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장택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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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장택동 논설위원입니다.

will71@donga.com

취재분야

2025-11-14~2025-12-14
칼럼100%
  • [오늘과 내일/장택동]‘법 위의 시행령’,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 설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폭탄 등 민감한 현안들을 행정명령(executive order)으로 밀어붙였다. 행정명령은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령(시행령)과 비슷한데, 트럼프는 재임 기간 중 1년에 55건꼴로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한 해 평균 35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37건의 행정명령을 내린 것에 비해 훨씬 많다. 이는 트럼프의 조급한 성격 때문에 벌어진 일만은 아니다. 하원을 야당 민주당이 장악한 상황에서 본인이 원하는 입법이 여의치 않자 행정명령을 남발한 것이다. 일부 이슬람 국가 출신 시민들의 입국을 제한하는 반(反)이민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민주당이 이민법 개정에 반대하자 트럼프는 수차례 행정명령을 통해 강행했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입국 제한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특히 국회가 여소야대일 때 행정부와 입법부가 충돌할 지점이 많아진다. 국회가 입법권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정부를 견제하려 하면 정부는 시행령 제정으로 맞선다. 법의 체계상으로는 시행령이 법률의 하위 개념이지만 실질적 효력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데다 제정 절차가 간단해 더 신속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도 윤석열 정부 들어 시행령을 둘러싼 정부와 국회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 법무부 산하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한 것을 놓고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법에서 위임한 범위를 벗어났다”며 강력 비판하고 있다. 경찰을 행정안전부가 통제하는 방안도 시행령을 통해 추진한다면 야당의 반발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국회가 행정부에 시행령의 수정·변경을 요청하면 행정부는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법안을 내놨다. 시행령까지 국회가 좌지우지하겠다는 취지인데,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행령에 대한 심사권은 대법원에 있다’는 헌법 조항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가 세부적인 내용들까지 모두 법률에 넣음으로써 아예 시행령을 만들 여지를 주지 않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행정적인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까지 일일이 법률에 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법원 판결로 시행령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지만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만 심사하도록 돼 있다. 국회와 법원을 통한 견제에 한계가 있는 이상 정부 스스로 위법 소지가 있는 시행령을 걸러내야 한다. 헌법과 법률에서는 그 핵심 역할을 국무회의에 맡기고 있지만 지금까지 국무회의는 사실상 통과의례에 그쳤다. 장관들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에 반하는 의견을 내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면 굳이 매주 모여 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 국무회의에서 원칙대로 ‘심의’를 해서 시행령안이 부결되는 사례가 종종 나와야 한다. 정부가 비판에 귀를 닫은 채 무리하게 시행령을 제정하면 두고두고 논란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소모적인 정쟁이 이어지고, 시행령의 적용 대상이 된 사람들은 효력을 놓고 소송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눈을 감는 것은 근시안적인 판단이다. ‘법 위의 시행령’이 낳은 부작용은 훗날 여론 악화, 국정 동력 약화라는 부메랑으로 정부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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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타는 지구” [횡설수설/장택동]

    3월 초 러시아의 보스토크 남극 기지에서 잰 기온이 평년보다 15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을 때만 해도 과학자들은 “측정이 잘못됐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북극의 기온도 평년에 비해 3도가량 올라갔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더니 5월에는 인도 델리의 최고기온이 49도, 파키스탄 자코바바드는 51도를 찍었다. 이제 불볕더위는 서유럽과 북미 등으로 번졌다. “불타는 지구”(영국 가디언)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지구촌이 펄펄 끓고 있다. ▷록 음악 축제 ‘헬페스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서부 낭트의 광장에선 18일 곳곳에서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줄이 아니라 몇 개밖에 없는 그늘 지대를 차지하려는 인파였다. 이날 낭트의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었고, 프랑스 남서부에선 최고 43.4도까지 올라갔다. 1947년 이후 가장 일찍 찾아온 폭염이었다. 40도가 넘는 더위가 덮친 스페인에서는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고, 독일과 스위스 등지에서도 연일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 기상당국은 지난주 미국 인구의 3분의 1이 거주하는 광범위한 지역이 폭염 영향권에 있다고 밝혔다. 고기압이 한 지역에 정체돼 뜨거운 공기가 갇히면서 기온이 급상승하는 열돔(heat dome) 현상 때문이다. 열돔 주변의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폭우, 토네이도 등 기상이변이 겹치고 있어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번 주에는 더위가 더 심해진다. 북부 평원 지역에 머물던 열돔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중부와 동부 일부 지역의 기온이 40도 가까이 오르는 가마솥더위가 예고됐다. ▷폭염은 동물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뉴질랜드에서는 영양실조로 숨진 펭귄 수백 마리의 사체가 떠밀려 왔다. 주변 해역의 수온이 올라감에 따라 펭귄의 먹이인 크릴, 멸치 등이 자취를 감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스페인 남부에서는 칼새가 둥지를 튼 고층 건물 틈이나 지붕이 너무 뜨거워져 어린 칼새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미국 캔자스주에서는 2000여 마리의 소가 고온으로 폐사했다. ▷더 큰 문제는 폭염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영국 임피리얼칼리지런던의 기후전문가 프리데리케 오토가 “기후 변화는 폭염의 게임체인저”라고 지적한 것처럼 기온 상승을 막으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2019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대비 54%나 늘었다. “지금의 더위는 미래를 미리 맛보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세계기상기구(WMO)의 암울한 경고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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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호주 첫 비영국계 총리

    호주인들은 2019년 말∼2020년 초를 ‘검은 여름’이라고 부른다. 호주 전역을 휩쓴 대형 산불로 짙은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 면적의 400배에 해당하는 산림이 불탔고, 호주인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산불이 급속도로 번지던 시점에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비밀리에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버렸다.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는 두고두고 기후변화와 민생에 무관심한 총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21일 실시된 호주 총선을 앞두고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 성향의 자유국민연합은 중국과 안보에 캠페인의 초점을 맞췄다. 모리슨 총리는 야당 노동당의 앤서니 앨버니즈 대표를 ‘중국의 꼭두각시’라고 비판하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한 보수단체는 트럭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걸고 다니며 ‘중국은 노동당을 원한다’고 선전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군사·경제적으로 강경한 반중 노선을 걸었던 모리슨 정부의 정책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호주 ABC방송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가장 큰 관심사로 기후변화(29%)를 꼽았고 이어 생계비 문제(13%) 등 순이었다. 국방·안보라고 답한 국민은 4%에 불과했다. 기후변화 문제는 호주인들에게 미래가 아닌 현실이었고, 치솟는 물가와 경제적 어려움이 주 관심사였다는 얘기다. 결국 온실가스 43% 감축 등을 내세운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앨버니즈 대표가 새 총리로 내정됐다. 2013년 이후 8년여 만에 이뤄진 정권 교체다. ▷호주 언론들은 이번 총선 결과를 ‘다문화사회의 승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1788년 영국인들이 호주에 정착한 이후 줄곧 영국계가 호주 사회의 주류였고, 역대 30명의 총리 역시 모두 영국계였다. 하지만 호주는 이제 인구의 49%가 해외에서 태어났거나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해외 출신인 다문화사회가 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이탈리아계인 앨버니즈 대표가 121년 만에 첫 비영국계 총리에 오르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모리슨 총리가 사회 통합을 외면하고 우경화 정책을 고집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스스로 “나는 불도저 같은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모리슨 총리의 권위적 통치 스타일도 유권자들의 반감을 샀다. 반면 앨버니즈 대표는 “혁명이 아닌 개선”을 외치며 안정적 변화를 원하는 표심에 호응했다. 빈민촌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역경을 극복하며 정치인으로 성장한 그의 인간 스토리도 승리에 한몫했다. 민심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는 사실을 호주 총선이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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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키오스크 공포

    “안녕하세요”라며 주문을 받는 직원 대신 ‘Self Order’라고 쓰인 키오스크가 서 있는 식당들. 노인들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위축된다. 글씨도 작은 화면을 더듬더듬 누르다 보면 실수하기 일쑤다. 뒤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소셜미디어에는 “엄마가 키오스크 사용할 줄 몰라서 한 시간 만에 주문했다는 얘기를 듣고 울었다” “아빠가 햄버거 좋아하시는데 키오스크로 바뀐 뒤 한 번도 못 드셨다”는 글이 올라온다. ▷식당이나 마트, 영화관, 병원, 관공서까지 키오스크가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키오스크는 원래 음료나 신문을 파는 간이매점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정보통신에서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단말기를 뜻하는 ‘일렉트로닉(Electronic) 키오스크’나 ‘디지털(Digital) 키오스크’를 줄여서 키오스크로 부른다. 특히 요식업계에 도입된 키오스크 숫자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비해 지난해에 4배가량 늘었다. 업주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디지털재단의 설문조사 결과 서울에 거주하는 55세 이상 시민 가운데 키오스크를 이용해 봤다는 응답자는 절반이 되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라는 답이 약 3분의 1로 가장 많았고,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18%)라는 응답도 상당했다. 노인이 직원이나 다른 손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것도 모르느냐’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대해서 포기했다는 얘기도 종종 들린다. 이러니 키오스크에 대한 노인들의 공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령층에게는 프로그램이나 앱을 설치하는 것부터 인터넷을 연결하고 쇼핑을 하는 것까지, 디지털 문화 전반이 낯설고 어렵다. 고령층의 디지털 사용 능력은 전체 평균의 3분의 2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연령에 따른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이다. 젊은이들이 인터넷으로 손쉽게 출력하는 주민등록등·초본을 떼기 위해 고령층은 주민센터를 방문해야 하고, 아파트 청약도 대부분 인터넷으로 이뤄져 난감하다. 고령층이 많은 지역에서 한 은행이 유인 지점을 폐쇄한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여는 일까지 벌어졌다. ▷요즘 중시되는 웰에이징(well-aging)의 주요 요소로 건강, 직업 등과 함께 디지털 능력이 꼽힌다. 디지털과 현실이 융합돼 가는 세상에서 노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교육과 함께 세대 간의 공존을 위한 젊은층의 노력이 필요하다. 키오스크 앞에서 진땀을 흘리는 노인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작은 호의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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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참모의 회고록[횡설수설/장택동]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장관은 “예스퍼(Yes와 Esper의 합성어)”라고 불릴 정도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충직했다. 하지만 인종차별 항의 시위 당시 연방군을 투입하려 했던 트럼프에 맞서면서 미운털이 박혔고, 결국 옷을 벗었다. 그는 최근 출간한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에서 트럼프에 대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 ‘분노의 포로’라고 혹평했다. 퇴임 이후 회고록을 통해 트럼프의 등에 비수를 꽂은 전직 참모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에스퍼의 회고록에 따르면 한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진행되던 2020년 트럼프는 참모들에게 여러 차례 주한미군 철수 필요성을 언급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2018년에는 주한미군 가족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가 막판에 번복했다. 트럼프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미사일로 공격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했다. 에스퍼는 “군사력 사용에 대한 트럼프의 생각은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했다”고 썼다. 다른 국가의 안보를 뒤흔들 사안을 이처럼 가볍게 여기는 미국 대통령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새삼 오싹해진다. ▷트럼프에게 가장 골치 아픈 회고록을 쓴 사람은 한때 ‘트럼프의 책사’로 불렸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2019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내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고 썼다. 트럼프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얘기다. 또 트럼프는 영국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무식했다는 사실 등도 전했다. 훗날 트럼프는 “코로나가 볼턴을 데려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분노했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스테퍼니 그리셤 전 백악관 대변인, 클리프 심스 전 백악관 보좌관,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 전 백악관 대외협력국장,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이 줄줄이 회고록을 냈다. 트럼프의 경박한 성품, 사람을 경시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그리셤은 트럼프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그리셤과의 잠자리는 어떤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전용 태닝 침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한 적도 있다고 뉴먼은 전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4년 동안 장관을 14명 바꿨고, 백악관 핵심 참모의 92%를 교체했다. 첫 임기에 장관을 3명만 바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과 비교된다. 충성심이 의심되는 참모는 가차 없이 경질하는 트럼프의 인사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다. 코미 전 국장은 회고록에 “트럼프에게 충성을 거부하자 해임됐다”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지도자를 끝까지 따를 참모는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트럼프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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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수완박’에 존재 이유 사라져가는 공수처[오늘과 내일/장택동]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이 마무리되고 있다. 국회에서 오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표결해 통과시키고, 이후 국무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과 함께 의결하면 입법 과정은 일단락된다. 그동안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검찰이 갖고 있던 6대 범죄 수사권 중에서도 특히 공직자·선거 범죄 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을 놓고 격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의힘은 “권력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수사 자체를 막아버리겠다는 의도”라며 비난했고, 검찰에서는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범죄 수사는 그동안 검찰이 중추적 역할을 해왔고 이를 대체할 기관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검수완박에 따른 수사력 약화를 걱정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런데 공직자 범죄는 사정이 다르다. 이미 고위 공직자들의 범죄를 전담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차관,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을 비롯한 3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이 저지른 직권남용, 직무유기, 정치자금 부정수수 등 범죄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다. 대부분의 ‘권력형 비리’에 대해 공수처가 수사할 권한이 있는 것이다. 5급 이하 공무원은 경찰이 수사하도록 돼 있어서 원칙적으로는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공직자 범죄는 4급 공무원으로 제한돼 있었다. 공수처가 탄생한 지난해 1월부터 공직자 범죄 수사의 주무 기관은 검찰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검찰이 공직자 범죄를 수사하지 못하게 되면 큰 공백이 생긴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동안 공수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초 공수처 설립의 명분은 성역 없는 권력 수사, 검찰권의 분산과 견제였다. 하지만 출범 이후 1년 4개월 동안 공수처가 보여준 모습은 ‘살아있는 권력’ 수사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 기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채 의혹 사건 송치밖에 없다. 공수처가 전력을 쏟아붓다시피 했던 ‘고발 사주’ 사건도 아직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검사가 연루된 사건들을 공수처가 수사함으로써 검찰 견제라는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검수완박 없이 윤석열 정부에서 오히려 검찰권이 강화됐다면 공수처의 이런 역할에 더 무게가 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검수완박이 현실화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단계적으로 축소돼 내년부터는 부패·경제 범죄에 대한 수사만 가능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설립되면 이마저 폐지된다. 수사권이 없는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연 2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가면서 공수처를 존치해야 하나. 더욱이 공직자의 직급과 범죄의 종류에 따라 검찰, 공수처, 경찰로 나눠서 수사를 하는 체계는 복잡하게 얽힌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데 효율적이지 않다. 어떤 사건을 어디서 수사할지를 놓고 혼선이 빚어지면서 중복 수사 또는 수사 공백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검찰의 힘이 너무 세다는 이유에서 분리해 놨던 것인데, 검찰 수사권이 폐지된 뒤에도 이런 시스템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찾기 어렵다. 공수처의 존재 이유는 검수완박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중수청 설립을 논의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하면 공수처를 중수청에 통합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돼야 할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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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前警예우’

    “경찰 단계에서 끝내야 합니다.” 한 중소규모 로펌이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내건 문구다. 로펌들이 성공 사례를 홍보하는 글에서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상대방의 증거를 적극 반박했다” “경찰 단계에서 수사기관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며 논증을 펼쳐 나갔다” 같은 내용이 종종 눈에 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부쩍 커진 경찰의 권한에 맞춰 변호사업계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 이렇다 보니 경찰 출신을 찾는 로펌들이 많아졌고, 전직 경찰관들의 몸값도 올라가고 있다. ▷올해 들어 3월까지 로펌에 채용된 전직 경찰은 총 16명이다. 김앤장, 태평양, 세종 같은 대형 로펌들도 전직 경찰 영입에 동참했다. 로펌에 취업한 전직 경찰이 2020년 5명에서 지난해에는 48명으로 확 늘었는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 중견 변호사는 “로펌에 사건을 문의할 때 ‘경찰과 연락이 닿을 만한 변호사가 있느냐’고 묻는 의뢰인들이 제법 있다”고 전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경찰 출신들의 전관예우를 활용하는 ‘전경(前警)예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1월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이전까지는 경찰이 수사를 하더라도 어떻게 처분할지는 검찰이 결정했다. 그래서 경찰 단계에서는 변호사를 쓰지 않고 검찰로 넘어갔을 때 선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경찰은 ‘수사종결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경찰이 수사한 뒤 불송치(혐의 없음) 결정을 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사건은 그대로 끝난다. 경찰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찰 출신들이 활약할 공간이 대폭 넓어진 셈이다. ▷로펌에 취업하는 전직 경찰들의 직급은 다양하지만 보통 총경, 경정급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일선 경찰서의 서장, 과장에 해당하는데, 법률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실무 경험과 인맥도 풍부하다. 또 일부 로펌에선 변호사 자격이 없는 고위직 출신 경찰을 고문으로, 초급 간부 출신을 전문위원이나 위원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들이 직접 변호를 맡을 수는 없지만 경력을 활용해 간접적으로라도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를 바랄 것이다. ▷앞으로 ‘검수완박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일반 사건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제한되는 등 경찰의 권한은 더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전관예우의 주무대가 검찰에서 경찰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경찰 출신 변호사와 현직 경찰관의 사적 접촉 시 사전 신고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전경예우가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기 전에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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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미성년자 논문 공저

    학계에는 “교수 집 강아지나 고양이도 논문 저자로 등재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누구를 저자로 올릴지는 전적으로 지도교수에게 달렸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논문에 적힌 저자가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고등학생이 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들을 놓고는 ‘이 학생이 정말 연구에 기여한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많았다. 실제 교육부가 조사해 보니 저자 자격이 없는 미성년자들이 논문에 등재된 경우가 다수 적발됐다. ▷교육부가 2007∼2018년 발표된 논문 가운데 대학 교원과 고등학생 이하의 미성년자가 공저자로 등재된 사례를 조사한 결과 미성년자 82명이 부당하게 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입학이 취소된 학생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등 5명뿐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논문 실적을 대입에 활용하지 않았거나 입시 자료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학적을 유지했다. 이들의 이름을 논문에 올려준 교원 69명 중에서도 징계를 받은 사람은 10명에 불과했다. 대부분 징계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학문적 동기로 논문 작성에 참여한 고교생들도 있지만 ‘스펙’을 위해 이름을 올린 학생도 많았던 게 현실이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물에 따르면 영어로 논문을 쓴 한국 고교생들을 조사해 보니 이들 중 3분의 2가 논문을 딱 1편만 쓴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를 위해 단발성으로 쓴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학생생활기록부에 논문 기재를 금지한 2014년 이후 고교생 논문 건수가 급감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심지어 학원 강사에게 돈을 주고 대필한 논문을 입시에 이용한 학생들이 재판에 넘겨진 사례도 있다. ▷더욱이 교수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논문 저자의 이름을 바꿔치거나 가로채는 사례까지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약대 교수는 연구실 대학원생들을 동원해 동물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도록 하고서는 이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자신의 딸을 단독저자로 올렸다가 구속됐다. 제자가 쓴 논문을 교수가 표절하거나 아예 본인이 쓴 것처럼 저자를 바꿔서 발표했다가 물의를 빚은 경우도 있다.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ICMJE)는 학술적 개념과 계획 또는 자료의 수집·분석·해석에 상당한 공헌을 할 것 등 저자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굳이 이런 기준을 따지지 않더라도 누가 저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는 지도하고 심사하는 교수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사실대로 적어주기만 하면 연구자들은 피땀 흘려 연구한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 다른 욕심 때문에 그것조차 지키지 않는 교수들은 강력하게 처벌해 뿌리를 뽑아야 한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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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곤충겟돈

    세계적인 쇠고기 수출국 호주에서 소는 외화를 벌어주는 소중한 동물이지만 한때는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엄청난 양의 소 배설물이 고스란히 땅에 쌓여 굳으면서 매년 서울 면적의 3배가 넘는 초지가 쓸모없는 땅으로 변해갔다. 소는 18세기 말 남아프리카에서 호주로 들어온 외래종이어서 호주에는 소의 배설물을 분해할 수 있는 곤충이 없었기 때문. 과학자들이 연구 끝에 쇠똥구리를 대량으로 풀어놓으면서 이 문제가 해결됐다. ▷사람들은 흔히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곤충학자들은 ‘지구는 곤충의 행성’이라고 부른다. 곤충은 지구에 존재한 지가 4억 년이 넘었고 알려진 종류만 100만 종가량에 이른다. 곤충을 ‘벌레’라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인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식물의 80% 이상이 곤충의 수분(受粉) 활동 덕분에 열매를 맺는다. 쓰레기를 분해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도 곤충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곤충의 숫자가 최근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고강도 농업으로 서식지가 줄고,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난 지역에서는 최근 20년 새 곤충 개체 수가 49% 감소했다. 곤충 종류 가운데 40%가량은 개체 수가 줄고 있고, 이 중 3분의 1은 멸종위기라는 연구도 있다. 곤충의 감소가 지구에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뜻에서 곤충과 아마겟돈을 합성한 곤충겟돈(Insectageddon)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한국에선 ‘꿀벌 실종 사건’이 벌어지면서 곤충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죽거나 사라졌다. 초겨울 고온현상으로 꿀벌들이 겨울잠에서 일찍 깨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추워지면서 벌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폐사한 것, 과다한 살충제 사용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꿀벌은 곤충 중에서도 수분에 기여하는 바가 압도적으로 크다. 전국의 양봉농가와 과수농가에 비상이 걸렸고, 식량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곤충 연구자들은 ‘걱정된다’는 표현 대신 ‘공포스럽다’고 말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해충인 모기도 새와 민물고기에게는 소중한 먹이가 되듯이 생태계에선 모든 곤충이 꼭 필요한 존재다. 노르웨이 곤충학자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은 책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에서 “곤충은 이 세계가 돌아가게 해주는 자연의 작은 톱니바퀴”라고 했다. 그 톱니바퀴가 빠지면 생태계가 흔들리고, 인간의 삶도 위협받게 된다. 곤충 감소가 인류에 보내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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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담]“어리다고 면벌부 줘선 안돼” vs “처벌 연령 낮추기는 쇼”

    《2019년 말 초등학교 5학년 A 양이 동급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A 양은 법원에서 시설 위탁 처분을 받았다. 교도소 대신 복지시설이나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다. A 양이 형사 처벌을 면한 것은 촉법(觸法)소년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보호 처분을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만 12, 13세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1일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교수,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를 만나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방안에 대해 여론은 찬반양론으로 나뉘고 있다. 이웅혁 교수=촉법소년에 해당하는 나이의 아이들은 자신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악용한다. 실제로 현장에 가 보면 13세 소년들이 형사에게 ‘나 촉법이니까 빨리빨리 끝내자’고 한다. 또 14세라는 기준은 1953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때의 14세와 지금의 14세는 다르다. 범죄를 저질러도 교도소에 가지 않으면 정의의 관념에 반한다는 문제도 있다. 피해자는 몸도 마음도 다쳤는데 가해자는 일종의 ‘소년법 찬스’를 써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다니는 게 공정한가. 곽대경 교수=촉법소년 연령을 낮춘다고 해서 이 아이들의 재범을 예방하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나. 우선순위가 틀렸다. 형사 처벌 연령부터 낮추는 것은 정치권이나 공직자들이 뭔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인기 영합적인 쇼맨십이다. 이 문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와 자료를 바탕으로 논의돼야 하는데 지금은 여론몰이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결정될까 우려스럽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것이 소년범들의 교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이 교수=촉법소년 나이를 낮춘다고 해서 무조건 교도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형사 처분 가능성을 열어두고 법관이 판단해야 하는데, 지금은 아예 형사 처분을 할 기회 자체가 봉쇄돼 있지 않나.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일정한 악행을 하면 분명한 불이익이 있다’는 신호를 주자는 것이고, 결국은 그게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냥 넘어가다 보면 만성적 범죄자의 길로 가게 된다. 곽 교수=어린 나이에 교도소에 갔다 오면 아이들이 오히려 엇나가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 굉장히 부정적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촉법소년 연령을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면 그만큼 형사 처분을 받는 숫자가 늘어나고, 어려서부터 전과를 쌓아 나가는 아이들도 늘 것이다. 소년범들이 상습적인 성인 범죄자로 전이되는 걸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조건 강하게 처벌하는 게 능사인가. ―촉법소년들의 강력 범죄가 사회 이슈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이 낮아지고 흉악 범죄가 늘어나는 것인가. 이 교수=경찰 자료로는 촉법소년에 의한 강력 범죄가 5년 새 35% 정도 늘었다. 아이들 인구는 줄고 있는데 촉법소년의 강력 범죄가 늘어난다는 것은 범죄가 저연령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곽 교수=촉법소년 범죄 중에 살인, 성폭행, 강도 등 중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라는 통계가 있다.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중범죄를 일반화해서 처벌을 확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아이들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관건일 텐데 어떻게 봐야 하나. 이 교수=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괴롭힐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해 나갈 수 있는지 하는 범죄지능은 예전보다 상당히 높아졌다. 이른바 행위 조정 능력, 사고 통제 능력은 70년 전에 비해서 상당히 발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민등록상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면벌부(免罰符)를 주는 게 바람직한가. 곽 교수=소년들은 여전히 판단 능력이 미성숙하다. 자신의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100% 그 아이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적절한가. 또 아이들은 성인들보다는 변화의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교육과 선도에 자원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해외 국가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형사 처벌이 가능한 연령이 낮나. 이 교수=일본에선 1997년 고베에서 14세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엔 형사미성년자 나이가 16세였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14세로 낮아졌다. 영국은 10세부터 형사 처벌이 가능한데 지난해 소년 살인범의 형량을 징역 12년에서 27년으로 높였다. 미국 일부 주에선 7세부터 처벌이 가능하다. 곽 교수=우리나라가 받아들인 법 체계는 독일, 프랑스 같은 대륙법 체계다. 독일에서는 형사미성년자가 14세로 돼 있는데 이를 낮출지 말지를 놓고 30년 이상 학계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아직 독일에서 이 나이를 유지하고 있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소년원으로 보내고 있는데 실태가 어떤가. 이 교수=소년원에 들어가면 대장 역할을 하는 아이가 군기 잡기 식으로 관리하고 나머지는 그 문화에 복속되는 게 문제다. 안 좋은 의미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소년원에서 나온 뒤에 함께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교육도 아니고 처벌도 아닌 중간 형태인데, 오히려 범죄소년(만 14세 이상∼19세 미만의 범죄자)으로 가게 되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곽 교수=소년원에서 학과 교육과 직업 교육을 하고 있다. 직업 교육은 노동시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그런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다. 컴퓨터 교육도 옛날 프로그램으로 하고 있더라. 이런 부분부터 인력과 예산을 먼저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찾고 보람도 가질 수 있다. ―소년범죄의 가해자들에 대해선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 교수=예를 들어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 대해선 보호를 해주는 조치가 있다. 그런데 소년법상에는 피해 회복, 피해자 보호에 대한 내용이 없다. 법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소년범죄 피해자를 구조하고 지원하도록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곽 교수=가해자가 진정 어린 반성을 하고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피해자도 용서의 감정이 드는 것이다. 이를 회복적 사법이라고 한다. 가해자에게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사회에 돌아올 수 있게 해야 가능한 일이다. ―연령 문제 외에도 촉법소년과 관련해서 논의해야 할 점이 많을 텐데 어떤 것이 시급하다고 보나. 이 교수=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 법관들은 보직이 자주 바뀌는데 소년사건 담당 판사는 이 아이가 정말 개선과 교화의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더 강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심층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전문화돼야 한다. 보호관찰관 수도 부족하다. 보호관찰관 1명이 담당하는 소년이 선진국은 25명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130명이다. 곽 교수=보호시설에 가서 심층면접과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주로 종교시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담당하는 형태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는 주말에는 식사 챙겨주는 것만 해도 버거운 일이다. 운영비가 한 달에 2000만 원 이상 들어가는데 법원에서는 1년에 300만 원 지원해준다고 하더라.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는데 국가가 책임을 유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맞춤형으로 교육, 상담,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경찰대를 졸업한 뒤 8년간 경찰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형사정의 분야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 털리도대 교수, 경찰대 교수를 지냈다. 법무부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실종아동전문기관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고려대 사회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미 하와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범죄학회 회장, 한국범죄심리학회 부회장, 동국대 홍보처장, 경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청소년비행론’ ‘현대사회와 범죄’ 등이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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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올브라이트 별세

    “김정은은 진성(true) 파시스트의 전형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18년 발간한 책 ‘파시즘’에서 내놓은 평가다. 북한을 “세속적인 IS(이슬람국가)”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신격화된 김씨 일가가 독재정권을 세습하며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지는 것을 비판하는 취지다. 그런데 그는 2000년 미 장관으로선 처음 북한을 방문했고, 김정일을 “지적인 인물”이라고 호평했었다. 그 사이에 북한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진 것일까. ▷북-미 간에 화해무드가 무르익던 시기에 찾아온 올브라이트에게 김정일은 적극적이었다. 함께 집단체조를 관람하던 중 미사일 발사 장면이 등장하자 김정일은 “첫 번째 쏘는 것이자 마지막으로 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민감하게 여기는 올브라이트를 배려한 발언이었다. 그도 김일성의 묘를 참배하며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서전에서 “외교상으로 필수적인 듯했으므로 묘를 찾았지만 어떤 경의도 바칠 수 없었다”고 썼다. 내심까지 북한을 존중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23일 타계한 올브라이트는 뼛속까지 외교관이었다. 1978년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미국 외교의 핵심인 유엔대사와 국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의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해외 인권침해 문제에 적극 개입하면서도 국익 중심의 외교에 무게를 뒀다. 올브라이트는 브로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는 ‘브로치 외교’로도 유명하다. 김정일을 만날 때에는 성조기,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할 때는 햇살 모양 브로치를 달았다. ▷체코에서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조부모를 비롯한 친인척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다 돌아오니 이번엔 체코에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외교관이던 아버지가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자 가족 모두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후 스스로의 힘으로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 최초로 미 행정부의 3인자인 국무장관까지 올랐다. ▷“나는 ‘은퇴’라는 단어를 혐오한다”고 그는 말하곤 했다. 64세에 장관에서 물러난 뒤 학계와 싱크탱크에서 활동했고, 숨지기 전까지 국제문제 컨설팅업체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의 회장을 지냈다. 2020년에는 책 ‘지옥과 다른 목적지들’을 펴냈다. 방북 당시 그를 수행했던 웬디 셔먼은 국무부 부장관이 됐고, 조지타운대에서 그에게 배운 네드 프라이스는 국무부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거장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과 인맥은 미 외교가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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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택동]사법부의 리스크가 돼가는 대법원

    법조계에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사건 당사자가 제일 많이 알고, 그다음은 변호사이며, 가장 사건을 잘 모르는 판사가 결론을 내린다”는 말이 있다. 판사가 사건의 전모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법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호할 때도 많다. 판사들로서는 판례와 이론, 양심을 나침반 삼아 사건의 퍼즐을 맞춰 가면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재판 제도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법시스템이 유지되려면 시민이 판결에 승복을 해야 한다. 최소한 법원이 일부러 한쪽 편을 들거나 외부의 압력으로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선 모든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판결을 최종 확정하고 사법행정을 이끄는 대법원이 그 핵심에 서 있다. 그런데 근래 대법원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전·현직 대법원장이나 대법관들이 재판에 회부되거나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일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정치적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확립하면서 법원의 안정을 이끌어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사법부의 리스크가 돼 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검찰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영대 전 대법관을 기소했다. 상고법원 도입 등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법원의 이익을 위해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재판에 관여하려 한 것이 판결을 통해 확인된다면 법원사(史)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2월 임성근 판사 탄핵과 관련한 정치권 눈치 보기와 거짓말로 또 한 번 파문을 일으켰다. 김 대법원장은 당초 “(임 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여당에서)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돼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9월부터 불거진 대장동 개발 사건에도 전·현직 대법관이 등장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직후 화천대유에서 월 1500만 원을 받으면서 고문을 맡았고, 재임 시절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을 놓고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선 메가톤급 파장이 벌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최근에는 정치권에서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나오는 ‘그분’이 조재연 대법관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조 대법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부인하는 일이 있었다. 조직이 위기 상황을 맞으면 스스로 문제점과 해법을 찾아보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법농단 때에는 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열리고 대법원이 진상조사를 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 그런데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선 법원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지 않는다. 위기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법관의 표상으로 존경받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법관은 세상 사람으로부터 의심을 받아선 안 된다”고 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관은 사법권 독립을 위하여 책임이 큰 것이며, 그러므로 질 수 없는 책임이라도 져야 된다”는 말도 남겼다. 60여 년 전 발언이지만 지금도 울림이 있다. 모든 법관이, 특히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성찰의 출발점으로 삼기를 바란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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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러시아의 체르노빌 점령

    “나는 시대를 체르노빌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고 싶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했던 말이다. 그는 이 사고를 돌이켜보면서 “5년 뒤 소련이 붕괴하는 주된 원인이 됐다”고도 했다. 그만큼 당시 소련에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고, 전 세계에 핵의 무서움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36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마자 체르노빌을 점령하는 일이 벌어졌다. ▷1986년 4월 26일 오전. 당시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북부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관료제에 빠진 소련 당국은 사건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고 대응은 느슨했다. 결국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400배나 많은 방사능이 누출되면서 유럽까지 퍼져 나갔다. 이 사고의 여파로 최대 15만 명이 희생됐다는 분석도 있다. 사고 이후 원전 주변 30km는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됐고,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한 방호벽도 세웠지만 여전히 시설 안에 방사성물질이 남아 있는 상태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첫날인 24일 체르노빌을 점령한 이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로이터통신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에 파병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러시아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러시아군이 원전 관리 직원을 억류하자 미국 백악관에서 “인질을 석방하라”고 비난하는 등 러시아와 서방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소련의 잘못으로 벌어진 체르노빌 사건으로 인해 악몽을 겪었던 유럽국들을 향해 방사능 누출 가능성을 운운하며 협박한 것이라면 비열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방사능을 누출시키는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체르노빌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원전이 중요하다기보다는 러시아군이 벨라루스를 통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로 진격하기 위해 중간 지점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 체르노빌을 접수했다고 본다. 어떤 이유에서든 러시아군 입장에서 체르노빌은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지역이었던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공격 개시를 알리는 연설에서 소련 붕괴 이후 “세상 힘의 균형이 깨졌다”고 주장했다. 세계 양대 강국으로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냉전시대의 소련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군사력을 앞세워 주변국을 짓밟는 것만으론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체르노빌 사건을 ‘역사상 최악의 인재(人災)’로 키웠던 러시아 내부의 문제점부터 돌아보는 게 푸틴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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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코로나 ‘간접 사망’

    코로나19가 미국에 상륙한 2020년 이후 ‘초과 사망’한 사람의 수가 지난주 100만 명을 넘어섰다. 2019년 이전의 사망자 규모와 비교해 볼 때 100만 명 이상이 더 숨졌다는 의미다. 코로나 사망자가 대거 발생한 것이 주원인이지만 심장질환, 고혈압, 치매 등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 코로나 대처에 힘을 쏟는 사이에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등에 대한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서 빚어진 일로 분석됐다. ▷각국에서 작성하는 코로나19 사망자 통계에는 코로나가 직접 사망의 원인이 된 사례만 포함된다. 의료 역량이 코로나 대응에 집중되는 바람에 다른 질병을 앓던 환자가 충분히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경우, 코로나 후유증으로 사망한 경우 등 코로나로 인한 ‘간접 사망’은 반영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망자 수가 예년 수준에 비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초과 사망(excess death)을 분석해야 코로나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숨진 사람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계청에서 주간 단위로 초과 사망을 집계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로는 7000여 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중 4000여 명은 ‘병상 대란’이 심각했던 11월 말부터 5주 동안에 집중적으로 나왔는데, 절반가량은 코로나 사망자였고 다른 절반은 코로나가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었다. 의료 역량이 한계에 이르면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비코로나 응급 환자들의 피해가 크게 늘어났던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당시 충분한 준비 없이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작된 이후 델타 변이 환자가 폭증하면서 각 병원 응급실은 기능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심정지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코로나 환자를 받느라 일반 중환자용 병상이 부족해 암, 장기이식 등 수술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의료 현장에선 “코로나 환자 때문에 응급환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우세종인 오미크론은 델타보다 증상이 가볍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전파력이 워낙 강해 다음 달에는 하루 확진자가 최대 27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방역당국은 전망한다. 이에 따라 위중증 환자가 늘어나고 의료 역량이 버텨내지 못하면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환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 소방, 치안 등 사회 필수기능을 담당하는 인력이 대거 격리되면서 구멍이 뚫려 안타까운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민관이 바짝 긴장하면서 방역에 총력을 기울여야 오미크론의 직간접 피해를 줄일 수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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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신돌궐제국

    종신 집권을 꿈꾸며 ‘21세기 술탄’으로 불리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공략에 나섰다. 튀르크어족으로 분류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튀르크어 사용국가 기구(Organization of Turkic States·OTS)’를 결성한 것. 그런데 최근 반(反)서방 노선을 걷는 에르도안과 호흡을 맞춰온 중국이 OTS에 대해선 아주 불편한 심사를 내비치고 있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신장위구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달 12일 이스탄불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공식 출범한 OTS는 터키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 회원국으로 참가했고, 투르크메니스탄이 참관국 자격으로 참여했다. OTS는 장기적으로는 외교안보 측면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 분야에서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2003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슬림 강경파가 핵심 지지 기반이다. 이슬람권의 맹주를 자처하며 중동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해왔고, 튀르크계라는 연결고리를 활용해 중앙아시아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튀르크라는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이 돌궐이다. 돌궐족은 4세기 말부터 중국 북부에서 세력을 확장해 552년에는 왕조를 세웠다. 당시 중국인들은 뛰어난 제철 기술을 가진 돌궐을 철노(鐵奴·철을 만드는 야만인)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돌궐은 당나라에 패배한 뒤 서쪽으로 이동했고 10세기에 투르키스탄 지역까지 진출했다. OTS 회원국 대부분은 이 지역 국가들로서 민족의 뿌리가 같고 모두 이슬람권에 속해 있다. 돌궐족의 후예들이 다시 뭉치면서 돌궐제국의 부활을 떠올리게 한다. ▷OTS 출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국가는 중국이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튀르크주의와 이슬람의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 이는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분리주의자들을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신장위구르의 분리독립 움직임이 거세질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신장위구르는 18세기 청나라에 점령된 이후 중국의 일부가 됐지만 주민의 다수는 튀르크계로 분류되는 위구르족이다. 2009년 민족 간 갈등으로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등 화약고처럼 불안한 곳이다. ▷다른 강대국들도 중앙아시아에 부는 바람을 눈여겨보고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해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온 미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전통적으로 중앙아시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러시아도 이 지역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돌궐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튀르크계 국가들의 움직임이 국제 정세에 또 하나의 변수가 돼 가고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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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대장동 연루 전관들 봐주기 수사 절대 안돼… 반드시 처벌돼야”

    《이른바 ‘대장동 게이트’에는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검 등 고위직 전관(前官) 변호사가 여럿 연루됐다. 이들은 화천대유의 고문을 맡아 한 달에 최고 1500만 원을 받았고, 로비 의혹에도 이름이 거론된다. ‘법조 게이트’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고발 사주’ 의혹도 전·현직 검사들이 중심에 서 있다. 법조계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19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 회관에서 만난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58)은 이에 대해 “많은 법조 후배들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불만과 울분을 토로한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법조인의 윤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거듭 주문했다.》“명망가 지위로 이익 챙겨” ―‘대장동 게이트’에 전직 대법관, 전직 특검 등이 연루된 것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 어떻게 보나. “상당히 부적절하다. 일반 국민이 상상할 수 없는 과도한 이익을 민간 사업자가 챙긴 것도 비상식적이고, 이 사업 주체가 대가 없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법조 유명 인사들에게 제공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납득하기 힘들다. 일반 국민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가 이뤄져서 그에 따르는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된다. 봐주기 수사라든가 미진한 수사가 돼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화천대유에는 권 전 대법관, 박 전 특검 외에도 김수남 전 검찰총장,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등도 고문으로 일했다. 고문단이 최대 30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검사 출신인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를 퇴직하면서 50억 원을 받았다. 법원은 이 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동결 조치하면서 화천대유의 법적 분쟁을 해결해주는 대가라고 판단했다. ―전관들의 이런 행태에 대한 법조계의 여론은 어떤가. “많은 법조 후배들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불만과 울분을 토로한다. 하루하루 사무실을 유지하기도 힘든 그런 변호사들이 많다. 그런데 법조계에서의 명망가적 지위를 부적절하고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데 사용하는 나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선거법 재판을 전후해 8차례 권순일 전 대법관을 찾아갔고, 권 전 대법관은 퇴임 직후 화천대유 고문을 맡았다. ‘재판 거래’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당연히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부 변호사들은 특정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해야 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해달라고 요구했을 정도다. 그 정도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대한변협 입장에서는 아직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보고 있지만, 국민 눈높이에서 의문점이 남지 않도록 수사가 돼야 한다.” ―박영수 전 특검은 본인이 화천대유 고문을 맡았고 딸은 이 회사에서 근무하는 등 이 사건에서 유독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젊은 변호사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일부 전관 변호사들 때문에 우리가 욕을 먹고 매도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국민 의혹 해소 위해 특검 필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은 여러 명의 전·현직 검사들이 중심에 있다. 법조계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실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법률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수사해서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 처벌받고 처리해야 된다. 물론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심증은 가는데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증거에 따라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이 이루어져야 된다.” ―고발 사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파장이 얼마나 크겠나. “사실이라면 굉장히 큰 문제라고 봐야 된다. 검찰이 선거에 개입한 게 되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검찰의 ‘대장동 게이트’ 수사, 공수처의 ‘고발 사주’ 수사에는 문제가 없나. “미진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만 말씀드리겠다.” ―대장동 게이트, 고발 사주 의혹에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민 여론과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정치권에서 결단해야 할 일이지만 국민적 의혹이 큰 사건은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 특검이라는 제도를 만들었겠나. 국민들의 의혹은 어떻게 해소를 해서 정리하고 넘어갈 것인가.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면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이 계속될 것이다. 특검이 도입된다면 중립적으로 독립해서 철저히 수사할 그런 적임자를 찾아서 추천하겠다.” “법조계가 사회적 균형추 역할 해야” 이 회장은 2월 취임사에서 “할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변호사단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며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실제 취임 이후 9개월 동안 검찰 인사,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등 법조계 현안에 대해 소신을 뚜렷하게 밝혀왔다. ―법조계 현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뭔가. “법조계는 사회적으로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소신이다. 법조계는 종국에 정의를 논하고 판단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법조계가 중심을 잃고 정권의 도구화가 된다면 정의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이 될 것이다. 검찰권의 경우 역사적으로 정권의 도구화가 계속 문제가 되지 않았나. 그래서 수사 권력은 상호 견제나 균형이 필요하다.” ―사법부 개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나. “법관들이 과도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법 권력을 시민들에게 일정 부분 나눠줄 수 있는 체제를 연구해야 된다. 그래서 저희가 디스커버리 제도(소송 당사자 간에 증거를 공개하고 교환하는 제도)를 적극 주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건은 법리보다 사실 인정에서 판가름이 나는데 이걸 왜 법관이 혼자 판단해야 되나. 각종 데이터들이 다 서버에,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고 폐쇄회로(CC)TV가 산재해 있는 시대다.” 변호사업계의 현안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자 차분하던 이 회장의 목소리의 톤이 다소 높아졌다. 변호사 3만 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개업 변호사들은 사무실 유지에 허덕이는 최악의 위기상황”이라는 게 이 회장의 진단이다. ―로톡을 탈퇴하지 않은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하는 등 이 문제에 강경 대응하는 이유가 뭔가. “로톡 같은 법률 플랫폼 서비스는 철저하게 돈에 의해서 움직인다.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자본이 법률 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법률 시장이 플랫폼에 종속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로톡에 위험한 해외 자본이 투자했는지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법무부도 이 점에 대해 아무 대책을 내놓지 않아 매우 우려스럽다.” 대한변협은 로톡이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지만 법무부는 온라인 법률 플랫폼이 합법적인 서비스라는 입장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변호사와 상담할 수 있는 로톡이 필요하다는 시민들도 많다. 대한변협에서는 로톡을 대체할 ‘변호사 정보센터’라는 서비스를 내년 출시할 계획이지만 양측의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은 로스쿨 도입 이후 젊은 변호사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변호사업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전관, 기득권 이런 문제는 젊은 변호사들에겐 아주 거리가 먼 얘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변호사 전체를 특권층으로 보는 시민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이 회장은 “대한변협 홍보지였던 대한변협신문을 법률 및 법조 관련 일반 매체로 전환하기 위해 대폭 개편하고,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경기 시흥 출생(58)△인천 광성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사법시험 28회(사법연수원 18기)△인천지검, 대구지검 영덕지청, 창원지검 검사△인천지방변호사회장△법무법인 에이펙스 고문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장(2021년 2월∼)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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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3개의 녹취록

    ‘대장동 게이트’에서 세 번째 녹취록이 등장했다. 대장동 개발사업이 시작되기 직전인 2015년 2월 6일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황무성 사장과 유한기 개발본부장이 나눴던 대화가 녹음된 것이다. 하급자인 유 본부장은 “이미 끝난 걸 미련을 그렇게 가지세요”라고 압박하다가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 정진상 성남시 정책실장, 유동규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 등까지 거론하며 기어이 사표를 받아냈다. 민간 사업자에게 유리하도록 사업을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황 사장을 몰아내는 장면이 녹취록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대장동 게이트의 문을 연 것은 ‘정영학 녹취록’이었다. 대장동 패밀리 중 한 명인 정영학 회계사가 2019∼2020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남욱 변호사, 유동규 씨와 대화한 것을 녹음했다가 지난달 말 검찰에 제출한 것이다. 김 씨가 유 씨에게 700억 원 지급을 약속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밝혀지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1200억 원대의 배당금을 가져간 천화동인 1호의 실소유주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 씨의 “그분” 발언, 로비의 실체를 언급한 “실탄은 350억 원”이라는 발언도 녹취록에 담겨 있다. ▷대장동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2013∼2014년에 벌어진 일은 남 변호사가 녹음해 검찰에 제출한 ‘남욱 녹취록’에 담겨 있다. 유 씨는 대장동 개발 방식이 정해지기 전부터 남 변호사에게 민관합동 개발 방식을 언급하며 “민간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해 주겠다”, “니네 마음대로 다 해라”라고 특혜를 약속했다. 그 대가로 유 씨는 3억여 원을 받았다. 검찰이 남 변호사 녹취록 등을 바탕으로 밝혀내 유 씨 공소장에 적은 혐의 내용이다. ▷대장동 사건 외에도 2013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선동 사건에서는 지하혁명조직 내부고발자가 제출한 녹취파일과 녹취록 32개가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됐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서는 정호성 전 대통령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녹음파일 200여 개가 핵심 증거가 됐다.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당시 대통령 집무실에서 대화한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를 통해 닉슨 대통령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하야로 이어졌다. ▷3개의 녹취록을 통해 대장동 사업이 시작되기 2년여 전부터 진행된 유 씨와 민간 사업자 간의 유착, 사업 본격화 직전에 진행된 사전 정지 작업, 사업이 진행된 이후 수익 배분 및 로비의 실체에 대한 윤곽은 드러났다. 하지만 녹취록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수사팀은 녹취록에 녹아 있는 증거들을 가려내고 보완해서 로비와 특혜의 전모를 밝히는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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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붙잡힌 ‘김미영 팀장’

    ‘김미영 팀장’에게서 “최저 이율로 30분 내에 3000만 원 대출 가능” 식의 문자메시지를 한 번쯤 안 받아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그 코너의 소재가 될 만큼 널리 알려진 김미영 팀장은 보이스피싱의 상징이 됐고, 진짜 김미영 팀장들은 본인 이름으로 보낸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가 스팸 처리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그 김미영 팀장을 만들어낸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이 붙잡혔다. 사이버수사를 담당하던 경찰관 출신이었다. ▷4일 필리핀에서 검거된 박모 씨(50)는 2008년 수뢰 혐의로 경찰에서 해임됐다. 그는 경찰 재직 중 보이스피싱 수사를 하며 알게 된 노하우를 악용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만들었다. 박 씨가 피해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대량으로 보내면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 바로 김미영 팀장이다. 박 씨의 조직은 필리핀, 중국, 베트남에 콜센터를 두고 조직원 수가 100여 명에 달하는 기업형 범죄조직으로 성장했다. ▷보이스피싱 초기였던 2010년대 초반에는 어눌한 발음의 중국동포들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박 씨는 내국인으로만 조직을 운영했다. 메시지를 보고 전화를 건 사람들은 철저하게 준비된 보이스피싱범들에게 속절없이 속아 넘어갔다. 경찰의 수사로 국내 조직이 와해된 2013년까지 박 씨 일당이 뜯어낸 돈은 약 40억 원으로 조사됐지만 이들의 통장 입출금 내역 등을 종합할 때 전체 규모는 400억 원대로 추정된다. ▷보이스피싱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김미영 팀장이 너무 많이 알려진 뒤에는 ‘김민수 검사’나 ‘금감원 이동수 과장’ 등의 이름으로 국가기관을 사칭하며 피해자들을 속이고 돈을 빼냈다. 요즘엔 SNS 메신저를 이용해 가족이나 친구인 것처럼 속이는 메신저피싱이 부쩍 늘고 있다. ‘내 휴대전화가 고장났다’며 원격조종 앱을 설치하게 한 뒤 신분증과 계좌번호 등을 빼내는 게 대표적 수법인데 주로 고령층을 노린다. 올 상반기 메신저피싱의 연령별 범죄 피해액을 보면 50대 이상의 비중이 약 94%에 이른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지만 치밀한 계획과 심리전으로 무장한 보이스피싱범들을 맞닥뜨리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범죄 규모는 845억 원에 달한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는 길은 미리 공부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미국 국립사법연구소 연구 결과 비슷한 유형의 사기범죄에 대해 들어봤고, 사기범이 접근해올 때 신원을 알아보려고 한 사람은 범죄를 피할 가능성이 높았다. 저금리 대출 광고 메시지를 보고 연락하지 말 것, 지인 이름으로 수상한 문자메시지가 오면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할 것 등 예방수칙을 눈여겨보고 실천해야 보이스피싱의 덫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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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택동]구설 끊이지 않는 박영수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법조인이 박영수 전 특검이다. 7월 ‘가짜 수산업자’에게서 포르셰 파나메라4 차량을 공짜로 빌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적절한 처신으로 비판을 받더니 이번에는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과 관련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박 전 특검에 대해 특검을 해야 할 판’이라는 개탄이 나올 정도다. ▷검사 시절 강력통으로 불렸던 박 전 특검은 돌파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돌쇠’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 기질을 살려 2016년 말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으로 임명된 뒤 90일간의 수사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인사들과 기업인 등 30명을 줄기소했다. 당시 현직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지는 않았지만 최순실(최서원) 씨에 대한 공소장에 뇌물수수 등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공포 검찰” “꿰맞추기 수사”라며 특검팀을 비판했지만 적폐청산 분위기 속에서 특검팀의 과(過)보다 공(功)이 부각됐다. ▷하지만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박 전 특검이 연루되자 그를 보는 대부분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그는 ‘도의적 책임’만 인정하면서 형사 처벌을 피하기 위해 “특검은 청탁금지법을 적용받지 않는 공무 수행 사인(私人)”이라는, 일반인의 상식과는 거리가 한참 먼 법리까지 꺼내들었다. 특검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박 전 특검이 책임 피하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박 전 특검이 결국 이 사건으로 검찰에 송치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인 화천대유에서 고문을 맡은 사실이 드러났다. 또 박 전 특검의 딸은 화천대유에서 근무했고,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대장동 잔여 세대 아파트를 약 7억 원에 분양받았다. 이 아파트의 현재 호가는 15억 원 선이다. 박 전 특검 측은 “법규에 따른 분양 가격으로 정상 분양받았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여론은 부글부글하고 있다. 한 전직 검사는 “이런 모습을 본 국민이 법조인을 위선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박 전 특검은 2014년 언론 기고문에서 “특검은 민주주의라는 토양에서 태어난 법치주의의 구현자”라고 규정했다. 본인이 특검으로 임명된 뒤 언론 인터뷰에선 “검사로서 불의에 대한 수사를 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검사도(道)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기범과 어울리는 것이 법치주의의 구현자라는 특검에게 어울리는 일이고, 직원 14명의 부동산 업체에서 월 1500만 원을 받는 고문을 맡은 것이 검사도를 강조하는 전직 검사로서 합당한 처신인가. 박 전 특검이 답할 시간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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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당 의원 겸직 법무장관의 아슬아슬한 입[오늘과 내일/장택동]

    지난해 11월 9일 당시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미국에선 검찰총장을 겸한다)은 연방검사들에게 ‘부정 선거 관련 수사를 허락한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다.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돕기 위해 ‘트럼프의 충신’으로 불리던 바 장관이 나서자 선거 범죄를 담당하는 법무부 간부는 사표를 던졌다. 검찰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수사는 유야무야됐지만 바 장관은 지금도 미 언론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선 무렵이 되면 수사기관에 외풍이 몰아치곤 했다. 이를 놓고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계절이 왔다’고 표현해 왔는데 올해는 ‘법무부의 계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단연 눈에 띈다. 그동안 “나는 법무장관이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 “(검찰총장 인선 기준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대한 상관성” 등의 발언으로 눈총을 받았던 박 장관이 이른바 ‘고발 사주’ 논란에서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다. 국회 법사위에서 긴급 현안질의가 열린 9월 6일은 검찰이 기초 조사단계인 진상조사를 사흘 남짓 진행했던 시점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도 해서 법무장관이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박 장관은 달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게 고발을 지시한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수사정보정책관은 (검찰총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가까운 관계”이고 “그것을 넘어서서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이상의 관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법무장관은 추측이나 주장이 아닌, 법적 의미가 있는 팩트를 말하거나 그럴 수 없으면 침묵해야 하는 자리다. 그렇다면 박 장관의 발언은 ‘윤 전 총장과 손 검사의 관계에서 법적 문제가 발견됐다’는 의미로 해석돼야 할 텐데, 그럴 만큼 탄탄한 조사가 이뤄졌던 상황이었는지 의문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법무장관이 모호한 방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박 장관 스스로 “수사 동력 확보를 위해 여론몰이식으로 흘리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흘 뒤 국회 예결위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사건은 가정적인 조건하에 법률 검토를 해 봤더니 다섯 개 이상의 죄목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법을 다루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통상 가정을 전제로 발언하지 않는다. ‘가정적인 조건’이라고 하면 못할 말이 없는데, 듣는 사람의 머리에는 ‘가정’은 잊혀지고 ‘혐의’만 남기 때문이다. 장관과 의원을 겸하는 게 가능한 시스템에서 이 정도는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견해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를 지키려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토대 위에서 정치와 형사사법이 명확하게 분리돼야 한다. 국제적 헌법자문기구 베니스위원회가 “다수의 횡포는 기소를 억압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수사기관의 중립은 위협받을 수 있고, 정치적 격동기에는 더욱 취약하다. 고발 사주 논란은 중립성이 담보된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난 사람이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으로 마무리돼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쏟아질 고소·고발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법무장관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방패가 되지는 못할망정 아슬아슬한 발언으로 논란의 단초를 제공해서야 되겠나. 여당 의원인지, 법무장관인지 박 장관이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할 시간이 왔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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