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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에서 한국과 호주만큼 많은 공통점을 가진 나라도 없습니다. 중견국인 두 나라가 협력해 국제사회의 다자주의 질서를 만드는 일을 주도해야 합니다.” 지난달 11일 부임한 캐서린 레이퍼 신임 주한 호주대사(51)가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강대국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중견국 동맹(middle-power alliance)’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인간의 삶에서 친구가 필요하듯 국가도 더 많은 동맹과 우방을 필요로 한다. 두 나라는 서로 믿을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중 갈등,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으로 국제 정세가 전환점을 맞은 지금 양국이 협력해서 대처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비상주 북한 겸임대사인 레이퍼 대사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대화 노력을 지지한다”며 “북핵은 아시아태평양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인 만큼 호주 역시 CVID가 이뤄지도록 여러 동맹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레이퍼 대사는 시드니대 법학 학사, 모내시대 외교통상학 석사로 1994년 외교부에 입부한 27년 경력의 직업 외교관이다. 주대만 호주대표부 대표, 유럽 및 중남미국 국장, 외교부 내 코로나19 대응총괄팀장을 역임했고 한국에서 처음 ‘대사’ 직함을 달았다. 그의 전임자 17명은 모두 남성이다. 외조부가 6·25전쟁 참전용사인 레이퍼 대사는 “1961년 수교관계를 맺은 양국이 수교 60주년을 맞은 올해 참전용사의 손녀인 내가 최초의 여성 대사로 부임해 영광”이라면서도 “여성 대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오면 더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과 호주의 협력이 왜 중요한가. “양국은 모두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 언론 자유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또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견국 지위에 맞는 공공외교를 추진하고 그에 맞는 역할도 수행해 왔다. 그 예가 2013년부터 외교안보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양국 외교 및 국방장관이 격년제로 만나는 ‘2+2’ 회의 개최다. 역시 같은 해부터 양국과 멕시코 터키 인도네시아 등 5개국이 참여한 ‘믹타(MIKTA)’ 협의체도 출범시켰다. 호주는 이달 중 한국으로부터 믹타 의장국 지위도 넘겨받는다. 무엇보다 강대국이 즐비한 아시아태평양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 역내의 급격한 군사 현대화 움직임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중견국 동맹이 절실하다.” ―현실적으로 중견국 외교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최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6월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 호주, 인도 등 3개국을 초청했다. 강대국 역시 중견국과 다자주의 질서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 또 최근 많은 나라가 외세의 정치적, 경제적 강압에 직면하고 있다. 자국 정치를 위해 타국에 경제 압박을 가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럴 때일수록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을 확대하며 스스로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권과 국익을 수호할 수 있다. 중견국이 힘을 합치면 외세 강압에 영향을 받지 않고도 번영을 구가할 수 있고 원칙에 입각한 국제 질서를 수호할 수 있다. 서로 책임을 나누어서 지고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호주 또한 ‘자유롭고 열린 태평양’ 개념을 중시한다. 왜 중요한가. “아시아태평양 주요국이 누리는 번영, 즉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근간이기 때문이다. 역내를 자유 법치 시장경제 등 공통 가치를 중시하는 장(場)으로 규정하고 관련국이 국제 질서와 규범에 근거한 협력을 추진하려면 자유롭고, 열려 있으며, ‘포괄적(inclusive)이고 회복력 있는(resilient)’ 태평양이어야만 한다. 2014년 발효된 한국과 호주의 자유무역협정(FTA), 지난해 11월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같은 경제 협력 체계 또한 이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 또한 미국과 안보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착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책임론 공방, 미국 호주 일본 인도 4개국 협의체 ‘쿼드’, 호주산 상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 부과 등으로 호주와 중국의 갈등이 불거졌는데…. “호주가 내리는 모든 결정의 기준점은 우리가 수호하는 가치와 국익에 달려 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경제적 압박 때문에 못 하는 일은 없다. 모든 나라가 비슷할 것이다. 더 많은 국가가 이에 근거한 결정을 내릴 때 세계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비상주 북한 겸임대사도 맡고 있다. “북한의 CVID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대화 노력을 지지한다. 호주는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전략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한국은 더 많은 동맹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호주가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다. 몇몇 직원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경험을 들려줬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나도 방문하고 싶다.” ―한국과 호주의 경제협력을 어떻게 강화해야 할까. “FTA 발효 후 한국은 호주에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을, 호주는 한국에 천연자원과 농산물 등을 수출해 왔다. 부임 후 한국 상점에 호주산 와인이 즐비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이처럼 양국이 강점을 지닌 분야가 다른 데다 최근 친환경 산업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양국은 특히 ‘수소경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호주는 수소 생산의 원료인 갈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각종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한국은 자동차 산업의 선진국이어서 양국이 협력하면 신재생에너지, 수소차 등 미래 산업을 선도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제약 및 생명과학산업이 각광받고 있는데 이 분야의 선진국인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 ―양국의 경제 협력 정도에 비해 문화 교류는 조금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호주에도 한국 드라마와 가요 팬이 많다. 친구가 ‘한국 대사로 가면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한다’며 ‘사랑의 불시착’을 소개했다.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이었고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호주의 6·25전쟁 참전 등 양국 공통의 역사를 기릴 수 있는 전시회, 서울시립미술관과의 호주 현대미술전 공동 주최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수교 60주년 기념 로고도 공개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구석구석을 방문하고 많은 한국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2014년 4월 토니 애벗 전 총리의 방한을 마지막으로 7년째 양국 지도자의 공식 방문이 이뤄지지 못했다. “최초의 여성 총리인 줄리아 길라드 전 총리가 집권 첫해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 한국을 방문했을 정도로 양국 지도자의 교류가 활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애벗 전 총리의 방한 7개월 후 G20 참석차 호주를 찾았지만 공식 답방은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한국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할 차례다. 코로나19가 빨리 끝나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중 호주에 오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임 직전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담당했다고 들었다. “각국이 방역을 위해 무엇을 하고, 하지 않는지, 어떻게 해야 경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간추렸다. 이를 통해 한국과 호주가 방역 정책에서도 유사한 점이 많음을 알았다. 양국 모두 전국 단위의 전면 봉쇄를 실시하지 않았는데도 감염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피해가 많은 일부 지역에 국한된 봉쇄, 입국자에 대한 2주 자가 격리 의무화, 재택근무 장려, 방역 동참의 중요성을 적극 홍보한 결과라고 본다.” ―1남 1녀를 둔 워킹맘이다. “역시 공무원인 남편이 미국, 네덜란드, 스위스, 대만 등에서 근무할 때마다 내 부임지로 따라와 양육과 가사를 도왔다. ‘워킹맘’ 표현이 일상화했듯 더 많은 남성이 ‘워킹파더’임을 자각하고 행동할 때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미래 세대에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사 머리스 페인 외교·여성장관, 린다 레이놀즈 국방장관 등 스콧 모리슨 현 내각의 주요 각료가 모두 여성이다. 각국의 여성 지도자가 늘어나는 것 역시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미약하지만 최초의 여성 주한 호주대사인 나 또한 누군가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여성 대사가 더 이상 화제가 아닌 시대가 와야 하지 않을까.”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 1970년 호주 시드니 출생, 시드니대 법학 학사, 모내시대 외교통상학 석사, 호주국립대 법률실무학 석사△ 1994년 외교부 입부△ 2010∼2012년 주미국 호주대사관 통상공사△ 2014∼2017년 주대만 호주대표부 대표△ 2018∼2020년 유럽 및 중남미국 국장△ 2020년 외교부 코로나19 대응총괄팀장△ 2021년 1월 11일∼현재 주한 호주대사(비상주 북한 겸임대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미국은 젊은 나라다.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 기준 3억3000만 인구의 중위연령이 38.1세로 주요국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일본(47.3세), 독일(47.1세), 이탈리아(44.4세), 캐나다(42.2세), 한국(41.8세), 프랑스(41.4세) 등과 비교하면 미국의 젊음이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정치 분야의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3일 개원한 117대 의회에서 상원의 평균연령은 64세, 하원은 58세다. 1981년 시작한 97대 의회에서 이 수치는 각각 53세와 49세였다. 불과 40년 만에 의회가 10년 늙은 셈이다. 양당 지도부는 어떨까. 권력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은 모조리 70, 80대다. 20일에는 미 역사상 최고령인 79세 대통령까지 취임한다. 노년층이 사회 전반을 장악해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는 정치체제를 뜻하는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란 용어가 최근 미 언론지상을 장식하는 이유다. 뉴리퍼블릭 같은 진보성향 매체는 아예 “미국이 노년 페티시에 빠졌다”는 신랄한 비평까지 내놨다. 제론토크라시가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고령화와 평균수명 연장이 낳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고 고령자 권익을 보호하며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일 같은 긍정적 의미의 ‘어르신 정치(senior politics)’가 사라지고 극소수 기득권 고령자의 의제만 과하게 대표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데 있다. 오래전 계층이동의 사다리에 올라타 ‘용’이 된 장노년층이 젊은 가재, 붕어, 개구리가 승천할 사다리를 치우는 데 직간접으로 일조하거나 방관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던 지난해 5월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Z세대(1997∼2012년 출생자)의 절반이 “코로나19로 실직하거나 급여가 줄었다”고 했다. 밀레니얼세대(1981∼1996년생)의 40%도 가세했다. 베이비붐세대(1946∼1964년생)의 25%와 대조적이다. 그런데도 이후 유명 장년 정치인 중 청년실업 대책을 내놓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2일 매코널 대표와 펠로시 의장의 자택에는 ‘내 돈 내놔라’ ‘2000달러’ 같은 낙서와 가짜 돼지 피가 등장했다.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지난해 12월 29일 코로나19 현금지급액을 당초 양당이 합의한 600달러에서 2000달러로 늘리려는 시도를 저지하자 일부 시민이 양당 1인자의 집에 몰려간 탓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각각 재산이 최대 2500만 달러, 58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의회 내 대표적인 자산가다. 의회 입성 시기도 각각 1985년과 1987년으로 비슷하다. 정치인 집을 훼손한 일은 비판받아 마땅하나 미 사회 전반에 ‘당적에 관계없이 30, 40년간 중앙정계에서 호의호식한 당신들이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서민의 심정을 어찌 알겠느냐’는 분노가 흐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노인 중심의 권력구조는 그 특성상 세대 갈등 및 양극화 심화, 국가경쟁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미국에서도 2019년 기준 밀레니얼세대 인구가 7212만 명으로 베이비부머(6956만 명)보다 약 260만 명 많지만 경제 권력은 여전히 베이비붐세대가 쥐고 있다.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평균연령은 58세로 2006년보다 14세 높아졌다. 20년 전 미 전체 노동인구의 15%를 차지했던 55세 이상 근로자의 비율도 30%로 증가했다. 서유럽 선진국 중 국가부채, 청년실업률 등이 가장 높은 이탈리아, 한때 미국과 함께 세계를 호령했던 옛 소련의 몰락 또한 각각 2000년대, 1980년대 연이어 고령 지도자가 집권한 여파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2015년 44세에 최고권력자에 오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당시 남녀 동수 내각을 출범시킨 후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게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고 일갈했다. 6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늙은 사회를 바꾸는 일보다 시급한 과제는 없다고 외친 트뤼도의 일성은 아직 유효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올해 9월 맥스 로즈 미국 뉴욕주 하원의원이 같은 민주당 소속의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을 ‘역사상 최악의 시장’으로 규정한 15초짜리 광고를 선보였다. 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동안 외식업계는 고사하고 코로나19 피해 또한 커졌다며 역대 시장 109명 중 가장 무능하다고 혹평했다. 정치광고의 천국 미국에서조차 동료 당원을 이 정도로 세게 비판한 사례는 드물어 화제를 모았다. 2014년 1월 취임한 더블라지오 시장은 835만 시민을 보유한 미 최대 도시의 재선 수장임에도 내내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 방귀와 검은 땀 논란으로 이미지를 구겼지만 1994∼2001년 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는 악명 높은 뉴욕의 강력범죄를 척결했다. 후임자인 억만장자 3선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폐철로와 폐공장을 각각 새 랜드마크인 하이라인파크와 첼시마켓으로 바꾸는 친환경 재개발 등으로 찬사를 받았다. 블룸버그가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것도, 줄리아니가 2000년 대선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군에 올랐던 것도 시장 재직 시 치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블라지오의 대표 정책은 ‘교육 평등’이다. 취임 첫해부터 영어와 수학 시험으로만 선발하던 스타이브슨트, 브루클린텍 등 시내 8개 특수공립고 입시를 중학교 성적과 출석 등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늘렸던 미국판 자율형사립고 차터스쿨에 대한 지원도 대부분 없앴다. 특수고와 차터스쿨의 백인 및 아시아계 비율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겉으로 인종 다양성을 내세웠지만 첫 선거 때 흑인(96%)과 라틴계(82%)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점을 의식해 이들 입맛에 맞는 정책을 내놨다는 비판이 거셌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며 교육의 하향평준화만 야기할 뿐이란 지적 속에 입시 개편안을 철회했지만 그의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또한 그는 공립학교의 전면 무상급식을 도입하고 사회 약자에게 교통권과 각종 지원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취지는 좋았지만 재정난이 심각해졌다. 코로나19까지 덮친 올해 9월에는 주정부에 50억 달러의 구제금융까지 신청해야 했다. 시민단체 CAGW 또한 방만한 재정 운용 등을 질타하며 그를 역사상 최악 시장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시의 핵심 산업인 금융계의 탈(脫)뉴욕 기류다. 최근 대형 사모펀드 블랙스톤과 엘리엇, 얼라이언스 자산운용 등은 세금과 각종 비용이 싼 플로리다와 테네시 등으로 이전할 계획을 밝혔다. 특히 재무장관만 4명을 배출한 ‘월가 간판’ 골드만삭스 또한 핵심 부서인 자산운용 사업부의 플로리다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골드만이 뉴욕을 떠나면 세수, 일자리 등에 타격이 불가피한데도 금융허브 위상 강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지역방송 NY1이 조사한 그의 직무수행 지지율은 49%로 첫 선거(73%)와 두 번째 선거(67%)의 득표율보다 훨씬 낮다. 떨어진 인기를 반영하듯 내년 11월 시장 선거를 1년 앞두고도 벌써부터 30여 명의 후보가 출마 의사를 밝히거나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현직 시장이 프리미엄을 누리기는커녕 최약체에 가깝다는 현실이 경쟁자의 잇따른 출마를 부추긴 것이다. 특히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기본소득을 주창해 큰 주목을 받은 대만계 기업가 앤드루 양은 정식 출마 선언을 안 했는데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등록 유권자의 약 70%가 민주당원인 뉴욕에서는 실제 선거가 아닌 내년 6월 민주당 후보경선이 사실상의 본선으로 꼽힌다. 즉 당내 경선만 통과할 수 있으면 업무수행 능력이 출중하지 않아도 시장으로 뽑힐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흑인 부인과 결혼한 더블라지오 시장 또한 결과적으로는 전체 유권자의 54%에 달하는 라틴계와 흑인 유권자의 몰표로 재선에 성공했다는 평이 적지 않다. 아직 그가 3선 도전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정파 이념과 인종 배경에 기인한 승리가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모르나 결국 유권자 또한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해주는 후보를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전투 임무에 여성을 쓰려고 해병대를 만든 게 아니다. 체력 기준을 낮출 여유가 없다.” 2013년 제임스 에이머스 당시 미국 해병대사령관이 여성에게 전투병과 보직을 전면 개방하려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공개 비판하며 한 말이다. 상당수 남성 군인 또한 전쟁 현실을 도외시한다며 불만을 표했다. 찬반양론이 거셌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이 장벽을 허물었다. 7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최초의 여성 국방수장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인사 결과야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지만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 태미 더크워스 상원의원,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 등 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방장관 하마평에 오르는 후보가 다 여성이다. 최강대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미 국방부는 군인과 민간인 합계 직원만 286만 명, 연 예산이 7215억 달러(약 800조 원)에 달하는 공룡 부서다. 1947년 설립 후 28명의 남성 장관만 거쳐 갔고 여성 차관조차 드물었던 보수적인 곳에 성별이 다른 최고책임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미국에서 여성 국방장관 논의가 이제야 이뤄진다는 점이 이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인도는 1975년 여성 국방수장을 배출했고 캐나다(1993년), 프랑스(2002년), 일본(2007년), 독일(2013년), 이탈리아(2014년), 호주(2015년) 등과 비교해도 늦다. 2020년 11월 현재 기준으로도 독일 프랑스 스페인 호주 인도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국방수장이 모두 여성이다. 특히 독일 프랑스 스페인은 현 장관의 전임자 또한 여성이었다. 이들의 절대 다수는 군 복무 경험이 없고 장관이 되기 전 의사, 법조인, 관료 등 아예 다른 직업을 가졌다. 그런데도 왜 각국에서 속속 여성 국방장관이 탄생할까. 물론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가 가장 큰 요인이겠으나 이에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사안이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의 일상화다. 해킹, 가짜뉴스, 거짓정보 등이 기존 무기 못지않은 파괴력을 지니고 정규군과 비정규군, 군인과 민간인, 전시와 평상시의 구분이 사라진 현대전의 양상을 일컫는 용어다. 재래식 무기와 해킹 등 전통 전쟁에서 잘 쓰이지 않았던 행위를 더해 적을 공격한다는 의미에서 복합 전쟁, 비(非)대칭 전쟁으로도 불린다. 대표적 예가 올해 9월 27일 시작돼 이달 10일 끝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이다. 양측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국 병사가 희생되는 장면을 여과 없이 공개하며 자국민의 전투 의지를 자극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려 애썼다. 또한 두 나라 모두 드론을 주요 무기로 썼다. 인구와 군사력에서 앞서는 데다 성능이 우수한 터키제 드론을 앞세운 아제르바이잔은 공중에서 아르메니아 탱크와 보병 전투차량을 무참히 분쇄했다. 손쓸 틈 없이 당한 아르메니아는 실효 지배하던 땅의 상당 부분을 넘겨줘야 했다. 즉, 21세기 전쟁의 성패는 양측 군인 간의 지상 총력전이 아닌 사이버 여론전, 드론 등 최첨단 정보기술(IT)이 좌지우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군인을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기존의 교육 및 훈련 방식으로는 현대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며 완전히 새로운 사고와 발상의 대전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사격 훈련 한번 해보지 않은 여성 국방수장의 탄생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러 이해관계자의 미묘한 심리 분석, 국제공조 구축, 민간인과의 협력 강화 등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늘어났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인류학계의 명저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역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미 국방부가 대(對)일본 심리전을 위해 요청한 자료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베네딕트는 평생 일본을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지만 자살특공대 가미카제 등 서구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의 정서를 현미경처럼 낱낱이 해부해 미국의 승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세밀함이 전쟁 승리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자, 여성 국방장관 전성시대를 이미 70여 년 전 예고한 신호가 아니었을까.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2015년 7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도중 당시 69세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60세의 3선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유치원생도 안 할 유치하고 졸렬한 싸움을 벌였다. 2008년 대선후보 존 매케인의 정치적 아들로 꼽혔던 ‘주류’ 그레이엄은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레이엄이 트럼프를 ‘내가 본 가장 멍청한 인간’이라고 혹평하자 트럼프는 ‘미치광이’로 응수했다. 급기야 그레이엄의 지역구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찾은 트럼프는 유세장에서 앙숙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해 버렸다. 트럼프 지지자의 비난 문자가 쇄도하자 그레이엄 역시 전화를 믹서에 갈고 골프채 목검 식칼 등으로 내리치는 동영상을 제작해 뿌렸다. 누가 봐도 타격 대상은 전화가 아닌 트럼프였다. 이랬던 둘의 관계는 트럼프 집권 후 극적으로 변했다. 그레이엄은 두 차례의 대통령의 탄핵 위기 때 공화당 어떤 의원보다 적극적으로 엄호에 나섰다. 늘 주군의 직무수행 능력과 유머 감각을 칭송했고 그 옆에서 ‘내가 이 순간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낯간지러운 말까지 했다. 민주당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란 이유를 대긴 했지만 정치는 생물이며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음을 보여줬다. 그레이엄의 참전용사 선배이자 정치 멘토인 매케인은 2018년 타계할 때까지 끝내 트럼프와 화해하지 않았다. 반면 그레이엄은 트럼프 집권 1기 내내 대통령의 복심 노릇을 하며 정계 실력자로 군림했다. 언론은 늘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하고 같이 골프를 즐기는 그를 트럼프의 ‘보컬 서포터(vocal supporter)’로 불렀다. 말 그대로 높은 목소리를 내는 요란한 지지자란 뜻이다. 하지만 다음 달 3일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그레이엄 역시 같은 날 상원 선거에서 본인의 4선이 위태로운 상황에 몰렸다. 몇 달 전만 해도 70%가 넘는 지지율로 흑인 법조인 출신인 40대 정치 신예 제이미 해리슨 민주당 후보에게 넉넉히 앞섰지만 최근 조사에서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선거자금 모금은 오히려 크게 뒤져 막판 선거전에서 쓸 실탄이 부족한 상태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백인 보수층이 많은 미 남동부를 뜻하는 ‘딥사우스’의 핵심 지역으로 아직도 스스로를 ‘미국인’ 이전에 ‘남부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2015년 공화당 소속 니키 헤일리 당시 주지사가 공공장소에서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상징이었던 남부연합기를 퇴출할 때도 거센 반발이 있었다. 또 매케인, 밋 롬니, 밥 돌 등 백악관 주인이 되지 못한 공화당 대선후보조차 이곳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쉽게 이겼을 정도로 공화당 텃밭으로 꼽힌다. 이런 곳에서 집권당 중진이 야당의 무명 정치인에게 고전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리슨 후보는 그레이엄을 공격할 때 주(州) 내 경제 상황 등이 아닌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차별 정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 등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트럼프 아바타를 몰아내자”는 식이다. 반박하자니 지난 4년간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었던 게 사실이라 “나와 대통령은 다르다”고 받아치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즉 대통령과 거리가 가까울수록 특정 정치인이 누릴 수 있는 권력도 커지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브랜드는 휘발되고 대통령 수족이라는 이미지만 남는다. 주군의 인기가 높을 때는 큰 상관이 없으나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면 이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본인의 정치 생명마저 갉아먹는다. 아직은 그레이엄 의원의 4선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를 알 수 없다. 만약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그가 낙선하면 그레이엄이 어떤 말을 할까. 이번에는 ‘가장 멍청한 인간’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여파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잃는다면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사람이 그레이엄 혼자만도 아닐 것이다. 인기를 잃은 권력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야당도 언론도 아닌 당내 반대파이며 어떤 권력자의 인기도 영원하지 않음을 역사가 보여준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2014년 3월 미국 진보 성향 법학자 어윈 처머린스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법과대학원 교수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도발적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을 존경하지만 민주당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후임자를 뽑아야 한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잃을 수 있고 2년 후 대선에서 패할 수도 있다. 올여름 사퇴해 달라”고 썼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긴즈버그가 신봉해온 가치와 완전히 다른 이념을 지닌 이가 대법관에 뽑혀 미 사회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크니 본인의 신념을 위해서라도 지금 물러나라는 호소였다. 당시 처머린스키 교수 말고도 진보 진영에서 이런 주장을 펴는 인사가 적지 않았다. 본인이 사퇴를 거부하면 대통령이라고 해도 미 헌법이 보장한 대법관의 종신 임기를 바꿀 수 없으니 스스로 용단을 내리라는 압박이 상당했다. 긴즈버그는 여성지 엘르 인터뷰를 통해 “내가 물러난다 해도 대통령이 나 같은 사람을 또 임명할 것이란 생각은 잘못됐다”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자신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당당함의 발로였다. 그는 이달 18일 타계할 때까지 대법관으로 재직하며 종신(終身) 임기를 지켰다. 하지만 자신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이가 후임으로 지명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재집권 첫해인 2013년부터 긴즈버그의 사퇴를 내심 바랐다. 1993년 60세로 대법관에 오른 그가 이미 20년을 봉직했고 수차례 암 수술을 받아 건강 우려도 큰 만큼 젊고 건강한 진보 성향 대법관으로 대체하겠다는 속내가 강했다. 민주당 중진이자 긴즈버그와 가까운 패트릭 레이히 상원의원을 보내 이런 뜻을 전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대법관 지형이 보수 우위로 바뀌면서 진보 진영 전체가 “하루라도 더 살아 달라”며 그의 장수를 기원했지만 오바마 시절에는 욕심이 과하다는 평가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4번의 암 수술과 수차례 낙상 사고에도 87세까지 종신 임기를 지킨 긴즈버그 대법관의 선택은 물론 존중받아야 한다. 자진사퇴 논란이 불경스럽게 느껴질 만큼 그가 미 사회와 세계 여성계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는 점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공공연히 반트럼프 성향을 드러내며 ‘새 대통령이 내 후임자를 지명했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긴 긴즈버그의 결정은 상원 다수당 위치를 이용해 평균 70일이 걸리는 대법관 인준을 약 한 달 만에 해치우려는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당파적이고 정치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미국은 국민의 기대수명이 38세에 불과했던 1776년 건국 당시 사법권 독립을 위해 대법관 종신제를 택했다.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 불릴 정도로 대법관 9명이 절대적 존경을 받고, 공화와 민주 양당이 집권할 때마다 최대한 많은 대법관을 새로 임명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 역시 개개인의 잘잘못이 아니라 종신제란 제도 때문이다. 2020년 현재 기대수명은 78.9세로 늘었고 18세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성소수자, 이민, 건강보험 등 각종 복잡다단한 문제도 속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1명이 3억3000만 명의 미국인을 대표할 9명을 고른다는 것, 미 대법원이 다른 나라와 달리 최종심과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동시에 지녀 이들의 판결이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낳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회 변화에 발맞춰 종신제 변화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공영 PBS방송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77%가 “대법관 임기를 제한해야 한다”고 답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워싱턴 정계에서는 ‘대법관 임기를 18년으로 정하자’ ‘대법관 수를 13명으로 늘리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4년 임기 중 단 한 명의 대법관도 지명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기간 벌써 3명의 대법관을 골랐다. 특정 대통령이 ‘운’에 의해 사법부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대법관 종신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져야 할 것 같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꿈에 나타나 두 가지 조언을 했다. “적을 모두 죽이고 크렘린궁을 파랗게 칠하라.” 푸틴이 물었다. “왜 푸른색이죠?” 스탈린의 답이 걸작이다. “첫째 조언은 반대하지 않을 줄 알았어.” 푸틴의 권위주의 통치 방식에 대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신랄하고 섬뜩한 비평이다. 블랙 유머로 치부하기엔 집권 20년간 사라진 그의 반대파가 너무 많다. 총격, 탈륨 및 폴로늄 중독, 폭발, 의문사 등 죽음에 이른 방식도 제각각이다. 민주주의 전통이 서구보다 약하다지만 러시아 역시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뽑는 21세기 문명국이다. 전제군주 시절이라 해도 군왕의 정적이 이 정도로 무더기 공개 암살을 당했다면 민란이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다. 현실은 어떨까. 되레 지지율이 오른다. 여론조사회사 레바다센터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푸틴의 8월 지지율은 66%로 올 들어 가장 낮았던 4월(59%)보다 높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 명을 넘고, 메르스 백신을 살짝 바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했다 우겨대고, 8월 한 달에만 알렉세이 나발니와 예고르 주코프 등 2명의 반체제 활동가가 테러를 당해도 최소 60%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는 의미다. 대체 왜? 가디언 등은 서방에 뒤처졌다는 ‘열등감’과 대국의 ‘자존심’을 동시에 지닌 러시아의 특성을 교묘히 이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포르투갈 등이 신대륙 탐험에 나서던 15세기 러시아는 제국(帝國)에 공물을 바치는 공국(公國)에 불과했다. 17세기 말∼18세기 초 표트르 대제가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이미 서유럽보다 200∼300년이 늦었다. 19세기에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지배층이 모국어 대신 프랑스어를 썼다. 이를 한 방에 날려준 사람이 레닌과 스탈린이다. 최초의 공산혁명을 주도했고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상당 부분이 영토로 편입됐고 국가는 개개인의 후견인 노릇을 했다. 표트르 대제에 이어 두 번째로 ‘위대한 러시아’의 자부심이 각인된 시기였다. 소련이 무너지고 친서방 노선을 편 ‘알코올 중독자’ 보리스 옐친이 권좌에 있던 1990년대는 악몽이었다. 국가 부도로 빈곤과 범죄가 만연했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은 추락했으며 체첸 등 소수민족 테러도 기승을 부렸다. 이 와중에 떼돈을 번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는 향락을 즐겼다. 이때의 악몽으로 러시아에는 ‘서방’ ‘민주주의’ 등을 가난, 혼란, 부패의 동의어로 인식하는 이가 적지 않다.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 등 푸틴의 정적은 대부분 옐친계여서 국민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들은 집권하자마자 올리가르히를 숙청하고 체첸과 마피아를 제압한 푸틴을 질서와 규율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그 과정에서 푸틴 정권이 자행한 각종 인권 침해를 모를 리 없지만 ‘러시아의 자존심을 살린 공이 과보다 더 크다’고 여긴다는 의미다. 푸틴 역시 ‘혼돈에 빠진 러시아를 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전략적으로 내세운다. 특히 스탈린 미화 같은 ‘역사 세탁’에 열심이다. 그는 2년 전 스탈린 탄생 140주년을 맞아 곳곳에 동상을 세우고 추모 행사를 열었다. “스탈린을 악마화하려는 시도는 러시아를 공격하려는 서방의 음모”라고도 주장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스탈린의 철권통치가 불가피했듯 서방의 인권 탄압 비판이 거세지는 지금 자신의 반대파 척결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7월 개헌을 통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할 기반을 마련한 그가 언제까지 권좌를 지킬까. 올해 68세인 그는 2018년 기준 러시아 남성의 평균 수명(66.4세)을 이미 넘어섰다. 그의 궁극적 목표가 레닌, 스탈린처럼 죽을 때까지 권좌를 지키고 사후 밀랍인형으로 안장되는 지도자로 남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변변한 야권 지도자 한 명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본인 건강만 유지하면 종신 집권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분명한 점은 영원한 권력은 없으며 종신 집권에 성공해도 그에 대한 평가가 찬양 일색은 아닐 것이란 사실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1975년 이혼소송 중이던 24세 미국 여대생이 33세 상원의원을 만났다. 남자는 3년 전 차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었고 당시 차에 동승했던 6세, 5세 두 아들을 돌보는 것을 힘겨워 했다. 남의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정치인 아내의 삶도 부담스러웠던 여자는 청혼을 네 번 거절했고 다섯 번째 청혼에서야 받아들였다. 1977년 결혼한 그는 아직까지 현역인 남편을 내조하며 딸을 낳았고 교육학 석박사와 영문학 석사 등 학위 3개도 땄다.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후보의 부인 질 여사다. 미 언론이 ‘바이든 박사(Dr. Biden)’로 표기하는 그는 정치인 배우자의 새 상(像)을 제시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2009년 남편이 부통령이 됐을 때 그는 유급 일자리를 가진 최초의 부통령 부인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남편이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을 지낸 워싱턴 정계의 실력자였음에도 교사란 본인의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독립 생계를 유지한 결과였다. 당시 30여 년간 공립 고등학교,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작문 등을 가르친 그는 학생들이 “바이든 의원과 무슨 관계냐”고 물으면 줄곧 “친척”이라고 했다. 2007년 56세에 박사 학위를 딸 때도 논문에 미혼 시절 성을 앞세운 ‘제이컵스-바이든’이란 이름을 썼다. 부통령 부인이 되자 4년제 명문대에서 출강 요청이 빗발쳤지만 “커뮤니티 칼리지가 좋다”고 응하지 않았다. 남편의 위상과 영향력을 감안할 때 세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한 그가 유무형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본인 의지 없이 남편 후광만으로 될 일도 아니다. 그는 공영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내 정체성은 교사이며 남편의 삶과 내 삶은 별개”라고 했다. 남편 또한 “취재진이 가득한 부통령 전용기에 탑승해서도 늘 시험 채점을 했다”며 아내의 독립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간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배우자로 각광받았던 유형은 ‘그림자 내조형’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지내니 구설에 오를 일도 없고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부시가(家)의 안주인인 미국 영부인 바버라 부시와 로라 부시 여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남편 요아힘 자우어 박사 등이 대표적이다. 정반대 지점에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이 있다. 그는 1993년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백악관 동관의 영부인 집무실을 남편 집무실이 있는 서관으로 옮겼다. 의료보험 개혁도 추진했다.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한다는 개혁안 취지에는 많은 이가 공감했지만 “선출직도, 의료 전문가도 아닌 영부인이 왜 설치느냐”며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결국 의회 통과에 실패했고 이때 형성된 ‘똑똑하지만 잘난 척하는 여자’ 이미지는 훗날 그의 대권 가도에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한다. 영부인은 물론 선출직이 아니다. 그렇다고 권력자 배우자의 영향력을 간과하는 것도 현실적이진 않다. ‘급’이 안 되면 모를까 역량과 의지가 있다면 뒤에서 베갯머리송사를 하게 놔두느니 공개 활동을 허용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실제 클린턴 전 장관의 의료 개혁안은 훗날 오바마케어의 뼈대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전대미문의 보건 위기까지 맞은 지금 이 법안이 나왔다면 훨씬 많은 지지를 얻었을 것이다. 바이든 후보가 백악관 주인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그가 권좌에 오르면 질 여사가 전공을 살려 교육 양극화 해소에 기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미 교육사령탑인 베치 디보스 장관은 53억 달러(약 6조4000억 원)의 재산을 지닌 자산가이며 취임 전부터 교육 민영화만 강조해 논란을 빚었다. 또 코로나19 재확산 위험에도 주군의 뜻을 받들어 각 학교에 9월 정상 개학을 밀어붙이느라 여념이 없다. 질 여사가 수십 년간 저소득층 공립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정치인 남편을 위한 표심 계산을 단 한 번도 안 했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표심을 위해 그 오랜 세월 동안 교사 직업을 유지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런 영부인이 미 교육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족벌 정치의 좋은 예로 남지 않을까. 최소한 클린턴 전 장관의 영부인 시절처럼 비전문가 논란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최근 야권으로부터 ‘서렌더 모디’로 조롱받고 있다. 각각의 머리글자인 ‘N’과 ‘S’를 제외하면 이름 나렌드라와 ‘항복(surrender)’를 뜻하는 영어 단어의 발음이 비슷해 붙은 별명이다. 야권은 지난달 15일 라다크 갈완 계곡에서 중국과의 국경 분쟁으로 최소 20명의 군인이 숨졌는데도 그가 중국에 저자세로 일관한다고 주장한다. 이달 3일 라다크를 찾은 모디 총리는 “팽창주의는 끝났다”며 말로는 중국에 엄포를 놨다. 현실적으로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힘의 외교’를 구사하는 중국에 맞설 카드가 많지 않다. 무엇보다 대중(對中) 경제 종속을 개선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힌두스탄타임스 등에 따르면 2019 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인도의 대중 무역적자는 487억 달러(약 58조4400억 원)였다. 사상 최고였던 2017년의 630억 달러 적자보다 나아졌는데도 약 60조 원을 밑졌다. 이 불균형은 전자제품, 중장비, 화학제품, 의약품 등 비싼 물품을 수입하고 농산물 등 싼 제품을 수출하는 구조에서 온다. 중국 제품에 높은 관세를 물린다 해도 적자를 줄일 여지가 많지 않다. 역시 중국에 농산물을 수출하는 미국 브라질 등은 대기업과 맞먹는 부농(富農)이 대부분이지만 인도 농가는 영세 소작농이 많아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모디의 2014년 첫 집권과 지난해 재선을 가능케 했던 제조업 육성책, 즉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가 좌초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그는 활발한 해외투자 유치 등을 통해 2014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14%였던 제조업 비중을 2022년까지 25%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2016년 미국 애플의 생산시설을 유치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내며 8.2%의 고성장을 구가할 때만 해도 인도가 중국을 능가하는 ‘세계의 공장’이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복잡한 토지 매입 절차,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고용 관행, 28개 주마다 다른 조세 체계, 더딘 일처리, 악명 높은 관료주의와 부패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인도 특유의 취약한 인프라가 성장의 한계로 작용한 것이다. 한국 포스코, 미국 월마트, 호주 BHP빌리턴 등 인도 진출을 시도했던 세계적 대기업이 줄줄이 포기를 선언한 이유다. 14억이란 거대한 내수시장은 매력적이나 일부 매장에서는 제품의 진열 및 판매 방식조차 고객의 카스트에 맞춰 응대해야 하는 현실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의미다. 세계 3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국이 된 인도의 상황은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4.2%를 나타냈던 인도 성장률이 올해 ―4.5%에 그쳐 1979년 이후 41년 만에 역성장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GDP 대비 제조업 비중 역시 아직 약 16%에 불과하고 실업률은 25%에 육박한다. 3월 말부터 이어진 석 달간의 코로나19 봉쇄, 4월부터 수도 델리 인근을 초토화시킨 메뚜기 떼의 공습 및 흉작 등으로 국민 불만 역시 하늘을 찌른다. 다급해진 모디는 5월 외자 유치 대신 내수 부양에 주력하겠다는 ‘자립 인도(Atmanirbhar Bharat)’ 캠페인을 들고 나왔다. 교역과 외자가 없어도 내수만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내수를 부양할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모디 정권은 줄곧 재정적자를 GDP의 3%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벌써 6%를 넘었다. 특히 ‘자립 인도’가 이란의 ‘저항 경제’와 유사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핵개발로 서방의 각종 제재에 직면한 이란 정부가 “내수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생필품 품귀, 물가 급등, 화폐가치 하락 등만 나타났다는 의미다. 이를 감안할 때 역설적으로 국경 분쟁이 일정 부분 모디의 통치 기반을 강화해주는 면이 있다. ‘이게 다 중국 탓’이라며 화살을 외부의 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난을 해결하지 않는 한 민족 감정만 자극하는 미봉책이 오래갈 리 만무하다. 지도자의 최우선 과제는 먹고사는 문제 해결임을 모디 총리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1842년부터 1997년까지 155년간 홍콩을 통치한 영국은 총 28명의 총독을 보냈다. 이 중 27명은 공식석상에서 견장과 칼이 달린 흰 제복, 즉 ‘윈저 유니폼’을 입었다. 주민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반환이 코앞으로 다가온 1992년 7월 부임한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만 달랐다. 제복을 거부하고 경호원 없이 길거리를 활보했다. 달동네, 정신병원 등 음지도 즐겨 찾았다. 무엇보다 부임 3개월 만에 중국의 격렬한 반대에도 선거개혁안을 밀어붙였다. 패튼이 오기 전 한국 국회 격인 홍콩 입법회 의원 70명은 간선제로 선출됐다. 그는 투표 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추고 270만 명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등 부분 직선제를 도입했다. 중국 관영언론이 ‘매춘부’ ‘머리 두 개 달린 뱀’으로 비난하고 영국 일각에서조차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패튼은 2017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총독 재직 당시 정신질환자로부터 “영국은 세계 최고(最古)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왜 홍콩인 의견을 묻지 않고 전체주의 정권에 홍콩을 넘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홍콩에서 받은 질문 중 가장 완벽했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홍콩 민주화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이는 그의 개인사와도 관련이 있다. 그의 부친은 아일랜드 출신의 무명 음악가였다. 또 가족 모두 가톨릭이었다. 입지전적 성공을 거뒀지만 패튼은 앵글로색슨 성공회 국가에서 일종의 ‘2등 시민’으로 사는 기분을 이해했다. 자신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지 않으면 중국에 넘어간 홍콩이 2등 시민은커녕 피지배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한 셈이다. 지금 홍콩 사람들이 누리는 실낱같은 민주주의와 식민통치 시절의 좋은 기억은 패튼의 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환 후 홍콩은 4명의 행정장관을 맞았다. 파란 눈의 외국인은 아니었지만 시민과의 거리는 패튼 때보다 멀었다. 초대 둥젠화(董建華) 장관은 공산혁명을 피해 홍콩으로 건너온 부모를 뒀지만 내내 중국 눈치만 보다 경질됐다. 이번에 논란이 된 국가보안법을 강행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도널드 창 장관은 퇴임 후 부패 혐의로 구속됐다. 렁춘잉(梁振英) 장관은 2010년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 평화상을 타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줘야 한다”는 말로 세계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2017년 7월부터 집권 중인 캐리 람 장관은 중국 입맛에 쏙 맞는 행보로 현 위치에 올랐다.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을 진압했고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를 탄압하는 와중에는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꼽았다. 일각에서 그를 ‘톈안먼 사태를 유혈 진압한 리펑(李鵬) 전 중국 총리의 재림’ ‘홍콩을 중국에 팔아넘긴 매국노’ 등으로 거칠게 비판하는 이유다. 그의 정무 감각과 ‘운영의 묘’ 또한 부족하다. 지난해 시위대의 요구 사항 중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 경찰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 조사 등은 굳이 중국의 ‘윤허’를 얻지 않아도 본인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람은 초강경 대응만 천명하다 시위대 기세에 눌려 송환법을 철회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에도 정치적 부담을 안겼다. 중국이 수차례 경질설이 제기된 그를 놔둔 이유는 예뻐서가 아니라 서방이 역이용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람 장관은 과거 지하철을 탈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고 “화장실 휴지가 떨어져 옛 관저에서 몇 통 가져왔다”는 어설픈 ‘서민 코스프레’로도 큰 비판을 받았다. 그는 올해 7월부터 지난해보다 2.4% 오른 521만 홍콩달러(약 8억24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야권이 경제난을 이유로 인상 철회를 요구했지만 거부했다. 홍콩 젊은이들은 살인적 집값과 빈부격차로 신음하지만 영국 국적을 지닌 그의 장남은 샤오미에 취직해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반환 직전 패튼 총독의 지지율은 70%에 육박했다. 국가보안법 논란이 일기도 전인 올해 2월 람 장관의 지지율은 9.1%였고 지금은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두 지도자에 대한 상반된 반응이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와 복고주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2014년 11월 미국 인디애나주 오스틴 지역에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발병했다. 마약 중독자가 대부분인 감염자들이 주사기를 공유해 인구 4200명의 작은 마을에서 들불처럼 HIV가 번졌다. 당시 주지사는 ‘마약 복용자가 깨끗한 주사기를 쓰면 HIV와 C형 간염의 발병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무시했다. 주사기를 보급하면 중독자만 늘어날 뿐이라는 본인 주장을 고집하며 주삿바늘 교체 의무화 명령을 질질 끌었다. 임산부 및 고령 환자가 등장하고 보건당국자들이 긴급사태 선포를 촉구해도 “감염자가 집에 가서 기도하면 된다”는 상식 이하의 발언을 했다. 그는 최초 발생 후 반년이 흐른 2015년 5월에야 ‘뒷북’ 바늘 교체를 명했다. 불과 30일짜리 한시적 조치였고 주 정부 예산은 안 쓴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미 인구의 5%가 넘는 215명이 감염됐다. 전문가들은 교체 명령이 빨랐다면 127명의 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고 개탄했다. 문제의 주지사는 최강대국의 2인자 겸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총책임자인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다. 폴리티코 등이 전한 이 사례는 과학을 불신하는 지도자가 그 어떤 바이러스나 질병보다 위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2000년 연방정부의 돈이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전환시키는 치료에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해 뒤 담배와 암의 상관관계도 부정했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지난달 28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대형병원을 활보해 큰 논란을 빚은 그의 행보가 단순 부주의였을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독실한 복음주의 개신교도인 그는 6선(選) 하원의원과 주지사를 거쳐 부통령에 올랐다. 정계 입문 후 내내 반(反)낙태·동성애 행보로 일관했다. 주지사 시절 낙태를 희망하는 여성이 반드시 사전에 초음파 검사를 받고 낙태 후 장례식까지 치르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연방대법원에서 가로막혔지만 굴하지 않고 수정란을 사람으로 인정하는 법 등 유사 법안을 발의했다. 의회에서 진화론을 부정하는 연설도 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인의 25%는 ‘최고 존재가 진화를 인도한다’고 믿는다.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로 규정한 유권자도 35%다. 집권 공화당 주류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후보를 거쳐 백악관 주인에 오른 이유 중 하나도 복음주의 유권자의 절대 지지를 받는 펜스를 부통령으로 골랐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종교적 신념은 물론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자연인이 아닌 지도자가 자신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대중에게 그 신념을 강조하는 건 다른 얘기다. 특히 보건 위기에 과학보다 종교를 우선시하면 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 인디애나 HIV 사태 때 펜스 주지사가 보인 행보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이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전문가 무시, 늦은 대처, ‘살균제 주입’ 같은 황당무계한 언급…. 둘의 차이는 한 사람은 ‘돈’, 다른 이는 ‘신념’에 의해 움직인다는 데 있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초기 코로나19 사태를 오판한 이유로 ‘중국의 손해가 미국에는 이익’이란 단순 논리에 기댔기 때문으로 본다. 특히 탈(脫)중국을 선언한 각국 대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재선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미국 사망자가 7만 명에 육박했는데도 전문가 경고를 무시하고 경제 정상화를 서두르는 이유 역시 그래야 재선 유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세계의 중심에 ‘돈’이 있다면 펜스에겐 ‘신(神)’이 있다. 그는 자신을 ‘기독교인, 보수주의자, 공화당원’ 순서로 소개한다. 이런 그가 내린 결정이 온전히 과학적 증거와 의료 전문가의 조언에 기반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올인할수록 코로나19 대응을 관장하는 부통령의 입지가 커진다. 세계 최대 감염국인 미국의 확산세가 끝나야 세계도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펜스의 행보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미 초대 부통령 존 애덤스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하찮은 자리가 부통령’이라고 자조했지만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영향력이 큰 부통령을 만난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1960년대 말 미국 뉴욕 퀸스의 저소득층 주거지 코로나가 들썩였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철자가 똑같은 이 동네는 이민자가 많은 특성상 현재 옆 동네 엘름허스트와 함께 뉴욕시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 됐다. 당시 낡은 집을 헐고 학교를 짓겠다는 당국에 몇 년째 반발하던 주민들은 1972년 시(市)가 분쟁조정 위원으로 뽑은 마리오 쿠오모란 변호사의 설득에 타협을 택했다. 이를 통해 명성을 얻은 그는 1983년 주지사가 됐다. 1991년 12월 20일 뉴욕주 주도(州都) 올버니 공항. 한 해 전 3선(選)에 성공한 쿠오모 주지사를 이웃 뉴햄프셔주로 데려갈 비행기가 활주로에 등장했다. 다음해 2월 민주당의 뉴햄프셔 대선 예비경선에 나서려면 이날 오후 5시까지 등록해야 했다. 지도부는 그의 등판을 원했다. 그는 1984년 전당대회에서 명연설로 이름을 날렸고 1988년에도 출마를 권유받았다. 또 뉴욕 주지사는 45명의 미 대통령 중 4명을 배출했을 정도로 부통령, 국무장관 못지않은 위상을 자랑한다. 49세 젊은 나이도 강점이었다. 쿠오모는 마감 90분을 앞두고 등록을 포기했다. 여행을 싫어하는 그는 1년 내내 미 전역을 떠돌며 허름한 숙소에서 쪽잠을 자고 지역 유지에게 아부하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그가 ‘뉴욕 소황제’에 안주할 때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뉴햄프셔 경선에서 깜짝 1위를 차지했다. 기세를 몰아 백악관 주인이 된 클린턴은 1993년 종신인 연방대법관직을 제의했다. 쿠오모는 워싱턴행을 망설이며 또 거절했다. 그 대타가 ‘미국의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리는 루스 긴즈버그 대법관이다. 폴리티코 등이 전한 일화는 쿠오모의 별명이 왜 뉴욕주를 관통하는 허드슨강에서 유래한 ‘허드슨의 햄릿’인지 보여준다. 본인은 장고 끝 묘수라 여겼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보신과 무사안일의 극치였다. 그는 4선에 실패했고 2015년 타계 전까지 어떤 공직도 맡지 못했다. 마리오 쿠오모가 대권 도전을 포기한 지 29년이 흐른 지금 그의 장남이자 역시 3선 뉴욕 주지사인 앤드루(63)가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부상했다. 11월 대선에 나설 후보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으로 사실상 굳어졌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앤드루는 전쟁터 같은 뉴욕의 상황을 가감 없이 알리고 ‘불평하고 싶으면 나를 탓하라’는 책임감 있는 태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매일 아침 기자회견을 2차 세계대전 당시 라디오 연설로 승전 의지를 북돋운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노변담화(爐邊談話)에 비유한다. 루스벨트 역시 뉴욕 주지사를 발판으로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에 올랐다. 평범한 가문의 여성과 결혼해 평생 해로한 부친과 달리 아들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 겸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딸인 인권운동가 케리와 15년간 부부로 지냈다. 케네디 전 장관은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이 사실상 확정됐던 1968년 6월 친이스라엘 행보에 불만을 품은 팔레스타인계 남성에게 암살됐다. 부친, 전 장인과 전 처삼촌이 대통령이거나 대권을 노렸던 만큼 앤드루의 백악관 도전 역시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일 수 있다. CNN 앵커인 그의 동생 크리스는 지난달 말 형을 인터뷰하며 대권 도전 여부를 집요하게 물었다. ‘출마 계획이 있냐’ ‘지금 없으면 훗날 고려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아홉 번 ‘노(No)’를 외쳤다. 프라임타임에 전국으로 생중계된 이 장면을 보면서 그가 정말 대권에 도전하지 않을 것으로 여긴 순진한 유권자가 있을까. ‘쿠오모’ ‘대통령’이란 단어만 각인됐다. 무엇보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대규모 조직 관리와 예산 집행, 복잡다단한 이해관계 조율, 대국민 소통을 해본 경험은 백악관 주인이 되기 위한 최고의 선행학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친이 코로나란 동네의 분쟁을 해결하며 사실상 정계에 입문했고 아들은 코로나19 위기에서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는 점도 묘하다. 대권 도전이 가능한 상황이 왔을 때 아들이 좌고우면하던 부친과 달리 과감하게 행동할지도 관심이다. 그가 난세 영웅이 될지, 반짝 스타로 끝날지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점은 코로나19 위기가 세계 지도자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냈고 진정한 지도자는 위기 때 자신의 역량을 입증한다는 사실이다. 아들 주지사의 진짜 인생 역정은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 포자 출신의 28세 여성이 북부 밀라노에서 집을 구하려 했다. 집주인은 그의 출신지를 알게 되자 임대를 거부했다. “남부인은 흑인, 집시와 같다. 나는 100% 인종주의자”라고 쏘아붙였다. 날벼락을 맞은 그는 밀라노 외곽에 다른 집을 구했다. 하지만 이사 2주일을 앞두고 같은 이유로 취소 통보를 받았다. 안사통신 등이 전한 이 사건은 이탈리아의 남북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 보여준다. 양측은 한 나라에서 사는 국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대시한다.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1385년간 이탈리아 전체가 수십 개의 도시 국가로 쪼개져 지내는 동안 북부는 신성 로마제국, 합스부르크 왕조 등 주로 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남부는 스페인, 아랍 등이 거쳐 갔다.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서로를 반(半)독일인, 반유색인종 쯤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있다. 1861년 통일 역시 피에몬테 등 북부 일부가 주도한 일종의 흡수합병 방식으로 이뤄지면서 점령군 대 피점령군 구도가 연출됐다. 현격한 경제 격차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기준 롬바르디아(3만8500유로), 에밀리아로마냐(3만5800유로), 베네토(3만3500유로) 등 북부 주요 주의 1인당 소득은 3만 유로를 훌쩍 넘는다. 남부 풀리아(1만8700유로), 시칠리아(1만7700유로), 칼라브리아(1만7400유로)는 절반에 불과하다. 북부인은 ‘내 세금으로 이탈리아 전체를 먹여 살린다. 남부인은 경제적으로 무능하다’고 여긴다. 남부인은 ‘철도 등 인프라를 독식하고 북부 위주 경제정책을 편 탓이다. 돈밖에 모르는 족속’이라고 받아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양측 갈등을 더 부추기고 있다. 이탈리아 핵심을 자처하던 북부 롬바르디아와 베네토는 ‘바이러스 온상’이라는 오명에 휩싸였다. 8일 정부가 북부에 봉쇄령을 내리기에 앞서 계획이 사전 유출돼 일부 북부인이 남부로 대거 이동했다. 당시 미켈레 에밀리아노 풀리아 주지사는 “돌아가라. 당신들이 바이러스를 운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단순히 주민 건강을 우려한 수준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린 분노와 한이 담긴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돈 좀 있다고 남부를 무시할 땐 언제고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이곳으로 도망을 오느냐’는 힐난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남부의 낙후된 의료 환경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에밀리아로마냐와 롬바르디아에는 인구 1000명당 병상이 각각 4.0개, 3.7개씩 있다. 반면 칼라브리아는 2.9개, 캄파니아는 3.0개만 있다. 즉 남부에 코로나19가 퍼지면 북부보다 훨씬 큰 충격이 닥칠 수 있다. 잘사는 북부에서조차 병상이 부족해 80세 이상 고령 환자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방정부 재정이 취약하고 의료진과 용품도 적은 남부에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리 만무하다. 마시모 스쿠라 전 칼라브리아 보건책임자는 “중환자를 치료할 만한 체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가 지나간 후 실업, 파산 등 남부의 경제적 피해가 북부보다 더 클 가능성도 거론된다. 2007∼2014년 이탈리아에서는 94만3000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는데 70%가 남부인이었다. 지난해 말 비영리단체 스비메즈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2∼2017년 남부의 인구 유출은 200만 명에 달했다. 인구 유출이 남부 경제를 어렵게 하고 이것이 남북 격차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난 셈이다. 1991년 롬바르디아와 베네토에는 ‘잘사는 북부가 모여 독립 국가를 만들자’고 외치는 극우정당 ‘북부리그’가 출현했다. 난민선 입항 금지 등 강력한 반난민 정책을 편 마테오 살비니 전 부총리가 이 북부리그 출신이다. 한때 같은 나라에 묶인 것조차 싫다던 북부가 코로나19로 남부의 온정을 바라는 처지가 됐으니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이번 사태가 양측의 해묵은 갈등을 해소해줄 계기가 될지, 더 큰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지 알 수 없다. 분명한 점은 대형 위기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해당 국가와 국민의 경쟁력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과정을 보고 있으면 유체이탈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 ‘선언 대의원’ ‘승자다식’ ‘위성 코커스’ ‘폐쇄형 프라이머리’ 같은 용어는 난수표가 따로 없고 간접선거의 중층 구조인 제도 자체도 너무 복잡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사표(死票)가 발생하고 여론 왜곡 위험이 있는 간선제를 왜 유지하는지 의문이다. 지난해 6월부터 발발한 홍콩 반중 시위의 궁극적 목적이 행정장관 직선제이고 수많은 독재국가에서 직선제를 도입하기 위해 ‘피’를 흘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주의 본산을 자처하는 최강대국이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자체가 모순처럼 느껴진다. 이달 3일과 11일 미 중부 아이오와와 북동부 뉴햄프셔에서 열린 집권 공화당과 야당 민주당의 후보 선출 과정을 지켜보며 어렴풋하게나마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여행작가로 유명한 아이오와 출신 저술가 빌 브라이슨은 베스트셀러 ‘발칙한 미국 횡단기’에서 고향을 ‘전화번호부 두 권을 놓고 서면 다 보이는 곳’으로 묘사했다. 산과 고층 빌딩이 거의 없고 사방이 지평선일 만큼 평평하며 옥수수밭이 가득한 아이오와의 상황을 익살스럽게 평했다. 뉴햄프셔 역시 엑서터나 세인트폴 같은 명문 사립학교,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다트머스대가 유명하다. 공부밖에 할 게 없는 곳이란 뜻이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같은 동·서부 해안 대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두 곳 모두 ‘깡촌’ 이미지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선두권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모두 최대 도시 뉴욕 출신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고향도 보스턴이다. 주요 후보 중 시골 태생은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인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에서 나고 자란 피트 부티지지 정도. 그조차 성인이 된 후엔 보스턴 근교의 하버드대를 다니고 매킨지컨설팅의 시카고 사무소에서 일하며 상당 기간 대도시에서 살았다. 3억3000만 미국인을 대표하겠다는 후보 대부분이 소수 대도시에만 익숙한 상황인데 대도시 아닌 곳에서 대형 정치 행사라도 치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인구가 적은 주의 소외 현상이 점점 심해질 것이다. 이곳 유권자들이 후보를 가까이서 마주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언론의 관심이 줄어 아이오와와 뉴햄프셔가 진짜 옥수수와 단풍만 유명한 곳인 줄 아는 과소 재현(Under-representation)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50개 주 538명의 대통령 선거인단을 단순히 인구 비례로만 배분하지 않고 아무리 작은 주라 해도 최소 3명을 보장해준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구 1위 캘리포니아(3950만 명)는 50위 와이오밍(58만 명)보다 주민이 68배 많지만 선거인단은 55명 대 3명으로 약 18배 수준이다. 이처럼 미국인들은 현 대선 제도가 후보들에게 거대한 영토의 모든 유권자와의 접점을 넓혀주고 일부 대형 주가 국가 대사를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하는 ‘견제와 균형’의 근간이라고 믿는다. 양당이 굳이 수도 워싱턴에서 먼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을 시작하고, 민주당이 아이오와 코커스 때 사상 초유의 개표 지연 사태를 겪었음에도 ‘빠르고 투명하며 효율적인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여론이 높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얼핏 민주주의에 반하는 듯한 간선제가 갖가지 논란에도 240여 년간 유지된 비결이자 헌법 2조가 간선제를 보장하는 이유다.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극소수 대도시의 집중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도 소수 주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현 제도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1인 1표 직선제가 도입되면 양당 후보들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뉴욕, 펜실베이니아 등 인구 1000만 명 이상인 주만 뻔질나게 찾고 버몬트, 와이오밍, 알래스카 같은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4년 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위스콘신(580만 명)에서의 승리를 자신한 나머지 이곳을 찾지 않았고 선거인단 10명 및 백악관 주인 자리를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넘겨줬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선출 절차와 집권당의 변경이 각종 제도와 법규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는 안정된 사회 구조야말로 간선제 유지의 최대 배경이 아닐까. 미국인도 아니면서 미국인 이상으로 대선 판세와 결과를 늘 주시해야 하는 타국적자의 소감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1967년 이란 왕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가 자신을 황제 ‘샤한샤’, 아내 파라를 황후 ‘샤바누’로 추대했다. 두 사람은 자크 다비드의 그림으로 유명한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와 조세핀 황후의 1804년 대관식을 재연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아내의 머리에 1541개의 보석이 박힌 관을 씌웠다. 뒤로는 비밀경찰 사바크를 통해 반대파를 탄압하고 살해했다. 12년 후 2500년 역사의 페르시아 군주제가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다. 이제 부패와 폭정을 일삼는 전제군주는 없다. 4년 임기의 대통령도 직접 뽑는다. 이면의 실상은 지금의 이란이 당시와 얼마나 다른지 돌아보게 한다. 대표적 예가 혁명 원로의 후손, 즉 이란판 금수저 ‘아가자데(Agazadeh)’의 행태다. 계속된 서방의 경제 제재로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지만 최고급 자동차와 장신구, 음주와 향락이 난무하는 호화 파티를 즐긴다. 특히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이를 과시하는 몰상식함으로 큰 공분을 사고 있다. 국부(國父)격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증손녀 아테페는 영국 런던에서 3800달러(약 440만 원)짜리 돌체앤가바나 가방을 들었다. 사에드 톨루이 전 혁명수비대 장군의 아들 라술은 딸의 생일 파티를 위해 애완용 호랑이를 동원하고 캐딜락을 몰았다. 아흐마드 소바니 전 베네수엘라 주재 이란 대사의 아들 사샤는 세계 각지에서 반라의 여자들을 대동하고 파티를 즐긴다. 그의 인스타그램 추종자만 약 120만 명. 몇몇 아가자데도 ‘테헤란의 부유한 아이들(Rich kid in Tehran)’이란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부를 자랑하기 바쁘다. 내로남불과 언행불일치는 필수. 통신 재벌 하미드 아레프(42)는 우정·통신·전화담당 장관, 부통령 등을 지낸 무함마드 레자 아레프의 아들이다. 그는 2017년 인터뷰에서 성공 비결로 ‘좋은 유전자’를 꼽았다. 한 해 뒤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33세 사위를 정부 연구소장에 임명했다가 비판이 커지자 사퇴시켰다. 부모도 한결같다. 로하니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고 아레프 전 부통령은 “왜곡된 인터뷰”라고 주장했다. 톨루이 전 장군은 아들의 호화 생활을 폭로한 성직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극소수 왕족이 ‘독점’하던 부가 소수의 혁명 주역과 후손이 ‘과점’하는 체제로 바뀌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은 8000만 인구 가운데 71.6%가 39세 이하인 젊은 나라다. 이슬람혁명과 이어진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정부가 출산을 적극 장려한 결과다. 왕조 시절의 1세대는 대부분 고인이 됐고 혁명 주역 2세대는 아직도 신정일치 이념만 부르짖는다. 절대다수의 2030 젊은이들은 ―9.5%로 추정되는 지난해 성장률, 20%를 넘나드는 고물가와 고실업, 생필품 품귀가 나아지기만을 바란다. ‘제3세대’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나슬레 세봄’으로 불리는 이들은 2009년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당선 당시 선거 부정 의혹 시위, 2017년 말과 지난해 11월 경제난에 따른 시위, 정부의 우크라이나 민항기 오인 격추로 인한 이번 달 시위를 모두 주도했다. 나슬레 세봄의 더 큰 분노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불의(不義)로 가득 찬 정권을 전복시키는 건 일종의 시대정신이다. 41년 전의 혁명은 명분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새 집권세력이 늘 정의(正義)를 뜻하지 않음을 현재의 이란이 보여준다. 미국에 망명 중인 팔레비왕의 장남은 15일 워싱턴에서 “이란 상황이 혁명 3개월 전과 비슷하다. 몇 달 안에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고 연설했다. 특히 왕정복고를 바라지 않으며 민주 정부 수립에 기여하겠다고 했다. 쫓겨난 왕족이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정권 타도를 외치는 건 희극일까 비극일까. 경위야 어찌됐든 그 토양을 마련해준 건 먹고사는 문제를 내팽개친 현 정부다. 지난해 11월 시위는 유류세 인상으로 발발했다. 세계 4위 원유보유국이 정제시설 부족으로 일부 휘발유를 수입하는 상황까지 몰린 탓이다. 당시 비무장 시위대를 향한 발포로 1500명 이상이 숨졌다. 팔레비 정권의 정적 탄압과 무엇이 다른가. 이래도 혁명 후 41년간 늘 그랬듯 ‘이게 다 미국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1979년 8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는 폴 볼커 뉴욕 연준 의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구직자 ‘을’은 세계 최고 권력자 ‘갑’ 앞에서 당당했다. 2.01m의 큰 키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궐련을 피웠고 동석한 윌리엄 밀러 의장을 가리키며 “나를 의장으로 임명하면 저 친구보다 엄격한 통화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찜찜했지만 대안이 없었던 카터는 그를 낙점했다. 같은 해 10월 6일 토요일 밤. 초짜 의장 볼커는 돌연 취재진을 연준 본부로 불렀다. 주말인 데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해 전 언론이 교황만 쫓고 있었다. 한 방송사가 “사람이 없다”고 하자 대변인은 “안 오면 후회한다”고 했다. 볼커는 취재진 앞에서 “인플레이션이란 용(龍)을 잡겠다”고 외쳤다. 8일 타계한 볼커 전 의장을 두고 뉴욕타임스(NYT)가 소개한 일화는 그가 왜 ‘세계 최고 중앙은행장’으로 불리는지 짐작하게 한다. 오일쇼크 후폭풍으로 당시 미국은 고물가와 경기둔화에 시달렸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볼커는 과감히 물가 잡기를 택했다. 취임 때 11%였던 기준금리를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최고치인 20.5%까지 끌어올렸다. 유례없는 고금리는 농업, 건설업, 제조업의 단기 경색을 초래했다. 분노한 농민과 건설업자들은 트랙터를 몰고 연준 앞에 모여 퇴비와 원목을 던졌다. 경호가 삼엄한 연준 본부로 출퇴근하면서 권총까지 차야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유지했다. 결국 1980년 한때 15%에 육박했던 물가는 1983년 3%대로 떨어졌다. 그의 뚝심이 무시무시한 ‘용’을 잡은 것이다. 1990년대 장기 호황의 발판을 마련한 순간이었다. 진가를 입증했지만 백악관의 새 주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그를 마뜩잖아 했다. 1984년 여름 볼커는 백악관의 호출을 받았다. 레이건과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은 모든 대화가 녹음되는 집무실이 아닌 옆방으로 안내했다. 베이커는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11월 대선 전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기를 원한다”며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볼커는 지난해 말 회고록을 통해 “원래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예’ 하면 굴복한 듯 보일까 봐 답 없이 백악관을 떠났다”고 밝혔다. 두 번째 의장 임기를 두 달 남겨둔 1987년 6월 사의를 표했다. 레이건은 말리지 않고 후임자로 앨런 그린스펀을 골랐다. 볼커의 청렴은 그의 소신만큼 빛난다. 당시 볼커의 월급은 뉴욕 연준 의장의 절반 수준이었다. 연준 의장은 공무원이고, 지역 연준 의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뇨와 관절염을 앓는 아내, 뇌성마비 아들도 돌봐야 했지만 워싱턴행을 택했다. 워싱턴에 와서도 학생들이 사는 저렴한 주거지, 구겨진 값싼 양복, ‘말똥에 담뱃잎을 섞은 것 같다’는 싸구려 궐련을 고수했다. 그의 딸은 “아버지가 운전석이 다 부서진 낡은 포드를 몰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위 관료가 된 그는 이처럼 공직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다. 두 대통령의 연이은 압박, 갖가지 논란에도 소신대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공직이 어떤 소명보다 위대하며 이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자부심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그에게 ‘도덕, 용기, 청렴, 지혜, 신중함, 봉사정신 등 로마 시대의 덕목을 갖춘 인물’(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삶 전체가 고귀한 이상으로 가득했다’(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 등 찬사가 쏟아진 이유다. 말 그대로 사회의 심부름꾼, 즉 공복(公僕)이었던 그는 말년에 일신의 영달만 좇는 사복(私僕), 관의 이름으로 도적질을 하는 관비(官匪)가 넘치는 워싱턴 관가에 크게 실망했다. 회고록에서 “과거에는 공직자의 책임감이 투철했고 존경도 받았지만 그런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은 아무도 정부, 대법원, 대통령, 연준을 존경하지 않는다. 공직자를 길러내는 엘리트 교육기관도 정부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가르치지 않는다. 이러니 어떻게 민주주의를 유지하겠나”라고 개탄했다. 어디 미국만의 일이겠는가. 또 공직자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미국 중부 오클라호마의 서민 가정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건물관리인, 모친은 백화점 점원이었다. 빠듯한 살림에 한 푼이라도 보태려 13세 때부터 친척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했다. 19세에 첫 남편과 결혼했고 29세엔 두 아이를 둔 싱글맘이 됐다. 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선두권에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70)의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면 그의 인생이 ‘아메리칸 드림’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세계 최고 하버드대의 파산법 교수라는 화려한 커리어, 하버드대 동료 교수인 자상하고 헌신적인 두 번째 남편, 2012년 11월 첫 선거에서 곧바로 상원의원에 뽑히고 두 번째 의원 임기 중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른 순탄한 정치 역정, 1200만 달러(약 141억 원)의 재산까지….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없다. 상아탑의 백면서생을 백악관 코앞까지 데려다놓은 정책은 부유세(wealth tax)다. 5000만 달러 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한 가계에 연 2%, 순자산 10억 달러에 6%의 세금을 물려 전 국민 건강보험 정책 ‘메디케어포올’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공약이다. 1월 대선 출사표를 낼 때만 해도 10억 달러 부자에 대한 세율을 3%로 주장했지만 최근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며 2배로 올렸다. 그는 이달 14일부터 리언 쿠퍼먼 헤지펀드 오메가 창업자, 조 리케츠 온라인 증권사 TD아메리트레이드 창업주, 로이드 블랭크파인 전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 등 4명을 거악(巨惡)으로 규정한 1분짜리 ‘저격 광고’도 내보내고 있다. 이들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와중에도 엄청난 돈을 벌었고, 일부는 내부자 거래 등의 혐의에 직면했으며, 이들의 부는 그들만의 성과가 아니라 사회 인프라와 이들의 밑에서 일한 근로자 덕이라며 부유세 도입을 외쳤다. 지목된 이들은 “정파성만 다를 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식 ‘분열의 정치’와 뭐가 다르냐. 부자가 죄냐”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CEO 등도 부유세 비판에 가세했다.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부유세의 이중과세 및 징벌적 성격, 호화 요트·미술품·보석 등에 대한 가치평가의 어려움, 부자들의 자산 해외 이전 가능성, 사생활 침해 논란, 독일 아일랜드 등 부유세를 도입했다 폐지한 국가의 사례를 들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워런 의원이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던 월가와 일종의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이다. 경제전문매체 포브스는 납세 기록을 바탕으로 그의 재산 형성 과정을 분석했다. 그가 재산의 83%인 1000만 달러를 2008∼2018년에 벌었으며 핵심 수입원이 각종 자문 및 저술료였다고 전했다. 그는 트래블러스보험,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비자카드 같은 거대 금융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자문, 상담, 전문가 증인 등을 맡아 건당 20만 달러 내외의 보수를 받았다. 2013∼2018년에는 맥밀런 출판사로부터 320만 달러의 관련 저술 선불금도 받았다. 대형 금융사로부터 고통받는 서민과 중산층을 도왔다는 대의명분이야 있겠지만 교수치고 적지 않은 재산이 월가 관련 업무에서 나왔다는 점까지 부인할 순 없다. 꼭 부유세는 아닐지라도 날로 심각해지는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 세계 각국에서 이 문제를 두고 다양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움직임의 배후에 ‘정치인 워런’의 공이 존재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다만 본인 또한 기성체제로부터 상당한 수혜를 입었으면서 자신보다 재산이 더 많은 사람들을 무조건 몰아붙이고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공감을 가져올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월가 거물의 재산이 그들의 힘만으로 일군 게 아니라면 식당 접시를 나르던 소녀가 1200만 달러 자산가가 된 것 또한 오로지 본인의 능력 덕분이라고 치부하긴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서민에겐 그의 ‘1200만 달러’나 거부의 ‘10억 달러’나 꿈꿀 수 없는 돈이긴 마찬가지다. 워런 의원이 “나는 운이 좋았지만 미래 세대에게는 이런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부유세 도입 기준을 1000만 달러 이상으로 낮추고 나부터 상응하는 세금을 내겠다”고 하면 그의 진정성을 믿는 유권자들이 훨씬 많아지지 않을까.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시점이 또 미뤄졌다. 올해만 세 번째. 원래 3월 29일이 예정이었지만 4월 12일, 10월 31일, 내년 1월 31일로 주야장천 밀렸다. 벌써부터 내년 1월 말 일정의 연장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러다 10년 후에도 기한 연장만 할 판이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후 영국 정치는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다. 최대 책임은 집권 보수당에 있지만 제1야당 노동당도 비전을 제시하진 못했다. 현재 하원 650석 중 보수당과 노동당의 의석은 각각 288석, 244석이다. 1월에는 63석 차이였지만 보수당의 자중지란 및 잇단 탈당에 44석으로 줄었다. 10여 개의 군소정당을 잘 규합하면 수권(受權)이 가능했겠지만 노동당은 하지 못했다. 브렉시트 정국에서 보수당 대표는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으로 바뀌었다. 노동당은 2015년 9월부터 지금껏 제러미 코빈 대표(70)가 이끌고 있는데도 왜 그럴까. 이는 코빈의 ‘같기도’ 리더십에 기인한다. 그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만 취했다. “EU는 모든 문제의 근원도, 번영의 원천도 아니다. 브렉시트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없지만 브렉시트를 한다고 영국이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개그 프로그램에선 웃길지 모르나 정계 2인자의 발언으로는 초라하고 군색하다. 우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코빈파’(극좌파)와 ‘블레어파’(온건좌파)로 쪼개진 당 상황도 이를 부추긴다. 노조가 최대 지지 기반인 코빈파는 EU 체제가 저소득층 일자리를 뺏고 대도시 엘리트의 배만 불렸다고 본다. 국민투표 때 당론이 EU 잔류였는데도 코빈이 지지 연설을 주저했던 이유다. 성장과 분배를 결합한 ‘제3의 길’로 1997년부터 10년간 집권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국민투표 재실시를 통한 EU 잔류’를 외친다. 아직 상당한 세력이 있는 그는 자신의 재단을 통해 잔류파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왔다. 그가 비밀리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EU 수뇌부에 영국의 잔류 방안을 지도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두 파는 반(反)보수당, 반존슨을 제외하면 한배에 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서로 적대시한다. 코빈은 둘 사이에서도 우왕좌왕했다. 9월 코빈파 평당원들이 EU 잔류를 주장한 톰 왓슨 부대표를 내쫓으려 했다. 논란 끝에 축출을 위한 표결은 취소됐지만 이때도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차마 자신이 직접 못했던 반대파 제압의 깃발을 당원들이 들었다면 못 이기는 척 표결을 실시해 부대표를 쫓고 자신의 노선을 강화해도 됐다. 그게 아니라면 당의 수장으로서 반대파를 다독여야 했다. 그 대신 그는 블레어 전 총리가 폐기했던 국유화 관련 당규 부활을 거론해 블레어파와 더 멀어졌다. 기간산업 국유화, 부유세, 평등 및 무상교육을 주장하는 코빈은 노동당에서도 가장 왼쪽에 있다. 2016년 출간된 그의 평전 제목도 ‘코빈 동지(Comrade Corbyn)’. 콤래드는 공산당이나 사회당원들이 서로를 부르는 명칭이다. 1983년부터 36년째 런던 저소득층 지역인 이즐링턴 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남의 집 페인트칠까지 해주며 주민과 동료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하지만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 한다는 이유로 두 번째 아내와 이혼했다. 인간적으로는 선량하고 자상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외골수에 타협을 모른다. 당 안팎으로 집토끼와 산토끼를 다 잡으려다 집토끼마저 잃을 처지에 몰린 그의 성향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국인들은 코빈이 보인 애매함이 정치공학적 계산에 기반한 고도의 전략이 아닌 일종의 결정장애임을 알아 버렸다. 20, 21일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43%는 ‘총리로 존슨이 최선’이라고 했다. 코빈을 말한 이는 20%에 그쳤다. 존슨 총리가 7월 취임 후 파국이 뻔한 노딜 브렉시트(합의안 없는 EU 탈퇴) 및 조기 총선만 고수하며 혼란을 더 부추겼는데도 코빈을 그 대체재로 안 본다는 얘기다. ‘영국의 트럼프’ 존슨 총리는 각종 막말과 기행, 계속되는 악수에도 지리멸렬한 야당을 둔 덕에 굳건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일반 영국인, 지루한 브렉시트 논란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세계 경제는 무슨 죄일까. 집권 가능성이 낮은 불임 정당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만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내년 11월 3일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 위기를 맞았다. 그렇다고 탄핵 정국에서 꼭 민주당이 승리할까. 또 ‘제2의 트럼프’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까. 친(親)민주당 성향의 백인 지식인 저자 두 명의 책을 보고 아니라는 생각을 굳혔다. 페미니스트 법학자인 조앤 윌리엄스 미 헤이스팅스 소재 캘리포니아대 교수(67)는 ‘화이트워킹클래스(WWC·White Working Class)’에서 최고 학력 백인들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나머지 백인들을 너무 모른다고 지적했다. ‘먹물’ 백인이 보는 ‘기타’는 정부 식량 보조에 의존하는 극빈층, 레드넥이나 힐빌리로 불리는 저학력·저소득층 노동자 정도가 고작이다. WWC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경찰, 간호사, 비서, 영업직 등인 이들은 가방끈이 짧을지언정 저소득층은 결코 아니다. 연 소득은 4만1000달러(약 4920만 원)에서 13만2000달러(약 1억5840만 원) 사이. 미슐랭 식당에서 최고급 와인을 마신 적도, 자신의 주(州) 밖을 벗어난 적도 거의 없다. 라틴어와 프랑스어도 잘 모르고 양성평등과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도 적다. 그래도 성실히 살면서 세금을 꼬박꼬박 냈다. 이들의 바람은 현재의 직업을 최대한 오랫동안 영위하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의 고학력 백인들은 위선의 결정체다. 늘 정치적 올바름, 불평등 해소, 난민 보호를 외치는데 정작 본인은 어떤 희생과 헌신을 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유기농 음식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국어로 치면 직조, 핍진성, 형해화 같은 말만 쓰는 것도 볼썽사납다. 특히 소득이 더 적은 대학강사, 시민단체 직원, 프리랜서 작가 등이 학벌과 문화적 취향을 앞세워 자신들을 깔보는 것에 분노한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리브스 선임연구원(50)은 ‘20 vs 80의 사회’에서 최상위 1% 부자가 아닌 석·박사 학위를 지닌 전문직 종사자들을 양극화 주범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동문 자녀 우대 같은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절차, 알음알음으로 이뤄지는 인턴 분배 등을 통해 계층 이동을 막아버렸다. 영국 태생인 그는 발음만으로도 계급이 드러나는 사회가 싫어 미국에 귀화했다. 군주가 있는 옛 조국보다 겉으로는 능력 본위 사회임을 자랑하는 새 나라의 심각한 불평등에 놀랐다. 자신과 주변의 ‘먹물’들부터 달라져야 한다며 이 책을 썼다. 굳이 비유하자면 트럼프 대통령은 ‘돈 많은 WWC’다. 패스트푸드를 즐기고 ‘그레이트(Great)’ ‘굿 잡(Good job)’ 같은 쉬운 말만 한다. 그래서 WWC들이 좋아한다. 이들에게 부유세 도입, 탄소 배출 제로(0) 등을 외치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등은 ‘멀어도 너무 먼 당신’이다. 이들은 늘 유리천장 타파를 외치는데 WWC는 그 이유를 모른다. 천장 근처에 간 적이 없어서. WWC는 경합주 판세를 좌우하는 대선의 핵심 변수이기도 하다. 538명의 선거인단 중 캘리포니아(55명), 텍사스(38명), 뉴욕(29명)은 사실상 승자가 정해져 있다. 트럼프가 성 평등론자로 변한들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선 공화당 승리 확률이 낮다. 워런이 국경장벽을 지어도 텍사스 표심 역시 민주당을 거부할 것이다. 4년 전처럼 플로리다(29명), 펜실베이니아(20명), 오하이오(18명), 미시간(16명), 위스콘신(10명) 5개 주의 선거인단 93명이 또 대통령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 중 플로리다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주, 즉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 벨트)에는 WWC가 넘쳐난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사는 은퇴 기술자 앨런 빙겐하이머 씨(71)는 탄핵 조사가 본격화한 지난달 27일 로이터에 “민주당은 완전히 미쳤다”고 했다. 아직은 내년 대선 승자를 알 수 없다. 다만 민주당이 또 패한다면 WWC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윌리엄스 교수의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때로 여성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별 문제를 벗어나는 거다. 그러니 민주당 대선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에 이은 또 다른 여성을 뽑진 말자. 미국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건 트럼프 연임 저지 아닌가.”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지난달 반중 시위대를 지지하는 듯한 광고로 큰 주목을 받은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 전 청쿵홀딩스 회장. 그는 1928년 광둥성 동부 차오저우(潮州)에서 태어났다. 인근 산터우(汕頭)와 함께 흔히 차오산으로 불린다. 차오산 사람들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화상(華商) 집단 ‘상방(商帮)’ 중에서도 불타는 성공욕, 단결력과 의리 등으로 유명하다. 이는 차오산의 지정학적 위치와 관련이 있다. 광둥성에 있지만 중심 도시 광저우와 꽤 멀어 주민들은 광둥어가 아닌 인근 푸젠성의 민난어를 쓴다. 다만 발음은 주류 민난어와 상당히 다른 방언이다. 즉 표준어, 광둥어, 민난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소수 언어를 쓰며 경계인으로 살다보니 절로 잡초 같은 생존력과 개척 정신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3월 포브스 기준 266억 달러(약 32조 원)의 재산으로 세계 28위 부자인 리 전 회장은 물론이고 마화텅 텐센트 창업주, 쑤쉬밍 태국 창맥주그룹 회장 등 세계적 거부들이 차오산 출신인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업은 크게 부동산, 항만, 통신 분야로 나뉜다. 부동산과 항만업에는 중국과 홍콩의 근현대사가 짙게 녹아있다. 플라스틱 조화를 만들던 중소기업인이 거부로 도약한 시점은 1960년대 말. 문화대혁명 여파로 홍콩 부동산 값까지 급락하자 그는 알짜배기 부동산을 사들여 떼돈을 벌었다. 이후 1980년대 초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자 본토에서 거의 최초로 사업을 벌였다. 경제 성장에는 물류 인프라가 필수다. 그는 상하이 컨테이너 터미널, 광저우∼주하이 고속도로, 선전 매립지 개발 등 주요 사업에 모두 관여했다. 특히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서구 자본이 덩의 개혁 의지를 의심하자 자신의 화상 인맥을 동원해 대규모 투자도 이끌었다. 덩의 후임자 장쩌민과는 그야말로 ‘아삼륙’이었다. 장은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 최고 권력자 최초로 홍콩을 찾았다. 이후 수차례 홍콩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청쿵의 최고급 호텔 하버플라자에 묵었다. 리카싱 부자와 조찬을 즐겼고 두 살 어린 리 전 회장을 ‘친구’로 불렀다. 2013년 3월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르자 권력자와의 밀월이 끝났다. 둘은 오랜 악연이 있다. 시 주석은 1985∼2002년 푸젠성에서 근무했다. 당시 인프라 건설과 노후 지역 개발을 위해 청쿵 산하 회사와 계약도 맺었다. 하지만 새 국제공항 건설 예산이 과다 책정됐다는 비판에 계약이 틀어졌고 그의 경력에도 오점을 남겼다.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도 시진핑은 중국이 내세운 렁춘잉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했지만 리 전 회장은 기업가 출신인 헨리 탕 후보를 밀었다. 2014년 9월 홍콩 민주화시위 ‘우산혁명’이 발발하자 시위대를 비판해 달라는 당국 요구도 거부하다 몇 달 후 마지못해 살짝 비판했다. 이 와중에 집권 후 내내 장쩌민의 상하이방 세력을 사실상 숙청해온 시 주석의 노선까지 겹쳐 둘의 사이는 알려진 이상으로 나쁘다는 것이 홍콩 및 중국 매체의 중론이다. 리 전 회장은 2010년대 들어 눈에 띄게 중화권 사업을 줄였다. 청쿵 본사를 조세피난처 케이맨제도로 옮겼고 과거 홍콩을 통치했던 영국 투자를 부쩍 늘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청쿵 전체 매출 중 홍콩의 비중은 10%에 그쳤다. 3년 전(16%)보다 꽤 줄었다. 본토도 9%에 불과했다. 그 자리를 유럽(47%), 호주·아시아(14%), 캐나다(12%) 등이 채웠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 현재까지 영국 런던 증시에 상장된 청쿵 주가는 24% 하락했다. 같은 기간 홍콩 항셍지수는 23% 올랐다. 그런데도 지난달 영국 음식점 체인 그린킹을 또 33억 달러에 샀다. 돈보다 안정을 택한 셈이다.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91세 ‘재신(財神)’은 왜 탈(脫)홍콩에 여념이 없을까. 3년째 브렉시트 논란으로 아사리판인 영국이 사실상 독재 체제인 본토, 중국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양극화까지 심한 홍콩보다 훨씬 낫다고 본 때문이 아닐까. 중국과 홍콩 경제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평생 성공만 이어온 노(老)기업인의 촉이 또 맞을지 궁금해진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