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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경 웹툰 PD는 지난해 초만 해도 그저 평범한 웹툰 팬 중 한 명이었다. 디자인업계서 일하던 최 PD는 “웹툰 창작자로 일해보면 어떨까” 하는 꿈을 품긴 했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만화 전공자도 아니었고, 웹툰업계 경험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접한 ‘웹툰산업 전문인력 양성사업’이 최 PD가 꿈을 이루는 관문이 돼줬다. 그는 신입 웹툰 PD 양성 교육과정인 ‘웹툰 엑스퍼트 프로그램’ 1기 과정을 수료했고, 지난해 11월 교육 협력사 중 하나였던 웹툰 제작사 재담미디어에 입사했다. 4일 서울 마포구 재담미디어 사옥에서 만난 최 PD는 “직무에 대한 이론·실무부터 산업 전반 동향, 현직자 조언까지 들을 수 있는 체계적인 커리큘럼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첫발을 디딘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의 ‘웹툰산업 전문인력 양성사업’이 산업 현장에 안착하면서 웹툰 인력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K웹툰 세계화에 발맞춰 지난해 ‘만화·웹툰 산업 발전 방향’을 핵심 추진 과제로 선정했다. 웹툰산업 전문인력 양성사업은 그 일환으로 콘진원이 선보였다. 해당 사업은 크게 창작자(작가) 지원·교육과 산업인력(PD) 교육의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창작자를 교육하는 ‘지역 웹툰작가 양성 교육’은 상대적으로 교육 기회가 적은 지역 웹툰 작가들을 선정한다. 창작지원금을 지원하고, 창작 활동에 매진하도록 돕는 것. 올해는 창작 웹툰 데뷔작 혹은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재능 있는 웹툰 작가들을 대상으로 ‘소수정예 웹툰작가 양성 지원사업’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오리지널 작품 전체의 시놉시스 및 목표 분량 완성까지 전문가가 맞춤형 1 대 1 밀착 교육을 진행한다. 향후 시장 진출을 위한 비즈니스 상담도 지원한다. 산업인력(PD) 교육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예비 웹툰 PD, 현직 웹툰 PD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과 인공지능(AI) 활용 교육 등 3가지 과정이 운영된다. 지난해 이 교육을 수료한 한 웹툰 제작 PD는 “다른 회사의 성공 사례도 공부하며 현직자들끼리 글로벌 웹툰 산업 동향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매우 유익했다”고 전했다. 올해 프로그램의 경우 교육을 맡을 플랫폼 기관은 3∼4월에, 교육생은 4월에 모집한다. 김형남 재담미디어 이사는 “웹툰업계가 외형적으로 급성장했지만, 여전히 도제식 교육방식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도해 보편적 커리큘럼을 가진 교육과정을 만든 건 산업의 내실을 다질 기회를 키우는 긍정적 변화”라고 설명했다. 콘진원 관계자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한국이 선도하는 글로벌 웹툰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슈퍼IP(지식재산권)를 만들어낼 정예 인력 양성에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쉰 살의 중년 작가는 자신의 작품 전집을 만들기로 하며 지나온 삶의 기록과 흔적들을 훑기 시작한다. 원고를 정리하다가 외삼촌 댁 창고 구석에서 오래된 가죽 가방을 발견한다. 어린 시절 기억 속 가방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끔 외진을 돌 때 들고 다녔다. 가방을 열자 작가가 사춘기 중학생 시절 끄적였던 편지, 일기장 뭉치가 나온다. 그 안엔 기숙사 생활 당시 1년 아래 남자 후배를 선망하며 끄적였던 문장들이 가득했다. “세이노의 따뜻한 팔을 잡고, 가슴을 끌어안고, 목덜미를 껴안았다. 세이노도 잠결에 내 목을 세게 끌어안고 자기 얼굴 위에 내 얼굴을 포갰다.” 1968년 소설 ‘설국’으로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작품이 국내 초역 출간됐다. 작품은 저자가 창간한 문예지 ‘인간’에서 1948년 첫 연재를 시작했는데, 문예지의 재정난으로 연재가 불규칙하게 이어졌다고 한다. 1952년에야 출판사 신초샤(新潮社)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전집’을 내며 마지막 연재분을 담아 완결됐다. 2022년 저자의 50주기를 기념해 일본에서 단행본이 출간됐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독자들은 이 내용이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일기인지, 완벽한 허구인지 혼란에 빠진다. 작품은 사실과 허구를 묘하게 오가며 경계를 허무는 사소설(私小説) 형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당대 일본 작가들인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등의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문단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아울러 동성 후배에 대해 우정 이상의 감정을 담고 있어 출간 당시 ‘문제작’으로 거론됐다. 주인공이 “사랑했다”고 표현한 아름다운 후배 세이노와의 이야기 속엔 가족을 모두 잃고 번민했던 한 소년의 성장기가 함께 녹아 있다. 실제로 가와바타 작가는 중학생 무렵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됐다. 섬세한 필치로 유명한 대문호의 색다른 글을 감상하고픈 독자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신문협회가 뉴스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과 ‘저작권법’ 개정 의견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했다. 신문협회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AI기본법’ 개정 의견서를 최근 전달했다”고 4일 밝혔다. 의견서에는 “AI기본법 제31조(인공지능 투명성 확보 의무)에 인공지능 개발·활용에 사용되는 학습 데이터 공개 의무 조항을 추가하고, 공개 방법 및 공개 항목은 시행령에 규정할 것”을 제안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문협회는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에는 다양한 창작물과 지식이 포함돼 있다”며 “저작권 보호, 인공지능 기술의 투명성 및 신뢰성 확보, 국제 기준 등에 부합하기 위해 학습 데이터 공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26일 제정된 ‘AI기본법’의 입법 과정에서 AI 학습 데이터 기록 보관 및 공개 등의 규정이 빠져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아울러 신문협회는 저작권법 제4조 저작물의 예시에 ‘뉴스 기사’ 추가를 요구하는 저작권법 개정안 의견서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제출했다. 저작권법 제4조 1항(저작물의 예시)은 ‘소설·시·논문·각본·음악·연극·무용·회화·서예·조각·건축 설계도·사진·지도 등’을 저작물로 예시하고 있다. 하지만 뉴스 기사는 ‘그 밖의 어문저작물’에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신문협회는 “기자의 사상이나 감정 등 창작적 표현이 담긴 뉴스 기사는 독립적인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제7조에 규정된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에서는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라는 구절의 삭제를 촉구했다. 신문협회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보도 기사라도 소재의 선택과 배열, 구체적인 용어 선택, 어투, 문장 표현 등에 창작성이 있거나 작성자의 평가, 비판 등이 반영된 경우엔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저작물”이라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직장인 박동민 씨(34)는 이달 봄을 맞아 두 자녀와 국내 나들이를 준비하고 있다. 전남이나 경남 등 따뜻한 남쪽 지방부터 여행할 계획이다. 박 씨는 “숙박 할인권 및 고속철도(KTX)-렌터카 할인 혜택을 이용하면 여행 경비를 20∼30% 절감해서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신정현 씨(22)는 평소 꿈꿔 오던 템플스테이를 계획 중이다. 신 씨는 “소셜미디어 등에서 3월에 하루 3만 원으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며 “수업이 비는 시간에 친구와 템플스테이 계획을 짜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정보를 얻은 곳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관광공사와 3월부터 5월까지 추진하는 ‘여행 가는 봄’ 캠페인이다. 봄철 국내 여행 활성화를 위해 캠페인 슬로건인 ‘올봄, 여행은 유행, 지역은 흥행!’에 맞춰 3개월 동안 국내 곳곳에서 여행 경비 할인권 등 풍성한 혜택을 약 50만 명에게 제공한다.3월에는 한 달간 비수도권 숙박 2만∼3만 원 할인권 30만 장을 선착순으로 배포한다. 교통의 경우 KTX·관광열차 30∼50% 할인, 청년 내일로 패스, 렌터카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지역 여행 상품 특별 할인전도 개최하고, 근로자 휴가지원몰 50% 할인 등을 통해 지역 여행 상품 가격도 낮춘다. 하반기에 사용할 수 있는 지역여행권을 지급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전국에서 다양한 여행 관련 프로그램도 만날 수 있다. 27∼30일에는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전국 프로모션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내나라여행박람회’를 개최한다. 또 2000명을 대상으로 3만 원에 떠나는 ‘행복 두 배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매달 1만∼50만 원 상당의 디지털관광주민증 참여 지역 여행 혜택(숙박, 체험, 식음료 등 이용권) 당첨 기회를 제공하는 ‘이달의 여행운’ 등도 선보인다.4월에는 국토 외곽 약 4500km를 잇는 ‘코리아둘레길 걷기여행주간’을 추진해 대국민 걷기여행 분위기를 조성한다. 코리아둘레길 코스 완보를 인증할 경우 ‘건강생활 실천 지원금’과 ‘스포츠활동 인센티브 튼튼머니’를 지급한다. 전국 자전거 동호회·애호가들이 참여해 국토 종주 코스를 발굴하는 자전거 자유여행 캠페인도 연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과 연계한 ‘열린여행 주간’에는 관광 취약계층을 위한 무장애 여행 상품에 특수 차량, 전문 인력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한다.5월에는 ‘해양관광 캠페인’ ‘야간관광 페스타’를 중점 개최한다. 전국 79개 연안 지역 숙박시설에 2만∼3만 원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요트·서핑·카약 등 해양레저 체험권 30% 할인, 해양관광 종합(패키지) 상품 특별 할인도 있다. 인천과 경남 통영, 부산 등 10개 야간관광 특화도시에서 연속으로 열리는 ‘야간관광 페스타’는 지역별 캔들라이트 순회공연을 개최한다. 할인 혜택과 행사 일정, 참여 방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1891∼1955) 선생의 서거 70주기를 맞아 22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인촌에게 통합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추모 토론회가 열렸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이날 기조 강연에서 “선생은 거대한 비전과 꿈을 갖고, 이를 현실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데 전력투구했다”며 인촌 선생을 ‘이상주의적 리얼리스트’라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전 생애에 걸쳐 나라와 민족을 위한 충정을 증명하신 분”이라며 “폐쇄적 민족주의에 갇히지 않고, 일제강점기 최대 지주였는데도 특권을 내려놓고 민족과 나라를 위해 희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촌 선생은 세계 정세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민족이 걸어가야 할 길을 명료하게 제시했다”며 “우리 근현대사의 ‘위대한 어른’으로 선생이 일군 혜택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인촌 선생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통합자이자 조정자의 길을 걸었다”며 “세상이 특정 엘리트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것이라는 공공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 줬다”고 했다. 이어진 토론회 발제에 나선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인촌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도탄에 빠진 우리 민족을 살려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셨다”며 “동아일보를 창간해 한민족의 문화를 주창하셨고, 물산장려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에서 장사도 하고 기업도 하는 이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셨다”고 말했다. 박 전 지사는 “인촌은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견지했다”고도 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승렬 전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선생은 나라의 격변기에 ‘포용적 자유주의’로 이념과 노선이 다른 이들도 존중하고 공존했다”며 “인촌과 같은 선구자들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기틀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의 시민의식과 시민 교양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발제 후 토론에는 오수열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장,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가 참여해 “인촌 선생은 한민족 독립운동을 이끄신 우리 민족의 정치 자산” “민족 산업(경성방직)과 민족 학문(고려대, 중앙중고교)을 이끈 선각자” “일제의 탄압이란 어려운 여건에도 국내 독립운동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행사는 인촌사랑방과 호남일보 등이 공동 주최했다.광주=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 김호경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위은지 홍진환 이승건 황준하 김충민 기자가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기자협회 주관으로 열린 제56회 한국기자상 시상식에서 기획보도 부문 상을 수상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지난해 6월 동아일보의 히어로 시리즈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에서 불법 사채 조직을 5개월간 추적하며 불법 사채로 인한 피해 사례와 부조리를 보도했다. 이 보도는 국회와 정부가 대부업법을 개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피해자와 경찰 등 157명의 인터뷰와 잠입취재 등 발로 뛰는 취재를 통해 입체적인 기사로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고 평가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민수(가명)는 학창 시절 오랜 집단 괴롭힘과 폭력으로 자퇴한 뒤 몇 년간 방황했다. 그리고 은둔했다. 은둔 중인 민수는 주변에 “다 지난 옛날 일이라 괜찮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하지만 진짜 괜찮은 줄 알았던 민수로부터 예상치 못한 순간 분노가 터져 나왔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나 길에서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혹은 TV 드라마를 시청 중일 때. 그의 트라우마와는 좀체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에 눈물을 글썽이며 당황해하는 민수를 달래준 건 심리상담가인 저자였다. 저자는 “마음에 있는 상처를 직시하고 확인하는 과정은 원래 불편하다”며 곪아 있는 감정을 조심스레 끄집어냈다. 민수가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손길을 내민 것이다.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은둔 청년들의 속마음을 전하면서, 이들에 대한 오해도 해소하도록 돕는 에세이다. ‘PIE나다운청년들’ 대표이자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인 저자는 국내에서 최근 10년 동안 자신만큼 많은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을 만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한다.최대 50만 명. 국내 고립·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추정 숫자다. 책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편견을 깨는 내용이 담겼다. 이 청년들은 사람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단지 사람으로부터 받을 상처를 두려워할 뿐이다. 또 인터넷 과몰입이나 게임 중독 때문에 은둔하는 것이 아니라, 고립·은둔 상태에 빠진 뒤 과몰입과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맘 편히 살 것’이라고 오해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청년들은 “매일매일 괴롭고 불안하다. 스스로 너무 밉고 한심하다”고 저자에게 털어놓는다.상담에 임한 청년들이 털어놓는 고민 가운데 “나 자신이 누군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가장 많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선 끊임없이 공부하도록 강요하지만, 정작 ‘나’에 대한 공부는 등한시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청춘들은 오늘도 자신의 방 안에 더욱 깊게 파묻힌다. 우리 사회가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을 어떻게 품을 것인지 묻는 책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촌 김성수 선생의 70주기 추모 대토론회가 22일 오후 1시 반부터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다.‘인촌에게 통합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인촌사랑방, I-SMR인촌포럼, 호남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토론회는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가 사회자로 나선다. 1부에서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21세기에 인촌을 다시 읽는다’로 기조 강연을 한다. 2부에서는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가 ‘인촌과 후광, 통합의 지도자’를, 이승렬 전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이 ‘현대사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과 포용적 자유주의’를 각각 발표한다다. 오수열 조선대 정치학과, 조정관 전남대 정치학과 교수,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장, 황호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등이 토론을 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동아일보와 고려대, 중앙중고교를 세우고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70주기 추모식이 18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고인의 유택 앞에서 거행됐다. 추모식에는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회장 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을 비롯한 유족과 이진강 인촌기념회 이사장, 김동원 고려대 총장 등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추모 묵념에 이어 고인 약력 보고, 추모사, 고인의 육성 듣기, 분향 및 헌화의 순서로 치러졌다. 최맹호 동우회장은 약력 보고에서 “인촌 선생은 독립을 위해 민족교육, 민족산업, 민족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민의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제도의 확립을 평생의 과업으로 추진했다”고 했다. 이진강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6·25전쟁 시기에 인촌 선생은 소명 의식을 발휘해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제시하고 스스로 개척했다”며 “손해가 나도 바른길이면 꿋꿋하게 걸어간 선생의 공은 그대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평생 한국 언론사를 연구해 온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추모사에서 “인촌 선생은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었고 현대사에 발자취를 남긴 애국의 거목으로, 언론과 교육기관을 동시에 운영한 유일한 지도자”라며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수행한 선생의 애국애족이 더욱 그리워진다”고 추모했다.인촌을 ‘인생의 스승’으로 모셔 온 105세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날 영하의 날씨에도 추모식에 참석해 분향한 뒤 “병중이신 선생께 세배하러 갔을 때 ‘김 선생, 오셨구려’ 하고 맞아주시더니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여러 번 기도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나이가 들고 보니 나라를 걱정하는 선생의 마음을 젊은 후배 세대들이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며 “가르침을 주신 선생께 꼭 인사하러 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연극배우 최초로 인촌상을 받은 박정자 배우는 “선생은 나라의 기틀을 잡으신 분”이라고 했고, 2022년 수상자인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젊을 때부터 여러 은사님들로부터 인촌 선생의 큰 뜻과 포용력에 대해 들어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왔다”고 했다. 2023년 인촌상을 수상한 김종규 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국내에서 일제의 핍박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겠는가”라며 “그런 가운데서도 교육과 언론,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선생의 헌신을 높이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민주주의 기틀 다져 대한민국 건국 앞장서”인촌 선생 70주기 추모사민족과 나라를 위한 인촌 선생의 생각과 실천은 헌신적이고 크고 숭고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6·25전쟁 때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지금 우리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에서 민족의 존망이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선생께선 교육으로 나라의 기초를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중앙학교와 고려대를 세우고, 경성방직을 창업해 산업으로 나라에 보답하셨습니다.동아일보를 창간함으로써 나라의 힘을 키워나갈 동력을 굳건히 하셨고, 민주주의 기틀을 다져서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 앞장서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제시하고 스스로 개척하셨습니다. 이는 선생의 소명 의식이 빛을 발휘한 덕분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선생의 젊은 시절 행적을 좇아가면서 다시 깨닫게 된 선생의 용기와 혜안에서 저희의 왜소함을 느꼈습니다. 중앙학교, 보성전문을 인수하고 동아일보를 창간하시며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이를 지켜내신 인내와 뚝심 앞에서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존경의 마음이 가득 찼습니다.인촌 선생에 대해 배우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제일 큰 선생의 덕목은 아래와 같다고 감히 말씀 올립니다.“선생께서는 설령 이익이 보여도 그게 바른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시고, 손해가 나도 그게 바른길이면 그래도 꿋꿋하게 걸어가셨습니다. 또 선생께서는 큰 공적을 이루고도 이를 내세우거나 거기에 기대지 않으셨습니다. 그 공은 어디로 가지 않고 그대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강조하고 실천하려고 하셨던 건 ‘통합의 리더십’입니다. 민족의 스승이셨고, 국가의 큰어른이셨던 선생의 명복을 빌며 삼가 추모의 글을 올립니다.“독립 위해 민족의 역량 강조했던 선각자”인촌 선생 70주기 추모사인촌 김성수 선생은 언론인, 교육자, 정치인, 사업가로서 민족운동의 구심점이 되신 분이며, 한국 현대사에 폭넓은 발자취를 남기신 애국의 거목이십니다. 국내에서 일제의 압제를 몸소 겪으며 광복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선생은 한민족이 독립을 달성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언론과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배양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사상을 실천했던 선각자였습니다. 일제 패망 이후 좌우익이 대립하던 혼돈의 시기에는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독재에 반대하는 세력을 결집해 대한민국의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수행하셨습니다.선생의 70주기를 맞아 불멸의 업적과 공선사후 정신을 돌이켜 보면서 선생의 업적과 애국애족 정신이 더욱 그리워짐을 느낍니다. 선생은 국내에서 문화적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주역이셨습니다.동아일보와 보성전문, 중앙중학은 민족 진영 인사들의 활동 무대이자 은신처였습니다. 민족 사학의 기틀을 다지고 오늘날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고려대라는 학문의 전당을 육성하였습니다. 1920년 창간한 동아일보는 총독부의 탄압을 견디면서 삭제, 압수, 정간, 언론인의 투옥 등 사법 처분의 가시밭길을 헤쳐 왔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운 사건은 언론의 가장 상징적인 항일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기업가로도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1917년 경성직유주식회사를 인수해 2년 뒤 경성방직주식회사로 명칭을 바꾸면서 민족기업 육성에 기여하셨습니다. 1923년 물산장려운동도 선생의 참여로 추진되었던 캠페인이었습니다.선생은 교육과 문화운동이라는 장기적인 사업을 추진하여 독립을 쟁취하고 독립 이후의 국가 건설에 대비하겠다는 현실적인 방안을 택했습니다. 민족 정신을 함양하고 실력을 기르는 일은 민족의 먼 장래를 기약하는 실질적 방책이었습니다.남양주=김기윤 기자 pep@donga.com남양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신문협회가 네이버를 상대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뉴스 무단 학습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신문협회는 17일 “생성형 AI 서비스에 뉴스를 무단으로 학습시킨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네이버를 상대로 이같이 결정했다”며 “뉴스 저작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IT 플랫폼의 알고리즘 투명성을 확보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신문협회는 생성형 AI 기업의 뉴스 콘텐츠 무단 활용이 저작권법 위반이며,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및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 행위’에도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당 기업이 자사 대규모언어모델(LLM) 훈련이나 AI 검색 서비스에 뉴스를 활용하면서 정당한 대가를 언론사에 지불하지 않은 점, 기사의 내용이나 표현을 그대로 복제해 이용하거나 출처를 표시하지 않는 점 등이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기사 배치와 관련해 AI 알고리즘이 불투명한 것과 뉴스 콘텐츠 이용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도 불공정 행위라고 판단했다. 신문협회는 “오픈AI와 구글 등도 국내 언론사 기사를 무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단계적으로 공정위 제소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이러한 공정위 제소를 통해서 “신문사와 생성형 AI 기업의 공정한 거래 관계를 확보하는 기반을 마련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신문협회 등 5개 언론단체는 지난해 말 AI 사업자가 학습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국회 및 정부에 제출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3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인근에 있는 공군15특수임무비행단(공군15비). 회색빛 짙은 군사 기지 깊숙한 곳에 색다른 건물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주변과 달리 노란색과 보랏빛으로 형형색색 단장한 아담한 도서관. 공군 장병은 물론이고 가족과 군무원들을 위한 ‘한성 작은 도서관’이 이날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날 개관식을 가진 한성 작은 도서관은 특히 군 시설에 머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너무나도 좋은 선물이었다. 군 가족들이 머무는 관사에서 걸어서 2∼3분이면 닿을 거리인 데다 놀이터와도 붙어 있어 금상첨화였다. 이날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 40여 명도 “책이 진짜 많다”고 환호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서관을 둘러봤다. 한성 작은 도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 국방부로부터 설치비 및 운영비를 지원받아 조성했다. 군인 가족들을 위한 문화 혜택을 지원하고 지역 공동체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취지다. 전국 각지에 도서관을 만들고 있는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군인 가족을 위해 도서관을 지은 것도 2015년부터 35번째에 이른다. 도서관은 기존에 있던 어린이집이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겨간 뒤 비어 있는 공간을 개조해 만들었다. 240㎡(약 73평) 크기의 건물 2층을 활용해 어린이 독서 공간은 물론이고 성인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열람·정보검색 공간 등을 마련했다. 장서는 지금까지 약 3400권을 갖췄으며, 앞으로 부대와 작은도서관 예산을 추가 투입해 더 늘려갈 계획이다. 건물 1층 역시 올 상반기에 리모델링을 거쳐 열람실 등을 더 마련할 예정이다. 한성 작은 도서관 개관은 공군15비 가족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이다. 이전까지 도서관이나 서점은 차를 타고 부대 밖으로 한참을 가야 했다. 이날 초등학생 아들과 개관식을 찾은 세 자녀의 아빠 김홍찬 소령은 “도서관에 가려면 적어도 차로 30분은 가야 했다”며 “관사에서 도보로 3분도 안 되는 곳에 이런 멋진 도서관이 생겨 가족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군인 가족도 “어린이들이 신발을 벗고 집에서처럼 엎드려 책을 보는 모습이 너무 맘에 든다”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이현희 공군15비단장을 비롯한 국방부 및 공군 관계자, 김진삼 KB국민은행 부행장 등이 참석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인 김수연 목사는 “군부대는 특성상 문화 혜택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며 “여러 부대에 작은 도서관을 꾸준히 조성해 군대 독서 환경 개선에 일조하겠다”고 밝혔다성남=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인근 공군15특수임무비행단(공군15비). 회색 빛깔의 군 기지와 군수품으로 가득 차 다소 삭막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부대 깊숙한 곳엔 노란색과 보랏빛으로 단장한 아담한 새 도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군 가족들이 머무는 관사에서 도보로 2~3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데다 관사 단지 내 놀이터와도 출입구가 맞닿아있어 아이들이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곳. 따뜻한 햇빛이 들어 추운 날씨에도 도서관 주변에선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날 새롭게 문을 연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 40여 명은 “새 만화책들이 진짜 많다”라고 환호하며 도서관 구석구석을 신나게 둘러보기 시작했다.공군 장병 및 가족, 군무원들을 위한 공군15비 내 ‘한성 작은 도서관’이 13일 개관식을 열고 방문객들을 맞았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국방부로부터 설치비 및 운영비를 지원받아, 군 관사 내 군인 가족들을 위한 문화 혜택 지원과 지역 공동체 장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조성했다. 국방부·KB국민은행 간 ‘작은 도서관 설치·운영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에 따라 2015년부터 시작돼 이번이 군인가족을 대상으로 33번째 작은도서관이다.한성 작은 도서관 부지에는 원래 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었다. 최근 다른 부지에 어린이집이 신축되면서 남은 공간을 작은 도서관으로 개조해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현재 2층짜리 건물의 2층 240㎡(약 73평) 공간에는 어린이들이 편히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비롯해 군 장병, 가족 등 성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열람공간, 정보검색 공간, 서가가 마련됐다. 현재 장서는 약 3400권으로, 향후 부대 및 작은도서관 측 예산을 지원받아 책들이 추가로 빼곡하게 들어설 예정이다. 유휴 공간인 같은 건물 1층에도 올 상반기 중 추가 리모델링을 거쳐 열람실 등이 마련된다.관사에서 부대 밖으로 한참을 나가야 충분한 장서가 갖춰진 도서관, 서점을 찾을 수 있는 군 가족들에겐 더없이 기쁜 소식이다. 이날 초등학생 아들 한 명과 함께 개관식을 찾은 세 자녀의 아버지 김홍찬 소령은 “괜찮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려면 차로 30분은 가야 했는데 집에서 도보로 3분도 안 되는 곳에 아늑한 새 도서관이 생겨서 가족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을 찾은 다른 군 가족들도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 도보 거리에서 안전하게 독서할 공간이 생겨 행복하다. 아이들도 신발을 벗고 맨발로 집처럼 엎드려 책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는 소회를 밝혔다. 현재 공군15비 관사에는 약 540세대가 거주 중이며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군 장병은 약 2500명이다.이날 개관식 행사에는 김수연 목사를 비롯해 이현희 공군15비단장, 국방부 및 공군 관계자, 김진삼 KB국민은행 부행장 등이 참석했다. 김수연 목사는 “군부대 특성상 문화 혜택을 누리기 쉽지 않으며 차 없이 도서관 방문하기 쉽지 않다. 가까운 거리에 꾸준히 작은 도서관을 조성해 부대 내 독서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세기 중반 서유럽에서 남성이 발레를 구경하거나 발레에 참여하려고 하면 놀림과 의심이 쏟아졌다. 영국 런던에서 남성 무용수는 무의미하다고 여겨져 노인이나 익살스러운 캐릭터만 맡았다. 잘생긴 왕자나 청혼자의 역할은 남장을 한 여성 무용수가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남성 무용수는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는 역할에 국한됐다. 발레단의 예산을 아끼기 위해 남성 무용수를 버스 운전기사로도 일하게 하자는 논의도 오갔다. 하지만 러시아에선 달랐다. 춤추는 기술은 정확성, 체력, 강인함 같은 전사의 미덕을 보여주는 명예로운 능력으로 여겨졌다. 혈기 왕성한 남자 무용수들이 타이츠를 입고 자유롭게 무대를 누볐다. 군사 훈련, 검술 등 군대 문화 속 춤의 역할과도 비슷했다. 볼쇼이 발레단의 남자 무용수는 붉은 군대 공연단의 무용수와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당대 러시아 발레의 차별성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발레단 ‘발레 뤼스’의 흥행 성공을 이끌며 유럽 전역에 이를 소개한 인물 세르게이 댜길레프의 일대기를 조명한 책이다. 영국의 무용평론가인 저자는 발레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댜길레프를 주제로 다양한 연구자료를 찾고 생생한 취재를 덧붙였다. 당대 발레의 변방인 러시아 페름 지역에서 태어난 댜길레프는 천재나 지식인, 이론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1909년 발레 뤼스를 창설한 뒤 예술 기획가로서 빼어난 면모를 보였다. 안나 파블로바, 미하일 포킨, 레오니트 마신 같은 전설적 무용수들을 발탁했다. 그의 연인이었던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발레의 전설’로 꼽힌다. 댜길레프는 발레를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전통적 이분법에 도전했다. 그는 동성애자였는데, 금기시되던 하위문화를 가지고 발레에 새로운 형태의 관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와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이 발레 뤼스에 열광했고 발레는 주류 예술로 부상했다. 오늘날에도 세계 5대 발레단 곳곳에 발레 뤼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포진해 있다. 여러 흥미로운 일화가 소개돼 발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쉽게 책장이 넘어갈 것 같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당시 현장 제보 영상을 속보와 특보에서 여과 없이 방송한 MBC에 법정 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방심위는 3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MBC는 당일 ‘MBC 뉴스특보’ 방송 도중 비행기가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외벽에 부딪혀 폭발하는 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을 그대로 방송했다. 또 특보 진행 도중 방송과 관계없는 자막 ‘탄핵:817’이 1초 정도 화면에 노출됐다. 여객기의 이동경로를 보여주는 그래픽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것도 심의 대상이 됐다.류희림 방심위원장은 이날 심의에서 “MBC가 제출한 서면진술서를 보면 ‘편집이 늦어져서 (해당 영상이) 한 차례 더 노출됐다’고 하는데, 편집이 늦어진 경우 방송사로선 영상을 쓰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흥미 위주의 선정적 방송이 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방심위의 처분 중 법정 제재 단계는 ‘주의’ ‘경고’ ‘프로그램 정정·수정·중지 및 관계자 징계’ ‘과징금’ 등이다. 법정 제재부터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가 된다. 이보다 수위가 낮은 행정지도의 경우 ‘의견제시’와 ‘권고’가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2025년 을사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혹시 1월 1일 ‘책을 열심히 읽겠다’고 다짐하셨다가 작심삼일에 그친 분들이 계신가요. 2025년 국내 처음으로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당선 작가들에게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작가별로 나의 인생 책, 추천 사유, 책 속 한 문장을 정리했습니다. 설 연휴를 마무리하며 신춘문예 ‘백년둥이’ 작가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책들을 펼쳐 보면 어떨까요.》김준현 / 중편소설 당선자◇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한강 지음·열림원이 에세이집을 처음 읽은 건 열일곱 살 때였다. 농도 짙은 먹빛으로 충만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을 읽은 직후였다.만 스물여덟 살의 작가가 미국 아이오와에서 만난 다국적 작가들의 이름을 소제목으로 쓴 책이다. 삼 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베트남, 아르헨티나, 팔레스타인, 튀르키예 등지에서 온 작가들과 함께했던 순간을 작가는 기억하려고 한다. 기록하는 사람이 아닌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되뇔 때의 울림이 오래 남았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사람. 지면이 아니라 내면에 먼저 지나가 버릴 모든 순간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 십 년 전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했던 시절 새벽이 깊도록 불 켜진 작가들의 방 창문을 보며 우리는 ‘쓰는 공동체’라는 유대감을 느꼈다. 그건 손을 잡거나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지 않아도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다. 얇고 가벼운 문고본의 모습으로 단정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이국의 작가들이 살아온 삶의 수많은 궤적을 책은 기억하고 있다.● 책 속 한 문장 “나는 기억하는 사람, 모두가 잊은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을 때까지, 다만 그때까지.”박진호 / 단편소설 당선자◇열한 계단/채사장 지음·웨일북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서른 살엔 세상에 있는 모든 ‘기성의 것들’이 나를 공격한다고 생각했다. 계급과 시스템, 성평등, 다양성 등등. 돈을 버는 사회인으로 마주하는 현실 문제는 학생 신분으로 손쉽게 외쳤던 이상과는 괴리가 너무 컸다.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속으로만 그 불합리함에 분노하고 삭일 뿐이었다. 좀 우습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때는 출근하는 매일이 굴욕적이고 절망적이었다. 오랜 시간 천착했던 고민들이 사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이십 대의 치기였다는 걸 인정하게 될까 봐. 그러다 만난 책이 채사장의 에세이 ‘열한 계단’이다. 이 책으로 위로를 받은 한편 슬픈 마음이 들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건너버린 기분이었다. 지금도 내가 너무 멀리 와 버린 건 아닌지 씁쓸한 의심이 들 때면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그리고 가장 치열했던 서른 살의 일기와 이 책을 펼쳐 보곤 한다.● 책 속 한 문장 “세상에 대한 우월감을 갖고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져야 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세상과 대결할 때 그 힘을 비축하게 하고, 세상에 무릎 꿇게 되었을 때에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자존감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장희수 / 시 당선자◇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지음·김춘미 옮김·비채이전까지 소설은 흥미진진한 갈등이 해소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를 준다고 생각했다. 그런 편견을 깨준 신비로운 책이다. 시종일관 잔잔하다. 그럼에도 읽다 보면 차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지, 그 속마음을 엿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무라이 슌스케 설계사무소 직원들이 도서관 설계 공모를 위해 산속 별장에서 합숙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수습 건축가이고, 그의 스승은 과묵하다. 그 탓에 주인공은 스승의 건축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며 마치 ‘츤데레’처럼 툭툭 내놓는 스승의 말을 읽으면 괜한 긴장감까지 느껴진다. 도드라지는 갈등이 없어도 흘러가는 이야기를 읽자니 어딘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삶이 별일 없어 보인대도 각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일 테니.● 책 속 한 문장 “공사하는 사람들은 무라이 슌스케의 이러한 디테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손을 움직였을까. 그들의 생각은 끝내 알려지지 않는다 해도, 한 일은 이렇게 남는다. 선생님의 설계는 시공자의 긍지에 호소하는 것이었다.”류한월 / 시조 당선자◇모래의 여자/아베 코보 지음·김난주 옮김·민음사어느 날 나는 한 권의 책 속에 빠져 모래 구덩이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내려갔다. 그곳엔 햇볕 한 줌 들지 않았고 바람조차 메말라 고요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여전히 나였지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나는 아니었다. 이 책은 곤충 채집을 위해 황량한 땅으로 떠난 한 남자가 모래 구덩이 속 마을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기묘하고도 묵직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소설이다. 기이한 설정 속에 인간 실존의 불안, 억압과 자유, 균질화된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흠뻑 담겨 있다. 타인의 빛나는 개성은 회색 종족에게 자신의 결핍, 즉 무채색의 단조로운 삶을 비추는 잔인한 거울이다. 소설은 자신의 고유한 색을 찾기보다 회색에 섞여 안주하려는 이들에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도록 촉구한다. 소설은 1964년 테시가하라 히로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는데 원작자인 작가가 직접 각본을 담당했다. 흑백 영상 속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 언덕과 그 질감이 원작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책 속 한 문장 “회색 종족은 자기 이외의 인간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회색 이외의 색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윤주호 / 희곡 당선자◇파수꾼/이강백 지음·지만지드라마좋은 희곡은 등장인물 수만큼 다른 이야기를 숨기고 있고 그래서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힌다고 배웠다. 이강백 선생님의 ‘파수꾼’을 다시 읽었다. 베테랑 파수꾼인 ‘나’는 수습 파수꾼인 ‘다’를 반기며 “넌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 꿈, 나를 애태우는 갈증이란다. 이 황야의 한복판에서 난 너라는 꿈을 꾼다”라고 말한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이 말이 파수꾼 ‘나’의 자부심으로 들렸는데 이번에는 그의 두려움으로 들렸다. 파수꾼 ‘나’는 자신의 눈으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적을 존재의 의미로 삼으며 평생을 황야에서 홀로 살았다. 그런 ‘나’의 채워지지 않던 꿈, 애태우던 갈증, 혼자서 꾼 꿈은 무엇일까. 오늘 처음 본 ‘다’가 자신이 평생을 기다려 온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 확신은 어디서 온 걸까. 그 말을 들었을 때 ‘다’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작가는 “우화적인 희곡의 장점은 어떤 시간에 어떤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읽어도 언제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10년 뒤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면 그때의 나는 어떤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까. 파수꾼 ‘나’가 황야에서 홀로 꾼 꿈을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읽게 될 것인가.● 책 속 한 문장 “넌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 꿈, 나를 애태우는 갈증이란다. 이 황야의 한복판에서 난 너라는 꿈을 꾼다.”나혜진 / 동화 당선자◇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백선희 옮김·열린책들‘개미’를 통해 알게 되고 ‘파피용’을 접한 뒤 사랑하게 됐으며 ‘고양이’로 나의 시선을 한 번 더 끌어 끝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발한 상상력을 통하여 인간 사회를 보여주는 작가는 ‘파피용’에서도 적나라한 인간 사회를 보여 줬다. 책은 지구에 더 이상 살기 어려워지자 우주로 나가기 위한 나비 모양 우주선을 만들고 그것을 타고 떠나는 이야기다. 제목은 우주선의 이름. 주인공들은 파피용에서 1000년 동안 여행하게 되는데 그 속에서도 하나의 인간 사회가 만들어지며 여성 한 명, 남성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멸한다. 도착한 행성에서 여러 일이 있고 난 뒤 유일하게 남은 남녀 한 쌍은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라고 말한다. 인간들이 지구를 망가뜨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해 탈출했고, 파피용 안에서도 인간들은 욕망을 좇다 망가졌다. 일을 벌여 망가뜨리기만 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인간 사회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본인의 선택에 대한 회피와 도망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작게는 개인의 선택에, 크게는 지구의 환경과 인간 사회에 대한 선택으로부터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 책 속 한 문장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김민성 / 시나리오 당선자◇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 지음·김진준 옮김·김영사‘쇼생크 탈출’과 ‘미저리’로 유명한 저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작가로서 성공하기까지 과정 그리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교통사고 이야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의 여러 장면을 전하는 에세이에 가깝다. 스토리텔링 작법이나 기술적인 문장 스킬보다 글쓰기의 진수를 전한다. 작가로서 그의 철학과 인생관이 잘 녹아 있는 책이다. 글쓰기가 정체된 작가뿐만 아니라 새로 글을 쓰고 싶은 이들이나 킹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에게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삶을 엿보는 쏠쏠한 재미를 준다. 독자뿐 아니라 작가들 사이에서도 필독서로 통한다. 저자와 나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힘겨운 글쓰기 여정을 묵묵히 지지해 준 아내의 존재다. 아직도 나는 아내의 굳건한 믿음이 필요한 미완의 작가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킹처럼 당당히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을 나의 아내에게 바칩니다!” 그날을 향한 나의 글쓰기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책 속 한 문장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정의정 / 문학평론 당선자◇랭스로 되돌아가다/디디에 에리봉 지음·이상길 옮김·문학과지성사푸코 평전 등을 펴내고 성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해 온 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 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새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자 계급의 가족을 떠났던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가족의 과거를 탐사해 나가는 여정을 떠난다. 저자는 고향 랭스로 가서 계급적, 성적, 지적 정체성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상황을 응시한다. 저자의 자기 탐구는 내가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시절,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게 했던 주제다. 졸업 논문을 쓰며 전세 대출도 받아야 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할 때마다 내 처지는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진 ‘무소득자’로 정리됐다. 아버지는 예순이 넘어서도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했다. 어머니는 늘 실업 위기 속에 있었다. 나는 우리 부모 세대보다 무언가 나아져야만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문학 세미나에서는 노동에 대해 말하지만 나는 노동자 계급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퀴어한 엘리트’가 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마치 노동에 대해서는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군다. 나는 뭘까? 이때 읽은 책이다.● 책 속 한 문장 “내겐 ‘불평등’이라는 말조차, 착취라는 적나라한 폭력의 실상을 현실감 없게 만드는 완곡어법처럼 비친다.”문은혜 / 영화평론 당선자◇프랑켄슈타인/메리 셸리 지음·김선형 옮김·문학동네소설이 주는 통찰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각자가 괴담을 쓰는 겁니다”라는 바이런의 제안으로 네 명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열아홉의 나이로 메리 셸리는 공상과학소설인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한다. 공상과학소설 장르는 단순히 공상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합리적 상상력과 알레고리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도록 하는 미학적 장르로 진리의 파편을 드러낸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은 이상만 추구하던 무책임한 과학의 산물이다.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버려진 괴물, 사랑을 갈구한 아담으로서 무모한 과학실험이 불러온 재앙을 경고한다. 생명복제 기술이 사회적 합의보다 훨씬 앞선 오늘날 사회에서 생명에 관한 책임은 어떠해야 하는지, 교육과 양육이 개인의 도덕 발달에 미치는 영향, 이질감이 주는 혐오와 편견 등에 관하여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책 속 한 문장 “제발 프랑켄슈타인, 다른 사람한테는 잘해주면서 나만 짓밟지 말아 주시오. 나는 당신의 정의를, 당신의 너그러움과 애정을 받아야 마땅하오.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잖소.”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씨가 생전에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MBC는 30일 ‘유족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고인은 동료 기상캐스터 2명으로부터 업무와 관련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글을 원고지 17장 분량으로 작성해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휴대전화에선 2022년 3월부터 괴롭힘을 당한 고인이 숨지기 전에 MBC 관계자에게 피해를 알렸다는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과 모바일 메신저 대화 등도 발견됐다고 한다. MBC는 이와 관련해 28일 입장문을 내고 “고인이 자신의 고충을 담당 부서나 관리자에게 알린 적은 없었다”며 “유족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면 MBC는 빠른 시간 내에 진상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30일 “MBC가 이번 사건을 MBC 흔들기라며 언론 탄압처럼 호도하는 것은 고인을 모독하고 유족에게 상처를 주는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도 29일 “MBC는 유족에게 요구할 게 아니라 먼저 사실 확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비판했다. 유족 측은 앞서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인의 일부 동료 직원들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MBC에 사실관계 확인 요청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조사하고 진정 어린 사과 방송을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MBC 전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씨(사진)가 생전에 직장에서 괴롭힘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족은 고인의 일부 동료 직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고인은 MBC 기상캐스터로 근무하던 시기에 2명으로부터 업무와 관련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유서를 원고지 17장 분량으로 휴대전화 메모장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해당 글에는 고인이 2021년 5월 MBC 기상캐스터가 된 뒤 2022년 3월부터 괴롭힘 대상이 됐다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숨지기 전에 MBC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기록도 휴대전화에서 발견됐다고 한다.논란이 커지자 MBC는 28일 입장문을 통해 “고인이 프리랜서 기상 캐스터로 일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담당 부서나 함께 일했던 관리자들에게 알린 적은 없었다”며 “유족이 새로 발견됐다는 유서를 기초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면 MBC는 최단 시간 내 진상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하지만 해당 입장문에서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고 밝힌 대목 등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30일 소셜미디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삶의 터전인 직장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회악이기에 반드시 추방해야 한다”며 “고인이 ‘회사에 신고한 적이 없어서 조치할 수 없었다’는 MBC 주장은 무책임한 것으로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MBC가 이번 사건을 MBC 흔들기라며 언론 탄압처럼 호도하는 것은 고인을 모독하고 유족에게 상처를 주는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도 “MBC가 오요안나 씨의 죽음에 대해 전형적인 악덕 사업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MBC가 유족에게 고인이 신고했던 4명을 제시해 보라고 요구한 건 참으로 비열한 작태”라고 비판했다.한편 고인의 유족은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인의 일부 동료 직원들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MBC에 사실관계 요청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조사하고 진정 어린 사과 방송을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공자(孔子)의 역사서 ‘춘추(春秋)’를 조선시대 학자들이 정리한 해설서 ‘춘추좌씨전 규장각본’ 완역본(사진)이 처음 출간됐다. 동양학 및 한국학 인재 양성 기관인 유도회(儒道會) 소속 학자들인 윤종배, 김경태, 박찬규 3인이 23년에 걸친 작업 끝에 결실을 맺었다. 춘추(春秋)는 공자가 춘추전국시대였던 기원전 722년에서 기원전 481년까지 고향인 노(魯)나라를 중심으로 242년 동안 벌어진 사건을 편년체 형식으로 기록한 역사서다.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여러 해설서가 존재하는데, 공자의 제자인 좌구명(左丘明)이 해설을 붙인 게 ‘춘추좌씨전’이다. 춘추좌씨전 규장각본은 정조 21년(1797년) 당시 규장각에서 편찬됐다. 조선 학자들의 시각에서 다시 정리된 해설서란 점에서 역사적, 학문적 가치가 크다. 춘추좌씨전 규장각본은 두예의 ‘춘추좌씨경전집해(春秋左氏經傳集解)’를 주요 해설로 참고했으며, 완역본은 총 3권으로 구성됐다. 저자들은 “조선 학자들의 생각이 담긴 규장각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번역했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2022년 2월 멕시코시티 외곽에 있는 한 의류 공장엔 월마트로부터 계약 금액 100만 달러(약 14억3880만 원)어치의 옷 5만 벌 제작 주문이 들어왔다. 이전까지 많아 봐야 한 번에 1000벌 정도 주문이 들어오던 곳이었다.월마트는 원래 주로 중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각종 상품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월마트는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고 있었다. “미국과 바다로 분리된 한 나라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고, 육로 운송이 가능한 멕시코로 생산 공장을 선택한 것이다. 멕시코 공장주들에게는 경제 공급망 지형이 뒤바뀌면서 뜻밖의 행운이 돌아간 셈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행운은 과연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신간은 도널드 트럼프 1기부터 시작돼 팬데믹을 거치며 재편된 세계 공급망을 조명한 책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경제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우연히 한 사업자로부터 “항구 물류대란이 극심하다”는 얘길 듣고 이를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2020년부터 마스크, 생수, 생필품이 곳곳에서 동나는 상황을 보며 취재에 더욱 매진했다.책은 한 장난감 판매 사업자가 중국에서 생산한 상품을 미국 대도시 곳곳으로 운송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책의 장점은 공급망 재편이라는 주제를 숫자나 경제 지표 등을 나열해 설명한 것이 아니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웠다는 점이다.특히 선적할 배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생산업자, 높아진 해운료로 막대한 이득을 챙긴 해운업자들, 리쇼어링(생산시설의 자국 이전), 니어쇼어링(인접국 이전)을 고려하는 소규모 사업체 간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중국에서 양말을 생산하던 한 사업가는 트럼프 당선에 앞서 이미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 주목받았다. 딱딱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내 쉽게 읽힌다.장기화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무역 갈등 등으로 공급망은 언제고 크게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다소 이상적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으나, 저자는 “혁신과 경쟁을 촉진하고,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몫을 줄 수 있는 합리적 규제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어판 특별 서문에선 “미국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현대자동차의 미 조지아주 공장이 현명한 판단으로 기록될까, 미래 예측이 어렵다는 교훈이 될 것인가”라고 묻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헌법재판소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가 통과시킨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23일 재판관 4 대 4 의견으로 기각했다. 탄핵안이 인용되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 위원장은 선고 즉시 직무에 복귀했다. 헌재는 23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선고기일을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조한창 정계선 재판관 임기가 1일 시작되면서 헌재가 ‘8인 체제’로 구성된 후 내려진 첫 선고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방통위 법정 인원인 5인 중 2인의 방통위원만 임명된 상황에서 이 위원장이 KBS와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이사 선임안을 의결한 행위가 방통위법 위반인지 여부였다.기각 의견을 낸 김형두·정형식·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재적위원은 방통위에 적을 두고 있는 위원을 의미한다”며 “이 사건 의결 당시 재적위원은 이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2인뿐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적위원 전원 출석 및 찬성으로 이뤄진 의결이 방통위법상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은 법규범의 문리적 한계를 넘는 해석”이라며 “2인에 의해 의결을 한 것이 방통위법 13조 2항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13조 2항은 ‘위원회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내용이다. 이 때 재적 위원은 방통위원 5명 전원이 임명된 것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반면 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계선 재판관은 “적법한 방통위 의결을 위해서는 3인 이상의 위원이 재적해야 한다”며 인용 의견을 냈다. 이들은 “2인 위원만이 재적한 상태에서는 방통위가 독임제 기관처럼 운영될 위험이 있는 바, 이는 방통위를 합의제 기관으로 설치한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우선 국회에 방통위 위원 추천을 촉구하는 등 ‘2인 체제’ 해소를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의) 법 위반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통해 간접적으로 부여된 국민의 신임을 박탈해야 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헌재 결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회에서 방통위원을 임명하지 않더라도 2인으로도 최소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판단을 내려준 의미 있는 결과”라며 “헌법과 법리에 따라 현명하게 결론을 내려준 헌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직무 정지 174일 만에 복귀해 방통위로 출근했다. 방통위는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복귀로 산적한 주요 안건 의결 등 현안 처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위원장은 이날 선고 뒤 정부과천청사를 찾아 간부 회의를 소집하는 등 곧바로 업무를 재개했다.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거론되는 건 지상파 방송 재허가와 해외 빅테크 과징금 부과 건이다. 여야 반응은 엇갈렸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탄핵 기각으로 이재명 세력의 탄핵 남발, 입법독재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반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당 위원들은 “이진숙 파면을 기각한 것이지 방송 장악을 하라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