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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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2부 유통중기팀 데스크입니다.

teller@donga.com

취재분야

2024-03-20~2024-04-19
칼럼27%
경제일반23%
기업20%
산업17%
문화 일반10%
유통3%
  • [책의 향기]자본주의도 윤리적일 수 있다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되는 선택은 어떤 것일까.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어” “주식을 팔지 않았어야 했는데” 같은 경제적 실수일까. 사회과학적 연구 결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들은 그런 실수를 자주 저지르지만, 정작 가슴에 응어리지는 후회는 욕망을 채우지 못한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의무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는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는 동기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처럼 이익의 극대화라는 욕망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고 본다. ‘경제적 인간’을 완전히 이기적이고 무한한 탐욕을 가진 존재로 상정한 벤담과 밀도 틀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사이코패스 인간형’이 공리주의적 경제이론의 초석이 돼버렸다. 저자는 ‘인간은 의리 공정 배려 존엄 등으로 구축된 호혜적(윤리적) 의무를 가진 존재’라는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화이트의 최신 연구 등을 바탕으로 경제적(합리적) 인간의 정의를 새로 내린다. 인간은 욕망보다 상호존중을 통해 효용을 얻는 존재라는 것. 이 때문에 ‘호혜적 의무’를 회복한다면 ‘윤리적 자본주의’는 결코 모순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가 드러내는 빈곤과 경제 양극화, 공동체 붕괴와 분열 등을 보면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의심을 품게 한다. 이 같은 문제의 배후에는 국가주의나 대안으로 다시 떠오르는 마르크스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와 사회 불안을 악용하는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등이 도사리고 있다. 한때 대안으로 여겨진 사회민주주의도 공리주의 정책을 기계적으로 행사하는 불도저식 개발로 공동체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본다. 이를 뛰어넘으려면 가족 단위부터 기업,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호혜성의 원리에 바탕을 둔 윤리적 자본주의를 구축해야 한다고 책은 주장한다. 시민 스스로 ‘공유 정체성’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망가진 지방도시 재생을 위한 대도시 과세의 이론적 근거, 학력에 따라 고착화된 계급구조를 완화할 육아보조 실업급여 같은 정책방안 등도 논의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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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르문학이 하위문화? 편견 깰 수 있어 다행”

    올해 일본서점대상 수상작 ‘유랑의 달’(은행나무·사진)을 쓴 소설가 나기라 유는 2007년 데뷔 이후부터 장르소설, 특히 남성 간 연애물인 BL(Boys Love)소설을 꾸준히 선보여 온 작가였다. 인터넷 하위문화로 간주되는 웹소설의 특정 장르에서 활동하다 주류 문단의 주목을 받는 건 일본에서도 이례적이다. 서점 직원들이 선정하는 일본서점대상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품이 주로 선정되기에 그의 수상은 큰 화제가 됐다. 장르문학을 주로 써온 작가의 작품답게 이 작품은 윤리와 통념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두 인물의 관계를 속도감과 흡인력 있게 풀어간다. 일본에서는 출간 1년 만에 37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기라 씨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써온 BL 장르에서는 주인공은 남성, 테마는 연애, 결말은 해피엔딩이란 장르 특유의 규칙이 있었다”며 “그런 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 작품은 아주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제41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신인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장르물을 벗어난 본격적 문예소설로 활동 반경을 넓힌 셈이다. 하지만 그는 “소설을 쓸 때의 자세는 변함이 없다”며 “차이가 있다면 내가 아니라 장르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좋은 작품을 쓴다면 지금까지의 커리어와는 관계없이 대체로 올바르게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올해 서점대상을 수상하지 못했겠죠.” 소설은 어린 시절 방임과 학대 사이에서 의지할 곳 없던 어린 소녀 사라사와 그를 보호해준 청년 후미의 특별한 연대를 주된 스토리로 한다. 인물들이 각자 지닌 깊은 상처와 내면의 동기가 얽혀 이야기가 풍부하다. 작가는 “나 자신이 그래서인지, 나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노력해도 해소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안고 있는 분들이 공감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소재 발굴을 위해 “가능한 한 시대감각에 민감해지려고 노력한다. 외면보다 내면을 주시하려 한다”고 말했다.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결핍과 상처 속에서 분투하는 10대, 20대다. 올해 일본서점대상 번역소설상을 받은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도 상처를 가진, 어른이 되지 못할 것 같은 아이가 주인공이다. 이런 이야기가 일본에서 널리 읽히는 이유는 뭘까. 작가의 답은 이랬다. “다들 이유를 모른 채 왠지 숨 막혀 하면서, 어쩐지 어른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정체 없는 압력’에 짓눌리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불안한 여정을 비춰주는 무언가를 이야기에서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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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등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확실시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한국 불교의 전통 행사 연등회(燃燈會)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1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는 한국 정부가 대표 목록 등재를 신청한 연등회를 심사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다. 평가기구는 “대한민국의 연등회 등재신청서는 특정 무형유산의 대표 목록 등재가 무형유산 전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제고할 수 있는지 보여줄 만큼 잘 준비됐다”고 평가했다. 연등회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는 다음 달 14∼19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제15차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평가기구는 심사 결과를 등재, 정보 보완, 등재 불가로 구분해 무형유산위원회에 권고하는데 등재 권고 판정이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평가기구는 세계 각국의 대표 목록 등재신청 42건을 심사해 등재 25건, 정보 보완 16권, 등재 불가 1건을 권고했다. 연등회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 한국에서는 21번째다.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 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처용무, 가곡, 대목장, 매사냥, 택견, 줄타기, 한산 모시짜기, 아리랑, 김장문화, 농악, 줄다리기, 제주 해녀문화, 씨름 등이다. 연등회는 4월 초파일(음력 4월 8일)에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거행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신라 경문왕 6년(866년)과 진성여왕 4년(890년)에 ‘황룡사에 가서 연등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전통이 깊다.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비춰 차별 없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연등회는 종교행사로 시작됐지만 대중적인 봄철 축제로 발전해 왔다. 2012년 국가지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됐고 이후 연등회보존위원회가 전통 등(燈) 제작 강습회와 국제학술대회 등을 열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전국 각지의 사찰 및 주요 대도시 거리와 광장에는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연등이 걸리고 코끼리, 석탑 등 불교와 관련된 각양각색의 연등행렬이 거리를 지난다. 한편 북한의 ‘조선옷차림풍습(한복)’은 등재 불가 권고를 받았다. 북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아리랑, 김치 담그기, 씨름 등 3건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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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최대 출판사에 한국 웹툰 수출

    한국 웹툰이 굴지의 일본 만화 전문 출판사에 수출된다. 서울미디어코믹스와 투유드림은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 ‘온: 한류축제’ 한일 공동사업 온라인 브리핑에서 웹툰 ‘어비스’ ‘이율 같지 않은 이유’ ‘귀혼식’과 ‘짐승 같은 스캔들’이 일본 슈에이샤(集英社)의 온라인 만화 플랫폼 ‘망가미’에 이달부터 연재된다고 밝혔다. 슈에이샤는 전 세계에서 수억 부가 팔리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만화 ‘드래곤볼’ ‘원피스’ ‘나루토’ 등을 펴낸 출판사다. 청소년 만화 주간지 ‘소년 점프’로도 유명하다. ‘어비스’는 지난해 방송된 TV 드라마를 각색한 웹툰이다. ‘이율 같지 않은 이유’는 주인공이 재벌 회장의 막내딸 몸에 빙의해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 ‘귀혼식’은 시간을 뛰어넘는 유쾌한 로맨스를 그렸다. 투유드림의 ‘짐승 같은 스캔들’은 당당한 여자 주인공과 바람둥이 남자 주인공의 로맨스를 다룬다. 망가미 이용자 대부분은 10, 20대 여성으로 알려졌다. 슈에이샤의 사이토 고타 편집장은 이날 “웹툰 콘텐츠를 일본에서 확보하기 쉽지 않아 수입을 결정했다”며 “한국 웹툰은 스토리와 드라마가 매우 좋고 일본 만화는 캐릭터가 강하다. 양국 작품의 장점을 살려 비즈니스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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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최초의 공중 해시계, 미국서 돌아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公衆)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사진) 한 점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올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17일 밝혔다. 언제, 어떻게 반출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한 골동품상에서 팔려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환수된 앙부일구는 지름 24.1cm, 높이 11.7cm, 무게 약 4.5kg의 동합금 유물이다. 해시계에 표시된 한양(서울)의 북극고도(위도)에 비춰 18,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는 유사한 크기와 재질의 앙부일구 7점이 있다. 이 중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두 점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앙부일구는 조선 최초의 공중시계로 세종 대부터 조선 말까지 제작됐다. 세종 대에 종묘와 혜정교(현 종로1가)에 설치된 앙부일구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현대 시각 체계와 비교해 거의 오차가 없으며 절후(節候·절기) 방위(方位) 일출 및 일몰시간, 방향 등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돌아온 앙부일구는 18일∼12월 2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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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발적 비혼모’된 사유리, 日서 정자 기증받아 득남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씨(41·사진)가 ‘자발적 비혼모’로 아들을 출산했다고 밝히면서 비혼 여성의 출산 권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유리 씨는 16일 저녁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11월 4일 한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며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주로 살아왔던 제가 앞으로는 아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출산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일본에서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한 뒤 아이를 출산했다. 이후 이 인스타그램에 그와 친분이 있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어떤 모습보다 아름답다”고 응원 메시지를 달았다. 또 방송인 송은이 이상민 장영란 등의 축하 댓글도 올라왔다. 그는 이날 KBS 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해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 (아이를 낳겠다고) 결혼하는 게 어려웠다”고 비혼 임신과 출산의 계기를 밝혔다. 이어 “한국에서는 모든 게 불법이었다”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통해 국내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 시술로 임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혼 출산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현재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여성이 임신을 위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법적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7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사유리 씨가 자발적 비혼모가 됐다”며 “(그의) 아이가 자라게 될 대한민국이 더 열린사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국회가 그렇게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한국은 제도 안으로 진입한 여성만 임신, 출산에 대한 합법적 지원이 가능하다”며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해 최선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단순히 갖고 싶다고 해서 아이를 만드는 일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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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등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확실시…내달 최종 결정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한국 불교의 전통 행사 연등회(燃燈會)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1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는 한국 정부가 대표 목록 등재를 신청한 연등회를 심사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다. 평가기구는 “대한민국의 연등회 등재신청서는 특정 무형유산의 대표 목록 등재가 무형유산 전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제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잘 준비됐다”고 평가했다. 연등회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는 다음달 14~19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제15차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평가기구는 심사 결과를 등재, 정보 보완, 등재 불가로 구분해 무형유산위원회에 권고하는데 등재 권고 판정이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평가기구는 세계 각국의 대표 목록 등재신청 42건을 심사해 등재 25건, 정보 보완 16권, 등재 불가 1건을 권고했다. 연등회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 한국에서는 21번째다.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 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처용무, 가곡, 대목장, 매사냥,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 짜기, 아리랑, 김장문화, 농악, 줄다리기, 제주 해녀문화, 씨름 등이다. 연등회는 4월초파일(음력 4월 8일)에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거행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신라 경문왕 6년(866)과 진성여왕 4년(890)에 ‘황룡사에 가서 연등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전통이 깊다.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비춰 차별 없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연등회는 종교행사로 시작됐지만 대중적인 봄철 축제로 발전해왔다. 2012년 국가지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됐고 이후 연등회보존위원회가 전통 등(燈) 제작 강습회와 국제학술대회 등을 열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전국 각지의 사찰 및 주요 대도시 거리와 광장에는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연등이 걸리고 코끼리, 석탑 등 불교와 관련된 각양각색의 연등행렬이 거리를 지난다. 한편 북한의 ‘조선옷차림풍습(한복)’은 등재 불가 권고를 받았다. 북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아리랑, 김치 담그기, 씨름 등 3건이다.박선희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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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브라함은 왜 아들을 제물로 바쳤나

    아브라함이 어렵게 얻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요구에 응답하며 산을 오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삭은 아브라함을 따라가면서 묻는다. “장작과 불은 준비됐는데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그분이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브라함에 대한 창세기의 일화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이면서도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종교적·관념적 통찰을 통해서 생의 이면을 깊게 파고들어온 작가는 신작 연작소설집에서 창세기의 이 난제를 ‘이삭의 목소리’란 문학적 복원을 통해 풀어낸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과 거기에 순종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가려져 있던 아들의 입을 빌려서다. “바치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면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은 더욱 큰 사랑의 표현이에요…바치라고 요구하면서 신은 이미 바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모든 사건이 완료된 뒤 이삭이 회고하는 그 장면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답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아들’(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신은 결국 가장 사랑하는 자이고, 가장 먼저 사랑한 자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서사가 반복과 확장의 기법으로 변주되면서 새로운 문학적 진실을 획득해 가는 과정은 뭉클하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탄생 전후 일어난 다른 창세기 일화를 모티브로 삼은 단편들이 표제작을 중심으로 앞뒤로 놓여 있다. 아브라함의 조카이자 소돔성 멸망 가운데 살아남은 롯, 이삭의 이복형 이스마엘을 낳은 여종 하갈, 이삭의 아들 야곱의 도주와 꿈 등 창세기의 유명한 일화들이 신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나 그 사랑 안에 붙들려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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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리-목월문학상, 소설 백시종-시 권달웅

    2020년 동리·목월문학상 수상자와 수상작으로 소설가 백시종 씨(76)의 ‘누란의 미녀’와 권달웅 시인(76)의 ‘꿈꾸는 물’이 선정됐다. 동리·목월문학상은 경북 경주 출신인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시인 박목월(1916∼1978)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경주시와 한국수력원자력이 후원하고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주관한다. 올해 23회째를 맞은 김동리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백시종 씨는 수상 소감으로 54년 전 김동리 선생에게 “무엇보다 근성이 있어 좋으니 더 열심히 써봐라”는 격려를 받은 일화를 먼저 언급했다. 백 작가는 “그 말에 힘입어 1967년 등단할 수 있었다”며 “소설이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재능도 다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데 반백 년이 걸렸다. (수상 덕분에) 근성을 강조한 선생의 말씀처럼 등수와 관계없이 생명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꼭 완주하고 말리라는 각오가 생긴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 ‘누란의 미녀’는 중국 정부와 대립하며 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 문제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국제적 관점과 시의성에서 유효하고 작품의 무대와 관련한 담화와 자료의 도입이 작가로서의 성실성을 입증한다. 소설 결말의 전언도 감동적”이라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았다. 제13회 박목월문학상 수상자인 권달웅 시인은 대학 4년간 목월의 강의를 직접 들으면서 시를 배운 제자였다. 등단도 목월이 발행하던 ‘심상’에 ‘해바라기 환상’이 당선되며 이뤘고 이후 12권의 시집을 냈다. 그는 “우러르는 선생님의 이름으로 받게 된 문학상이라 더 각별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수상작 ‘꿈꾸는 물’은 물에 관련된 서정적인 이미지와 일상의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감각적 언어를 담아낸 시집이다. 그는 “과분한 수상 소식에 45년 전 문학청년 시절 박목월 선생께 받아 오래도록 간직해 온 편지를 다시 읽어 봤다. ‘문학은 꾸준한 성의와 노력으로 열어 가는 길’이라고 하신 편지의 그 말씀을 아직도 새기며 시를 쓴다”고 말했다. 권 시인은 “우울한 시대, 소외되고 상처받은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를 쓰겠다. 선생의 청명한 시 세계와 정신을 생각하면서 기교나 화려함보다 은은한 서정이 드러나는 달빛 같은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동리문학상 심사위원은 김지연 김종회 이순원, 목월문학상 심사위원은 유안진 신규호 이하석이 맡았다. 상금은 각각 6000만 원. 시상식은 다음 달 10일 오후 6시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열린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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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달 새로워지는 ‘홈술족 상차림’

    직장인 A 씨는 한 달에 한 번 스스로를 위한 ‘작은 사치’를 누린다. 잘 포장돼 도착한 택배를 열면 매달 새로운 와인이 있다. 전문 업체에서 취향에 맞춰 골라주는 제품이다. 퇴근 후 느긋이 와인을 즐기면서 A 씨는 단순히 술이 아니라 낭만을 구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독 서비스 영역이 확장되면서 ‘술 구독’이 인기다. 지난해부터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뛰어들었는데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잦아지면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외부 술자리가 힘들어지자 집에서 나만을 위한 작은 술자리를 갖는 문화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주종은 우리나라 전통주부터 와인, 수제맥주 등 다양하다. 가격대도 다양하고 종류가 많아 특정한 테마나 독자의 취향에 맞춰 추천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종류와 산지가 다양한 만큼 제품마다 스토리가 있고, 일반 소비자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것까지 받을 수 있다. 특히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전통주 분야에서 술 구독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전통주는 다른 주종으로 구독 서비스를 신청하려면 거쳐야 하는 신분 확인 과정이 필요 없다. 그 덕분에 ‘술담화’ ‘술을 읽다’ ‘우리술한잔’ 같은 업체들이 생기고 있다. 이재욱 술담화 대표는 “한 카테고리 안에서 다양한 상품을 경험하는 것이 구독 서비스의 본질인데 2000종 넘게 유통되는 전통주는 이에 적합한 주종”이라며 “이름만 전통주일 뿐 사과로 만든 블렌디 약주, 오미자 와인, 전통 허브 진 등 제품이 다양해 구독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 업체는 올 들어 지난해보다 정기 구독자 수가 8배 이상 늘었다. 전통주 구독 서비스 업체들은 생산 방식과 지역 특색 및 역사 문화 환경 이야기, 잘 어울리는 안주 등을 담은 책자도 함께 제공한다. 미역부각, 황태쥐포 등 우리 농산물로 만든 안주나 요리 레시피도 곁들여진다. 전통주 소믈리에가 ‘매화’ ‘커피’ ‘가족’ 등 테마에 맞춰 정해준 술을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보통 한 달 3만 원대에 2, 3병이 배송된다. ‘퍼플독’처럼 매달 인공지능(AI)이 개인 취향에 맞춰 선별한 와인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도 있고, 배상면주가의 ‘홈술닷컴’은 안주와 함께 막걸리를 보내준다. 누군가에게는 ‘컴플레인(민원)을 걸어야 할 제품’이 누군가에겐 ‘인생 술’이 되는 게 취향의 세계. 같은 술을 배송해도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연말에는 파티 분위기 나는 샴페인 계열이 잘 어울린다. 이 대표는 “오미자나 국내산 포도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이나 막걸리라면 연말 어느 자리에서나 무난하다”고 추천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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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 닦아주는 詩를 쓰고 싶어요”

    《올해 시력(詩曆) 48년이자 칠순을 맞은 정호승 시인이 이를 기념해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펴냈다. ‘국민 애송시’로 사랑받은 ‘수선화에게’를 비롯해 시대의 어둠을 밝힌 ‘서울의 예수’, 인간의 그늘을 들여다본 ‘내가 사랑하는 사람’ 등 대표작 60편을 쓰게 된 계기나 배경에 관한 일화를 해당 시와 함께 엮었다.》 10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교육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 시인은 “시는 시대로 묶고 그 시를 쓰게 된 이야기는 산문집으로 따로 내곤 했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자 ‘시와 산문은 문학이란 이름 아래 하나의 영혼과 몸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요즘 시가 너무 어렵고 독자와 동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시를 쓴 계기를 한 상에 차리면 시를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세기 가까이 써온 시 중에서 시작(詩作) 뒤편에 풀어낼 서사가 있는 작품을 선정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내드릴 때 겪었던 무력감, 잡지사 기자 시절 만난 탄광마을 광원에게 배웠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절친했던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에 대한 그리움 등 일상의 사건과 성찰을 시로 빚어낸 과정이 진솔하게 기록돼 있다. 그는 “외로움이 우리 사회에서 여러 문제를 낳고 있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며 “그걸 이해할 때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도 견뎌내는 힘이 생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시 두 편을 꼽았다. 먼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구절로 각인된 ‘수선화에게’다. 많이 사랑받은 만큼 애착이 특별하다. 40대 후반 “외로워 죽겠다”는 친구의 느닷없는 한탄에 지은 시다. 그는 “많은 독자가 이 시를 자신의 시로 생각하고 사랑한 것은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영롱한 꽃빛이 모든 인간이 가진 외로움의 색채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사셨던 어머니 묘비명을 ‘예수님을 사랑한 어머니’라고 썼는데 만약 나도 묘비명을 갖게 된다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생각해봤다”고 했다. 시인이 스스로 가장 많은 위로를 받는 시는 ‘산산조각’이다. 네팔 룸비니에서 사온 작은 흙 부처상을 책상에 올려둔 뒤 ‘깨지면 어떡하나’ 염려하다 쓰게 된 시다. 시인은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산산조각 나면 어쩌나, 내 인생이 그렇게 부서지면 어쩌나 늘 걱정했는데 시적 상상 속 부처가 ‘산산조각 나면 산산조각을 얻는 것이다’고 알려주시더라”며 “오늘이 아니라 오지 않은 내일과 미래를 걱정하며 계속 살아가던 때 ‘산산조각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면 된다’는 것은 삶의 큰 힘과 위안이 돼줬다”고 말했다. 시인은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적 의미에서 정리할 것은 미리 정리해놓고 싶다”며 “남은 생애, 다른 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시를 최대한 많이 쓰고 싶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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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키 책을 싹쓸이하는 이 여자[덕후의 비밀노트]

    《‘아무튼, 하루키’ 저자이자 번역가 이지수 씨(37)는 “무라카미 하루키 덕후에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고 걱정부터 했다. 그는 “하루키 덕후라 하면 왠지 아침부터 파스타를 먹으며 야나체크 심포니에타를 들어야 할 것만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을 받도록 신사에서 기도(?)하며 밤새운 적도 없고 LP판 같은 일명 ‘하루키 굿즈’를 모으지도 않는단다.》 하지만 그는 사춘기 시절부터 하루키의 명문장과 담백하고 쿨한 감성에 반해 일문과 진학을 결심한 자타 공인 ‘하루키 새싹’이었다. 원서로 하루키를 읽고 싶어 일문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사노 요코,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의 글을 옮기는 번역가로 산다. 서재에 꽂힌 하루키 책만 80여 권. 원서 번역본 개정판을 모두 수집한다. 그의 ‘아무튼, 하루키’는 4쇄까지 찍으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글을 쓰다 막히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속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을 곱씹고 술 먹다 화장실 가선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야, 전부 오줌으로 변해서 나와 버린다는 거지. 원 아웃 1루 더블 플레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야”를 읊조렸다는 그. 염려와 달리 하루키 덕후의 가장 큰 미덕을 갖춘 그에게 이 계절 즐기기 좋은 하루키 책(문장)을 추천받았다. ―‘꼭 읽어야 할 하루키 책’ 세 권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스토리만 보면 불륜을 다룬 ‘막장’ 같지만 멈출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상실의 시대’ 와타나베의 성숙한 남자 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초기작 특유의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백미다. 일본 옴진리교 테러를 다룬 르포르타주 ‘언더그라운드’ ‘약속된 장소에서’도 추천작. 선악의 단순한 도식 대신 사건의 근본 원인이 된 사회 구조를 파헤쳤고 하루키를 좀 더 큰 작가로 성장시켰다. 패션 브랜드와 만년필 광고용으로 잡지에 게재한 짧은 글인 ‘밤의 원숭이’도 ‘이게 뭐지?’ 싶은 경쾌하고 재밌는 글이 가득하다.” ―‘이 책 알면 덕후로 인정한다’는 작품은? "아까 말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살면서 이 책을 아는 사람을 딱 두 명밖에 못 만났다."(이때 공교롭게도 사진기자가 이 책을 소장했다고 ‘덕밍아웃’을 해서 아는 사람이 ‘세 명’으로 늘었다.) ―‘하루키의 이 책 이 구절’ 하는 게 있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먼 북소리’)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진 이 시기, 유럽 체류 시절 하루키 글로 여행 기분을 낼 수 있다.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어린 시절 가진 믿음의 힘을 말하는 이 문장 역시 혼란스러운 요즘 곱씹어볼 만하다.” ―하루키표 힐링을 원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게 있다면…. “롤 캐비지. ‘이윽고 슬픈 외국어’ 225쪽에 나오는 요리인데 양배추에 고기 다진 것과 볶은 양파를 넣고 찐다. 하루키가 바를 운영할 때 항상 대량으로 만들었는데 그때 숙련돼 지금도 양파 썰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한다. 맥주와 곁들이며 찰스 톰프슨과 콜먼 호킨스의 ‘It‘s the Talk of the Town’을 함께 듣는다면 좋겠다. 하루키가 재즈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시절 자주 듣던 매우 근사한 피아노 색소폰 연주곡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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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순 맞은 정호승 시인 “남은 생애, 눈물 닦아주는 詩 쓰고 싶다”

    올해 시력(詩曆) 48년이자 칠순을 맞은 정호승 시인이 이를 기념해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펴냈다. ‘국민 애송시’로 사랑받은 ‘수선화에게’를 비롯해 시대의 어둠을 밝힌 ‘서울의 예수’, 인간의 그늘을 들여다본 ‘내가 사랑하는 사람’ 등 대표작 60편을 쓰게 된 계기나 배경에 관한 일화를 해당 시와 함께 엮었다. 10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교육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 시인은 “시는 시대로 묶고 그 시를 쓰게 된 이야기는 산문집으로 따로 내곤 했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자 ‘시와 산문은 문학이란 이름 아래 하나의 영혼과 몸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요즘 시가 너무 어렵고 독자와 동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시를 쓴 계기를 한 상에 차리면 시를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세기 가까이 써온 시 중에서 시작(詩作) 뒤편에 풀어낼 서사가 있는 작품을 선정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내드릴 때 겪었던 무력감, 잡지사 기자 시절 만난 탄광마을 광원에게 배웠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절친했던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에 대한 그리움 등 일상의 사건과 성찰을 시로 빚어낸 과정이 진솔하게 기록돼 있다. 그는 “외로움이 우리 사회에서 여러 문제를 낳고 있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며 “그걸 이해할 때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도 견뎌내는 힘이 생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시 두 편을 꼽았다. 먼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구절로 각인된 ‘수선화에게’다. 많이 사랑받은 만큼 애착이 특별하다. 40대 후반 “외로워 죽겠다”는 친구의 느닷없는 한탄에 지은 시다. 그는 “많은 독자가 이 시를 자신의 시로 생각하고 사랑한 것은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영롱한 꽃 빛이 모든 인간이 가진 외로움의 색채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사셨던 어머니 묘비명에 ‘예수님을 사랑한 어머니’라고 썼는데 만약 나도 묘비명을 갖게 된다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생각해봤다”고 했다. 시인이 스스로 가장 많은 위로를 받는 시는 ‘산산조각’이다. 네팔 룸비니에서 사온 작은 흙 부처상을 책상에 올려둔 뒤 ‘깨지면 어떡하나’ 염려하다 쓰게 된 시다. 시인은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산산조각 나면 어쩌나, 내 인생이 그렇게 부서지면 어쩌나 늘 걱정했는데 시적 상상 속 부처가 ‘산산조각 나면 산산조각을 얻는 것이다’고 알려주시더라”며 “오늘이 아니라 오지 않은 내일과 미래를 걱정하며 계속 살아가던 때 ‘산산조각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면 된다’는 것은 삶의 큰 힘과 위안이 돼줬다”고 말했다. 시인은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적 의미에서 정리할 것은 미리 정리해놓고 싶다”며 “남은 생애, 다른 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시를 최대한 많이 쓰고 싶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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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복을 빕니다]배우 송재호 56년 배우의 길 마치고 하늘 무대로

    인자한 아버지 역으로 사랑받아 온 원로 배우 송재호 씨가 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평양 출신으로 동아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로 데뷔했다. 1964년 영화 ‘학사주점’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1968년에는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됐다. 1970년대에는 영화 주인공으로 이름을 날렸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에서 영자(염복순 분)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 창수 역을 맡았고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 됐다. 또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1981년)에서 장미희와 호흡을 맞춰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때 그 사람’ ‘살인의 추억’ ‘해운대’ 등 120여 편에 출연했다. 브라운관 활동도 왕성했다. 1982년 백상예술대상에선 KBS 드라마 ‘새댁’으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4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인자하고 사려 깊은 아버지로 나와 ‘국민 아버지’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보통 사람들’ ‘열풍’ ‘싸인’ 등 다수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생전 인터뷰에서 “움직일 수만 있다면 연기하고 싶다”고 말한 대로 병세가 깊어지기 전까지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에도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질투의 역사’ 등에 출연했다. 국제사격연맹 심판증을 가진 고인은 1986년 아시아경기 사격종목 국제심판, 1988년 서울 올림픽 사격종목 보조심판으로 활동했다. 야생생물에도 관심이 많아 야생생물관리협회장도 맡고 있었다. 별세 소식에 각계의 추모와 애도가 이어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일 페이스북에 “국민배우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인자한 아버지 역으로 친숙해지셨지만 젊은 시절 제임스 딘 같은 반항아 이미지를 기억하는 국민도 많다.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배우 활동을 하다가 현재는 목사인 장남 영춘 씨 등 4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0일 오전 8시 반. 02-3410-3151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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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의식을 초월한 ‘엄마의 자식 사랑’

    구순 고령에 기력이 쇠한 말기 암 환자이자 알츠하이머 인지저하증을 겪고 있는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면서 몇 마디 말을 던진다. “이 닦았나?” “또 왔나?” “저기 나무에 감이 달렸다” 같은 평범한 말이기도 하고, “늙으나 젊으나 전다지 물건 덩어리다” 같은 알쏭달쏭한 말이기도 하다. 향정신성 약물을 늘 투여 받으며 수시로 혼란상태에 빠지다 전후 맥락 없이 불쑥 나오는 어머니의 그 문장들.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고전문학 분야 석학인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을 옮겨 다니다 숨을 거둔 어머니의 와병생활을 휴직까지 한 채 1년여 돌본다. 저자는 어머니가 때때로 던진 말이 의미 없는 게 아니라 그저 해독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어머니가 남긴 선문답처럼 짧은 말과 그에 대한 저자의 특별하고 애틋한 해독을 담고 있다. 모자(母子)의 각별한 유대감이 평범하거나 엉뚱한 말의 속뜻을 발견하게 하고, 오랜 기억을 소환해서 그 맥락을 이해하게끔 한다. 아들의 글 속에는 어머니의 강인한 삶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절절하다. 병실로 들어서는 아들에게 혼몽한 중에도 “공부하다 오나?”라고 묻는 어머니. 저자는 어머니의 삶이 자신의 공부와 분리되지 않는단 걸 깨닫는다. ‘선생님’인 셋째 아들은 어머니에게 늘 자랑스럽다. 저자는 어릴 적 간식 ‘박산’(뻥튀기)을 반기는 어머니를 보며 지난 시절을 그리워도 하고 “얼른 도망가라”는 외침에 독재 시절 경찰에 쫓기던 20대를 떠올리기도 한다. 병실에서도 “느그 아버지 밥 차리 줬나”며 아버지 걱정을 달고 있는 어머니에게서 원망, 미움도 무화시키는 늙은 사랑의 뭉클함을 느낀다. 기계적으로 약물만 투여하는 곳에서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다 의료진이 바뀌면서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경험을 반복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의료진의 태도가 환자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세밀히 반영돼 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보름 전 “아들!”이라 외쳐 모두를 놀라게 한다. ‘사랑은 의식을 넘어 존재하는 것’임을 알려준 그의 마지막 말은 “어어어”. “엄마!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요!”라는 아들의 작별 인사에 대한 대답이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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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훈은 한국학 기틀 처음 다진 선구자”

    “조 군의 회고적 에스프리는 애초에 명소고적에서 날조한 것이 아닙니다…시에서 것과 쭉지를 고를 줄 아는 것도 天成(천성)의 기품이 아닐 수 없으니 시단에 하나 ‘新古典(신고전)’을 소개하며…쁘라보우!” 정지용 시인은 1940년 ‘문장’ 2월호 추천 시 ‘봉황수’ 선후기(選後記)를 쓰며 ‘시단의 신고전(新古典)’이란 평가에 감탄사 “쁘라보우!”까지 덧붙여 환호한다. 그가 극찬한 ‘조 군’은 바로 민족정신과 고전적 미의식을 우아하고 섬세한 언어 속에 구현해온 시인 조지훈(1920년 12월 3일∼1968년·사진).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승무’로 널리 알려진 시인 조지훈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그가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낸 3인 시집 ‘청록집’은 한국 서정시의 정신적 좌표로 꼽힌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조지훈의 생애와 학문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재조명하려는 학계의 시도가 활발하다. 그가 1948년부터 교수로 재직하며 민족문화연구원 1대 소장을 지낸 고려대는 11월 둘째 주를 ‘조지훈 주간’으로 기리고 유품 및 도서 전시와 추모 강연, 논문집 출간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고려대 박물관은 ‘빛을 찾아가는 길, 나빌네라 지훈의 100년’ 전시회를 9일부터 내년 3월 20일까지 연다. 육필원고, 두루마기, 안경 등 유품과 교사 자료를 포함한 100여 점이 전시된다. 가장 눈여겨볼 만한 자료는 42장짜리 육필 원고뭉치 ‘芝薰詩초(지훈시초)’. 출간을 염두에 두고 퇴고를 위해 정서해 묶은 교정본 일종으로 추정되는데 대중에게 전시로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13일 열리는 ‘조지훈 탄생 100주년 기념 인문학 축제’에서는 문학뿐 아니라 지성사, 민족문화, 역사학의 관점에서 조지훈의 문학 세계를 재조명한다. ‘한국문화사대계’(총 7권)를 기획했고 논저 ‘한국민족운동사’를 남긴 그는 ‘한국학’이라 불리는 연구가 없던 1960년대부터 이미 인문학 분야를 망라해 정리하는 시도를 선구적으로 해왔다. 조지훈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관련 연구는 부족했다. 이에 그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남긴 선구적 족적도 발표한다. 김건우 대전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가 지성사 관점에서 분석하고 조형열 동아대 사학과 교수가 역사학 분야를 심층 조명한다. 11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는 그의 제자였던 홍일식, 김흥규, 최동호 고려대 명예교수가 추억하는 조지훈에 대한 추모좌담회와 기념강연, 조지훈 연구 출판기념식이 열린다. 내년 2월에는 경북 영양군과 고려대 문과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열린 관련 학술대회 발표문과 토론문을 수록한 ‘조지훈 탄생 100주년 기념 논문집’이 출판된다. 영양군은 조지훈의 고향으로 조지훈 생가와 지훈박물관이 있다. 내년에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립대의 세계시인 동상 공원에서 조지훈 동상 제막식도 열릴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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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미권 넘어 日 서도 흐름 탄 K문학… 번역가 키우면 지구촌 대세[인사이드&인사이트]

    얼마 전 일본에서 손원평 작가의 소설 ‘서른의 반격’ 판권 계약을 진행한 은행나무 측은 “작가에게 전해 달라”는 일본 한 출판사 편집자의 편지를 받았다. 작가의 전작(前作) ‘아몬드’가 올해 일본서점대상을 받자 여러 출판사가 경쟁이 붙은 상황이었다. 한글로 쓴 그 편지에는 자신이 얼마나 손 작가 작품을 좋아하는지, 일본 독자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 등이 정성껏 담겨 있었다. 이진희 은행나무 이사는 “일본 문학이 국내에서 붐일 때 오쿠다 히데오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를 잡으려고 우리도 이렇게 편지를 쓰며 공을 들였다”며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올해도 노벨 문학상의 계절은 우리와 별 상관 없이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세계 속 ‘한국 문학의 판’은 눈에 띄게 들썩이고 있다. 미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비롯해 세계 각국 문학상 후보에 연이어 오르내리고 있고, 인기 국내 작가를 잡기 위한 판권 경쟁도 전례 없이 불붙었다. 올 초부터 크고 작은 낭보가 날아들었다. 손 작가를 시작으로 김금숙 작가의 ‘풀’(미국 하비상 최우수 국제도서부문),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독일 독립출판사 문학상), 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전미번역상, 루시엔 스티릭 번역상) 등이 해외 문학상을 받았다. 수상은 못 했어도 영미권의 주요 문학 및 번역상 후보에 한국 문학 작가가 다수 오른 것은 괄목할 만하다. 전미도서상 예심 후보에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를 비롯해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와 재미교포 시인 최돈미 등 한국계 작가 세 명이 오른 건 이례적이다. 소설가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는 최근 영국 더타임스와 가디언, 미 타임지 등 주요 언론에서 호평 받았다. 한류(K-culture)의 선전 속에 ‘K-LIT(케이릿·K-Literature)’ 역시 세계 무대를 향해 예열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가 다방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해외서 통해”… 자생적 수출 비중 늘어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문학은 해외에서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2005년 에이전시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정부 지원이나 문화 교류 차원 이외의 한국 문학 수출은 없다시피 했다”며 “영미권에서는 한 해 한 건 계약도 힘들었고 경제적 성과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8년),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2002년)이 각각 39개국, 29개국에 수출된 것은 한류 콘텐츠로서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초였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받으며 한국 문학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다. 이런 사례들은 좋은 작품을 발굴할 경우 사업성이 있음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 과거 한국 문학은 주로 지원 정책의 하나로 해외에 일방적으로 소개됐다. 이 때문에 수출이 는 것처럼 보여도 제대로 된 작품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근 상황은 다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에 따르면 한국 문학의 총 수출 건수는 2014년 119권에서 지난해 306권으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양적으로도 대폭 성장했지만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 사업을 통하지 않은 수출이 2014년 전체 30%(34권)에서 지난해 70%(210권)로 늘어났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해외 출판사가 저작권 계약을 먼저 한 뒤에 지원 사업에 공모하는 비중도 늘고 있다. 이런 ‘선(先)계약, 후(後)지원’ 사례는 2014년 10여 종이었지만 올 9월 말 기준 109종으로 급증했다. 박소연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1팀장은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데다 양질의 번역 전문가도 늘면서 자발적으로 도서를 출판하려는 현지 수요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기관 주도 공모에 뽑히면 번역, 해외 출판사 섭외, 출간까지 2∼3년이 소요되지만 해외 출판사가 자발적으로 계약하면 1년 안에 출간까지 가능해 작품을 시의성 있게 소개할 수 있다. 박 팀장은 “자체적으로 작품과 번역가 선정은 물론 출간과 문학 행사 등 마케팅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현지 언론과 독자들의 주목도 역시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모지’ 일본서 발아하는 ‘케이릿’ 현지의 자발적 출간 수요가 늘자 아예 한국 문학 전문 출판사가 생기거나 판권 수입 경쟁이 벌어지는 등 새로운 현상도 나타난다. 지난해 설립된 프랑스의 마탱 칼므 출판사는 ‘K스릴러’로 불리는 한국 장르문학을 전문 출간한다. 초판만 5000부가량 찍는데, 팔린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수치다. 한국 소설 시리즈를 신설하기도 한다. 대만의 문학전문출판사 만유자문화는 ‘82년생 김지영’이 히트를 치자 다른 한국 작가에게도 눈을 돌려 ‘김영하 시리즈’ 등을 출간 중이다. 러시아 최대 출판그룹 AST는 2017년부터 자회사를 통해 ‘K시리즈’를 기획해 한강 정유정 작가 등의 책을 내고 있다. 한국 작가에 대한 반응이 좋아지면서 선인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뛰고 있다. 대개 200만∼300만 원이던 선인세는 최소 10배 이상으로 뛰었다.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특히 뜨겁다. 대니홍 에이전시의 홍대규 대표는 “실제로 경쟁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심해졌다”라고 말한다. 일본에서의 한국 문학 붐은 주목할 만하다. 출판산업실태조사(2013∼2016년)에 따르면 국내 도서저작권 수출에서 아시아는 전체의 85%를 차지한다. 이 중 중국(48.9%) 태국(14%) 등과 달리 일본 수출 비중은 1.9%에 불과했다. 한국 책, 특히 한국 문학과 일본 문학의 수출입 격차가 극심해 ‘불모지’로 통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최근 일본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여성 차별 문제를 선제적으로 다룬 한국 페미니즘 문학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시장성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2018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15만 부 넘게 팔리며 6개월간 주요 서점 해외문학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정유정 ‘7년의 밤’ ‘종의 기원’, 김애란 ‘바깥은 여름’ 등이 소개돼 주목받았다. 일본 출판계에서 “영미 소설보다 한국 소설 반응이 확실하다”는 인식도 생겼다. 한류의 후광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김수현 작가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일본에서 24만 부가 팔리는 ‘빅 히트’를 쳤다. ‘BTS(방탄소년단)가 읽는 책’으로 알려지며 이슈 몰이를 했다. 김 작가의 신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일본에 선인세 2억 원에 계약됐다. 홍 대표는 “일본 출판사들은 소설을 검토할 때 어떤 셀럽(명사)이 읽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홍보한 이력이 있는지 반드시 문의한다”며 “한국 문학 역시 K컬처 덕을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한한령(韓限令)이 풀리며 수요가 폭발 중이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세계 최대 출판 시장인 미국 저작권 수입이 주춤한 것이 한국에 반사 효과를 주고 있다.○ 정보망 체계화-번역자 집중 육성 필요 케이릿의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해서 한국 문학을 ‘한류’라 부를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 등의 케이릿 붐이 지속될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와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출판계는 진단한다. 민음사 저작권부 남유선 이사는 “지금까지는 해외 에이전트나 편집자에게 우리 작품을 한번 읽게 하는 데조차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적어도 지금은 작품이 검토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한국 문학이 해외 메이저 출판사의 관심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좋은 작품이란 판단이 들면 출간으로 이어진다. 김혜진 작가의 장편 ‘딸에 대하여’는 영국 내 세 출판사가 경합해 피카도르가 판권을 가져갔다. 프랑스에서는 갈리마르와 계약했다. 문학동네 창비 민음사 등 대형 단행본출판사들은 수출 관련 업무가 늘면서 저작권 부서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수출 에이전시도 늘었다. 이구용 대표는 “한국 문화 전반의 인지도 상승 등이 작용해 한국 문학도 결실의 발판, 붐의 초기 단계에 진입 중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런 흐름을 대세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수한 번역 전문가 양성뿐 아니라 체계적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홍대규 대표는 “결국 여전히 진입이 쉽지 않은 영미 시장에 진출해야 세계로 뻗을 수 있다”며 “우수한 번역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체계적으로 번역을 지원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수 책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는 문학 수출 현황을 공유할 통합전산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 대표는 “한국 문학에 대한 현지 출판사나 에이전시의 관심은 높지만 막상 객관적 자료가 없어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떤 작품이 어떤 언어권에 소개됐는지 알려주는 객관적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면 판권 계약에 도움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영어, 일본어 등 일부 언어에 집중된 지원을 중동, 동남아 등지로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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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서야 사는 화분

    지난주 서울 종로구 서촌의 가드닝숍 ‘노가든’ 앞에는 새벽부터 긴 줄이 생겼다. 최근 ‘핫한’ 화분인 ‘두갸르송’ 토분(土盆)이 입고되는 날이었다. 최근 한두 달에 한 번씩 꼭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구매 수량을 모델당 1개로 제한해도 당일 완판. 기다리고도 허탕 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두갸르송 대란’이라 불린다. 두갸르송 토분은 온라인에서도 1, 2분 안에 품절된다. 남은 물량을 파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다. 노은아 노가든 대표는 “원래 마니아층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 불어닥친 가드닝(gardening·정원 가꾸기) 열풍으로 더 인기”라며 “‘레어템’ ‘핸드메이드’(수제)라고 SNS에서 입소문이 나 경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사용했던 제품도 중고 사이트에서 새것과 같은 시세나 웃돈을 얹어 거래된다. 코로나19 시대 재택근무 증가 등으로 가드닝 인구가 부쩍 늘면서 가드닝의 완성이자 ‘식물의 옷’인 화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내 환경과 인테리어에서 차지하는 식물의 비중이 급증하면서 화분 역시 대충 고를 수 없는 중요한 소품이 된 것. 이른바 ‘베란다 가드너’에게 가장 인기 있는 화분은 테라코타(terracotta) 토분이다. 점토를 섭씨 600∼1000도에서 구워내 오렌지 빛이 돈다. 유약을 바르지 않아 소박하고 세월에 따라 빈티지한 멋이 더하는 화분이다. 통기성과 내구성이 우수한 데다 어느 식물에나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지중해나 유럽의 정원에서는 야외에 놓고 투박한 느낌을 즐긴다. 덴마크 베르(베르그) 화분 등이 이런 감성을 잘 보여준다. 테라코타 토분의 일종인 두갸르송이 ‘대란’을 부른 것은 국내 베란다 가드너들의 감성을 충족시키는 세련된 디자인에 색감을 더해서다. 박정진 두갸르송 대표가 사업을 시작하던 2011년만 해도 국내에는 제대로 된 토분이 드물었다. 프랑스에서 회화를 공부한 박 대표는 “귀국 후 좋아하는 화초를 기를 만한 예쁜 화분이 없어 직접 만든 것이 사업이 됐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다들 ‘도자기 만들다 생긴 불량품을 화분으로 쓰면 되는 거 아니냐’ ‘화분이 비쌀 이유가 뭐냐’고들 했다. 전공자 사이에선 화분 제작이 도자기에 비해 수준 낮은 작업이라 보는 풍토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전세가 역전됐다. 그는 “한국은 뭐든 빠르고 최고를 선호하는 문화가 강하다”며 “화분도 일단 한번 관심이 생기자 해외 수준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고 말했다. 30, 40대 가드닝족(族)이 ‘감성 토분’에 열광하면서 두갸르송뿐 아니라 카네즈센, 제네스포터리, 스프라우트 같은 도예가들이 직접 만드는 토분도 큰 인기다. 디자인이나 소재에 따라 가격대는 다양하지만 대개 지름 10cm 안팎의 작은 화분은 2만∼5만 원, 30cm 안팎의 대형은 10만 원대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수작업이어서 공급량 자체가 많지 않다. 가드너들이 선호하는 것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제품이 아니라 공방에서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 만든 것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똑같은 화분이 하나도 없어 ‘한정판’의 특별함을 준다. 일부 유약분도 토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수집욕을 자극한다. 토분이 인기라고 해서 반드시 수제 화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상대적으로 값이 나가는 데다 무거워 손목에 무리도 많이 온다. 베란다 가드너라면 저렴하고 가벼운 플라스틱 화분을 섞어 쓰는 것이 필수다. 노은아 대표는 “데로마 토분과 엘호 플라스틱 화분이 가성비가 좋다”며 추천했다. 무엇보다 식물의 특성에 맞게 소재나 크기를 골라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식물이라면 통기성이 뛰어난 토분보다는 유약분이나 도자기 화분을 고르는 것이 좋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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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실등 떼어내고 실링팬 달았더니 우리집이 휴양지!

    요즘 인테리어 고수들이 공개하는 ‘랜선 집들이’에서 빠지지 않는 핫템이 하나 있다. 실링팬(ceiling fan)이 그 주인공이다. 천장에 달린 일종의 대형 선풍기로, 무더운 동남아시아 휴양지 혹은 층고가 높은 유럽, 미국 주택에 멋스럽게 설치돼 있다. 이 이국적인 아이템이 요즘 대한민국의 일반 아파트 거실 안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온라인 집들이’ 트렌드를 반영해 SBS가 올해 추석 방송한 파일럿 프로그램 ‘홈스타워즈’에서 인테리어 고수들의 집 여러 곳을 소개했다. 자연 친화형, 프렌치형, 레트로형 등 취향에 따라 제각각으로 꾸몄지만 공통적으로 눈에 띈 아이템은 실링팬이었다. 실링팬을 설치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공기 순환을 위해서다. 층고가 높은 집의 경우 에어컨 등 냉난방 장치를 틀어도 효과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기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환기도 어렵다. 이때 대형 팬으로 구성된 실링팬은 톡톡히 제 역할을 한다. 동남아처럼 무더운 지역에서는 에어컨이 없을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국내에서 실링팬이 인기를 끄는 건 환기가 용이해 쾌적하고 냉난방비 절약에 도움이 된다는 실용적 이유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인테리어 효과 덕이 크다. 소재, 디자인에 따라 다양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거실의 환한 메인등을 떼고 매립등이나 간접조명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트렌드다. 메인등이 빠진 썰렁한 거실 천장을 실링팬이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실링팬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물론이고 수입품을 파는 곳도 거의 없어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구매를 해야 했지만 요즘은 해외 제품이 공식 수입돼 다양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LG전자는 올해 8월경 신제품으로 ‘실링팬’을 처음 내놓았다. 이 시장의 성장 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가격대는 브랜드, 크기, 성능에 따라 다양하지만 수입품인 루씨에어, 에어라트론 같은 인기 제품은 보통 40만∼60만 원대다. 메인조명을 뗀 자리에 실링팬을 설치하기 때문에 조도가 충분치 않을 경우 중앙 부분이 조명으로 된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설치할 때는 무엇보다 안전에 유념해야 한다. 국내 주택은 층고가 보통 2300∼2400mm 정도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도록 층고에 알맞은 제품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천장에 비교적 가깝게 붙어 있고 팬 크기가 길지 않은 화이트, 우드톤의 현대적인 디자인이 요즘 인기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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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란다 가드너’에게 핫한 ‘감성 토분’ 잘 고르는 팁

    지난주 서울 종로구 서촌의 가드닝숍 ‘노가든’ 앞에는 새벽부터 긴 줄이 생겼다. 최근 ‘핫한’ 화분인 ‘듀갸르송’ 토분(土盆)이 입고되는 날이었다. 최근 한두 달에 한 번씩 꼭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구매 수량을 모델 당 1개로 제한해도 당일 완판. 기다리고도 허탕 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듀갸르송 대란’이라 불린다. 듀가르송 토분은 온라인에서도 1~2분 안에 품절된다. 남은 물량을 파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다. 노은아 노가든 대표는 “원래 마니아층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 불어닥친 가드닝(gardening·정원 가꾸기) 열풍으로 더 인기”라며 “‘레어템’ ‘핸드메이드(수제)’라고 SNS에서 입소문이 나 경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사용했던 제품도 중고사이트에서 새것과 같은 시세나 웃돈을 얹어 거래된다. 코로나19 시대 재택근무 증가 등으로 가드닝 인구가 부쩍 늘면서 가드닝의 완성이자 ‘식물의 옷’인 화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내 환경과 인테리어에서 차지하는 식물의 비중이 급증하면서 화분 역시 대충 고를 수 없는 중요한 소품이 된 것. 이른바 ‘베란다 가드너’에게 가장 인기 있는 화분은 테라코타(terracotta) 토분이다. 점토를 섭씨 600~1000도에서 구워내 오렌지 빛이 돈다. 유약을 바르지 않아 소박하고 세월에 따라 빈티지한 멋이 더하는 화분이다. 통기성과 내구성이 우수한 데다 어느 식물에나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지중해나 유럽의 정원에서는 야외에 놓고 투박한 느낌을 즐긴다. 덴마크 베르그 화분 등이 이런 감성을 잘 보여준다. 테라코타 토분의 일종인 듀가르송이 ‘대란’을 부른 것은 국내 베란다 가드너들의 감성을 충족시키는 세련된 디자인에 색감을 더해서다. 박정진 듀가르송 대표가 사업을 시작하던 2011년만 해도 국내에는 제대로 된 토분이 드물었다. 프랑스에서 회화를 공부한 박 대표는 “귀국 후 좋아하는 화초를 기를만한 예쁜 화분이 없어 직접 만든 것이 사업이 됐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다들 ‘도자기 만들다 생긴 불량품을 화분으로 쓰면 되는 거 아니냐’ ‘화분이 비쌀 이유가 뭐냐’고들 했다. 전공자 사이에선 화분 제작이 도자기에 비해 수준 낮은 작업이라 보는 풍토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전세가 역전됐다. 그는 “한국은 뭐든 빠르고 최고를 선호하는 문화가 강하다”며 “화분도 일단 한번 관심이 생기자 해외 수준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고 말했다. 30, 40대 가드닝족(族)이 ‘감성 토분’에 열광하면서 듀갸르송뿐 아니라 카네즈센, 제네스포터리, 스프라우트 같은 도예가들이 직접 만드는 토분도 큰 인기다. 디자인이나 소재에 따라 가격대는 다양하지만 대게 지름 10cm 안팎의 작은 화분은 2만~5만 원, 30cm 안팎의 대형은 10만 원대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수작업이어서 공급량 자체가 많지 않다.가드너들이 선호하는 것은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제품이 아니라 공방에서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 만든 것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똑같은 화분이 하나도 없어 ‘한정판’의 특별함을 준다. 일부 유약분도 토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수집욕을 자극한다. 토분이 인기라고 해서 반드시 수제 화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상대적으로 값이 나가는데다 무거워 손목에 무리도 많이 온다. 베란다 가드너라면 저렴하고 가벼운 플라스틱 화분을 섞어 쓰는 것이 필수다. 노은아 대표는 “데로마 토분과 엘호 플라스틱 화분이 가성비가 좋다”며 추천했다. 무엇보다 식물의 특성에 맞게 소재나 크기를 골라야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식물이라면 통기성이 뛰어난 토분보다는 유약분이나 도자기 화분을 고르는 것이 좋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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