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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총선을 앞둔 전남 목포. 김운범 신민당 후보(설경구) 측 관계자들은 김운범의 참모 서창대 지휘 아래 여당인 민주공화당 선거운동원으로 위장한다. ‘가짜 여당 사람’들은 여당이 주민들에게 살포한 와이셔츠와 고무신 등을 거둬들인다. 이른바 ‘줬다 뺏기’ 전략. 여당에 대한 주민들의 민심은 악화된다. 김 후보 측은 거둬들인 물건에 ‘신민당’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띠를 새로 두른다. 이를 다시 주민들에게 나눠준다. 돈 하나 들이지 않고 금품을 주고 민심까지 얻은 것. ‘선거 천재’ 서창대가 짜낸 각종 전략에 목숨 바쳐 민주주의를 지키겠는 김운범의 명연설이 더해지면서 김운범은 6대에 이어 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킹메이커’는 정치인 김운범과 그의 그림자로 불리며 기상천외한 선거 전략을 펼쳤던 참모 서창대 이야기를 다루는 정치 드라마다. 가명을 내세웠지만 김운범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을, 서창대는 그의 선거 전략가였던 고 엄창록 씨다.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설경구는 “DJ는 누구나 아는 존경 받는 인물이어서 캐릭터에 대한 부담이 굉장히 컸다”라며 “역할 이름도 원래는 김대중이었는데 변성현 감독에게 이름이라도 바꾸자고 계속 요청했다. 이름을 바꾸니 조금 나아지긴 하더라”라고 말했다. 영화의 뼈대는 실화 그대로다. 극중 당내 비주류였던 김운범은 서창대의 전략에 힘입어 1971년 신민당 경선에서 당내 주류이자 40대 기수론 선두주자였던 김영호를 꺾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킨다. 실제 제7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의원과 DJ의 맞대결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되 베일에 가려진 엄창록의 승리 전략과 당내 뒷이야기 등은 상상을 더하는 방식으로 영화적 긴장감을 살려냈다. 설경구는 큰 부담감을 호소한 것과 달리 DJ가 1960~70년대 합동연설대회 등에서 연설할 때의 제스처와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특유의 말투 등 약간의 모사를 가미해 DJ를 그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냈다. 그는 “DJ를 모사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라며 “나와 DJ의 중간지점에서 타협해 만든 캐릭터가 김운범”이라고 했다. 극중에서 서창대는 수차례 김운범을 선거에서 승리로 이끌지만 두 사람의 소신은 번번이 부딪힌다. 서창대의 소신은 “돈을 벌든 표를 벌든 다를 바 없다. 대의를 이루려면 일단 이겨야 한다”는 것. 그러나 김운범은 “우리는 정치인이지 장사치가 아니다. 정의가 바로 사회 질서”라며 정도를 고집해 그와 대립한다. “독재를 타도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목표는 같기에 두 사람은 손을 잡지만 이들의 동행엔 불안함이 도사린다. 김운범에게는 빛이 비추는 반면 서창대는 어둠에 갇힌 것처럼 표현해 두 사람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등 영화에는 빛과 그림자을 활용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장면이 많다. 대선 후보 경선 당일 치열한 심리전과 누가 누구의 심리를 압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계단을 활용한 장면 등 영리한 연출력이 빛나는 장면도 있다. 멀게는 60년 전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 같은 세밀한 연출력 덕분에 어떤 영화보다 세련미가 넘친다. 다만 서창대의 다소 원초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김운범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그려지는 등 영화가 DJ를 미화했다는 지적도 일각에선 나온다. DJ의 정치 일생을 다룬 또 다른 영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것과 맞물리면서 이같은 논란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 후반부 당시 군사정권의 청와대 ‘이실장’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이 내뱉는 대사로 각 진영이 생각하는 정의는 다를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실장은 서창대를 향해 “당신의 대의가 김운범이면 나의 대의는 각하”라고 말한다. 당시 여당이나 청와대 인사들 역시 극단적인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배우 이선균은 최근 화상인터뷰에서 “대선과 개봉 시기가 겹치는데 의도한 것은 아니다”라며 “영화는 뜨거운 머리싸움, 선거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직접 보신다면 누군가를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어떤 작품을 찍든 경계하는 건 ‘내 역할이 작품보다 앞서 나가지 않나’ 하는 거예요. 작품 안에서 잘 녹아들고 있는지 늘 고민하죠.” 26일 개봉하는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의적단 두목 무치 역을 맡은 배우 강하늘(32)은 18일 화상인터뷰에서 고민과 경계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했다. 작품과 다른 배우들 사이에서 과함과 덜함의 중간을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넘어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무치의 의적단과 해랑(한효주)이 이끄는 해적단이 협력해 고려 왕실의 보물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가 연기한 무치는 ‘고려 제일검’으로 통할 만큼 검술 실력이 뛰어나지만 허당끼 가득한 캐릭터다. 의욕만 앞세우다 걸핏하면 실수하고 굴욕적인 몸 개그로 진지함과 유쾌함 어리숙함, 뻔뻔함을 넘나든다. 강하늘은 “무치를 과하게 표현하면 만화 캐릭터처럼 될 것 같았다”며 “허당인 모습을 연기할 때도 본인은 열심히 하는데,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여주며 중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출연하는 한효주, 해적단원 막이 역의 이광수와 오랜 친구 같은 연기 호흡을 선보인다. ‘해적: 도깨비 깃발’은 2014년 관객 866만 명을 모은 손예진 김남길 주연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후속 편이다. 당시 산적 두목 역할을 맡았던 김남길은 카리스마와 허당미 사이에서 줄을 타는 코믹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강하늘은 “나는 김남길 선배를 따라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 역할에 온전히 집중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몸 개그를 비롯해 검투 장면 등 각종 액션 장면을 소화하면서도 별다른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았다. “보호대를 착용하면 하나도 안 아파서 아픈 척 연기하는 게 저한테는 어렵더라고요.(웃음)”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제작비만 235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수중 장면과 드넓은 바다 등 볼거리가 풍부한 데다 유쾌한 이야기와 절제된 유머까지, 오락 영화의 장점을 두루 갖춘 만큼 얼어붙은 극장가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높다. “최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잘되는 걸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작품이면 어려운 시기에도 관객들이 많이 찾아주는구나 싶어서요. 개봉하지 못한 다른 한국 영화도 마음 놓고 개봉할 수 있도록 이번 영화도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혈중알코올농도 0.05%인 사람은 0%인 사람보다 창의적이고 열정적이며 현명할까. 주변을 의식하거나 갖가지 고민을 하느라 짓눌렸던 잠재력은 0.05%의 농도일 때 폭발할 수 있을까.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노르웨이 철학자이자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의 ‘0.05% 예찬론’을 직접 실험해 보는 이들의 이야기다. 와인을 두 잔가량 마신, 취함과 취하지 않음의 경계선이 인간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검증해 보는 내용이다. 중년의 코펜하겐 고교 교사 4명의 수업은 하나같이 ‘노잼’.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들이 술을 마시자 수업 분위기는 180도 바뀐다. 각종 자료를 동원하고 자신감까지 더한 수업에 학생들은 빠져든다. 약간의 취기는 소심한 언변을 유창하게 만들고 교실에서는 연신 웃음이 터진다. 교사들은 0.05%를 넘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만의 농도’를 찾아 나선다. 역사교사 마르틴(마스 미켈센)에게 최적의 농도는 0.1%. 열정 없는 수업으로 학부모로부터 항의까지 받았던 그는 일약 인기 교사가 되고 소원했던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한다. 젊은 시절의 활력과 자신감을 되찾은 이들은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영화는 적당한 음주는 인간에게 마법 같은 힘을 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걸 부각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적당한 음주’에 한해서다. 이들이 혈중알코올농도 최고치를 실험해 본다며 짐승처럼 술을 퍼마신 다음 날의 결과는 비참하기 짝이 없다. 음주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다뤘지만 무게 추는 음주가 인생에 얼마나 밝은 빛을 비추는지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 술과 인생을 깊이 있게 고찰한 이 영화는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장편영화상을 받는 등 해외 유명 영화제를 휩쓸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할리우드 판으로 리메이크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혈중알코올농도별로 취한 상태를 세밀하게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는 관전 포인트. 마스 미켈센이 선보이는 해변 음주 댄스신은 적당한 술이 인생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평소 주당이 아니더라도 내 안에 숨은 창의력과 열정을 끌어내기 위해 ‘낮술’을 마시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19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클라이밍짐, 스포츠경기장, 피맥펍까지…. 팬데믹 시대 영화관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CGV피카디리1958 내에 자리한 클라이밍짐 ‘피커스(PEAKERS)’. 곳곳에서 “아” 하는 탄식과 “나이스”를 외치는 환호가 번갈아 터져 나왔다. 바닥에 앉아 클라이머가 암벽을 타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내는 소리였다. 암벽 높이 및 경사별로 구역은 4개로 나뉘었다. 가장 높은 암벽은 높이가 6m에 가까웠다. 평일임에도 70명 안팎이 암벽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CGV는 7일 이 영화관 지하 4층 359석 규모의 상영관 두 곳을 개조해 만든 클라이밍짐을 개관했다. 층고가 높은 상영관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시설을 찾다가 클라이밍짐으로 바꾼 것. 탁 트인 층고 덕에 개관 일주일 만에 젊은 클라이머의 도심 속 성지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국내 영화관을 찾은 관객은 6053만 명, 영화관 전체 매출은 5845억 원에 그쳤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관객 2억2668만 명, 매출 1조9140억 원과 비교하면 너무나 저조한 수준이다. 여기에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확산되면서 영화관 업계는 고사 직전이다. 영화관들이 앞다퉈 영화 관련 시설을 조금씩 비워내고 레저·휴식 관련 시설을 선보이는 것은 코로나와 OTT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16일 “코로나 시대 이전의 틀에 갇혀 영화관을 영화만 보는 공간이라 생각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위기의식을 갖고 여러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메가박스는 강남구 메가박스코엑스 내 상영관 한 곳을 실내스포츠 경기장으로 개조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몬스터짐 아레나’가 바로 그것. 경기용 무대와 조명, 전광판 등을 갖춘 이곳에서 주짓수, 폴댄스, 팔씨름, 보디빌딩 등 각종 스포츠 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 덕분에 극장을 찾는 스포츠 마니아의 발길도 늘었다. 상영관을 별도로 개조하지 않고 탈바꿈한 곳도 많다. CGV 왕십리는 같은 건물에 있는 결혼식장과 제휴해 상영관을 결혼식 현장 생중계용으로 빌려준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에 따라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는 하객 수가 제한된 것에 착안했다. CGV 여의도 등에선 상영관에서 경제·투자 관련 강의를 진행하는 ‘사이다경제: 사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롯데시네마 역시 지난해 대형 스크린으로 세계 각국의 관광 명소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팝업 트래블 라이브’를 진행하는 등 영화관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매표소가 있는 영화관 로비도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서대문구의 메가박스신촌은 기존 매점 한편을 개조해 ‘피맥펍’을 마련했다. 로비에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가져다놓고 관객들이 영화 관람 전후 생맥주와 피자를 즐기며 영화관에 더 오래 머물도록 유도했다. 롯데시네마도 서울 광진구의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로비에 오픈스튜디오를 열었다. 1인 유튜버 등 영상 제작자에게 촬영 및 생중계를 위한 각종 전문 장비가 설치된 공간을 빌려주고 수익을 얻는다. 메가박스 측은 “고객이 일단 영화관 건물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영화관을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바꾸겠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교복을 입은 좀비들이 온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빠른 속도로 몰려다닌다. 그들의 활동 무대는 고등학교. 학교발 감염으로 추정되는 좀비 바이러스는 도시 전체로 확산된다. 도시는 ‘좀비 떼’에 쑥대밭이 되고 공권력은 마비된다. 28일 공개되는 올해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티저 영상만으로도 “세계 1위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학교와 좀비의 결합이라는 설정 자체가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원작은 2009년부터 약 2년 반 동안 네이버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이다. 웹툰을 연재한 주동근 작가(39)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및 전화 인터뷰에서 “제가 생각한 세계관이 여러 나라 사람들과 공유된다는 게 신기하다”며 “영상화를 목표로 삼고 웹툰 작가로 달려온 지 13년 만에 큰 결실을 보게 돼 행복하다”고 밝혔다. ‘지금 우리…’ 속 학생들은 바이러스가 퍼질 대로 퍼진 학교에 고립돼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주 작가는 “아이들은 사회적 약자지만 재난 앞에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좀비물의 배경으로 학교를 선택한 것에 대해선 “이질감 없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한국적인 좀비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학교라는 공간이면 내가 생각한 판타지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했다. 주 작가의 웹툰 데뷔작인 원작은 작품이 연재되는 매주 수요일이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거의 매번 올라갈 정도로 인기였다. 흥행성이 입증되자 10곳에 가까운 제작사 등에서 영상화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나 학교가 있는 시 단위 지역을 무대로 대규모 경찰력과 병력이 투입되는 설정의 좀비 블록버스터인 만큼 막대한 제작비가 걸림돌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를 연출한 스타 감독 이재규를 통해 드라마란 새 옷을 갈아입게 됐다. 주 작가는 “넷플릭스와 협업한다는 이야기를 이 감독님에게서 전해 듣고 놀랐다”라며 “190여 개국에 공개될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건 꿈같은 일”이라고 했다. “작품을 연재할 때 일주일에 6일을 집 밖에 아예 안 나가고 거의 울며 작업했거든요. 오랜 고생과 긴 기다림 끝에 큰 보상을 받는 것 같아요.” 평소 이 감독 팬이었던 그는 “원작자 입장에서 따로 부탁한 건 없다. 감독님 작품을 좋아해서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감독님이 재해석한 ‘지금 우리…’는 어떤 재미를 줄까 하는 기대감으로 공개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웹툰은 청소년이 주인공이지만 살상 장면 등 잔인한 요소가 많아 정작 청소년에겐 열람이 금지됐다. 드라마 역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그는 “잘된 결정”이라고 했다. “표현 수위를 낮추면 좀비물의 매력이 반감되는 만큼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영상화되면 수위에 한계가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된 후 그런 걱정은 사라졌어요.” 그는 ‘지금 우리…’ 이후 ‘강시대소동’을 선보였고 현재는 외계인을 믿는 사이비 종교를 다룬 ‘아도나이’를 연재 중이다. “저는 장르물에 진심입니다. 좀 더 신선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았던 장르도 개척하고 싶고요. ‘이 작가 작품은 재밌더라’ 정도의 인상은 남기고 싶어요. 다른 작품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교복을 입은 학생 좀비들이 온몸을 기괴하게 꺾어대며 빠른 속도로 몰려다닌다. 그들의 활동 무대는 고등학교. 학교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좀비 바이러스는 도시 전체로 확산된다. 도시 곳곳에도 좀비 떼 출몰이 이어진다. 도시는 쑥대밭이 되고 공권력은 우왕좌왕하던 끝에 마비돼버린다. 28일 공개 예정인 올해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최근 티저 예고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세계 1위 드라마가 될 것”이란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설정 자체가 세계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것. ‘K좀비’의 매운맛을 전 세계에 제대로 보여줄 드라마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높다. 이 드라마 원작은 2009년부터 약 2년 반 동안 네이버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 이 웹툰을 연재한 주동근 작가(39)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및 전화 인터뷰에서 “제가 생각한 세계관이 여러 나라 사람들과 공유된다는 게 신기하다”라며 “영상화를 목표로 삼고 웹툰 작가로 달려온지 13년 만에 큰 결실을 보게 돼 행복하다. 게다가 그 결과가 넷플릭스여서 보람이 아주 크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배경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고등학교다. 학생들은 바이러스가 퍼질대로 퍼진 학교에 고립돼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주 작가는 “아이들은 사회적 약자지만 재난 앞에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웹툰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했다. 좀비물 배경으로는 흔치 않은 학교를 택한 것에 대해선 “이질감 없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한국적인 좀비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학교라는 공간이면 내가 생각한 판타지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했다. 주 작가의 웹툰 데뷔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당시 웹툰이 연재되는 매주 수요일이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거의 매번 이름이 올라갈 정도로 인기였다. 소재와 이야기의 흥행성이 입증되자 연재가 시작된 이후 10곳에 가까운 제작사 등에서 영상화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물론 학교가 있는 시 전체를 무대로 대규모 경찰력과 병력이 투입되는 설정의 좀비 블록버스터인 만큼 막대한 제작비가 걸림돌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를 연출한 스타 감독 이재규 감독이 2015년쯤 이 작품을 드라마화하기로 했다. 주 작가는 “넷플릭스에서 투자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이 감독님께 전해 듣고 놀랐다”라며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될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건 정말 꿈만 같다”라고 했다. “작품 연재 당시에 일주일에 6일을 집 밖에 아예 안나가며 거의 울면서 작업했다. 오랜 고생과 긴 기다림 끝에 큰 보상을 받는 것 같다”라고 했다. 평소 이 감독 팬이었던 그는 “이 감독님이 웹툰을 재밌게 읽으셨다고 하셔서 원작자 입장에서 따로 부탁드리거나 한 건 없다”라며 “이 감독님이 재해석한 ‘지금 우리 학교는’은 또 어떤 재미를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영상이 공개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의 웹툰은 청소년이 주인공이지만 잔인한 장면이 많아 정작 청소년에겐 열람이 금지됐었다. 드라마 역시 살상 장면이 반복적·자극적으로 표현됐다는 이유 등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주 작가는 “잘 된 결정”이라고 했다. “수위를 낮추는 건 좀비물의 매력을 잃고 시작하는 것인 만큼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영상화되면 표현 수위에 한계가 있을까봐 걱정했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것으로 결정된 이후 그런 걱정은 바로 사라졌어요.” 그는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후 ‘강시대소동’을 연재했고 현재는 외계인을 믿는 사이비 종교와 이 종교를 파헤치는 기자 이야기를 다룬 ‘아도나이’를 연재 중이다. “저는 장르물에 진심인 편이예요. 좀 더 신선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았던 장르도 개척하고 싶고요. 언제까지 작품 활동을 할지는 모르지만 ‘이 작가 작품은 재밌더라’는 정도의 인상은 남기고 싶어요. 그때까지는 열심히 달려볼 생각입니다.”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작품이 나라의 얼굴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더 신경 쓰겠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문화 외교사절’이란 마음가짐으로 차기작 제작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12일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주최로 열린 제18회 한국이미지상 시상식 현장에서다. 한국이미지상은 한국 문화를 알리고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힘쓴 개인과 단체에 수여한다. 이날 황 감독은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서울코엑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한국 이미지 디딤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오징어게임’으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황 감독은 한국이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우뚝 서는 데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해외 일정상 시상식에 불참한 황 감독은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황 감독은 시상식에 앞서 연구원 최정화 이사장과 가진 인터뷰 영상을 통해 “20∼30년 가까운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일들로 사회성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며 구상 중인 차기작 장르에 대해 밝혔다. ‘한국 이미지 징검다리상’은 ‘오징어게임’ ‘지옥’ 등 세계를 강타한 K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고 이를 전 세계에 유통한 넷플릭스에 돌아갔다. 이 상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과 세계의 가교 역할을 한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에 주어진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영상을 통해 밝힌 수상 소감에서 “한국 창작자들이 만든 탁월한 이야기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나가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 지속적으로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주춧돌상’은 성악가 조수미에게, 한국 이미지를 세계에 알린 20세 미만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새싹상’은 도쿄 올림픽 양궁 2관왕 김제덕 선수에게 각각 돌아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스크린에 옮겨진 세계적인 브랜드 ‘구찌’ 가문 이야기는 긴장감이 넘친다. 청부 살인과 구찌 가문의 몰락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뻔히 아는데도 결말이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올해 85세의 노장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표본을 남기겠다며 작정하고 만든 모양새다. 영화는 1970년대 이탈리아 밀라노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20대 여성 파트리치아로 분한 팝의 아이콘 레이디 가가는 파티에서 패션계의 왕족 구찌 가문의 마우리치오(애덤 드라이버)를 보자마자 반해 버린다. 마우리치오 역시 저돌적이지만 귀여운 파트리치아에게 푹 빠진다. 마우리치오의 아버지로, 구찌 가문의 역사 그 자체인 로돌포(제러미 아이언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도 못 알아보고 “그림 정말 비싸겠다”고 말하는 파트리치아를 탐탁지 않아 한다. 소규모 트럭운송사업을 하는 집안의 딸이고, 돈을 노리는 것으로 보이는 등 마음에 들지 않는 것투성이다. 결국 마우리치오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 허락도 없이 결혼식을 올린다. 구찌 가문의 비극이 움트는 순간이다.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20대의 파트리치아가 구찌 집안에 입성한 뒤 변해가는 모습이다. 사랑스럽고 순수했던 그는 남편을 부추겨 구찌를 차지하려는 탐욕으로 일그러진다. 마우리치오의 삼촌이자 구찌 최고경영자 알도(알 파치노)와 알도의 아들인 파울로(재러드 레토)의 지분을 빼앗으려 거짓말과 이간질에 공권력 동원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가는 20대부터 40대의 파트리치아를 모두 다른 사람처럼 연기한다. 눈빛의 강도까지 조절하며 한 사람이 괴물이 돼가는 과정을 정교하게 표현한다. 순수한 여성에서 희대의 악녀로 바뀌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가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스타 이즈 본’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평단의 극찬을 받는 배우임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결국 이혼당한 그가 선보인 광기 어린 연기는 압권이다. 가가는 이탈리아 북부 출신인 파트리치아가 되기 위해 이탈리아식 영어 억양을 6개월간 연습했다. 살을 찌우고 실제 파트리치아가 살던 이탈리아 지역 곳곳을 다니며 그녀에 대해 취재하는 열의를 보였다. 알 파치노와 그의 아들 파울로로 분한 레토가 서로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는 연기 대결은 영화관에서 박수를 치고 싶게 만들 정도다. 과거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가 이들을 수상자로 선정한 데 대해 고개가 끄덕여진다. 러닝타임은 짧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요즘 추세에 역행하는 158분에 달한다. 구찌 가문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구찌가 전문 경영인 체제로 넘어간 1990년대까지의 장대한 서사를 속도감 있게 압축해 긴 시간이 금세 간다. 명배우들의 신들린 연기 대결이 몰입감을 높이는 데다 최상류층의 화려한 의상, 1980년대 뉴욕의 명품 패션쇼, 로마 뉴욕 알프스의 저택과 휴양지 등 볼거리가 풍부해 158분이 짧게 느껴진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오징어게임’에서 오일남 역으로 열연한 배우 오영수(78·사진)가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가 올해 79회를 맞은 이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영화 ‘기생충’(2020년), ‘미나리’(2021년)가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데 이어 오 씨가 남우조연상까지 거머쥐면서 한국 콘텐츠 및 배우가 3년 연속 골든글로브 수상 기록을 세웠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최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9일(현지 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오 씨의 수상을 알렸다. ‘깐부 할아버지’로 불리는 오 씨는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다”라고 밝혔다. ‘오징어게임’의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문 작품상, 배우 이정재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한국 작품과 배우로는 처음 이 부문 후보에 올랐다. 연극만 200여편 ‘조미료 안 치는 배우’… 美드라마 출연 백인들 제치고 영예수상 소식에도 대학로 연습실 지켜… “이제 세계 속 우리 아닌 우리 속 세계” 10일 오전 11시 골든글로브 홈페이지에 익숙한 얼굴을 담은 사진이 나타났다. 치아를 훤히 드러낸 채 밝게 웃는 백발의 동양인, 오영수(78)였다. 그의 머리 위에 TV드라마 남우조연상 수상자라는 영어 문구가 선명했다. 오 씨는 올해 골든글로브의 개인 수상자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인이다. ○ 백발의 배우, 세계의 중심에 서다 ‘오징어게임’의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은 오 씨는 이날 ‘더 모닝 쇼’의 빌리 크루덥과 같은 시리즈의 마크 듀플라스, ‘석세션’의 키런 컬킨, ‘테드 래소’의 브렛 골드스타인 등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경쟁자들은 모두 미국 드라마에 출연한 백인 배우였다. 오 씨는 이날 넷플릭스를 통해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고 밝혔다. 오 씨는 ‘오징어게임’에서 목숨이 걸린 구슬을 기훈(이정재)에게 건네며 “우린 깐부잖아”라고 말해 ‘깐부’라는 단어를 대유행시켰다. 그는 아이처럼 게임을 즐기다가도 사람들이 서로 죽이려 하자 “그만해!”라고 절규하는가 하면 충격적인 반전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한국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이날 그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오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축하 전화가 너무 많이 와 정신이 없다. 연극 ‘라스트 세션’에 프로이트 역으로 출연 중이라 평소처럼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극 ‘3월의 눈’을 함께 작업한 손진책 연출가는 “오영수는 조미료를 안 치는 배우라 매 연기마다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현재 그와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 역을 번갈아 맡은 신구는 “골든글로브 후보로 지명됐는데 들뜨지 않더라. 수십 년간 쌓인 내공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징어게임’에 함께 출연한 이병헌도 인스타그램에 “프론트맨입니다, 브라보!”라고 올렸고 이정재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생님과 함께한 장면 모두가 영광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반세기 넘는 연기 외길의 여정이 세계무대에서 큰 감동을 만들어냈다”며 축하했다.○ 50여 년 연기에 헌신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최한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지난해 12월 오 씨를 후보로 지명하며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연극배우 중 한 명이다. 오징어게임에서도 가장 놀라운 존재로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1967년 극단 광장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1987년부터 23년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50여 년간 ‘피고지고 피고지고’, ‘템페스트’ 등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백양섬의 욕망’에서 앙젤로 역으로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1980년)을 수상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오징어게임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과 긴 시간 연기에 기울인 헌신을 아울러 상을 수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인종차별 논란이 계속되자 HFPA가 수상자 인종 안배에 노력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턴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은 인종차별, 스폰서 논란으로 배우 감독 제작자가 불참해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매년 시상식을 생중계하던 미 NBC도 이번에는 중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골든글로브 홈페이지와 트위터에 수상자가 순차적으로 공지됐다. 극영화 부문 작품상은 ‘파워 오브 도그’에 돌아갔고 제인 캠피언 감독은 이 영화로 감독상도 받았다. 여우주연상은 니콜 키드먼(‘빙 더 리카르도스’), 남우주연상은 윌 스미스(‘킹 리처드’)가 수상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여든을 코앞에 둔 노배우 오영수(78)가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HFPA)는 9일 오후 6시(현지시간)부터 홈페이지와 트위터 등을 통해 각 부문별 수상자를 공지하며 오영수가 TV 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골든글로브 측은 수상 소식을 전하며 “오영수는 그의 모국인 한국에서 존경받는 연극배우지만 주요 시상식 후보로 오른 건 골든글로브가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오영수는 이날 함께 후보에 오른 ‘더 모닝 쇼’의 빌리 크루덥과 같은 시리즈의 마크 듀플라스, ‘석세션’의 키에란 컬킨, ‘테드 래소’의 브렛 골드스타인 등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79회째를 맞는 이 시상식에서 한국인 배우가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것도, 실제로 상을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수상 직후 넷플릭스를 통해 “수상 소식을 듣고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라 ‘우리 속의 세계’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골든글로브 측은 지난달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오영수에 대해 “1963년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연극배우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우리의 상상과 세계를 장악해버린 시리즈(‘오징어게임’)에서도 가장 놀라운 존재로 등장했다”라고 소개했다. 한편 ‘오징어게임’의 주연 이정재가 후보에 올랐던 TV 시리즈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은 드라마 ‘석세션’의 제레미 스트롱에게 돌아갔다. ‘오징어게임’ 역시 TV 시리즈 드라마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의 영예는 ‘석세션’이 안았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수십 년간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고기를 먹는 동생들을 비난하며 “사체 따위는 먹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의 직업, 자기모순의 절정이다. 살생을 혐오하는 이의 직업은 ‘두더지 사냥꾼’. 저자는 시인이자 정원사다. 정원 일이 끊기는 겨울엔 들판과 농장 곳곳을 돌며 두더지를 잡는다. 농경지를 헤집어놓는 두더지는 농부들의 주적. 영국의 전통 직업인 두더지 사냥꾼들은 두더지의 습성을 이용해 돈을 번다. 먹고살기 위해 두더지 사냥꾼이 된 채식주의자 저자는 변명해본다. “인생은 좀처럼 우리의 기대만큼 단정하고 깔끔하지 않다.” 그는 가장 인도적으로 두더지를 잡겠다며 스스로와 타협한다. 두더지를 직접 죽이는 대신 덫을 놓아 스스로 죽게 하는 방법이다. 그는 곧 일 잘하기로 소문난 사냥꾼이 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선언한다. 더는 두더지를 잡지 않겠다고. 저자는 에세이 초반부에 두더지 사냥꾼을 그만두기로 한 ‘중대 결심’을 툭 던져놓고 답은 마지막에 알려주는 식으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두더지를 둘러싼 자연환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6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자연에서 배운 것들을 말한다. 두더지를 잡던 겨울과 더불어 열여섯 살 때 집을 나온 뒤 홈리스로 살며 한없이 걸어야 했던 이야기 등을 소설처럼 풀어냈다. “계절은 대략 시속 3km의 속도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한다. 만일 내가 계속 북쪽을 향해 걸었더라면 나의 계절은 영원히 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외로움을 담담하게 담아낸 문장들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시인답게 삶과 자연에 대한 고찰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초연하게 담아냈다. 두더지와 자연, 인생, 전원에서의 일상이라는 섞이기 어려운 주제들을 맛깔나게 버무렸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시인 황유원은 노시인의 초연함과 고단함, 회한이 배어든 영어 문장을 한국어의 섬세함을 살려 번역했다. 문학적 번역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는 경험을 오랜만에 할 수 있는 건 이 책의 큰 장점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가 배우 최민식(사진), 영화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과 손잡고 오리지널 드라마 ‘카지노’(가제)를 제작한다. 디즈니플러스는 6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제작되는 새 콘텐츠 라인업을 발표했다. 범죄 액션물인 ‘카지노’는 카지노 왕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가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최민식은 이 작품으로 26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다. 공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디즈니플러스는 ‘카지노’를 포함해 내년까지 아태 지역에서 50개가 넘는 콘텐츠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분명 2차원(2D)인데 4차원(4D)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주택가 골목을 누비는 차량의 엄청난 속도감과 충돌할 때의 충격이 관객석으로 그대로 전달된다. 보는 내내 심장이 뛴다. 영화 ‘특송’은 돈이 되는 것은 무조건 배송하는 특송업체를 배경으로 한다. 주로 의뢰받는 배송물은 물건이 아닌 사람. 거액을 받고 수배자 등 주로 쫓기는 이들을 폐차 처리된 차량으로 원하는 곳까지 태워다 준다. ‘기생충’의 주역 박소담이 에이스 배송기사 은하 역을 맡았다. 그는 묘기에 가까운 카레이싱 실력으로 모든 추격을 따돌린 뒤 배송 임무를 완수한다. 배송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은하는 어느 날 배송 사고에 휘말리며 ‘반송 불가 수하물’격인 남자아이를 떠맡게 된다. 이들은 악질 경찰이자 깡패 우두머리인 경필(송새벽)과 그 일당을 따돌리기 위한 추격전을 거듭한다. 영화의 백미는 러닝타임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추격 장면. 와이어캠을 활용해 공중 및 다각도 촬영으로 담아낸 덕에 질주하는 차에 함께 타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클럽음악을 연상시키는 빠른 비트의 음악은 추격에 가속도를 붙여 짜릿함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2D영화마저 관객 체험형 영화로 만드는 한국 영화 촬영 기술의 발전을 실감할 수 있다. 빌라가 밀집한 한국의 전형적인 주택가를 추격전의 주무대로 활용해 이야기의 현실감을 높였다. 대로, 주차타워 등 추격전 배경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기생충’에서 박소담의 과외 제자 역을 소화했던 정현준이 박소담과 함께 도망치는 서원 역을 맡았다. 그의 능청스러우면서도 절제된 연기를 보고 있으면 ‘연기 신동’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원을 지키기 위해 박소담이 시니컬한 표정으로 선보이는 각종 액션도 수준급이다. 검은 돈 300억 원을 차지하기 위해 은하와 서원을 뒤쫓는 송새벽의 연기 역시 압권이다. 그는 극도의 악랄함에 약간의 어벙함을 양념처럼 섞어 독창적인 악당 캐릭터를 완성했다. 후반부 ‘저게 말이 돼?’ 싶은 장면이 몇몇 있긴 하다. 그러나 범죄 오락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몰입도를 높인 덕에 ‘영화적 허용’으로 관대하게 넘기게 된다. 12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제목만 보면 “또 그렇고 그런 경찰 이야기인가” 싶다. 그런데 이 영화, 기존 범죄수사극의 틀을 부순다. 경찰은 상위 1% 부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엇이 올바른 수사윤리인지 관객에게 묻는다. 절대 선(善)은 없다. 부패도 설득력이 있다. 영화 ‘경관의 피’ 이야기다. 5일 개봉하는 새해 첫 한국 영화로 동명의 일본 소설이 원작이다. 극 중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반장 박강윤(조진웅)은 수사의 신이다. 국가정보원과 검경 합동수사로 일망타진됐다고 보도된 거대 마약조직도 알고 보면 그가 혼자 활약해 검거한 것. 강윤은 독보적으로 유능하다. 그런데 수상하다. 월급쟁이 경찰이 서울 강남의 고급빌라에 살고 비싼 외제차를 탄다. 시계, 셔츠, 슈트까지 모든 게 명품 일색. 경찰 내에선 그가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마약조직의 검은 돈이 출처라는 소문도 돈다. 그의 비위 의혹을 내사하기 위해 강력계 형사 최민재(최우식)가 광수대로 위장 투입된다. 영화는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대어를 잡기 위해선 다른 범죄자들과의 결탁도 마다하지 않는 현실주의자 강윤과, 수사는 반드시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주의자 민재의 대립을 보여준다. 강윤은 상위 1%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마약범죄 등을 수사하려면 경찰 스스로 상위 1%가 돼 그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막대한 수사비를 감당하려면 범죄조직의 돈이라도 써야 한다는 것. 영화는 강윤과 민재가 서로의 수사방식에 조금씩 끌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명분 있는 부패’를 일삼는 강윤에게 마음이 조금 더 기우는 게 사실이다. 인물들의 상반된 신념과 고민을 깊이 있게 보여주지만 지루하지 않다. 빠른 비트의 음향과 적당히 흔들리는 카메라, 반전을 거듭하는 속도감 있는 전개로 지루할 틈이 없다. 이야기가 늘어질 조짐이 보이면 금세 질주하는 이규만 감독의 완급 조절 솜씨는 탁월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관전 포인트. 액션 누아르를 접목한 범죄 수사극은 비장감이 넘치는 연기로 자칫 관객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할 수 있지만, 배우들은 힘을 뺀 연기를 보여준다. 담백한 연기 덕에 영화 속 경찰세계에 빠져 이들과 함께 고민하게 된다. 최우식은 흔들리는 원칙과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기존 코믹 캐릭터의 틀을 벗어던진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며 소신을 밀고 나가는 조진웅의 연기는 강윤의 행태를 ‘착한 부패’로 보이게 만들 정도로 설득력 있다. 강윤은 기존 한국 영화에선 보기 드문 경찰 캐릭터로 매력이 넘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유명해진 채경선 감독이 미술을 맡았다. 두 인물의 서로 다른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빛과 조명, 선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찾아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올해 드라마 라인업은 눈부시다.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솟는 감독과 배우, 작가들이 각 드라마에 포진해 있다. 시청 욕구가 폭발하는 신선한 이야기도 기본이다. ○ ‘제3, 제4의 오징어게임’ 기대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건 ‘오징어게임’과 ‘지옥’으로 글로벌 연타 홈런을 친 넷플릭스의 올해 첫 오리지널 K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과 ‘추노’의 천성일 작가가 의기투합해 기대감을 높인다. 28일 공개될 ‘지금 우리…’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며 일어난 일을 다룬다. 넷플릭스는 ‘지금 우리…’로 새해를 시작한 뒤 다음 달 지방법원 소년부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김혜수 주연의 법정 드라마 ‘소년 심판’을 공개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군도’를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드라마 데뷔작인 ‘수리남’도 올해 공개된다. 하정우 황정민 박해수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눈길을 끈다. 디즈니플러스도 올해 오리지널 K드라마를 선보인다. 시작은 1, 2월 중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청춘 로맨스물 ‘너와 나의 경찰 수업’. 아이돌 스타 강다니엘이 주인공이다. 드라마 ‘비밀의 숲’의 이수연 작가가 집필하고 서강준이 주연을 맡은 미스터리 스릴러 ‘그리드’를 비롯해 올해 K드라마 4편이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연달아 공개된다. 애플TV플러스는 재일교포의 삶을 다룬 드라마 ‘파친코’를 공개한다. 미국 본사에서 제작해 K드라마는 아니지만 윤여정 이민호 등 한국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준K드라마’라는 평가를 받는다.○ 토종 OTT 반격 국내 OTT 가운데 티빙은 14일 초짜 개원의(이서진)의 적자 탈출 생존기를 다룬 드라마 ‘내과 박원장’을 공개한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만큼 이야기의 흥행성은 입증된 작품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서진의 대머리 분장 투혼도 관심을 끈다. 자본과 스타 감독으로 무장한 글로벌 OTT에 맞서 코미디 장르를 택해 기획력으로 승부하려는 틈새 전략이 돋보인다. ‘지옥’의 연상호 감독이 극본을 쓴 ‘괴이’와 연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돼지의 왕’ 등 ‘연상호 세계관’을 보여주는 드라마도 티빙을 통해 선보인다. 놀라운 세금 추징 능력을 가진 국세청 조세5국 이야기를 다룬 웨이브의 ‘트레이서’(7일 공개)도 토종 OTT의 저력을 보여줄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 극장가 거장의 귀환 극장가는 팬데믹으로 개봉이 미뤄진 대작을 선보이며 부활에 나선다.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 ‘비상선언’. ‘관상’의 한재림 감독이 연출한 데다 이병헌 송강호 전도연 김남길 등 출연 배우 면면이 화려한 만큼 극장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작품으로 손꼽힌다. 팬데믹 국면에서 지난해 ‘모가디슈’로 관객 360만 명 이상을 모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 ‘타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등 유명 감독들의 차기작도 개봉 시기를 조율 중이다. 침체된 극장가에 다시 흥행 열풍이 불지 기대를 모은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현지 월간지에 칼럼을 써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렸던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사진)가 1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북한 김일성종합대 1회 입학생이었던 고인은 1947년 월남해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종교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0년부터 덕성여대 교수를 지냈고 월간 ‘사상계’ 주간으로 일했다. 197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여대 교수 등을 지내며 약 20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고인은 일본 망명 기간 일본 진보 성향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TK생(生)’이라는 필명으로 칼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15년간 연재했다. 이 칼럼은 세계에 한국 민주화운동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TK생’의 정체가 고인이라는 사실은 2003년에야 ‘세카이’를 통해 드러났다. 고인은 1993년~2003년 한림대 한림과학원 일본학연구소 소장을, 1994년~2004년 한림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2007년에는 일본에서 집필한 칼럼을 주요 내용으로 한 저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출간했다. 유족은 부인 강정숙 씨, 아들 형인 효인 영인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은 4일 오전 7시다. 02-2072-2020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올해 K스타들은 세계인의 눈과 귀,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윤여정은 4월 영화 ‘미나리’로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94개 국가에서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1위에 오른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세계 언론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시시각각 전하는 스타 감독이 됐다.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이정재는 미국 뉴욕타임스(NYT) 선정 ‘올해의 일약스타’에 포함됐다. 그는 내년 1월 진행되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TV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함께 출연한 오영수도 남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방탄소년단(BTS)은 지난달 미국 3대 시상식으로 꼽히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아시아 가수 최초로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블랙핑크는 9월 세계적 팝가수 저스틴 비버를 제치고 유튜브에서 구독자 수가 가장 많은 가수로 올라섰다.콜드플레이 등 유명 팝스타도 ‘BTS 홀릭’4주새 1억4200만 계정 시청 ‘오겜 신화’세계를 매혹시킨 K스타 방탄소년단은 미국 시장의 ‘원더 보이’를 넘어 올해 세계 음악계의 ‘키 맨’으로 올라섰다. ‘Butter’는 미국 최고 인기곡을 꼽는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무려 10주간 1위를 차지하고 또 다른 노래 ‘Permission to Dance’마저 같은 차트의 정상을 밟았다. 국제적 팝스타들의 러브콜도 쏟아졌다. 방탄소년단은 팬층이 상대적으로 젊고 결속력이 높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급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9월 영국의 대표적 록 밴드 콜드플레이와 합작한 싱글 ‘My Universe’는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콜드플레이가 이 차트 1위를 한 것은 2008년 ‘Viva La Vida’ 이후 처음이다. 블랙핑크는 여성그룹의 자존심을 세웠다. 지난해 넷플릭스에 이어 올해에는 디즈니플러스에 멤버들의 공연과 삶을 다룬 두 번째 다큐멘터리를 배급하며 글로벌 플랫폼을 휘저었다. 2월 연 온라인 콘서트에는 소속사 추산 약 28만 명의 전 세계 팬이 유료 접속했다. 10월에는 구글이 주최한 환경 캠페인 ‘디어 어스’에 특별 연설자로 나왔다. 프란치스코 교황,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출연한 행사다. 미국 아카데미상을 포함해 영국 아카데미, 미국 배우 조합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쓴 윤여정은 “우리 모두 승자”라고 수상소감을 밝혀 팬데믹으로 절망에 빠진 세계인을 위로했다. 연기력의 비결에 대해 “연기자가 가장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궁할 때”라고 답하는 등 솔직하고 재치 있는 그의 말에 세계인은 열광했다. 콘텐츠 업계에선 넷플릭스 공개 4주 만에 세계 1억4200만 계정이 시청한 ‘오징어게임’의 기록을 뛰어넘는 드라마가 향후 수년간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종전 넷플릭스의 4주간 최고 시청 기록은 미국 드라마 ‘브리저튼’의 8200만 계정이다. 종전 기록을 무의미한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황동혁 감독에 대해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황 감독은 ‘오징어게임’에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정재 박해수 정호연은 올해 10월 미국 유명 토크쇼인 NBC TV의 ‘지미 팰런 쇼’에 출연한 것을 포함해 해외 유수 방송국에서 섭외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다. 특히 정호연은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드라마 공개 직전 40만 명에서 30일 현재 2380만 명으로 급증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떠올랐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공개 다음 날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오르며 K콘텐츠의 홈런을 이어갔다. ‘지옥’은 ‘제2의 오징어게임’으로 불리기도 했다. 유아인은 선인인지 악인인지 짐작하기 힘든 미스터리한 연기로 큰 호평을 받으며 단숨에 세계인이 주목하는 배우로 발돋움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올해도 역시나 쓸쓸한 연말이다. 곳곳에서 마지막 축제처럼 고조되던 연말 분위기는 팬데믹에 휩쓸려 사라졌다. 화려하고 자유롭던 연말이 그리우면서도 곧 밀어닥칠 신년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시기. 설레는 연말 분위기를 담아냈거나 복잡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줄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 코로나 비껴간 동화 29일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에 공개된 ‘해피 뉴이어’는 연말이 시간적 배경인 로맨틱 코미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을 연출한 곽재용 감독 작품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웃음을 머금게 한다. 호텔 ‘엠로스’를 배경으로 여러 주인공 이야기가 한꺼번에 펼쳐진다. 호텔 레스토랑 캡틴 소진(한지민)이 짝사랑하는 ‘남사친’ 승효(김영광)의 결혼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지는 이야기, 노년의 문턱에서 호텔 고객과 직원으로 재회한 옛 연인(이혜영 정진영) 이야기 등. 강하늘 이진욱 임윤아 서강준 등 주연 배우 14명이 각자의 사연을 풀어나가지만 작품 막바지엔 하나의 이야기처럼 버무려진다. 영화엔 결말이 뻔한 클리셰가 많다. 뮤지컬 배우 지망생인 하우스키퍼 이영(원진아)이 스위트룸에서 호텔 대표(이동욱)가 있는 줄 모르고 노래를 부르며 춤추다 그와 마주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클리셰, 오히려 반갑다. 긴장을 내려놓고 영화를 보며 편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라는 듯 감독은 클리셰를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다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호텔 결혼식 피로연 현장, 새해 카운트다운과 함께 불꽃으로 수놓인 밤하늘 등 영화 속 세계는 팬데믹이 비껴간 세상처럼 아름답다. 현실과 동화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영화를 보고 나면 연말 파티에 다녀온 듯 적당히 기분이 좋아진다. 인간애 가득한 캐릭터들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열심히 위로한다. ○ 차분한 새해 위한 절제미 29일 개봉한 ‘노웨어 스페셜’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창문 청소부 존(제임스 노턴)이 홀로 키우는 네 살 아들 마이클(대니얼 러몬트)을 입양할 양부모를 찾는 여정을 다룬다. 존은 양부모 후보들을 만나지만 매번 자신의 판단이 틀릴까봐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전개 속도는 느리다. 양부모 찾기 여정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 슬픔을 짜내지 않는다. 영화 ‘스틸 라이프’로 2013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절제된 연출력이 돋보인다. 영화는 신문 기사에 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아빠의 죽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속내를 알 수 없는 러몬트와 담담하려 애쓰는 노턴의 연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30일 개봉한 ‘긴 하루’는 단편 4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이다. 첫 영화 ‘큰 감나무가 있는 집’은 시골마을 한적한 집으로 이사한 소설가 현수(김동완)가 과거 이 집에 살았다며 찾아온 윤주(남보라)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4편은 명확한 결론 없이 끝난다. 모두 누군가의 긴 하루를 건조하게 담아낸다. 그 배경은 강릉과 동해. 파도가 밀려드는 조용한 해변과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일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결론이 명확했더라면 비현실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국내 여행조차 꺼리게 되는 시기. 올해를 되돌아보기 위해 강릉으로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을 선물하는 영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공상과학(SF) 드라마 ‘고요의 바다’의 주연 배우 공유(42·사진)는 30일 진행된 언론사 공동 화상 인터뷰 초반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공유가 달 탐사 기지인 발해기지 탐사대장 한윤재 역을 맡아 열연한 이 드라마는 29일 현재 넷플릭스 TV쇼 부문 스트리밍 세계 순위 3위다. 놀라운 기록을 세우고도 기뻐하기 어렵다. 앞서 ‘오징어게임’이 장기간 세계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지옥’이 공개 다음 날 세계 1위에 오르면서 K드라마 순위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공유는 “(작품을 촬영할 때) 큰 부담은 갖지 않았다”라면서도 “다만 ‘작품의 결과를 절대적인 수치로 평가해선 안 될 텐데’라고 생각한 적은 있다”고 했다. 앞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최근 ‘고요의 바다’를 두고 ‘캐릭터의 결함’ ‘따분한 이야기’ ‘황량하고 단조로운 환경’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유는 “장르가 SF다 보니 호불호가 많이 갈릴 거라고 예상했다”면서 “다만 SF 장르물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에서 첫걸음치고는 꽤 훌륭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최근에 촬영한 영화 같지가 않다. 1950년대에 촬영한 필름을 70년 가까이 지난 뒤 꺼내 스크린에 펼쳐 놓은 느낌. 영화 속 1950년대 뉴욕 맨해튼 슬럼가나 인물들은 1950년대 그 자체다. 균질하지 않은 화면 질감 등 세부 만듦새 역시 1950년대에 제작된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야기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75세의 스필버그가 연출한 뮤지컬 영화.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동명의 뮤지컬이 원작이다. 1961년에 영화화돼 작품상 등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쓴 작품을 다시 영화로 만들었다. 거장 감독의 첫 뮤지컬 영화인 만큼 팬들의 관심도 높다.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푸에르토리코에서 뉴욕으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된 갱단 ‘샤크파’와 폴란드계 백인 갱단 ‘제트파’가 슬럼가에서 벌이는 세력다툼을 다룬다. 샤크파 소속 오빠를 둔 마리아(레이철 제글러)와 제트파의 토니(앤설 엘고트)는 두 집단의 화해를 위해 경찰이 마련한 댄스파티에서 만나 첫눈에 반한다. 뮤지컬의 원작이 ‘로미오와 줄리엣’인 만큼 줄거리는 예측 가능하다. 이 때문에 관전 포인트는 이야기 전개보다는 뮤지컬 무대를 스크린에 얼마나 잘 옮겨놓았는지에 있다. 토니가 댄스파티가 끝난 뒤 마리아 집 발코니를 찾아가 사랑을 속삭이며 대표곡 ‘Tonight’를 부르는 장면은 뮤지컬 무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두 사람은 댄스파티가 열리는 농구장 관중석 뒤편 어두운 곳에서 처음 만난다. 관중석 틈을 비집고 들어온 농구장 조명은 어둠 속 이들을 비추며 만남의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만든다. 이처럼 조명과 그림자를 활용한 세밀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장면이 많다. 아카데미 촬영상을 두 차례 수상한 야누시 카민스키 감독의 촬영기법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음악도 눈길을 끈다. 다만 러닝타임이 156분에 달해 다소 긴 느낌이다. 내년 1월 12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