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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 생일인 24일 ‘평화올림픽’이란 단어를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의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들기 위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과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방남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일자 ‘평화올림픽’을 강조해 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평화올림픽’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들자는 의견은 23일 새벽 2030 여성들의 폐쇄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처음 제기됐다. 한 회원은 “문재인 대통령 생신 때 누리꾼들이 줄 수 있는 선물은 바로 ‘평화올림픽’ 실검(실시간 검색어) 올리기”라며 “‘생신 축하드립니다’보다는 지금 상황에 맞춰 문 대통령님한테 힘을 드리고자 ‘평화올림픽’을 실검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이 회원은 24일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짝수 시간대(낮 12시, 오후 2시, 4시, 6시)에 맞춰 포털사이트에 ‘평화올림픽’을 집중 검색하자는 행동 지침을 담은 글을 커뮤니티에 올렸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에 맞춰 ‘고마워요 문재인’을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로 올렸던 사례를 거론하면서 시간대를 특정해 검색을 집중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글은 9시간 만에 조회수 4만 건을 넘어섰고 호응하는 댓글 300여 개가 달렸다. 이 제안은 ‘문프(문재인 프레지던트·대통령) 생신선물 검색어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진보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여기에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이고 평양올림픽이라는 낡은 딱지를 붙이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자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검색어 이벤트 참여 독려는 더 확산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 취임 100일 때에 비해 호응이 높지 않은 분위기다. 문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던 젊은층 가운데 정부의 가상통화 규제와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트위터에서 문 대통령 생일 축하 검색어 이벤트 참여를 독려하는 글은 대부분 리트윗 수가 100회를 넘지 못했다. 문 대통령 지지자가 많이 모인 진보 성향 커뮤니티에는 “오늘 세 번째 올리는 글인데 몇몇 분은 호응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보수 성향 누리꾼들은 “사실상 여론 조작 아니냐”, “우리도 24일 평양올림픽을 검색어 1위로 올리자”는 의견을 제시했다.조동주 djc@donga.com·이지운·안보겸 기자}

조정호 씨(32)는 2011년 1월 서울 신림동 고시촌을 등지고 나왔다. 대학 생활 3년을 꼬박 신림동에 틀어박혀 사법고시에 도전했다가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였다. 법대생이니 당연히 사시를 봐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매일 법전을 들여다봤지만 갈수록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커졌다. 신림동을 박차고 나와 사업 구상을 시작한 지 3년 후인 2014년 1월. 그는 스타트업 ‘벤디스’를 창업했다. 기업과 식당을 연계해주는 모바일 식권을 개발하는 회사다. ‘고시 낭인’이었던 조 씨가 세운 벤디스는 창업 4년 만에 2018평창겨울올림픽에 최초로 도입되는 모바일 식권 사업을 맡았다. 대회기간 내내 전국의 숙소 35곳에 머무는 자원봉사자 1만8000여 명에게 모바일 식권을 지급하는 프로젝트다. 무려 65만 끼 식사에 해당되고 금액으로는 45억 원가량이다. 조 씨를 포함해 임직원 32명 모두 2030인 젊은 스타트업 회사가 제대로 일을 낸 것이다. 모바일 식권은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나라장터를 통해 입찰을 공고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선수단은 자체적으로 식사를 해결하지만 자원봉사자는 다르다. 기존 올림픽에선 종이 식권이나 현금을 자원봉사자에게 지급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가 중간에 그만두면 체계적 관리가 어려운 문제 등이 있었다. 평창올림픽 조직위는 ‘ICT(정보통신기술) 올림픽’에 맞게 투명하고 효율적인 식사 관리를 하자는 취지로 모바일 식권을 도입했다. 조 씨는 최근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 숙소 35곳에 모바일식권용 단말기 등을 한창 설치하던 중 깜짝 놀랄 연락을 받았다. 청와대가 16일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청년 창업가를 초청하는 만찬 간담회에 벤디스가 ‘재기 기업’ 자격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조 씨가 대학생 때 신림동을 떠돌며 숱한 실패를 딛고 청년창업가로 일어선 경력이 눈길을 끈 것이다. 그는 청와대 간담회에서 ‘열심히 뛰라’는 의미로 운동화를 선물 받았다. 조 씨가 직원 2명과 시작한 벤디스의 모바일 식권인 ‘식권대장’ 서비스는 창업 직후 거래가 전무해 실적이 ‘0’원일 때도 있었다. 직원들 월급 주기조차 어려울 때도 있었다. 모바일 식권의 가능성을 알아본 네이버와 산업은행, 우아한형제들 등이 고비 때마다 투자하면서 성장 동력을 이어갔다. 조 씨는 1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4년 전 처음 창업했을 때 모바일 식권이란 개념조차 생소해 식당과 기업으로부터 문전박대 당했던 걸 생각하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벤디스는 4년 만에 월 거래금액 28억 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전국 150개사 직원 3만5000여 명이 먹은 밥값 240억 원이 벤디스를 거쳐 갔다. 창업 당시 3명이었던 회사 구성원은 32명으로 늘어났다. 모든 직원이 2030이다. 대부분 다른 직장을 다니다 스타트업을 성장시켜보자는 일념으로 뭉쳤다. 조 씨는 “작은 스타트업 회사이지만 국가적 행사인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작게나마 일조 하겠다”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이 지난해 검찰에 넘긴 대북 관련 공안사건이 한 건도 없는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보통 국정원이 수사를 마무리해 검찰에 넘겨야 공안사범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데 1년 동안 이 같은 절차가 한 번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1961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창설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에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방안이 확정됨에 따라 앞으로 입법과 준비 과정을 감안하면 대공수사 공백이 더욱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그동안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이나 북한 지령을 받고 국내외에서 이적 활동을 하는 공작원 등을 직접 수사해 검찰로 넘겼다. 국가 기밀을 북한에 누설하거나 국가 주요 시설을 노리는 등 국가보안법 4조(목적수행)를 위반한 공안사범을 수사하는 것도 대공수사국의 역할이었다. 수사가 마무리되면 국정원은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남부지검 수원지검 등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국정원이 작년 한 해 동안 검찰에 넘긴 사건이 한 건도 없다는 건 취약해진 안보수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7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사실상 대북 공안수사에서 손을 놓았다고 한다.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에 나서면서 국정원 직원들이 대거 검찰 수사를 받자 대공수사는 더욱 위축됐다. 대공수사국 핵심 인력들이 6월 출범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팀’으로 상당수 투입된 점도 수사력 약화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다. ‘적폐청산 TF’가 지난해 11월까지 운영됐고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대공수사는 사실상 ‘올스톱’ 됐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국정원 내부에서도 베테랑 수사관들은 대북 공안 사건을 수사하려는 의욕을 계속 보였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후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국정원 내 고위 간부들 사이에 대공수사를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공수사 공백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국정원 대공수사는 지난해보다 올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청와대는 14일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등 권력기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국정원 대공수사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최근 대공수사국 요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말 한마디로 법에 규정된 고유 업무인 대공수사를 못 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완전히 넘기기 위해선 국가정보원법 개정 등 여러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시행 등 민감한 사안과 묶여 국회에서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야 한다. 여야 간 극명한 입장 차로 실제 입법이 이뤄지려면 향후 최소 1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간 국정원과 경찰 모두 대북 공안수사 주도권을 갖지 못하면서 안보 공백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대공수사권 이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국정원은 수사 동력이 없고 경찰은 국정원 인력과 시스템을 인계받지 못한 상태라 누구도 대공수사의 주도권을 쥐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대공수사 기반과 네트워크 관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청와대가 14일 밝힌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방안이 실현되면 경찰은 1961년 중앙정보부(중정·현 국정원) 출범 이후 57년 만에 대공수사권 전권을 다시 갖게 된다. 청와대는 경찰청에 신설되는 대공수사 전담 안보수사처(가칭)에 국정원 대공수사 인력을 대거 보낼 계획이다. 1961년 중정에 대공수사권의 중추를 내준 뒤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을 일으켜 대공수사기관으로서의 위상에 치명상을 입었던 경찰이 다시 대공수사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이다.○ 대공수사 패러다임 바꾼 박종철 고문치사 경찰은 1945년 광복 직후부터 대공수사권을 독점하며 북한 간첩과 귀순자, 좌익사범 수사를 총괄했다. 당시 북한은 38선 주변 경계가 허술한 틈을 타 수시로 남한에 간첩을 내려 보내 좌우익 진영 갈등을 조장했다. 경찰은 조선공산당 산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등 좌익 노동운동단체 수사를 주도하며 방첩 활동을 벌였다. 경찰 대공수사권은 1961년 6월 창설된 중정으로 상당 부분 넘어갔다.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중정에 대공 수사력을 집중해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 경찰도 대공수사권을 갖고 있는 ‘투 트랙’ 구조였지만 굵직한 주요 사건은 모두 중정 몫이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당시 경찰의 핵심 대공수사 인력 상당수가 중정으로 건너갔다”며 “경찰이 중정을 큰집으로 부르는 관행이 그때 시작됐다”고 말했다. 경찰의 대공수사는 1984년 전두환 정부가 학원 자율화 조치를 선포하면서 좌경단체에 집중됐다. 대학에 상주하던 경찰이 철수한 뒤 대학 운동권에서 북한 체제를 추종하거나 사회 전복을 주장하는 세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게 전두환 정부의 인식이었다. 경찰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방첩을, 홍제동 대공분실에 좌경단체를 맡겼지만 사실상 업무가 중첩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와 경찰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 성과를 내기 위해 과욕을 부리며 고문, 감금 등 불법을 자행했다. 그 민낯이 드러난 대표적 사건이 1987년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이다. 당시 치안본부 제5차장 산하 대공수사 조직은 운동권 선배의 소재지를 대라며 박 씨를 물고문하다가 숨지게 했다. 이 사건은 1987년 민주화의 물꼬를 텄고 이후 경찰의 대공수사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경찰의 대공수사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대학가의 운동권 활동이 잦아들면서 위세가 약화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대공수사 기능은 더 축소됐다. 주요 업무였던 방첩과 좌경단체 수사 대상이 점점 줄어들면서 탈북자 관리에 집중했다. 최근에는 전략물자 밀반출 등 새로운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해외정보망 최우선으로 보강해야 청와대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대공수사를 총괄하게 될 경찰은 안보 수사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 수립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국정원이 주요 수사를 담당하고 경찰은 탈북자 관리에 주력해왔던 터라 일선 경찰관들의 안보수사 역량이 국정원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특히 방첩 업무의 필수 요소인 대북 관련 첩보는 주로 북한과 연계된 해외에서 나오는데, 해외정보관이 없는 경찰로선 최우선으로 보강해야 할 대목이다. 경찰은 청와대가 안보수사국이 아니라 안보수사처 설치 방침을 밝힌 것은 대공수사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하고 있다. 처(處)가 국(局)보다 규모가 크고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당초 경찰은 기존 대공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청 보안국을 안보수사국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고려했었다. 경찰은 안보수사처를 경찰청 산하 별도 조직으로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권한이 커진 것보다는 책임감이 더욱 막중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12일 오전 1시경 서울 광진구의 한 포장마차는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뜨거운 국물에서 나는 김이 비닐막 안쪽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천장에는 ‘수증기 고드름’이 여럿 생겼다. 구겨진 비닐막은 빳빳하게 얼어 펴지지도 않았다. 주인은 연신 얼음을 털어내면서도 신기해했다. 안모 씨는 “20년 동안 포장마차 했지만 이런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이때 서울의 기온은 영하 13.7도. 여기에 초속 3m의 바람이 더해져 체감온도는 영하 20.0도까지 곤두박질쳤다. 한파가 닥친 11, 12일 중 가장 추웠던 순간이다.○ 곳곳에서 한파와의 전쟁 한반도를 덮친 한파는 시간이 갈수록 수은주를 끌어내렸다. 12일 0시 영하 13.6도 후 계속 내려가 오전 7시를 넘어서자 영하 15.3도를 기록했다. 이날 최저기온이었다. 이날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에서는 손님 구경이 쉽지 않았다. 간이난로에 바짝 붙어 앉아 몸을 녹이는 상인들만 보였다. 수조에서 흘러나온 물이 꽁꽁 얼어 바닥은 빙판으로 변했다. 상인 김모 씨(62·여)는 “너무 추우니까 12시간 넘게 손님이 없었다. 10년간 이곳에서 장사하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보다 추위에 약한 다세대주택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취업준비생 정모 씨(24·여·서울 성북구)는 일어나자마자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야외 보일러실로 향했다. 꽁꽁 얼어붙은 보일러 온수관을 녹이기 위해서다. 패딩점퍼와 털장갑으로 중무장한 정 씨는 2시간 동안 온수관을 붙잡고 씨름한 끝에 겨우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있었다. 정 씨는 “미리 보온재로 잘 감쌌는데도 얼어붙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하루라도 일을 쉬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칼바람을 헤치고 거리로 나섰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나모 씨(74)는 12일 새벽 서울 강북구 지하 단칸방을 나섰다. 그는 리어카를 끌고 지하철 4호선 수유역 근처로 향했다. 고철 신문지 플라스틱 등을 주워 리어카에 눌러 담으면 많게는 하루 1만 원가량 손에 쥔다. 나 씨는 “가끔 가게 주인들이 건네는 커피 한 잔이 참 고맙다”며 웃었다. 한파가 닥치면 순찰 업무를 맡은 경찰도 바빠진다. 범죄는 줄지만 노숙인이나 주취자가 동사할 가능성이 크다. 11일 오후 11시경 서울 영등포경찰서 영등포역파출소 김종윤 경장(36)도 동료 2명과 함께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약 1시간 동안 영등포역과 주변 쪽방촌 일대를 순찰했다. 마스크와 모자에 맺힌 입김이 금세 얼어붙었다. 평소 빈자리가 꽤 보였던 노숙인 쉼터는 만원이었다. 술을 마실 수 없어 이용을 꺼리던 노숙인들도 일찌감치 쉼터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쪽방촌에 사는 노인 중 일부는 엄두가 나지 않는 듯 12일 오전 무료 배식에 나오지 못했다. 그 대신 좁은 방 안에서 소주를 마시며 술기운으로 버티는 이들도 보였다.○ 크고 작은 피해 속출 12일 오전 강원 횡성군 안흥면의 기온은 영하 24.8도까지 떨어졌다. 영하 18도를 기록한 춘천에서는 수도계량기 동파 신고가 잇따랐다. 영월군 무릉리와 정선군 고양리 등에서는 우물까지 얼어붙어 소방차가 긴급 급수에 나섰다. 폭설에 한파까지 겹친 호남에서도 피해가 이어졌다. 이날 오전 6시경 전북 고창군의 한 마을 앞 도로에서는 치매 환자인 최모 씨(92)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11일 최 씨가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우스 시설과 축사, 퇴비 공장, 인삼 재배용 그늘막 등이 무너지는 사고도 잇따랐다. 계속된 눈과 강풍으로 막혔던 제주 하늘과 바닷길은 12일 모두 뚫렸다. 활주로 운영 중단과 재개를 반복한 제주국제공항에서는 이날부터 이착륙이 정상화됐다. 서울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아시아나 OZ8901편이 이날 오전 6시 59분 제주공항에 무사히 착륙했고 오전 8시 19분 승객 168명을 태운 티웨이항공 TW722편이 제주에서 김포로 출발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본부 측은 12일 하루 7000여 명의 체류객을 수송했다고 밝혔다.조동주 djc@donga.com / 고창=이형주 / 제주=임재영 기자}

12일 오전 1시경 서울 광진구의 한 포장마차는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뜨거운 국물에서 나는 김이 비닐막 안쪽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천장에는 ‘수증기 고드름’이 여럿 생겼다. 구겨진 비닐막은 빳빳하게 얼어 펴지지도 않았다. 주인은 연신 얼음을 털어내면서도 신기해했다. 안모 씨는 “20년 동안 포장마차 했지만 이런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이때 서울의 기온은 영하 13.7도. 여기에 초속 3m의 바람이 더해져 체감온도는 영하 20.0도까지 곤두박질쳤다. 한파가 닥친 11, 12일 중 가장 추웠던 순간이다.● 곳곳에서 한파와의 전쟁 한반도를 덮친 한파는 시간이 갈수록 수은주를 끌어내렸다. 12일 0시 영하 13.6도 후 계속 내려가 오전 7시를 넘어서자 영하 15.3도를 기록했다. 이날 최저기온이었다. 이날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에서는 손님 구경이 쉽지 않았다. 간이난로에 바짝 붙어 앉아 몸을 녹이는 상인들만 보였다. 수조에서 흘러나온 물이 꽁꽁 얼어 바닥은 빙판으로 변했다. 상인 김모 씨(62·여)는 “너무 추우니까 12시간 넘게 손님이 없었다. 10년간 이곳에서 장사하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보다 추위에 약한 다세대주택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취업준비생 정모 씨(24·여·서울 성북구)는 일어나자마자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야외 보일러실로 향했다. 꽁꽁 얼어붙은 보일러 온수관을 녹이기 위해서다. 패딩점퍼와 털장갑으로 중무장한 정 씨는 2시간 동안 온수관을 붙잡고 씨름한 끝에 겨우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있었다. 정 씨는 “미리 보온재로 잘 감쌌는데도 얼어붙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하루라도 일을 쉬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칼바람을 헤치고 거리로 나섰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나모 씨(74)는 12일 새벽 서울 강북구 지하 단칸방을 나섰다. 그는 리어카를 끌고 지하철 4호선 수유역 근처로 향했다. 고철 신문지 플라스틱 등을 주워 리어카에 눌러 담으면 많게는 하루 1만 원가량 손에 쥔다. 나 씨는 “가끔 가게 주인들이 건네는 커피 한 잔이 참 고맙다”며 웃었다. 한파가 닥치면 순찰 업무를 맡은 경찰도 바빠진다. 범죄는 줄지만 노숙인이나 주취자가 동사할 가능성이 크다. 11일 오후 11시경 서울 영등포경찰서 영등포역파출소 김종윤 경장(36)도 동료 2명과 함께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약 1시간 동안 영등포역과 주변 쪽방촌 일대를 순찰했다. 마스크와 모자에 맺힌 입김이 금세 얼어붙었다. 평소 빈자리가 꽤 보였던 노숙인 쉼터는 만원이었다. 술을 마실 수 없어 이용을 꺼리던 노숙인들도 일찌감치 쉼터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쪽방촌에 사는 노인 중 일부는 엄두가 나지 않는 듯 12일 오전 무료 배식에 나오지 못했다. 그 대신 좁은 방 안에서 소주를 마시며 술기운으로 버티는 이들도 보였다.● 크고 작은 피해 속출 12일 오전 강원 횡성군 안흥면의 기온은 영하 24.8도까지 떨어졌다. 영하 18도를 기록한 춘천에서는 수도계량기 동파 신고 접수가 잇따랐다. 영월군 무릉리와 정선군 고양리 등에서는 우물까지 얼어붙어 소방차가 긴급 급수에 나섰다. 폭설에 한파까지 겹친 호남에서도 피해가 이어졌다. 이날 오전 6시경 전북 고창군의 한 마을 앞 도로에서는 치매 환자인 최모 씨(92)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11일 최 씨가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우스 시설과 축사, 퇴비 공장, 인삼 재배용 그늘막 등이 무너지는 사고도 잇따랐다. 계속된 눈과 강풍으로 막혔던 제주 하늘과 바닷길은 12일 모두 뚫렸다. 활주로 운영 중단과 재개를 반복한 제주국제공항에서는 이날부터 이착륙이 정상화됐다. 서울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아시아나 OZ8901편이 이날 오전 6시 59분 제주공항에 무사히 착륙했고 오전 8시 19분 승객 168명을 태운 티웨이항공 TW722편이 제주에서 김포로 출발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본부 측은 12일 하루 7000여 명의 체류객을 수송했다고 밝혔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고창=이형주기자 peneye09@donga.com}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를 노리거나 가상통화를 이용해 거액을 챙기려는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프로그램을 해킹해 개인정보를 빼낸 뒤 ‘비트코인 5억 원어치를 주지 않으면 해킹 사실을 언론에 알리겠다’고 협박한 범죄가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소프트웨어 업체 이스트소프트의 웹사이트 계정(ID) 및 비밀번호 통합 관리 프로그램 알패스를 해킹해 16만여 명의 개인정보 2500만여 건을 빼낸 혐의로 조선족 조모 씨(27)를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 씨는 지난해 2∼9월 중국 칭다오의 한 아파트에서 한국인 공범 A 씨와 합숙하며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알패스에 저장된 16만 명의 웹사이트 ID와 비밀번호를 빼냈다. 조 씨는 이 정보 속에 담긴 가상통화 거래소 ID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2.1비트코인(당시 시세로 800만 원)을 자신의 전자지갑으로 빼돌렸다. 또 이스트소프트에 전화와 e메일 등으로 67차례에 걸쳐 ‘5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주지 않으면 해킹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또 가상통화 거래소 코인원은 가상통화를 이용한 도박장을 개설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코인원 회원들이 가상통화의 최장 일주일 후 시세를 예측해 미리 사거나 파는 행위를 불법 도박으로 판단했다. 미래 시세라는 우연에 따라 재물을 얻거나 잃는데, 그 법적 근거가 없어 불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서 미래 주가를 예측해 미리 주식을 사거나 파는 행위가 합법인 것처럼 가상통화에 대해서도 합법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조동주 djc@donga.com / 수원=남경현 기자}
경찰이 국가정보원 대신 대공수사권을 맡는다. 당초 ‘안보수사청’ 등 전담 외청 설립이 검토됐으나 경찰이 직접 맡는 것으로 조율됐다. 이에 따라 경찰청 보안국이 안보수사국으로 확대 개편될 예정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출입기자단과 만나 대공수사권 활용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대공수사권이 넘어오면 국정원 대공수사요원 일부를 경찰직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이 추진된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해외정보역량 보완을 위해 국정원과 정보를 주고받는 통합정보관리시스템도 도입된다. 이 청장은 “국정원에 비해 경찰의 안보수사 역량이 부족하다는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국정원과 협의해 전문 수사 인력을 경찰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국정원에서 대공수사기법과 유·무형 인프라 및 노하우를 전수받겠다는 뜻도 밝혔다. 경찰은 대공수사와 탈북민 관리를 맡는 경찰청 보안국을 안보수사국으로 확대개편할 계획이다. 대공수사는 안보수사국이 전담하고 탈북민 관리와 행정 업무는 별도 조직에 전담시킬 방침이다. 안보수사국장 자리는 국정원 출신 등 외부 인사가 맡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넘기면 경찰은 국내에서 대공수사를 하는 유일한 수사기관이 된다. 이 청장은 경찰권 비대화 우려에 대해서는 장관급으로 격상될 경찰위원회와 별도 옴부즈맨 제도를 통해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10일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방안을 담은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다. 그러나 개정안을 심의할 정보위와 정보위 법안심사소위, 그리고 법제사법위원회 모두 자유한국당 의원이 위원장이어서 처리에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당은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에 강력 반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치경찰제 도입을 전제로 대공수사권 이관을 공약했다는 점도 변수다. 자치경찰제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추진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한데 묶여 국회에서 다룰 가능성이 높다. 본회의 통과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경찰은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면 북한 선수단 신변보호대를 운영할 방침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평창 올림픽 제2차 치안대책위원회를 개최하고 경찰 활동 태세를 종합 점검했다. 경찰과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통상 분쟁국가 간 선수촌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해 온 관례상 북한이 참가한다면 미국 등 적성국가 선수들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응원단 간 충돌을 막기 위해 관중석에도 경찰력을 동원할 방침이다. 경찰은 이미 북한의 올림픽 참가에 대비해 경비 대책을 수립해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해 4월 평창 올림픽 테스트이벤트 당시 북한 여자하키선수단을 지켰던 경험을 공유했다. 2002년 부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북한 선수단을 보호했던 경험도 이번 평창 올림픽 계획 수립에 고려될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90개국 이상 5만여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평창 올림픽 모토를 ‘24시간 완벽 경비’로 정하고 경비·교통·경호·안전검측 등 분야별 전문가 교육을 실시했다.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매뉴얼대로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대회 장소에서 현장훈련을 반복했다. 대회 기간에는 경찰특공대와 신형 장갑차, 드론 차단 장비, 스마트폰 장착 열화상카메라 등 대테러 장비를 전진 배치할 예정이다. 겨울올림픽에 맞게 스키와 스노모빌, 전기이륜차 등을 이용한 신속대응팀도 경찰이 운영한다. 경찰기마대도 현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국제경찰협력센터(IPCC)를 운영해 국제 테러리스트의 입국을 원천 차단하고 대회장 외곽 검문소 39곳에 차단 장비와 감속 유도 시설을 설치할 방침이다. 평창 올림픽에 투입될 경찰 8200여 명에게는 신형 방한 파카와 발열 조끼, 방한화 등을 지급한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4일 오후 6시 40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씨네큐브 광화문에 경찰 200여 명이 모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그린 영화 ‘1987’을 보기 위해서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31년 전 과거와 마주했다. 서울대 학생 박종철 씨를 물고문 해 숨지게 한 선배 경찰의 모습이다. 이날 단체관람은 상영관 한 곳을 통째로 빌려 진행됐다. 경찰청 고위 간부부터 하위직 직원까지 두루 참석했다. 2시간 9분에 걸친 영화 상영 내내 객석은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남영동’으로 상징되는 대공수사처 소속 경찰들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고문하는 장면과 연세대 학생 이한열 씨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피 흘리는 장면에서는 곳곳에서 ‘아!’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켜지자 모두 먹먹한 표정으로 조용히 자리를 떴다. 민갑룡 경찰청 차장은 “마음을 굳게 먹고 봤는데 어쩔 수 없네…”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민 차장은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된다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마음을 모아 개혁을 잘하겠다”고 말했다. 고위 간부 중 일부는 1987년 당시 경찰대 재학 중이었다. 당시 경찰대 4학년생이었던 민 차장도 “영화를 보니 당시 대학생들에게 부채의식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대생이었던 다른 간부는 “휴가를 나와 대학가에 가면 모든 친구들이 시위 중이었고 내가 졸업하면 지휘할 전투경찰은 시위를 막고 있었다. 당시 ‘나도 원래 저 현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라며 착잡해했던 감정이 영화를 보고 다시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영상 경찰청 수사제도개편단장(53·경무관)은 영화 관람 중 울컥하는 감정을 억눌렀다. 이한열 씨와 절친했던 친동생 영갑 씨(50)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갑 씨와 이한열 씨는 연세대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절친하게 지냈다. 이한열 씨가 쓰러진 시위 현장에도 함께 있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실제 이한열 씨 장례식 장면에서 상여를 든 영갑 씨가 나온다. 이 단장은 “동생이 마음의 상처를 짊어지고 사는 모습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봤기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이번 단체관람은 이철성 경찰청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이 청장은 지난해 12월 28일 먼저 영화를 보고 “경찰에 아픈 역사지만 인권 경찰로 나아가는 각성을 주는 영화니까 솔선수범해서 보자”고 제안했다. 이 청장은 “부끄러운 과거를 외면하려고만 하지 말자. 영화를 보고 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성찰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전북 군산시에 사는 김모 씨(35·여)는 최근 캐피털업체라는 곳에서 싼 이자로 대출해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업체는 대출이 나가려면 보증보험료 250만 원이 필요하다며 생소한 요구를 했다. 편의점에서 일종의 기프트카드인 OK비트카드 250만 원어치를 사서 핀 번호를 찍어 보내달라는 거였다. OK비트카드의 핀 번호를 가상통화 거래소에 입력하면 카드 금액만큼 비트코인으로 전환된다. 꺼림칙했지만 김 씨는 대출 욕심에 업체의 요구를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대출은 고사하고 250만 원만 날렸다. 가상통화를 악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에게 뜯긴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가상통화로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김 씨 사례처럼 OK비트카드를 이용하면 대포통장이나 별도 인출책 없이도 바로 가상통화를 통해 돈을 뜯어낼 수 있다. 한국에 있는 인출책이 잡혀 조직 전체가 위험에 빠질 염려가 없어 사기범들이 군침을 흘린다. 피해자로부터 빼돌린 개인정보로 가상계좌를 몰래 만들어 범죄에 악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피해자 명의로 가상계좌를 만들게 하고 수수료 명목 등으로 돈을 입금시키게 한 뒤 이를 가상통화로 바꿔 해외 전자지갑으로 이체하는 수법도 생겨나고 있다. 주부 김모 씨(66)는 지난해 말 7000만 원을 빌려주겠다는 캐피털 사칭 전화를 받았다. 업체는 “주부라서 고액 대출이 바로는 불가능하니 일단 5500만 원을 카드론으로 빌려서 보내주면 우리가 바로 갚아 거래 실적을 만들고 7000만 원을 대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업체는 김 씨에게 ‘가상통화 거래소 ○○에서 가상계좌를 만들고 5500만 원을 입금한 뒤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만 하면 거래 실적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 주겠다고 유혹한 것. 가상통화의 개념을 잘 몰랐던 김 씨는 가상계좌를 은행에서 운영하는 줄 알고 사기범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김 씨가 입금한 5500만 원은 모두 가상통화로 바뀌어 보이스피싱 일당의 해외 전자지갑으로 빼돌려졌다. 특히 최근 보이스피싱 일당들은 금융기관을 사칭해 대출해 주겠다고 속이는 고전적인 방식에서 탈피해 신종 수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유흥업소에서 질펀하게 노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놨는데 돈을 안 주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방식이다. 경찰에 따르면 중국, 필리핀 등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일당들은 동영상이 없으면서도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협박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순순히 돈을 보내 입막음하려는 남성들이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김모 씨(40·서울 거주)도 지난해 11월 이런 협박에 속아 1000만 원을 뜯겼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자들 말을 들어보면 하루 종일 수십 명이 앉아서 무작위로 전화를 돌리면 3∼7일 만에 1건 정도 건진다고 한다”고 전했다. 개인의 불법 인터넷 도박 내용을 확보해 운영자를 사칭하며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과거에 이용했던 도박 사이트에 베팅 잔액이 소액 남았는데 추가로 돈을 채우면 한꺼번에 환불해 주겠다고 유혹하는 식이다. 통상 10만 원 단위로 금액을 딱 맞추면 한 번에 돌려주겠다는 속임수가 많다. 박찬우 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계장은 “대출을 권유하는 전화가 오면 일단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하고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대부업체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며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은 어떤 경우에도 계좌 이체나 현금 보관을 제안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①돈 아끼려 낡은 열선 방치한 건물주 ②얼어붙은 열선을 손으로 잡아당긴 건물관리인 ③여탕을 확인하지 않은 소방점검업체 ④먹통 무전기 탓에 2층 진입 늦은 소방당국 ⑤소방차 앞길 가로막은 주차 차량. 지난해 12월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가 참사로 번진 이유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가장 큰 원인을 무엇으로 보십니까?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도 딱 하나를 꼽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이 중 하나라도 상식 수준의 역할만 했다면 29명이나 숨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큰 이유를 ‘탐욕’으로 골랐습니다. 제천 화재는 비용을 줄이려 안전을 희생시킨 참극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주 이모 씨(53·구속)는 1층 주차장 추가 열선 공사비 221만 원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직접 고치라고 했습니다. 김모 관리과장(51)은 얼어붙어 틀어진 열선을 일일이 손으로 잡아당겼습니다. 누전 때마다 그는 이런 황당한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앞서 11월 30일 소방점검 업체는 2층 사우나 점검을 건너뛰었습니다. 영업 중인 여탕이라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철제 선반에 가리고 잠겨있던 비상구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도 안 돼 화재가 일어났고 2층에 갇힌 20명은 생명로(生命路)를 찾아 헤매다 쓰러졌습니다. 충북소방본부 상황실이 보낸 ‘2층 구조 요청’ 무전은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구조대는 애꿎은 지하 1층부터 수색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현장에서 소방관이 사용한 휴대용 무전기가 먹통이었던 걸 보면 신호가 잘 닿지 않는 음영지역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전기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중계기를 빼곡히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쩌면 낡은 무전기의 자체 결함일 수도 있습니다. 주정차 차량 탓에 소방차 진입도 늦었습니다. 그 도로 옆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습니다. 스포츠센터 앞에 있는 한 대형마트 이용객을 위한 공간입니다. 주차비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급히 차량을 세워야 했다면 이 주차장을 이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이를 번거롭고 귀찮아했습니다. 그냥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놓는 것이 편했던 것입니다. 1월 1일 전국의 일출 명소에 관광객이 몰렸습니다. 주요 도로는 순식간에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찼습니다. 급기야 소방서 앞마당까지 점령당한 곳도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제천 합동분향소에서 만났던 한 고교생이 떠올랐습니다. 그 학생은 “슬프기보다 화가 난다. 왜 우리는 늘 무슨 일이 터진 뒤에야 바꾸려고 하느냐”며 분노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더 부끄러운 건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겁니다. 새해 첫날 소방서 앞을 점령한 차량들의 모습은 정녕 대한민국의 민낯일까요. 제가 다시 그 고교생을 만났을 때 “더 이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일은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조동주 기자 djc@donga.com}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1층 주차장에 처음 불이 났을 때 1층 화재 감지기와 경종(警鐘)이 먹통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맨 처음 사용한 소화기도 고장이었다. 화재 피해를 초기에 막을 경보-피난-소화 3대 설비가 동시에 제 역할을 못하면서 결국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24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소방점검 결과에 따르면 11월 말 점검 당시 1층 주차장 화재감지기는 작동 불량이었다. 화재 감지 후 자동으로 울리는 경종도 고장 났다. 소화기도 문제였다. 목격자에 따르면 1층 천장에 불이 번지자 건물 관리인 2명이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다른 소화기 2개를 찾았지만 불은 이미 차량에까지 옮겨붙었다. 이런 문제점은 건물 전체에서 60곳 넘게 발견됐다. 민간 점검업체는 이런 문제점을 건물 측에 통보했지만 화재 때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점검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업체는 여탕이 있는 2층 사우나 내부를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구를 가린 대형 목욕용품 수납장의 존재를 아예 확인조차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 관계자는 “평소 여탕은 소방대피 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제천=조동주 djc@donga.com·윤솔 기자}

3000채 넘는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경기 용인시 동천2지구 도시개발사업이 위장 조합원 논란에 휩싸였다. 도시개발사업은 구역 땅 주인 50% 이상이 동의하고 토지 66.7% 이상이 포함돼야 조합을 출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사업 시행사가 조합 설립에 필요한 조합원 수를 편법으로 채웠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시행사가 토지를 사고 소유주를 자사 임직원 명의로 바꾸거나 등기 이전을 미룬 뒤 전(前) 주인 이름으로 조합에 가입시켰다는 것이다.○ “조합 장악에 편법 동원” 14일 동천2지구 도시개발사업조합 등에 따르면 조합은 2012년 8월 이 일대를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제안했다. 용인시는 2014년 4월 정식 설립 인가를 내줬다. 사업구역 토지 주인 88명 중 50명(56.8%)이 동의하고 토지 32만2922m² 중 22만5429m²(68.9%)가 포함됐다. 사업은 조합이 개발하고 토지 원주인에게 적정성을 따져 가격에 맞게 돌려주는 환지(換地)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조합이 정식 설립되면 강제로 조합원이 되는 개발 반대 주민들은 반발했다. 이들 반대 조합원은 시행사 DSD삼호가 조합 인가에 필요한 조합원 수(전체의 50%)를 편법으로 채워 조합을 장악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조합 설립에 동의한 토지 소유주 50명 중 적어도 8명은 2013년 불법 명의신탁으로 벌금형 등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삼호 측 인사이며 최소 15명이 삼호에 땅을 판 후 등기 이전을 하지 않아 이름만 올라 있는 조합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조합원 8명이 형사 처벌된 뒤 삼호는 명의를 법인으로 돌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삼호가 산 땅에 삼호 측 사람들이 명의만 올려놓고 조합원으로 활동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아일보가 확인한 결과 형사 처벌을 받은 8명은 경기 고양시 식사동과 용인시 신봉동, 김포시 풍무동 등에 토지를 갖고 있다. 모두 삼호가 추진하는 도시개발사업 부지다. 식사동 땅은 1필지를 2m² 미만으로 쪼개 가진 100명 이상이 다 조합원 자격을 갖춰 논란이 됐다. 동천동을 제외하면 모두 1필지 보유자가 수십 명인 ‘쪼개기’ 형태의 땅이었다. 경기지역 경찰서장 출신 동천2지구 조합장 A 씨(62) 역시 식사동과 풍무동 등에 땅이 있다. 2010년 경찰을 떠나 삼호 감사가 된 A 씨는 2013년 회사를 나와 동천2지구 조합장이 됐다. A 씨의 식사동 땅(242m²)은 주인이 129명, 풍무동 땅도 주인이 52명이다. 동천동에 빌라도 한 채 있다. A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쪼개기가 돼 있는) 식사동과 풍무동 땅은 회사 상여금으로 샀고 세금도 다 냈다. 동천동 빌라는 내가 삼호로부터 9100만 원에 샀다. 정당하게 조합장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설립동의서를 위조한 혐의로 일부 조합원에게 고발당한 A 씨는 피고발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위장 조합원 못 걸러내는 행정 동천2지구 사업 허가를 내준 용인시는 서류상 조합 구성 요건을 충족하면 일일이 조합원을 확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류만 갖추면 위장 조합원을 가려낼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사업 허가를 내준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도 주장한다. 통상 도시개발사업 터는 정형성을 지닌다. 동천2지구는 정상적이라면 직삼각형 형태가 돼야 하는데 주민 반대로 일부 터가 제외되면서 정형성이 흐트러져 모양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용인시 관계자는 “동천2지구는 신청과 심의 과정 등에서 외형상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삼호 측은 일부 명의신탁이 있었던 건 인정하지만 사업 특성상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구역 땅 주인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땅값을 부르며 사업을 방해해 우호 조합원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형사 처벌을 받은 조합원 8명과 관련해서는 농지를 법인 명의로 할 수 없도록 한 현행법 탓에 부득이하게 회사가 개인 명의로 돌려놓았다고 해명했다. 자사 임직원들이 조합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투자 목적으로 땅 매입을 권해서라고 밝혔다. 쪼개기를 한 땅들은 회사가 상여금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호 내부에서는 임원들이 불법 명의신탁에 동원되는 게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호 관계자는 “해당 조합원이 불법 명의신탁으로 처벌받았어도 조합은 적법하다는 검찰의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용인=조동주 djc@donga.com / 김배중 기자}

경기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사는 이철민(가명·45) 씨는 집 근처 공원을 지날 때면 불안했다. 담배를 피우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청소년들 때문이다. 훈계할까 생각도 했지만 ‘요즘 10대는 무섭다’는 주변 만류에 참았다. 어느 날 경찰이 순찰 희망 지역을 신청하면 순찰 동선(動線)에 반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곧바로 이 공원을 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며칠 뒤 오후 경찰은 공원에서 래커를 뿌린 비닐봉지에 머리를 묻고 환각에 빠진 김모 군(17)을 체포했다.○ 전국 순찰 요청 사유 1위, 청소년 동아일보가 경찰청이 전국에서 접수한 순찰 요청 19만748건을 분석해 보니 주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요인 1위는 청소년이었다. 이는 주민밀착형 탄력순찰제를 통해 확보한 국민의 목소리를 분석한 결과다. 경찰청은 올 10월부터 시민이 온·오프라인으로 순찰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소를 현장에 적용하는 주민밀착형 탄력순찰제를 시행했다. 주민이 순찰을 요청하며 제시한 사유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모두 취합해 많이 언급된 키워드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분석했다. 청소년이 가장 많이 나온 것은 그만큼 일상에서 주민들이 청소년을 두려운 존재로 느낀다는 뜻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청소년에 이어 범죄 절도 교통사고 비행(非行) 주택 주취자 농산물 골목 빈집 등이 불안 요인으로 꼽혔다. 서한겨레 경찰청 범죄예방정책과 경위는 “농산물이 상위에 오른 것은 농산물을 훔쳐갈까 걱정하는 농가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만748건을 전국 법정동(法定洞·2만541곳)별로 분석한 결과 요청 건수 1위는 서울 광진구 중곡동(6445건)이었다. 주민들은 어두운 골목, 청소년 비행, 주취자, 외국인 등을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2위는 관악구 신림동, 3위는 광진구 자양동 등 모두 유흥가가 있는 곳이었다. 순찰 요청 상위 9위까지 모두 서울이었다. 서울 지역 상위 10개 동의 순찰 요청 사유에도 청소년은 상위에 들었다. 중국동포가 많이 사는 영등포구 대림동(7위·1909건)에서는 ‘외국인 행패’라는 키워드가 가장 많이 추출됐다. 유흥가가 많은 신림동은 시비 폭행 노숙 등이 꼽혔다. 서울과 경기를 잇는 지하철 2·4호선 환승역인 사당역이 있는 동작구 사당동은 ‘출퇴근’이 주요 키워드였다. 출퇴근길에 벌어질 수 있는 범죄나 사고를 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경찰청 관계자는 “순찰 요청이 많은 지역이라고 반드시 치안이 불안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요청 많을수록 효과도 커져 주민들이 순찰을 바라는 요청이 많을수록 탄력순찰제 효과는 극대화된다. 요청이 많으면 민의가 더 정확히 파악돼 효율적으로 순찰할 수 있다. 경찰은 주민 요청과 112 신고 내용을 비교 분석해 순찰 우선순위를 정한다. 경기·인천권 순찰 요청 3위인 인천 부평구 부평동에서는 “‘자전거 차량털이’를 당했다”며 순찰을 요청한 지점에서 범인을 붙잡았다. 경찰은 10월 6일 오후 이곳을 순찰하다가 ‘범인 비슷한 사람이 자전가를 타고 가는 걸 봤다’는 112 신고를 받았다. 근처를 자전거로 지나던 범인을 불심검문해 인근에서 차량털이 3건을 더 저지른 것을 알아냈다. 경찰은 전국 주민센터와 역, 광장 등 인구 밀집지역에 대형 지도를 걸고 순찰 요청 지역에 스티커를 붙이도록 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장기적으로는 온라인으로 요청하는 방식이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경찰은 본다. 순찰을 원하는 지역이 있다면 경찰청 홈페이지 순찰신문고()에 들어가 지도에서 해당 지점을 클릭하면 된다. 이충호 경찰청 범죄예방정책과장은 “탄력순찰제는 주민과 경찰이 협력해 예방 치안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적극적으로 순찰 요청을 해달라”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정부는 민갑룡 경찰청 기획조정관(52·경찰대 4기)을 경찰청 차장으로 승진 내정하고 이주민 인천지방경찰청장(55·경찰대 1기)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전보하는 등 치안정감, 치안감 인사를 8일 단행했다. 전남 영암 출신인 민 차장은 경찰청 기획조정담당관과 경찰청 현장활력태스크포스(TF) 단장, 서울경찰청 차장 등을 지낸 ‘기획통’이다. 업무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 등을 지내는 등 검·경 수사권 조정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퇴임한 이무영 제9대 경찰청장 후 호남 출신 경찰 수장이 없었던 걸 감안하면 유력한 차기 경찰청장 후보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서울청장은 경기 양평 출신으로 경찰청 정보심의관과 외사국장, 울산경찰청장 인천경찰청장 등 참모와 지방청장을 두루 거치며 풍부한 경험을 갖췄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2004년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 근무한 이력도 있다.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에서 승진 내정된 박운대 신임 인천경찰청장(57·경사 특채)은 치안정감 6명 중 유일한 비간부 출신이다. 1987년 대공 특별채용(현 보안 특채)을 통해 경사로 입직했다. 부산 경남고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동문이다. 제주 출신인 박진우 경찰청 차장(55·간부후보생 37기)은 경찰대학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남 창원 출신인 조현배 부산경찰청장(57·간부후보생 35기)과 전남 장흥 출신인 이기창 경기남부경찰청장(54·경찰대 2기)은 유임됐다. 또 김규현 경찰청 정보화장비정책관(54·경찰대 2기)이 경찰청 경비국장으로 승진하는 등 치안감 21명이 승진·전보 내정됐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그 길은 2시간이 더 걸려. 한 푼이 아쉬운데 누가 그리로 가냐고.” 급유선을 전문으로 운항하는 인천의 한 선사 대표 A 씨는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급유선 명진15호가 인천 옹진군 영흥도 동쪽의 좁은 수로(뱃길)를 운항한 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영흥도 남동쪽과 육지 사이를 지나는 영흥수도는 좁은 곳의 폭이 370m 정도인 ‘협수로(狹水路)’다. 한편으로 서해안 주요 항만을 오가는 최단 경로다. 만약 영흥도 북서쪽 큰 뱃길로 돌아가면 2시간이 더 걸린다. 운송비용은 2배 이상 늘어난다. 급유선이 영흥수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 해상 급유선은 육상 화물차 ‘판박이’ 명진15호는 2015년 1월 전남 여수에서 건조돼 같은 해 2월 운항을 시작했다. 해상주유소인 D산업과 계약을 맺고 정박 중인 대형 외항선과 준설용 예인선, 바지선 등에 기름을 공급했다. 인천항에서 경기 평택항과 충남 대산항(서산시) 등을 오갈 때 늘 영흥수도를 이용했다. 사고 당시에도 인천항에서 경기 평택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천항 관제센터에 따르면 명진15호는 운항 시작 후 2년 10개월 동안 인천항을 490회 드나들었다. 한 달에 14.4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급유선 업체는 412곳. 운항 중인 급유선은 약 640척에 이른다. 급유선 운항 체계는 육상의 화물차와 비슷하다. 운송수단을 보유한 개인이 특정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거리를 수행하는 ‘지입차주’ 형식으로 운영된다. 자본금 1억 원에 100t 이상 급유선만 있으면 영업할 수 있다. 개인사업자 수준의 영세한 급유선사가 많다. 인천지역 급유선 업계에 따르면 명진15호를 소유한 M유조도 배 한 척이 유일한 자산이고 회사 사무실도 대표 이모 씨의 자택과 같은 곳으로 알려졌다. 선원 5, 6명을 제외하면 직원도 없다고 한다. 그나마 366t급 명진15호는 인천지역 급유선 30여 대 중 큰 축에 속한다. 급유선사의 수입은 운송 수수료다. 현재 L당 5, 6원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급유선 한 척을 운영하면 선원 인건비와 연료비, 보험료 등으로 매달 최소 4000만∼5000만 원씩 들어간다. 선원 여럿을 고용해야 하기에 인건비만 월 2000만 원이 넘고, 유류오염 손해보험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처음 급유선 구입 때 받은 대출금 상환도 부담이다. 보통 300t급 급유선 가격은 20억∼30억 원가량이다. 줄일 수 있는 건 운송비용밖에 없다. 결국 선박 운항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눈앞에 멀쩡한 길을 놔두고 돈이 두 배나 더 드는 길을 가라고 하면 배를 몰지 말라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운송 수수료 현실화 시급” 해상 급유선 업체 대부분이 워낙 영세하다 보니 M유조 역시 이번 사고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배상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당시 명진15호에 타고 있던 대표 이 씨는 현재 해경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 측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이곳저곳 바쁘게 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M유조는 한국해운조합을 통해 가입한 선박보험을 토대로 사상자 측에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해운조합도 이 씨와의 접촉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 오후 4시경 이 씨는 해운조합 측의 전화를 받고 “구두로 사고 접수를 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운조합 관계자는 “사고 접수에 필요한 서류를 달라고 수차례 전화했는데 그 후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수사가 마무리돼야 사상자 배상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급유선 업체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안전보다 비용에 쫓기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운송 수수료 현실화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급유선 업계는 20년째 제자리걸음인 수수료 지급에 항의해 지난해 10월 대기업 정유사를 상대로 동맹휴업을 벌였다. 그 결과 수수료를 L당 평균 4원에서 5, 6원으로 40%가량 1차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현재 급유선 업계는 내년 1월과 7월, 2019년 1월 단계적인 운송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유사는 연속 인상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해양수산부의 중재 아래 협의체가 구성된 상태다. 한국급유선선주협회 관계자는 “현재 해상 급유 체계에 문제가 너무 많다. 이대로라면 절대 글로벌 해양강국이 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구조적으로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부당행위가 없어지고 안전도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조동주 djc@donga.com / 영흥도=권기범 / 인천=박희제 기자}
경찰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대교 남단을 기습 점거해 극심한 교통 정체를 일으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민노총 건설노조) 지도부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4일 확인됐다. 경찰은 7일 건설노조 지도부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구속영장이 신청된다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찰이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에 대해 신청한 첫 영장이 된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4일 경찰 간부들에게 건설노조의 마포대교 점거 당시 경찰 대응이 무력했다는 비판을 거론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경찰 수뇌부는 건설노조원 9000여 명(경찰 추산)이 퇴근 시간대 서울 영등포구와 마포구를 잇는 마포대교 왕복 10차로를 1시간 넘게 무단 점거해 수많은 시민에게 큰 피해를 입힌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점거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경찰 병력 5명이 부상을 당한 점도 고려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마포대교 무단 점거가 시민들을 사실상 ‘준감금’한 것이기 때문에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경찰은 마포대교 점거와 같은 불법 시위가 반복되면 정부에 대한 민심이 나빠질 것으로 판단하고 강경 처벌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경찰은 도심 집회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마포대교 점거 주도자 8명과 광고탑 위에서 고공 시위를 벌인 2명 등 총 10명을 수사 대상으로 분류했다. 경찰은 7일 출석 예정인 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 등 지도부 5명을 상대로 불법 시위를 주도했거나 고의로 방치했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 5명을 조사한 뒤 나머지 5명에 대해 소환을 통보할 계획이다.조동주 djc@donga.com·이지훈 기자}

“그놈이 떴다!” 얼마 전 서울 강남역 부근 선술집에서 스마트폰을 유심히 보던 주인 A 씨 눈에 한 남성이 포착됐다. 선술집 근처로 보이는 길거리에서 한 남성이 지나가는 여성의 팔을 잡고 말을 붙이는 동영상이었다. 젊은 여성을 상대로 이른바 ‘헌팅 방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터넷방송 진행자(BJ)였다. A 씨는 현장으로 달려가 BJ에게 “촬영하지 말라”며 제지했다. A 씨를 비롯해 강남역 일대 상인들은 ‘BJ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야외에서 모르는 여성을 쫓아다니는 것을 생중계하는 개인인터넷방송이 민폐를 일으키자 상인회 차원에서 ‘BJ 개인방송 금지령’을 내렸다. 주로 30, 40대 젊은 자영업자로 구성된 강남 상인회는 지난달 초부터 과도한 야외 헌팅 장면을 생방송하는 BJ들을 나서서 막고 있다. 상인회는 악명 높은 BJ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BJ가 자주 나타나는 술집을 돌며 ‘특정 BJ는 손님으로 받지 말라’고도 설득한다. 상인들이 BJ 활동을 막을 법적 권한은 없다. 하지만 불황에 손님이 더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자 힘을 모았다. 상인회 관계자는 “번화가는 여성 손님이 많아야 호황인데 무분별한 BJ 탓에 젊은 여성들이 강남역 거리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커졌다”며 “주말 밤마다 야외방송 BJ가 많게는 20명 정도 길거리에서 활개 치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 상권에 해를 입히는 BJ에게는 민사소송을 내겠다며 대응한다”고 말했다. 가게 안까지 들어와 무차별로 찍어대는 BJ들에게 질린 상인들은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 사장은 “단골이던 여성 레이싱모델들이 BJ들을 보고 ‘다시는 강남역에 안 오겠다’며 나간 적도 있다. BJ가 여성 손님에게 심하게 따라붙자 경찰까지 출동한 것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아프리카TV 같은 개인인터넷방송 플랫폼에서 생중계되는 ‘헌팅 방송’은 BJ가 여성을 아무나 붙잡고 즉석 인터뷰를 ‘강제’하는 방식이다. 여성들은 클럽에 가거나 누군가와 술 마시는 모습 등 사생활이 그대로 생중계된다. 이렇게 방송된 영상은 BJ가 운영하는 유튜브 개인 채널에서 아무 때나 노출된다. 순식간에 주변을 지나간 카메라가 어떤 BJ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동영상이 어디를 떠도는지조차 모른다. 아프리카TV 관계자는 “시청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BJ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해명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지금 눈꺼풀에 본드를 발라 눈을 뜰 수 없습니다. 눈을 한번 떠 보세요.” 기자는 경기 의정부시 경기북부경찰청 법최면실에 누운 지 얼마 안 돼 과학수사계 오인선 경위(55)의 나긋한 음성을 듣고 온몸이 나른해졌다. 눈을 뜨려고 애썼지만 눈꺼풀이 붙어 있는 느낌에 뜨지 못했다. 오 경위가 “머리를 비우고 호흡에 집중하라”고 말한 지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기자는 부산 여종업원 살인사건이 15년 만에 해결된 데에 최면수사가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소식에 ‘믿을 수 없다’며 최면수사 체험에 나섰다. 하지만 자신 있게 나선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기자는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코흘리개 시절까지 생생 동아일보 취재팀은 15일 오 경위를 찾아 최면수사를 체험해봤다. 오 경위는 경기북부청의 유일한 법최면 담당자다. 최면수사 경력 12년 차 베테랑이다. 최면이라는 ‘신비의 영역’에 대한 반감과 의구심으로 가득한 김예윤 기자가 최면 받기를 자청했다. 다음은 김 기자와 그가 최면수사를 받는 장면을 지켜본 다른 기자의 시점을 오가는 체험기다. 나(김 기자)는 최면수사 동의서와 면담카드, 응답지 등을 작성한 뒤 의자에 누웠다. 방음 처리된 10m² 남짓한 법최면실은 곧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 경위는 “머리를 비우고 호흡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약 5분간 편안하게 호흡했다. ‘절대 최면에 걸리지 않으리라’ 호언장담한 나는 몸에 긴장이 풀리며 나른해졌다. 최면의 늪에 빠져드는 듯했다. 잠시 후 오 경위는 몇 가지 실험을 시작했다. “두 팔을 뻗어보면 풍선이 있으니 바람을 불어넣어 보세요” “두 손에 무거운 책이 들려 있으니 무게를 느껴 보세요” 등 특별한 행동을 번갈아 요구했다. 나는 두 손에 들린 책의 무게감을 느껴보라고 했을 때는 느낌이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손 안에 든 풍선을 부풀려 보라는 얘기에 숨길을 불어넣었다. 두 손이 무언가로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이때 김 기자는 허공에서 공기를 모아 부풀리듯 빈손으로 손동작을 했다. 나는 실제 풍선이 부풀어 오르며 내 손바닥에 닿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같이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라고 20분 이상 지시한 뒤에야 오 경위는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떠올려 보세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과학실험으로 더덕 키우기 내기를 하며 행복해하던 17년 전 내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옆에서 다른 기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걸 알았지만 나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초등학교 3학년 그때 기억이 너무 생생해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최면에 걸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굳게 각오했던 터라 오 경위의 주문대로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1시간에 걸친 최면수사에 나도 모르게 오 경위가 시키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던 순간들이 너무나 신기했다. 오 경위는 “최면수사로 희미해진 기억을 극대화하면 잠깐 본 범인이라도 몽타주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법최면이 잡아낸 15년 전 살인범 김 기자가 체험한 법최면은 수사기법 중 하나로 실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전생을 볼 수 있다’는 식의 허황된 내용이 아니다. 순간 이미지나 과거 기억 극대화에 초점을 둔다. 거짓말탐지기처럼 최면 상태의 진술은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범인의 단서를 찾는 데 유용하다. 올해 부산지방경찰청이 15년 만에 해결한 2002년 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에서 최면수사는 범인 양모 씨(46)를 특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일한 목격자인 이모 씨(41·여)는 8월 부산청 법최면실에서 부산경찰청 과학수사계 전성일 경위(50)를 통해 15년 동안 묵혀둔 기억을 끌어냈다. 이 씨는 범인이 살해한 양모 씨(당시 22세)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할 때 지인 오모 씨를 따라 은행에 함께 갔었다. 15년 전에 딱 한 번 본지라 기억이 희미했다. “머리는 짧고 검은색 옷을 입고…. 덩치는 보통이었어요.” 전 경위가 “지금 그 남자를 보면 알 것 같나요?”라고 묻자 이 씨는 “일단 보면 알 것 같다”고 답했다. 잠시 후 최면에서 깨어난 이 씨는 한 장의 사진을 골랐다. 범인 양 씨가 2003년 찍은 운전면허증 사진이었다. 1시간 15분간 최면수사를 통해 15년 전 기억이 각성된 것이다. 경찰은 통신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양 씨를 특정하고 8월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고영재 경찰청 현장지원계장은 “올해 1∼10월 최면수사를 이행한 사건 19건 중 10건이 살인사건이었다”며 “최면은 기억력을 극대화시켜 범인의 몽타주를 그려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의정부=조동주 djc@donga.com·김예윤 기자}