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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알을 밀수하는 법.’ A 씨가 경찰 앞에 앉더니 책상 위에 놓인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희귀동물 밀수 조직에서 운반책으로 일하다 입건됐다. A 씨는 식빵과 통조림 깡통을 이용한 신종 밀수 방식을 그림까지 곁들여 생생히 설명했다. 다음은 A 씨가 경찰에 밝힌 밀수 방법이다. 우선 알을 솜으로 잘 싼다. 그러고 미리 구입한 비닐봉지에 든 식빵 사이마다 알을 넣는다. 이어 공기가 잘 통하도록 비닐봉지에 구멍을 숭숭 뚫는다. 통조림 깡통 밀수도 비슷하다. 깡통 안에 솜을 깔고 알을 놓는다. 그 위에 차례로 솜과 알을 층층이 쌓는다. 마찬가지로 구멍을 뚫는다. 초등학생의 유치한 장난 같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밀수 조직은 한 번에 앵무새 알 수백 개를 숨긴 식빵과 통조림이 담긴 가방을 들고 190여 차례나 공항으로 입국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2012년 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앵무새의 알을 밀수해 시중에 불법으로 유통한 혐의로 밀수업자 전모 씨(42)를 구속하고 S 씨(44) 등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이들은 대만과 태국 등지에서 190여 회에 걸쳐 앵무새 알 약 4만 개(6억5008만 원어치)를 구입해 밀수입했다. 현지 공급책부터 판매처까지 희귀동물 밀수 경로 전체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 관계자는 “밀수 방법이 생각보다 너무 단순해 놀랐다”며 “흉기 등 날카로운 물질은 X선 검사에서 잘 보이지만 알은 잘 보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당은 앵무새 알을 부화시킨 뒤 2, 3개월간 키워 파는 수법으로 10억2000만 원을 챙겼다. 개당 1만 원인 선코뉴어 앵무새 알과 80만 원인 아마존 앵무새 알을 부화시켜 각각 23만 원, 250만 원을 받았다. 이들은 범행을 감추기 위해 정상적인 경로로 들여온 어미새의 알인 것처럼 속이고 허위로 ‘국제적 멸종위기종 인공증식증명서’를 발급했다. 이처럼 희귀동물 수요가 늘면서 최근 불법 밀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김모 씨(39)는 희귀 원숭이 슬로로리스와 가비알 악어 등을 어른 양말 속에 넣고 발목 부분을 묶어 여행 가방에 넣어 왔다. 이번에 구속된 전 씨도 살아 있는 앵무새에게 수면유도제를 먹여 재우고 부리에 테이프를 붙여 밀수했다. 환경부는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해 지난달 13일부터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밀수하거나 국내에서 불법으로 거래한 사실을 제보하면 1인당 연간 최대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신규진 기자}

#. ‘자살 브로커’를 아시나요? 100만 원 자살 세트 팔고 사는 사회 #. ‘고통 없이 죽는 법, 100% 확실한 자살.’ 지난해 11월 ‘자살 브로커’ 송모 씨(55)가 자신의 트위터에 띄운 광고 문구입니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자살 브로커는 돈벌이 수단.송 씨는 장기 임차한 충남 태안 한 펜션에 질소 가스통, 타이머, 가스호스, 신경안정제 등 원가 50만 원 상당의 일명 자살 세트를 구비하고이를 100만 원에 팔았습니다.#. 스스로를 ‘저승사자’라 부르는 송 씨는 같은 달 인천 38세 여성 집에 찾아가 자살세트를 설치하기도 했죠.비닐로 텐트를 어떻게 감싸는지질소가스에 호스는 어떻게 연결하는지수면제는 어느 정도 먹고 타이머는 몇 시간에 맞춰 놓는지 등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법’을 소상하게 알려준 겁니다.#. 그해 12월에는 충남 홍성의 50대 남성 집에 자살세트를 설치해 주고자신의 펜션으로 20, 30대 여성 2명을 부르기도 했죠. 천만다행으로 지인의 112 신고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다행히 없었습니다.#. 송 씨도 사업 실패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죠. 그는 지난해 7월 차량 안에 연탄을 피우고 수면제를 먹었지만 실패했죠. 이후 질소가스를 이용하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자살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돈 문제로 자살을 택했다 돈을 벌기 위해 자살 브로커로 변신했다”경찰 관계자 #. 송 씨의 고객 중에는 젊은 여성이 많았는데요. 그는 극한 상황에 놓인 여성의 심리를 악용했습니다.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펜션으로 찾아온 22세 여성을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거나 자살 모임에서 만난 여성과 잠시 동거했죠.“죽음이 코앞이니 성관계쯤이야 대수롭지 않으냐는 식이었다.여성에게 유독 집착하고 접근했다”송 씨의 피해자들#.서울지방경찰청은 3일 자살방조 미수 등의 혐의로 송 씨를 구속했는데요. 송 씨는 경찰 조사에서 “돈을 받고 사람을 살리려 했다”고 주장했지만 그와 자주 연락한 50여 명 중 3명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자살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 한국의 자살자 수는 2011년 1만5906명에서 2015년 1만3513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가스 중독에 의한 자살은 같은 기간 1251명에서 2207명으로 늘었는데요. 인터넷에선 질소가스를 판매한다는 글이 버젓이 올라오고 택배로 집까지 배달해 주기도 합니다.#.“자살을 돕거나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는 인터넷 글 대부분이 사기나 성추행 목적으로 올린 글이다.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경찰 관계자자살률 1위에다 자살 브로커까지 판치는 한국.어떻게 고쳐야할까요?}

‘고통 없이 죽는 법, 100% 확실한 자살.’ 지난해 11월 ‘자살 브로커’ 송모 씨(55)는 트위터 아이디 ‘편안한 동행’으로 이 같은 광고 문구를 띄웠다. 그는 장기 임차한 충남 태안의 펜션에 질소가스통, 타이머, 가스호스, 신경안정제 등 일명 ‘자살세트’를 구비하고 동반 자살자를 모집했다. 원가 50만 원의 자살세트를 100만 원에 팔았다. 자살을 택했지만 죽음이 두렵거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이 송 씨의 주된 ‘고객’이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살로 내몰린 딱한 처지의 사람도 많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자살 브로커는 돈벌이가 됐다. 송 씨는 스스로를 ‘저승사자’라 불렀다. 같은 달 그는 인천에 사는 38세 여성 집에 찾아가 자살세트를 설치해 줬다. 그리고 비닐로 텐트를 어떻게 감싸는지, 질소가스에 호스는 어떻게 연결하는지, 수면제는 어느 정도 먹고 타이머는 몇 시간에 맞춰 놓는지 등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법’을 소상하게 알려줬다. 그해 12월에는 충남 홍성군에 사는 50대 남성 집에 자살세트를 설치해 주고, 자살을 도와주겠다며 펜션으로 20, 30대 여성 2명을 부르기도 했다. 다행히 지인의 112 신고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송 씨도 한때 자살을 시도했다. 운영하던 도매업이 망하자 지난해 7월 차량 안에 연탄을 피워 놓고 수면제를 먹었지만 실패했다. 이후 질소가스를 이용하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자살 방법을 연구했다. 햄스터로 실험까지 마쳤다.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장기간 일하며 죽음을 가까이 한 경험도 자살 방법을 연구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송 씨가 돈 문제로 자살을 택했다가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자살 브로커로 변신했다”고 전했다. 동반 자살 희망자 중엔 20, 30대 젊은 여성이 많았다. 송 씨는 극한 상황에 놓인 여성의 심리를 악용해 성적인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펜션으로 찾아온 22세 여성을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며 강제추행한 것. 죽음이 코앞이니 성관계쯤이야 대수롭지 않으냐는 식이었다. 동반 자살 모임에서 만난 여성과는 잠시 동거하기도 했다. 송 씨의 피해자들은 “여성에게 유독 집착하고 접근했다”고 전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자살방조 미수, 무허가 고압가스 판매 등의 혐의로 송 씨를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또 송 씨와 함께 자살 브로커로 활동한 이모 씨(38)도 자살방조 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동반 자살 모임에서 송 씨를 알게 된 이 씨 역시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이 있었다. 송 씨는 “돈을 받고 사람을 살리려 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과 자주 연락한 50여 명 중 3명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자살한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자살을 돕거나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는 인터넷 게시글 대부분이 사기나 성추행 목적으로 올린 글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자살자 수는 2011년 1만5906명에서 2015년 1만3513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가스 중독에 의한 자살은 1251명에서 2207명으로 늘었다. 인터넷에선 질소가스를 판매한다는 글이 버젓이 올라오고 택배로 집까지 배달해 준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신규진 기자}

“오늘 용의자들을 북한대사관 앞에서 본 사람이 있나?”(미국 방송 기자) “오후 9시 기준 발견하질 못했다.”(말레이시아 현지 기자) “(김정남 피살 용의자인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의 사진을 올리며) 우리의 취재 목표(target)다.”(미국 기자) 24일 늦은 밤(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현지 취재진이 가입해 있는 페이스북 모바일 메신저 ‘와츠앱’의 단체 메시지 방의 한 대화 내용이다. 경찰 수사로 북한대사관의 조직적 개입 정황이 확인된 후 각국 취재진 수십 명이 24시간 북한대사관 앞을 생중계하듯 감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온라인 메신저를 이용해 취재 정보를 공유한다. 이 미국 기자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현광성과 김욱일은) 분명 말레이시아 안에 있다. 우리는 전략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치 용의자를 잡으러 나선 형사의 모습이었다.○ ‘범죄자 소굴’로 낙인찍힌 북한대사관 현지 매체가 북한이 김정남 암살에 사용한 맹독성 신경 독가스 ‘VX’를 북한대사관이 외교행낭을 통해 들여왔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한 이후 북한대사관은 ‘범죄자의 소굴’로 낙인찍힌 분위기였다. 26일 오후에도 북한대사관 앞은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기자들로 북적였다. 취재진은 해수욕장 파라솔과 의자, 돗자리를 구해와 자리를 잡고 두 눈과 카메라 렌즈를 북한대사관에 고정했다. 사진기자들은 ‘채증’하듯 사진을 찍었다. 25일 오후 3시경 북한 주민 20여 명이 북한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매주 주말이면 대사관 직원 가족이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생활 총화’(한 주간 생활을 비판하고 계획하는 일)가 열린다고 한다. 현지 기자들은 가방과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는 북한 주민을 한 명도 빠짐없이 사진에 담았다. 혹시 용의자가 섞여 있지 않나 그 자리에서 사진을 확대해 얼굴을 확인하기도 했다. 주민 20여 명은 2시간가량 대사관 안에 머물렀다. 대사관은 24시간 커튼을 치고 있어 내부 상황을 밖에서 짐작할 수 없었다. 이날 총화의 강도가 여느 때보다 강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북한대사관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계속됐다. 취재진의 카메라에 대사관으로 들어가던 관용 벤츠 차량의 사이드미러가 부러지자 차에서 내린 직원은 “누가 부쉈나”라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기자들이 “현광성, 안에 있느냐”며 질문을 퍼부었지만 그는 무시하고 떠났다. 북한대사관은 직원의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대사관 건물 문 앞에 승용차가 들어갈 만한 공간을 띄워 놓고 그 앞에 밴을 세워 뒀다. 승용차에서 오르내리는 사람을 밴으로 가려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북한 소행이 분명한 증거를 내놓고 있지만 북한대사관이 “경찰 발표는 모두 거짓말, 중상비방이다. 이는 모두 남한의 공작”이라고 일관하자 외국 기자들은 “북한의 대응에 이성이나 합리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지 신문 기자는 “북한이 외교관 면책특권을 노려 대사관을 앞세워 범행을 저지른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우리와 외교를 맺은 국가라면 ‘용의자들이 다른 알리바이가 있기 때문에 혐의가 없다’는 식으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 해명하는 것이 우리를 존중하는 외교관의 자세”라고 비판했다. 택시 운전사 발라 씨는 “이복형을 죽일 정도로 ‘악마(evil)’ 같은 김정은을 향한 분노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우리도 시신을 북한이 가로채 갈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VX 청소, 말레이시아 정부도 여론전 26일 오전 2시경 말레이시아 당국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서 대대적인 VX 제독 작업에 나섰다. 공항은 100여 명의 말레이시아 소방관과 경찰 등으로 가득 찼다. 경찰은 김정남이 VX 공격을 당한 키오스크와 응급센터 등 곳곳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방역복을 입은 직원들은 2청사 구석구석을 돌며 VX가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1시간가량 확인 작업 후 현지 경찰은 “공항에서는 위험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지에선 말레이시아 정부가 국내외 언론을 공항에 불러 공개적으로 방역 작업에 나선 것이 자국 공항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한편 VX의 위험성을 강조해 북한에 강경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언론에 근접 촬영을 허가했다. 17일 도안티흐엉(29·여) 등 살해 용의자를 대동한 현장검증 당시에는 근접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다.쿠알라룸푸르=박훈상 기자·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좀 도와주시라요….” 말레이시아 교민 A 씨는 2013년 가을 쿠알라룸푸르 세이폴 국제학교를 찾았다가 학교 직원의 다급한 부탁을 받았다.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이 자녀의 입학을 원하고 있다며 통역을 요청한 것. A 씨가 직원을 따라가니 난감한 표정의 한 중년 남성이 있었다. 여권을 보자 북한 사람이었다. 그는 A 씨에게 “아들을 학교에 입학시키고 싶다. 그런데 내가 영어가 안 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간곡한 부탁에 A 씨는 입학 수속을 도왔다. A 씨는 “그때만 해도 여기 한국 교민과 북한 사람 사이에 크고 작은 교류가 있었다. 서로를 피하거나 적대시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1960년, 북한과 1973년 수교했다. 특히 북한과 무비자 방문 협정을 맺는 등 국제사회에서 남다른 관계를 맺은 나라다. 22일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약 1만3000명, 북한인은 400명가량으로 알려졌다. 북한인은 대부분 떨어져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타운’으로 부를 만한 집단 거주지역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남북한 주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다.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접촉한 곳은 학교다. 자녀라는 공통점을 통해 마치 이웃처럼 지낸 경우도 있다. 일부 교민은 남북한 아이들을 자신의 차량에 함께 태우고 등하교를 시킬 정도로 가까웠다고 한다. 또 학교 행사에서 만나면 자녀의 학업 고민도 서로 나눴다. 여느 학부모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치적인 이야기나 상대의 직업은 묻지 않았다. 현지 한국 식당에도 북한 사람이 자주 드나들었고 종종 술을 마셨다는 교민도 있다. 고국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한다는 공통점이 경계의 벽을 낮춘 것이다. 상황이 돌변한 건 2013년 12월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면서다. 교민들은 “그때부터 현지 북한인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비공식 교류와 일상적 만남까지 완전히 중단됐다”고 말했다. 당시 국제학교에 다니던 북한 국적의 아이들이 일제히 사라졌다는 증언도 있다. 현지의 한 국제학교 졸업생 C 씨(19)는 “장성택이 처형됐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 날 당시 다니던 북한 학생 3명이 사라졌다. 대사관 직원 아들인 성이 ‘최’였던 친구도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민들에 따르면 북한인들은 이후 알고 지내던 한국인과 길에서 마주쳐도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지나쳤다. 이런 상황이 3년 넘게 이어지던 중 이번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터진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북한과의 무비자 방문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현지 교민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선 더욱 차가워진 북한 사람들을 일상생활에서 계속 마주쳐야 한다. 이번 김정남 암살 사건이 안겨준 테러의 공포감도 크다. 한 교민은 “김정남이 이곳에서 피살됐으니 앞으로 우리도 그렇고 북한 사람들도 먼저 손을 내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한솔이 온다.” 21일 오전 1시 반경(현지 시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병원 부검센터 앞에 있던 국내외 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말레이시아 사복 경찰관이 승용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부검센터에 도착했다. 취재진이 경찰을 따라 내부로 들어가려 하자 경비 경찰이 막아섰다. 기자들의 가슴팍을 밀치며 “물러서라”고 저지했다. 도착한 사복 경찰들은 축구 유니폼 상의를 입은 현장 책임자의 지휘 아래 부검센터 주변을 살폈다. 잠시 후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4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차량에선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실탄이 장착된 기관총을 든 10여 명이 내렸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조직범죄특수부대원이었다. 키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의 특수부대원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부검센터 밖 취재진을 노려봤다. 이때 의료진으로 보이는 현지 여성 2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부검센터에 도착했다. 이제 남은 건 김한솔 도착뿐이었다. 그러나 이날 아침까지 김한솔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부검센터를 나서는 차량마다 불빛을 비췄지만 김한솔의 얼굴은 없었다. 오전 5시 반에는 특수부대원들도 속속 부검센터를 떠났다. 김한솔이 왔다 갔는지, 시신 인도 절차가 시작됐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장 경찰관은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거나 “아이 돈트 노(나는 모른다)”만 반복했다. 현지 중국어 매체인 ‘중국보(中國報)’는 이날 김한솔이 말레이시아 경찰의 도움을 받아 특수경찰로 변장해 쿠알라룸푸르병원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김한솔이 김정남의 시신을 확인하고 유전자(DNA)를 추출한 뒤 병원에서 특수부대가 철수할 때 같이 떠났다고 전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경찰 고위 관계자는 현지 언론에 “특수부대원을 집중적으로 배치한 건 김한솔의 방문과 상관없다”며 “대중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건이라 경비를 강화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김한솔의 말레이시아 입국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앞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19일 유족에게 시신 인도 우선권이 있다고 밝혔다. 이후 김한솔 등 김정남 가족이 말레이시아를 찾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20일에는 현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김정남 아들이 오후 7시 50분경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같은 날 오후 로이터와 현지 언론 ‘더스타’ 등은 김한솔이 거주지인 마카오에서 에어아시아 AK8321편을 통해 말레이시아에 들어왔다고 전했지만 탑승객 중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입국장에서 김한솔 또래의 동양계 남성이 마스크를 쓰고 빠져나가자 기자 100여 명이 일제히 그를 쫓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유족이 시신 인도를 요구한 것이 없다”며 김한솔 입국을 부인하고 있다. 암살 사건 배후가 북한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김한솔이 위험을 무릅쓰고 말레이시아를 찾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 TV아사히는 “김한솔이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의 시신을 확인한 뒤 다시 출국했다는 정보도 있다”고 전했다. 앞서 김한솔은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 졸업 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마카오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솔이 중국 당국의 보호 아래 어머니 이혜경 씨와 동생 솔희와 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많은 언론이 마카오 현지를 수소문했지만 김정남 피살 사건 후 김한솔을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김한솔에 대한 가장 최근 목격담은 피살 사건 일주일 전이다. 김한솔과 함께 롄궈(聯國)학교에 다녔던 현지 교민 A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김한솔이 동생 김솔희와 함께 롄궈학교에 친구를 보러 왔었다”고 말했다.쿠알라룸푸르=박훈상 기자·황성호 hsh0330@donga.com / 이세형 기자}

북한 당국에 암살된 김정남의 장남 김한솔(22·사진)이 20일 오후 7시 30분경(현지 시간) 사건 현장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현지 언론인 ‘더스타’와 ‘중국보(中國報)’ 등에 따르면 김한솔은 이날 거주지인 마카오에서 에어아시아 AK8321편을 통해 말레이시아에 입국했다. 로이터통신은 김한솔이 아버지의 시신이 안치된 쿠알라룸푸르 병원 영안실에 나타났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가족이 직접 와서 시신을 인수하라”고 요구하자 이에 응하는 모양새지만 그를 보호하고 있는 중국 당국이 이동을 허락해 이번 사건에 개입하는 것으로 해석돼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김한솔은 2012년 핀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촌인 김정은을 독재자로 언급한 바 있다. 중국의 개입은 김정남 암살 사건 뒤 ‘단교 위기’까지 치닫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북한 간 갈등에서도 북한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 이름은 김철’이라며 암살 대상자가 김정남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북한에 ‘무리한 주장을 그만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시신 인도 요구를 거절하면서 시작된 갈등은 19일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 폭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나집 라작 총리는 20일 오후 5시 기자들과 만나 “(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과 의사들은 아주 객관적이며, (결과를) 절대적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 이유가 없고, 말레이시아 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이 이해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북한 평양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키로 했으며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를 이날 초치(招致)해 북한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전달했다. 강 대사도 말레이시아 외교부에 초치됐다 돌아온 오후 3시경 북한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이미지를 실추하는 많은 루머가 떠돌고 있다”며 “이 사건으로 이익을 얻은 쪽은 커다란 정치적 혼란에 직면한 남한 당국이다. 동시에 미국이 힘을 합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전략에 이용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보건부는 김정남 시신 부검 결과를 이르면 22일 발표할 예정이다.쿠알라룸푸르=박훈상 tigermask@donga.com·이세형 기자}
“조센! 북한 가족이 살고 있다.” 19일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관에서 차량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타만데사 지역의 한 콘도 경비원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콘도엔 중국계 말레이시아 중산층이 주로 거주한다. 콘도 입구엔 군부대 초소 같은 경비실이 설치돼 있어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경비원은 “북한 사람들이 있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서너 가족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차량엔 모두 빨간색 번호판에 북한대사관 차량을 나타내는 ‘28’과 ‘DC’가 적혀 있었다. 콘도가 북한대사관 직원과 가족의 숙소란 의미다. 이곳은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로 의심하고 있는 평양 출신 리영(58)의 주거지로 제보된 곳. 경찰은 리영과 나이가 같은 아내의 여권 정보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가 제시한 리영의 흑백 사진을 본 경비원은 “북한 사람들은 걸어다니지 않고 차로만 다닌다. 얼굴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답했다. 말레이시아 경찰 정보에 정통한 현지 소식통은 “리영은 북한대사관의 보호를 받으며 리정철(47) 등 암살단 뒤에서 살해를 기획하거나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경찰이 김정남 피살 과정에 북한대사관의 조직적 개입 정황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북한대사관 직원들의 숙소인 콘도와, 경찰에 체포된 리정철의 집은 인접해 있었다. 콘도에서 택시를 타고 5분가량 이동하자 리정철이 경찰에 검거된 다른 콘도에 도착했다. 리정철은 동갑인 아내 강선희, 두 자녀와 함께 이 콘도에서 살았다고 한다.쿠알라룸푸르=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황성호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을 수사해 온 말레이시아 경찰이 이번 사건의 배후로 사실상 북한을 지목했다. 19일 오후 3시(현지 시간) 수도 쿠알라룸푸르 경찰청에서 열린 사건 관련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신원이 확인된 남성 용의자 5명이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리정철(47)은 검거됐으나 리재남(57), 오종길(55), 리지현(33), 홍송학(34)은 사건 당일(13일) 모두 국외로 도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외에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리지우(30)와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남성 2명을 포함해 이 사건과 관련된 북한 국적자는 모두 8명으로 드러났다. 참고인을 포함한 전체 관련자도 11명으로 늘었다. 경찰은 붙잡힌 리정철과 베트남인 도안티흐엉(29),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 말레이시아인 무하맛 파릿 빈 잘랄루딘(26), 참고인 리지우 등을 상대로 사건 전모를 추적 중이다. 이번 사건은 북한 정찰총국 소속 전문요원으로 추정되는 리재남 등 4명이 치밀하게 계획해 지난해 8월 근로자 자격으로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현지 정보기술(IT) 회사 직원 리정철과 동남아 여성 2명 등을 포섭해 실행한 암살 사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리재남 등 4명이 출국한 상태여서 수사에 난항이 예상된다. 현재까지 이번 사건에 침묵하고 있는 북한은 리재남 등이 북한인이라는 사실까지 부인하며 ‘모략 책동’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일본 교도통신은 싱가포르TV 방송을 인용해 리재남 등 4명이 러시아 등 3개국을 거쳐 17일 북한 평양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누르 라싯 이브라힘 부경찰청장은 김정남 사망 원인과 관련해 “현재 독성 검사가 진행 중이며 부검 보고서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검이 진행된 지 4일이나 됐지만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아 범인들이 청산가리 같은 기존의 독성 물질 대신 인체에 남지 않는 신종 독성 물질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김정남의 시신을 인도받을 우선권이 ‘유가족’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단, 시신을 받으려면 가족이 직접 현지로 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를 대표해 발표한 논평에서 “용의자 5명이 북한 국적자임을 볼 때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그동안 반인륜적 범죄와 테러 행위를 자행해 왔다는 점을 볼 때 우리와 국제사회는 무모하고 잔학한 이번 사건을 심각한 우려와 함께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뮌헨 안보회의 참석차 독일에 머물고 있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9일 기자들과 만나 “주요 20개국 외교장관회의 과정에서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해 관심 갖고 질문하는 참석자들이 꽤 많았다”며 “(이런 일을 저지르는) 북한 지도자의 스타일이 한반도 정세에 어떤 함의를 미치는지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말했다. 고위 당국자는 “다음 달 초 예정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이번 사건의 인권 문제, 주권 침해 문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처벌 문제 등이 포괄적으로 공론화될 것”이라고 말했다.쿠알라룸푸르=박훈상 기자·이세형 turtle@donga.com·주성하 기자 /뮌헨=동정민 특파원}

말레이시아 경찰이 북한 평양 출신의 리영 씨(58)를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 인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리 씨의 여권 정보를 확보해 행적을 추적하는 한편 그가 북한 정찰총국이나 국가보위성 소속인지 확인하고 있다. 17일 말레이시아 경찰 정보에 정통한 현지 소식통은 “리 씨가 살해 용의자는 아니지만 사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경찰은 용의자 일당 가운데 공항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북한계 남성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 2명 등을 섭외해 다국적 청부 암살단을 조직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추적 중인 북한계 남성이 대사관 직원들과 밀접한 관계라는 첩보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경찰은 현지 북한대사관 주변을 24시간 밀착 감시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대사관을 출입하는 인사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상부에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17일 북한대사관 인근에서 만난 현지 경찰관은 수사 상황을 묻는 질문에 “함구령이 떨어졌다”며 손사래를 쳤다. 현지 중국어 매체 중국보(中國報)는 한 동양인 남성이 3개월 전 베트남 여성 용의자 도안티흐엉(29)을 포섭해 베트남과 한국 등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장난 패러디 영화를 찍는다며 김정남에게 했던 암살 방식을 훈련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여성 용의자 시티 아이샤(25)도 합류했다. 경찰이 쫓고 있는 북한계 용의자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사건 이틀 전에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같은 ‘장난’을 연습시켰다는 것이다. 경찰은 체포한 여성 용의자 두 명을 상대로 이날 새벽 범행 장소인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공항 승객이 드문 오전 1시 10분부터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현장검증은 무장경찰 150여 명이 삼엄한 경계를 편 가운데 진행됐다. 특히 김정남이 독액 공격을 당한 국제선 출발 카운터 인근은 사방 100m부터 접근이 일절 차단됐다. 중국보는 “여성 용의자 2명이 경찰에서 김정남에게 독액을 어떻게 분사했는지, 공항에서 어떻게 달아났는지를 빠짐없이 재현했다”고 전했다. 흐엉은 병원에서 독극물 반응 검사 등을 받았다. 현지 중국어 매체인 광화(光華)일보는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남 시신에 (주사 자국 등) 외상은 없지만 얼굴이 불그스름해 범행에 사용된 독극물이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쿠알라룸푸르 병원에 안치된 김정남의 시신 인도 우선권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기로 했다고 현지 통신 베르나마가 17일 보도했다. 사실상 북한 당국이 아닌 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현지 경찰은 유족이 유전자(DNA)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황인찬 hic@donga.com·윤완준 기자·쿠알라룸푸르=박훈상기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이 이번 사건의 배후로 북한 공작업무 총괄기구인 정찰총국 소속으로 보이는 40세 남성을 추적 중이라고 현지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매체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용의자들 가운데 (사건 현장에서) 여장을 한 남성이 한 명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다툭 세리 하룬 연방경찰 특별수사국 국장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 정보기관의 소행이라는 근거를 갖고 있다. 두 명의 암살자(검거된 여성 용의자 2명) 외에 분명히 다른 인물들이 개입돼 있다”고 밝혔다. 13일 김정남이 피살된 이후 북한 정보기관 개입설이 현지 언론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동남아시아 현지인들을 고용해 김정남을 청부 살해했을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어서 주목된다. 현지 중문지 둥팡(東方)일보도 이날 현지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체포된 2명의 여성 용의자와 도주 중인 4명의 남성 모두 특정 국가의 정보기관에 소속된 공작원이 아니라 (이 국가의) 살인 청부를 받은 암살단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암살의 배후에 있는 국가 또는 기관을 파악했다”며 “과거 정보에 따르면 해당 국가는 암살 작전을 수행할 때 정보기관을 직접 활용하지 않고 암살단을 고용했다”고만 하고 북한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로 경찰이 신병을 확보한 여성 용의자 2명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현지인이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사흘 만인 이날 오전 2시경 두 번째 여성 용의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국적 여권을 소지한 이 여성의 이름은 시티 아이샤로 나이는 25세다. 한때 체포된 용의자로 알려진 말레이시아인 남성(26)은 아이샤의 남자친구로 아이샤의 검거를 도운 조력자로 판명됐다고 현지 더스타지가 보도했다. 탄 스리 바카르 경찰 수사팀장은 “아이샤는 (사건 당일) 공항 폐쇄회로(CC)TV에 담긴 인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전날 검거된 베트남 국적의 도안티흐엉(29)이 김정남의 입을 막기 전 김정남의 얼굴에 독액을 뿌린 살해 주범으로 보인다. 경찰은 흐엉과 아이샤를 상대로 남성 용의자 4명의 행방과 북한과의 관련 여부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한편 아맛 자힛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김정남의 사망 뒤에 북한이 있다는 건 현재로선 추측일 뿐”이라며 “김정남의 죽음이 두 나라(말레이시아와 북한)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신 인도 여부에 대해 “밟아야 할 절차들이 있다”는 전제로 “어떤 외국 정부라도 요청하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원론적으로 말했다.쿠알라룸푸르=박훈상 기자·황인찬 hic@donga.com·윤완준 기자}

김정남 독살 관련 용의자로 추정되는 여성 2명 중 1명이 15일 체포됐다고 말레이시아 현지 경찰이 밝혔다. 김정남이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항에서 독살된 경위 등 이번 사건을 둘러싼 각종 미스터리를 풀어낼 핵심 인물이 일단 확보된 셈이다. AP통신과 교도통신은 현지 경찰 간부의 말을 인용해 김정남이 ‘독액 스프레이’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에 따르면 이 여성은 여권 확인 결과 베트남 국적으로 이름은 조안 티 흐엉, 나이는 29세로 나와 있다. 이 여성은 이날 베트남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정남이 독살된 현장인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터미널에 나왔다가 사건 발생 48시간 만인 오전 8시 20분(현지 시간)쯤 체포됐다. 탄 스리 칼리드 아부 바카르 경찰 수사팀장은 “우리는 이 여성이 월요일 사건(김정남 독살)에 개입된 인물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여성이 실제 베트남 여성인지, 위조 여권을 가진 북한 공작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또 다른 여성 용의자 1명의 신병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적이 어디인지를 놓고 혼선이 일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여성 용의자 1명은 북한인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말레이시아 범죄수사국(CID) 관계자는 “한국 여권을 가진 여성도 조사 중”이라며 “이 여성의 외모는 한국인으로 보이지만 경찰에서 줄곧 영어로 진술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여성 용의자 외에 20∼50대 남성 4명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이들을 추적하고있다. 김정남의 사망 원인과 살해 방법 등을 밝혀줄 시신 부검도 진행됐다. 이날 북한은 김정남 시신 인도를 요청했지만 말레이시아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쿠알라룸푸르병원 안팎엔 긴장감이 돌았다.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오후 2시경 병원에 도착해 부검이 끝날 때까지 머물렀지만 부검 현장엔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독살이 5년 전부터 북한 당국 차원에서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이라고 밝혔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출석해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 집권 이후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2009년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은 집권 전이자 아버지 김정일이 생존해 있던 2009년과 2010년에도 각각 평양과 중국 베이징에서 김정남 암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본격적인 (암살) 시도가 한 번 있었다”며 “그해 4월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살려달라’고 읍소하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김정남이 해외 도피 생활을 하며 권력에 뜻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암살된 것에 대해 이 원장은 “김정은의 편집광적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남이 ‘김정남 세력’을 구축한 뒤 정권 교체를 도모했거나 한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는 등의 움직임은 없었던 것으로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손효주 hjson@donga.com·황인찬 기자·쿠알라룸푸르=박훈상 기자}
15일 오후 1시 30분(이하 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병원 부검센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북한대사관이 말레이시아 당국에 시신 인도를 요청하고 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진 가운데 현지 경찰은 병원 건물 밖에서부터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병원 앞에는 각국의 취재기자 100여 명이 몰렸지만 무장경찰 10여 명이 병원 건물을 지키며 “미디어는 안 된다”며 출입을 막았다. 앞서 김정남의 시신은 이날 오전 8시 30분경 푸트라자야 병원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푸트라자야 병원은 피살 장소인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가깝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당국은 부검을 위해 더 큰 병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울타리 안쪽 건물 현관 앞에는 김일성 배지를 가슴에 단 남성들이 오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한 남성은 현관 앞을 서성대고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기도 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찰의 눈을 피해 본보 기자가 담벼락 너머로 “북한 사람인가. 왜 여기 있느냐”고 묻자 이들은 멈칫하며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다 영어로 “아이 돈트 노(모른다)”라고 답했다. 이들이 현관 앞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곧 드러났다. 오후 2시 12분경 북한 인공기를 단 검은색 재규어 차량이 병원에 도착했다.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가 차량에서 내렸다. 강 대사는 병원 앞에서 대기 중이던 취재진을 피해 차를 타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말레이시아 경찰들이 깍듯하게 악수를 청했다. 강 대사가 격려하듯 경찰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날 아침 강 대사가 오기 전부터 병원 근처에서는 렉서스와 아우디 등 북한대사관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차량 3대가 발견됐다. 모두 외교관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부검은 오후 8시경 끝났다. 한편 이날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분위기는 이틀 전 독살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다. 공항 키오스크 주변은 발권하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고 관광객을 위한 전통춤 공연도 펼쳐졌다. 공항 이용객인 말레이시아인 만프릿 사인 벳 씨(35)는 “북한 테러리스트가 이곳에서 살인을 했다니 믿을 수 없다. 왜 말레이시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라며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공항 관계자들은 함구령이 내려진 듯 해당 사건을 묻는 취재진에 “경찰을 통하라”며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한 직원은 기자들이 몰려 취재 경쟁을 벌이자 “입을 열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 홍보 담당자인 샤흐린 라힘 씨는 “공항에서 이용객이 아프거나 쓰러지는 일이 흔하다. 이용객이 쓰러져서 병원에 보냈을 뿐”이라며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사실 확인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쿠알라룸푸르=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안녕하세요. 이창수라고 합니다.’ 이달 초 A여행사 직원이 받은 e메일 인사말이다. 본문에는 “이달 말 여행을 가려고 한다. 질문사항을 첨부파일에 정리했으니 확인하고 예약 가능한지 알려 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발신자가 실명까지 밝혔기에 여행사 직원은 별 의심 없이 첨부파일을 클릭했다. 그러자 컴퓨터 바탕화면이 가상화폐 1비트코인(약 120만 원)을 요구하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72시간 내에 입금하라’고 협박 내용이 떴다. 발신자 ‘이창수’는 인쇄업체에 명함 디자인을 의뢰하고, 변호사 사무실에 법률 상담을 문의하는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신종 랜섬웨어(Ransomware)주의보가 내려졌다. 랜섬웨어는 이용자의 컴퓨터 파일을 암호화하고 이를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비너스락커’라는 새로운 랜섬웨어가 첨부된 ‘이창수 e메일’이 유포되고 있다. 발신자인 ‘이창수’는 자영업자나 공공기관 직원에게 상대방 업무와 관련된 e메일을 보내 클릭을 유도한다. 현재까지 경찰에 10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영어가 아닌 한글로 작성된 랜섬웨어 e메일 유포는 처음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doc.lnk, .jpg.lnk와 같은 이중 확장자로 된 문서와 이미지 파일은 실행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라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바른정당 장제원 의원(50·사진)이 고교생 아들을 둘러싼 각종 논란으로 12일 모든 당직에서 사퇴했다. 장 의원의 아들 장모 군(고교 1년)은 10일 케이블채널 엠넷의 고등학생 랩 대항전 프로그램 ‘고등래퍼’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방송 직후 장 군의 이름은 주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고 정식 가수 캐스팅 제안까지 받았다. 이 과정에서 장 의원의 아들인 사실이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평소 장 의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아들 이름을 언급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11일 새벽부터 장 군의 과거 행적을 폭로하는 글들이 온라인에 퍼지기 시작했다. 트위터 캡처 화면을 보면 ‘16살 오프(조건만남) 하실 분 5만원 문상(문화상품권) 주셔야 돼요’ 등 성매매를 암시하는 여러 글에 ‘오빠랑 하자’ ‘조건하고 싶다’란 답이 달려 있다. 누리꾼들은 트위터 계정을 근거로 장 군이 성매매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장 군이 친구와 주고받았다는 페이스북 캡처 메시지엔 친구에게 ‘담배 피는 건 뭐라 하지 않으면서 ××’ ‘우리 엄마 ×때려주라’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흡연과 음주 사진도 올라오고 일진설까지 불거졌다. 누리꾼의 비난은 장 의원을 향했다. 장 의원이 지난해 말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딸 정유라 씨(21)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과 학사 특혜, 그리고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의 아들 운전병 특혜 의혹 등 자녀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장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 “○○이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척 반대했고, 그 과정 속에 ○○이가 많이 방황하고 힘들어한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장 의원과 장 군에 대한 비난은 가라앉지 않았다. 장 의원은 결국 12일 “수신제가(修身齊家)를 하지 못한 저를 반성하고 이번 일로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깊이 사죄드린다. 다시 한 번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다”며 대변인직과 부산시당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말할 수 없는 욕설과 살인적 댓글에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다”며 SNS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적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송찬욱 기자}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의 인기가 치솟자 이를 악용한 사이버범죄 주의보까지 내려졌다. 지난달 24일 한국에 출시된 포켓몬 고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들고 계속 장소를 옮겨야 한다. 발품 팔기 어렵거나 희귀한 몬스터를 갖고 싶은 사용자들은 ‘꼼수’에 눈을 돌린다. 포켓몬 고 사이버범죄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노린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7일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과 악성코드 유포, 아이템 거래 사기 등 포켓몬 고 관련 사이버범죄 유형을 발표했다.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은 몬스터 사냥 정보 공유, GPS 좌표 조작, 이동 속도 증가, 자동 레벨업 서비스 등 포켓몬 고 이용을 돕는 보조 애플리케이션 이용 때 많았다. 경찰에 따르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판매 중인 포켓몬 고 관련 한국어 애플리케이션은 44개. 문제는 상당수 앱이 게임과 아무 관련 없는 사진과 동영상, 주소록, 메시지 등에 과도한 접근 권한을 요구하는 것이다. 앱마다 평균 10개, 가장 많은 앱은 무려 34개의 권한을 요구했다. 경찰 관계자는 “앱 제작 업체가 스마트폰 속 연락처와 사진 동영상 등 민감한 개인 정보를 유출할 위험성이 크다”라며 “불필요한 권한을 요구하는 앱을 삭제하거나 스마트폰 설정 때 아예 차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해외에선 스마트폰 관리자 권한을 요구하는 앱을 깔았다가 모바일 광고가 쉴 새 없이 나타나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앱 제작 업체가 광고 수익을 노리고 악성코드를 깐 것이다. 컴퓨터 앞에 가만히 앉아 ‘오토봇’(자동사냥) 프로그램으로 몬스터 잡기에 나섰다가는 악성코드에 감염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해킹 업체가 제작한 오토봇 프로그램에서 구글 계정 비밀번호를 유출하거나 PC에 저장된 파일을 삭제하는 악성코드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라고 말했다. 발품도 꼼수도 싫어서 돈으로 승부를 보다간 사기를 당할 수 있다. 네이버 ‘중고나라’ 등 인터넷 중고 시장에선 희귀 몬스터가 포함된 포켓몬 고 계정을 판매한다는 글이 하루 수십 개씩 올라온다. 7일 한 판매자는 ‘자녀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분, 시간이 없는데 포켓몬은 잡고 싶은 분, 귀찮은 분 모두 환영한다’고 광고하며 자신이 육성했다는 게임 계정을 판매했다. 잡기 힘든 희귀 몬스터가 다수 포함된 계정은 가격이 수십만 원이었다. ‘원하시는 몬스터 대신 잡아 드립니다’ 같은 대리 알바도 극성이다. 돈을 받고 상대방 계정으로 접속해 몬스터를 잡아 주는 것이다. 하지만 구글 계정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모바일 게임 특성상 판매자와 거래자가 직접 만나 거래하지 않기 때문에 돈만 받고 연락을 끊는 사기 위험이 크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동혁 기자}

“자주 오는 손님이 수배자와 닮았어요. 머리 길이는 짧은데 얼굴형이 닮았어요.” 지난해 7월 11일 걸려 온 112 신고 내용이다. 전북 남원시에 사는 신고자는 단골손님 중 한 명이 수배 전단 속 살인 용의자 유모 씨(61)와 닮았다고 말했다. 경찰청 중요 지명피의자 종합 공개수배 전단에는 유 씨의 사진과 ‘신장 170cm. 보통 체격. 전라도 말씨’라는 설명이 있다. 경찰은 신고 접수 4일 만에 유 씨를 검거했다. 그는 2014년 10월 광주 자신의 아파트에서 아내(당시 56세)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수배된 상태. 사건 발생 당일 그는 “아내가 화장실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 같다”라고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이 시신 가슴 부위에서 멍을 발견하고 부검을 하려 하자 장례도 치르지 않고 사라졌다. 유 씨는 1년 9개월간 전국을 돌며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잠은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해결했다. 도피 행각은 2016년 7월 1일 종합 수배 전단이 게시된 지 딱 10일 만에 끝났다. ‘매의 눈’을 가진 가게 주인이 얼굴 특징을 잡아 낸 덕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렇다 할 단서가 없어 영영 잡지 못할 뻔했다”라며 “도피 중 불안에 떨던 유 씨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라고 말했다.‘베테랑 형사’ 뺨치는 종합 수배 전단 경찰의 종합 수배 전단이 장기 수배자를 잡는 저승사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종합 수배 전단에 이름을 올린 용의자 129명 가운데 71명이 검거됐다. 검거율 55%다. 종합 수배 전단엔 수배자 20명의 얼굴 사진과 이름 혐의 특징만 간단히 적혀 있다. 하지만 모두 6개월 이상 행방을 감추거나, 재범 위험성이 높은 수배자를 잡은 것이라 효과는 크다. 전단 한 장이 ‘베테랑 형사’ 못지않다. 그렇다고 아무 수배자나 종합 수배 전단에 이름을 올릴 수는 없다. 지난해 12월 기준 지명수배는 3만1369건이다. 매년 상, 하반기 각 지방경찰청은 지명수배 후 6개월 이상 잡히지 않은 수배자를 경찰청에 보고한다. 경찰청은 5월과 11월 변호사, 성형외과 전문의 등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공개수배위원회를 열고 최종 20명을 선정한다. 경쟁률로 환산하면 무려 1568 대 1이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 강간 등 강력범, 고액·다수 피해 경제사범 등 범죄가 중대하고 추가 피해 우려가 있는 수배자를 우선 선정한다”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종합 수배 전단 3만 장을 인쇄해 경찰서와 지구대뿐 아니라 교도소 구치소 등 교정시설과 읍면사무소, 주민센터, 은행 등 사람들 눈에 잘 보이는 장소에 게시한다. 수배자가 은신하거나 나타날 수 있는 공간에도 부착한다. 가끔 언론에 공개되는 한 명짜리 수배 전단은 사건 발생 직후 빠른 검거가 필요할 때 제작해 배포한다.전단으로 찾고 SNS로 검거 아파트 재건축 조합장 S 씨(48)는 조합 통장에 손을 댔다. 2008년 9월부터 2009년 1월까지 미분양 청산금 5억 원과 피해 보상금 1억5000만 원을 합쳐 6억5000만 원을 횡령하고 잠적했다. 경찰은 S 씨를 출국금지하고 행방을 쫓았지만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5년 넘게 행방이 오리무중이고 추가 피해마저 우려되자 경찰은 2014년 7월 종합 수배 전단에 S 씨를 올렸다. 두 달 뒤 한 시민은 지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둘러보던 중 사진 속 한 남자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종합 수배 전단에서 본 S 씨였다. S 씨는 완벽히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고 생각하고 지인과 사진을 찍었지만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을 피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강한 호기심을 갖고 수배자 사진을 관찰하거나 얼굴 정보 처리 능력이 발달한 사람이 수배자를 알아볼 확률이 높다”고 설명한다. 해외 도피를 꿈꿨던 수배자도 종합 수배 전단때문에 덜미가 잡혔다. J 씨(43)는 80억 원대 사설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지자 해외로 도피하려 했다. 하지만 성공 직전 J 씨를 목격한 시민의 신고로 붙잡혔다. 미성년자를 성 착취 대상으로 삼은 ‘악마’, 일가족 자살을 하려다가 두 딸만 죽이고 도피하던 ‘나쁜 부모’도 종합 수배 전단에 올라 시민 신고로 곧바로 검거됐다. 종합 수배 전단은 ‘어둠의 세계’에서도 꽤 인기가 있다. 범죄 조직원과 전과자들은 종합 수배 전단이 배포되면 습관적으로, 또는 필요에 따라 찾아본다고 한다. 만약 아는 얼굴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이다. 이권 싸움에서 밀린 조직원들이 특히 열심이라고 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 과학수사요원은 “첨단 과학수사 기법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수배자의 은신처를 시민이 전단을 보고 신고해 파악하기도 한다”라며 “정확한 위치까지는 아니어도 주변 폐쇄회로(CC)TV를 탐문하면 검거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수배자를 쫓는 누군가의 시선 종합 수배 전단에 올라간 수배자는 항상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수하는 수배자도 많다. 2008년 2월 L 씨(41)는 서울 중심가 증권회사 지점에서 일하다가 고객 돈 40억 원을 빼돌리고 사라졌다. 횡령한 돈을 주식 투자와 유흥비로 쓰고 화려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2010년 하반기 종합 수배 전단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했다. 이후 곧 잡힐 것이란 불안감에 시달리다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12월 말 자수했다. 가족이 자수를 권유하는 일도 있다. 2008년 11월 K 씨(29)는 교통경찰의 검문을 거부한 채 그를 그대로 치고 달아났다. 피해 경찰은 크게 다쳤다. 경찰은 장기 도피 중인 K 씨를 잡기 위해 2012년 하반기 공개 수배에 나섰다. 종합 수배 전단을 본 K 씨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결국 K 씨는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한 고참 형사는 “수배자의 자수를 유도하는 것이 종합 수배 전단의 가장 큰 힘”이라며 “경찰력도 아낄 수 있어 형사들에게 고마운 존재”라고 전했다. 범인 잡는 종합 수배 전단의 활약이 입소문을 타면서 먼저 찾는 곳도 많다. 주로 낚시터와 여인숙 고시원 유흥주점 노래방 주인들이다. 마치 귀신을 쫓는 부적같이 범죄 예방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제복 입은 경찰관이 1년에 2번 전단을 붙이러 오고, 수시로 훼손 여부를 확인하는 등 실제 경찰의 발길도 잦아진다. 경찰도 종합 수배 전단의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단 크기를 1종류에서 2종류로 다양화했다. 큰 것은 크기가 가로 42cm 세로 59cm, 작은 것은 가로 33cm 세로 48.5cm다. 2015년 1월부터는 스마트국민제보 애플리케이션인 ‘목격자를 찾습니다’에도 전단을 올렸다. 강일구 경찰청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운영계장은 “지명수배 기간에 따라 언제쯤 공개 수배하는 것이 검거할 가능성이 높은지, 어떤 장소가 효과적인지 분석해 검거율을 계속 높이겠다”라고 밝혔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내 가족이나 내 딸, 조카라고 생각하시고 조금이라도 사진 속 남성과 비슷하거나 닮은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연락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1월 26일 한 지방경찰청 소속 A 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성년자 성추행범을 잡도록 제보해 달라는 호소글과 수배 전단을 올렸다. 6개월이 지나도록 단서가 잡히지 않는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수배 전단에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캡처한 용의자 사진이 있었다. 2015년 6월 14일 지방의 어느 놀이터에서 여섯 살 여자 어린이 2명을 강제추행하고 사라진 남성이다. 경찰은 CCTV 등을 토대로 수사에 나섰지만 영상 속 얼굴이 뚜렷하지 않아 신원을 특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A 형사의 페이스북을 본 사람들이 해당 게시글과 수배 전단 사진을 옮기면서 이틀 만에 제보 전화가 걸려 왔고, 그는 범인을 붙잡아 구속했다. 하지만 A 형사의 ‘SNS 공개 수배’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아동 성범죄자를 끝까지 붙잡아 죗값을 치르게 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가 박수를 보냈지만,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A 형사는 당시 경찰로서 범인을 잡아야 하고, 잡고 싶다는 마음에, 사건을 미제(未濟)로 묻혀둘 수 없다고 판단해 어쩔 수 없이 ‘페이스북 공개 수배’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인터넷상의 공개 수배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공개 수배 제도에 대한 개선을 권고했다. 유·무죄 확정 이후에도 개인정보가 사이버 공간에 남기 때문이다. 이후 경찰은 지명수배 등에 관한 규칙을 만들어 엄격한 기준에 따라 공개 수배 대상을 정하고 온라인상 수배 전단 유포를 막고 있다. 또 피의자 검거 즉시 스티커를 붙인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한국보다 공개 수배를 이용한 범인 검거에 더 적극적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주요 지명수배자의 영상을 제작해 FBI 사이트와 유튜브 등 중요 사이트에 배포한다. 한국에 있는 기자도 손쉽게 수배자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 증명사진과 간단한 특징만 게재하지만 미국에서는 수배자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생활 사진, 성형으로 바꿀 수 없는 문신이나 수술 자국, 술과 담배 등 기호 식품까지 소개한다. 전단을 본 사람의 머릿속에 수배자 모습이 완전히 기억되게 하는 것이다. 영국 국가범죄수사국(NCA)도 홈페이지에 수배자의 흉터나 수술 자국, 문신 등 특이사항을 기재했다. 홈페이지의 수배 전단을 페이스북 등 SNS로 공유할 수도 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북한이 정부기관뿐 아니라 탈북자를 타깃으로 해킹 공격을 시도한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는 북한 관련 단체와 회의를 열고 탈북자 개인정보 유출 방지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과 올 1월 국방부와 외교부 탈북단체 직원 등 40명에게 발송된 악성코드 e메일의 인터넷주소(IP주소)가 북한으로 확인됐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이 해당 e메일과 악성코드 제어 서버, 경유 서버 등을 분석한 결과 북한 평양시 유경동에 할당된 IP로부터 미국 소재 서버를 경유해 국내로 e메일이 발송됐다. 다만 경찰은 실제 악성코드 감염이나 정보 유출 등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이번 공격에서는 악성코드 실행을 유도하기 위해 e메일에 최순실 국정 농단 등 최신 현안을 언급한 게 특징. 지난해 11월 3일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명의로 보내진 e메일은 ‘심심해서 쓴 글입니다’란 제목에 ‘우려되는 대한민국’이란 한글 문서가 첨부됐다. 이때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61)의 국정 농단을 밝힐 핵심 증거로 지목된 태블릿PC가 공개된 후였다. 한글 문서 작성자 이름은 영어로 ‘MalDaeGaRi’(말대가리). 당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1)가 승마 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북한 IP를 추적해 보니 포털 뉴스에 자주 접속한 흔적이 발견됐다”며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현안이 발생하면 e메일 해킹에 이용했다”고 밝혔다. 또 1월 3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학회 명의로 발송된 e메일에는 ‘2017년 북한 신년사 분석’이란 한글 문서가 첨부됐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능력 부족’을 언급해 배경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하던 때였다. 이에 따라 국가사이버안전센터는 25일 탈북단체 등 10여 곳의 대표와 긴급회의를 열어 피해 상황 파악과 대응책을 의논했다. e메일을 통해 악성코드가 설치되면 민감한 탈북자 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22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미국 검찰이 한국 법무부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73)의 동생 반기상 전 경남기업 고문(71)을 체포해 압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야권은 ‘반기문 가족 리스트’를 언급하며 반 전 사무총장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형과 동생 사이, 반 전 총장과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관계를 고려하면 친척의 범죄 혐의를 몰랐을 리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의혹에 대해 반 전 고문은 22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나는 죄가 없다. 내 신병은 한국 정부 결정에 따르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시종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고, 담배를 자주 입에 물었다.○ 반주현, ‘반기문’ 이름 팔았나 미 검찰은 10일 기소한 반 전 고문과 미 부동산중개업자인 아들 주현 씨(39)의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자금 세탁, 사기(주현 씨만 해당) 등 혐의가 엄중하다고 보고 체포 요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 외신에 공개된 미 검찰 공소장과 경남기업 측이 주현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9월 승소한 서울북부지법 1심 판결문을 종합하면 2013년 3월∼2015년 5월 반 전 고문과 주현 씨는 경남기업이 베트남에 보유한 초고층 빌딩 ‘랜드마크72’를 카타르투자청에 판매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카타르 정부 관리를 매수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반 전 고문은 랜드마크72 매각 추진자로 아들 주현 씨를 경남기업에 주선했다. 주현 씨는 카타르 관리를 잘 안다는 미국인 맬컴 해리스에게 50만 달러(약 5억8800만 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해리스는 실제 이 관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받은 돈은 사적으로 썼다. 공소장에 반 전 총장은 적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불똥이 반 전 총장에게 옮겨 붙을 수 있는 것은 주현 씨가 랜드마크72를 매각하려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을 계속 언급했기 때문이다. 공소장에는 ‘가족의 명성(family's prominence)’, ‘가족의 보증(family's assurance)’ 등 ‘가족’이라는 말이 5번 나온다. 주현 씨도 자신이 일한 부동산 회사에 보낸 e메일에서 “거래가 성사되면 순수하게 우리 가족의 명성에 기반을 둬 성사된 것”이라고 했다. 성 전 회장의 장남 성승훈 전 경남기업 경영기획실장도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주현 씨가 반 전 고문과 얘기할 때 ‘반's family’란 용어를 썼다”고 말했다. 경남기업 전직 핵심 관계자 A 씨 역시 통화에서 “우리도 반 전 총장의 조카라 신뢰하고 작업을 맡겼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 전 고문은 “유엔 사무총장이 구청장 정도인 줄 아느냐. 반 전 총장은 얘(주현 씨)가 뭐 하는지도 모른다”라고 반박했다. 성 전 회장이 반 전 총장을 직접 만나 랜드마크72 매각 문제를 상의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2013년 8월 26일, 잠시 귀국한 반 전 총장은 성 전 회장이 주도하는 충청포럼에 참석했다. 이튿날 두 사람이 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주현 씨가 ‘브로커’ 해리스와 매각 작업을 추진할 때다. 이에 대해 반 전 고문은 “(출신이 같은) 충청이니까 만났다. (반 전 총장이 성 전 회장을) 친구 만나듯 만나지 않는다.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A 씨도 “성 전 회장이 반 전 총장에게 부탁하거나 로비한 사실은 없다”라고 밝혔다.○ 美 검찰, ‘반 전 고문 부자의 공모’ 반 전 고문은 “(공소장에 적힌 혐의는) 소설 같은 소리”라며 미 검찰의 공소 내용을 모두 부인하며 “내 이름을 미국에서 어떻게 알고 그랬는지(기소했는지) 이상하다”라고 주장했다. 음해 세력의 모함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공소장에는 주현 씨가 랜드마크72 규모(매매 추정가 8억 달러)의 (부동산) 거래를 중개한 경험이 없는데도 반 전 고문이 경남기업에 (매각 추진자로) 주선했고, 2014년 4월경 반 전 고문 부자 등이 뉴욕 남부 등지에 모여 돈세탁 등을 공모했다고 적시됐다. 주현 씨가 반 전 고문에게 매각 시도 과정에서 동의를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사실도 적시했다. 주현 씨는 경남기업이 받을 수 있는 피해를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4년 6월 30일경 해리스에게 “내 고객들(경남기업)에게 무언가를 줘야 한다. (카타르 관리가) 우리에게 무언가 보내 주기를 앉아서 기다릴 수 없다”라며 카타르 관리가 보낸 것처럼 “카타르투자청이 곧 투자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가짜 e메일을 경남기업에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해 각종 서류도 위조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공소장에는 “주현 씨가 2014년 12월 해리스에게 ‘우리 손에 경남기업과 고용자 1000여 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등의 e메일을 보냈다. 그런데도 경남기업에 계속 거짓말을 했다”라고 적혔다. 법무부는 미 정부의 반 전 고문 체포 요청을 통상적인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처리할 방침이다. 미국 영주권자인 주현 씨는 기소 당시 미 수사 당국에 체포됐지만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전 총장 측은 이날 “친인척 문제로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하다. 한미 법무 당국 간에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면, 엄정하고 투명하게 절차가 진행돼 국민의 궁금증을 한 점 의혹 없이 해소하게 되길 희망한다”라고 밝혔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배중·전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