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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이달 말부터 가상통화의 신규 가상계좌 발급을 사실상 허용하면서 정부 규제의 강도가 완화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발언으로 투자자들이 집단 반발하자 실명확인을 전제로 신규 투자자 유입을 허용키로 한 셈이다. 12일 오전까지만 해도 주요 은행들은 당초 22일로 예정했던 가상통화 실명확인 거래 시스템 도입을 연기하면서 “언제 도입할 수 있을지 기한이 없다. 정부의 규제 방침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빗썸, 코빗, 이야랩스 등 3개 가상통화 거래소 가상계좌에 대한 입금을 15일부터 중단한다는 공문을 각 거래소에 보내 사실상 기존 가상계좌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조치까지 취했다. 거래소 폐쇄까지 거론한 정부의 강력한 대응 방침이 나오자 은행들이 가상계좌에서 손을 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이날 오후 회의에서 이달 말 실명확인 거래 시스템 도입을 완료할 것과 신규 가상계좌 발급도 자율에 맡기면서 분위기가 180도 뒤바뀌었다. 실명확인 시스템이 도입되면 투자자는 실명이 확인된 본인 계좌를 통해서만 거래소 계좌로 입출금할 수 있다. 서로 같은 은행이어야만 거래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거래 자금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신규 투자 자금의 유입을 허용한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점검한 결과 은행들이 준비한 실명확인 거래 시스템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상통화에 대한 당국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투자자들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주일에 4000건이 넘는 가상통화 관련 청원이 올라왔다. 대부분 규제를 강화하려는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가상통화 투자로 약 2억 원을 벌었다가 11일 박상기 장관의 발언 이후 하루 만에 4000만 원 상당의 손실을 입은 직장인 강모 씨(32)는 “서민을 위한 정부라면서 조금이나마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시장을 없애려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 정책에 민감한 시장의 특성상 신규 가상계좌 개설이 재개되면 시장은 또다시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가상통화 시장은 정부나 은행의 조치가 발표될 때마다 크게 출렁거렸다. 11일 박 장관의 발언 이후 1480만 원대로 떨어졌던 비트코인 가격은 청와대의 해명 후 2124만 원까지 반등했다. 12일에는 은행권의 조치가 알려지면서 1850만 원대로 하락했다가 오후 4시에 다시 2000만 원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신규 가상계좌 발급 재개로 시장이 더욱 과열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황태호 taeho@donga.com·이지훈 기자}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4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오염된 주사제로 확인됐다. 숨진 신생아에게 투약된 주사제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이 검출된 것이다. 경찰은 당시 주사제 처방과 제조 및 투약 과정에 관여하고 중환자실 관리를 맡은 의료진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숨진 신생아 4명의 혈액에서 동일하게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이 검출됐다고 12일 밝혔다. 이 균의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 직접 사인이었다.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가 노출되면 치명적이다. 폐나 방광, 혈액에서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항생제가 듣지 않아 패혈성 쇼크로 악화할 위험이 있다. 문제가 된 주사제는 지난해 12월 15일 처방된 ‘스모프리피드’라는 지질영양제다. 신생아에게 각종 영양성분을 제공하는 주사제다. 500mL 병에 담긴 주사제를 시린지(주사기에서 바늘을 뺀 나머지 부분)에 1인분(10∼20mL)씩 나눠 담았다가 같은 날 오후 신생아 5명에게 투약했다. 이 중 4명이 숨지고 1명만 살아남았다. 감염 경로는 두 가지로 좁혀졌다. 주사제 자체가 오염됐거나 취급 과정에서 균이 들어갔을 가능성이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주사제 자체의 오염 여부를 검사 중이다.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역학 전문가들은 개봉 후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 감염’ 가능성을 높게 본다. 대용량 주사제를 여러 환자에게 나눠 쓸 땐 오염에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약제실 근무 약사가 무균 작업대(클린벤치)에서 주사제를 나눠 담아 중환자실로 보낸다. 그런데 이대목동병원에선 중환자실 간호사가 직접 했다. 이대목동병원의 자체 역학전문조사팀에 참여한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교수는 “주사제를 나눌 때 손 씻기 등 감염 수칙을 지켰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주사제 1병을 환자 1명에게만 사용하고 남은 것은 버려도 병원이 손해를 보지 않게끔 건강보험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찰은 주사제를 처방한 전공의와 이를 제조하고 관리한 간호사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또 병원 내 감염 관리를 총괄하는 주치의 3명과 수간호사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16일 숨진 신생아의 주치의를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숨진 신생아 모두에게서 로타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하지만 로타 바이러스에 감염됐음에도 생존한 신생아가 있어 직접 사인으로 꼽히진 않았다. 다만 경찰은 “숨진 신생아에게서 발견된 공통된 문제는 시트로박터 프룬디균과 로타 바이러스 검출이다. 수사 과정에서 둘 사이의 연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고 밝혔다. 사망 전 복부 팽창 같은 증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 장염에 의한 사망도 원인으로 제기됐었다. 그러나 부검 결과 2명에게만 장염 소견이 내려졌다. 주사제 성분 오류, 투약량 조절 실패 등의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처방이나 제조 과정에서 성분 배합 실수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이달부터 신생아 중환자실을 둔 병원을 상대로 안전 점검을 벌이고, 곧 의료 감염 중장기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대목동병원은 상급종합병원 탈락이 불가피해 보인다. 부검 결과 의료 과실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대목동병원은 지난해 12월 2018∼2020년(3기) 상급종합병원 명단 발표 때 ‘보류’ 판정을 받았다.이지훈 easyhoon@donga.com·조건희 기자}

“지방선거 때 두고 봅시다.” 공기업 4년 차 직장인 김모 씨(31)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11일 법무부가 가상통화를 도박과 투기로 규정짓고 거래소 폐쇄 방침까지 발표하자 6월 지방선거 때 투표로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김 씨는 지난해 2월부터 5000만 원가량을 투자했다. 그는 “법무부가 추진하는 법안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투자와 투기의 기준이 모호한데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가상통화를 투기로 몰아붙인다는 것이다. 김 씨는 “하루 새 강남 집값이 1억 원 올라가도 손도 못 쓰면서 서민들 희망인 가상통화는 금지시키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온·오프라인에선 김 씨와 같은 격앙된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투자자 사이에선 법무부의 방침이 국제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 역시 많았다. 미국의 경우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가상통화의 일종인 ‘비트코인’을 선물로 상장하는 등 제도권으로 들였다는 것이다.○ 오락가락 정부 발표에 시장 출렁 법무부 방침이 발표된 이날 가상통화 가치는 하루 종일 출렁였다. 발표 전인 오전 11시 2100만 원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발표 후 하락세를 보이며 오후 3시에는 1751만 원까지 떨어졌다. 16.6%가 빠졌다. 가상통화의 가치는 오후 들어 청와대에서 “부처 간 협의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는 발언이 나오자 반등했다. 가상통화 투자자들 사이에선 “법무부 방침은 말이 안 된다. 청와대 입장은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시나리오”라는 분노 섞인 냉소가 터져 나왔다. 가상통화 투자자인 석모 씨(31·회계사)는 “며칠 전부터 오늘 같은 시나리오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을 정도”라고 성토했다. 법무부 발표 직후 오히려 가상통화를 사는 사람이 많았다. 가상통화를 싸게 사들일 수 있는 호재라는 것이었다. 서울 마포구 자영업자 김모 씨(30)는 “정부가 세금 부과를 위해 시장에 충격을 준 듯하다. 실제로 폐쇄하지는 못할 것 같아 오히려 낮 12시 무렵 1000만 원가량 더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투자로 300만 원가량 수익을 거뒀다. 해외 거래소로 가상통화를 옮겨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대기업 8년 차 대리 강모 씨(32)는 가상통화 일종인 ‘이더리움’ 보유분을 미국과 홍콩의 거래소로 옮겼다. 가상통화는 별다른 장벽 없이 다른 국가의 거래소로 옮길 수 있다. 강 씨는 “법무부 발표가 있기 전 7000만 원어치를 샀는데, 발표 직후 15% 급락했다. 해외 거래소는 하락 폭이 국내보다 작아 일단 거래소를 옮겨 버텨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 사이에서도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 방침처럼 결론이 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 관계자는 “오늘 일시적으로 투자자들이 몰려 투자금이 많이 빠지기는 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정부의 최종 방침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법무부엔 빗발치는 항의 시장에 준 충격은 오후 들어 회복되는 모양새였지만 항의는 계속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정부 방침을 반대하는 글들로 넘쳐났다. 게시판에는 가상통화 규제를 반대하는 취지의 글이 이날 하루 올라온 것만 오후 7시 기준으로 3200건을 웃돌았다. 지난해 12월 말 가상통화 규제를 반대한다는 취지로 올라온 청원은 찬성 수가 6만 명을 돌파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말 “가상통화는 떨어진다. 내기를 해도 좋다”고 한 발언을 두고 “최 원장을 해임해 달라”는 취지의 청원도 2만 명을 넘어섰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대거 몰리자 청와대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금지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법무부엔 당장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날 가상통화 폐지를 언급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 사무실은 “손해를 책임질 것이냐”며 반발하는 투자자들의 전화로 몸살을 앓았다. 한편 주로 가상통화에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법무부 대책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충격에 휩싸인 가상통화 투자자들을 풍자하거나 조롱하는 반응 역시 등장하고 있다. 회사원 조모 씨(30)는 “온라인에선 이미 가상통화 투자자들을 ‘코인충’으로 부를 정도로 투기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도박과 다르지 않은 가상통화를 규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이지훈·한상준 기자}

《박모 씨(28)는 9급 공무원이다. 지난해 임용된 신입이다. 한창 행정업무를 배우고 익힐 때다. 하지만 그가 ‘열중’ 하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코인’이다. 여러 종류의 가상통화(가상화폐)를 통칭하는 단어다. 박 씨는 거의 ‘코인 좀비’다. 자신이 참여한 ‘코인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4개를 수시로 들여다본다. 또 거래소에 접속해 실시간 가상통화 시세를 확인한다. 》 지난해 5월 그는 마이너스통장에 있던 1000만 원으로 가상통화에 투자했다. 하루 만에 600만 원을 잃었다. 6개월 후 손실은 70만 원으로 줄었다. 10일 현재 박 씨의 수익은 약 5000만 원이다. 9급 공무원 연봉(1호봉 기준 약 1888만 원)의 세 배 가까운 돈을 3개월 만에 벌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가상통화에 투자할 것이라는 박 씨는 “기성세대가 부동산 투기하는 것과 같은 거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2030세대의 가상통화 투자 열풍이 심상찮다. 10일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 ‘빗썸’과 ‘업비트’에 따르면 이용자의 60∼70%가 2030세대다. 물론 일확천금을 노린 청년도 있다. 하지만 ‘종잣돈’으로 결혼 준비나 내 집 마련 등 ‘목돈’을 마련하려는 사회 초년생도 상당수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현재 가상통화에 투자한 2030세대 10명을 대면 또는 전화로 인터뷰했다. 10명 모두 “가상통화는 투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흙수저가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그래도 부동산밖에 없다”고 말한 것과 판박이였다. 석모 씨(31)는 지난해 12월 4000만 원을 투자했다.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2500만 원가량 벌었다. 석 씨는 “아파트 사서 부자 되는 건 나에게 꿈같은 이야기다. 리스크(손실 위험)를 각오한 사람 사이 거래라 부동산 투기처럼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허모 씨(27)는 지난해 말 50만 원을 투자했지만 20만 원의 손실을 봤다. 허 씨는 “도박과 비슷하지만 진짜 도박처럼 내가 100만 원 벌면 남이 100만 원 잃는 건 아니다. 오히려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가상통화 투자에 뛰어든 건 주변에 넘쳐나는 성공담 때문이다. 이들 역시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인생 역전’을 꿈꾸며 다걸기(올인)할 투자자는 없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5년 차 회사원 권모 씨(34·여)는 지난해 12월 월세 50만 원짜리 원룸에서 전세금 1억2000만 원짜리 원룸으로 이사했다. 권 씨는 가상통화에 500만 원을 투자해 1년 만에 1억 원 가까이 벌었다. 그는 “3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 받아서 10년 벌어도 1억 원 모으기 힘들다. 수익률 500%를 기록하며 5600만 원을 번 장모 씨(30)도 “결혼자금 마련하느라 자동차는 생각도 못했는데 코인 덕분에 소형차를 샀다”고 말했다. 이들은 ‘가상통화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안전한 투자를 위한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모 씨(30)는 “주식은 정보 비대칭, 부동산은 자본 불평등이 발생하지만 코인은 ‘동전 값’으로 ‘지폐’나 ‘수표’를 벌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한 투자 수단이다. 안전한 투자를 위해서도 오히려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윤솔 기자}
현금과 부동산, 주식처럼 공직자가 보유한 가상통화 명세도 정기적으로 신고하고 공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공직자 재산 등록 대상에 500만 원 이상의 가상통화를 포함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이번 주 안에 발의한다고 8일 밝혔다. 공직자 재산 등록은 정무직과 4급 이상 공무원 등 약 2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이 가운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정무직 공무원과 일반직 1급 국가공무원 등은 신고한 재산 명세가 관보를 통해 공개된다. 이들의 경우 일정 액수 이상의 가상통화 거래 정보까지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개정안에 담길 예정이다. 현재 가상통화는 법적으로 성격이 규정되지 않아 재산 등록 대상이 아니다. 정부도 올해 재산 변동 신고를 앞두고 가상통화 포함 여부를 검토했으나 이런 문제 탓에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가상통화가 자칫 공직자의 재산 은폐 수단으로 악용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면 정부가 공직자의 가상통화 보유 경위 등을 검증할 수 있게 된다. 노 의원은 “정부가 가상통화 과열 투기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자들의 투명한 공무수행을 위해 가상통화를 재산신고 목록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임모 할머니(89)가 5일 별세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따르면 임 할머니는 13세 때 공장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일본군에 속아 만주지역 위안소에 강제로 끌려갔다. 광복 후에야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위안소 생활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투병했다. 임 할머니는 최근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유족 뜻에 따라 장례 절차와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위안부 생존 피해자는 31명으로 줄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대형 쇼핑몰인 IFC몰에서 화재 오인 신고로 시민 20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오인 신고가 된 원인은 ‘식당에서 탄 냄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59분 IFC몰 지하 3층 식당 환풍구에서 연기가 나고 매캐한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영등포소방서는 소방차 21대와 소방관 71명을 즉각 현장으로 출동시켰다. 소방대원들은 쇼핑몰 안에 있던 시민 약 2000명을 대피시킨 뒤 화재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화재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당국은 냄비가 타서 생긴 연기를 화재로 착각한 오인 신고로 보고 있다. 화재 소동으로 주말을 맞아 쇼핑몰을 찾은 많은 시민들은 황급히 대피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화 상영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오후 4시 10분 화재경보음이 울린 직후부터 지하 3층 CGV 9개관 1200여 명의 관람객이 모두 대피했다. 경찰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시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한편 출입을 통제했다. IFC몰 지하 3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주부 이지영 씨(57·여)는 “화재경보음이 울리고 직원들이 안내해 40분가량 지하 2층 로비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화재 오인 소동이 일단락되면서 IFC몰 영업은 이날 오후 5시 25분부터 정상적으로 재개됐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70t짜리 이동식 크레인이 굴착기를 들어 옮기다 도로 위로 넘어졌다. 길이 50m의 크레인 끝부분이 중앙버스정류장에 정차한 시내버스를 덮쳤다. 마침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서 있던 50대 여성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식당에서 일하며 힘겹게 장애아들을 키우던 어머니였다. 28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고는 이날 오전 9시 40분경 서울 강서구청입구 사거리 근처의 한 건물 철거 현장에서 일어났다. 대형 이동식 크레인이 5t짜리 굴착기를 들어올렸다. 철거가 진행 중인 5층짜리 건물 꼭대기로 옮기기 위해서다. 굴착기가 건물 쪽으로 다가선 순간 크레인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당시 크레인은 경사지고 철거 잔해물이 많아 울퉁불퉁한 땅 위에 설치돼 있었다. 크레인은 도로 쪽에 설치된 20m 높이의 가림막을 넘어 정류장에 서 있던 650번 시내버스 지붕으로 쓰러졌다. 당시 버스에는 승객 16명이 타고 있었다.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 하차문 근처에 서 있던 서모 씨(53·여)는 충격 탓에 머리를 크게 다쳐 사망했다. 또 60대 남성 1명이 중상을 입고 나머지 승객 14명이 경상을 입었다. 사고 순간을 목격한 주민 김모 씨(62)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굴착기가 떨어지더니 크레인이 옆으로 넘어지다가 버스에 내리꽂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버스가 피할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크레인에 매달린 굴착기도 도로 위로 떨어져 지나던 승용차와 부딪쳤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버스에 탔다가 숨진 서 씨는 주방보조로 일하는 식당으로 출근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에 따르면 서 씨는 4년 전 남편을 간경화로 잃었다고 한다. 20대 후반의 두 아들이 있는데 장애가 있는 둘째 아들을 힘겹게 키웠다고 한다. 서 씨의 오빠(55)는 “남편 먼저 보내고 힘들게 살아온 동생이다. 하필 그 시간에 그 버스에 탔다가 사고를 당했다”며 울먹였다. 사회복지사인 김모 씨(58·여)도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는 “버스에서 내리려 서 있다가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충격에 몸이 날아가 버스 바닥에 거꾸로 몸이 박혔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현장의 철거공사는 11일 시작됐다. 내년 1월 말 완료 예정이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크레인 기사와 현장소장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 강모 씨(59)는 “낡은 건물 2개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는 공사로 알고 있다. 두 달 전부터 가림막을 설치했는데 크레인은 오늘 처음 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반이 평탄하지 않은 곳에 크레인을 설치한 것을 사고 원인으로 보고 있다. 임채섭 건설노조 경기남부 타워크레인지부장은 “크레인 작업 때는 지반 상태가 가장 중요한데 각종 잔해물 탓에 크레인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굴착기를 들어올릴 때 크레인 내부에서 무게중심을 잘 맞췄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서경찰서는 크레인 기사 A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철거 잔해물 위에 제대로 고정하지 않고 무리하게 공사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 감식이 끝나는 대로 책임자 등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남부고용노동지청은 해당 현장에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예윤 기자}
구세군 자선냄비에 역대 최고 금액인 1억5000만 원 상당의 수표가 들어 있었다. 한국구세군은 27일 오전 자선냄비 모금액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5000만 원짜리 수표 3장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수표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백화점 앞에 있는 자선냄비에 24일 누군가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표는 모두 남양주 농협에서 발행된 것으로 3장이 함께 접혀 있었고 일련번호도 이어져 있어 한 사람이 기부한 것이 확실하다고 구세군 측은 말했다. 구세군 관계자는 “봉투도 없이 구겨진 수표만 발견돼 누가 기부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모금이 1982년 시작된 이래 1억5000만 원은 한 냄비에서 나온 최고 기부액이다. 그동안은 2011∼2013년 서울 중구 명동 입구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3년 연속 1억 원 넘는 수표를 낸 것이 최고였다. 당시 50, 60대로 보이는 남성이 ‘신월동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편지와 함께 수표를 넣었다. 이 남성은 편지에서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나라의 부흥, 경제발전 고도성장의 주역이셨던 분들이 병마에 시달리는 불우이웃이라면 이분들이야말로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고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분들이 아닌가 싶다”고 썼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숨진 미숙아 4명은 사망 당일 새벽에 이상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하지만 의료진이 본격적인 소생술을 실시한 것은 오후 3시경부터였다. 조기 이상 증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회복 기회를 잃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이 유족에게 전달한 사망 당일 처치 기록에 따르면 의료진은 16일 오전 4시 15분경 A 양(생후 3주)의 열이 37.8도까지 오르자 미온수로 마사지를 했다. 추가 처치는 없었다. 오후 1시경 다시 열이 오르고 무호흡증까지 보였지만 이때도 의료진은 ‘자극 후 회복됐다’고 기록한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의 ‘자극’은 흔들어 깨우거나 울게 만들어 산소포화도를 높이는 방법 등을 뜻한다고 한다. 오후 5시경 A 양의 혈액에서 염증 수치가 치솟자 그제야 의료진은 항생제를 투여하고 혈소판을 수혈하는 등 패혈증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A 양은 회복하지 못하고 오후 9시 32분경 숨졌다. 대학병원 내과 교수 출신의 한 패혈증 전문가는 “패혈증 초기 증상이 나타나면 최소한 3시간 내에 응급조치를 해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며 “A 양의 경우 의료진이 새벽부터 나타난 의심 증상을 간과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의료진은 오후 1시 18분경 감염 의심 증세를 보이는 B 군(생후 6주)에게 곰팡이균을 치료하는 항진균제를 투여했다. B 군이 감염된 항생제 내성 시트로박터 프룬디균 치료와는 거리가 먼 조치였다. B 군은 결국 4시간 뒤부터 심박이 느려지기 시작해 오후 10시 10분 숨졌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사망자들에게 옮은 세균이 직접 사인(死因)이거나 최소한 환자의 소생을 방해하는 간접 사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또 의료진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만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잠복기를 고려하면 사망 환자들은 24시간 이전에 이미 균에 감염됐을 공산이 크다”며 “본격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땐 의료진이 손쓸 방도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조건희 becom@donga.com·이지훈 기자}
“진료한다고 이 자리에 못 온다는 게 말이 돼요?” 20일 오후 2시 이대목동병원 2층 대회의실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16일 이 병원에서 숨진 신생아 4명의 부모들이 병원 측과 만나던 중이었다. 면담 시작 30분 만에 유족들이 문을 박차고 나왔다. “준비도 안 해놓고 대충 때우려고만 해요. 대충!” 유족들은 면담 전 병원 측에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이 모두 나와 당시 경위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사건 전날부터 사망 당일까지의 의무기록 제공도 요구했다. 하지만 일부 주치의와 간호사들은 면담에 나오지 않았다. 한 유족은 “의무기록도 사건 당일치만 있고 내용도 몇 줄에 불과하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병실 폐쇄하며 부모에게 “올 필요 없다” 사망 사건 발생 후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퇴원한 신생아의 부모 10여 명은 19일 병원장과 중환자실 주치의 3명을 만나 강하게 항의했다. 사건 당일 밤 12시 이들은 병원으로부터 전화로 “중환자실을 폐쇄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의료진은 신생아 4명의 사망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채 “아이는 괜찮은데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 된다. 보호자는 안 오셔도 된다”며 전화를 끊었다. 불안한 부모들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측 설명과 달리 옮겨간 병원에선 보호자 없이 입원이 불가능했다. 부모들이 신생아들의 사망 경위를 묻자 병원 측은 “3명은 오전부터 배가 불렀다. 1명은 아주 꼬맹이여서 폐가 나쁘고 인공호흡기를 달 정도로 원래 많이 힘든 아이였다”며 면피하려는 듯한 발언을 했다. 병원 측은 영하의 날씨였던 사고 당일 밤 전원이 꺼져 보온이 되지 않는 인큐베이터에 일부 미숙아를 넣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다. 신생아를 인계받는 병원에서 받아 봐야 할 의무기록도 없었다. 한 보호자는 “아기를 넘겨받은 의사가 ‘이대목동병원에서 설명도 없이 일단 받아 달라고 했다’며 당황스러워했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신생아중환자실의 부실한 위생관리 실태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한 보호자는 “우리 아기에게 쓰라고 간호사에게 보낸 수건을 돌려받았는데 다른 수건이었다”며 “단순 접촉으로도 각종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데 개인별로 따로 써야 하는 수건을 공동으로 쓴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보호자는 “기저귀 갈아주는 간호조무사가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는 장면을 봤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위생관리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사과했다.○ “미숙아 감염 우려 임상시험”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은 신생아 중환자실 미숙아들을 상대로 모유 수유의 위험성을 검증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시도했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신생아의 한 부모는 주치의의 권유에 따라 임상시험에 동의한 뒤 의료진에게 모유를 제공했다. 본보 취재팀이 확보한 임상연구동의서에 따르면 모유에 있는 거대바이러스가 아기 몸에 들어가면 폐와 간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모유를 어떻게 보관해야 감염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지 보려는 연구다. 산모들은 의료진의 요청에 따라 모유를 얼려 주거나 직접 짜서 간호사에게 제공했으며 미숙아들에게 수유됐다. 보호자들은 “감염 가능성이 있는데 어떻게 미숙아를 실험 대상으로 삼느냐”고 따졌다. 병원 측은 임상시험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동의를 받아 진행했고 보호자가 요구하면 모유 수유를 중단했다”고 밝혔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윤솔 채널A 기자}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숨진 미숙아 4명이 심정지 전 똑같은 수액과 주사제를 맞은 사실이 19일 확인됐다. 해당 수액을 맞은 아이는 전체 입원 환자 16명 중 5명뿐이었는데, 그중 1명을 빼고 모두 숨진 것이다. 사망자 3명에게서 검출된 항생제 내성균은 동일한 균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수액을 만들거나 투여하는 과정에서 세균에 감염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대목동병원이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등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한 자체 역학전문조사팀은 18일과 19일 연달아 회의를 열고 의무기록을 검토한 결과, 사망자 중 3명이 항생제 내성균인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감염된 경로가 수액이나 주사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팀에 따르면 이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미숙아 16명 중 A 군(생후 6주) 등 5명은 사건 당일인 16일에도 평소처럼 종합영양수액(TPN)과 스모프리피드, 비타민K 주사제를 맞았다. TPN은 쇄골이나 허벅지의 중심정맥을 통해 주입하는 영양제다. 음식을 입으로 넘기지 못하는 신생아에게 쓴다. 약사가 직접 탄수화물과 단백질 등을 배합해서 만든다. 스모프리피드는 오메가3 지방산 등이 포함된 주사제다. 또 다른 입원 환자 B도 TPN과 스모프리피드 등을 맞아왔지만, 14일부터 끊었다. 의료진이 사건 당일 아이들에게 준 TPN은 전날인 15일 병원 지하 1층 조제실에서 만들었다. 평상시엔 그날그날 조제한 뒤 밀봉해 11층 신생아 중환자실로 올리지만,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라 사흘 치를 한꺼번에 만들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는 투약 직전 TPN에 스모프리피드를 섞고, 비타민K를 투여할 주사기를 준비했다. 이 모든 과정은 멸균 환경에서 이뤄져야 한다. 15일엔 TPN 등을 맞은 신생아 5명 모두 별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16일 오후 5시경부터 A 군이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떨어지는 이상 증세를 보였다. 2시간 후 C 양(생후 3주)이 같은 증상을 나타냈고, 오후 9시엔 D 군(생후 5주)과 E 양(생후 1주)으로 이어졌다. 심폐소생술이나 항생제 처치도 듣지 않았다. 이들은 오후 9시 32분부터 순차적으로 숨을 거뒀다. 전부 이날 TPN과 스모프리피드, 비타민K를 맞은 아이들이었다. 이에 따라 조사팀은 TPN과 스모프리피드를 섞거나 비타민K를 놓기 위해 주삿바늘을 꽂는 과정 등에서 수액이나 주사제가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오염됐을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약사가 TPN을 조제하는 과정에서 균이 옮았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15일엔 TPN을 투여한 뒤에도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같은 조제실에서 만든 다른 약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가 A 군 등 3명에게서 검출된 균을 정밀 분석한 결과 유전자 염기서열이 일치했다. 같은 곳에서 유래했다는 뜻이다.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은 건강한 사람 몸속에선 얌전하지만 면역체계가 거의 없는 미숙아에겐 치명적이다. 장 세포가 죽는 중증 염증이나 패혈증을 일으켜 순식간에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조사팀에 참여 중인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금으로선 다른 이유보다 세균 감염이 사망 원인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말했다. 한편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수사 중인 경찰은 이날 이대목동병원을 압수수색했다. 조만간 사망자들의 주치의였던 조모 교수(44·여)와 중환자실 간호사 등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조건희 becom@donga.com·이지훈 기자}

16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사망한 미숙아 4명의 인큐베이터는 인접해 있었다. 3개는 일렬로 나란히, 1개는 바로 옆 줄 가운데 있었다. 총 22개의 인큐베이터가 있는 중환자실 중앙의 6개 인큐베이터 중 4개 인큐베이터에서 심정지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16명의 미숙아가 치료를 받는 중이었고 6개 인큐베이터는 비어 있었다. 병원 측은 “사망한 4명은 가장 중증인 신생아들”이라고 설명했다.○ “신생아 4명, 동시다발 심정지” 인큐베이터의 조모 군(생후 6주)에게 처음 심정지 증세가 나타난 시점은 이날 오후 5시 44분. 의료진이 조 군에게 20여 분간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자 심장 박동이 돌아왔다. 7시 23분 조 군 옆 인큐베이터의 안모 양(생후 24일)에게서 심장이 느리게 뛰는 ‘서맥’ 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오후 8시경 조 군의 심정지가 재발했다. 백모 군(생후 5주)은 오후 9시, 정모 양(생후 9일)은 오후 9시 8분경 서맥 증상을 보였다. 얼마 뒤 4명 모두에게 심정지가 왔다. 이 4명은 오후 9시 32분부터 10시 53분까지 불과 1시간 21분 사이에 연이어 사망했다. 당시 중환자실에는 주치의 등 의사 3명과 간호사 5명이 있었다. 서울 양천경찰서와 유족 등에 따르면 숨진 신생아 4명은 모두 복부 팽창과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병원 측은 “숨진 아이 4명이 동시에 같은 증상을 보였다. 심정지 등이 갑작스럽게 진행돼 우리도 당황스럽다. 사망 원인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 측 연락을 받고 중환자실로 달려온 신생아 부모들은 의료진으로부터 사망 사실을 통보받고 “다른 병원에 보내겠다”, “집단 감염 아니냐”고 고성을 지르며 오열했다. 피해자 가족 중 한 명이 이날 오후 11시 7분경 경찰에 집단 사망 사고를 신고했다.○ “간호사가 장갑 안 끼고 배변 처리” 유족들은 병원 측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숨진 정 양의 어머니 김모 씨(32)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망 당일 낮 딸아이의 배가 부풀어 있어 ‘가스가 찬 것 같다’고 간호사에게 말했더니 ‘별일 아니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중환자실 신생아의 부모들은 평소 병원 측의 위생관리가 부실했다고 말했다. 사망 사고 후 괴사성 장염 진단을 받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신생아의 어머니 정모 씨(36)는 “간호사들이 아이들의 배변을 처리할 때 위생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하는 걸 여러 번 봤다”며 “‘공갈 젖꼭지’를 아무 위생 조치 없이 선반에 그냥 올려두는 등 찝찝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생아의 보호자 남모 씨(38)는 “목동병원 측은 중환자실 인큐베이터 앞까지 휴대전화를 가져올 수 있게 했고 사진 촬영도 허용했다”며 “이번에 옮겨 간 병원에서는 중환자실 휴대전화 반입이 아예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 무연고 신생아 2명 16시간 이송 대기 사고 후 신생아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중환자실 신생아 16명 중 숨진 4명을 제외한 12명 가운데 10명만 사고 직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퇴원했다. 사회복지단체의 의뢰로 치료를 받고 있던 무연고 신생아 2명은 폐쇄된 중환자실에서 16시간 넘게 대기해야 했다. 보호자가 없어 옮길 병원을 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병원 측은 사고 다음 날인 17일 오후 4시가 지나서야 1명은 서울의료원으로 보내고, 나머지 1명은 입양이 결정돼 퇴원시켰다. 보건 당국은 중환자실 내 감염 가능성과 인큐베이터 생명 유지 장치 등의 장비 부실, 의료진 과실 여부 등을 파악할 계획이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신생아들도 격리 조치한 뒤 조사할 방침이다. 질병관리본부 나성웅 긴급상황센터장은 “과거 위생수준과 의료기술이 열악했던 시절 장출혈균으로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망한 적이 있다. 과거 유사 사례와 비교 분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윤종 기자}

“막일해 번 돈 6만∼7만 원씩을 거울 밑에 몰래 넣어두던 효자였어요.” 어머니 이모 씨(63)는 14일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유품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쳤다. 이 씨의 아들 전모 씨(36)는 이날 오전 8시경 서울 전철 1호선 온수역∼오류역 구간 야외에서 선로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는 이 씨는 출근길에 연락을 받았다. 색 바랜 갈색 작업화와 해진 검은색 배낭을 보고서야 새벽에 배웅한 아들이 숨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최종학력 중졸인 전 씨는 20대 초반부터 일용직이었다. 주로 학교, 관공서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이날이 지하철 선로작업 첫날이었다. 용역업체에 사흘 전 고용된 전 씨는 동료 2명과 선로 양옆 배수로에 칸막이(덮개)를 설치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선로 양쪽을 오가며 일하던 전 씨는 온수역 앞 약 300m 지점에서 양주행 전동차에 치여 현장에서 숨졌다. 열차 기관사는 경찰조사에서 “전 씨가 뛰어들었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고도 올 6월 코레일 운영구간에서 발생한 ‘노량진역 사고’처럼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되풀이되는 인재(人災)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과 코레일에 따르면 용역업체는 코레일의 작업 승인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장에는 선로감시원도 없었고 기관사들에게도 선로작업 사실은 고지되지 않았다. 전 씨를 비롯한 근로자 3명도 온수역장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방음벽 출입문으로 작업현장에 들어왔다. 평소 자재운반용으로 열어둔 상태였다. 코레일 관계자는 “작업 승인 전 상황이라 통제가 불가능했다. 시공과 감리 모두 외주 용역을 줬기 때문에 코레일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열차운행 중 선로작업 중지 명령’을 사실상 어기고 공사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청은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영등포역 구간에서 안전표지판을 설치하던 근로자가 열차에 치여 숨진 노량진역 사고 이후 위험구간에서의 열차운행 중 선로작업 중지를 명령했다. 이날 사고 지점도 이 명령이 적용되는 구간이다. 코레일 측은 “노동청이 작업중지를 지시한 것은 선로와 궤도 유지보수 업무고 배수로 작업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도로공사를 할 때도 차로를 막는데 코레일 측은 이 같은 기본을 선로작업에서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숨진 전 씨를 고용한 용역업체, 감리업체, 코레일 측 모두 안전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한진해운 구조조정 직전 해당 정보를 입수해 보유 주식을 팔아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55·현 유수홀딩스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심형섭)는 8일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 전 회장에게 징역 1년 6개월, 벌금 12억 원, 추징금 5억3000여만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이 구조조정을 발표하기 직전 관련 내용을 입수한 뒤 지난해 4월 6~20일에 걸쳐 자신과 두 딸이 보유한 한진해운 주식 97만 주를 전량 매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회피한 손실은 11억 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공개되지 않은 중요정보를 거래에 이용하는 행위는 기업공시제도를 훼손하고 기업 운영과 유가증권거래 시장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저해해 주주 등 일반 투자자에게 예상치 못한 손해를 입게 할뿐만 아니라 시장과 기업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다”며 “시장경제질서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라고 밝혔다. 이어 “최 전 회장의 사회경제적 지위, 한진해운과의 관계, 미공개중요정보 획득 방식 등을 고려하면 유가증권시장에서의 거래 공정성 및 건전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현저하게 훼손됐다”며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얼마 전 서울대 3학년 한모 씨(21·여)는 귀한 자료를 구했다. 전공과목 강의 내용을 꼼꼼히 필기한 5쪽짜리 한글 문서 파일이다. 지난해 같은 수업을 듣고 A+ 학점을 받은 학생의 ‘고퀄’(품질이 높다는 뜻의 ‘고퀄리티’ 줄임말) 필기였다. 독감 탓에 4차례나 수업을 빠졌던 한 씨에게는 동아줄과 다름없었다. 한 씨에게 필기자료를 건넨 건 친구나 선배가 아니다. 그는 이른바 ‘필기거래소’를 통해 3000원을 주고 자료를 구입했다. 한 씨는 “친구도 없이 혼자 듣는 수업을 빠져 걱정했는데 커피 한 잔 가격에 필기를 살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구입했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졸아 필기가 필요한 당신, 영혼을 담은 필기를 썩히고 있는 당신, 대학생의 필기거래소가 도와드릴게요.’ 한 씨가 접한 필기거래 서비스의 홍보 내용이다. 이 서비스는 지난달 26일 시작됐다. 일부 서울대생이 수업 중 아이디어를 내서 진행한 프로젝트다. 필기자료를 구하려는 수요자와 이를 제공하려는 공급자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중개된다. 3000∼5000원에 중간·기말고사 혹은 학기 전체 분량의 필기 자료를 사고팔 수 있다. 거래 자료에는 해당 과목의 기본 현황뿐 아니라 필기한 사람의 학점과 사용 팁까지 친절하게 적혀 있다. 1, 2쪽 분량의 ‘미리보기’도 제공된다. 이 서비스를 고안한 서울대생 A 씨는 “친한 선후배끼리만 알음알음 필기를 공유하는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든지 좋은 필기를 볼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필기거래 서비스는 기말고사가 끝나는 13일 종료될 예정이다. 친구나 선후배끼리 이른바 ‘족보’로 불리는 필기자료를 주고받는 건 대학가의 오랜 전통이다. 과거에는 족보를 거래가 아닌 공유의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취업난이 심해지고 학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족보 공유는 옛 문화가 됐다. 복수전공 확대 등으로 친구와 떨어져 혼자 강의를 듣는 학생이 많아지고 필기자료를 개인의 저작물로 보는 시선도 영향을 미쳤다. 이미 대학 게시판 등을 통한 필기자료 거래는 활발하다. 서울대에 등장한 필기거래소는 마치 주식처럼 이를 공개한 것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지금까지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이 서비스를 통해 필기자료를 구입했다. 1학년 김모 씨(20)는 “저렴한 가격에 아쉬운 소리 없이 ‘A+ 필기’를 구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평가했다. 친분으로 암암리에 필기를 주고받는 관행보다 일정 가격만 지불하면 누구나 얻을 수 있어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강모 씨(27·여)는 “복수전공생이라 다른 학과 전공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소수끼리 족보나 필기를 돌려보는 문화가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누구나 평등하게 양질의 필기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판과 우려도 있다. 양모 씨(24)는 “강의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들어도 매주 출석하려 하는데 그 시간에 대한 노력을 단돈 몇천 원에 살 수 있다는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 저작권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강의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필기자료는 해당 교수의 2차 저작물이라는 것. 교수 동의 없이 필기를 거래하거나 공유하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자신의 강의내용 필기자료가 거래된다는 걸 알게 된 교수들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한 교수는 “아무도 (나에게) 동의를 구한 적 없다. 후배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필기를 주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사고파는 행위라면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비스 운영자는 “필기자료는 학생의 노력과 가공이 들어갔기에 1차 저작권은 학생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를 법률 자문을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경찰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대교 남단을 기습 점거해 극심한 교통 정체를 일으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민노총 건설노조) 지도부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4일 확인됐다. 경찰은 7일 건설노조 지도부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구속영장이 신청된다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찰이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에 대해 신청한 첫 영장이 된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4일 경찰 간부들에게 건설노조의 마포대교 점거 당시 경찰 대응이 무력했다는 비판을 거론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경찰 수뇌부는 건설노조원 9000여 명(경찰 추산)이 퇴근 시간대 서울 영등포구와 마포구를 잇는 마포대교 왕복 10차로를 1시간 넘게 무단 점거해 수많은 시민에게 큰 피해를 입힌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점거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경찰 병력 5명이 부상을 당한 점도 고려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마포대교 무단 점거가 시민들을 사실상 ‘준감금’한 것이기 때문에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경찰은 마포대교 점거와 같은 불법 시위가 반복되면 정부에 대한 민심이 나빠질 것으로 판단하고 강경 처벌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경찰은 도심 집회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마포대교 점거 주도자 8명과 광고탑 위에서 고공 시위를 벌인 2명 등 총 10명을 수사 대상으로 분류했다. 경찰은 7일 출석 예정인 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 등 지도부 5명을 상대로 불법 시위를 주도했거나 고의로 방치했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 5명을 조사한 뒤 나머지 5명에 대해 소환을 통보할 계획이다.조동주 djc@donga.com·이지훈 기자}
성폭행 누명을 썼던 시인 박진성 씨(39)가 2일 약물 과다복용 상태로 발견돼 병원 치료를 받았다. 박 씨는 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성폭행 무혐의 처분 후에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왔다. 3일 박 씨 가족과 경찰 등에 따르면 박 씨는 2일 오전 대전의 자택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돼 충남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다행히 상태가 호전돼 3일 퇴원했다. 박 씨 가족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위해 폐쇄병동에 입원해야 하지만 지금 격리되면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말에 일단 귀가했다”라고 했다. 박 씨는 최근 1년간 이번처럼 약물을 과다 복용해 응급실에 3차례가량 실려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박 씨는 자신의 SNS에 ‘지쳤다. 결백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제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박 씨 아버지(66)는 “무혐의가 밝혀졌지만 아들을 향한 세상의 손가락질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박 씨 아버지는 “추측성 기사와 악성 댓글에 시달리면서 기존에 앓고 있던 공황장애와 심장발작 등이 악화됐다. 소송도 여러 개 겹치다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라고 했다. 이어 “(아들에게 내려진) 출고 정지 처분은 그대로인 상태라 더 이상 시집을 낼 수가 없다. 인터넷에 계속 시를 쓰고 있는 아들 모습을 보니 부모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라고 호소했다. 출고 정지 처분은 출판사가 이미 출간된 책의 판매 금지를 서점에 요청하는 것이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고귀하고 존엄한 생명권을 침해할 수 없다. 태아는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로 독자적 생존능력이 있다.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낙태죄로 인해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는다.’헌법재판소가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을 하며 제시한 근거입니다. 헌재의 결정대로 낙태 대신 출산을 선택한 여성들은 당시 판단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동아일보 취재팀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비혼모(非婚母) 3명을 만났습니다. 세 명 모두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이 고귀한 만큼 태어난 이후의 생명도, 아이를 낳은 엄마의 인생도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합니다. 이들의 말처럼 아빠 없는 아이들과 비혼모의 척박한 삶을 외면한 채 생명의 고귀함만 강조하는 건 설득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내년 초 헌재는 6년 만에 낙태죄 위헌 여부를 다시 논의할 예정입니다. 비혼모 3명이 가상의 헌재 증언대에 섰습니다. 하루하루 맞닥뜨린 현실에서 우러난 이들의 증언을 함께 들어보시죠.○“고귀하고 존엄한 생명권을 침해할 수 없다.”존경하는 헌법재판관님. 5년 전 재판관님들께서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태아를 함부로 할 수 없어 낙태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않으셨습니다. 3년 전 겨울까지,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2014년 12월,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소리를 들었습니다. ‘쿵, 쿵.’ 제발 임신이 아니길 기도하며 병원에 들어갔던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낳아야겠다.’ 남자친구와는 아이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귀하고 소중한 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2015년 8월 희찬(가명·3)이를 낳았습니다.그런데 태어난 희찬이는 ‘고귀하고 존엄한’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무시 받고 천대 받는 생명이 되었습니다. 희찬이를 또래 아기들과 놀게 하면서 자연스레 엄마들과 친해졌습니다. 그 중 저와 성격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한 엄마에게 제가 비혼모라는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그 후 희찬이에게서 친구들이 사라졌습니다. 저를 빼고 다른 아기 엄마들끼리 시간을 맞춰 놀기 시작했습니다. 차마 화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죄 없는 희찬이가 제가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위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비슷한 처지의 선배 비혼모들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한 아이 엄마는 서울살이가 버거워 고향에 내려가려다 “시집도 안 간 게 애 놓은 게 뭐 자랑이라고 여기까지 기어들어오려고 하노”라는 숙모의 말에 귀촌을 포기했답니다. “가족들도 저렇게 생각하는데 남들은 어떻겠어.” 그 엄마가 덧붙였습니다. “누구한테 먼저 미혼모라는 이야기 하지 마, 자기와 아이만 상처받아.”심지어 저희 엄마, 희찬이의 외할머니는 제 아이의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을 남자와의 사이에 생긴 아기를 낳겠다는 이야기에 엄마의 첫마디는 “미쳤구나”였습니다. 엄마는 지금껏 제 아이를 한 번도 본 적도, 물은 적도 없으십니다. 제 엄마에게 희찬이는 ‘없었으면’ 하는 생명입니다.33년 동안 부모님께, 연인에게,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람이었던 저 역시 ‘더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10년 지기 친구에게 임신을 털어놨습니다.“야 그건 좀…미혼모는 사회 최하층 사람들이잖아.” 아기를 낳은 뒤 연락이 끊겼습니다. 친구뿐이 아닙니다. 얼마 전 희찬이의 발달이 약간 늦어 병원에 검진을 갔을 때 받은 눈빛. “사실 제가 미혼모라, 애기가 아빠랑 놀아본 적이 없거든요…”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고 타이핑을 치던 레지던트가 그 순간 절 쳐다봤습니다. 그 눈빛은 제가 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무서워지자 집에 처박혀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자려고 누워 있으면 숨이 막히면서 땀이 뻘뻘 납니다. 사실 저는 저와 희찬이 모두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희찬이가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저희 모자는 어딘지 모르게 가깝게 하기 싫은, 불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와 제 아이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집에 갇혔습니다. ○ “태아는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로 독자적 생존능력이 있다”존경하는 재판관님. 2012년 낙태가 죄라고 결정 내려졌던 그 때 제 아이는 아홉 살이었습니다. 재판관께서는 “뱃속의 아기가 살기 위해서는 엄마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엄마와는 별개로 생존 능력이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낙태는 죄”라고 하셨죠. 하지만 제 아이는 태어났을 뿐, 태어난 뒤 9년 동안 아이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아빠도요.아이 아빠는 번듯한 직장에 집안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손에 자란 시골 여자인 저와 결혼할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을 겁니다. 그는 만삭이 될 때까지 “낙태하면 너를 다시 만나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손 벌리지 않을게. 아이 데리고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게” 빌고 나서야 아이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출산하던 날에도 제 옆에 아이 아빠는 없었습니다.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비혼모 시설을 전전했습니다. 제가 받은 돈은 기초수급비 32만 원 뿐. 아이를 위한 지원은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분유와 기저귀 물티슈 같은 아기 용품을 사고 나면 손에는 한 푼도 남지 않는 날이 많았습니다. 서울에는 친척이나 친구도 없어서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아이가 일곱 살 때는 일하던 공방에 돗자리와 이불을 깔아놓고 몰래 살았던 적도 있습니다. 불을 켜면 주인에게 들킬까 촛불을 켜고 책을 읽어줬습니다. 아이의 시력이 나쁜 게 그 탓인가 아직도 자책합니다. 아이는 태어나기만 했을 뿐, 열세 살이 된 지금까지 저와 떨어져서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저를 도와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번호가 바뀌어 있었습니다.재판관님, 저는 홀로 아이 낳은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견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습니다. 12주 된 태아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라고 하지만 세상에 나온 제 아들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이불 속에서 눈물지으며,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묻고 싶습니다. 생명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그렇게 태어난 제 아이의 삶은 왜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것인가요? 그리고 저는 왜 이 아픔을 엄마라는 이유로 혼자 겪어야 하나요?○“임부의 자기결정권이 낙태죄로 인해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는다.”재판관께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낙태죄로 인해 과도하게 제한되고 있지는 않다’면서 낙태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저는 그 어떤 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철저히 ‘자기결정권’을 포기 당했습니다. 유진(가명·4개월)이를 낳은 건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눈을 찡긋하며 작은 손으로 제 손을 포갤 때가 숨통이 트이는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은요? 일에 대한 성공도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희망도 어그러졌습니다.의류회사에서 원단 고르는 일을 했습니다. 승진을 앞두고 ‘임신 3주차’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3년가량 만난 그 남자와는 결혼까지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임신한 저를 침대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면전에서 담배를 피워댔습니다. 전부터 폭언은 있었는데 그게 폭력으로 이어진 겁니다.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저는 “아이는 지울 테니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아이를 지우면 낙태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더군요. 그러더니 “앞으로 만나는 남자마다 찾아가서 알릴 거다. 가장 비싼 변호사를 사서 널 괴롭힐 거다”라고 했습니다. 배는 점점 불러왔습니다. 5개월이 지나자 아이에겐 팔, 다리가 자라있었습니다. 수술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그 남자와 살거나 혼자 키워야 합니다. 어느 쪽이나 지옥 같았습니다. 그럴 바엔 죽어야겠다고 생각해 뛰어내리거나 목을 매려고도 했습니다.회사에서는 민폐 끼치기 일쑤였습니다. 업무 집중도 안 되고 애꿎은 후배에게 화풀이도 했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려 출산 휴가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사표를 냈습니다. 1년 넘게 입사를 준비했던 첫 직장이었습니다. 출산이 임박하자 남자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낳든지 죽이든지 네 맘대로 해라.” “애 핑계로 내 발목 잡을 셈이냐.” 저를 ‘꽃뱀’ 취급했습니다. 결국 비혼모 단체의 도움을 받아 홀로 유진이를 낳았습니다.출산 후 체중은 24kg이 늘고 부분 탈모까지 왔습니다. 젖 먹이느라 가슴은 처졌고 피부는 푸석해지고 기미가 올라옵니다. 열 달간 엄마가 될 몸과 마음의 준비를 못했기에 급격한 신체 변화에 우울증까지 왔습니다.재판관님, 아이를 낳고 4개월이 흘렀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저와 제 딸은 수급비 70만 원, 양육수당 15만 원으로 살아야 하는 극빈층입니다. 아이가 36개월이 넘으면 식비 지원이 끊긴다고 하더군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만 낳은 저를 받아주는 회사가 있을까요? 재판관님, 제가 꿈꾸던 인생은 이런 게 아니었습니다.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김예윤기자 yeah@donga.com최지선기자 aurinko@dona.com}

《낙태란 어떤 경험일까요. 막연히 어두운 기억일 뿐일까요. 동아일보 취재팀은 낙태를 경험한 ‘남녀’에게 조심스럽게 그 때의 기억을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낙태는 합법과 불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수술대에 누운 여성과 이를 지켜보는 남성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내부자들, 낙태를 말하다’ 제3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낙태 남녀’의 이야기입니다.》1. ‘굴욕의자’에 앉자 눈앞에 분홍 커튼이… 냄비에 담긴 물에 미역을 넣고 가스불을 켜는 것으로 은정 씨(가명·24·여)는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생전 먹지 않던 고등어조림도 만들었다. 인터넷에 나온 ‘산후조리에 좋은 음식’이었다. 밥솥에 김이 피어날 무렵 그는 자취방을 나섰다. 병원은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상가 건물 3층의 허름한 산부인과 앞에서 ‘전 남친’이 서성이고 있었다. 의사는 60대 남성이었다. 여의사이길 바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 남친’이 수소문해 겨우 찾아낸 ‘낙태 병원’이었다. “3주차여서 수술은 필요 없어. 주사나 서너 번 맞으면 돼.” 초음파 화면 속 ‘점’을 바라보던 20대 남녀에게 의사가 무심히 말했다. ‘점’이 태아였다. 비용은 45만 원. 반반씩 내기로 했다. 수술실 안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은정 씨는 ‘굴욕의자’라고 불리는 수술대에 앉았다. 양쪽 지지대에 종아리를 올리니 다리가 120도 각도로 벌어졌다. 상체는 뒤로 젖혀졌다. 배꼽 아래로는 분홍색 커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커튼 뒤에서 의사가 수술용 고무장갑을 끼는 듯 했다. 간호사는 주사기와 수술 도구를 만지작거렸다.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짝 따끔합니다.” 예리하고 차가운 금속이 몸속을 파고들었다. 간호사가 쇠로 된 그릇에 뭔가를 떨어뜨리는지 ‘딸각’ ‘딸각’ 소리가 났다. 은정 씨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시술 일주일 전이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보름쯤 된 날이었다. 할 때가 됐는데 며칠 째 생리를 하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밤마다 꿈을 꾸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생리를 하며 안심하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시내 번화가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진열된 임신테스트기 중 가장 비싼 것을 골랐다. 그날 밤 은정 씨는 새벽을 기다리며 뒤척였다. 인터넷에서 ‘아침 첫 소변으로 테스트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답변을 본 적이 있었다. 잠을 보채다 눈을 떠보니 오전 5시. 테스트기의 조그만 네모 속 ‘두 줄’은 더없이 선명했다. 수술대에 누운 은정 씨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오십 오십일 오십이….’ “다 됐습니다. 내려오세요.” “벌써요?” “아기집 떨어질 때까지는 몸살 난 것처럼 아플 수 있습니다.” 병원을 나서는데 ‘전 남친’이 말했다. “다음부턴 혼자 올 수 있지?” “….” 은정 씨는 버스에서 홀로 오한에 떨었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 초에 한기가 밀려들었다. 엄마 생각이 간절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교회 권사인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은정 씨는 자취방에 오자마자 보일러를 틀었다. 오리털 점퍼를 꺼내 입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까 끓여놓은 미역국은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냉기가 가시자 고열이 왔다. 얼굴이 너무 뜨겁게 달아올라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은정 씨는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속옷을 다 벗고 시술용 긴 치마를 입은 채 수술대에 올랐다. ‘점’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며 주사를 놓던 60대 남자 의사가 갑자기 표정을 찌푸렸다. “무슨 상한 냄새가 나네. 소독약 넣어야겠다. 걱정 마 학생, 추가비용은 안 받을게.” 의사의 말에 은정 씨는 수치심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주먹으로 아랫배를 마구 때렸다. 2주가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점’이 원망스러웠다. 은정 씨는 2년 전 그 일 이후 아직 ‘솔로’로 지낸다. 성관계는 물론 남자를 사귀는 것조차 꺼리게 됐다. ‘낙태 커밍아웃’도 얼마 전 친구 1명에게만 했다고 한다. 기자에게 털어놓은 이유에 대해 “다신 안 볼 사이니까요”라고 했다.2. 낙태한 연인,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2년 사귄 27살 동갑내기 연인이었다. 같은 집에 살며 밥을 지어 먹었다. 밤새 농담을 주고받았다. 예전 연인 얘기도 스스럼없이 나눴다.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하루는 유난히 어지럽고 속이 울렁였다. 그 사람과 날짜를 손으로 꼽아보다 멈칫했다. “임신인가?”“아니야. 임신한다고 바로 입덧하고 그러진 않아.”“어떻게 알아?” 그에겐 낙태 경험이 있었다.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 2명이 낙태를 했다고 한다. “임신이 아닐 것”이라는 그의 위로에 안도감과 함께 마음이 복잡해졌다. ‘옛날 일이니까…’ 애써 머리에서 지웠다. 하지만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임신 했다”는 말에 그는 의외로 망설이지 않았다. “우리 낳자. 좋은 아빠가 될게.” 내가 운영하던 가게는 매달 적자였다. 그는 학생이었다. 출산은커녕 낙태 비용도 빌려서 내야할 판이었다. 낳을 자신도 없고 낳고 싶지도 않았다. 서둘러 수술을 받기로 했다. “피임을 잘 했어야죠.” 의사의 말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임신은 둘의 책임이지만 수술대에 오른 건 나뿐이었다. 둘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았다. 수술 후 그와 함께 살던 집은 살얼음판이 됐다. 나만 피해를 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 사람만 낙태 사실을 알고 있어 다른 곳에 화풀이할 수도 없었다. 그는 낙태 이전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안 하던 밥을 짓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미역국을 끓였다. 그러면서도 내 눈치를 살폈다. 나를 집에 두고 학교에 갈 때면 그는 죄인이 됐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매일 누워있어야 되는데 너는 왜 그리 늦게 다니는 거야?” “…” “지금은 내가 1순위여야 하는 거 아니야?” “…” 그는 예전 여자친구에 대해 “히스테리가 심해 견딜 수 없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 역시 맞장구를 치며 함께 그 여자 흉을 봤다. 하지만 어느새 내가 그 여성처럼 되어있었다. ‘왜 나만 힘들지’ 하는 생각에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한 달 뒤 그에게 한계가 왔다. 그날도 그는 서툰 솜씨로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렸다. 하지만 매일 끓여오던 미역국이 빠져있었다. “미역국 한 끼만 더 먹고 싶어.” 그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적당히 좀 해.”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우리가 서로 뒷걸음치며 멀어져왔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둘 다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와 있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낙태하고 6개월 만이었다.3. 낙태를 지켜본 남자에게 벌어지는 일 “보호자시죠? 임신 7주차고요, 동의하시는 거죠?” “네….”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지만 회사원 김모 씨의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게 대기실에 앉았다. 소파에는 임산부로 보이는 여성이 여럿 있었다. 남성은 김 씨 뿐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간 여성은 대전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는 스물세 살 대학생이었다. 석 달 쯤 만난 뒤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이였다. ‘자취방에서 혼자 몸조리는 잘 할 수 있을까.’ 김 씨는 예전에 엄마가 했던 “여자가 아이를 지우는 건 아이를 낳는 거나 똑같다”는 말을 떠올렸다. 수술실에서 나온 여성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차마 “고생했다”는 말도 건넬 수 없었다. “뭐라도 좀 먹을래?” “그냥 친구랑 먹고 싶어.” 그 말이 김 씨가 여성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여성을 낙태 시킨 기억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김 씨는 반년 쯤 지나 새 연애를 시작했다. 사이가 무르익자 함께 모텔에 갔지만 그 방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일어나지 못했다.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지만 김 씨에겐 불가능했다. 김 씨는 비뇨기과와 신경정신과를 찾아다녔다. 의사의 조언대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여자친구와 여행지로 떠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한 여성의 인생을 바꿔놓은 그날 밤에서 그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요.’ 10년 전 수술을 마치고 헤어졌던 그날, 여성으로부터 날아든 단 한 줄의 문자메시지를 김 씨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여성은 김 씨에게 화를 내지도, 욕을 하지도 않았다. 조용히 쉼 없이 김 씨를 밀어낼 뿐이었다. 여성의 문자는 김 씨의 죄책감을 수시로 소환해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라며 여성을 안심시켰던 그날 밤 자신을 향한 환멸도. 올해 37세인 김 씨는 그 날의 기억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