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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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2부 유통중기팀 데스크입니다.

teller@donga.com

취재분야

2024-04-11~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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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는 순환의 일부… 코로나로 인한 변화, 긍정효과 올것”[파워인터뷰]

    《작가의 존재는 작품으로 증명된다. 올해만 해도 장편소설 ‘기억’과 희곡 ‘심판’까지 두 권의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려놓은 이 작가가 물리적 거리와 달리 한국 독자에게 유독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9)는 독창적인 발상과 지적 탐구가 융합된 흡인력 높은 작품을 선보여온 한국인의 ‘최애작가’ 중 한 명이다. 전 세계에서 팔린 그의 책 2300만 부 중 절반이 국내에서 팔렸다. 작가 역시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독자”라고 추켜세웠다. 1993년 데뷔작 ‘개미’ 이후 30년 가까이 한국 독자 특유의 왕성한 호기심과 두터운 팬심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건 자기관리의 ‘끝판왕’이라 할 만큼 철저한 글쓰기 습관 덕분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거의 매년 한두 권의 신간을 내면서도 “출간을 기다리는 다른 초고가 항상 준비돼 있다”고 귀띔한다. 장르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천국의 법정에서 벌어진 판결을 유쾌하게 그려낸 ‘심판’(프랑스에서는 2015년 출간)은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평 속에 국내에서 7만 부가 팔렸다. 여러 장르의 글을 독특한 발상과 예측 불허 전개라는 ‘베르베르 전용’ 거푸집에서 쉼 없이 주조해내는 그의 ‘비법’을 e메일 인터뷰로 들어봤다.》―데뷔 이후 한 해 평균 1.5권의 책을 썼다. 철저한 글쓰기 습관은 어떤 방식인지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16세 때부터 매일 오전 8시∼낮 12시 반에 10페이지를 썼다. 이런 리듬으로 매년 두 권을 써서 한 권은 출간하고 나머지는 컴퓨터에 저장해둔다. 물론 오전 8시부터 글이 술술 써지진 않는다. 카페에 앉아 전날 작업한 내용을 다시 읽고 뼈대를 정교하게 만들 궁리를 하다 보면 오전 11시쯤 글쓰기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예열이 끝난 기계 엔진처럼 말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예술 창작자들은 엄격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영감이 오기만 기다리거나 여유 있게 집중할 시간을 찾으려다 보면 방만해지기 쉽다.” ―지속적인 글쓰기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마라톤에 임하는 자세다. 일단 일정한 페이스에 도달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한다.” 매일 규칙적인 시간대에 이뤄져온 ‘글쓰기 리듬’을 40년 넘게 유지하는 그에게 글은 단순히 노동이 아니다. 글쓰기는 “매일 같은 시간 이뤄지는 즐거운 만남” 같은 것이며 “하루의 약속이자 삶의 지표”다. 베르베르는 “글을 쓰지 않고 지나가는 하루는 막막함과 허전함뿐일 것이며 그런 날이 며칠 이어지면 우울함이 밀려올 것 같다”며 “아마 나는 책을 내줄 출판사나 읽어 줄 독자가 없는 무인도에 혼자 살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케일과 분량이 방대한 작품이 많다. 아이디어와 구상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나. “보통 단편을 쓰고 장편으로 확장시킨다. 10페이지 내외 단편을 매일 초저녁에 하나씩 쓴 적도 있다. 거칠게라도 아이디어를 던져놓고 천천히 발전시킨다. 단편이 장편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셈이다. 장편을 쓰다 도저히 그 안에 다 담을 수 없다 싶으면 연작을 시도한다. ‘개미’ ‘신’ ‘제3인류’ 3부작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소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아서 자신이 원하는 길이와 크기를 일러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억’은 최면을 통한 신비주의적인 전생 탐험을, ‘심판’은 천국에서의 일을 다룬다. 특히 최근작에서 죽음이나 전생, 사후세계 등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엿보이는데…. “인간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 즉 영성(靈性)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독자들을 그 질문에 동참시키고 싶었다. 나는 과학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영성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게 됐다. 전직 과학기자인 내가 소설가로서 하는 작업은 진실이나 확신의 영역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려는 소망의 일환이다.” 과학잡지에서 7년간 기자로 일한 그는 기술, 미래 등에 대한 공상과학(SF)적 상상력으로 ‘뇌’ ‘나무’ 등을 썼다. 하지만 이후 관심사가 영혼, 영성 같은 신비주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최근엔 최면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삶에 대한 나의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 더 열심히 쓴다”고 했다. ―희곡은 소설 쓸 때와는 어떻게 다른가. “어떤 면에서 희곡은 창작자에게 소설보다 더 큰 재미를 준다. 공이 왔다 갔다 하는 탁구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쓸 때 소설 속 대화와는 다른 차원의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인물들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하다 보니 창의성을 시험받게 되는데, 좋은 훈련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내게 희곡 집필은 소설 사이에 부담 없이 즐기는 휴식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길이가 비교적 짧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고.” ―태어나기 전, 우리가 부모부터 자신의 재능 같은 모든 환경을 골랐다는 ‘심판’의 설정이 흥미롭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환경을 더 긍정하기를 원하나. “세상이 불공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부당하다며 불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불교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주어진 삶의 조건을 수용하는 순간 남에 대한 질투와 자기 폄훼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체념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포커에 비유하자면 나쁜 패를 쥐고도 얼마든지 게임에서 이길 수 있고, 좋은 패를 쥐고도 언제든 질 수도 있다. 게임의 방식이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 유머가 가독성을 높인다. 소설 ‘죽음’에서 “좋은 책은 결국 한마디의 멋진 농담 같은 거 아니겠나”라고도 했다. 유머는 얼마나 중요한가. “프랑스어에서 영성(spiritualit´e)이라는 단어는 유머러스함을 표현할 때도, 기도와 명상, 종교와 관련된 표현에도 쓰인다. 유머는 정신의 놀이이자 구도의 한 방식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나 환생 같은 소재를 다룰 때 자칫 경직되고 진지하게만 접근하기 쉽다. 하지만 유머의 존재는 겸허한 태도와 거리 두기를 가능하게 한다.” ―소설의 소재를 찾을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다른 작가들이 아직 다루지 않았고 나 역시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를 찾아내는 것을 가장 고민한다. 새롭고 참신한 소재와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늘 긴장한다. 며칠 후 프랑스에서 출간되는 ‘고양이’ 3부작의 마지막 편은 인류의 종말과 다른 종으로의 지식 전수를 다룬다. 요즘은 ‘기억’의 후속편도 구상 중이다. 퇴행최면이란 소재를 통해 독창적 역사소설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작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나. “내 작품이 아직은 알 수 없는 모종의 복잡하고 원대한 계획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지런히 산을 오르고 있으나 정작 그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는 상태라고 할까. 산 정상에 도달하고 나야 비로소 그 모든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상은 무지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곳”이란 대사가 시의성이 있다. 삶의 속성도 그렇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으로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프랑스에서 올봄 발표한 단편에서 ‘3주 만에 끝난다고 했던 상황이 3년 동안 지속됐다’라고 썼다. 그 말이 진실이 돼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록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페스트가 창궐했을 땐 이보다 더한 고통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상황은 우리에게 기존의 관습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최악이 아닐까. 누군가는 코로나로 인해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누군가는 노동 방식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당장은 이런 변화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사망자도 많이 발생하지만 지금의 위기가 긍정적인 효과 또한 발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삶의 순환을 위해서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위기는 순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 한국 독자를 위한 조언을 건넨다면…. “자신의 삶의 의미를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프랑스에서는 명상을 하는 사람이 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요리나 그림에 관심을 갖거나 새롭게 취미로 삼을 만한 것을 찾는 사람도 부쩍 많아졌다.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뭔가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베르나르 베르베르△ 1961년 프랑스 툴루즈 출생 △ 1979년 툴루즈 제1대학 법학 전공 △ 1983년 7년간 시사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과학 기자△ 1991년 120회 개작 끝에 ‘개미’로 데뷔△ 1993년 ‘개미’ 한국어판 출간.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 매김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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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리 선생의 생명존엄, 내 소설 밑거름”

    “박경리문학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40여 년 전 낸 첫 소설집 ‘황혼의 집’이 떠올랐습니다.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한 시골 출신 신인 작가의 첫 책을 보고 먼저 다가와 괄목상대해주신 분이 바로 선생이었습니다.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강조한 선생님의 지론이 그대로 제 문학의 밑거름으로 작용했습니다.” 제10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윤흥길 씨는 24일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박경리 선생과의 오랜 인연을 먼저 회상했다. 그는 “곤궁하고 고적한 처지였던 내게 매번 ‘살인(殺人)하는 문학이 아니라 활인(活人)의 문학을 해야 한다’ ‘흙을 만지고 생명을 다루는 생활을 해야 한다’며 따뜻한 격려와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며 “오늘의 이 자리를 미리 마련하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올해 시상식은 코로나19로 인해 3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인터넷 생중계로 진행됐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세희)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 원주시,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박경리문학상은 박경리 선생(1926∼2008)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된 세계문학상이다. 1회 수상자인 최인훈 작가 이후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러시아), 베른하르트 슐링크(독일),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알바니아) 등이 수상했으며 윤 작가는 한국 작가로는 두 번째 수상자가 됐다. 윤 작가는 한국 문학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장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에미’와 최근작인 대하소설 ‘문신’ 등에서 분단과 산업화 시대 등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시대의 모순과 소외 문제를 치열하게 다뤄왔다. 그는 “사회와 인간은 물과 물고기 관계 같아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살맛 나는 세상이 가능하다”며 “날로 오염되는 사회에 똥침을 가하고 신음하는 인간을 마음으로 부축해주는 일을 작가의 역할로 알고 생애의 끝자락까지 창작에 매달리겠다”고 말했다. 김우창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은 김승옥 심사위원이 대독한 심사평에서 “윤흥길 작품이 근대화 이전 전통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그대로 노출하면서도 그 밑바닥의 감정적, 근본적 유대를 통한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광수 원주부시장, 정창영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위원장,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이상만 마로니에북스 대표,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 김순덕 동아일보 전무 등이 참석했다. 원주=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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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윤흥길 “곤궁하던 저에게 박경리 선생이 주신건…”

    “박경리문학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40여 년 전 낸 첫 소설집 ‘황혼의 집’이 떠올랐습니다.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한 시골 출신 신인 작가의 첫 책을 보고 먼저 다가와 괄목상대해주신 분이 바로 선생이었습니다.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강조한 선생님의 지론이 그대로 제 문학의 밑거름으로 작용했습니다.” 제10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윤흥길 씨는 24일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박경리 선생과의 오랜 인연을 먼저 회상했다. 그는 “곤궁하고 고적한 처지였던 내게 매번 ‘살인하는 문학이 아니라 활인의 문학을 해야한다’ ‘흙을 만지고 생명을 다루는 생활을 해야 한다’며 따뜻한 격려와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며 “오늘의 이 자리를 미리 마련하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올해 시상식은 코로나19로 인해 3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인터넷 생중계로 진행됐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세희)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 원주시,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박경리문학상은 박경리 선생(1926~2008)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된 세계문학상이다. 1회 수상자인 최인훈 작가 이후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러시아), 베른하르트 슐링크(독일),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이스마일 카다레(알바니아) 작가 등이 수상했으며 윤 작가는 한국 작가로서는 두 번째로 올해의 수상자가 됐다. 윤 작가는 한국 문학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장마’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에미’와 최근작인 대하소설 ‘문신’ 등에서 분단과 산업화 시대 등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시대의 모순과 소외 문제를 치열하게 다뤄왔다. 그는 “사회와 인간은 물과 물고기 관계 같아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살 맛 나는 세상이 가능하다”며 “날로 오염되는 사회에 똥침을 가하고 신음하는 인간을 마음으로 부축해주는 일을 작가의 역할로 알고 생애의 끝자락까지 창작에 매달리겠다”고 말했다. 김우창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은 김승옥 심사위원이 대독한 심사평에서 “윤흥길 작가는 6.25 전쟁의 비극과 이념 대립, 산업화 과정을 통해 왜곡된 역사 현실과 삶의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그려냈다”며 “근대화 이전 전통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그대로 노출하면서도 그 밑바닥의 감정적, 근본적 유대를 통한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박경리 선생은 한민족 역사와 인간 삶의 근원을 탐구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작가”라며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영예를 거머쥐신 윤흥길 작가께 축하 인사를 전한다”고 축사를 전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광수 원주부시장, 정창영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위원장,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이상만 마로니에북스 대표,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 김순덕 동아일보 전무 등이 참석했다.원주=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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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일흔에 다시 불러보는 아버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학업 중에 징병 통보를 받은 스무 살의 무라카미 지아키. 절차상 착오였지만 무를 수도 없는 게 문서가 모든 것을 말하는 관료조직이다. 이 징집은 전쟁 중 중국인 척살에 참여한 트라우마를 남기며 이후 삶을 뒤바꿔 놓는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아버지에 대해 풀어놓은 사적인 경험담 혹은 회고록이다. 하루키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얽힌 몇 가지 추억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첫 기억은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해변에 다녀온 일이다. 고양이를 버린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버려진 고양이는 그들보다 먼저 집에 도착해 있다. 그때 깜짝 놀라면서도 내심 안도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하루키는 기억한다. 대체로 성실하고 명민했으며 온화했던 아버지. 그는 1917년 도쿄 절집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전쟁을 거친 뒤 중고교 국어교사로 평생을 살다 2008년 세상을 떠났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하루키가 아버지의 진짜 삶과 그로부터 뻗어 나온 자신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기억’을 넘어서지 않을 수 없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난징대학살을 일으킨 부대 소속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 오랫동안 이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하지만 일흔이 돼 마치 ‘핏줄을 더듬는’ 심정으로 아버지의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전쟁이 한 사람에게 미친 고통과 폐해를 마주하게 된다. 하루키 자신의 뿌리에 대한 복기인 동시에 전쟁의 참상과 트라우마에 대한 진솔한 증언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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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리 선생 ‘活人의 문학’ 계속 따를것”

    “박경리 선생이 당부한 ‘활인(活人)의 문학’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생명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지를 삶 속에서 직접 실천하셨던 선생의 말씀을 받들어 사람을 살리는 문학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올해 제10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윤흥길 씨(78)가 22일 오전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 대회의실에서 화상으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박경리문학상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내 최초의 세계문학상이다. 생전 박경리 선생과 인연이 깊었던 윤 작가에게 이 상은 더 각별한 의미가 있다. 1971년 ‘황혼의 집’으로 등단했을 때 ‘익명의 선배’가 큰 칭찬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중에야 그 주인공이 박경리 선생인 걸 알게 됐다. 이후 자주 조언과 격려를 받았다. 윤 작가는 분단의 아픔을 다룬 ‘장마’, 산업화 시대의 병폐를 다룬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표작들을 발표해 왔다. 하지만 그는 “아직 대표작은 없다”고 말했다. “작가들이 하는 가장 건방진 말이 ‘내 대표작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말이라고 하죠. 나도 건방져 보고 싶습니다. 아마 ‘문신’이 완성되면 그게 되겠지요.” ‘문신’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다룬 5권짜리 대하소설이다. ‘큰 소설을 써라’라는 박경리 선생의 당부에 자극받은 작품이다. 현재 3권까지 출간됐다. 그는 “한때 ‘큰 소설’은 분량이 많고 긴 거라고 이해하기도 했지만 실은 인간과 일생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하고 치열하게 작품으로 다루는가를 뜻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올빼미형’ 집필을 고집해 왔다. 요즘은 심혈관 질환으로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습관은 여전하다. 그는 “낮은 수많은 인류가 쪼개 쓰기 때문에 일인당 몫이 굉장히 작다면 밤은 소수가 사용하기 때문에 자기 몫이 커진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윤 작가는 “토지문화관을 한동안 오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선생의 흔적과 혼이 담긴 주변을 보니 너무나 그립고 죄송스럽다”며 “내년에 ‘문신’이 완간되면 경남 통영 묘소로 뵈러 가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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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으로 브랜드를 만나다

    좋아하는 소품이나 옷으로 접하던 디자인 브랜드의 철학을 책이란 물성을 통해서 만나면 어떨까. 최근 인기 있는 유명 디자인 브랜드들이 책이나 잡지 등 서적을 통해 고객과 만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브랜드의 철학을 드러내면서 소비자와 친근한 형태로 접점을 늘리기 위한 시도다. 심플하고 절제된 디자인으로 마니아층을 거느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은 최근 단행본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을 펴냈다. 옷, 신발, 침구에서부터 식기 등 전 분야의 물건을 판매하고 있지만 단순히 잡화점을 넘어서서 모노톤과 간소함 등 ‘마이너스의 미학’을 구현해내는 과정을 브랜드 출발부터 아이디어 개발, 근무 방식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담아냈다. “심플함은 목적이나 스타일이 아니라 풍부한 범용성을 지닌 제품의 궁극이다” “처음부터 ‘좋은 생활자’가 있다고 믿고 그들이 선택할 것 같은 방향의 상품을 만들고자 했다” 등 이 브랜드가 내세우는 ‘무(無)’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몰입도를 높여준다. 루이비통은 최근 특정 도시와 지역, 국가를 패션 사진작가가 사진으로 담아낸 책 ‘패션 아이 컬렉션’ 그리스·우크라이나 편을 출간했다. 루이비통은 2016년 이후 특정 도시를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루이비통이 자체 출판사에서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예술 서적을 내는 이유는 브랜드의 풍부한 전통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루이비통 측은 “브랜드 출발 당시 단골 고객 중 많은 유명 작가가 있었고 이들은 책 보관용 트렁크, 타자기 케이스 등을 주문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는 이런 책을 따로 수집하는 이들도 있다. 유니클로는 지난해부터 라이프웨어 매거진을 1년에 두 차례 발행 중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취지인 ‘우리의 내일(Our Tomorrow)’이란 주제로 3호를 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라이프웨어에 대한 담론을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 패션디자이너 질 샌더와의 인터뷰로 풀었고 일러스트 아티스트인 제이슨 폴런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유니클로 측은 “다양한 이슈를 다뤄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에서는 책이 나오기 전부터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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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숨길수록 더 깊어지는 슬픔

    이런 하루, 이런 오늘. 반복되는 매일의 평범함 속에서 느껴지는 무료함, 고단함, 때로는 깊은 낙담. 유병록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는 오래 저민 차분하고 단단한 슬픔이 엿보인다. “다 그만두고 싶지만” “보잘 것 없는 욕망의 힘으로”(‘다행이다 비극이다’) 노동의 고단함을 버틴다. “꼭 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하는 처지. 하지만 때로 “회사니까/슬픔을 나누는 일은 어색하니까/구원을 찾거나 함부로 조언을 주고받는 곳은 아니니까”(‘회사에 가야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출근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일로 분주할 땐 슬프지 않은 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회사에서는 손인 척” “술자리에서는 입인 척” “거리에서는 평범한 발인 척” 걷기도 한다(‘슬픔은 이제’). “양말에 난 구멍”(‘슬픔은’) 같아서 들키고 싶지 않다. 시인이 억누르는 슬픔, 일상적 습관에 기대 겨우 견디는 무력감은 상처받고, 낙담한 채 삶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몇 년 전 어린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읽어 보면, 담담하고 담백한 절제 아래 도사린 슬픔의 깊이가 더 깊고 날카롭게 마음을 엔다. ‘그 숲에서/어린 바람이 무릎걸음으로 기어 다닐 텐데//돌멩이를 가지고 한참을 놀다가/꽃잎을 만져보다가/개울에 슬쩍 손을 넣었다가/발을 담그기도 할 텐데 … 얼마나 컸는지 키를 재보고 싶을 텐데//너에게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고 싶을 텐데//한번 꼭 안아보고 싶을 텐데 … 너무 멀고 먼/오늘도 근처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는/널 두고 온/거기”(‘너무 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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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픽션-논픽션 넘나드는 문예지 ‘에픽’ 창간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문학계간지 ‘에픽’(다산북스·사진)이 창간됐다. 민음사 ‘릿터’, 은행나무 ‘악스트’ 등 최근 문학잡지는 한때 벽돌책처럼 두꺼웠던 문학계간지와 결별을 고하고 장르문학과 에세이, 셀럽 인터뷰까지 다양하게 수록하며 대중 독자와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에픽은 이 같은 문예지의 쇄신 계보를 이어가는 셈.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간호 간담회에서 에픽의 편집위원들은 “순수문학이나 장르문학의 구분 등 기존 계간지의 엄숙주의를 탈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픽션과 논픽션, 소설과 에세이 등 장르의 경계까지 완전히 허물어 새로운 내러티브 매거진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논픽션 부문 강화다. 영미문학권에서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으로 불리는 문학성을 띤 논픽션을 적극 발굴할 방침이다. 창간호 커버스토리는 자살유족 모임, 고스트라이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코로나19 시대의 삶 등에 대한 논픽션을 실었다. 편집위원 임현 작가는 “르포르타주와 구분되는, 서사적 방식으로 재구성된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은 이미 한국에도 많다”며 “하지만 지금껏 문학장(場) 내에서 다뤄지지 못했고 이런 장르적 구성에서는 영미권 논픽션 작가들처럼 걸출한 작품이 배출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논픽션 활성화를 위해 자유 주제 논픽션 기고를 상시 받기로 했다. 편집위원도 소설가 문지혁 임현 정지향, 차경희 문학서점 ‘고요서사’ 대표 등으로 평론가 중심의 기존 문학잡지와는 차이를 뒀다. 차 대표는 “문예지의 전통적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등단 작가 중심의 청탁을 벗어난 독립문예지 성격을 함께 갖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 작가는 “새롭고 젊은 잡지를 지향하는 것이 목표”라며 “독자와 작가 사이의 허들을 낮춰 누구나 읽고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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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핑크, 이번엔 빌보드 ‘아티스트100’ 1위에

    그룹 블랙핑크가 팝스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빌보드 아티스트100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이 차트 2위는 방탄소년단(BTS)이었다. 한국 가수로는 방탄소년단과 슈퍼엠에 이어 세 번째다. 빌보드는 13일(현지 시간) 블랙핑크가 정규 1집 앨범 ‘디 앨범(The Album)’ 발매에 힘입어 아티스트100 차트 65위에서 1위로 급상승했다고 밝혔다. 2014년 생긴 이 차트는 앨범 및 싱글 차트 성적과 소셜미디어 활동 등을 종합해 순위를 매긴다. 걸그룹이 1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빌보드는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이 1, 2위를 독식하자 “케이팝 그룹이 최상위권을 독차지했다”고 전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달 29일 이 차트 1위에 올라 10번째 정상을 차지했다. 블랙핑크는 13일 빌보드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는 이번 앨범 타이틀곡 ‘Lovesick Girls’(59위)와 설리나 고메즈가 협업한 ‘아이스크림’(64위) 2곡을 진입시켰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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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래 “일본 유학 다녀오면 친일파” 논란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등을 쓴 소설가 조정래 씨(77·사진)가 “(국내) 150만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이들은 친일파”라고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조 씨는 1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친일파를 처단하지 않고서는 질서가 서지 않고 나라의 미래가 없다”며 “‘반민특위’는 민족정기를 위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반드시 부활시켜야 한다. 그래서 150만 정도 되는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소위 ‘토착왜구’라고 불리는 이들, 일본 유학을 몇 번씩 갔다 온 이들은 다 반역자이고 친일파”라며 “일본의 죄악에 대해 편드는 그자들을 징벌하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나도 적극 나서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이들은 법으로 다스려야 하고 그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아리랑’을 쓴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 씨의 이 같은 발언은 그의 대표작 ‘아리랑’ 속 묘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일각의 지적을 반박하며 나왔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이승만학당 이사장)는 저서 ‘반일종족주의’에서 ‘아리랑’에 등장하는 일본 경찰의 조선인 학살 장면이 왜곡과 조작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조 씨는 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신종 매국노이고 민족 반역자”라며 “다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태백산맥을 쓰고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고발당한 뒤 11년 조사받고 무혐의가 됐다. 그런 경험 때문에 아리랑은 더욱 철저히 역사적 자료에 기반해 썼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이날 “건강이 지금 같기만 하다면 5년 뒤까지 두 권의 장편을 더 내고 그 이후엔 단편이나 명상적 수필을 쓰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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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에 美시인 루이즈 글릭… 개인 존재를 시적 목소리로 승화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77)이 202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 “꾸밈없는 아름다움으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화하는, 분명한 시적 목소리를 내온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 117명 가운데 여성 작가로는 16번째 수상자이며 시인으로는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루이즈 글릭은 19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1968년 ‘퍼스트본(Firstborn)’으로 데뷔했으며 이와 동시에 “미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 명”으로 호평받았다. 한림원은 “보편성을 추구하면서도 대부분의 작품에서 신화와 고전적 모티브로부터 영감을 얻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시인이자 수필가로서 12권의 시집과 다수의 수필집을 출판했다.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강렬한 감정을 드러낸 작품뿐 아니라 신화, 역사, 자연을 바탕으로 현대적 삶을 관조하는 작품들을 써왔다. 가장 높이 평가되는 대표작 중 하나는 퓰리처상을 받은 시집 ‘야생 붓꽃’(The Wild Iris·1992년)이다. 수록작 ‘눈풀꽃’에서는 겨울이 지나면 돌아오는 삶의 신비로운 순환을 그려냈다. 시인 류시화는 해외 시인들의 작품을 모은 시집 ‘시로 납치하다’(2018년)에서 글릭의 시 ‘애도’를 소개하며 시적 기교와 감수성이 풍부하고 고독과 죽음,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이 뛰어난 시인이라고 해설했다. 50대 초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생사를 오갔던 글릭은 그때의 경험을 담아 이 시를 썼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것만큼 운 좋은 일이 없고, 그 운 좋은 순간들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애도를 받아 마땅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시집 ‘아베르노’(Averno·2006년)는 죽음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돼 페르세포네가 지옥으로 내려간 신화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뉴욕타임스는 “시작(詩作)의 힘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평했다. 최근 내놓은 ‘성실하고 덕망 있는 밤’(Faithful and Virtuous Night·2014년)도 “눈부신 성취”라는 호평을 받았다. 시인의 작품 세계는 또한 ‘선명성’ ‘명쾌함을 위한 노력’으로 특징지어진다. 유년기와 가족생활, 부모, 형제자매와의 친밀한 관계는 작품세계의 중요한 주제로 꼽힌다. 현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거주 중이며 예일대 영문학과 초빙교수이자 로젠크란츠 상주작가로 있다. 전미도서상, 전국도서평론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자국의 대표 시인임을 뜻하는 미국 계관시인에 2003∼2004년 선정됐다. 올해 노벨 문학상 측은 정치적 이념적으로 논란이 없는 비교적 ‘안전한 작가’를 선택할 것으로 점쳐졌다. 2017년 ‘미투’ 논란에 수상자 사전 유출 스캔들이 이어졌고 지난해 수상자 중 페터 한트케가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인종청소를 자행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게 동조한 사실이 드러나 거센 비난을 받았기 때문. 글릭의 수상은 해외 언론이나 비평가, 베팅 사이트 나이서오즈 등의 유망 수상 작가 목록에는 없던 깜짝 수상이다. 국내에는 아직 번역돼 소개된 시집이 없다. 수상자는 1000만 크로나(약 13억 원)의 상금을 받는다. 매년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시상식은 올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열리지 않는다. 그 대신 수상자들이 자국에서 상을 받는 장면이 중계될 예정이다.○ 루이즈 글릭 연표…―1943년 미국 뉴욕 출생―1963년 미국 컬럼비아대 입학 후 1965년 중퇴―1968년 첫 시집 ‘Firstborn’ 발표―1985년 ‘The Triumph of Achilles’ 미국 비평가협회상 수상―1990년 ‘Ararat’ 발표. 뉴욕타임스, “최근 25년 미국 시 역사상 가장 혹독하고 슬픈 작품”―1993년 ‘The Wild Iris’ 퓰리처상 수상―2003-2004년 미국 계관시인―2004년 9·11테러에 관한 시 ‘October’ 발표―2008년 월러스스티븐스상 수상―2014년 ‘Faithful and Virtuous Night’ 전미 도서상 수상―2015년 내셔널휴머니티상 수상―2020년 노벨 문학상 수상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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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유럽 출신, 여성, 체제 비판 작가… 노벨 문학상, 올해는 누구에게 미소 지을까

    비유럽, 여성, 체제 비판적 작가. 올해 노벨 문학상은 연이어 흠집이 난 명성을 만회하기 위해 이 세 조합의 안전한 선택을 할까. 해마다 이맘때면 주목받는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8일 오후 8시(한국 시간) 발표를 앞두고 수상자 관측 열기가 뜨겁다. 해외 언론들은 올해 노벨 문학상이 정치적 이념적으로 논란이 없는 ‘안전한 작가’를 수상자로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노벨 문학상이 계속 구설에 올랐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심사위원 배우자가 ‘미투’ 논란에 휩싸여 수상자 선정 자체가 취소됐다. 지난해에는 수상자 페터 한트케가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인종청소를 자행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게 동조한 사실이 드러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현지 언론의 보도를 바탕으로 “올해는 그간의 스캔들을 만회하고 상의 명성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비유럽 출신, 여성 작가, 특히 정치적 이념적 외형적 모든 측면에서 지난해 논란이 됐던 한트케와는 ‘정반대의 작가’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표적으로 미국 작가인 자메이카 킨케이드(71)가 거론된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앤티가바부다 출신인 킨케이드는 보모로 일한 경험을 쓴 자전적 소설 ‘애니존’으로 제국주의와 성역할, 전통에 얽매인 교육체제를 비판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식민주의, 인종차별, 성 평등을 다룬 다수의 작품을 집필했다. 캐나다 시인 앤 카슨(70)의 작품도 면밀히 검토 중이란 관측이 나온다. 파피루스의 파편으로 남은 이야기를 현대 시어로 재창작하는 등 고전에서 영감을 얻은 독창적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후보자나 심사 과정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는 노벨 문학상은 전문가들의 예상 못지않게 도박사이트에서의 베팅 확률이 수상자 예측 지표로 활용되기도 한다. 영국의 베팅업체인 나이서오즈나 래드브룩스에서 올해 가장 유망한 수상자로 물망에 오르는 이는 프랑스 작가 마리즈 콩데(83)다. 대표작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에서 17세기 미국의 마녀 재판으로 희생된 흑인 여성의 삶을 그렸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가는 아프리카인의 아픔을 담아낸 작품들로 2018년 대안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뉴 아카데미 문학상’을 받았다. 국내 유일한 국제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77), 미국의 메릴린 로빈슨(77), 케냐의 응구기 와 시옹오(83) 등 세 명이 나이서오즈 배당률 10위 안에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끈다. 울리츠카야는 1992년 중편 ‘소네치카’를 발표하면서 러시아 문단과 세계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표작 ‘쿠코츠키의 경우’도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는다.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탈식민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인 응구기 와 시옹오 역시 올해도 주요 후보에 올랐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71), 지난해 부커상을 수상한 ‘시녀 이야기’의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81), 중국의 반체제 소설가 옌롄커(62)도 매년 호명되는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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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발-이주 갈등…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죠”

    등단 8년 차 소설가 김혜진(37)은 사회적 약자나 주류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 특히 노동과 주거 문제를 중심에 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그가 최근 단편집 ‘너라는 생활’과 첫 장편소설 ‘중앙역’ 개정판을 함께 냈다. 올 상반기 재개발의 어두운 이면을 파고든 장편 ‘불과 나의 자서전’ 이후 연이은 출간.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어쩌다 보니 올해 유독 부지런한 것처럼 보인다”며 웃어보였다. 작가는 현실에 밀착하면서도 서사의 묘미와 긴장감을 잃지 않고 개발에 뒤얽힌 사회의 복잡한 단면을 형상화한다. 단편 ‘3구역 1구역’은 재개발이 완료된 지역과 막 추진되며 이주 문제로 갈등이 생기는 곳에 각각 사는 두 사람이 길고양이를 매개로 마주치며 발생한 미묘한 충돌을 다뤘다. 작가가 ‘급하고 싸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던 서울 공덕1구역에 거주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는 “개발 이슈는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서울에 살면 늘 느끼게 된다”며 “개발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개발의 당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이해관계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를 이해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의식주에서 ‘주(住)’가 왜 마지막인지를 갈수록 체감해요. 주는 단순히 공간의 차원이 아니라 정신 마음 상상력에까지 영향을 주거든요. 하지만 우리의 주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요. 진입도 어렵고 보장도, 대안도 없어요. 그로 인해 벌어지는 급격한 변화에 관심이 많아요. 거창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저 가장 가까이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거죠.” 지속적으로 선택하는 현재형 시제도 ‘지금 이곳’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효과가 뚜렷하다. 그는 “현재형 시제가 인물이 시간에 고여 머물고 있는 느낌을 줘서 의도적으로 쓴다”고 말했다. 2인칭 시점을 고집한 이유도 비슷하다. 그는 1인칭의 ‘내 이야기’도 아니고 3인칭의 ‘먼 이야기’도 아닌 너와 나, ‘바로 우리’의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단편 ‘자정 무렵’ 등에서처럼 퀴어 커플의 일상을 다룬 2인칭 서술은 이들의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한다. 그는 “단편집이라고 해서 청탁 오는 대로 써서 묶는 게 아니라 분명한 방향을 정하고 싶었다”며 “이번에는 ‘나’와 가장 밀접한 ‘너’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책을 묶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앙역’은 부랑하는 노숙인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로 작가가 계속해서 다루는 주거 문제의 시작점이 된 작품. 집과 부동산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 시대다. 그는 “아무래도 다음 작품에서는 주거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게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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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벌인 듯 여러 옷 겹친 듯 복고풍인 듯 파격인 듯

    패치워크 패턴의 계절이 돌아왔다. 조각난 직물을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이어붙인 패치워크 스타일은 찬바람이 부는 가을에 특히 스타일링 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한 벌의 옷으로 여러 옷을 겹쳐서 입은 것처럼 풍성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버버리, 루이비통, 마르니 등 대부분의 대형 패션 브랜드들은 코트나 재킷, 원피스뿐 아니라 구두, 가방 등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패치워크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패치워크는 1960년대 유행했던 전형적인 복고 패션이지만 소재와 패턴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전원적인 분위기부터 파격적이고 세련된 스타일까지 원하는 대로 개성 있게 연출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색상과 패턴, 소재의 천 조각을 이어붙이는 의류 제작 기법이기 때문에 빈티지한 느낌은 기본적으로 장착된다. 데님 패치워크는 펑키하고, 조각조각 낸 직물을 큼지막한 블록으로 이어붙인 니트나 카디건은 보헤미안 감성이 물씬 풍긴다. 마르니의 니트 카디건처럼 이어붙이는 직물 형태를 길쭉하게 늘이거나 불규칙하게 변형시키면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버버리의 런웨이 컬렉션에서 보듯이 클래식한 체크무늬도 패치워크 패턴을 이용하면 뻔한 느낌에서 벗어나 생동감과 재미를 더할 수 있다. 패치워크 된 옷에 또 다른 패치워크 의상을 걸치는 것도 옷 입는 재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스카프, 구두, 가방 같은 액세서리를 패치워크로 선택해 포인트를 줄 수도 있다. 더조리포트 등 해외 패션매체들은 “올해는 스타일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도 패치워크 패턴이 주목받고 있다”고 진단한다. 친환경적 의류 생산을 고민하는 패션업체들이 오래된 직물 조각을 한데 모아 짜는 패치워크 패턴이야말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마르니가 재활용 원단의 패치워크 스타일을 런웨이에서 다양하게 선보였다. 빈티지 퀼트 직물을 재활용해서 다양한 패치워크 의류를 선보이는 보데(bode) 같은 신진 브랜드도 주목받고 있다. 보데는 미국에서 구한 빈티지 직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 구한 리넨이나 울을 재활용해 직물의 역사와 스타일을 함께 살린다. 파타고니아 역시 재활용 센터에서 수거하거나 제작 중에 남은 옷감을 활용해서 패치워크 스타일의 데님 반바지, 티셔츠와 스웨터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스타일을 살리면서 환경보호까지 할 수 있는 ‘일석이조 패션’인 셈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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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종기 등단 60년… “시 쓰기는 끝을 알수없는 경주”

    그리운데 슬픔이 끝이 아니다. 어스름하나 따스하고, 쓸쓸하지만 더없이 깊어진 위안. 마종기 시인(81)이 5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 ‘천사의 탄식’(문학과지성사·사진)에는 시인으로, 의사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살아온 그의 한층 깊고 겸허해진 언어들이 펼쳐진다. 20대 중반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떠나 의사 생활을 시작한 뒤 일평생 고국을 떠난 그리움을 아름다운 시어로 매만져온 그의 시력(詩歷)은 올해로 60년이다. 최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시인은 “아직 사람들이 감동할 수 있는 좋은 시를 내놓지도 못했는데 벌써 등단 60년이라니 부끄러움이 첫 감회”라며 “이 마라톤의 끝은 어딜까, 이제는 피곤해지는구나 싶기도 한데 시 쓰기는 결승점 테이프나 꽃다발, 팡파르가 없는,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경주인 것을 알기 시작했다”고 했다. 치열한 의료 현장의 고단함과 늘 곁에서 순환하는 탄생과 죽음의 굴레는 직분, 소명에 대한 고민과 절절한 향수를 노래하는 시 속에 고스란히 재현된다. ‘사흘 만에 돌아오는 당직 때는 밤새도록/기억에도 없는 주검을 청진기로 확인하고/사망진단서를 써주고 부검을 보면서 … 밤새우고 병원을 나오는 여명의 공간을/왜 캄캄한 지하실로 내려간다고 느꼈던지’(‘노을의 주소’) 그는 “언어, 실력도 부족했고 외국서 수련의가 된 지 4개월 만에 부친이 고국에서 돌아가셔서 견디기 어려웠다”며 “일단 살기 위해 밤새워 시를 썼는데 돌아 보니 문학이 가진 휴머니티는 좋은 의사의 조건이었고 의사란 생업은 시의 좋은 질료가 돼줬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로 고국에 별로 기여한 것 없이 미국에서 생업을 이어왔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 의료진이 펼친 살신의 봉사는 나 같은 열외자에게 눈물을 쏟게 했다”고도 했다. “아마도 나이가 조금 작용했을 것”이란 설명대로 이번 시집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먼저 떠난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시편이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깊은 그리움은 자연히 믿음의 세계 안에서의 재회를 소원하는 그의 신앙과 만난다. 그는 “미약한 생명체의 민낯, 새 생명의 기쁨 등 수십 년 의사로 살면서 경험에서 추출해낸 가장 중대한 보람이 신앙이었으나, 신앙을 직접 시에 넣는 건 금기시했다”고 했다. 그래서 성공한 예가 드물다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모험’을 했다. 특히 표제작인 ‘천사의 탄식’에 그 삶과 문학의 바탕이 돼 준 신앙이 잘 드러난다. ‘우리는 결국 다 함께 일어난다는, 다정하게 들리는 저 천사의 탄식! … 이제는 생애의 성사를 받을 시간, 수많은 죄와 회한을 기쁨으로 바꾸어주는 당신께 다가간다’ ‘아버지도 가을에 돌아가셨고/어머니도 그 뒤의 가을이었지 … 괜찮다면 나도 가을이고 싶다’(‘즐거운 송가’)며 삶과의 이별을 담담히 준비하는 시편들에서도 회복과 영원에 대한 염원이 읽힌다. 그는 “여행도 힘들고 친구도 만나기 힘든 이 난세에 기대고 위로받을 곳은 예술과 신앙, 두 가지가 아닐까”라며 “둘 다든, 둘 중 하나에든 기대어 위로와 기쁨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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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저자의 전작 두 권이 나란히 번역 출간됐다. 폴란드 출신인 이 작가는 생태계, 자연, 별자리 등 인간의 이성, 경험적 준칙 내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주의적 영역을 언어를 통해 자유롭게 탐험한다. 스릴러 소설 형태를 띠고 있는 ‘죽은 이들의…’(2009년)와 짧은 단편, 수많은 에피소드가 연결된 ‘낮의 집, 밤의 집’(1999년)은 소설의 양식이나 결은 사뭇 다르지만 독특한 세계관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죽은 이들의…’는 교사로 일하다 은퇴 후 폴란드의 외딴 고원에서 별장 관리원으로 일하는 할머니 두셰이코가 이웃 왕발의 죽음을 목격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처음에 사람들은 왕발이 단순히 목에 짐승 뼈가 걸려 질식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그날 이후 미스터리한 죽음이 계속된다. 시신의 주변에는 어김없이 사슴 발자국이 찍혀 있고, 점성학 애호가인 두셰이코는 불길한 무엇인가를 예감한다. 마을 사람들은 ‘사냥 달력’을 발행해 특정한 시기에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인간과 동물이 모두 동등한 존재이며 점성학이 지배하는 세계를 믿는 두셰이코는 동물 사냥을 옹호하는 경찰과 가톨릭교회, 모피를 불법 거래하는 농장 등이 동물의 응징을 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의 말처럼 정말 동물들이 인간을 향한 복수와 반격을 시작한 것일까. 작품 후반부에 나오는 뜻밖의 결말에는 세상이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단일체이며 인간이 그 일부일 뿐이라고 여기는 작가의 문학관이 집약돼 있다. ‘낮의 집, 밤의 집’의 배경은 작은 마을 숲속의 어느 집이다. 낮 동안 이 집은 이웃을 만나고 손님을 초대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보통 집과 같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 면모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하실, 넓은 방, 다락이 숨을 쉬면서 또 다른 신비로운 존재들이 되살아난다. 낮과 밤을 기점으로 사실과 전설, 실재와 꿈이 수없이 뒤엉킨 이 소설은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어느 누구도 그가 단지 삶을 꿈꾸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로 살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음을 드러내 보인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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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성장의 시대… 그냥 그렇게 살아온 ‘순자’의 삶은

    소설가 황정은(44·사진)의 신작 장편 ‘연년세세’(창비)는 ‘1946년생 순자 씨’ 이순일과 그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연작소설이다. 어릴 적 고모네서 식모살이하며 ‘순자’로 불렸던 이순일과 고등학교 졸업 후 가족 생계를 떠맡은 그의 맏딸 한영진 등 이 가족의 모습에는 한국 사회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압축돼 있다. 작가는 건조하고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특유의 문체로 이들의 일상을 복원해 낸다. 최근 e메일 인터뷰에서 작가는 “사는 동안 순자라는 이름의 어른을 자주 만났는데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들이 궁금했다”며 “그 이름을 지은 어른은 아이가 순하게 살기를 바랐겠다 싶었고, 한 시대에 사람이 ‘순하게 산다’는 건 어떤 일일까를 계속 생각하다 소설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자연히 소설의 중심축에는 ‘시대의 바람’대로 희생하며 살아야 했던 순자가 있다. 식모살이에 지쳐 도망친 병원에서 간호조무 일을 배워 보지만 곧 고모부 손에 잡혀 되돌아온다. 고생 끝에 결혼하고 호적을 떼보고서야 본명을 알게 된다. 작가는 “내게도 순자로 살아본 부분이 있고 누구나 그럴 거라 생각한다”며 “순자를 알려면 일단 그를 만나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순자는 자식들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끔찍한 일 겪지 않고 행복하기를, 무엇보다 ‘잘 살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잘 살기란 대체 무엇일까. 작가는 “지금까지 잘 사는 법은 대개 ‘남들 하는 대로’이거나 ‘남들보다 더’인 경우가 많았다. 그게 정말 잘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각자의 잘 살기를 도모하는 사회가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에서 꿈, 이름, 삶을 빼앗긴 무명의 ‘순자들’을 조명하면서도 과거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오늘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인물은 한영진이었다. 맞벌이하며 악착같이 가족을 꾸리는 그에게는 이해, 여유, 관조가 없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 세월이 되고, 역사가 되고, 사회가 됨을 기억하게 한다. 제목 ‘연년세세’ 역시 ‘대대손손’이란 말을 반복해 생각하다 떠올렸다. 그는 “대대손손은 수직적 힘을 가진 말인 데 비해 연년세세는 수평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갈 수 있는 말”이라며 “연년세세의 미래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이어갈지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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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소설, 올해 제일 많이 읽었다

    침체됐던 한국문학 시장에 부흥기가 찾아오는 것일까. 22일 교보문고는 올 1월 1일∼9월 20일 한국소설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1% 증가해 역대 최대 신장률을 올렸다고 밝혔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국소설 판매 최대였던 2012년보다도 신장률이 4.3%포인트 높다. 한국소설 신장률은 2017년 ―1.1%, 2018년 ―1.3%, 지난해 ―1.6% 등 3년간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올 들어 SF(과학소설)와 청소년 소설이 약진하고 신진 작가가 다수 발굴되며 급반전됐다. 지난해에 비해 SF는 약 5.5배, 청소년 소설은 약 2배, 드라마와 영화 원작소설도 약 9배로 늘었다. 판타지(40.5%), 로맨스(26.8%), 일반 소설(10.8%)도 신장세를 보였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가 가장 많이 팔렸고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동명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도우 작가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뒤를 이었다. 한강 ‘소년이 온다’(4위), 정세랑 ‘시선으로부터’(5위),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6위), 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10위)같이 순수문학 작가 작품도 호응을 얻었다. 한국소설 시장은 여전히 여성 독자가 주도했다. 여성 구매 비율은 지난해 64.7%에서 69.9%로 늘었다. 교보문고 김현정 베스트셀러 담당은 “2012년에는 ‘스크린셀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드라마나 영화 원작소설 위주였다면 올해는 다양한 부문이 인기”라며 “신진 작가들이 청소년, SF 분야에 도전해 호응을 받는다는 점에서 한국소설의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소설 분야의 한국소설 비중은 2015년 26.7%였지만 올해는 37.4%로 2012년과 비슷한 수준을 이뤘다. 영미소설 24.0%, 일본소설 16.4%, 기타 국가 22.2%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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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가을 패셔니스타는 ‘페트병’을 입는다

    올가을 패션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지속가능한 소재에 대한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거세진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바람이 패션계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품 교체 주기가 빠른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는 물론 명품이나 아웃도어 의류도 재활용 소재를 적극 활용한 친환경 패션을 추구하고 있다. 옷감에 쓰는 재생 소재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것은 버려진 페트병이다. 해양 생태계 오염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재활용 효과가 높은 데다 옷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라 친환경 패션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데도 용이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주로 수거한 페트병을 갈아서 녹인 뒤 원사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제주에서 수거한 투명 페트병으로 니트백 등을 제작하는 플리츠마마 서강희 실장은 “원유를 정제한 것과 촉감, 기능이 동일하게 만들지만 가격은 리사이클 제품이 30∼50% 비싸다. 가격이 저렴하진 않지만 소비자들이 브랜드 가치와 지향점에 공감해 주기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털 같은 촉감으로 가을겨울 의류에 단골로 쓰이는 ‘뽀글이’ 플리스 소재 역시 이렇게 뽑아낸 재활용 원사로 제작한다. 페트병 다음으로 옷감에 많이 쓰이는 재생 소재는 나일론으로 만드는 폐어망, 폐건축 자재다. 패션업체들은 이런 소재를 활용했다는 것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H&M은 최근 재활용 소재로 구성된 새로운 가을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디자인뿐 아니라 소재 역시 시간을 뛰어넘어 지속가능함”을 강조했다. 1930년대 레이스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 퍼프 소매, 러플 등 빈티지한 디테일을 가진 이번 컬렉션은 플라스틱 폐기물, 폐직물에서 뽑아낸 폴리에스터, 리사이클 나일론, 리사이클 울로 제작됐다. 명품 업체들이 올해 가을겨울 내놓은 신제품도 다양한 재활 소재에 방점이 찍혔다. 보테가 베네타가 코르크 소재로 만든 숄더 파우치를 선보였고, 프라다는 플라스틱 병에서 뽑아낸 원사로 만든 남성용 코트를 내놨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재고와 남는 원단을 이어붙인 의상을 선보였다. 친환경적 이미지와 밀접할 수밖에 없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노스페이스도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유기농 순면을 활용한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패션업체들이 재활용된 소재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원산지, 제조 과정을 가급적 소상히 소개하는 이유는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동참을 끌어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H&M은 원단의 생산지, 생산 시기, 제작 과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노스페이스는 충전재, 안감 등에서 몇 퍼센트가 리사이클링 재료로 제작됐는지를 라벨에 구체적으로 밝힌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옷을 사며 환경 보호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참여했는지 인식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구매 만족도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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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에 버려진 페트병 녹여 가방을…올 가을 트렌드는 ‘제로 웨이스트’

    올해 가을 패션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지속가능한 소재에 대한 어느 때 보다 뜨거운 관심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거세진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바람이 패션계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품 교체 주기가 빠른 SPA 브랜드는 물론 명품이나 아웃도어 의류도 재활용 소재를 적극 활용한 친환경 패션을 추구하고 있다. 옷감에 쓰는 재생 소재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것은 버려진 페트병이다. 해양 생태계 오염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재활용 효과가 높은데다 옷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라 친환경 패션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데도 용이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주로 수거한 페트병을 갈아서 녹인 뒤 원사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제주에서 수거한 투명 페트병으로 니트백 등을 제작하는 플리츠마마의 문재훈 이사는 “원유를 정제한 것과 촉감, 기능이 동일하게 만들지만 가격은 리사이클 제품이 30~50% 비싸다. 가격이 저렴하진 않지만 소비자들이 브랜드 가치와 지향점에 공감해 주기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털 같은 촉감으로 가을겨울 의류에 단골로 쓰이는 ‘뽀글이’ 플리스 소재 역시 이렇게 뽑아낸 재활용 원사로 제작한다. 페트병 다음으로 옷감에 많이 쓰이는 재생소재는 나일론으로 만드는 폐어망, 폐건축 자재다. 패션업체들은 이런 소재를 활용했다는 것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H&M은 최근 재활용 소재로 구성된 새로운 가을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디자인 뿐 아니라 소재 역시 시간을 뛰어넘어 지속가능함”을 강조했다. 1930년대 레이스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 퍼프 소매, 러플 등 빈티지한 디테일을 가진 이번 컬렉션은 플라스틱 폐기물, 폐직물에서 뽑아낸 폴리에스터, 리사이클 나일론, 리사이클 울로 제작됐다. 명품 업체들이 올해 가을겨울 내놓은 신제품도 다양한 재활 소재에 방점이 찍혔다. 보테가 베네타가 코르코 소재로 만든 숄더 파우치를 선보였고, 프라다는 플라스틱 병에서 뽑아낸 원사로 만든 남성용 코트를 내놨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재고와 남는 원단을 이어붙인 의상을 선보였다. 친환경적 이미지와 밀접할 수밖에 없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노스페이스도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유기농 순면을 활용한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패션업체들이 재활용된 소재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원산지, 제조 과정을 가급적 소상히 소개하는 이유는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동참을 끌어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H&M은 원단의 생산지, 생산시기, 제작과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노스페이스는 충전재, 안감 등에서 몇 퍼센트가 리사이클링 재료로 제작됐는지를 라벨에 구체적으로 밝힌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옷을 사며 환경보호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참여했는지 인식하는 것은 소비자자들의 구매 만족도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박선희기자 teller@donga.com}

    •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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