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야

최고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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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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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8~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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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 게이츠도 한다는 ‘마음챙김’이 뭐길래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주의를 호흡에 모아봅니다. 호흡이 가장 잘 느껴지는 부분은 몸에서 어디인지 봅니다. 코, 가슴, 배를 느껴봅니다. 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 코로 숨이 들어 갈 때, 나올 때의 느낌에만 관심을 가져봅니다. (…) 혹시 지금 마음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마음이 벗어났네’하고 알아차린 뒤 부드럽게 다시 주의를 코로 가지고 옵니다. 마음이 벗어난 것에 대해 판단하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모니터 너머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온라인 화상회의 ‘줌(Zoom)’ 화면의 얼굴들이 하나 둘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한국MBSR연구소(한국MBSR본부)의 일반인 대상 8주 마음챙김(mindfulness) 온라인 명상 프로그램 중 일곱 번째 시간이었다.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은 마음챙김 명상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이다. 이날 주제는 ‘마음챙김 명상을 어떻게 일상생활에 적용할 것인가’였다. 호흡 등 신체 감각을 알아차리는 정좌 명상, 전신을 골고루 느껴보는 ‘바디 스캔(body scan)’ 명상 등 명상 실습이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마지막 30분 동안은 참가자끼리 명상 훈련을 하며 느낀 점을 나누는 시간이 주어졌다. 한 참가자는 “주의력결핍장애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자책하기 바빴다”며 “명상을 한 뒤로는 ‘내가 지금 괴로워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면서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더니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됐다”고 소감을 나눴다. ● 종교 색 덜어낸 현대 명상법으로 재탄생 정신건강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챙김이라는 단어를 한 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마음챙김이라는 말이 들어간 국내 도서만 300권 가까이 된다. 마음을 보듬고,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짐작은 가지만 정확한 의미를 아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마음챙김은 고대 인도어인 팔리(Pali)어 ‘sati(사띠)’에서 유래됐다. 불교에서 명상을 통해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고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설명하는 핵심 단어다. ‘기억’ ‘주의’ 등을 의미해 동아시아에서는 한자 ‘염(念)’으로 설명한다. 1881년 영국에서 영어 불교사전을 펴내며 sati를 ‘mindfulness’로 번역했고, 이 영어 단어가 1980년대 국내에 들어오면서 ‘마음챙김’으로 번역됐다. 마음챙김 명상은 미국과 유럽에서 불교 색채를 덜어낸 새로운 명상법으로 재구성됐다. 불교의 명상법을 쓰지만, 심신 안정과 심리치료 관점으로 접근해 일반인에게 문을 연 것이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마음챙김 명상을 통한 우울, 불안, 불면, 스트레스 감소에 대한 효과를 보여주는 과학적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우울·불안·스트레스 완화 효과에 주목 마음챙김 명상은 △MBSR △MBCT(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마음챙김에 근거한 인지행동 치료) △MSC(Mindful Self Compassion·마음챙김 자기연민) △DBT(Dialectical Behavior Therapy·변증법적 행동치료) △ACT(Acceptance & Commitment·수용-전념 치료)등 응용 심리치료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세분화돼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MBSR은 마음챙김 명상 프로그램 중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존 카밧진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의과대학 명예교수가 1979년 8주 프로그램으로 개발했다. 정좌 명상, 요가 명상 등을 통해 스트레스 완화를 목적으로 한다. 카밧진 교수는 마음챙김이란 ‘현재 순간순간의 경험에 의도적이지만 비(非)판단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자각(awareness)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MBSR과 심리치료의 한 방법인 CBT(Cognitive Behavioral Therapy·인지행동치료)가 합쳐진 MBCT는 최근 우울증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마크 윌리엄스 영국 옥스퍼드대 임상심리학 명예교수가 진델 시걸 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과 석좌교수 등과 2002년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영국에서는 우울증 치료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 실리콘밸리·세계적 석학도 매료된 마음챙김미국 타임지는 마음챙김의 대중화 성공 비결로 과학적 효과 검증을 통해 명상을 종교 행위가 아닌 주의력 훈련으로 마케팅한 점을 꼽았다. 주의력 향상을 통한 뇌 건강, 창의성 발휘, 심신 치유 등을 명상 효과로 강조한 것이다. 구글은 2007년 일찍이 마음챙김의 힘을 알아보고 ‘내면검색(Search Inside Yourself)’이라는 사내 명상 강좌를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만든 구글의 엔지니어 차드 멩 탄은 저서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에서 “명상 연습을 많이 하면 마음이 더 차분해지고 통찰력이 더욱 예리해진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명상 앱 ‘헤드스페이스’ 사용자로 유명하다. 한동안 그는 신비한 종교 체험에 현혹되는 사람들이나 명상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헤드스페이스의 창업자 앤디 퍼티컴과 만난 이후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명상은 신앙이나 미신과는 관련이 없으며, 단지 주의를 집중하고 생각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세계적 석학인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예루살렘히브리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20년 넘게 명상을 해왔다. 그는 2017년 방한 당시 인터뷰에서 “명상이 없었다면 저서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 같은 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명상은 나만의 ‘케렌시아’ 찾는 것” 국내에서도 점차 마음챙김 명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희영 한국MBSR연구소장은 “군이나 공기업, 기업, 학회 등 여러 곳에서 명상 지도자 양성을 위한 위탁교육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국내 유일 미국MBSR본부(브라운대 산하 ‘브라운 마음챙김센터’)가 인정하는 국제인증 지도자이자 지도자 트레이너 자격 보유자다. MBSR의 창시자인 카밧진 교수 등으로부터 직접 MBSR 명상을 배웠다. 우울과 불안 완화에 대한 효과가 알려지면서 의사들도 명상에 관심을 갖는 추세다. 한국MBSR연구소가 영국 옥스퍼드 마음챙김센터와 제휴를 맺고 4일부터 시작하는 MBCT-L 국제지도자 1년 과정 프로그램의 참가자 대부분은 정신의학과 의사를 비롯한 임상 전문가다. 안 소장은 마음챙김 명상은 궁극적인 뭔가를 추구하며 ‘세상을 등지는 명상’이 아니라 일상에 힘을 얻기 위한 ‘삶을 위한 명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안 소장은 마음챙김 명상을 ‘케렌시아(querencia)’에 비유했다. 스페인어로 ‘안식처’라는 의미인 케렌시아는 투우 경기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일전을 앞둔 소가 잠시 쉴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안 소장은 “투우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소는 케렌시아를 발견한 소라고 한다. 흥분하지 않고 안식처를 찾아 투우사를 이길 방법을 찾는 소”라며 “내 안의 쉴 공간을 창조해 생각할 힘을 넓혀가는 명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알아차림 명상의 첫 걸음은 무엇일까.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일하다 잠깐 고개를 들어 훌륭한 경치를 바라볼 때 바쁘게 돌아가던 생각이 잠시 멈추고 신체 감각으로 주의가 돌아오는 원리를 떠올리면 된다. 안 소장은 “이때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던 모드에서 벗어나게 되고, 마음의 공간이 확장되면서 스트레스가 완화된다”며 “마음챙김 명상은 현재를 알아차리는 훈련을 통해 고요하고 명료한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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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직원 마음건강, 이젠 회식 대신 앱으로 챙기세요”

    실적 압박, 상사 스트레스, 승진 경쟁, ‘워라밸’ 불균형…. 직장인이 회사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셀 수 없이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2년 넘게 겪으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근로자의 정신건강 관리에 눈을 돌리는 기업들도 속속 늘고 있다. 모바일 정신건강 플랫폼인 ‘트로스트’는 이 점에 주목해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 Employee Assistance Program) 사업 확장에 나섰다. 이달 초 트로스트는 기업 고객 1인당 월 9900원에 이용 가능한 ‘트로스트 케어’ 서비스를 선보였다. 트로스트 케어에 가입한 기업 고객은 비대면 심리상담(채팅,전화), 명상 프로그램, 인공지능(AI) 심리진단 등 앱 서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트로스트 케어 서비스 시작 후 기업 고객은 총 100여 곳으로 늘었다. LG화학, 포스코, 쿠팡, JYP엔터테인먼트 등을 비롯해 질병관리청, 국세청, 대법원 등 공공기관도 다수다. 앱 다운로드 수는 2016년 회사 설립 이후 누적 70만 건을 넘어섰다. 트로스트를 운영하는 휴마트컴퍼니의 김동현 대표는 “과거에는 기업들이 조직 내 사건 사고가 일어난 이후 사후 관리 차원에서 직원의 정신건강 문제에 접근했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부터는 일상적인 복지 개념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했다. 트로스트는 많은 기업에서 직원 복지를 위해 심리상담 전문가를 직접 고용하고 있지만, 실제 이용률은 저조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대표는 “EAP가 훨씬 활성화된 미국 기업조차 사내 상담 전문인력 이용률이 3% 내외 수준인 경우가 많다”며 “같은 조직 내에 있는 상담사에게 자신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앱에서 비대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기업 관리자에게는 서비스 이용자 수, 주요 고민 키워드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없는 통합적 정보만 제공된다. 상품 비용을 낮추기 위해 그동안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운영 과정을 상당 부분 자동화시켰다. 그동안은 제휴를 맺은 심리상담센터에 일일이 연락을 돌려 기업 연계 고객의 상담을 몇 회 진행했는지 체크하는 수작업이 필요했다. 이제는 앱에 자동 정산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에 드는 비용을 제로(0) 수준으로 줄였다. 다만 여전히 대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오프라인에 심리상담, 명상 등을 체험하는 복합공간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심리상담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은 현재 약 4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회식이나 단합대회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던 시대는 지났다”며 “임직원들이 가진 심리적 문제가 다양해질수록 업무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EAP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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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번 구운 직화햄 ‘그릴리’ 첫선… 동원F&B “4세대 냉장햄 선도”

    동원F&B는 직화 그릴에 구운 햄 제품 전용 브랜드인 ‘그릴리’를 최근 새롭게 선보였다. ‘그릴리’의 햄 제품은 저온 숙성한 돼지고기, 닭고기를 250∼300도 오븐에 먼저 굽고, 500도 직화 그릴에서 또 구워 불 맛을 입힌 것이 특징이다. 동원F&B는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그릴리’의 제품군을 확장해 연 매출 500억 원대 브랜드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국내 냉장 햄 시장은 1960년대 등장한 일명 ‘분홍 소시지’를 1세대로 시작해 비엔나 소시지(2세대), 합성 첨가물을 넣지 않은 웰빙 햄(3세대) 등을 거쳐 성장해 왔다. 동원F&B는 직화 햄 시장을 냉장 햄 제품의 4세대로 명명하고, 시장을 선도해 간다는 전략이다. ‘그릴리’의 직화 햄은 숯불에 구운 삼겹살 같은 고기 맛을 새롭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햄을 고온의 오븐에서 구우면 육즙을 가득 품게 되는데, 직화 그릴에서 한 번 더 구워 불에 구운 고기 맛을 재현한 것이다. 불 맛을 내는 첨가물이나 보존료, 산화방지제, 색소 등은 넣지 않았다. 현재 국내 냉장 햄 시장은 약 8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사실상 수년째 성장이 둔화된 상태지만, 동원F&B는 직화 햄 시장을 개척해 시장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원F&B는 2016년 업계 최초로 오븐과 그릴 설비를 도입해 불에 구운 고기의 맛을 그대로 구현한 차별화된 제품들을 선보이며 직화 햄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직화 햄 시장은 현재 약 600억 원 규모(연간 기준)에 불과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세를 타고 2024년에는 약 1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원F&B 관계자는 “냉장 햄은 밥반찬뿐 아니라 간식이나 안주 등으로 용도가 확장되고 있고, 양질의 단백질 식품에 대한 수요도 크게 증가하고 있어 성장세가 밝다”며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다양한 신제품과 마케팅 활동으로 ‘그릴리’ 브랜드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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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 잘 먹고 잘 웃는데… 나도 우울증?[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참을 수 없이 울적한 순간에도 친구들 농담에 웃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허전함을 느끼고, 그러다가도 배가 고파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지독히 우울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애매한 기분에 시달렸다.” (백세희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중에서) 우울감에 시달리다가도 즐거운 일이 생기면 기뻐하고,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다 그렇게 살지’ 라며 마냥 당연하게 넘길 일만은 아니다.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1명(2019년 기준)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지속된 우울감을 느낀다고 답할 정도로 우울증은 흔한 증상이 됐다. 특히 잘 자고 잘 웃더라도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고 몸에 힘이 빠진다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과도하게 살피고 있다면 ‘비전형적 우울증’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이런 증상도 우울증인가요?” 20대 회사원 남성 A씨는 2, 3개월 전부터 푹 자고 일어나도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고 팔 다리에 힘이 빠졌다. 출근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져 지각도 자주 한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는 속도가 느려졌고, 친구들은 “요새 말 수가 적어지고 목소리도 작아졌다”고 걱정한다. A씨는 가끔 울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게임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졌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10시간씩 잠을 자고 식욕도 평소보다 왕성했다. 하지만 갈수록 몸이 땅으로 꺼질 것 같고 피로감이 심해져 뒤늦게 병원을 찾게 됐다. 감기 증상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듯 우울증 증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울증(주요 우울장애)은 △지속적인 우울감 △식욕·수면 저하 △피로· 무기력 △죄책감 △자살 사고 등의 특징을 보인다. 평소 좋아하던 것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분별하기 쉽다. 반면 비전형적 양상을 동반한 우울증은 전체 우울증 환자의 3분의 1 정도로 추정되지만, 일반적 양상과 달라 본인과 주변에서 눈치 채기 어렵다. △10시간 이상 과수면 △식욕 증가 △납마비(온 몸이 무겁게 느껴짐) △거절에 대한 과민 반응 등이 특징이다. 행동이 굼떠지거나, 안절부절 못하며 머리카락을 꼬는 등 초조함을 보이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좋은 일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우울증이라고 의심하기 어렵다.대인관계 민감한 청소년·청년층이 위험군비전형적 우울증의 특징 중 하나는 대인 관계에 크게 민감하다는 것이다. 거절을 당하거나 비판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면 급격히 침울해지거나 크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우울증 환자 가운데서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대인 관계에 예민한 청소년과 청년층에서 비전형적 우울증 발병 빈도가 더 높다. 청소년의 경우 평소에 우울하고 예민하다가도 성적이 오르거나 게임 같은 취미 활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가 알아채기 쉽지 않다. 비전형적 증상 등을 이유로 숨어 있는 청소년 우울증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5만4848명 대상)에 따르면 일상 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심한 우울감에 시달린다고 답한 중·고등학생은 26.8%였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10대 우울증 진단 환자는 전체 우울증 환자의 5.7% 수준에 그쳤다. 1인 가구가 많은 청년층은 물리적·심리적 고립감을 느끼기 쉽다. 20대 우울증 환자 수는 2017년 7만6246명에서 2021년 17만3745명으로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최정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모가 청소년 자녀의 정서 문제를 인지하더라도 ‘나 때는 안 그랬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청년기까지 정서 문제가 이어진다”며 “조기에 학교 상담교사나 관련 지역 서비스에 적극 연계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가 테스트 5점 이상이면 경미한 우울증비전형적 우울증은 보편적인 우울증과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의 세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다만 스스로도 우울증인지 헷갈리고, 당장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면 간단한 자가 테스트로 가늠해 볼 수 있다. 국가건강검진에서 활용하는 우울증 선별 도구인 PHQ-9(Patient Health Questionnaire-9)는 9가지 질문으로 이뤄진 자가보고 검사다. 위 표는 2010년 대한불안의학회 학술지에 실린 연구 ‘한글판 우울증 선별도구(PHQ-9)의 신뢰도와 타당도’를 참고했다. 다만 온라인에 떠도는 근거 없는 우울증 검사는 피해야 한다. ‘나는 내가 가끔 미친 것 같다’ 는 등 과격한 표현은 표준화되지 않은 검사 문항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 “방치하면 ‘더블 디프레션’ 위험” 긴가민가한 증상 때문에 우울증을 방치하게 되면 2년 이상 우울감이 지속되는 지속성 우울장애로 발전될 수 있다. 증상을 인지했다고 해도 전문의나 심리상담사를 찾기까지 마음의 문턱이 높은 탓도 크다. ‘오늘도 우울증을 검색한 나에게’ 공동저자이자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를 운영하는 오진승 원장(DF정신건강의학과)은 “모든 질환은 오래될수록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조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위험한 것은 일명 ‘더블 디프레션(double depression·이중우울증)’이다. 오 원장은 “지속성 우울장애를 쭉 가지고 있다가 심한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는 주요 우울장애가 겹치는 ‘더블 디프레션’이 온 환자들은 상당한 고통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증상이 심각하다면 약물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항우울제는 세토로닌,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조절해 우울감 해소에 도움을 준다. 오 원장은 “정신과 약을 먹으면 머리가 멍해진다거나 중독 될 것이라는 오해가 많다”며 “의사 처방대로 복용한다면 중독이나 내성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증상이 완화되더라도 6~9개월 정도는 유지 치료를 위해 약을 더 복용해야 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고 약물 치료에 거부감이 느껴진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심리상담센터나 시·군·구 단위로 설치된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검사와 상담을 받는 것도 좋다. 오 원장은 “‘이 정도도 우울증인가?’ 하고 무시하기 보단 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면 일단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며 “가벼운 증상일수록 쉽고 빠르게 호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상 생활에서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 오 원장은 “몸에 좋은 것이 마음에도 좋다”고 했다. 일찍 자고, 제때 먹고, 금주와 운동을 생활화하라는 것이다. 오 원장은 “밤늦게 깨어 있으면 우울감이 심해지고 늦잠을 자게 돼 생활 리듬이 깨진다”며 “10시간을 자더라도 정신적 피곤은 풀리지 않기 때문에 무기력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운동은 항우울제 만큼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며 “30분씩이라도 일주일에 3회 이상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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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표원, 국가 R&D 전과정 표준 연계 강화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표준협회가 ‘국가연구개발(R&D) 표준연계 활성화 업무협약’을 최근 체결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국가 R&D 전 과정에서 표준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연구관리 전문기관과 표준 연구성과 전담기관이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선점하려면 우리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국정과제 중 하나를 ‘수요자 지향 산업기술 연구개발 혁신’으로 정하고, 그 세부 과제로 R&D에 대한 표준화를 강화할 계획이다. 기술의 R&D 단계부터 표준화 연계를 염두에 두고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인 성과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이번 업무협약은 산업부의 연구개발 기관이 표준화 성과 창출을 위해 R&D 기획, 평가, 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가기술표준원과 3개 기관은 △표준화 연계 R&D 과제 발굴 △표준화 연계 과제 추진전략 수립 △연구성과 관리·활용을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 이상훈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은 “표준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세부 실행방안이 마련됐다는 데 협약 체결의 의의가 있다”며 “R&D 연구자들이 연구 초기 단계부터 국제표준 기술로 만들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국표준협회는 R&D 과제 추진 시 표준화 동향조사와 국제표준화 전략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과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산업부의 R&D 관리 전문 기관으로서 R&D 과제를 기획하고, 표준화 연계 과제를 선정·관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정양호 산업기술평가원 원장은 “R&D 단계부터 시작해 표준화 기반을 조성하는 사업까지 끝까지 지원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기영 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은 “표준화 동향 조사에 대한 세부 절차와 기준 등이 마련돼야 하고, 연구책임자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국제표준화 전략컨설팅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국가기술표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표준협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와 함께 ‘표준 연구성과 정책 협의체’를 출범했다. 이번 업무협약식에서는 표준 연구성과 관리 유통 전담기관으로 지정된 한국표준협회의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표준성과혁신센터’ 현판식도 열렸다. 강명수 한국표준협회장은 “전담기관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표준 연구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성과 활용·확산을 위해 관계기관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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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은 허준이 교수가 받았는데 왜 아버지를 인터뷰 할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정신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에 허준이 미국 프리스턴대 교수(39·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호명되자 한국 언론의 관심은 재빨리 허 교수의 부모에게 향했다. 허 교수의 아버지는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이고, 어머니는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다. 허명회 교수가 수학과 연관된 통계학과 교수였다는 점에서 언론 인터뷰가 집중됐다. 허 교수의 어릴 적 학업성취도와 교육법 등 질문이 이어졌고, 관련 기사에는 “훌륭한 자녀 앞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었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물론 전 세계 수학계에서 국격을 드높인 주인공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스타탄생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어도 우리는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라며 부모의 직업을 궁금해 하곤 한다. 반대로 자녀의 대학 진학이나 취업 성패에 따라 부모들의 기가 살기도, 죽기도 한다. 왜 우리는 부모나 자녀가 ‘뭐 하는 사람’인지가 그토록 중요할까.● 부모와 자녀는 운명공동체? 심리학, 교육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부모·자녀 동일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성공과 실패를 공유하는 운명공동체라는 의미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문화에서 부모는 자녀를 독립적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자녀도 표면적으로는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부모와 하나라고 인식한다”며 “부모의 것은 자녀의 것이 되고,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문화는 동양의 관계주의에 기인한다. 개인보다 관계에 중심을 두는 동양은 가정을 운명 공동체로 본다. 또 가정의 중심은 부부보다 부모·자녀 관계에 맞춰져 있다. 반면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부부가 가정의 중심이고, 부모·자녀 관계는 독립적으로 본다. 한국인의 심리적 특징을 연구한 고(故) 최상진 중앙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이를 ‘부자유친성정(父子有親性情)’이라고 명명했다. 삼강오륜의 ‘부자유친(父子有親·부모와 자녀는 친밀함이 있다)’에서 따온 말로,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짠하게 여기며 끈끈하게 묶인 한국의 특성을 개념화했다. 최 교수는 저서 ‘한국인의 심리학’에서 “한국 자녀들은 부모에게 미안함, 측은함, 고마움을 가지고, 부모들도 자식에게 측은함을 느낀다”며 “서양의 부모들은 자녀를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어도 불쌍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 유교문화와 한(恨)이 불 지핀 교육열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최한수(차승원 분)는 아내와 딸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즉석 밥으로 혼자 끼니를 때우는 40대 기러기 아빠로 나온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술 마시고 도랑에 빠져 죽은 후 평생 가난과 싸웠다. 어렵게 공부해 결혼했지만, 딸이 골프 유학을 떠나자 또 다시 돈에 허덕인다. 기러기 아빠는 자녀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대표 사례다. 드라마에서 최한수는 “할 만큼 했다. 포기하자”며 우는 아내에게 “부모가 돼서 우리가 어떻게 포기를 하느냐”며 한숨을 쉰다. 국내의 다양한 심리학, 교육학 연구에서는 한국의 유별난 교육열이 부모·자녀 동일체 의식과 유교의 입신양명(立身揚名), 한(恨)의 정서가 영향을 준 결과로 봤다. 특히 한은 부당한 차별을 받을 때 쌓이는데, 이때 자녀 교육은 부모의 한을 대신 푸는 수단이 된다. 주변의 ‘엄친아’ ‘엄친딸’ 사례를 들며 자녀의 성취를 압박하는 것도 이런 현상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 “나의 성공은 부모님의 작품” 이때 자녀는 부모에게 애정과 부채의식을 동시에 느낀다. 세계적 축구스타인 손흥민 선수는 지난해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낸 에세이 추천사에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며 모든 것을 아버지의 공으로 돌렸다. 아들의 코치 겸 매니저인 손 감독은 손 선수를 세계적 선수로 키워낸 것으로 유명하다. 설기현 경남FC 감독의 어머니는 홀몸으로 포장마차와 과일 노점을 하며 축구뒷바라지를 했다. 설 감독이 유럽 리그 활동 당시 “모든 성공은 어머니가 지금껏 살펴 주신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해 현지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박영신 인하대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는 자녀가 성공했을 때 개인의 노력과 능력 덕이라고만 보지 않는다. 그 뿌리에 부모의 희생과 헌신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관계주의 문화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초·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부모에게 ‘고마워서’ ‘보답하기 위해’ 효도한다는 의식이 드러났다. ‘청소년학연구’에 실린 ‘청소년의 효도에 대한 지각과 학업성취’ 연구(1706명 대상)에 따르면 자녀들은 효도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순종’(22.1%) ‘학업충실’(19.8%)을 꼽았다. 효도하는 이유로는 ‘혈연관계’(37.8%) 다음으로 ‘부모의 희생에 대한 보답’(30.2%)을 꼽았다. ● ‘무한 책임’ 의식 넘어 일가족 살해도 부모·자녀 동일체 의식이 비극적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지난달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조유나 양(10) 가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는 삶을 비관한 부모가 ‘나의 실패=자녀도 실패’라고 여겨 일가족이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9년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미수 포함)한 426건의 사건 중 41.4%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경우였다. 범행 동기는 처지 비관(25.6%), 생활고(24.6%), 금전문제(12.9%) 순이다. 연구를 진행한 홍영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해자는 가족 구성원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동반자살은) 가족 전체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서영석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녀에 대한 무한책임 의식을 넘어 ‘나도 힘드니 자녀도 힘들게 살 것’이라고 투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세습 관행도 문제로 꼽힌다. 재벌(‘chaebol’)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의 대기업 집단’으로 실려 그 특징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정치인들이 자녀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거나, 일부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 직을 세습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 “일체감 중요하지만 의존 아닌 의지로” 다만 부모·자녀 간 동일체 의식을 병적이거나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거나 과도한 교육열, 세습 등 문제도 있지만, 관계주의 문화 안에서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인재 한국청소년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서양에서는 부모·자녀의 일체감을 서로 독립이 안 된 부정적 상태로 보지만, 우리는 오히려 연합이 제대로 안될 때 정서적 문제가 생긴다는 연구가 있다”고 했다. 이어 “부모와 유대관계가 잘된 아이일수록 성인기에 자아 분화도 잘 한다. 부모가 자녀를 신뢰하는 관계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했다. 박영신 교수는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고 헌신하는 것을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보다 열등한 문화로 치부하는 건 서양 시각”이라며 “자녀가 부모에게 죄송하고,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취의 커다란 동력이 된다”고 했다. 다만 이때 각자의 자율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서영석 교수는 “주관이나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은 과도한 밀착 관계는 오히려 스스로는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을 유발한다”며 “상대방의 세계를 인정해주며 의존보다 상호 의지하는 관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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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대학별 특화-협력 통한 인재공급 바람직”

    《윤석열 정부 지역균형발전의 한 축은 지역대학 육성이다.국가거점국립대의 연구중심대학 전환은지역대학 육성의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고있다. 반도체 산업 인력 양성에도 지역대학의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동아일보는 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김동원 전북대 총장, 이용훈 UNIST(울산과기원) 총장, 정성택 전남대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균형개발과 연구중심대학 역할’ 방담을 열고 체계적인 지역대학 육성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정부에서 수도권과 지역에 반도체학과 신설 계획 등을 밝혔는데, 바람직한 반도체 인재 공급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이용훈 총장=반도체는 크게 반도체 소재·소자와 시스템반도체로 나뉜다. 소재·소자 분야는 물리학을 기반으로 하며, 먼지가 통제된 클린룸 같은 고가의 실험설비가 필요하다. 클린룸은 1년 내내 가동해야 하고, 10년 주기로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 또 시스템반도체는 수학이 기반이고, 고성능 컴퓨터와 칩 설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칩 제작을 위한 파운드리(foundry)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실제 인공지능이나 이동통신 분야에서 새로운 시스템 칩을 설계하려면 교수진은 기본이고, 대학에서 체계적 교과과정을 설계할 수 있어야 반도체학과 신설이 가능하다. 그런데 정작 학교에 시설이 다 있어도 학사 과정에서는 사고 위험이 있어서 실험도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졸업한다. 독가스 등 안전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론적 강의만 듣다가 졸업한 학생들이 반도체 관련 대기업에 취업해도 많은 부족함이 있다. 기업에서도 기초가 잘되어 있는 학생들을 채용해 숙련된 인력으로 교육시킬 필요가 있는데 대학 탓을 많이 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각 대학에 모든 설비나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반도체학과를 신설하기는 어렵다. 정부에서 반도체학과 신설 계획을 구체적으로 먼저 정하고, 지역별로 거점을 정해서 학과를 신설해 학교별로 협력할 부분을 찾는 게 맞다. UNIST 같은 연구중심대학을 비롯한 몇몇 거점에 반도체학과를 신설하면 기존 장비를 중심으로 인력 양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김동원 총장=전북대에는 반도체 분야 학부과정에 자연과학대학 반도체기술학과를 비롯해 9개 모집단위에 약 275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석·박사과정 11개 전공 과정에서도 약 295여 명이 재학 중이다. 정부에서 2003년 서울대, 경북대, 전북대 3개 대학에 설치한 반도체공정연구센터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시설 유지와 보수가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이미 구축된 시설이 있는 대학끼리 거점별로 블록을 형성해서 같이 운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학별로 각자 알아서 해서는 경쟁력이 부족하다. 지방대에서 반도체 우수 인력이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고졸이나 전문대 졸업 인력 등 다양한 층위의 인재가 필요한 것 아니겠나. 우수 인재들이 수도권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정성택 총장=반도체 관련 인재 공급을 위해서는 산업 현장의 목소리와 인력 양성 실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선 대학에서는 대학원 과정에서 석·박사 양성을 위한 융합전공 등 신설, 교수자원 확보, 재정지원사업 재정비를 해야 한다. 학부 단위에서는 기업맞춤형으로 ‘계약학과’를 신설·확장해 기업이 원하는 수요와 역량 수준을 맞춰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반도체 인재’라는 것이 어떤 수준의 인재를 말하는 것인지 애매한 측면도 있다. 특성화고에서부터 평생학습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량층에 맞춘 인력 양성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전기·전자,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모여 반도체라는 꽃을 피우는 건데 기초공학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도 국가거점국립대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 연구중심대학 전환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나.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정 총장=전남대는 111개의 다양한 전공학과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 연구와 교육 중 어떤 것이 중요한지 선택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종합대학으로서 예술, 철학 등 학문의 다양성을 가지고 교육에 충실하되, 어느 특정 분야의 연구에 집중하는 모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대형 국책연구사업을 대거 유치해 융·복합 고급 인재를 양성하고 대학 내 연구기반 확보에 집중해 연구중심대학 전환의 기반을 닦고 있다. 대표적으로 △4단계 BK21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혁신공유대학 △소프트웨어중심대학 △지역지능화 혁신인재양성 △AI융합대학지원 사업 등이다. 전남대는 광주시가 미국 피츠버그시처럼 의공학에 특화된 도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의 연구중심대학인 GIST(광주과학기술원), 한국에너지공대와도 협력할 계획을 갖고 있다. 김 총장=전북대의 연구중심대학 전환은 대학이 강점을 갖고 있는 바이오헬스케어를 비롯한 반도체, 에너지 및 수송 기기 분야의 역량 강화에 달려 있다. 최근 전북대는 국토부의 캠퍼스 혁신파크 사업에 선정됐고, 산학융합플라자를 완공하는 단계에 있어 대학이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넓어지고 있다. 전북대의 역량과 새만금 및 전북혁신도시 인프라가 융합되면 미국의 리서치트라이앵글 파크, 실리콘밸리, 보스턴 의약바이오 밸리 등과 비슷한 연구집적 단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UNIST 브랜드 사업을 벤치마킹한 지역 미래산업과 연계한 특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대학 종합발전계획 및 지역전략산업과 연계한 미래 핵심기술 분야 집중 지원을 통한 ‘JBNU’ 핵심기술 브랜드화도 추진한다. 이 총장=UNIST는 2009년 개교한 이후 연구중심대학으로서 지역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에서 발표하는 ‘지역과학기술혁신역량평가(R-COSTII)’ 순위를 보면, 2010년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 15위에 머물던 울산이 2020년 5위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또 2020년까지 총 6395건의 특허를 출원하거나 등록해서 울산의 R-COSTII 평가지수 상승에 기여했다. 같은 기간 기술이전 건수는 130건인데, 이를 금액으로 평가하면 101억8200만 원 수준이다. 이 기간에 창업한 기업은 66개이고, 기업들의 평가 가치는 5380억 원에 이른다. 또 지역의 제조업 기반 기업들이 스마트제조업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인공지능대학원을 유치했고, 올가을부터는 교과목 개발을 통해 탄소중립대학도 만들었다.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울산대 의대와 협력 중인데 이를 바탕으로 울산을 ‘한국판 켄들스퀘어’로 만들어 의약바이오의 메카로 발전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지자체와 협업도 중요할 것 같다. 6월 지방선거 이후 새롭게 출범한 지방 정부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나.김 총장=UNIST나 한전공대를 지원했던 것처럼 지자체에서 지역거점대학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새 정부 국정과제를 보면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라는 기조가 있고, 지자체와 지역대학 간 협력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새롭게 출범한 지방정부는 대기업 계열사 유치 등 경제적 발전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는데, 대학에서 연구를 통한 혁신적 기술을 지역 기업과 공유해 지역발전에 협력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인력 양성과 관련 기업 육성·유치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또 현재 우리 지역에 구성된 지자체와 각 기관 사이의 협의체나 기구가 좀 더 실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바꿔 투자협약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정 총장=지역과 대학은 공동운명체다. 지방과 중앙은 서로 동등한 관계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대학의 각종 사업들은 지자체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교육부와 정부가 국가발전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지자체와 국립대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에 나서 줄 것을 기대한다. 전남대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반도체 산업 육성에 부응하기 위해 지자체와 AI반도체특화단지 조성에 힘을 모으기로 확약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이른 시일 내에 광주시, 전라남도, 전남대가 상생 MOU를 추진할 예정이다.이 총장=UNIST는 개교하면서 울산시와 울주군에서 10여 년간 1500억 원 이상을 지원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이 빠르게 성장했기에 감사한 마음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 이제는 지금까지 성장한 것을 기반으로 지역과 함께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 UNIST는 에너지 및 화공·화학 분야에 주력해 강력한 연구팀들을 확보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해 지역발전뿐 아니라 국가발전에도 기여하고자 한다. 최근 몇 년간 UNIST는 AI대학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지역기업의 혁신을 도왔다. 전통적인 제조업 공단에 AI기술을 적용해 스마트 공단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또 반도체소재부품대학원을 출범시키면서 울산의 정밀화학기업들이 반도체 소재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대학에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 총장=대학교육은 더 이상 고등교육이 아니라 일반교육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교육의 안정된 재원을 만드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다. 14년 이상 등록금 동결로 고등교육 생태계는 위기다. 교육세를 전환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고등교육세를 신설하고 안정된 재원을 법령화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기회를 틈타 교육감이나 대학 총장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은 최악이라고 본다. 정치는 국회에서 해야 한다. 교육자들이 자꾸 교육부나 국회 앞에 가서 피켓 들고 시위하면서 난장판에 뛰어들게 만들면 안 된다. 김 총장=유치원, 초·중등생은 줄어가고 있는데, 세수와 연동된 재정지원 규모는 기계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유치원, 초·중등 교육에 대한 교육재정지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상위이지만, 정작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은 OECD 평균인 1%에도 미치지 못하는 0.6%에 불과하다. 고등교육부문 예산을 정책적으로 늘린다든지, 지방교육재정부문을 고등교육세로 전환하거나 고등교육세를 신설해야 한다.이 총장=UNIST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기관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의견은 없다. 다만 대학 재정운용의 측면에서 볼 때 연구자들의 인건비가 박하게 책정돼 있는 것은 늘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외국 대학들처럼 연구비를 지원받았을 때 간접비용 등을 폭 넓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대학의 재정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한다.―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교육부 장관도 새롭게 임명됐고, 국가교육위원회도 출범할 예정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김 총장=우리의 교육정책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자주 변경됐다. 교육정책 수립과 시행에 있어서도 국가 주도에 의한 하향식으로 진행된 적이 많다. 이제는 정부 성격에 따른 어젠다에 휘둘리지 말고 충실하게 현장에서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교육부는 단기 계획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여야가 합의해서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을 10년 정도로 임기를 늘려 오랫동안 비전을 가지고 풀어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이 총장=UNIST는 2015년 교육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교육부 아래에 있을 때 생겨난 행정적인 각종 위원회가 너무나 많다. 학내에 위원회가 100개 정도 된다. 결과적으로 규제가 너무 많고, 행정력 낭비가 심하다. 아직까지도 간접적으로 교육부 체제를 경험하고 있는 셈인데, 행정적인 면에서도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면 좋겠다. 정 총장=교육부 장관은 사회부총리다. 교육을 중심으로 정부의 여러 사회 통합 기능을 하라는 상징적 의미인데, 그동안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국가와 교육이 공동운명체라는 차원에서 인재를 키우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최근 반도체 인재 양성 관련 이슈 때문에 교육계가 시끄럽다.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 하나 가지고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지 못하듯, 다양한 학문 생태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 주체는 대학이다. 제발 취업률에 연연하지 않는 교육 정책을 펼쳐줬으면 한다.진행=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정리=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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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증권, 통합앱 ‘모니모’서 세전 年 5% RP 특판

    삼성증권은 애플리케이션(앱) ‘모니모’에서 증권 계좌를 신규 개설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특판 환매조건부채권(RP)을 판매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25일 밝혔다. 모니모는 4월 삼성 금융계열사의 공동 브랜드인 삼성금융네트웍스(삼성금융)가 선보인 통합 앱으로, 삼성증권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 4개사에서 제공하는 주요 서비스를 제공한다. 모니모에서 판매하는 삼성증권 특판 RP는 세전 연 환산금리 5.0% 상품이다. 만기는 3개월, 1인당 한도는 100만 원이다. 9월 20일까지 모니모에서 비대면으로 신규 계좌를 개설한 고객에 한해 9월 30일까지 판매가 진행된다. 선착순 5만 명의 한도가 소진되면 이벤트가 조기 종료될 수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투자자들에게 주식 이외의 투자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여러 특판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삼성증권은 채권 투자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연 4%대 수익률의 선순위 채권을 판매했는데, 17일 오전 9시 30분 판매 이벤트가 시작되자마자 27분 만에 준비한 300억 원 물량이 모두 판매됐다. 한편, 모니모 앱을 출시하며 선보인 ‘젤리 투자’ 서비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고객이 앱으로 로그인해 출석체크 등을 하면 보상으로 ‘젤리’를 지급받을 수 있는데, 젤리는 실제로 보험 가입이나 송금, 펀드 투자 등에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모니모 앱의 ‘젤리 투자’ 화면에서 투자할 펀드를 선택해 가입하고 ‘젤리 교환소’에서 젤리를 투자금액으로 환전하면 다음 날부터 자동으로 펀드에 투자된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젤리 투자는 젤리 하나당 평균 10원이라는 소액임에도 불구하고 모니모 앱 오픈 이후 약 두 달 만에 가입자 2만2000명을 유치했다”며 “이른바 ‘짠테크’ 열풍에 맞춰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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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아픈 시민 찾아 서울 방방곡곡 ‘이동상담소’ 달린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편안한 상태에서 1분간 정신을 집중해 보세요.” 12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멈춰 선 ‘마음안심버스’에 올라타자 미니 심리상담실이 펼쳐졌다. 상담실로 개조한 버스 안에는 심리검사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테이블이 놓인 작은 방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각각의 방에서 검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현재 심리 상태를 해석해 주는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심리검사는 자율신경계의 균형 정도를 분석해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하는 심박변이도(HRV·Heart Rate Variability) 검사다. 기자를 검사한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심리지원팀 소속 김서윤 씨는 “버스 엔진 소음 등 방해요소를 감안하면 컨디션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검사 결과 스트레스나 우울, 불안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되면 전문 기관에 인계한다. 김 씨는 “많을 땐 하루 3건을 인계한다”고 했다. 마음안심버스는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올해 3월 도입한 이동식 정신건강센터다. 버스에 타면 스트레스나 우울, 불안 등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검사를 무료로 해주고, 필요할 경우 전문가와 심리상담도 진행한다. 가상현실(VR) 기계로 명상이나 집중력 훈련 프로그램도 체험해 볼 수 있다. 마음안심버스는 정신건강 관리에 자칫 소홀할 수 있는 1인 가구 청년층이나 경제적 취약 계층이 밀집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찾아간다. 이날 버스가 멈춘 아파트 단지에서는 유독 중·장년층의 큰 관심을 받았다. 보통 하루에 70명 정도가 버스를 이용하는데, 이날은 점심시간이 지나자 20여 명이 버스 주변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스트레스 측정을 받고자 줄을 선 이모 씨(67)는 “가슴이 답답하고,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두근할 때가 있다. 소화도 잘 안 된다. 병원에 가긴 부담되고,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서 와보게 됐다”고 했다. 마음안심버스 앞에 강북구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마련한 ‘음주상담’ 코너도 인기 만점이었다. 특히 남성 노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음주를 몇 번 하는지, 한 번 음주를 시작하면 얼마나 마시는지 등 질문지에 답을 하면 이를 토대로 상담이 이뤄진다. 강북구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일주일에 매일 술을 마신다고 답해 놓고도 알코올의존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객관적으로 음주량을 체크해 보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마음안심버스는 일주일에 1회 또는 2회씩 서울의 각 구마다 특정 지역을 정해 출동한다. 아동, 청년,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이 밀집한 지역에 우선적으로 배정한다. 최근에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조직 내에 정신건강 서비스가 필요한 기업이나 단체에서도 버스 신청이 부쩍 늘었다. 군부대, 대학생 기숙사, 호텔 등에서도 버스를 신청해 앞으로 2개월 뒤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개인의 정신건강 회복 등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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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몰입 금지”라면서도 MBTI에 빠진 한국[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모두가 실천하려는 듯 한국에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유형 검사에 대한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MZ세대를 중심으로 MBTI의 16개 성격 유형으로 대화할 줄 모르면 ‘아싸(아웃사이더)’가 돼버리는 소재가 됐다. 국가별 구글 트렌드 키워드 검색을 살펴보면 한국의 MBTI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다. 한국은 2018년부터 MBTI를 많이 검색한 국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1년만 봐도 1위인 한국의 검색량을 100으로 보면 다음은 이란(14), 홍콩(14), 싱가포르(13), 브라질(13) 순이다. 한국이 압도적 1위인 것이다. 각 성격 유형을 ‘엔프피(ENFP)’ ‘잇프제(ISFJ)’ 등 우리말로 표기하는 ‘한국화 현상’도 나타났다. 100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MBTI는 왜 지금 한국에서 ‘인싸템(인사이더+아이템)’이 된 걸까.●약 100년 전 태동… 한국에는 32년 전 상륙 MBTI는 1920년대 미국의 모녀 캐서린 쿡 브릭스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로부터 태동했다. 어머니 브릭스가 성격 유형 분류 작업을 시작했고, 딸 마이어스가 1944년 검사 문항을 체계화했다. 한국에는 1990년 김정택 신부가 선보였다. MBTI는 스위스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유형론’을 이론적 배경으로 한다. 융은 1921년 발표한 ‘심리 유형(Psychological Types)’에서 인간의 성격이 △외향(E) vs 내향(I) △감각(S) vs 직관(N) △사고(T) vs 감정(F) 등 6가지 차원으로 나뉜다고 봤다. 마이어스는 융의 6가지 지표에 △판단(J) vs 인식(P) 지표를 더해 MBTI 문항을 만들었다. 정식 검사는 93개 문항으로 이뤄져있고, 각 대극(對極)에 놓인 두 성격 유형 중 더 가까운 곳에 해당하는 알파벳 4개의 조합으로 검사 결과가 나온다. 외향형(E·Extraversion)과 내향형(I·Introversion)은 주의의 초점이나 에너지의 방향이 외부와 내면 가운데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감각형(S·Sensing)과 직관형(N·iNtuition)은 정보를 수집할 때 보고 들은 구체적 사실에 기반 하는지, 추상적 연관성을 보며 큰 그림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두는지에 따라 다르다. 사고형(T·Thinking)과 감정형(F·Feeling)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 논리적 절차를 따지는지,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지에 따라 갈린다. 판단형(J·Judging)과 인식형(P·Perceiving)은 사안에 대해 질서정연하며 상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지, 유연하고 즉흥적으로 대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비전문가 손에 탄생한 MBTI를 둘러싼 논란들 MBTI는 심리학, 정신의학 전문가가 아닌 이들에 의해 고안됐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뒤따랐다. 브릭스는 미시간농업대학을 나와 가정주부로 살았고, 마이어스는 스워스모어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마이어스는 소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살인’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브릭스는 마이어스가 어렸을 때 홈 스쿨링으로 딸을 교육하면서 성격 유형에 따른 교육법에 관심을 가졌다. 융의 심리유형론이 발표된 이후 브릭스는 본격적으로 성격 유형 분류 작업을 했고, 마이어스가 이어 받아 검사 문항을 만들었다. MBTI는 산업화 시대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도 노동시장에 뛰어들면서 이들을 빠르게 분류해 직무에 배치해야 하는 필요가 생겨났다. 정부 기관, 군 등에서도 MBT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MBTI는 “지나치게 이분법이다” “성격이 16가지로 나뉜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따랐다. MBTI 개발 과정을 비판적으로 들여다 본 책 ‘성격을 팝니다’의 저자 메르베 엠레는 “각자의 개성을 뭉개 버리고 사전에 결정된 몇몇 유형으로 인간의 행동을 수평화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봉쇄해 버린다”고 비판했다. 비판을 의식한미국의 마이어스&브릭스재단에서는 윤리 가이드라인에 “구직자 선별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불법”이라며 “검사자가 성격 유형 정보만으로 특정 진로, 인간관계 등을 조언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적당히’ 복잡한 MZ세대의 놀이 문화로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이고 명료한 해석을 제공하는 MBTI는 가장 대중적인 심리검사 도구가 됐다. 한국의 MBTI 주 소비층인 MZ세대는 이런 특징을 활용해 일종의 놀이 문화를 만들어냈다. 알파벳 4개로 ‘나’와 ‘너’를 한 마디로 규정해주는 명료함에 매료된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관계성에 대해 해석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더해지면서 ‘적당히’ 복잡하고 응용이 무궁무진한 놀이 콘텐츠가 됐다. 보통의 심리검사는 비밀 보장이 원칙이지만, MZ세대에게 성격 유형 4자리는 일종의 명함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 프로필에 자신의 MBTI 유형을 거리낌 없이 공개한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 MBTI 궁합을 맞춰 보는 것은 일상이다. 특정 성향끼리 모여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발하다. 성격 유형이 새겨진 인형, 스티커 등 굿즈를 사는데 기꺼이 지갑을 연다. 대학생 이소연 씨(22)는 “MBTI는 공사 구분 없이 생활하는 어느 순간에나 등장한다”며 “친구, 애인 궁합 보는 건 기본이고,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발표를 시키면 ‘저는 I성향이라 못 하겠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이들은 MBTI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할 뿐 아니라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생산·유통한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는 성격 유형별 ‘연봉 순위’ ‘반하는 이성 분위기’ ‘애인과 싸웠을 때 반응’ ‘놀림 많이 받는 순위’ 등 일반인들이 만든 콘텐츠가 상당하다. 이런 온라인 게시물에는 “소름 돋게 잘 맞는다” “이래서 MBTI를 안 믿을 수 없다”는 댓글이 수십, 수백 개씩 달린다. MBTI가 MZ세대에게 인기를 끌다 보니 과도한 마케팅 소재가 되기도 한다. 자동차, 의류, 식품 기업 등이 ‘성격 유형별 추천 상품’을 판다. 하지만 대부분이 구체적 연구 결과가 뒷받침 되지 않는 것들이다. 최근에는 성격 유형별 선호하는 이성 외모 취향을 매칭해 보여주는 소개팅 앱도 등장했다. 얼마 전에는 일부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특정 MBTI 성격 유형은 지원하지 말라거나, 혹은 특정 유형을 선호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공기관 채용 공고에서 조차 ‘외향형(E)을 선호한다’는 글이 버젓이 올라온다. 7년차 취업 컨설턴트인 이아라 씨(35)는 “취업준비생들이 특정 성격 유형이 아닌데, 해당 기관에 지원해도 되는지 묻곤 한다”며 “예민한 채용 문제에서 MBTI로 사람을 선별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 관계 조정에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 “MBTI를 통해 상품 취향을 맞추거나, 선호하는 이성 외모를 구분할 수 있다는 학술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7일 서울 강서구 한국MBTI연구소에서 만난 김재형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은 온라인에 떠도는 각종 MBTI 관련 콘텐츠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17년째 MBTI를 연구하고 있는 그는 검사 타당도와 관계없는 영역에까지 MBTI가 오·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했다. 김 부장은 “비전문가들이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식으로 만든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MBTI 검사로 알려진 무료 간이검사는 사실 정식 검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김 부장은 “가장 유명한 무료 검사인 ‘16 Personalities’는 정식 MBTI 검사 문항과 같은 문항이 전혀 없고, 성격 유형 지표도 알파벳만 동일할 뿐 다른 단어를 쓴다”며 “일반인들이 간이검사 문항을 임의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신뢰도와 타당도가 검증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이런 아류 검사의 난립으로 정식 검사 시행 수가 MBTI 유행 이전과 비교해 크게 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대부분이 온라인 간이검사 결과를 굳게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MBTI가 유행을 지나 건강한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자정 작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MZ세대들은 학교에서 청소년용 MBTI 검사를 이미 경험해본 세대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교류가 막히면서 쉽고 빠르게 상호작용하고 상대의 정보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MBTI가 크게 주목받게 된 것”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확한 정보들은 도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MBTI는 상대를 낙인찍는 목적이 아니라 가정이나 조직에서 갈등 관계 해소 도구로 사용될 때 빛을 발할 것”이라며 “성격 유형이 절대 불변하는 것으로 믿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성격도 나이와 환경 따라 변한다? 지난해 학술지 ‘심리유형과 인간발달’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다. ‘한국인 대표 표본의 MBTI 분포 연구’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MBTI 정식 검사를 한 만 16~59세 한국인의 성격유형 분포를 분석한 자료다. 실제 인구 비례를 고려해 1만9070명을 표본 추출했다. 현재까지 나온 한국인 관련 MBTI 분포 자료 중 가장 정확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각 성격 유형 지표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성격 유형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 발달 주기에 따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면서 변해간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감각(S), 직관(N) 지표는 만 20세 전에는 5대 5 수준이었지만, 이후에는 7 대 3까지 벌어졌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직관(N) 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더 신뢰하는 감각(s) 유형 쪽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판단(J), 인식(P) 지표도 만 16세에는 3대 7 비율이었지만, 만 59세에는 7대 3으로 역전됐다. 성인기에 조직 생활을 거치면서 점차 예측가능하고 질서정연한 판단(J) 유형을 추구하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향(E), 내향(I) 지표의 경우 1990년 표준화 데이터와 비교해 볼 때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에는 30~50대 연령에서 I 비율이 66%에 달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두 지표의 비율이 5대 5로 비슷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성인기 대외 활동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선호 지표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은 “융은 성격을 씨앗으로 봤다. 성격은 생애 발달 주기, 환경 등과 상호작용하며 뭔가가 되어가는 과정이지 처음부터 완전체가 아니다”며 “MBTI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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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일별로 투자 포인트 쏙쏙, 삼성證 ‘리서치 포 유’ 론칭

    삼성증권은 국내외 투자 종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존 유튜브 방송을 확대 개편한 유튜브 라이브 쇼 ‘리서치 포 유’를 론칭한다고 4일 밝혔다. 삼성증권 공식 유튜브 채널인 ‘삼성팝’을 통해 평일 오후 4시에 진행하며, 실시간 채팅을 통해 시청자들의 투자 관련 질문에 답을 해 줄 예정이다. 매주 월요일에는 한 주간 눈여겨볼 만한 종목 10선을 소개하는 ‘주간 유망종목’이 방송된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해외증시의 주요 이슈와 대응전략을 살펴보는 ‘미스터 해외주식’을, 수요일에는 시장대응전략을 전달하는 ‘마켓 CHEF’를 선보인다. 금요일에는 글로벌 성장산업의 경향성을 짚어주는 ‘텍톡(Tech Talk)’이 방송된다. 삼성증권 애널리스트의 겉모습과 목소리를 복제해 만들어낸 가상 캐릭터인 버추얼 애널리스트가 진행하는 방송들도 ‘리서치 포 버추얼’로 확대 개편해 선보인다. 삼성증권은 올해 5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상 캐릭터가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인 ‘리서치 하이라이트’ ‘미국주식 주간거래 체크포인트’ ‘미국주식 주간거래 스냅샷’을 시작했다. 이 콘텐츠들은 5월 중순 론칭 후 현재까지 누적 조회수 50만 회를 넘겼다. 인기에 힘입어 이달부터는 ‘리서치 하이라이트 글로벌’을 추가 편성했다. 삼성증권은 ‘리서치 포 유’ 론칭 기념 경품 이벤트를 8일까지 진행한다. ‘리서치 포 유’ 홍보 영상을 보고 설문 링크를 통해 퀴즈를 맞힌 시청자 100명을 추첨해 기프티콘을 지급한다. 또 실시간 방송 중에 댓글을 달면 추첨으로 50명에게 네이버포인트 등을 선물로 준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종합 리조트에서 숙박, 레저, 식사를 모두 즐기듯 삼성증권 유튜브 채널에서 투자에 필요한 모든 양질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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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癌 환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바라며”

    “혀를 잘라야겠는데요.” 의사에게서 설암(舌癌) 4기라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은 지 1년 5개월이 지났다. 한유경 씨(28·사진)는 혀의 절반 이상을 절제한 뒤 거기에 허벅지 근육을 떼어내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어 글로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그 투병일기를 엮어 에세이집 ‘암병동 졸업생’을 자신이 차린 독립출판사에서 최근 펴냈다. 1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한 씨는 “아프다고 집에만 숨어 지내는 이들에게 ‘내 삶을 공개하는 건 두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첫 출근을 앞둔 평범한 20대이던 한 씨의 삶은 지난해 5월 송두리째 바뀌었다. 암은 혀와 목, 허벅지에 수술 흔적을 남겼다. 한 씨의 옷장은 목과 다리를 가릴 수 있는 옷들로 채워졌다. 아직 항암 치료가 남아있다.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허벅지 근육을 이식한 혀는 말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지만 미각은 느끼지 못한다. 한 씨는 “먹는 즐거움을 잃은 게 가장 아쉽다”며 “수술 자국 때문에 앞으로 웨딩드레스는 입을 수 있을지, 수영장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고 했다. 암 때문에 잃은 것이 많지만 얻은 것도 적지 않다. 한 씨는 3개월에 한 번씩 유서를 새로 쓴다. 그는 “가족과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미안함, 고마움, 칭찬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며 “작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물건을 누구 앞으로 남길 건지 고민하다 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투병일기를 책으로 내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크게 반대했다. 하지만 한 씨에게 책 출간은 ‘아프면 숨어 지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었다. 그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항암 및 우울증 치료 이야기를 올렸더니 다른 암 환자들이 ‘공감한다’ ‘멋지다’며 응원해줬다. 앞으로 암 병동을 ‘졸업하실’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쉽게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성을 없앤 잉크와 친환경 종이를 써서 책을 제작한 것도 항암 치료를 받으면 화학물질에 예민해지는 이들을 배려해서였다. “암을 이겨낸 사람이든, 이겨내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 멋진 사람이란 걸 스스로가 알았으면 좋겠어요. 세상 사람들은 암 환자를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로 보지만 사실 다 이겨내고 더 강한 사람이 되어 나오는 거니까요.”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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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여성노비-기생도 재산-폭력 소송 제기했다

    경오년 2월 여종 말금은 수령에게 죽은 남편의 사촌인 승운을 고발하는 소지(所志)를 제출했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경작해온 남편의 땅을 승운이 땅문서를 조작해 빼앗으려 한다는 것. 말금은 소지에서 “이 과부를 도우셔서 제 땅을 빼앗으려는 승운의 못된 계략을 멈춰 달라”고 호소한다. 수령은 판결에서 “원고의 사실이 확인되면 승운을 체포하라”고 명했고, 승운의 문서 조작이 확인돼 말금은 땅을 되찾았다. 소지에서 언급한 경오년은 1750년, 1810년, 1870년 중 한 해로 추정된다. 조선시대는 신분 세습과 남녀 차별이 엄격한 사회였지만, 신분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소송 제도가 있었다. 모든 신분의 여성이 법적 주체가 돼 관아에 소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지수 미국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44)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소지 600여 건을 분석해 학술서 ‘정의의 감정들’(너머북스·사진)을 최근 출간했다. 김 교수는 양반, 평민, 노비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작성한 소지를 분석했다. 지방의 도와 군현에서 제기된 소지 155건 중 한글로 쓴 것도 30건이 남아있다. 남성 중심의 한자 문화에서 벗어나 있던 여성들이 한글로 소지를 쓴 것이다. 양반 여성은 입양으로 인한 장자의 권리, 재산 분배, 노비 소유 등에 대해 소송을 주로 제기했고, 하층민 여성들은 세금, 토지 분쟁, 채무, 구타 등에 대한 것이 많았다. 양반인 부인 임씨는 1652년 전라도 관찰사에게 가문의 계승과 재산 문제에 대해 소지를 제출했다. 죽은 남편이 노비 출신 등의 첩에게서 난 딸이 둘 있지만, 나중에 대를 잇기 위해 들인 양자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충청도 공주의 평민 정조이는 전라도 금산의 수령에게 소지를 제출해 시아버지 묘지 앞에 조상의 시신을 몰래 묻은 이순봉이라는 자를 고소한다. 당시 묘지 자리를 빼앗는 것은 토지를 빼앗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송할 권리는 기생에게도 있었다. 1705년 제주도의 기생 곤생은 바다를 건너 전라도 관아까지 나와 억울하게 죽은 세 딸에 대해 호소했다. 제주 수령 이희태가 개인적 원한으로 자신의 딸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고문을 하다 딸들이 모두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안은 숙종에게까지 보고됐고, 숙종은 이희태를 유배 보냈다. 누구나 소송할 수는 있었지만, 역시 차별은 존재했다. 소송 제기자가 여성이라서 무시당하고, 한자가 아닌 한글로 소지를 작성해서 무시당한 경우도 많았다. 김 교수는 “현대적인 ‘평등’의 관념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신분 경계 내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박탈당한 백성들에게 최소한 국가에 소송을 제기할 동등한 기회는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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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환경파괴라니… 아파트는 억울해

    도시의 난개발 문제를 지적할 때 성냥갑같이 빼곡히 지은 아파트가 늘 등장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인구 절반이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파트는 여전히 ‘환경적이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10년 넘게 이라크 베트남 인도 등 세계의 토목건설 현장에서 일한 저자는 ‘인공적인 것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를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키는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 댐, 터널, 교량 등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도심의 아파트에 사는 것이 교외의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보다 환경을 덜 오염시킨다고 주장한다. 교외에서 도심으로 장거리 출퇴근하는 자동차에서 내뿜는 온실가스가 도심 아파트에 살면서 직장까지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고, 아파트 인근 대중교통 시설이 더 잘돼 있어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는 것. 저자는 스위스가 댐 1만8000개를 지어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알프스산맥에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을 뚫어 산을 돌아서 이동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양을 줄였다고 주장한다. 책은 인공 건축물에 대한 근거 없는 거부감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아파트 투기, 건축 허가 시 졸속으로 진행되는 환경평가, 인구 과밀화에 대한 부작용 등은 여전히 우리가 해결할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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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은 조선-일본만의 전쟁 아냐…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봐야”

    “‘경략복국요편(經略復國要編)’은 명나라가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맥아더 장군이 쓴 ‘6·25전쟁기’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구범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51)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 총괄 지휘관을 지낸 송응창(1536∼1606)의 ‘경략복국요편’을 번역한 ‘명나라의 임진전쟁’(국립진주박물관) 1, 2권이 출간됐다. 국립진주박물관의 국내외 임진왜란 관련 사료 국역사업의 하나로 명나라 관점에서 임진왜란을 기록한 자료의 국내 번역은 처음이다. 번역을 맡은 한중관계사료연구팀 7인을 9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구 교수를 좌장으로 하는 연구팀은 김창수 충북대 산학협력단 연구원(40), 박민수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교수(41), 정동훈 서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39)와 서울대 역사전공 박사과정 이재경(34) 김슬기(32) 서은혜 씨(30) 등이다. 경략복국요편은 임진왜란 때 전선의 배후에서 병력과 물자 조달을 총괄하는 문관을 뜻하는 경략을 지낸 송응창이 1595년경 펴냈다. 조선 국왕과 관료, 북경의 황제와 고관, 전선의 사령관들과 주고받은 공문서와 개인 편지들로 이뤄져 있다. 빗발치는 병력 지원 요청과 미지근한 명나라 조정의 반응 사이에서 고뇌하는 송응창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정 교수는 “국내에서는 임진왜란을 조선과 일본의 전쟁으로만 보는데 사실 명나라가 큰 축을 차지했다. 연구 관점을 동아시아로 넓힐 필요가 있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명나라 공문에 쓰인 행정용어 해독이 까다로워 1, 2권 번역에만 꼬박 2년이 걸렸다. 3∼5권은 내년에 나온다. 박 교수는 “이번 번역작업으로 조선시대 사료와 역사적 사실들을 대조해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송응창은 일본과 강화해 전쟁을 끝내려는 행보를 보여 선조는 물론 명나라 조정 강경파에게 주화론(主和論)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은 발간사에서 “송응창이 명 조정 일각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엮은 책”이라며 “(그럼에도) 각종 전투와 강화 교섭의 진행을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책에서는 명군(明軍)의 목적이 단지 조선을 돕기 위함이 아니라 왜군의 명나라 본토 침략을 막는 것에 있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임진왜란을 항왜원조(抗倭援朝·왜적의 침략에 맞서 조선을 도움)라 칭하지만 사실은 조선을 방어막 삼아 명나라를 지키려 한 의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송응창은 ‘일본을 차단해 곧바로 산동(山東) 요동(遼東) 등으로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조선의 힘이다’ ‘전라, 경상을 지키지 못하면 조선을 잃는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한다. 이재경 씨는 “송응창에게 내려진 명령은 ‘왜를 막아라. 그리고 가능하면 조선을 도와줘라’ 정도였다. 철저하게 명나라 방어가 목적”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이 책이 임진왜란의 전모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 교수는 “명군이 군량을 비롯한 군수물자 확보를 얼마나 중시했고 이를 마련하는 데 얼마나 곤란을 겪었는지 등 그동안 확인 안 된 내용을 많이 알게 됐다. 많은 사람이 더 노력해야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빙산의 일각에 접근 가능하도록 했다는 데 이 책 번역의 의의가 있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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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대 앞을 왜 ‘잔다리’라고 부르는 걸까?

    ‘잔다리’ ‘오름’ ‘새절’….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정작 왜 이런 독특한 이름이 붙여졌는지 설명하기는 어려운 지명들이다. 우리 땅 이름의 어원을 설명한 책 ‘우리말 땅 이름’(도서출판 b) 2권이 나왔다. 저자는 등단 시인이자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은퇴한 윤재철 시인(67)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소됐지만, 매년 가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는 인디음악 축제 ‘잔다리 페스타(Zandari Festa)’가 열린다. ‘잔다리’는 영어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고, ‘잔다리(里)’로 보이기도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의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잔다리는 마포구 서교동과 동교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이곳에서 한강을 가려면 작은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이를 ‘잔다리’라 불렀고, 한자 표기로는 ‘세교(細橋)’가 됐다. 훗날 동쪽 잔다리는 ‘동교’, 서쪽 잔다리는 ‘서교’가 됐다. 서울 강남구와 은평구의 신사동은 동네 이름은 같지만 지하철역은 각각 ‘신사’ ‘새절’이다. ‘고려사’(1202년) 등에 따르면 강남구 신사동은 한강 모래 벌이 있어 ‘사리(沙里)’ ‘사평(沙坪)’으로 불렸다. 인근 ‘신촌’이라 불린 옛 지명의 ‘신(新)’과 모래의 ‘사(沙)’가 합쳐져 ‘신사’가 됐다. 반면 은평구 신사동은 옛날에 이곳에 ‘새로운 절(新寺)이 있었다’고 전해진 데서 유래해 ‘새절’로 불렀고 지하철 역 이름이 됐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往十里)의 지명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도성 위치를 정하러 다닐 때 어느 노인으로부터 ‘10리를 더 가라’는 말을 들었다는 설화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고려 말 성리학자 이색(1328∼1396)이 지은 시에는 이미 ‘왕심(旺心·왕성한 중심)’이란 지명이 등장한다. 다른 한자로 ‘왕심(枉尋)’을 써서 무학대사가 ‘가서 찾아본 동네’에서 유래했다는 설화도 있다. 제주에는 독특한 땅 이름이 유독 많다. 소형 화산체인 ‘오름’은 ‘오르다’에서 유래됐다. 오래된 제주 방언으로, 조선시대 김상헌의 ‘남사록’(1601년)에 ‘오름’을 한자 음으로 표현한 ‘오로음(吾老音)’이라는 기록이 있다. 산책 코스로 알려진 ‘올레’는 원래 의미와 크게 달라졌다. 원래 올레는 제주 주택 구조에만 있는 ‘큰길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좁은 진입로’를 의미하는 제주 말이다. 산이 많은 지역에서는 유독 부엉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전남 장성군 부흥리는 ‘부엉부엉’에서 따와 한자로 ‘부흥(富興)’을 쓰다가 ‘부흥(扶興)’으로 바꿨다. 발음을 줄여 ‘봉(鳳)’이 된 사례는 대전 유성구 봉명동, 충남 공주시 봉갑리, 경북 칠곡군 봉암리 등이 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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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대 앞을 ‘잔다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잔다리’ ‘오름’ ‘새절’….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정작 왜 이런 독특한 이름이 붙여졌는지 설명하기는 어려운 지명들이다. 우리 땅 이름의 어원을 설명한 책 ‘우리말 땅 이름’(도서출판 b) 2권이 나왔다. 저자는 등단 시인이자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은퇴한 윤재철 시인(67)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소됐지만, 매년 가을 서울 마포구 홍대 앞에서는 인디음악 축제 ‘잔다리 페스타(Zandari Festa)’가 열린다. ‘잔다리’는 영어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고, ‘잔다리(里)’로 보이기도 한다. 국토지리연구원의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잔다리는 마포구 서교동과 동교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이곳에서 한강을 가려면 작은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이를 ‘잔다리’라 불렀고, 한자 표기로는 ‘세교(細橋)’가 됐다. 훗날 동쪽 잔다리는 ‘동교’ 서쪽 잔다리는 ‘서교’가 됐다. 서울 강남구와 은평구의 신사동은 동네 이름은 같지만 지하철역은 각각 ‘신사’ ‘새절’이다. ‘고려사’(1202년) 등에 따르면 강남구 신사동은 한강 모래벌이 있어 ‘사리(沙里)’ ‘사평(沙坪)’으로 불렸다. 인근 ‘신촌’이라 불린 옛 지명의 ‘신(新)’과 모래말의 ‘사(沙)’가 합쳐져 ‘신사’가 됐다. 반면 은평구 신사동은 옛날에 이 곳에 ‘새로운 절(新寺)이 있었다’고 전해진데서 유래해 ‘새절’로 불렀고 지하철 역 이름이 됐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往十里)의 지명 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도성 위치를 정하러 다닐 때 어느 노인으로부터 ‘십리를 더 가라’는 말을 들었다는 설화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고려 말 성리학자 이색(1328~1396)이 지은 시에는 이미 ‘왕심(旺心·왕성한 중심)’이란 지명이 등장한다. 다른 한자로 ‘왕심(枉尋)’을 써서 무학대사가 ‘가서 찾아본 동네’에서 유래했다는 설화도 있다. 제주에는 독특한 땅 이름이 유독 많다. 소형 화산체인 ‘오름’은 ‘오르다’에서 유래됐다. 오래된 제주 방언으로, 조선시대 김상헌의 ‘남사록’(1601년)에 ‘오름’을 한자 음으로 표현한 ‘오로음(吾老音)’이라는 기록이 있다. 산책코스로 알려진 ‘올레’는 원래 의미와 크게 달라졌다. 원래 올레는 제주 주택구조에만 있는 ‘큰 길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좁은 진입로’를 의미하는 제주 말이다. 산이 많은 지역에서는 유독 부엉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전남 장성군 부흥리는 ‘부엉부엉’에서 따와 한자로 ‘부흥(富興)’을 쓰다가 ‘부흥(扶興)’으로 바꿨다. 발음을 줄여 ‘봉(鳳)’이 된 사례는 대전 유성구 봉명동, 충남 공주시 봉갑리, 경북 칠곡군 봉암리 등이 있다.최고야기자 best@donga.com}

    •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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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말 더듬던 외톨이 소년, 백악관 앞에 서다

    2020년 미국 대선의 승자가 유력시되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자서전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지켜야 할 약속) ‘약속해 주세요, 아버지’(약속해 주세요)가 국내에서 나란히 출간됐다. ‘지켜야 할 약속’은 2007년, ‘약속해 주세요’는 2017년 미국에서 나왔는데 올해 뒤늦게 번역된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조력자라는 인식이 강할 뿐, 그의 정치인생 전반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적다. 두 책에는 바이든의 어린 시절과 정치 입문, 아들의 죽음, 부통령으로서의 삶, 생사를 넘나들었던 뇌동맥류 수술 등 질곡과 야망의 인생사가 담겨 있다. ‘지켜야 할 약속’은 2007년까지 그가 살아온 인생 전반을 돌아본다. ‘왕따’당했던 암울했던 어린 시절, 겨우 구애에 성공한 재혼 과정 등 개인사까지 진솔한 어조로 소개한다. 그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왜소한 체격에 말까지 더듬어 놀림을 받는 외톨이였다. 스스로도 “나는 모스부호처럼 말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마틴 루서 킹 목사,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등이 들어와 있어 정치를 향한 야망으로 부풀게 했다. 그는 로스쿨 진학 후 짧은 변호사 생활을 접고 1972년 29세에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당선돼 2009년까지 36년간 연방상원의원을 지냈다. 1988년,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두 번 다 중도하차했다. 미미한 존재감으로 2008년 경선을 중도 포기한 후에는 스스로도 정치인생에 큰 반전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약속해 주세요’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조력자로 살았던 ‘부통령 바이든’과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바이든’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부통령 시절의 외교 이야기와 아들을 떠나보낸 아픈 가정사가 버무려져 인간적이면서도 국정운영 능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함께 담아냈다. 아들 보는 델라웨어주 법무부 장관과 미 육군 대장을 지낸 유망 정치가였지만, 2013년 뇌종양 진단 후 2년 만인 2015년 5월 세상을 떠났다. 보는 생전에 아버지의 대선 출마를 원했다. 하지만 2016년 폴리티코에서 “2016년 (대선 출마) 계획을 죽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고 보도하자 출마 계획을 접었다. 아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오명을 얻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부통령을 지내며 ‘조력자’ 혹은 ‘2인자’ 이미지가 각인된 그에게 ‘카리스마가 없다’는 비판은 쓰라린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9∼2017년 부통령 경험은 꺼져가던 정치인생의 불씨를 살려준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이 분명하다. 벌써부터 국내에서는 그동안 그가 해온 외교적 발언들로 본 미국의 한반도 정책 전망을 내놓기 바쁘다. 이 책에는 인간 바이든의 모습 외에도 부통령 시절 쌓은 외교적 신념들에 대해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 부분이 많아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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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정권, 공론장에 장벽 쌓아 민주주의 훼손”

    사회학자로 살다 3년 전 돌연 장편소설 두 편을 썼다. 학자로서 40권 넘는 책을 썼으나, 시대가 흘러가면 지식도 함께 흘러가버려 공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64)가 ‘인민의 탄생’(2011년), ‘시민의 탄생’(2013년)에 이어 7년 만에 ‘국민의 탄생’(민음사)으로 ‘탄생’ 3부작을 완결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송 교수는 “‘탄생 시리즈’는 10년이 넘는 동안 탄탄한 연구 끝에 쓴 책이라 공허함이 들지 않는 책이다. 다른 책을 쓰더라도 늘 이 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조선 말기와 일본 제국주의 시기 한반도의 공론장이다. 종교, 정치(사회운동), 매체(문예) 세 가지 축의 공론장에서 나타난 인민, 시민, 국민 의식의 발전 양상을 좇는다. ‘인민의 탄생’에서는 한글 확산으로 평민 사이에 담론장이 발생해 인민으로 발전한 과정을, ‘시민의 탄생’에서는 인민을 넘어 근대 시민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번 책에서는 1905∼1919년 가혹한 일제 탄압 아래서 암암리에 싹튼 시민의식에 민족주체성이 더해지며 국민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송 교수는 고종이 승하하면서 ‘인민’들에게 ‘망해가는 나라를 우리가 붙잡아야 한다’는 주체의식이 생겼다고 봤다. 문예와 종교의 공론장에서 꿈틀댄 시민의식이 민족성 및 역사성과 만나 저항운동으로 변모해 3·1운동에서 꽃을 피웠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민과 역사성이 결합하면 국민이 된다”며 “역사적으로 시민사회에서 국민국가로 진입할 땐 혁명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한반도에선 3·1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송 교수는 당시의 소설에서 문예 공론장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송 교수는 “일제 탄압으로 소설밖에 읽을 게 없었다. 당시 1700만 인구 중 20%는 신소설을 봤을 것”이라며 “독서를 통해 대화가 오가며 공론장이 형성됐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시민의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광수의 소설 ‘무정’(1917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중요한 공론장의 축인 종교에 대해 송 교수는 ‘시민종교’라고 명명했다. 송 교수는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설명했듯 인간종교가 성(聖)이라면, 시민종교는 속(俗)이다. 종교를 세속화한 것이 시민윤리의 발현”이라며 “종교 공론장은 시민을 배양하는 인큐베이터였다. 여기에 민족정체성이 더해져 항일운동, 즉 3·1운동의 일등공신이 됐다”고 했다. 이 시리즈를 집필해온 13년간 공론장에 천착한 그에게 현재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어떤 모습일까. 송 교수는 “문재인 정권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정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장벽을 쌓았다”며 공론장의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지향과 경력이 동질적인 성(청와대) 안의 집권세력이 1980년대부터 지켜온 ‘그들의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며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외부 공격이 들어오면 문을 닫아버린 박근혜 정부와 결과적으로 모양이 똑같아졌다”고 비판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탄생 시리즈 4편을 기대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송 교수는 “아직 이르다”고 했다. 그는 “6·25전쟁 이후 다종교 사회로의 발전 등을 고려할 때 이후의 공론장을 연구하는 건 엄청난 과제”라며 “구한말 개화사상가 유길준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볼까 한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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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비로 세계 도서관 300곳 탐방한 관장님

    조금주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관장(52)은 자비를 들여 세계의 도서관을 300곳 넘게 방문했다. 여행에 나서면 관광지는 뒷전이고 도서관만 찾아다녔다. 2일 서울 강남구 도곡정보문화도서관에서 만난 조 관장은 “외국 도서관의 좋은 점을 한국 사서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세계의 도서관 문화를 소개하는 ‘내 마음을 설레게 한 세상의 도서관들’(나무연필)을 펴냈다. 그가 본격적으로 도서관 탐방에 나선 것은 2015년. 그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그동안 보내드린 생활비를 모아 꽤 큰돈을 남긴 것. 이 돈을 의미 있게 쓰자고 고민한 결과가 도서관 여행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한국과 미국에서 10년가량 도서관 사서를 했던 조 관장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2017년 4월 관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유럽 미국 아시아의 도서관을 부지런히 다녔다. 취임 후에도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명절 연휴에 연차를 붙여 각국 도서관을 찾았다. 재난정보 시스템을 갖춘 일본 도서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한 대만 도서관, 쇼핑몰보다 큰 중국 도서관 등 입이 떡 벌어지는 곳이 많았지만 그의 마음을 유독 잡아끈 곳은 ‘유미디어(Youth+Media)실’을 갖춘 미국과 유럽의 도서관이었다. 유미디어실은 10∼15세 전용 공간으로 또래끼리 모여 끼를 발산하고 쉴 수 있는 시설이 망라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미 일리노이주 볼링브룩시의 파운틴데일 공공도서관은 영상과 오디오 장비를 대여해주며 창작활동을 독려하고, 시카고의 헤럴드워싱턴 도서관센터는 정숙을 강조하는 대신 밴드 연습실을 제공한다. 노르웨이 비블로 트위엔 도서관에서는 요리를 해먹고 잘 수도 있다. 조 관장은 “국내 도서관에도 청소년 공간을 만드는 게 도서관 여행의 최종 목표가 됐다”고 했다. 그가 미 도서관을 찾았을 때 “강남구의 대표 도서관”이라고 소개하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덕에 호화 도서관에서 온 줄 알고 사서들이 격하게 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구 4만∼8만 명의 소도시에서도 도서관세(稅)를 걷고 기부를 받아 예산이 풍족한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강남구민 1000명의 서명을 받아 강남구의 예산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한국은 아이들이 불행하잖아요. 교육열 높은 강남구가 더 심할 겁니다. 학원을 대체할 수 있으면서 부모가 안심하고 보낼 곳은 도서관이 유일해요. 당장은 돈이 들더라도 시설에 투자하고, 전문가 멘토까지 상주하면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꿈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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