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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즐겨 먹는 국밥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어려운 음식이다. 고기와 뼈를 세심하게 손질해 국물을 내기까지 노하우와 각별한 정성이 필요하다. 1984년 개장한 대구두류종합시장은 한때 대구의 대표 재래시장이었지만, 아무래도 도심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다. 그런데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청년몰 운영 사업을 통해 이곳 시장 상가 내에 뛰어든 ‘두류돼표국밥’ 매출은 갈수록 오르고 있다. 두류돼표국밥 이대겸 대표(38)는 대학 때까지 엘리트 야구 선수였다. 얼마 전 KIA에서 은퇴한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3루수 이범호와 대구고 동기다. 한라대에 진학해 야구를 계속했지만 프로의 문은 좁았다. 운동을 중도 포기한 여느 선수들처럼 불투명한 미래와 늘 마주치며 오랜 방황을 겪었다. 이 대표는 “군복무를 마친 뒤에 헬스클럽 등에서 돈벌이를 했지만 나 스스로 성장의 벽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러다 10년 전, 우연히 한국리더십개발원 홍구조 원장의 강의를 듣고 포기가 아닌 자립의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야구 말고도 자신에게 다른 재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 대표는 2013년 처음으로 음식 장사에 도전했다. 뼈 해장국 식당을 했던 어머니와 택시 기사 아버지에게서 영감을 얻어 대구 달서구 성당동에서 기사 식당을 차렸다. 계산과 서빙을 하다가 가끔씩 갈비나 삼계탕을 만들어보며 요리를 배웠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이 대표는 “주방 실권을 주방장에게 맡기니 결국 장사의 한계가 오더라. 요리의 재미는 알았지만 2년 동안 실속 없이 손해만 봤다”고 말했다. 이 경험을 밑천 삼아 이 대표는 자신이 재료 선정부터 요리, 메뉴 개발까지 스스로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기 위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도매시장에서 닭도 해체해보고, 소금 공장에서 납품 일도 해봤죠. 그러면서 어떻게 싸고 질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 알게 됐죠.” 2017년 5월 그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청년 창업, 전통시장을 살리다’ 사업을 접한 이 대표는 곧바로 신청을 하고 지원을 받아 대구두류종합시장에서 돼지국밥 식당을 오픈했다. 내가 왜 음식을 해야 하는지 목적부터 분명히 새기고 다졌다. ‘건강한 국밥’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이 있었다. “처음 1년 동안은 국물 맛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손님이 남긴 국물을 주방에서 먹어보면서 ‘음식은 매일 점검하면서 잘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졌죠.” 첫 국밥의 테마는 표고버섯을 넣은 국밥이었다. 그래서 식당 상호에도 ‘돼표(돼지+표고버섯)’가 들어간다. 하지만 맛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자 과감하게 돼지 뼈만으로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처음엔 한약재도 같이 넣어 끊였는데, 이제는 뼈만 푸짐하게 넣고 진한 국물 맛을 살립니다. 12시간 핏물을 빼고, 1시간 살짝 데치고, 8시간을 더 끊이죠.” 대표 메뉴인 사골국밥과 해장국밥의 가격을 6500원으로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품질을 계속 높이고 있다. 메인 재료의 맛에 집중하면서 2년 전 개업할 때보다 하루 매출은 10배 이상 많아졌다. 개업 당시에는 하루 5만 원 찍기도 힘들었으나 지금은 하루 50만∼60만 원 정도 나온다. 앞으로 3년 후 목표는 하루 매출 100만 원. 단순히 매출액을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10년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중간에 지치지 않고 다른 마음이 안 생기도록 전략적으로 다짐한 설계다. 식당 창업을 시작하는 청년들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다. 이 대표는 사단법인 전국청년상인네트워크에서 부대표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식당을 내려는 청년들은 대부분 1년 안에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착각을 한다. 가장 중요한 ‘내가 왜 음식 장사를 하는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다”고 따끔하게 말했다. 이 대표는 매일 야구를 했던 중고교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180도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지금에 감사해한다. “창업, 장사의 본질이 대박은 아닌 것 같아요. 오로지 음식의 맛에만 집중하니 앞으로의 길이 보입니다.”▼ 지속적 메뉴연구-뚜렷한 ‘맛 철학’ 좋아… 안내-홍보 강화 필요 ▼류태창 우송대 교수○ 칭찬해요①차별화된 아이템=돼지국밥집이 전통시장 내에 위치한다는 것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청년 상인들이 입점해 있고 전통시장 청년몰 안에 있다는 점은 다른 업종과 차별화된다. 또 젊은 고객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마케팅 능력을 갖추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 ②끊임없는 메뉴 연구=이 대표의 경우 예전 모친이 운영했던 식당을 통해 국밥 관련 메뉴에 익숙한 편이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등뼈를 발라먹는 불편을 없앤 ‘돼표해장국밥’, 돼지 사골과 등뼈로만 담백한 국물 맛을 내는 ‘돼표사골국밥’을 출시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하나의 대표 메뉴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로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③맛에 대한 고집=국물 맛을 내기 위한 철학이 뚜렷하다. 육수에 조미료나 된장, 양파 등을 섞으면 맛을 내기가 쉽지만 오로지 돼지사골과 등뼈만을 쓴다. 12시간 동안 뼈의 피를 빼는 정성을 들이는 등 본연의 맛으로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맛에 대한 고집은 요식업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참고할 만하다.○ 아쉬워요 ①부족한 안내도=청년몰 특성상 고객은 시장 입구에서 해당 점포를 찾아서 들어온다. 그런데 두류종합시장 청년몰은 초입에 안내도는 있으나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매출과도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②SNS 홍보 강화=요즘 청년 상인들은 대부분 SNS를 통해 점포를 알린다. 그러나 해당 점포를 포함해 두류종합시장 청년몰은 취약한 것 같다. 두류종합시장 청년몰의 성장과 확장을 위해 거시적 차원의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동의 온라인 홍보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 특성화 시장 도약, 첫걸음시장 도전을 ▼중기부, 2년간 최대 10억 지원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사업 경험은 없으나 발전 가능성이 큰 시장을 선별해 향후 특성화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종합 컨설팅을 지원하는 ‘특성화 첫걸음시장’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 대표 시장이자 거점 시장으로 발돋움하기 전에 전통시장 5대 핵심 과제(결제편의, 위생청결, 친절 등 3대 고객서비스 과제와 상인조직 역량 강화, 안전한 시장 환경 조성의 2대 조직역량 강화 과제)를 중점 수행하면서 역량을 키우는 취지로 기획됐다. 지원 대상은 ‘전통 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2조에 의해 전통 시장, 상점가 가운데 상인 조직을 보유한 곳으로 특성화 역량이 충분한 시장인 경우에 해당한다. 지원 시장으로 선정되면 특성화 첫걸음 기반 조성의 경우, 시장당 1년간 최대 3억 원까지 지원하며 희망 사업 프로젝트(문화관광형) 연속 지원 시 시장당 2년간 최대 10억 원 이내에서 지원한다. 특성화 첫걸음 컨설팅의 경우, 전문 컨설팅 기관 등을 통해 6개월간 최대 15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광역지방자치단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와 상인회에서 제출한 신청서를 선별해 관할 지방청으로 지원 시장을 추천한다.대구=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경기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북한강 작은 섬. 자라섬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매년 가을 세계적인 재즈 축제가 열린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올해도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열린다. 2004년 첫 회를 시작한 이후 올해 16번째 축제. 그동안 전 세계 55개국에서 내로라하는 재즈 뮤지션 1105개 팀이 공연을 펼친 무대다. 비만 오면 잠기는 외딴 섬에서 재즈 축제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처음에 한두 번 하고 말겠지” 등 온갖 소리를 들어가며 의심 반 우려 반으로 막을 올린 축제는 이제 누적 관객 200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대표 음악 축제가 됐다. 경기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을 관광 코스이기도 하다. 이 축제를 기획해서 지금까지 끌고 온 인재진 총감독(54·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은 세계 재즈 지도에 한국을 새겨 넣은 개척자로 불린다. 재즈를 논할 때면 그의 이름이 붙어 다닌다. 근사한 공연장에서 감상하던 재즈를 섬에서 축제로 키워 즐기면 꽤나 좋을 듯싶다는 4차원 같은 생각을 실천으로 밀어붙인 고집쟁이다. ‘거장(巨匠)’으로 부르는 건 그가 불편해할지 모르겠으나 재즈 공연을 지속 가능한 축제로 성장시킨 그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국내 공연 비즈니스 모델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재즈 축제가 아닌 음악으로 포장된 소풍”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죠. 서울에서 해도 망하는 게 재즈 공연이었거든요. 게다가 저라는 사람이 대학로 딸기소극장 재즈 공연으로 기획을 시작한 이후 흥행에 늘 실패해서 업계에서 ‘마이너스의 손’이었으니 기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어머니까지도 말리셨죠.” 순탄하지 않았던 시작. 외국의 전통 있는 재즈페스티벌처럼 아기자기한 축제를 섬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단발 재즈 공연조차 성공한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인 감독은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해보고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도전을 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업계 기획자들이 왜 재즈 공연을 하지 않는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스스로의 확신부터 필요했다. 페스티벌 기획 단계에서 단호하게 재즈 공연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 한국에서는 어떠한 재즈, 재즈 공연이 맞을지 고민이 컸어요. 외연을 재즈라 하지 않고 음악이라고 해야겠다고 넓혔어요. 여기에 자연, 가족, 휴식을 접목시키니 소풍이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포장된 소풍의 개념을 축제의 본질로 도출할 수 있었죠.” 그래서 1회 축제부터 3회까지는 재즈만 고집하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팝이나 가요도 소개하면서 다가갔다. 인 감독은 “가족이 함께 다양한 음악을 듣다가 재즈도 괜찮은, 그런 예술적 체험의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브랜드가 알려지고 단골 관객이 축제 분위기에 적응한 4회 때부터는 100% 재즈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당시 유럽의 많은 재즈페스티벌이 대중성을 이유로 팝 프로그램을 끌어들인 것과 반대로 재즈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해외 유명 재즈 연주자들이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 주목하고 참여하고 싶어 했어요. 높이 평가하기도 했죠. ‘순전히 재즈만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는 페스티벌이 전 세계에서 몇 개나 될까’라며 놀라더라고요.”○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신용불량자 시절 축제는 모든 공연 기획자들의 로망이다. 이런 축제를 만들어냈지만 3회 때까지 금전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인 감독의 현재 거처는 가평이다. 지금이야 사정이 다르지만, 당시에는 운영비에 보태려고 어머니 집까지 팔았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가평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인 감독은 “페스티벌을 시작하고 몇 년간은 신용불량자였다. 6회 때 와서야 간신히 한도 30만 원짜리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운영비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닐 수밖에 없던 자신의 처지가 일에 대한 확신을 더 강하게 심어줬다. 위기가 오히려 의지를 지탱해준 역할을 했다. “사실 믿음, 신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내 스스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당시 돈이 없지만 뭔가 ‘Something special’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초반 고비를 넘고 아시아 최고의 재즈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하는 단계에서 느끼는 보람도 있다. 재즈가 아는 만큼 들리는 어려운 전문 음악 장르라는 선입견을 깨면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재즈의 묘미를 제공한 것이다. 인 감독은 “가평에서는 이제 재즈를 모르는 할머니들이 없을 정도다. 즉흥적인 연주가 가미되는 재즈 장르는 우리 인생, 삶과도 비슷하다. 감성에 호소하면서 인생을 말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본다. 모든 사람이 재즈를 즐길 수는 없지만 전혀 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재즈가 생소하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 자체만으로 뿌듯하다”고 했다.○ 단골 관객 넘쳐나는 건강한 축제로 지속 원해 “신규 관객 유치에 목말라 한없이 무한성장을 바라는 건 의미가 없어요. 건강한 축제가 지속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축제 초창기에 왔던 학생들이 중장년이 되어 가족들과 다시 축제에 와서 지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감성의 창구가 됐으면 해요.” 관객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보다는 스태프와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에서 서로 감동과 만족을 느끼는 본질이 유지되는 선에서 축제가 경쟁력을 갖길 원한다. “단 한 명의 관객이 온다고 해도 어때요. 축제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스태프에게서 나오는 좋은 기운이 무대의 아티스트를 거쳐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반대로 관객들의 만족감이 아티스트와 스태프에 원활하게 전달된다면 그 자체로 성공이죠.” 국내 대표 재즈 축제 브랜드로 더 세계로 뻗어가고픈 욕심은 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브랜드로 국내 다른 지역과 외국에서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도 시도해볼 계획이다. 그가 재즈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재즈가수 나윤선 씨(50)다. 인 감독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결혼”이라고 할 만큼 소중한 존재다. 인 감독은 “동종업계 아티스트로 실제 여러 나라를 돌며 재즈 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획자인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아내와 지향점이 같다는 것이 너무 큰 축복”이라고 했다. 인 감독은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20회째가 될 즈음해서 조용한 일상 변화를 꿈꾸고 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총감독 자리를 내려놓고 잠시라도 개인적 즐거움을 누리는 삶을 살아볼 생각도 있다. 자기가 키워놓은 재즈 시장의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배려도 있어서다. “했던 일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성공한 건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재즈 공연 기획이라는 특정 분야에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몇 년 참고 일을 한 사람이 없어서였고 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기획자는 어떤 자리에서든 아티스트와 공존하면서 열린 사고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봐요.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새롭고 다양한 재즈 비즈니스를 시도해보고 싶어요.”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본격적으로 여름 더위가 시작됐다. 땀으로 수분이 많이 배출되는 여름철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물 섭취가 필수다. 물은 우리 몸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체내 산소 운반과 노폐물 배출 등 신진대사를 돕고 먼지와 바이러스의 침입으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다양한 생수 가운데 백산수는 ‘균형 잡힌 미네랄’과 ‘청정함’이 갖춰진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국내의 대표적인 워터소믈리에 중 한 명인 김하늘 씨는 수원지(水源池), 성분, 신뢰성 등 총 10가지 항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백산수를 국내 생수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평가한 바 있다. 농심은 이러한 백산수의 품질 우수성을 기반으로 물 섭취의 중요성을 알리는 공익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단순히 제품 특징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위해 적절한 물 섭취의 필요성을 알리며 자연스럽게 제품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해가고 있다. 최근 농심은 기상청과 손잡고 폭염 피해 예방 ‘해피 해피 캠페인’을 시작했다. 농심은 ‘좋은 물과 휴식으로 더위를 이겨요’라는 문구를 TV광고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 홍보물 등에 삽입해 물 섭취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이 외에도 2017년부터 ‘물은 생명이다’를 주제로 물이 신체에 끼치는 영향과 물의 중요성 등을 알리는 라디오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물을 고를 때도 맛과 성분 등을 꼼꼼하게 따지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깐깐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백두산 천연 화산암반수를 그대로 담은 백산수는 물맛 좋은 생수로 인정받고 있다. 백산수는 올해 상반기 4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약 24%나 성장했다. 농심은 여름 생수 성수기 동안 적극적인 영업, 마케팅 활동을 펼쳐 올해 1000억 원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농심은 백산수의 인기 비결로 깨끗한 수원지를 가장 먼저 꼽는다. 생수는 가공식품이 아니다. 수원지 자체가 곧 제품의 품질이 된다. 농심은 독자적 생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지리산, 울릉도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수원지를 물색했다. 멀게는 중국, 프랑스, 하와이까지 조사했다. 이 중 백두산 원시림보호구역 내 내두천을 수원지로 결정하고 2012년 백산수를 출시했다. 백산수는 20억 t의 백두산 천지 물이 평균 수백 m 두께의 현무암층과 부석층(용암이 잘게 부서져 쌓인 층)을 통과한 물이다. 백두산의 화산암반층을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통과하면서 각종 불순물이 깨끗이 걸러지고 필수 미네랄은 적절하게 녹아 있다. 수원지에서 공장으로 물을 보내는 송수관 설비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농심은 스테인리스스틸 중 물과 반응하지 않는 소재(SUS316L)를 써서 배관의 산화로 인한 오염을 예방하고 있다. 배관 내부는 유리 표면처럼 매끄럽게 만들어 이물질이 묻지 않게 했다. 농심 관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수 기술력을 보유한 ‘펜테어(Pentair)’사와 손을 잡고 송수관 위생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백두산 천지 물로 만든 백산수는 공장에서 중국 다롄항까지 철도로 1000km를 이동하고 선박을 통해 평택항, 부산항으로 들어온다. 공장 가운데로는 철도가 관통하고 있는데, 이 철도를 통해 백산수를 중국 전역에도 공급할 수 있다. 국가 기관 철도를 기업이 독점 사용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이승로 성북구청장(60)은 올 5월 어린이날 직후 예고 없이 지역구 관내의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 어린이날 개방한 구청을 찾은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구청장 아저씨, 우리 학교 와 주세요’라고 쓴 쪽지를 보자마자 일정 몇 개를 취소하고 달려간 것. 이 구청장에게 학생들은 교육을 통한 자치구 성장의 비전을 세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존재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고민이 요즘 크다. 결국은 교육이 지역의 생활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떠나간 사람들을 되돌아오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학생들을 보면서 교육 환경이 왜 중요한지를 실감하고 있는 동시에 한계도 느낀다는 이 구청장이다. 그래서 겉만 번지르르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보다 지역이 갖고 있는 교육 인프라와 경험 요소를 얼마만큼 잘 활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학부모, 교육청과의 생각 차이를 줄여가는 것도 그가 할 일이다. 다음은 지난달 24일 만난 이 구청장과의 일문일답. 교육을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는 차원에서 보면 성북구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성북구의 교육 비전은 무엇인가. “전국 지자체에서 가장 많은 대학(8개)이 자치구 내에 있다. 유능한 교수와 청년이 많고, 그들로부터 파생된 공동체가 있다. 41개 대사관저도 있다. 도시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 문화 자원과 거주 문화 예술인 또한 많다. 결국 다른 자치구에 비해서 평생 폭넓은 학습과 문화 활동을 하기에 아주 용이한 조건을 갖고 있다. 성북동의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한 초등학교 3학년 교과 연계 ‘우리동네 보물찾기’, 성북구의 예술인과 연계한 자유학기제 지원 ‘예술과 어울림’ 프로그램 등은 자치구의 특수한 교육 여건과 잘 결합시킨 좋은 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맞는 미래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이 사다리가 돼서 학생들이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길게 보고 가야할 문제다. “지역의 장점이 많기 때문에 급하다고 내 아이디어를 무작정 내고 관철시키는 것보다 갖춰진 것들을 유지하고 보수하면서 하나하나 전진해가는 게 낫다고 본다. 내가 석관동에 사는데 윗집, 아랫집 모두 이사를 가더라. ‘다시 올 거예요’라고 부모들이 말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주거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 교육, 학군 문제 때문에 떠나는 것이…. 이런 부분들이 오히려 일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 대학이 많다는 건 큰 장점이다. 대학은 콘텐츠의 보고(寶庫) 아닌가. “내 공약이 이랬다. 보통 신촌에서, 강남에서 만나자고들 하는데 ‘성북에서 만나자’를 캐치프레이즈로 했다. 이 안에는 이곳의 청년 인재와 교육, 문화가 시너지를 발휘해 서울의 발전을 주도하자는 취지도 있다. 관내에 있는 고려대에서 ‘캠퍼스타운’ 사업을 전국 처음으로 시도했다. 도시재생모델로 시동을 걸어보는 건데, 재학생과 졸업생 창의 인재가 성북구를 떠나지 않고 여기에 기반을 갖추면서 지역 교육에 기여하는 인프라로 활용해보는 것이다. 고려대는 일자리 창출, 한성대는 문화예술, 서경대는 미디어 분야 등 학교별로 잘하는 콘텐츠들이 있다. 이것들을 성북구 교육의 동력으로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하나하나 챙겨보고 있다. 이미 고려대, 국민대, 동덕여대 등과는 협력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 진로 등에 관해 다양한 멘토링을 전개하고 있다. 학생들 스스로 학습의 주체가 되게끔 하는 자기주도학습지원센터로 문을 열었는데 대학들이 영어, 과학, 뮤지컬, 창의 체험 등 다양한 학력 신장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다.” 시민과 마을을 교육 공동체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성북구가 진행하는 혁신교육지구사업의 핵심 아닌가. “행정이 모든 교육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 주민 전체가 함께 해줘야 한다. 학생들의 배움을 지원하고 평생 학습 체계 마련을 위해서는 학교-마을 교육 공동체의 구축이 그래서 필요하다. 혁신교육사업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같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총 16개 사업이 구성돼 있는데 이 중 마을과 함께하는 학교교육과정 운영이 7개, 아동청소년들의 배움과 쉼 놀이를 위한 마을활동사업이 5개 등이다. 16개 사업별로 민·학·관으로 구성된 사업 추진단을 만들어 사업 계획부터 실행, 평가까지 철저하게 협의를 하면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이런 과정에서 평생 교육의 발판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나. “주민 공동체 복원을 통해서 평생 학습의 토대를 마련한 변화를 실감한다. 성북구에서는 연간 150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마을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한 리더, 활동가, 마을교사 대상 프로그램도 있다. 소규모 마을 배움터 28개에서는 주민 학습 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39개소의 소규모 교육 인프라에서 자유롭게 독서, 학습, 토론, 돌봄이 이뤄지고 있다. 주민 수요를 계속 반영해서 마을 공동체 평생 학습의 선순환 구조를 고민하려 한다.” 인근 자치구나 지방과의 교육 프로그램 교류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주변 동북 3구(도봉, 노원, 강북)의 구청장들과는 협의체가 구성돼 있어서 교육 차원에서도 교류할 생각이 있다. 교육이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면 서로에게 상생의 계기가 될 것이다. 뜻이 맞는 구청장들과 힘을 모아 교육을 통한 변화와 성장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보겠다.”2013년 성북구는 대한민국 처음으로 유니세프인증 아동친화도시로 지정됐다. 이에 대한 책임감도 클텐데… “대한민국 아동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청소년 사망원인도 자살이 1위라고 한다. 늘 학교 폭력과 범죄에 노출돼 있는 게 청소년이고 학생이다. 이들이 자유롭게 놀면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성북구 아동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친화 정책을 펴고 있다. ‘놀권리추진단’을 구성해 청소년전용놀이터 3개소를 조성했고, 놀이큐레이터 17명을 양성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아동·청소년협의체가 있는데 매년 스스로 청소년축제를 기획하고 평가하게 만들었다. 중·고등학교 동아리에도 활동 예산을 지원한다. 전국 최초의 아동 전용 보건소가 있는 것도 성북구다. 방과 후 활동 지원과 돌봄 체계 구축에도 더 많은 공을 들일 예정이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이승로 구청장은… 1959년 전북 정읍 출생 / 정읍 제일고 졸업 / 고려대 정책대학원 석사(행정학) 2·3대 성북구의회 의원 / 9대 서울시의회 의원 / 한성대 겸임교수}

반세기 한국 스포츠의 추억이 어린 스포츠용품사 한 곳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서울 종로구 서울 YMCA 건물 지하 1층 ‘Y스포츠상사’. 5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던 1세대 스포츠용품사인데 이번 달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1971년 개업한 Y스포츠상사는 변변한 국산 스포츠용품이 없던 시절 자체 제작하거나 다양한 수입처를 통해 확보한 용품을 선수와 일반인에게 보급해 왔다. 매장에는 1970년대 국내 최초로 제작한 펜싱 칼과 마스크, 장갑처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스포츠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매장 안에는 현재 팔고 있는 물건과 함께 오래된 옛 용품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스포츠 종목별 유니폼과 각종 국제대회 팸플릿, 기념 메달, 상패 등 희귀한 역사 자료들도 숱하다. 공간은 크지 않지만 제법 스포츠 역사박물관 티가 난다. 창업자인 조성무 대표(80)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해 온 것. 가뭄에 콩 나듯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조 대표는 예전 용품들을 하나둘씩 꺼내 놓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40여 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든 리듬체조 곤봉부터 닳고 닳은 축구화, 역도화, 권투화, 그리고 유도복…. 조 대표는 “월급 6500원을 주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를 차렸는데 세월이 참 많이 지났다”며 웃었다. 이제는 전 세계 스포츠용품들을 온라인 등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단체 유니폼 주문 정도는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갈수록 손님 발길이 끊겼다. 가끔씩 YMCA에서 수영 강습을 받는 사람들이 수영복이나 물안경 등을 사러 오는 정도다. 이 업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가게를 닫기로 하면서 옛 용품들을 정리하는 조 대표는 “온전한 기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게 아쉽지만 한국 스포츠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1967년 YMCA에 입사해 체육부 직원으로 근무하다 선수나 운동을 즐기는 일반인들에게 더 좋은 장비와 용품을 공급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장을 열었다. 그 후 조 대표가 직접 주문해 만들어 보지 않은 스포츠용품이 없다. 한국 스포츠가 막 뻗어 나가려는 시절 종목별 심판복까지 제작했을 정도다. 선수들도 제때 용품을 공급받기 쉽지 않았던 1970, 80년대에는 수입 용품을 어렵게 구해 이리저리 연구한 끝에 용품을 제작해 선수들에게 써보게 하기도 했다. 도저히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개발이 어려워 중도 포기한 적도 많았다. 1970년대 초반 만들었던 선수용 스판덱스 수영복 1호는 그의 대표작이다. 일본 업체들과 제작 협력 계약이 잘 안 돼 홀로 전국의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품질이 괜찮은 스판덱스 소재를 찾았다. 나중에는 수영복 원단으로 보디빌딩 선수들의 팬츠를 제작했다. 스포츠용품사 사장이었지만 판매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스포츠용품의 국산화를 위해 무수히 발품을 팔았다. 펜싱의 경우 수입 제품을 모두 분석해 최초로 국산 펜싱 마스크와 관련 용품을 만들었다. 외국산에만 의존했던 배드민턴 라켓을 개발하기 위해 세계적인 라켓 브랜드가 있는 대만 전역을 돌아보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조 대표는 “당시 스포츠계에서 관심을 가졌다면 예상치 못한 종목에서 국산 용품 브랜드가 생겨났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외국 스포츠용품 분석에는 도가 텄다. 심지어 김포공항 세관원들이 수입 용품들이 들어올 때 전화를 걸어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 운동선수들에게 Y스포츠상사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들이 용품 조달에 애를 먹으면 조 대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조 대표는 “1970년대는 농구공이 무척 귀했다. 미군 부대에서 쓰다 나온 공을 이리저리 부탁해 얻어 실업팀, 은행팀에 2, 3개씩 주곤 했다”고 회상했다. 농구는 특히 애정이 많다.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장이 친척 여동생의 남편이다. 한때 농구공 국산 제작도 시도했다가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다. 조 대표는 “막상 매장을 접을 결심을 하니 마치 몸 일부분이 찢겨 나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40∼50년 전만 해도 ‘국산 용품은 안 좋다’는 인식이 많았는데 그걸 깨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한국 스포츠용품 역사의 밑뿌리가 된 것은 보람이고 내 자랑이지만 후계자를 정하는 타이밍을 놓친 게 너무 아쉽습니다. 매장은 없어지지만 그래도 집과 저만의 공간에서 추억을 계속 간직할 생각입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반세기 한국 스포츠의 추억이 어린 스포츠용품사 한 곳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서울 종로구 서울 YMCA 건물 지하 1층 ‘Y스포츠상사’. 5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던 1세대 스포츠용품사인데 이번 달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1971년 개업한 Y스포츠상사는 변변한 국산 스포츠 용품이 없던 시절 자체 제작하거나 다양한 수입선을 통해 확보한 용품을 선수와 일반인에게 용품을 보급해왔다. 매장에는 1970년대 국내 최초로 제작한 펜싱 칼과 마스크, 장갑처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스포츠 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매장 안에는 현재 팔고 있는 물건과 함께 오래된 옛 용품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스포츠 종목별 유니폼과 각종 국제대회 팜플렛, 펜던트 등 희귀한 역사 자료들도 숱하다. 공간은 크지 않지만 제법 스포츠 역사박물관 티가 난다. 창업자인 조성무(80) 대표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해 온 것. 가뭄에 콩나듯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조 대표는 예전 용품들을 하나둘씩 꺼내놓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40여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든 리듬체조 곤봉부터 닳고 닳은 축구화, 역도화, 권투화, 그리고 유도복…. 조 대표는 “월급 6500원을 주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를 차렸는데 세월이 참 많이 지났다”고 웃었다. 이제는 전 세계의 스포츠 용품들을 온라인 등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단체 유니폼 주문 정도는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갈수록 손님 발길이 끊겼다. 가끔씩 YMCA에서 수영 강습을 받는 사람들이 수영복이나 물안경 등을 사러 오는 정도다. 이 업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가게를 정리하기로 하면서 옛 용품들을 하나둘씩 정리하는 조 대표는 “온전한 기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게 아쉽지만 한국 스포츠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1967년 YMCA에 입사해 체육부 직원으로 근무하다 선수나 운동을 즐기는 일반인들에게 더 좋은 장비와 용품을 공급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장을 열었다. 그 후 조 대표가 직접 주문해 만들어 보지 않은 스포츠 용품이 없다. 한국 스포츠가 막 뻗어나가려는 시절 종목별 심판복까지 제작했을 정도다. 선수들도 제 때 용품을 공급받기 쉽지 않았던 1970, 80년대에는 수입 용품을 어렵게 구해 이리저리 연구한 끝에 용품을 제작해 선수들에게 써보게 하기도 했다. 도저히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개발이 어려워 중도 포기한 적도 많았다. 1970년대 초반 만들었던 선수용 스판 수영복 1호는 그의 대표작이다. 일본 업체들과 제작 협력 계약이 잘 안 돼 홀로 전국의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품질이 괜찮은 스판 소재를 찾았다. 나중에는 수영복 원단으로 보디빌딩 선수들의 팬츠를 제작했다. 스포츠용품사 사장이었지만 판매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스포츠용품 국산화를 위해 무수히 발품을 팔았다. 펜싱의 경우 수입 제품을 모두 분석해 최초로 국산 펜싱 마스크와 관련 용품을 만들었다. 수입산에만 의존했던 배드민턴 라켓을 개발하기 위해 세계적인 라켓 브랜드가 있는 대만 전역을 돌아보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조 대표는 “당시 스포츠계에서 관심을 가졌다면 예상치 못한 종목에서 국산 용품 브랜드가 생겨났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외국 스포츠용품 분석에는 도가 텄다. 심지어 김포공항 세관원들이 수입 용품들이 들어올 때 전화를 걸어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 운동선수들에게 Y스포츠상사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들이 용품 조달에 애를 먹으면 조 대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조 대표는 “1970년대는 농구공이 무척 귀했다. 미군 부대에서 쓰다 나온 공을 이리저리 부탁해 얻어 실업, 은행팀에 2, 3개씩 주곤 했다”고 회상했다. 농구는 특히 애정이 많다.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장이 친척 여동생의 남편이다. 한 때 농구공 국산 제작도 시도했다가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다. 조 대표는 “막상 매장을 접을 결심을 하니 마치 몸 일부분이 찢겨져 나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40~50년 전만 해도 ‘국산 용품은 안 좋다’라는 인식이 많았는데 그걸 깨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한국 스포츠 용품 역사의 밑뿌리가 된 것은 보람이고 내 자랑이지만 후계자를 정하는 타이밍을 놓친 게 너무 아쉽습니다. 매장은 없어지지만 그래도 집과 저만의 공간에서 추억을 계속 간직할 생각입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쫄깃쫄깃∼오동통통∼농심 너구리.” 귀에 익은 CM송으로 인기를 얻은 농심 너구리는 우동 라면의 대명사다. 1982년 국내에서 처음 우동 개념의 라면으로 선보인 너구리는 독특한 면발, 국물 맛과 CM송 등 차별화된 마케팅에 힘입어 변함없는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연간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라면 시장의 파워 브랜드가 됐다. 너구리의 인기 비결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우동과 얼큰한 국물의 조화다. 기존 라면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해물 우동 국물과 두꺼운 면발이 더해졌다. 너구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큼지막하게 들어 있는 다시마다. 농심 연구진은 좀 더 깊고 진한 해물 맛을 내기 위해 실험을 하다 가정에서 국 요리를 할 때 다시마를 활용해 육수를 낸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국의 좋은 다시마를 찾던 중 생산량이 많고 품질이 뛰어난 전남 완도산 다시마를 선택했다. 37년째 이곳 천연 다시마를 별도의 가공 없이 통째로 잘라 넣어 감칠맛을 내는 레시피를 완성했다. 올해도 5월 전남 완도군 금일도에서 있었던 다시마 첫 경매에서 구매를 했다. 금일도 도장리 한병철 어촌계장은 “국내 대표 청정수역인 완도는 전국 다시마 생산의 70%를 차지한다. 특히 금일도 다시마는 완도 내에서도 제일의 품질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농심은 금일도 건(乾)다시마를 매년 평균 400t가량 구매하고 있다. 37년째 농심에 다시마를 납품하고 있는 협력업체 신상석 대표는 “너구리 덕분에 이곳 완도에서 다시마 큰손이라고 불린다. 너구리의 인기 비결은 다시마에 있는 만큼 비싸더라도 최상품의 다시마를 선별해 사들인다”고 뿌듯해했다. 농심의 완도 다시마 사랑은 이곳 어민들의 소득으로 이어진다. 상생 경영의 대표 사례다. 금일도에서 다시마 양식을 하는 어가(漁家)는 대략 450곳. 어민들은 매년 5월 말에서 7월 초까지 다시마를 채취해 경매장에 내놓는다. 완도금일수협 김승의 상무는 “너구리는 다시마 어가들의 판로 걱정을 덜어주는 효자상품이다. 너구리 판매가 다시마 소비로 이어지고, 결국 완도 어민들의 소득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는 어촌 경제의 안정과 활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1998년 에베레스트부터 2007년 로체까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6좌를 세계 최초로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59·엄홍길 휴먼재단 상임이사)이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소생)’ 캠페인에 동참했다. 8000m 이상 등정을 총 36번 시도해 16번을 실패한 엄 대장은 그간 등정에서 10명의 동료를 잃었고, 본인도 1998년 안나푸르나 등정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 등 숱한 위기 상황을 맞았던 터라 누구보다 소생 캠페인에 공감했다고 한다. 엄 대장은 “히말라야 8000m를 넘는 수많은 산을 도전할 때도 헬기 구조 요청을 많이 했다”면서 “절박한 순간 헬기 소기가 들리면 그 소리 덕분에 정말 살아남은 것 같고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닥터헬기가 누군가에겐 불편한 소음이 될 수 있지만 헬기 안 응급 환자와 가족들에겐 생명의 소리, 희망의 소리”라고 말했다. 엄 대장은 소생 캠페인에 참여할 다음 릴레이 주자로 연기자 박상원, 송재희, 지소연 씨 등 3명을 지명했다. 최근 엄 대장은 유치원, 초등학교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11일 네팔로 향했다. 그는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넋을 기리고 히말라야에 진 빚을 갚는다는 취지로 2008년 엄홍길 휴먼재단을 세우고 지금까지 히말라야 오지에 16개 학교(엄홍길 휴먼스쿨)를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학교 건물만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가방과 교복, 장학금 등 학업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16번째 학교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대학까지 모두 들어서는 스쿨타운으로 건립할 예정이다. 또 엄 대장은 지난달 30일 안나푸르나 관광객들을 위해 KT와 재난긴급대응센터 설립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유재영 기자}

1998년 에베레스트부터 2007년 로체까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6좌를 세계 최초로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59·엄홍길 휴먼재단 상임이사)이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소생)’ 캠페인에 동참했다. 8000m 이상 등정을 총 36번 시도해 16번을 실패한 엄 대장은 그간 등정에서 10명의 동료를 잃었고, 본인도 1998년 안나푸르나 등정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 등 숱한 위기 상황을 맞았던 터라 누구보다 소생 캠페인에 공감했다고 한다. 엄 대장은 “히말라야 8000m를 넘는 수많은 산을 도전할 때도 헬기 구조 요청을 많이 했다”면서 “절박한 순간 헬기 소기가 들리면 그 소리 덕분에 정말 살아남은 것 같고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닥터헬기가 누군가에겐 불편한 소음이 될 수 있지만 헬기 안 응급 환자와 가족들에겐 생명의 소리, 희망의 소리”라고 말했다. 엄 대장은 소생 캠페인에 참여할 다음 릴레이 주자로 연기자 박상원, 송재희, 지소연 씨 등 3명을 지명했다. 최근 엄 대장은 유치원, 초등학교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11일 네팔로 향했다. 그는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넋을 기리고 히말라야에 진 빚을 갚는다는 취지로 2008년 엄홍길 휴먼재단을 세우고 지금까지 히말라야 오지에 16개 학교(엄홍길 휴먼스쿨)를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학교 건물만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가방과 교복, 장학금 등 학업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16번째 학교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대학까지 모두 들어서는 스쿨타운으로 건립할 예정이다. 또 엄 대장은 지난달 30일 안나푸르나 관광객들을 위해 KT와 재난긴급대응센터 설립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영문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직군은 해외 기업이나 삼성, LG, 네이버 등의 글로벌 기업 채용 공고에서 간혹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대중들에게는 생소하다. 미국 노동부의 직업 분류표에 영문 테크니컬 라이터는 ‘장비 매뉴얼, 부록 운용 및 유지보수 설명서를 작성’하는 직업으로 설명돼 있다. 업무 범위를 넓히면 각 조직의 지침서, 보고서, 프로젝트 계획서, 시험 성적서, 계약서 등의 폭넓은 문서들을 정확하고 쉽게 이해하도록 다듬고 만드는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영문 테크니컬 라이터는 정확하고 유연한 번역 업무까지 소화해야 한다. 조길자 세종대 겸임교수(주식회사 앰버랭 대표)는 “수백억 원에 해당하는 첨단 장비를 판매할 때 완벽한 명품 매뉴얼이 첨부돼야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문서 표현 하나가 상대와의 관계를 망칠 수 있는데도 국내 산업 기관들이 전문 인력 배치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문 테크니컬 라이터 분야는 모든 분야 전공자가 도전할 수 있다. 공학 지식과 언어 감각을 갖추고 있는 경우라면 더 좋다. 교육 과정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 용어나 어법, 격식 등을 구분해서 좋은 문서를 만드는 능력을 익힐 수 있다. 조 교수는 온라인이 대세가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영문 테크니컬 라이터의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실무 경험자를 중심으로 교육자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분야가 다른 각 업종이나 기업의 맞춤 교육 콘텐츠와 온라인 강의도 개발할 예정이다. 조 교수는 2학기부터 테크니컬 라이팅 강좌를 연세대, 한양대 등에서 강의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테크니컬라이터협회’를 설립해 직종을 알리고 청년층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인재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편중 현상이 심해지면서 지방 대학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지역 인재 풀을 만들고, 그들의 역량을 키워 지역 사회에 도움을 주는 기반을 만들기가 버겁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지방대를 중심으로 인재 역량을 어떻게 끌어낼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필요한 시기다.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송재호 위원장과 전호환 부산대 총장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균형발전과 대학의 역할’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저출산 시대, 대학이 지역혁신거점 역할 해야 두 사람은 먼저 저출산 시대에 지역 국립대의 역할과 지역 균형 개발에 대화의 초점을 맞췄다. 2018년 기준 합계출산율(여성이 15세부터 45세까지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98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지방대의 ‘생존’을 위해서도 심각한 문제다. 저출산으로 시작된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지방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 혁신 방안으로 옮겨갔다. ▽전 총장=신생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지방 도시가 파괴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 대학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지역의 문화, 산업, 경제 등 삶의 생태계가 대학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내 국내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환경에 맞닥뜨렸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대학 발전의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는 10개의 연구 중심 대학, 20여 개의 교양(교육) 중심 대학, 그리고 기능 인력 양성을 담당하는 다수의 전문대학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다행히 국내에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10개의 거점 국립대(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서울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가 있다.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연구와 기능 인력을 양성하도록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실에서 효율적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린 교육 생태계가 필요하지 않나.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 도시들의 고른 성장과 차별화된 발전이 중요한데, 대학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도 이에 맞춰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송 위원장=정부의 국가균형발전 방향은 종전의 분산 개념에 더해 분권을 지향하는 거다. 지방에 권한을 주고 스스로 개성 있는 발전을 해나가도록 하는 건데, 결국 지역을 혁신하려는 역량과 추진력, 지역 사회 공헌에 대한 의지가 중요해졌다. 그 중심에 대학이 있다는 게 핵심이다. 거점 국립대가 있는 지역들이 서로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뛴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것이다. 지역 간 격차를 시정하는 모든 노력을 중앙 정부의 일로 본다.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은 소득과 일자리 수를 넘어서 삶의 행복도와 만족도가 높다. 여기에 일부 일조할 수 있는 게 대학이다. 지역에 활력을 주고, 문화와 교육의 흐름을 선도하는 잠재력을 키워갈 때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역 행정과 산업, 대학을 같이 엮어야 한다. 소위 ‘시-산-학’ 시스템이 중요하다. 이 시스템이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재정 투입도 일어나게 된다. 부산의 경우는 대학과 시 행정의 연계가 잘된 경우다. 대학이 아닌 시가 ‘산학협력단’을 만든 건 이례적이다. ▽전 총장=부산대도 ‘지역혁신협력팀’을 만들어 부산시의 산학협력단과 연계해 대학의 다양한 맞춤 인재 양성과 혁신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부산대에는 86개국에서 외국인 학생 2200여 명이 와 있다. 유학생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국내 최고다. 세계 유수 대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시에서는 부산시내 대학과 연계해서 유학생을 공동으로 유치하고 공동 기숙사도 짓자고 한다. 대학과 시가 협력해야 될 게 많다. 정부 3개 부처가 내놓은 정책으로 대학 내에 첨단 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캠퍼스 혁신 파크’도 시의 협조가 필요하다. ▽송 위원장=캠퍼스 혁신 파크는 지역 대학 혁신 정책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대학 안에 판교테크노밸리 같은 것을 넣는 거다. 일종의 첨단 산업 지역으로 발전시키는 계획이다. ▽전 총장=그것을 잘하는 곳이 독일이다. 독일 아헨시(市)가 새 기차역을 지으면서 옛 역사를 아헨공대에 제공했다. 대학의 기술과 젊은 연구자들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이곳에 벤처기업들이 몰려오면서 창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대학이 혁신 기술 개발로 지역에 일자리를 선물해주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효과를 얻었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대학 주변에 스타트업, 벤처 등이 들어올 수 있는 창업 생태계가 구축돼야 된다. 융·복합 창의 인재 양성과 지역 기업 일자리 창출에 큰 힘을 받을 수 있다. ▽송 위원장=대학 주도 성장을 위해 관련 부처가 지원에 나서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규제자유특구를 두고 지역이 하고자 하는 특화 산업에 대해서는 중견기업 육성의 발판을 마련해주겠다는 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연구개발특구의 새 모델인 ‘강소특구’도 비슷한 경우다.○ 국토의 고른 발전이 건강한 나라 만들어 정부는 최근 부산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1차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 신성장동력인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부산대의 역량이 중요해졌다. 이와 관련한 국가균형발전 논의도 이어졌다. ▽전 총장=양산캠퍼스에 ‘정보의생명과학대학’을 새로 만든다. 부산이 하고자 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의료, 관광, 금융 산업과의 접목이다. 양산캠퍼스는 의생명특화단지로 개발되고 있다. 신설 대학은 4차 산업혁명의 정보데이터 기술과 의생명과학 기술을 융합하기 위함이다. 우리 대학은 이미 블록체인 실험실을 비롯해 관련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전공 교수를 대거 뽑을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차원에서 ‘동남권발전협의회’를 구성해 지역균형발전을 논의하고 있다. ▽송 위원장=동남권발전협의회가 왜 중요하냐면 지역으로 내려간 정부 부처, 혁신 지원 기관들이 전체적으로 서울만 바라보도록 하지 않고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토양, 묶음을 만들어준다는 거다. 이것을 지원하고 방향도 제시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협의체가 한다. ▽전 총장=우리나라는 수도권 인구 및 경제 집중도가 너무 높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심장만 튼튼하다고 사람이 건강할 수 없다. 국토의 고른 발전이 건강한 국가를 만든다.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가전제품 등 세계 1등 기업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수도권에 필적하는 광역경제권을 구축하기 위한 범시민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협의체다. 최종 목표는 부울경을 하나의 광역단체로 진전시키기 위한 법제화에 있다. 동남권발전협의회는 진정한 분권과 지역 발전을 위한 대학 주도 혁신 성장 협의체라 할 수 있다. ▽송 위원장=부울경이 광역경제권으로 발전하려면 우선 사회간접자본(SOC) 확보가 중요하다. 부산은 제일 중요한 게 공항, 항만이다. 대한민국의 관문이기 때문에 백년대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지원 시설이 있어야 한다. 금융, 언어, 회계, 법률 등과 21세기형 대표 지원 시설인 스마트시티다. 여기에 지역민들이 품격 있게 살 수 있는 생활밀착형 SOC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수영장, 체육관, 어린이·취약계층 돌봄 시설, 노인 의료 시설 등이다. 생활밀착형 SOC에 대해서는 정부가 앞으로 3년 동안 48조 원가량을 투입할 계획이다. ▽전 총장=부산대 양산캠퍼스의 경우 시민하고 같이 쓸 수 있는 체육관을 문화 시설, 생활밀착형 SOC로 신청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라면 신공항 건립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본다. 그 밖에 거점 국립대 지원에 대한 검토가 빠르고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송 위원장=거점 국립대의 요구사항을 50∼60% 정도 해결해서 방학 이후에 대학 측에 답을 드리려 한다. 풀 건 풀고 안 되는 것은 정리해 보고드릴 계획이다. 거점 국립대가 죽으면 국립대가 다 죽는다. 그런 각오다.유재영 elegant@donga.com·이종승 기자}

한국에서 12번째로 높은 산인 강원 평창군 발왕산(해발 1458m)과 남녀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이자 원조 한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춘천 남이섬이 손을 잡았다. 더 많은 관광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두 운영 주체(용평리조트-㈜남이섬)가 발왕산과 남이섬을 관광 상품으로 연계하자는 양해각서(MOU)를 최근 맺었다. 거리가 제법 떨어진 산과 섬이 관광 체인으로 연계된 것은 드문 일.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관광업계에서 상당히 크게 주목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전체를 조망하면서 정상을 갈 수 있는 발왕산은 자연친화적 문화, 스포츠, 건강 테마 파크로 빠르게 변신 중이다. 둘레만 3∼4m에 이르는 주목 군락, 마유목, 가문비나무 등 남다른 사계절 자연 경관을 개방하고 산 곳곳을 발왕산의 유래, 역사와 관련한 스토리텔링 콘텐츠와 엮어 교육적 가치도 높였다. 산 정상 암반에서 나오는 천연 미네랄워터인 ‘발왕수’도 관광객의 입을 즐겁게 하는 힐링 포인트로 끄집어냈다. 바나듐과 규소 성분이 풍부하게 포함된 발왕수를 이곳만의 수제 맥주와 커피 등으로 만들어 내놨다. 정상 혹은 케이블카 안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는 테마 역시 발왕산 대표 힐링 코드로 계속 업그레이드 중이다. 연내로 스카이워크를 세워 산 정상 위를 걸으면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상징인 주경기장이 철거된 상황에서 알파인 스키 경기가 열렸던 발왕산의 정상을 ‘평화봉’으로 지정해 평창 올림픽 대표 레거시(유산)로 완성하려는 노력도 적극 전개하고 있다. 신달순 용평리조트 대표는 “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발왕산의 감춰진 잠재력을 끄집어낼 것이다. ‘발왕산=스키장’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깬다. 관광객들이 매번 새로운 콘서트를 기대하는 기분으로 오도록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발왕산이 수직적이라면 북한강에 솟은 남이섬은 수평적인 시선의 관광을 지향한다. 국내 단일 관광지로는 가장 많은 외국인이 방문(연평균 100만 명)하는 남이섬은 섬 전체 46만 m²에 걸쳐 자작나무와 메타세쿼이아, 잣나무, 은행나무 등의 자연친화 숲길을 조성했다. 그 사이 사이 호텔,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과 국내외 여러 문화, 예술인과 단체가 참여한 볼거리들을 채웠다. 볼거리들이 이른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형태로 시시각각 변한다는 게 특징. 드라마 ‘겨울연가’의 흔적에 의지하고 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겨울연가’의 자취가 남은 곳은 단 두 곳뿐이다. 남이섬은 세계가 모두 모인 ‘문화공화국’이 운영 모토다. 이란의 작가가 남이섬을 생각하면 쓴 글이 담긴 비석, 중국의 대표적 진흙 인형 예술가인 위칭청 씨가 남이섬에 거주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던 공방인 행복원 등 운영자가 아닌, 찾아오는 객들에 의해 상상하지 못한 볼거리가 섬 곳곳에서 꾸며지고 있는 중이다. 용평리조트와 ㈜남이섬은 이처럼 눈높이를 바꿔주는 관광의 연계 차원에서 사업 방향을 공유하고 공동 사업 프로젝트를 구상한다는 방침이다. 전명준 ㈜남이섬 대표는 “입장료만 빼고 모두 관광 소재와 스토리텔링의 아이템”이라고 못 박았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2019년 에르메스가 새롭게 선보인 시계 ‘갤롭 데르메스 (Galop d’Hermès)‘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아트센터 디자인대에서 환경디자인을 전공한 설치미술가 이니 아르키봉의 상세한 관찰을 통해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탄생했다. 아르키봉은 에르메스의 역사가 담긴 기록 보관 아카이브에 소장된 재갈, 등자(¤子·말안장의 동그란 발 받침대) 등의 마구(馬具·말을 다룰 때 쓰는 기구) 컬렉션과 수많은 ’오브제‘에서 영감을 받았다. 등자 형태의 케이스는 빛이 곡선을 따라 흐르도록 하는 효과를 준다. 금속에 온기를 전해주고 형태를 돋보이게 한다. 둥글거나 각진 기존 시계에서 벗어나 사다리꼴 형태를 살렸다. 자연스럽게 모서리각이 부드러워져 완벽한 착용감을 선사한다. 돔형 글라스를 통해 빛을 받는 다이얼은 맑은 강물 사이로 비치는 조약돌 같다. 아르키봉은 “내 작업의 중심은 빛을 포착하는 작품을 만드는 데 있다. 공기역학적 형태와 미래주의적 라인이 구성하는 표면과 빛의 반사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는 디자인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시계 다이얼에도 ’디테일‘이 숨어 있다. 다이얼의 숫자 크기가 위치에 따라 다르다. 상단부로 갈수록 글꼴 사이즈가 작아지도록 배치해 입체적으로 보인다. 8시를 가리키는 숫자 8은 등자 형태를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넣었다. 어떻게 보면 무한대를 나타내는 기호 ∞ 로 보인다. 거울 2개를 마주 보게 해 끝없이 확장되는 것처럼 보이는 ’미장아빔‘ 효과도 난다. 전체적으로 마구 제조에서 시작돼 앞으로도 계속 변화를 거듭해나가는 에르메스의 역사와 비전을 담았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크라운도 6시 방향에 배치해 재치와 균형미를 더했다.갤롭 데르메스는 316L 스틸과 로즈 골드에 각각 다이아몬드 세팅, 무보석 버전으로 총 4종류로 출시됐다. 스트랩 소재는 송아지, 악어가죽을 사용했다. 스트랩은 내추럴, 블랙, 블랙커런트, 사파이어 블루, 파이어 레드, 라즈베리, 엘리펀트 그레이 등의 색으로 구성됐다. 갤롭 데르메스에는 시간에 대한 에르메스만의 차별화된 해석이 잘 녹아 있다. 재미있고 유쾌한 기존 스타일을 뛰어넘어 친근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때로는 익살스럽고 즐거움을 더한 시간의 의미를 반영한다. 그저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를 넘어 시간과의 관계에 의미 부여를 하고, 거기에 맞는 오브제를 잘 담았다. 필리프 델로탈 에르메스 시계 개발 및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갤롭 데르메스는 주얼리와 시계라는 틀을 뛰어넘는, 형식을 완전히 탈피한 스타일의 오브제다. 자유와 영혼, 열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에르메스 시계를 찬다는 것은 형식적인 것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답답한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간에 지배된다기보다는 함께 즐기고, 감동과 힐링을 만들어내는 관계의 차원에서 시간을 표현하려는 노력은 전통적인 워치 메이킹의 틀을 깨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혼자 생활을 즐기는 ‘1인 문화’가 확산되면서 집에서 홀로 운동하는 ‘홈트족(홈트레이닝족)’도 크게 늘고 있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 피트니스 클럽에 가지 않아도 유명 강사들이 유튜브 등에 올린 레슨 영상이나 스마트폰 피트니스 관련 어플 프로그램을 집에서 따라하면서 운동 집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그렇다고 맹신은 금물. 홈트레이닝만으로 충분히 운동이 되지만 자칫 잘못된 자세로 동작을 따라하거나 과하게 몸을 쓰면 부상을 입을 수 있다. 현역 보디빌더이자 전문 피트니스 강사인 ‘다미넬 짐’의 김진하 대표는 홈트레이닝을 할 때 딱 두 가지만 습관을 들이면 멋진 몸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한다. 매트리스부터 깔아라‘이것만 알면 가슴이 태평양처럼 넓어집니다.’‘하루 10분만 하면 ‘어깨 강패’, 저만 믿으세요.’전문 피트니스 강사들이 직접 운동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 제목들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당장 한 달, 두 달 안으로 ‘몸짱’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이 폭발한다. 곧바로 집에다 사다 놓은 역기를 무작정 몇 시간씩 들어올리게 된다. 김진하 대표는 “몸을 빨리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큰 남자 분들에게는 아주 달콤한 유혹이다. 대부분이 준비 운동이나 스트레칭 과정을 빼고 바로 부위별 트레이닝 영상을 압축해 담은 것이다. 상급자라면 모르겠지만 초보자라면 준비 없이 동작만 보고 따라하다가는 100% 다친다”고 말했다.김 대표가 말하는 홈트레이닝의 시작은 ‘매트리스 깔기’.김 대표는 “매트리스부터 깔아야 자연스럽게 몸에 힘을 빼고 운동을 하기 전 예열부터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한다. 딱딱한 맨바닥의 충격을 흡수하는 매트리스 위에서 상체와 무릎과 발목 등 몸 전체 근육의 가동 범위를 늘리는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관절이 아닌 근육으로 중량을 느껴라홈트레이닝을 하는 남성 상당수가 토로하는 고민은 운동 시간과 횟수에 비해 근육량이 늘지 않고 잔 부상이 잦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전문 강사들의 동작을 따라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관절로 중량을 버티고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운동을 할 때 관절이 아닌 근육으로 중량을 느낀다는 생각으로 동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육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가장 기초적인 운동부터 정확한 자세를 잡는 게 기본. 이 동작이 되면 어떤 트레이닝이든 응용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기본 가슴 운동인 ‘푸시업’을 할 때도 무턱대고 양 발끝으로 버티면서 팔로 움직임을 하지 말고, 무릎을 땅에 대고 가슴으로 최소한의 중량을 잡았다 푸는 느낌으로 천천히 한 번에 3세트(1세트 10개∼15개) 정도 해보는 것이 가슴 근육 발달에 더 좋다”고 조언했다. 허벅지가 무릎과 수평이 될 때까지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기본적인 하체 운동인 ‘스쿼트’ 동작도 처음에는 의자를 이용해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고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쓰고 버티는 습관을 길러야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관절 대신 근육을 쓰는 스쿼트의 기본 동작이 익숙해지면 무릎 주변 근육부터 대퇴부, 둔부까지 세밀하게 근육을 쓰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돼 전체적으로 척추를 완벽하게 받쳐주는 지지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면서 “홈트레이닝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운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계획적인 트레이닝이 가능해졌다면 전문가를 찾아 완벽하게 내 자신만의 운동 프로그램으로 매뉴얼화시키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오뚜기가 11일 경기도 과천 서울랜드 피크닉장에서 ‘제24회 오뚜기 가족요리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오뚜기 가족요리 페스티벌은 많은 가족들이 음식을 함께 만들면서 화합하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국내 최대의 가족 요리 축제다. 올해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특별히 요리 전공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차원으로 요리 전공자 부문 경연도 진행됐다. 이날 대회에는 예선을 통과한 가족 100팀과 요리 전공 부문 50팀 등 총 150팀이 열띤 경연을 펼쳤다. 참가자들이 우리 이웃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뜻 깊은 행사도 함께 마련됐다. 이들의 요리 대회 참가비와 행사를 주최한 오뚜기의 출연금을 합해 총 600만원을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지원을 위해 한국심장재단에 전달했다. 또 그동안 수술비 지원을 받은 심장병 완치 어린이와 가족을 초청해 위로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번 대회에서는 치열한 경쟁 끝에 김현용 씨 가족이 1등 대상인 오뚜기상을 차지하고 500만 원 상당의 주방가전 교환권과 트로피를 받았다. 또 으뜸상 두 가족, 사랑상에 세 가족 등 총 6가족에게 1200만 원 상당의 가전제품 교환권이 주어졌다. 요리 전공자 부문에는 한국조리과학고교에 재학 중인 안주현 학생 팀이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장학금 300만 원을 받았다. 또 우수상과 장려상에게는 각각 장학금 200만 원과 100만 원이 전달됐다. 이밖에 행운상 한 팀에게는 300만원 상당의 홍콩 여행 상품권이 제공됐다. 오뚜기 관계자는 “앞으로도 요리를 통해 가족 간의 화목과 밝은 사회가 구현되기를 희망한다.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드물다. 마운드에 올라 공 몇 개로 타자를 쉽게 삼진으로 잡거나 범타로 돌려세우는 투수. 게다가 볼넷은 거의 주지 않으면서 많은 이닝을 책임져 주는 투수. 올 시즌 LA 다저스의 류현진(32)이 그렇다. ‘공을 가지고 논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절정의 제구력을 무기 삼아 타자들을 속전속결로 압도하고 있다. 투구 수 100개면 8, 9회를 쉽게 맞이한다. 미국 언론이 먼저 ‘제구의 마술사’로 불리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투수 그레그 매덕스(전 애틀랜타, 시카고)의 이름을 꺼내 류현진과 비교하고 있다. 류현진의 제구가 얼마나 완벽한지 굳이 기록을 꺼내 보자면 18일까지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0.73, K/BB(삼진/볼넷 비율) 18.00, P/IP(이닝당 투구 수) 13.7개로 단연 메이저리그 전체 1위다. 볼넷이 적으니 이닝당 투구 수가 적고 이닝당 출루 허용 수치도 낮다. 투구 수가 적어 수비 시간이 짧아지니 타구에 대한 수비수들의 집중력까지 좋아진다. 반대로 상대 타자 입장에서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류현진표’ 제구력의 근간은 무엇일까. 류현진은 이달 8일 애틀랜타와의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둔 뒤 “어릴 때부터 언제나 제구에 신경을 쓰면서 던졌기 때문에 지금의 제구력을 만들 수 있었다”고만 짧게 밝혀서 궁금증이 크다. 도대체 어떻게 가다듬은 걸까.○ 초등학교 때 잡힌 제구의 ‘디테일’ 류현진의 모교 인천 창영초를 찾았다. 이호영 전 창영초 코치는 제구력을 처음 익힐 당시 류현진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투수로의 성장 가능성을 본 4학년 류현진에게 이 전 코치가 먼저 했던 주문은 3가지. ‘투구 시 왼쪽 팔이 넘어올 때 눈 앞쪽에 보이는 포인트에서 일정하게 공을 놓을 것’과 ‘와인드업 후 발을 뻗고 땅에 내딛는 지점까지의 거리를 투구판에서 9발자국(당시 류현진의 신발 크기 기준) 정도로 유지할 것’, ‘투구판 3루 쪽에서 3분의 1가량 안쪽 지점을 밟고 던질 것’이었다. 이 전 코치는 “키킹(디딤발을 들어올리는 것) 시 왼팔이 뒤로 젖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타자 방향으로 몸 중심을 많이 끌고 나가는 투구 동작이 제구나 공의 속도 면에서 현진이에게 적합하다 싶었다. 스트라이드(디딤발을 땅에 내딛는 동작) 폭도 처음에는 좁아서 투구 폼이 흔들리지 않도록 늘렸고, 투구판 밟는 위치도 조정했다”고 했다. 이 전 코치는 “지금 현진이 투구 폼을 보면 그때와 거의 변한 게 없다. 본인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전 코치는 지도자의 주문을 자기 것으로 만든 ‘어린이 류현진’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전 코치는 “경기에서 던지고 나면 이틀 걸러 한 번씩 50∼60개 정도 투구 연습을 하게 했는데 금방 적응하더라”며 “경기든 연습이든 투구를 한 날에는 무조건 학교 운동장을 20바퀴 정도 뛴 것이 하체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초구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로 “초구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로 던지라고 했죠.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때 현진이가 던진 초구가 90% 이상 스트라이크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정식 경기에 나선 류현진에게 이 전 코치는 제구에 대한 뚜렷한 목표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맞더라도 초구는 스트라이크를 넣는 데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연습 때는 10개 중 무조건 8개 이상을 스트라이크로 넣도록 시켰다고 했다. 이 전 코치는 “현진이가 오른쪽 타자 몸쪽으로 직구를 던지려고 하면 일부러 포수를 홈플레이트 중앙에서 안쪽으로 이동시켜서 확실한 포인트에 포수 미트를 갖다대게 했다. 그러니 몸쪽 직구 제구력이 날로 좋아졌다. 나중에는 강약 조절까지 하면서 스트라이크를 잡더라”고 했다. 이 전 코치는 류현진이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활용해 던져볼 수 있도록 실전 경기에서는 전혀 사인을 내지 않는 배려를 했다. 이 전 코치는 “초등학교 때 현진이를 투수에서 중견수로 교체했던 일이 있다. 상대가 중견수 앞 타구를 쳤는데 그 공을 잡아 1루로 빠르게 던져 아웃을 시키더라. 우익수가 그런 식으로 타자를 아웃시키는 건 봤어도 중견수 앞 땅볼은 처음 봤다. 중견수 자리에서도 제구가 된 것”이라며 웃었다. ○ 하늘로 캐치볼 안정된 제구력은 어떤 구종을 던지든 일정하게 유지되는 투구 자세에서 나온다. 중고교 시절 체격이 성인 수준으로 커지는 상황에서 투구 자세의 밸런스를 지켜낸 것도 현재 류현진의 제구력에 한몫했다. 중학교 스승인 이찬선 전 동산중 감독은 “무사 만루 상황에서도 공이 위로 벗어나거나 땅에 처박히는 경우가 없었다. 아무리 긴장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자기 폼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류현진과는 창영초, 동산고 동기여서 포수로 호흡을 맞췄던 현천웅 청원고 코치 역시 “고교 입학 전후로는 삼진보다는 완급 조절로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고 맞혀 잡았다. 그러면서 투구 밸런스가 더 일정하게 유지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구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또 한 가지의 ‘연습 루틴’도 있다고 했다. 투수들은 대개 마운드에 오르기 전 어깨를 풀기 위해 거리를 늘려가면서 캐치볼을 한다. 롱 토스라고 하는데 류현진은 다른 방법으로 준비했다. “보통 직선으로 던지는데 현진이는 하늘로 공을 던져 포물선을 크게 그리도록 캐치볼을 해요. 경기에서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질 때 회전을 더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밸런스를 잡기 위해 왼쪽 팔을 앞으로 길게 뻗고자 하는 목적일 수도 있죠. 정확한 건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제구가 더 좋아졌어요. 당시 현진이가 던질 때면 심판분들로부터 ‘알고도 못 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현 코치)○ 프로 데뷔전서 특급 좌타자들 사냥 2006년 한화에 입단해 그해 프로 데뷔전에서의 호투는 류현진이 제구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얻게 된 계기다. 신인으로 프로 무대에 적응하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한화 감독이었던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고문의 배려가 컸다. 김 고문은 “과거 쌍방울의 김원형이라든가 OB 박명환 같은 선수들은 데뷔 당시 어려움을 겪었다. ‘왜 이렇게 잘 안 될까’ 그런 걱정이 됐던 선수들이었다. 시범경기가 끝나고 이런 전례를 생각해 보면서 류현진을 언제 데뷔 등판을 시킬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능력 있는 좌타자들이 많은 LG를 첫 경기로 선택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성공이 된 셈이다. 제구를 비롯한 여러 면에서”라고 말했다. 류현진은 데뷔 첫 경기 LG전에서 7.1이닝 3피안타, 탈삼진 10개 무실점 호투로 승리를 따냈다. 특히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좌타자인 이병규와 박용택을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공략하며 5번이나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데뷔전에서 자신감을 얻은 류현진은 그해 18승 6패 1세이브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투수 출신인 김 고문은 프로 초년생의 제구 능력에 확신을 갖고, 있는 그대로 지켜봤다. “코치들에게 폼은 그대로 놔두자고 했죠. 제구력을 키우는 건 흔히 농구로 따지면 선수가 코트에 나와서 슈팅 연습하는 것하고 같다고 봐요. 슈팅을 하면서 손끝으로 ‘이게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느낌이 오잖아요. 투수도 마찬가지인데, 현진이의 손끝 감각을 믿었죠. 제구에 대해선 마운드 위에서 어떤 일이 있든 표정 변화를 보이지 말라는 얘기만 자주 강조를 했어요. 때마침 현진이가 데뷔한 해에 구대성이 돌아왔고, 송진우도 건재했고… 내로라하는 좌투수 선배들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봐요.” 현역 시절 압권의 제구력을 뽐냈던 이상군 전 한화 감독대행도 “류현진이 송진우나 구대성 선배를 통해 익힌 체인지업 같은 구질의 제구를 가다듬어 경기 중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활용해 보면서 흔들림 없이 작은 공간에 일정하게 공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됐다”고 치켜세웠다. ○ 복합적 계산이 담긴 2019년 제구 올 시즌 류현진의 제구는 한층 위력이 배가됐다. 단순히 코스로 타자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고 있다. 김 고문은 류현진이 상대의 분석을 흩트러뜨리는 복합적 계산이 담긴 투구를 하고 있다고 봤다. 실제 류현진이 애틀랜타전 완봉승 이후 “체인지업 스피드를 낮추면 각도가 커진다”고 했던 것처럼 구질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제구의 집중력을 높이고 있는 게 보인다. 김 고문은 “올 시즌 달라진 게 던질 때 순간 동작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현진이한테 물어보니 투구 동작에서 힘을 모으는 순간까지의 타이밍은 이전과 같지만 그 이후는 빨리 가져간다고 하더라. 타자 입장에서는 공의 회전력이 더 살아서 빨리 들어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짚어 보면 얼마나 하체 운동을 많이 했는지 느껴진다. 예전보다 허리를 더 틀고 공을 더 빨리 가지고 나오면서 제구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이런 제구력 때문에 미국 현지에서도 ‘버릴 게 없는 공’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류현진이 마운드 위에서 빼고, 넣고, 밀어붙인 공 하나하나의 의미를 짚어 보면서 경기를 지켜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가 될 듯하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드물다. 마운드에 올라 공 몇 개로 타자를 쉽게 삼진으로 잡거나 범타로 돌려세우는 투수. 게다가 볼넷은 거의 주지 않으면서 많은 이닝을 책임져 주는 투수. 올 시즌 LA 다저스의 류현진(32)이 그렇다. ‘공을 가지고 논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절정의 제구력을 무기 삼아 타자들을 속전속결로 압도하고 있다. 투구 수 100개면 8, 9회를 쉽게 맞이한다. 미국 언론이 먼저 ‘제구의 마술사’로 불리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투수 그레그 매덕스(애틀랜타, 시카고)의 이름을 꺼내 류현진과 비교하고 있다. 류현진의 제구가 얼마나 완벽한지 굳이 기록을 꺼내보자면 18일까지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0.73, K/BB(삼진/볼넷 비율) 18.00, P/IP(이닝당 투구 수) 13.7개로 단연 메이저리그 전체 1위다. 볼넷이 적으니 이닝당 투구 수가 적고 이닝당 출루 허용 수치도 낮다. 투구 수가 적어 수비 시간이 짧아지니 타구에 대한 수비수들의 집중력까지 좋아진다. 반대로 상대 타자 입장에서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류현진표’ 제구력의 근간은 무엇일까. 류현진은 이달 8일 애틀랜타와의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둔 뒤 “어릴 때부터 언제나 제구에 신경을 쓰면서 던졌기 때문에 지금의 제구력을 만들 수 있었다”고만 짧게 밝혀서 궁금증이 크다. 도대체 어떻게 가다듬은 걸까.● 초등학교 때 잡힌 제구의 ‘디테일’ 류현진의 모교 인천 창영초를 찾았다. 이호영 전 창영초 코치는 제구력을 처음 익힐 당시 류현진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투수로의 성장 가능성을 본 4학년 류현진에게 이 전 코치가 먼저 했던 주문은 3가지. ‘투구 시 왼쪽 팔이 넘어올 때 눈 앞쪽에 보이는 포인트에서 일정하게 공을 놓을 것’과 ‘와인드업 후 발을 뻗고 땅에 내딛는 지점까지의 거리를 투구판에서 9발자국(당시 류현진의 신발 크기 기준) 정도로 유지할 것’, ‘투구판 3루 쪽에서 3분의 1가량 안쪽 지점을 밟고 던질 것’이었다. 이 전 코치는 “키킹(디딤발을 들어올리는 것) 시 왼팔이 뒤로 젖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타자 방향으로 몸 중심을 많이 끌고 나가는 투구 동작이 제구나 공의 속도 면에서 현진이에게 적합하다 싶었다. 스트라이드(디딤발을 땅에 내딛는 동작) 폭도 처음에는 좁아서 투구 폼이 흔들리지 않도록 늘렸고, 투구판 밟는 위치도 조정했다”고 했다. 이 전 코치는 “지금 현진이 투구 폼을 보면 그때와 거의 변한 게 없다. 본인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전 코치는 지도자의 주문을 자기 것으로 만든 ‘어린이 류현진’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전 코치는 “경기에서 던지고 나면 이틀 걸러 한 번씩 50~60개 정도 투구 연습을 하게 했는데 금방 적응하더라”며 “경기든 연습이든 투구를 한 날에는 무조건 학교 운동장을 20바퀴 정도 뛴 것이 하체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초구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로 “초구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로 던지라고 했죠.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때 현진이가 던진 초구가 90% 이상 스트라이크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정식 경기에 나선 류현진에게 이 전 코치는 제구에 대한 뚜렷한 목표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맞더라도 초구는 스트라이크를 넣는 데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연습 때는 10개 중 무조건 8개 이상을 스트라이크로 넣도록 시켰다고 했다. 이 전 코치는 “현진이가 오른쪽 타자 몸쪽으로 직구를 던지려고 하면 일부러 포수를 홈플레이트 중앙에서 안쪽으로 이동시켜서 확실한 포인트에 포수 미트를 갖다대게 했다. 그러니 몸쪽 직구 제구력이 날로 좋아졌다. 나중에는 강약 조절까지 하면서 스트라이크를 잡더라. 하나 알려주면 둘을 해냈는데 기본적으로 연습량이 많았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나 포수가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게 됐다는 게 이 전 코치의 말이다. 이 전 코치는 류현진이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활용해 던져볼 수 있도록 실전 경기에서는 전혀 사인을 내지 않는 배려를 했다. 이 전 코치는 “초등학교 때 현진이를 투수에서 중견수로 교체했던 일이 있다. 상대가 중견수 앞 타구를 쳤는데 그 공을 잡아 1루로 빠르게 던져 아웃을 시키더라. 우익수가 그런 식으로 타자를 아웃시키는 건 봤어도 중견수 앞 땅볼은 처음 봤다. 중견수 자리에서도 제구가 된 것”이라며 웃었다. 프로야구 원년 명포수 출신인 박철영 KT 배터리코치는 “프로에서도 제구에 집중이 잘 안되는 선수들은 연습 투구 20~30개를 ‘스프레이’ 뿌리듯 사방에 던져버리고 끝낸다”며 “연습이라도 던질 때 리듬, 몸의 균형 등을 체크하고 내가 원하는 포인트에 어떻게 던졌는지를 계속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류현진이 어릴 때부터 이런 단순 투구가 아닌 ‘피칭’의 경험을 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늘로 캐치볼 안정된 제구력은 어떤 구종을 던지든 일정하게 유지되는 투구 자세에서 나온다. 중고교 시절 체격이 성인 수준으로 커지는 상황에서 투구 자세의 밸런스를 지켜낸 것도 현재 류현진의 제구력에 한몫했다. 중학교 스승인 이찬선 전 동산중 감독은 “무사 만루 상황에서도 공이 위로 벗어나거나 땅에 처박히는 경우가 없었다. 아무리 긴장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자기 폼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류현진과는 창영초, 동산고 동기여서 포수로 호흡을 맞췄던 현천웅 청원고 코치 역시 “고교 입학 전후로는 삼진보다는 완급 조절로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고 맞혀 잡았다. 그러면서 투구 밸런스가 더 일정하게 유지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구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또 한 가지의 ‘연습 루틴’도 있다고 했다. 투수들은 대개 마운드에 오르기 전 어깨를 풀기 위해 거리를 늘려가면서 캐치볼을 한다. 롱 토스라고 하는데 류현진은 다른 방법으로 준비했다. “보통 직선으로 던지는데 현진이는 하늘로 공을 던져 포물선을 크게 그리도록 캐치볼을 해요. 경기에서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질 때 회전을 더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밸런스를 잡기 위해 왼쪽 팔을 앞으로 길게 뻗고자 하는 목적일 수도 있죠. 정확한 건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제구가 더 좋아졌어요. 당시 현진이가 던질 때면 심판분들로부터 ‘알고도 못 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현 코치)● 프로 데뷔전서 특급 좌타자들 사냥, 제구 자신감 ‘업’ 2006년 한화에 입단해 그해 프로 데뷔전에서의 호투는 류현진이 제구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얻게 된 계기다. 신인으로 프로 무대에 적응하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한화 감독이었던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고문의 배려가 컸다. 김 고문은 “과거 쌍방울의 김원형이라든가 OB 박명환 같은 선수들은 데뷔 당시 어려움을 겪었다. ‘왜 이렇게 잘 안될까’ 그런 걱정이 됐던 선수들이었다. 시범경기가 끝나고 이런 전례를 생각해 보면서 류현진을 언제 데뷔 등판을 시킬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능력 있는 좌타자들이 많은 LG를 첫 경기로 선택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성공이 된 셈이다. 제구를 비롯한 여러 면에서”라고 말했다. 류현진은 데뷔 첫 경기 LG전에서 7.1이닝 3피안타, 10탈삼진의 무실점 호투로 승리를 따냈다. 특히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좌타자인 이병규와 박용택을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공략하며 5번이나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데뷔전에서 자신감을 얻은 류현진은 그해 18승 6패 1세이브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투수 출신인 김 고문은 프로 초년생의 제구 능력에 확신을 갖고, 있는 그대로 지켜봤다. “코치들에게 폼은 그대로 놔두자고 했죠. 제구력을 키우는 건 흔히 농구로 따지면 선수가 코트에 나와서 슈팅 연습하는 것하고 같다고 봐요. 슈팅을 던지면서 손끝으로 ‘이게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느낌이 오잖아요. 투수도 마찬가지인데, 현진이의 손끝 감각을 믿었죠. 제구에 대해선 마운드 위에서 어떤 일이 있든 표정 변화를 보이지 말라는 얘기만 자주 강조를 했어요. 때마침 현진이가 데뷔한 해에 구대성이 돌아왔고, 송진우도 건재했고… 내로라하는 좌투수 선배들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봐요.” 현역 시절 압권의 제구력을 뽐냈던 이상군 전 한화 감독대행도 “류현진이 송진우나 구대성 선배를 통해 익힌 체인지업 같은 구질의 제구를 가다듬어 경기 중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활용해 보면서 흔들림 없이 작은 공간에 일정하게 공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됐다”고 치켜세웠다. ● 복합적 계산이 담긴 2019년 제구 올 시즌 류현진의 제구는 한층 위력이 배가됐다. 단순히 코스로 타자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고 있다. 김 고문은 류현진이 상대의 분석을 흐트러뜨리는 복합적 계산이 담긴 투구를 하고 있다고 봤다. 실제 류현진이 애틀랜타전 완봉승 이후 “체인지업 스피드를 낮추면 각도가 커진다”고 했던 것처럼 구질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제구의 집중력을 높이고 있는 게 보인다. 김 고문은 “올 시즌 달라진 게 던질 때 순간 동작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현진이한테 물어보니 투구 동작에서 힘을 모으는 순간까지의 타이밍은 이전과 같지만 그 이후는 빨리 가져간다고 하더라. 타자 입장에서는 공의 회전력이 더 살아서 빨리 들어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짚어보면 얼마나 하체 운동을 많이 했는지 느껴진다. 예전보다 허리를 더 틀고 공을 더 빨리 가지고 나오면서 제구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이런 제구력 때문에 미국 현지에서도 ‘버릴 게 없는 공’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류현진이 마운드 위에서 빼고, 넣고, 밀어붙인 공 하나하나의 의미를 짚어 보면서 경기를 지켜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가 될 듯하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축구 선수들을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로 만나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 로 통했다는 것 자체가 운명 아닐까요.” 한국 축구의 도약기라 할 수 있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년 세월 가까이 한국 축구의 레전드들을 돌보고 치료했던 최주영(67) 전 대한축구협회 의무팀장. 각각 4번의 월드컵과 올림픽, 아시아경기, 아시안컵 등 포함해 대표팀 300경기의 현장을 지킨 ‘국민 트레이너’다. 그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을 도와 함께 4강 기적을 일궜던 박항서 베트남 축구 감독 곁에서 ‘의무팀 수석 트레이너’ 라는 공식 직함으로 인생 2막을 열었다. 대표팀 소집 시기 외에는 베트남 재계 서열 1위인 빈그룹이 운영하는 빈맥 재활병원에서 수석 트레이너로 근무를 한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영화처럼 스쳐가는 지난 날을 떠올리며 다가올 앞날의 각오를 다졌다. ● 프로야구단 트레이너 될 뻔… 부상 두려움부터 없앤 ‘감성’ 재활이 가장 보람 1982년부터 10여 년간 카타르배구협회 물리치료사로 일하다 귀국한 최 전 팀장은 1994년 은사의 추천으로 대한축구협회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당시 새로 창단한 현대 프로야구단에 먼저 지원을 해서 합격을 해놓은 상태였다. 하마터면 내 인생에서 축구 대표팀은 없을 뻔 했다”고 웃었다. 지나고 보니 선수들의 마음으로 들어가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했다. “대표팀에서 처음 일할 때 만해도 물리적 치료에 대해서만 생각했어요. 그러다 선수들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면서 나중에는 선수가 다쳐도 전혀 걱정 안 되도록 하는 게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재활이라고 봤죠. 그게 ‘최주영’ 만의 재활 색깔이 됐죠.” 선수들의 신뢰가 밑받침이 됐오늘 선수들이 어디가 불편하고, 어떤 부위가 걱정스러운지, 심지어 그라운드 잔디 사정이 어떤지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고 했다. 스트레칭도 선수들마다 킥을 하거나 공을 뺐을 때 다리 각도를 평소 훈련 때 유심히 기록해 그에 맞게 해줬다. 빡빡한 스케줄, 주전 경쟁으로 지친 선수들을 위해 의무실이나 치료실은 ‘무한 프리토킹’의 장으로 개방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했다. “내 앞에서는 무슨 얘기라도 편하게 하라고 했어요. 대신 나만 알고 있었죠. 그러니까 선수들이 아주 여과 없이 해댔어요. 자연스럽게 아주 구체적으로 선수 정보가 쌓이더라고. 표정만 보고 말만 들어도 컨디션이 어떤지 한 눈에 알겠다니깐. 감독과 선수 사이에서 완충 작용, 이것도 트레이너 메디컬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 내 안의 승부욕 깨운 비쇼베츠 축구 대표팀 의무 담당이 단순히 선수 부상 치료를 넘어 어떻게 하면 감독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지를 처음 일깨워준 고마운 사람도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러시아 출신 비쇼베츠 감독이다. “부임 초반에는 내가 나름의 선수 관리 자료를 작성해 보고를 하면 계속 퉁명스럽게 반응을 해서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던 최 전 팀장은 결국 자신의 역할에 대한 애정으로 비쇼베츠 감독의 마음을 돌려놨다고 했다. “훈련지가 사우디아라비아였는데, 식단 관리는 물론이고, 아랍어와 영어로 식당 매니저 미팅까지 주관하면서 관련 보고를 하니 감독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죠. 그 다음 유럽전지훈련에서는 수시로 어깨를 감싸고 축구와 관계없는 얘기도 하는 거예요. ‘쓰고 싶은 선수들을 제대로 관리해주겠다, 한 번 보라’는 마음으로 선수들이 어떤 자세에서 몇 번 공을 잡는 지까지 시시콜콜한 것 모두 깨알같이 적어 보여주곤 했죠. 내 이름 석자에 기대고 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해준 감독입니다.” ● 선수도 속이고 기자에게 통사정 외국인 감독이 선임되면서 국민적 기대가 컸던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 진출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유난히 부상자가 속출해 진땀을 흘렸던 경험은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을 앞두고 미국 전지훈련에서 핵심 이기형(전 인천 감독)이 정강이를 다친 건 그의 트레이너 인생에서 1순위로 꼽는 초비상 사태다. 당시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최종 예선을 앞두고 대표팀 오른쪽 윙백이었던 이기형의 부상과 회복 여부는 굉장히 크고 민감한 뉴스였다. 비쇼베츠 감독이 전력 노출에 워낙 민감해 해서 최 전 팀장은 취재진을 만날 때마다 “모두 건강하다”라는 말밖에 하지 못할 때였다. “보안을 유지하면서 국내 병원에서 MRI를 찍어보니 정강이 뼈가 부러졌더라고요. 그래도 조심스럽게 붙을 수 있는 여지가 보였죠. 그래서 감독에게는 ‘2주 정도면 뼈가 붙겠다’고 해놓고 선수 본인은 모르게 했어요. 그런데 한 기자 분이 부상을 알고 있었어요. 그 기자에게도 사정을 했죠. ‘본인이 부상을 알고 있으면 뛸 수가 없다. 상처가 크다’며 보도를 미뤄달라고 부탁을 했죠. 결국 부상이 완쾌됐지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막상 최종 예선에 가니 주전 중앙수비수 조종화(현 옌벤 푸더 감독대행)가 심하게 허리를 다쳤다. 엑스레이상으로 심한 염좌 증세를 확인한 최 전 팀장은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일 정도였던 조종화를 밤새 얼음찜질을 하며 치료했다. 최 전 팀장은 “졸면서 치료해보기는 처음이었다”며 “아침에 물으니 선수가 아프지 않다며 오후 훈련에 나가더라. 지금도 유일하게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며 웃었다. 그는 “두 번의 경험을 하고나니 힘을 얻게 되더라. 이 뒤로 트레이너 일이 ‘마약’ 같다고 주변에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 조마조마했던 안정환, 미안했던 이천수 4강 신화를 이뤘던 2002년 한일월드컵을 떠올리니 최근 예능 방송을 함께 찍었던 안정환을 얘기를 안 꺼낼 수 없다고 했다. 최 전 팀장은 “안정환이 월드컵 직전 제주도 캠프에서 마지막 평가전을 하고 발목을 다쳤다. 23명 엔트리에 못 들어갈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재활을 시켰다”는 비화부터 서둘러 꺼냈다. 기적으로 역전승을 일군 16강 이탈리아 전에는 경기 직전 안정환에게 테이핑을 하는 와중에 테이핑 테이프가 끊어져 혹시 불길한 전조가 될까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걱정이 되더라고. 그런데 전반에 정환이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는거야. 환장하겠다러고요. 후반 시작하기 전에 정환이는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즐겨’라고 얘기해줬는데, 연장에서 골든골을 넣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월드컵 개막 직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상을 당한 이영표의 재활을 위해 의무팀과 사전 얘기 없이 네덜란드 출신 트레이너를 불러 들여 자존심이 상했던 해프닝은 트레이너를 처음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계기라고 했다. “항의를 하러 간 나를 보고 바로 미안하다는 히딩크 감독에게 ‘당신은 총사령관이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대장인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따르겠다’고 했었죠. 자존심에 연연하지 말자, 본연의 초심으로 돌아갔던 순간이었어요.” 월드컵 내내 미안했던 선수는 이천수다. 최 전 팀장은 “천수가 막내급이었는데 형들이 치료를 받는 시간과 겹쳐 기다려야 할 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르쳐 준대로 아픈 부위가 있으면 혼자 연고도 잘 바르고 약을 챙겨가서 관리를 잘하더라. ‘아 이 친구, 프로 정신이 있구나’라고 속으로 미안해하고도 응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 내 아픈 손가락 ‘둘’ 부상으로 불운이 겹쳤던 역대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 ‘둘’은 그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티낼 수 없었지만 신경이 특히 많이 쓰였던 선수들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뒤 본선에서 한 경기라도 뛰려고 무진 애를 썼던 황선홍 전 FC서울 감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는 트레이너의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다. “당시 인대가 끊어진 정도의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뭔가 만족스러울만한 ‘케어’를 해주지 못했어요. 황선홍의 경우 정신적 케어도 중요했었죠. 물리적으로 치료가 됐다고 해서 심리적으로 당한 부상이 낫는건 아니였어요. 선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염려와 고심,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 부상이 회복됐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는 “4년 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도 오른쪽 햄스트링 건염 통증이 있어서 자다가도 걱정을 많이했던 친구”라고 돌아봤다. 숱한 인연에서 이동국(전북)도 빼놓을 수 없다. 40세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동국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2010년 남아공월드컵 만큼은 뛰게 해주고 싶었던 기억이 선하다. 최 전 팀장에 따르면 이동국은 2002년, 2006년 월드컵에 이어 2010년 월드컵도 못 갈 뻔 했다. 최 전 팀장은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를 3주 가량 남긴 시점에 동국이가 햄스트링을 다쳐 5주 진단이 나왔다. 내가 허정무 감독께 3주면 된다고 보고를 하고 오스트리아 훈련 때 정성을 다해 재활을 시켰다. 3주 만에 동국이가 정상 상태임을 입증하는 데이터 기록을 가지고 엔트리 23명 회의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마음을 놓고 월드컵 개막 직전 남아공 현지에서 도착해 첫 연습을 하고 나니 이동국이 다시 반대편 햄스트링 통증을 호소해 한 번 더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 선수 돌보다 앰블런스 실려간 ‘뼛속까지 트레이너’ 문득 드는 질문, 그도 아플까. 대표팀 선수들을 돌보지 못할 만큼 아픈 적이 있었을까. 태극 전사가 그라운드에 쓰러지면 누구보다 빨리 달려나갔고, 24시간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던 장본인에게 물으니 그도 철인은 아니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아랍에미리트 전지훈련 당시 그는 신장 결석 증세로 식사는커녕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고통에 시달렸다고. 선수를 돌보다 티 안내고 화장실로 가 통증을 견뎌냈다. 최 전 팀장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김현태 코치를 붙잡고 내 방으로 가서 앰블런스를 불러달라고 했다. 응급실에서 다음 날 외래 진료를 받으라는데 하필 국경일이었다”며 “어쩔 수 없이 그날 대표팀 회식에서 맥주 2캔을 마시고 소변을 봤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통증이 없었다”며 아찔했던 에피소드를 전했다. 최 전 팀장에겐 ‘내 몸 과신해서는 안 된다. 뼛속부터 트레이너가 돼야 한다’고 자성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얼떨결에 시작한 길을 운명처럼 가고 있다”는 그는 1996년 아시아컵 8강에서 이란에 2-6로 참패하고 귀국해서 당한 일을 문득 떠올렸다. 심기일전의 동기로 삼겠다는 각오다. “공항 세관 직원이 ‘축구도 못하면서…’라며 전례 없이 대표팀 의약품 가방 등을 다 꺼내보라고 했었죠.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 때부터 명예에 연연하지 말자라는 결심이 들었어요. 다시 현장으로 들어가는 자체만으로 설렙니다. 내 할 몫이 있다는 게 즐거워요.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으로 재활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서울 종로구 인사동과 낙원동을 가로지르는 삼일대로 위에 낙원악기상가가 자리잡고 있다. 1969년에 완공돼 올해로 50년을 맞은 건물. 한국을 대표하는 악기 전문 상가다. 계단과 벽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겉모습만 보면 딱히 뭐 볼 게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겉’과 다르게 낙원악기상가는 알차게 ‘속’을 채워왔다. 꽤 괜찮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입소문도 퍼졌다. 건축, 문화 분야 전문가들은 복고와 새로운 트렌드가 공존하는 ‘뉴트로(Newtro) 1번지’로 꼽는다. 건물 1층에 새겨진 ‘낙원‘딩’이라는 글자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 ‘아지트’ 서울문화재단에서 발행한 ‘서울건축읽기’에서 조한 홍익대 교수(건축학)가 서술한 내용을 보면 낙원악기상가가 현재 어떤 구조이며, 어떤 콘셉트로 변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지하에는 구수한 청국장과 시원한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는 재래시장이 있고, 지상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거리가 있고, 2, 3층에는 온갖 빛깔의 악기들이 교향악단처럼 늘어선 악기 매장이 있는가 하면, 4층에는 예술 영화와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전용관이 3개나 있고, 9층부터는 빛이 가득한 중정을 품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최신 주상복합 건물의 분양 광고가 아니다.’ 계단을 따라 상가 2층에 올라가니 남은 경계심이 사라진다. 길거리에서 2층 상가로 진입할 수 있는 계단 출입구만 8군데. 기본적으로 찾는 사람들을 문전박대하는 곳은 아닌 셈이다. 2층 중앙에는 새로 카페도 생겼다. 따로 음악을 틀 필요도 없다. 매장에서 나오는 악기 소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향이 섞여 묘하게 귀를 파고든다. 층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악기 매장마다 ‘고수’의 향기가 느껴졌다. 상인들은 저마다 악기 상태를 살피고 직접 연주를 해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다 손님이 매장에 들어와 악기를 찾으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3층의 타악기, 관현악기 등 전문 매장을 포함해 300여 개 매장에서 약 3만 종의 악기를 취급한다. 외국인들이 놀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 아지트다. 30년 이상 이곳에서 매장을 운영 중인 상인도 33%에 이른다. 기족이 2대째 이어받은 매장도 20%가 넘는다. 전체 상인의 85% 이상이 10년 이상 매장을 운영해오고 있다. 한 매장을 지나치다 농반진반으로 “기타 가격이 비싸 보인다”고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우리 입장에서는 손님에게 값을 부풀려 팔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손님이 정확한 악기의 스토리와 기능을 알고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입해 음악의 재미를 알아갔으면 하는 목표가 있다”는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상점마다 스토리가 있고 상인마다 철학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낙원악기상가만의 경쟁력이 됐다. ‘신광악기’에서 웬 노신사가 플루트를 만지작거렸다.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지병옥 대표는 국내 최초의 플루트 수리 전문가다. 종로 악기상에서 금관악기를 수리하는 종업원으로 일하다 1974년 낙원악기상가에 터를 잡았다. 오로지 독학으로 플루트의 모든 것을 체득했다. 현재는 둘째 며느리가 가업을 잇기 위해 매장에서 기술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가 가득한 ‘한양악기’. 1976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최신해 대표는 영국에서 악기 수리와 제작 공부를 하고 음대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한 아버지에 이어 2006년부터 매장을 운영해온 2세대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초등생 딸이 앞으로 아빠의 뒤를 잇겠다고 해 자부심이 남다르다. 최 대표는 “낙원상가가 세련된 건 아니지만 세월과 시간이 보증하는 명성과 신뢰가 있는 곳이다. 이 공간이 한국 음악, 나아가 문화에서 대표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 악기 사랑 고객들에게 환원 단순히 악기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상인들은 악기에 얽힌 스토리를 팔고 고객과 연결 고리를 유지하면서 낙원악기상가가 ‘음악의 고향’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악기를 자주 접하고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려 애써왔다. 악기를 통해 음악을 평생 친구로 만들자는 ‘반려 악기’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상인들은 2016년부터 ‘낙원의 고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악기 만들기와 악기 이론 강습을 해오고 있다. 악기 수리 등 소외 계층을 위한 재능 기부와 후원도 하고 있다. 바쁘고 지친 직장인 등에게 기타와 우쿨렐레, 보컬 강습을 지원하는 ‘미생 응원 이벤트’,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려 악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나만의 우쿨렐레 만들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 중이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수강자는 180명. 상가 4층에는 고객들이 주말과 야간에 쓸 수 있는 녹음실과 합주실을 마련했다. 예약을 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최신 장비가 갖춰진 합주실에서 50대 중년들이 호흡을 맞춰보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3층 ‘퓨처미디어’ 매장에 가니 여러 악기 기능을 결합한 마스터키보드가 눈에 띄었다. 음악 전문 프로듀서들이 주로 쓰는 악기다. 이 매장 이은택 대표는 지난해부터 고객들에게 작곡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보는 체험 기회도 주고 있다. ‘에클레시아’를 운영하는 낙원악기상가 번영회 박주일 사무총장은 “낙원악기상가만의 미풍과 소비자들의 사랑 덕분에 유지된 곳”이라고 말했다. ○ 고급 쇼핑몰 안 부럽다악기와 음악으로 열린 감성이 쉽게 꺼지지 않는다. 2층에서 4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이색 벽화들이 시선을 끈다. 4층 417호 전시장에서는 상시적으로 작가들의 대안 미술전이 열리는데 지난달 13일까지는 우주가 멈춘 뒤 함께 멈춰버린 서울을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이미지 작품들이 소개됐다. 특히 온갖 웹 정보의 부산물, 쓰레기로 죄다 뒤덮인 서울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현재는 ‘독립’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4층 실버영화관 ‘낭만극장’은 50년 역사의 낙원악기상가 외관을 떠올리며 추억의 감성을 돋게 한다. 고전 영화부터 개봉작까지 테마별로 상영하는데 55세 이상은 2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다. 그 옆 야외 공연장에 서 있으면 낙원악기상가 전체 외경을 볼 수 있다. 낙원악기상가에는 한국 건축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국내 1세대’ 주상복합 건물로 지어진 낙원악기상가는 1층을 비워두는 ‘필로티 공법’으로 지어졌다. 2층부터 5층까지는 매장과 창고, 공유 오피스이고 6층부터 15층까지는 낙원아파트다. 여전히 149가구가 거주 중이다. 한강에서 채취한 고품질 모래와 자갈로 탄탄하게 시공돼 매년 건물 안전진단에서 B등급 이상을 받고 있다. 층간 소음도 거의 없다는 설명을 듣고 입이 벌어졌다. 5층 공유 오피스에 가면 실제 아파트 벽 단면 조각을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 옥상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데 ‘낙원 투어’를 신청하면 살짝 올라가 볼 수 있다. 도로 위에 지어진 건물이라 일반 건물 루프톱 카페에서 보는 시야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면으로 청와대가 훤히 보인다. 이달 11일과 25일 토요일에는 우쿨렐레 만들기와 상가 투어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특히 25일에는 일반인과 상인들이 직접 악기 판매자로 참여하는 ‘낙원플리마켓’도 함께 열린다. 지하 1층으로 가면 입이 즐거워진다. 여느 재래시장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맛집들이 소박하면서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1만 원짜리 한 장이면 잔치국수, 김밥 등으로 배불리 속을 채울 수 있다. 채널A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됐던 ‘일미식당’은 청국장과 오징어, 제육볶음이 일품. 삭막한 분위기는 그저 겉모습일 뿐이었다. 낙원악기상가는 내부 현대화 작업과 스토리텔링을 거쳐 자연스럽게 우리 곁의 ‘파라다이스’로 거듭나고 있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종로에서 놀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종로2가 사거리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대체로 청계천 방면으로 걸어서 종로 ‘젊음의 거리’로 가든지, 아니면 안국역 방향 길로 걷다가 인사동 골목으로 진입한다. 그 반대편인 종로 낙원동 아구찜 골목이나 익선동 골목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인사동과 낙원동을 가로지르는 삼일대로 위에 들어선 건물이 낙원악기상가다. 1969년에 완공돼 올해로 50년을 맞는 건물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악기 전문 상가다. 건물의 계단과 벽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는 겉모습만 보면 딱히 뭐 볼 게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겉’과 다르게 낙원악기상가는 알차게 ‘속’을 채워왔다. 꽤 괜찮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입소문도 퍼졌다. 건축, 문화 분야 전문가들은 복고와 새로운 트렌드가 공존하는 ‘뉴트로(Newtro) 1번지’로 꼽는다. 건물 1층에 새겨진 ‘낙원¤딩’이라는 글자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 겉과 속 다른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 ‘아지트’… 들어갈 땐 경계, 나올 땐 무장 해제 서울문화재단에서 발행한 ‘서울건축읽기’에서 조한 홍익대 교수(건축학)가 서술한 내용을 보면 낙원악기상가가 현재 어떤 구조이며, 어떻게 콘셉트로 변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지하에는 구수한 청국장과 시원한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는 재래시장이 있고, 지상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거리가 있고, 2, 3층에는 온갖 빛깔의 악기들이 교향악단처럼 늘어선 악기 매장이 있는가 하면, 4층에는 예술 영화와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전용관이 3개나 있고, 9층부터는 빛이 가득한 중정을 품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최신 주상복합 건물의 분양 광고가 아니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에스컬레이터도 없네’라고 의심을 하며 계단을 따라 상가 2층에 올라가니 남은 경계심마저 바로 무장해제된다. 길거리에서 2층 상가로 진입할 수 있는 계단 출입구만 8군데. 기본적으로 오는 사람들을 문전박대하는 곳은 아닌 셈이다. 2층 중앙에는 새로 카페도 생겼다. 따로 음악을 틀 필요도 없다. 매장에서 나오는 악기 소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향 소리가 섞여 묘하게 귀를 파고든다. 층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악기 매장마다 ‘고수’의 향기가 느껴졌다. 상인들은 저마다 악기 상태를 살피고 직접 연주를 해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다 손님이 매장에 들어와 악기를 찾으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3층의 타악기, 관현악기 등 전문 매장을 포함해 약 300개 매장에서 3만여 종의 악기를 취급한다. 외국인들이 놀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 아지트다. 30년 이상 이곳에서 매장을 운영 중인 상인도 33%에 이른다. 기족이 2대째 이어받은 매장도 20%가 넘는다. 전체 상인의 85% 이상이 10년 이상 매장을 운영해오고 있다. 한 매장을 지나치다 농반진반으로 “기타 가격이 비싸 보인다”고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우리 입장에서는 손님에게 값을 부풀려 팔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손님이 정확한 악기의 스토리와 기능을 알고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입해 음악의 재미를 알아갔으면 하는 목표가 있다”는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상점마다 스토리가 있고 상인마다 철학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낙원악기상가만의 경쟁력이 됐다. ‘신광악기’에서 웬 노신사가 플루트를 만지작거렸다.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지병옥 대표는 국내 최초의 플루트 수리 전문가다. 종로 악기상에서 금관악기를 수리하는 종업원으로 일하다 1974년 낙원악기상가에 터를 잡았다. 오로지 독학으로 플루트의 모든 것을 체득했다. 현재는 둘째 며느리가 가업을 잇기 위해 매장에서 기술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가 가득한 ‘한양악기’. 기자가 태어난 1976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하니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최신해 대표는 영국에서 악기 수리와 제작 공부를 하고 음대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한 이버지에 이어 2006년부터 매장을 운영해온 2세대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초등생 딸이 앞으로 아빠의 뒤를 잇겠다고 해 자부심이 남다르다. 최 대표는 “낙원상가가 세련된 건 아니지만 세월과 시간이 보증하는 명성과 신뢰가 있는 곳이다. 이 공간이 한국 음악, 나아가 문화에서 대표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 악기 사랑 고객들에게 환원… 음악 진입 장벽 낮춘 ‘플레이 낙원’으로 단순히 악기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상인들은 악기에 얽힌 스토리를 팔고 고객과 연결 고리를 유지하면서 낙원악기상가가 ‘음악의 고향’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악기를 자주 접하고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춰왔다. 악기를 통해 음악을 평생 친구로 만들자는 ‘반려 악기’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상인들은 2016년부터 ‘낙원의 고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악기 만들기와 악기 이론 강습을 해오고 있다. 악기 수리 등 소외 계층을 위한 재능 기부와 후원도 하고 있다. 바쁘고 지친 직장인 등에게 기타와 우쿨렐레, 보컬 강습을 지원하는 ‘미생 응원 이벤트’,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반려 악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나만의 우쿨렐레 만들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 중이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수강자는 180명. 상가 4층에는 고객들이 주말과 야간에 쓸 수 있는 녹음실과 합주실을 마련했다. 예약을 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최신 장비가 갖춰진 합주실에서 50대 중년들이 호흡을 맞춰보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BTS) 노래도 조금 바꿔 작곡해볼 수 있을까?”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어워드 2관왕을 차지한 BTS가 문득 떠올랐다. 3층 ‘퓨처미디어’ 매장에 가니 여러 악기 기능을 결합한 마스터키보드가 눈에 띄었다. 음악 전문 프로듀서들이 주로 쓰는 악기다. 이 매장 이은택 대표는 지난해부터 고객들에게 작곡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보는 체험 기회도 주고 있다. ● 고급 쇼핑몰 안 부럽다… 오감 살리는 낭만과 역사가 있다 악기와 음악으로 열린 감성이 쉽게 꺼지지 않는다. 2층에서 4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이색 벽화들이 시선을 끈다. 4층 417호 전시장에서는 상시적으로 작가들의 대안 미술전이 열리는데 지난달 13일까지는 우주가 멈춘 뒤 함께 멈춰버린 서울을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이미지 작품들이 소개됐다. 특히 온갖 웹 정보의 부산물, 쓰레기로 죄다 뒤덮인 서울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현재는 ‘독립’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4층 실버영화관 ‘낭만극장’은 50년 역사 낙원악기상가 외관을 떠올리며 추억의 감성을 돋게 한다. 고전 영화부터 개봉작까지 테마별로 상영하는데 55세 이상은 2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다. 그 옆 야외 공연장에 서 있으면 낙원악기상가 전체 외경을 볼 수 있다. 낙원악기상가에는 한국 건축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1세대’ 주상복합 건물로 지어진 낙원악기상가는 1층을 비워두는 ‘필로티 공법’으로 지어졌다. 2층부터 5층까지는 매장과 창고, 공유 오피스이고 6층부터 15층까지는 낙원아파트다. 여전히 149가구가 거주 중이다. 원래 150채인데 한 가구가 두 채를 터서 쓴다고 한다. 한강에서 채취한 고품질 모래와 자갈로 탄탄하게 시공돼 매년 건물 안전진단에서 B등급 이상을 받고 있다. 층간 소음도 거의 없다는 설명을 듣고 입이 벌어졌다. 5층 공유 오피스에 가면 실제 아파트 벽 단면 조각을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 옥상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데 ‘낙원 투어’를 신청하면 살짝 올라가볼 수 있다. 도로 위에 지어진 건물이라 일반 건물 루프톱 카페에서 보는 시야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면으로 청와대가 훤히 보인다. 이달 11일과 25일 토요일에는 우쿨렐레 만들기와 상가 투어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특히 25일에는 일반인과 상인들이 직접 악기 판매자로 참여하는 ‘낙원플리마켓’도 함께 열린다. 지하 1층으로 가면 입이 즐거워진다. 여느 재래시장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맛집들이 소박하면서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1만 원짜리 한 장이면 잔치국수, 김밥 등으로 배불리 속을 채울 수 있다. 채널A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됐던 ‘일미식당’은 청국장과 오징어, 제육볶음이 일품. 점심시간에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 삭막한 분위기는 그저 겉모습일 뿐이었다. 낙원악기상가는 내부 현대화 작업과 스토리텔링을 거쳐 자연스럽게 우리 곁의 ‘파라다이스’로 거듭나고 있었다.▼“낙원상가가 한국 음악 역사에 기여한 가치 계속 이어갔으면…”▼ 낙원악기상가 번영회 박주일 사무총장은 장인의 뒤를 이어 27년간 낙원악기상가에서 기타, 우쿨렐레 등을 취급하는 ‘에클레시아’를 운영하고 있다. 낙원악기상가 상인들을 대표하는 번영회 일을 하며 상가 문화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한때는 늘 철거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돌아보면 어떤가. “서울 내에서 새롭게 상업 지구가 생겨날 때마다 이곳이 없어진다고 지라시(정보지)가 돌더라. 실제 그쪽으로 터전을 옮긴 사람들도 있다. 늘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해 왔지만 낙원악기상가만의 미풍과 소비자들의 사랑 때문에 유지가 됐다. 지금 상가가 다양한 콘텐츠를 내세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뀐 건 고객들에게 받은 것들을 환원하자는 취지에서다. ―상가에 활기가 돈다. ”50년 역사의 악기상가가 가지고 있는 힘은 대단하다. 매장마다 장인(匠人)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수십 년 동안 고객과 얼굴을 마주하며 만든 관계도 끈끈하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의 고지식함과 진득함에도 미덕이 있다고 본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했으면 하나. ”손님들이 추억을 되새기고, 악기와 음악을 넘어 지식도 쌓고, 상인들이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 정서가 유지되면 좋겠다. 한국 음악 역사에 기여한 가치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록이나 재즈, 블루스관, 그리고 음악 관련 서적, 음반을 취급하는 곳이 생겼으면 한다. 잘되는 집은 친절하지 않다는 통설이 낙원악기상가에서만큼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고객과 상생하는 공간을 만들었으면 한다. 고객들이 상가 내에서 ‘버스킹’을 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