘나무로 깎은 닭처럼 얼이 나가 있는’(중국의 고사성어)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스스로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는다. 그의 강연은 몇 마디 걸러 한 번씩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는 굴지의 영어학원 기업 신둥팡(新東方)에서 유학생을 위한 GRE 강사를 맡은 적이 있는데 유머가 넘치는 그의 강의는 수강생들에 의해 ‘라오뤄 어록’(‘라오’는 나이 든 사람에 대한 중국식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녹취 정리돼 인터넷에서 널리 돌았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해학 속 진지함’의 내공이 쌓인 것이다. 자신의 책을 추천한 말이 흥미롭다. “깨끗하게 돈을 버는 것을 보여줘 사람들이 깨끗하게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가능한 곳, 이상을 실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곳, 세계를 바꿈으로써 사람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곳, 그곳이 중국이다.” “당신이 맞다고 생각한 것을 버리려고 할 경우 이 책을 보기를 권한다.” 유력 주간 신문인 난팡(南方)주말은 “그는 온통 반역의 기질로 가득 차 투사의 자세로 불공정한 사회질서를 조롱하고 이에 맞서 싸워 이겼다”고 뤄융하오를 평가했다. 인터넷의 한 서평은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천진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가슴속에 있는 천진함을 불러와 호응하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고 소개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지난해 말 북한 탈영병의 중국 조선족 살해는 북-중 국경경비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라고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경 지역에 중국이 자체 개발한 무인기인 ‘이룽(翼龍)’을 배치하는 등 경계 강화 방안도 촉구했다. 지금도 국경에는 각종 첨단 감시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으나 이룽을 배치하면 부족한 감시 인력과 장비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 신문은 이룽이 무기도 탑재할 수 있어 무장 테러 분자가 나타나면 사격을 가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현재 1334km에 이르는 국경 중 육지는 45km에 불과하고 1289km는 강이어서 경계 강화를 위한 다양한 설비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경지대에는 야간 촬영이 가능한 레이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며 약 1km 간격으로 마이크로 전자파를 발사하는 감시장비도 이미 달아 놓았다. 중국 국경부대는 이런 장비를 가동하면서 월경 등 특별한 징후를 포착한 뒤 5∼10분 만에 출동할 수 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관영 매체들이 동아일보가 특종 보도한 북한 탈영병의 조선족 살해 사건을 중요 기사로 다루면서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관영 신화통신과 홍콩 밍(明)보 등 중화권 언론도 이날 “북한 병사가 4명의 중국인을 살해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6일 ‘한국 동아일보에 따르면’이라고 출처를 적시한 뒤 ‘조선 도망병, 중국인 4명 총으로 살해’라는 제목으로 사건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는 심층 분석 기사를 실었다. 외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관영 매체가 출처까지 밝히며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환추시보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까지 실었다. 사설은 “북한 병사의 조선족 살해 사건 같은 일을 한국 신문이 보도한 것을 보고 중국인들이 알아서야 되겠느냐”며 “동아일보가 보도하기 전 관계 당국은 아무 소식도 내놓지 않았다. 범인이 북한 정부나 국민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법에 따라 처벌될 범죄자인데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중조(북-중)관계에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따졌다. 비록 북-중 관계가 민감하지만 자국 국민이 살해된 사건을 덮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또 “불법 월경(越境)을 막는 일이 어렵다는 것이 북한군이 넘어와 범죄를 저지른 것을 몰래 처리하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며 “중국과 외국 간 분쟁 대부분이 외국 또는 제3국에서 먼저 발표되는데 이런 일들은 정부와 언론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곁들였다. 신문에 인용된 랴오닝(遼寧) 성 사회과학원 북한 문제 전문가인 뤼차오(呂超) 연구원의 말은 이렇다. “과거에도 북-중 국경에서는 무장한 북한 사람들이 넘어와 주민들을 약탈하는 일이 빈발했고 이 과정에서 국경 수비대원 등 중국 측 사상자가 나왔지만 최근에는 그나마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 10년간 보지 못한 가장 잔인한 악성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한편 사건 소식을 접한 중국 누리꾼들의 분노도 확산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微博)에서는 정부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거나 북한에 반감을 나타내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추이청하오(崔成浩)라고 실명을 밝힌 누리꾼은 “조선 군인이 우리 국민을 해치는 사건은 여러 차례 있었다. 배은망덕한 자들의 행위를 참고 넘어가면 호랑이를 길러 화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변방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 선진 장비를 변방에 구축하자”는 제언부터 “북한은 지금 산 도적과 마을 도적의 구별도 없는 국가다”라는 비난까지 다양한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중국 정부에도 “계속 악명이 높은 독재정권을 지지하면 조선의 보통 백성들도 분개해 화를 키우고,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전주영 기자}

지린(吉林) 성 허룽(和龍) 시 난핑(南坪) 촌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 보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 강 양쪽 마을이 ‘국경이 무색하게’ 허물없이 지내던 곳이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한 조선족 동포에 따르면 1970년대 초 북한 쪽에서 산불이 나면 초등학생까지 동원해 두만강을 건너 불을 끄러 갔다고 한다. 물론 넘어가고 오는 데 어떤 출입국 수속이나 검문도 없었다. 북한 최대의 노천 광산이 있는 무산군 인근의 두만강은 제법 폭이 넓어 겨울이면 이곳에서 북한 측이 주최하는 빙상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때는 중국 아이들도 강으로 나가 구경했다. 요즘에는 중국 경제가 더 발전했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의 조선족 동포들이 북한의 잘사는 친인척들 도움을 받았고, 무산 중심지로 들어가 영화도 보고 돌아왔다. 영화를 보러 넘어간 중국 어린이들이 북한 어린이의 옷만 빌려 입으면 중국에서 온 것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그런데 1970년대 말부터 중국에서 치안을 맡은 ‘치보주임’이 아이들에게 북한에 넘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들키면 혼이 나곤 했다. 1980년대에는 ‘월경 벌금’이라는 것도 생겼다. 어느 때부터인가 북한에서 넘어온 주민이 중국 농촌 마을에서 밥을 얻어먹고 가거나 소나 돼지 등 가축을 훔쳐 간다는 소문이 들렸다. 양쪽 국경 경비도 강화됐다. 북한의 ‘월경 구걸’이 늘어도 군인들만큼은 ‘공화국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밥을 얻어먹으러 오지 않았다. 군인들까지 ‘월경 구걸’에 나선 것은 10년도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핑 촌 주민들은 “볼살이 빠진 북한 병사가 어두워진 후 마을에 찾아와 ‘밥을 좀 달라’고 요청하면 간단하게 챙겨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총을 들고 강도와 살인’까지 하자 “이제는 더 못 살겠다”며 주민들이 떠나고 있다. 이곳은 국경 양쪽 모두 경비 초소를 두고 무장한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이 마을 주변에서는 북-중 국경 어느 곳보다 긴장이 느껴졌다. 평화롭던 농촌 마을이 공포의 마을이 되어버린 것이다. 6일 옌볜(延邊) 지역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이번 일을 계기로 허룽 일대 국경 마을을 돌며 일일이 가정 방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지린 성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북한군 탈영병의 주민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북한 접경지역 촌락의 치안을 강화한 데 이은 강력 조치다. 허룽 시의 한 주민은 “며칠 전 공안이 집에 찾아와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할 것을 당부하고 돌아갔다”고 말했다.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정부가 동아일보가 보도한 북한 무장 탈영병의 조선족 주민 4명 살해 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항의했다”고 5일 밝혔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 사건을 공식 확인하면서 “이미 북한 측에 항의했다. 공안이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자국민 피해에 대해 북한 측에 항의했다고 공식 확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지난해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3주기를 계기로 한 북-중 관계의 갈등 완화 국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살해당한 조선족 허모 씨, 이모 씨 부부 유가족들까지 중국 당국을 상대로 피해 배상을 요구하고 나서 중국 정부가 피해 배상과 함께 북한 측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커졌다. 5일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유족들은 변경 경비 소홀로 무장한 북한 탈영병이 넘어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며 중국 당국을 향해 자국민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도 따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국가의 잘못으로 인한 배상 문제를 ‘국가배상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2010년 6월 북한군이 접경 지역에서 밀무역을 하던 중국인 3명을 간첩으로 오인해 총으로 쏜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중국 정부가 희생자 한 명당 3000달러씩 배상한 적이 있다. 이번 사건도 이 같은 선례에 따라 처리하겠지만, 중국 당국의 치안책임과 함께 북한의 책임 등도 감안할 것으로 보인다.▼ 유족 “中당국 배상하라”… 누리꾼 “北에 강력대응을” ▼현지 소식통들은 이번 사건 말고도 지난해 8월 말경 허룽 시의 또 다른 마을에 북한 민간인이 침입해 망치로 조선족 노부부와 아들 등 일가족 3명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면서 마을 전체가 공포에 휩싸여 빈집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 조선족 4명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른 북한군 병사는 당초 복부에 총을 맞고 체포돼 병원에서 의식불명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건 발생 7일 만인 이달 3일 숨져 시신이 북한으로 돌려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허룽 시 인민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탈영병이 사망하자 중국 측이 시신을 즉각 북한으로 송환했다. 이번 사건을 접한 중국 누리꾼들의 분노도 확산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微博)에서는 정부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거나 북한에 대해 반감을 나타내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전주영 기자}

새해 벽두부터 중국 사정당국의 ‘호랑이 사냥’이 시작됐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4일 양웨이쩌(楊衛澤·52·사진) 장쑤(江蘇) 성 난징(南京) 시 서기를 기율 및 법률 위반 혐의로 연행해 조사에 들어갔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양 서기는 3일 밤 집에서 전격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인 밍징왕(明鏡網)은 기율위가 지난해 10월부터 양 서기에 대해 전방위적인 조사를 벌여왔다면서 이번 조사는 양 서기의 과거 난징 및 우시(無錫) 시 근무와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처음 국가 추모일로 지정된 ‘난징대학살 기념일’ 추도식 등 큰 행사들이 마무리되자 사정당국이 양 서기를 전격 연행한 것으로 보인다. 양 서기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 서기의 고향인 우시 시 서기를 지내 양 서기 조사는 저우 전 서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화권 매체인 보쉰(博訊)은 5일 양 서기가 저우 전 서기에게는 여성 아나운서를 ‘성상납’하고, 그의 아들 저우빈(周濱)에게는 거액의 공사를 몰아주었다면서 양 서기 자신도 상하이(上海) 상장회사의 주식 보유액이 20억 위안(약 360억 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양 서기에 대한 조사로 시진핑(習近平) 정부 출범 이후 시닝(西寧) 광저우(廣州) 쿤밍(昆明) 타이위안(太原) 지난(濟南) 시 등 6개 주요 시의 서기 6명이 낙마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