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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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zsh75@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남북한 관계64%
칼럼23%
경제일반10%
사회일반3%
  • 東進과 팽창 ‘하나의 유럽’ 20년…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 ‘동진(東進)과 팽창을 거듭했지만 유대감은 약해졌다.’ 유럽연합(EU) 출범의 출발점이 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1일로 발효 20주년을 맞는다. 조약은 1991년 12월 유럽공동체(EC) 12개국 정상들이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합의해 각국 정부의 비준을 거친 뒤 1993년 11월 1일 발효됐다. EU는 경제 및 화폐 통합, 공동 외교안보 정책, 내정과 사법 분야 협력이라는 3가지 목표를 내세웠다. 조약 체결 이후 20년간 EU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 경제통합 공고화와 EU의 위상 강화 EU 출범 후 가장 큰 성과는 단일 화폐인 유로화 도입이다. 조약에 따라 EU는 1999년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을 출범시켰다. 2002년 1월 1일부터 12개국이 유로화를 도입했다. ‘유로존’ 국가는 초기 12개국에서 현재 17개국으로 늘었다. 유로화 도입으로 개별 회원국들에 대한 EU의 금융 임금 사회보장 제도 등에 대한 통제권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사법 분야의 공조도 긴밀해져 유럽공동경찰기구인 ‘유로폴’이 국경을 넘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통합 특허법원이 출범돼 특허 출원과 특허 분쟁도 곧 단일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외교와 국방 통합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외교는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주요 국제문제에 대한 의견 일치를 보기가 어렵다. 최근 시리아 반군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 해제 과정에서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전체 투자의 80% 이상이 회원국별로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EU는 지속적인 동진정책으로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조약 체결 당시 12개국이던 EU 회원국은 올해 크로아티아의 가입으로 28개국으로 늘었다. 마케도니아 등 동유럽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옛 소련 회원국도 EU에 가입하기 위해 줄 서 있다.○ 하락하는 신뢰도와 회원국들의 반목 EU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2008년부터 시작된 유럽의 경제위기는 회원국들의 결속력과 충성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EU라는 한 지붕 아래 이익을 보는 나라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나라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점점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가 최근 유럽 주요 8개국 시민 7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EU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45%에 불과했다. 지난해보다 15%포인트나 떨어졌다. 국가별 경제력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처럼 실업률이 각각 5.3%와 4.8%에 불과한 국가가 있는가 하면 실업률이 26%를 넘는 그리스와 스페인과 같은 국가도 있다. 특히 올 상반기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62.9%, 스페인은 56.1%까지 치솟았다. 경제난 극복을 위해 독일 등 돈줄을 쥔 국가들이 그리스와 스페인 등 구제금융 국가에 혹독한 긴축을 요구하면서 반EU 정서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국가들에서 유로는 부자 국가의 착취수단이라는 주장도 공감을 얻고 있다. 이로 인해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EU 반대’와 유로존 폐지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들이 크게 선전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EU의 미래는 회원국 간의 정서적 화합과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은행연합 완성 등 조약에서 예상하지 못한 도전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에 달려 있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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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노스 “北 풍계리 핵실험장에 새 갱도 2개 뚫은 정황”

    북한이 또 핵실험을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North)’가 23일 밝혔다. 38노스는 “최근 촬영된 상업용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서쪽 및 남쪽에서 두 개의 새로운 갱도 입구와 파낸 흙더미가 관찰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 갱도 굴착의 목적이나 의도는 불분명하다고 이 사이트는 설명했다. 향후 핵실험에 필요한 새 갱도를 뚫는 것일 수도 있지만 2009년 및 올해 초 핵실험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존 갱도 내부의 통행과 통풍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추가로 출입구를 건설하는 작업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어떤 목적이든 이는 북한이 향후 지하핵폭발 실험을 추가로 실시하기 위한 사전 준비에 포함된다고 38노스는 분석했다. 다만 이 사이트는 이른 시일 안에 4차 핵실험이 이뤄질 것이라는 징후는 없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나 최근 미국 등에 조건 없는 비핵화 협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북한이 핵실험을 위한 별도의 새 갱도를 만드는 것이라면 1, 2년은 소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38노스의 주장에 대해 한국군은 “북한이 새 갱도를 뚫은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 군 관계자는 “군 위성으로 확인한 결과 새로운 갱도를 굴착하고 있다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잘못된 정보인 것 같다”고 밝혔다. 군은 풍계리에서 북한군의 특별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북한군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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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 다이제스트]이란 법무부 “살아난 사형수 재집행 안해”

    이란 법무부가 최근 교수형에 처해진 뒤에 살아난 죄수에 대해 사형을 다시 집행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반(半)관영 이스타 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알리레자’라는 성만 알려진 이 사형수는 이란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마약 밀수죄로 9일 교수형이 집행됐으나 다음 날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사형수이므로 다시 형을 집행하라는 주장과 사형하지 말라는 여론 및 국제사면위원회의 반대가 맞서면서 국제적 논란이 됐다.}

    • 201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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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북한 이야기]‘혁명의 도시’에서 ‘욕망의 도시’로 변한 평양

    《 올해 6월 방문자 5000만 명을 돌파한 동아닷컴의 파워 블로거 주성하 기자의 칼럼 ‘북한이야기’를 이번 주부터 격주 화요일 오피니언면에 연재합니다. 서울에서 평양은 불과 200km, 차로 3시간 거리이지만 주 기자가 평양에서 서울까지 오는 데에는 무려 8년이 걸렸습니다. 주 기자는 아직도 “마음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람 세찬 서울과 안개 자욱한 평양 사이를 넘나든다”고 합니다. 그가 쓰는 ‘북한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길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         ‘혁명의 수도 평양.’ 평양역 앞 아파트 옥상에 크게 붙어있는 구호이다. 기차를 타고 평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맨 먼저 이 구호부터 보게 된다. ‘혁명의 수도’는 세뇌의 키워드다. 북한 사람 누구에게나 “평양은?” 하고 물어본다면 수십 년 익숙하게 된 접선암호 맞히듯이 “혁명의 수도”라는 대답이 즉시 돌아올 것이다. 심지어 잠꼬대 속에서라도.평양아파트 가격 최고 16만달러 하지만 반세기 전쯤 평양에서 끓었던 사회주의 혁명의 열망은 세습과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개인의 욕망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평양은 더는 혁명의 수도가 아니다. 부자가 되려는 꿈이 지배하는 ‘욕망의 수도’일 뿐이다. 이제 그곳에선 혁명도, 통제도, 순응도 부자가 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평양의 욕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아파트다. 내 집 마련에 대한 한민족의 집착, 집을 통한 부의 과시욕은 평양이나 서울이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평양의 집값은 아직 꺾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집값 그래프는 계단식으로 상승해왔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굶주린 사람들은 국가에서 배정받았던 아파트를 달러와 바꾸기 시작했다. 평양 모란봉구역 북새거리의 30평형대 아파트가 5000달러에 팔렸다. 그렇게 평양의 부동산 거래는 본격화됐다. 혁명의 수도에서 아파트 가격은 항상 그들이 증오하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달러로 거래된다. 10여 년 전 최고가 5000달러에서 시작된 평양의 아파트 가격은 2013년 16만 달러를 넘어섰다. 올 4월 보통강구역 유경동에 완공된 30층짜리 아파트는 8만 달러 언저리에서 맴돌던 아파트 최고가를 단숨에 두 배나 올렸다. 평양 아파트 최초로 180m²(약 54.5평) 이상의 크기에 수입산 대리석과 같은 최고급 자재를 썼다. 중국 아파트의 설계를 그대로 가져다 지었고, 지하철 황금벌역까지 100m 정도 떨어져 교통 입지도 매우 좋다. 다만 주변 아파트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 정전과 단수는 피해가지 못했다.권력기관들 절반 챙기고 절반 팔고 이 아파트는 국가가 지은 것이 아니다. 달러를 주무르는 대외경제총국(일명 99호총국)이 자체 부동산 개발로 지은 것이다. 아파트의 절반은 99호총국 간부들의 몫이고, 나머지는 공사비를 뽑기 위해 팔고 있다. 하지만 99호총국 간부들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내전이 벌어져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6개월째 배정이 끝나지 않았다. 평양의 고급 아파트들은 이런 식으로 힘 있는 기관이 건설한 것이다. 국방위원회가 대동강구역 동안동에 최근 신축한 160m²짜리 아파트는 7만∼8만 달러에 거래된다. 중구역 평양의학대 앞에 신축돼 완공을 앞둔 160m²짜리 아파트 역시 연말부터 7만∼8만 달러에 거래될 예정이다. 시내 중심 중구역은 100m² 정도의 낡은 아파트도 3만∼4만 달러에 팔린다. 중구 보통강 모란봉 대성구역과 같은 평양 중심구역에는 지금 새 아파트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올라가고 있다. 억눌렸던 욕망이 분출되듯이. 특히 각 기관들은 아파트를 지어 절반은 자기들이 갖고 나머지는 공사비를 뽑기 위해 팔며 권력을 남용한다. 시내 중심에 건설되는 아파트는 예외 없이 북한 관련법을 위반한 것이다. 북한 당국이 합법적으로 건설허가를 내주는 지역은 통일거리 등 평양시 외곽뿐이다. 하지만 중앙 기관들은 권세로 내리눌러 건설허가를 따낸다. 평양시 인민위원회는 권세에 눌린 척 도장을 눌러주면서도 아파트 몇 채는 받아 챙긴다. 평양의 건설부문 간부에 따르면 평양에 각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지은 아파트는 최근 10년 사이 7만∼8만 채나 된다고 한다. 반면 북한이 국가적으로 건설한 집은 1995년 이후 2만 채가 채 되지 않는다. 북한은 2008년 평양시 10만 채 건설을 발기하고 강성대국의 원년인 2012년까지 완공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현실은 만수대거리와 창전거리, 시내 외곽의 아파트 단지를 통틀어 2만 채도 채 완공하지 못했다. 그것도 아파트 동별로 외무성, 인민무력부 등 각 기관에 할당해주고 자체 완공하라고 강압적으로 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총력을 쏟아 부어 5년 동안 아파트 2만 채도 완공하지 못한 북한은 한국의 중견 건설사보다 못한 국력을 입증하고 말았다.선분양-후분양 한국 개발방식 모방 하지만 점점 놀라울 정도로 한국의 개발방식을 닮아가고 있는 욕망의 사적 부동산 시장은 외부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 선분양가와 후분양가까지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잔재인 국가 배정 시스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북한 은하수악단이나 공훈합창단, 국립교향악단 성원들은 몇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선물로 받았다.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난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의 혼재, 시장화의 급속한 확산, 이것이 북한 전체를 아우르는 오늘날의 실상이다. 북한 이야기는 늘 궁금증이 남는다. 부동산만 해도 주택 매매가 어떻게 가능한지, 구매자는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등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런 궁금증을 글 하나에 다 담을 순 없다. 주성하의 북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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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킬링필드’ 핵심 전범 2명… 캄보디아, 종신형 구형

    캄보디아에서 1975∼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민간인 200만 명을 학살했던 ‘킬링필드’의 핵심 인물 2명에게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이 구형됐다.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의 체아 레앙 검사는 21일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87)과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82)에게 종신형을 구형했다. 2006년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 설립한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에서는 종신형이 최고형이다. 선고는 내년 상반기에 내려질 예정이다. 전범재판소는 국민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만 명을 학살하거나 굶겨 죽인 킬링필드 사건의 핵심 전범 4명에 대한 재판을 2011년부터 시작했다. 이 재판 심리는 전범 2명에 대한 종신형 구형을 끝으로 이달 31일 일단락될 예정이다. 크메르루주 정권의 1인자 폴 포트는 1998년 사망했으며 기소된 전범 4명 중 한 명인 이엥 사리 전 외교부 장관은 올해 초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부인 티리트(81)는 치매로 재판을 받기에 부적합하다는 판결을 받아 지난해 풀려났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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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3000만명, 현대판 노예로 살고있다”

    지구상에 현대판 노예로 살고 있는 사람이 3000만 명에 이른다고 호주의 인권단체 ‘워크프리재단(WFF)’이 16일 밝혔다. WFF는 ‘세계 노예 지수’를 도입해 세계 162개국의 현대판 노예 실태를 보고서로 발표했다. 이 단체의 ‘현대판 노예’의 기준은 이동의 자유 박탈, 강제 노동, 사채에 의한 강압 행위, 강제 성매매 및 결혼, 아동 노동력 착취 등이다. 인도는 인신매매, 강제 결혼과 아동 납치 등으로 1390만 명이 노예 상태로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현대판 노예의 거의 절반이 인도에 몰려있는 셈이다. 중국과 파키스탄이 각각 300만 명과 210만 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3000만 명의 현대판 노예 중 76%가 10개국에 몰려있다. 인구 비율로 봤을 때 가장 심각한 국가는 아프리카 사하라 서쪽의 모리타니였다. 이 나라는 인구당 노예 비율과 아동 결혼·인신매매 실태를 평가해 합산한 노예 지수가 100점 만점에 97.9점에 달해 세계 1위로 선정됐다. 모리타니에선 국민 380만 명의 4.1%인 15만1000명이 노예 상태로 신분까지 세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남미 최빈국 아이티도 아동 종살이 제도 때문에 노예 지수 52.26점을 받아 세계 2위에 올랐다. 현대판 노예가 가장 적은 국가는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영국 순이다. 한국은 5000만 명 중 1만451명이 노예 상태로 조사돼 노예 지수 2.32점으로 162개국 중 137위였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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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부 인근 강진… 최소 93명 숨져

    15일 필리핀 제2의 도시이자 유명 관광지인 세부 인근의 보홀 섬에서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해 최소 93명이 숨졌다고 AP통신과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붕괴되고 전기·통신이 끊어져 구조 작업이 지연되면서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진은 이날 오전 8시 12분(현지 시간) 보홀 섬의 작은 도시 카르멘 인근 지하 약 33km에서 발생했다. 첫 번째 지진 이후 규모 5.0 이상의 여진도 네 차례 이상 계속됐다. 데니스 아구스틴 보홀 경찰서장은 “카르멘에서 77명이 사망했고 세부 섬과 시키호르 섬에서도 각각 15명과 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날은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희생제)’여서 이슬람 교도들이 기도를 하던 중 건물이 무너져 내려 사망자가 속출했다. 이번 지진으로 스페인 식민지 시절인 1565년 세워져 필리핀에서 역사가 가장 오랜 세부의 ‘바실리카 미노레 델 산토 니뇨’ 성당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종탑이 무너졌다. 정부 관계자들은 “10개 이상의 유서 깊은 성당이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당국은 세부 지역을 재난구역으로 선포했다. 세부 등 필리핀 중남부는 환태평양대의 ‘불의 고리’에 위치해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세부에서는 지난해 2월에도 리히터 규모 6.9의 지진으로 8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한편 최근호 세부 한인회장은 15일 동아일보 종합편성 방송 채널A와의 통화에서 “세부에는 1만1000여 명의 교민과 1만5000여 명의 유학생, 9000여 명의 관광객 등 모두 3만5000여 명의 한인이 있지만 교민 피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박희창·주성하 기자 ramblas@donga.com}

    •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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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레반 피격소녀’ 유럽의회 최고인권상

    유럽의회가 10일 파키스탄 여학생 말랄라 유사프자이(16·사진)를 최고 인권상인 ‘사하로프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상금은 5만 유로(약 7240만 원)다. 유사프자이는 어린 나이에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창해 오다 지난해 탈레반의 총에 머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국제 사회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미국 정부의 민간인 도청 사실을 폭로한 미 전 정보기관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과 권위주의 국가 벨라루스에 수감 중인 반체제 인사들도 후보에 올랐지만 유사프자이에게 밀렸다. 유사프자이는 11일 발표되는 노벨 평화상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존의 사하로프상 수상자 중에는 아웅산 수지 여사와 넬슨 만델라 등 노벨 평화상 수상자도 포함돼 있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외국에 있는 유사프자이가 귀국하면 다시 보복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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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軍작전협조 의혹 리비아 총리, 무장단체에 억류됐다가 풀려나

    리비아의 알리 자이단 총리가 10일 새벽 수도 트리폴리에서 한 무장 단체에 끌려갔다가 다른 무장 단체에 의해 풀려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자이단 총리의 납치는 국방부 지휘를 받는 단체에 의해 이뤄져 리비아 정국의 혼돈과 치안 부재의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CNN방송 등 외신들에 따르면 자이단 총리는 이날 오전 4시경 숙소로 쓰고 있는 트리폴리 콜린티아 호텔에서 무장한 몇몇 남성에게 이끌려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태워졌다. 그 사이 총리 경호원들과 호텔 보안 인원들의 제지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과도정부는 처음엔 총리의 납치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언론보도가 쏟아지자 총리를 납치한 단체로부터 협박을 받았기 때문에 납치 사실을 부인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총리 납치 몇 시간 뒤 ‘리비아혁명 작전실’이라는 반군 단체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납치가 아니라 검찰 지시에 따른 체포”라고 강조했다. 리비아혁명작전실은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 만들어진 이슬람 반군단체로 현재는 리비아 국방부와 내무부의 지휘를 받고 있다. 군과 경찰 체제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리비아는 현재 옛 반(反)카다피 반군 단체들을 모아 치안에 활용하고 있다. 리비아혁명작전실은 페이스북을 통해 5일 미군 특수부대가 트리폴리에서 알카에다의 고위 인사인 아부 아나스 알리비 씨를 체포한 사건 때문에 총리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알리비 씨의 체포로 이슬람 반군 속에서 불만이 고조되자 리비아 정부는 7일 “미군의 작전은 리비아 정부의 허락 없이 벌어진 국민 납치 행위”라며 미국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체포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적절하게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이에 옛 반군 세력 가운데에서 리비아 정부가 미군의 작전을 몰래 승인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날 총리의 납치는 이런 가운데 벌어졌다. 총리 납치극이 알려진 뒤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 자이단 총리가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총리를 구출한 것은 정부가 아닌 또 다른 반군이었다. 트리폴리 외곽 스쿠 주마 지역에서 급히 달려온 자칭 ‘혁명가’ 연합단체가 “총리를 억류하고 있던 반군을 설득해 그를 구출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후 내각 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자이단 총리는 자신을 구출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지만 더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일은 갈등을 피해 지혜롭고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이단 총리와 반카다피 반군 단체들은 내전 때 함께 싸운 ‘동지’ 사이다. 1970년대 리비아 외교관으로 일했던 자이단 총리는 1980년대에 스위스로 망명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반체제 활동가로 지냈다. 리비아에서 내전이 일어난 뒤 자이단 총리는 반군 연합의 유럽 특사로 활동했다.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을 설득해 프랑스가 반군들에게 무기를 지원하도록 만든 결정적 주역이다. 이 때문에 반군들도 총리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과격하게 행동하지 않고 정중한 태도로 끌고 갔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국회의원이 된 자이단 총리는 지난해 11월 14일 무소속으로 출마해 이슬람 측 후보를 제치고 총리로 당선됐으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켰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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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살인 말벌, 유럽서도 빠르게 확산

    중국에서 살인 장수말벌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유럽에도 비상이 걸렸다. 원래 장수말벌은 유럽엔 없었지만 2004년 수출용 도자기를 보호하는 목재 등에 붙어 프랑스에 처음 유입됐다. 이후 9년 동안 장수말벌은 프랑스 행정지역 100곳 중 39곳에서 관찰되는 등 유럽 전역으로 번식해 나가고 있다. 강이나 바다 연안을 따라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어 영국에 도착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8일 보도했다. 최근 몇 달간 산시(陝西) 성 북부에선 장수말벌의 공격으로 42명이 사망하고, 1600여 명이 크게 다쳐 치료를 받고 있다. 당국은 장수말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수천 명의 경찰을 투입해 서식지를 찾아 불태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장수말벌 때문에 해당 지역 사람들은 공포에 빠졌다. 문제는 장수말벌의 위험성이 부각될수록 공포에 빠지는 것은 중국뿐만이 아니라는 것. 프랑스와 영국도 큰 걱정에 사로잡혔다. 장수말벌은 몸길이가 5cm, 벌침의 길이도 6mm나 된다. 신문은 “이 벌에 쏘이면 극심한 통증과 함께 피부에 마치 총알 자국만 한 큰 구멍이 생긴다”고 전했다. 장수말벌 떼는 꿀벌을 공격해 2시간 정도면 3만 마리를 몰살시켜 해당 지역 꿀 생산을 크게 떨어뜨리기도 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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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자율권 커지면 黨입김 약해질듯

    북한의 신경제체계 구상은 1961년 이래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노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어 북한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개인의 기업 설립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각 기업에서 불필요한 인력이 대폭 방출되면 전국적으로 수많은 무직업자(실업자)가 쏟아져 나온다. 이들을 방치하면 체제의 안정에도 크게 위험이 된다. 이 때문에 실업자를 고용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 절실히 필요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당장 개인의 기업 설립까지 허용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국가 기업의 외피를 쓴 사실상의 개인기업이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개인 기업의 설립은 이미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기업에 대한 국가의 간부 임명권이 크게 위축되고 민주주의 욕구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타 공장과 비교해 수익에 차이가 있으면 무능한 간부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자신들 손으로 유능한 사업가를 뽑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체제를 지탱해 온 출신 성분에 기초한 중앙집권적 간부선발 원칙이 무너지는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크게는 노동당의 기능과 역할도 대폭 축소될 수 있다. 기존 공장과 기업소에서는 ‘간부사업권’(핵심 간부 평가 및 말단 간부 임면권)을 갖고 있는 공장과 기업소의 당 비서가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경제체계가 본격 시행되면 현장에서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행정일꾼의 권한이 훨씬 강화된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공장과 기업소에서 행정일꾼과 노동자들이 신경제체계를 지지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 신경제체계 도입은 북한의 개방도 촉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6·28 경제관리개선조치 선포 이후 북한은 300여 개의 시범기업을 지정했다. 여기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기업은 대개 외국에서 주문을 받아 생산한 피복 공장이나 광물자원을 해외에 수출한 기업들이었다. 즉 해외의 자본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의 결합 또는 지하자원의 수출이 현재 북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임이 확인됐다. 앞으로 이런 추이가 가속화되면 외국과의 협력에 사활을 거는 기업이 크게 늘어 북한 사회를 지탱해 온 폐쇄의 장벽도 점차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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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신경제체계 도입 추진

    《 북한이 전국적인 도입을 결정한 신경제체계는 북한 경제체제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혁명적 발상이다. 김정일 정권 시절인 2002년 북한이 실시한 7·1조치는 북한 반(反)개혁세력의 저항으로 3년도 안 돼 좌초했다. 이번 신경제체계의 미래도 쉽게 장담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시장경제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경제체계는 7·1조치에 비해 내용에서 훨씬 파격적이기 때문에 파장도 클 것으로 보인다. 》  ○ 신경제체계의 내용과 의미 신경제체계는 기업경영에서 국가의 계획과 통제를 최대한 배격하고 획기적인 자율성을 인정한 것이 핵심이다. 생산자재 및 수단을 자율적으로 시장에서 해결하라고 요구한 것은 기업들에 대해 알아서 생존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7·1조치는 국가가 개설한 ‘사회주의 물자공급시장’에서 공장 기업소가 거래하도록 했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기업이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원자재를 요구하는 기업도 없었다. 또 기업 운영으로 창출되는 이윤이 종업원들에게 돌아가지 않아 생산 재개에 적극적인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기업이 멈춰서야 여유 시간을 활용해 장사에 뛰어들 수 있어 종업원들은 가동 중단을 원하는 게 현실이었다. 신경제체계는 생산과 가격 책정 권한까지 기업과 시장에 일임함으로써 종업원들이 소속 공장의 가동에 이해관계를 갖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기업이 창출하는 수익이 장사 수익보다 많아야 근로자들이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북한의 기업들은 경영으로 창출한 이익의 일부분만 국가에 세금 형태로 낼 것으로 보인다. 각 공장 기업소가 생산제품을 시장의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필요할 경우 업종 전환까지 허용한 조치는 신경제체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상품시장의 사실상 90% 이상을 중국 제품이 점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북한 공장 기업소가 살아남으려면 중국산과 경쟁을 해야 하지만 기계 화학 섬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생산경쟁력이나 원가가 중국산에 뒤지는 게 현실이다. 북한은 기업 자율성 부여로 소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상품 생산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 조치는 기업 경영에 시장의 경쟁체제를 허용함으로써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첫걸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각 기업에 불필요한 근로자에 대한 구조조정 권한을 준 것도 북한 사상 최초의 일이다. 북한은 국가의 의무고용 보장을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으로 선전해왔다. 하지만 대다수 공장 기업소가 생산을 중단하면서 의무고용의 폐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고용자는 몇만 명인데 사실상 가동이 중단된 기업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가동 중단 기업의 노동자들은 생활총화 같은 조직생활만 직장에서 하고, 도로 건설 등 비생산적 활동에 동원됐다. 임금 자율화는 7·1조치에서 근로자의 인센티브를 보장해 준 것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외화계좌의 허용으로 특권층 극소수가 각종 이권을 독점해온 해외 무역 권한을 각 기업에 나눠주려는 움직임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신경제체계의 미래와 과제는 신경제체계가 안착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장경제 이해 및 경험 부족으로 비슷한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난무할 가능성도 크다. 또 바닥에 떨어진 대외신용도, 통제에 따른 시장 위축, 원자재 공급처 확보, 내수 구매력 제고 등 하나하나가 신경제체계의 성패와 직결되는 난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02년 7·1조치가 나오던 때보다 신경제체계가 많은 점에서 긍정적이다. 우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파탄에 빠진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4월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공식 선포했다. 김정은은 노동당 행정부에 경제발전전략을 연구하는 ‘전략문제연구소’를 신설하고 직접 챙겼다. 지난해 6월 28일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발표하고 산업과 농업의 개혁을 기정사실화했다. 이후 전국에 300여 개의 신경제체계 시범단위가 만들어져 1년간 가동됐다. 신경제체계의 실행 사령탑이 대표적 경제개혁파인 박봉주 총리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박 총리는 2002년 7·1조치의 주도자로 알려졌지만 수구세력의 반발로 좌천됐다가 올 4월 총리로 재기용됐다. 그는 누구보다도 경제개혁 현장의 실정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1조치를 좌초시켰던 군부 등 북한의 수구세력이 김정은 시대에서 대폭 물갈이되면서 크게 위축된 것도 안정적 개혁 조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살아남은 수구세력도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언제 좌천될지 몰라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피하고 있다. 국내외 여론이 경제개혁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는 것도 10년 전과 달라진 환경이다. 또 사실상의 가족영농제 도입으로 평가되는 농업개혁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당분간 북한에선 개혁이 시대의 화두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6·25전쟁 이후 가장 획기적인 조치로 볼 수 있지만 물자 부족과 원자재 조달시장의 미비로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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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北 ‘계획경제 → 시장경제’ 방향전환 추진

    북한이 공장과 기업소의 자율성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부터 실시될 이번 개혁은 생산과 판매, 경영과 고용은 물론이고 해외 수출까지도 모두 기업소 및 공장의 책임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는 것이어서 북한이 사실상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방향을 트는 ‘북한 정권 출범 후 가장 획기적인 경제개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조치는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에 버금가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0일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평양에서 공장과 기업소 책임일꾼 및 재정일꾼을 상대로 새로운 ‘경제관리개선체계’(이하 신경제체계)에 대해 집중 교육을 시키고 있다. 교육은 중앙에서 시작해 앞으로 도, 시, 군 단위로 내려가면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내년 1월부터 전면 도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제체계의 핵심은 국가 기간 및 군수 산업을 제외한 북한 전역의 공장과 기업소에 경영 자율성을 100%에 가깝게 부여하는 것이다. 먼저 원료 및 자재의 구입과 생산 제품의 판매 가격을 국가의 승인 없이 공장과 기업소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또 생산 품목에 대한 결정권을 생산단위에 부여해 기업의 업종 전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생산 공정을 신설하는 것도 허용된다. ‘노력(인력) 관리’의 자율화도 이번 개혁의 핵심 내용이다. 공장과 기업소가 자체적으로 불필요한 인원을 줄이거나 새로 인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고용과 해고를 기업이 결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현재는 노동국(노동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노동자 임금도 기업소가 직접 결정할 수 있어 인센티브는 물론이고 생산 독려를 위한 임금 차등화가 전면 가능하게 됐다. 또 모든 공장과 기업소에 ‘내화 계좌’와 함께 ‘외화 계좌’ 개설도 허용했다. 기업이 독자적으로 수출입을 결정하고 해외 투자를 유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장은 “이번 조치는 북한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경제개혁”이라며 “북한이 계획경제를 폐기하고 시장경제를 변형한 ‘우리(북한)식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첫걸음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해 6월 28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내놓은 이후 지난해 8월부터 전국 우수 공장 300여 곳에 완전독립채산제를 도입해 1년간 시범 운영했다. 신경제체계는 시범 운영을 통해 이런 조치가 성공적이라고 자평한 결과이며, 보다 확대된 개혁 조치를 북한 전역에서 시행하기로 최종 결정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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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주성하]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은 반갑지 않은 이유

    북한 당국이 볼 때 이산가족을 다른 말로 풀이하면 적대계층이다. 출신성분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수백 만 이산가족 중 99% 이상은 적대계급으로 분류돼 6·25전쟁 이후 60년 넘게 신음했다. 북한의 이산가족은 크게 6·25전쟁 전후로 남쪽으로 내려온 ‘월남자’와 의용군 등으로 북한에 올라간 ‘월북자’ 가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월남자 가족이 어떻게 박해받았는지는 남쪽에 많이 알려졌다. 가족 중 월남자가 있으면 간부 승진은 물론이고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이들은 벗을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쓴 채 농촌과 광산 등 가장 어렵고 힘든 곳에서 평생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월북자 중에는 인민군으로 참전해 싸웠거나 또는 공산주의를 동경해 북한으로 간 사례가 많다. 북한에 공을 세운 사람이 적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정치와 거리가 먼 과학이나 예술 분야에 종사한 소수만이 계속 이용가치를 인정받았을 뿐 다른 사람들의 신세는 월남자와 큰 차이가 없다. 인민군으로 참전한 남쪽 출신 역시 대개 탄광이나 광산에서 평생을 보냈다. 김일성은 애당초 남쪽 출신들을 믿지 않았다. 중앙당이나 보위부 같은 북한의 핵심 권부엔 이산가족이 없다. 초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는 교수나 예술인 같은 북한이 내세울 만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상봉 횟수가 점차 늘어날수록 고생으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전 대상자들을 평양으로 불러서 잘 먹여 살도 찌우고 ‘때깔’도 바꾸려 애쓴다. 하지만 평생의 고초가 몇 달 잘 먹는다고 바뀔 수는 없다. 당국은 또 매일 정치교육도 하고, 남쪽 가족에게 할 예비 답변까지 준비시킨다. 수십 년을 사상교육으로 세뇌하고도 못 믿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남쪽 가족을 만난 사람들은 “장군님의 은덕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에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다. 호텔에서 잘 먹이고 남쪽 가족에게 줄 선물까지 챙겨주는 것은 적대계급에 어울리지 않는 대접이다. 더구나 남쪽 가족을 만나 돈과 선물을 받으면 그 자손들까지 남쪽을 선망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입장에선 이산가족 상봉 규모가 커질수록 적대계층을 더 늘리는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남쪽에서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을 호소해봐야 먹혀들 리 없다.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은 인륜의 문제가 아닌 대남 전술적 차원에서 일부 적대계층에게 어쩔 수 없이 베푸는 호의일 따름이다. 이산의 한을 품고 눈을 감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에겐 가는 세월을 멈춰놓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심정은 세월의 태엽을 더 빨리 돌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산가족이 줄어든다는 것은 남쪽을 동경하는 잠재적 체제 위험분자들이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산가족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할 적대계급일 뿐이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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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설주 부친은 軍비행사, 모친은 중학교 교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부인인 이설주의 아버지는 공군 비행사(조종사) 출신으로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근무했다고 북한 소식통이 11일 밝혔다. 이설주의 어머니는 중학교 교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설주가 유명한 가수 출신이어서 김정은과 결혼하기 전부터 이설주 가족은 청진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 비행사는 6촌까지 출신 성분을 조사해 선발하기 때문에 상류 계급에 속한다. 그러나 권력 핵심층에 들어가기는 어려워 중산층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대신 가족 중에 비행사가 있으면 죄를 지어도 가벼운 처벌을 받는 등 특혜를 받는다. 비행사가 신변 문제로 고민하면 기수를 돌려 남쪽으로 귀순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설주의 가족이 있는 청진에는 공군 부대는 없다. 다만 대대장 이상 공군 고위 장교를 양성하는 공군사관학교 격인 공군대학이 수남 구역에 있다. 이설주가 24세로 알려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버지는 최소한 50대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그는 현직 비행사이기보다는 공군대학 교관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7월 이설주의 신원이 처음 공개되자 청진 주민들 사이에선 ‘이설주의 집이 수남 구역에 있으며 아버지가 대학 교원이고 어머니는 의사’라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이설주가 김정은의 부인이 된 뒤 아버지의 근황이 외부에 공개된 적은 없다. 이설주는 한국의 초등학교 4학년까지의 과정에 해당하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만경대 구역의 금성 제2고등중학교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공연단에 뽑혀 일본과 한국에 파견될 정도로 뛰어난 미모와 재능을 인정받았다. 6년 과정의 고등중학교 과정을 마친 이설주는 한국의 예술전문학교 격인 3년 학제의 금성 제2고 전문반에 진학했다. 금성 1, 2고는 북한 최대 예술인재 양성 기지에 해당한다. 북한 최고의 예술단인 모란봉악단의 예술인 대다수도 이 학교 출신들이다. 북한에선 ‘김정일이 생전에 이설주를 며느릿감으로 찍었으며 이후 이설주가 1년 정도 사라졌다가 다시 모란봉악단에 출근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이설주가 김정은의 부인으로 공개된 뒤 그의 모란봉악단 시절 공연 DVD가 불티나게 팔렸지만 이후 국가가 시청 금지령을 내려 다시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 사이에선 “김정은이 학력이나 가정환경 등 모든 점에서 훨씬 나은 여성을 택할 줄 알았는데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여가수를 선택한 것이 의외”라는 이야기가 퍼졌다고 한다. 노년층 중에서는 지도자가 부인과 팔을 끼고 다니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으며 이설주의 옷차림이 경박하다는 비난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년층에선 대체로 이설주의 파격을 환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당국은 이설주의 등장 이전에는 미혼 남녀가 대낮에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을 강연 등을 통해 비판하고 엄격히 통제했다. 하지만 김정은 부부가 스스럼없이 팔짱을 끼고 다니는 모습이 공개된 뒤론 이런 비판이 사라지고 연인들은 “맘 놓고 팔짱을 끼고 다닐 수 있게 됐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이설주의 패션을 따라하는 열풍도 불고 있다. 김정은의 머리 스타일도 북한에서 엄격히 통제했지만 “지금은 청년들이 너도나도 따라하는 등 젊은 지도자 부부의 패션과 머리 스타일이 북한의 보수적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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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드먼 “김정은 딸 이름은 주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딸 이름은 ‘주애’라고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 농구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52)이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9일 밝혔다. 로드먼은 “나는 김정은의 딸 주애(Juae)를 안았고, 미즈 리(이설주)와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김주애는 북한에서 흔한 이름은 아니다. 김정은이 딸 이름을 주애로 지은 것은 이설주의 이름에서 ‘주’자를 따왔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김 씨 일가는 보통 부모의 이름자를 따서 자녀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김정일은 부친인 ‘김일성’에서 ‘일’을, 모친인 ‘김정숙’에서 ‘정’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김일성과 김성애 사이에 태어난 김정일의 배다른 남동생들도 ‘일’자를 돌려 ‘평일’ ‘영일’로 지었다. 김정일은 자녀의 이름을 자기 이름의 ‘정’자를 따서 ‘정남’ ‘정철’ ‘정은’ ‘여정’이라고 지었다. 물론 아들과는 달리 딸은 예외적인 경우가 더 많다. 김정일의 누이동생은 경희, 이복 여동생은 경진이며 김정일과 정식 부인인 김영숙 사이에 태어난 딸 이름은 설송이다. 김정은과 이설주의 이름을 따면 ‘은주’라는 이름이 만들어질 수 있으나 김정은은 자신의 이름자 대신 이설주의 이름자를 따서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설주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주애도 ‘이설주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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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년간 CIA비밀요원 행세, 놀면서 봉급 챙겨

    “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1급 비밀요원이다.” 이런 거짓말로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12년 동안 무려 88만6000달러(약 9억6900만 원)의 보수를 받아온 미국 환경보호국(EPA) 관리가 체포됐다. 정부 인사가 비밀요원을 사칭하며 정부를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5일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에 따르면 EPA의 선임정책고문인 존 빌 씨(64)는 2000년부터 일을 하지 않고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등에 장기 체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국장이 이유를 물으면 “나는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에서 1급 기밀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 말에 EPA의 어느 누구도 빌 씨의 여행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렇게 12년 동안 빌 씨는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프린스턴대 석사 출신인 빌 씨는 대기 및 방사능 관련 업무를 맡고 있지만 관련 업무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도 월급은 물론이고 인센티브와 보너스까지 꼬박꼬박 챙겼다. 연봉도 꾸준히 올라 2013년 16만4700달러에 이르렀다. 동료들은 빌 씨가 항상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며 다녔다고 말했다. 빌 씨는 결국 재판에 회부됐다. 검찰은 그에게 최고 3년의 징역형과 50만7200달러의 벌금을 구형할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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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 송사리 17일이면 다 크는데 슬로베니아 도롱뇽은 15년이나 걸려

    세상에서 가장 빨리 자라는 척추동물은 아프리카 남부 모잠비크의 사바나 지역 물웅덩이에서 사는 송사리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영국 BBC방송이 5일 보도했다. ‘노토브란키우스 카들레치(Nothobranchius kadleci)’로 명명된 길이 약 3.1cm인 이 송사리는 약 15일간 부화기를 거쳐 깨어난 뒤 매일 자기 몸길이의 23%씩 자라 17일 뒤엔 알을 낳는다. 알로 태어나 2세를 남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달 남짓한 32일인 셈이다. 체코 연구팀 연구에 따르면 송사리의 생애가 이처럼 짧은 것은 극단적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송사리가 사는 물웅덩이는 우기에 생겨났다가 3, 4주 뒤에 말라버린다. 이 기간에만 살 수 있는 송사리는 죽기 전 후대를 남겨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초단기간에 알을 낳는 특별한 생존방식을 갖게 된 것. 말라버린 물웅덩이 속에서 1년 넘게 잠들어 있던 알은 다음 해 비가 내리면 부화한다. 이 송사리와 비교되는 종은 슬로베니아의 깊은 동굴 지하수에서 사는 도롱뇽 ‘올름(olm)’이다. 밤도 낮도 없는 영원한 어둠 속에서 생을 재촉할 필요가 전혀 없는 올름의 수명은 무려 100년. 알에서 성체로 자라는 기간만 15년이다. 송사리와 올름은 “천천히 자라는 동물이 오래 산다”는 과학적 상식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다만 올름도 오래 살기 위한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개발했다. 먹이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동굴에서 올름은 한 번 먹이를 먹은 뒤 10년 동안 굶어도 생존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 이상 굶주릴 때는 자신의 내장을 흡수해서 버티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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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주성하]적기가(赤旗歌)

    ‘적기가(赤旗歌)’는 시체를 앞에 놓고 분노에 치를 떨 때 불러야 제 맛이다. 노래 자체가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는 맞춤형 구절로 시작된다. 인간은 누구나 분노한다. 그러나 어떤 분노인가에 따라 인간의 행동도 달라진다. 공포의 사슬 안에 갇힌 분노는 힘이 없다. 반면에 죽음의 공포라는 사슬을 끊어버린 분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괴력을 만든다. 적기가는 죽음과 비장함을 감정적 배경으로 깔고 인간의 분노를 용솟음치게 만들어 죽음을 불사하게 하는 투쟁의 노래다.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전장에서 전우가 옆에서 죽어갈 때 나도 저렇게 될 것이란 생각에 두려워 몸이 굳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우의 시체를 보면 분노에 눈이 뒤집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는다고 한다. 최근 시위가 끊이지 않는 중동에서 시위대 앞에서 순교자의 관을 메고 행진하는 것도 잘 계산된 전술이다. 사람들을 분노하게 해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려는 것이다. 1930, 40년대 만주 빨치산이 적기가를 애창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투가 끝난 뒤 이성과 공포라는 인간 본연으로 돌아올 감정을 장례의식을 통해 다시금 분노로 승화시키는 데 적기가만큼 적절한 노래가 어디 있나 싶다. 6·25전쟁 때도 북한은 적기가를 통해 사람들의 분노의 감정을 계속 고조시켰다. 이 땅에선 적기가가 울려 퍼지는 곳에선 늘 피가 흘렀다. 적기가는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분노한 인간을 양산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공산주의를 당 강령에서 파버린 오늘날의 북한은 혁명가요를 가장 겁내는 나라가 됐다. 3대 세습의 왕조를 만들고, 옛날 적기가를 부르며 싸웠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기득권을 물려받는 체제를 겨우 구축했는데, 이제 굳이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해 투쟁심을 고취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적대계층이라는 벗을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쓰고 분노를 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다만 이들에겐 죽음의 공포를 이길 용기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북에서 살았던 때 적기가를 공식 행사에서 불렀던 기억은 한 번도 없다. 황장엽 비서가 망명했을 당시 북에서 적기가가 반짝 부각됐던 때는 있다.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라는 후렴 때문이었다. 하지만 ‘갈 테면 가라’고 해놓고 탈북자들을 악착같이 잡아다 엄벌하는 것이 북한이다. 오늘날 북한은 비겁한 자가 아니라 가장 용감한 자가 떠나는 나라가 됐다. 북한에선 적기가뿐 아니라 ‘목숨 걸고 혁명에 나서라’고 추동하는 다른 혁명가요들도 시대착오적 노래가 된 지 오래다. 그 대신 김정일 부자 찬양과 충성을 고취하는 세뇌의 노래만이 차고 넘친다. 만약 북한에서 ‘적기가’를 부르는 비밀 모임이 적발된다면 정신병자라는 딱지가 붙어 수용소에 종신 격리될 것이 분명하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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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세 ‘철의 여인’

    득실거리는 상어와 독성 해파리 떼, 거센 파도와 빠른 물살로 인간의 맨몸 수영 종단을 용납하지 않았던 미국 플로리다 해협이 마침내 한 여인에게 ‘꿈의 기록’을 허락했다. 52시간 54분 18.6초 동안 110마일(약 177km)을 헤엄친 여인의 나이는 놀랍게도 환갑을 훌쩍 넘긴 64세였다. 외신은 미국 장거리 수영선수 출신인 다이애나 나이어드 씨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오전 9시 쿠바 아바나 헤밍웨이 계류장을 떠나 2일 오후 2시경 플로리다 키웨스트 해변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꿈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을 트위터에 남겼다. 온몸이 퉁퉁 불은 채 해변에 도착한 나이어드 씨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꿈에 도전하기엔 절대 늙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이어드 씨는 1978년 처음으로 플로리다 해협 종단을 시도한 이후 다섯 번째 도전 만에 목표를 이뤘다. 네 차례의 실패는 해파리 떼와 조류, 폭풍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해파리를 이기기 위해 특수 장갑과 양말을 준비했다. 밤이면 수면 위에 떠오르는 해파리 떼를 피해 특수 실리콘 마스크를 썼다. 이 때문에 수영 시간이 더 길어졌다. 40분에 한 번씩 물 위에서 계란 스크램블과 파스타 등 음식을 먹었다. 그의 기록 달성을 돕기 위해 35명으로 만들어진 팀이 여러 척의 배를 타고 함께 나섰다. 이들은 상어를 쫓기 위해 미세한 전류를 물에 흘려보냈고 방향을 인도하기도 했다. 나이어드 씨는 1975년 뉴욕 맨해튼 주변 45km를 8시간 만에 헤엄쳐 주목 받았고, 1979년 바하마에서 플로리다까지 102마일(약 164km)을 27시간 반 만에 건넜다. 2011년 재도전하기 전까지는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의 해설자와 리포터로 일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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