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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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취재분야

2026-05-14~2026-06-13
문화 일반69%
문학/출판16%
인사일반6%
연극3%
인터넷/PC통신3%
기타3%
  • 엄숙한 아트페어는 가라! 여긴 MZ세대들의 ‘시끄러운 예술놀이터’

    시끄럽다. ‘어반브레이크 2021’의 첫인상이다.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1층 B홀. 행사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반기는 건 너비 18m, 높이 4m의 미디어월이다. 길거리 벽을 연상시키는 화면에서는 그라피티 작품이 재생되고 있다. 미디어월 뒤에서는 피아노 소리와 힙합 노래가 뒤섞여 들린다. 음악 공연이 열리는 가운데 작가 장가노와 장띵이 캔버스를 펴놓고 라이브 드로잉을 진행 중이었다. 오감을 자극하는 이곳은 차분하고 조용한 기존 아트페어와는 달리 축제에 가까워 보였다. 이 전시의 콘셉트는 거리예술을 다루는 이른바 어반아트(Urban Art). 그라피티, 네온, 일러스트, 퍼포먼스 등으로 대표되는 어반아트는 힙합, 패션, 광고 영역과 교류하며 대중예술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시를 주최한 어반브레이크 측은 신개념 아트페어를 만들고자 지난해부터 이 전시를 개최했다. 지난해 관람객 1만2000명 중 약 40%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였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 195명이 약 1400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는 아트카, NFT(대체불가능 토큰) 등 8개 주제의 특별전도 함께 운영한다. 해외작가특별전에는 ‘낙서 천재’로 불리는 존 버거맨(42)과 ‘아시아의 뱅크시’로 통하는 일본 작가 백사이드워크스 등이 참여한다. 지난해 전시에 내놓은 23점을 모두 판매한 존 버거맨은 3개 벽면에 오일페인팅 형식의 낙서 작품과 스프레이로 변형한 작품을 전시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여자 주인공을 소재로 한 백사이드워크스의 실크스크린 작품에는 개막 30분 만에 30∼40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작가별 전시 부스가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소리 혹은 쇠가 긁히는 듯한 소리를 따라가 보면 폐와이퍼 120여 개를 모아 만든 툴보이 팀의 업사이클링 작품 ‘소름’이 나온다. 주최 측이 올해 야심 차게 준비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아트 프로젝트’ 중 하나다. 마돈나가 2016년 작품을 구매해 화제가 된 고상우 작가(43)는 아시아코끼리, 대륙사슴 등 6종의 멸종위기 동물을 주제로 한 포스터를 내놓았다. 서번트증후군을 가진 신동민 작가(27)는 재생지와 재생 캔버스에 그린 작품을 전시 중인데, 판매수익의 40%를 미얀마 여성 및 아동 보호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장원철 어반브레이크 대표는 “기존 블루칩 작가에게만 집중하는 아트페어는 역동적인 미술계 흐름과 MZ세대 취향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라며 “다양한 아티스트와 콘텐츠를 발굴해 미술시장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1일까지.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및 대학생 8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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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송미술관 ‘훈민정음 NFT’ 판매 논란

    문화재계에서 무가지보(無價之寶·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로 통하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의 디지털 콘텐츠 판매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의 얼’에 해당하는 상징성 큰 문화재를 상업화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것. 일각에선 문화재 대중화에 기여하고 우리 문화재를 세계에 알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2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100개 한정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로 발행하고자 한다”며 “디지털 자산으로 영구 보존하는 한편 미술관 운영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다음 달 중순에 발행 예정인 훈민정음 해례본 NFT의 개당 가격은 1억 원으로 총 100억 원 규모다. 간송미술관은 보물급의 통일신라시대 불상 2점을 지난해 미술품 경매시장에 내놓는 등 재정난을 겪고 있다. NFT는 이미지 등 디지털 파일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고유 값을 부여한 것이다. 진품 여부와 더불어 소유권을 보증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다.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를 NFT로 발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계 일각에서는 문화재가 자칫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거론하며 우려하고 있다. 황선엽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화재 소유자가 자신의 의지로 하는 일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면서도 “행적이 묘연한 상주본을 제외하고 사실상 유일한 훈민정음 인쇄본인 간송본이 이렇게 이용되는 건 국어 연구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반론도 있다. 문화재 원본의 가치를 독점하기보다 대중과 공유하는 차원에서 디지털 콘텐츠 판매가 필요하다는 것.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디지털 기술 발달로 디지털화된 훈민정음 해례본이 오히려 실물에 가까운 느낌을 줄 수도 있다”며 “개인이 소장해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재일수록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엄격한 문화재 관리 여건상 해외 반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NFT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문화재계 인사는 “국내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하는 데 제약이 많다 보니 국내의 우수한 문화재를 해외에 알리는 게 쉽지 않다”며 “NFT를 통해 문화재를 소개하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무관청인 문화재청은 NFT 발행을 위한 디지털 촬영 과정에서 훼손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국가지정문화재를 탁본, 영인하거나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촬영을 할 때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NFT 사진 촬영으로 문화재가 훼손될 가능성은 낮아 허가 대상이 아닐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결론을 내린 건 아니다. 관련 법률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지학계 일각에서는 고서를 스캔하는 과정에서 해체가 불가피해 훼손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란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미술품이나 문화재의 원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다. 고유한 값을 부여해 소유자와 생성일, 거래 내역, 불법 복제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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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애니, SNS 타고 해외서 ‘펄펄’

    지난달 3일 글로벌 플랫폼 틱톡에 올라온 1분가량의 영상 ‘귀여워지는 안경’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시력 검사를 한 주인공 로니에게 안경을 쓰게 했더니 눈이 커지면서 더 귀여워지는 단순한 내용인데 사흘 만에 조회 수 1000만 회를 돌파했다. 21일 현재 누적 조회 수는 약 1900만 회. 댓글도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프랑스어까지 다양한 언어로 달렸다. 이 영상은 한국 애니메이션 ‘마카앤로니’의 일부 에피소드 클립이다. 글로벌 플랫폼들을 타고 한국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눈길을 끄는 귀여운 캐릭터, 언어와 관계없이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매력 요소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훨씬 유명한 캐릭터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CJ ENM과 한국 제작사 브릭스튜디오가 만들어 올해 3월부터 투니버스에서 방송 중인 마카앤로니는 틱톡에 하이라이트 영상을 올리면서 3개월 만에 45만 팔로어를 모았다. 천재 발명가와 사고뭉치 조수의 발명 도전기를 담은 코믹한 클립들의 누적 조회 수는 5700만 회에 달한다. 마카앤로니 제작자인 우경민 PD(37)는 “유튜브, 틱톡 등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대사 없이 짧은 애니메이션 형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마카앤로니는 올해 안에 모바일 게임 2종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도넛 도우도우와 반죽 모우모우의 일상을 앙증맞게 그린 20∼30초짜리 초단편 웹애니메이션 ‘도우도우’는 2018년 틱톡, 인스타그램에서 선보인 이후 유명해졌다. 국내외 TV에서 방영된 적이 없음에도 현재 틱톡 계정에서 210만 팔로어를 확보했다. 나이별로는 18∼24세(44.5%)와 25∼34세(39.3%)의 비율이 83.8%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높다. 도우도우는 특히 대만에서 인기가 많다. 18일 기준 인스타그램 팔로어 중 대만이 약 20%를 차지해 한국(12.7%)을 뛰어넘는다. 이에 올 4월 유명 백화점인 대만 타이베이의 에슬라이트백화점 청핀신이점에 도우도우 캐릭터를 활용한 봉제인형, 노트, 컵 등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열었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대만과 일본에서 2019년 9월 라인 이모티콘으로도 만들어진 도우도우는 출시된 지 20시간 만에 대만에서 이모티콘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도우도우를 만든 브릭스튜디오는 연내 5분가량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유튜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몬스터스튜디오가 만든 애니메이션 ‘브레드 이발소’는 지난해 8월 넷플릭스에 시즌1을 공개한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세계 넷플릭스 TV 시리즈 톱10에 진입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식빵인 이발사 브레드가 우유인 조수 윌크와 함께 디저트 친구들의 고민을 들은 뒤 이를 해결해주기 위해 머리 모양을 바꿔주는 이야기다. 넷플릭스에서 시즌2는 다음 달 말쯤 시작하며 시즌3는 올 12월 KBS 방영을 시작으로 넷플릭스에 선보일 예정이다. 정지환 몬스터스튜디오 대표는 “틱톡에 브레드 이발소 한국어 버전 영상을 올리면 ‘한국어를 모르지만 너무 귀엽다’는 외국인들의 글이 많이 달린다”며 “대중적인 캐릭터인 식빵과 우유가 나오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의외의 재미와 함께 공감을 선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 PD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좋아해 팬층이 넓은 데다 한 번 인기를 얻으면 오랜 기간 사랑이 지속되기에 지식재산권을 이용해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하기 좋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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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왕제색도’ ‘황소’… 세기의 ‘이건희 컬렉션’ 135점, 관객과 만난다

    2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서울관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기자간담회. 김환기(1913∼1974)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앞에 선 이들이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가로 567cm, 세로 281.5cm의 대작에 단순화된 나무, 백자 항아리를 이거나 안은 반라의 여인들, 학 등 김환기가 즐겨 쓴 소재들이 모두 담겼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아우르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문화재 및 미술품 컬렉션 중 135점이 21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올 4월 2만3000여 점 기증이 발표된 후 일부 작품이 전시됐지만 이처럼 대거 전시되는 건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국박)과 국현은 일반 공개를 하루 앞둔 20일 언론 설명회를 열고 전시에 선보일 명작들을 공개했다. 국박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서울 용산구 국박 2층 서화실에서 9월 26일까지 연다. 조선 회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를 비롯해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고려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 삼국시대 일광삼존상(국보 제134호) 등 45건(국보 12건, 보물 16건 포함) 77점을 선보인다. 국박은 기증된 2만1693점 중 이 작품들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서화, 불화, 도자기, 금동불 등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고 가장 잘 알려진 명품을 추렸다”고 밝혔다. 국현의 전시는 내년 3월 13일까지다. 국현에 기증된 국내외 근현대 작품 1488점 중 58점을 추렸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이중섭의 ‘황소’ ‘흰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등 한국 근현대 걸작들이 주인공이다. 국현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거장 34명을 선정해 이들의 주요 회화 및 조각 작품을 먼저 선보인다”고 밝혔다. 한국 박물관, 미술관 역사를 통틀어 전례 없는 기증작에 관심이 쏠리면서 두 전시는 시작도 하기 전에 상당 기간이 매진됐다. 관람일 30일 전부터 예약을 받는 국박은 20일 현재 다음 달 19일까지, 관람일 14일 전부터 예약을 받는 국현은 다음 달 3일까지 예약이 찼다. 추가 예약은 매일 자정 각 홈페이지에서 시스템이 열린다. 하루 관람 가능 인원은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기준으로 국박 300∼420명, 국현 240∼330명.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전시가 가능해지면서 우리나라 전시의 품격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 전까지 국현은 김환기의 전면점화나 이중섭의 ‘황소’ 같은 한국 미술 대표작을 소장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노력으로 한국 문화계가 큰 발전을 이룬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국내외의 수준 높은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이 시대적 의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997년 출간한 에세이에서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 이것들을 모아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썼다. 그는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프랑스 기메박물관 등 해외 주요 박물관에 한국실 설치를 지원하기도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서동일 기자 dong@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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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교과서가 따로 없네” 겸재-김환기 작품에 절로 탄성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77점 전시인왕제색도-금동불 ‘일광삼존상’ 등국보-보물 선보여… 특별 영상도 제작 98인치 대형 모니터에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를 촬영한 영상이 흐르고, ‘인왕산을 거닐다’라는 문구가 천천히 뜬다. 치마바위 등 인왕산 곳곳을 찍은 영상 위로 인왕제색도에 담긴 치마바위가 겹친다. 약 270년 전 그림 속 인왕산과 2021년 현실 속 인왕산이 만나는 순간. 국립중앙박물관(국박)이 특별 제작해 서울 용산구 전시실에서 선보이는 5분 20초 분량의 영상이다. 21일 막을 여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기획한 이수경 국박 학예연구관은 “명품에 대한 호기심이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시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높이가 8.8cm에 불과한 금동불 ‘일광삼존상’(국보 134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살상 뒤 광배(光背·부처나 보살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것)에 그려진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는 성스럽고 고결한 느낌을 준다. 삼존불 중앙에 부처 대신 보살이 있는 형태는 당시 매우 독특한 형식이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아름답고 섬세한 삼국시대의 미(美)를 잘 나타내는 불상”이라고 평가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고려시대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화엄경·국보 235호)이 있다. 검푸른 종이에 금가루로 불경을 옮겨 적었다. 섬세한 글자와 화려함이 고려시대 불교의 융성을 보여준다. 화엄경 맞은편에는 조선시대 서화 두 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단원(檀園)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와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다. 먹을 듬뿍 묻혀 여름철 비가 갠 직후의 느낌을 살린 인왕제색도와 마른 먹을 이용해 가을의 메마른 느낌을 날카롭게 담아낸 추성부도는 한눈에도 확연히 대비된다. 넘쳐나는 그림 주문으로 자신감 넘쳤던 겸재의 노년과 건강 악화로 죽음과 마주했던 단원의 쓸쓸한 노년이 담겼다. 고려시대 불화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도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1000개의 손과 눈을 가졌다고 해서 천수관음보살이지만, 전부 그릴 수 없어 11면의 얼굴과 44개의 손으로 표현했다.국립현대미술관, 근현대작 58점 전시 이중섭의 ‘황소’-‘흰소’ 나란히 걸려박수근-유영국-장욱진 등 대표작 포함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서울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포스터에 담긴 작품은 김환기(1913∼1974)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상을 바탕으로 인물과 동물, 사물을 정면 혹은 측면으로 그려 고답미를 물씬 풍긴다. 1950년대 삼호그룹 정재호 회장이 주문 제작한 대작으로, 1960년대 말 미술시장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환기의 ‘산울림 19-II-73#307’(1973년)은 그가 1960년대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후 완성 단계에 이른 점화 양식을 잘 보여준다. 흰 사각형 안 동심원들이 세 방향으로 퍼져 나가며 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는 당시 점, 선, 면만으로 이뤄진 추상화 실험을 이어갔다. 김환기 작품의 대각선 방향 건너편으로 이중섭(1916∼1956)의 ‘황소’(1950년대)와 ‘흰 소’(1950년대)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인내를 상징하는 소는 이중섭에게 한국의 상징이자 자화상이었다. 이 중 붉은 황소는 6·25전쟁이 끝난 직후 새로운 출발의 시점에 그려졌다. 붉은 황소를 그린 이중섭의 현존 작품 4점 중 하나다. ‘황소’가 소의 머리를 부각했다면 ‘흰 소’는 걷고 있는 소의 전신을 역동성 있게 묘사했다. 흰 소는 백의민족을 상징해 일제강점기 당시 작품 소재로 사용하는 게 금기시됐다. 박수근(1914∼1965)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은 화강암의 거친 질감이 소박한 정취를 자아낸다. 아이를 업은 채 절구질하는 여인의 고단한 모습을 포착했다. ‘서민 화가’로 불린 박수근은 농가의 일하는 여인들을 평생 그렸다. 유영국(1916∼2002)의 ‘작품’(1972년)은 산을 모티브로 했다. 그는 다양한 색채와 질감을 통해 산의 형태에 변주를 준 연작들을 남겼다. 1972년작은 차가운 색채를 썼지만 나란히 진열된 1974년작 ‘작품’은 따뜻한 주홍빛으로 그려 대비된다. 장욱진(1918∼1990)의 ‘나룻배’(1951년)는 6·25전쟁 기간에 그려진 것으로 어릴 적 고향에서 본 강나루의 풍경을 정감 있게 표현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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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상과 구상… 두 줄기로 그려낸 한국 현대미술의 얼굴

    김환기, 천경자, 이우환….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들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견인해 온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14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두 얼굴展: 추상과 구상―김환기에서 고영훈까지’다. 전시에는 이미 작고한 11명을 포함해 총 2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갤러리 측은 컬렉터와 작가 본인으로부터 회화 38점을 모아 전시했다. 허성미 관장은 “한국 미술시장이 주목받는 현재, 한국 미술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추상미술과 구상미술 두 줄기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고 했다. 대개 회화에서 추상미술은 대상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거나 대상이 없는 것을, 구상미술은 사물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을 말한다. 전시는 추상화가로 김환기 김창열 이우환 박서보 김태호 등 13명을, 구상화가로 천경자 이왈종 김종학 오지호 고영훈 등 11명을 소개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전면에 김환기의 작품 ‘Untitled’(연도 미상)가 보인다. 가로 16cm, 세로 20cm인 작은 작품이지만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이우환과 김태호의 작품이 독보적인 기운을 풍긴다. 이우환의 ‘점으로부터’(1979년)는 우측으로 갈수록 안료의 농도가 옅어지는 점들을 그리면서 생성과 상실의 과정을 보여준다. 초록색 평면인 듯 여러 색 입체인 듯한 작품은 김태호의 ‘Internal Rhythm’(2020년)이다. 김태호는 여러 층의 물감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리고 층을 형성시킨 뒤 특수 조각칼로 물감을 깎아 작품을 만들었다. 전시장 오른편이 점, 선, 면, 색의 고유함을 알려줬다면 왼편은 묘사의 섬세함과 화려함에 놀라게 된다. 천경자의 ‘금붕어’(연도 미상)는 작가를 대표하는 소재인 여인은 없지만 화려하면서도 정겨운 동양화의 색이 존재를 돋보이게 한다. 그 옆에 있는 고영훈의 ‘사발’(2013년)은 극사실적이다. 조금 깨진 사발의 모서리 부분까지 묘사해내 작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김종학의 ‘백화만발’(1998년)은 자유분방하면서도 환상적인 자연을 그려낸 것인지라 캔버스를 뚫고 나오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추상과 구상을 나누긴 했지만, 결국 마음에 남는 건 작가 24명이 자신만의 작법과 스토리로 역사를 써왔다는 사실이다. 김흥수가 1977년 “구상과 추상이 서로 공존할 때 비로소 작품이 온전해진다”고 선언한 것처럼 말이다. 전시는 27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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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내운동 음악 제한하는 코로나 시대, 관람객 걷는 속도에 맞는 K팝 들려줘

    15일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 한가로운 전시장 한편에서 트와이스의 ‘OOH-AHH하게’가 흘러나왔다. 가요가 나오는 곳에는 4m가량의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었다. 기자가 평소 산책하듯 걷자 노래가 아이유, 울랄라세션의 ‘애타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큐레이터는 “걷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며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작품은 1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시작한 13팀의 기획 전시 ‘오픈코드, 공유지 연결망’에서 선보인 배인숙 작가(46)의 신작 ‘비트스텝’이다. 관람객의 걷기 속도와 어울리는 bpm값(분당 비트수)을 추출한 뒤 그에 맞는 K팝 댄스곡을 자동으로 틀어주는 작품이다. ‘애타는 마음’은 155bpm. 아까보다 조금 힘을 빼고 걷자 방탄소년단의 ‘Dynamite’(114bpm)가, 잰걸음으로 걷자 트와이스의 ‘CHEER UP’(173bpm)이 나왔다. 15일 만난 배 작가는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마음 놓고 산책하거나 야외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대중음악을 좋아하는데, 걷기와 음악 모두 속도가 다양하다는 점에 착안해 제한된 곳에서라도 움직여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비트스텝에 포함된 곡은 75∼173bpm의 K팝 댄스곡 100곡이다. 지난주 실내 단체운동(GX) 시 틀 수 있는 음악속도를 100∼120bpm으로 제한한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행된 후 그는 지인에게 연락을 왕왕 받았다고 했다. 작품이 시의적절하다는 반응이었다. 비트스텝에 포함된 곡 중 120bpm 이하는 37곡이다. 관람객의 관심도 높아 1일부터 15일까지 이 작품은 총 1051회 시행됐다. 홍대 인디밴드에서 3년간 활동한 그는 동국대 영상대학원 컴퓨터음악 석사, 네덜란드 헤이그왕립음악원 소놀로지(전자음악) 코스를 밟았고,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배 작가는 “각기 다른 사람들로 인해 똑같은 소리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 관객과 교감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 거울 앞에 선 관람객을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함으로써 인공지능(AI)에게 사람은 코드로 인식된다는 점을 알려주는 독일 베른트 린터만, 페터 바이벨 작가의 ‘당신의 코드’가 대표적이다. 10월 24일까지. 무료. 용인=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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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슛 열정으로 골 승부한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 화제

    “축구를 본 적은 있어도 해보고 싶은 건 처음이네요.” 지난달 말, 여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엄마를 위한 축구 교실도 있나요’라는 질문에 활발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이들을 자극한 건 여성들로 구성된 6개 아마추어 축구팀이 출연하는 SBS 스포츠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 설 연휴에 선보인 파일럿 방송이 시청률 10%를 넘기자 정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다. 지난달 16일 방송을 시작한 후 7% 안팎의 시청률을 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국가대표나 그들의 가족인 ‘FC 국대 패밀리’, 개그우먼 팀 ‘FC 개벤져스’, 평균 나이 48세인 ‘FC 불나방’, 모델 팀 ‘FC 구척장신’, 배우 팀 ‘FC 액셔니스타’, 외국인 방송인 팀 ‘FC 월드 클라쓰’로 구성됐다. 최근 동아일보와 통화한 연출자 이승훈 PD(40)는 37명의 여성을 출연진이 아닌 ‘선수’라고 불렀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을 뜨거웠던 여름으로 기억한다. 다들 축구가 처음이지만 열정은 그때 못지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들이 모여서 축구를 한다고? 처음에는 다들 그랬지. 골 때린다고.”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내레이션처럼 중년 남성이나 유망주가 주연이었던 스포츠 예능이 여성에게 눈을 돌린 건 이례적이었다. 여성이라고 해서 축구를 ‘조금 배워본다’ ‘한번 해본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모델 한혜진은 발톱이 빠지도록 공을 차면서도 “2회는 언제 할 건데요? 발톱이 자라야 하는데”라며 전의를 불태운다. 이 PD는 정규시즌 개막 전 부상 위험 때문에 연습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단다. “그래도 저 몰래 만나서 연습하더라고요. 선수들의 의지가 통제가 안 돼요.” ‘각본 없는 드라마’는 시청자를 울린다. 구척장신팀에서 벤치 신세였던 공식 ‘구멍’ 송해나, 이현이는 끝끝내 골을 넣는다. 설 특집에서 4 대 0으로 졌던 구척장신 팀은 국대패밀리 팀과 재대결에서 승부차기까지 갔고, 이들은 마침내 ‘한 골’이라는 꿈을 이룬다. 개막 2주를 앞두고 다리 깁스를 한 신봉선은 “박선영 언니처럼 멋진 주장이 되고 싶었는데 아직 제가 부족해서 서툴러요”라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런 그가 박선영을 포함한 불나방 팀과의 재대결에서 골을 넣고 승리를 이끈다. 선수들의 인생 이야기도 공감을 더한다. 축구선수 정대세와 결혼하며 승무원 일을 그만둔 명서현은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만 살았어요. 축구선수의 아내가 축구선수가 된다는 건 생각도 못 해봤어요. 요즘 제 삶이 너무 좋아요”라며 웃는다. 감독으로 나선 김병지 황선홍 이천수 최진철 최용수 이영표 등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주역들의 전략도 흥미를 더한다. 개벤져스 팀의 감독 이천수는 상대의 방어 형태에 따라 2, 3명이 조직적으로 공격 전술을 펴는 세트피스 전략으로 월드클라쓰 팀과의 대결에서 3골을 만들어냈다. 6개 팀은 2조로 나뉘어 리그전을 치른 뒤 각 조 상위 2팀이 토너먼트 경기를 치른다. 현재 불나방 팀, 월드클라쓰 팀, 구척장신 팀이 한 번씩 패배한 상태다. 프로그램은 예능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1시간 30분가량의 방송시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분위기와 선수들의 진지함이 경기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차별화 포인트”라는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의 말처럼 제작진도 굳이 시청자를 웃기려 하지 않는다. 이 PD는 “예능적 요소를 추가하고 싶은 욕심은 없다. 그냥 이들의 플레이를 지켜볼 생각이다. 이거야말로 살아있는 예능이라고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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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으로 빚어낸 ‘느낌있는 사진’

    9일 오전 9시 45분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시소 서촌. 전시관 개장 15분 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20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휴일 못지않게 붐볐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스페인 사진가 요시고(본명 호세 하비에르 세라노·40)의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에는 10일까지 총 4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그가 처음 국내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문화콘텐츠 크라우드 펀딩 ‘펀더풀’을 통해 전시비용을 조달했다. 지난달 9∼22일 495명이 펀딩에 참여해 전시 개최에 필요한 5억 원 이상이 모였다. 전시 2주 만에 투자 손익분기점(관람객 8만 명)의 절반을 채웠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350여 점의 사진은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게 만드는 매력을 담고 있다. 작가의 렌즈가 향한 곳은 한가로운 장소다. 그는 순간적인 장면을 빠르게 촬영하는 스냅사진의 거장 스티븐 쇼어(74)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처음 구입한 사진집은 쇼어의 ‘American surfaces’였다. 보통의 것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건 이국적 풍경이다. 전시는 건축, 다큐멘터리, 풍경의 3개 섹션으로 나뉘어 일본, 아랍에미리트, 헝가리, 스페인, 미국, 포르투갈, 프랑스 등 7개국의 자연과 사람을 담았다. 노곤한 오렌지 빛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 것 같은 옥빛까지. 그는 자연이 선물한 다채로운 색을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작품 ‘Dubai, UAE’(2018년)는 강렬한 햇빛이 비추는 사막의 모래와 산맥의 그림자가 인상적이다. “지루하게만 보이던 대상도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각도에 따라 마법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는 그에게 빛은 중요한 도구다. 요시고는 장소와 시간에 따른 태양의 각도를 보여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참고해 필름 혹은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했다. 그가 즐겨 촬영한 곳은 고향인 스페인 도시 ‘산세바스타인’. 작품 ‘San Sebastian, Spain’(2019년)은 해수욕을 즐기러 온 아이들을 담았다. 다수의 관광객이 작품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70∼200mm 망원 줌 렌즈로 당겨 촬영했다. 전시 포스터로 쓰인 대표작 ‘Mallorca, Spain’은 스페인 마요르카섬 해변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남성의 모습을 다뤘다. 이 작품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의류업계 종사자였던 그가 유명 사진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후원 덕분이었다고 한다. 사진 촬영에 재능이 없다며 주눅이 들었을 때 아버지는 시를 한 편 지어 아들에게 선물했다. 시의 한 문구였던 ‘Yo sigo(계속 나아가다)’는 이후 그의 활동명이 됐다. 이후 그는 지인들에게 작품을 보여주려고 시작한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현재 약 19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그는 ‘잭 다니엘’ 등 유명 브랜드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도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젊은층에 입소문이 나 관람객의 90%가 20, 30대다.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의 80%도 20, 30대였다. 윤성욱 펀더풀 대표는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고 지지하는 젊은층의 문화적 팬덤에 힘입은 전시”라며 “코로나로 좌절된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는 작품 소재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5일까지. 성인 1만5000원, 아동·청소년 1만2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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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심한 너의 눈빛에… 어처구니없이 빵∼ 터진다

    빨간 니트와 바지를 입은 개는 시크하게 오른쪽으로 고개를 꺾고 있다. 지루한 듯 허공을 바라보는 무심한 개의 눈빛이란.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터진다. 작품 ‘캐주얼’(2002년)이다. 현대 사진의 거장 윌리엄 웨그만(78·미국)이 포착하는 순간에는 항상 개가 있다. 자신의 바이마라너종 반려견들이다. 1979년 그는 존경하는 미국 사진작가 만 레이(1890∼1976)의 이름을 붙인 첫 반려견 ‘만 레이’와의 작품 활동을 시작으로 총 15마리의 반려견을 의인화해 사진을 찍으며 인간 세상을 풍자했다. 혁신이었다. 그의 작품은 미국 방송사 NBC의 ‘생방송 토요일 밤’과 PBS의 ‘세서미 스트리트’에 소개됐고 뉴욕현대미술관(MoMA), 휘트니미술관 등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웨그만의 작품 84점이 한국에 왔다. 2018년 프랑스 아를 국제사진축제를 시작으로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를 거친 세계 순회 사진전 ‘윌리엄 웨그만: 비잉 휴먼(William Wegman Being Human)’이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디지털카메라 작품은 18점이고, 대형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무게 106kg, 냉장고만 한 크기의 사진기로 촬영한 가로 51cm, 세로 61cm의 사진들에는 반려견에 대한 웨그만의 애정이 담겼다. ‘슬로 기타’(1987년)에서 개는 기타를 껴안은 채 비스듬하게 누워 있다. 위를 향하는 눈동자를 보면 악상을 떠올리는 음악가 같기도 하고, 피곤에 절어 쉬고 있는 직장인 같기도 하다. 인내심이 강하다고 알려진 바이마라너가 보여주는 모델로서의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모자와 목걸이를 한 개’(2000년)에서는 카메라를 등진 채 고개만 돌려 정면을 응시하고, ‘키’(2017년)에서는 유명 브랜드 마크 제이컵스의 옷을 입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합성한 사진은 없다. 사람처럼 옷을 입고 서 있는 사진의 경우 실제 개에게 옷을 입힌 다음 의자 등을 설치해 설 수 있게 했다. 손 같은 사람의 신체가 필요하면 조수가 개 뒤에 몸을 숨기고 손만 내밀게 했다. 색상에 대한 웨그만의 감각은 빼어나다. 미국 매사추세츠미술대를 졸업하고 일리노이대 예술대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어려서부터 회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깊은 바다 빛 바탕에 흰색 오브제가 어우러진 ‘흘린 모양새’(2013년), 터키석 색과 노란색이 조화를 이루는 ‘오션뷰’(2015년). 배경 색채들이 이루는 조화 속에 회갈색 털을 가진 바이마라너가 도드라진다. 즉석에서 인화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사진은 후보정을 할 수 없기에 그는 색의 조화와 도구, 모델의 구도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산한 촬영장에서는 반려견의 눈높이를 렌즈 눈높이와 맞춰 모델의 집중을 끌어냈다. 물론 쉽진 않았다. ‘캐주얼’의 모델인 캔디는 기분 내키는 대로 달리거나 쉴 새 없이 점프를 했다고 한다.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활동적인 캔디를 어르고 달래며 한 컷 한 컷 찍었을 웨그만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시는 개를 통해 사회 여러 계층을 보여주는 ‘우리 같은 사람들’, 나비부인 같은 오페라와 연극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야기’ 등 모두 9개 세션으로 구성된다.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그는 내 안에 스며든다”는 웨그만의 말처럼 사진에선 그와 반려견 간의 교감이 느껴진다. 차분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반려견의 눈동자에서는 당시 카메라 뒤에 있던 웨그만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다. 9월 26일까지.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어린이 1만 원.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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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 ‘은지화’- 고려청자 상감기법… ‘한국의 美’ 뿌리를 찾아서

    전통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현대에 헌정된다. 오늘날 ‘한국의 미(美)’로 꼽히는 예술에는 수백 년의 시공간을 초월해온 예술가들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8일부터 10월 10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무료로 선보이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문화재 및 미술품을 교직하며 한국적 아름다움의 뿌리를 찾는다. 전시에는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 35점과 근현대 미술 130여 점이 나왔다. 단원 김홍도 같은 조선시대 화가부터 김환기, 천경자 등 근현대 화가에 이르기까지 유명 작가 97명의 작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 중 이중섭의 ‘은지화’(1950년대), 도상봉의 ‘정물 A’(1974년)와 ‘포도 항아리가 있는 정물’(1970년), 박영선의 ‘소와 소녀’(1956년)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작품이다. 천재는 홀로 탄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중섭에겐 고려청자가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다. 그림 재료를 살 돈이 없던 가난한 화가는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에 뾰족한 도구로 드로잉을 하는 은지화 기법을 창안했다. 은박 위에 긁힌 부분은 미세한 음각이 된다. 그 위에 물감을 바르고 닦으면 마치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처럼 물감이 파인 부분을 메우며 작품으로 탄생한다. 작품 ‘봄의 아동’(1952∼1953년)은 ‘청자상감 포도동자무늬 주전자’에 보이는 동자들의 문양을 평면적으로 펼쳐놓은 듯하다. ‘최순우가 김환기에게 보낸 연하장’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힘도 살펴볼 수 있다. 김정희는 수묵으로만 간략하게 그림을 그린 조선시대 문인화의 대가다. 연하장에는 김정희 초상과 대표작 ‘불이선란도’의 인쇄본이 수록돼 당대 화가들의 김정희에 대한 존경을 확인할 수 있다. 김환기와 최순우, 이 연하장의 소장자 윤형근은 모두 1970, 80년대 한국 단색화의 선두주자다. 조선 백자는 우아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도상봉의 회화 ‘라일락’(1975년)은 달항아리 특유의 티 없는 깨끗함에 수더분한 흰 라일락꽃을 더했다. 박영선의 ‘소와 소녀’와 함께 서민적 성격의 백자가 세련된 가정에 어울리는 예술 작품으로 이미지가 변주됨을 볼 수 있다. 아호를 ‘도천(陶泉·도자기의 샘)’이라 지을 정도로 도자기를 좋아했던 도상봉은 ‘정물 A’ ‘포도 항아리가 있는 정물’ 등 정물화 곳곳에도 도자기 그림을 넣었다. 수백 년의 간격을 지닌 작품들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걸 바라보노라면, 과거와 현대의 경계가 흐릿해 보이기도 한다. 신윤복의 ‘미인도’(18세기 후반)는 1957년 전후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기획된 ‘고미술전람회’ 출품작을 다룬 신문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작품은 공개되자마자 전통적인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미인도는 우수한 전통으로 여겨지며 현대 작가들에게 자극을 줬다. 장운상이 ‘청향’(1973년)을 통해 온건한 형태로 미인도를 계승했다면, 천경자는 현대 여성 작가들의 정체성을 그림에 담았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년)은 니코틴의 힘을 빌려 잠시나마 안정에 든 순간을 담담하게 묘사한 자화상 성격의 작품이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소박하고 자연스럽다고만 알려진 한국적 미를 재정의하고 싶었다. 다양한 시대에 만들어진 성과들은 다면적이다. 한국미술사의 성과들이 사각지대 없이 다시 읽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전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이건희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달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한국 근현대 작품 60여 점을 공개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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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이핑크 등 33인 “유기동물 인식개선에 앞장”

    유기동물을 돕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인플루언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동아일보와 한국사회공헌협회는 2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FF(유기동물 인식개선) 캠페인’ 공식 앰버서더를 위촉했다. FF 캠페인은 유기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유기동물 보호소를 지원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이날 위촉식에서 그룹 에이핑크의 박초롱과 윤보미를 포함한 앰버서더 33명은 “나는 친구를 버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앞에 서서 유기동물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데 앞장서기로 약속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매년 동물 10만 마리 이상이 유기되고 있다. 유기동물 대부분이 시설이 열악한 민간보호소 등에 있는데, 수용 정원이 찰 경우 20% 이상이 안락사 된다. 이에 한국사회공헌협회 등은 4월부터 유기동물 관련 활동을 기획했다. 여기에 게임 방송으로 유명한 유튜브 채널 ‘Mnics에투샤’의 운영자 권영민 씨 등이 합세하면서 ‘인플루언서들의 캠페인’으로 확대됐다. 앰버서더 명예단장을 맡은 권 씨는 “33명 중에 유기동물과 관련한 봉사를 해본 사람도 있고, 나처럼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다. ‘내게 맞는 자리인가?’ 고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 기회에 인플루언서로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앰버서더 중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한의학자이자 유튜브 채널 ‘허준할매’를 운영하는 최정원 씨는 후자. 10년 전만 해도 어떤 동물보다도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최근 반려동물의 영향력을 보면서 동물의 생명이 지닌 가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반려동물이 인간과 교류하는 존재로서 주는 위안과 행복감이 상당하다. 단순히 입양하고 키우는 존재 그 이상이 됐는데도 유기되는 동물이 많다. 이 문제는 이젠 반려동물 보호자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고 말했다. 앰버서더들은 앞으로 유기동물과 관련한 다양한 온·오프라인 활동을 하고, 이를 각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알릴 예정이다. 국도형 한국사회공헌협회 회장은 “이 캠페인이 누군가에겐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 수가 늘면서 사회가 점진적으로 나아질 거라 믿는다”며 “대중의 사랑으로 성장한 인플루언서들인 만큼 사회적 책임인 ‘ISR(influencer Social Responsibility)’ 문화 또한 함께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FF 캠페인은 8일부터 9월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사진전 ‘윌리엄 웨그만: 비잉 휴먼(William Wegman Being Human)’과 시작과 끝을 같이한다. 전시 수익의 2%는 동물자유연대에 기부된다. 유기동물 보호소 운영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료를 지원하는 데에 쓰일 예정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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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700년 전 보카치오처럼… 팬데믹 시대 우리의 삶을 엮다

    지난해 3월 미국에서는 갑자기 14세기에 쓰인 한 책이 서점에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문호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의 ‘데카메론’이었다. 14세기 유럽에는 인류사상 최악의 전염병인 흑사병이 돌았다. 보카치오는 흑사병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펴냈고, 공포에 떨던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쳤다.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읽었고, 그들의 눈물과 웃음이 모여 이 책은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70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고전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단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기획한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케이틀린 로퍼 책임 프로듀서에 따르면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소설가 리브카 갈첸이 NYT에 연락해 데카메론 리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이에 NYT는 한발 더 나아가 당대 최고 소설가들이 격리 중에 쓴 신작 단편소설들을 모아 ‘우리 시대의 데카메론’을 만들고자 했다. 로퍼는 서문에서 “암울한 시기에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제공하는 것보다 더 큰 야망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단편 29편이 모였다. 책은 지난해 7월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단편들을 다시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소설가들은 전염병 시대를 배경으로 사랑, 욕망, 행복 등을 다룬 일상 혹은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해 그린다. 책의 시작인 ‘알아보다’는 봉쇄조치가 내려진 미국 뉴욕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두 여인의 우정을 다뤘다. ‘블랙 톰의 발라드’(2016년)로 미국 문학상인 셜리 잭슨상을 받은 소설가 빅터 라발의 작품이다. 작가는 마스크 착용, 원격 수업 등 코로나19 시대상을 작품에 녹여냈다. ‘눈 먼 암살자’, ‘증언’, ‘시녀 이야기’ 등을 쓴 유명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격리 중인 지구인들을 도와주러 온 문어 모습의 외계인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그린다. 작품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속 외계인은 결혼을 통해 궁전에 들어가게 된 신분 낮은 그리젤다가 못된 궁전 사람들을 물리치고 사는 이야기를 전한다. 외계인은 만담꾼 역할에 대해 “재밌는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지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내용이다. 700년 전 책 데카메론도 그랬다. 데카메론은 흑사병을 피해 이탈리아 도심 밖에 모인 젊은 남녀 10명이 10일 동안 각각 하루에 하나씩 총 100편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용을 액자소설 형태로 모은 책이다. 수녀가 실수로 두건 대신 내연남의 바지를 뒤집어쓰는 내용처럼 대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다. 전염병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데카메론은 인간의 일상과 내면을 구체적인 체험으로 풀어내며 서로의 결속을 돕는다. 데카메론 프로젝트 역시 소설 속 불안정한 주인공의 일상에 공감해 씁쓸해하다가도 발랄한 문체에 웃음 짓게 된다. NYT 메일함이 이 소설이 준 위안에 대해 쓴 독자들의 편지들로 가득 찬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소설을 읽는 건 그 시기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상황을 끈기 있게 버텨내는 방법이다. 책은 동시대 독자들이 누구도 상상해본 적 없는 현재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데, 또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긴 미래의 독자들이 이 시기를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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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김서형 “재벌가 맏며느리 넘어 성소수자 멜로… 오랜 갈증 털어냈다”

    재벌가에는 남성들이 산다. 남성들은 차기 회장 자리를 두고 암투를 벌인다. 적자와 서자, 친모와 양모를 가려가며 서로가 우위를 차지하려 으르렁댄다. 이곳의 여성들은 주변인일 뿐이다. 시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을 듯했던 재벌가 클리셰다. 하지만 이제 재벌가에는 여성들도 산다. 가부장적 폐습에 갇혀 ‘나’를 지우고 살던 이들은 클리셰를 보란 듯이 전복시키고 자신과 스스로의 것들을 지켜 나간다. tvN 드라마 ‘마인’이 말하는 시대상이다. 드라마는 6월 27일 마지막 회에서 최고 시청률 10.5%를 찍고 종영했다. 부계 상속이 주가 되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 주체가 되는 여성들, 그리고 그들의 연대는 마지막 회 부제 ‘빛나는 여인들’처럼 반짝인다. 그중에서도 효원가의 중심에 서서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여인은 첫째 며느리 정서현(김서형)이다. 정서현은 둘째 며느리 서희수(이보영)의 ‘키다리 언니’를 자처하며 워맨스(여성들 간의 우정)를 선보인다.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보고받고 행동하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6월 2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서형(48)은 “오지랖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며 “비슷한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대사 앞뒤로 군더더기 감정을 뺀 채 표정으로 담백하게 연기하려 했다”고 밝혔다. “짧은 장면에 캐릭터가 살아온 인생 전체를 표현하는 연기력이 놀랍다”는 연출자 이나정 PD의 말처럼 김서형은 권력형 드라마에 새로운 캐릭터를 입혔다. 마찬가지로 배우 김서형에게도 이 작품은 새로운 세계였다. 1994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로맨스 주인공을 별로 맡지 않은 그에게 서정적인 멜로 연기를 시도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김서형은 “첫째 며느리로서의 멋진 모습도 많았지만 이 작품에서 내 주안점은 멜로였다”고 밝혔다. 정서현은 수지 최(김정화)와 연인인 여성 성소수자다. 김서형은 “성소수자의 멜로가 다른 이들의 사랑과 다르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만큼 아름다운 멜로를 그릴 수 있겠냐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극중 수지 최와 헤어진 뒤 효원가에 들어온 정서현은 초반부터 내내 그를 그리워하지만, 사실 두 배우의 첫 만남은 촬영 중후반부에 이뤄졌다고 한다. 정서현이 엠마 수녀(예수정)를 찾아가 수지 최와 헤어진 날을 털어놓던 6회 장면이었다. 그는 촬영일에 가까워졌을 때에야 김정화가 상대역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김서형은 “모호한 누군가를 떠올리며 연기를 해왔기에 촬영 날 정화 씨와 처음 본 사이였는데도 애틋했다”며 “‘그리워하라고 촬영을 늦게 잡았나 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포옹을 한 번 한 뒤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김서형은 “이번 작품은 멜로 촬영을 통해 무거운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2008∼2009년)의 내연녀 신애리, ‘스카이캐슬’(2018∼2019년)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등 강렬한 연기를 보여 왔다.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개인적으론 힘겨웠다고 한다. “늘 움켜쥐고 에너지 있게만 극을 끌다가 끝나는 건 인간 김서형에게는 아쉽고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다. “신나서 연기하기 바빴다”는 그는 이번 촬영 내내 이 PD에게 의지했다고 한다. 평소 모니터링에 집착하지 않은 것도 이 PD를 믿고 연기에만 집중하자는 뜻이었다. 이 PD는 사전 조사 후 스태프와 만들고 싶은 콘셉트를 4개월간 준비할 정도로 철저한 지휘자였다. “고급스러움과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엉망진창의 관계들과 공허한 욕망을 아이러니하게 펼치고 싶었다”는 그의 이번 연출은 세련됐다는 평을 받았다. 청춘의 성장기를 담은 ‘쌈, 마이웨이’(2017년), 로맨틱 코미디 ‘오 마이 비너스’(2015∼2016년) 등을 연출해온 그는 “때론 즐겁게, 때론 의미 있게 제 작품이 시청자에게 다가갔으면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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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속활자, 자동물시계 부품… 땅속서 나온 ‘조선의 과학’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가 1600점 이상 대거 쏟아져 나왔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법을 따른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와 1440년대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하기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도 포함됐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세종 시대 과학유산의 부품들도 함께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2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서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580여 점과 한자 금속활자 1000여 점을 공개했다. 한글 활자 중에는 15세기에 사용된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표기법을 따른 활자들이 포함됐다. 동국정운은 조선 한자음을 정리해 1448년 간행된 음운서로, 이번 발견은 한글 창제 연구에 주요 사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에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능엄경언해(1461년)에 쓰인 활자였다. 한자 금속활자 중 최소 6점은 1434년에 만든 ‘갑인자(甲寅字)’로 추정된다. 추후 연구를 통해 1434년에 제작된 것이 최종 확인된다면 세종 재위 기간(1418∼1450년)에 만들어진 금속활자의 최초 실물이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앞선 것이 된다.세종의 꿈 새겨진 最古 한글 금속활자 찾았다 ‘ㅱ, ㅸ’ 등 초기 한글 활자 첫 발견1434년 제작 추정 ‘갑인자’ 확인땐구텐베르크보다 제작 시기 앞서이번 발견은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 수준의 금속활자를 발견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은 갑인자 추정 활자를 두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금속활자 40여 종 가운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완벽하다”며 “세종, 세조 시대 문화 황금기를 이끈 데 영향이 컸던 조선 활자 인쇄술 규명에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동국정운식 표기가 실물 활자로 확인된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 ‘ㅱ, ㅸ, ㆆ, ㆅ’ 등 동국정운식 표기는 인쇄본으로는 여러 책이 있지만 활자로는 전해진 것이 없었다. 백두현 경북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현재 실물 한글 금속활자 중에는 ㅱ, ㆆ, ㆅ 글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글자는 1480년대까지만 사용됐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한글 활자가 확실히 가장 오래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활자 중에는 한문 사이에 쓰는 한글 토씨인 ‘이며’ ‘이고’ 등을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있다. 이번 발굴은 수도문물연구원이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종로구 인사동 79번지)’ 발굴 조사 중에 이뤄졌다. 이곳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중심부였다.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출토 지역에 관한 조선 전·후기 기록을 찾아본 결과 관(官)이 지은 건물은 아닌 듯하다”며 “건물 터 형태를 보면 양반도 살았겠지만 시장에서 살았던 중인, 관아의 아속들이 주로 거주했던 집의 일자형 혹은 ㄱ자형 창고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금속활자는 해당 장소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에 있는 도기 항아리 안에서 발견됐다. 항아리에는 주전(籌箭·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 물시계의 시보 장치를 작동시키는 부속품)도 함께 있었다. 문화재청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에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도 이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다. 항아리 바깥쪽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유물들이 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가 부품 형태로 출토된 것. 이는 낮에는 해시계,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했던 기계다. 세종실록에는 1437년 세종이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물은 전무했다. 이 외에도 동종(銅鐘), 동판(銅板), 총통(銃筒) 등도 함께 발견됐다. 이처럼 귀한 유물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이곳에 대거 묻혔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문화재청 및 수도문물연구원의 입장이다. 발굴 유물 중에 15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소승자총통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588년 이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각종 동제 유물 출토에 대해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성분 분석 전이지만 색깔을 봤을 때 순동에 가깝다”며 “조선시대에 동 자체가 귀한 재료라 수습한 유물이 일반 민가에서 소유할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출토 위치가 상당히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 금속품을 모아 고의로 묻고 나중에 녹여 다른 물건으로 만드는 재활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군가가 유물을 모아서 폐기했을 수도 있다”며 “이곳에 금속 유물을 무더기로 묻은 이유는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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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동서 쏟아진 한글활자…“조선 금속활자 중 가장 완벽”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가 1600점 이상 대거 쏟아져나왔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법을 따른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와 1440년대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하기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도 포함됐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세종 시대 과학유산의 부품들도 함께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2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서 항아리에 담긴 채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580여 점과 한자 금속활자 1000여 점을 공개했다. 한글 활자 중에는 15세기에 사용된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표기법을 따른 활자들이 포함됐다. 동국정운은 조선 한자음을 정리해 표준음을 정립하기 위해 1448년 간행된 음운서로, 이번 발견은 한글 창제 연구에 주요 사료가 될 전망이다. 기존에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능엄경언해본(1461년)에 쓰인 활자였다. 한자 금속활자 중 최소 6개는 1434년에 만든 ‘갑인자(甲寅字)’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나온 한자 금속활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현종실록(1677년) 인쇄에 쓰인 것이었다. 갑인자 추정 활자가 추후 연구를 통해 최종 확인된다면 세종 재위 기간(1418~1450년)에 만들어진 금속활자의 최초 실물이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앞선 것이 된다. 이번 발견은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 수준의 금속활자를 발견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은 갑인자 추정 활자를 두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금속활자 40여 종 가운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완벽하다”며 “세종, 세조 시대 문화 황금기를 이끈 데 영향이 컸던 조선 활자 인쇄술 규명에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동국정운식 표기가 실물 활자로 확인된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 ‘ㅱ, ㅸ, ㆆ, ㆅ’ 등 동국정운식 표기는 인쇄본으로는 여러 책이 있지만 활자로는 전해진 것이 없었다. 백두현 경북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현재 실물 한글 금속활자 중에는 ㅱ, ㆆ, ㆅ 글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글자는 1480년대까지만 사용됐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한글 활자가 확실히 가장 오래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활자 중에는 한문 사이에 쓰는 한글 토씨인 ‘이며’ ‘이고’ 등을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있다. 이번 발굴은 수도문물연구원이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종로구 인사동 79번지)’ 발굴조사 중에 이뤄졌다. 이곳은 조선 시대 한양도성의 중심부였다.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출토지역에 관한 조선 전·후기 기록을 찾아본 결과 관(官)이 지은 건물은 아닌 듯하다”며 “건물터 형태를 보면 양반도 살았겠지만 시장에서 살았던 중인, 관악의 아속들이 주로 거주했던 집의 일자형 혹은 ㄱ자형 창고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금속활자는 해당 장소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에 있는 도기 항아리 안에서 발견됐다. 항아리에는 주전(籌箭·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 물시계의 시보 장치를 작동시키는 부속품)도 함께 있었다. 문화재청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도 이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다. 항아리 바깥쪽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유물들이 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가 부품 형태로 출토된 것. 이는 낮에는 해시계,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했던 기계다. 세종실록에는 1437년 세종이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물은 전무했다. 이 외에도 동종(銅鐘), 동판(銅板), 총통(銃筒) 등도 함께 발견됐다. 이처럼 귀한 유물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이 곳에 대거 묻혔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문화재청 및 수도문물연구원의 입장이다. 발굴 유물 중에 15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소승자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588년 이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각종 동제 유물 출토에 대해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성분분석 전이지만 색깔을 봤을 때 순동에 가깝다”며 “조선시대에 동 자체가 귀한 재료라 수습한 유물이 일반 민가에서 소유할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출토 위치가 상당히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 금속품을 모아 고의로 묻고 나중에 녹여 다른 물건으로 만드는 재활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군가가 유물을 모아서 폐기했을 수도 있다”며 “이 곳에 금속 유물을 무더기로 묻은 이유는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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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년전 시골 폐교에 미술관 연다니 다들 미쳤다고 했죠”

    전남 고흥군 팔영산 자락에 위치한 남포미술관은 척박한 지역 문화계에서 의미 있는 존재다. 곽형수 관장(71·사진)은 1965년 부친이 설립한 영남중이 학생이 줄어 2003년 폐교되자 이를 미술관으로 바꿔 2005년 개관했다. 돈도, 사람도 부족했지만 소록도 주민들을 위한 문화 활동도 펼쳤다. 주변에선 “미쳤다”고 했다. 최근 그간의 활동을 기록한 백서를 발간한 곽 관장은 “지난 시간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곽 관장에 따르면 지방의 작은 미술관은 운영이 힘들었다. 매년 5, 6회 전시를 열 때마다 사비를 보태야만 했다. 작가 섭외, 전시 기획·연출은 모두 곽 관장과 부인 조해정 씨(67)의 몫이었다. 부부는 미술관 설립 후 2년 반 동안 야간대학원을 다니며 예술학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싶었다”면서 “교육을 통해 낙후된 지역사회에 기여한 선친의 뜻을 잇기 위해 미술관 이름에 아버지의 호인 남포(南浦)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곽 관장이 꼽은 남포미술관의 정체성도 ‘베풂’이다. 그는 2011년부터 소록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 2013년 진행한 ‘아름다운 동행―소록도 사람들’은 소록도의 역사와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담긴 삶을 담은 대형 벽화 제작 프로젝트로, 예술을 통한 치유의 사례가 됐다. 곽 관장은 “재정이나 선호도 문제로 학예사 2명을 채용할 수 없는 지역 미술관들은 경력 인정 대상 기관에 포함되지 못해 학예사 지망생들에게 더 외면받고 있다”며 “양극화되는 도시-지역 간 인력 문제를 해소해 지역에서도 문화를 더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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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캐릭터가 말 걸어왔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고…

    이달 7일 SBS 월화 드라마 ‘라켓소년단’을 시청 중이었다. 극 후반부,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배드민턴 부원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왔다. 이들의 휴대전화에 찍힌 사진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인스타그램에 무더기로 사진이 올라왔다. 해남서중 배드민턴부 주장이자 인스타그램 중독자 캐릭터인 방윤담(손상연)의 계정이었다. 본방송에서 해당 장면이 나가는 순간 칼같이 맞춰 올라온 게시물을 보고는 ‘정말 윤담이라는 캐릭터가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시글은 정말 윤담이 쓴 것 같았다. 극중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윤담의 말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드라마가 방송되지 않는 때에도 중학생들의 일상이나 시골 풍경 사진이 올라온다. 평일 오전에 올라온 게시글에 팬 한 명이 “방윤담, 이 시간에 왜 아직 학교 안 갔냐”며 나무라자 윤담이 “쉬는 시간∼”이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방윤담 계정을 운영하는 SBS 콘텐츠프로모션팀 관계자는 “TV를 넘어 실제로 중학교 배드민턴부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 팬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싶었다”고 밝혔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운영하는 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이 팬들과 넓고 깊게 소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드라마 시청자들이 팬 계정을 만들어 스틸컷 등을 소장했다면 이제는 배우나 방송사가 직접 SNS를 운영하며 소통의 밀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맛집에 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tvN ‘호텔 델루나’(2019년)의 주인공 장만월(이지은)도 비슷한 사례였다. 이지은은 자신이 직접 장만월 계정을 운영하며 만월의 일상인 척 글을 올렸다. 실제 이지은의 계정에는 드라마 홍보 문구가 올라온 것과는 사뭇 달랐다. SBS ‘하이에나’(2020년)의 경우 주인공 정금자(김혜수)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방송사가 운영하다가 김혜수가 관심을 보이며 계정을 이어받아 글을 올렸다고 한다. 드라마가 끝난 뒤 아이디를 변경해 현재 개인 계정으로 사용 중이다. 드라마가 끝났다고 SNS 활동이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드라마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진출하면서 시청 기간이 늘어난 만큼 계속 영향을 주고받는다. tvN ‘나빌레라’는 올해 4월 종영했지만 주인공인 70대 발레리노 심덕출(박인환)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이달까지도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며 팬들에게 안부를 묻는 글이 많다. 최은화 tvN 마케팅팀 과장은 “종영 후에도 사랑받는 콘텐츠가 있고, 그 사랑이 감사했기에 시청자들을 응원하고 안부를 확인하고 싶었다”며 “드라마는 끝났지만 계정을 팔로하는 사람이 0명이 될 때까지 운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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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국인 첫 WHO 총장… 누구도 성공을 믿지 않았다

    이종욱이 2003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수장에 오른 과정은 험난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여수 세계엑스포 유치에 외교력을 총동원하던 터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선거를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그의 당선 가능성 자체를 낮게 봤다. “감이 되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이종욱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대 강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해외 인맥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러시아, 중국,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정작 우리 정부의 공식 추천서를 받는 게 쉽지 않았다. 반전은 그와 친했던 셰러드 캠벨 브라운 미 하원의원 등 동료 의원 54명이 지지 서명에 이름을 올린 후 시작됐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당초 입장을 바꿔 추천 결정을 내렸다. 당선 이후에는 정부 관계자들의 민원에 시달리기도 했다. 현직 언론인인 저자가 유가족을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2004, 2005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노벨의학상을 받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종욱의 막냇동생으로 정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이종구는 “형이 전화를 많이 해와 ‘굉장히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형은 의료인으로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책에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진 1960년대 그가 5수 끝에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이야기와 미국 유학 준비 중 일본인 여성 레이코 여사를 만난 일화 등도 소개됐다. 사회의 반일 분위기에서 가족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한다. 이후 이종욱은 남태평양 외딴 섬의 응급실 의사를 거쳐 세계 각지의 원시림을 누비며 한센병 퇴치에 나섰다. 이 책은 2012년 이종욱이 WHO 사무총장에 재직할 당시 그의 연설담당 비서였던 데스먼드 에버리가 펴낸 평전을 참고했다. 저자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평전을 쓰면서 이종욱의 성장기와 연애사부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사(秘史)까지 폭넓게 취재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5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책을 통해 한 거인의 생생한 인생 역정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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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 풍선 배달이오”…팝아트 작가 임지빈 “포근한 위안 받으세요”

    한옥 사이로 곰 모양 풍선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 하나가 문 한 칸을 다 채우는 큰 곰이 한쪽 귀가 접힌 채 두 팔로 행인들을 반긴다. 곰 풍선을 만든 건 임지빈 팝아트 작가(37). 임 작가는 “관객이 갤러리로 오지 않는다면 작가가 찾아 나서겠다”며 ‘딜리버리 아트’를 시도하는 예술가다. 이름도 ‘에브리웨어 프로젝트(Everywhere Project)’다. 그는 2009년 중국 상하이 애니마믹스 비엔날레에서 작품 ‘슈퍼파더’로 데뷔했다. 이는 늙고 배 나온 슈퍼맨을 조각으로 만들어 우리 시대 아버지들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가 에브리웨어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2011년부터였다. 전시를 열어도 일반인보다는 업계 관계자나 지인들만 찾아오는 데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 작가는 슈퍼파더 시절부터 삶의 예리한 문제들을 위트 있게 표현해왔다. 곰 모양 풍선도 마찬가지다. 대개 이들은 가만히 서 있는 형태가 아니다. 틈새에 끼어 있거나 바닥에 엎어진 형상이다. 어쩐지 짠하다가도 포근한 곰을 보고 있노라면 위안이 된다. 23일 만난 임 작가는 “각자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하면서도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했다. 조각이 아닌 풍선인 데에도 이유가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집도 사람처럼 각자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택들에 작품을 융화하고 싶었는데 조각보다는 풍선이 덜 이질감이 느껴지고 변형 가능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곰이 나타나는 장소는 ‘어디든(Everywhere)’이다. 그는 게릴라성 전시를 표방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N서울타워 등 한국의 랜드마크에서 시작됐던 프로젝트는 2016년부터는 미국, 대만, 중동 등 전 세계 다양한 장소로 뻗어나갔다. 임 작가는 “코로나19 전에는 1년에 최소 5개국을 목표로 6개월 정도는 해외에 나가 있었다. 한 도시에서 한 달 정도 거주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을 찾아 설치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올해 그가 도전하는 장소는 국내 문화재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 등에서 주관하는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의 일환. 8, 9월경 시작해 3개월간 5곳 이상의 문화유산 거점에 풍선을 설치한다. 임 작가는 “한국적인 느낌을 굉장히 좋아한다. 계속 자리를 지켜왔던 문화유산을 같이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관 등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그의 활동은 모두 자비로 이뤄진다. 그는 세계적 브랜드인 구찌, MCM 등과도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해왔는데, 이때 얻은 돈으로 개인 활동을 재개한다고 한다. 공공미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의 목표는 ‘이동식 놀이터’다. “2016년 베트남 하노이의 재개발 지역에서 작업할 때 아이들이 제 작품을 보고 굉장히 기뻐하는 걸 봤어요. ‘어디든 나타난다’는 콘셉트이지만 사실 미술이 필요한 곳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아프리카 곳곳을 돌면서 에어바운스 등을 설치해보고 싶습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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