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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깃발을 들고 서 있다. 성조기와 영국 국기 그리고 중국 국민당 깃발을 든 사람도 있다. 역 앞에 도착한 호주 연합군을 향해 조선인들은 저마다 쥐고 있는 깃발을 흔들며 환호한다.’ 광복 직후 서울역광장의 모습이다.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호주 연합군과 서울 시민이 함께 기뻐하는 모습이 흑백 영상에 그대로 담겨 있다. 김선호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는 “당시 조선인들이 광복의 주체를 다양하게 특정했음을 볼 수 있다”며 “반면 북한 인민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소련기를 갖고 환영했다”고 설명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과 광복 직후 경성(京城)의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영상 3편이 공개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8일 지난해 외국에서 수집한 영상 89편 중 사료적 가치가 높은 3편의 기록 영상을 공개했다. △1930년대 군산 △1935년 조선 기행기 △1945년 광복 직후 조선에 관한 영상이다. 1945년 광복 직후 호주 정보국이 촬영한 서울의 모습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9월 8일부터 나흘간 제작된 이 영상에는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조선 총독의 모습부터 포로수용소의 호주 연합군, 광복의 기쁨을 누리는 조선인들의 모습 등을 담고 있다. 특히 1분여의 항공촬영 영상에서는 광복 당시의 경기도와 서울을 조망할 수 있다. 서울역, 조선총독부, 광화문, 시청 일대뿐 아니라 노면 전차를 이용하는 일반인의 모습까지 담겼다. 일제 곡물 수탈의 거점이었던 1930년대 군산의 모습도 공개됐다.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에서 제공받은 이 영상은 일제 식민지 선전용으로 제작됐다. 영상에는 군산항, 군산 도립의원, 전북 수리조합 군산출장소 등 근대 양식을 따른 건축물이 여럿 나온다. 현대 도자예술을 이끈 3대 도예가 중 한 명인 버나드 리치가 1935년 조선의 울산, 경주, 경성, 금강산 등을 여행하며 제작한 영상도 공개됐다. 현재 울산 중구 ‘문화의 거리’에서 열렸던 읍내장과 경주 불국사, 석굴암 등 문화재를 볼 수 있다. 조선의 전통문양에 관심이 많았던 리치는 처마 선과 문양 등을 확대해 촬영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장광헌 수집부장은 “오늘 공개한 3편의 영상은 광복 직후 우리나라 모습과 포로수용소 등의 내용을 상세히 보여준다”며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깃발을 들고 서 있다. 성조기와 영국 국기 그리고 중국 국민당 깃발을 든 사람도 있다. 역 앞에 도착한 호주 연합군을 향해 조선인들은 저마다 쥐고 있는 깃발을 흔들며 환호한다.’ 해방 직후 서울역 광장의 모습이다.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호주 연합군과 서울 시민이 함께 기뻐하는 모습이 흑백 영상에 그대로 담겨 있다. 김선호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는 “당시 조선인들이 해방의 주체를 다양하게 특정했음을 볼 수 있다”며 “반면 북한 인민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소련기를 갖고 환영했다”고 설명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과 해방 직후 경성(京城)의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영상 3편이 공개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8일 지난해 외국에서 수집한 영상 89편 중 사료적 가치가 높은 3편의 기록 영상을 공개했다. △1930년대 군산 △1935년 조선 기행기 △1945년 해방직후 조선에 관한 영상이다.1945년 해방직후 호주 정보군이 촬영한 서울의 모습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9월 8일부터 나흘간 제작된 이 영상에는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아베 노부유키 조선 총독의 모습부터 포로수용소의 호주 연합군,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조선인들의 모습 등을 담고 있다. 특히 1분여의 항공촬영 영상에서는 해방 당시의 경기도와 서울을 조망할 수 있다. 서울역, 조선총독부, 광화문, 시청 일대뿐 아니라 노면 전차를 이용하는 일반인의 모습까지 담겼다. 일제 곡물 수탈의 거점이었던 1930년대 군산의 모습도 공개됐다.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에서 제공 받은 이 영상은 일제 식민지 선전용으로 제작됐다. 영상에는 군산항, 군산 도립의원, 전북 수리조합 군산출장소 등 근대 양식을 따른 건축물이 여럿 나온다. 현대 도자예술을 이끈 3대 도예가 중 한 명인 버나드 리치가 1935년 조선의 울산, 경주, 경성, 금강산 등을 여행하며 제작한 영상도 공개됐다. 현재 울산 중구 ‘문화의 거리’에 열렸던 읍내장과 경주 불국사, 석굴암 등 문화재를 볼 수 있다. 조선의 전통문양에 관심 많았던 리치는 처마 선과 문양 등을 확대해 촬영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장광헌 수집부장은 “오늘 공개한 3편의 영상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 모습과 포로수용소 등의 내용을 상세히 보여준다”며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은하철도999에서 ‘999’는 미완성을 뜻합니다. 1000은 어른이 된다는 걸 의미하죠.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철이는 저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은하철도999’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이야기입니다.” 영원히 멈추지 않는 열차 ‘은하철도999’의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79·본명 마쓰모토 아키라)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죽은 뒤 해골이 남듯 자신의 뜻(志)도 영원할 거란 뜻이 담긴 빨간 해골 모자도 함께였다. 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은하철도999 발표 40주년 기념 전시회’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9세 때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그는 올해로 데뷔한 지 60여 년이 흘렀다. 우주전함 야마토(1974년), 은하철도999(1977년), 우주 해적 캡틴 하록(1978년), 천년여왕(1980년) 등을 그린 그는 2012년엔 프랑스 문화예술훈장인 슈발리에를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로 발표한 지 40주년이 되는 ‘은하철도999’는 19세 때 그가 탔던 도쿄행 야간열차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기계공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상경했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가 사람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채소 행상으로 직업을 바꿨기 때문. “당시 도쿄로 가던 기차가 터널을 통과했는데, 어두운 그 장면이 제겐 우주처럼 느껴졌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란 꿈을 안고 있었기에 기차가 제겐 희망이었죠. 그때 ‘은하철도999’를 타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1938년생인 그는 일본의 전쟁세대다. 어린 시절 전쟁터에서 총알을 주우며 놀았다는 그는 “전쟁은 일상이었다”고 고백했다. “어릴 때부터 사람의 생명엔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한정된 삶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인간의 유한한 생명은 ‘은하철도999’를 관통하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서기 2221년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에는 기계인간이 등장한다. 영생(永生)을 꿈꾸는 인간이 육체를 벗어던지고 기계의 몸을 택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 인간의 육체를 지키려 했던 엄마가 기계인간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 철이는 영원한 기계의 몸을 버리고 유한한 인간의 삶을 선택한다. “살아있다는 건 한정된 시간을 사는 걸 의미합니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대충대충 살지 않겠어요? 설사 기계로 영원히 살 수 있다 해도 저는 유한한 인간의 삶을 선택할 겁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올해도 한국 사회의 세태를 반영하는 신어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특정 행동을 비판하는 단어에서부터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드러내거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서 파생된 말도 있다.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신어가 여전히 많다. 인턴만 거듭되는 인생을 자조하는 ‘호모 인턴스’에 이어 ‘부장 인턴’ ‘티슈 인턴’ 등도 자주 쓰인다. 부장 인턴은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계속되는 인턴 생활로 부장만큼이나 풍부한 경험을 쌓은 취업준비생을 가리킨다. 티슈 인턴은 휴지처럼 쓰고 버려진다는 비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신어로 ‘고나리’와 ‘궁예질’ 등도 화제다. 고나리는 ‘관리’라는 단어를 키보드로 빨리 치려다 난 오타에서 유래한 것으로 잔소리나 간섭을 많이 하는 사람을 비판할 때 사용한다. 궁예질은 근거 없이 멋대로 추측하고 해석한다는 의미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관심법(觀心法)’을 썼다는 궁예(?∼918)의 언행에서 유래됐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파생된 신어도 있다. ‘순실증 환자’가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정 농단 여파로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느끼는 증상을 순실증이라고 부른다. 일부 고교 3년생들이 최 씨의 딸 정유라 씨가 부정 입학한 사실에 대해 분노하며 이런 말을 쓰기도 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전후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선 ‘탄핵 세대’란 신어가 눈에 띄고 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투명수트’를 입게 되면 청와대에 들어가 모든 걸 알아낸 다음 여러분들께 한국 대통령 탄핵 관련된 답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투명수트(invisible-suit·영화에서 ‘메이저’가 착용한 의상)를 입으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스칼렛 요한슨(33)은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놨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더 쉘’의 29일 개봉을 앞두고 마련된 이번 기자간담회엔 스칼렛 요한슨과 루퍼트 샌더스 감독과 배우 줄리엣 비노쉬, 필로우 애스백이 참석했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더 쉘’은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원작 만화는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와 워쇼스키 자매 감독의 ‘매트릭스’에 영감을 준 걸로 알려졌다. 1989년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 ‘공각기동대’는 1995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바 있다. 이번 작품은 ‘공각기동대’의 최초 실사 영화다. “원작은 ‘실존’에 대한 의미를 던진 작품으로 시적(詩的)이고 속도가 느립니다. 제가 맡은 메이저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투쟁하는 역할인데, 저 또한 영화를 찍으면서 긴 여정을 지나온 듯 합니다.”(스칼렛 요한슨) ‘캡틴 아메리카’ ‘어벤져스’ ‘루시’ 등에서 화려한 액션 연기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그가 맡은 역은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 선 특수요원 ‘메이저’다. 연기를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소통)’이라고 정의한 스칼렛은 “연기하면 할수록 불필요한 면은 빼려고 한다”며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는 눈빛을 통해 전달된다”고 했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더 쉘’은 메이저와 오우레 박사, 두 주인공 모두 여성인 영화다. 특히 비노쉬가 맡은 오우레 박사는 원작에선 남성이었으나 영화에서 여성으로 설정된 인물이다. 샌더스 감독은 “더 많은 여성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두 주인공 모두가 여성인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세계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바 있는 비노쉬는 “촬영하는 데 딸 생각이 많이 났다”며 “오우레 박사가 메이저의 어머니라 생각하니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反)트럼프 배우로 알려진 요한슨에게 수차례 트럼프 관련 질문이 나왔으나 주최 측이 답변을 막아 논란이 됐다. 사회자가 답변을 차단하자 그는 “트럼프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답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What does it mean to do something LIKE GIRL?’(여자답게 행동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난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P&G 위스퍼의 광고 문구다. 광고엔 두 실험집단이 나온다. 10세 이상의 남녀와 10세 미만의 소녀. 감독은 ‘깊이 생각하지 말고 처음 떠오르는 행동을 보여주면 된다’며 ‘여자답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주문한다. 놀랍게도 ‘같은 지시’에 ‘다른 반응’이 나왔다. 10세 이상의 남녀 실험자는 모두 비슷한 동작을 보였다. “양팔을 어깨 높이로 올려 가볍게 흔들고 허벅지는 고정한 채 종아리로만 달린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쓸어내리며 ‘아, 내 머리’라고 새침하게 말한다.” 10세 미만 소녀들은 달랐다. 이들은 양팔을 앞뒤로 흔들고 허벅지를 상체 쪽으로 올리며 힘차게 질주했다. ‘여자답게 달리라’는 말의 의미를 묻자 7세 소녀는 이렇게 답한다. “최대한 빨리 달리라는 뜻요.” 오늘 오전 출근하면서 회사 근처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여느 때처럼 커피를 주문해 마시는데 컵 홀더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를 맞아 내놓은 분홍색 컵 홀더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를 가장 여자답게.’ “대체 여자다움이 뭘 의미하는 거야!” 보자마자 분노가 느껴졌다. 특정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서다. 특히 ‘여자답게’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화를 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여자답게’라는 말에 대한 여성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수긍하거나 반발하거나 개의치 않거나. 내 경우이기도 하지만 반발하는 사람의 심리는 이렇다. ‘여자답게’라는 말을 욕으로 듣는 동시에 ‘여성스럽지 않다’는 말은 칭찬으로 여기는 거다. 여자다움을 둘러싼 편견을 비판하면서 여자다움 자체를 ‘비하’해온 나는 그동안 페미니스트를 자처했지만 결국 남존여비(男尊女卑)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모순이다. 광고 마지막에 6세 소녀가 말한다. “여자답게는 ‘나답게’라는 말이에요.” 그 나이 땐 나도 ‘여자답게’를 ‘나답게’라 생각했을까. ‘여자답게’를 내세워 분홍색 하트 모양 과자를 팔려는 커피전문점의 상술보다 나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진 화이트데이의 아침이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What does it mean to do something LIKE GIRL?’(여자답게 행동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난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P&G 위스퍼의 광고 문구다. 광고엔 두 실험집단이 나온다. 10세 이상의 남녀와 10세 미만의 소녀. 감독은 ‘깊이 생각하지 말고 처음 떠오르는 행동을 보여주면 된다’며 ‘여자답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주문한다. 놀랍게도 ‘같은 지시’에 ‘다른 반응’이 나왔다. 10세 이상의 남녀 실험자는 모두 비슷한 동작을 보였다. “양 팔을 어깨 높이로 올려 가볍게 흔들고 허벅지는 고정한 채 종아리로만 달린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양 손으로 쓸어내리며 ‘아, 내 머리’”라며 새침하게 말한다. 10세 미만 소녀들은 달랐다. 이들은 양 팔을 앞뒤로 흔들고 허벅지를 상체로 힘차게 끌어올리며 힘차게 질주했다. ‘여자답게 달리라’는 말의 의미를 묻자 7세 소녀는 이렇게 답한다. “최대한 빨리 달리라는 뜻으로요.” 오늘 오전 출근하면서 회사 근처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여느 때처럼 커피를 주문해 마시는데 컵 홀더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발렌타인, 화이트데이를 맞아 내놓은 분홍색 컵 홀더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를 가장 여자답게.’ “대체 여자다움이 뭘 의미하는 거야!”, 보자마자 이런 분노가 느껴졌다. 특정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는 표현이다. 특히 ‘여자답게’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화를 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여자답게라는 말에 여성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것이다. 수긍하거나 반발하거나 개의치 않거나. 내 경우 반발의 심리는 이렇다. 여자답게라는 말을 욕으로 듣는 동시에 ‘여성스럽지 않다’는 말은 칭찬으로 여기는 거다. 여자다움을 둘러싼 편견을 비판하면서 여자다움 자체를 ‘비하’해온 나는 그동안 페미니스트를 자처했지만 결국 남존여비(男尊女卑)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모순이었다. 광고 마지막에 6세 소녀가 말한다. “여자답게는 ‘나답게’라는 말이에요.” 그 나이 땐 나도 여자답게를 나답게라고 생각했을까. 여자다움을 내세워 분홍색 하트모양 제과를 팔려는 커피전문점의 상술보다 자신이 더 비루하게 느껴진 화이트데이의 아침이었다.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이 드라마, 예능, 영화 장르뿐 아니라 웹 콘텐츠 시장에도 불어닥쳤다. 웹툰뿐 아니라 중국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내 한국 콘텐츠의 중국 시장 진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 한한령 직격탄 맞은 ‘웹툰 한류’ 2003년부터 웹툰 서비스를 시작한 네이버, 다음, 레진코믹스 등을 중심으로 웹툰 한류는 2015년부터 본격화됐다. 이들의 중국 시장 진출은 중국 콘텐츠 플랫폼과 제휴를 맺거나 미디어 기업과 영상화 판권 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에 따르면 중국의 만화(출판 및 웹툰) 시장 규모는 2020년까지 연평균 4.6%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5억2800만 달러(약 605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 웹툰 시장 규모는 연평균 190%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0년엔 1억4900만 달러(약 1707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본보 취재 결과, 중국에서 선전하던 웹툰 한류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크게 위축되고 있다.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의 눈치를 보느라 사드 논란 이전에 체결한 계약이 무기한 연기되거나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확인됐다. 지난해 9월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된 A 웹툰의 영상화 판권이 중국의 대형 미디어 회사 B에 팔렸다. 액수는 5억 원으로 당시 중국에 수출된 판권 중 최고 금액이었다. 하지만 사드 배치 논란이 불거지며 사업은 무기한 연기됐다. 제작사 관계자는 “중국 쪽 관계자가 ‘광전총국에서 웬만하면 한국 기업과 사업을 진행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며 “통상적으로 계약 체결 후 한 달 내에 사업이 착수되지만 7개월이 지났는데도 무소식”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비공개를 전제로 한국 웹툰 판권을 수입하는 등 ‘우회적 방식’을 택한 중국 기업도 있다. 한국의 대형 웹툰 제작·플랫폼인 C기업은 지난해 말 중국의 한 미디어 기업과 웹툰 영상화 판권을 거액에 판매하는 계약을 했지만 홍보·광고를 전혀 하지 못했다. 해당 관계자는 “중국 파트너가 정부가 알게 되면 차질을 빚을 수 있으므로 비공개로 해달라고 말해 비밀에 부친 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미디어 기업의 한국 행사 취소도 잇따른다. 8일 중국의 텐센트 그룹이 진행하려던 한국 마케팅 행사는 하루 앞두고 돌연 연기됐다. 텐센트 그룹은 월간 이용자 수가 9000만 명이 넘는 중국 최대 규모의 웹툰 플랫폼인 텐센트 둥만(動漫)의 모기업이다. 국내 웹툰 업계 관계자는 “텐센트 코리아가 그나마 유일하게 웹툰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텐센트마저도 얼어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에도 불어닥친 한한령 중국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유쿠(優酷)와 아이치이(愛奇藝), 투더우(土豆), 큐큐(QQ) 등의 사이트에서는 SBS ‘런닝맨’, MBC ‘무한도전’과 ‘우리 결혼했어요’, KBS ‘1박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인기 한류 예능 프로그램 콘텐츠가 삭제된 상태다. 본보가 큐큐, 유쿠, 아이치이 등의 사이트에서 한류 예능 프로그램을 검색한 결과 ‘저작권 문제로 방송이 안 된다’거나 ‘영상이 삭제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KBS 2TV 드라마 ‘화랑’은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 LETV와 동시 방영 계약을 맺었지만, 동시 방영 2주 만에 중단됐다. 또 최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tvN 드라마 ‘도깨비’는 중국 내에서 해적판 버전이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는 동영상 플랫폼에서 해적판마저도 찾아보기 어렵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정은 기자}

다음 달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엠넷 ‘프로듀스101 시즌2’의 한 출연자가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주장이 나왔다. 자신이 피해자라 주장하는 한 누리꾼은 11일 페이스북에 “너 TV 나온다더라”는 말과 함께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난 아직도 꿈에 네가 나오면 울면서 깨어난다. 네 이름 네 얼굴만 봐도 그때 생각에 죽고 싶다”고 적었다. 글쓴이는 또 “초등학교 때 청소도구함에 처박아 놓고 점심조차 먹지 못하게 한 것 등 전혀 잊지 못한다”며 “일진이던 네가 내게 준 상처들 이제 되돌려 주겠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게재된 이 글에는 2시간 만에 6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프로듀스101 시즌2’ 관계자는 12일 “참가자 과거 논란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프로듀스101 시즌2’는 국내 다양한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의 남자 연습생이 보이그룹 데뷔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사드 보복은 남중국해 분쟁으로부터 미국과 일본의 시선을 거두기 위한 중국의 책략입니다. 중국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중국을 옹호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은 원칙을 저버린 채 중국의 눈치를 본 겁니다.”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 씨(71)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외교적 압박을 ‘공연한 트집’이라 일축했다. 최근 그가 다시 펴낸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사진) 개정 증보판에서는 남중국해와 사드 문제를 검토한다.》 서문에 그는 중국이 가진 문화적 유전자를 알아야 비로소 중국을 이해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의 문화적 유전자는 ‘조공외교’와 ‘공산주의’다. “중화주의(中華主義)에 젖은 중국은 조공관계를 외교의 기본 틀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는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중국이 공산국가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죠.” 책에서 그는 연합군 수석대표로 휴전협상에 배석한 C 터너 조이 제독이 쓴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를 인용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논점을 흐려 엉뚱한 곳으로 상대의 관심을 돌리는 ‘훈제 청어(red herrings)’ 기법을 쓰는데 이것이 사드 문제에서 중국이 견지하는 기본적 태도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사드 배치를 문제 삼아 흥정의 패로 삼는 거죠. 중국에 사드는 중요한 논점이 아닙니다.” ‘사드의 눈’이라 불리는 엑스(X)밴드 레이더(AN/TPY-2)는 중국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로 꼽힌다. 미사일방어체계(MD)의 조기 경보 장치로 탄도미사일 등을 추적하는 데에 사용되는 이 레이더를 중국은 ‘자국 감시망’이라 주장한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사드의 관측 및 시전 경보 범위는 한반도를 훨씬 넘어 중국의 전략 안보이익을 침해한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중국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뿐 아니라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주요 강대국들은 오래전부터 자국 안보를 위해 레이더망을 운용 중입니다. 정교한 감시망인 인공위성이 있는 마당에 그보다 효능이 못 미치는 지상 레이더를 걸고넘어지는 건 괜한 트집입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이 잇따라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 대해 그는 “예속되지 않으려면 견뎌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주한 중국대사가 원세개(위안스카이·袁世凱·1882년 임오군란을 빌미로 조선에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부임해 국정에 간섭한 인물)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으로선 중국과 상대하는 일이 ‘미끄러운 비탈’이라는 점을 떠올려야 합니다. 무척 힘들고 큰 값을 치러야 하지만, 마음만 굳게 먹으면 미끄러운 비탈도 오를 수 있습니다.” 그를 만난 10일은 헌정 사상 처음 대통령이 탄핵된 날이었다. 헌법재판관 8인은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는 이에 대해 “재판관들이 형평성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입니다. 특검의 공소장이 무죄 추정의 원칙을 뒤엎을 수는 없습니다. 적법 절차가 지켜져야 재판의 공정성은 의심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헌재의 판결엔 승복해야 한다고 했다. “탄핵심판 및 과정은 적법 절차에 의해 진행되지 않았지만 헌재가 만장일치로 대통령을 파면했으니 결과에 승복함으로써 분쟁을 끝내야 합니다.” 지난해 11월 그는 기고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은 도덕적 권위를 잃었기에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격 없는 최순실에게 국가 기밀을 누설했고 휘둘렸습니다. 대통령은 궁극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하지만 독립적 인격이 훼손됐다고 의심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번 무너지면 절대 회복될 수 없는 게 지도자의 권위입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탁 치니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 12시경 사망했다’는 공식 발표를 내놨다. 하지만 분노한 시민들은 약 20일간 국가 폭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이는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1987년 당시를 만화로 그려낸 두 작품이 있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강태진 씨(45)의 ‘조국과 민족’과 수사반장(필명·32)의 ‘김철수 씨 이야기’다.○ 깡패나 다름없던 국가…짓밟힌 개인의 삶 웹툰 ‘조국과 민족’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고문과 살인도 서슴지 않는 정보기관 공작원 박도훈이 주인공이다. 만화는 친아버지도 간첩으로 몰아세운 그가 의도치 않게 대남 공작원에 포섭돼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는 작품의 장르를 ‘시국 누아르’라 명명했다. “사람을 고문해서 죽이고 시체를 유기하고…. 주어만 국가지 조직폭력배 이야기나 다름없죠. 깡패 짓을 해온 이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했다는 걸 보여줍니다.”(강 씨) 또 다른 웹툰 ‘김철수 씨 이야기’는 국가 폭력에 희생된 ‘개인’에 주목한다. 주인공 김철수는 태어나자마자 쓰레기 소각장에 버려진다. 간첩으로 몰려 고문받고 남편까지 잃은 여자가 그를 거둬 키우지만 경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와 이별한다. 이후에도 김철수는 5·18 땐 총에 맞고, 1987년엔 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당한다. “‘김철수’라는 캐릭터에 개연성을 주고자 역사적 사건을 대입했습니다. 5·18 당시 김철수가 광주에 살았다고 가정하면 그의 불행은 필연이니까요.”(수사반장) 실제 사건과 인물을 배경으로 하기에 신중함이 필요했다고 작가들은 말했다. ‘조국과 민족’의 강 씨는 만화를 위해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자서전을 비롯해 중앙정보부 공작원의 회고록을 읽었다. “좌우(左右) 할 거 없이 열변을 토하는 사람은 대부분 조국과 민족을 들먹이죠. 정치적 수사치곤 고리타분한 듯하지만 일종의 주술입니다. 아직도 그 같은 주술에 취한 사람이 버젓이 존재합니다.”(강 씨) ‘김철수 씨 이야기’를 그린 수사반장 역시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를 비롯해 5·18 관련 서적을 참고했다. 선동한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던 그는 검찰 수사 결과 등 최대한 ‘보수적인’ 자료를 토대로 작업했다. “헬기에서 기관총으로 학살했다는 사건도 공통된 기록이 아니기에 만화에선 뺐습니다.”(수사반장)○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했던 그 시절 ‘어쩔 수 없이.’ 극중 김철수가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는 단어다. 국가나 개인이 저지른 폭력을 합리화할 수 있어서다. “어르신들은 간첩을 잡아서 때렸던 게 그 시대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폭력은 잘못된 거죠. 진보, 보수 할 거 없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사회 모두 불행해집니다.”(수사반장) 강 씨도 이런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주로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데 사용됐다고 했다. “국가나 조직도 중요하지만 전체보다는 개개인의 존엄성에 가치를 더 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강 씨) 민주주의 역시 ‘대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철수 씨 이야기’에는 시위하다 감옥에 갇힌 최민주가 ‘민주화를 위해 자살해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1980년대 후반엔 그런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독재를 무너뜨리려는 이유는 전체에 의해 개인이 희생되는 걸 없애기 위한 것인데, 민주주의를 위해 죽는다는 건 역설입니다. 다른 듯 보여도 결국 같은 폭력입니다.”(수사반장) “민주주의는 간편하게 ‘다수결’을 채택했지만 소수를 버리는 데에 익숙해지는 걸 경계해야 합니다. 금세 과거로 회귀할 수 있으니까요.”(강 씨)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경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일본군 상하이 점령 경축행사 도중 윤봉길 의사가 단상을 향해 던진 ‘물통 폭탄’에 여러 일본인 장교가 즉사하거나 다쳤다. 윤봉길 의거다. 같은 시각 14세 소년은 한인애국단 이유필을 통해 단장이던 김구의 지시를 받는다. ‘도산이 위험하니 급히 피신하라 이르라.’ 당시 소년은 상하이의 한 마을에 숨어 있던 안창호에게 달려가지만 앞문과 뒷문으로 길이 엇갈려 둘은 만나지 못한다. 결국 도산은 일본군에게 잡혀가고 소년은 자리에 주저앉아 울부짖는다. 소년의 이름은 배준철(1918∼1997).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임시정부가 세운 인성학교 졸업생이자 상하이 독립운동단체의 부대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그가 42년간 쓴 일기가 처음 공개됐다. 27일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98주년 3·1절을 맞아 지난해 12월 배 씨의 손자로부터 건네받은 그의 일기와 소장 자료를 공개했다. 1935년 1월 1일부터 1977년까지 작성한 일기장 12권과 필름첩 3개, 사진첩 1개 등이다. 일기 12권 중 분석이 끝난 4권의 내용이 공개됐다. 일기엔 임정이 상하이를 떠난 후에도 독립 의지를 꺾지 않은 배준철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난다. 1935년 3월 1일, 그는 이렇게 적는다. ‘금일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오늘, 우리 조국을 찾으려고 백의동포는 붉은 피를 흘린 기념일이로구나. … 한국의 아들과 딸 된 자는 누구를 물론하고 이날을 거룩하게 하라.’ 김주용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은 “상하이소년척후대와 유년척후대 지도를 맡은 배준철에게 당시 3·1절은 매우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역사학계는 그간 상하이 임시정부를 세 시기로 나눴다. △1기(1919∼1932년) △2기(1932∼1940년) △3기(1940∼1945년) 중 2, 3기는 상하이 한인사회의 공백으로 여겨지곤 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임정이 상하이를 떠난 후부터 독립운동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려온 셈이다. 하지만 배준철 일기를 통해 독립운동을 이어간 조선인들이 상하이에서 계속 활동했음이 드러났다. 그의 사진들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1930년대 후반 상하이 한인사회 모습을 복원해줄 1급 사료로 평가된다. 특히 백범일지에도 수차례 언급된 독립운동가 이효상이 14세 때부터 상하이한인소년척후대에서 활동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1930년 조직된 이 척후대는 보이스카우트와 비슷한 조직으로 알려졌으나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요람으로 밝혀졌다. 배준철 일기를 통해 인성학교의 모습과 교장 선우혁의 존재도 알려졌다. 인성학교는 일제의 일본어 교육 강요로 1935년 11월 11일 자진 폐교한 조선인 학교이고, 선우혁은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인성학교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 So White)’라는 문장이 보여주듯 해마다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2002년 덴절 워싱턴과 핼리 베리가 남녀 주연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이변’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흑인 배우가 남녀 조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89년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초다. 26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문라이트’에 출연한 흑인 배우 마허샬라 알리(43)가 남우조연상, ‘펜스’의 비올라 데이비스(52)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알리는 흑인 남자 배우로는 8번째로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했다. 1964년 시드니 포이티어가 흑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이후 53년간 아카데미는 단 7명의 흑인 남성 배우에게만 상을 허락했다. 여우조연상을 받은 데이비스는 아카데미서 세 차례 후보 지명된 배우로 흑인 여배우 중 가장 많이 수상 후보 명단에 올랐다. 한편 흑인 배우 덴절 워싱턴과 루스 네이가는 각각 남녀 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집에서 스테이크만 먹는 깍쟁이 이미지가 있어선지 제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놀랄 때가 많았어요. 저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이번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고소영(사진)이 10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23일 열린 KBS2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복귀 소감을 밝혔다. 그는 “언론에서 ‘10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상당히 부담스럽다”며 “이전에도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여유가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기를 미루면 더 이상 연기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완벽한 아내’ 대본을 받았다”며 “아내,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을 기반으로 ‘심재복’ 캐릭터에 잘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아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소영은 영화 ‘아파트’(2006년)와 ‘언니가 간다’(2007년), SBS 드라마 ‘푸른 물고기’(2007년) 이후 작품 활동을 하지 않다가 ‘완벽한 아내’로 10년 만에 돌아왔다. 2010년 배우 장동건과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은 그는 육아와 개인 사업에 전념해 왔다. 27일 첫 회가 방송되는 ‘완벽한 아내’에서 그가 연기할 심재복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수습사원이자 전세난에 아등바등 사는 주부 역할이다. 남편의 외도로 심재복이 의문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연출을 맡은 홍석구 PD는 “심재복 역은 억세고 드센 아줌마 역할인데, 그럴 법한 사람보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우가 연기하면 의외로 매력이 돋보일 거라 생각했다”며 “처음 고소영 씨는 아줌마 캐릭터랑 거리가 멀게 느꼈지만 지금 연기하는 걸 보면 완벽하게 드센 아줌마 심재복이다”라고 말했다. ‘완벽한 아내’는 KBS의 이전 드라마 ‘우리 집에 왜 왔니’(10.6%·닐슨코리아), ‘화랑’(7.9%) 등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던 시간대에 편성됐다. 고 씨는 “경쟁 방송사 프로그램이 워낙 잘되고 있지 않나. 처음은 비록 낮더라도 회를 거듭하면서 드라마가 사랑을 받아 시청층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웹툰 ‘생활의 참견’의 오랜 독자인 직장인 손보배 씨(32)는 스스로를 ‘생참지기’라 말한다. 대학교 3학년 때인 2008년부터 보기 시작해 100화 특집뿐 아니라 최근 올라온 934화(17일 기준)까지 빼놓지 않고 다 봤다. 손 씨는 “아침이면 늘 생참을 챙겨 봤는데 등굣길이 출근길이 되고 지금은 딸아이 어린이집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 본다”며 “만화에 자주 나오는 작가님의 아내와 두 딸도 마치 지인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김양수 작가의 ‘생활의 참견’은 독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소재 삼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 웹툰이다. “‘가우스 전자’와 함께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라고 말하는 직장인 한경진 씨(34)는 웹툰 ‘가우스전자’의 애독자다. 2011년 신입사원이 된 그가 현재 과장이 되기까지 가우스전자는 연재 6년 차를 맞았다. 가상의 전자회사를 배경으로 한 ‘가우스전자’는 회사원 입장에서 공감할 소재와 블랙코미디 성격이 특징이다. ‘가우스전자’는 주중에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월∼금 주 5일 연재된다. 작가 곽백수는 “규칙적으로 만화를 그리는 게 삶의 일부분이 됐다”며 “오랜 기간 함께해 준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체력 단련과 시간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웹툰 연재 기간이 길어지면서 독자와 함께 성장하고 늙어 가는 ‘장수툰’이 많아지고 있다. 2003년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만화를 연재하는 플랫폼이 갖춰진 후로 3년 이상 매주 연재되어 온 장수툰이 등장했다. 현재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작품 165개 중 46개가 만 3년 이상 연재 중인 장수툰이다. 대표적으로 2007년 연재가 시작돼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노블레스’와 6년 차 웹툰인 ‘갓 오브 하이스쿨’ 등이 있다. 노블레스를 그리는 작가 손제호, 이광수는 “주변에서 ‘노블레스 연재가 벌써 10년 됐다’는 소리를 종종 들으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복잡한 감정이 든다”며 “연재 내내 함께 호흡해 주는 독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 스토리 장르뿐 아니라 일상을 소재로 하는 ‘생활툰’이 많아지면서 웹툰의 연재 기간이 무한정 늘어나는 추세다. 2006년 9월 연재를 시작한 작가 조석의 ‘마음의 소리’는 10주년을 지나 1074화(13일 기준)가 올라왔다. 작가의 일상을 소재로 매화 나름의 서사를 가미한 이 작품 역사 서사만화를 가장한 생활툰이다. 작가 본인이 주인공이고 여자 친구, 부모, 형, 반려견 등이 만화에 출연한다. 웹툰 관계자는 “댓글 창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문화가 이미 하나의 ‘놀이’가 됐다”며 “조석 작가의 경우 10주년 때 댓글이 15만 건 이상 달릴 정도”라고 말했다. 그 밖에 ‘생활툰’ 중 3년 이상 연재된 작품은 ‘생활의 참견’(9년), ‘Penguin loves Mev’(7년), ‘패밀리 사이즈’(3년) 등이 있다. 김준구 네이버웹툰&웹소설CIC 대표는 “요일제 연재 시스템을 도입한 후로 독자들이 다음 화가 언제 올라올지 예측 가능해지면서 기다리느라 지치지 않게 됐다”며 “또한 미리보기 등 다양한 수익 모델도 작가가 안정적으로 장기 연재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허를 찌름으로써 통념과 고정관념을 깨는 현대미술, 아름다움으로 미적 위안을 주는 순수미술이 양 날개라고 한다면 생각과 행동을 바꿔 사회 변화에 이르게 하는 사회적 미술은 또 다른 날개입니다. 세 날개로 우리 사회를 바꾸는 미술관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20일 열린 취임식에서 최효준 서울시립미술관 신임 관장(사진)은 “민간 조직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순수예술 외에도 현실·사회적 의제를 콘텐츠로 적극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으기 위해 유명 작가를 중심으로 장소만 대여하는 ‘블록버스터 전시’는 지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관장은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 전시가 주력 프로그램이 되면 미술관의 조직을 유지할 명분이 약해진다”며 “한 작가의 명품 전시가 아니라 시대, 지역, 영역을 넘어선 주제전과 테마전을 주로 기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공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만족하게 해 미술관을 즐겨 찾지 않는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포부도 내놨다. 최 관장은 “일 년 전 재미있고 유익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종편 프로그램을 보고 미술관의 역할을 고민했다”며 “공공적인 것을 대중적으로 전달하면서 본래의 성격은 잃지 않게 하는 게 미술관 종사자들의 목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취임식에서는 ‘2017년 연간 전시 계획’도 발표됐다.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소문 본관, 북서울미술관, 남서울미술관 등 공간별로 특성화된 전시 공간을 기획할 예정이다. △국내외 현대 미술의 동향을 소개하고(서소문 본관)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미술의 공공성과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북서울미술관) △디자인·공예 중심의 생활미술이 주로 전시(남서울미술관)된다. 주요 전시로는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의 ‘날개, 파티’,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전시, 2017 서울포커스 ‘뉴타운 판타지’ 등이 예정돼 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퇴직은 하지만 연구는 계속된다.’ 2월은 대학에 몸담은 교수들이 정년을 맞이하는 달이기도 하다. 평생 연구에 정열을 쏟고 퇴임하는 두 교수를 동아일보가 만나봤다.》 ●노명호 서울대 교수 “한국의 저력은 다양성에 기초… 정파간 의견 합쳤을때 강해져”고려시대 부모 봉양의 의무와 재산 상속을 비롯해 친족제도에서 남녀 차별이 없었다는 것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지금은 상식이다. 그러나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66)가 1980년대 연구를 통해 밝히기 전에는 고려도 그저 조선 후기처럼 종법(宗法)적인 부계중심사회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고려사 연구의 권위자인 노 교수를 14일 만났다. “1970년대 중반 집대성되던 인류학의 친족제도 연구를 접하고 고려시대를 들여다봤더니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개인이 중심인 ‘양측적(兩側的) 친속(親屬)관계’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는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에만 존재한 겁니다. 친족제도는 경제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근간이 되고, 어지간해서 잘 변하지 않거든요. 이게 고대, 고려, 조선이 다 다르다는 건 한국사가 일본 학자들의 시각과 달리 굉장히 역동적이라는 것을 밝힌 거지요.” 단재 신채호가 고려시대 정치사상을 국풍―화풍, 자주―사대의 구도로 봤던 것과 달리, 천하 다원론(多元論)자들이 고려의 국정을 대체로 주도했다는 사실도 노 교수가 밝혀냈다. 노 교수는 “고려시대 동아시아는 명·청이 주도했던 조선시대와 달리 현대적인 다극체제”라며 “다극체제에서 한쪽에 치우친 외교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화이론(華夷論)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강국 한곳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고려 성종 대 요나라를 무시하고 송나라에만 의존하다가 거란이 침입해오니 사실 파악도 하기 전에 북방의 영토를 떼 주자고 주장합니다. 반면 천하 다원론자인 서희는 거란의 의도를 파악하고 담판을 통해 오히려 압록강 하류 영토를 확보하지요.” 노 교수는 무리하게 금나라 정벌을 주장한 묘청 일파처럼 국수주의자들도 이념에 휘둘린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천하 다원론자들은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대체로 사실 파악을 잘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노 교수는 “역동성이 한국사의 기본 흐름이고 역동성은 다양성에서 나왔다”며 “다양함 속에서도 정파 간에 아는 것, 불확실한 것, 모르는 것을 구별해 가며 의견을 합치했던 때는 위기를 잘 넘겼고, 모르거나 불확실한 것도 아는 것처럼 대응하면 국가가 굉장한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고려 태조릉인 북한 개성의 헌릉에서 나온 동상이 불상이 아니라 태조 왕건의 동상이라고 밝혀낸 일, 수십 조각으로 찢긴 석가탑 중수문서를 이론의 여지없이 복원하고 판독한 일을 비롯해 그의 연구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퇴임 후에도 고려 친족제도 연구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새로운 이해’ 등 당장 집필 예정인 책이 여럿이라고 했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성희롱이란 말 생긴지 얼마 안돼… 남녀평등, 법 갖춰야 사회도 변해”‘차별’이라는 단어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그 무렵 등장한 여성주의자들이 성차별 담론을 제기하면서 한국 사회는 ‘차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여성학자로 살아온 이재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가 27일 퇴임을 앞두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났다. “6·29 선언 이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스트들의 이슈는 반정부·민주화였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민주화’에서 ‘젠더’로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한 게 1990년대입니다. 그때 이화여대에 부임했는데 벌써 25년이 흘렀네요.” 이화여대 사회학과 70학번이던 그는 학부 때 한국의 1세대 여성학자 이효재 교수를 만났다. “이효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여성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석사 논문을 ‘가족’에 관해 썼는데, 그때만 해도 여성학은 소수 학문이었습니다.” 그가 여성학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성희롱, 가정폭력 등과 같은 단어는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따로 ‘범죄’로 규정하지 않아서다. “‘sexual harrassment’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들어왔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엔 ‘성희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을 정도였어요.” 1980년 이후 여성사회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각종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남녀고용평등법’은 1989년,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1997년, 그리고 가정에서의 여성의 권리를 인정한 호주제 폐지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옛날엔 남편이 아내를 구타해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처럼 심각성을 흐리는 말들만 오갔죠. 법과 제도를 먼저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교육도 되고 의식화가 됩니다.” 이 교수는 최근까지도 ‘한국 근대의 여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6·25전쟁 이후 분단, 개발독재 아래 여성들의 모습을 구술로 조명했다. 서구 이론에 따르면 여성들은 근대로 접어들고 핵가족화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지만 한국 여성들은 달랐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 여성들은 미장원, 계, 공부방 과외 등 가족 생계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서구 이론을 뒤집는 결과죠.” 2010년부터 5년간 진행된 연구는 아카이브 형태로 정리돼 현재 이화여대 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여성 문제에 대한 거시적 연구는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실제 생활이 어땠느냐의 문제는 간과됐습니다. 여성들의 미시사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해도 여성학자이기에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가 개발되면서 자동차 조립 공정이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업장 규율은 1970, 80년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물건을 구시대적 조직이 만들어내야 하는 유례없는 모순에 봉착했습니다. 현재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실입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진단한 ‘가 보지 않은 길’(나남)을 펴냈다. 그는 14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고의 기술력과 육체노동의 결합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던 현대차가 신기술 개발에도 불구하고 조립 공정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며 “공정 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어마어마한 저항이 현대차의 혁신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년간 50여 명의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했다. 노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현대자동차가 처한 위기를 진단한 그는 서문에서 “노동 문제를 푸는 열쇠가 고임금 정규직에게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는 따로 다루지 않았다”고 적었다. 송 교수는 “연 소득 9000만 원 이상인 그들은 실상 중산층이지만 일터에서는 노동자로 이중적 정체성을 지녔다”며 “이는 ‘계급 연대’가 아닌 ‘내부자 연대’를 강화하는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조는 ‘고(高)임금, 소(少)노동, 장(長)고용’ 원칙만을 내세운다. 이로써 사회적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 의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말은 ‘기업 역시 시민의 일원으로, 시민의 책무와 공적 역할을 충실히 하는 조직체’를 뜻한다. 송 교수는 “현재 대기업 사원이나 생산직은 시민이 아니다”라며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내부 문제에만 몰두하는 노조는 제조업 전반에 위기를 몰고 왔다”고 지적했다. 시민의식이 실종된 노동조합의 행태는 ‘야리끼리’라는 은어를 통해 대변된다. ‘해치운다’는 의미의 일본말로 8시간 노동 분량을 5시간에 해치워 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는 “컨베이어 속도를 마음대로 당겨서 빨리 해치우고 조기 퇴근을 하지만 비정규직은 예외”라며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을 가리키며 ‘절반만 일하고, 절반은 누워 잔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고 했다. 송 교수는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조선업과 같은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불황을 대비해 미리 혁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현재의 경직된 노조 분위기에선 극심한 불황이 닥쳐야지만 구조조정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에서 12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결정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내놨다. 사양산업인 조선업계에 필요한 건 공적자금보다 구조조정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지금 살려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한 달에 100만 원 받는 청소 노동자, 겨우 취업해도 200만 원 버는 청년 아니냐”며 “12조 원은 도덕적 해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고용 여력이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 역시 경직된 노조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 한 현대차는 신규 채용이 아닌 해외 생산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국내 생산량은 2001년 94.2%였던 데 반해 지난해 34.3%로 대폭 감소했다. ‘대화 능력’을 상실한 경영진의 태도가 현재 투쟁 일변도의 노사관계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경영진들은 1980년대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에게 열정과 소명, 협동의식을 강조하지만 이는 시대착오적 소통 방식”이라며 “돈을 더 줄 테니 ‘입을 다물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태도로 2000년대 이후부터 경영과 노동의 이별의 시대가 열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생산직에게 승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기업 내부 조직구조 역시 ‘노사 이별’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일본의 도요타 시스템처럼 ‘기능장’을 뽑아 생산직 노동자에게도 승진과 경영 참여의 기회를 부여해 회사에 ‘주인의식’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조선시대 편지에 나오는 한글 어휘 1만9484개의 뜻풀이를 담은 사전(사진)이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는 16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왕실, 사대부, 서민이 작성한 한글편지 1465건에 실린 단어와 용례를 수록한 ‘조선시대 한글편지 어휘사전’(전 6권·도서출판 역락)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어문생활사연구소가 2008년 7월부터 3년간 진행한 ‘조선시대 한글편지의 수집·정리와 어휘·서체 사전의 편찬 연구’의 성과물로, 2013년에는 한글편지 판독문을 실은 ‘조선시대 한글편지 판독자료집’을 펴내기도 했다. 황문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사전 편찬 총책임을 맡았으며 김주필 국민대 교수, 배영환 제주대 교수, 신성철 상명대 강사, 이래호 남부대 교수, 조정아 동국대 강사, 조항범 충북대 교수가 참여했다. 한글 어휘가 실제 쓰인 문장과 함께 뜻풀이가 수록돼 있는 방식이다. 사람의 이름인 ‘뎡녜’라는 한글에 대해서는 ‘정례. 인명(人名)’이라고 뜻풀이를 싣고, 1607년 벽진 이씨가 안사돈인 박씨에게 부친 편지에 나오는 ‘오월 초여다랜날 외얘 뎡녜 할미’라는 용례를 게재했다. 또 ‘츈츄’에 대해서는 ‘춘추(春秋). 어른의 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와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가 1851년 재종동생인 김흥근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츈츄 더하시면 그도 나으시오리이다’라는 용례를 함께 수록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시대 한글편지는 왕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실용적으로 사용됐기에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는 귀중한 토양이 됐다”며 “자료 위주의 기존 고어사전과 비교해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크게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초등학교 5학년 아들(12)을 둔 직장인 이모 씨(42)는 얼마 전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스마트폰을 갖고 놀던 아들이 한 걸그룹 멤버 사진이 올라온 게시글에 ‘맛있게 생겼다’고 댓글 다는 장면을 목격한 것. 이 씨를 더욱 경악하게 한 건 “인터넷 보면 다들 그렇게 하면서 논다”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아들의 반응이었다. 이 씨는 “아이가 한 행동은 성희롱이나 다름없는데 ‘장난 삼아 했다’는 아이의 태도가 무섭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혁수 씨(30)는 최근 평소 이용하던 인터넷 커뮤니티를 즐겨찾기 목록에서 삭제했다. 연예인 사진에 달린 성적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댓글과 외모에 대한 적나라한 품평 때문이다. 열 살 아역배우 사진에 달린 ‘성희롱 댓글’을 보고 나서부터는 아예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는다. 강 씨는 “아무리 가상공간이라고 하지만 도를 넘어선 언어 성희롱이 판친다”며 “범죄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흥밋거리로 삼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성적 불쾌감을 주거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를 담은 게시글, 댓글을 쏟아내는 ‘키보드 성희롱’이 관용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는 12세 미만 아역배우 사진에 성적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댓글도 무비판적으로 달리는 상황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는 연령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어린아이들도 아무 죄책감 없이 키보드 성희롱에 노출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불법콘텐츠범죄 중 사이버음란물은 2014년 3739건, 2015년 3475건으로, 전체 범죄 건수 중 약 20%에 이른다. 최근 연예계는 도를 넘어선 키보드 성희롱에 적극 대응하는 추세다. 지난달 가수 아이유에 대해 키보드 성희롱을 일삼은 11명의 피의자에 대해 벌금형 처분이 확정됐다. 특히 인터넷에서 성희롱성 발언을 쏟아내도 ‘직접 말하거나 만진 것도 아니니 문제가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키보드 성희롱’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 문제도 크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온라인에서 성희롱성 발언을 쏟아내는 식의 범죄를 성적 호기심에 자기 과시욕을 더한 ‘놀이’로 여기는 행위자들은 점차 희롱의 정도를 높여간다”며 “‘직접 성폭행한 것도 아니기에 성희롱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한국 사회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인식도 현상의 원인”이라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