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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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칼럼97%
정치일반3%
  • [김순덕 칼럼]남쪽 대통령은 ‘저쪽’ 국민에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상을 해봤다.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서해 어업지도선을 타고 중국어선 불법조업 실태를 현장 취재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차 실족해 북쪽 바다까지 올라가 북한군에 발견됐다면 어찌 됐을까를.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는 것, 안다. 그럼에도 오후 6시 36분 서면보고를 받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면, 난 그대로 숨이 멎었을 것 같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내가 오후 10시 30분 북한군에 사살돼 불살라졌다고 치자. 제 나라 국민이 끔찍하게 죽었는데도 청와대가 이를 10시간이 넘도록 대통령한테 보고도 않는다는 건 죽었다 깨도 납득 못 할 일이다. 문 전 대통령은 알고도 개의치 않았을 것 같다. 다음 날 오전 8시 30분 이를 대면보고 받고는 “정확한 사실 파악이 우선이다”라고 기자처럼 말했다는 보도다. 그가 “주류 언론에 대해선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2017년 ‘대한민국이 묻는다’란 책에서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저하고 생각이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정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서면보고 받을 때까지 살아있던 대한민국 공무원이 원통하게 죽임을 당한 그 시각, 문 전 대통령이 혹시 혼술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이 첩보를 놓고 청와대가 23일 오전 1시부터 관계장관회의를 하면서도 대통령에게 보고도 안 한 건 ‘북한 퍼스트’와 대통령 심기를 빼놓고는 설명이 안 된다. 오전 1시 26분부터 42분까지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당시 문 대통령이 사전 녹화한 유엔총회 연설 TV 방송이 나올 것이어서 대통령도 깨어 있었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고 이대준 씨(사망 당시 46세) 유족이 ‘월북 조작’ 의혹이 있다며 문 정권 고위 관계자들을 22일 검찰에 고발했다. 나는 이보다 더 큰 문제가 문 전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최선을 다해 구출하라”는 지시를 안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문 대통령에게는 우리 국민의 생명보다 북한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윤소영 전 한신대 교수는 문 정권의 문제를 ‘인민주의 체제’로 설명한다(신동아 2022년 1월호). 흔히 포퓰리즘을 대중영합주의로 번역하지만 문 정권에선 그 번역도 사치다. 반(反)엘리트주의, 반의회주의, 세월호 침몰을 계기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복수, 증오, 원한으로 뭉친 인민주의가 더 들어맞는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인민주의는 ‘이념’ 차원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지지층의 생각과 다른 정책도 국익에 도움이 되면 추진했다. 그러나 문 정권은 인민주의를 ‘정치체제’로 받아들였다. 국익에 도움 되는 정책도 핵심 지지층의 생각과 다르면 절대 추진하지 않았다. 친북세력이 득세하면서 핵심 지지층이 누구로 바뀌었는지는 의미심장하다. 문 전 대통령 취임 첫해는 소득주도성장이 간판이었다. 2018년 9월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자신을 ‘남쪽 대통령’으로 낮추는 희한한 연설을 했다.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여러분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한 것이다. 자신을 지방 영주처럼 ‘남쪽 대통령’이라고 했던 문 전 대통령이었다. 2020년 ‘종전선언’을 위해 북한 김정은에게 모든 주파수가 맞춰져 있었다면, 이대준 씨는 국민이 아니라 종전선언의 훼방꾼처럼 보이지 않았을지 소름이 돋는다. 퇴임 직전 문 전 대통령은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보유라든지 투기라든지 모든 면에서 늘 ‘저쪽’이 항상 더 문제인데 ‘저쪽’의 문제는 가볍게 넘어가는 이중 잣대도 문제”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세력을 ‘저쪽’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은, 문 전 대통령이 임기 내내 갈라치기 했던 국민의 과반수가 바로 저쪽이라는 얘기다. 심지어 그는 퇴임 후 ‘짱깨주의의 탄생’이라는 책을 추천함으로써 친북에 이어 친중 성향까지 고백하고 말았다. 북한과 중국에선 인민의 적, 적인(敵人)에게는 공민권을 주지 않는다. 설마 우리가 ‘저쪽’ 국민은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는 적인으로 여겼던 대통령을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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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어용 지식인 유시민·조국의 몰락

    ‘진보 어용 지식인’ 유시민이 ‘어용’이란 감투를 벗고 다시 요설을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언론만 보면 갑자기 태평성대로 돌변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끄떡없다.” 10일 노무현재단 유튜브채널 알릴레오에서 언론 비난부터 시작한 거다. 미안하지만 유시민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모르겠다. 9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1심에서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 받은 자가 유시민이다(본인도 ‘사실이 아닌 의혹’을 제기했다고 사과문까지 올렸다).“여론 형성 과정을 심하게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는 판결은 말(言)로 먹고 살아온 지식 소매상에겐 다신 입을 열지 말라는 파문과 마찬가지다. 2년 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때 북한 김정은이 사과문을 보내자 “계몽군주 같다”던 유시민의 궤변이 새삼 떠오른다. 더불어민주당이 패배의 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에는 유시민도 빼놓을 수 없다. ● 노무현 후계자에서 ‘진보 어용 지식인’으로2008년 2월 25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준 사람이 있다”며 노무현 과(科) 정치인을 소개했다. 후계자처럼 손을 번쩍 치켜들어준 사람은 문재인도, 이해찬도 아닌 유시민이었다.국민참여당을 창당했다 깨고, 이정희 등과 통진당을 창당했다 또 깨는 등 정당 브레이커로 뛰다 2013년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 유시민. 2017년 5월 대선을 나흘 앞두고 좌파에선 흔치 않은 어용 지식인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돼도 기득권 세력이 사방에서 ‘사정없이 깔 것’이므로 사실에 근거해 제대로 비판하고 옹호할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물론 유시민은 “지식인이나 언론인이면 권력과는 거리를 둬야 하고 권력에 비판적이어야 옳다고 생각한다”고 자락을 깔긴 했다. 독재정권이든 아니든,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이상은 양심적 지식인이다. 공적 사안에 대해 대중의 이해를 돕고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이라면 최소한의 객관성 공공성은 갖춰야 맞다.● 김건희 여사도 “유시민이 조국을 너무 키웠다” 권력자의 편에서 말하겠다는 유시민의 어용(御用) 지식인론은 뜨거운 냉면 같은 모순이다. ‘옳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유시민이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하겠다고 사기꾼 선언을 한 셈이다. 문 정권 5년, 유시민의 정치적 영향력은 엄청났다. 어용시민을 자처하는 문빠는 문자테러로 정권을 철통 보위했다. ‘김정숙 씨’라고 썼다가 겁나게 당한 일부 매체는 알아서 기는 길로 갔다.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사태’가 터지자 유시민은 문재인 지키듯 검찰을 맹비난함으로써 조국 수사를, 정권 비리 수사를 멈춰 세웠다. 이번 명예훼손 건도 2019년 12월 “검찰이 노무현재단과 내 개인 계좌를 들여다봤다”며 “알릴레오에서 조국 수사 관련 검찰 행위에 대해 비평한 것 때문에 뒷조사를 한 것 같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2020년 4월과 7월엔 한동훈 전 대검 반부패강력수사부장을 콕 찍어 말해 고발당했다). 오죽하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올 초 공개된 통화 녹취에서 “믿거나 말거나인데 조국의 진짜 적은 유시민이야. 유시민이 너무 키웠다구” 했겠나. “이번 대선의 전선은 조국이냐 아니냐”면서. ● 문 정권과 민주당을 망하게 한 조국 사태 유시민은 그러나 좌파 어용 지식인으로서 실패했다. 유시민 개인적으론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으니 낭패다. 대선 결과가 말해주듯, 문 정권은 정권재창출에서도 망했다. 유시민이 너무 키운 조국 역시 조국 한 사람의 비극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 이후 정치·사회학자와 평론가 등 20명에게 민주당의 최대 패착을 물었더니 ‘조국 사태’가 맨 앞에 꼽혔다는 한겨레신문 보도는 의미심장하다. 서울대 교수 출신 조국이 한때 강남좌파의 원형이었음을 기억하는가. 그 나이에도 ‘나 잘 생겼거든’ 하듯 긴 손가락으로 깻잎머리를 쓸어 넘겼던 오만한 남자. 2007년 경향신문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특집에선 “민간·민선정부 출범 이후 비판적 지식인이 정부에 참여하는 범위와 수가 늘면서 권력과 지식인 간에 존재해야 할 긴장이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던 조국이었다.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 연루자로서 검찰에 원한을 가진(듯한), 보수우파를 절대 악으로 보는 ‘운동권 민주주의’ 사고를 지닌(듯한) 그가 문 정권에 핵심으로 참여했다. 문 정권 기고만장 내로남불의 상징인물이 정권을 잃은 뒤엔 그 이유도 파악하지 못하도록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진 형국이다. ● 옳고 그름을 뒤집은 위선좌파, 용서 할 수 있나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의혹이 드러났을 때 조국이 과거 고관들처럼 조용히 물러났다면, 우리는 지금 다른 대통령을 만났을지 모른다(어쩌면 조국일지도?). 그랬다면 좌파 정치인이든 지식인이든, 다음 기회를 모색하거나 고개를 들고 다닐 눈꼽만큼의 여지는 남아있다고 본다. 그러나 자기애들만 학교 잘 보내겠다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7가지 스펙을 꾸며내고도 조국 부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조국은 현재 공모를 부인한다). ‘외고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제 아이는 외고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꾸며낸 스펙으로 의학전문대학원에 보낸 이 놀라운 아빠는 집권 후 청와대에서 ‘남의 아이 바보 만들기’ 같은 교육정책에도 일조했을 터다. 보통 국민은 분노했다. 도덕성을 훈장처럼 내걸고 고고한 척하면서 뒤로는 기득권 방어와 특권 세습에 골몰하는 좌파의 위선이 더럽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유시민의 길을 따라 걷는 숱한 어용 지식인들이 조국 편에 섰다. 옳고 그름의 가치를 뒤집은 거다. 유시민의 선동아래 민주당과 함께 “조국을 흔드는 건 문 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외침으로써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공멸의 길로 냅다 달렸다. ● 항문하고 학문 중에 무엇을 더 깊이 닦을 건가 아내를 감방에 보내고도 근육을 키우는 멘탈을 지닌, 그 아내에게 ‘골방이 너희를 몸짱 되게 하리라’는 책이나 선물하는 조국을 숭배하는 이들이 아직 있는가. 조국을 비롯한 문 정권의 주류세력이 ‘그놈이 그놈’ 정도가 아니라 그놈들보다 더 하다는 사실에 민심은 차갑게 돌아섰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국민 48.56%는 현명하고도 위대하다. 그 잘난 586 정치인 수두룩한 민주당도 헤어나지 못하는 환상에서 진작 깨어났으니. 아직도 ‘왜곡’을 멈추지 못하는 유시민 류(類)의 위험한 이들에게 문정희 시인의 ‘학문을 닦으며’ 한 토막 전하고 싶다. 나는 그동안 확실히 학문보다항문을 더 열심히 닦고 살았어그래서 세상이 더 깨끗해진 것도 아니야실제로 길 하나 따로 내지 못했어달맞이꽃 하나 새로 피우지 못했어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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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문재인은 상왕이 되고 싶은가, 잊혀지고 싶은 건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하 문재인)이 지난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짱깨주의의 탄생’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솔직히 이젠 그가 어떤 책을 추천하든 별 관심 없다.2017년 대선 직전 동아일보가 ‘지금 이 땅의 국민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질문했을 때 자신이 대학시절 읽었던 ‘전환시대의 논리’를 추천했던 문재인이었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미화했던 197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의 필독서 말이다.그럼에도 ‘짱깨주의…’ 책를 정독한 이유는 문재인이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며 우리 외교가 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고 한 데 그치지 않고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라고 강조를 했기 때문이다. 왜 문재인은 굳이 언론을 믿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언론과 딴판으로 중국에 산타가 왔다이 책은 저자인 김희교 광운대 교수가 2018년 12월 23일 부리나케 베이징행 비행기를 타는 걸로 시작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심해지던 무렵 중앙·한국·조선일보가 ‘크리스마스 캐럴 부르면 징역 5년형 받는 나라’ ‘중국엔 산타 못 간다’ 등등 보도를 하는데 진짜 그런지 눈으로 봐야겠다는 거다.베이징 공항에 내려 시내 호텔에 체크인하고 백화점까지 가봤더니 천만의 말씀이었다. 종업원들 모두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꽝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 주기’ 이벤트까지 하고 있었다. 여기서 문재인이 쓴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대목이 나온 것 같다.책에서도 지적됐지만 산타클로스 기사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인용 보도한 거였다. 기자를 능가하는 김 교수의 현장주의에 경의를 표한다. SCMP를 번역해 기사 쓴 기자가 왜 베이징 특파원에게 전화 한통해서 현장을 확인해보지 않았는지 나도 궁금하다. 아마 “백화점 매장에 산타 있던데” 대답했다면 기사가 안 되니까 아예 안 물어봤을 공산이 크다.● ‘문 정권 적폐’ 보도가 두려운가문재인으로선 그거 봐라, 싶었을 거다. 그러니 언론을 믿을 수 있겠느냐,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오죽하면 “세상사를 언론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겠나 싶긴 하다.그렇다고 문재인이 자신 있게 할 말은 아니다. 당장 지난주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산업부가 탈원전을 하면 전기요금을 2030년까지 40%는 올려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묵살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13년간 누적 140조 원의 전기료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와 윗선에 보고했더니 “탈원전에 반대하는 거냐”고 윽박질러 인상 얘기를 못 했다는 거다.2017년 6월 19일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때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면서 문재인이 뭐라고 했던가.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016년 3월 현재 총 1368명이 사망했다”고 발언했다.● 대통령이 국민을 기만해도 되나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원전 사고가 직간접적인 원인이 돼 숨진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일본원자력안전·보안원 집계). 도쿄신문에 따르면 피난 생활을 하다가 숨진 ‘원전 사고 관련 사망자’가 총 1368명이었을 뿐이다.대통령 자리에서 터무니없는 소리로 국민을 속여 원전을 폐기했고, 국가와 국민에 손실을 입혔다. 문 정부가 건설을 멈춰 세운 신규 원전 6기가 1차 운영 허가 기간 60년 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전력은 500조 원 규모다. 기존 원전 24기에 20년 계속 운전을 금지하면 400조 원 손실이 생길 수 있다.문재인은 이런 기사도 월성 1호기의 경제성 조작처럼 거짓이니 믿지 말라고 국민 앞에 외치고 싶을지 모른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문 정권의 적폐 기사가 계속 쏟아질 것이다. 수사 못하게 닫아두고 가려둔 일들이 터져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언론 믿지 말라고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라면, 유치하다. ● 잊혀지고 싶다던 말은 거짓이었나2020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대통령 이후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권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문재인이었다. “대통령 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끝나면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그런 사람이 마치 ‘관종’처럼 잊혀질까 두려운 듯 SNS를 자주 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구두 쇼핑을 하자 문재인도 지난달 26일 구두협동조합 ‘아지오’ 직원들이 문재인과 부인에게 보낸 합창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는가 하면, 윤 대통령이 9일 나토 참가 계획을 시사하자 문재인도 30분 뒤 ‘짱깨주의…’ 책 소개를 SNS에 올렸다.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달 12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 내분에 휩싸여서 매일 싸우고 있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금 같은 콩가루민주당 상황에선 이런 전언(傳言)정치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금방이다. 결국 문재인이 원하는 건 현직 대통령 머리 위에 올라앉은 상왕(上王)이란 말인가.※ 이 칼럼에 ‘짱깨주의…’ 책 내용을 소개하는 건 큰 의미 없다고 본다.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수법에 넘어갈 뿐이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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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윤석열 검찰공화국’의 내로남불

    4년 전 6·13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뒤 첫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우리 청와대 비서실과 내각이 아주 잘해준 덕분”이라며 유능함과 도덕성을 콕 찍어 치하했다. ‘문재인 청와대’가 86그룹 운동권 출신 위주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참여연대와 민변 출신도 적지 않다. 자신과 이념을 같이하는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로 비서실을 채워온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국정을 이끄는 중추이고 두뇌”라고 황당한 신앙고백까지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정권은 교체됐고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대선 후보 시절 그는 유튜브 영상 ‘인간 윤석열’에서 “널리 인재를 등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인재 발굴을 위해 정말 노력을 하려고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대통령실 주요 보직, 금융당국 인사 중 검사(검찰 수사관 포함) 출신이 무려 15명이다. 벌써 ‘검찰 공화국’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윤 대통령은 “우리의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문 전 대통령이 캠코더 인사만 하고도 유능함을 자부했던 것을 떠올리면 ‘내로남불’은 인간 본능인가 싶기도 하다. 검찰, 그중에서도 엘리트라는 특수부 출신이 일을 잘한다는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좌파정권의 숱한 비리를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척결해 5년 안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려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처럼 대통령이 잘 아는 유능한 인사 기용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김용갑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민정수석에 검사를 써선 절대 안 된다”고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고언을 한 적이 있다. 상명하복에 투철한 검사는 대통령에게 “No”를 못 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이 사정(司正)기관을 장악했던 폐단을 청산한다며 아예 폐지한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인사, 민정(법률·공직기강), 예산 등 6개 보직 중 다섯 자리를 검찰 출신에게 맡기는 바람에 결국 대통령실이 거대한 민정수석실처럼 되고 말았다. 더구나 밑바닥 민심과 함께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전해야 할 진짜 민정(民情)수석은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언론이 암만 ‘검찰 편중 인사’를 지적해도 외국 언론이 지적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은 안 듣는다. “과거엔 민변 출신이 도배를 하지 않았나”며 ‘쟤는 했는데 나는 안 되나’ 식의 아이 같은 소리나 하는 형국이다. 심지어 고위공직자를 발굴해야 할 인사기획비서관 자리에 대검 곳간 열쇠와 일반직 인사를 맡던 대검 사무국장 출신을 앉힌 것은 윤석열 정부의 고위공직자 인사가 앞으로도 별 볼일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안 그래도 윤 대통령은 함께 일해 본 ‘내 식구’만 챙기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이는 윤 대통령과 일해 보지 못한 ‘나머지 인재’에게는 이 정부에선 일해 볼 기회도 없다는 엄청난 불공정이요, 기회 박탈이 아닐 수 없다. 나라 전체로 봐도 인재 손실이고 대통령의 직무유기다. 윤 대통령 감찰 징계 대리인 이완규를 법제처장에, 윤 대통령 부인의 주가조작 의혹사건 변호인 조상준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임명하는 등 사적 연고자를 보은 임명한 것도 심각하다. 검찰 체제가 ‘사유화’하는 조짐은 불길하다. 만에 하나 대통령 처가식구 비리가 의심스러워질 때 어떤 검사가 눈치를 보지 않고 감히 수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검찰이 아무리 열심히 문 정권 적폐 수사를 해도 공정성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직(職)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검찰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어이없이 흔들리게 됐다는 사실이다. 공직자 검증을 맡을 인사정보관리단이 법무부 아래 출범했다. 검찰을 산하에 둔 법무부가 공직자 검증은 물론이고 정보수집 권한까지 갖게 된 거다. 삼권분립이 무너진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권교체를 원했던 국민도 ‘검찰 공화국’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이 원하는 검찰개혁은 실력 있는 검찰이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정부패를 단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정부에서 검찰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대통령과 한 몸이 되어가고 있다. 한 장관이 5년 후에도 살아남으려면 국민만 바라봐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말란 말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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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이재명 방탄’이 김포공항보다 중한가

    ‘김포공항 이전’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인천계양을 국회의원 후보)이 반년 전 대통령 선거 때도 내놓을까 말까, 주물럭거렸던 도깨비 방망이였다. 지난해 11월 28일 17시 56분. 매일경제 인터넷 판은 ‘단독’이라며 ‘이재명, 김포공항 자리에 신도시 검토…“최대 20만 가구 공급 가능”’이라고 보도했다. 이재명 측 선거대책위원회가 서울 강서구와 경기 부천, 인천 계양구에 걸쳐 있는 730만㎡ 면적의 김포공항을 인천공항으로 통합 이전할 경우, 위례신도시급 규모의 주택공급이 가능하다고 본다는 내용이다. ● 대선 때도 ‘김포공항 이전 카드’ 내밀려 했다김포공항 이전은 워낙 복잡해 쉽게 추진하기 어렵다는 국토교통부 반응이 붙어 있는 건 물론이다. “공항 하나가 없어진다는 데 따른 반대와 우려가 있지만 김포공항 용지를 적극 활용하자는 분위기”라는 민주당 측 발언도 당근 들어가 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해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지지율이 32%에 머문 상황이었다(갤럽 11월 셋째 주 윤석열 지지율 42%). 김포공항 이전은 수도권 서남부 개발과 지역 표심까지 끌어낼 수 있는 쌍끌이 공약이다. 심지어 대선 때도,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때도 써먹을 수도 있다.당장 김포공항 소음 피해지역 주변에선 열렬한 환영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이재명의 김포공항 이전 카드는 더는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지금 서울과 제주도 의원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듯이, 말이 좋아 김포공항 이전이지 김포공항이 문 닫으면 일자리 13만 개, 연간 GDP 13조8000억 원이 감소할 만큼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 민주당엔 그래도 이성적 인물이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2021년 12월 29일 22시 26분 7초. “한가한 정책 할 때냐” 이재명 대선 후보의 이 말에 김포공항 이전이 급부상했다고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했다. 송영길 당시 대표가 김포공항 이전을 계속 주장했고, 민주당의 이성적 의원들은 계속 반발했고, 몸이 단 이재명 대선 후보가 12월 19일 비공개 고위전략회의에서 김포공항 이전을 포함한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마련을 지시했다는 거다. “한가한 정책 만들자고 여기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 이기려고 선거 하는 거다”라면서.그럼에도 천만다행히도 김포공항 이전은 이재명의 대선 공약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재명은 2022년 초 ‘김포공항을 존치하는 상태에서’ 주변 공공택지를 개발해 8만 호 등 문 정권의 기존 206만 호에 105만 호 추가공급을 발표했을 뿐이다. 국토위 간사인 조응천 의원도 극구 반대했을 뿐더러, 김포공항 이전이란 결코 쉽게 추진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 김포공항 공약을 보면 이재명이 보인다 이재명은 2021년 12월 2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주택공급이) 정말 부족하다면 용산(미군기지) 일부는 청년들을 위한 공공주택으로 활용하고 서울·김포공항도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할지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포공항 이전 계획을 이미 짜놓고도 자신의 입으로는 절대 “김포공항 이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검토 중’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보면 이재명을 알 수 있다. 이재명은 자신의 입으로 “김포공항 이전”을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봐서 몸조심 한 것이다. 결코 제 입으론 말하지 않으면서 민주당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서울공항과 김포공항을 이전, 개발하면 각각 10만 호, 20만 호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고 알려지도록 했다. 그러면서 “(김포공항 이전은) 다양한 문제가 연관돼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자락을 깔았다. 그리고 대선에서 패배했다.● “이재명은 합니다”가 무섭다대선 때는 제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이재명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선 막판 TV토론 때 다시 꺼냈다. 거대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인물이, 대선 패배 후 두 달도 안 돼 ‘방탄용 배지’를 위해서, 공항 하나 없어지든 말든, 나라와 국민이 어찌되든 말든,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셈이다. 그가 김포공항 이전 문제점을 모를 리 없다. 빤히 알면서도 금배지가 너무나 절박해 김포공항 이전을 들고 나온 거다. 대장동 의혹과 성남 FC 의혹에서 철갑을 두를 수만 있다면, 김포공항쯤이야 없어져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1일도 이재명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D Y노선을 건설하면 인천에서 김포로 이동하는 데 10여 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년짜리 보궐선거에 나선 그가 GTX 완성 때까지 인천 계양에 있을 리 없다. 김포공항 이전이 실제로 이뤄질 리 없지만,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처럼 김포공항 이전도 실제 이뤄진다면 더 큰 일이다!● “한국의 시진핑이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어렵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윤소영 전 한신대 교수가 이재명에 대해 올 초 신동아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이재명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야당이나 전문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의 시진핑이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선 때 그의 캐치 프레이즈는 "이재명은 합니다"였다. 나는 그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위해서. 제발.※ 민주당 공동촐괄선대본부장인 김민석은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포공항 이전은 이재명의 ‘공약’이 아니라 ‘초장기 연구과제’라고 분명히 밝혔다. 설사 이재명이 의원에 당선되고, 당 대표가 돼 김포공항 이전을 선포한대도 10년 이상 걸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민, 인천 계양구민, 제주도민은 물론 전 국민께서는 이재명이 김포공항을 놓고 무슨 말을 하든지 절대 동요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6월 1일 안심하고 투표를 해도 되는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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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26세 박지현… 민주당의 희망, 이재명의 재앙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때인 1월 24일 이재명은 “국민께서 내로남불이란 이름으로 민주당을 질책하셨다”며 사죄했다. “완전히 새로운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다짐도 했다. 다음 날 송영길 당시 당 대표는 “586세대가 기득권이 됐다는 비판이 있다”며 “저부터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 상식과 원칙에 따르는 것이 공당의 책임”이라고 주장도 했다. 이렇게 합심한 덕분인지 1월 말 이재명 지지율은 35%로 소폭 상승했다(갤럽 조사). 넉 달이 지난 지금, 결과는 문재인 전 대통령 말을 빌리면 아이러니하다. 이재명은 새로운 정치로 보답하지 못하고 대선에서 패했다. 그럼에도 6·1지방선거에서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송영길이 비워준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보궐선거까지 나섰다. ‘586 자진 사퇴론’을 외친 송영길도 서울시장에 출마했다. 두 사람이 상식과 원칙에 맞는다고 보긴 어렵다. 대선 막판 때 이재명을 도왔던 26세의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지방선거 유세에서 냉랭한 반응을 온몸으로 느낀 모양이다. 그가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내로남불의 오명을 벗겠다. 민주당을 팬덤 정당이 아니라 대중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586 용퇴론’을 강조하는 모습은 국민의 상식과 원칙에 따르는 민주당을 보는 듯했다. 이재명과 송영길이 넉 달 전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음에도 박지현에게 돌아온 당내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다. 박지현을 비대위원장으로 추천했던 이재명조차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고 했다. 얼굴마담으로 있을 줄 알았는데 잔다르크처럼 나서다니 괘씸할지 모른다. 박지현이 지적한 그 팬덤 정당의 핵심에 이재명이 있다. 박지현이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문을 읽은 그 시각, 이재명은 “우리 개딸님의 애정 정말 고맙잔아” 트윗질을 하기까지 했다. 이재명이 대장동 수사 등에 대비한 ‘방탄용 출마’라는 여권 비난에 대해 “정말 자던 소가 박장대소할 일”이라고 주장한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개딸들이 모인 ‘재명이네 마을’ 카페에 “인천 계양을 연고자 찾기 부탁하잔아” 목놓아 외친 그로선 팬덤 현상을 절대 포기할 수 없을 터다. 강성 지지자들의 열렬한 이재명 사랑을 질투하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노사모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사랑했다면, 문빠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며 맹목적 지지와 반문(反文) 세력에 문자테러를 가하던 반(反)지성적 집단이었다. ‘개딸’(개혁의 딸)집단은 이 차원을 능가한다. 드라마 ‘응답하라’의 성격 × 같은 딸에서 따온 명칭이라지만 성인 여성이 세금으로 봉급 받는 공직자를 “아빠” “잼파파”라 부른다는 건 절대순종만 가능한 북한 ‘사회주의 대가정’을 연상시킨다. 이재명이 의원이나 대통령이 된다면 성숙한 시민으로서 민주주의와 법치를 요구하거나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했던 거대여당이 왜 불과 2년 만에 정권심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대선 전후 두 차례 실시한 선거패널조사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총선 때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2021년 4·7 재·보선을 기점으로 지지를 철회한 2030세대 경인지역 ‘이탈 민주층’이 대선 때 민주당 패배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를 철회한 핵심 이유는 ①부동산 정책 ②대장동 이슈 ③김혜경 씨 법인카드 의혹의 순이었다. 즉 민주당은 문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과 이재명 도덕성 의혹 때문에 대선에서 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책임정치’와는 거리가 먼 이재명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내세운 것이다. 심지어 인천 계양에서 이재명이 당선되면 당권을 장악해 윤석열 정부의 발목까지 잡겠다는 야무진 작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박지현이 “이번에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책임지고 민주당을 바꿔 나가겠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러나 국민은 바꿀 수 있다. 팬덤에 의지하는, 대장동과 법인카드 의혹이 있는, 책임정치를 모르는 이재명을 외면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민주주의에 가슴 뛰던 그 민주당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한 박지현이 이재명에게 재앙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대한민국에는 희망이다. 박지현을 발탁한 것만으로도 이재명은 큰일을 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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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윤석열의 ‘처칠 스타일’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존경하는 인물’도 신경 써 고를 일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 롤 모델을 보면 그 사람의 지향점을 알 수 있다(그래서 나 같은 기자가 일요일 읽을거리를 만들 수도 있다).윤석열 대통령은 존경하는 인물이 윈스턴 처칠(1874~1965)이라고 했다. 16일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을 말한 건 그냥 초당적 협력을 당부한 게 아니었다. 윤 대통령의 머릿속에선 자신이 처칠이고, 한덕수 총리는 노동당 당수로 전시(戰時) 내각의 부총리를 맡았던 클레멘트 애틀리였던 거다.여기서 독자들은, 아니 윤 대통령이 처칠이라니 웬 ‘윤비어천가(尹飛御天歌)’? 비웃을지 모른다. 잠깐 참아주기 바란다. ‘도발’을 좀 읽어본 분은 알겠지만 도발에 아부는 없다.● 나치와 타협 않고 자유민주 지킨 처칠올 1월 말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나와 처칠을 존경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영국이라는 한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가 어려웠을 때, 그야말로 그 당시에 나치와 타협하자는 정치권의 요구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국민들을 설득하고, 자기의 확고한 어떤 비전을 가지고 국민들과 함께, 이런 어려움을 돌파해나가서, 이런 자유민주라고 하는 무너질 뻔한 질서를 다시 회복시킨 그런 측면에서, 저는 영국을 떠나서 정말 세계적으로 많은 분들이 좀 사표(師表)로서 배워야 하는 분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앵커는 즉각 맞장구를 쳤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많은분들이 느낄 것 같다”고. 맞다. 검찰총장 재임 당시 문재인 정권의 ‘연성 파시즘’과 타협하자는 주변 요구가 왜 없었겠나.● 문 정권 ‘촛불파시즘’과 타협 거부윤석열은 타협하지 않았다.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전격 사퇴하며 밝힌 입장문을 다시 보면, 처칠을 존경하는 이유와 거의 비슷하다.“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앞으로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선출된 권력이 삼권분립을 뒤흔들고 지도자 숭배, 대중 동원, 민족주의, 반(反)지성주의, 일당독재로 치닫는 전체주의가 파시즘이다. 히틀러 아니고도 리더가 자유주의를 파괴하면 파시즘은 좌우 이념 상관없이 언제든 생겨난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했다는 문재인 정권의 ‘촛불 파시즘’처럼.미국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파시즘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처칠을 그린 영화 ‘다키스트 아워’도 그때 나왔다. 히틀러와 평화협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히틀러는 영국을 노예국가로 만들 것이다…처칠은 자동차를 타고 의사당으로 가다 돌연 내려선 런던 지하철을 타고는 시민들에게 묻는다. “안돼요!” “싸워야죠!” “빗자루라도 들고 싸울 거예요!”● 존경하는 인물을 보고 배운다올 1월 초, 윤 후보는 여의도 지하철역 앞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적이 있다. 당내 갈등이 높아지고 지지율은 떨어질 때, 국민의힘 젊고 건방진 대표가 대선 후보에게 출근길 인사를 숙제로 내준 것이다.이걸 해? 말아? 밤새 고민하던 그는 ‘다키스트 아워’의 지하철 장면을 떠올리고는 지하철역으로 갔었다. “처칠처럼 국민만 보고 정치하겠습니다.”우리가 누구를 존경할 적엔 은연중 배우려 하고, 닮으려 애쓰기 마련이다. 맨 앞에 썼듯이, 어쩌면 윤 대통령은 ‘처칠 스타일’의 정치를 하고 싶은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헤어 스타일이 많이 다를 뿐, 윤 대통령에게는 처칠과 닮은 점이 없지 않다. 오늘은 심심한 일요일! 그래서 두 사람의 공통된 처칠 스타일을 찾아보았다.● 미모의 젊은 아내…불충의 아이콘첫째, 누구도 부인 못 할 공통점부터…나이 차 많고 미모의 아내를 둔 애처가다. 윤 대통령은 12살 차이, 처칠은 11살 차이. 그래서 오전 회의에 만날 지각하는 처칠은 남들의 비난을 듣고 이랬단다. “당신도 부인이 예쁘다면 아침에 일찍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술을 엄청 좋아하는 건 똑같다.둘째, 불굴의 의지와 불충의 이미지. 윤 대통령은 사법시험에 8전9기(8顚9起)를 한 불굴의 한국인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불충(不忠)’의 아이콘이기도 했다.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쓴 ‘처칠 팩터’에서 ‘불충’을 발견하고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1900년 건방진 25세 청년으로 의회에 입성한 순간부터 처칠은 불충을 자신의 표어이자 선전의 전략으로 삼았다. 국방비를 과도하게 지출한다며 토리당 지도부를 강타했다. 근로자에게 저렴하게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좌파의 편을 들어 보호관세 정책에 반대했다.” 처칠 역시 사람이나 정당에 충성하지 않았던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라는 가치다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자유’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새삼 일깨웠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강조함으로써 자유민주세계 공동의 가치 편에 섰음을 확인했다. 처칠도 그랬다. 모두가 히틀러와의 협상을 주장할 때 처칠은 자유, 그 중에서도 사법 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로 체포당하지 않고, 정부에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시장경제를 강조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것도 닮았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도 처칠은 총선에서 패해 정권을 잃었다. 1951년 노동당 애틀리 총리가 의사당 화장실에서 처칠과 나눈 대화는 유머가 아니라 실화다. 애틀리 옆 소변기가 비어있는데도 처칠이 멀찍이 볼일을 보기에 애틀리가 “혹시 저한테 불쾌한 일이라도 있으신지” 물었더니 처칠이 그러더란다. “당신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하잖소.”● 돌연 등극한 리더…크게 성공할 수도, 그 반대일 수도두 지도자의 가장 결정적인 공통점은 과히 호감 받지 못하면서, 평소라면 가능성이 없었는데도, 시대적 상황에 의해 리더가 됐다는 점이다.윤 대통령은 비호감도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간절한 열망에 따라 대통령이 됐다. 처칠도 그랬다. 히틀러의 악마성을 일찍 알아봤고, 그 때문에 ‘전쟁광’ 소리를 들을 만큼 대비를 주장했으며, 국민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마침내 자유 세계의 승리를 이끌어냈다.처칠 같은 최극단의 리더는 위기 상황에서 정상적 검증과정 없이 국가를 맡게 된다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가우탐 무쿤다 교수는 ‘인디스펜서블’에서 주장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도 성공한 리더가 나올 수 있듯, 최고의 리더는 대부분 검증과정 없이 나온다는 거다.하지만 꼼꼼한 검증과정을 건너뛰는 바람에 발견 못 했던 바로 그 점 때문에 크게 실패할 공산도 크다. 윤 대통령의 처칠 스타일이 재미있고, 또 겁나는 건 이 때문이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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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재명 아빠! 나, 개딸”…‘어버이 수령’보다 불편한 정치현상

    정치인으로서 이재명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대선에서 패한 다음 외려 더 많은 지지자가 생겼다. “재명 아빠, 사랑해요”를 외치는 자칭 ‘개딸’들이다.더불어민주당 6·1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이자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민주당 후보가 된 그가 14일 “소위 ‘개딸’, ‘양아들’ 현상이란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생각한다”고 선언했다.문재인 전 대통령의 ‘촛불혁명’을 능가하는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이재명이 5년 뒤 대통령이 된다면(가정법을 썼다) 이번 발언은 역사에 남을 것이 틀림없다.● 이재명을 위한 일상적 ‘개딸 혁명’자신의 인천 계양구 선거사무소에서 진행된 팬 카페 ‘재명이네 마을’ 서포터즈와의 미팅에서 이재명은 ‘개딸 혁명’에 대해 이렇게 의미 부여를 했다. “촛불혁명에서 단기적으로 결정적 시기에 집단적 행동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일상적으로 (개딸들의 집단적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역사의 현장에 계신 분들이다.”이 말은 곧, 지금 이재명과 함께 있는 개딸들이 바로 대세를 만드는 역사적 현장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즉 자신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의미인 것은 물론이다).‘개딸’이란 ‘개혁의 딸’, ‘양아들’은 ‘양심의 아들’의 줄임말이라고 이재명을 지지하는 2030은 주장한다. 참, 말을 잘도 만든다. 하지만 본래 개딸이란 드라마 ‘응답하라’에서 성동일 아빠와 지긋지긋하게 싸우는 ‘성질 X 같은 딸’에서 나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2030 여성들이 이재명을 지지한다?!이재명의 대선 패배가 유력해진 3월 10일 새벽, 인터넷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이 나타났다. 자칭 ‘개딸’이라는 2030 여성회원은 이재명을 ‘아빠’라고 부르면서 “힘내라” “사랑해요” 하트 뿅뿅을 날렸다. 이재명은 여초 사이트에 들어와 보고, ‘불꽃추적단’ 박지현을 영입하는 등 여성 문제를 고민하는 ‘성의’라도 보였고, 이들이 이재명의 막판 스퍼트에 힘을 보탰다는 점은 나도 평가한다.K컬처에 익숙한 개딸들에게 이재명은 좀 늙었지만 귀여운 아이돌이다. 정치인이면 어떤가. ‘대통령으로 키워보세~~’ 이후 이재명은 젊음을 되찾았다(‘회춘’이라고 쓰면 성차별적 표현인가? 못 쓰게 하면 ‘표현의 자유’ 훼손인가?). 개딸 팬덤이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도 만들었다. 이재명이 6·1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소환된 것도 팔 할은 개딸 덕분일 터다.이재명 계는 신이 났다. 지지층에 ‘개혁’ 돌림자를 붙여 ‘개이모’ ‘개삼촌’ ‘개할머니’ ‘개할아버지’라고 한없이 확장한다. 하나의 팬덤을 공유하는 서로가 ‘가족’과 같다며 ‘개가족’이라고 붙여버렸다. 글쎄, 자기들끼리는 너무나 재미있는지 몰라도 그들 눈에는 전 국민이 개로 보이는 모양이다.● 자유민주국가에서 시민이 정치인에게 “아빠”?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잠깐, 제발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임금님도 아닌 공무원(대통령도 세금으로 봉급 받는다)에게 나이 먹은 성인여성이 “아빠” “아빠” 하는 게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성동일 아빠가, 공부는 48명 중 48등이면서 핫인지 HOT인지 사진 속 토니한테 오빠, 오빠 하는 딸 때문에 환장을 했거늘,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했던 문재인 정권 5년을 간신히 살아 넘겼는데, 이제 ‘아빠, 사랑해요’ 라니, 이 무슨 북한의 징그러운 남한판 버전인가 말이다.정치인 이재명을 “아빠”라고 부르는 개딸이면, 그가 잘못된 정치를 할 때 감히 비판을 할 리 없다. 드라마 ‘응답 시리즈’에선 딸이 아빠한테 길길이 대들기라도 했지만 ‘재명이네’에선 어림도 없다. 무조건 사랑, 엎어진 순종만 있을 뿐이다. 만일 그가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가 되고, 대통령이 된다면 ‘개딸 믿고 독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요컨대, 개딸이란 팬덤 현상은 노사모나 문빠보다 더 퇴행한 정치타락이 아닌가 싶은 거다.● 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경제가 유통이듯, 운동권에게 정치는 조직이다. 당연히 이들 뒤에는 시위를 조직하는 노련한 정치꾼들이 있다고 본다. 순진한 개딸들만 모를 뿐이다.아니, 정치에 관심 없던 2030 여성들이 이제라도 정치에 관심 갖겠다는 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성인이 되면 아주 급한 상황에서만 부모를 찾아야 하듯, 일상의 민주주의 운영은 정치가와 정당에 맡겨야 한다. 최근 나온 책 ‘우리안의 파시즘 2.0’ 속의 ‘국민주권 민주주의에 사로잡힌 정치’에서 박상훈 정치발전소학교장이 조근조근 설명한 내용이다.민주주의는 시민이 적법한 대표에게 ’일정 기간‘ 일을 맡기고 그 결과에 따라 일을 계속 맡길지, 아니면 다른 대표를 고용할지 결정하는 체제다. 국민은 최종결정자이지, 이 글 맨 앞에서 이재명이 개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일상적으로 평가해 내쫓으려 들진 않는다. 만일 그래야 한다면 적대와 대립, 증오와 배제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파괴까지 닮지는 말라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걸 ‘촛불혁명’이라고 했지만 동의 못 한다. ‘개딸’ 혁명? 절대 동의 안한다. 과거 독재 정권이 광장에 관제 시민단체를 동원해 열었던 시위들만 연상될 뿐이다.개딸들의 순수한 ‘취미생활’을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북한에선 아버지를 수령으로, 당은 어머니로, 인민은 자녀들로 상징화해 ‘사회주의 대가정’으로 상상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려주고 싶다(논문 ‘북의 국가담론;봉건적 가부장에서 젠더화된 민족국가로’).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사악한 의도를 갖고 북한의 사회주의 대가정을 ’개가정‘으로 변형시킨 것이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그리고 또 한 가지…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은 퇴폐성 TV드라마를 일제히 끝내버린 적이 있다. 늙은 사장이 젊은 호스티스에게 아파트를 사주는 대목에서 조기 종영이 돼버렸는데 드라마 제목이 ‘아빠’였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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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멀쩡한 보수정부’가 뻔뻔한 자유를 말할 순 없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에 대한 평가는 분분해도 1년 전 이맘때를 돌아보면 안다. 그가 아니었으면 과연 정권교체가 가능했을까. 2021년 4·7재·보선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했다. 하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떠난 지 한 달도 안 돼 국민의힘은 반공보수(태극기) 경제보수(기득권) 꼰대당의 ‘아사리판’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1년 후 이 당이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창피해서 국민의힘은 못 찍겠다는 2030을 돌려세운 정치인이 작년 6월 헌정사상 최연소 보수정당 대표로 당선된 이준석이었다. ‘멀쩡한 보수’라는 말도 좌파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준석을 놓고 만들어 붙였다. 하자 없는 보수, 변화와 혁신의 보수정당이라는 이미지 덕분에 문재인 정권 출신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마침내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을 할 수 있었던 거다. 문 정권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내걸고 청년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부터 노인 일자리까지 뭐든지 다 해주겠다고 큰소리쳤다. 그 결과 2017년 660조 원이었던 나랏빚은 올해 사상 최초로 1000조 원을 돌파했다. 멀쩡한 보수의 핵심은 자유주의다. 4·7재·보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도 586 운동권 세력의 국가를 앞세운 반(反)자유주의, 연성 파시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로 평가할 수 있다. 선출된 권력이 법 앞의 평등을 무너뜨리고, 사법권의 독립을 우습게 흔들면서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변하는 모습을 우리는 문 정권에서 소름 끼치게 목도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의 중요성과 ‘반(反)지성주의’의 폐해를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것이 못내 못마땅한 모양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 자유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없애려고 했던 바로 그 자유를 의미한다. 2018년 3월 문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라는 표현을 넣음으로써 자유주의 체제를 국가주의 체제로 바꿀 수 있는 개헌안을 발의했다. 만일 민주당이 ‘검수완박’처럼 밀어붙였다면 어쩔 뻔했는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장관 후보군을 지명하면서 멀쩡한 보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을 찍은 국민도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인사 원칙으로 지역이나 성별 안배 없이 능력과 전문성만 봤다고 말했다. 믿기 어렵다. 통합과 균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쩌자고 동창과 검찰 인연만 깐깐히 보고 골랐는지, ‘저쪽’ 보기 민망하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바로 그 취임사에서 “모두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당장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게서 자유 시민으로서 공정한 규칙을 지킨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그는 “지위를 이용한 부당행위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했다. 그러나 20여 년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며 국민 눈높이는 높아진 상태다. 하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과 흡사한 정호영 아들딸의 의대 특혜 편입 건을 알고도 검증팀은 인사청문회에 올린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가 윤 대통령의 친구의 친구라는 점 때문에 할 말을 못 했던 것이라면 더욱 불길하다. ‘문재인 청와대’는 ‘노무현 2’나 다름없는 운동권 정부였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청와대 정부’를 뜯어고친다며 수석비서관 폐지를 약속했다. 그러고는 내각을 동창으로 채운 것도 모자라 ‘윤석열 용산 정부’에 ‘검찰 용산 정부’와 김건희 여사의 아부꾼까지 옮겨다 놓은 것도 실망스럽다. 정호영뿐 아니라 장관 후보자들 가운데는 ‘이해충돌’이 뭔지도 모를 만큼 공인 개념이 부족한 인물들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인사 기준으로 능력을 강조했지만 혼자 잘나서 엘리트가 된 사람은 없다고 본다. 부모를 잘 만나서든, 머리가 좋아서든, 운이 좋든, 그 위치에 올랐다는 것은 특혜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자유만 누릴 것이 아니라 도덕적 수범(垂範)을 보일 책임과 의무가 있다.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자유를 강조한 것은 백번 옳다. 그러나 책임 없이 자유만 누리는 것은 뻔뻔한 자유다. 멀쩡하지 않은 일부 보수 인사들 때문에 윤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이 다시 부끄러워지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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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셀프 면죄부에 면세 대통령연금, 부끄럽지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공포하는 방망이를 휘둘렀다. 퇴임을 불과 엿새 앞두고서다. 문 대통령이 공포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핵심이 자기 자신을 위한 ‘셀프 면죄부’라는 건 온 국민이 안다. 그래도 헌법을 준수하는 대통령이면 거부권 행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 손으로 국무회의에서 방망이를 두드리기 면구쩍어 임시 국무회의 날을 잡아 총리에게 방망이를 넘길지 모른다고 상상도 해봤다. 아니었다. 3일 밤 모처럼 마음 편하게 잠을 이룬 문 대통령은 10일 새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다음, 새로 지은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에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20일 전 대통령으로서 첫 대통령연금을 받을 것이다. 놀라운 건 1400만원 가까운 거액이 전액 비(非)과세라는 사실이다. ● 애국심을 의심케 하는 비과세 대통령연금‘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문 대통령이 받을 연금은 지급 당시 대통령 보수연액의 95%로 돼 있다. 문 대통령의 연봉은 2019년부터 4년째 동결된 2억3922만원이고, 보수연액은 약 1억7556만 원이다. 행정안전부 ‘202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에 의하면 문 대통령의 대통령연금은 월 1390만 원 정도를 받을 것으로 추산됐다. 소득세법 12조 3항은 ‘근로소득과 퇴직소득 중 다음의 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한다’고 규정돼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카)국가유공자, 보훈대상자와 (파)작전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외국에 주둔 중인 군인 사이에 (타)전직대통령의 비과세 조항이 쏙 끼어들어가 있다(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카)와 (타) 사이에 들어가 있는 건 아니었길 바란다).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군인의 많지 않은 급여가 비과세인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무려 1400만 원이나 되는 대통령연금이 세금 한 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선의로 생각하려고 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민간인의 경우 소득이 1억5000만 원~3억 원이면 38%의 세율을 떼어간다. 그런데 대통령 지낸 분에게 소득세를 내지 말라고 한다니, 그 분의 애국심과 양심을 의심케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줄줄이 이어지는 전직 대통령의 혜택한달 평균 55만 원 정도 쥐꼬리 국민연금 받는 보통 노인들도 여기서 세금 내고, 건강보험까지 떼는 형편이다. 20년씩 국민연금 부어도 100만 원 받을까 말까다. 그런데 5년 근무한 대통령만 왜 다달이 1400만 원씩, 그것도 세금 한 푼 안 내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받는다니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연금만 받는 것도 아니다. 더 있다. 전직대통령 예우법에는 연금 말고도 그 밖의 예우로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그리고 4가지 예우가 적혀 있다. ① 필요한 기간의 경호 및 경비(警備) ② 교통·통신 및 사무실 제공 등의 지원 ③ 본인 및 그 가족에 대한 치료 ④ 그 밖에 전직대통령으로서 필요한 예우, 딱 거기까지다. 그런데 지난해 행안부가 공개한, 곧 문 대통령이 받게 될 예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예우보조금이 2억6000만 원에서 2022년 3억9400만 원으로 인상됐다. 각 부문 예산도 2022년 다음과 같이 늘어난다. △비서실 활동비 7200만 원→1억1400만 원 △차량 지원비 7600만 원→1억2100만 원 △국외여비 4800만 원→8500만 원 △민간진료비 1억2000만 원 △간병인지원비 4300만 원→8700만 원. 우리가 대통령을 지낸 분에게 과공비례(過恭非禮)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 대통령 주변 특혜 전혀 없었다고? 문 대통령은 지난달 ‘대담-문재인의 5년’에서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발언이 진심이었는지 묻는 손석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었다. “역대 정부 가운데 우리 정부처럼 이른바 대통령 주변에 특수관계자나 청와대 인사나 정부 인사, 이런 사람들이 부정한 금품을 받고 정권을 농단한다든지 부당한 이권, 특혜를 준다든지 이런 일이 전혀 없었지 않았습니까.”그렇다면, 민주당 소속이었던 이상직 의원은 왜 문 대통령의 사위를 타이이스타젯에 특혜 취업시켜줬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문 대통령의 딸과 외손주는 왜 경호원까지 딸려 태국에 살다 청와대로 돌아왔는지 손석희는 대담할 때 물어야 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및 하명 사건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의혹을 놓고도 “청와대 관련 의혹이 있지 않았느냐”고 손석희는 따져 묻지도 않았다. ● 하필 회색빛 감옥 같은 양산 사저 그런 저런 의혹이 없었어도 문 대통령이 퇴임 엿새 전 방망이를 휘둘러 셀프 면죄부 법안을 공포하고 말았을지, 국민은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세금 한 푼 안 내는 대통령연금 월 1400만 원에, 이보다 많은 예우보조금에, 해외여행비까지 해마다 챙겨 받으셔야 하는가. 문 대통령의 사저는 사진으로 보면 창문도 없이 회색 외벽과 박공지붕만 보여 단순하다. 경남고 동기인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했다. ‘자연인 문재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데 참 미안하게도 거의 바스티유 같다. 마당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도 혹시 보일까봐 최근 조경수를 잔뜩 심었다는 점도 희한하다. 산철쭉 1480주, 조팝나무 640주, 영산홍 400주, 피라칸시스 320주, 흰말채나무 110주, 측백나무 50주, 대나무 30주, 독일가문비 18주 등 수목 수천 여 주가 들어갔다. 집 안에서 어디 하늘이나 보일지 걱정스럽다. ● 소득세 자진납부하시라!역대 퇴임 대통령들은 27명의 경호 인력을 두었다. 문 대통령은 전문 방호인력 38명을 추가로 증원했다는 기사가 지난해 보도됐다. 어쨌든 역대 가장 많은 경호 인력이 배치되는 셈이다. 의경의 단계적 폐지 때문이라지만 뭐가 두려워 그리 많은 인력이 필요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VIP를 지키는 것이지만 거꾸로 상상하면…밖으로 못나가게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문 대통령은 3월 말 조계종 행사에서도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과도하게’ 최선을 다하는 바람에 잊혀진 삶을 살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불행한 ‘대통령사(史)’로 인해 온전한 대통령연금을 받는 전직 대통령은 문 대통령 한 사람뿐이다. 문 대통령의 애국심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연금에서 소득세를 자진납부 해주었으면 한다. 모든 국민에게는 납세의 의무가 있다. 전직 대통령이 특권층은 아니지 않는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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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文을 위한 ‘검수완박’ 역사에 기록될 것

    닭이 울기 전 베드로는 세 번 예수를 부인했다. 참 불경스러운 비유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는 지금 갑자기 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하는지 세 번 답변을 거부한 인터뷰로 기억될 것 같다. 손석희 전 JTBC 앵커는 25일 방송된 ‘대담―문재인의 5년’에서 검수완박 입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갑자기 왜 이렇게 강력 드라이브를 하느냐”고 문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래도 답변 않고, 또 물어도 답변 않던 문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한동훈 검사장이 검수완박은 필히 막겠다고 했는데 답변하시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 입을 열었다. “아니다. 그런 표현은 굉장히 위험하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특정한 사람들이 독점할 수는 없다.” 손석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것 때문인 것 같다.” 즉 한동훈 같은 보수세력이 정의를 독점해 문 대통령을 처벌하지 못하게 하려고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밀어붙였음을 대통령의 입을 통해 확인한 셈이다. 문 대통령 퇴임 전 민주당이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처리를 끝내면 최대 수혜자는 단연 문 대통령이 된다. 이번 대담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처럼 부정한 금품을 받고 특혜나 특권을 준다든지 하는 일이 전혀 없지 않았나”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71억 원의 거액이 언급돼온 문 대통령의 사위 서모 씨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취업 의혹 수사는 9월이면 증발될 공산이 크다.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의원(수감 중)과 관련된 서 씨의 특혜가 문 대통령에게 건네진 뇌물인지 여부가 핵심이다. 전주지검이 수사하다 작년 말 석연찮은 이유로 기소중지 됐다. 정권 바뀌면 제일 먼저 재수사될 사건으로 꼽혔으나 ‘경찰청이 승계’한다는 개정안 부칙 4조에 따라 흐지부지될 판이다. 문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위해 청와대 8개 부서가 동원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및 하명 사건도 검수완박과 함께 묻히게 될 것이다. 핵심 피고인 중 한 명인 송철호 울산시장은 지지부진 재판 덕에 4년 임기를 꽉 채우고도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천까지 받았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인터뷰 때 “(선거전에서) 한 번도 링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며 “지지활동을 하고 반론할 수 있고 선거에 도움이 됐을 수 있다”고 위험한 인식을 드러냈다. ‘공무원은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가 공직선거법 9조다. 그러니 울산 선거 개입 혐의로 대통령 참모진 등 무려 15명이 기소됐음에도 행정부 수반으로서 손톱만큼의 책임의식도 못 느끼는 모양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사건도 검수완박이 되면 규명이 불가능해진다. “월성 원전은 언제 영구 중단됩니까”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최재형 당시 감사원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참고자료에 써넣었고, 덕분에 문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것도 우리는 기억한다. 공교롭게도, 아니 이를 내다본 듯 문 대통령은 이번 대담에서 “청와대가 재판받고 있는 사건도 직권남용 정도”라고 가볍게 말했다. 직권남용 역시 검수완박과 함께 경찰로 넘어간다. 지난 5년간 ‘우리 이니 마음대로 했던’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언제까지나 발 뻗고 주무셔도 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인 2020년 11월 “국민이 원하는 진짜 검찰 개혁은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윤 당선인이 ‘검찰의 정치화’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오히려 문 대통령이 ‘권력 사유화’와 ‘국민 편 가르기’를 했기 때문에 결국 정권을 잃은 것이라고 본다. 검찰의 수사권이 어디 붙어 있든, 검찰개혁의 핵심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윤 당선인이 검찰 출신이어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 역시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도 눈치 보지 않고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라고 국민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이다. ‘죽은 권력’을 수사하지 못하도록 꼼수로 만든 법안은 문 대통령과 이해충돌 관계에 있다. 이 법이 다음 달 국무회의에 올라왔을 때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비겁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에게 의결을 떠넘긴대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국민은 문 정권의 검수완박을 잊지 않을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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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검수완박보다 끔찍한 정치권의 ‘검수야합’

    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내놓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을 여야가 받아들였다. 검찰 직접수사를 기존 6대 범죄(경제·부패·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에서 경제·부패 수사만 남기고 박탈하되, 중대범죄수사청이 설치되면 완전 폐지한다는 거다. 그러나 검수완박이 검수덜박(덜 박탈)됐다고 할 수 없다. 핵심이 박탈됐기 때문이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던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은 감옥 갈 수 있다”는 선거 범죄 수사나 공직자 범죄 수사가 홀랑 빠졌다. 여야가 야합해 정치권에 불리한 대목을 들어내고, 국민 보기 면구스러워 방위사업과 대형참사까지 뺀 ‘검수야합’이다. 이날 김오수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고검장 등 현직 고검장 6명이 전원 사직서를 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권력비리 수사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검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검수완박에 앞장섰던 민주당에선 만세를 부르는 모양이다. 그럼 국민의힘이 더불어 찬성한 이유는 뭔가. ● 권력의 속성은 어쩔 수 없다 곧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다. 국힘은 여당이 된다. 벌써부터 윤 정부 초대 내각과 참모진은 윤 당선인의 친구나 지인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그들만의 성역’이 되는 조짐이다. 제발 아니길 바라지만, 내 식구 잘 챙기는 윤 대통령의 ‘형님 리더십’을 믿고 여권 관계자들의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 방위사업 범죄가 마구 늘어날 수 있다. 2018년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황운하 의원은 “검찰 수사권을 폐지하면 6대 범죄 수사권이 경찰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한다”고 동료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낸 바 있다. 검수야합이 성사되면 여권 인사 관련 수사도 그냥 증발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이든, 국힘이든 권력의 속성은 결국 마찬가지다. 검찰이든 뭐든 권력을 견제하는 건 싫은 것이다. 처벌받는 건 더 싫다. 권력을 내려놓는 건 죽어도 싫다. 새로 생겨날 중대범죄수사청이 얼마나 수사를 잘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봤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휘하에 있다. 우하하. ● 문 대통령 의혹 수사는 완전 봉쇄된다 황운하가 증발될 것으로 예견했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다시 보자. 송철호 울산시장은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미 경선 없이 민주당 후보로 결정됐다. 동아일보가 2020년 2월 7일 단독 보도한 공소장에 따르면 송철호는 2018년까지 8번이나 각종 선거에 낙선했지만 현 대통령,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청와대 지원을 이끌어냈고 심지어 재선까지 노리는 상황이다. 작년 4월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광철 민정비서관에 대해 “범행에 가담했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적시하면서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정권이 바뀌면 재수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그러나 이번 검수야합으로 공직자 범죄 수사가 제외되는 바람에 조국, 임종석 등과 혹시 모를 그 윗선 수사는 영영 묻히게 됐다. 이뿐 아니다. “월성 1호기는 언제 영구 중단되느냐”는 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촉발시킨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수사도 막히게 된다. 공교롭게도, 아니 짜고 친 듯, 문 대통령 관련 비리 의혹 수사는 완전 봉쇄되는 것이다. ● 대선 전 윤석열 “검찰은 이재명 사수대냐”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은 대장동 사건과 관련돼 고발된 상태다.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사업 민간 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에 개발이익을 몰아줬다는 배임 의혹이다. 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검수완박이 되면 대장동 수사가 종결될 수 있다”고 했다. 검수야합이 되면 공직자 범죄 수사 제외에 딱 걸린다. 이재명이 드디어 발 뻗고 주무시게 되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다. 윤 당선인은 작년 10월 대선 과정에서 “검찰이 유동규를 기소하며 뇌물죄만 적용하고 배임죄를 뺀 것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배임죄 수사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검찰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모든 것이 계약서에서 ‘초과이익 환수조항’을 이재명과 유동규가 뺀 것에서 비롯됐다. 모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런 것이다. 민간 업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설계했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검찰이 이재명을 지키는 사수대가 됐다”고 피를 토하듯 절규를 했었다. “전직 검찰총장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문 정권의 거짓 검찰개혁이 이렇게까지 검찰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치 제 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국힘은 당시 “친정권 검사들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했다(결국 11월 1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은 유동규를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재명에 대해선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아직까지 검찰에는 분명 수사권이 있다. 입때껏 뭐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검수완박이 되면 대장동 수사를 못 한다”고 엄살을 떤단 말인가. ● 문 정권이 망친 검찰, 대통령이 돼 살린다고 했다 꼭 반년 전, 윤 당선인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검찰총장 시절 저는, 살아있는 권력도 범죄 혐의가 있다면 수사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불행히도 저의 그런 노력은 문재인 정권의 거센 탄압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검찰총장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 대통령이 돼서 해내겠습니다.” 국민은 그런 윤석열에 감동받았다. 윤석열이면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좋은 나라, 별것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나쁜 짓 하고도 뻔뻔스럽게 잘 먹고 잘사는 꼴을 보면 보통 사람은 정말이지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이다. 묻고 싶다. 윤 당선인은 여야가 야합한 검수완박이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한다는 원칙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도, 그리고 취임한 뒤에도 검찰총장 시절 가졌던 그 원칙이 달라지지 않는지. 그렇다면 저 거지 같은 검수야합 법안을 진정 “존중”하는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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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검수완박…‘위기의 민주주의’라고?

    “혹시 ‘위기의 민주주의’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이재명은 브라질의 이 다큐멘터리를 종종 언급했다.“검찰을 이렇게 키워서 ‘국물도 없다’ 이런 소리를 하면서 국민 갈등 시키고 증오하게 하면, 민주주의 위기가 경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동의하느냐.” 2월 22일 대선 TV토론에서도 그는 국민의힘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따졌다.다음날도 그는 인천 부평역 광장 유세에서 검찰과 판사가 권력을 찬탈했다는 식으로 이 영화를 말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이 문재인 정권의 막판 핵으로 떠오른 지금, 검찰이 나라를 뒤흔든 브라질과 이 다큐멘터리가 새삼 관심을 모으는 모양이다.● 룰라의 노동자당 부패는 사실이다브라질을 모르면, 이재명 말이 맞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영상에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죄 없이 잡혀가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죄 없이 탄핵당하는 것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그러나 룰라 재임 시절, 핵심 측근과 노동자당이 부패한 건 사실이다. 남미 최대의 건설사인 오데브레시는 룰라와 호세프 재임 기간 33억9000만 달러(약 3조9000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국내외 정치인과 정치 관료들에게 제공했었다.여기엔 룰라와 호세프도 포함된다. 미 연방법원은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으로 오데브레시에 최소 35억 달러의 벌금까지 선고했다. 브라질 검찰이 이를 밝혀낸 일련의 과정이 ‘라바 자투’, 일명 세차 작전이다.● “검찰이 대통령 권력도 찬탈한다”룰라의 첫 임기 때 노동자당은 정책 지지 대가로 여야 정치인들에게 불법으로 매달 공금을 주는 ‘큰 용돈(mensalao)’ 관행을 확립했다. 물론 룰라는 “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룰라는 퇴임 후 태연히 오데브레시 돈으로 남미 여행을 다녔다고 4월 9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보도했다.다큐멘터리 속 호세프는 탄핵을 당하면서도 황당하다는 듯 웃는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재정적자가 급증하든 말든, 예산집행법까지 위반하면서 극빈층 지원을 계속하는 대통령이 온당한가.호세프는 그렇게 했다. 룰라가 복층 아파트 뇌물을 안 받았다고 해서 오데브레시 스캔들이 조작된 것도 아니다. 이재명이 다큐멘터리 한편만 보고 “판검사들이 룰라한테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권력을 찬탈했다”고 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판도라’ 영화 한 편 보고 탈원전 정책을 강행한 것과 다름없다.● 군사독재 경험하고도 검찰을 끼고 있나심지어 다큐멘터리의 탈을 쓰고 사실을 왜곡시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군사독재를 경험한 국가들의 민주화 이후 검찰개혁’이라는 조희문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의 2017년 논문에 따르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는 모두 개헌을 통해 검찰을 헌법상 독립기구화했다. 다시는 ‘정권의 개’ 역할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만 검찰이 대통령의 영향력 내에 있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룰라 재임 초기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을 중심으로 수사하다 정치권으로 수사가 확대됐고 룰라를 비롯한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권이 연루된 것이 확인됐다. 이처럼 대통령까지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된 것은 자백을 하는 대가로 형량을 조절하는 플리바기닝 제도가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한선희, 이충열 2020년 논문 ‘엘리트 카르텔과 부패’).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9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검찰개혁을 보고받으며 “검찰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대개 민주국가에서 검찰개혁이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이 “검찰총장에게 지시한다”며 사실상 조국 수사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건 소가 웃을 일이었다.● 검찰은 대통령으로부터 분리돼야그러나 브라질에서도 현실은 현실인 모양이다. 룰라는 우여곡절 끝에 석방돼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에 다시 출마한다. 라바 자투 역시 동력을 잃고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이미 2003~2011년 두 번의 임기를 꽉 채운 ‘흘러간 물’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브라질의 지긋지긋한 부패, 노동자당까지 부자들과 다를 바 없이 더러워진 부패가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더욱 섬뜩한 것은 노동자당의 부패를 키운 정치 구조가 다당제, 개방명부식 비례대표제 즉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김오수 검찰총장이 17일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추진에 반대한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 결기를 왜 진작 못 보여줬는지 안타깝다. 브라질의 라바 자투가 남긴 교훈 역시 검찰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착한 대통령으로부터는 검찰이 분리되지 않아도 괜찮을까? 검찰 출신 대통령으로부터는?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검수완박 강행을 막는 것보다 중요한 건 검찰의 권력으로부터의 분리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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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역사는 문 대통령이 퇴행시켰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로써 말 많았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 “한나라당이 정권 잡으면…토론 한번 해보고 싶은데 캬, 그놈의 헌법이 못 하게 해요.” 속내를 드러내는 데 당당했던 그도 임기 말엔 “언어와 태도에서 (대통령다운) 품위를 만들어나가는 준비가 부족했던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인의 ‘안티테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상주 역할을 하면서 ‘대통령다운’ 태도로 주목받았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적도 없다. 즉흥 발언 없이 주로 A4 용지에 적힌 원고만 읽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이 판치는 포스트 트루스(탈진실) 시대. ‘정권의 나팔수’ 김어준이나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선전선동은 깎아서 들어줄 수 있다. 그러나 얼굴도 ‘스펙’인 문 대통령이 반듯한 태도로 또박또박 읽는 원고에 거짓이 섞였다고 착한 국민들은 도저히 상상 못한다. 2017년 6월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였다”며 고리1호기를 영구정지시키는 탈원전 정책을 발표했다. 40년간 방사능 유출 사고 한 번 없었던 세계적 수준의 원자력발전 기술과 국가 인프라를 무너뜨리는 역사 퇴행의 시작이었다. 11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역사는 때로는 정체되고 퇴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막말도, 말실수도 아니다. 대선에서 패하고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의 눈에는 역사가 정체되거나 심지어 퇴행할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걱정 마시라고 전하고 싶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찍은 국민이 무려 1639만여 명(48.56%)이다. 문 대통령이 5년 전 받은 1342만여 표(41.08%)보다 297만여 표나 많다. 임기 말인데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44%의 지지율을 누리는 문 대통령의 괜한 걱정이다. 하지만 긍정 평가의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답변이 ‘모름·응답거절’(24%)이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임기 말 대통령들은 아들 비리 등 주변 비리 때문에 곤경에 처하곤 했다. 문 대통령은 한사코 특별감찰관을 두지 않았다. 검찰과 사법부까지 장악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원전 경제성 판단 문제 등에 대한 수사를 피했기 때문일 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지키겠다고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시도한다는 게 부끄럽지 않은지 거울 한번 들여다봤으면 한다. 이미 ‘문빠’들은 왜 문 대통령을 못 지키냐고 문자폭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문빠의 특징이 맹목적 지지라고 전북대 오현철 교수는 2021년 논문 ‘문재인 정치팬덤의 복합적 성격’에서 분석했다. 문빠가 위험한 건 대통령 친위대처럼 불충의 정치인에게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자행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양념’이라고 부추김으로써 ‘봉건적 인치(人治)’의 시대로 역사를 퇴행시켰다. 국민주권과 법치주의라는 민주주의 기본원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2017년 대선 전 ‘대한민국이 묻는다’는 책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권력의 기반은 도덕성과 역사적 소명의식”이라고 했다. ‘운동권 정부’의 도덕성은 조국, 윤미향 등에서 바닥까지 보여준 상태다. 북한이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항일독립운동세력에 의해 세워졌고, 대한민국은 정통성 없는 나라처럼 취급하는 당신들의 ‘좌파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용서하기 어렵다. 독립투사 후손을 대대손손 우대하는 세습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불평등한 ‘신양반 사회’다. 역사를 조선시대까지 후퇴시킨 문 대통령은 자신의 뼈아픈 정치 실패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해 주었으면 한다. 동아시아연구원의 대선패널조사에 따르면 투표에 영향을 미친 이슈 1위가 ‘부동산정책 실패’였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규제와 세금 정책만 쏟아낸 장본인이 문 대통령이었음을 시사했다. 전문가를 무시하고 문 대통령의 고집으로 온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것을 진심으로 사과할 때가 됐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겠다던 취임사를 한번 다시 읽어 보기 바란다. 아무리 ‘쇼통’에 능했던 문 대통령이었다 해도 “정치의 역할이 크다”며 “혐오와 차별이 아니라 배려하고 포용하는 사회…그것이 진정한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또박또박 읽는 식은 더는 봐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국민을 갈라치기 하며 5년간 너무나 깊은 혐오와 차별의 정치를 해왔다. 윤 당선인의 취임식 슬로건이 ‘다시 대한민국’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다시 찾은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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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청와대 안주인’의 옷값과 그 무게

    뮤지컬 ‘엘리자벳’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1837~1898)를 다룬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선 옥주현 신영숙 김소현 같은 빼어난 배우들이 열연했다. 엘리자벳(애칭 씨씨)이 삼단 같은 머리에 눈꽃처럼 흰 드레스로 단장하고 등장하는 1막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이 치명적 미모가 어떤 의미인지는 황후의 꼭 닫힌 방문 앞에서 황제가 애절하게 부르는 노래가 말해준다. “당신의 아름다움이 큰 도움이 돼. 나와 함께 헝가리에 가주오.”● 황후의 미모는 황실의 자산1848년 민족주의 바람에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다. 제국은 혼란스러웠지만 씨씨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환호했다. 정치적 갈등도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탄생으로 봉합될 수 있었다. 지금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엔 엘리자벳 관련 상품 천지다. 황후의 미모는 국가의 자산이었던 거다. 가장 화려하고, 경박하고, 관능적인 시대정신의 화신. ‘로코코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가 눈 뜨고 제일 먼저 했던 걱정은 어떤 옷을 입을지 고르는 것이었다. 수십 벌 의상을 만들어 왕실의 침실을 찾는 의상가가 재상보다 큰 위력을 과시했다. 두 번째 걱정은 머리 모양이었다. 고도의 기술자가 커다란 머리핀과 고형 포마드로 머리카락을 수직으로 세운 ‘뻥머리’를 만들어선, 과일 정원 집 배 따위를 기분대로 쌓아 올리면 그게 또 왕비를 쫓아가려는 상류사회의 유행이 됐다. 씨씨도 하루 세 시간씩 머리 손질에 공을 들였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은 머리 손질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와중에서 굳이 올림머리를 했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 그 여자의 이름으로 벌어진 사건은 그 여자의 죄제국의 시대, 씨씨의 외모 가꾸기는 당연히 백성들 부담이었다. 뮤지컬 ‘엘리자벳’에는 가난한 여인들이 우유를 못 구했다며 “배가 고파 죽어가 아이들이”노래하는데 “황후께서 그럴 리가” “우유 목욕을!” 한다는 후렴이 깔린다. 태평성대 때는 자산이던 황후의 미모가 흉흉한 시절엔 혁명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말하지 않았다. 왕비가 목걸이를 샀다고 해서 나라가 뒤집힌 ‘목걸이 사기 사건’은 왕비와 무관한데도 엉뚱하게 민심이 돌아섰다. 왕비가 워낙 보석 좋아하고, 사치와 낭비가 심하고, 경박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그 여자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사람들이 그 사건을 믿은 것은 그 여자의 역사적 죄과다.” 1920~30년대 유럽 최고의 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1932년 ‘마리 앙트와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이렇게 썼다(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을 빗대는 건 절대 아니다).● “영부인 외교의전 예산 지원” 분명히 밝혔다미국 같은 선진국에선 대통령 가족의 옷은 물론 머리 손질까지 당연히 사비(私費)다. 최근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의상비, 식비, 사적 여행이나 파티, 소송 비용까지 전부 개인이 부담한다. 취임식 파티복은 박물관에 전시되므로 디자이너들이 서로 기증하겠다고 경쟁하지만 나머지는 아니다. 따라서 옷값이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 청와대에선 김 여사의 의상비가 특수활동비(이것은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국가예산이다) 아닌 전부 사비였다고 연일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청와대 신혜현 부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동시에 이렇게 밝혔음을 우리는 잠깐 잊고 있었다.“국가간 정상회담, 국빈 해외방문 외빈초청행사 등 공식 활동 수행 시 국가원수 및 영부인으로서 외교활동을 위한 의전비용은 행사 부대비용으로 엄격한 외부절차에 따라 필요 최소한의 수준에서 예산을 일부 지원받는다. 순방 의전과 국제행사 등으로 지원받은 의상은 기증하거나 반납했다.” 그러니까 특활비는 아니지만 김 여사 옷에 지원된 예산이 분명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옷들은 모두 반납됐다는 것이다. 그 의문이 지난 주말 풀리게 됐다. ● 그 많은 옷들은 사지 않았다, 빌려 입었을 뿐김 여사가 취임식 때 입은 정장을 만들었던 단골 디자이너 A의 딸이 청와대 6급 공무원으로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실이 밝혀졌다(마치 최서원의 딸 정유라가 근무한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김 여사가 패션쇼를 보고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면 A가 청와대로 가서 가봉해줬으며 옷들은 구입이 아니라 80만 원 정도를 받고 대여했다는 중앙일보 보도다.이로써 모든 의문이 풀리는 듯하다. 탁현민은 “김 여사의 의상 구입에 쓰인 특활비는 한 푼도 없다”고 했다. 당연하다. 그 많은 옷들은 대여를 해서 입었고, 예산에서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자. 대통령 해외순방 때 부인으로써 한번 입고 돌려줄 옷이면, 내 돈을 낼 수 있겠나? 없다. 국가 예산이어야 한다.패션쇼를 보고 마음껏 골라 입는 ‘영부인의 공주 놀이’에 국가 예산이 들어갔다면, 엄혹한 코로나 시국에 청와대에선 우유 목욕을 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민적 분노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문 정권은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대통령기록관에 봉인해둘 작정이었을지 모른다. ● 대통령이 못하면 부인은 ‘여혐 희생자’ 된다대통령 부인은 세련된 옷을 입을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왕실과 국가 재정이 분리되는 건 근대국가 성립 이후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대통령과 부인의 옷까지 국가 예산으로 댄다는 점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대통령 부인이 국내 디자이너의 옷을 세계에 알릴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김 여사가 옷 욕심을 절제하지 못함으로써 국민 원성과 질투와 부부갈등을 유발한 것은 일종의 ‘권력 남용’이 아닐 수 없다. 루이 16세는 무능하되 선량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때 마리 앙투아네트는 ‘여혐의 희생자’로 단죄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한 뒤에도 김건희 여사는… 조용히 있는 게 좋을 듯하다. 죽어도 활동을 해야겠다면, ‘성공한 대통령’ 평가를 받고난 다음이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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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김정숙 여사의 옷장과 투명한 나라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나이 들수록 옷장 문 열 때마다 화가 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입고 나갈 옷은 없는데 철철이 옷 해줄 능력 없는 ‘삼식이’ 남편이 미워진다는 거다. 내가 나이 먹어 옷태 안 난다는 생각은 못 하고 남 탓만 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계절은 또 바뀌는데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 액세서리 구두 등 청와대가 공개를 거부한 의전비용과 특수활동비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때라도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30일 밝힌 것처럼 “김 여사의 의상 구입에 쓰인 특활비는 한 푼도 없다. 사비(私費)로, 카드로 결제했다”고 똑 부러지게 밝혔다면 ‘×멜다’ 같은 험한 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대통령이고 2021년 연봉이 2억4065만 원이다. 대통령 부인이 남편 돈으로 좋은 옷 사 입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청와대는 그러지 않았다. 법원이 “국익을 해칠 우려나 공무집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없다”며 공개하라고 판결했음에도 불복해 항소했다. 문 대통령 임기 끝까지 붙잡고 있다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 15년간은 감춰두겠다고 국민 염장을 지른 셈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이 2018년 3월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은 대통령 및 김 여사의 의전비용이 특활비에서 지급됐는지 여부였다. 김 여사의 옷값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옷값도 함께 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은 특활비 폐지였고 김 여사의 옷값은 ‘미끼’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다들 김 여사 옷값에만 신경 썼지 문 대통령의 고급 양복엔 관심도 없다. 넉 달 후 청와대가 김 여사의 옷을 사비로 산다고 답하지 않은 것은 의아하다. 탁현민의 뒤늦은 사비 주장을 믿기 힘든 이유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은 공문을 통해 "(특활비) 세부 지출내역에는 국가안전보장, 국방, 외교관계 등 민감한 사항이 있어 공개하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특활비 내역에서 김 여사의 옷값이나 수량 또는 사이즈 같은 민감 사항이 공개될 경우, 국민의 심신을 자극해 국익이 현저히 훼손될 우려가 있는 건 맞다. 만일 대선 전에 김 여사 옷값 논란이 터졌다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득표에서 최소한 10%포인트는 깎아먹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구나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어 탁현민이 사비론을 강조한 30일, 전태수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는 “2017년 5월 김 여사에게 구두 6켤레를 켤레당 25만 원에 판매했고 보좌관이 현금으로 결제했다”고 밝혔다. 문 정권의 나팔수 김어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냄새가 나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김 여사의 옷값 논란을 보는 것은 편치 않다. 프랑스 혁명 때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여혐의 희생자’로 단죄됐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서울경찰청이 시민단체 고발에 따라 30일 김 여사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도 진영과 상관없이 마음 아프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관저운영비나 생활비도 특활비로 처리하던데 생활비는 대통령 봉급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혀 국민을 경악시켰다. 청와대에선 지금껏 생활비조차 특활비로 썼다는 사실이 기막혀서다. 기획재정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란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영수증 없이 쓸 수 있고 현금으로 지급되는 ‘묻지 마 예산’이어서 납세자연맹에선 귀족들의 ‘세금횡령 면책특권’으로 본다. 국정원과 청와대 등 19개 기관에 배정된 특활비가 작년에만 9838억 원이었다. 할 말은 아니지만 김 여사의 옷값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에 비하면 거의 새 발의 피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특활비를 둘러싼 ‘법무부·서울지검의 돈봉투 만찬사건’을 감찰했다. 공석이 된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윤석열을 깜짝 발탁해 오늘날 대통령 당선인으로 마주하게 됐다. 임기는 신분사회를 연상시키는 특활비 폐지와 함께 끝냈으면 한다. 김 여사가 기를 쓰고 방문했던 노르웨이에선 총리가 예산을 쓰고도 영수증을 안 내면 형사책임은 물론 탄핵을 당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정직하게 세금을 낼 의무가 있다. 대통령도, 대통령 부인도 그래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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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왜 대통령실 이전 문제로 국민을 불안케 하나

    “한 정권의 성패는 종종 아주 초기에 결정된다.” 서울대 장덕진 교수는 지난주 경향신문 칼럼에 이렇게 썼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발표하기 전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 1호인 적폐청산에 5년 내내 매달리는 바람에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청와대 해체 및 대통령실 광화문 이전’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공약은 10대 공약 중 1호도 아닌 열 번째다(1호 공약은 코로나 위기 극복). 만약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다면(재수 없는 소리 미안), 출범도 하기 전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소란 때문일 공산이 크다. 그래서 납득이 안 되는 거다. 대체 왜 윤 당선인은 이 중차대한 시기에 대선 공약집 340쪽 중 329쪽에 실린 공약에 매달려 귀중한 ‘정치적 자산’을 까먹고 있는 건가. ● “광화문 된다”더니 용산 간다고? 압도적 승리를 했으면 또 모른다. 겨우 0.73%포인트 차이로 이겨 문 대통령한테 “역대 가장 적은 표 차로 당락이 결정됐다”는 ‘조롱’까지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탈권위적 이미지가 절실했을 수 있다. 출근길에 국민과 반갑게 인사하고, 그 동력으로 국민 앞에 자랑스러운 대통령으로 펄펄 날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기대했던 ‘청와대 이전’도 광화문까지였다. 그래서 대선 기간 중인 1월 27일 그는 “경호 문제나 외빈 접견 문제는 충분히 검토했다”며 “인수위 때 준비해 임기 첫날부터 광화문 집무실 근무가 가능하다”고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당선 다음 날인 10일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이 찾아와 ‘문재인 정부도 (이전을) 검토하다 실패했다’고 하자 윤 당선인은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느냐”며 광화문 시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17일자 동아일보가 단독보도 했듯, 광화문 이전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호와 보안 문제 등으로 시민들에게는 거의 재앙 수준이라는 거다. 대신 용산구 국방부 신청사로 이전하겠다고 윤 당선인은 20일 사과도 없이, 지휘봉을 들고 당당히 발표했다. 그 뒤엔 ‘윤석열체’로 쓰인 백드롭이 걸려 있었다.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 안보 놓고 실험하는 자 누군가광화문이 불가능해 용산을 선택한 건 좋다고 치자. 윤 당선인은 중국집에 짜장면 떨어졌다고 짬뽕 시켜 먹고 와서는 “참 잘했어요” 칭찬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광화문과 용산은 짬짜면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문 대통령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가장 큰 문제는 안보(安保)이고, 절차와 소통 문제가 다음 문제다. 우선, 5월 9일 밤 12시까지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는 문 대통령이다. 비록 문 대통령이 안보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해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시기에 안보 공백을 초래할 수 있는 청와대 집무실 이전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과거 대선 때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공약한 바 있어서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린다는 뜻에 공감하고 있다.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국방부, 합참, 청와대 모두 보다 준비된 가운데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순리”라는 문 대통령의 입장은 옳다는 얘기다. 이런 청와대에 대고 윤 당선인의 경호경비팀장 김용현이 “역겹다”고 비판한 건 무례하기 짝이 없다. 주군에게 충성하겠다고 현직 대통령에게 함부로 하는 경호팀장이 국민을 받들 리 없다. 더구나 국방부 신청사가 안보에 취약하다는 민주당 설명(또는 선동)은 들을수록 불안하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같은 일이 터져도 새 정부는 할 말 없을 판이다. 국민 앞에 제대로 설명하는 절차 한번 거치지 않은 채 너무나 서두른 탓이다. ● 그것은 상식에 어긋난 제왕적 대통령질 용산 이전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세계 주요 국가의 대통령이나 내각제 총리의 집무실은 전부 도심에 있다”며 “국민과 호흡하는 도심에 있어야 민성을 들을 수 있고, 직언과 고언을 해야 할 참모들도 편안한 가운데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용산은 고려 때 몽고 침략군부터 일제 침략군까지 주둔했던 곳이다. 주한미군이 떠난 용산공원에 문 정권은 생태공원을 만들려 했고,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임대주택 등을 짓자고 했었다. 나는 용산공원 한쪽에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는 것이 ‘제2의 해방’과 맞먹는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5월 10일 20대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서두는 것은 안보 문제를 포함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특히 ‘공정과 상식’을 들고나왔던 윤 당선인이 “지금은 여론에 따르는 것보다 정부를 담당할 사람(즉 윤석열)의 철학과 결단이 중요하다”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벗어나는 게 더 어려워진다”며 “제왕적 대통령을 내려놓는 방식을 제왕적으로 한다는” 점은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비판을 다 알면서도 집무실 이전을 밀어붙이는 고집(불통)의 일하는 방식이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한다. ● 물러서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그리하여 제왕적 새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했다고 치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무총리 인준부터 순순히 협력해 줄 것 같은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쿼드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방문을 계기로 5월 하순경 한국을 찾으면, 윤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 말고 어디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할 터인가.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과연 승리하겠으며, 앞으로 5년간 대통령실은, 정국은 얼마나 소란할 것인가. 협치나 통합은커녕 성공한 대통령, 아니 우파 정권 재창출은 가능할 것인가. 나는 지금 윤 당선인이 물러서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5월 9일까지는 문 대통령에게 청와대를 맡기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다. 집무실 이전은 그 다음, 윤 대통령 책임 아래 하는 것이 옳다. 일단 문 대통령처럼 청와대 여민관에서 집무하다가 국민적 합의를 거쳐 8·15 광복절에 용산 국방부 신청사로 옮기면 또 어떤가. 안보 공백도 없고, 국민도 불안하지 않고, 윤 대통령도 제왕적이란 소리 듣지 않을 수 있다. 석 달쯤 대통령실 이전이 늦어진다고 아무도 잡아먹진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은 초기에 결정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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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性권력에 복무한 여가부 페미장관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한가하다. 여가부 존폐를 놓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릴 판이다. 그런데도 장관은 1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서 열린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서 우리 정부의 성과를 소개했다고 홈페이지에 자랑했다. 남들이 믿을지 의문이다. 리얼미터에서 작년 5월 실시한 18개 부처 대상 ‘2021년 대한민국 정책수행 평가’ 결과 여가부는 꼴찌였다. 문재인 정권이 ‘민주정부 3기’라고 치고, 정영애를 포함한 민주정부 여가부 장관들의 공통점이 있다. 주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나 여성민우회를 거친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다. 진선미는 민변 출신, 이정옥은 담쟁이포럼 출신이지만 ‘꼴페미’라는 점에선 거기서 거기다. 이대남(20대 남자)에게 여가부가 페미니즘의 상징이라면 이대녀(20대 여자)에게는 여성정책 지킴이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한 이래 노무현 정부 당시 지은희 장관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통과를 최고의 업적으로 자부했다. 그러나 ‘여성정책변동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조영희 고려대 교수는 “핵심적 처벌 조항들을 최종적으로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여성단체가 주도하는 흐름에 수동적으로 따라갔다”고 지적한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공이 더 컸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그 무렵은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의 성폭력 가해자 명단 공개로 어지럽던 시기였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2018년 성폭력 사건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같은 운동권 출신 성의식을 엿보게 해준 데 있다. 1999년 보건의료노조 술자리에서 성폭력이 터졌는데도 ‘조직 보위 논리’로 덮었기 때문이다. 2005년 호주제 폐지가 국회를 통과하자 여성단체들은 잠시 침체기에 들어간다. 이후 10여 년간 이대녀를 파고든 것이 강단 여성학자들의 급진 페미니즘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다. 이대녀들은 그래서 윤석열에게 표를 줄 수 없었다지만 남녀를 갈라치기 한 쪽은 문 정권과 민주당이라고 본다. 남자를 거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메갈리아를 ‘새로운 페미니즘’으로 인정한 쪽이 정영애가 이사로 있던 한국여성재단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명숙, 지은희가 몸담았던 여성민우회는 메갈리아 사이트가 개설되자 여성혐오 근절 캠페인을 벌인다며 ‘넷페미’들을 불러 모았다. 진선미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 사이에서 ‘갓선미’로 떠받들어지면서 여가부 장관까지 할 수 있었다. NL(주사파) 페미 여성단체-여가부-민주당 의원-이후 대학총장으로 이어지는 성권력 및 좌파 이권 네트워크가 완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가부 페미 장관들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사건이 터지자 8일 만에 대책회의를 열고 피해자를 ‘고소인’이라 불렀던 거다. 담쟁이포럼에서 문 후보를 받들었던 장관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성인지 감수성 집단학습의 기회’라고 했던 것이다. 노 정권은 성매매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문 정권 도지사, 시장들은 비서를 관기 취급했고 올드 꼴페미는 이를 ‘내로남불’로 보호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서 영페미 넷페미는 여가부를 여성정책의 지킴이로 믿고 ‘무상연애’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진 꼴이다. 여가부 설립 목적의 첫 번째가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및 권익 증진이다. 그러나 올해 예산 1조4560억 원 중 양성평등 분야는 7%에 불과하다. 정현백 전 장관이 “예산의 62%가 가족에, 30%가 청소년에 쓰인다”고 확인했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예산 2조8092억 원에 비교해도 쥐꼬리만큼 적다. 그렇다면 굳이 ‘여성가족부’라고 ‘여성’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여가부의 영문 명칭도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양성평등가족부)다. 좌파 여성단체 출신 꼴페미를 장관에 앉힐 이유는 더더구나 없다. 이제 두 달 후면 정권은 바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여가부 폐지’를 내걸었지만 단순명료한 구호였을 뿐이라고 본다. “더 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 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가족부’라고 해도 좋다. 독일이 그렇게 하고 있다. 장관 1명에 차관 3명의 매머드급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다. 그래서 인구절벽 문제를 풀 수 있고 남녀가 사이좋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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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우크라이나, 아니 초보 대통령은 이미 이겼다

    아침마다 우크라이나의 안녕을 확인한다.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면 그냥 파죽지세로 끝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러시아군이 진입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노바 카호브카에선 한 할머니가 러시아군대를 향해 빗자루를 휘두르며 호통치는 것이었다. 수도 키이우에서 BTS 지민의 팬들이 “러시아 군인들을 ‘따뜻하게’ 해주겠다”며 화염병을 만들고 있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조국을 지킨다며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나라가 눈물겹게 아름다운 우크라이나였다. 할머니들까지 나서 결사 항전하는 나라는 절대 무너질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쳐들어온 지 아흐레 되는 3일(현지 시간) 군복 티셔츠 차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말했다. “우리 국민은 특별하고 비범한 사람들”이라고. ● 푸틴정권 교체 소리가 나온다벌써 외신에선 푸틴의 패배를 예견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포린어페어스’ 인터넷판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기사 제목만 봐도 가슴이 뛸 정도다. ‘푸틴이 소련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푸틴의 실수’ ‘푸틴이 값을 치르게 하라’ ‘푸틴 종말의 시작’ ‘푸틴은 러시아에서 실각할 것인가’ ‘러시아가 패배한다면’ 등등이 2월 말부터 마구 올라온다. 러시아가 승리한다는 기사는 없냐고? 2월 18일에 올라온 ‘크레믈린이 이긴다면?’이 고작이다. 미국이 만든 전문지여서 그런가 싶어 영국서 만드는 파이낸셜타임스를 들여다봤다. 5일자 사설은 “베를린 장벽 붕괴와 9·11테러가 세계를 변화시켰듯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세계를 각성시켰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독재자 푸틴에 맞서는 용기와 존엄성을 보여주었고, 민주주의 국가들은 독재자 푸틴 정권을 하룻밤 새 버렸다는 거다.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밝혔듯,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심각한 오산으로 드러났다. 애초 푸틴은 하루 이틀 안에 키이우를 점령하고 ‘선량한’ 우크라이나 국민으로부터 ‘해방군’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 점령 72시간 내 친러 괴뢰정부를 세우고 대러시아 제국의 차르로서 수렴청정을 할 계획이었다. 스트롱맨(strongman)으로 유명했던 푸틴이 알고 보니 지푸라기로 만든 스트로맨(straw man)이었던 꼴이다. ● 히틀러 같은 독재자에게 또 당할 수 없다이따위 침략 결정을 내린 푸틴은 과연 제정신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00~2008년, 그 후 4년은 헌법에 막혀 총리를 하다 2012년부터 (개헌까지 해서) 대통령으로 ‘예스맨’에 둘러싸여 있으면 정상이던 사람도 비정상이 된다고 본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그랬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그런 비극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후세의 정치인들이 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의 ‘외교 도박’은 1936년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한 라인란트 재무장부터 시작된다. 불과 3000명의 병력으로 라인란트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 뒤 히틀러는 “만일 프랑스가 밀고 들어왔더라면 우리는 꼬리를 내리고 물러났을 것”이라고 나중에 몇 번이나 말했다. 프랑스도, 영국도 독일과 싸울 엄두를 못내 히틀러의 패권외교가 이겼을 뿐이다. 자신은 절대 안 틀린다는 히틀러의 과대망상은 도를 더해갔고 유화정책의 결과 1938년 뮌헨협정이 탄생했다. 지도자 숭배 열풍이 팽배한 나치 체제에서 히틀러에게 “No”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히틀러’를 쓴 어윈 커쇼 영국 셰필드 대학 현대사 교수는 분석했다. 그래서 푸틴의 군대가 우크라이나로 들어오자 민주세계는 군사적 수단만 빼고(3차 세계대전이 터질 수 있으므로) 모든 조치를 다 취하는 거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일제히 국가신용등급을 낮추면서 급기야 러시아에 국가부도 위기가 임박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피에 젖은 땅, 우크라이나 1941년 히틀러는 우크라이나에서 독일을 세계의 강국으로, 유럽의 곡창으로 만들어 줄 옥토를 봤다. 독일 침략으로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주민(특히 유대인) 300만 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이미 이 땅에선 사상 최대의 인위적 기근으로 300만~400만 명이 문자 그대로 굶어죽은 다음이었다. 1928~33년 스탈린은 제1차 5개년 계획으로 유토피아를 약속했었다. 농토와 농민은 현대 산업국가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쥐어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우크라이나의 기름진 땅에서 곡물을 샅샅이 긁어갔기 때문이다(티머시 스나이더 ‘피에 젖은 땅’). 스탈린 아버지, 이걸 보세요집단농장은 정말 정말 멋지다나요(중략)빵도 없어요, 기름기도 없어요공산당이 모조리 쓸어갔어요(중략)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어요당원은 아버지를 때리고 밟고우릴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버리죠(우크라이나 동요)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왜 러시아 군대에 한 뼘의 땅도 내주지 않는지, 왜 초보 대통령(그는 유대인 혈통이다)이 죽어도 그 땅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하는지 이제 이해되지 않는가.● 이재명의 중국은 한국을 지켜줄까 그래도 우크라이나에선 민족이 다른 독재자가 우크라이나 민족을 굶겨 죽였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제 국민을 굶겨 죽인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은 지금도 독재자로 김씨 왕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 북의 독재자를 향해 ‘남쪽 대통령’이라고 자칭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평양 경기장에서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이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나토가 가입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은 충돌했다”고 TV토론에서 말한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가 언급했던 초보 대통령이 지금 세계적 찬사를 받는 민주주의의 상징적 지도자로 꼽히고 있고, 이재명은 집권할 경우 조국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중국과 더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언급했던 중국은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와 척을 진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다짐한 나라다. 그가 당선돼 중국과 긴밀히 협력하면 과연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내일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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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또 ‘태어나선 안 될 나라’ 대통령을 뽑을 건가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임기 내내 두 개의 ‘청산’에 매달렸다. 적폐청산은 국민이 다 안다. 눈치 없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살아있는 권력’까지 파헤치다 쫓겨나 야당 대통령 후보가 돼버렸다. 또 하나 조용히 진행된 것이 역사청산이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3·1절 기념사에서 “김대중 정부가 첫 민주정부”라고 연설한 건 의미심장하다. 2일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이어 4기 민주정부를 만들어내겠다”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에서 울며 다짐했다. 그가 당선될 경우, 정권 연장 아닌 네 번째 평화적 정권교체란 말인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동아시아연구원의 ‘대선 특별 논평’에서 “문재인 정부의 역사청산은 80년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협약에 의한 민주화’를 파기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1970∼80년대 권위주의 국가의 집권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서 폭력 아닌, 합의에 의해 이뤄진 민주화를 ‘협약에 의한 민주화’라고 한다. 1987년 한국의 민주화운동으로 탄생한 노태우 정부도 여기 속한다. 문 정권은 2016년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규정했다. 통일 지향적 민족주의 세력이 문 정권이다. 이들 눈에 1987년 협약에 의한 민주화 상대였던 보수 세력은 일제 패망과 더불어 사라졌어야 할 반민족 세력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는 물론 민주화 이후 노태우, 김영삼 등 보수 정부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사에서 이들을 모두 지워버리면 임시정부 다음 첫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문 정권의 역사청산인 것이다. 최장집은 “한국 역사의 다층성과 복합성을 간과하고 역사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행위”라고 했다. 3·1절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3·1독립운동에는 남과 북이 없었다. 다양한 세력이 임시정부에 함께했고 좌우를 통합하는 연합정부를 이뤘다…고국으로 돌아온 임정 요인들은 분단을 막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았다. 그 끝나지 않은 노력은 이제 우리의 몫이 되었다”고 역사청산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연설문에 “공산주의자와는 아무것도 더불어 할 수 없다”는 임정 시절 백범의 말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다. 우리나라가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든, 김씨왕조이든, 분단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식의 대통령 인식은 무섭고 위험하다. 문제는 ‘4기 민주정부’를 만들겠다는 이재명도 문 대통령과 다름없는 역사인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2017년에 쓴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편법으로 정권을 창출한 이승만 정권’이라고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서술했다. 고시공부 틈틈이 운동권 서적 특히 ‘해방전후사의 인식’ 시리즈를 읽고 정신이 번쩍 든 결과다. 대한민국을 마치 편법으로 태어난 나라처럼 보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 뒤에도 이재명은 역사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작년 11월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느닷없이 꺼냈던 가쓰라-태프트 협약이 그 책에 그대로 등장한다. “1년 국방예산 40조 원이면 자주국방이 가능하다…남북이 힘을 모아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 우리 세대 모두의 책임이자 희망이다” 같은 대목은 대통령 후보의 글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단순하고 얄팍하다. 모르면 차라리 낫다. 유능함을 자신하는 것이 더 섬뜩하다. 1일에도 이재명은 ‘유능한 평화안보 대통령’ 제목의 방송연설에서 “한미 연합훈련 횟수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2.5배나 대폭 늘었다”고 태연하게 밝혔다. 군 관계자가 “2018년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키리졸브, 독수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3대 연합훈련이 모두 폐지됐는데 무슨 소리냐”고 황당해했을 정도다. 탈모치료제는 대통령이 안 줘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해 침공을 자초했다는 인식을 가진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재명이 대통령 되어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와 자주국방을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자유도 인권도 없는 전체주의국가 북한과 연합정부를 이뤄 과연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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