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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식은 숫자로 오지 않는다. 화사한 꽃의 감성으로 은유된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고조된 화해 분위기는 문화계도 이어받는다. 29일 문화계에 따르면 공연, 방송, 학술 등 각 분야에서 이미 남북 교류의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남북 교차·합동 공연 정례화 대중음악계에서 우선 관심을 모으는 공연은 개최가 확정된 국제음악축제 ‘피스 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다. 6월 서울과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일원에서 열린다. 페스티벌 측은 “북한 현지 음악가 섭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듯하다”며 “남북과 세계의 대중음악가가 하나 되는 무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용필의 50주년 기념 투어가 평양, 신의주로 이어질지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5월 서울 잠실에서 시작하는 조용필 순회공연은 6월 의정부 공연까지만 확정된 상태. 앞서 조용필은 2005년 평양에서 남한의 투어와 연계된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필 앤드 피스(Pil & Peace)’란 제목을 내걸고 5월 제주에서 출발해 8월 평양 공연으로 무대를 이어갔다. 조용필의 공연 관계자는 “여건이 허락되면 투어를 북한으로 이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윤도현도 이달 남북 합동공연 때 “YB와 삼지연 관현악단이 함께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다.○ 평양서 발레 공연, 문인 교류 클래식, 무용, 국악 등의 남북 교류도 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2월과 4월 남북 예술단 공연이 대중음악에 치우쳐 있었다”며 “다음 순서는 순수예술과 무대예술 분야의 교류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올해 2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에게 “통일이 되기 전에 평양에서 발레 공연을 해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과도 맥이 통한다. 2011년 방북해 북한 현지 악단을 지휘했던 정명훈 전 서울시향 지휘자를 축으로 한 클래식 교류에 대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국악은 남북 교류로 가장 시너지를 많이 낼 분야다. 이번 정상회담 환영 만찬도 북측 악기인 옥류금(전통악기를 1970년대 개량한 현악기)과 남측 악기 해금의 합주로 문을 열었다. 현재 가장 구체화된 건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이다. 북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측은 “사업회 북측 대표인 문영호 위원장이 ‘봄이 온다’ 공연 즈음인 3월 27일 팩스를 보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재개하자고 제안했다”며 “남북 실무접촉이 늦어도 5월 중순에는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남북언어 통합을 위해 2005년 시작됐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2015년 이후 교류가 끊겼다. 편찬 작업은 이미 절반 이상 진척됐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인 시절 참여했던 ‘6·15 민족문학인협회’를 통한 남북 문학인 교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고려 유물 전시될까 개성 만월대 유적 공동 발굴조사도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만월대는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된 고려 왕궁터로 2007∼2015년 7차례 남북 공동 발굴에서 금속활자를 비롯한 고려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만, 당시 남측 학자들이 개성공단의 호텔에 머물렀던 만큼 폐쇄된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할지 여부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12월 ‘대(大)고려전’에 북측의 고려 유물을 빌려 전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도 “황해도 해주 안 의사 생가를 복원하면서 2019년 3월 안 의사 순국 109주기 추모식은 생가에서 남북이 공동 개최할 수 있도록 타진하고 있다”고 했다. 남북 문화 교류는 경중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광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공동위원장(고려대 교수)은 “평양 인근 고구려 고분 벽화의 조사와 보존 처리가 긴급하다”며 “약 10년 전 공동 조사가 중단될 당시 북한에 두고 온 설비도 있고, 북측과 합의해 놓은 조사 계획도 있어 곧바로 착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계도 교류 방안에 부심하고 있다. KBS는 △조선중앙TV와 실시간 영상 상호 교환 △교향악단 합동 공연 △백두대간 다큐멘터리 공동 제작을 추진키로 했다. KBS 남북교류협력단의 원종진 팀장은 “장기 목표는 평양지국 설치와 특파원 파견”이라며 “협의가 진행되면 TV 뉴스의 매일 날씨 꼭지에서 평양과 백두산의 실시간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희윤 imi@donga.com·조종엽·박선희 기자}

27일 남북 정상회담 만찬 메뉴 중 신안 민어해삼편수, 부산 달고기구이, 생선찜과 같은 몇몇 요리는 네모 형태 등 각진 모양으로 조리했다. 그런데 이런 음식들은 놓이는 방향에 따라 사람들의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통합감각연구소장인 저자는 접시에 담긴 양파 요리의 사진을 온라인으로 보여주고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양파 끝의 뾰족한 부분이 12시 방향을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3.4도 지점을 가리키는 걸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할까?’ 싶지만 책을 읽어 보면 음식 자체의 맛 이외에 얼마나 많은 요소가 ‘맛있다는 느낌’에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저자의 연구팀이 ‘이그노벨상’(괴짜 연구를 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을 받은 연구를 보자. 연구팀은 감자 칩을 깨물 때 나는 소리를 크게 들려주면 사람들은 감자 칩이 더 바삭거리고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는 걸 밝혔다. 말하자면 소리가 양념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연구는 당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이들에게 달콤한 느낌을 주는 소리를 들려줘서 설탕을 덜 넣고도 비슷한 단맛을 느끼도록 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가벼운 식기로 먹었을 때보다 어느 정도 무거운 식기를 써서 먹었을 때 사람들은 더 맛있다고 느꼈다. 토끼고기 스튜를 토끼 가죽을 두른 스푼으로 먹도록 하면 어떨까? 복숭아 향 아이스티의 포장재에 복숭아 껍질의 털과 같은 느낌을 주면…? 같은 딸기 디저트를 각각 흰색과 검은색 접시에 올렸을 때 평가는 어떻게 달라질까? 참신한 발상과 연구 결과가 이어진다. 원제는 미식학(Gastronomy)과 물리학(Physics)을 합친 ‘가스트로피직스(Gastrophysics)’다. 저자가 인지과학과 뇌과학, 심리학, 디자인, 마케팅 분야를 융합해 창안한 지식 분야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드루킹’이 매크로(반복 입력) 프로그램으로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베스트 댓글’은 실제 추천 수가 많을수록 독자에게 더 강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의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인터넷 기사, 게시글에 달린 댓글이 인터넷 사용자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광고 연구’(2016년 9월)에 실린 논문 ‘제품에 대한 온라인 베스트 댓글 내용이 소비자의 제품 품질 지각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지우개를 사용한 뒤 품질을 평가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우호적인 ‘베스트 댓글’을 본 실험 참여자들은 그 제품이 더 좋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찬성’ 수가 ‘반대’보다 뚜렷하게 많은 베스트 댓글은 평가에 더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인터넷 댓글은 내용이 논리적이건 아니건 독자의 생각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상당하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자신과 의견이 비슷한 댓글을 보고 ‘역시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재확인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유권자의 정치인 판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논문 ‘인터넷 댓글이 정치인에 대한 판단에 미치는 영향’(‘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2010년 5월)에 따르면 정치인에게 긍정적인 댓글을 본 실험 참여자들은 댓글 내용의 타당성과 무관하게 그 정치인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심지어 아무런 근거나 논리가 없이 주관적인 느낌만 담긴 댓글에도 영향을 받았다. 기업의 부정적 루머에 관한 댓글 역시 내용이 이성적이건 감정적이건 반박 댓글보다는 루머가 사실이라는 댓글을 믿는 경향이 나타났다(논문 ‘기업의 부정적 루머에 대한 사실 인식에 미치는 댓글의 영향력’, ‘한국언론학보’ 2011년 10월). 흥미로운 건 자신과 반대 성향의 댓글이 더 일반적인 여론에 가깝다는 인식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한국전자거래학회지’(2012년 2월)에 실린 논문 ‘개인의 정치성향이 뉴스 댓글에 대한 신뢰성과 사회적 영향력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은 직장인과 대학생을 설문조사했다. 조사 결과 논문은 “보수, 진보 응답자 모두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매체에 달린 댓글이 더 일반 공중(公衆)의 여론에 가깝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이용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가진 뉴스 매체의 댓글이 더 이성적이고, 덜 감정적이라고 느끼지만 여론시장에서는 상대적 소수의견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개인의 성향, 해당 이슈와 관련된 정도 등에 따라 댓글에서 받는 영향은 달라진다”며 “기사에 달린 댓글이 독자의 기사의 논조 인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정치권이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촉발된 일부 포털 사이트들의 여론 왜곡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 전선(戰線)을 펴기로 했다.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포털 사이트를 이용한 댓글 조작 사건 등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포털 사이트의 뉴스 공급 구조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3당은 23일 지도부 긴급회동에서 각 정당이 준비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와 여론조사 제도에 대한 입법 활동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야당들의 공조가 특별검사 도입과 국정조사 요구에 이어 포털 사이트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특히 현행 ‘인링크(in-link)’ 방식을 폐지하는 방안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인링크’는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들이 대부분 도입한 방식으로 포털 사이트들이 메인 화면이나 뉴스 섹션에 배치한 기사를 클릭했을 때 해당 기사를 서비스한 언론사 홈페이지가 아닌 자사 포털 사이트 안에 저장된 기사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국내 포털 사이트들은 인링크 방식으로 저장된 기사에 댓글을 달고 이를 선호도나 추천수 순서로 확인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기자도, 별도의 취재 행위도 없지만 네이버 등 국내 포털 안에서 뉴스 소비가 완결되면서 사실상 언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털 사이트 중심의 뉴스 소비구조 왜곡이 댓글 조작을 낳았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인링크 방식을 폐지하고 ‘아웃링크(out-link)’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당 박성중 홍보본부장은 “세계 검색시장 90% 이상이 아웃링크고, 신뢰와 공정성 부분에서 (아웃링크가) 더 바람직하다”며 “(아웃링크) 법제화에 대해 여당이 최근까지 많은 반대를 해왔는데 야3당이 합의를 했기 때문에 법제화가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정운천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포털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무소불위의 권력이자 포식자가 됐는데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며 아웃링크 방식과 인터넷 실명제 책임성 강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주평화당 김경진 의원은 앞서 포털 사이트가 뉴스 서비스로 얻는 수익을 회계 분리하고 언론기사를 이용한 광고는 미디어렙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한국신문협회(회장 이병규)는 “언론사가 고비용을 들여 생산한 정보 부가가치가 포털에 헐값으로 넘어가는 불평등불공정 거래구조도 고착화되고 있다”며 동조했다. 신문협회는 포털이 뉴스를 자의적으로 선별해 노출시키면서 편집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인 뉴스 제공 방식을 법령에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여론조사기관들에 대해서도 공세를 폈다. 주 타깃은 ‘드루킹 특검’이 불필요하다는 응답이 과반(52.4%)으로 나타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였다. 홍 대표는 “응답자 표본에 여당 지지자들을 지나치게 많이 포함시켜 여론을 왜곡시킨 것”이라며 “응답률이 10%가 되지 않는 여론조사를 공표하지 못하도록 입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야3당은 이날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설치 법안과 국정조사 요구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야3당은 “이번 사건은 상식과 정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드루킹 특검’이 수용되면 국회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홍정수 hong@donga.com·조종엽·최우열 기자}
KBS 이사회가 사규 위반으로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인 정필모 씨(60)의 부사장 임명을 23일 강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필모 신임 KBS 부사장은 1987년 KBS에 입사해 경제과학팀장, 1TV뉴스제작팀장 등을 지냈으며 2016년부터 방송문화연구부에서 일했다. 지난해 감사원은 정 부사장이 ‘부당한 겸직 및 외부 강의’로 KBS 규칙을 위반했다며 징계를 요구했고, KBS는 올 2월 인사위원회를 열고 1심에서 정 부사장에게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정 부사장이 사규를 위반해 올린 ‘부수입’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KBS 이사회가 11일 징계 절차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정 후보자의 부사장 임명 동의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내외에서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KBS공영노조는 성명을 내고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인 이에 대해서는 사표도 받을 수 없고, 징계를 받은 자는 1년 동안 승진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며 “중징계 대상자를 부사장에 임명하는 것은 절차 위반”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또 “정 부사장 후보자가 재직 중에 주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근태처리는 어떻게 한 것인지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도 “정 후보자의 부사장 임명은 비상식적이고 불법적이다”고 반대했다. 반발이 이어지자 KBS이사회는 16일로 예정됐던 부사장 임명 동의안 처리를 23일로 연기했고, 임명에 반대하는 야권 이사가 퇴장한 끝에 처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KBS는 “정 부사장은 양승동 사장의 공약 사항 중 핵심 개혁 과제를 실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KBS 이사회가 사규 위반으로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인 정필모 씨(60)의 부사장 임명을 23일 강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필모 신임 KBS 부사장은 1987년 KBS에 입사해 경제과학팀장, 1TV뉴스제작팀장 등을 지냈으며, 2016년부터 방송문화연구부에서 일했다. 지난해 감사원은 정 부사장이 ‘부당한 겸직 및 외부 강의’로 KBS 규칙을 위반했다며 징계를 요구했고, KBS는 올 2월 인사위원회를 열고 1심에서 정 부사장에게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정 부사장이 사규를 위반해 올린 ‘부수입’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KBS 이사회가 11일 징계 절차가 채 마무리 되지 않은 정 후보자의 부사장 임명 동의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내외에서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KBS공영노조는 성명을 내고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인 이에 대해서는 사표도 받을 수 없고, 징계를 받은 자는 1년 동안 승진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며 “중징계 대상자를 부사장에 임명하는 것은 절차 위반”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또 “정 부사장 후보자가 재직 중에 주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근태처리는 어떻게 한 것인지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도 “정 후보자의 부사장 임명은 비상식적이고 불법적이다”고 반대했다. 반발이 이어지자 KBS이사회는 16일로 예정됐던 부사장 임명 동의안 처리를 23일로 연기했고, 반대하는 야권 이사가 퇴장한 끝에 처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KBS는 “정 부사장은 양승동 사장의 공약 사항 중 핵심 개혁 과제를 실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를 따라 ‘탕진잼’(탕진하는 재미)을 만끽했더니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소소할 따름이고, ‘저녁이 있는 삶’은 ‘TV와 스마트폰이 있는 삶’일 뿐….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히겠지. ‘생각한 대로 살지 않다가 살아진 대로 생각했던 이, 어영부영하다 영영 잠들다’.” 혹시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볼 만하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년)에 나온 대사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라틴어 문구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오늘을 붙잡아라)의 철학에 관해 폭넓게 다룬 책이다. “현명하게 생각하고, 포도주를 걸러라… 말하는 새에도 우리를 시샘하는 세월은 빠르게 흘러간다.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위해서는 되도록 적게 남겨두라.” ‘카르페 디엠’은 로마의 서정시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 4번’에서 탄생했다. 영어로는 ‘Seize the Day’, 직역하면 ‘오늘을 붙잡아라’라는 말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저자는 사람들로부터 ‘카르페 디엠’의 철학을 훔쳐간 주범으로 청교도적 금욕주의와 소비자본주의, 텔레비전을 꼽는다. 일례로 나이키의 ‘Just Do It’(일단 해봐) 캠페인은 카르페 디엠과 비슷한 메시지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쇼핑을 자아의 변신과 연결지은 ‘Just Buy It’(일단 사봐)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사회는 가능하면 죽음을 외면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달랐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은 교회 벽면마다 해골을 묘사한 벽화가 있었다. 사람들은 책상 위에 사람의 두개골도 올려놓았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가 삶과 함께했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각을 유지하기 위해 각 면에 죽음을 경고하는 경구를 적은 주사위를 만들어서 갖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던져본다고 한다. 카르페 디엠의 철학을 되찾는 방법도 소개한다. ‘기회를 포착하라’ ‘쾌락주의의 숨은 미덕을 발견하라’ ‘즉흥적 본성을 틈나는 대로 되찾아라’ 등이다. 두려움 없이 수많은 직업에 도전한 이, 60세가 넘어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찾은 노인, 특권적 지위를 내던지고 무정부주의를 이끈 러시아 혁명가, 일찌감치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긴 19세기 여성 등의 사례가 이어진다. 책이 제안하는 마지막 방법은 ‘함께 행동하라’다. 광범위한 대중운동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행동 속에서 ‘오늘을 붙잡아라’라는 철학이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삶의 유한함과 의미에 관해 파고든 영화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이키루’(1952년)를 소개했다. 주인공은 위암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공포와 고독을 느낀다.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가난한 엄마들이 아이들을 위해 운동장을 만드는 일을 돕는다. 관료, 정치인, 조직폭력배와 대립하면서 마침내 성공한 그는 운동장의 그네 위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는다. 저자는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번창하고 공동체에 의지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며 “카르페 디엠의 진정한 미래는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즈’ 후보에 올랐다. 빌보드는 17일(현지 시간) 발표한 뮤직 어워즈 후보 명단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 방탄소년단을 포함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같은 부문 수상자이기도 하다. 올해 경쟁 후보로는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 데미 로바토, 숀 멘디스 등이 지명됐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는 지난 1년간 앨범과 디지털 음원 판매량, 스트리밍, 라디오 방송 횟수, 공연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참여 등을 측정해 후보자를 선정한다. 시상식은 다음달 2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호텔에서 열린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달 28일부터 17일까지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서 약 15%의 지지를 받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위는 5%를 차지한 문재인 대통령이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3%의 지지를 얻었다. 한편 방탄소년단은 다음 달 18일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6일 92세로 별세한 원로 배우 최은희 씨(사진)가 각막을 기증했다. 고인은 2011년 인터뷰에서 “사람이 죽으면 뼈만 남고 없어지는데, 굳이 아낄 필요가 있을까 싶다”며 “전신을 기증하고 싶지만 나이를 먹어서 그럴 필요는 없겠고, 눈이 예쁘다고들 했으니 눈만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 눈을 가져가는 사람이 광명을 찾으면 정말 기쁘겠다”고 덧붙였다. 고인은 생전에 장기 기증 서명을 했고 가족도 동의했다. 고인의 장남인 신정균 감독은 “사후에 장기 기증을 하시겠다는 생전 뜻에 따라 서울성모병원 측과 어머니의 각막을 기증하는 절차를 밟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2011년 정진석 추기경의 요청에 따라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장기 기증 홍보대사를 맡았다. 북한에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경험도 장기 기증을 결심한 요인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18일에도 영화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빈소를 찾은 임권택 감독은 “한국 영화가 가장 좋았던 시절, 최은희 선생님 덕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인의 남편 고(故) 신상옥 감독이 이끈 영화사 신필름의 전속 배우로 영화계에 입문한 배우 신성일 씨도 빈소를 찾았다. 신성일이라는 예명은 ‘신필름의 첫 번째 별’이라는 뜻으로 고인이 지어줬다. 원로 배우 문희 최지희 고은아 태현실 김창숙 씨,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신필름에서 일했던 이장호 감독도 빈소를 찾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서촌에서 출토된 내교인(內敎印·왕비의 도장)은 명성황후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쪽 발굴 조사 현장(통의동 70번지)에서 출토돼 16일 공개된 내교인 2과(顆)의 사용자가 조선 헌종∼고종 대의 왕비들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출토된 내교인을 검토한 손환일 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내교인은 왕비가 바뀐다고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물려 쓴다”며 이같이 밝혔다. 손 연구위원은 왕실 등의 인장 1500여 건을 조사한 이 분야 전문가다. 손 연구위원에 따르면 이번에 출토된 내교인은 인뉴(印(뉴,유)·도장의 꼭지, 손잡이) 부분 조각과 서체의 디자인이 1900∼1907년경 편찬된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에 나오는 것과 거의 같다. 보인부신총수는 대한제국 황실의 보인(왕실과 관청의 도장)과 부신(신표·信標)을 설명한 책이다. 책에 나오는 내교인 도안은 이번에 출토된 내교인을 참고해 그린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출토된 내교인의 모양이 대한제국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내교인 2과보다 다소 거칠다는 점도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전에 사용됐다는 걸 시사한다. 내교인의 글씨체는 소전(小篆·중국 진나라 때 만들어진 한자 서체)이다. 1823∼1834년(순조 23∼34년) 명례궁(明禮宮)에서 쓴 물품을 기록한 ‘명례궁봉하책’에 찍힌 내교인도 소전이지만 모양이 다르다. 손 연구위원은 “소전은 18세기 후반∼19세기 인장에 유행했다”며 “추후 연구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헌종(재위 1834∼1849) 대부터 1880년대까지 왕비가 사용한 인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교인을 발굴한 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은 내교인이 출토된 민가 터에서 과거 궁내부 관리 등이 살았던 사실이 출토와 관련됐는지 살펴보고 있다. 조선 말기 왕실 인장은 궁내부에서 관리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인공지능(AI)과 윤리 문제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KAIST가 한화와 함께 국방 AI를 연구한다는 소식이 해외 학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이 논란은 ‘인간 존엄을 해치는 연구는 안 한다’는 해명 끝에 수그러들었다. 미국에서 우버 등의 자율주행차가 잇달아 인명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과학철학자로 2007년 로봇윤리헌장 제정을 주도한 이중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AI 로봇에 쓸 수 있는 윤리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인 로봇공학자 김종욱 동아대 교수가 ‘AI와 윤리’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17일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두 교수는 “AI 기술의 발전으로 생기는 윤리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포괄적인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AI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윤리 문제는…. ▽이중원=주체의 잘못된 행위에 책임을 물어야 사회가 굴러간다. 그런데 인간이 AI에 직권을 위임하고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책임을 묻는 데 문제가 생기고 있다. 군인이 민간인을 죽이면 처벌하지만 ‘자율형’ 킬러 로봇이 그러면 어떻게 처벌하나? 아직 방책이 없다. ▽김종욱=제네바협정은 자동발사 기능이 있는 무기도 최후 발포 명령은 인간이 내리도록 돼 있다. 그러나 미사일이 날아가다 통신이 끊기면 자체적으로 위치와 목표물을 찾는다. 이건 자율형 무기일까? 경계가 애매하다. 유엔이 자율 살상무기를 정의하는 회의를 16일부터 열고 있다. ―사람이 AI가 작동하는 방식을 완전히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사람이 책임지면 되지 않나. ▽김=그게 아주 어렵다. AI의 윤리 관련 원칙이 세계적으로 지난해 많이 발표됐다. 공통적인 게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심층신경망을 보자. 노드(단자) 간 연결에서 경우의 수가 엄청나다. 자율주행 AI가 보행자를 인식하지 못해도 왜 문제가 생긴 건지 찾는 게 극히 어렵다는 얘기다. 투명성은 인간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정상 작동 여부와 학습 중인 데이터의 종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상 여부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기계가 자율적 사고와 판단을 했다고 하면 무슨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 기업, 개발자, 사용자가 모두 책임을 피해가고 문제는 미해결로 남을 수 있다. 당장은 책임 소재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더라도 기업, 개발자, 사용자 등이 비율에 따라 책임을 나누는 걸 당사자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자율주행 AI가 인명사고를 피할 수 없을 때 보행자와 운전자 중 누구를 희생시켜야 하느냐의 딜레마는 해결이 가능한가. ▽김=자율주행차는 교통사고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지만 사고가 일어날 위험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딜레마를 마주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런 상황에 처할 때 보행자를 살려야 한다는 옵션을 선택한 운전자(탑승자)에게는 사회적으로 보상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AI 윤리에 당장 중요한 것은…. ▽김=미국 등에서 AI는 교도소 수감자의 재범가능성을 평가하거나 교사의 수업성취도 평가, 신입사원 채용 등에 활용하고 있다. AI가 특정인에 대해 어떤 정보와 판단 과정을 통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당사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로봇 간 데이터를 주고받는 경우 사용자, 관리자가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 로봇이 인식하거나 상호통신하는 내용을 인간의 언어나 상징, 표현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어떤 로봇이 로봇 클라우드에서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업로드하거나 검색한다면 즉시 금지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AI 로봇도 결국 기계이고 물건일 뿐이지 않을까. ▽이=AI 로봇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편익을 증대하기 위한 것이어서 결국 점점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닮는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다. 자율성을 가질 것이다. 다양한 층위의 인격성을 규정하고 이런 존재에 하위의 인격성을 부여하는 걸 고려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AI 로봇을 ‘전자적 인격체’로 규정했다. 오늘날 법인과 비슷하게 인간이 아닌 인격체(person)로 보는 것이다.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직권을 위임해 자율성을 가진 이상 AI를 포함하는 윤리 법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는 150명이다. 이를 ‘던바의 수’라고 한다.” 인류학이나 생물학 등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던바의 수’ 혹은 ‘던바의 법칙’. 이 이론의 제창자가 진화심리학에 관해 풀어 쓴 책이다. 왜 하필 150명일까?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인 저자는 영장류 집단의 규모와 대뇌 신피질의 상대적 크기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신피질은 주로 의식적 사고를 담당한다. 인간의 신피질 크기로 미뤄 보면 150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과감한 주장인 만큼 허점이 많을 것 같지만 던바의 수는 여러 분야에서 ‘경험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대면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회사 조직은 150명 이하가 적당하고, 이보다 크면 효율을 위해 여러 개로 나누는 게 좋다는 경영 이론이 있다. 로마군이나 최신 군대의 조직, 학자 공동체, 신석기시대의 마을 규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친구 수 등에서도 던바의 수는 계속 등장한다. 해제를 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심지어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하는 이들이 맺는 ‘혈맹’의 구성원 수도 얼추 150명 정도라고 했다. 던바의 수는 책에 담긴 21가지 흥미로운 주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일부일처의 습성을 가진 동물은 무작위로 짝짓기하는 종보다 뇌가 큰데, 이유는 뭘까? 배우자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행동을 조화시키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아(我) 대한민국은 아 국(國)이 독립국임과 아 민족이 자주민임을 선언하엿도다. … 4월 11일에 발포한 10개조의 임시헌장을 기본삼아 본 임시헌법을 제정하야써….”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앞두고 1919년 당시 중국 상하이에 있던 임정 하비로(霞飛路) 청사의 위치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하비로 청사는 1919년 9월 11일 임정이 의정원 회의를 열어 3·1운동 뒤 국내외에 조직된 상하이와 한성 임시정부, 노령(연해주) 대한국민의회를 통합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던 역사적인 장소다. 첫 의정원 회의가 열린 김신부로(金神父路) 청사에 이어 두 번째 정식 청사로 평가된다. 임정은 1919년 8∼10월 이 청사에서 연통부와 교통국을 설치해 국내외를 잇는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하비로 청사 위치는 1992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정부와 학계 차원에서 백방으로 조사해 왔지만 임정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도 찾지 못해 숙원으로 남아 있었다. 김광재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최근 중국에서 발견한 1920년 제작 상하이 프랑스 조계 지적도에서 2015년 공개된 하비로 청사 사진의 주소 321호(당시 번지수)를 찾아낸 뒤 오늘날 지도와 대조해 청사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고 9일 본보에 밝혔다. 김 연구관에 따르면 하비로 321호는 오늘날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 651호다. 청사로 썼던 건물은 1920, 30년대 철거된 것으로 추측되며 지금은 의류 매장이 들어서 있다. ▼1919년 붉은 건물 2층 벽에 태극기 펄럭… 독립운동의 심장▼상하이 임정 두번째 청사 어떤 곳‘오래도록 상하이에서 세인들의 시선을 끌던 붉은 벽돌로 지은 아름다운 건물이 있었다. 1919년 8월 초 조선인들이 세를 들더니 건물 2층 외벽에 ‘태극기’를 내걸었다. 정문에는 인도인이 경비를 섰다. 울창한 수림(樹林)이 가린 청사에 들어서면 넓은 정원과 온실화원이 나왔다. 양복 차림의 젊은 조선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일본인 교민 신문인 상하이일일(日日)신문, 오사카아사히신문의 당시 보도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하비로 321호 청사 모습이다. 2층에 태극기가 내걸린 하비로 임정 청사의 사진은 당대부터 임정이 홍보용 사진엽서로 제작해 배포하고, 한국국민당 기관지 ‘한민(韓民)’ 등에 보도되며 임정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럼에도 임정 수립 99주년을 맞는 오늘에야 청사의 위치가 확인된 건 그동안 사진에서 하단 설명이 빠진 채 유통된 데 그 원인이 있다. 하비로 청사의 위치를 확인한 김광재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에 따르면 이 사진은 박은식 선생의 ‘대한독립운동지혈사’에 촬영 시점과 주소가 빠진 채 처음으로 실렸다. 이후 ‘하비로 309호’라는 잘못된 주소와 함께 다른 자료집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임정 요인 박찬익 선생의 며느리 신순호 여사가 소장하던 사진엽서가 2015년 공개되면서 정확한 주소가 나왔다. 사진 하단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정청(政廳) 대한민국 원년(元年) 10월 11일 재(在) 중화민국 상하이 법계(法界·프랑스 조계) 하비로 321호’라는 설명이 달렸다. 그러나 상하이는 그간 주소 체계가 여러 차례 바뀌어 당시 주소만으로 현재의 위치를 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 연구관은 최근 상하이 거주 인사가 소장한 1920년 제작 지적도 ‘프랑스 조계: 확장지역(French Concession: Extention)’을 입수해 현재의 위치가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 651호라는 걸 확인했다. 임정은 여러 차례 이사했다. 1∼3차 의정원 회의가 열린 첫 청사는 김신부로(金神父路)에 있었으나 몇 호였는지 기록이 없어 정확한 위치가 오늘날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 4, 5차 의정원 회의는 상인 곽윤수의 집에 마련된 장안리(長安里)의 민단 사무소에서 열렸다. 6차 회의는 개원식만 민단 사무소에서 1919년 8월 18일 열렸고 다음 날인 19일부터는 새로 마련한 하비로 청사에서 열렸다. 민단 사무소는 임시로 활용된 것이어서 하비로 청사가 두 번째 정식 청사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임정 전시관이 들어선 곳은 1925∼32년 사용된 보경리(普慶里) 4호 청사다. 하비로 청사는 일제가 상하이 프랑스 조계 당국을 압박해 임시정부에 대해 폐쇄 조치를 내리는 1919년 10월 17일경까지 사용됐다. 김 연구관은 “역사적인 임시정부의 두 번째 청사 자리에 표지석을 세울 근거가 이제 마련됐다”며 “향후 하비로 청사의 설계도, 건축대장 등 건물의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이 같은 내용을 4월 중 간행되는 저서 ‘근현대 상해 한인사 연구’(경인문화사)에 담아 밝힐 예정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건 조선의 부인이 조국의 독립을 기원하면서 기증한 물건이오. 아직까지 팔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소.” 임정 내무총장이던 도산 안창호(1878∼1938·사진)는 1919년 9월 29일 중국 상하이 하비로 청사를 찾아온 강원 고성 사람 이병상에게 금반지와 금은 장신구를 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병상은 먼 친척인 고성의 부자 이완수가 ‘임정의 모습을 대신 살펴봐 달라’고 부탁해 온 길이었다. 임정은 국내 인사들을 상하이에 데려와 하비로 청사를 둘러보게 한 뒤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광재 연구관은 “안창호는 이 말을 하며 조선인의 애국심에 감동해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한다”며 “하비로 청사는 1919년 6월 내무총장에 취임한 안창호가 미국에서 가져온 돈으로 세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비로 청사는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도 새로 확장된 지역에 있었다. ‘상하이일일(日日)신문’은 하비로 청사를 “예상외로 규모가 있어 한 나라의 영사관과 같다”고 했다. 김 연구관에 따르면 청사 주위에 쑨원(孫文) 행관(行館)을 비롯해 중국의 유력 정치인이나 부호가 소유한 건물이 많았다. 인근의 어양리는 1910년대 초·중반 상하이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독립운동가 신규식(1879∼1922)이 살았고 김신부로 22호에는 임정 수립에 깊이 관여한 현순 목사(1880∼1968)가 살았다. 김 연구관은 “임정 수립 준비 기관이었던 독립임시사무소가 하비로 329호에 있었다”며 “하비로 청사는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등의 혁명가들과 제휴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략적인 장소였다”고 말했다. 임정은 하비로 청사에서 국내 행정 장악을 시도하는 한편 외교, 군사, 교육 및 문화 활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했다. 하비로 청사에서 통합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정 직원들은 독립의 희망에 가득 찼다. ‘첨구자(尖口子)’라는 필명의 독립신문 기자는 매일 30여 명의 직원이 출근해 점심 먹을 새도 없이 바삐 일했다고 썼다. 현순 목사는 임정 직원들이 오전 9시에 출근해 ‘집합실’에 모여 애국가(무궁화가)를 부르고 총리의 말(告諭·고유)을 들은 뒤 각자의 사무실로 가서 근무하는 모습이 “일대수양소(一大修養所)와 흡사했다”고 회고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호남 지역 기록문화와 역사유산의 정리,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한국학호남진흥원(원장 이종범)이 6일 광주 소촌로 공무원교육원에서 개원식을 열었다. 이종범 원장은 “호남은 예부터 시대의 고비마다 사회책임 정신을 발휘해 역사의 물꼬를 바꾸고 학술을 꽃피웠다”며 “호남 한국학 연구 지원과 후속 인재 양성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함께 한국국학진흥원(경북 안동시)이 영남의 전통 기록 유산 수집과 연구를 해 왔지만 호남 지역에는 그런 지자체 출연 기관이 없었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은 광주시와 전남도가 출연해 지난해 7월 재단법인 등록을 마쳤으며, 12월 원장이 임명됐다. 이날 개원을 기념해 열린 학술대회에서 최성환 한국학호남진흥원 책임연구원은 “호남 지역에는 고문서 27만여 점, 고서 11만여 점, 목판·서화 등까지 모두 100만여 점의 한국학 자료가 있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구 대상의 시대 제한은 없으나 조선 시대 자료가 대부분이다. 행사에서는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이용두 한국국학진흥원장, 신승운 한국고전번역원장이 격려사를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월 국회의 근로기준법 개정에서 ‘방송업’ ‘영화제작 및 흥행업’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건 지난해 7월 EBS 다큐멘터리를 외주 제작하던 김광일 박환성 독립PD가 아프리카에서 야간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이 계기였다. 이낙연 국무총리 지시에 따라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 등 5개 부처가 내놓은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에도 장시간 노동을 막으려는 조치가 포함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제작 스태프는 문제점(중복응답)으로 낮은 보수(37.9%), 장시간 노동(27.6%), 보수·임금 체불(17.2%) 등을 꼽았고, 독립PD 역시 장시간 노동(39.4%), 낮은 보수(36.5%), 4대 보험 및 복지제도 안전망 미흡(32.7%) 등을 꼽았다.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으로도 장시간 노동 방지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독립PD는 시급한 정책·제도로 4대 보험 및 실업부조 등에 이어 장시간 노동 방지를 위한 감시·감독 강화(40.4%)를 꼽았다. 제작 스태프도 보수체계 합리화와 표준계약서 적용 확대에 이어 장시간 노동 방지를 위한 감시·감독 강화(27.6%)를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 외주거래 실태와 함께 제작현장의 노동일수와 시간 최저임금 적용에 관해 실태조사를 한다. 4대 보험 가입 여부, 표준계약서, 인권 침해 등도 조사 대상이다. 그러나 하도급과 프리랜서(업무 위탁) 계약을 맺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상당수여서 이들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란 지적도 나온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과학 수사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법의학자 알퐁스 베르티용은 1894년 수사 당국으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는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필적 감정을 의뢰받는다. 베르티용은 드레퓌스가 유죄라고 확신했다. 그의 감정 내용은 대략 이렇다. “간첩과 드레퓌스가 쓴 문서는 필체가 다르다. 이는 드레퓌스가 의심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필체를 바꿨기 때문이다. 두 필체에 비슷한 점도 있는데, 이는 드레퓌스가 적발됐을 때 ‘누군가 내 글씨를 흉내 냈다’고 주장하려고 비슷하게 썼기 때문이다.” 책이 소개한 이 필적 감정은 전형적인 ‘확증편향’이다. 베르티용의 감정에 따르면 드레퓌스는 간첩과 필체가 비슷해서 유죄고, 달라서 유죄다. 이처럼 확증편향에 빠지면 자신의 믿음에 따라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 필적 감정은 드레퓌스가 종신형을 선고받는 데 영향을 줬다. 나중에야 드레퓌스의 무죄가 드러나지만 이 사건은 프랑스의 여론을 두 개로 찢어놓으며 공화정을 위기로 몰고 갔다. 프랑스의 인지과학자 두 명이 ‘확증편향은 왜 생기나’, ‘사실이 드러나도 사람들은 왜 생각을 바꾸지 않나’ 등에 관해 쓴 책이다. ‘이성은 개인이 올바른 신념을 갖고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성은 그걸 방해하는 확증편향도 가지고 있다.’ 이 두 명제는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저자들은 이 틈을 파고들면서 확증편향은 이성의 결함이 아니라 이성의 원래 속성이라고 주장한다. 이성은 진화 과정에서 논증을 통해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함께 자신의 성향에 맞는 ‘가짜 뉴스’를 근거로 상대를 비난하는 현상이 심각한 오늘날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의문도 생긴다. ‘제 논에 물대기’가 이성의 속성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판단에 이를 수 있을까? 헨리 패럴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비슷한 의문을 가졌나 보다. 패럴 교수가 저자 위고 메르시에와 인터뷰한 기사가 지난해 7월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에 실렸다. 패럴이 물었다. “당신 말이 옳다면 추론(reasoning)은 무슨 쓸모가 있어?” 메르시에가 답했다. “우리는 객관적이고 엄격해. 내 생각하고 다르다 해도 상대방의 논증이 강력하면 내 생각을 바꾸잖아. 추론 덕에 그런 판단을 잘할 수 있지.” 저자의 주장이 약간 이랬다저랬다 하는 듯싶다. 책은 법률을 기반으로 배심원, 판사 등이 집단으로 추론하는 사법제도, 집단 이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의 제도 등이 확증편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집단 지성과 제도가 오류를 보완할 수 있다면 애당초 확증편향이 이성의 본질적 지위를 위협할 자격이 있을까? 된장독(이성)에 파리(확증편향)가 꼬인다고 안에 똥이 든 건 아니다. 모든 이가 가짜 뉴스에 걸려들지도 않고, “지구가 평평하다” 같은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거의 없다. 읽기에 썩 편치 않은 책이다. 기자처럼 이 분야 지식이 별로 없는 평범한 독자가 “본능과 전문 기술의 연속체 위에 있는 모든 메커니즘은 생물학에서 흔히 모듈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와 같은 문장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낯선 학술적 개념에도 역주가 없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음악콘텐츠협회(KMCA)는 제3대 회장에 현 회장인 김창환 미디어라인 대표(사진)가 당선돼 연임한다고 6일 밝혔다. 임기는 4년. 협회 회원은 대형 기획사와 주요 음반투자유통사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더버라, 더버(덥어).” 경상도 사투리에서 ‘더워’는 ‘더버’라고 한다.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1876∼1914)의 의견이 맞춤법에 그대로 반영됐다면, 우리는 오늘날 ‘덥어’라고 적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문화 속 방언(方言)의 위상을 살핀 신간 ‘방언의 발견’(창비·사진)에 따르면 주시경은 저술 ‘말’에서 “더워: 이는 ‘덥어’의 ‘ㅂ’을 뺀 ‘더어’의 ‘어’를 ‘워’로 잘못 발ㅱ는 것이니 … 경상도 말대로 ‘ㅂ’을 빼지 말고 ‘덥어’라 ㅱ이 심히 좋으니라”라고 했다. 어문의 규칙성을 중시한 주시경은 사투리라 할지라도 규칙적인 모습을 드러내면 표준어로 삼을 수 있다고 봤다는 걸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방언에 우호적이고 편견 없는 인식을 드러낸 이들이 적지 않다.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경남 함양의 지방관으로 부임해 백성들의 사투리를 익히고 사용했고, 유의양(1718∼1788)도 유배지의 사투리를 기록했다. 퇴계 이황은 중앙 관직에 진출해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바꾸지 않았다. 실학자 위백규(1727∼1798)는 “퇴옹(退翁·퇴계)이 영남의 발음을 고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썼다. 물론 조선 후기에도 서울말이 중심 언어였던 건 사실이다. 위백규는 이를 두고 “한양에 다녀간 시골 사람들이 기필코 경음(京音)을 본받으려고 하니 모두 다 잘못된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서울말이 공식적으로 표준어가 된 건 일제강점기다. 조선어학회 주도로 서울말 단어 하나하나에 표준어의 자격을 부여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집’이 1936년 간행된다. ‘방언의 발견’은 표준어를 바탕으로 한 언어통일운동이 민족 구성원을 결집해 독립에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 동아일보 등이 벌인 브나로드운동은 “거국적 문화운동이자 민족자강운동, 실력양성론에 기초한 민족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문자보급운동을 주도한 인물과 참여 학생들이 훗날 한국 문화계를 이끌어 가면서 표준어가 계몽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반면 사투리는 품위 없는 말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여러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이 사투리를 등장시켜 인기를 끌었지만 여전히 공식적 언어생활에선 표준어가 압도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인 정승철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사투리 사용은 문화적 다양성의 척도이며, 표준어를 제도로 강제하는 건 인권 침해를 불러온다고 강조한다. 표준어든 사투리든 자신이 원하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언 사용권이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말이 있을 뿐, 틀린 말은 없다’는 주장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거친 힘에 바탕한 침략주의 제국주의는 권리를 옹호하는 평화주의와 정의에 기초한 인도주의로 돌아서려 한다. … 돌아보건대 국권을 상실한 지 10년, 조선 민중은 한바탕 악몽을 꾼 듯하다.”(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사) “다른 민족에게 자유를 억압당하는 고통을 겪은 지 오늘로써 10년을 넘어섰다. … 힘의 시대는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온다. …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로운 문명의 서광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한다.”(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의 창간은 1919년 거족적 항일독립운동인 3·1운동의 결과물이었다. 또한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도 흐름을 같이하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기미독립선언서와 동아일보 창간호 사시(社是) ‘민주주의를 지지함’,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포한 임시헌장(헌법)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기미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 헌법, 동아일보 창간사가 모두 인류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 독립을 바라고 있다. 조선의 독립운동이 봉건주의적 왕정복고가 아닌 자유와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근대적 민주주의 공화국을 지향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임시정부의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으로 함’, 4조는 ‘인민은 … 자유를 향유함’이다. 본보 창간사 역시 사시 중 하나인 ‘민주주의’를 “개인의 인격에 바탕을 둔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것이다. … 국내 정치에서는 자유주의요 … 사회생활에서는 평등주의요”라고 설명하고 있다. 1920년 1월 6일 동아일보 발행 허가에 대한 일제의 고등경찰관계연표(高等警察關係年表) 기록에는 “동아일보 발행 허가, 사장 김성수, 편집인 장덕수, 발행인 이상협의 한글신문(민족계) 발간”으로 돼 있다. 다른 민간 신문과 달리 유일하게 ‘민족진영’에 발행이 허가된 것임을 특기하고 있다. 설립자 김성수 선생은 1918년 12월 서울 중앙학교 숙직실에서 고하 송진우, 훗날 고려대 초대 총장이 되는 현상윤과 회동하며 독립운동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상윤의 3·1운동 회고에 따르면 이들은 육당 최남선을 끌어들이고 천도교와 접촉하는 한편 평북 정주의 남강 이승훈을 서울로 오도록 해 기독교계와의 연합을 이끌어냈다. 김성수 선생은 이승훈에게 수천 원의 자금을 전해 기독교계의 규합에 쓰도록 했다. 창간 뒤 동아일보 초대 주간(주필)을 맡아 3·1운동 정신을 구체화한 창간사 ‘주지를 선명하노라’를 쓴 이는 설산 장덕수(1894∼1947)다. 장덕수는 중국 상하이에서 여운형 등 망명 독립지사들과 함께 1918년 8월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일본에서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추동했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신한청년당은 3·1운동 뒤 임시정부 수립의 모든 실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고하 송진우는 3·1운동 주모자로 투옥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 1920년 10월 출감한 뒤 이듬해 3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2·8독립선언을 낭독한 근촌 백관수는 나중에 동아일보 사장이 돼 총독부의 강요에도 끝까지 폐간계에 도장을 찍지 않다가 종로경찰서에 수감된다. 경성의전 학생으로 학생층의 독립만세운동을 조직한 독립운동가 한위건도 1925∼28년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며 정치부장을 지냈다. 동아일보는 창간 뒤 검거된 3·1운동 주역들의 공판을 집중 보도하고 고문당했다는 진술을 전하는 등 3·1운동 정신을 잇기 위해 노력했다. 공판 시작을 알리며 민족대표 48인의 얼굴 사진을 모아 전면으로 다뤘을(1920년 7월 12일) 뿐만 아니라 옥중 근황도 ‘손병희 등 47인의 안부’(1920년 6월 12일) 등 기사로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3·1운동 2주년인 1921년 3월 1일에는 여전히 경성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의 사진과 함께 최남선 등이 가족에게 부친 편지를 실었다. 1926년에는 국제농민조합 본부가 3·1운동 7주년을 맞아 조선 농민들에게 보내온 축전을 게재했다가 2차 무기정간을 당하는 한편 주필 송진우가 보안법 위반으로 또다시 구속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